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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3.11.15 (금)

금요 명설교

선포일
2013.11.15 (금)
성경 본문
사도행전 9장 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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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5일 선생님 명설교/ 2005.10.23 사도들의 정신, 섭리인들의 정신 본문> 사도행전 9장 31-34절 할렐루야! 오늘은 10월 23일, 주일은 우리가 거룩함을 나타내는 날입니다. 이제 각 나라는 계절이 조 금씩 바뀔 것입니다. 가을철로 바뀌고, 어느 나라는 겨울철로 바뀔 것입니다. 먼저 주일말씀 본문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부터 34절까지입니다. 봉독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 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 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 병으로 상 위에 누운 지 팔 년이라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 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35절까지 봤습니다. 그러면 찬양 먼저 드리고 말씀을 듣겠습니다. 찬송가 502장, “태산을 넘어 험곡 에 가도” 찬양을 먼저 드리고 말씀을 듣겠습니다. 모두 일어나 주시고, 반주자들은 반주해 주시고 준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1.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후렴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2.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네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 후렴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3.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찬란한 천국 바라보네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후렴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이제는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도행전사에는 많은 내용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9장도 전장을 다 읽 으면서 죽 앞의 것까지 봐야 되는데, 너무 본문이 길어서 결론적인 것만 상고했습니다. 사도행전사는 사도들의 행전사입니다. 사도들이 활동한 부분들이 나와 있습니다. 주님, 예수님이 활동 한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활동한 부분들이 나와 있습니다. 제자들이 역사하며 행했던 일들이 여기에 모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던 일들이 여기에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사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안 계셨을 때 일어났던 상황들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진행하여 수가 자꾸 더 많아졌더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또 신약역사를 반대하고 막고 했지만 그 중에 뛰 어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반대도 많이 했지만, 그가 돌아와서 회심하여 다시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믿고 복음을 폈던 자가 있으니 바로 사울입니다. 그가 회심하기 전,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았을 때는 사울이었고 돌아왔을 때는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 다. 그는 원래 로마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나라로 와서 살게 되었는데 살게 된 동기 는 인생의 곤고, 다시 말해서 인생의 길을 찾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로 왔습니다. 왜 이스라엘 나라로 왔는가 하면 이스라엘은 그 때 종교의 핵심지이고 종교의 근원지였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율법을 중심해서 철저하게 하늘을 섬기고 사는 그 곳에 길을 찾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러 이스라엘 나라로 온 것입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속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그런 곤고에 빠져서 인생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에 남달리 철저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아주 열심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이스라엘 민족에 와서 한창 성장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일어났던 일들이 바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고 활동했던 때입니다. 그 때 유대종교인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종교의 소란이 일 어났습니다. 율법을 중심해서 한 종교의 체제가 이루어져 죽 가고 있는데, 다른 종교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율례와 법칙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니까 “아니, 왜 따로 만드느냐. 하나님을 믿는데 똑같이 하 지.” 하며 이들이 이해를 못 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섬기고 구원받는데 율법 안에서 하면 되었지, 뭘 따로 만들어서 누구를 도대체 중심 하는 거냐? 율법에서는 모세를 중심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모세를 중심해서 하나님이 구약의 율법 말씀 을 주었으니까 그대로 살면 구원이고 이상이 이루어지는데...” 했습니다. 율법 세계는 구약시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역사를 말합니다. 내나 하나님을 중심한 역사입니다. “그런데 무슨 다른 것이 필요하냐. 용납할 수 없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서 복음을 전했을 때 율법의 말씀을 전하기보다 어떤 새로운 것을 전하는 것이 전체 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율법에 속한 자들이 하도 반대하고 핍박하니까 “나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실상은 율법을 더 가르치고 더 실천하러 온 사람이다.” 했습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것은, 이미 배운 사람들에게는 더 가르칠 필요도 없지만 율법에 속한 사람들이 안 오고 오히려 반대하고 핍박하니까 이방에 있는 안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이 따르기 시 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시 율법을 가르치고 아브라함을 가르치고 이삭을 가르치고 모세를 가르 치고 엘리야를 가르쳤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이 왔으면 이미 다 배웠는데 그것을 자꾸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 에 핍박받고 율법에 있는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율법에서 어긋난 일이다. 제도, 율례, 법도, 모든 예식에서 어긋났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배척하고 반대하고 막고 했습니다. 이를 유대 종교인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의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몰랐습니다. 