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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3.09.2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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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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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너의 신랑으로 삼지 말고 너를 나의 신부되게 하여라 작성일 : 2013. 7. 2(화) AM 10:00 작성자 : 장정임 (얼마 전 한 가지 일을 통해 성자께서는 선생님을 인 성으로 보고 판단하는 우리들의 모순된 들보를 분별 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무엇이 들보인지 몰라 회개하여 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깊이 깨우쳐 주셔 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겪 은 또 한 가지 일은 앞서 배웠던 것과는 다른 입장 에서 풀어야만 풀리는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어느 정도 알겠다 싶었으나 또다시 저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분이 라는 것이 느껴져서 성자께 계속 선생님에 대해 정 확히 알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고 성자께서는 “완전 한 자만이 완전한 선생을 완전하게 볼 수 있다.” 하 셨습니다. 저는 ‘완전한 자가 땅에 왔는데 그의 완전함을 알아 보는 자가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싶어 제가 단 한 번만이라도 선생님을 완전하게 보 고 완전하게 알아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구했습 니다.) * 성자의 말씀 * 내가 선생을 땅의 구원자로 보낸 목적은 너희의 구원과 휴거를 위함이다. 이를 위해 말씀을 주었고 그 말씀 안에는 너희 모든 인생의 문제가 풀어지는 답이 다 들어 있다. 고로 그것으로 선생은 할 일을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후에는 말씀을 들은 너희가 말씀에 의거하여 죄를 지었으면 선생에게 나와 회개하면 되는 것이며, 의를 행했으면 그에 합당한 축복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고로 너희가 선생에게 해결해 달라고 가지고 오는 각종 문제는 구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들도 허다하다. 마치 말씀은 너무나 듣고 싶은데 24시간 병간호를 해야 하는 부모가 있어 시간을 낼 수가 없다 하는 자에게 대신 병간호를 해 주며 말씀을 듣게 함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과 같이 육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유는 육신 문제 해결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유에서 너희가 가진 각종의 문제를 선생이 마다않고 다 해결해 주려 하지만 저마다 가진 수만 가지의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려면 선생 육신이 수억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아라. 대통령이 하는 일과 일반 백성이 할 일이 같겠느냐. 아무리 국민의 안위와 행복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위해 대통령이 존재한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시장판에서 일어나는 싸움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해결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혹 그것이 나라의 안위나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것이라면 직접 손대어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사소한 형제간의 다툼이나 개인적 어려움까지 다 개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통령의 할 일은 법을 마련해 두고 그 법에 따라 움직이면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 주는 것까지가 아니겠느냐. 아무리 나라 전체를 이끌고 간다 하여도 손을 댈 곳이 있고 대지 않을 곳이 있음이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시려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때로는 전능하신 성자 의 모습이, 때로는 육신의 한계에 갇혀 계신 선생님 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면 가장 완전하 게 선생님을 바라보는 자가 될까요?)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앞모습이 있고 뒷모습이 있다. 사도바울이 나사렛 예수를 보고 이르기를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지? 선생 역시 사람으로서 신이 된 자임을 잊지 말아라. 신이 되었다 하니 그가 육신의 한계마저 모두 뛰어넘고 사는 자같이 착각하여 안 먹고도 살 수 있고, 안 자고도 살 수 있고, 옥에 갇혀서도 고통을 느끼지 않은 채 십자가를 거뜬히 지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자가 아닌 것 같이 생각하지만 그는 신의 정신과 사상을 소유한, ‘육신을 가진 자’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선생의 신성만을 바라보는 자는 그 옛날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보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당장 내려와 보라.” 