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3.11.11 (월)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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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을 알고 편지 써라
작성일 : 2013. 9. 16(월) 새벽 3시
작성자 : 정은조
(새벽기도 전에 전날 주일말씀(혼을 신령하게 만들어라.
혼에게 계시하고 말하겠다)을 읽은 후, 기도하려는데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만들어준 조미료 등이 잔뜩 들어간 떡볶이를 먹어서 속이 매스꺼웠습니다.
속이 매스꺼워서 기도할 기분이 안 나서 성자께
‘자극적인 조미료들이 들어간 떡볶이를 먹었더니 역시 속이 안 좋네요. 성자와 선생님께 이런 음식 안 드리고
싶어요.
이처럼 선생님께는 속이 불편해지는 편지
안 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자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
* 성자의 말씀 *
안 좋은 것은
역시나 안 좋은 것이다.
사람도 그러해.
자기가 변하지 않으면
역시나 안 좋은 것이다.
그래서 변하지 않고는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나와 선생에게
안 좋은 음식 주고 싶지 않다 생각 들며
그런 편지 드리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느냐?
잘 생각했다.
내가 준 감동과 깨달음이다.
선생은 섭리사의 오만 편지들을 다 받는다.
다 자기 입장에서의 편지들이다.
그런 편지들을 보는
선생의 속이 어떠하겠느냐.
각종 조미료가 들어가
몸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상황상 어쩔 수 없이 그 음식 먹었더니
네 속에서 거부하는 것처럼
선생도 그 속에서
어찌 그 편지들이 달갑게 받아지겠느냐.
사람들은 선생이 어디 있는지 까지는 생각 못하더라도
선생도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될 텐데
그리 못하는구나.
선생이 여태껏
너무 다 받아주고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너희들의 길이 잘못 들여졌고
너희의 인격 문제다.
그리고 선생을 제대로 몰라서
쓸 편지 안 쓸 편지 구분을 못하고
막 쓰는 것이다.
선생에게 너희의 속상한 것들을 토해내고 있다.
그러니 선생이
어찌 그 속이 답답하지 않겠느냐.
거기서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것이고
일일이 확인하느라
여러 번 편지가 오갈 시간에
진짜 선생이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탄이
너희의 잘못된 습관과 사고로
선생의 일하는 시간을 뺏는 것이지.
너희들이 제대로 알고
선생을 제대로 대해주어야 해.
너희들의 입으로는
선생님의 리듬이 깨지지 않게 기도하지만
너희들의 행실로는
선생의 리듬을 깨는 편지들을 하고 있고
그것은 곧 너희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선생이 지었던 십자가를
이제는 지지 않겠다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썼던 자기 입장만의 편지들이
선생을 괴롭게 한 고로
내가 그 십자가 내려놓으라 했다.
선생이 너희들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너희들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선생님은 제 맘 몰라서 그래요.’라고 하는 자
아직 선생을 모르는 자다.
그가 진정 내 몸 되어 사는
나 성자라는 것을 모르는 자이다.
그러니 나 성자에게는
감히 하지 못할 편지를
선생에게 하는 것이다.
지금껏 선생이 그런 너희들을
일일이 감싸 안으며
너희를 구원시켜 왔지만
내가 이제는 그러지 말라 했다.
너희들이 근본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해서는
휴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섭리사 천국을 이루며 가는 이때에
선생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의 조건으로
이루어 온 것도 모르고
아직도 선생에게 너무나 많은
심정의 십자가를
섭리인들이 지게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선생에게
이제 그 십자가 내려놓자고 했다.
나 또한 너희를 포기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너희의 구원과 휴거를 위해서 그리한 것이니
나 성자마저 오해하는 자 없길 바란다.
선생이 그곳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선생이 나와도 마찬가지다.
선생이 나와도
진정 너희들이 나 성자와
일체 된 선생으로 보지 못하고
전반기 때처럼
그저 선생으로 보고 대하면
결국 너희들이
또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온 자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느냐?
이제 온 자들은
선생에 대해 더 깨닫고 더 배우라.
이제 온 자나 오래된 자나
선생에 대해 근본적으로 배우고 깨닫지 못하면
결국 선생을 통해
나 성자에게 함부로 대함이 되어
그 운명이 달라진다.
