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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3.10.25 (금)

금요 명설교

선포일
2013.10.25 (금)
성경 본문
요한복음 4장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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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선생님 명설교/ 2006.11.12 오직 전도다 <요한복음 4장 22-26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 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 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 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 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 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다시 여러분이 기다리는 거룩한 날, 안식일, 주일이 돌아왔습니 다. 여러분은 기다렸는지, 그렇지 않으면 도둑같이 맞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일은 언제부터 준비하지요? 일요일 예배드리고 월요일부터 준비하는 것 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정신을 쏟고 사는 것입니다. 벌써 주일말씀이 끝나 면 그 말씀을 들으면서 다음 주일말씀이 시작됩니다. 자, 그러면 오늘 순서에 의해서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이 주의 말씀은 과 연 어디일까, 무슨 말씀을 하실까 여러분들이 기다렸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말씀 속에서 모든 세계가 움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선 포하시고 그 말씀 안에서 움직이십니다. 이는 마치 처음 가는 길을 캄캄한 밤에 갈 때 헤드라이트를 켜고 비추는 대로 차가 움직이는 것과 같이, 말씀의 조명을 비추는 대로 역사가 흘러간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일 말씀을 잘 보고 깨달아야 개인도 거기로 향해 가고, 섭리 사도 그쪽 방향을 향해서 가고, 온 민족도 그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 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말씀은 요한복음 4장의 핵심지만 봉독하겠습니다. 4장 22절 이하로 죽 봉독해가다가 26절까지 봉독하겠습니다. 원래는 4장 1절부터 봉독해야 됩니다. 그러면 너무 길어서 핵심지만 봉독 하고 나머지는 이야기로 하면서 말씀하겠습니다. 그러면 봉독하겠습니다. 4장 22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 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 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 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 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 되 지금 네게 말하는 내가 네가 말하는 그로라 하시니라” 26절까지 봉독했습니다. 그러면 이어서 지휘하러 나오겠습니다. 오늘 찬양 은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주님이 인도하시네.” 434장, 지휘하겠습니다. 모 두 일어나 주시고 악단들 준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처음 오신 분들은 노래를 모르니까 분위기도 보시면서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휘하러 나오겠으니 여러분은 기다리고 준비하시기 바랍 니다. ♪ 찬송가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1.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주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2.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주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3.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주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주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주님 인도하셨네 아~멘 이제 모두 편히 앉았지요? 지금부터 하늘의 말씀을 천천히 전할 테니까 듣 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꼭 귀담아 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귀담아 듣느냐, 얼마나 귀중하게 듣느냐, 얼마나 귀중하게 전하느냐, 또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실천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에게 소원을 성취시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소원을 아십니다. 사람들이 자기 소원 들을 또 말하고 다니고 그것을 자기가 소원에 놓고 수고하니까 압니다. 선생님도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지 않습니까. 말도 하고, 편지도 하 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뛰니까 그 소원이 무엇인지는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의 소원을 아시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보 면 자기 말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듣느냐, 또 얼 마나 귀하게 여기느냐, 그리고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따라 복을 주시고 축복 해서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 ‘실천’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느냐,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해서 사람들에게 전해 주느냐, 하나님을 좋아하게 따르게 많이 해 주면 좋아합니다. 선생님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전하는 복 음을 전해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따라오게 해 줄 때 그 전도자들, 전도 많이 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전도를 많이 한 사람들이 ‘나는 전도했는데, 전도한 사람은 개밥에 도토리 고 따르는 사람은 선생님도 자주 보고 편지도 자주 받고 그러는가 본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같이 복을 누리고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전도한 사람과 같이 길러 주고, 키워 주고, 알아주고, 똑같이 천국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이미 씨를 뿌리는 자와 씨를 덮는 자, 가꾸는 자, 추수하는 자, 먹는 자가 다 기쁨을 누립니다. 씨 뿌리는 사람만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 사람만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를 잡는 자가 있고, 고기를 먹는 자가 있습니다. 잡을 때 의 그 기쁨, 먹을 때의 기쁨이 다 각각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처음 오신 여러분들, 각 교회에서 한 명 오고 두 명 오고 그럴지라도 세계의 온 지구촌에 있는 사람들을 다 하면 한 명 두 명만 와도 한 주일에 천 명씩 옵니다. 한 주일에 한 명도 못 데리고 오고 끝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 들은 교역자가 문제, 교인들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일 주일 동안 한 명 도 못 데리고 옵니까? 나는 그전에 하루에 80명, 100명, 800명을 하나님께 데려다 붙였습니다. 여러분도 해 봐야 압니다. 내가 그때 사명을 알았을 때입니까. 시골에서 일 하고 그냥 꾀죄죄하고 얼굴도 시커멓게 하고서 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생겼으니까 나는 전도가 안 돼. 옷도 멋있게 입 고 멋있게 얼굴도 가꾸고 그러고 가야 하는데.’ 합니다. 나는 그전에 얼굴이 시커멓고 했어도 사명에 불타서 진지한 말씀을 또박또 박 해 주니까 ‘아, 저 사람 저렇게 생겼어도 큰 사람이다.’ 했습니다. 말씀하 는 소리를 듣고 신령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처음 온 여러분들 반갑고, 하나님이 보내서 왔으니까 반가이 거뜬하 게 내가 주인공으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우리 전체가 같이 맞이합니다. 반갑고 좋으니까 우리가 악수로부터 시작해서 반가움을 표하는 일을 하겠 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겠습니다. 손 내밀었습니까? 악수!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악수하고 말씀 듣고 여러 분 반갑고 너무 고맙고 너무 잘 왔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받고,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나쁘다고 하는데 나쁘다고 했는데도 찾아왔으니 얼마나 인격이 훌륭합니까. 따지려고 찾아왔 는지, 나쁜 놈들이 어떻게 생겼나 얼굴 좀 보러 왔는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모두 그러고 왔겠지요? 여러 가지로 왔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나쁘다고 했는데도 왔으니 아무튼 너 무 반갑고 너무 기쁘고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는 우리 복음의 선구자들이 가서 우리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 고 해서 그 말을 믿고 찾아왔으니, 얼마나 인격입니까. 아주 훌륭한 인격들 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 줘서 주일날 온 것입 니다. 저는 이미 여러분이 아는 대로 말씀을 전하며 온 지구상의 50개국 나라로 지금 말씀을 전합니다. 50개국 나라의 사람들을 한 자리로 모을 수 없으니까 천상 이렇게 방송을 하는 것입니다. 한 곳에 서서 여러분 온 지구상에 있는 50개국 나라가 다 한 자리에 앉아 있다 하면서 말씀을 천천히 초근초근 각 나라 언어, 풍속을 한국말로 표현하면서 말씀합니다. 한정된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도 하지만, 또 빠르게도 할 것입니 다. 오늘 처음 교회를 온 사람도 있고, 조금 말씀을 듣다가 온 사람도 있고, 가 지가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다 균형을 맞추어서 내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할 것입니다. 아까부터 이 귀한 말씀을 잘 들으라고 전초했지요? 세계 각 나라 지도자들이 내 말을 듣기 전에 전초를 강하게 몇 분 동안 해 줘야 됩니다. “귀한 말씀을 전하는 그분이 나타난다. 들어라. 일반 사람이 아니다.” 