새 로운 역사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항상 하십니다. 종교는 하나님의 것이고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인데, 특히 종교의 세계를 통해서 온 세상을 이상세계 를 이루지 않습니까. 몰라서 항상 무지하게 되고, 몰라서 싸우고, 몰라서 망하고, 몰라서 못살게 되고, 몰라서 죽는 것입니 다. 그러니 아는 것이 얼마나 크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말해 주고 알 려 주는 것입니다. 그 때에 사울이라는 사람이 율법 세계에 속해 있었는데 이단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종교가 나타났을 때 그래도 율법주의에 속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냥 있지 않고 반대하고 사기 등등, 혈기 등등, 교만 등등하여 신교 예수님의 복음을 막고 예수님을 핍박했습니다. 예수님이 살았을 때도 핍박하고 예수님이 죽은 후에도 핍박했습니다. 핍박하고 막고, 그리고 신교인들 을 쫓아가서 따지고 때리고 무력을 감행했습니다. 사울이 혼자 그러기도 하고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무지한 짓을 했습니 다. 사울이라는 청년이 그렇게 했습니다. 노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10대도 아니고, 20대도 아닌 30대 선에 사는 사울이었습니다. 혈기 당당한 시기지요. 그렇게 돌아다니며 핍박하고 아주 못된 짓을 다 했습 니다. 결국 사울만 나타나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도망쳤습니다. 그냥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습니다. 누가 몽 둥이로 때려서 죽일 수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이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참고 오히려 싸우느니 도망치고 오히려 피하고 그랬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피 하고 도망치니까 사기 등등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도망가면 개새끼도 막 쫓아다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톡 차버리면 깨갱거리고 도망갑니다. 그래서 사울이 더 사기 등등, 혈기 등등, 교만 등등해졌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죽은 후에 사울이 예수 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 혈기 등등, 교만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발길을 옮겨가고 있었을 때에 예수 님이 그것을 보시고 나타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너는 나를 반대하고 막느냐?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나타나니까 사울이 예수님을 쳐다봤는데, 그 때 예수님은 육인체가 아니고 영인체였습니다. 예수님의 영인체를 쳐다봤을 때 그 빛이 너무 찬란하니까 그 자리에서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왜 나를 반대하고 핍박하고 그런 짓을 하느냐?” 알고 보면 유대 종교, 율법에서 배운 대로 이단이니까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고, 쉬운 말로 하나님의 법대로 안 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제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 무식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서 기다리는 메시아였습니다. 전 율법에서 메시아가 올 것을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서 외치고 예언하고, 4천년동안 메시아가 온다고 기다렸는데 바로 그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핍박 반대하다가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안타깝고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 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온 인류를 위해 대속물로 결정되어 몸을 내어주어 죽었던 것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대 신 죽고 의인으로서 죄인들을 구원시키는 일로 결정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고 있는 판국에 사울이 “당신은 누굽니까?” 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주인공 예수다. 알지? 지금은 내가 너희 세상에 없노라.” 하니까 예수를 알고 있었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서 부딪혔던 것 입니다. 눈이 시어 보이지 않는데 빛 가운데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겠습니까. 놀라고 두 렵고 무섭고 떨렸을 것입니다. 그 때 빛을 보고 눈이 멀었습니다. “네가 눈이 멀어 지금 보이지 않지? 육신이 눈이 멀어 보이지 않듯이 네 인생의 눈이 멀었다. 삶의 눈이 멀었다. 신앙의 눈이 멀었다.” 이것을 지적했습니다. “네가 낫고자 원하거든 다메섹에는 아나니아라는 내 제자가 있으니 거기에 가서 네가 나머지 이야기 도 듣고 기도도 받아라. 그러면 네가 나아지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곧 아나니아에게 환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나니아야!” “네, 주님!” “다름이 아니고 사울이 곧 너를 찾아 올 거다.” “사울이 오다니요?” “핍박하는 사울 있잖아. 두 사람도 아니고 한 사람이잖아. 올 거야. 오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시대의 말씀을 해 주고 기도를 해 줘라. 그러면 나을 것이다. 그가 눈이 멀어서 올 것이다.” “누가 눈을 찔렀나? 왜요?” “묻지 말고.. 그가 온다. 오면 그가 되어진 것을 말해 줄 거야.” 그러고는 사라졌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있으니까 누가 찾아왔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예수를 믿는 제자가 있습니까?‘ 아나니아가 나가서 맞으니 사울을 누가 부축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보니까 정말 사울이었습니다. 사울 이 길에서 되어진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당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가 나타나서 ‘왜 나를 반대하고 핍박하느냐.’해서 ‘누굽니 까?’ 했더니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했다. 그러고부터 눈이 멀어서 눈을 뜰 수 없게 되었다. 이리로 가 라는 음성이 들려서 오게 되었다. 예수께서 이리로 가보라고 말씀했다. 가면 이런 일, 저런 일을 해 주 고 기도도 해 줘서 나을 했다. 그래서 왔노라.” 했습니다. 사실상 아나니아는 사울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사족이 떨리고 두렵기도 했지만 예수님이 말씀했기 때 문에, 눈이 멀었다고 하니까 ‘까짓 거 눈먼 놈이 보면 뭘 보랴.’ 하고서 긴장되었지만 그를 맞았던 것입 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나타나서 그 죄인 된 눈먼 인생을, 신앙적으로 인생의 눈이 먼 자를 육신의 눈 을 멀게 해서 깨우쳐 준 것입니다. 정신상태가 눈이 멀었었습니다. 그를 실제로 눈이 멀게 해서 깨우쳐 준 것입니다. 이 때에 아나니아가 그 이야기를 듣고 죽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 예수께서 큰 일꾼으로 쓰려고 나타나시고 말씀하신 것 같다. 당신의 육신의 눈이 먼 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그 밝은 빛을 감히 인간으로서 봤으니 쓰러질 수밖에 없고 눈이 멀 수밖에 없지만 그로 인 해서 보건대 당신이 살며 하는 짓이 봉사의 짓을 하고 있다. 신앙의 봉사요, 시대의 봉사요, 율법에 속 해 있지만 실상은 시대의 봉사였다. 우리말을 들어보라.” 아마 우리 시대와 같이 시대에 맞는 신약 말씀을 30개로 나눴든지 20개로 나눴든지 해서 급히 핵심 적으로 가르쳤을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올 것으로 생각하느냐. 땅에서 왔다. 네가 길에서 만난 자 가 그리스도다.