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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3.08.16 (금)

2013년 8월 16일 선생님 명설교

선포일
2013.08.16 (금)
성경 본문
마태복음 4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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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6일 선생님 명설교(명강의) /2004. 5. 16 기도의 빛을 발하라 본문: 마태복음 4장 1절-11절, 다니엘 12장 11절 <마 4:1-1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 한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 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 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 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 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 서 수종드니라” <단12: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페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본문말씀- 다시 주일 단상에 올라왔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롭게 온 분들과, 다시 하늘을 만나러 온 여러분들! 대단 히 반갑습니다. 할렐루야로 화답하면서 오늘 주일말씀과 모든 순서를 시작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모두 영적 으로 육적으로 건강해야 되겠습니다. 주일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4장 1절부터 그 이하 몇 절까지 읽겠습니다. 본문이 길어서 나머 지 읽는 것은 여러분에게 맡기고 단상에서는 몇 절만 읽어주겠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12장 11절을 보겠습니다. 이 두 군데가 오늘 말씀의 본문으로 삼고 설교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 라 신구약 성경 전체의 말씀이 또한 나올 것입니다. 항상 다양하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 절씩만 하면 언제 다 하겠습니까. 성경 구절 한 절 가지고 설교하면 3만 번 이상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백 년 이상해야 되기 때문에 안 되지 않습니까. 후반기까지 20동안 빨리 해서 그 많은 설교를 다 해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받아들이고 소화만 한다면 한 주일에 몇 개씩 해 줄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마태복음 4장 1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 리신지라”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 나머지는 여러분이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다니엘서 12장 11절 말씀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지 말라”는 말씀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나머지 성경 말씀은 그 때 그 때 말씀하면서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여러분도 열심히 듣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상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또 평소 생활 가운데 각자 처한 처지를 따라서 말씀해 주시고 하지 만, 그래도 단상을 통해서 가장 많이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제 주일 전체 찬양 시간입니다. 오늘은 찬송가 456장입니다. ♪456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1.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2. 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길로 가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한 곡 더 하겠습니다. 오늘 주제 말씀은 “기도의 빛을 발하라”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노래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여호와여” 이 곡에다 “기도하라” 이것을 붙여서 두 번하겠습니다. ♪‘여호와여’ 곡에 ‘기도하라’ 가사 넣어서 찬양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 하라 기도하라 (한 번 더 반복)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오늘 본문 말씀이 마태복음 4장 1절로 11절, 그리고 다니엘 서 12장 11절인데 기타 하늘이 주는 이에 해당하는 모든 말씀들을 여러분에게 전하겠습니다. 모든 말씀은 항상 지난 주 말씀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하나님이 주시고, 한 성령 안에서 감동해 주시고, 선생 님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한 예수님이 주시니까 그 흐름이 비슷하고 같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전하면 다르겠지요. 지난 주 말씀은 ‘지혜의 빛을 발하라’ 했습니다. 금주 말씀은 ‘기도의 빛을 발하라’입니다. ‘지혜의 빛을 발하려면 기도를 해야 된다’ 이렇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한국은 스승의 주간으로 보냈고 모임도 많았을 것입니다. 스승에 대한 말씀도 주일 말씀 중에 스치면서 지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스승의 가르침을 들으러 왔을 것입니다. 스승!! 인류 역사상 지구촌에 스승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각자 주시는 그 사명대로 성인들의 가르침이 다 각 각이었습니다. 누가 낫다, 누가 못하다 할 것이 없습니다. 같은 하나님이 각자의 사명의 줘서 일을 하게 했으니 비 교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특히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는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가장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그 대신 공자는 부모에 대해서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작은 스승이 아니겠습니까. 석가모니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허무하 게 살면 안 된다, 뭘 찾아야 된다는 가르침을 줬습니다. 소크라테스 정직하게 거짓 없이 살라고 하며 인생철학의 지 침을 심어 주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 안에 다 들어 있으나 신앙생활 하는 사람만 들을 수 있고 이방 사람은 못 들으니까 이방의 사람 중에도 지도자 스승을 세워서 그들의 말을 듣고 하늘을 향하고 하늘을 찾게 했습 니다. 선생님도 역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러 왔습니다. 사람이 너무 모르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배우는 기쁨이나, 가르치는 기쁨은 역시 보람의 기쁨입니다. 희락 중에 하나입니다. 선생님은 누구에게 배울 만 한 자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선생님의 고향 월명동을 보면 누가 나를 가르 칠 사람이 없었습니다. 형님들이 나를 붙잡고 가르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형님들도 어떤 지식에 대해 누가 가르칠 만한 사람도 없었고 또 배울만한 환경이 못 되었기 때문에 학문을 하다 말았습니다. 가난해서 돈 을 못 대서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아르바이트를 하면 되는데 거기는 아르바이트 할 장소도 없었습니다. 월명동에 구 멍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할 만 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집에 가서 일을 해서 돈을 벌 곳도 없었습니다. 아랫집의 고 집사님 집도 아들딸이 많아서 자기네끼리 일을 하고, 윗집의 박 집사님 집도 아들딸이 많으니까 자기네가 일을 하니까 일을 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돈 을 벌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누가 학문의 세계를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형님들이 나에게 인생을 가르 칠 수도 없었고, 학문을 가르칠 수 있는 위치들이 못 되었습니다. 자신들도 공부를 못 해서 환장들을 하고 있었는 데, 동생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교회에 가서 성경을 재밌게 배웠습니다. 교회는 재밌게 해야 합니다. 재밌게 안 하면 안 갑니다. 갈 수가 없고, 가고 싶은 마음도 안 생깁니다. 교회에 가서 그 나름대로 재미있게 배웠습니다. 여러분, 내가 다녔던 시골 교회를 알지요? 그 시골의 조그마한 교 회에 공부하러 다녔습니다. <사진 참조> 사랑방 교회 여기 교회로 다녔습니다. 이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 공부도 하고 주일 말씀을 듣고 그랬습니다. 그 때가 아홉 살 때입니다. 아홉 살 때에 이 교회에 다녔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는 아주 궁궐입니다. <사진 참조> 월명동 생가 터에 1970년도에 지은 집과 뒷동산 배경 월명동 선생님 고향입니다. 70년도인데 엄청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삼 십 오 육 년이 지나갔습니다. 그 때에 이 같은 곳에서 뭘 배우겠습니까. 외롭고 쓸쓸한 이런 곳에서 성장하고 자라났습니다. 그러니까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교회에 가서 성경을 배우고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듣고 그랬습니다. 교회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위대 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또 깨닫고 알게 되니까 아무리 초라한 곳일지라도 위대한 사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환경과 어떤 처지를 막론하고 누구한테 위대한 말씀을 배우느냐에 따라서 사상, 정신, 지식, 지혜가 좌우된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큰 엄청난 큰 교회에만 다닌다 해서 위대한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삼선교 시대에 선생님이 공부를 가르칠 때도 아주 찌그러진 집, 사람들이 사용도 안하고 쓰러지는 집에서 가르쳤 습니다. 한국에 삼선교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본래 노인들이 모이는 양로원이었는데 건물이 거의 무너지게 되었기 때 문에 노인들도 죽는다고 못 모이게 했습니다. 그런 곳일지라도 돈이 없으니까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치고 엘리트들을 길렀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싶으나 이런 곳에서 어떻게 공부하나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사고, 위대한 사상, 위대한 인생이 좌우되는 역사의 말씀을 거기서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 님을 깨닫게 되니까 너무 놀라고, 그 때 역사가 막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런 찌그러진 집(사랑방 교회)에서 배우다가 점진적으로 기독교 신앙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거기에 가 보지 않았습니까. 