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3.10.18 (금)
진리성령운동 말씀
- 선포일
- 2013.10.18 (금)
- 성경 본문
- 로마서 10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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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0월 18일 금요일 진리성령운동 말씀 >
할렐루야. 성령은 증거의 신입니다. 성자는 말씀과 사랑과 구원의 신입니다. 다시 오신 성자를 증거하
며, 그리고 성자의 육이 되는 자를 증거하며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증거하며 이 시대에 선포되는 진리의
말씀이 맞다고 증거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 섭리역사 각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이 오셨습니다.
말씀으로 역사하시며, 사랑을 주시고, 감동을 주시는 성자께서 오늘도 섭리의 각 사람에게 뜨거운 성령
을 부어 주시기 위해서 성령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10절 말씀입니
다. 이 시간 다 같이 성자의 사랑, 주 사랑을 입으로 시인하며 고백하고 싶습니다. 입으로 시인할 때, 입
으로 고백할 때 우리의 뇌는 다시 제 정신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의 중심을 바로 잡게 될 것
입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시간 성자 사랑, 주 사랑 그만 영원히 사랑하며 따르겠
다고 입으로 시인하며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영원히, 주님과 영원히 나 따르겠어요. 사랑은 영원히,
주님과 영원히 나 사랑할께요. 고백할께요. 시인합니다.
‘사랑은 영원히’ 찬양
다시 한 번 입으로 시인하면서 우리의 뇌의 생각에 자극합니다. 오직 성자께 주께 집중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완전히 전환될 것입니다. 믿습니까? 주님 뜻대로 주님 뜻대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찬양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여러분을 불렀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주님을 맞기 위해 뜨겁게 행운의 시대에 불
러주신 주님께 감사함으로 영광돌리며 우리의 입으로 우리의 마음으로 시인해야 되겠습니다. 행운의 시
대를 만났습니까? 손뼉치며 뜨겁게 외칩시다.
‘역사는 부른다’ 찬양
성령은 증거의 신, 여러분 알고 있습니까? 성자는 말씀과 구원과 사랑의 신, 성령은 무엇을 증거할까
요? 다시 오신 성자 그리고 그 육이 되는 자 이 땅에 그 몸이 되는 자를 증거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감
동과 감화로 뜨겁게 불같이 역사하십니다. 역시 성자가 오셔도 뜨겁게 감동과 감화로 불같이 역사를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오셔도 그러합니다. 삼위일체의 성령께서 성자와 함께 섭리사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
의 시대를 만난 여러분들에게 이 시대가 행운의 시대가 맞다는 것을 더욱 더 강력하게 증거하기 위해서
오늘 오셨습니다. 이 시대에 성령의 역사는 휴거되는 데 있어서 절대적입니다. 고로 휴거되려면 성령의
역사를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시대를 인정하려면 그리고 더욱 더 불같이 뛰려면 아깝지 않게 불같이
인생을 뛰고 달리려면 성령을 불같이 뜨겁게 받아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신이라 성자께서 성령께서 나타나지 못 하시지만 선생님 역시 오늘 이 곳에 오셔서 직접
말씀하시지 못 하시지만, 말씀을 통해서 성령과 성자를 모시고 여러분들에게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일
으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불받을 준비 되셨습니까? 이 시간 사람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자를 성령을 그가 보낸 자를 마음 속에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마음에 불이 오며 시간이 갈
수록 여러분의 마음과 몸은 불덩어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어떤 다른 의식도 다 버리고, 삼위일체의 충만한 불같은 역사를 직접 여러
분의 것으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제 뜨거운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본격적으
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뜨겁게 ‘할렐루야’ 로 성삼위께 인사를 드려 볼까요? 할렐루야. 네.
전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궁을 상징한 월명동 자연성전 그 안에 지어진 성자 사랑의 집 오
늘 이 곳 현장을 중심으로 해서 섭리 전체에 성령의 뜨거운 불이 뻗어나갈 것을 믿습니다. 오늘 이 현
장에는 아주 오랫 만에 월명동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계신 분들과 금산지역에 계신 여러분들과 그동안에
또 성지사역하시면서 수고하신 여러분들, 합창단 여러분들, 합창단 여러분들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섭리사 전체 각 교회 각 사람의 마음에 뜨겁게 임하리라 믿
습니다. 오늘 말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죠. 오늘 말씀 역시 선생님께서 직접 외치시지 못 하시니까
요. 17분의 그 짧은 시간에 불같이 외쳐주시고 감동시켜 주신 말씀, 그 말씀을 중심으로 여러분들에게
외쳐 주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준비되셨으면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어떻게 흘러갈지 화면을
보겠습니다. 첫 번째 영상 다 같이 한 번 읽어 볼까요?
“생각이 높으면 하나로 보인다.”
생각이 높으면 하나로 보인다. 이 한 문장만 보면 범위가 엄청 크고 넓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화면 두
번째 영상을 보겠습니다. 한 번 잘 보세요.
생각이 높은 자는 지금 한 개의 산을 쳐다보고 있죠. 생각의 산이 낮은 자는 4개의 산에서 어디를 오
를까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기 쉽게 다시 한 번 말해 드리겠습니다.
생각이 높으면 하나로 보이고, 생각이 낮으면 두 개로 보이고, 생각이 더 낮으면 여러 개로 보인다. 네,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을 깨우쳐 줄 겁니다.
생각이 높으면 하나로 보인다. 생각이 낮으면 두 개, 더 낮으면 여러 개로 보인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
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 생각, 가치관입니다. 인식, 생각, 가치관을 가지고
사람은 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금요일 밤에 뜨거운 성령을 받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특히 오늘 사랑의 집에는 6시 반부터 꽉 차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왔다는 거죠. 이렇게 일찍
부터 온 것을 보니까 그 인식과 생각과 가치관을 보지 않더라도 성령을 받아야겠다는 인식이 꽉 차 있
는 사람들입니다. 맞습니까? 그렇죠? 성령이 귀해서 시간을 꼭 지켜야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맞습니까?
사람은 인식, 생각, 가치관을 통해서 행동이라는 것이 결정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섭리사에 똑같이 왔
어도 성령이 귀하다는 인식이 없고 가치관이 없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이 시간을 귀히 보내지 않고
그냥 다른 데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인식, 생각, 가치관으로 인해서 행동을 하게 되면서
그것으로 인해서 삶이 결정됩니다. 이 인식, 생각, 가치관은 뇌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이 뇌가 건강
해야 됩니다. 뇌가 건강해야만 제대로 인식하고,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갖기 때문입니다.
뇌 특징은 참 무섭습니다. 보고, 듣고, 접하는 대로 굳어져 버립니다.
오늘 이 곳에 딱 보니까요. 아주 낯이 익은 친구가 한 명 있는 거예요. 제 막내 동생입니다. 얘가 왜
여기 앞에 앉아있나 했더니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생각이 바뀐 거죠. 가치관이 바뀐 거예요. 월명동에서
며칠 일을 하더니 월명동이 귀한 것을 알아가지고, 월명동에서 일을 하니까 인식이 바뀌는 거예요. 보는
게 듣는 게 접하는 게 세상 것들이랑 달라요. 맞습니까? 친구들을 계속 만나면서 똑같이 보고 듣고 접
하는 것이 다르니까 뇌의 특징상 인식이 바뀌었어요. 오늘 딱 앉아있어요. 2주 전에도 앉아있더니, 인식
이 바뀌니까 성령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성령을 받았다고는 못 하지만 은혜받았다고.
사람의 인식을 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식을 돌리면 몸이 돌아가고 몸이 돌아가면 삶이 돌아
갑니다. 고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우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엇을 접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자꾸 하늘의 시간으로 쓰라고, 자꾸 말씀을 들으라고, 자꾸 교회에 오라고, 금요일 밤
은 시간을 내봐. 새벽 오전 아침 주님께 시간을 내라고 하는 것은 자꾸 접해야 해요. 시간을 자꾸 접하
지 않으면 주님께 접하지 않으면 자꾸 그 말씀을 보고 듣지 않으면 생각이 더 많이 보는 쪽으로, 더 많
이 듣는 세상 쪽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똑같이 보고, 똑같이 듣고, 똑같이 배웠어도 하나
님이 역사를 하셔야 됩니다.
똑같이 시대말씀을 들었는데 누구나 다 뒤집어지는 게 아니예요. 누구나 다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
러면 들어서 다 깨닫는다면 우리는 옥상에 올라가서 다 확성기에 대고 다 듣게 할 겁니다. 그럼 듣는
자는 막 뒤집어질 거 아니예요. 길 가다가 저런 말씀이 다 있어? 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며칠 뉴질
랜드 친구들이 와 있는데요. 며칠 전에 뉴질랜드 친구가 카페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데요. 그 옆에 있는
어떤 여자가 그 말씀소리를 듣고, 나도 배우고 싶다고 이 말씀 너무 좋다고 가르쳐 달라고 오더래요. 그
런데 여러분 까페에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 많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뭐야?” 하면서 쳐다보는 사람들
있었잖아요. 그렇죠? 누구나 다 들었다면 깨닫는 것이 아니예요. 똑같이 말씀을 배워도 사람들의 가치관
이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죠. “나는 육신이 잘 먹고, 잘 살고, 좋은 직장을 다니고, 좋
은 배우자를 만나고, 돈 많이 벌고, 명예를 얻고 사는 것이 인생 성공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고,
말씀을 듣고 보니 아니네. 그게 인생 성공이 아니었네. 현실만 보면 살면 안 되겠구나. 내 영을 보고 살
아겠구나.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알고 깨닫고 사는 게 우선이네. 그를 통해 내 영혼을 휴거시키는 게 우
선이네. 그것이 최고의 성공이며, 영원한 성공이야.” 이렇게 뒤집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신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먼저 구원하고 휴거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구원자를 만나서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 이렇게 영적축복도 받고, 육적축복도 받아야지. 이렇
게 생각과 인식관, 가치관이 바뀝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고서 자기의 삶이 바뀔까봐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말씀을 전해주면 거부합니다. 이 사람은 말씀을 들었을 때 자기의 인식관을 바꾼
게 아니라 충돌한 겁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의 생각과 인식을 바꾸고 싶지 않아.” 이 생
각과 인식이 섭리사에 와서 말씀을 들었는데도 바뀌지 않는다면 오히려 섭리사에 오려 하지 않습니다.
혹은 섭리사에 와서 살면서도 말씀을 들을 때마다 불편합니다. 더 나아가 주일, 금요일, 새벽마다 주님
께 시간을 내드리고 내가 말씀을 듣는 이 시간을 너무 아까워 합니다.
