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3.10.08 (화)
계시말씀 625e94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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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에 대한 실체적 기도
작성일 : 2013. 6. 22(토) AM 03:30
작성자 : 정별해
(개인의 휴거를 위한 기도를 할 때
성자께서 휴거에 대해서 실체적으로 기도하라고 하
셨습니다. 다음에 이것을 놓고 다시 기도할 때, 성자
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실체적으로 기도를 하려
고 했는데, 실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
습니다. “실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하
며 다시 기도할 때에‘실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지금
당장 앞에 있듯이 기도하는 것,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 삶으로 느끼고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이 깨달아
졌습니다. 성자께서 “너는 무엇이 실체냐”하셨고 저
는 “육의 눈으로 보이는 것, 혼의 눈으로 보이는 것,
만지면 바로 느낄 수 있게 가까운 사실이 저에게는
실체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어 성자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실체적으로 기도하는 자가 없다.
‘실체로 기도하는 것’이란,
자신의 꿈과 바람, 소망이
실존 사실이 되어서
내일이라도 그 꿈이 이루어질 것같이
실감나게 기도하는 것이다.
먼저 너희는‘휴거’라는 자체를
실체로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피부로 와 닿게, 실감나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휴거의 삶, 자신의 차원에서 더 높여
성약성에 이르겠다는 각오로
삶의 모든 시간을 사는 자들이 별로 없다.
대부분은 휴거라는
단어 자체에 의미를 두고,
천국, 성약성, 선생님이라는
키워드로 기도를 하지,
휴거되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이 부족하며,
그 꿈을 이루고 싶은 소망으로 가득 차
무엇이 더 필요한지
내게 진정 묻는 자가 별로 없다.
막연하게 “휴거되고 싶어요, 휴거시켜주세요,
선생님 계신 천국 성약성에 가고 싶어요.” 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이것은 실체적으로 느끼고 깨닫지 못해 그렇다.
그래,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무조건 달라고만 구하면 안 된다.
이것은 마치 결혼하는 신부가 신랑에게
“나, 정말 큰 집에서 살고 싶어. 어떤 큰 집? 정말
큰 집, 그냥 큰 집 가자!” 하는 것과 똑같다.
구체적으로‘위치는 어디이며,
정원은 어느 정도 되고,
주방과 거실과 방은 어떻게 생겼으며,
주변 환경은 어떻고,
거실에는 어떤 매트가 깔려있는 큰 집에 가고 싶다.’
고 말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구하면,
신랑은 “지금 우리는 얼마가 부족하지만,
은행에서 얼마를 받아서
네가 말하는 큰 집으로 가자.”하고
꿈을 이루어줄 것이다.
그런데 막연하게 ‘큰 집’이라 하면,
신랑도 막연하게 듣고
“돈이 생길 때까지 그냥 대충 살아.”할 것이다.
만사에 모든 일이 그렇듯이
휴거도 이와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
삶으로 얼마나 휴거를 느끼고,
체험하고 살고 있는지,
휴거가 자신에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휴거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얼마나 성취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할 때다.
실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꿈이 앞에 있는 것같이,
네가 원하는 사실이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
지.
네 눈앞에 천국이 실제로 실현되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를 가거나,
출근을 하는 것이 현실이듯,
지금이 휴거 당세 기간이며
이 기간, 자기 때에 휴거를 이뤄야 하는 것이
실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말씀은
지금 이루어야하는 휴거에 대해서
수없이 말해주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너희가 실체적으로 휴거되는지,
나 성자와 함께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다.
이것을 듣고도 실체로 느끼지 못하고 산다면
얼마나 손해냐.
큰 집에 이사 간다고 하여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미리 준비하여 둔 자와,
그냥 큰 집이라기에 좋아하며
몸만 간 자와 같겠느냐.
그러나 천국에는 구체적인 마음,
곧‘나 성자와 선생과 영원히
어떻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몸만 오라는 것이다.
마음만 실체화시켜
신랑인 나 성자와 선생 앞에 고하라는 것이다.
구약 때부터 신약 때까지,
하나님의 실제, 실체역사다.
그러니 휴거도 하나의 이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실
제적으로 실체적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하여라.