내가 78년도에 역사를 펴러 나왔다가 80년도를 넘어서 이곳으로 오기 시작 했습니다. 와보니까 ‘아 정말 이런 곳의 교회를 다녔다니... 아닌 게 아니라 예수님이 말 마굿간에서 태어난 것처럼 나도 말 마굿간 같은 교회에서 태어났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회상을 했습니다. 이 교회는 선생님이 사는 월명동 마을에서 좀 내려가면 석막리 마을에 있었는데 지금은 있나 모르겠습니다. 무너 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 <사랑방 교회>를 다녔습니다. 서울에 올라가서 섭리를 시작할 때도 이런 사랑방 교회같이 작은 교회에서 우리가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제일 처음에 시작할 때 작은 교회에서 시작되나 말씀을 들을 때 위대한 말씀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모세 같은 사람을 보세요. 가시덤불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저 사람도 없는 쓸쓸한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 나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이 어느 환경과 처지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냐, 누가 거기에 있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교회에 다니면서 더 이상적인 변화와 엄청난 인생의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더 크게 가르칠 사람을 찾 았으나 누가 나를 더 크게 가르칠 사람이 없었습니다. 목사님도 아니고 전도사님도 아니고 정말로 위대한 말씀을 가 르칠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성경을 읽었을 때에 깨달아지지 않는 말씀을 깨닫고 싶어서 결국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기도하 니까 떠든다고 하고, 기도만 하느냐고 혼내서, 월명동 뒷동산으로 가서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월명동 뒷동산에 가서 계속 기도 생활을 하다가 밥 먹을 때가 되면 내려왔습니다. <사진 참조> 생가 터와 뒷동산 화면에 보이는 이곳이 옛날 집터입니다. 그 뒤가 뒷동산입니다. 이 뒷동산에 가서 계속 기도 생활을 했습니다. 그 러다가 점점 크면서 굴속으로 갔습니다. 딴 사람들이 금을 파 간 곳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사진 참조> 기도굴(다릿골, 천덕굴) 이런 굴속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다가 나이가 조금 더 먹었을 때, 열다섯, 열여섯 살 때부터 멀리 대둔산으로 산 기도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참조> 대둔산 용문골과 독수리 봉 각 사진 이런 곳으로 기도하러 다녔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깨우쳐 주시고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의 선생이 되어서 너를 가르쳐 주리라 그랬습니다. 이런 의미 있고 뜻이 있는 독수리 봉을 정하사 독수리 봉으로 기도하러 다녔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기도 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내가 너의 스승이 돼서 가르치니 내 말을 꼭 듣고 지켜 행하도록 하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중심해서 공부하며 성경을 또 읽고 또 읽고 했습니다. 말씀을 배우기 위해서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됩니다. 본문 말씀을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해야 됩니다. 구약 말씀 도 많이 읽고 신약 말씀도 많이 읽어야 됩니다. 내가 왜 그렇게 성경을 많이 읽었는가 하면, 구약의 말씀을 많이 읽어야 신약의 새로운 역사를 이해하고 알게 되 고, 신약의 말씀을 많이 읽고 어떻게 역사가 돌아간지 알아야 이 새 시대는 다시 이렇게 역사를 펴야 된다는 알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많이 읽게 된 것입니다. “역사가 전형 노정으로 간다. 그러나 재림의 역사가 시작되면 다시금 옛 시대 전형 노정으로 가지만 예수님처럼 육신이 죽는 것이 아니고 심령적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겠구나.” 이것을 모두 알게 되 었던 것입니다. 성서를 통해서 역사가 시작되니까 성서의 말씀을 자세히 배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가르칠 때 문학 공부 를 가르치는 것보다, 역사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어떤 세상의 과학 공부를 가르치기보다, 어떤 사회 공부를 가르 치고 물리학을 가르치기보다, 인생이 구원받는 데 가장 귀한 종교에 해당되는 근본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영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배우는 시간이 근 20여 년을 배웠습니다. 성경을 중심해서 배웠습니다. 신약 성경을 중심해서 배울 때는 신약의 문제가 뭐고 신약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중심해서 다시 이 시대 것을 배운 것입니다. 배울 때 얼마나 배웠는가 하면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쑤셔 박혀서 공부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시험기간이 되 면 막 공부하듯이 밤낮주야로 어떤 환경에서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월남에 있을 때는 한 손에 총을 잡고 한 손에는 성경을 잡고 읽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미쳤다 고 하고 무섭다고 했습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저렇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니 저 사람 옆에 따라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가운데 많은 역사와 이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막 비가 오는 날이 있었습니다. 월남 전투 시에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비가 올 때는 너무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성경을 읽고 싶어서 어떻게 읽었는가 하면 머리를 썼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경을 내놓고 읽어도 비가 안 맞을까?’ 하다가 비닐을 덮어서 받쳐놓고 계속 읽었습니다. ‘아, 사람이 머리를 쓰면 길이 열리는 구나.’ 그렇게 하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 종일 적이 오 는가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놀면 안 된다. 성경을 읽자.’ 하고서 성경을 읽어서 지금 계속 써먹지 않습니까. 월남에서 하루 종일 적을 기다렸던 전우들은 그날 적이 안 와서 거기서 끝났습니다. 나는 그 때에 성경을 봐서 지 금까지 써먹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지금도 적이 오나 기다리고 있습니까. 지금도 적이 오나 쳐다 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는 지금도 성경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성경을 읽고서 주일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놀 때, 다른 일을 할 때! 그 날 내가 그랬다고 해서 누가 “너는 나쁜 놈이다. 성경 공부만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할 사람이 없었습니 다. 왜냐하면 내 앞에 오는 적만 해결하고 근무만 잘 서 주면 되지 않습니까. 기도해 보니까 비 오는 날 적이 안 올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앞도 안 쳐다 보고 성경만 계속 봤습니다. 그 날 하루 종일 적이 안 왔습니다. 그런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근 3년 동안 계속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군대 생활하면서 ‘너무 시 간이 아깝다. 젊은 청춘을 군대에다 다 투자하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아깝지 않았습니다. 군대에 가 있 을 때 군대성도 배우고, 조직성도 배우고, 단체생활도 배우고, 그리고 성경을 계속 읽으면서 기도생활을 했기 때문 입니다. 마치 성경 대학교에 간 것 같이, 마치 수도 생활에 들어간 것 같이 했습니다. 산에서 기도생활 하던 것을 그대로 군에서 감행했습니다. 월남 전쟁터에서 그렇게 감행하니까 더욱 인생의 처절함을 느끼고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한 쪽에서는 총을 쏘고 한 쪽에서는 총에 맞아 사람이 피를 토하고 소리를 지르며 죽는데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서 인생의 허 무함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석가모니보다 더 깨달았습니다. 석가모니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서도 허무함 을 느꼈지만 농부가 밭을 갈러 가는데 굼벵이가 밟혀죽고 돌에 깔려 죽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을 보고 도와주고 싶 은 자비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막 죽어 가는 것을 전쟁터에서 봤는데 자비한 마음이 안 생기겠습니까. 10배 1000배 더 생기지 않겠습니까. 인생 자비의 더 깊은 단계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00배 1000배 더 깨닫고 100배 1000배 더 위력 있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석가모니가 왕궁에서 나가서 보니까 사람이 나이 먹어 죽는 것을 봤습니다. 사람이 계속 사는 줄 알았는 데, 죽어서 옆의 사람들이 슬피 우는 것을 봤습니다. ‘아,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것인가. 다른 더 좋은 세계가 없는 가. 착한 일 하고 선한 일 하고 닦고 깎으면 분명히 좋은 데에 가게 된다.’ 이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이 나이 먹고 죽는 것이 아니라 청청하게 젊은 그 멋있는 몸짱의 군인들이 -선생님도 그 때 65키로 나 갔습니다- 총 한방 맞고 피를 토하고 죽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 처절함을 보고 얼마나 인생이 허무한가를 깨닫 고, 얼마나 인생이 가혹한가를 깨닫고 여러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그 때는 문학이 딸려서 글을 못 썼습니다. 지금은 문학적인 표현을 할 수 있어서 월남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썼습니다. 사람이 문학적인 표현을 할 줄 모르고 문학의 글을 쓸 줄 모르면 그런 처절한 일이 일어나도 잘 못 씁니다. 글쟁 이들은 잘 씁니다. 선생님도 지금은 어느 정도 글쟁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보다 말을 잘합니다. 말을 하면 잘 알아듣게 하고 놀라게 하고 감동되게 하고 뒤집어지게 하고 그럽니다. 여기서는 많이 못 웃깁니다. 웃기다 보면 말씀의 권위가 떨어집니다. 옛날에는 많이 웃겼습니다. 지금은 온 지구 상 사람이 모여서 들으니까 못 하고, 옛날에 열 명 스무 명 놓고 말씀할 때가 있었습니다. 초창기 때에는 웃기게 하 자 하고서 막 웃겨버렸습니다. 설교 시작 때부터 설교 끝날 때까지 계속 웃었습니다. 하도 웃어서 오줌도 싸고 그랬 습니다.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에 들어갈 것입니다. 