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온 자다. 구름 타고 온다는 것은 저 구름이 아니다. 사람 구름을 타 고 오지 않았느냐. 시대가 무지함으로 반대하고 핍박하고 막았다. 그가 사울 당신과 같은 죄인들을 대신 해서 죽어 주었다. 죽은 대신 너를 구원할 수 있는 조건이 생겼기 때문에 다시금 나타나 너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지금이 때가 어느 때라고 구약의 율법 속에 있느냐. 하나님은 때에 맞게 역사하시 는 하나님이신데 맨날 구시대에 속해서 사느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출발했을 때에 받은 십계명, 지금이 때가 어느 때라고 그 때 이야기만 맨날 하느냐? 4천년이나 했으면 되었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사울이 말귀를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는 깨친 만큼 깨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 니까 듣고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아직도 눈을 뜨지 못했을 때 아나니아가 말하기를, “예수님이 아까 나타나서 맞으라고 했으니 까 내가 맞았지, 맞으라는 소리를 안 했으면 내가 사울한테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할까봐서 이렇게 있었 겠느냐. 도망쳤지. 그러나 음성을 듣고 맞게 되었노라.” 했습니다. “기도를 해 주라고 했으니 마지막으로 기도를 하자.” 하고 기도를 해 줬습니다. 사울의 눈이 떠졌고 눈 먼 것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신약역사의 큰 회심의 주인공입니다. 반대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회심의 주인공입니다. 예수님 시대 때 결국 그를 예수님이 전도했습니다. 죽어서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기도를 해 줬습니다. 거꾸러뜨리는 일은 예수님이 하시고, 제자들이 뒷일을 했습니다. 사울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무 무지한 짓을 했다.’ 하고 회심하고 회개했습니 다. 그리고 회심한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전하자.” 해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다녔습니다. 9 장을 죽 보면 한 장 안에 이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자기가 너무 엄청나게 핍박하고 반대하고 복음을 막던 것이 양심적으로 너무 그 가책이 되어 칼이 가 슴을 찌르는 것보다 더 쓰리고 아팠습니다. 주의 복음을 전함으로 그 가시 박힌 마음이 사라지면서 흔 적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복음을 전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 핍박하 고 반대하고 쫓고 괴롭히더니, 이제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깨닫고 ‘율법에서 말씀한 것이 예수 그리스 도를 두고 말했구나. 하나님이 온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영으로 오시고 육 신은 지상에 있는 자 중에 택하여 그를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셨구나!’ 하고 확실히 깨닫고 알게 되었습 니다. 율법에 속한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사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기도 또 율법에 속해 있으면서 지나칠 정도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대의 율법에 있는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율법을 지 키고 율례를 지켜 왔습니다. 바울도 과거에 지나칠 정도 했기 때문에 자기가 말하면 사람들이 다 수긍할 정도였습니다. 말도 잘 하고 조리 있게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이 메시아다. 그 따르는 사람들이 맞다. 그가 그리스도다. 율법에서 말 한 대로 그리스도가 맞다. 내가 반대하고 핍박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내가 이런 일이 있었고 이렇게 되었다. 눈이 멀었었다. 그 제자에게 가서 말씀을 배웠다. 그에게 기도하고 눈이 고침을 받았다.” 하고 전하고 돌아다니니까 사람들이 사울이 미치광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사람들을 핍박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더니 미쳐버렸구먼.” 하며 율법에 속한 사람들이 “미쳐도 왜 저렇게 더럽게 미쳤냐? 예수를 증거하며 미치게 되었냐. 거기에 말려들어 갔 구먼. 예수를 증거하며 어떻게 저렇게 되었느냐?” 하며 오히려 바울이 하는 짓을 제재시켰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율법에 속해서 제사장같이 행했는데 어찌 그렇게 되었냐? 이것 놔두면 안 되겠 다.” 하며 막고, 율법에 속한 사람들이 “이거 때려죽이자. 반을 죽여 버려야지 놔두면 안 되겠다.” 그러 면서 오히려 바울을 쫓아다니며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도망쳤습니다. 이리저리 도망치며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주고, 예수님을 증거하며, 예수님이 자기 육신을 쓰고 일한다고 생각하며 아주 담대하게 예수님이 살아서 전하듯이 불같이 전하고 칼같이 쑤시며 속이 시원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아, 들어라. 나 바울을 알지 않느냐? 내가 본래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고 로마 사 람 아니냐. 내가 인생의 곤고로 길을 찾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이 나라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에 속한 나라가 아니냐. 율법을 믿고 열심히 했더니만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참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그러 나 인생의 근본 문제가 안 풀리더라. 메시아가 온다고 메시아를 찾고 기다렸다. 물론 모세가 하나님이 보낸 율법의 주인공이 아니냐. 율법을 믿고 따랐다. 율법에서는 죄를 지적은 하지만 죄를 해결하는 길이 없지 않느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낸다고 했는데 그가 와서 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알고 보 니까 내가 핍박한 예수가 그였다. 그가 나를 구원시켜 줬다. 그러니까 구원주가 아니냐. 내가 눈이 멀어 미친 짓을 하고 돌아다니며 반대했을 때 누가 나를 돌이키게 했느냐. 예수가 그리하고 그 제자들이 말 씀을 가르쳐서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 이 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은 다 미치광이들이다. 잘못된 자들이 다. 돌이키라. 회개하라. 나 바울은 말하노라.”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율법에 속한 자들이 바울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신약역사로 왔으니까 신 약의 주인공으로 왔으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핍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누가 가도 신약권으로 가 면 무조건 핍박했습니다. 제 아버지가 가도 아들이 핍박하고, 제 애인이 가도 핍박하고, 연약한 여자라 도 강한 남편이 신약역사로 갔으면 핍박했습니다. 왜 핍박을 해도 꼼짝을 못하는가 하면, 주먹 한번 쓰고 그저 들이받으면 끝나는데 왜 못 했는가 하면,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는 자는 그렇게 하지 마라. 절대 하지 마라. 혈기 부리고 지 할 짓 다 하면 구원 못 받는다.” 했기 때문에 못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의 율법 속에 속한 사람들은 구원이고 팔원이고 없고 무조건 할 짓 다 하면서 왔지 않습니까. 혈 기 못 참고, 교만 못 참고 막 했습니다. 모세가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복지로 갈 때도 그 혈기, 교 만, 제 주관을 못 버려서 못 가지 않았습니까. 