“아니. 이 시간에 공부를 더 하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고, 이 시간에 돈을 벌면 돈을 10만원이라도
더 벌 수 있고, 자꾸 투자하라고 하니까 너무 아까워.” 왜요? 인식이, 생각이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계속 하나님의 말씀과 그 생각과 충돌을 하게 됩니다. 거부하게 됩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비유
를 들어 볼께요. 자기의 몸이 건강해야만 돈도 많이 벌고, 공부도 많이 하고, 명예도 얻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쓰러져 있는데 돈이 필요가 있습니까? 명예가 필요가 있습니까? 공부가 필요 있
습니까? 건강 먼저 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죽어가고 있는데, 육신만을 위해서 육신만 잘 산다
고 하면 그러면서 영혼을 위해서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러면서 이 시간을 다른 시간으로 택한 사람
들은 몸이 아파서 죽어가고 있는데 공부하겠다고 하고, 세상 성공하겠다고 하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됩니다. 맞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의 영혼이 아프지 않고 건강해야 합니
다. 구원받고, 휴거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냥 말씀만 듣는 것, 내 인식과 사고를 그냥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를 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해주셔야 말씀을 들어
도 인식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십시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때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오십니다. 우리의 뇌에다가 그리고
생각이 나게 하시고, 기억이 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감동을 주시면서 그 생각을 쑥 넣고 가십니
다. 이게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말씀을 듣지 않고 영에게 투자하는 것을 아까
워 하는 사람, 말씀을 들어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이 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
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과 성자가 주신 생각을 우리가 행하게 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역사하시
고 도우십니다. 눈, 차가운 눈, 너무 예쁜 눈, 그렇지만 우리를 속썩이는 눈, 특별히 월명동은 눈이 오면
정말 아름답지만 정말 많이 치워야 하잖아요.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고, 눈이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얼
머나 무서운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이 느껴지지 않으면 눈이 있는 곳에 가야 합니다. 바다가 느껴지
지 않으면 바다가 느껴지는 대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고 왜 그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까? 자기의 생각과 행위가 다른 방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밤에는
해를 느낄 수가 없어요. 지구가 자전을 해서 이 지구는 태양을 등지고 있습니다. 밤에는 태양을 느낄 수
가 없습니다. 안이 너무 따뜻하니까 들어오라고 해도 밖에서 춥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똑같습니다.
성령의 역사 똑같습니다. 불같이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가 차올라도 자기가 다른 생각, 다른 인식
을 하면 전혀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역사에 와도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받아들여
야만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의 축복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원래 이 말씀을 주일
에 전해주고, 수요일에 말씀을 전하려고 했는데요. 오늘 먼저 깨우쳐 줘야 이번 주일에 확실하게 깨닫는
다고 해서 오늘 아침에 말씀을 바꿔서 왔습니다.
생각의 축복을 받아야 되요.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여러분, 보세요. 시험공부를 했는데요. 생각이 안
나요. 분명히 나는 시험공부를 했어요. 그 쯤에 분명히 있었는데 이게 생각이 안 나요. 정말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공부를 안 한 게 아니예요. 이 때 만일 답이 생각난다면 축복입니다. 맞습니까? 자기 인생
을 살면서 뭘 해야 될지 모르면 그렇게 답답해요. 그런데 내가 인생을 살면서 “그래. 이거야. 이거야. 확
실해. 100% 확실해.” 생각나고, 기억나고, 깨달아진다면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냥 생각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요. 100% 확실한 생각이요. “답은 이거 하나야. 1, 2, 3, 4, 5 중에서 3번이야. 확실해.” 이게 축
복이라는 것입니다. 정확한 답 하나입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이 정확한 답 하나가 정확하고 확실하게
생각날 때 이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이 생각이 하나만 오는 게 아니예요. 시험을 잘 치러도 답이 하나씩만 딱딱딱 보이면 좋겠는
데, 알쏭달쏭, 2번을 하려고 했더니 3번이 답이었어. 이런 게 10문제만 되면 서울대를 못 갑니다. 한 문
제만 틀려도 한 문제에서 서울대에서 떨어지지 않습니까. 인생을 살 때 그리고 무엇을 결정할 때 두 가
지 이상 생각나니까 문제입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 “이거야. 이것을 해야 돼. 이것은 100% 답이야.” 이
러면 좋겠는데 두 가지 이상이 생각나는 거예요. 한 가지만 딱 결정하면 좋겠는데 두 가지 이상이 되니
까 답답하고 미치겠는 것입니다.
이 때 나의 생각의 차원이 높으면 답이 한 가지만 보입니다.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답이 두 개, 혹은
여러 개로 보입니다. 시험을 볼 때 답이 한 가지인데 예문은 다섯 개예요. 차원이 조금 낮으면 답이 두
개로 보이구요. 차원이 완전 낮으면 다섯 개 중에 답은 여러 개예요. 차원이 낮을수록 답은 무엇인지 여
러 개 중에서 자꾸 택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차원이 높으면 알죠. 답은 이거야. 진로 문제 역시 마찬가
지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두 가지 중에서 갈팡질팡, 갈팡질팡하면서 살아갑니다. 차원이 낮기 때문에 자
기가 뭘 해야 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차원이 높으면 정확하게 한 가지 답을 선택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 내가 무언가를 갈팡질팡할 때는 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겁니다. 두 개 이
상이라는 겁니다. 갈팡질팡하니까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고로 이것을 택해도 뭔가 꺼림칙하고, 이것
을 택해도 뭔가 꺼림찍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 문제의 답은 딱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생
각하고 사냐면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게 답이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은 잘
사는 것은 인생 근본문제의 답이 아닙니다. 고로 잘 사는 것의 목적을 두고 살아도 계속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팡질팡하면서 계속 인생의 답을 자꾸 찾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인생 문제의 답은 딱 하나 영적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어야 문제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답은 하나예요. 이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합니
다.
금요일 밤, 차원이 낮으면 할 일이 여러 가지로 보입니다. 금요일 밤 차원이 높으면 한 가지만 보입니
다. 가자. 1번 하나 밖에 없어요. 0순위. 주일 아침 차원이 높으면 답은 하나예요. 가자. 차원이 낮으면
할 일이 여러 가지로 보입니다. 이 날 따라 설거지를 왜 이렇게 많아. 이 날 따라 왜 이렇게 입을 옷은
없어. 왜 비도 오고 눈도 와? 여러 가지의 이유와 사연들이 보입니다. 차원이 높은 자들은 답을 결정하
는 기준부터 다르다는 겁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왜 주일 아침에 주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야 하
는지, 왜 그것이 답인지, 그것이 왜 생각이 높은 사람의 생각인지 그것조차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생각의 차원이 높으면 주일 아침에 주님을 선택하죠. 문제는 왜? 정말 꼬집어주고 싶어요. 더 심하면 꿀
밤을 꼭 주고 싶어요. 더 심하면 매를 들어다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생각이 있죠. 말로 설명하고 싶은데
설명이 안되니까.
생각이 높으면 하나로 보이고, 생각이 낮으면 답이 두 개나 여러 가지로 보인다. 어느 정도로 인식했습
니까? 이해했습니까? 그렇다면 비유를 들으서 다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세 번째 영상을 보
겠습니다. 안과입니다. 시력이 이 친구는 낮아요. 그러니까 물체가 사물이 두 개로 보입니다. 맞습니까?
이 친구는 한쪽 눈은 시력이 높습니다. 그랬더니 사물이 정확히 한 개로 보입니다. 비유가 이해가 잘 되
엇습니까? 이와 같이 생각이 낮으면 여러 개로 보이고, 생각이 높으면 한 개로 보입니다. 그 다음 또 비
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독수리 비유입니다. 독수리가 처음 눈으로 사냥감을 볼 때는 이것 저것 여러 마
리가 보입니다. 그러다가 차원을 딱 높이면 한 마리만 딱 보입니다. 저거다. 그리고 그 한 마리를 쫓습
니다. 그리고 100% 사냥에 성공합니다. 비유가 이해되었습니까? 생각이 낮으면 여러 개로 보입니다. 그
러니 잡을 수가 없어요. 생각이 높으면 딱 하나만 보입니다.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정답 한 가지를 볼
수 없습니다. 정답은 한 가지입니다. 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러분 돌도끼 있죠? 이 돌도끼에 구멍을 뚫고 돌자루를 만들어 쓰는 데 200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요즘에 삐걱거리면 딱 박아서 하지 않습니까? 돌도끼, 구멍을 뚫어서 자루에 넣고 돌도끼를 쓰는 데 2
천년 이상 걸렸습니다. 이 시대 역시 생각의 차원이 계속 해서 낮으면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
답 한 가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정답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메시야입니다. 구원자입니다. 하
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땅에 보낸 자가 정답입니다. 그가 전하는 시대 진리의 말씀이 인생 문제의 정
확한 정답 하나입니다. 구원자는 이 시대 사람이 천년 동안 모든 말씀을 받아도 받지 못하는 깊은 시대
의 진리를 받아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만이 육도 구원하고 영도 휴거시키는 말씀입니다.
성자께서는 “한 치를 더 아는 자가 한 치를 더 모르는 자보다 얼마나 더 엄청난지 사람들은 정말 모른
다. 한 치를 더 아는 자가 온 세상에 한 치를 더 모르는 자를 뒤덮는다.” 했습니다. 여러분, 빛이 바늘만
큼만 나와도 온 대지를 뒤덮습니다. 빛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무지가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어도 아는
것이 손가락만큼만 나와도 온 대지를 뒤덮습니다. 아는 자 한 사람, 인생 문제를 아는 자 한 사람이 대
지를 뒤덮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여러분 조금만 더 알아도 몇 백년을 앞서 갑니다. 농사지을 때 조
금만 더 알아도 아주 실한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에서 몇 문제만 더 풀어도 대학이
결정됩니다. 몇 문제예요. 단 한 문제로 결정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단 한 가지를 더 아느냐, 모르
느냐에 따라서 인생문제가 완전하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를 찾아야 인생 근본문제의 답 하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답은 하나, 여러분은 그 답을 찾으셨어요? 찾아놓고서 갈팡질팡하는 거 아니예요? 모르죠. 저는 모르
죠. 생활할 때 보면 알게 되겠죠. 아닙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내일 딱 돌아가서 “새벽에 일어나?
말아?” 답이 하나 더 생겼어요. 피곤하니까 답이 하나 더 생겼어요. 이 정도면 양호하죠. 고린도전서 2
장 8절 말씀에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 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느니라.” 통치자 한 사람, 하나, 하나가 없어서 예수님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 하나만 알았더라면 답은 하나, 하나가 되면 다른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제대로 된 진
리를 알았으면 문제는 풀립니다. 구원자 한 사람만을 우리가 제대로 알면 인생문제가 제대로 풀립니다.
아는 데 제대로 모르고 확실하게 따르지 못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가 없으면 이 답
하나가 없으면 문제를 풀지 못 합니다.
