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3.09.20 (금)
금요 명설교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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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9.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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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1978년 서울에 올라와서 집도 없이 삼각산 골짜기 등지로 돌아다니다 겨우 작은 방 하나 구했으
나 그것도 역시 금방 깨져버리고 다음에는 조그마한 교회를 하니 세주고 빌려서 쓰게 됐는데 그것도 또
물러나게 되어 이제 신촌에다 30만원 넣고 월 3만원 짜리 방을 구해 들어갔는데 한달
신촌. 찌그러진 기와집 입구
만에 생활비 때문에 전세금을 다 까먹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으면서 1980년 8월15일. 김*희를 전도하게 됐는데 거기서는 주민들이 젊은 사람들이 모여
서 뭐하냐는 둥 말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있을 수 없어서 다음에는 절에 가서 하나님의 전으로 삼았습니
다 그러다가 신촌에 있는 어떤 교회에 갔는데 거기서는 왜 남의 교회 사람들이 와서 성경공부를 하냐는
이유로 거기서도 나오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엄청난 진리를 받을 수있는 여건이 너무도 없었습니다. 물론 사람 찾기도 힘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석달 후에 안*현 목사를, 다음에 서*순, 김*만을 전도하고 아쉬움과 함께 신촌에서 떠나 1980
년도 11월 경에 삼선교로 옮기게 됩니다.
삼선교
내가 신촌에서 방을 얻으려고 돌아다닐 때. 복덕방을 통해 한 150집을 돌아다니다가 한 평쯤 되는 조그만
방을 발견하고서 이렇게 좋은 방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고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자리를 깔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박장대소하며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좋
다. 너무 감격한다. 너무 기쁘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주인이 어느 정도까지 심하게 말을 했는고 하니 혼자 있으면 화장실을 다섯 달만에
푸는데 우리 몇 명이 왔다갔다 하니까 식구가 늘어서 두 달만에 화장실을 푸게 되었다며 나한테 와서 “밥
만 먹고 화장실만 가냐? 성가셔서 죽겠다. 안 되겠다. 삭월세 값을 더 내야 된다. 3만원식 내는데 4만원씩
내라.”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눠봤지요. 주인집 것까지 나눠보니까 4만원이면 너무 비싸고 3만7천원이
면 되겠다 했더니 안된다 했습니다. 4만원은 내라고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그렇게 제재를 받고 살았던 때
가 기억나는데 그럴지라도 그 집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
그 후에 삼선교로 옮겼는데 삼선교에 가니까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 전에 제재받지 않는 집을 찾았는데
삼선교가 그러했습니다. 40년 가까이 된 집인데 갈대를 엮어서 흙을 바른 집이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쓰던
집으로 쓸만한 방은 하나도 없지만 방이 스물 네개나 되었습니다. 거기에 있으니까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성향원이라 하는 양로원으로 70살. 80살 된 하얗게 늙은 노인들이 살던 곳으로 비바람이
치면 무너질까봐 철수한 집이었습니다. 그 집을 노인도 아닌 우리 젊은 사람들이 좋아서 기어들어갔으니
얼마나 그때 당시 우리 마음이 순진하고 순진했습니까?
원래 갈 곳이 없어서 그렇게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바람이 치면 겁이 났습니다. 아무튼 거기는 누가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화장실을 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고 1년 열두달 내내 다녀도 화장실을 치울 필요
가 없었습니다. 무저갱같이 깊은 화장실이 다섯개나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나도 화장실
이 이렇게 큰 놈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애들도 그 화장실에 갔다오고서 화장실만큼은 참 좋다고
했습니다. 자기들도 전세살이를 하지만 그렇게 큰 화장실을 못 써봤다는 것이었습니다.
“야 화장실 정말 끝내주더라!”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이 집을 40년 전에 지을 때 나 때문에 지었다고 나는 규정을 내렸습니다. “이 곳
은 예정된 집이다. 나를 위해 지은 집이다.” 하며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 집을
썻습니다. 비바람이 불 때마다 창문이 흔들리면 나뭇대로 꽃아놓고 못 흔들리게 만들어 놓고 하면
서도 그 장소를 그렇게 귀하게 쓰고 깨끗하게 쓸 수가 없었습니다.
냄새가 나서 오물장에 가보니까 약 2트럭 가까이 되는 엄청난 쓰레기가 쌓여 있었습니다. 노인들이 한
7-8년 동안 쌓아놓은 것이 그냥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길씩 퍼가지고 다 묻어버렸더니만 깨끗하게 되었
습니다.