하고 귀한 자를 맞으려면 준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미리 마음 문을 열어 놓게 하도록 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잘 들어보십시오. 아까 이야기했지요?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듣 느냐,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 얼마나 귀를 기울이느냐, 얼마나 실천하느냐 에 따라서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말씀 들을 때의 그 자세를 보고 하나님께서 병도 고쳐 주시고 낫게 하시 고, 그리고 행동보고 해 주시고 다 합니다. 여러분이 전화를 걸 때 정확한 번호를 눌러야 상대에서 따르릉 하면 “여보 세요?” 소리가 나옵니다. 정확한 번호를 안 누르면 10년 눌러도 소리가 안 나오고, 100년 눌러도 소리가 안 나옵니다. 다른 사람은 나올 것입니다. 여 러분이 번호를 잘못 누르면 다른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까? “여보세요.... 아 닙니다.” 그러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정확한 진리를 전해야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응답하시고 여러분 에게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정확한 자세를 또 가져야 됩니다. 전하는 사람도 정확하고, 받는 사람도 정확해야 됩니다. 이것을 하늘은 비 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데, 총을 쏘는 사 람, 화살을 쏘는 사람이 정확하게 쏘는데 그 과녁이 뒤로 돌아 있으면, 반대 로 가 있으면 맞을 수가 없습니다. 그 과녁에 안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 쪽 다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하는 사람도 정확하게, 듣는 사람도 정확 하게. 오늘 이 시간 불과 30-40분 말씀을 들으니까 그 때만큼은 숨도 크게 쉬지 말고 들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올 때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른들 앞에 자세가 필요하듯이. 사람들이 흔히 내 앞에 올 때는 자세가 확 돌아가는데, 하늘 앞에 갈 때는 자세가 안 돌아갑니다. 보이는 것만 중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간다 하면 벌써 하나님 앞에 자세가 달라야 됩니다. 그것도 다 봅니다. 어른들 앞에 나타날 때 자세가 빗나가 있으면 “자세 교정 좀 해주고 할 까?” 합니다. 태권도를 처음 배울 때도 자세, 무술도 자세, 그리고 운동도 자세가 있습니 다. 테니스를 칠 때나 배구할 때, 축구할 때는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을 기본 자세라고 합니다. 군인이 군대에 들어가서 훈련받을 때 그 자세를 고치는 데 그것도 꽤 오래 갑니다. 40일 동안 훈련 받을 때 그때 자세를 고칩니다. 정신의 자세, 행동 의 자세를 다 고칩니다. 그리고 3년 동안 근무하면서 모든 전술을 써먹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의 자세, 마음의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오늘 말씀으로 들어갈 테니까 잘 들어요. 여러분을, 이 말씀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머리가 180이상이 되면 안 적어도 잘 외웁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적어야 됩니다. 잊어버립니다. 하도 고상한 말과 깊은 신령한 말씀이 이 시간 나갑니다. 오늘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만큼 적어 왔습니다. 너무 많아서 나도 못 외웠습니다. 기대하면서 말씀을 들어요.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이 ‘전도’하러 간 내용입니다. 오늘은 “오직 전도”입니다. “오직 전도하라.” 다섯 자로 하면 “오직 전도다!” 예수님도 오직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일생 가운데 있으면서 무엇을 했 는가 하면, 전도했습니다. 데려다 놓고 말씀 전하고, 데려다 놓고 말씀 전하 고, 그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갔을 때는 전도를 못하니까 그들을 위 해 기도해 줬습니다. 모르고 하는 짓이니까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전도하러 가셨는데, 사마리아 땅에 가셨습니다. 사마리아 땅이 어 디인가 하면, 택한 이스라엘 민족을 벗어나서 사마리아 땅으로 가셨다는 것 입니다. 거기는 보다 하나님을 안 믿는 세계입니다. 이스라엘 주관권을 벗어나서 이방세계, 보다 안 믿는 세계로 제자들과 가셨습니다. 우물가에 있는데, 조금 떨어진 동네에서 어떤 아가씨가 물을 길으러 나왔 습니다. 그 여자가 물을 퍼고 있을 때, 예수님이 물 좀 달라고 했습니다. 여 자가 물을 퍼서 주었습니다. 물을 퍼서 줄 때에 ‘왜 나한테 물을 달라고 하나? 본인이 퍼 먹지.’ 생각했 습니다. 그런 것은 성경에 안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저분이 저렇게 멋있는 남자는 이스라엘 사람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같은 취급, 돼지 같은 취급을 하는데 왜 더러운 취급을 하는 사람에게 물을 달라 고 할까?’ 했습니다. 뻔한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물을 달라고 하니까 퍼서 주어서 예수님이 꿀꺽 먹고서 “물맛 맛있다.” 하셨습니다. “정말 물 더럽네. 냄새나네.” 그런 말씀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흐름의 말씀으로 보면 “맛 맛있 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를 단 것을 성경에는 안 썼 습니다. 여자가 볼 때 물을 꿀꺽꿀꺽 먹는 모습을 보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이스라 엘 사람들이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놀랄 일이었습니다. 충격적인 일이 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개 취급하고 동물 취급하고 돼지 취급을 했습니다. 짐승들같이 먹고 마시고 죽 는다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하고는 상 종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니까 분명히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이 누군지는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에게 물 좀 달라고 하니까 놀랐습니다. 물을 주면서 여자가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나?’ 생각했을 것 아닙 니까. 그러다가 표현했습니다. “당신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내가 아는데, 보니까 진짜 이스라엘 사람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사람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여인이여, 내가 누군 줄 알았으면 그렇게 말 안 했으리라.” 했습니다. 멋 있지요? 여러분도 전도할 때 멋있게 좀 해보십시오. “너, 교회 다녀? 안 다녀?” “왜 그러냐?” “나 전도하러 왔는데 전도하려고 하는데...” “교회 내놓지 마라. 오늘.” “왜 그러냐? 말 좀 해 봐라.” “바쁘다.” 여러분은 그런 식으로 하지 않습니까? 구상을 멋있게 해야 됩니다. 전도 하나가 되어오면 멋있게 구상을 해야 됩 니다. 멋있는 구상이 없으면 하나님께 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구상은 하나 님! 전도의 구상!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도하는 것하 고 막바지에 전도하는 것하고 다릅니다. 멋있게 구상해서 전도하자는 것입니 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아, 누구길래? 누군줄 몰랐구나, 내가. 저 사람 은 인격적인 사람이겠지.’ 생각했습니다. 물을 먹고서 예수님께서 “어, 물 시원하다.” 하고서 그 후에 진짜 한 말을 썼는데 “내가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아니, 이 물도 먹고도 목마르는데, 이 물을 보통 사람 이 파놓은 물이 아니고 야곱이 판 우물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야곱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나라 사람 중에서 참 유명 했는데 야곱이 양치면서 파놓은 우물이었습니다. 그 물을 그때까지 보관하면 서 쓰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을 믿고 인정한 야곱이라는 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야곱을 추종하고 굉장했습니다. 야곱이 파놓은 우물을 동네 사람들이 먹고 아주 권위 있게 좋아하고 야곱 을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사람 야곱이 판 물을 먹고 사는데도 우리가 목마르 고 금방금방 갈증 나고 금방금방 목이 타는데 아니, 저분이 누구길래 자기가 주는 물이 있는데 그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나?’ 하고 사 마리아 여인이 궁금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두 고 ‘웃기는 사람.’ 그렇게 하지 않았고, 궁금하니까 “그 물 좀 달라”고 했습 니다. 그렇게 멋있게 전도를 해야 됩니다. 서로 대화를 할 수밖에 없게! 그 여자는 실제 물로 생각하고 그 물 좀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식한 여자.” 그렇게 안 하고 알아듣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물을 줄 테니까 남편을 데리고 오라. 같이 먹이자. 사랑하는 한 몸 된 남편을 데리고 와라. 같이 물을 줄게.” 우리들은 전도할 때 대개 “너 남자 있어?” 혹은 “여자 있어?” 이렇게 묻지 요? 그러니까 ‘왜 그걸 물어보지? 왜 남의 사생활을 물어보지?’ 그럴 것이 아니겠습니까. 10대도 그렇고 20대도 그럴 것입니다. ‘이상하네.’ 합니다. 조 금만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너, 남자 있어?” 이렇게 안 하고 “내가 이 귀한 물을 줄 테니까 사랑하는 남자도 데리고 오라. 같이 먹자.” 하니까 “남자 없다”고 했습니다. 그 여자의 마음에 있는 답이 나온 것입니다. 인격 안 건드리고 마음 안 상하 게 하면서 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조금 있다가 “사실상은 내가 남자가 있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같이 물을 먹고 같이 사랑할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솔직한 것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인이여, 맞다. 네가 남자가 없다는 말도 맞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 는 말도 맞다. 네가 남자가 다섯이 있는 것을 내가 안다.” “어떻게 나를 그렇게 아시나이까?” 여인이 몇 명이라는 소리를 안 했습니다. 여자가 자기 남자가 몇 명이라는 소리를 하겠습니까. 안 하는 것입니다. “여인이여,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는데 지금은 네 남편이 아니지? 사랑치 않지?” “그러합니다.” 그때 여자가 놀란 것입니다. 어찌 자기 인생을 아냐는 것입니다. 그 깊은 것을. 