사랑의 집 이거 하나를 지으니까요. 왠만한 행사를 다 소화하고 있습니다. 하나를 통해서 다른 건물들
도 이제 상징적으로 지어졌으니까요. 건축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성자사랑
의 집 하나를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까? 그렇죠? 하나가 풀리면 풀린다는 것입니다. 정
답 하나를 찾아야 해요. 그것을 먼저 풀어야 다른 문제들도 풀린다는 것입니다. 가장 핵심이 되는 근본
답을 하나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섭리사는 너무 커서 지역별로 교회가 있잖아요. 상징은 어디예
요? 월명동이잖아요. 이곳을 상징으로 두고 선교의 땅을 다른 지역으로 교회를 지역마다 세웠잖아요. 그
런데 부산에다가 상징으로만 세웠어요. 정답이 아니예요. 상장이 되는 답 하나가 있어야 다른 문제가 풀
린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높으면 답 한 가지가 보인다. 여러분들, 앞으로 인생을 살 때 진로를 결정할 때, 어떤 것을 결
정할 때 차원을 높이면서 답 한 가지를 결정해야 됩니다. 쉽습니다. 그래야 쉽다는 겁니다. 시대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고, 시대의 보낸 자를 분별할
수 있는 자는 생각의 차원이 높은 자입니다. 고로 답 하나를 분별할 수 있는 자입니다. 생각이 낮으면
여러 개가 보이죠. 뭐가 답인지 헷갈립니다. 이것도 맞아. 저것도 맞아. 다 맞아 보이는 거예요. 섭리사
에서 전하는 말씀이 맞는 거 같고, 저기서 전하는 말씀이 맞는 거 같고, 세상 사람이 전하는 말도 맞는
거 같아요. 생각이 낮은 자입니다.
생각이 낮으니까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이쪽으로 확 치우쳤다가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그 말에
확 치우쳤다가, 다시 교회에 와서 교회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다시 이 쪽으로 확 치우치고, 또 더 나아
가서는 악평자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그쪽으로도 치우치고, 이 말도 맞는 거 같아요. 생각의 차원이 높
은 자는 섭리에 온지 한 달이 되었어도 1년이 되었어도 아닌 건 아닌 거예요. “답은 그건 아니야.” 정확
하게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낮으면 답이 하나로 보이지 않습니다. 진리는 하나, 답도 하나입니다.
구원자는 하나입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 둘이 있던데요. 아니요. 쌍둥이여도 얘도 하나, 얘도 하나
입니다. 세 쌍둥이요? 아니요. 그래도 얘도 하나, 얘도 하나, 얘도 하나입니다. 맞습니까? 같지 않습니
다. 진리는 하나, 구원자는 하나입니다. 생각이 높으면 구원자를 정확하게 분별하고 따르게 됩니다.
지금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2013년은 여러분의 차원을 완전히 높여야 됩니다. 말씀을 듣는
차원도 충격적으로 들으면서 정말 이 마음 속에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내 것으로 삼고 듣지 않
는다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역시 열변을 토하고 전해도 듣고 돌아가면 생각이 여러 개 답이 여러 개라
는 것입니다. 갈팡질팡 또 그렇게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좋아하는 것이 여러
개를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요. 세상도 너무 좋은 거 같애. 섭리도 너무 좋은 거
같애. 저 교회도 좋은 거 같애. 저 종교도 좋은 거 같애. 생각이 낮으니까 여러 개가 좋고 마음을 정하
지 못 합니다. 차원이 높으면 하나를 정하고 딱 따릅니다.
성자는 늘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다. 사람의 생각은 물과 같다. 물을 봐라. 가만히 두면
범람해서 이리 저리 흘러간다.” 물을 가만히 두는데 다섯 개인데 길이 다섯 개 길로 다 길로 다 흘러갑
니다. 그런데 네 개의 길을 막아버려요. 그러면 물은 어디로 흘러가냐면 하나로만 흐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생각은 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스려야 되요. 다스리지 않으면 다 흘러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거 좋아. 저거 좋아.” 다 흘러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도 답, 저것도 답, 이것도 저것도 좋아. 섭리인인데 주님의 신부로 불렀는데 마음을 딱 정하지 못
하고 사니까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생이 되어서 더 힘들어집니다.
새벽에도 일어날까? 잘까? 기도할까? 잘까? 답이 여러 개이면 안 됩니다. 저녁부터 이 몸을 다스려야
됩니다. 이 몸은 밤을 좋아해요. 체질을 그렇게 들여보이면 밤에 눈이 말똥말똥하니까 새벽에 답은 하나
예요.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새벽부터 딱 일어나는 것은 답이 하나인 거
예요. 그러니 너 자야 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10시면 되면 졸립습니다. 성령집회 때 고민인 사람이
있대요. 10시 넘게 끝나면 졸리니까.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일찍 끝내줄께요.
자, 새벽에는 답은 하나입니다. 일찍 일어나자. 새벽부터 총명한 정신으로 주님을 만나고 하루를 다스
리자. 답은 하나입니다. 그러니 다스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다스리며 답은 하나이니까. 뇌를
가만히 두면 자체로 돌아가기는 합니다. 이 몸도 가만히 둬도 자체적으로 돌아갑니다. 가만히 있어요.
배고프면 몸은 뭐 있으면 먹어요. 손도 가만히 두면 또 뭘 만지작거리고 뒤적거리고 그래요. 뇌도 가만
히 두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몸도 알아서 움직이듯 움직여요. 뇌나 몸이나 손이나 가만히 둬도 자체
적으로 움직여요. 그렇지만 다스린다면 다스린대로 쓰게 됩니다. 배고프면 쌀도 씻고 뭔가를 만들어요.
생각도 그냥 두고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면서 쓰는 것입니다. 이 뇌, 가만히 두지 말아야 됩니
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보이는 대로 보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들리는 대로 듣게 하지 말아야 합니
다. 접하는 대로 접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스려야 합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못 보게 하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은 듣지 못하게 하고, 접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중고등부들 알았습니까? 꼭 봐야 할 것은 보게 하는 것입니다. 꼭 들어야 할 것은 듣게 하고, 꼭
접할 것은 접하게 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다스려야 되요. 다스려야 합
니다. 공부, 세상 일, 꼭 해야 됩니다. 공부, 세상 일,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입니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공부나 세상 일을 구원자로 삼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공부, 세상 일, 구원
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공부 때문에 세상 일 때문에 구원자를 버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믿습니까? 하
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죠.
왜 자유의지를 주셨나? 한 마디로 답을 드릴께요. 구속하지 않으려고. 속박하지 않으려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력을 행치 않으시고자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고 해서 몇 명 죽이고, 몇 명은 다치게 하는 그런 하나님의 아니세요. 얘 말을 안 안
들어. 몸을 하루만 묶어 놓을께. 오늘 거짓말을 많이 했어. 오늘 하루만 입을 막아놓을께. 손으로 오늘
범죄했으니 손을 묶어 놓을께. 하나님은 그렇게 행하지 않으십니다. 구속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순
리로 행하시죠.
인간을 창조하실 때 뇌를 창조하셨죠. 그래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성경에 말씀하셨습니
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예 사람의 뇌속에 태어나기 전부터 영원을 사모하도록 창조를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면 당연히 영원을 사모하도록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주셨어요. 너 영원
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니가 자유롭게 마음껏 행해보아라. 멋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멋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택하든지 무력으로 끌고 오지 않고 순리에 따라 자유롭게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생각의 축복을 뇌에 주시면서 옳은 길로 자꾸 땡기십니다. 몸을 땡기는 것이 아니라 뇌를 땡겨
요. 뇌에다가 축복을 주는 거죠. 하나님을 믿는 생각, 믿어야 하는 생각, 그 말씀을 따라야 하는 생각을
주십니다. 그리고 행할 때는 적극적으로 도우십니다.
여러분, 선택에는 결과가 따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오늘 내가 짜장면, 짬뽕 그리고 비빔냉면, 물냉면
이렇게 두 가지를 두고 고민하잖아요. 여러분, 짜장면 먹으면 100% 짬뽕 먹고 싶구요. 짬뽕 먹으면
100% 짜장면 먹고 싶다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지요. 내 책임이죠. 내가 짜장면
을 선택했으면 먹어야죠. 선택도 자유의지, 행하는 것도 자유의지 그 선택에 따라서 결과가 좌우됩니다.
자기 자유의지로 선택했으면 자기가 책임져야 하구요. 내 자유의지를 성자께 맡기면 성자가 책임을 져
주셔야 합니다. 맞습니까?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셨는데요. “나는 내 자유의지 내가 안 써. 저는요. 주
님. 실력이 없어서 내 책임 내가 못 지니까 주님께 맡길께요. 주님이 책임을 지셔야지요.”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부는 선택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하면 좋구요. 맞습니까? 그러나 구원자는 선택이 아닙
니다. 하면 좋고, 이런 게 없어요. 해야만 하는 것, 믿어야만 하는 것, 만나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
이 살면서 무엇을 먹느냐는 선택이예요. 그런데 숨쉬는 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자기가 숨을 안 쉬는데
하나님이 오셔서 내 늑골과 횡경막을 딱딱 움직여 주면서 숨을 쉬게 해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숨쉬
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에도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어요. 사람이 숨쉬는
것이 필수가 아니면 제발 좀 와주셔서 무력으라도 움직여 주시지, 왜 필수이면서 자유의지를 주셨을까?
여러분, 이걸 어떻게 매일 움직여 주십니까? 자기가 숨을 안 쉬려 할 때 하나님이 오셔서 무력으로 돕
지 않으십니다. 생각을 주시겠죠. “숨을 쉬어. 숨을 쉬어야 살어.” 자살하려고 하는 자에게 생각의 축복
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 맞습니까?
구원자를 믿고 따르는 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절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도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무력으로 인간을 구속하지 않으시고 멋있게 순리로 행하도록 자유의
지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을 다 데려다가 무력으로 믿고 사랑하게 하지 않으시고 실력껏 마음껏
그 차원대로 사랑하게 하시고, 믿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유의지 그 선택권 그 중에
서도 여러분은 선택해야 할 것이 있고,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로, 생각의 차원을 높이라
는 것입니다. 고로, 여러분에게 맡기지 말고 성자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고로 분별을 제대로 확실히 하
라는 것입니다.
휴거, 분별을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필수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해야 할 필수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선택으로 좌우가 됩니다. 어떤 자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결과는 자
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자를 보내시고, 성자는 육으로 쓸 자를 보내시고, 그는 말씀을 전
하시고 우리를 돕고 우리에게 함께 하시며 역사를 하십니다. 그러나 선택하느냐, 마느냐 필수이지만 자
유의지입니다. 여러분, 정말 깨달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휴거가 선택이냐, 구원자가 선택이냐, 하나님의
섭리역사 우리는 신부인데 정말 종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외쳐야 될 때, 사람들이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식모처럼 생명을 살핍니다. 그들이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그들이 원통해야 하는데, 내가 원통
해 하며 울며 기도하며 또 성령을 받아서 외치고자 합니다. 맞습니까? 선택이 아닌데 필수인데.
