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3.10.2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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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리로 자신을 끊임없이 비워라
2. 진리와 믿음과 계시의 관계성
작성일 : 2013. 6. 26(수)
작성자 : 이선진
(그동안 성자와 선생님 자체에 대한 믿음은 있었어도
온전치 못한 ‘저’라는 그릇 위에 담기는 성자의 계시
에 대해선 100% 믿지 못하고 의심, 불신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대체 어디까지, 어떻게 믿고 따라야 하나
너무 괴로웠어요.
그런데 그 답을 성자께서 정확히 깨우쳐 주셔서 확
실히 알았습니다.
바로 진리로 분별함 위의 믿음이어야 의미 있는 믿
음, 확실한 믿음이라는 것을요.
오늘은 진정 지금 이 영 휴거 때 성자와 통함 속에
서의 믿음과 분별의 능력을 얻기를 원해요. 가르쳐
주세요.)
*성자의 말씀*
사랑하는 자야, 네 말이 맞다.
성령의 사역자를 통하여서도 말하였듯
시대 진리 위의 믿음이 아니면
허망한 믿음이며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난파선 같은 믿음이다.
난 무조건적인 믿음을 원하지 아니하며
선생처럼 진리를 연구하며 끊임없이 간구하는
땅의 책임 위의 믿음을 원한다.
무조건적인 믿음은 믿음이 아냐.
그건 뜬 구름을 잡는 행위이며
위험한 칼날 위를 걷는 행위지.
오늘 이에 대해 깊이 설명하며
믿음과 진리와 계시의 관계성을 말할게.
먼저 ‘믿음’이란 난자의 입장과도 같으며
‘진리’는 정자의 입장과도 같다.
믿음 혼자서는 어떠한 일을 할 수 없으며
진리 혼자서도 마찬가지이지.
진리와 믿음이 결합이 돼야
비로소 생명이 탄생되고 일이 성사된다.
인간과 인간, 신과 인간 사이의 의심, 불신을 잠재우
고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가교 역할을 해 주는 게
곧 ‘믿음’이다.
사실 이 세상이 타락하고 범죄가 만연하며
사탄들에 의해 정복되기 이전에는
‘믿음’이 그렇게나 어렵고
힘든 마음의 실천이 아니었다.
현재에 비해 악의 크기도 작았으며
그래도 지금보다는
영이 살아 있는 인생들이 많이 있었기에
조금만 삼위를 불러도
그 심정, 마음, 사랑 등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세상이 범죄, 악, 사탄에 뒤덮이니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서로를 거짓, 사기, 증오의 대상으로 바라보았으며
의심, 불신 속에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치 너희도 형제간의 의심, 불신이
곧 신을 향한 의심, 불신으로까지 발전되듯
급기야 인생들 중엔 나 성자,
하나님 창조주를 향한 믿음조차 포기해 버리는 자들
이
아주 많아졌다.
현재 신을 향한 이 세상의 각박함, 불신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냐.
오랜 시간 수천 년이 흐르며 변질되어
이와 같이 된 것이다.
이제는 눈으로 봐도 잘 못 믿고
들어도 잘 못 믿는 수준이 되어 버렸지.
다 인류가 그동안 악을 행한 대로 받고 있는 게다.
이와 같이 쉽게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믿음’을 실천하기가 그렇게나 어렵고 힘들어졌으며
너무나 중요한 능력이 된 것이다.
물론 너무나 각박하고
사기, 거짓이 넘치는 이 세상 속에서
쉽게 누군가를 향한 믿음을 지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안다.
그렇지만 어렵다고 해서
나의 신부들인 너희까지 서로를 향한 믿음,
성삼위와 구원자를 향한 믿음을
쉽게 저버리고 배신해 버린다면
오직 믿음의 싸움으로 이 각박한 세상을 지키고
변화시킬 자가 없게 되어
희망이 없는 세계가 되어 버린다.