그러면서 너무 놀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자기에 대한 것도 모릅니다. 우리가 모를 때가 많지 않습니까. 자기 병이 있는 몰라서 큰 병드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자기의 상황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분은 자기의 상황을 아니까 놀란 것입니다.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선지자가 아니십니까?” 선지자로 봤을 정도면 최고로 본 것입니다. 종교인에서 최고가 선지자였습 니다. “내가 보니까 선견자가 아니옵니까? 종교의 큰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것 입니다. 선지자는 사실상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지 고 있는 타이틀은 메시아였지요. 선지자는 그 밑입니다. 아주 밑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예수님을 바로 알고 모시고 따르 는 사람들은 사도입니다. 메시아를 알고 따르면 사도이고, 그 밑에가 선지자 입니다. 선지자는 “앞으로 메시아가 온다. 회개하라. 너희들 죄 지었다. 회개 하라.” 이것이 바로 선지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들은 예수님은 본 것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고 전해 줍니다. 생생하고 싱싱합니다. 그들을 사도들이라고 합니다. 여자도 그냥 봐서는 보통사람 같은데 대단하지요? 그 여자가 아무리 모르 고 무식해도, 예수님이 질문을 멋있게 하니까 지혜롭게 자꾸 말씀이 나오고 속이야기도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람들이 시대를 모른다고 해서 ‘무식해서 대화도 못 하겠네.’ 하 지 말고 멋있는 이야기를 해 주고 질문을 해야 멋있는 답도 나오는 것입니 다.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다고 하지요? 예수님은 분위기를 잘 조성하면서 말씀 했습니다. 훌륭하지요? 아주 신령하지요? 예수님은 신령하십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신령한 분위기를 내고 신령하게 해야 됩니다. 그리고 인 격적으로 해야 됩니다. “이제까지 나이 50살 먹을 때까지 교회도 안 다녔습니까? 눈 감고 살았습 니까?” 막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래. 내가 눈 감고 살았다. 내가 모른다. 한번 가르쳐 줘 봐라.” 그럽니다. “지금 복음을 듣는 것도 제가 볼 때,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는 오늘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맞춰 줘야 됩니다. “저도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믿은 것이 아니고 청년 때 믿게 되고 대학교 때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늦었지요. 더 일찍부터 믿는 사람도 있었는 데...”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전도할 때 급하게 막 하지 말고 분위기를 조성해 가야 됩니다. 토끼 잡으러 가서 하나라도 제대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이놈 잡고 저놈 잡 고 막 급하게 하면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설교할 때도 급하다고 막 해 대면 안 됩니다. 천천히 분위기 잡으면서 해 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것인데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잘 알아듣지요? 그리고 여자가 물었습니다. “우리 이방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길 때 산에 가서 제물을 갖다놓고 절을 하면서 하나님을 찾고 섬기는데 그것이 맞습니까? 당신의 나라 이스라엘 사 람들은 성전에서, 그 궁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 서 그렇게 하는데 어떤 것이 더 맞습니까?” 그때 당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방 사람들과 같이 제물을 갖다놓고 예배하고 하나님께 드렸었습니다. 그러면서 찬양하고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산에서 하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전에서 했습니다. “그것이 맞습니까, 이것이 맞습니까? 어떤 것이 맞습니까? 어떤 것이 더 큽니까? 어떤 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십니까?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라면...” 이를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산으로도 말고 궁전으로도 말아라. 두 개 다 하지 말아라. 오직 아버지께 예배를 할 자는,” 지금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양을 잡아서 드리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런 식으로 예배를 드렸 습니다. 그리고 이방에 있는 여러분은 일요일 날 산에 무엇을 지내러 가고 정성 드리러 가고 그러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은 지금 궁으로 왔습니다. 하나 님의 전으로 들어와서 말씀을 듣습니다. 이것이 예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말은 축소시키면 ‘예배’(禮拜)의 배는 절 배(拜)입니 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 예도를 드리고 예법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인사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정말로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 로 예배한다. 그 때가 올 것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올 것이다. 바로 지금이다.” 바로 지금이라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참으로 지금과 같이 예배할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 이 때라.”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신령과 진정을 알았습니다. 여자는 아직 몰랐습니다. 지금 이야 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 예수님 자체가 신령과 진정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신령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요 구세주니 신령하지 않습니까? 하늘의 세계를 더 알고 깨닫고, 그리고 진정 참된 진리를 예수님은 갖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참된 진리를 몰랐습니다. 비유를 들어서 말 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구름 타고 메시아가 온다고 하니까 구 름 타고 오는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였고, 불 심판 한다고 하니까 이런 불로 심판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한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고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뜻대로 살며 예배하는 자가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 입니다. 그들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누구를 찾는가 하면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습니다. 주일날 예배하는 자들은 참으로 예배드려야 됩니다. 준비하고 예비하고 와 야 됩니다. 주일날 예비 안 하고 와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 됐으니까 막 가서 예배에 앉아 있다가 말씀 듣고 나오는 사람들은 참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이 못 됩니다. 참으로 예배드려야 됩니다. 참으로 정말로 정성스럽게 해야 됩니다. 말씀은 내가 하나님께서 준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니까 ‘참으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내 자체가 신령해서 이 말씀을 받으니까 ‘신령한 말씀’을 전해 줍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배하는 자들은 그렇게 참으로 준비하고 예비하고 예배 를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이 말씀을 믿고 따르고 “아멘. 아멘.” 하고 일체된 사람들은 같이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말씀을 듣기 전에 준비하고 예비하고, 참으로 귀담 아 듣고 “정말로 하나님, 옳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야 참으로 예배하 는 자들이 되고 하고, 주일날 오기 전에 씻고 닦고 옷도 빨고 하면서 준비해 야 됩니다. 그리고 주일 날 헐레벌떡 다른 일을 하다가 빠져서 오지 말고, ‘생활이 궁 핍하니까 할 수 없네요.’ 하지 말아야 됩니다. 누구는 가난해보지 않았습니까? 6.25가 바로 끝났을 때였습니다. 얼마나 배고팠는지 모릅니다. 그때 당시 여동생 영자, 그 밑에 규석이가 있었습니다. 큰형, 작은형, 나, 영자, 규석이까지 해당됩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물장사하러 갔을 때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한마디로 말해 서 서로 잡아먹기 직전이었습니다. 북한에서 배고파서 서로 잡아먹는다는 말 을 나는 믿습니다. 왜? 그런 단계까지 겪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배고프 면 정신이 뒤집어집니다. 우리 어머니가 어디 갔다 오면 ‘혹시 안 잡아먹었 나?’ 할 정도였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너무 배고팠습니다. 용석이와 범석 이는 안 났기 때문에 그 후에 나서 조금 덜했습니다. 6.25가 나고 20년 동안을 배고프게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월남 가기 전 까지도 그렇게 내가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월남 갔다 와서 조금씩 나아졌 습니다. 극적인 것은 6.25가 나고 그 몇 년 동안은 아주 극적인 고통을 받았 습니다. 나도 배고파 봤습니다. 굶주려 보기도 했습니다. 다 커서 28살이 되 었을 때도, 먹을 것이 없어서 70일씩 굶고 그랬습니다. 왜? 종교만 전념하고 여기에만 빠졌으니까. 잘 들립니까? 그래서 여러분들도 주일날 바쁘다고만 하고 자꾸 시간을 쓰 면 안 됩니다. 모든 주일날은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거기에 대한 축복 을 꼭 해줍니다. 얼렁뚱땅하고 교회 오는 사람들은 얼렁뚱땅 해서 거기만 챙겨 주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한 마디 걸고 두 번 반복해서 설교 안 합니다. 이 설 교는 지나가고 끝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떠올랐을 때 말씀하지만, 주일날 반드시 예비하고 준비하고 확 실하게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니까. 