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말씀2013.08.28 (수)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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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때 운명이 결정된다
작성일 : 2013. 7. 5(금) AM 1:10
작성자 : 주소유(부산 주진리교회, 청년부)
(예배의 말씀에 깊이 빠져 듣다 보면 어느새 '내가
지금 깊은 영의 세계로 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될 때가 있었습니다.
이전에 예배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말씀을 정리하지
않고 있었는데, 성자께서 다시 급히 말씀하고자 하셔
서 적게 된 글입니다. )
* 성자 주님의 말씀 *
영계의 문, 즉 천국의 문이
가장 가까이서 열리는 시간이
바로 예배의 시간이며,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만큼은 성삼위가
천국의 문을 활짝 열고서
사랑하는 땅의 신부들을 만나기 위해
기쁨으로 기대하며
너희들 앞에 좌정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그렇기에
너희에게 그 어떤 시간보다도
기회의 시간이다!
너희가 그 어떤 시간보다도
최고 중심하여 잡아야 할 시간이라는 것이다.
예배의 시간 하나하나를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모두다 너희의 것을 잡고,
자기 것으로 온전히 삼아야 한다.
예배의 시간,
특히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은
너희가 천국으로 들려 올라가는 시간이다.
너희를 천국으로 갈 수 있게 하는 문이 있다.
바로 '뇌'다.
뇌의 문이다.
뇌, 즉 마음, 정신, 생각이라는 문이
열려 있어야 하고 깨끗해야 하고,
오직 성삼위 앞에만
뚫려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예배의 시간 가운데
천국으로 들림을 받고 삼위 앞에 나아와
삼위와 대면하는 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도 있다.
너희 육신은
그 모든 상황을 다 알 수 없지만
영들은 모든 상황을 보고 아니,
뜻대로 되지 않는
육신과 정신을 한탄하기도 하고
한숨을 짓기도 한다.
그러니 정신을 온전히 잡아야 한다.
뇌가 영계로 갈 수 있는 문이다.
너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예배에 임하느냐가
참으로 중하다.
말씀을 통해 성령을 받고자 하는지,
마음이 얼마나 성삼위 앞에 열려 있는지,
말씀을 받을만한 준비가 되었는지,
마음을 온전히 다 비웠는지 등에 따라서
그 마음에 의해서 채워지기도 하고
혹은 잃기도 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휴거 때이지 않느냐.
그렇기에 주일, 수요 단상을 통해
굵직한 휴거 말씀이 떨어지고 있다.
무엇이겠느냐?
예배의 말씀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너희의 휴거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배의 시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잠을 얼마 못 자 피곤하더라도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야 하는 것이고,
그래도 도저히 이기지 못 할 때는
다리가 아프더라도
서서라도 듣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예배를 위해
너희 생명을 걸어도 아깝지 않다.
왜이겠느냐 ?
너희 생명을 좌우하는
말씀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육은 당장 내일 죽더라도
영은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의 말씀을 아낌없이 부어 주니
너희가 과연 이 시대에
무엇을 살려야 하겠느냐.
모든 것을 지혜롭게 하여라.
시대를 알고서 행해야 하지 않겠느냐.
시대에 맞는 정신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기에 선생을 통해
그리도 단상에 서는 교역자들을 교육하고
또 교육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휴거가 좌우되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니
그 사역이 어찌 무겁지 않다 하겠느냐.
그 입술을 들어
휴거 말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어깨가 무거워야지.
아직 부족하다.
내가 원하는 차원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교역자들은 드물다.
아직도 말씀에 토를 달기도 하고,
자신의 심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아무리 자기 마음이 애가 타도
단상에 서 있는 그 시간만큼은
나 성자의 심정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의 원고 속에
이미 나 성자의 심정이 다 들어 있지 않느냐.
다른 것 하려 하지 말고
제발 원고에 충실하여,
그 속에서 내 심정을 전달해 다오.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목숨을 걸고 눈에 불을 켜고 해야 한다.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이냐.
선생의 피와 살과 같은 말씀이 아니냐?
말씀의 가치를
정녕 다 아는 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주 드물다.
예배의 시간 많은 것들이 결정됨을 알아라.
성삼위를 맞는 시간이니 오죽하겠느냐.
너희 스스로가 복과 심판의 길을
자처하고 있음 또한 알아라.
너희 운명은 너희가 결정짓는 것이 아니겠느냐.
누군가는 뇌의 초점을
성삼위 앞에 맞추어 집중함으로
영계를 오르고
천국을 오르는 자가 있는 반면,
누군가는 땅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냐.