(맞아요. 제 심각한 들보가 제대로 진리로 분별하고
감동까지 받은 것에 대해서 ‘믿겠습니다.’
고백해 놓고 또 뒤돌아서서 ‘설마, 아니지 않을까?’
의심하는 거예요.
과거 어릴 적 하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속아 와
서 지금도 누구를 쉽게 믿지 못하며 그 현상이 성자
와 선생님으로까지 이어지는 제 마음의 들보를 최근
에 발견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믿어드리지 못해서
요.)
이해한다.
상대로 인한 들보도 있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만 누구로 인한 들보이든
나 성자의 말씀을 듣고 계속해서 행함으로,
기도로 고치고 또 고쳐라.
또한 그 들보가 생기기까지의 인생 속 전 과정을
자세히, 세밀히 쪼개어
나에게 고백하며 고쳐 달라 간구한다면
훨씬 더 빨리 그 들보가 고쳐질 것이니
한 번 해 보아라. 알았지.
(와, 과거 하나하나의 들보의 기원부터 들추어내어
성자께 고백 드린다면 그것 자체가 사연이 되어 성
자와의 사이도 더욱 가까워지고 또한 마음 들보 고
치기도 더욱 빨라지겠어요. 그렇게 해볼게요.)
사랑하는 자야, 이 각박하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믿음’이라는 것을 보다 쉬이 수월케 해 주는 것,
또한 ‘믿음’을 견고히 해 주는 핵심 재료가 있다.
이 재료만 너희가 확실히 너희 자신의 것으로 갖춘
다면
더 이상 어렵고 힘든 ‘믿음’이 아니며
확실하고 쉬운 ‘믿음’이 된다.
무엇이겠느냐.
(바로 분별의 최고 무기, 이 시대 최고의 판단 기준!
바로 분체 통한 성자의 시대 진리입니다!)
그래, 맞다.
이 시대 속에서 ‘믿음’을 행하는 데에 앞서
절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도,
또한 이 각박하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절대적인 분별력을 갖추는 것을 도와주는 것도
곧 선생 통한 ‘시대의 진리’이다.
이것을 확실히 갖추고서 믿어야 허망한 믿음이 아니
며
확실한 믿음, 하늘도 인정하는 믿음이지.
자신의 머릿속에 시대의 진리가 확실히 살아
자신의 사상, 이념, 정신, 행동의 기준까지 될 정도로
시대의 진리를 매일매일 가까이하며
읽고 또 읽고 연구하는 수준이 되어야
확실한 믿음을 행할 수 있어.
확실한 믿음이 아닌 믿음은
사탄이 주관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무서운 믿음이
지.
그 이유를 계시와 연관 지어 설명해 주마.
섭리사 어느 누구든 많게 혹은 적게 나의 계시를 받
고
나와 통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나와 통하고 사는지도 모르고
또는 나에게서 무언가 오는 것 같기는 한데
확신을 못하며 살아간다.
그 이유를 말해 주마.
바로 느껴져 오고 들리고 보이는 것을 분별할 만한
진리의 실력이 아직 완성이 안 되었기 때문이지.
그러니 그냥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려 하여도
자꾸만 의심, 불신이 되는 것이며
확신이 안 서는 게다.
무엇이 맞는지 확실히 모르며
무엇이 아닌지 확실히 모르니까.
고로 그만한 절대적인 진리 위에야
절대적인 분별, 절대적인 믿음이 가능해지는 게다.
진리의 실력도 부족한 채 그냥 절대적으로 믿는 것
이
더 이상한 것이고 위험한 믿음이야.
또한 처음에는 온전히 나와 잘 통하였는데
가면 갈수록 주관 혹은 사탄 계시로 빠져 잘못 행해
아주 큰 죄를 짓는 자들이 있다.
이에 대해 똑똑히 들어라.
이러한 일들은 대개 자신과 통하는 존재를
나 성자로 절대 믿고 있는 자들 위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이다.