이 휴거의 역사 하나님의 섭리역사로 오는 것은 필수입니다. 기성인들 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모든 사
람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 차원을 높인 마지막 역사를 따라가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휴거되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휴거이야기, 재림이야기를 하면 믿지 않는 자들도 많습니다. 필수인데요. 선택
입니다. 섭리사에 사는 여러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필수인데요. 섭리역사 따라오면서 35년 동안 이
제 선포된 마지막 부활의 휴거역사를 내가 차지해야 뜻을 이루는 것인데 이것이 필수이면서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행위, 자기 생각, 여러분의 생각의 차원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늘 판단하면서 살아야 합
니다. 믿습니까? 생각이 높으면 답 한 가지를 정확하게 알고 선택할 것이고, 생각이 낮으면 인생의 문제
의 답이 여러 가지로 보이면서 답이 왔다갔다 하면서 갈팡질팡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두뇌의 차원이 낮으면 안 해야 될 것을 한다. 그리고 해야 될 것을 안 한다. 그
리고 꼭 해야 할 일을 생각조차 못 한다.” 했습니다. 여러분, 외쳐야 해요. “니가 생각조차 못하는 것을
내가 말해주는 것이니까 한 번 들어봐라.” “나랑은 상관없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나랑은 상
관없어.” “지금은 니가 모르니까 와닿지 않지. 그러니 니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생각의
축복을 주니까 알려주시는 거야. 하나님의 생각의 축복을 한 번 받아봐라. 한 번 들어봐라.” 하면서 외
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섭리사에 모든 여러분들에게도 선생님은 자꾸 가치를 외쳐주며 가르
쳐주고 계십니다. “니가 생각조차 못한 것이 이것이니 들어봐라. 니 가치관을 인식관을 바꿔. 이것이 정
답이다.”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상식인데도 모릅니다.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긍정하지 않고 부정합니다.
긍정인데도 부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다 생각의 차원이 낮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시대를 향해서 생각의 차원이 낮은 사람들을 향해서 가슴만 두드리고 있지 말구요.
여러분들이 더 차원을 높여서 외쳐야 합니다. 두뇌의 차원이 낮고, 생각의 차원이 낮은 자는 앞날에 영
을 보고 행하는 자들을 악평합니다. 심각한 문제예요. 우리 섭리사 사람들, 정말 열심히 우리처럼 주님
을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말씀을 우리처럼 많이 듣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
까? 소화를 못할 지경이예요. 너무 많아서. 그런데요. 35년 동안 똑같은 말씀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걸
다 소화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그런데요. 세상에 것들은 정말 크게 보지만 섭리의 것들
을 작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뇌의 차원이 낮고, 생각의 차원이 낮으니까 섭리의 사명, 섭리의 인생, 휴거, 천국, 구원자,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는 것, 성약 신부성, 모든 것들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뭐 되겠지. 그리고
나는 세상이 더 커. 나는 지금 이순간 공부해야 해.” 공부하라니까요. 그러나 구원자는 선택이 아니라니
까요. 둘 중에 근본 하나를 선택해서 밑에를 다스리라니까요. 그걸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비
전, 휴거의 비전이 있어요. 그걸 본인 스스로 버리고 있어요. 왜요? 생각의 축복을 못 받았습니다. 차원
이 낮아요. 섭리인생, 섭리사명, 휴거의 인생 이것이 얼마나 큰지 모르니까 휴거되기 위해서 이 섭리사
안에서 구원자를 깨닫기 위해서 구원받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는 데 큰 힘을 들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니까 살면서 생활이 탁탁 돌아갈 때가 있어요. 그 때마다 정신 팍팍 차려야 합니다. “아니지. 정신차려
야지. 목적을 이루어야지. 정답 하나는 확실히 이루어야지. 이것을 해야 다른 것은 풀린다.” 해야 합니
다.
여러분, 성자와 그 분체가 원하는 대로 여러분이 자신을 만든다면 평생 쓰여집니다. 낮은 차원으로 만
들면 낮은 차원에서 쓰여지구요, 높은 차원으로 만들면 높은 차원으로 쓰여져요. 월명동을 보세요. 월명
동을 어느 정도의 차원에서 머무르면요. 거기까지만 쓰여집니다. 여기서 더 빛나고 멋지게 만들면 더 빛
나게 쓰여진다는 것입니다. 성자 사랑의 집, 1200명 정도 모이고, 전세계 생방송 보내고, 이것으로만 쓰
면 이 차원에서 끝나요. 이 성자 사랑의 집은 단상으로 쓰여져야 합니다. 10만명이 몰려들 때 선생님이
단상으로 쓰셔야 합니다. 그렇게 써야 빛이 나지 않겠습니까? 만드는 대로 쓰여집니다. 그 차원으로 만
드는 대로 평생 쓰여져요. 영원히 쓰여집니다.
보세요. 하루 하루 자기를 계속 만들잖아요. 그러면 자기를 만들었을 때는 상상도 못 하게 쓰여집니다.
아주 여러분의 관이 오늘 다 깨져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얼마나 행운의 시대에 살고 행운의 역사에 살
고 있는지는 이미 말씀에 다 했습니다. 이미 다 증거했기 때문에. 오늘은 그 말씀을 제대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다 깨우쳐야 되요. 어떤 사람이요. 사막에서 계속 땅을 팠어요. 물이 나올 때까지 30
일을 팠습니다. 30일 동안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었어요. 30일 동안 땅을 팠더니 물이 나온 거예요.
그 물을 팔아서 10억을 벌었어요. 30일 동안 샘을 파는 수고로 10억을 벌었습니다. 고로 이 사람은 하
루에 3000만원씩 번 것입니다. 30일 동안 땅을 팔 때는요. 아무 것도 못 얻었어요. 눈물겨운 날이었어
요. 돈도 못 벌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30일 동안 판 물을 팔았더니만 10억이 나온 거예요. 따져
보면 하루에 3천만원씩 번 것이 되겠죠. 이 말이 맞습니까?
이와 같이 자기를 만들 때는 힘들어요. 그러나 완성하고 쓰여질 때는 엄청나게 빛을 발하며 유익이 된
다는 것입니다. 만들 때는 하루에 1원도 못 벌었습니다. 만든 다음에는 1분에 1억을 벌기도 합니다. 고
로 만드는 자는 희망으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현실만 보면 무슨 보람입니까? 희망입니까? 우리가 뭣
하러 이렇게 살겠습니까? 제가 성령집회 때 늘 외치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가장 많이 외
친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너 왜 현실만 보면서 현실 못 얻어도 괜찮아? 그건 성자가 원하시는 바가 아
니다. 왜 고생만 하면서 사느냐? 고생해도 생명길 가라. 생명길 가서 얻고 누려라. 왜 고생만 하냐. 왜
하나님 역사에 살면서 고생만 하냐. 왜 섭리를 뛰면서 고생만 하냐. 고생한 만큼 얻고 누리는 것이 하나
님의 축복이다 했습니다. 여러분, 얻고 누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요?
만들어야죠. 만들어야 얻고 누린다는 것입니다. 희망으로요. 교역자가 자기 하나를 잘 만들어요. 일주일
정말 기도하고 생명관리 잘하고 설교를 잘 하면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만든 만큼 많은 생명도 얻게
되구요. 성령도 역사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의 육을 가지고 영을 만들어야 됩니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죠. “너 돈도 못 벌고 왜 거기 가서 그렇게 살고 있냐? 너 나가서 노동이라도 해봐라. 하루
에 5만원이라도 번다.” 만들 때는 아무 유익이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 과정 중에 수십조를 버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따져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얼마나 잘 따지시는 줄 아세요? 얼마나 따지시기
를 잘 하는지 모릅니다. 육신 세계, 영 세계를 다 따져보시고, 이 나무 길이가 눈을 찌르는지 안 찌르는
지 다 보시구요. 이 돌 뿌리에 사람이 넘어지나 안 넘어지나를 다 보십니다. 하나 하나 따지시며 육계를
보고 영계를 보고 오셨기 때문에 지금도 불같이 말씀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따져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주시면서 얼마나 따지셨겠어요? “사막에서 30일 동안 물을 파서
10억을 벌었어. 너 하루에 얼마 번 거야? 3천만원이야. 너 영을 한 번 만들어 봐라.”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이 메시야를 온전히 믿고 300선 휴거를 시켰어요. 일단 100선까지만 가볼까요? 100선 휴거 딱
시켰습니다. 자기 영을 휴거의 영으로 만들 때는 어떤 사람은 10년, 어떤 사람은 20년, 어떤 사람은 30
년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천국에 황금성에서 빌딩과 황금지역을 얻고 사는 데 그 값이 지구세상
의 그 어떤 것을 얻을 것과 비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거 감이 없으면 안되
요. 감이 없으면 안되요.
지금 현실만 보면서 사는 사람은 차원이 낮은 자예요. 앞날을 내다봐야 되요. 내일이 있을 거 같아요?
없을 거 같아요? 내일이 있습니다.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맞습니까? 육신이 살면서
영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이 차원이 높은 자입니다. 실감해야 되요. 실감
하는 것입니다. 실감해야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따져야 되요. 그리고 봐야 합니다. 실력껏 보
라고 하지 않습니까. “천국도 봐. 제발 봐. 그리고 지옥도 봐. 그리고 제발 가지 마. 천국 보고 가.” 있
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만들 때는 10년, 20년, 30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300선 이루었어요. 천국의 황
금성을 받습니다. 유일하게 황금이 깔린 곳, 보라니까요. 담대하게 외칩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황금만 있는 지역이 있어? 다 황금이지.” “너는 그렇게 믿고 살어. 나는 아니까. 한 치 앞을 더
아는 자가 온 지구를 덮는 거 모르니?”
여러분, 선생님의 철학 끝까지, 우리는 끝까지 가야 됩니다. 끝에는 답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답이 여러 개인 것 같지만 끝은 답이 하나예요. 담대하게 외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믿고 살아야 된
다니까요. 천국은 다 황금이 아니예요. 천국의 신부성만 황금성입니다. 길도 나무도 모든 것도 집도 안
에 있는 모든 것이 황금이예요. 천국의 황금성에 있는 모든 것을 여러분들의 영이 다 차지한 거예요. 집
이 다 황금이예요. 길도 황금, 문도 황금이예요. 거기 다이아몬드가요. 단상 하나만 한 것만 달려있어도
그것은 물방울 다이아몬드,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작은 거 하나만 가져도 지구의 몇 개 나라는 삽니다.
값이 비교가 안 되요. 나는 내 영을 휴거시키기 위해서 10년, 20년, 30년 노력하면서 살았는데 내 영은
천국의 황금성 성자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서 영원히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구가 그것의 값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천국의 집이 없다고 칩시다. 휴거된 내 몸,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받고 사는 내 영의 몸 하나를 지구랑 안 바꿉니다. 바꾸겠어요? 하나님이 바꾸시겠어요?
“나 지구 줘. 너 내려가.” 안 하십니다. 목적은 지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을 얻는 거거든요.
하나님은. 지구는 여러분의 육신을 통해 영을 얻는 게 목적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을 사랑
의 대상체로 얻었다면 하나님은 지구를 택하지 않습니다. 바로 휴거된 여러분의 영의 몸을 택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휴거된 영의 몸을 만드는 데 과정 가운데 1원도 못 벌었어도 과정 가운데 수십
조를 번 것이 됩니다.
저는 담대하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오늘도 수십조 벌었습니다. 미련하게 그 육신 통장에 다 못 놔요.