선생님에 대해 궁금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잘 모릅니다. 나 혼자 있었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가 산 속에서 혼자 있었는데 어떻게 알겠습니 까. 내가 이야기 안 했는데 어떻게 아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에 이야기한 것과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말을 못해서 표현을 잘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글도 써서 표현력이 있지 않습니까. 산에서 기도생활을 하며 말씀을 듣고, 성경을 보며 깨닫고 그랬습니다. 월남에 있을 때 그 처참한 것을 보고서 나는 인생의 허무를 정말로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많이 죽을 때는 내 앞에 서 230명이 죽었습니다. 그 처참한 것을 보고 너무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그 때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사람도 생기 게 되고, 불면증이 생겨 잠을 못 자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 싱싱한 군인들이 그랬습니다. 아무리 육신이 싱싱하고 튼튼해도 정신세계에서 운명이 좌우되고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너의 마음을 지키라, 마음에서 생명의 근 원이 좌우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네바 협정에서 그것을 묻어 주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일주일 있다가 가보니까 막 썩어 있었습니다. 날 씨가 37도 38도가 되니까 푹푹 썩어서 시체에 구더기가 몇 되씩이나 생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 시체에서 생긴 구더기를 보니까 살이 너무 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꿈틀거리던 구더기가 보입니다. 안 지워지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꿈틀거리는 영상이 지금 비쳐져서 니가 지금 봐야 실감 있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아까 도표를 보여주고 영상으로 보여 주니까 실감 있듯이 그것을 보고서 전해 주면 실감 있지 않느냐.” “어휴, 설교 때만 생각나고 나중에 밥 먹을 때 생각나면 정말 안 되는데...” 예수님이 아무리 선생이고 스승이라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할 때가 있습니다. 밥 먹을 때는 이것을 지워 주고 가 야 하는데 안 지워 주고 가시면 큰일 납니다. 냄새도 나고 못 먹습니다. 지금 몸짱 시대이기도 하지만, 정신짱 시대라 하지 않았습니까. 정신계에 깊이 들어가서 일도 하게 되면 옛날의 그 시체 냄새가 지금도 맡아집니다. 그 시체가 보이면서 영적으로 맡게 됩니다. 선생님이 멀리 있다고 하지만 정신세계에 들어가면 옆에 만져진다는 것입니다. 만진 것 같이 느끼고, 옆에서 대화 하는 것 같이 듣게 됩니다. 지금도 여기서 대화하는 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설교하는 것을 보고서 만져보고 싶다고 하며 만져 보러 나오는 사람이 있다 하는데, 나를 만져 보러 나오는 사람의 심정을 깨닫는 사람이 몇 명 안 됩니다. 잘못하면 사람들이 “쟤 좀 약간 이상하게 됐다. 선생님을 너무 좋아 하다가 미쳤는가 보다. 상사병이 걸렸는가 보다.” 그러니까 그냥 마음으로 딱 만지면 됩니다. 마음으로 만져도 딱딱 와 닿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나를 막 만지고 싶다 하는데 나도 여러분을 만지고 싶습니다. 나를 만지고 싶다면 그러면 만지라는 것입 니다. 자 악수합시다!! 뜨겁게 악수를 합시다. 정말로 “하우 두 유 두(How do you do”이고,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그런 데 더 오래 있다가 만나야 됩니다. 그래야 정신이 성장을 한 다음에 만난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성장도 안 하고 만나면 육신이 정신 나간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아 나는 육신이 하는 것을 이해 못 하겠네.’ 그런다는 것입니다. 가령 선생님이 만나게 되면 너무 반가워서 “내 영혼을 구원시켜서 감사합니다. 사망 에서 지옥에서 생명권으로 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사실 그게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금을 지구덩이만큼 주어도 감사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지옥에 갈 사람 을 천국에 가게 만들어 놓았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너무 너무 육신이 미쳐서 어떻게 할 줄 모르고 미친 짓을 하니까 마음이 ‘아 나는 정말 이해를 못 하겠어. 나 여기 못 있겠어. 정말 쑥스러워서 못 보겠네.’ 하고서 정신이 나 가 버립니다. 그러면 육신도 정신이 없고, 그 정신도 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영혼도 정신없는 영혼이 됩니다. 나를 육신으로 만나기 전에 정신과 영혼을 연단시키고 단련시키고 사람 되게 만들고 정신과 영혼이 정말로 성장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여러분을 안 만나게 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계획적으로 전체를 못 만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미국 전체를, 나아가서 40개국 각 나라 전체를 못 만나 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와는 거리가 아주 가까운 것입니다. 영들이 와서 여기서 말씀을 듣기 때문에 주일날 영들은 예배 보러 안 갑니다. 그리고 육한테 너는 주일날 가서 헌금하고 해라, 영은 영대로 할 테니까 그럽니다. 영들이 다 여기 와서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서 내가 실감 있게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더기가 끓는 시체를 끌어다가 묘에다 묻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시체가 끌려갑니까. 팔은 팔대로 빠지고 목은 목대로 빠지고 다리는 다리대로 빠집니다. 그것을 봤으니 석가모니가 인생무상을 느낀 것보다 천 배 만 배나 더 느꼈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허무한 것을 내가 인류를 대표해서 느껴야 이런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께 받아서 전할 때 그 생생함을 말 씀으로 전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때 나는 자세히 봤습니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 울었습니다. 냄새가 너무 나고 막 오바이트를 해서 흙을 입 에다 물었습니다. ‘야, 인생이 이렇게 되는구나. 죽으면 이렇게 푹 썩어버리는구나. 너무 놀랄 일이다.’ 결국 무덤 하나에 열 명 스무 명 삼십 사십 명의 뼈를 끌어다 넣고 흙으로 덮어주었습니다. 그때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미워하고 너무 누명을 씌우고 너무 악에 받치게 하였지만 어떻게 한 줄 압니까. 여러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봤지 않습니까. 너무 극적으로 미워하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 때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한 줄 압니까. 아주 극적으로 사랑해 버렸습니다. 극적으로 미워하는 사람을 대개가 상대도 극적으로 미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극적으로 미워하는 사람을 극적으로 사랑했다 는 것입니다. 극적으로 미워하니까 극적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구세주가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누가 자기를 극적으 로 미워하면 다 자기네 미워해 버립니다. 예수님은 극적으로 미워하는데 극적으로 사랑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너무 위대한 사상의 위대한 자가 아니겠습니까. 지구촌의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사상을 가지셨기 때 문입니다. 구세주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세주는 마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구세주라고 해서 특별히 잘 생겼다거나 얼굴이 다른 것이 아닙니까. 미 로써 구원을 시킵니까. 가수들이 얼굴이 예뻐서 가수가 됩니까. 노래를 잘해서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정말로 위대한 삶을 사셨습니다. 거기서 인생의 미움을 깨닫게 되고 사랑을 더욱 깊이 누구보다 더 깨 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최고 미워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극적으로 미워하는 사람을 극적으로 사랑해서 그 사랑으로 인생을 구원하게 하나님이 역사를 하신 것입 니다. 그래서 구세주가 된 것입니다. 선생님도 월남에 있으면서 참 많이 깨달았습니다. 만약 동물들이 그렇게 많이 있는 곳에다 사람들이 총을 쏴서 다 쓰러지게 만드는 것을 계속 보면, 아마 그것을 본 사람도 정신에 이상이 생길 것입니다. “아~ 어마 어머..” 하며 떨려서 못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을 쏴서 그대로 쓰러져 죽는 것을 여자가 직접 본다면,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 사랑하는 자가 총 맞고 쓰러지는 그 순간을 본다면 여자도 아마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죽을 것입니다. 그것까지 나는 생각했습니다. 저 남자를 집에서 얼마나 기다릴 것인가, 애인이 있다면 맨날 사랑했는데 저것을 알면 죽을 것이 아닌가, 부모도 죽을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그 고통까지 겪으며 그 것을 글로 긁었습니다. ‘내가 고통을 대신해야지. 내가 기도를 해 줘야지. 일반 사람들은 아 죽었구나 하고 끝나겠지만 저 영혼이 지옥가면 큰일나는데...’ 그러면서 기도하며 시로 쓴 것을 전부 모아 요번에 책에다 넣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책은 인생을 철학적으로 다루며 쓰기도 하고 적의 입장은 어땠는가를 다루며 쓰기도 하고, 아군 의 입장도 다루고, 그리고 하나님의 입장과 내 입장, 이런 것을 다섯 가지 정도로 다루면서 썼습니다. 그래서 맛이 한 다섯 가지가 납니다. 그런 고통을 받고 그런 엄청난 운명 속에 선생님은 인생을 배웠습니다. 인생을 하나하나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 웠습니다. 허무함도 배우고 두려움도 배웠습니다. 옆의 사람이 죽는데 얼마나 두렵습니까. 아침에 작전을 떠나면 죽을지 살지 모릅니다. 확신이 없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야 오늘 나 암만해도 죽을 것만 같다. 정 병장, 기도 좀 해 줘.” 했습니다. “왜?” “꿈자리가 뒤숭숭해.” “그러면 가지 말지.” “어떻게 안 갈 수가 있어. 그런 꿈을 꾸고 그런 것을 느끼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닌데.” “내가 이야기 해 볼게.” 내가 그때 소대장 전령이었기 때문에 이야기했습니다. “하나가 자기가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자꾸 자신이 없다고 하는데 데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다.” 하면 “가지 마라 고 해.” 그래서 빼주고 그랬습니다. 전쟁터에서 무슨 도를 깨닫게 되었는고 하니, 사람이 금방 죽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 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적에 대한 공포, 자기를 쫓는 자에 대한 공포를 느껴 보았습니까. 