율법에 속한 자들은 그런 족속들입니다. 율법으로서는 죄는 지적하는데 죄를 회개 받고 해결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컸던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지적했지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메시아가 와야 해결해 주고 메시아가 있어야 죄를 용서해주고 “그래 알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죄지으면 안 돼.” 하는데 그것을 해결을 못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신약역사를 통해서 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구세주를 보내서 그를 통해서 너희 들 죄를 용서해 주고 사해 주겠다.” 했는데 율법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법은 죄를 지적하고, 용서하 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신약역사는 잘될 수밖에 없고 사람의 심령이 살아나고 정신이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 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핍박을 받았는데, 너무너무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반대한 만큼 10 배 20배 핍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다 그냥 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한 만큼 핍박을 받는 것입니 다. 쉬운 말로 우리가 섭리를 따라오면서 전도한 사람들을 볼까요? 섭리에 올 때 핍박하고 반대하다가 온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바울처럼 회심하고 오면, 그들은 이상하니 다른 사람보다 진전이 빠 르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전도하면 그가 또 속을 썩이고 흔들거리고 제대로 신앙의 뿌리가 깊이 안 들어갑니다. 그게 행위대로 받는 것인지, 체질대로 자식도 부모의 체질 따라 하는 것인지... 그래서 처음 오는 사람들은 절대 빨리 믿고, “믿습니다.” 해야지, 무슨 말을 하면 뭘 요리조리 따져봅 니까. 물론 사람이 두뇌가 있기 때문에 따지고 재어보고 합니다. 그러나 그 두뇌 가지고는 잘 모릅니다. 나도 여러분들과 똑같은 사람인데 20년을 여러분보다 더 성경을 보고 기도를 더 많이 했습니다. 그렇 게 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안 사람이 자기가 사망길을 가겠습니까? 성경을 많이 읽고 더 온전해지기 위해서 그런 것인 데, 더 나쁜 길을 가겠습니까? ‘저 사람 따라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하고 따라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어떤 물건을 사는데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그 기술을 배운 사람이 물건을 사면 손해 가는 물건을 사겠습니까? 그래서 전문가에게 물건 사달라고 하면 잘 사줍니다. “부탁합니다. 나는 정말 이것에 전문가가 아닌데, 한 200만 원짜리를 사고 싶은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전문가에게 시키면 전문가가 “아, 그렇습니까.” 하고 웃으면서, “그렇지요. 나도 이것 배우는 데 한 10년 이상 20년 동안 배웠습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조금 헐하게도 사주고 적당하게 사 주십시오. 내가 오늘 점심 내겠습니다.” “아이고, 무슨 점심입니까.” 이와 같이 사기꾼이 아닌 온전한 전문가가 해 줘야 훨씬 이상적입니다. 모든 일을 할 때 전문가를 꼭 써야 됩니다. 아니면 본인이 전문가가 되어 서 하든지 해야 됩니다. 이 시대도 분별하려면 나와 같이 10년, 20년, 30년 해봐야 됩니다. 지금은 이 일에 속한 지가 40년이 넘었습니다. 그 정도면 종교에 대해서 전문가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40년 동안 운동을 했어도 운동에 대해서 어느 정도 도사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집을 지 었어도 아마 거기에 대해서 능통하고, 설계만 해도 능통할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했으니 전문가라 는 것입니다. 내가 특히 제일 잘하는 것이 성경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잘 아는데 성경말씀 아는 것을 제일 많이 압니다. 하나님과 인생에 대해서 제일 잘 압니다. 그러니까 오늘 처음 와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 의심할 것 없이 잘 듣기 바랍니다. 내가 나쁜 길로 인 도하겠습니까. 나쁜 길로 인도하면 나도 나쁜 길로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도 오랫동안 성경을 읽어봤기 때문에 차근차근 성경말씀 이야기를 죽 꺼내서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이 한번 들어도 쫙 들어오지 않습니까. 원래 1시간 40분 말씀을 하 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다 못하지만 핵심적인 이야기는 충분히 해 주는 것입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핍박받고 고난 받았습니다. 그전에는 남을 핍박하고, 새로운 종교로 가는 사람들을 모르고 막았습니다. 이러다가 깨닫고 거기를 따라가니까 이제는 자기가 또 다른 사람에게서 핍박받았습니다. 모든 인생살이는 그렇습니다. 모르면 핍박하고, 모르면 반대하고, 모르면 미워하고 모르면 죽이고 그럽니다. 쉬운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떤 한 남자가 자기의 이상적인 배우자를 찾으러 10년 동안 다 녔습니다. 그런데 못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에이, 틀렸다.’ 하며 인생을 포기하며 살다가 결국은 막 살 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다 보니까 여자들끼리 싸움이 붙어서 패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두 쪽 편은 다 들 수 없고, 한쪽 편을 들어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야 자기가 어깨가 올라가고 고임을 받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쪽 편을 드는데 상대편 여자가 “니가 뭐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남자가 쫓아가서 “이년아, 니가 뭐냐?” 하며 후려 때리고 패고 “니가 뭐라고 나한테 대드느냐?” 하며 싸웠습니다. 그래서 한쪽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칭찬을 받고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참으로 남자 다운 남자라고 칭찬도 받았습니다. 그 후에 그 남자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노총각으로 살 수 없어서 결혼하게 되었는데 중매가 들어와 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만나 보니까 그 여자는 옛날에 자기가 지나가다가 패싸움 할 때 때렸던 여자 였습니다. 자기가 실컷 개같이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던 여자였습니다. 너무너무 난처하고 너무너 무 부끄러웠습니다. 이와 같이 모르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와 실컷 싸우고 때리고 조지고 괴롭혔는데, 알고 보니까 자기를 출세시키고 자기를 길러준 사람의 아들을 그렇게 때리고 괴롭혔던 것입니다.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이후에 자기를 길러 준 사람에게 가보니까 “우리 아들이 오늘 지나가다 얻어맞아서 병원에 갔다.” 했 습니다. “어떤 놈이 그랬냐고. 내가 그놈을 놔두지 않겠다고. 내가 은공 갚을 길이 없는데 내가 은공 갚아 주 겠습니다.” 하고 쫓아가 봤습니다. 가보니까 자기가 때린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미안하고 얼마나 마음 이 불안하고 얼마나 죄송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바울 선생도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잘한다고 한 일이었는데, 자기를 구원하러 온 자를 그렇 게 핍박하고 미워하고 반대하고 죽이고 때리라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난처하겠습니까. 