섭리사는 많은 인생들이 와서
그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해
자기 인생의 가장 귀한 때를 맞이했어도
그 귀함을 모르고 함부로 살아
그 기회를 놓치는 자도 있고
그 귀함을 알고 주를 좇아
제대로 그 인격과 사랑을 닦아
인생으로서 최고의 성공을 하는 자들이 있다.
어느 인생을 살고 싶으냐.
이 귀한 휴거의 때에
내가 보낸 자의 몸을 쓰고
나 성자가 이 땅에 강림한 때에
너희의 운명이 갈리어 간다.
휴거되는 자와 되지 못한 자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그 모든 기준은
선생을 누구로 알고 대함이냐이다.
이미 답을 말해주어 머리로 안다하나
너희의 굳은 마음
즉 뇌가 풀리지 않아
입으로 알고 말하고
기도도 입으로는 표현하지만
실체 그 삶이 아직 그리되지 못하니
내가 선생 통해
편지에 대해 말씀으로 이른 것이다.
편지 시대가 가고
혼체로 만나는 시대가 왔다 하여
편지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육으로 만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차원 높게 선생을 알고 대하는 자
선생을 진정 깨닫고
선생을 진정 살아있는
나 성자로 대해주는 자
그런 자를 어찌 나 성자가
선생을 통해 만나주지 않겠느냐.
왜?
그런 자는 자기 입장에서만
자기를 보지 않고
성자인 선생이
어떻게 자신을 볼지 느끼고 깨달아 알기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선생에게 편지 하지 않는다.
이미 선생이 자기를 다 안다는 것을 알고
회개할 것은 진정 회개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고친다.
그러하니 그런 회개를 하고
자신을 고친 자들의 편지는
선생을 기쁘게 한다.
나 성자를 기쁘게 한다.
그런 편지들이 선생에게 힘이 되어
선생이 하는 일의 리듬이 살아나게 한다.
사람이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 하지 않더냐.
선생도 그러한 것이다.
선생에게 가리지도 숨기지도 말되
그것이 자기 입장, 자기중심이면 안 되고
절대적으로 선생과 나 성자가
일체란 것을 깨닫고
성자의 입장에서 너 자신을 봤을 때
하나도 걸릴 것이 없을 때
그때 당당하게
선생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어린 섭리사가 아니다.
선생이 나와도 마찬가지다.
전반기와는 정말 다른 차원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내가 선생 통해 섭리의 법을 주며
너희들을 그에 해당하는 자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서운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너희가 더 발전하는 길이며
차원을 높이는 길이다.
선생과 편지가 아니라
혼체로 만나자는 것은
선생의 마음을 알라 함이며
그를 통해
나 성자의 마음을 알라 함이다.
선생 다시 육으로 함께 뛸 그날을
어린아이처럼 마냥 기다리지 말고
지금부터 선생 마음을 헤아리며
그와 일체 된 나 성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선생과 일체 되어 살아라.
그럼 그가 나와서
너희와 육으로 함께해도
나 성자가 원하는 차원의 역사를 갈 수 있다.
그 준비를 지금 선생을
혼체로 만나며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을 아는데... ’라고 하는 자들
그 교만에 묻힐 것이요.
‘나는 선생님을 모르는데...’ 하는 자들
그 자신감 없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에
스스로 낙심하게 된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선생을 아는 것이 열려있다.
내가 선생을 쓰기 때문에
선생의 영혼육을 다 쓰기 때문에
나 성자를 아는 자 선생을 알게 되고
선생을 아는 자 나 성자를 알게 된다.
이 말인즉슨 선생과 통하는 자
나 성자와 통하는 자라는 뜻이다.
너희가 진정 선생과
혼체로 통하기를 애쓰는 이유도
선생을 통해 나 성자와 통하기 위함이다.
나 성자가 쓰는 영혼육인 선생과 통하므로
나 성자와 통하기 위함이다.
그것을 제대로 알고
나 성자를 선생의 혼을 통해 통하는 자
선생의 마음 나 성자의 마음 알아
자신을 고치고 온전하게 만들어 휴거되고
그런 준비로
결국은 선생과 함께하게 된다.
선생과 함께함이 기대되지 않느냐.
나 성자가 선생의 육을 통해
너희 모두와 만나 주는 날이 기다려지지 않느냐.
그럼 먼저는 그 마음부터 알기다.
그것이 혼체로 통하는 방법이요 목적이다.