내 앞에 올지라도 준비하고 예비하고 오지 않으면 그만큼밖에 안 해 줍니다. 그만큼 이상은 안 해 줍니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릇이 이 컵만 하면 이만큼밖에 기름을 못 줍니다. 더 이상 주면 넘쳐나는데 뭐 하러 줍니 까. 참기름을 주면 그릇대로밖에 안 준다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여자가 가로되 “아, 그렇구나!” 하고 가슴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오늘날 종교인들이 외식으로 예배하고 형식으로 예배하고 습관적으로 주일 예배에 가고, 그것 안 됩니다. 그렇게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말씀을 듣고, 진정한 진리 안에서 신령한 사람의 말씀을 들어야 됩 니다. ‘신령한 사람’은 ‘그 시대 보낸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선지자가 됐든지 메 시아가 됐든지 하나님이 보낸 그 자가 신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냈기 때문에 신령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여러분들 가운데 보낸 사람은 나에 대해서 아니까 신령하지 않겠습니 까. 모르면서 내가 보냈다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괜히 내 망신만 시키 는 마라 그럽니다. 여자가 말하기를, “그리스도가 오면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준다고 했는데 그리스도는 언제 옵니까?” 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탁탁 가르쳐 주니까 “그리스도가 오면 이렇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준다는데 그 그리스도는 언제 옵니까?” 했습니다. 이미 와서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을 생각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실 줄을 내가 확실히 믿는데, 그는 언제 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는 그리스도,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나도 기다리고 오실 것을 믿습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고해 주고 모든 의문을 풀어 준다는데 언 제 옵니까?” 했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여인아, 그가 나로다. 그가 바로 나로다.” 그만큼 되었으면 자기를 고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받아들이고 그런 무르익 는 세계에서는 적어도, 그쯤 되면 자기를 고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할 때 사랑이 무르익었을 때는 사랑을 주 고받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그쯤 되면 고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을 때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예배에 대해 서도 묻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왔다. 기다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아가 왔다.” 하면 그것은 마치 가시덤불에다 씨를 뿌리는 사람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 씨를 뿌리는 사람과 똑같은 것입니 다. 이치에 맞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겠지요? 나는 옛날에 전도하러 다닐 때 이런 것을 꿰고 알고서 전도하러 다녔습니 다. 그래서 전도가 많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 이분이구나. 내내 다르구나. 우물가에서 그러니까 큰소리를 치시면서 “내가 주는 물을 먹으면 목마르지 않으리라.” 바로 이런 것이 물이구나. 말 씀의 물이구나. 생명의 말씀의 물이구나.’ 느끼게 되었고 ‘아, 이분을 따라가 면 내가 사랑을 받겠구나. 다섯 명의 사랑도 만족치 않았는데 이분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겠구나.’ 하고 사랑도 의미한 것이 됩니다. 여자는 진리에 갈급한 것도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사랑에도 갈급했습니다. 다섯 명이나 자기를 사랑했는데 만족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이런 성인을, 이 런 사람을 사랑하면 좋겠구나. 그러면 나의 정신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도 풀리겠구나.’ 그런 입장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다 해석한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말씀이다. 내가 주는 물은 무엇이다.” 하는데 두 가지로 딱 쪼개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 센터로 보면 사랑을 말한 것이고, 진리 센터로 보면 진리를 말한 것 이다.” 이래서 이 본문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그와 같이 그러하다!! 모든 이 시대의 사람들이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입장입니다. 내 앞에는 사 마리아 여인 같은 입장입니다. 너무 모르고 살고, 그래서 그것을 가르쳐 주 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물가에서 만난 여자처럼 만나서 시대의 말씀을 듣고 온 사람 들입니다. 지구촌 온 세계의 50개국 나라의 이 역사에 온 사람들은 마치 우 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과 똑같다 합니다. 꼭 남편이 다섯이 있다고 하 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역시 종교를 남편으로 삼고 이 종교 집적, 저 종교 집적했는데 역시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말씀을 듣고 만족 을 느끼고 이상을 누리고 가게 되었지요? “이 시대도 그러하다.” “내가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토록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내가 주는 말씀을 먹으면 영원토록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우리 조상, 우리 기독교의 말씀을 듣고도 우리는 갈증 타는데 당신은 누 굽니까?” “말하는 자여, 내가 누군줄 알았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리라.” 이제 신령과 진정에 대해서 말씀을 또 해 들어가겠습니다. 한 숨을 쉬시고, 이제 또 시대의 말씀을 들려주겠습니다. 한숨 쉬라는 말이 아니라 숨 한 번 을 내쉬면서 휴식을 하시고 또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말씀을 들어볼까요? 이 시대의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전초 를 합니다. 한 마디로 칼날같이 전초를 하겠습니다. 사람이 키의 성장기가 있는데 성장기 때 치즈를 먹든지 밀가루 음식을 많 이 먹든지 충분히 잘 먹어야 됩니다. 그래야 뼈가 잘 자라고 잘 먹어서 움직 이게 됩니다. 그 기간이 지났을 때, 서른 살 때는 치즈를 많이 먹는다고 해 서 키가 많이 안 큽니다. 성장기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성장기 때 확 밀어 줘야 됩니다. 이치가 맞지요? 여러분이 키가 클 때에 치즈, 외국음식들을 먹고 밀가루 음식들을 먹고 하 면 큽니다. 알아보게 더 큽니다. 여러분, 몰랐지요?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압니다. 먹는 대로 먹습니다. 그러나 성장기가 멈췄을 때는 치즈 아니라 치 즈 할아버지, 조상까지 다 먹어도 키가 안 큽니다. 성장기가 끝나서 그렇습 니다. 두 번째, 공부도 젊었을 때 해야 된다. 물론 늙어서 하는 공부도 있습니다. 그것을 ‘인생 공부’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도 젊었을 때 믿어야 된다. 더 젊었을 때도. 이치가 맞지 요? 사람들은 하나님 믿는 것을 자기 인생 다 살아놓고 곤고할 때 믿는지 그러 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무조건 일찍부터 성공을 밀고 나가야 됩니다. 일찍부터 운동도 배우고 일 찍부터 모든 것도 해야 되고 깨쳐야 됩니다. 하나님도 일찍부터, 첫째 무엇 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됩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산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또 그 뜻대로만 살면 안 됩니다. 하나 님은 하나님 나름대로 일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하나님만 따라다녀 보십시 오. 그러면 자기 일은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한 것을 순종하고 듣고 행하고, 그리고 우리가 할 일 들은 우리가 또 가서 하고, 그렇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라 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젊었을 때 뭐하고 다 죽어갈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 님은 생활 속에 믿어야 됩니다. 별도가 아닙니다. 생활 속에 공부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가 공부하고 있습니 다. 학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하고, 장사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장사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하면서 생활 속에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치를 해도 경을 치는 정치를 안 합니다. 정말 경을 치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안타깝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은 근원자이시오, 온 세계를 통치하시며 조직적으 로나 모든 여러 가지로 볼 때 최고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큰 사람 밑에 있으면 그 머리가 돌아가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인간적인 역사를 펴지 않습니다. 정치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예술 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생활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꼭 보여서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믿습니까. 인간의 범위 안에 있는 존재자라면 별 힘아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벗어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안 봐도 할 일을 다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생활 속에 믿으면서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하는 나름대로, 사업하 는 사람은 사업하는 나름대로, 연구자는 연구자대로 모두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하고 사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 아닙니까. 