그 믿음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나 무서운 건
무언가 영적인 존재에게서 들려오고 느껴지는 것,
혹은 자신의 뇌에서 발생되고 깨달아지는 것들이
분체 통한 시대의 진리의 방향, 내용과
점차적으로 엇나가고 있음에도
절대 믿어 버린다는 게다.
사랑아, 명심해라.
자신에게 어떤 음성이 들려온다고 해서
나와 온전히 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시대의 진리 위 분별이 돼야
나와 온전히 통할 수 있는 것이다.
섭리사의 어떤 자들은 음성, 환상, 영안이 띄어
보이고 들리면 그걸 다
나의 계시로 믿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자기 뇌에서, 혹은 사탄도 내가 주는 계시와
아주 유사한 느낌, 감동, 음성
혹은 환상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알아라.
혼적인 파트는 영보다 한 단계 아래 있기에
영물이라면 어떠한 존재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
이다.
계시는 어떠한 음성이 들려오고
어떠한 것이 보인다는 것만을 기준 삼아
확신하고 믿고 따르는 게 아닌
‘선생 통한 절대적 진리’를 기준 삼아 믿고 따르며
아무리 봐도 어긋나는 건
자신이 스스로 과감히 쪼개 내어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계시보다 진리다.
진리 위의 계시여야지
계시 위의 진리가 되어 버리면 안 돼.
이러니 자꾸 자기 주관, 사탄 주관 계시로 빠져
처음은 좋았어도 나중은 안 좋아지는 게다.
알았지.
(네, 맞아요. 저도 그저 음성 자체를 다 믿고 따르던
것이 있었지만 후에 그것이 시대의 진리와 어긋난
것이었으며 자기중심적 계시를 받아 행한 것이었다
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무리 음성 계시여도 시대 진
리와 어긋나면 시대의 진리로 분별하여 들려오는 음
성을 쳐낼 줄도 알아야 하는데 진리보다 저에게 들
려오는 음성을 더욱 신뢰하다가 허망한 믿음의 낭패
를 보고 죄까지 짓게 되었어요.)
그래, 맞아.
섭리사에 각종으로 계시를 받으며
음성, 영안으로까지 계시를 받는 자들은 들어라.
아무리 감동, 깨달음, 꿈, 음성, 영안 등
정말 내가 준 계시인 것 같아도 그냥 다 믿어 버리
지 말고
1차 분별로 꼭 ‘선생 통한 시대 진리’를 거쳐야만
해.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는데
나중에 보니 내 계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허망하겠느냐.
나는 선생의 조건 위에서 너희에게 계시를 주듯
‘선생 통한 시대의 진리’위에서
너희에게 계시를 준다.
아무리 자신이 계시를 잘 받고 나와 잘 통한다 해도
‘선생 통한 시대의 진리’에서 어긋난 계시는
다 틀린 계시이며
자기중심적으로 아주 수준 낮은 계시이다.
따라서 아무리 뚜렷, 명확히 보이고 들려오는 것일지
라도
1차 시대의 진리 위에서 분별하며
2차 간구와 물음으로 재확인하여라.
아무리 시대의 진리 위에 어긋남이 없는 계시일지라
도
2차로 꼭 나에게 물어야 해.
그리고 반드시 확실한 확인이 필요한 중요한 건에
대해선
나의 분체에게도 확인 편지를 보내야만 해.
이와 같은 분별의 과정을 다 거친 후에도
나의 계시임이 온전히 맞다는 감동이 오거나
혹은 분체에게도 확인 편지가 오면 믿고 따라라.
알겠지.
이같이 계시는 하나하나 분별의 과정을 거쳐
믿고 행함이 이뤄져야만 해.
분별도 안 해보고 그저 허망하게 믿어 버림으로써
사탄의 노예가 되고
급기야 이성 타락까지 간 자들이 있었다.