그때 그 오물을 처리했던 사람이 지금은 섭리에 남아있지 않은데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할만한 사람을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그 일이 끝나니까 그냥 보내더라구요. 와서 공부하라니까 공부도 안하더니만 겨우 그거
퍼주고 그냥 갔습니다. 뭘 해도 하는 사람이 각각 있습니다.
삼선교는 전에 양로원으로 사용했던 집으로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시청에서 사람의 출임을 금하던 집이었
습니다. 쥐들과 개가 왔다갔다 해서 오물을 두 차는 파묻었습니다. 여기에서 서서히 출발을 시도하여 4평
짜리 방에도 사람이 꽉 찼습니다. 그래서 그 옆에 조금 더 큰 방을 허락받고 쓰게 되는데 그 집 역시 방
만 많았지 발로 펑 차면 무너질 정도로 낡았습니다. 그런 집도 주인이 있었는데 거기서 1년을 살으니까
그집 자리에 다시 건물을 건축하려고 다른 사람들이 사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집주인이 장로님이었는데
집을 빨리 나가라고 했는데 빨리 안나간다고 재판소에 고소장을 냈던지 어느 날은 선생님을 재판소에서
오라고 해서 학생들 한테는 거기 간다는 말을 안하고 선생님 혼자 갔습니다. 그래서 법정에 섰는데 선생님
한테 판사가 왜 집을 나가지 않느냐? 고 하더군요. 그래서 선생님이 줄줄줄 설명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판
사가 오히려 집주인인 장로님한테 호통을 쳤습니다. “이런 사람을 고소할 수가 있느냐. 당신같은 사람도
사람이고 또 장로냐”하고.
이에 선생님이 “아니올시다 내가 꼭 나가야 되는데 안나가서 그랬습니다.” 라고. 나중에 가서는 집주인을
변호하다시피 했습니다. “하늘사람 변호를 내가 해야지. 누가 하랴!”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는 나가야지 거기서는 살 수 없다 하니까 집주인이 공연히 미안해서 택시비 3천원까지
주더군요.
그때 택시타고 가라면서 3000원을 주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돈으로 택시를 탔다가는 삼선교까지
가다가 다 쓸 것 같아 택시 타는 척하다가 버스를 타고서 3000원을 벌었습니다. 그 당시 3000원이면 제
법 큰 돈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헌금을 해도 3000원이 나오질 않는 때였습니다. 그 돈으로 애들 라면
사다가 먹이고 또 필요한 곳에 쓰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최재렬 전도사와 같이 가서 봄. 목사가 고백. 아침 기도할 때부터 이상히 안하던 청소하고
자기도 닦고 했다고 누군가 올 것 같았다고.
마침 수요예배라 설교해 달라고 승낙, 말씀.
‘메시야가 이렇게 우물가에 나타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로 결론.
‘사마리아 여인’설교. 눈을 조금 뜬 것 같애서 기도시키고 할 때 빠져나와.
‘야 빨리 가자’
기도하고 택시 빨리 타려니까. 그 목사님 따라와서 막 택시 안으로 뛰어들음. 따라가고 싶다고, 교회 와서
4대교리 듣고서는 엎드려 절함. 이제 얘기하지 말라고 가서 그 교회에 안 좋은 사람 있다고. 그런데 가서
여전도사한테 그날 온 사람이 하늘이 보낸 사람이라고 이야기함. 여전도사 와서 듣더니 이단이다. 가서 얘
기한다고 나가면 순회 못하게 한다고.
삼선교 시절
내가 전에 삼선교 때 꿈에 보면 뱀장어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뱀장어 삶아먹고 열심히 하라는
말인가?’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뱀장어 같은 애들이 있어서 잘 안되었습니다. 그런 애들은 말씀을 들어도
쭉 미끄러져 나가고 했습니다. 금붕어나, 붕어로 보여준 사람은 남았습니다. 배수연 목사님은 붕어로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이상하게 미꾸라지로 보여준 사람은 바로 연결도 안되고, 몇 마디 듣고
바로 나가고, 조금 있더라도 몇 달 동안 붙잡아 주어도 결국은 삐져나가더라구요. 나중에 삐져나갈 때 하
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경희대 학생이었는데, 그날 자기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찾
아가는데 부닥칠 차도 아닌데, 상대편의 교수 차와 부딪쳤습니다. 그래서 자기 어머니보다 더 오랫동안 병
원에 있다가 나왔습니다. 자기 차가 잘못한 것으로 되어서 돈도 못 받고 고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마지막으로 때리시더니 내보내시더라구요. 그래서 밤에 미꾸라지를 보여주시면 그 사람을 찾기만 하면 됩
니다. 그 사람을 찾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은 시간만 소모한다고 안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노간주나무가 거의 없는데, 노간주나무로 보여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는 노간주나무가 있으면 내가 다
쫓아다니며 베어냅니다. 소나무도 참나무도 없어서 휑한 곳에만 노간주나무를 가끔 남겨 놓을 뿐입니다.