바울이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이제 난 어린아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이제 난 어린아이다. 만 삭되지 못하여 난 생명체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너무 몰라서 못했다고 했 습니다. 바울 선생의 회심록 성경에 보면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주제가 아직 안 나왔는데 주제는 “사도들의 정신”입니다. 또 하나를 붙인다면 “섭리인들의 정신”입니 다. 이제 바울이 사도가 되니까 만삭되지 못하여 난 생명체라고 하는 그런 정신이 들어갔습니다. 기세 등 등 부리던 자가, 교만 등등 부리던 자가 자기를 작게 보고 자기를 평가할 줄 알고 자기 부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결국 예수님을 믿고 참된 시대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사도라 칭함을 받지 못한다. 나는 너무 못 된 짓을 많이 했다. 신교인들을 너무 반대했기 때문 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베드로나 안드레 등 예수님을 본래 따라다니던 사람들과 하나가 안 되었습니다. 바울 선생은 따로 복음을 전하며 돌아다녔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딱 하나 되어서 같이 한 것이 많이 안 나옵니다. 물론 돌아와서 좋아하기는 했지 만, 그런 입장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전혀 각각은 아니었습니다. 9장에도 나와 있지만 복 음을 펴며 같이 활동한 것이 있지만 전적으로 본래 예수님을 따랐던 사도들과 융합되어서 계속 안 했습 니다. 세상살이가 그렇습니다. 모르면 핍박, 반대하고 혈기 등등, 교만 등등하여 발로 차고 배타시하고 배반 합니다. 모르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까 비유로 이야기한 대로 자기가 은혜를 크게 입은 사람의 사랑하는 자를 때리고 괴롭게 했다가 알고 보니까 자기가 은혜를 입은 자의 사랑하는 자인 것을 깨닫게 될 때, 그 난처하고 창피하고 무지하고 그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와서 “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아기다. 나는 사도가 아니다. 나는 어린아이다.” 그러면서 지내다가 끝났습니다. “나는 어린아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 했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나는 죄인 중에 죄인이다. 나는 날마다 죽어 야 된다. 혈기가 죽어야 되고, 나는 날마다 나를 죽이고 살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가 내 속에 살아야 된 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후에 사울은 바울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사’는 죽을 ‘사(死)’ 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바르게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철학적인 자였습니다. 인생철학을 연구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도 많이 써서 신앙철학자 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 계속 복음을 전하고 돌아다녔습니다. 누가? 바울 사도가 그랬습니다. 그 랬더니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들의 신교인들이 핍박자가 없으니까 평안해지고 자꾸 수가 늘어 나기 시작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수가 자꾸 늘어났습니다. 핍박자, 반대자였던 사람이 예수님이 전도해서 돌아오고, 그가 와서 복음을 전하고 간증하고 돌아다니 니까 사람들이 핍박을 안 받게 되고 편안해지고 그 수가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사실 바울도 지가 힘을 쓴다고 해도 사람의 50배, 100배를 쓰겠습니까? 그도 한번 몽둥이로 때리면 꼬꾸라져 죽는 것입니다. 종교를 핍박하다가 죽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몽둥이에 맞아서 죽고, 쇠몽둥이에 맞아 죽고, 돌로 맞아 죽고, 매질 당해 죽고, 그리고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고, 심판 받아 죽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된 복음을 전하다가 매 맞아 죽고 굶어죽고, 감옥에 가 있다가 죽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 도 하고 신약시대 때 순교자 스데반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그 즉석에서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이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 이 세상은 무지로 이런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가르쳐 주어라. 이야기해 주어라. 말해 주도록 하라. 모른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복음에 속해 왔을 때는 참으로 참됨을 알고 왔을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 왔을 때는 걱정 되었을 것입니다. ‘참된 종교인가? 정말 영원히 존재할 종교인가?’ 그래서 30개론을 들어보게 된 것입니다. 교리가 없으면 흔들리니까 말씀을 들어보고 맞다고 인정하게 됐습니다. ‘태양아 멈추어라’부터 틀렸거든요. 우리가 과거에 기독교에서 듣던 것은 태양이 멈추었다 했습니다. “태양이 멈추었다. 아얄론 골짜기에서 여호수아가 싸울 때 태양이 멈추었다.” 고 천주교도, 개신교도, 유 대 종교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봅니다. 우리만이 그렇게 안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장하 는 그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멈춘 것이 아니라 10시간 싸워서 이길 것을 하나님께서 함께함으로 2시간 싸워서 이기게 했 다.” 이것입니다. 그런 일들은 지금도 하나님이 함께하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적과 싸울 때 하나님이 함께하면 오래 안 걸리고 잠깐에 끝난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거의 90% 이상이 됩니다. 태양이 멈추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태 양은 안 멈춥니다. 멈출 수가 없습니다. 왜? 안 가니까 멈출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안 가고 제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등학교 4학년만 되어도 다 알지 않습니까. 지동설, 천동설을 다 배우고 해에 대해서 배웁니 다. “해가 간다. 달이 간다. 별이 간다.” 모두 그러는데, 가지는 않지 않습니까. 지구가 돎으로 인해서 가는 것같이 보일 뿐입니다. 물론 내가 천체 연구도 배우고, 성서를 통해서 깨닫고 안 것으로 볼 때는 움직이는 별도 있습니다. 제 자리에서 도는 별도 있습니다. 중력권에 의해서, 만유인력권에 의해서 돕니다.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가 태양이 가는 것을 보듯이 그렇게 가는 것은 아닙니다. 태양이 가는 것은 그 만큼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이 가는 것은 지구가 그만큼 돌고 있다, 별이 가는 것은 그만큼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돌면서 멀어집니다. 차가 가니까 도로변의 가로수가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것은 초등학교 때나 차를 처음 탈 때나 그렇게 느껴집니다. 바다 위에 배가 가니까 섬들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섬이 간다’, ‘배가 간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옛날 천동설 시대 때에는 산이 간다, 섬들이 간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태양이 간다, 달이 간다 생각했 습니다. 