그거 줘도 다 못 써요. 수십조가 내거 통장에 있어도 못 씁니다. 그거 방탕하게 쓰고 싶지 않습니다. 하
늘에 다 저장합니다. 먹고 살 만큼만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계속 저장해요. 나는 오
늘도 수십조 벌 겁니다. 내일도 수십 조 벌 겁니다. 저는 섭리에 와서 지금 16년이 되었어요. 16년 동
안 수십조를 벌었다면 얼마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니 더 벌 거
예요. 매일 수십조씩.
생각하면서 살아야 되요. 마음에 쿵쿵 와닿아야 되요. 생각의 차원이 높아야 이런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도 실질적으로 와닿는 것입니다.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그냥 눈으로 보이는 것, 나는 지금 언덕위에
큰 저 집 먼저 갖고 싶어. 내 전셋집 먼저 생각나고, 내가 사야 할 집 먼저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영원
히 살 자기의 집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충격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의 차원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성자가 말씀하시기를 “300선 휴거를 이룬 자들은 지구 하나보다 더 값어치가 있지. 아니. 비
교할 수 없지.”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역시 시대 말씀으로 선생님 자신을 만들 때는 21년 걸렸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2012년까지 35
년 동안 성자와 함께 역사를 펴오시며 또 만들었습니다. 1차 21년, 2차 35년 만들었습니다. 총 56년 만
들었습니다. 일단 역사를 시작하기 전후 이것만 따졌을 때 56년 만들어서 섭리사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신약과 비교하십시오. 신약역사 우리 역사에 비교해서 56년 그러면 우리 역사보
다 크니까 신약역사는 56 곱하기 2, 100년 좀 넘습니다. 신약역사 100년 조금 넘었을 때 뭘 했는지 보
십시오. 섭리역사 56년 만에 전세계로 뻗어나간 역사를 보십시오.
여러분, 진짜 보셔야 됩니다. 섭리를 작게 생각하지 말라니까요. 작게 생각하니까요. 별 것도 아닌 것에
밀린다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아직까지 없다는 거예요.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이
차원으로는 안 된다.” 선생님께서 절식기도를 100일 넘게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내
가 이 100년 된 집을 밀어붙이고, 이 함석집을 지을 때 나 진짜 좋다고 하고 살았는데 10년 딱 지나니
까 그거 웃기더라. 그런데 이제 하루 지나면 우끼다. 왜? 날마다 성자의 생각 맞추어 차원을 높이니 하
루 하루 다르다.” 하루 하루 달라지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휴거 300
선에 오르려면 정말 인생 가치있게 살려면 과거 체질을 버려라.” “나 과거에 잘 했는데요.” “그래도 버
려라. 차원을 높여라.”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누구든지 차원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되요. 성자는 이 땅에
보낸 구원자도 차원을 높이게 하십니다. 이 시대에 주신 축복을 다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믿습니까? 차
원을 높여야 되겠어요?
높여야겠죠. 세계로 뻗어나간 섭리역사를 보십시오. 우리는 아직 몇 명 없고, 몇 교회 없고. 아니예요.
56년 만들어서 펼친 역사입니다. 작은 역사입니까? 작은 역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기성에서 말합
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2천명이었어.“ 니네 2천년 동안 그리고 400년 동안 닦아온 역사가 아니
냐. 섭리역사 400년 닦으면 그냥 2천명 교회 그냥 나옵니다. 역사를 끝까지 가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과정 가운데서도 이미 다 확인받고 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돈을 버는 것만 큰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혼자 자신이 56년 만들어서 이 천문학적인 값을 지금 얻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 오랜 시간 홀로 고통을 겪으면서 차원을 높이시면서 말씀을 받으면서
받는 값이 어떤지 여러분 생각하셔야 합니다. 선생님, 절대 손해를 안 봅니다.
성자가 말씀하십니다. “너 손해 보면 안돼. 핍박을 당해도 손해 보면 안 된다.” 핍박이 있으면 핍박으
로 인해 우리는 거두어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역사입니다. 뿌리는 대로 거두는 역사입니
다. 선생님 철학이 뭐예요? “나는 사막의 황무지 땅도 만들어서 황금벌판 땅으로 만들겠다. 황금 벌판으
로 만들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역사이니까요. 선생님 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자와
선생님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살 동안 큰 돈을 벌어야지요. 돈 버는 것
도 좋습니다. 벌지 말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누릴 것을 얻게 한 값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 인
식이 바뀌어야 되요. 어떻게요? 완전히요. 그냥 완벽히요. “주님. 나는 인식이 바뀌기는 했는데요. 내 삶
을 보니 나는 정말 사람들이 인정하는데, 나는 정말 휴거되고 싶고 천국 귀한 줄 아는데 내 삶을 보니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은 다 못 얻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양심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지금 섭리사에 어느 누구도 성삼위가 주시는 축복을 다 받게 만들어 놓은 사람
은 없다.” 하셨습니다. 없습니다. 한 사람입니다. 사명자 한 사람입니다. 고로 하늘 앞에는 자만하지 말
고 계속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자만하고 나는 괜찮은데 하는 순간 거기서 그냥 멈추는 거예요. 가장 무
서운 것이 멈추는 것입니다. 밑바닥에 있어도 가장 무서운 것은 치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멈추는
자는 따라갈 수 있습니다. 멈추지 마십시오. 이 넓은 세계, 이 드높은 세계를 계속 차지해야 된다는 것
입니다. 저마다 자기 육을 가지고서 자기 혼과 영이 휴거되게 하고 천국을 간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살 때 1억 천만금을 하루에 버는 사람과 같습니다. 투자하시겠습니까. 차원을 높여서 투자하시라니까요.
그냥 만족하지 마시라니까요. 저는 만족하지 않아요. 그래서 만족 안하고 막 만들고 있어요. 내 생각을
막 넘어서고 있어요. “주님. 내 생각은 여기까지인 것 같은데.” 그 때 답이 왔어요. “니가 그것 밖에 안
되니까 그것 밖에 못 얻는 거야. 그 대신 행해라. 꿈을 무한대로 갖되 행해라. 그만큼. 생각의 차원을 높
이고 행실의 차원을 높여서 행하면 다 얻게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러셨습니다. “나를 만들
때는 정말 눈물겨운 날이었고, 고통의 날이었다. 만들어놓고 나니 나는 천문학적인 값을 얻었다. 역시
나의 10년의 시간은 눈물겨운 시간의 날이다. 그러나 이 시간을 가지고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 남긴다
는 것입니다. 뭘요? 천문학적인 것을 남겼습니다. 휴거의 말씀을 남기셨고, 성자 본체와 분체말씀을 남
기지 않았습니까?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을 뒤집을 수 있는 말씀이 성자 본체 분체 말씀입니
다. 왜 신이며 왜 사람인지를 완벽하게 풀어내는 천만금같은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으로 많은 자들
을 휴거시킬 것입니다.
그러니 어때요? 이 10년의 값, 이미 천문학적인 것을 얻었습니다. 이미 얻을 것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보다 구체적인 것을 얻어야 합니다. 제가 무슨 말 하는 줄 아시겠습니까? 성령의 귀 있는 자는
깨닫고 간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미 사명자는 성자께서 원하시는 것을 10년의 기간 그 안으로 이루
어 놨으니까 이제는 우리가 그를 위해 더욱 더 기도하며 생명의 발판을 만들어서 그가 직접 이 글이 아
니라 직접 전하지 않는 안되게끔 만들어 버려야 해요. 여러분, 선생님의 놀라운 정신력이 무엇인지 아십
니까? 여러분, 사람들은 왜 선생님을 증거해야 되냐고 그래요. 그를 증거해야 성자가 나타나시기 때문입
니다. 믿습니까? 성령이 더욱 더 크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실 거예요. 그가 받은
사명자이기 때문이니까요.
저도 배워서 알지 않습니까? 배워서 아는 것과 깨닫고 아는 것이 어떻게 똑같다 할 수 있겠습니까? 정
말 수많은 군중을 만들어서 이제는 대신 그 육신 보내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들어 버려야 되요. 아시겠
습니까. 그래야 모든 상황이 틀어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의 철학, 하나님이 안 하시고는 안 되게
끔 성자가 안 하시고는 안 되게끔 해버려라. 그냥 기도도 그만큼, 행실도 그만큼. 여러분, 월명동을 계속
해서 건축하고 이 실내성전을 안 지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실내 성전을 지으면 계속 거기만 쳐다보니
까요. 35년 동안 성자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안 쳐다봤어요. 그래서 말합니다. “35년, 성자 주님. 안 해
주실 겁니까? 여기까지 해놨는데.” 저는 믿습니다. 성자의 육이 직접 전하지 않고서는 안될 선을 만들어
놔야 역사가 일어나지 않나. 사람을 뭘 기대할 것이 있습니까? 사람이 뭘 도와준 것이 있습니까? 하나
님이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쓰고 여건 틀어서 다 해 주셨습니다. 맞습니까.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월명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성자가 사람을 쓰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쓰고 여건을 틀어서 해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요? 안 하면 안 되게끔 해버려
야 되죠. 저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언제까지 대신 외쳐야 합니까. 지금 대신 외칠 정도의 수준이
면 대신 외치겠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만들어 놔야 되겠군요. 그래야 우리의 소원이 풀리겠
군요.” 여러분, 판국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핍박을 당하던 자가 살아서 딱
와서 말씀을 힘있게 전하면서 군중속에서 외치는데 누가 옛날 말을 잡으면서 “야! 니네 선생 그랬잖아.”
그렇게 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지금 승리해서 나와서 승리하는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누가 구
닥따리 과거를 꺼내면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하겠습니까?
저는 우리 섭리사를 악평하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너 끝까지 봐라. 이 끝도 그럴 것인지 니가 봐라.
정말. 이 뒤에도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30년 후에도 그럴 것인지 너는 볼 것이다. 너는 내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예언을 못 해. 그렇지만 이 말은 내 말이 맞다. 너는 보게 될 것이다.” 확실하게 여러
분 외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자신감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자신감, 이 실질적인 역사를 느껴야만 가
슴속에 말이 우러나온다니까요. 힘있는 말씀만 외치면 뭐 하겠습니까. 힘이 안 나오는 데요. 힘있는 말
씀만 있으면 뭐 합니까? 국어책만 읽는데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깨달아야 되요. 여러분, 과정마다 1
원도 못 버는 거같죠. 지금 이시간 1분씩 지나가죠. 지금 이시간에 공부를 하면 시험 조금 더 잘 볼 수
있어요. 책을 두 세시간 더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이 후는 다르다는 것입니
다.
성자가 쓰시기에 합당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 만들어서 쓰게 되면 만드는 과정, 그 하루 그 하루마다
수억, 수조씩 번 것이 됩니다. 여러분, 정말 이 섭리인생 휴거되는 것 내가 천국에 가는 것 이 역사를
따르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야 되요. 따져야 되요. 누가 뭐라고 해도 외쳐야 되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처음에 선생님이 말씀을 외쳤을 때 누가 코방귀라도 뀌었나요? “영이 재림한다, 영의 역사다.” 누가 콧
방귀라도 뀌었나요? “우끼고 있네. 진짜. 이단이네. 삼단이네. 십단이네.” 듣지를 않아요. 모르니까. 한
치를 더 아는 자가 외치니까 점점 덮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인정했습니까? 아무도 몰랐습니다. 2천년이 지나니까요. 이 지구상을 덮어 버렸습니다.