삶으로 느끼는 자라야 생각할 수 있다.
한 달 뒤에 시험인데,
실체로 느끼지 못하는 자는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하면서 놀 것이고,
시험 날을 맞이하여 망하고 후회할 것이다.
한 달 뒤에 시험인 것을
한 달 전부터 실체로 느낀 자는
차근차근 준비하여
시험에 패스하게 될 것이다.
실체로 느끼는 자와 못 느끼는 자는
휴거 100선, 200선, 300선으로 나뉘는 데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삶으로, 실체로 느껴야 기도 하고,
스스로 행하게 되어
목적을 이루기 때문이다.
한 달이란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시험공부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하여도,
막상 시험 때까지 길지 않은 순간의 시간이다.
지금 이 휴거 때도 이와 같다.
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분체가 살아있는 휴거기간 안에
자신의 휴거기간이 있다 했지.
이 휴거기간이 얼마 안 남은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도 중에 제 남은 휴거기간을 감동받았는데 성자께
서 주신 감동이 맞나요?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
은데, 실체적으로 안 느껴져서 시간에 잡혀 살기도
하고, 할 것을 못 하기도 해요. 제 휴거기간을 알았
으니 발을 동동 구르며 휴거에 집중하여 미친 듯이
분체 깨닫기에 열을 내야하는 것이 아닌가요? 조금
은 무덤덤해요.)
개인의 휴거기간은 개인이 깨닫는다.
기도하는 자는 알고, 깨닫게 된다.
네가 깨닫고서도 무덤덤하고
돌덩이를 맞은 듯이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더 실체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거에 대해서,
이때에 대해서 완전하게 안다면,
충격 받고 발을 동동 구르겠지.
이것에 대해 기도하여라.
기도하면, 나 성자가
깨닫게 해주고 실체로 느끼게 해주니
자기 스스로 더 열을 내게 될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에도
“휴거기간이지.
어제도 한 말씀이네? 그제도? 잠언에도?
내일 또 듣지 뭐.”하면서 듣는 자들은
변화되지 못한다.
그 생각으로 인해 자신의 뇌가 그렇게 굳어서
다음번에 또다시 휴거를
실체로 느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 성자가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새롭게 깨닫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며
“휴거의 때구나. 정말 변화되어야겠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 휴거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정말 분체를 알아야지.
더 높은 차원에 매일 도전해야지.”
생각하는 자들은
이렇게 뇌가 굳어진다.
뇌에서 휴거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을 낸다.
또,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휴거를 실체로 느끼게 된다.
고로 다른 자들보다
배는 빠르게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
휴거에 대해 감을 찾아라.
어느 정도로?
선생이 휴거에 대해서 느끼고 깨닫고 있는 정도,
너희도 그 차원에서 깨닫고 느껴라.
그래야 선생과 같은 성약성으로 휴거된다.
나 성자가 안 이루어지는 말을
선포한 것을 보았느냐.
나의 말은 실체이니
내가 한 말 모두 사실이 되어
실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휴거에 대해 절대 낙심하지 말고,
자신이 어느 부분이
어떻게 부족한지 파악하고 생각하여서
신랑인 나 성자와 선생에게 고하여라.
“신랑, 나는 큰 집에 가고 싶은데
나에겐 돈이 이것밖에 없어.
그런데 내가 구상한 이런 집에 가고 싶어.”하면,
신랑이 방법을 알려주고
신부의 소원을 이뤄주어
큰 집으로 데려가지 않겠느냐.
망상은 금물이되, 꿈을 꾸어라.
생각하는 자는 이루고,
꿈을 꾸는 자는 이룬다.
휴거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휴거를 생각하고,
실체로 느껴보아라.
자신의 매 순간 행동에 따라
더 차원 높은 휴거가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자신의 때도 깨달아
실체적인 휴거를 이루어라.
그리고 언제나 늘 신랑 앞에는
‘솔직하게, 실체적인 기도를 하기’다.
신랑 나라에 가는데,
신랑에게 말해야 들어준다.
신랑이 말하였다.
육의 신랑은 선생,
영의 신랑은 성자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