고 조롱하던 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똑똑히 기억하여라. 선생 역시 때리면 맞고 가두면 갇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 육신 가진 자이다. 그러나 또한 그를 나약한 육체 속에 갇혀 신음하는 자로만 봐도 안 된다. 육신을 입고 땅의 법칙을 따라 사는 자이지만 동시에 이 땅에서 전능한 신의 정신과 사상을 그의 삶으로 나타내며 살아가는 자임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지금껏 성서가 왜곡되고 과장되어 해석된 연유가 무엇이겠느냐. 육으로 보아야 할 것을 영으로 보고 영으로 봐야 할 것을 육으로 보았기에 그러한 것이며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지만 예수의 신성만 강조하여 보았기에 그리된 것 아니냐. 신성을 가졌으나 그 신성을 육이라는 그릇에 담아 표현해야 했기에 육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던 것이지만 사람들은 육의 그릇조차 신성으로 포장해 버렸기에 예수가 있을 수 없는 기적과 이적만을 일으키는 그리스도, 즉 인간으로서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나 먼 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고로 너희 역시 너희가 선생을 정확히 증거하지 못하면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져 하늘의 섭리역사와 선생이 왜곡되어 세상 앞에 비춰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앞이 있기에 뒤가 존재하고 뒤가 있기에 앞이 존재할 수 있으며 영이 있기에 육이 존재하고 육이 있기에 영이 존재할 수 있다. 그와 같이 선생안에는 전능한 신의 모습과 땅의 법칙을 따라 존재하는 육신 가진 자의 모습이 함께 있음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로 인해 오해하거나 시험에 드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앞과 뒤의 모습은 달라도 그것이 한 사람의 모습이며 각각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있기에 그리 존재하듯이 신성으로 나타나는 선생을 인성적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되며, 육을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선생을 무조건적으로 신격화하여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쪼개어 분별할 줄 모르면 무지가 시험에 들게 하여 사망으로 끌어감을 명심하여라. 사람을 앞에서만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정확히 안다 할 수는 없다. 사방에서 봐야 알 수 있고, 나아가 위아래까지 봐야 더 정확히 알 수 있고, 나아가 그 속까지, 그 내면의 상태까지, 즉 신혼골수를 모두 꿰뚫고 볼 때 더욱 잘 아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사람의 혼과 영까지 볼 수 있어야 가장 정확히 그 사람에 대해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선생의 육과 행위의 결과만 보고 판단하지만 너희는 섭리에 와서 말씀을 들은 자로서 선생의 육은 물론하고 그의 신성까지 볼 수 있는 자가 아니더냐. 그러나 신성을 보았다 하여 그가 신성만 가진 자가 아니라는 것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선생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상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넣어 놓고 그 상상 속의 상대를 실체와 일체시키려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실체를 만나면 여지없이 상대를 탓하며 혹은 틀렸다고까지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아라. 실체를 모르고 상대를 자기 좋은 대로만 상상하여 좋아한 자가 문제냐. 처음부터 실체 가운데 살았던 자가 문제냐.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임의로 만들어 놓은 틀에 나 성자와 선생을 가두어 놓고 산다. 그러다가 자신이 생각한 그 틀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시험 들어 하며 섭리를 등지기까지 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나와 선생을 믿었던 자이지, 나와 선생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알고 믿고 사랑하려 한 자들이 아니며 자신을 섭리에 맞추려 하기보다 섭리를 자신에게 맞추어 살고자 한 자들이다. 그러니 너희는 정확한 분별의 눈을 떠라. 너희가 좋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나를 인식하여 믿고 사랑할 것이 아니라 나를 가장 나답게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고 그에 따라 사랑을 키우며 살아라. 그래야 내 여인이 된다. 그래야 네가 나의 나라에 함께 들어갈 수 있다. 지상에서의 신부집 혼인잔치는 과정 역사다. 마지막 궁극의 역사는 신랑집 혼인잔치이다. 고로 내가 너희 가운데 와서 사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나의 나라에 와서 사는 것이 궁극의 목적임을 알고 나를 너의 입맛에 맞추려 하지 말고 너를 나의 입맛에 맞추게 하여라. 그것이 네가 나와 선생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길이다. 나를 너의 신랑으로 만들지 말고 너를 나의 신부로 만들기를 바라는 성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