오늘 확실히 말하노니
자신에게 들려오고 도착하는 계시 이전에
‘선생 통한 시대의 진리’이다.
시대의 진리를 우선적 기준으로 믿는 믿음 위에
자신에게 오는 계시 믿음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성자의 마음보다 자기의 마음을 중심할 때 받게 되
는 게 자기 중심적 계시이잖아요. 마치 어른이 아이
수준에 맞추어 대해 주듯 저희가 자기의 마음, 욕구,
인식관을 중심하고
놓지 않으려 할 때에도 성자께서 저희의 마음 수준
을 배려하여 계시를 주기도 하시나요?
이걸 보고 자기 중심적인 성자의 계시라고 할 수 있
는지요? 그리고 이것은 아예 자기 주관 자체적으로
만든 계시와는 또 다른 것인가요?)
사랑아, 이러한 경우가 있다.
나와 온전히 잘 통하며 열심히 하던 자가
갑자기 큰 시험에 빠졌거나 힘들고 지쳐 할 때가 있
다.
이럴 때 순간 마음의 수준이 낮아지며
그 눈을 순간적으로 세상, 사탄 쪽에까지 돌리기도
한다.
이럴 때는 그 힘듦, 낙심에는 이유가 있기에
나도 그 상태, 그 마음의 수준을 이해해 주며 살살
달래어
점진적으로 다시 나를 중심하는 상태로 이끌어 온다.
한 번에 강하게 이끌어 와 버리면 오히려 체할 수도
있기에
한 번에 강하게 하기보단
천천히 살살 달래며 이끌어 온다.
이럴 땐 신랑인 나 성자가
신부인 너희의 마음 쪽에 맞춰 주며
신부 중심의 계시를 주기도 한다.
이는 마치 원래 이때는
오직 너희가 먼저 나에게 열을 내야 하는 때이나
가끔 너희가 너무 지쳐 하고 피곤해 할 때는
너희를 배려해 내가 먼저 너희에게
열, 감동, 은혜를 주는 격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나의 의도를 못 깨닫고 정도를 지
나쳐
자꾸만 더 세상, 사탄 쪽으로 기운다면
나는 혼낼 수밖에 없고
더욱 심해진다면 심판해 낼 수밖에 없다.
계속 자기 육을 중심한 나의 계시를 받고 행하다 보
면
그 수준, 차원이 계속 떨어지며 육으로 빠지기 때문
이다.
쉽게 말해
‘임시방편적으로 신부 배려 차원의 계시’라
생각하면 된다.
반대로 자기 주관, 육성 자체에서 발생된 것은
실상 계시라기보단
자기 생각, 사고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옳으며
이는 위에서 말한 자기중심적인
나 성자의 계시와는 또 다르다.
이 자기 주관적 사고, 생각은 내가 말한 게 아냐.
이는 나와 통하기는 해도
아직은 초보의 단계에 있거나
아직 자신의 육성, 주관,
인성적인 인식관들을 비워 내지 못함으로 인해
자기 뇌에서 발생되는 자기 생각, 사고이다.
그러나 특히 나와 통하기 시작한 많은 자들이
이것에 대해 두려워하며 잘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뇌가 이미 나하고 통해 본 뇌이기에
분명히 자기 생각, 사고임에도
그 뇌가 마치 나와 통할 때의 감각, 느낌으로
자기 생각, 사고를 발생시키기 때문이지.
그러하니 오히려 섣불리 제대로 자신을 비워 놓지도
않고,
나와 온전히 통할 수 있을 만한
진리의 수준도 닦아 놓지도 않은 채
나와 통하려 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또 이러하기에 나 성자도 아무에게나
함부로 음성 또는 영안 등의 형태를 통한 계시를
쉽게 주지 않는 것이다.
알겠지.
나와 통함 이전에 ‘준비’이다.