이 지구상에 기독교인이 제일 많습니다. 모르는 자들에게 밀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밀렸다면 역사는
밀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밀렸다면 이 역사는 밀렸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늘 앞에 받은 진리의 말씀
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외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때요? 우리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제 생각
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저는 선생님이 진로까지 틀 정도로 제 인식을 바꾸어 주셨어요. 우리 부모의 인
식을 틀 정도로 진로를 바꾸어 주었어요. 우리 부모님이 처음부터 내가 섭리인생 크게 산다니까 즐거워
했겠습니까? 아직 인식이 안 돌아왔는데. 그러나 본인이 배우고, 듣고, 행하며 그를 알고, 인식이 바뀌니
까 정말 큰 사명이로구나. 정말 큰 역사로구나. 우리 엄마는 매일 한탄하잖아요. 동생들한테. 아이고. 복
을 차버리는 사람들 같으니라구.
알아야 합니다. 생각의 차원을 높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가치있는 인생을
사는지를 보여줘야 되요. 모르면 어때요? 내가 알려주면 되죠.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않아도 내
말 들어봐. 그건 잘못 됐어. 그건 아니야. 너가 아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래서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부인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끝까지 외칩니다. 믿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이 틀어졌어요. 끝
까지 기도합니다. “주님. 그 사람이 밑거름이 되는 생명입니까? 더 좋은 생명이 오도록 밑거름이 되는
생명입니까? 아니면 정말 주님의 신부로 불러온 생명입니까? 분별하게 해주시고, 붙잡게 하여 주시옵소
서.” 간구해야 됩니다. 끝까지 해야 되요. 힘있게 외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마다 생각과 실천으로 자기를 만들기 달려 있습니다. 만들면 귀하게 쓰이는 것입니다. 내가
세계적인 부흥강사로 나를 만들면 내가 세계적인 부흥강사로 쓰이는 겁니다. 나를 한 목회하는 정도로
만들면 하나의 목회만 하고 끝나는 겁니다. 그냥 앞에서 찬양인도하는 자로 좋게 만들면 찬양인도자로
끝나는 것입니다. 만들기 달려 있습니다. “왜 저 사람을 쓸까?” 하지 말고 만들면 됩니다. 세계적으로요.
섭리의 무대는 드넓고 드넓습니다. “에이구. 조은목사만 저렇게 하는 거 아니야?” 저는 담대하게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 이러잖아요. “증거해. 그런 말 못하게 증거해.” “조은 목사만 저렇게 되는 거 아니야?”
저는 담대하게 말합니다. 그러면 저처럼 행하십시오. 저처럼 믿음을 가지고 삼위일체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누가 듣지 않아도 외치십시오. 그리고 삶을 온전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써주십니다. 세계적으로요.
사람은 한 사람, 두 사람, 100사람? 사람은 섭리사에 계속 많아질텐데요. 나라는 계속 많아지고, 교회는
계속 생겨질텐데요. 교회는 계속 커질 것입니다. 그런데요. 쓸 데가 없다구요? 여러분, 그 생각이 여러분
을 망칩니다. 생각의 축복을 받지 못 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쓰겠지. 저 사람은 저래서 쓰겠지.” 여러분, 저는 확실하게 말하건대 저는 그런 생
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보다 더 높게 사는 사람들, 섭리사 처음에 와서 너무나 많이 봤어요. “우
와! 대단하다. 선생님 옆에서 기록해. 저거 어떻게 하지?” 진짜 너무 신기한 거예요. 선생님 옆에 있는
사람들이요. ‘저 사람은 왜 있어?’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뭘 했길래 옆에 있을까? 나 진짜 열
심히 해야지.” 누가 많이 받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해야 될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삶이
니 제가 증거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자들을 성자는 모든 자들을 동일하게 키워주십니다.
그러니 그 축복은 여러분이 대상입니다. 생각축복 먼저 받으라는 말입니다. 왜 안 된다는 생각 먼저 하
면서 자기를 그 밑에 단계로 끌어 내리는 것입니까? 이곳 월명동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내 형제들, 동네 사람들, 나한테 늘 이렇게 말을 했지. “월명동 명석이, 걔 좀 얼떨떨해. 이상한 짓을
잘 해. 미쳤어. 바보같애.” 하면서 나를 욕했지. 나는 속으로 그들을 보면서 웃었다. 그 수준이 어떤지
영계에서 보니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이라 별로 싸울 이유도 없었지. 역사가 흘러가고 시대가 흘
러가면 보게 될 테니까.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굴하지 않고 오직 성자께 배우면서 실천했다. 현재를 보
아라. 그들이 내가 행한 것에 천분의 1이라도 해놨는냐. 그들이 이 시대에 단 한명이라도 엄청난 하나님
의 세계까지 인도하냐. 아니니까. 나를 따르던 자들 중에서도 차원이 낮으니 이 월명동에 돌을 쌓고 자
연성전을 개발을 하니까 오히려 “뭐 이런데다 성전을 만들지? 도시에다 만들어야지. 왜 저래?” 하며 은
근히 나를 욕했지. 한국에서 최고로 좋은 대학에 다니던 자들이 나의 제자라고 하는 자들이 나를 시인
한다고 하는 자들이 내가 하는 일을 은근히 반대했지. 그러니 섭리사를 결국 따라오다가 나와는 다른
길로 가게 됐지. 그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보니 그냥 말할 것도 없다. 말하려니 가슴만 아프다. 도시
에다가는 이와 같은 성전을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도 밤낮 하늘이 떠나가도록 소리도 지를 수 없고, 수
많은 청중이 수시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고, 매연 속에 경치도 없고, 땅값만 비싸고, 삼
위의 생각을 모르는 자들, 그들은 기저귀를 찬 어린 아이들 같았다. 빼기, 더하기나 하는 학문이나 알지.
자기나 배우는 학문이나 알지, 영원한 것을 모르니 하늘이 보낸 자가 하는 일을 지적이나 했지. 너희는
인생 공부, 사회 공부, 삶의 공부, 영계 공부, 천국 공부를 해서 너희 육신의 삶을 통해 너희 영혼을 최
고의 차원으로 높이 구원시키고 휴거시켜라. 그리고 최고로 차원높은 영의 천국인 신부성에서 살아라.”
끝까지 따라오는 자들에게 축복을 해놓았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보이지는 않지만 끝까지 따라오는 자
들에게 생각의 차원을 높여 존재하고 있는 영의 세계, 여러분이 앞으로 거할 곳, 여러분이 휴거의 가치
를 깨닫게 해주면서 영의 공부를 하늘의 공부를 시켜주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께 뜨겁게 성자께
뜨겁게 박수로 영광 돌리겠습니다. 여러분, 섭리인답게 정말 자부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부심만 그냥
내세우면 안 됩니다. 자부심 따라 행위가 가야 합니다. 자부심있는 행위, 정말 인정할 만한 행위가 따라
줘야 합니다.
월명동은 하나님의 거룩한 땅입니다. 그런데요. 아무리 거룩한 땅도 거룩하게 개발을 해놓지 않으면 인
정을 안 해요. 맞습니까? 그래서 만들어야 되요. 이곳에 전설이 흐른대. 오늘 섭리의 새노래, 온 세상의
전설이 이곳을 말한다. 그런데 와보니 이곳에 전설이 흐르는데 생가 하나 딱 하나 있고, 이곳에서 났대.
인정을 안 해요. “청중이 몰려드니 이 사람을 보기 위해, 그를 보기 위해, 이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드
니 만들자. 그래서 만들었다. 모든 사연이 하나님과 성자와의 사연이다. 봐라.” 이러면서 증거하는 것입
니다. 만들어야 빛이 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적 생각과 두뇌가 안 되면 내가 하나님과 안 사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이 나랑 같이 안 살아주십니다. 생각을 바꿔야 되요. 생각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섭리역사에 살면서도 두뇌의 차원이 낮은 자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섭리사는 재미없어. 섭리는 나랑
안 맞어.” 이러면 섭리에 못 삽니다. 섭리의 가정국 2세라고 해서 “나는 섭리가 맞어. 나는 섭리에 태어
났으니까.” 여러분, 받아야 해요. 생각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섭리는 나와 안 맞고, 섭리사는 재미없
다고 느끼면 일단 여기는 못 있습니다. 여기에서 태어났어도. 전도되어 10년, 20년이 되었어도 나랑 안
맞으면 섭리에서 못 있습니다. 맞추는 것입니다. 영원히 같이 살려면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맞춰
주셨잖아요. 사람에게 맞춰 주시고, 인간을 보내주시지 않았습니까. 구원자로. 그러니 우리도 맞추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섭리역사에 와서 노력하지 않는 자, 충성하지 않는 자,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자, 부정
적으로만 보는 자, 말씀은 곧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이신대 귀히 보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자, 시대의
말씀을 듣고 맞나 안 맞나 반신반의하는 자, 사명자를 우끼게 보는 자, 말씀이 하나님이며 주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안일주의로 살며 말씀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래. 내일 되보라지 뭐.”
저는 어떤 사람도 본 줄 아십니까? “매일 심판이 온다. 이 사람이 심판이 어떻게 되는지 보라구.” 저는
섭리사에 살면서 그런 사람을 봤다니까요. 충격받았어요. ‘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한 자들, 저 생각 때문
에 저 축복의 행위가 안 나가겠구나. 저 사람은 축복받기 글렀구나.’ 아예 어렸을 때 판단을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말 안 듣는 자들을 다 불태워서 없애길 바란단 말입니까? 너무 끔찍하지 않습니까. 사랑
의 하나님, 그와 같이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고,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자 주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저들이 저렇게 하는 것처럼 나도 지
금까지 용서해 주셔서 나도 기회가 있어서 지금까지 내가 왔지.” 감사하면서 사는 자는 생각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믿습니까?
전능자와 보낸 자는 행한만큼만 축복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릇이 작은 종지만한데 여기다 물을 부
어준들 물이 다 흘러넘쳐 바닥에 흘러넘쳐서 다 버립니다. 그릇을 만든 만큼만 축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못 줍니다. 줘도 떨어집니다. 이게 바로 공의, 공의로운 하나님 그래서 믿으라는 거예요. 행한
만큼 주시는데 행하는 데 아깝지 않습니까? 행한만큼 주니까요. 사람을 만들면 보화덩어리입니다. 여러
분 하나 하나를 만들면 물방울만한 보화덩어리랑 안 바꿉니다. 바보,아니예요? “ 래, 나 바꿔. 물방울 다
이아몬드 나 주세요.” 그렇게 미련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기 몸과 자기 생각과 세상의 것들을 바꿉니다. 지능이 낮고, 생각이 낮으니 육신
세계의 겉만 보고 행한다는 겁니다. 현실도 잘 살고, 미래도 잘 살아야 합니다. 현실도 떳떳하게 잘 살
고, 미래도 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내가 섭리를 열심히 뛰다보니까 돈이 부족해요. 그러면
아르바이트하면 되죠. 감사하죠. 아르바이트 천국인데. 여러분, 감사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 아르바이트
천국이예요. 궂은 일일수록 더 요즘 애들은 안 해요. “ 천국이야. 잘 됐어. 잠깐잠깐 하면서 이게 행복
해. 나는 내가 결정한 인생이야.” 섭리사에서는 자기가 결정한 삶이 다들 있어요. 그것을 존중해줘야 합
니다. 믿습니까? 비교하면 안되요. 비교하지 말고 존중해줘야 해요.