그러면 나라가 잘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초리로 쳐다보시는 데 안 되겠습니까.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들이 운영하고, 주권자 들이 운영하지만 온 지구촌 전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나라인가 아닌가 여러분이 한번 해 보세요. 어떻게 해 보냐구요? “하나님,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까? 나, 어느 나라에 와 있는데 이 렇게 해 주세요.” 하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주 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서로 만난 일이 없는데도 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 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섭리가 한 50개국 나라가 되는데, 우리 섭리 안에서 나에게 무엇을 부탁해 보십시오. 그래서 그것을 통솔하면 ‘아, 이 나라는 선생님이 통솔하시 는구나.’ 알 것입니다. 내가 안 보였어도, 내가 직접 안 했어도 안 보여도 해 줍니다. 그러면 선생님 통솔권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못 하면 선생님 통솔 권의 세계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갈지라도, 무엇을 할지라도 그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기후를 통솔하십니다. “하나님,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즐거워하며 노래하며 찬양하려 고 하는데 오늘 비가 오려고 하네요. 비 맞으면 개죽이 되는데. 안 한 것만 못 합니다. 하나님.” 그래서 비가 안 온다면 하나님이 기후를 통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고 못 하면 그것을 못 하시는 하나님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백 번, 수천 번 그것을 경험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관하 시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정도면 웬만하면 알아야지 하나님이 꼭 쳐다보고 나타나고 해야만 믿겠습니까. 그렇게 믿으려면 천년이 되어도 못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안 나타나십니다. 일개 나라의 주권자도 그냥 사람들 앞에 못 나타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주권을 부리려고 안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부터도 여러분에게 안 나타나는 것은 너무 내 할 일 속에 묻혀서 일을 하기 때문에 못 나타납니다. 마치 큰 기계의 엔진이 바깥에 나올 시간이 없 습니다. 거기에서 계속 돌아가야 됩니다. 이와 같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전초를 했지요? 이제 말씀합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1. 사람은 눈에 존재하는 것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왜? 눈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는 존재해도 꿈에 불과한 세계로, 상상에 불과한 세 계로 자꾸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구 말 같습니까? 내가 만든 말 같습니까, 깨달은 말씀 같습니까, 누가 한 말을 들어온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한 말을, 예수님께서 한 말을 내가 듣고 서 써온 것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으로 확실히 믿습니다. 눈에 안 보이 면 존재하는 것으로 안 믿어집니다. 누가 옆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을 이렇게이렇게 하더라.” 하면 실감이 안 난다고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안 보이니까 존재 안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계 가 안 보이지 않습니까. 하늘나라가 안 보이니까 존재 안 하는 것으로 생각 하고 누가 계속 이야기하면 “꿈에 불과한 세계가 실제 있네. 언제 그것을 확 실히 알 수 있냐”고 합니다. “네가 죽어보면 안다.” 그러면 “나는 죽을 때까 지는 확실히 몰라.” 그런다는 것입니다. 2. 육의 눈으로 안 보이는 저 하늘나라는 영계의 나라다. 영의 나라다. 영은 그냥 봅니다. 영으로 보면 그냥 보입니다. 육으로 보면 육의 나라가 그냥 보이듯이 보입니다. 신령하여 신령한 눈으로 보고 존재함도 알고 어떻게 존재하나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 나와 정말 무슨 상관이 있나 배워 봐야 되지 않겠느냐. 자기에게 도 해당되는 것이 있는가 행해 봐야 되지 않겠느냐. 사람이 신령치 못하면 신령한 마음이라도 있도록 하라고 외치라고 했습니 다. “사람이 신령하지 못하면 ‘신령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어라. 그러면 덕을 보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신령치 못합니까? 그러면 신령한 마음이라고 가지고 있으시기 바 랍니다. 신령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령해서 하늘나라를 꿰뚫어보는 이것이 신 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으면 ‘신령한 마음’이라도 가지라고 했습 니다. 그 신령한 세계를 믿는 것이 신령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여서 못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못 받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의 계시가 있다. 신의 계시다 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 이것을 믿을 때 신 령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신령하지 못하면 ‘신령한 마음’이라도 있도록 하라고 외쳐라.” 그랬습니 다. 여러분, 외치니까 신령한 마음이라도 있어야 되겠지요? 여러분들,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습니까. 나야 이제 사귀니까 좋아하든 말든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알아야 많이 좋아합니다. 좋아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십니다. 내가 가르쳐 주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봐서 압니다. 가르쳐 줄테니까 그대로 하면 100명, 1000명, 10000명 똑같이 축복받습니다. 3. 사람이 삶의 미래가 안 보이듯, 미래의 세상이 안 보이지만, 미래도 미 래에 닥쳐서 살면 보이는 것이 아니냐. 미래의 세계에 닥쳐 살 때 그때 보일 것이 아니겠느냐. 여러분 지금이 2006년도인데 2008년도가 보입니까? 2007년도가 보입니 까? 안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믿는 것은 기본이지 않습니까. 그때 닥쳐 살 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때 일어나는 모든 정황이 보이고 상황이 보일 것이고 겪을 것입니다. 더 우면 더운 것을 겪을 것이고 추우면 추운 것을 겪을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에 안 살지라도 미래를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신령한 마음이 아니냐. 마음이 죽은 자는 못 느끼는 것이 아니냐.” “인간의 삶은 현실에 살면서 이미 겪고 온 과거를 느끼고, 아직 살지 않은 미래도 느끼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래, 안 그래?” “그러하옵니다.” 나는 말씀을 받을 때 새벽에 무릎을 꿇고서 묵시를 두려움으로 감격함으로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4. 꿈속에서 과거를 보고 느끼듯이 미래도 보고 느끼게 된다. 꿈속에서 미래를 느껴보지 않습니까? 어디를 가보면 자기가 꿈에 봤는데 현실에 처해 있지요? “그러듯이 너희들이 신령한 말로 미래를 듣고 살다 보면 미래에 닥친다.” 5. 신령한 사람은 신령한 저 세상을 보기도 하고, 알게도 되고, 느끼기도 하고 산다. 육신이 이 세상에 살면 육신의 세계를 느끼고 보고 사는 것이 아 니냐. 신령한 영이 신령한 세계에서 느끼는 것이다. 내가 아직 안 죽고 영계 에 안 갔을지라도 내 영이 가서 느끼고 와서 이야기를 한다. 확실하게 이야 기를 하고 그것을 전달할 때 느낌으로도 오고 음성으로 들린다. 내 영이 이 야기도 해 준다.” 방법이 그것입니다. 못 보는 사람만 답답합니다. TV를 연결해 놓으니까 세 계에 있는 것이 들리고 다 보이지 않습니까. 카메라로 찍으면 나오듯이 위에 서 위성통신으로 지구상 전체를 비추니까 지구가 보여 오지 않습니까? 카메 라로 비추면 여기에서 보이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영이 가서 육에게 비추 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사람은 의심도 않고 좋아하면서 그것을 파고듭 니다. 6. 초행길을 가던 자도 가는 길이 평탄하여 끝까지 막히지 않고 갈 길인가 혹은 처음에 좋다가 가다가 막힐 길인가 대개 압니다. ‘이 길은 가다가 막힐 길이다.’ 지금 도저가 막 닦고 있는 길은 반드시 가 다가 막힙니다. 그러나 아스팔트로 깔아 놓은 길은 가다가 막히는 길이 아닙 니다. 다 깔려져 있는 길입니다. 그것은 끝까지 가보면 막혔다 해도 막힌 것 이 아닙니다. 거기까지가 길인 것입니다. 차타고 초행길을 가본 사람들은 많이 겪었지요? 가다 보니까 도저 작업을 하고 있으면 그 길은 반드시 가다가 막혀 있습니다. 닦는 중에 있으니까 그 렇습니다. 어떤 길은 처음에 좋은데 가다 보면 막힌 길, 어떤 길은 처음에는 나쁜데 가다보면 갈수록 길이 되는 곳이 있습니다. “인생길도 그러하다.” 여러분, 잘 들어보십시오. 종교 지도자가 나타나서 “따르라”고 해서 가다보면 흐적부적 끝나는 종교 들이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그것이 종교지도자가 큰 죄를 짓는 것입니까. 젊은 청춘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고, 목숨을 걸어놓고 갔는데 가보면 아무 것도 아니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얼마나 저주스러운 일을 당했습니까. 지도 자들이 잘 해야 됩니다. 기대가 어긋나게 하면 안 됩니다. 가령 월명동을 데려옵니다. “좋은 데가 있습니다. 먼 걸음을 해도 손해가 안 갈 것입니다. 난생 처음 보고서 ‘야, 오늘 큰 것 봤다.’ 이럴 것입니다.” 해서 데리고 옵니다. 월명동 오기 전에 석막리 삼거리에 오면서 “이 골짜기에 뭐가 있습니까? 정말입니까? 아이고 오늘 내가 빈탕 쳐도 좋습니다. 한번 갈 데까지 가봅시 다.” 하는 사람도 있고, “나 그냥 가겠습니다.” 해서 “그래도 가보십시다.” 하며 끝까지 데리고 왔지요? 보고서 “으악~~” 하고 “야, 내가 일생 동안 이런 큰 조경은 처음 봤네. 아직 세상은 못 돌아다녔 으니...” 합니다. “돌아다닐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 할 때 더 멋있게 만들려고 지도자 가 다른 나라 30개국을 돌아다녀봤습니다.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냥 여기 에서 하나님께 계속 구상 받고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야~ 엄청나네. 