만날 만한 때에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
문을 열어 줬을 때 들어와야 하지 않겠느냐.
후에 문을 두드리고 소리친들 소용없는 것이다.
시대에 복을 타고난 너희가 이때에
너희 신앙의 근간이 되는 말씀을
확실히 붙잡지 않는다면
말씀을 통해 성삼위를 만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신앙을 지키며,
삼위를 만날 수 있겠느냐.
내 오늘 타는 심정으로 권고하노라.
예배의 가치를 진정 아는 자가 되어라.
아직도 예배시간 전에
서로 웃고 떠들며 이야기꽃을 피우느냐?
무엇을 위해 예배에 참여하려
교회로 발걸음을 한 것이냐.
목적의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너희 삶의 중심, 마음의 중심에 나 성자가 없는데
어찌 나 성자의 말이 너희 가운데 거하며
너희와 동행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것이냐.
어찌하여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할 거라 예상하느냐.
자신의 삶을 보고, 마음을 보고 나를 불러라!
합당하면 내가 가지 않겠느냐.
너희가 육신을 쓰고 살고 있는 이때는
너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때이다.
너희는 아직 이 지구라는 태에 있을 뿐이다.
본격적인 삶, 근본의 삶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러니 아직은 긴장해야지.
그러니 육신을 쓰고 살고 있는
아직은 긴장해야지.
끝까지 긴장해야지 않겠느냐.
예배를 준비하는 위원들끼리
마음 삐거덕거리는 일 만들지 말고
평화롭게 하나 되어 해야 한다.
너희 안에서 마음 어긋나면
하늘의 역사를 펼칠 수 없다.
그러니 예배 위원들이
서로 하나 되어야 한다.
서로 존중해 주고,
서로 배려해 주어야 한다.
상처가 되는 말,
상대를 누르는 말 등은 삼가라.
육의 눈으로
삼위의 임함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의 눈이 밝은 자는
그 마음이 이미 삼위를 모심으로 인해
긴장하고 있다.
그저 또 이번 주도 하는 예배,
저번 주에도 했던 일이라고 생각지 말아라.
너희의 새로운 마음, 차원 높아진 마음을 원한다.
또한 변질되지 않은 마음가짐을 원한다.
시대의 차원이 높아졌기에
너희도 시대에 맞춰 함께
차원을 높여야 한다.
시대의 바람을 타고
새로운 자들이 온다.
그들이 아무리 신입생이라 하여도
예배의 수준과 분위기는 다 느끼고 간다.
그 어떤 것보다 말씀이 제일 핵심이다.
단상 말씀으로 생명을 녹이지 못하면
무엇으로 생명을 이끌 수 있겠느냐.
교역자들아,
너희는 단상에 서서
선생이 써 준 원고를 심정 깊게 외침으로,
일체 되어 외침으로 인해
그곳에 서서 생명을 전도하는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가 달린 일이 아니냐.
기도로, 준비로, 온전함으로, 깨끗함으로 하자.
물론 신입생들의 마음 밭에 따라
그 말씀이 받아들여지기도 하나,
책임분담을 다하여
나 성자와 함께 일체 되어 외치자는 것이다!
예배의 말씀을 통해
많은 것들이 결정되니
한 주마다 말씀을 소화해 나가며
차곡차곡 쌓아 나가며
자신을 온전히 만들어라.
'신부의 영'으로 만들어라!
또한 이 말씀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너희에게 받아 전해 주는
선생을 위한 기도를 언제나 잊지 말아라.
예배 전에 항상 너희의 구원자를 생각하며
그를 위해 하는 기도,
진심 어린 간절한 그 기도
절대 잊지 말아라.
선생의 영 또한 예배의 시간,
너희를 보며 함께하고,
영으로 함께하며 말씀을 전하니
선생이 나오면 무언가 잘하겠다 생각 말고
영으로 선생을 맞고,
영으로 보며 살피고 있는
선생 앞에서 지금 잘 하여라.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나 성자에게 오는
가장 빠른 길임 또한 잊지 말기를 바란다.
애타는 마음으로 너희에게 말하였다.
신령한 예배를 드리는 때이다.
자신을 신령하게 만들고, 사랑덩이로 만들자.
너희의 모든 삶이 예배가 되길 바라고,
그 예배 가운데 가장 가까이서
너희와 함께 함으로
너희가 느끼고 변화되고 기뻐하길 원한다.
사랑의 성자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