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3.11.18 (월)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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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으로 그의 길을 평탄케 하라
작성일 : 2013. 7. 9(화) AM 04:00
작성자 : 정천아
(말씀을 전하고 있는 생명을 두고
기도할 때 “<생명으로 그의 길을 평탄케 하라.>
이것이 제목이다. 이것에 대해 내 말하고자 하니, 잘 받아 적어라.”하셔서 받은 말씀입니다.)
* 성자의 말씀 *
섭리야.
선생이 이 시대의 모든 죄의 짐,
십자가의 짐을 지고 그곳에 간 지도
어느덧 그 기간의 절반이 되어 가는구나.
선생의 육이 처음 그곳에 들어가게 됐을 때에
너희 중에는 앞으로 이 섭리사가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자들 많았지?
그대로 끝나 버릴 거라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 들어간 지 몇 년 만에
내 분체인 선생이 이룬 것들을 보아라.
육신은 갇힌 바 되었으나
그곳에서도 혼체로 더 차원 높여
나의 모든 일을 행하고 있지 않느냐.
월명동 개발은 물론,
생명 전도, 끊이지 않는 말씀의 역사,
결국 섭리 부활 독립 역사를 맞이했지.
이것이 한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했겠느냐.
그가 행한 모든 업적들이
나와 함께 행하고 역사했다는
표적의 증표들이니라.
그러나 섭리야, 잘 들어라.
선생, 영 부활하고 혼체로 돌아다니며
기적의 역사를 펴고 있지만,
선생이 한 가지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무엇이겠느냐.
바로 소리 높여 외치며 시대 말씀을
직접 전하고 다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 나의 분체로서, 구원자로서,
새 역사, 새 복음을
얼마나 외치며 전하고 싶겠느냐.
선생, 그 육신의 환경이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말씀을 외치지 못한다는 것,
그 답답함이 선생을 가장 힘들게 한다.
또한 신앙이 약해 죽어 나가는 생명들 보면서,
‘내가 가서 말 한마디 해 주면 살아 날 텐데...
내가 가서 기도 한 번만 해 줘도 살아 날 텐데... 하며
그 심정 타들어 간다.
너희가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생명이 쓰러져 나갈 때마다,
선생, 그곳에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을 어찌 알랴...
그러나 세상은 아직도 악이 극에 치닫고,
너희는 선생을 맞을 준비도 조건도 충분치 않기에
선생 계속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다.
선생 영 부활하였으나,
육은 아직 그곳에 있는 것은,
이미 하늘은 하늘의 책임분담을 다 하였으나,
땅에서의 너희들의 책임분담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생을 통한 이 시대 말씀도
점점 차원을 높여 가는데,
너희는 그 말씀의 차원대로
수준을 높이지 못하고 있으니
내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전반기 역사로 돌아갈 수도 없고,
말씀의 차원을 낮출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저 말씀을 절대 믿고 순종하며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만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아.
너희가 가고 있는
이 섭리길이 힘들다고 생각하느냐.
섭리에 있기 때문에
네가 그리 힘들다고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해 보자.
(어떻게 생각을 달리하면 될까요?
또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세요. 비유 들어 주시는 건 쉽게 이해가 잘 되요.)
이렇게 생각해 볼까?
어떤 두 사람이 있는데
둘 다 똑같이 돈이 없어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다 하자.
그 중 한 사람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자기의 집도 없어 길을 돌아다니며 잠을 자는 자이고,
또 다른 한 자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도
조그마한 단칸방이라도 있다 했을 때,
둘 다 가난하지만
그래도 어느 자가 좀 더 맘이 편하겠느냐.
후자이지...
힘들게 살아가도 돌아갈 곳이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섭리야.
너희가 지금은 과정 중에 있어
힘든 것 같이 느껴져도,
너희는 돌아갈 곳이 있고,
쉴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섭리이지 않느냐.
바로 나 성자의 품이고
선생의 품이 있지 않느냐.
인생은 역경과 고난의 연속이다.
이왕이면 섭리 안에서 힘들어도
구원의 기쁨을 누리면서 인생 사는 게
몇 천, 몇 만, 몇억 배...