그 나무로 보여줄 때는 끝난 것입니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3년을 붙잡아 주어도 그냥 끝납니다. 노간주나
무는 다른 나무에 접붙임이 없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처음 대학생들에게 너무 어렵게 가르치니 잘 몰랐다가 주일학교 식으로 가르치니 알아들어
19860803 주일 잘 싸워야 잘 이긴다 눅12:51-53
제가 한 번은 삼선교에 있을 때 어떠했는 줄 압니까? 대학생이 올 때 최대 어려운 문구를 써서 강의를 했
습니다. 왜? 안 눌릴려교. 대학생은 교수나 가르치고, 신학생은 신학자들이나 가르치는데 어떻게 된 줄 압
니까? 왔으나 매치(match)가 잘 안되고, “별로 재미가 없다”하고 그리고 ‘어렵다’ 하고 갔습니다. 전도가
그렇게 안될 수가 없었습니다. 무진장 전하고 무진장 열심히 했는데도.
그러던 중 하루 저녁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 줄 압니까? 밤에 꿈을 꾸었는데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습
니다. 나타나 가지고서 날보고 주일학교 선생을 하라고 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나 많은 것을 네게 주리라.”
는 말씀을 생각해 볼 때, ‘아하 내가 이제 강등(降等)되었고 이제 내 위치가 말씀을 잘 못 전한다고 떨어
졌구나..! 떨어져 버렸다니..! 주일학교 반사? 학생들은 어려워서 못 가르치니까 너는 시골에 내려가서 반
사나 하라’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공부하러 온 학생이 있는데도, “이따가 시간을 내겠다.
이따가 오라.”고 해놓고 혼자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때까지 그것을 못 풀었습니다.
그런데 일단은 학생들이 와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공부를 좀 가르쳐 줘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르칠
때 힘없이 가르쳤습니다. 그럭저럭 가르쳐 주고 그리고 나가서는 옛날에 교회 다닐 때 이야기나 좀 해주
고, 또 성경의 아주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교리 적인 것은 안 가르치고.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수준이하로 아무렇게나 가르쳤는데 그때부터는 애들이 아주 생기가 났습니다. 그런 다음 그날 밤 또 꿈을
꾸었는데 주님께서 “네가 너무 수준을 높게 잡고 강의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와도 다 떨어져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물고기에게 막 덩어리 채 고구마를 던져 주니까 물고기가 왔다가 그냥 가버리는 것이
었습니다. 입이 찢어져서 못 먹겠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고기가 입이 함지박만하게 커서 큰놈을
먹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입만 컸지 목구멍은 좁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 때부터
생각을 수정해서 주일학생을 가르치듯이 성경의 기본을 이야기 식으로 가르쳤습니다. 노아 이야기, 아브라
함 이야기, 또 소돔 땅의 이야기들을 죽 영감으로 깨우쳐 주면서 최대로 믹서를 시켜서 가르쳐 주었습니
다. 그때부터 죽죽 불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는 배우고 나서 애들이, “아주 성령 말씀을 잘 가르
쳐 준다.”는 말들을 했습니다. 기본이 없는 그들에게 너무 어렵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카톨릭회관
그러다가 그곳을 떠나 카톨릭 회관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애들이 “정말 여호아 이레라는 말씀과 같이 하
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하기에 처음에는 공짜로 쓸 수 있는 장소인줄 알아 덩달아 좋아했
더니 한 주일 쓰는데 2만원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2시간만 쓰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적으로 그러면 됐
다하고서 첫날와서 말씀을 전하니 너무너무 좋아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다 모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만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만 되면 자기 돈 내고 자기들이 빌렸기 때문에 막 밀고 들어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항상 경제에 쫒기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 나오게 됩니다. 막상
나오겠다는 마음은 먹었지만 마땅히 정한 장소가 없어 모두들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찾지 못하고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집집마다 심방을 다니는 방법이었습니다. 심방다니겠다는 말이 나오자 챤스는
이때다. 서로서로 끌고 가려고 했지만 역시 집에서 잘 수 있는 집을 파악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했는데 보통으로 전하면 당장 쫒겨나옵니다. 부모님들 앞에서는
‘태양아 멈춰라’ 와 같이 시간가는 줄 모르게 효과적으로 전해야만 되었습니다. 결코 이 역사가 편하게 온
것이 아닙니다. 굳세게도 살아온 역사입니다.
