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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3.10.10 (목)

계시말씀 557fbb05

선포일
2013.10.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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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정 작성일 : 2013. 8. 13(화) PM 2:00 작성자 : 주나솔 (섭리에서 예술 활동을 하면서 ‘심정’이라는 단어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씀을 보다가 ‘심정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것이 무엇일까? 성자와 심정을 맞추며 산다는 것이 성자 입장에선 어떤 의미일까?’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성자께 기도하 였습니다. 그리고 배우고 싶다고 간구하였습니다. 그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의 말씀 * 사랑아. ‘신의 마음’ 이것이 심정이다. 너희가 이해하는 차원으로 간단하지만 핵심적으로 표현한 한마디 말씀이다. 나의 마음을 너희 뇌에 전달하고 마음이 그 소리를 듣고 받아 느끼는 즉시 나와 동일한 마음, 정신, 생각으로 변화되어 행하니 곧 제2의 내가 되어 안 되는 것도 할 수 있게 된다. 심정을 받은 자는 자신이 원해서 행하기보다 나 성자가 원해서 행하기에 삼위의 뜻을 이루는 영, 혼, 육이 되니 영원한 것을 남기는 유익이 있는 삶이 된다. 섭리의 예술과 세상 예술의 차이는 심정이 아니냐. 고로 본 예술과 부 예술이 같겠느냐. 그 차이를 가늠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곧 나와 나의 육이 되는 선생이 그 안에 있느냐 없느냐로 기준을 삼으니 그 기준에 따라 성자가 인정하고 시대 주가 인정하는 대로 받고 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의미다. 심정을 받은 자는 그의 마음이 부동이다. 절대 사탄이 틈타지 못한다. 너희 마음이 곧 내 마음이 되었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오직 나의 심정을 받고 나의 심정을 맞추어 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축복이고 총명한 자이며 영원한 것을 얻을 지혜로운 자이다. 고로, 너희는 나의 심정을 받아라. 그리고 나의 분체의 심정을 받아라. (사람들은 ‘심정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런 말을 자주 썼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심정을 받고 해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심정을 가지고 살고 심정을 맞추 며 산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고 낯설게 느껴졌습니 다. 심정이란 단어조차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게 너무 큰 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수준의 한계를 느끼며 오랫동안 정말 뭘 모르고 이야기하며 성자도 주도 대했다는 생각에 너무 눈물 이 났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있어 계속 성자를 부르며 찾고 선생 님을 찾으며 기도했습니다.) 사랑아. 심정은 말로 받는 것이 아니기에 어렵고 심정을 받아 더 깊이 깨닫는 차원대로 그 강도가 다르기에 ‘이것이다.’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행하는 것에 따른 변화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의 마음을 갖는다는 자체가 어렵지 않느냐. 신의 마음을 너희는 시대 말씀을 들으므로 먼저 뇌로 받는다. 나의 말은 나의 육을 통해 전하니 말씀을 들을 때부터 준비하며 깨닫고자 해야 마치 바람이 살결을 스쳐 지나치듯 은밀히 깨닫게 된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간구해야 뚜렷하고 확실하게 깨닫고 충격을 받으니 1차 뇌를 통해 나의 마음을 받고 거기서 더 간구하고 기도하면 2차 깊은 차원으로 도달하여 마음도 정신도 행위도 절대 나 성자와 분체 중심으로 굳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첨단 예술인 말씀으로 심정을 받은 자이다. 