비교할 수 없이 낫지 않느냐.
힘든 것 있으면
나에게 얘기하고 선생에게 얘기하면서
풀어 나가면 되는 것인데,
왜 낙심하고 있느냐.
섭리에 마음이 지치고
낙심하여 정체되어 있는 자들이 많다.
섭리 인생을 제대로 사는 방법을 몰라 그런다.
세상에서의 삶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며 살기에
자기가 만족하며 기쁘게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섭리 인생을 제대로 살면
어찌 그 세상에서의 기쁨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말씀대로 살아야 하기에
제제 받는 것도 많고 규제받는 것도 많지만,
그것이 너의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힘들다 생각하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과정은 너무 힘들지만,
그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은
이루고 나서야 확실히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처음 제목을 말씀하셨을 땐 생명을 전도하자는 말씀을 바로 하실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먼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만들어야
생명도 전도할 수 있기 때문이야.
낙심된 너희의 마음을
먼저 일으키고자 말한 것이다.
섭리야.
아직 과정 중에 있으니 반드시 이루자.
말씀과 전도 해,
올해 내가 선포한 축복의 말씀이 아니더냐.
말씀을 주는 것은 하늘의 몫이고
그 말씀으로 전도를 하는 것은 땅의 몫이니
너희의 몫을 온전히 하여라.
내가 주는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 힘 있게 증거하며 전도하자.
생명을 살린 공적으로 너희도 산다.
생명으로 내게 더 가까이 나아와라.
이것에 대한 비유를 들자면
생명은 징검다리, 교량과 같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너야 할 때
그냥 건너면 힘이 들지만,
디딤돌을 밟고 건너면 훨씬 쉽지?
그러한 강을 건너고 있다 생각하고
너희가 징검다리를 하나씩 만들어 가며
강을 건너는 것이다.
디딤돌 하나하나를 생명이라 생각했을 때,
돌을 하나만 두고 건너는 자와
하나씩 하나씩 자기 앞에 놓으며
길을 만들어 가는 자 중,
어느 자가 훨씬 쉽게 길을 만들어
그 강을 건널 수 있겠느냐.
또한 큰 강을 헤엄쳐서 가는 것은 너무 힘들지만,
교량을 통해 가는 것은 너무 쉬운 것이다.
이와 같이 생명으로 길을 평탄케 만들어라.
너희 선생... 곧 만난다.
너희가 그토록 기다리던 선생을
만날 날이 머지않다.
그런데 아무것도 예비하지 않고
그냥 맞이할 것이냐.
집에 손님 한 명만 와도
깨끗이 청소를 하며 맞을 준비를 하는데,
하물며 너희 선생이랴.
너희를 구원할 구원자인데,
그의 길을 예비하지 않고,
평탄케 하지 않고
어찌 그를 제대로 맞이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예비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정말 잘 맞고 싶어요.)
생명이다.
구원자가 바라는 것은 생명이다.
생명으로 그의 길을 예비하여라.
생명으로 그의 길을 평탄케 하여라.
생명으로 그를 둘러싸게 하여
그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여라.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고,
너희를 위해
그 모든 고통, 희생을 다 감수했으니,
너희도 갚아 주어야지 않겠느냐.
목숨 걸고 전도할 때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섭리 온 지 몇 년이 지났어도
전도 한 명 하지 못한 자들 있지?
그것 보아라.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선생 만나러 갈 때,
자기만 좋아서 가면,
선생, ‘너 혼자 왔냐?’고 묻는다.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그냥 또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분체가 살아 있을 때 전도된 자와,
후에 전도된 자는 다르다.
분체가 직접 손대어 키운 자와
스스로 신앙을 하는 자와
어찌 같을 수 있겠느냐.
늑대와 이리가 나의 양들을 잡아먹으려 하니
빨리 가서 구하여라.
마음에 결단을 하고 행하기다.
네가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너의 육을 쓰고
내가 행하는 것이다.
산의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강을 완전히 건너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행하기다.
나 성자가 함께하며 능력 주니,
포기치 말아라.
항상 너희와 함께하는 성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