태멘
카톨릭 회관에서 연극극장 태맨으로 역사는 옮겨졌습니다. 갖은 풍랑과 추접을 떨어가면서 극장 청소도 해
주고 연극 티켓도 뿌려주고 여기 섭리사 뛰는 사람들이 연극 티켓이나 뿌려줄 사람들입니까? 그러면서 하
루에 3시간 정도 사용했습니다. 저녁나절에는 연극연습한다고 우리는 그 이전에 사용했습니다. 좋은 장소
였지만 카톨릭 회간과 같이 시간의 제재를 많이 받게 되었고 또 그들이 점점 극장 형식을 갖추니 사정상
빌려주 수 없으니 나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일찍 끝나는 날에는 볼 하나 옆에 들고서 마치 시
골에서 수학여행온 사람들 같이 떼를 지어 남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떤 때는 경찰들이 따라오면서 기웃거
리더니 어떤 사람들이냐고 따져왔습니다. 그 당시 학생들의 데모가 극심한 터라 그 무리인 줄 알고 따라왔
지만 내가 모른 척하고서 “요새 데모하는 놈들 미친 놈들이지..”라고 했더니 두 말 않고 내려가버렸습니
다.
태맨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다가 택시타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뛰어만 다녔습니다. 그때 택시 값만해도 엄
청나게 나갔습니다. 그것도 거의 다 심방때 생긴 것이었습니다. 택시 타고 가라고 돈 주면 정말로 가시 방
석 같았습니다. 몇 몇 애들이 같이 타고 가는데 중간에 내릴수도 없는 노릇이고 없어도 있는 것처럼 애들
을 길러야만 하는 나의 입장!
이렇게 심방을 계속 다니다 선생님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장소를 보게 되었습니다. 찬양대 혜숙이네
집으로 어머니가 굉장히 활동적이시면서 그 당시 순복음교회의 열광적인 신도였습니다. “어디서 주무십니
까?” “자는 것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 갈 곳은 많습니다.” 그랫더니 “혹시 갈만할 곳이 마땅치 않으시면 2
충이 비어 있으니 보십시요.” 그렇다고 당장 갈 곳이 없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까? 나중에 또 그 얘기를
했습니다. 사실 2충의 방은 나무랄곳 없이 좋았지만 거리상으로 너무너무 멀었습니다. 태맨에서 택시로 가
면 보통 3000원 왕복차비가 하루에 6000원이었습니다. 안양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고 오히려 부모님들로부터 구박만 받을
곳이었습니다. 이미 삼선교에서 철수했던 터라 몇 안되는 짐이었지만 이리 갖고 다니고 저리 갖고 다니고
여러분같이 젊은 애들은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정말 속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늘은
나에게 눈을 열어 주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에 대한 설교가 자꾸 나가는데 하늘의 진리임을 깨닫고 6
개월 동안 그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층에서 그것도 대궐같은 독방에서 다시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영동 지하실(애천)
다시 영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40평 짜리 영동지하실.
영동 지하실
다시 하늘 역사는 영동에서 역사의 본격적인 시동을 걸게 되었고 나는 독산동에서 출퇴근하며 전을 지키
는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하늘의 사자들을 모아 오늘날 이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세검정
역사도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곳 역시 하나님께 예배드리
고 서로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없어 어떤 제재를 받는 것으로 보아 또 떠나야 될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
습니다. 주인도 주인이지만 여기서 1년동안 하나님께 실적을 보여서 많은 사람을 통과시켜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데 책임쳐야 될 입장입니다.