언제 와서 하루 종일 봐야 되겠네.” 기대가 어긋나지 않으면 데려온 사람도 복이 있는데, 기대가 어긋나면 아 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대개 어디에 이야기를 듣고 가보면 기대가 어긋났지요? 월명동에 오면 기대가 어긋나지 않습니다. 왜? 내가 하나님께 기대에 어긋난 것을 꼭 채워달라고 했습니다. 병을 낫 게 해 주든지, 깨닫게 해 주든지, 깨달음을 주든지 기대가 어긋나지 않게 꼭 해 달라고, 그래야 다음에 또 온다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리하마.” 했습니 다.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만들 때 정말 피눈물 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여섯 일곱 번을 죽을 뻔했는데 제자들도 많이 죽을 뻔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는 데도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 보호했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 “사람들은 닦아놓지도 않은 인생길로 인도하면서 갖은 고통들을 받게 하고 산다.” 사람들은 닦아놓지도 않은 길을 가면서 편해지기를 원한다. ‘왜 불편하지?’ 합니다. 닦아놓고 다녀야 됩니다. 인생들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사람 다니는 길이 수십 가지가 있듯이 인생길도 그러하다. 영원하고 기쁘 고 즐거워하며 가는 영생의 길이 있는가 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는가 하면 영원한 고통과 아픔과 고생하는 지옥 길도 있다. 어떤 길은 보기에 크고 넓고 좋으나 멸망의 길로 가는 길도 있고, 절벽길, 가시밭길, 돌짝길, 흙탕 진흙밭길로 가는 길도 있다. 어떤 길은 기쁨과 소망 과 이상을 이루며 인생의 기쁨을 누리며 가는 길이 있다. 하나님과 그 보내 신 메시아가 인도하는 길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나는 길이다. 인생의 길이다. 진리다. 생명이다. 나를 따라오라.”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이 처음에 나를 따라올 때 ‘이걸 따라가야 되나? 큰 교회들도 있고, 목사님들은 신학교 나오고 외국에 가서 박사 따오고 했는데, 이 사람은 초등 학교 나왔다고 하지 신학도 제대로 안 했다고 하지 말씀을 들어보면 참 오 묘하고 진리가 좋고 진리라는 소리가 나오고 하는데...’ 그래서 내가 끝까지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따라오라.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 끝까지 따라오라.” 했습니다. 끝 까지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실망했나 보세요. 실망 안 시켰 습니다. “어떤 길은 허무하게 끝나고 마는 길도 있다. 구원의 영원한 길이 있는가 하면 이방종교에 속해서 극락길이라고 하고 가고 저승길이라고 하면서 가는 길도 있고, 음부에 빠져가는 길도 있고, 지옥으로 곧바로 가는 길도 있다. 별 것도 아닌 길을 가면서도 희망과 소망에 불타서 가는 사람들을 보아라. 그들 을 두고 왜 그냥 가만히 있느냐. 끌어와야 되지 않겠느냐. 전도하라!! 그들을 인도하라! 생명을 구원하라!!” 오늘 주제는 “오직 전도”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을 쓰고 하늘나라 천국을 지상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육신을 쓰고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천국입니다. 예수님은 “그 나라와 그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리 라.” 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늘나라가 이 땅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정신과 사상으로 살아가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러려면 온전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 시대 신약시대 때 외치고 그 나름대로 신약시대 안의 역사를 펴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으면 더 이상적인 역사를 폈을 것입 니다. 하늘나라는 육신을 가지고 하늘나라를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육신을 가지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육신의 천국입니다. 여기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습니다. 그것을 두고 성경에 “땅에서 천국이 이루어진다.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 했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시대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와 같이 살면서 그 역사의 뜻대로 사는 것, 그것이 천국입니다. 사랑 천국은 결혼해서 남편과 같이 움막이든 천막이든 사는 것이 사랑천국 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집이 이상적이고 궁궐이어야 사랑천국이 이루어집니까. 움막이든 천막이든 덤불 밑이든 가시덤불이든 둘이 사랑하고 서로 살면 그것이 사랑천국입니다. 그것을 다 만들어 놓고 궁궐 지어놓고 하려고 하면 늙은 다음에, 흰 머리 난 다음에 할 것입니다. 좁으면 좁은 대로 넓으면 넓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선생도 그러지 않습니까? 축구장이 어디 있습니까. 누가 나를 위해서 축구 장을 닦아 놓습니까. 몸뚱이 하나 들어가기도 힘든데 그 방에서 축구하고, 방에서 운동하고 드러누워서 발장구치고 어린아이 때 운동하듯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튼튼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헬스를 다니냐고요? 한 9년 동안 안 다녔습니다. 선생님이 운동 장을 막 뛰고 돌아다니냐고요? 내가 9년 동안 운동장에 다닌 것이 몇 번 못 나갔습니다. 진짜 몇 번 못 나갔습니다. 어떻게 운동장을 사용합니까. 방안에서 했습니다. 1층, 2층 사이 계단을 막 뛰어 올라 다니고, 그래서 튼 튼해졌습니다. 발이 튼튼합니다. 한번 때려 차면 와장창 나갑니다. 그 정도면 튼튼해졌지 않습니까. 그 튼튼한 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쓰는 것입니다. 너무 좋 지 않습니까. 또 여러분들과 같이 쓰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젊으면 좋지 않 습니까. 여러분, 교회에서 지도자들이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면 참 안쓰럽지 않습니 까. 얼굴이 벌건하게 한잔 먹은 것 같이 활기가 돌면서 나와서 “여러분!! 할 렐루야! 오늘 선생님이 나타나기 전에 전초합니다.” 하고 건강하게 보여야 하는데, “안녕하세요... 제가 뭔가 좀 약하게 보이지만 몸이 약해서요.” 그러 면 다 안쓰러운 것입니다. 자기 남편이 약하면 안쓰러운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 있는데 약하면 안쓰 러운 것입니다. 믿음을 튼튼하게, 정신이 튼튼하고, 육체도 튼튼하게 하면 너무 기쁜 것입 니다. 내가 튼튼하고 건강하고 패기가 있으니까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 씀을 튼튼하게 확실하게 팍팍 전해 주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은 하나님이 만든 지상천국 세계다. 어떻게 이루어져 가느냐? 하나님이 보낸 자의 말씀을 듣고 그 뜻대로 살아가면 그것이 지상천국이다.” 그것이 우주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질 때 죽은 다음에는 영이 가서 하늘나라 에서 이루고 육신은 지구상에서 끝납니다. ‘아니, 왜? 육신까지 같이 가게 만들어 놓지.’ 그것은 이치가 안 맞지 않습 니까. 늙었는데 그것 가지고 가서 뭐하려고 합니까. 썩었는데 갖다가 뭐하려 고 합니까. 영혼을 봐야 됩니다. 영혼이 얼마나 빛나는지 압니까. 영원히 살아도 안 죽 습니다. 영원히 빛나서. 이 세상이 있듯이 하늘에는 하나님이 살고 계신 저 하늘나라가 있는데, 우 리에게 안 보일 뿐입니다. 안 보인다고 존재 안 합니까. “천국! 하나님을 믿고, 그 보낸 메시아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같이 서로 사랑하며, 화평케 하며, 즐거워하며, 공의롭게 살며, 진리대로 살며 하 늘나라의 마음과 육신의 삶이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버리고 육신을 쓰고 육신 세계의 천국을 누리지 않고 ‘언제 죽어서 하늘나라 가나?’ 그것만 쳐다보면 안 됩니다. 그것은 죽어서 가는 것입니다. 육신을 쓰고 이 세상에서 천국을 이루며 나가는 것이 잘 돼야 그대로 하 늘나라에 가서도 그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찌들리고 제대로 천국도 못 이루고 그렇게 살면 죽어서도 그 세계로 그냥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층만층 구만층입니다. 그 최첨단 하늘 나라 밑에는 사람들 나름대로 천층만층 구만층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금 섭 리사에 말씀을 듣고 오는 사람들도 마음들이 천층만층이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은 마음먹기 달려서 어떤 사람은 지옥같이 살고, 어떤 사람은 천국 같이 살고, 어떤 사람은 음부같이 살고, 어떤 사람은 소망 으로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랬습니다. “천국은 보이는 현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러분이 천국 이야기를 많이 해 달라고 했지 않습니까. 아까 때가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때가 있어서 그때 하는 것입니다. 아무 때나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는데 왜 선생님은 안 해 줄까?’ 하나님 이 줘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보이는 현실에서 시작된다. 지옥도 그러하다. 이 보이는 지상에서 지옥같이 살다가 죽으면 지옥으로 가야지. 이 보이는 세상에서 천국같이 살 다 가면 천국으로 가야지. 지상천국을 이루며 사는 자는 죽은 후에도 천상 천국을 이루며 사는 것이 마땅치 않느냐.” “천국은 환상에 불과한 세계도 아니고 망상에 불과한 세계도 아니다. 지상 천국이다. 천상천국이다. 마찬가지다.” 지상천국도 망상에 해당되는 천국이 아니라 실제 천국입니다. 천상천국도 망상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천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허무한 세상도 아니고 허무한 삶도 아니다. 왜 이 세상 사람들이 허무하 다고 하느냐.” 사람들을 볼 때 허무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무한 것입니다. 하나 님을 믿고 섬기고 즐거워하면서 살 때는 왜 허무합니까. 이미 영혼의 구원문 제가 확실하게 서 있고, 죽지 않고 영원히 연속되는데 허무를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 놓은 것이 허무하게 사니까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혼의 구 원문제도 해결치 않고 사니까 죽을 때 달달 떨고 “나 어떻게 하지? 