그러나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이런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는 연구해서 바로 가르쳐 줬 습니다. 그전에는 한결같이 무조건 다 태양이 간다는 천동설을 믿었습니다. 한 명도 예외 없이 다 그렇다고 믿었습니다. 종교인도 그렇게 믿고 성경을 그렇게 쓴 것입니다. “태양이 가다가 멈추었다. 그래서 싸움이 일찍 끝났다.” 천동설 시대였기 때문에 종교인들도 다 똑같 이 그대로 믿고 따라왔으니까 그렇게 쓴 것입니다. 그것을, 선생님은 종교인이지만 종교와 과학과 일치를 시키고, 바르게 가르치고 오니까 맞다고 따라오 지 않았습니까. 말씀을 다 배우면 “맞다. 따라가자.” 하며 결정하고 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집에서 핍박 합니다. “왜 그곳을 가느냐. 이미 이단이라고 찍혔는데 왜 가느냐.” 그럴 때는 그냥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거기에는 성경을 이렇게 가르친다고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래야 이해가 되지, “거기는 이단이 아니더라. 내가 가서 보니까 좋은 사람도 많이 오더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친다.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철저히 이렇 게 가르친다. 그래서 다시 인생을 뜻있게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다. 비정상적으로 알고 살지 않는 다.” 하고 가르쳐 줘야 고개를 끄덕끄덕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엄마, 지금 태양이 가고 있어?” “그럼 태양이 가지 뭐가 가냐.” “어머니는... 태양이 가는 것이 아니에요. 지구가 돌고 있어요. 그래서 가는 것 같이 보이는 거예요. 태양은 안 가는 거예요.” “처음 들어본다. 나는.” “어머니는 그걸 몰라?” “모른다. 무조건 그 교회는 이단이여.” 그래서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래서 지식 있는 자가 지식을 더 알고 이곳에 와서 말씀을 듣고 이상적으로 되었습니다.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구종교에서는 하늘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종교역사 6천년동안 이제까지 누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 있었습니까. 한 명도 없었습니다. 불교, 유교, 기독교, 회교, 그리고 맹자, 공자, 각종 도교들에서도 누가 하늘에서 온다고 했는데 이제까지 한 명도 내려온 역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온다고 하고, 왔다고 하기도 합니다. 어떤 종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도 같은 곳에는 “산 속 에서 누가 내려왔다.” 합니다. 또, “우주인이 있는데 우주에서 내려왔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주 어린아이, 젖 먹는 어린아이 같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박사들이, 학자들이, 엘리트들이 믿고 따라 갑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입니다. 나는 바위 절벽 산골짝 대둔산 밑에 있는 월명동에서 나서 초등학교 나왔는데도 왜 바로 알게 되었는 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보고 바로 깨닫고 했기 때문에 온 인류의 지침이 되고 기준이 된 것입 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할 때 확실히 하라. 분명히 하라. 확실하게 하라. 그럭저럭 하지 말아라. 왜 그럭저 럭 하느냐.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확실하게 하라.” 하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하라!! 섭리 가운데 상록수를 한다, 결혼을 한다, 안 한다 본인들이 확실하게 하라. 그래야 확실하게 된다. 시간이 확실하고 분명해야 그 시계를 가지고 다니면서 비행기도 타고, 차도 타고, 시간을 지켜 행하지 않습니까. 시계가 늦거나 빠른 것을 가지고 돌아다니면 자기만 더 고통스럽고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게 되어 실례가 되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확실한 시간 같이 확실하게 움직이고 확실하게 살아라.” 바울 선생이 회심하고 완전히 돌아왔을 때는 확실한 진리를 깨닫게 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는데 하나님이 오신다. 앞으로 하나님이 오신다.” 하며 계속 하나님이 오신다고 하며 하늘 쳐다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늘 쳐다봤자 온다는 자는 오지 않고 계절 따라 비만 오고, 계절 따라 눈보라만 쏟아지고, 계절 따라 먹장구름, 계절따라 천둥번개만 칩니다. 온다는 자는 항상 땅에서 오는 것입니다. 나처럼 땅에서 옵니다. 나는 땅에서 왔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서 구원의 말씀을 전하러 왔는데 땅에서 왔지 않았습니까. 월명동의 우리 집에서 어머 니가 낳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보면 쪼글쪼글합니다. 사람들과 똑같이 어머니가 낳은 것입니다. 여러 분도 똑같이 어머니가 낳지 않았습니까.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사랑으로 났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오고, 선지자들도 그렇게 오고, 모든 인간이 그렇게 나타납니다. 영웅열사들이 다 가 정을 타고 나타나고, 부모 품을 통해 나타납니다. “나는 부모가 없는데 나타났다. 부모도 없이 나는 산에서 그냥 생겼다.” 하면 그런 말을 믿고 따라가 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별나라에서 왔다. 나는 화성에서 왔다.” 해도 그것을 또 믿고 따라 가더라는 것 입니다. 너무 너무 모릅니다. 절대 그런 것을 따라다니지 말기 바랍니다. 지구상에 누가 온다고 했어도 하늘에서 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오는 것은 영들만 오는 것입니다. 영들은 오지만 육신을 가진 자는 안 옵니다. 영들은 옵니다. “하나님이 온다.” 한 것도 이미 온다는 그 시대에 왔습니다. “메시아가 온다.” 한 것도 역시 육신은 가진 자가 오는 것입니다. 또 신의 세계에서 오는 자는 신으로 오는 존재자입니다. 그러니 안 보입니다. 하나님이 와도 안 보입니다. 지금 우리 옆에 하나님이 서 있다고 한들 보이겠습니까? 안 보입니다. 영 들이 서 있는다고 해도 보이겠습니까? 안 보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자는 영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신령 한 자는 모든 것을 분별하고 알 듯이. “이와 같이 해서 우리가 모르고 믿고 있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것을 믿고 살고 있다. 이와 같이 이러 하다.”고 우리가 시대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을 접해야 그들의 핍박과 반대가 근본적으로 없어지는 것 입니다. 사울이 회심하고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니까 사울이 바울이라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들 이 잔잔해지고 좋아지고 평안해지고, 전도하니까 많이 불어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럼과 동시에 예수님 제자 베드로는 이방에서 불러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전도할 때 그 순간 을 이야기 몇 마디 한다면 갈릴리 바닷가에 예수님이 갔습니다. 거기에서 말씀을 전한다는 소문을 퍼뜨 리고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잔뜩 바닷가로 몰려 왔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바다 안에 들어 가서 배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구상을 하시고 배를 빌리러 갔습니다. 그때 베드로라는 어부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가서 예수님이 인사했습니다. 마침 베드로가 ‘오늘 왜 이렇게 사람들이 밀려드나?’ 하고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이 나타나서 배 좀 빌리자고 했습니다. 