신촌시절 고양이
나는 강아지고 고양이고 간에 나한테 대들면 그냥 두지를 않았습니다. 주둥이를 쪼아 버렸습니다. 내가 신
촌에 방 한 칸 얻어서 살고 있을 때 주인집 할머니가 얼마나 지독하고 얼마나 구두쇠인지, 고양이에게 밥
이 아까워서 밥을 안 먹이고 시장에서 생선토막 버린 걸 주워다가 먹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놈의 고양이
가 피들은 것을 먹으니까 되게 독하더라고. 사람만 보면 가만히 있다가 팍 대듭니다. 내가 그 집에 사니까
다 알지요. 내가 산에서 호랑이들과 놀던 사람인데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주인이 있을 때는 안되고, 주인
이 나갔을 때 ‘요놈의 고양이 보자’하고서 마루 위에 가만히 있다가 확 뛰어 가지고 확 대들었습니다. 그
러니까 요것이 되게 무서웠던가 봅니다. 그래서 딱 잡아 가지고 임으로 그냥 쥐어뜯어 버리고 털을 다 쥐
어뜯어 버렸습니다.(웃음) 고양이는 털 뜯어버리면 참 불쌍하게 됩니다. 감각을 잊어 버려서 쥐를 못 잡습
니다. 그러고서 주먹으로 패대고 대갈통을 때려서 거의 골병들게 해놨습니다. “감히 네가 나한테 대드냐?
네가 아무리 생선 토막을 먹어도 그렇지. 나는 황소를 먹고살아도 너한테 안 대드는데” 계속 패대고 발톱
을 막 꺾어 버렸습니다. 입을 틀어막고 했으니까 지까짓게 꼼짝 못하지요. “야 내가 그래도 산에서 호랑이
랑 놀던 사람이야. 까불지마. 죽여 놓는다. 내가 지름은 곁방살이 하지만 앞으로 내가 뭘 할 사람인지 알
아? 너는 얼마 안 있다가 죽어” 스트레스(stress)해소할 데가 없으니까 거기에다 대고 잔뜩 해댔습니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나만 보면 도망갔습니다. 자기가 별것 있습니까? 내가 놔두지를 않는다고 내 성격이
그런 꼴을 두지 않고 그렇게 해놔야 속이 시원합니다. 개이고 뭐고 산에 내 마음대로 안 하면 완전히 돌을
집어 던져서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든지 갈비뼈위로 그냥 차 올려야 합니다. 개 차는 법이 있습니다. 소
차는 법이 있고 개 차는 법이 있고 골탕 놓는 법이 각각 있습니다. 고양이도 몇 번 차고 반은 죽여놨습니
다. 고기 훔쳐먹던 삼선교 고양이는 죽었겠지만. 자!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무섭게 보면 안됩니다.
1. 끝으로...
나는 인생살이를 하는 가운데 이런 일을 할 때까지는 그냥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나의 꿈이 깨어
지고 대성통곡을 할 수 밖에 없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가운데 약을 먹고 죽으려 하고 돌
에 머리통을 부딪쳐서 죽으려고 했던 원통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여러가지 일들이 많이 있었는
데 그것이 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누가 깨뜨렸는고 하니 하나님이 깨뜨리셨습니다. 그렇게 깨
졌다고 기도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주시겠습니까?
경지에 올라 기도하는 가운데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다 했을 때는 너무 미안하고 쑥스러
워 어떻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보다 천배, 만배, 십만배, 천만배... 더 큰 것을 오늘날 받고 가는 것입니
다.
한 때 신학교에 못갔다고 그렇게도 눈물겹게 울어댔는데 그것도 더 큰 것-신학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근본과 신의 근본- 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산에서 붙잡으신 것을 몰랐습니다.
또 지상 최대의 목적인 타락의 근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세상의 어떤 여자라도 내가 사랑하면
좇아다니시며 다 깨뜨려버렸던 나의 과거는, 오늘날 하나님의 근본 뜻을 깨우쳐주고 누구도 하지 못하는
하나님 역사의 창조의 지휘를 할 수 있는 총지휘관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말은 곧 하나님의 말이 되어서 모든 것이 산산이 깨어지고 또 이어지고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
다. 그런 것은 다 끊고 왔기 때문에 엄청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맡겨서 눈만 꿈벅꿈벅해도 따라오고 말
만해도 따라오는 엄청난 세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학문의 세계도 공부를 못해서 그렇게 눈물겹고 한이 되어 부모,형제로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불평불
만하고 분풀이를 어디다 하지 못해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돌도 뭉개버리고 나무도 다 잘라버리고 돌아다
녔지만 결국 온 지구상치를 배워도 다 못 배우는 하나님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차원
에서 깨우쳐서 한시간 배우면 세상의 십만 시간을 배워도 못 배우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늦게야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월남 갈 때도 안 가겠다고 딴사람은 몰라도 나는 빼줘야 될 것 아닙니까? 내가 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서 아실것 아닙니까? 성경도 많이 읽고 전도도 많이 하고 헌금도 얼마나 많이 하고 얼마나 좇아다니면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바쳤는데.. 나를 꼭 전쟁터 그 위험한 곳에 보내서 죽을까 살까 모르지만 대개 죽는
데,거기다 집어 쳐 넣을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몸부림쳤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사랑해서 보내는 것이 아니냐? 네가 안가면 얼마나 손해가 나는지 모른다. 네가 가야,사랑하는
자가 가야지 내가 관심쓰고 그 전쟁터에 뛰어들지 않겠냐? 그랬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내가 가겠다
는 마음을 결심적으로 뜨겁게 먹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전쟁터에 가서 이 모든 섭리를 지휘하는 원리를,
생명을 내걸고 배워왔고 피부에 뜨겁게 느끼고 왔습니다.