특히 내가 섭리를 뛰며 섭리만을 위해 살아가리 하는 사람들은요. 돈이 없고, 옷이 없고, 우끼게 생겼
어도 우끼게 보면 안 됩니다. 영계에서 별 달고 다녀요. 못 봐요. “난 돈이 많아. 내가 매일 뭘 사주는
사람이야.” 그런데 영계에 가면 차원이 높아서 못 봐요. 차원이 높아서. 생명을 많이 살려가지구요. 육신
세계에서만 따지면 저부터도 단상에서부터 외치는 거 안하고, 세상에 나가서 돈 법니다. 세상 명예를 위
해서 삽니다. 여기서 끝나는데요. 뭐. 미래를 위해서 내 영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결정합니다. “나는 이왕 결정한 것, 적당히 안
하고 진짜 잘 해볼란다. 진짜 외쳐볼래. 진짜 이렇게 살아볼래. 눈뜨고, 눈감을 때까지 생명만 관리하다
가 살거야. 나는 이게 좋아. 돈 좀 없으면 어때? 아르바이트 좀 하면 되지.”
저는 목회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어때요? 내가 좋은데요. 목회를 선생님이 딱 저에게 말
씀하셨어요. “너 이제 목회해야 된다.” 저는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선생님. 지금 진짜 시간이 없어요.
부흥집회, 순회, 말씀 정리하는 거 이것만 해도 하루에 4시간도 못 잔자요. 그런데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에 100만원은 벌어야 내가 사고 싶은 거 사잖아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뭐라고 하신지 아십
니까? “너 내가 아르바이트 쓸께. 목회해라.” 그래서 제가 “아멘. 그러면 저 아르바이트 써주시는 거예
요?” “그래. 너가 궁할 땐 내가 쓸께.” 만들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내가 조금 시간이 나면 어때요?
노니 뭐 합니까? 집에서 놀면 자꾸 딴 생각나는데요. 잠만 여덟시간 자면 뭐합니까? 여섯 시간, 다섯 시
간, 네 시간으로 줄이고 남는 시간 가서 일하고, 생명전도하고 얼마나 멋있는 삶입니까? 이 인생을요.
웃기게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세상 경험 없어도 조금 약간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걸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만 크게 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가 선택한 삶에 존중을 해줘야 해요. 나는 이게 좋아. 내가 조금 부족해도 나는 주님 말
씀 외치고, 나는 정말 생명전도하면서 살겠어. 나는 이렇게 하겠어. 이렇게 결정을 한 사람들은 앞으로
모두 다 존중을 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을 결정한 사람들은요. 그 차원에서만 머물
면 인생 억울합니다. 아시죠. 저는 매일 생각해요. 제가 주님의 교회에서는 한 번 이야기를 했어요. 항상
간증을 해주라고 하셔가지구요. 제가 2005년도에 선생님께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많이 힘드신데 부활복
음 외치실 때, 그 때 제가 선생님께 따지고 싶은 거예요. 가격을, 값을, 내 가치를.
저는 섭리오기 전에 직장에서 돈을 좀 많이 벌었잖아요. 그래서 여쭤봤어요. ‘만일 내가 직장에서 돈을
번 만큼 섭리사에서 값을 못하면 그냥 직장을 다녀야겠다.’ 생각을 해서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는요. 제가 이 정도로 일을 하면요. 한 달에 만약에 월급을 주시면 얼마를 주시겠어요?” 그런데 선생
님께서 가격을 딱 책정을 해주시는데 제가 회사를 다닌 것의 5배 이상은 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회
사보다 섭리에 더 필요하네. 그러면 내가 섭리를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 지금 벌써 몇 년이 지났어요?
7년 지났죠? 아니다. 8년째 되었으니까 따지면 돈을 더 많이 번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서 가는 거예요.
그 돈을 벌고자 하는 게 아니라 “아. 이정도 되면 이제 섭리에 진짜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구나.”
내가 결정한 삶이기 때문에 억울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저 사람들보다 내가 선생님께 낮다는 평가를 들
으면 너무 죄송하고, 성자께 얼굴을 들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그 위신을 세워 드리고, 권위를 세워드
려야 하는데 그걸 못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더 부지런히 뛰고 달리면서 외치는 것
도 힘차게, 더 모든 것을 힘차게 차원을 높여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선생님, 홀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20대 때는 정말 힘들고 어렵고 나약했
지만 이제는 점점 나이가 성장할수록 자신감이 더 붙는 거예요. ‘이제 진짜 선생님께 그 전보다 더 잘
해드려야지. 진짜 억울해서 더 잘해 드려야지. 그동안 못한 거 다 해드려야지.’ 항상 그렇게 생각하며 삽
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정말 가치있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선택한 인생에 대해서 절대 내가
가치있게 느낍니다. 고로 담대하게 시대를 증거하고, 선생님을 증거하고, 말씀을 증거해야만 합니다. 믿
습니까? 여러분, 모두 다 그와 같이 인생을 살고 있지만 현재의 차원 말고, 다음에는 더 높은 차원으로
다시 올라서 또 다르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다 마찬가지입니다.
돌덩어리를 가지고 몸부림쳐서 조각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돌덩어리네.” 그래요. 지능이 낮은 머리를
쉬운 말로 돌머리라고 합니다. “지능이 낮네. 돌머리네.” 이 돌머리를 차원이 높게 만들지 않으면 우리
는 평생 돌머리 취급을 받게 됩니다. 월명동을 개발하기 전에는 이 땅을 다 논 취급, 밭 취급, 개울 급
하고 시골촌구석 취급하고, 옹달샘 취급, 사람들은 오지도 않는 곳, 달밝골 이름이 달밝골이야. 면도 아
니다 골, 산골짝이잖아요. 취급을 골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개발해 놓으니까요. 하나님의 자연성전 취급
을 받게 되구요. 호수 취급, 운동장 취급, 정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뇌, 생각, 몸, 인생, 여러분
의 영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거에는 생긴 대로 행위 대로 취급을 받았지만 만들어서 이
상적으로 변화를 시키면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선생님 예전에 동창이 와가지구 “아이구. 그래. (그 이름부르기도 죄송한데요.) 그 명석이 내 밑에 있었
지.” 그러면 “잠깐 따라오시지요. 지금 오 인격이 없으신 분들이군요.” 인격이 없는 분들이 맞습니까?
지금은 선생님 밑에 따르는 자들이 엄청납니다. 그 분들이 나이가 들어서 50대, 60대가 되었어요. 그
사람들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데 “아이고. 자식.” 그러면서 인격이 안 되었습니다. 안 된다는 거예요.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들기 전에는 했지만, 만든 후에는 흔
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요. 고로 그렇게 행하는 자는 잘못된 겁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그들이 보지 못하
고 듣지 못한 고로 악평을 하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어도 해도 해도 너무 했네. 아무리 못 보고 아
무리 못 들었어도 해도 너무 했네. 진짜. 안 되겠다.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지금 세계가 바뀌었
다. 섭리세계가 바뀌었다. 인격이 안 됐네. 더 외쳐야 합니다. 가슴속에 그런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역시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와서 살면 사망권의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고로 몸
부림쳐서 여러분의 육신을 갖고 여러분의 몸을 만드시고, 두뇌를 만드시고, 여러분의 영을 만드셔야 되
겠습니다. 믿습니까. 말씀 서서히 마무리 해볼까요? 생각의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생각이 낮으면 도시
의 길처럼 도시의 길이 여러 개예요. 늦습니다. 누가 서울에서 월명동에 오는데요. 국도 타고 오면요. 늦
습니다. 고속도로 타고 오면 세시간이면 옵니다. 생각의 차원이 높으면 고속도로같이 한 길로 쭉 뻗어갑
니다.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도시속의 길처럼 여러 가지 길로 뻗어갑니다. 나무 보세요. 가지가 높아질
수록 나무가 높아질수록 가지의 수는 적어지고 맨 위는 굳은 가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하나로 좁혀집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생각이 높아질수록 한 가지를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생각이 낮으니 좋은 것을 택하지 못 합니다. 생각이 높으면 좋은 것을 택하게 됩
니다. 택한 대로 댓가를 받게 됩니다. “아니. 뭐 이것도 조금 하고 저것도 조금 하지.” 1억을 주고 나무
두그루를 사는 것보다 1억을 주고 나무 한 그루를 사는 것이 제대로 값이 있습니다. 맞습니까? 생각의
차원이 높은 자는 천국의 신부성도 보게 될 것입니다.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이것 저것 할 일이 많습니
다. 생각의 차원이 높으면 여러 가지가 생각나지 않고 한 가지 길이 딱 보입니다. 내가 갈 길이다. 하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다 잘라냅니다. 불평불만을 다 잘라냅니다. “뭐야? 이거 하나 이루기 위해서 이렇
게 가는데 괜찮아. 고생되도 생명길 간다. 나는 생명길 가서 누릴란다.”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많으면 의견이 많습니다. 생각을 높여서 보면 한 가지가 정확하게 보입니다. 생각이 낮으면 사
고 싶은 옷이 여러 가지입니다. 생각이 높아지만 옷 한 가지만 보입니다. “단상에서 입을 옷이야. 좋아.
가지가.” 생각이 낮은 상태에서 보면 진로도 여러 가지입니다. 생각이 높은 상태에서 보면 진로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 길을 가는데 있어서 아낌없이 투자하고 아낌없이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드러내면서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성자바위, 각 방향마다 형상이 있습니다. 여러분, 3개라고 했잖아요. 8개입니다. 희미
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각 방향마다 정확하게 한 가지씩 형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음 주 수요일
에 하라고 했는데요. 선생님께서 주일말씀으로 보내주시는 바람에 주일말씀에 더 자세하게 전해 드리도
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생각의 차원을 높이려니까 이 말씀을 한 번에 다 하려니까요. 참 많은 말씀을 했습니다. 생각
의 차원을 높이려면 말씀을 들으시고, 성자와 하나되시기 바라겠습니다. 기도를 깊이 하시기를 바라겠습
니다. 가장 중요한 것, 내 생각을 버리고, 성자의 생각 하늘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여러분의 생각의 차원
이 높아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으신 게 있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다. 정말 어떻게 해야되겠다.” 순간 감동받은 것이 있습니까? 감동받았을 때 기도해야
됩니다. 감동받았을 때 더 결심해야 됩니다. 그리고 나가서 행해야 됩니다. 감동이 식으면 하고 싶은 마
음이 없어집니다. 감동이 계속 되는 게 아니예요. 오늘 들은 말씀에서 “그래. 내가 이와 같이 살아야지.”