좋은 세 상에 가게 기도 좀 해 주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금방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눈보라가 쏟아지고 달달 떨고 있다고 금방 집이 지어집니까. “이 세상의 삶을 보람 있게 뜻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의 뜻 속에서 그 계획대로 허무하지 않고 기쁨과 이상을 현실에 느끼고 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육체 덩어리만 위해서 살고 근본을 모르고 살다 죽으면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있는데 어떻게 하늘나라를 갈 수가 있고 어떻게 메시 아를 따라서 천국을 갈 수가 있느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인생은 누구든지 허무함을 느끼고 허무를 면치 못하고 허무를 스톱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산 사람도 그렇지만 죽은 영들도 허무를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 으면서도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죽은 후에도 안 믿으면 안 됩니다. 그래 야 허무를 벗어나지 그렇지 않으면 허무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사람들은 자기 삶의 체질에 배서 자기 마음에 맞는 말만 좋아한다.” 잘 들어요. 이런 말씀을 나에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체질이 배서 자기 삶에 해당되는 말만 좋아한다. 그 러므로 지옥 같은 말을, 음부 같은 자들의 말까지 귀에 담아듣게 되고 좋아 하기까지 해진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음부 같은 말, 지옥 같은 말을 귀에 담아 듣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옥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삶에 해당되는 말을 하여야 알아듣고 마음에 끌리고 귀를 기 울이고 좋아한다.”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농사짓는 이야기를 해야 한 톨이라도 더 먹으려고 귀 를 기울이고 듣습니다.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장사하는 비법을 자꾸 이야기할 때 귀를 기울이고 듣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장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 고, 고기 잡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를 해 준 것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종교의 천국의 삶을 소망하는 자 든지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은 천국의 이야기나 거기에 해당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신앙인들은 천국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구원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하나님을 믿으면 어떻게 복 받는다 거기에 귀를 기울인다. 너희들이 전도할 때 그것을 참고하고 하도록 하라.” 그들은 이미 세상의 삶에, 돈과 부귀영화에 찌들어서 거기에 해당되는 이 야기를 해야 귀를 기울이지 신앙 이야기를 하면 아주 낯설게 들립니다. 그것 은 마치 순간 사람이 왔으니까 들어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듣지도 않지 않 습니까. “이 세상 세계의 진리를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로 가르치며 외치니 자기 삶 과 전혀 거리가 멀고 체질에 맞지도 않고 처음 먹는 외국 음식이 마음에 안 맞듯이 그러할 것이다. 이 생명의 말씀을 싫어하고 부인하고 거부하고 반항 하며 배신까지 하며 전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사상이 다르다 하고, 이치가 다 르다, 가르침이 다르다 하고,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하느냐 할 것이다. 이는 마치 지옥에 가서 천국 이야기를 해 봐라. 거기 있는 지옥에 해당되 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나. 자기 삶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지옥에서 어떻게 하면 뭔가 좋은 것이 있는가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된다. “저기에서 형 제들이 이렇게 하다가 패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왜?” “이렇게 이렇게 하다 가 일어났습니다.” 그런 지옥의 이야기나 해야 귀를 기울인다. 전혀 자기와 상관없는 천국 이야기를 하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겠느냐. 이 세상 사람들도 그러하다. 전도할 때 가서 그들의 체질에 배인 삶 속에 천국이야기나 하고 메시아 이야기나 해 봐라. 그들이 황당무계해 하고 싫어 할 것이다. 천국에 가서 지옥 이야기를 해 봐라.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반가워할 것인 가. 천국에서 어떻게 살면 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천국에서 어떻게 살면 더 기쁘다, 천국 어디에 가니 뭐 있더라 그런 이야기를 해야 귀를 기울이고 드 는 것이 아니겠느냐. 아마 천국에 가서 지옥사람들이 지옥 이야기를 푸짐하게 하면 “섬뜩하다. 무섭다. 너 빨리 나가라. 거기 가 있어라. 여기를 어떻게 왔지?” 그럴 것이 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상에 나타났을 때 천국 이야기하고 진리 이야기하고 하 나님 이야기하니까 귀에 거슬렸고 예수님이 나타났을 때 이미 기존성에 있 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교리 바깥의 이야기를 하니까 “다르다. 너 다른 관 을 갖고 있다. 외치지 마라. 저리로 가라.” 한 것입니다. 똑같이 율법 말씀을 외쳤으면 “너, 진짜 젊은 사람이 뭣 좀 하겠다. 앞으로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의 선생이 되겠다.” 했을 것 아니겠습니까. 전혀 율법 이야기는 안 하고 새로운 이야기만 한 것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관을 바로 심어준 것입니다. “메시아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온다.” 하니까 “우리는 하늘 에서 온다고 하는데. 저거 이단이다.” 한 것입니다. “불 심판? 땅에서 불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심판한다. 휴거? 공중휴거? 공중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고 따라 가면 그게 휴거된 것이다. 부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가는 것이 부활이 다. 개념적 차이, 관념적 차이다.” 하고 예수님이 똑똑히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근본을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가르치는 대로 안 가르치니까 틀렸다, 이단이다 하며 미워하고 배척하고 “나가라. 어디 여기에서 너의 교 리를 가르치느냐. 너의 사상을 가르치느냐. 저리 가라.” 했습니다. 공산주의에 가서 민주주의를 전하고, 종교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 가서 종교 이야기를 하면 “나가라. 큰일 났구나. 백성들을 어디로 몰고 가려고 하 냐? 너희 나라에 가서 하라.” 그럴 것입니다. 똑같습니다. 민주주의 나라에 와서 공산주의 사상을 가르치면 이거 빨갱이 네. 이거 독재사상, 북한에서 왔구먼.” 하고 금방 반공법에 걸려서 묶지 않습 니까. 요즘에 보면 북한 간첩들과 접촉한 사람들을 다 잡아내지 않습니까. 장관 이고 부장이고 다 잡아 엮어서 재판을 받습니다. 몰라서 했다고 하면 몰라서 했어도 일단 했으니까 모르는 만큼 받아야 되지 않겠느냐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세상에 찌들어 있는 저 사망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사도바울과 같이 지혜롭게 가서 전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도 이상을 누리기를 원하느냐?” “원하지요.” “그러면 이렇게 하면 더 이상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 전도자들을 보내는 것은 마친 비유를 들어 말할진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이리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는 것과 같 아서 까딱하면 잡아먹힐까봐 겁나.”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한 여자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아주 지혜롭고 슬기롭게 전했습니 다. 대개 교회를 나오다가 마는 사람들은 보면 제일 처음에는 잘 대함을 받다 가 심한 이야기를 해서 상처받고 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재미없다고 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선생은 참 좋은데, 교인들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뭐하다. 분위기가 별로 안 좋다.” 해서 나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입니 다. 그들이 “말씀은 참 맞다. 좋다.” 합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그들에게 갈 수도 없지 않습니까. 세계를 다 쫓아갈 수 없으니까. 여러분이 전도만 하려고 하지 말고 환경과 분위기와 여러분의 사상, 정신, 환경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들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목회를 하려면 하고, 그렇지 않으 면 다른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전도기간인데 아직도 태만한 목사님들이 있고 전심으로 열심히 하지 않고 있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계속 순회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순회하지요?’ 더 잘 봅니다. 여기에 있으면서도 더 잘 압니다. 속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전도가 잘 됐나, 못 됐나, 분위기가 어떤가 내가 교인들 에게 다 물어봅니다. 요즘은 신경 안 쓰고 관심 안 가지면 싫어합니다. 교역자가 다 관심을 써 줘야 됩니다. 관심을 써 줘야 된다고 않습니까. 상록수들도 관심 써 주고 나 아가서는 이제 온 장년부들도, 할머니들도, 중고등부 10대들, 청년들, 골고루 가정국까지 전부 ‘가정을 가졌으니까. 어른들이니까.’ 하지 말고 목회자가 다 신경을 써 줘야 됩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양떼와 소떼를 살펴야 됩니 다. 가르치고, 그리고 돕고 또 나에게 보고해 줘서 내가 알게 만들어주고, 그 런 부지런한 교역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내가 지적하면 “앞으로 잘 해 보겠습니다.” 하는데 “뭘 잘 해 봐. 언제 해? 한번 해보겠다는 사람을 내가 세워 줘야 되겠어. 가서 준비하고 있어. 그러 면 내가 다시금 세울 테니까.” 그럽니다. 