기도 많이 하고 신령해지라 하니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휴거되라 하니
휴거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회개하라 하니
회개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너희가 기도 많이 해서 신령해지는 것의 목적은
신령함 그 자체가 아니라
선생의 혼, 영을 통해 나 성자와 통하기 위함이요
휴거되고픈 목적은
휴거 그 자체가 아니라
선생 통해 나 성자와
영원히 사랑하며 살기 위함이요
회개하는 목적은
천국 가기 위함이 아니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그게 그거 아닌가 생각하는 자들 있지만
그 순서가 다르다.
그 마음의 순서에 따라
어떤 자는 선생을
자기 죄를 사함받기 위한 휴거되기 위한
신령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어떤 자는 목적으로 삼기도 한다.
육으로는 똑같은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마음의 순서에 따라
선생을 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목적으로 삼기도 하는 것이다.
선생을 목적으로 두는 자는
나 성자와 선생을 일체로 보았기 때문이나
선생을 수단으로 두는 자는
그를 분체라는 말에 갇혀 뇌가 굳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니다’ 생각 말고
자신을 제대로 돌아볼 때
너희의 굳은 뇌가 풀려
선생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대하게 되어
섭리사 한 영혼 한 영혼이
휴거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선생이 지금 너희들의 휴거를 두고 기도할 때
꼭 이를 제대로 깨닫고
섭리사 모든 자들이 휴거되기를 원하노라.
너희의 사랑의 대상
선생과 영혼육 온전히 일체 되어 나타나는
나 성자니라.
(아멘. 떡볶이 먹고 속이 매스꺼워서 선생님 생각했는데
이것으로도 계시를 주시다니요? )
나와 마음 통하면 바로 계시 준다.
너도 알지 않느냐.
진정으로 나와 마음 통해
내가 하고픈 말 마음껏 하게 해주는 자에게
나 성자도 말한다.
선생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이다.
선생이 이말 저말 마음껏 해도 시험 들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지 않고
성자와 선생의 입장에서 생각할 자들에게
영혼육으로 마음껏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런 차원으로 올라가자.
이것이 휴거되고, 차원을 높이는 방법이다.
사랑한다.
‘사랑해’ 이 사랑한다는 말도
차원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것을 품은 말이 되니
그 차원에 따라 느끼듯
선생의 말 한마디도 그런 것이다.
선생의 말 한마디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고 캐치해내는
차원 높은 자들이 되길 바라노라.
샬롬.
(선생님께 최근에 제가 그런 회개해서
이런 계시 받을 수 있는 거죠?)
* 선생님 말씀 *
그렇지.
깨닫지 못한 자에게 이런 글 못 준다.
성자께서 너에게 이 글 허락하심은
네가 그러한 회개를 했기 때문에
그것이 조건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회개함은
성자께도 함께 회개함이었으니
성자께서 그 회개를 받으시고
너에게 이 글을 주신 것이다.
진정으로 깨닫고 그리 살길 원하노라.
사랑한다.
(그런데요, 선생님.
저는 혼체로 이렇게 선생님을 만나도
육으로도 너무 너무 만나고 싶어요.
이게 혼체의 가치를 몰라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육이 있는 때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요? )
내 육이 있어서도 그러하고
네가 생각하는 만난다는 것이
편지라는 한계에 갇혀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라.
편지 한 장 받는 것을 원하는 것인지
진정 나와 대면할 수 있을 정도의 삶을 통해
나에게 나오는 것을 원하는 것인지.
지금은 실체 시대다.
편지 한 통 받고 못 받고에
신경 곤두세우지 말고 그것을 넓혀서
나와 대면하고 나와 육으로 만나도
부족함이 없이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도록 살아라.
그것이 너의 완성이니라.
(아멘. 선생님과 실체로 육으로 만날 만한 삶을 살겠습니다.
선생님, 꼭 육으로 만나주세요.
육으로도 선생님과 함께하고 싶어요. 꼭이요)
나 육으로 만나는 것은 예정이다.
수만 명 속에서 나 만나도
만나는 것이니까.
그런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만나느냐는
너희가 결정하고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그 날에 미련이 없도록
그 과정을 지금 사는 것이다.
나 사랑하면 편지도 자주 쓰고
내 맘 알아주는 편지 쓰고
내 심정 헤아려
네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 행하는 것이다.
이젠 그런 장성한 자가 되어
내 앞에 나오너라.
그런 너를 보고 기뻐하며
그런 너를 보고 사랑하며
내가 너를 대하겠노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