5, 6년 동안 악인들로 인한 공포, 방송에 난다는 그 공포, 우리 단체를 다 방송에 내버린다는 공포, 우리를 다 없 앤다는 공포, 다 죽인다는 공포, 선생님 잡아갔다는 공포, 그 공포 공포... 너무 무섭지 않았습니까. 극적인 공포를 느꼈지요?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죽음에 대한 공포, 총을 들이대는 공포, 내 앞에다 총을 들이대고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공포... 나는 총을 쏠 수가 없었습니다. 몸이 굳어서 쏠 수가 없었습니다. 적은 아까부터 나를 봤기 때문에 미리 나에게 총을 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의 그 공포와 두려움! 이런 것을 3년 6개월 동안 겪고 겪었습니다. 공포 중에 더 두려운 공포가 있습니다. 아주 뼈저리게 받는 공포가 있습니다. 무슨 공포인 줄 알겠습니까. 아주 뼈저리게 받는 공포가 있습니다. 뭐겠습니까. 이 세상에 있을 때 가장 뼈저리게 무서운 공포를 느낀 것이 뭡니까. 영으로 지옥에 가서 구경을 하면 가장 충격적 인 공포를 받게 됩니다. 영으로 느끼니까. 지옥을 본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영혼의 세계이기 때문에 육신이 죽는 것보다 더 무섭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것을 많이 겪었습니다. 선생님은 20년 동안 치절미 나는 그런 것을 겪으면서 산에서 말씀을 배웠 습니다. 그냥 배운 것이 아닙니다. 그 치절미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60여 번 겪으면서 죽음이 얼마나 무섭고 얼 마나 두려운가를 뼈저리게 느끼며 인생을 배웠고, 살려 준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것을 깨달으며 인생을 배웠습 니다. 내가 그냥 앉아서 다 배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몸으로 겪으면서, 공포를 겪으면서 배웠습니다. 나는 전쟁터 에서 겪었다는 것입니다. 그 무섭게 겪은 것을 글로 쓰니까 너무너무 무섭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글을 쓸 줄 몰랐습니다. 일기장에 조금씩 써놓은 것을 다 꺼내서 이 시대로 써버린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성서의 말씀을 깊이 뼈저리게 깨닫게 되고 알게 되어 ‘아멘’ 하고 그랬습니다. ‘이 지옥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인가. 길을 찾자. 성경에 있다.’ 하고서 성경을 읽으며 찾고 예수님을 만 나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신약권의 역사인데, 이 시대의 위기를 면하고 가야 하는데 어떻게 면할 수 있느냐.’ 하면서 이것 을 찾기 위해서 하루 이틀이 문제입니까. 밥을 못 먹는 것이 문제입니까. 온 인류가 살 수 있는 길을 찾는데 내가 밥을 못 먹는 것이 문제입니까. 추위가 문제입니까. 대둔산 절벽이 문제입니까. <사진 참조> 대둔산 절벽 대둔산의 이런 절벽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몸부림 치고, 가난, 아픔, 이런 것이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내가 떨어져 죽어도 이 길을 찾아내야 한다. 내가 죽으면 또 다른 사람이 이 길을 찾아야 한다.’ 전쟁터에서 수만 명이 포위를 당했습니다. 구심점을 뚫어야 다 살아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지구촌은 사망에, 흑암에, 무지에 포위를 당했다. 사탄들과 흑암들과 악한 자들에게 포위당했다. 구심 점을 찾아내자. 그렇지 않으면 민족이 사망으로 넘어가고 세계가 사망으로 넘어 가고 지옥으로 간다. 이것을 찾아내 자.’ 하고서 찾았던 생각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납니다. 그런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참고 견디면서 기도하고 몸부림을 친 것입니다.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줄 압니까. 뭔가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살아야 되겠다 는 구심점을 찾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언부언 하다가 만다는 것입니다. 기도! 기도의 역사가 일어 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예수님이 나를 가르쳐 주셨는데, 밥이 없어서 벚나무 열매를 따먹고, 쥐엄열매를 따먹고, 이지 가 지 이것도 따먹고 저것도 따먹으면서 살았습니다. <사진참조> 산열매, 으름 이것은 아주 산의 특식입니다. 이것은 돈을 많이 줘야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특식입니다. 벚나무 열매, 으름 등 각종 열매를 따먹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살 길을 찾았습니다. 육신도 구원시켜야 되 지만 영혼을 구원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역사를 폈던 일들이 다시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서 이런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두 군데 깨닫는다 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진리를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시킬 수 있을 만큼! 일부 조금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구원시킬 수 있는 말씀, 인류에게 길을 가르쳐 줘서 나올 수 있는 정도의 말씀을 모두 받기 위해서 그렇게 오래 갔다는 것입니다. 몸부림치며 열심히 하고 밤새도록 잠을 안자고 그랬습니다. 밤도 이기고 잠도 이기며 살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이 늘 나를 가르친 것입니다. 이런 일도 가르치고 저런 일도 가르치고 이렇게 하라 하고, 힘들 때 위로해 주고 하셨습니다. 요즘 편지에 힘들다고 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데 뭘 걱정하느냐. 네 편지의 답이 말씀으로 갔다. 끝까지 잘 들어! 걱정도 많네. 그 까짓 것이 뭐가 힘 드냐.” 요즘 새로 오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막 희망 있게 왔는데 있다가 보니까 요 사람과도 부닥치고 저 사람과도 부닥 치고, 그리고 계속 안 잡아 주니까 힘들다고 합니다. 내가 잡아 주겠습니다! 말씀으로 내가 잡아 줄 테니까 내 말 듣고 힘든 것을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계속 못 잡아 주는 것입니다. 엄마들을 보십시오. 애기를 낳아놓고 계속 젖을 먹이다가 좀 커서 기어 다니면 기어 다니게 놔두지 않습니까. 자꾸 힘들다고 하면 안 됩니다. 크니까 본인들이 할 수 있으니까 놔두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더 발달되었는데 너희들이 하지 뭣 하러 의지 하냐는 것입니다. 벌써 10년씩 지나고 몇 년씩 지나서 큰 사람들은 생각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니들한테 잡아달라고만 하지 말고 의지하려고만 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선생님한테는 의지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말씀이 있으니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 으로 편지가 나간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너에게 편지가 나간다! 편지로 쓰면 두 줄 석 줄 밖에 더 쓰느냐. 말씀으로 나가니까 말씀을 들어라.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편지한다!” 각자에게 하니까 ‘내 편지구나. 아, 나한테 편지가 왔구나. 나한테 하는 이야기구나.’ 그렇게 들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이제 들어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밥 안 먹고 하는 금식기도를 했다는 것 입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하늘 뜻이 있어서 40일 금식기도를 했는데 마귀들이 배고픈 것을 이용해서 예수님께 나타 났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마귀들이다. 우리를 숨긴다고 이 시커먼 것이 숨겨지겠냐. 이 돌들로 떡이 되게 만들어라. 당신이 메시아라면서? 떡이 되게 만들어서 먹어라.” 이 때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야, 물론 사탄이지만 질문도 참 쩨쩨하게 하는구나. 겨우 그 질문을 했냐.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저런 지지리 못 난 놈들. 어린아이만도 못 한 놈들. 동물도 그런 이야기 안 하겠다.” 동물이 그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굶었으니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십시오 하고 돼지가 그러겠 습니까. 소가 그러겠습니까. 확실히 사탄은 수준 이하입니다. 그러니까 무식해서 사탄이 되는 것이고 무식해서 지옥 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말을 안 하면 대답을 못 하는구나 할까봐 대답을 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말씀의 떡으로 사는 것이다. 나 40일 동안 뭘 먹으며 산 줄 아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살았지 않느냐!” 이와 같이 너무 너무 당치 않는 질문에 너무 너무 엄청난 답을 주었습니다. 사람이 힘든 것을 통해서 시험이 옵니 다. 힘들면 힘든 시험을 사탄이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고프니까 배고픈 시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반 드시 이기라는 것입니다!! 자기 좋아하는 대로 사탄이 옵니다. 여자를 좋아하면 여자의 시험이 오고, 이성에 빠지면 이성의 시험이 오고, 물 질을 탐하면 물질의 시험이 오고, 환경을 좋아하면 환경의 시험이 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에 빠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주관만 있으면 아무 시험이 못 오는 것입니다. 이성의 문을 딱 닫아버렸는데, 이성의 시험이 오겠습니까. 안 온다는 것입니다. 이성의 문을 딱 닫으면 안 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눈으로 쳐다보면 뭐가 보이지만 눈을 딱 감고 있으면 안 보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뭔가 들었기 때 문에 옆의 사람을 말을 듣고 “뭐?” 하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데 어떤 사람은 화를 안 냈습니다. “야, 너는 저 말 듣고 화가 안 나냐?” “아니. 화 안 나.” “어떻게 그런 마음이 있냐. 너는 기도 생활을 많이 해서 그래?” “아니 기도 생활도 안 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는 귀를 막았어. 아까 못 들었어.” “너는 저렇게 삿대질 하는 것을 보고 화가 안 나냐?” “나는 화가 안나.” “왜?” “그 때 눈 감았었어.” 무슨 말인 줄 알겠습니까. 환난과 핍박도 마찬가지입니다. 귀머거리가 되고, 눈을 감고 봉사가 되어 거기에 감각 을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신경을 쓰고 신경을 날카롭게 하고 신경을 세우면 거기에 빠져 버립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올 때 자기도 걷고 싶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걸어오라고 해서 걸어오다가 물에 푹 빠졌습니다. 왜 빠졌는가 하면 파도가 오는 것을 의식하고 쳐다보았다는 것입니다. 의식하지 말라 하지 않 았습니까. 