나는 목회를 얼마나 준비했는가 하면 한 20년을 준비하다가 목회하러 나 왔습니다. 20년 동안 기도하고 실습해 보고 노방전도 하고, 실습하고, 다루 는 것도 해 보고, 그렇게 했어도 미비한 목회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신령해야 됩니다. 신령한 기도를 해야 신령한 영감이 부딪힙니다. 신령한 영감, 번쩍이는 영 감이 오면 그것을 가지고 번개처럼 움직여야 됩니다. 그래야 유익이 되고 승 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지혜롭게 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무조건 복 음을 가지고 전하려고만 하지 말고 밭을 갈고 전초작업을 하고, 말씀을 전해 야 됩니다. 이 귀한 말씀을 전할 때 그렇게 해야지, 그냥 우격다짐으로 넣으 면 안 됩니다. 구원문제! 인생은 자기 삶의 수레바퀴를 자기가 해결하고 간다 하지만, 자 기 인생을 자기가 해결 못 합니다. 반드시 자기 삶의 수레바퀴를 돌리는데, 누가 같이 돌려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깨닫고 한 자들이 돌려주고, 하나님이 돌려 줘야 됩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이 덤프트럭을 몰고 가다가 뒹굴었는데 제가 끄집어낼 수 있습니까? 크레인이 와야 됩니다. 그놈을 가져야 잡아당길 수 있습니다. 큰 크레인이 200톤까지 드는 것이 와서 할 필요는 없지만 100톤짜리라도 와서 잡아당겨 야 15톤 덤프트럭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삶을. 빠졌으니까 구원주가 필요하다. 구원해 주는 구원주.” 하나님은 그 시대의 구원주를, 메시아를 손발로 쓰신다. 메시아는 하늘나라 의 천인 중에 구원자를 보내지 않는다. 그런 역사는 없었다. 영을 보내면 육 신하고 대화가 안 된다. 육에 있는 세계에 육신을 보내서 구원한다. 역사의 수천 종교가 다 그렇게 해 왔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오는 영을 기다리지 말아라. 육신을 기다려라.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고 대화를 할 수 있고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같이 대화를 하는 사람끼리도, 남편과 부인끼리도 서로 안 맞는다고 이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맞으면 이혼 안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도 안 맞고 삶도 안 맞고 마음이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키가 크고 작고 상관없 습니다. 마음만 맞으면 사는데 마음이 안 맞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사람이라야 서로 마음이 통하고 대화를 할 수 있고 속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영들을 보내면 대화를 못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육신을 가진 자를 보내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십 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항상 사람들은 구원역사를 과거의 구세주가 계속 구원 역사를 이루는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계속 모세가 구원역사 를 이루어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만 붙잡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 대에 예수님이 왔을 때 구원역사가 모세가 이루려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예수님의 구원만 계속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 나님의 말씀을 보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메시아를 보내주겠다. 그가 와서 너희를 구원하리라.” 했습 니다. 예수님도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구원주가 간다.” 했습니다.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들은 하늘의 통역관들입니다. 통역관이 없으 면 말을 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벙어리 흉내 내서 수화법으로 해서 몇 개 나 전달하겠습니까. 안 됩니다. 이 엄청난 것을 전할 때 지금 각 나라 50개 국 나라의 통역관들이 다 해서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안 하고 여기에 서 말씀하면 한국 사람만 들을 것입니다. 세계 각 나라 언어가 다른데 통역 관들이 꽉 절어 있으면서 죽 통역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통역해 주라고 한 마디하고 천천히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메시아를 보내서 구원의 말씀을 외칠 때는 딴전들을 보고 자기 삶 속에 빠져 있다가, 나중에 ‘아, 이것이 아니여. 인생을... 이 시대에 뭔가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겠어?’ 하며 그때 정신 차리고 왔을 때는 이 미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는 세상의 일 다 하고 끝났을 때입니다. 사라졌을 때입니다. 하늘나라로 갔든지, 이미 사명기간이 끝나고 쉬든지 할 때입니다. 그때는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보세요. 그때 내가 한참 20년 동안 밀어붙일 때는 아무 때나 봤 지 않습니까. 지금은 10년 가도 못 보고 8년 가도, 5년 가도 못 보지 않습 니까. 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봤다고 하면 못 믿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언제 봤냐고 하면서 쫓아다니면서 이야기 좀 해 달라고 합니다.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자나 구세주들을 보면 그 시대 당세에는 조금만 알 고 있습니다. 소수의 무리만 알고 따라가고 그 후에 100년, 200년, 300년, 400년 가면서 계속 그 왔다간 것을 제자들에게 들음으로 모여듭니다. 예수 님 때 그렇지 않았습니까? 수천 년, 한 2천년 동안 가니까 지구상에 그 복음 이 어느 정도 끝났을 때, 다시 또 하나님이 보내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 맞지 못한 자들은 마치 신랑을 맞지 못하고 사는 어떤 여자와 같아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 우스운 삶을 살 것입니다. 신랑 없이 한 여자가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다음에 못 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이 예수님이 없으니까, 메시아가 없으니까 맨날 그렇게 징징 울었지 않습니까. 늘 울면서 지내지 않았습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항상 코 눈물을 속에 살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채웠는가 하면, 복음을 전함으로 채웠습니다. 예수님을 못 보는 것을 그렇게 충족했습니다. 삶의 세계는 내일의 미래가 험악하다 해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수레 바퀴가 그렇게 돌고 다른 길이 없으니까. 미래의 험악한 것을 돌아가려고 해 도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돌아가면 저 멀리로 더 고생합니다. 분명히 앞에 보람된 역사가 아니고 고통스러운 역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도 가야 됩니다. “담대히 가서 개척하고 개발하고 멋있게 만들어서 천국 만 들어 사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 말씀을 죽 해서 신령한 하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금주 말씀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말씀했습니다. ‘이 때’라고 했으면 예수님 때이겠습니까? 지금은 예수님 때가 지나갔습니 다. 2천년이 지나갔습니다. ‘이 때’라 했으니 이때에 말씀을 전해 주는 것입 니다. 우리 말씀을 들었으니까 이제 이어서 두 가지 기도를 하겠습니다. 봉헌하 고, 꼭 돈만 있어야 바치는 것이 봉헌이 아닙니다. 나는 그전에 교회 다닐 때 돈이 없어서 항상 “하나님, 내 몸을 바치겠습니 다. 내 시간을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헌금했습니다. “그래라. 그것이 더 크고 큰 것이다.” 돈만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젊음을 바치겠습니다. 내 시간을 바치겠습 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바치겠습니다.” 그것이 다 하나님께 봉헌하 는 것입니다. 모두 이 시간 자기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하나님께 드리고 바치고, 나는 청춘을 바친다고 했더니 그대로 청춘을 하나님께서 받아 줬습니다. 그래서 청춘을 바쳐서 지금까지, 이 중년기, 노년기까지 쓰고 있는 것입니다. 싱싱하 게 멋있게 쓰고 있지 않습니까. 자, 그러면 우리 봉헌하고 말씀도 들었으니 같이 겸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봉헌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듣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예배할 수 있도록 자료를 주고 말씀을 했으니, 그 말씀을 믿고 따르고 하 나님께 순종하면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보낸 자가 신령이요, 그리고 진정한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왔으 니 그를 믿고 따르며 하나 되었을 때 신령과 진정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이며 “그들을 하나님은 찾으신다.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 그들을 구원하신 다.” 했습니다. 그런 삶이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드리고 바친 모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물질로도 바치고, 청춘을 드 리고, 시간을 드리고, 전도하면서 드리고, 생명을 드렸사오니 받으심이 크시 옵소서. 우리의 모든 드림을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봉헌하옵나이다. 아멘. <축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처음 온 모든 이들을 축복해 주시고, 은혜와 은총으로 채우심이 크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감동과 감화 역사하심이 이들 위에, 온 지구상에 있는 나라가 다르고 풍속이 다른 이들 위에 같은 진리의 말씀이 들어갔으니 개성으로 역사하심이 크시 고, 함께해 주시고, 많은 생명들이 옳은 데로 돌아오는데 능력과 권능과 은 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내가 이들을 축복하니 말도 잘하고, 가르치기도 잘하며, 설득력 있게 말해 서 그들이 하나님 품으로 오도록 하늘의 사역자의 사명을 다 감당케 해 주 시옵소서. 삼위의 권능과 능력이 이들 모든 자들 위에 함께하고 온 나라와 민족 세계 에 충만할지어다. 아멘. 말씀 마쳤습니다.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요즘에 날씨가 추워지고 했으니 조심들 하시고, 또 남 살리려다가 다치지 말고, 밤길 조심하고 다니고 그러 세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