그 차원에 도달해야 섭리 안에서 너희가 삼위 앞에 드리는 모든 예술이 온전하며 하나님도 성령님도 나 성자와 선생도 기뻐 받는 영광이 된다. 고로 너희는 먼저 선생의 마음을 구하라. 그를 통해 받는 영광만이 온전하며 그를 통해 나와야 예술을 통해서도 전능자인 나 성자의 심정을 받을 수 있노라. 예술은 한 때다. 예술로 신부 만들려고 너희를 부른 것이 아니다. 온전한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 길로 인도하기 위해 선생 통해 너희 한 사람 한 사람 귀히 보고 이끄는 것이다. 그러니 한곳에 국한되어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지 말고 선생 보며 그가 전하는 나 성자의 말씀 듣고 온전한 신부로 만들어 귀히 쓰여라. 섭리의 예술은 시대 말씀으로 만들어 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차원이 높은 예술이다. 고로 섭리의 예술인들 모두 말씀의 최전방에 서서 나를 증거하여라. 말씀이 내가 주는 심정이고 최첨단의 구상과 영감이다. 사랑아. 심정의 강도가 전보다 강해지려 하여 힘도 들고 어렵게 느껴진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네가 미안한 마음에 나 성자와 선생을 붙잡고 간구하였으니 잘하였다. 심령이 어려운 일에 맞닿게 되었을 때 보통 자기 마음이 힘든 것부터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성자와 선생을 붙잡아야 된다. 선생을 붙잡는 힘과 선생을 찾는 힘은 심정을 가진 자에게 오는 힘이다. 육이 아니라 혼과 영이 알고 잡는 힘이다. 육은 할 수 없다고 주저앉으려 할 때 혼과 영이 알고 육을 일으켜 나의 뜻도 선생의 뜻도 이루게 하는 힘이다. 그러니 심정이 크지. 너희 모두는 심정을 받는 차원에서 끝나지 말고 육이 아닌 혼으로 깨닫는 차원에 미쳐야 한다. 왜? 혼으로만 깨달아도 선생의 가치와 귀함을 알게 된 것이니 큰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고로 육도 혼도 영도 성자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아멘, 그럼 성자와 주와 심정을 맞춘다는 것은 무엇 인지 알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세요.) 계속 들어보자. 심정은 신비하고 아름답고 웅장하며 오묘하다. 신비하고 아름답고 웅장한 전능자 성자의 마음이라 그러하고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신의 육이 된 선생의 마음이라 오묘한 것이다. 또한, 심정은 마음 속 세계의 신의 생각이기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나의 마음을 맞추어 산다는 것이 인간인 너희가 쉽겠느냐. 방법을 주었으니 바로 네 선생이다. 선생이 방법이다. 먼저 선생 마음을 달라고 간절히 구하여라. 너희는 구하기 전에 생각해 보아라. 성자와 선생을 사모하며 선생 위해 산다고 하면서도 쉽게 죄를 짓고 가슴에 상처를 주고 등을 돌려 섭리를 나가는 행위가 진정 선생의 마음을 가진 자의 행위냐. 또한, 선생이 영으로 늘 옆에 동행하여 돕고 함께해 주는데도 의식하지 못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삶이 선생의 마음을 가진 자의 행위냐. 말씀은 듣긴 들었으나 돌아서면 자기가 중심이 되어 생각하고 행하니 그것이 선생의 마음을 가진 자의 행위냐. 왜 구하기 전에 생각해 보자 했는지 깊이 깨달아 보아라. 나와 심정을 맞추는 것에 대해 정의한다. 선생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너희는 오직 선생의 마음을 갖기를 기도하며 간절히 구하여라. 한번 구하고 끝내면 지능이 낮아 또 잊어버리니 연속해서 구하고 또 구하여라. 그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그의 마음도 모르고 살면서 어찌 나와 통하여 나의 심정을 맞추려고 하느냐. 나 성자는 인생들과 통할 때 오직 나의 육을 통해서만 만나니 그리 알고 오늘부터 선생의 마음을 먼저 붙잡아라. 이것이 나와 심정을 맞추어 사는 것이다. 알겠느냐.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에 대해 더 깊이 깨닫기 위해 기도를 쉬지 않을게요.) 사랑아. 너희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맞추는 것에 대해 나의 속 심정을 이야기한 것이다. 생활 속 마음 맞추기다. 행할 것을 기대하고 이야기했으니 섭리 모든 예술인들에게 전하여 알게 하자. 사랑한다. 심정과 사랑의 신랑 성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