신입생들, 옆의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주위를 의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열심히 한다고 편지를 써 주면 옆의 사람이 시기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의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기를 정말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의식할 것 없는 것입니다. “니가 잘해서 편지를 받는 것이 아니냐. 정성스럽게 밤 잠 못 자 가면서 편지를 쓰고 하니까 편지를 받는 것이 아 니냐.”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는 두 번째 또 문제를 줬습니다. 성전 꼭대기에다 예수님을 세우고 뛰어내려보라고 했습니 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또 기도도 해서 훨훨 날아다니니까 뛰어 내려 보라.” 기도하면 훨훨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고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대둔산에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끝나 고 나니까 막 날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높은 데에서 한번 뛰고 싶고 그랬습니다. 거기서 뛰었으면 큰 일 날 뻔했습니다. 뛰었으면 죽었습니다. 기도하면 그런 일이 생깁니다. 높은 데서 뛰고 싶고 나무에도 올라가고 싶고 그렇습니다. 정신계에 들어가고 영계 에 들어가니까 그 만큼 자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도 40일을 했으니 영적인 힘이 생기고 과감해지고 날아다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예수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보라고 했습니다. “뛰어내려 보라. 뛰어내리면 너를 보호하는 천사들이 받을 것이 아니냐.” 이때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한 줄 압니까. 아마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허! 내가 지금 기도해서 날아다니는 판국에 쉬운 시험을 하는구나. 천사가 안 붙들어도 나는 싹 내려올 수 있어.” 이랬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시험하는 것이 아니니라!! 너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지.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 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나 똑같다. 배은망덕한 마귀 짓을 하고 돌아다니다니.” 여러분도 기도했을 때 그런 마음이 막 생긴다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 들리거나 계시파들은 막 기도를 하면 담대해지니까 “아 공포하자! 선생님이 누구라고 서울역에서 외치자!” 그러면서 막 돌아다녔습니다. 마귀에게 힘을 받은 것입니다. 마귀의 주관을 받아 마귀의 시키는 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면 ‘이래서는 안 되지. 때가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되지. 주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렇게 했으 면 되는데 오히려 돌아다니면서 미친 사람처럼 마귀의 주관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손해가 돌아오고 그랬습 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일이 있으면 첫 번째는 의식주의 시험, 두 번째는 능력의 시험, 세 번째는 명예의 시험이 옵니 다. 마귀가 천하만국이 보이는 산으로 데려고 올라가서 예수님께 천하만국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이 어마 어마한 천하만국이 사실상은 하나님을 모두 안 믿으니까 우리 것인데 사탄국의 세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네가 나에게 절하면 너에게 주겠다. 니가 한번 다스려봐라. 우리는 골치 아파서 못 하겠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러 왔잖습니까. 그러니까 사탄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렇게 해 주겠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절은 누구한테 하는 것인가 하니 너희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께 하는 것이다. 뭣 하러 내가 너희에게 절을 하겠냐. 하나님께 절을 하는 것이지 어떻게 그런 배은망덕한 일을 한 단 말이냐? 이 사탄들아, 마귀들아! 그러니까 너희가 마귀들이 아니냐.”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명예의 시험을 하며 명예를 주겠다,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 했습니다. 여러분, 명예의 시험을 할 때 거 기에 넘어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믿습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인데 내가 하나님께 절해서 받지. 그리고 이미 벌써 하나님이 나에게 줘서 내가 지금 이 것을 하러 나왔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며 기도하고 있지 않느냐. 내가 기도할 때 너희들도 올 줄 알았 다. 사탄을 제거시켜 놓아야 내가 이들을 마음대로 하니까 다 대답하지 않았느냐. 너희들은 이제 나한테 졌다! 시험 에서 졌다. 내가 너희가 원하는 대로 대답할 줄 알았지. 내가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대답하면 너희들이 물러가는 것 이 아니라 나를 너희들 것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느냐. 이제 내가 너희들을 다 이긴 것이 아니냐. 너희들이 주관하던 온 지구촌의 생명들을 내가 이제 마음대로 하는 거다. 손댔다가는 너희들 이제 죽는다.” 그러면서 멋들어지게 시험 을 이겼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40일 금식을 한 것은 여러 가지 뜻이 많이 있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 하나만 더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모든 인류의 조건을 세우는 기도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조 건을 세우는 기도를 했습니다. 사탄도 이겨버리고 없애 버리는 조건, 그리고 또 하나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조건 을 세우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 외에도 신령한 조건,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 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서 설교하듯이 큰 기도를 하고 설교하고 그랬습니다. 선생님도 큰 조건을 세우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40일 동안 기도하고 나머지 절식 기도하면서 70일을 채우지 않았습니까. 그런 조건을 세우는 역사를 선생님이 먼저 또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았고, 거기서 더 위대 한 말씀을 더 시인케 만들고, 거기서 더 하나님께 약속하고, 말씀을 듣게 되고 그런 시간이 되었었습니다. 그 때도 사탄들이 나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물질적인 시험도 하고, 명예의 시험도 하고, 먹는 것 시험 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것을 다 이겼습니다. 그 때 먹을 것이 없으니까 먹는 시험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때 명예욕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맨날 짓밟히 고 다니면 안 되겠고 뭐라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준다고 했으나 다 싫다고 했습니다. 그 리고 그때가 능력 받고 한참 뛰어 돌아다닐 때였는데 조정을 잘했습니다. 내가 생각하면 그 위치에 가 있을 때였습 니다. 그런 세계에 있을 때였으나 흑암의 세계에서 시키는 대로 안 했습니다. 우리도 기도해서 모든 시험을 이겨야 되겠습니다. 이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기도를 해야 될 입장의 말씀을 하겠습니다. 1)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꼭 번제를 드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가 창세기에 많이 나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죽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아버지를 따라서 기도생활을 많이 해서 아버지와 함께 개인 승리 조건을 세웠고, 그의 손자 야곱도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서 가정 승리를 하는데 조건을 세웠습니다. 2) <요셉>도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해서 지혜를 받아 꿈을 해석하고, <민족적인 기대 섭리의 역사>를 세웠습니다 (창37장-50장). 3) <모세>도 기도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도 기도했지만 자기 백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자기 백 성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나라에 가서 고통 받는 것을 보고 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듣고 나 와 같이 너희 백성을 이끌어 내자, 400년이 지나 때도 되었으니 이끌어 내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이끌어 내고, 호렙산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호렙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10계명을 받았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10계명을 줘서 그들로 지키게 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해서 엄청난 신령함을 받게 되고, 아주 은혜롭게 역사를 하며 백성들을 이끌어 냈습니다. 4) <한나>라는 여자가 있는데 애기를 못 낳았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애기를 낳으면 하나님께 바치겠다, 성전에서 아예 살게 만들겠다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의 것이니까 잘 축복해 줄 것이 아니겠습 니까. 결국 사무엘을 낳아 사무엘을 성전에 바쳐서 이스라엘 민족의 선지자가 되게 했습니다(삼상1장-3장). <사무엘>도 그렇게 기도 생활을 많이 해서 이스라엘 민족에 어려움이 있거나 힘들 때나 왕권을 세울 때 하나님이 다 사무엘을 통해서 하게 했습니다. 5) <엘리야>의 기도가 너무 너무 컸습니다(왕상17장-18장). 그 당시 아합 왕과 더불어 바알 신과 아세라 목상 신 을 섬기는 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구박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 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기도해서 3년 6개월 동안 비를 못 오게 했습니다. 그 때를 중심해서 3년 6개월 후 에 다시 나타나서 “너희들이 믿는 자가 하나님인가 내가 믿는 자가 하나님인가 보자. 하나님이 제물을 받는 편은 살 고 안 받는 편은 다 죽이기로 하자.” 하며 기도해서 결국 하나님이 제물을 받게 만들고,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겼 던 자들을 굴복시켰고, 그들의 제물은 안 받았으므로 다 죽였습니다. 기도를 해서 그렇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게 했습니다. 기도로 비가 오게 만들고, 또 안 오게도 만들고 했습니다. 6)<여호수아>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서 아모리 족속들과 싸울 때 하나님께 시간적 기적이 일어나게 기도했습니 다(수10장). 