마치 선생이 자기 인격 위, 체질 위 신앙이기에
아무에게나 함부로 복음을 주지 말라고 한 것처럼
절대적으로 자기 수준, 실력, 지능,
인격, 인식관 위의 계시이기에
아무에게나 함부로 계시를 줄 수가 없다.
그것을 주었을 때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자,
또는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진리로 갈고 닦을 자에게만 준다.
알겠느냐.
이와 같이 지금의 영 휴거 역사 가운데에
자신의 혼체를 통해 영체를 보고 확인하라고 하였어
도
쉽게 자신의 영체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는 아직 자신의 주관, 육성, 인식관 등을
말씀을 듣고 실천함으로 완전히 비운 자가 적음으로
자신의 혼체, 영체를 순수 100% 그 모습 그대로 보
기보단
자신의 주관이 개입되어 보게 될까 함이로다.
자신의 이 같은 들보들을 빼내고 연단하고 만드는
만큼
자신의 혼체, 영체도 더욱 선명히,
더욱 확실히 보이게 될 게다.
(몇 년 간 이 계시의 사명을 해오면서 정말 크게 깨
달은 것이 있어요. 제 주관을 매일 비우는 데 있어서
말씀, 기도, 실천 이 세 가지 중 단 하나라도 소홀히
하는 것이 있어 버리면 그만큼 비워지지 않으며 다
시 생겨난다는 것을요. 특히 진리를 수시로 무시로
가까이하고 읽으며 연구하지 않을 때 제 주관, 육성
이 심각히도 많이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사랑아, 맞다.
자기 주관, 육성, 올바르지 못한 인식관 등
나와 잘 못 통하게 만드는
마음의 들보를 빼내는 최고의 재료는
바로 ‘선생 통한 시대의 진리’이다.
현재 섭리사 가운데에 아직도 예배 시간에
한 번 말씀 듣고 접하는 수준으로
만족하는 신부들이 많은데 너희가
삶 속에서 말씀을 멀리하고 가까이 하지 않는 만큼
나와의 소통을 방해하는
자기 주관, 육성, 인식관 등이 생겨남을 명심해라.
자기 주관은 한 번 비워 냈다고 해서
다시는 안 생기는 것이 아닌
매일매일 잡초처럼 자라나는 것이기에
매일매일 말씀과 기도로 비우고 뽑지 않으면
다시 그 자리에 그대로 자라나 있는 게다.
자기 주관, 육성을 완전히 떨쳐내 버리고
나의 마음이 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시대의 진리가 곧 자기의 사상, 이념, 정신으로
완전히 박혀 버리는 것이다.
고로 선생같이 그 수준이 되기 위해
매 삶 가운데에 끊임없이
시간만 나면 가까이하고 또 가까이해야만 한다.
이래야 지속적인 자기 비움,
완전한 자기 비움의 상태가 유지되며
말씀 곧, 나 성자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게다.
명심하여라.
고로 마치 운동, 건강관리도
꾸준히 계속적으로 해 줘야 하는 것이듯
진리로 연단하여 자기 주관, 육성 비우기
또한 마찬가지이지.
알겠느냐.
(아멘!)
이와 같이 계속해서
진리로 자기 마음의 들보를 깨닫고 비우며
점진적으로 나와의 소통의 수준, 사랑의 수준,
휴거의 수준을 높여 감이다.
자기 주관, 육성의 들보를 빼내는 만큼 좋게 변화되
니
영 휴거의 시기인 이때
너희는 이러한 들보 빼내는 것을 작게 여기지 말고
호리라도 남김없이 비우고 버려라.
알겠느냐.
또한 오늘 말한 대로
선생처럼 깊은 시대의 진리로 자기를 비우고 만들어
온전한 분별력으로 계시도 분별하며 믿고 따름이다.
온전히 통해야 나와의 사랑도 휴거도 이루어지는 게
다.
사랑한다.
이 영 휴거의 시기에
진리로 자신을 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진리, 믿음, 계시의 관계성에 대해 밝히 이른
성자니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