배에서 말씀을 전하겠다고 하며 빌려 달라고 하니까 베드로가 그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보니까 그물에 고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았으나 고기도 한 마리 못 잡고 그물만 씻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봐서는 그 때 고기를 잡으러 온 것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실상은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 리도 못 잡고 빈 그물만 씻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봤을 때 그랬을 것입니다. ‘고기 잡으러 이제 아침밥 먹고 떠나는 것인가? 일단 빌려달라고 해보자.” 하고서 빌려 달라고 했는데 빌려 주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까 고기 잡으러 가는 배를 빌린 것이 아니라 다 쓰고 와서 빌려 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기에서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 가지 말씀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전도된 것을 보면 대 개 이런 말씀이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기술대로 살아도 만족치 않고, 자기가 호언장담을 해도 그대로 안 되고,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해야 된다. 다 인생 사는데 하나님이 다 주관하고 관리하신다. 바다의 고기 제 마음대로 잡아가고 잡아다 먹어도 다 주인이 있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틀면 안 된다. 인생문제를 해결해야 보람이 있다.” 하며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무식했든 유식했든 이야기 속에서 자기 직업 이야기를 꺼내니까 잘 알아들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아도 못 잡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 습니까.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니까 하나님이 뜻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복음 전했을 때, 그때 전도된 사람을 특히 베드로로 크게 봅니다. 베드로는 그 때 를 인연해서 몇 년을 따라다녔는데 한 3년 만에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왔다갔다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물은 즉시 집어 던졌습니다. 그렇게 베드로를 전도해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좇아다니면서 제자가 되었는데 오늘 베드로 이야기도 나옵니다. 때에 베드로가 갈릴리, 다소, 가이사랴... 이런 데로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본문과 같이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에서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 병으로 상위에 누우니라. 8년이 되었더라.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께서 너를 낫게 하리니 일어나라. 네 자리를 정돈해서 곧 일어나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너를 낫게 해 준다고 했는데 베드로가 그 말을 할 때는 예수님이 죽고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부르면서 “예수님이 너를 낫게 해 주리라. 믿어라.” 하니까 8년 된 중풍병자가 나아 버렸습니 다. “역시 죽어 육신은 없어졌어도 메시아는 메시아다. 그 이름을 대니까 낫더라.” 오늘 말씀의 주제가 “사도의 정신”이라고 했는데 사도들의 정신은 항상 ‘절대적인 그리스도 관’을 가 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선생이 있든지 없든지 절대적인 선생의 이름을 대고 기도하고 선생의 이름으로 병을 낫게도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금주에 사도의 정신을 다시 배워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정신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 만이 그렇게 해 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일체 된 세계이니까. 사도는 사도이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입니다. 사도는 수만 명, 수천 명 전도되는 대로 사도가 되었습 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한 명입니다. 지체는 수백 개, 머리는 하나, 그런 입장입니다. 베드로가 훌륭한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대고 “예수가 너를 낫게 하리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했습 니다. 일어나서 낫게 되니까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까는 반대하던 사람이 와서 간증하고 쫓아다니니까 이로 인해서 핍박도 없어지니까 많은 사람이 전 도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이제는 사도들이, 제자들이 예수 이름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하니까 병이 나아서 전도가 많이 되더 라 했습니다. 이렇게 사도 시대 때, 부활복음 때 두 가지로 전도가 되어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의 정신’이라는 것은 바로 베드로와 같이 ‘자기 선생의 정신’을 가지고 항상 사는 것입니다. 여러 분도 한번 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대고 “그 이름으로 나아라. 걸어가라. 병아, 나아라.” 해 봐요. 그리고 낫 는가 안 낫는가 보라는 것입니다. 시대를 깨닫고 오는 사도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입니다. 참된 사도들이 일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사 도라 칭함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목사님들이 그렇게 많습니다. 이제 사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섭리사의 사람 들은 유지 사도같이 사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병도 낫게 해 주고, 집회를 하면 불이 떨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회심하고 회개하게 하며 사도들의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다니기를 바랍니다. 보면 목사님들이 99.9%이고 사도라고 하는 사람들은 몇 명 없더라는 것입니다. 불길을 떨어뜨리고 병도 고쳐줘서 일어나게 만들고, 10년 8년 된 환자들이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나 았다고 소리 지르고, 환자를 일으키고 하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내가 없어도 여러분이 모두 사도의 정신을 가지고 해보기 바랍니다. 사도의 정신! 오직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끝나야 되겠 습니다. 이런 물건을 잘 만드는 사람을 보고 ‘장인정신’이라고 합니다. 나는 옛날에 장인정신 하길래, ‘소경들 이 눈을 감았어도 정신은 좋구나!’ 생각했습니다. 정말 모르고 살았습니다. 정신! 시계를 만드는 사람은 시계 만드는 정신이 있습니다. ‘시계정신’ 하면, 스위스라고 합니다. 스위 스는 그 정신을 가지고 만드니까 잘 가고 오래까지 갑니다. 그래서 스위스 시계, 스위스 시계 하는 것입 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다 만들지만 정신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면 다 할 수 있는데, 스위스 사람들 은 10개 만들 것을 하나 만듭니다. 그래서 시계가 오래 가고 잘 갑니다. 그러나 어떤 나라에서 만든 시 계는 살 때만 가고, 끼고 집에 들어오면 죽어 있습니다. 물론 헐합니다. 그것은 시계를 만드는 정신들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돈만 벌려고 하는 정신만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밥을 하면 밥하는 정신이 있어야 됩니다. 