천상 하나님이 내려가서 적들을 때려 부수고 죽여야 빨리 끝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기도해서 그 런 역사가 일어나게 했습니다. 7)사사들 중에 <기드온> 때 일입니다(삿6장 7장). 이스라엘 민족들이 농사지은 것을 미디안 족속들이 빼앗아 가 고 해를 끼치고 죽이고 고통을 줬으나 누구 하나 그 원통함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다가 사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드온이 용사들을 모아서 미디안 족속들을 다 때려죽이고 물리치고 도망치게 만들 고 굴복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가 기도했으므로 용사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8)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군대가 18만 5천명이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들이 우리를 야유하 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야유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냐고 합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맛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하면서 하나님을 야유합니다.” 하면서 앗수르 왕이 보낸 편지를 성전에 펴놓고 기도했습 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말하게 했습니다. “내가 그들을 다 멸한다고 말하라.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말고 가만있도록 하라. 내가 전멸시키리라.” 하고 하나 님이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천사들이 와서 다 침으로 앗수르 군대들이 다 죽었다고 했습니다(왕하18장,19장). 그렇 게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총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가지고 합니 다. 말세가 되면 말[言]로써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9)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서 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15년을 더 살게 해 주었습니다. 나이를 많 이 먹었는데 15년이나 더 살게 해주었으니 실컷 살지 않았습니까(왕하20장). 기도함으로 병든 사람도 더 오래 살 수 있게 만들고, 건강하게 되게 만들고, 적들이 없어지게 만듭니다. 선생님의 월남전 책에 보면 적군들 80명과 선생님 혼자서 싸웠잖습니까. 그들 80명은 다 특공대들이었습니다. 특 공대 80명은 600명과 싸워도 싸움이 안 됩니다. 그들이 철조망까지 뚫고 들어오려고 하는데 계속 기도해서 물리쳤 습니다. 그것을 책에 썼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할 때 물러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10) 이사야, 에스겔, 아모스 선지자가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민족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해결되게 만들고 하나님이 역사하게 만들고 운명을 좌우시켰습니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이 운명을 좌우시켰다고 하나,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의 그 기도를 들어줘서 역사하신 것입 니다. 하늘나라에 가보면 다 나옵니다. 하나님의 일을 기도하고 하나님께 간구한 사람을 중심해서 민족의 운명을 돌 리고 개인의 운명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어떤 정치인이 잘해서 혹은 누가 잘해서 그것을 막을 수 있는가 보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만 듣고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자기들이 한 줄로 알지만 누가 한 것으로 되어있나 하늘나라에 가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그 민족의 운명을 좌우시킨 것들이 죽 나와 있지 않습니 까. 대통령이 잘해서 해줬다? 누가 잘해서 뭘 해줬다? 어떤 군인들이 시대를 살렸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들한테 당하고 고통을 받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1) 니느웨 성 사람들이 범죄 했으나, <하나님이 보낸 요나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고 다시 돌이켰을 때 다 시 용서받고 12만 명이 살아났습니다(요나서). 만약 회개하지 않고 기도를 안 했으면 마치 소돔 고모라 성같이 멸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멸할 사람도 기도할 때 멸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애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2) <에스더>는 포로로 잡혀갔다가 왕비가 되었습니다. 기도해서 왕비가 된 것입니다. 바사 왕국의 국무총리 되 는 원수 같은 하만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누명을 씌워서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왕의 어인까지 다 받아낸 상황이었습 니다. 왕은 모르고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자기의 사촌인 모르드개가 문지기를 하면서 그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에스더에게 이야기 해 주었는데 에스더가 온 민족이 함께 3일 동안 밥도 먹지 말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후 왕 앞에 가지 않았습니까. 사실상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왕에게 말하니까 왕이 감명 받고 “이런 놈이 있단 말이냐. 내 옆에 있는 놈인데 너무 창피하다. 이런 놈을 믿고 살았으니 당신 보기에 너무 미안하오.” 하고서 즉시 잡아다 죽여버리라고 했 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죽이려 했던 하만을 데려다가 죽였는데,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던 그 장대에 하만을 달 아 죽이고 그 식구들도 다 죽이지 않았습니까. 항상 악인은 그와 같이 마지막에 멸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왕에 해줄 바에야 인간들이 막 기도했을 때 해 주면 너무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렇게 해 주세요.” 하며 막 울고 짜고 했을 때, 해주면 그냥 해 주는 것보다 하나님도 너무 좋지 않습 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애인도 아무리 누구라 해도 막 해 달라고 애원하고 막 그럴 때 해 주면 좋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기도의 특기가 뭔 줄 압니까. 하나님께 애원해서 받았을 때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애원했을 때 주면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너희들이 나에게 기도해야 준다 그랬으니까 그 법을 떠나지 않고 하니까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 안 하면 시험 들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만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에스더서를 읽어보면 통쾌한 내용이 나옵니다. 13) <다윗>은 기도해서 늘 이스라엘 민족을 쳐들어오는 자들과 싸워서 이기고 멸하고, 기도해서 골리앗을 때려 부셔 죽였습니다. 다윗은 기도함으로 용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기도한 내용이 열왕기상에 많이 나오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시편에 나옵니다. 그 애절하게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나 죽기 직전인데 하나님, 살려달라”고 막 기도하고 했던 그 기도가 시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기도를 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그런 기도를 함으로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사 적들을 항상 때려 부셔 이겼습니다. 기도를 꼭 해야 되지 않겠 습니까. 14) <다니엘>은 기도해서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풀고, 기도해서 총리 대신이 되었습니다. 또 국무총리가 되니까 사람들이 배 아파하여 다니엘을 왕에게 송사하려고 모사를 썼습니다. 이 중에 우리나라 신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가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있다, 이런 사람을 다 멸하자 해서 왕이 어인을 찍어주었는데 결국 다니엘 이 죽게 되었습니다. 사자 굴에 집어넣었지만 계속 기도해서 사자가 못 잡아먹었잖습니까. 다니엘의 친구들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조건으로 인해 죄의 누명을 받게 되었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조건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누명을 받게 되고 억울함을 받게 되었지요? 기 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사자들이 못 잡아 먹게되고, 기도하면 다시금 그 누명이 벗겨지게 되고, 그렇게 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다 처리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친구들도 불 속에 집어 쳐 넣었는데 오히려 그들은 살아나고 집어 쳐 넣던 사람이 타서 죽지 않았습니까. 그런 위 대한 역사가 일어나서 왕이 말하기를 “이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이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 들이나 이들이 믿는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들과 욕하는 자들은 내가 다 처단시키고 죽이리라.” 하고 법을 만들었습니 다. 15) 오늘 말씀대로 <예수님>은 40일 기도를 함으로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셨고, 인류를 구원하는 조건을 세우셨습 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의 능력, 기도의 역사!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인류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고, 인생 구 원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 위에 올라가지도 않고 구원받을 사람이니까 진짜 기도를 해야 되는데 구원받을 사람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환난과 어려움과 고통과 염려 가운데 기도를 해야 되는데, 본인들이 구원받을 사람들인데 왜 기도를 안 하냐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기도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도를 해야 성령의 감동이 일어납니다.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십니다. 16) <사도>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계속 기도하니까 불길이 일어났고, 다싯금 재 부흥이 일어났고, 다시 역 사(歷史)가 펴지는 역사(役事)가 일어났습니다. 