그것은 책에서도 느낄 수 없고 사형선고장에 가서도 볼 수 없습니다. 피비린내와 젊음의 허무함을 엄청나
게 깨닫게 해줬습니다.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현지에서 어렵고 두려운 일이 있었지만 기도하고
간구하며 처음 나에게 들려준 음성으로 이겨나갔습니다. 날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날마다 위험해서 살 수
있는 가망성이 자신을 못 할 입장이지만 처음에 들은 말씀을 깨닫고 훈련받다가 들은 음성인데 날마다 생
각할 때마다 걱정이 안되고 염려가 안되었습니다. 그렇게 확실하게 내가 믿었으면 아마 전쟁터에서 어떤
곳이라도 더 사정없이 파고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뭏튼 그래도 90점 이상, 95점정도 맞을 정도로 미련
없이 군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런 얘기를 해도 어울리더라는 것입니다. 고맙고 감사
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허기지고 몸부림치며 다른 집은 안 그런데 왜 우리집만 특히 가난한가? 그것 때문에도
그렇게 몸부림치고 그렇게 눈물겹고 그렇게도 마음 아프고 그렇게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 기도하면서 면목이 있어야 제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만 그 지지리도 많은 고통과
고역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욥과 같이 부하게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지금은 어느 누구에게도
부럽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늘 감사하
고 감격함을 금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어려움,너의 고통과 고난을 너 혼자만 가지 말고 하나
님께 돌리고 하나님께만 붙어 있어라. 아뭏튼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만 손해 가지 않는다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붙지 않으면 손해에 손해를 보게 됩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기를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더 붙잡고 감사할수록 붙잡고 기뻐도 즐거워도 하나님
께 향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느 정도의 하나님인가를 현재 종교인들의 가르침 가지고는 모를 것이다. 아
마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감사로 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얘기
를 들어볼 때는 그래도 많이 참고가 되고 뿐만 아니라 마음에 다른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또 이런 일 저런 일을 볼 때에 성서를 중심으로 해서 많은 학문과 가치관을 가르쳐 주셨으니 감사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그때 당시 그런 고통을 받으면서 이런 길을 가는 것을 하나님이 계획한 것임
을 그냥 거침도 없이 항상 100% 믿고 갔으면 더 감사했겠지만 어느 때는 바람 불때마다 그래도 까닥까닥
하고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와 비바람이 쏟아질 때는 생각하면서 기도를 해댔습니다. 기도를 하면, 그것이
아닌데.. 맞아,맞아, 풍화작용하듯이 항상 깎고 또 깎아져야 뭐가 돼지,저 산에 있는 나무도 오랫동안 크다
보면 거목이 되어서 여기서 살지 않고 대궐집으로 가서 기둥이 될거야 하고 깨달아지기도 했습니다.
이와같이 여러분들도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적인 일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다르게 보면 왜 그
런 계획을 하셨을까? 그런 어려움이 없이는 사람이 못 되나? 하게 되지만 이것은 우리의 죄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에게 연대죄,유전죄, 또 여러가지 죄들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탕
감해버리고 해야 됩니다. 좋은 관점으로 볼 때는 사람이 연단이 없으면 이상적으로 될 수 없습니다. 계란
도 그렇습니다. 삶았다 차가운 물에 넣었다 수십번 하게 되면 망치로 깨도 안 깨지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
에서 하나님의 좋은 법칙이 올 때 그것을 함으로 인해 되는 것도 있고 그리고 이 세상을 다스리려면 그렇
게 순진해서는 다스릴 재간이 없습니다.
나는 시범적으로 먼저 겪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늘 사람은 다 동일체로 공통성이 있다. 세상에
나가서 다른 얘기하지 말고 꼭 네 얘기를 하라. 네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