밥하면서 다른 정신 가지고 하면 밥이 제대로 안되 고 죽이 되고 개떡이 됩니다. 볼펜을 하나를 만들어도 볼펜을 만드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것이 장인정신입니다. 볼펜을 써 보면 알 랭이가 빠지고 촉이 나가고 해서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는 ‘왜 이렇게 만드나. 값을 줄 만큼 주 고 샀는데...’ 합니다. 설교하는 사람은 설교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예배드리는 이들은 예배드리는 정신이 필요하고, 기도하 는 자는 기도의 정신이 필요하고, 사도는 사도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사도의 정신’은 그리스도와 일체되는 것이 사도의 정신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빛나게 하고, 자기는 지체가 되는 것이 사도의 정신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온 인류를 살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고, 하나님과 일체 되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섬겨 즐거워하며 그의 대상이 되고 그의 빛을 발하게 하는 정신입니다. 그리고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왜 운동을 하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이런 정신입니다. 배구를 하면 ‘배구 볼이 땅에 떨어지면 생명도 땅에 떨어진다. 죽는다.’ 하는 식의 정신을 갖든지 모든 정신들이 필요합니다. 화분을 관리하면 화분 관리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화분을 잘 관리하려면 꽃이 늘 바뀌어야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물도 바뀌고 꽃이 바뀌면 그 꽃을 꽂아도 다 다르게 꺾꽂이를 이리 저리 돌려가면서 합니다. 만족하지 않으면 또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 많이 봅니다. 카메라를 찍는 사람은 찍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정신일도 하고 찍어야 됩니다. 내가 지금 설교할 때 다른 정신을 가지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늘 의식하고 생각하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보고하는 것입 니다. 주치의들은 주치의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글씨 쓰는 사람은 글 쓰는 정신, 그리고 조각하는 사람은 조 각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신을 가지고 하느냐! 금주에 계속 말씀하겠지만 여러분, 인생을 사는 정신이 살아 있어야 됩니다. 정신이 죽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신이 흐리멍덩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신 값입니다. “인물값이 아니다.” “왜요?” “정신이 흐리멍덩하면 자기 인물이 아무리 미인이라도 미인 관리를 못하는데.” 정신이 그만큼 살아 있기 때문에 자기 몸을 그만큼 아름답게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살아 있 지 못하면 자기 몸이 아무리 미인이라도 미인관리를 못합니다. 정신이 살아 있어야 좋은 집이 있더라도 좋은 집을 관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정신이 죽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좋은 사람은 자기 몸이 별로 아름답지도 않고, 얼굴 이 별로 아름답지 않고 몸뚱아리도 별로 몸짱이 될 만한 것이 없지만 그 몸 가지고 귀히 보고 관리해서 위대하게 쓰지 않습니까. 정신 값입니다. 그래서 정신보고 사람을 택하는 것입니다. 흐리멍덩하지 마라! 선생님을 따라다니면 좋은 정신이 들어갑니다. 무엇을 하다 보면 으악, 으악 합니다. 그런 정신을 갖 고 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차피 오늘은 사도들의 정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사도의 정신을 알기 위해서 사도행전사를 자꾸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제자들의 정신을 봐야 될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늘 예수님이 어떻게 했나, 하나님이 어떻게 했나 늘 봐 야 되겠지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받아야 사도의 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글씨를 쓰는 것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잘 써야 멋있는 글씨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되지 않 겠습니까? 글 쓰는 것도 잘 써야 됩니다. 글을 쓰면 웃기게 써놓는 사람은 쓰는 정신이 제대로 박히지 않아서입 니다. 글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과 사고가 다 나오고 행동도 다 나옵니다. “너 여기 내 앞에서 글 좀 써봐.”해서 써놓은 것을 보면 다 압니다. ‘얘는 이런 애구나. 성격이 급한 애구먼.’ ‘깔짝깔짝 인생을 사는구먼.’ 글씨도 깔짝깔짝 쓰면 바로 그런 사람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인생 멋있게 사는 자들에게 그런 정신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는 정신적 부활을 시키러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정신을 부활시킨다, 육신을 부활시킨 다, 죽은 자를 부활시킵니다. 우리는 오늘날 성약시대에 섭리의 정신들을 가져야 됩니다. 혼이 빠지고 나가면 안 됩니다. 흐리멍덩 하면 안 되고, 긴장의 허리띠를 띠고 열심히 뛰고 달려야 되겠습니다. 오늘 새로 나온 여러분들, 정신 못 차리는 인생들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시대의 말씀의 정신을 가지 고 살아야 보람 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봤자 평생 동안 살아도 희망과 소망이 이루어진다 해 도 역시 보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러서 오늘 왔으니까 모두 말씀 듣고 계속 살아보십시오. 한 주일만 살아봐도 표가 확 날 것입니다. 두 주일 살면 더 많이 표가 날 것이고, 석 주일, 넉 주일, 한 달 살면 더 많이 표가 날 것이 고, 그러다 보면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 주일 동안 말씀을 연속하겠습니다. 기도하고 축도하고 끝나겠습니다. <기 도> 이제도 계시고 영원히 계시는 만군의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은 예수님이 특히 사도들 시대를 말씀 하고 사도의 입장을 말하면서 말해 왔습니다. 내가 이 시대 사람들에게 말했는데, 사도들의 정신에 대하여 금주에 말씀했습니다. 그런 정신을 갖고 살도록 하라 그랬습니다. 바울이 온전한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온전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었습니 다. 이들도 그리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 바울 같은 자들, 다 눈이 먼 자들이요 정신이 먼 자들입니다. 온전케 되게 해 주시고, 이러므로 그들이 와서 간증해서 잘되고 형통되며 많은 수가 불어나게 해주시고, 또 하나는 이제 사도들이 부지런히 사도의 정신을 가지고 병들도 고쳐주고 이적과 기적을 행해서 많은 생명들이 돌아오 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많은 생명들이 불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이런 자들이 되기를 원하노라. 성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성령의 감동감화 역사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이 내가 이 시대 에 모든 사람에게 평강을 빌고 간구하노니 모두 충만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말씀 마쳤습니다. 계속 들어서 정신 공부를 하고 제자 공부도 해야 되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