기도해야 담대해집니다. 17) <사도 바울> 선생은 계속 기도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열 네권을 쓰게 되었고, 죽어가는 기독 교를 다시 살리는 역사를 일으켰고, 예수님의 역사를 부활시키는 제2의 역사를 했습니다. 18)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기도함으로 계속 묵시를 써서 모든 시대에 남겼습니다. 19) 신약 시대 때 기도하니까 병든 자가 일어나게 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게 되고, 기적과 이적이 계속 일어났습 니다. 기도함으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기도를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병든 것만 해결하려 하지 말고 심령의 병든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심령의 앉은뱅이,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우리 인생적으로 무지한 이런 병들이 기도할 때 다 나아지고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기도의 역사도 다시 봐야 합니다. 20) <선생님>도 20년 30년 기도생활을 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40년 동안 기도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먼저 산 기도를 그렇게 오랫동안 할 때 인생길을 찾게 되었고, 성서의 근본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이 어떻게 재 림할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될 것을 알게 되었고, 지상의 온 기독교가 어떻게 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영적인 세계를 알게 되었고, 지옥이 정말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또 기도함으로 지옥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지옥이 아니라 여러 수백 종류의 지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반드시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구원주를 믿지 않고 진리를 배우지 않고는 지옥에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함으로 모든 인생길을 찾게 되었고, 기도함으로 내 인생이 부활되게 되었고, 기도함으로 죽음의 세계를 벗어 나게 되었고, 기도함으로 가난을 벗어나게 되었고, 기도함으로 명예를 얻게 되었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받 게 되었고, 기도함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책임을 얻게 되었고, 기도함으로 악인들과 싸워 이기게 되었고, 기도함 으로 우리가 모든 악을 멸할 수 있는 역사를 일으키게 되었고, 기도함으로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게 되었고, 기도함 으로 모든 민족의 재난을 막게 되었고, 세계의 재난도 막게 되었고, 기도함으로 멸망을 받을 자를 멸하게 되었고...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도함으로 여러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환난과 어려움과 핍박과 모든 잔인 한 일들이 일어났지만, 기도함으로 이겨왔습니다. 기도함으로 오늘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믿습니까. 늘 기도합니다. 기도에 대한 것을 오늘 새벽에 잠언으로 받았는데 하다가 다 못하면 수요일에 하겠습니다. -. 기도도 일이다. 손가락 하나 꼼짝 안 해도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있냐고 하겠지만 많습니다. 선생님이 그래서 얻은 것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어떻게 이 엄청난 것을 손으로 다 얻습니까. 또 몸으로 때워서 어 떻게 다 얻겠습니까. 하나님이 줘서 얻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나 해 주겠습니다.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임금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한 달 두 달 걸려서 찾아갔습니다. 문지기를 통해서 들어갔습니다. 임금이 들여보내라 했습니다. 그는 가서 이야기했습니다. “왜 왔느냐.” “다른 것이 아니고 3대 동안 집 없는 천사 인생을 살고 있는데, 우리 임금님께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서 왔습니 다.” “그러냐.” “아무리 부지런히 열심히 일해도 더 이상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항상 거리에서 잘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괜찮은 데 처자식까지 그렇게 살다보니까 임금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 처참함을 듣고 임금은 “알았다. 돌아가라.” 하고서 신하들을 시켜서 “특별히 그를 위해서 대대로 물려주면서 살 수 있는 집을 지어 주도록 하라. 좋은 장소에다 지어 주도록 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보게 이런 백성이 왔은즉 이렇게 해 주었다고 역사에 기록해 놓도록 하라.” 했습니다. 임금도 역사에 남는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멋있게 집을 지어 줘서 그 사람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 사람이 보니까 임금이 너무 너무 크게 멋있는 집을 지어서 주었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당세에 살고, 밥만 먹 으면 그 이야기를 백성들에게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얼마나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입니까. 밥만 먹으면 임금이 나 에게 이렇게 했노라 하고 이야기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이야기만 했는데 됐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한테 입만 벌리고 이야기만 했는데 되는 일이 있습니 다. 기도를 해서 얻을 것은 꼭 기도를 해야 줍니다. 기도해서 얻을 것을 기도 안 하면 얻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기도도 일’이라는 것입니다! 계속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 일이 아니겠습니까. 큰 일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 기도는 진지하게 해야 되고, 간절하게 해야 됩니다. 정말 잘못하면 빠꾸 맞습니다. 기도를 잘 해야 됩니다. -. 기도해야 정신이 총명해진다. -. 기도해야 선악이 쪼개지고, 분별할 수 있고, 깨닫게 된다. -.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에 대한 상황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하는 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기 중심으로 살게 되고 결국에는 죽은 심령이 되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 말을 인간과 하면 인간과의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과 기도하며 대 화를 해야 되겠습니다. 한동안 내가 여러분과 편지로 대화를 했습니다. 내가 편지로 하다가 끊어지는 날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편지로 대화해서 운명이 바뀐 사람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몇 번 편지가 왔다 갔다 하다가 운명이 바뀌어버렸습 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편지화 해서 대화를 합니다. 이 대화를 받고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단상을 통해서 외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보낸 자를 통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며 기도할 때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화하며 말대꾸를 해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 기도를 안 하면 사랑의 정이, 생활의 정이 다 멀어진다. 하늘과 정이 들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도 자꾸 이야기를 해야 정이 드는 것입니다. 남남도 자꾸 이야기를 하면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화를 자꾸 해서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까. 사람들끼리도 대화, 서로 서로 대화, 좌우로 대화, 아래위로 대 화 대화, 선후배간에 대화! 대화를 안 하면 다 멀어지게 되고 남남이 되게 되고 냉냉합니다. -. 지옥에 간 사람들을 여기서 잠언으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진 자가 아니냐, 메시아와 대화가 끊어 진 자가 아니냐. 섭리를 나간 사람들이 대화가 끊어져 버리지 않았습니까. 대화를 하게 되면 다시 또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 배고플 때 밥을 싹싹 다 먹듯이 꼭 기도는 싹싹 꼭꼭 해야 됩니다. 하다 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밥을 하다 말면 안 되지 않습니까. 못 먹지 않습니까. 부식을 하다 말면 안 되지 않습니까. 기도를 하다 말면 안 되고 반드시 시작부터 끝까지 다 끝나야 됩니다. 대화를 하다 말고 있다가 하자 되겠습니까. 그 때에 짤막하게라도 꼭 해야 됩니다. -. 새 시대의 말씀을 들어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믿어지고 실감이 없어진다. 기도하면 ‘아멘! 아, 역사가 시작되었구나. 믿습니다.’ 하고 확확 믿어집니다. 기도를 해야 말씀을 증거하게 되고 가르치게 되고 시인하게 되고 믿게 됩니다. 저 사람들이 왜 안 믿는고 하니 기도를 안 해서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 기도하여라! 하나님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못해도 하나님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할 수 있기 때문 에 기도를 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니까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 기도하면 안 될 일도 되게 된다. 기도하면 안 될 일이 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많지 않습니까. -. 자기가 기도해야 될 것은 자기가 꼭 기도를 해야 된다. 옆의 사람이 기도해 줄 것이 따로 있습니다. 자기가 기도를 안 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자기가 나한테 이야기 할 것을 꼭 옆의 사람이 대변해주고 옆의 사람이 연락을 하면 안 됩니다. 본인이 하라는 것입니다. 본인이 편지하고 본인이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할 것을 여러분이 기도한다고 되겠습니까. 내가 기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도와달라고 탁 이야기하는 것과, 옆의 사람이 대신 이야기해 주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까. -. 기도해야 신령해진다. 다니엘도 기도해서 신령해지고 예수님도 기도해서 신령했던 것입니다. -. 기도해야 죄가 용서되고, 허락도 해 주리라. -. 기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허락을 안 해주는 것이다. 그냥 하지 말고 기도해서 받고, 허락받고 하도록 하라. 그 동안 선생님과 편지로 많은 대화를 했지요? 