이렇게 감동이 들었을 때 아예 굳게 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내일 또 다시 생각이 돌아가 버려요.
기도할 겁니다. 어떻게 기도하느냐. 주님. 세상에 있었던 모든 굳었던 생각, 오늘 들었던 주님의 말씀,
섭리사에서 들었던 모든 말씀이 내 머리에 굳어지게 해달라고, 그래서 다른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이
생각의 축복을 받고 차원높은 생각을 가지고 분별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이 지혜를 받고 이
역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물이 뜨거울 때 차고 끓여먹고, 면도 끓여먹고, 목욕도 하듯이 마음이 감동되
었을 때 아예 굳히는 것입니다. 찰흙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 맞습니다. 믿습니다. 내 마음이 찬물되
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왜요? 끓였을 때 음식해 먹고 끝나야 하잖아요. 오늘 음식해먹고 끝나야 되
요. 아예 여러분의 생각과 사상으로 딱 만들어서 내일부터는 흔들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답은
하나, 주님 내가 왜 이러나. 답은 하나인데. 머리는 답은 하나인데 행실은 답이 하나가 아닙니다. 주님.
내가 이거 고쳐야 되겠어요. 이거. 내일부터 당장 실천하면서 실천도 답이 하나가 되게 만들겠습니다.
해야 되겠습니다.
기억이 생명이다. 생각이 생명이다. 감동이 생명입니다. 이 생명과 같은 불같은 역사 오늘 마지막 기도
함으로 여러분 꼭 이루어 내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생각을 높이면 하나로 보인다. 그 동안 우리가 행하
면서 살았지만 더 많이 행하지 못한 것, 더 많이 행하지 못해서 차원을 높이지 못하여 그것만 보고 있
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자 주님이 보실 때 다 그러합니다. 저 역시 말씀을 외치는 저 역시 마찬가
지입니다. 더 답이 아주 클리어하게, 아주 확실하게, 아주 한 가지만 딱 보일 때까지 그것이 내 행위가
완전히 따라가서 역사를 이룰 때까지 완전히 만들어야 됩니다. 얼만큼? “오늘 내가 결심했는데 내일 내
가 차원이 낮았구나.” 하면서 느낄 만큼 그 정도 만큼 된다면 이 시대의 축복 주님이 주시는 축복은 다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13년 이 때가 가도록 마지막으로 성자께서 주시는 성령을 뜨겁게 간구함으로 진정으로 구하기를 진
실로 원합니다. 성령의 뜨거운 불길이 임하기를 원하며 이 시간 나는 외치는 자일 뿐이고, 성령께서 삼
위일체의 성령께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능치 못함이 없을 만한 능력을 주시며 성령을 주시리라 믿
습니다. 이 성령과 능력을 받는다면 못할 것이 어디 있겠사옵나이까. 주님.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주 앞
에 간구하며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인정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행위와 생각의 차원을 완전하게
더 높이 끌어올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구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뜨거운 불길, 오늘 5분
드릴 겁니다. 다른 말 다 빼구요. 오늘 정말 주께 해야 될 말, 정말 이것만은 내가 해야 되겠다 하는 이
말을 주께 외치며 정말 간구하며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뜨거운 불길이 내게 내려와 새롭게 변화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임하소서 성령이여’ 찬양
마침기도)
말씀은 하나님이며, 성령님이시며, 성자이십니다. 이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을 말씀, 하나
님이 영원히 존재하시며, 성령님 성자가 영원히 존재하시는 것처럼 그 입에서 선포된 말씀, 그 입에서
사명자를 통해서 선포된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말씀입니다. 주여. 간절히 원하오니 이 말씀이 우
리의 뇌속에 깊숙이 박히게 하여 주시옵시며, 이 말씀을 받아준 자가 마음에 충격적으로 깨달아 전하는
만큼의 우리도 그 말씀도 그 말씀을 들었으면 우리의 행실도 완전하게 뒤바뀌는 인생되게 하여 주시옵
소서. 주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역사, 우리의 집과도 같고 우리의 태 안과도 같고, 이 역사가 잘 되어야
바로 내가 우리 가정이 잘되지 않겠사옵나이까. 우리가 너무나 내 자신이 너무 사랑하는 섭리의 역사,
성자, 그의 권위와 위신을 어떻게 높이겠사옵나이까.
세상이 알지 못하여 그 권위와 위신이 땅까지 떨어졌사오니 이제는 높일 것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주
님. 더 높였다면 더 높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영광과 이 시대의 보낸 자가 행한 것은 이 정도로
행하여서는 빛이 날 수가 없사옵나이다. 그만큼 차곡차곡 쌓아 56년간 성자와 함께 하나님과 함께 이루
어 놓은 역사이오니 그 가치만큼 빛을 발하게 하여 주시어서 우리가 그 흐름이 더욱 더 차원을 높이여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가 사랑하는 이 역사의 권위와 위신의 권위를 높이 세워야 되지 않겠사옵나이까.
아직까지도 개인의 문제에 허덕이는 자, 제발이나 정신차리게 하여 주시옵시며 이미 차원을 높이며 인
정하며 깨닫는 차원까지 왔지만 자만하여 차원을 높이지 못하는 자들 제발이나 정신차리게 하여 주시옵
소서.
모든 자들, 그러나 생활에 안주하며 나는 여기까지 만족한다고 하는 자들도 제발이나 정신차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생되어 생명길 왔사오니 이 정도만 해서는 억울해서 안됩니다. 더 차원을 높여 하나님,
성자,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축복을 받아야만 선생님께서도 억울하지 않으며 이 길을 걸어온 우리도 더
욱 더 기쁨과 보람을 얻으며 살아나갈 수 있지 않겠사옵나이까. 생각의 차원을 높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각의 축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머릿속에 있는 지저분한 생각들이 정리되게 하여 주시
옵시며,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생각들이 정리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로는 다시는 그런 생각이 없도
록 머릿속에 모든 생각들을 불태워 주시며 이 머릿속에 성자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이 충만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역사를 더욱 더 증거하며 자부심있게 나타내기 위해서는 외쳐야 합니다. 모르는 자들 가르쳐
줘야 합니다. 모르는 자들, 모르고 핍박하고 악평하는 것이니 가르쳐 줘야 합니다. 알려줘야 합니다. 주
님. 알려주었을 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또 불을 받고 외쳐야 합니다. 알려주었을 때 그들이 받아들인다
면 더 불을 받고 더 외쳐야만 합니다. 주님. 우리 가운데 외쳐주심에 진실로 감사드리고 이제는 때가 왔
사오니 하는 만큼 하는 대로 잘 된다 하셨사옵나이다. 이 축복을 받는 주인공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
소서. 주님. 그냥은 못 합니다. 그냥은 안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습
니다. 하나님의 능력, 성령님의 능력, 성자의 큰 능력이 오지 않으면 행할 수가 없사오니 하나님이 주시
는 능력과 사랑과 권능이 충만하게 채워지게 하여 주시옵시며 불같은 역사가 날마다 삶 가운데 일어나
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의 역사 불이 되어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이 물을 뿌리면 꺼지는 불이 아니라 더 활활 불을 내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이 행하
여 이 시대 최고의 축복이 무엇인지 알고 한가지를 택하게 하여 주시옵시며, 갈팡질팡하는 모든 마음들
이 정리되는 축복의 날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께 감사함으로 영광돌립니다. 주님. 진정 바라옵고 원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큰 희망이 많이 있습니다. 섭리역사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한 역사 아
니겠습니까. 이제 독립한지 1년도 안 되었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
요. 시대의 보낸 자가 살아있고, 그와 같이 뛸 길이 남아있고, 아직까지 우리에게 휴거의 기회가 남아있
고 정말 좋은 때를 만났습니다. 주님. 이 역사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야 합니다.
성자의 육이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가 외쳐야만 합니다. 글로 외치며 그냥 마음으로 혼으로 보내어 외치
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그 입술을 열어 성자를 가장 완벽하며 확실하게 외치는 때가 속히 와야 합
니다. 주님. 저희 한 사람, 한 사람, 현실의 역사를 진정 깨닫고 진정 우리의 소망과 꿈이 무엇인지를 알
고 수많은 군중을 모아 이 시대의 역사가 맞고, 내가 택한 길이 맞다는 것을 우리의 옳은 행실로 당당
하게 보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청중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고 오직 성자께서 보낸 자만이 감당
할 수 있사오니 우리가 그와 같은 역사를 이룰 수 있기에 이와 같은 뜨거운 성령을 계속 주시는 줄 믿
사오니 주님 이미 와서 역사하오시니 간구한 모든 자들에게 뜨거운 능력과 성령을 불같이 채워 주시옵
소서.
하늘의 귀한 신부가 된 자들, 하늘을 위해서 산 모든 자들, 이들의 육신이 아프면 안되지 않습니까. 이
들의 육신의 병이 깨끗하게 나아지게 하여 주시옵시며 정신의 병, 영혼의 병이 나아져 건강한 육, 혼,
영을 가지고 이 시대를 담대하게 뛰고 달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섭리인생을 멋있게 살아가
는 이들에게 이만큼만 살아가면 안된다는 생각의 축복을 더하시사 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상
의 것을 얻은 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행실의 축복을 더하여 주시어서 행한만큼 주시옵소서. 그
러므로 빛을 발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께 감사함으로 영광돌립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자 주님
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오늘은 선생님께서 17분 동안 외쳐주시면서 100개 가까운 잠언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심정을 나타내
주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다음에는 일찍 끝나는 날이 오겠지요. 일찍 자야 하니
까 10시 안에 끝나는 날을 계속 해서 만들어 보겠습니다. 자, 오늘 생각의 차원을 높여서 하나의 길로
정확하게 가는 여러분들, 정말 잘 하셨고, 앞으로도 정말 잘 했다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칭찬할 수 있는
아주 값진 인생사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성삼위께 그리고 시대의 보낸 자의 놀라운 조건 앞에 감사
드리며 박수 한 번 드리겠습니다. 뜨겁게 한 번 올리겠습니다. 자, 그리고 오늘 월명동에 계신 분들 그
리고 성지사역하신 분들 그리고 금산지역 모였는데요. 금산지역과 월명동에 계신 분들을 위해서도 전
세계가 다 같이 박수 한 번 보내 드릴께요. 자, 우리 각자 자신을 위해서도 큰 박수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늦은 시간 조심히 돌아가시구요. 그냥 돌아가시면 아쉬우니까요. 찬양 한 곡 불러 드릴테니까요. 돌아
가실 분들은 속히 돌아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길 조심 하시구요. 남자조심, 여자조심, 차조
심, 자전거 조심 다 조심하셔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정말 주님의 귀한 몸입니다. 마지막 찬양, 섭리소
식 기뻐서 날마다 웃는 역사 말씀 속에 하소연이 사라지는 역사, 진짜 우리의 하소연이 말씀속에 다 풀
려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이루길 원하며 오늘 참여하신 여러분들 진정 성삼위의 이름으로 감
사드리고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나게 박수치겠습니다.
‘섭리소식’ 찬양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