대화를 하니까 너무 친해지지 않았습니까. 요새는 편지를 안 해도 친해졌으니까 너무 좋지 않습니까. 친해졌으니까 계속 하지 말고 가끔 한 번씩 편지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신입생 들 중에 힘들면 얼른 편지를 해야 됩니다. 오래 된 사람들은 덜 하지 않습니까. -. 기도하면 벌써 될 일이었다. 기도 안 해서 안 됐다. 기도했으면 벌써 될 일이었는데 기도 안 해서 빨리 안 됐다는 것입니다. 기도 잠언을 아침에 받으면서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날을 한 날 정해야 되겠습니다. 한 날을 정해서 우리 섭리사 전체가 세계적으로 기도할 테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기도를 받아 달라”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고개를 흔들흔들 하는 모습이 나에게 들어왔습니다.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했더니 “매일 드리는 기도를 폐하지 말도록 하여라.”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12장 11절 말씀이 본문에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정해 놓고 하지 말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 지 말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아침마다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애인을 만나는데 매일 매일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조용할 때 만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조용할 때가 좋지 않습니까. 심란할 때 만나면 마음이 들뜨고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잠 좀 덜 자고 조용할 때 만나라는 것입니다. -. 기도해서 말씀 받고, 시대를 깨닫게 되었다. 내 사명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기도해서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도해서 신기하고 오묘한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온 인류가 몰랐던 것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사명이 도대체 뭐하는 사명이냐 했을 때 기도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 고 말씀 듣다가 내 사명을 깨달았지요? -. 기도해야만 자신이 할 일이 깨달아진다. 남이 할 일인데 자기가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 기도해야 깨달아진답니다. 뒤죽박죽 하 면 안 됩니다. -. 기도하고 받아야 기뻐하신다. 이것은 하나님 입장입니다. 너희가 기도해야 하나님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뭘 받아야 된다는 것은 여러 분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 달라는 소리를 않았는데 하나님이 주면 기쁘지 않다. 우리가 막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주면, 하나님이 기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막 달라는 소리를 했을 때 줘야 기쁘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꼭 해야 됩니다. 자꾸 달라고 해서 줬을 때 하고,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주는 것 하고 기쁨이 다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나를 사랑해 달라. 나를 좋아해 달라.” 이렇게 했을 때 대답하는 것 하고, 그냥 내가 너를 사 랑하노라 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니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니까 나도 사랑한다.” 그래야 사랑이 오래 가고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 사랑입니다. -. 기도할 때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되고,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기도할 때 모르는 것을 받지 않습니까. -.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도를 받기만 받으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다 해 준다는 것입니다. 고로 기도해야 되겠지요? 사람으로 도울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신이 와서 도와주고 천사가 와서 도와주고 해야 됩니다. 월남에 있을 때 사람이 와서 못 도와주니까 천사가 와서 몽둥이로 나를 탁 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금방 터질 수류탄을 던지게 만들 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았습니다. 그 때 사람이 와서 했으면 같이 죽으니까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천사는 안 죽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능력자 하나님이 신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못 돕습니다. -. 기도 안 하면 영도 육도 정신도 힘이 없어지고 힘이 빠지게 된다. 기도해야 생생해집니다. 새벽기도를 해 보십시오. 생생해지고 힘이 납니다. 새벽 운동만 하고 나면 운동해서 몸을 풀었기 때문에 힘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기도를 하면 그 만큼 생생해지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기도 안 하는 사람은 힘이 없지 않습니까. 옆의 사람이 기도하는 바람에, 남 바람에 먹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 기도를 하여라. 서로 부딪친고 시험 들고 힘들게 되었던 것이 다 원만해지리라. 기도 안 하면 서로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섭리사에서 서로 우애 있게 지내라, 서로 사랑하라 하지만 서로 부 딪칩니다. 서로 부딪치면 이름을 안 대도 앞으로 설교 때 이야기 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런 창피스런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서로 부딪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로 인격적으로 살아야지 왜 힘들게 부딪치고 그러냐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어 떻게 나를 만나려고 합니까. 그래놓고 어떻게 나와 같이 대화하고 나와 같이 살려고 합니까.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런 인격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살려면 천년동안 인격을 닦아주고 준비하고 예비해야 합니 다. 이제 앞으로 나를 만나려면 5개월 6개월 7개월 8개월 철저한 연단을 받아야 됩니다. 인격의 가르침도 받아야 합 니다. 배은망덕하게 해서 만나면 안 됩니다. 이 귀한 몸을 만나는데 왜 그렇게 만난단 말입니까. 그렇게 만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혹시 이들을 구원해볼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해볼까 해서 그런 규제를 두지 않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열심히 가르치고 만들고 해야지, 뭣 하러 삐쩍 마른 애들을 만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영적인 살이 붙고, 영적인 은혜가 충만하고, 영적으로 진리가 충만하고, 육적으로 멋있게 만들어진 이런 사람을 만나야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개새끼도 빠짝 말라서 인상 쓰는 것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 람은 더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에게 기도도 하고 갖추고 만들고 준비하라 그러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하는데, 기도 못하는 사람이 오면 “선생님, 저 다리가 저리고 아픈데 나가도 될까요?”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기도도 한 시간씩 두 시간씩 하고, 같이 “아멘, 아멘” 하고, 말씀을 전하면 “아 오늘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그런 사람을 나는 찾는 것입니다.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중요하게 여기는 그런 사 람! 편지를 하다 보면 기쁜 이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귀하게 받은 말씀을 우리가 받게 되니 감격하고 감사합니다. 귀한 분에게 편지를 하게 되니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자꾸 편지를 써 주는 것입니다. 어떤 애는 내가 귀한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몇 자를 썼습니다. “ 너, 나 같은 사람한테 일생 동안 편지 를 받을 수 있냐. 못 받는다. 내가 누구인데. 너 알지 않느냐. 한마디라도 하나님의 묵시를 받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 아서 편지를 쓴다. 나의 편지가 되면서도 하나님의 편지가 된다. 그게 응답 받는 것이다. 너희 수준으로 하나님의 편지를 받을 수 있냐. 귀하게 여기라.” 어떤 사람은 편지 받는 것을 보통으로 생각하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같은 사람에게 편지 받을 수 있는 것이 보 통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벌써 사명적으로 볼 때 다른 사람인데 그런 사람의 편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너무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 편지가 그냥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편지의 답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실 말씀이 무엇 인가 묻습니다. 그래서 쓰는 것입니다. 그런 편지를 받기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그 편지가 신필이고 신의 소리입니 다. 선생님이 글을 쓴 것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선생님의 글씨는 큽니다. 글자 한 자를 쓸 때 보통 3센티에서 4센티 까지 갑니다. 그렇게 되면 볼펜 하나를 가지고 1800 자나 2000 자를 쓰면 끝납니다. 1000자면 40미터가 아니겠습 니까. 볼펜 하나로 160미터를 끌고 가면 다 닳습니다. 큰 운동장을 도는 폭이니까 그렇게 되면 볼펜이 끝납니다. 보통 볼펜 하나를 가지고 1800자 1500자를 씁니다. 여기서 말씀을 마쳐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을 마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빛을 발하라 하며 이들이 감동 받 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했습니다. 기도할 때 꼭 들어 주시옵소서. 성지 땅에서 이들이 40일 기도하고, 100일 작정 기도를 하며 각 모든 분야들이 열심히 하는 것을 봤습니다. 이들 이 모두 나와 같이 기도하고 열심히 해서 역사가 일어나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기도하면 모두 된다고 했습니다. 의 로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의 인자와 사랑과 공의로 함께 해 주시옵소서. 삼위의 권능과 능력이 이들에게 함께 하고 영원할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