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기타 말씀2013.11.21 (목)

계시말씀

선포일
2013.11.21 (목)

첨부 파일

굳은 뇌를 풀어야 가나안을 정복한 신세대가 될 수 있다 작성일 : 2013. 8. 22(목) 오후 12시 작성자 : 장정임 (구세대의 많은 자들이 고정관념 때문에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것을 두고 기도하다가 얼마 전 성자께서 가나 안 땅에 들어간 자들은 2세대, 곧 신세대이며 그와 같이 지금 섭리사도 신세대를 통해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 고 있다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80이 가까운 나이에 출애굽 역사를 일으켰으니 신세대로 서 역사를 일으켰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어 여쭈어 보았습니다.) * 성자의 말씀 * 모세의 과거를 보아라.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민족이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같은 민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로 그의 마음속에는 알게 모르게 어려서부터 자신의 민족이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갈망이 자라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그 갈망을 역사의 촛대로 삼았다. 고로 그는 출애굽이라는 역사를 일으키며 하늘의 뜻을 이루는 중추적 중심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삶은 민족 해방이라는 갈망의 씨앗을 품고 키워서 이룬 인생 파노라마였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민족이 여호와의 뜻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기에 출애굽은 모세의 인생에 있어서 처음과 끝이 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모세는 보다 다음 차원으로의 뜻까지 이룰 수는 없었다. 이는 따르는 자들의 문제로 인함이었다. 지도자와 따르는 자는 공동 운명체라 하였지? 그러므로 지도자 한 명이 잘못된 길을 인도해도 그 단체는 모두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이며 따르는 무리가 지도자를 거슬러도 그들 모두는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모세는 하늘이 세운 사명자다. 고로 모세는 하늘의 예정된 뜻을 따라 민족을 인도하였으나 따르는 자들의 불신과 무지로 뜻이 깨져 버렸고, 그에 대한 대가는 지도자 모세와 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 1세대 모두가 함께 지게 되었으니 바로 신광야에서의 죽음이었노라. 그러나 하늘의 뜻은 정녕코 이루어지고 마나니 광야 땅에서 새롭게 기회를 얻은 2세대들, 즉 머리가 굳지 않아 하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갈 만한 자질을 지닌 자들을 데리고 재섭리가 펼쳐진 것이니라. (최근 뇌에 관한 말씀, 굳은 뇌를 풀라는 말씀이 선포됨은 바로 이러한 섭리역사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맞다. 성약 섭리역사는 78년 이후 모세의 출애굽과 같은 역사의 신기원을 이루면서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나 따르는 자들의 온전치 못한 믿음과 사랑 조건으로 인해 단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신광야에서의 탕감 복직 기간을 14년씩이나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되었기에 독립역사를 선포하며 가나안과 같은 성약역사를 본격적으로 펴기 시작한 것이니라. 그런데 사랑하는 자야. 이렇게도 절체절명의 위대하고도 찬란한 시점에서 정작 선생은 날마다 더할 수 없는 조건을 세우며 너희에게 굳은 뇌를 풀라는 말씀을 거듭 전하는 이유가 무엇인줄 아느냐. 바로 전반기부터 선생을 따라 출애굽과 같은 섭리 여정을 함께 울고 웃으며 따라온 너희들로 인함이니라. 비록 14년이라는 탕감 조건을 세우긴 하였으나 그 기간 동안 잃어버린 자들 하나하나로 인한 고통은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와 같았으며 성약 독립역사, 휴거역사가 시작된 이 때 역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여전히 불평불만하며 굳어져 버린 뇌로 섭리역사를 이리저리 재고 있는 너희를 바라보는 선생의 심정은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음이니라. 사랑하는 신부들아. 왜 1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인생을 끝내고 말았는지 깊이 상고해 보아라. 그들은 누구보다도 출애굽의 주역들이었다. 모세를 통한 하늘의 뜻을 깨닫고 함께한 자들이 아니었느냐. 그들로 인해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으니 그들의 공적이 참으로 크지 않느냐. 하지만 목적을 향한 시작은 함께했으나 끝은 함께하지 못했다. 바로 자신들의 굳어진 뇌 때문에 스스로가 가나안을 거부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들을 통해 이루려던 가나안 입성이라는 원뜻을 완성하지 못했으니 그들을 이끌던 모세 역시 그들과 함께 같은 운명을 맞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따르는 자들의 무지와 불신과 조건 없음으로 인해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을 목전에서 바라보면서도 결코 밟을 수가 없었던 모세의 한을 너희는 아느냐. 사랑하는 자들을 버려두고 홀로는 갈 수 없는 심정, 또한 조건이 되지 않는 너희이기에 함께 갈 수 없어 맺힌 한을 아느냐. 너희는 어찌하려느냐. 이러한 이중의 고통을 선생에게도 안겨 주고 싶으냐. 나는 매일 듣고 있다. 너희가 선생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날마다 선생이 그곳에서 풀려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기도를 듣고 있노라. 옳다. 사랑하는 자들아. 진정 옳은 기도요, 삼위 하늘과 너희 땅 모두가 너무나도 간절히 원하고 원하는 바가 아니냐. 또한 이 섭리가 마지막 역사이기에 선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마지막 뜻을 꼭 이루기 위해서라도 선생의 자유함을 위한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그러나 2009년부터 극적 탕감 조건을 세우고 성약 독립역사를 연 이후에도 선생이 계속되는 조건을 세우고 있는 것은 바로 너희 때문이다. 출애굽과 같은 섭리역사를 함께 시작했던 너희를 신광야가 아닌 가나안에 입성하기 합당한 자, 곧 휴거에 합당한 자들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대신 세우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스스로 한다면 선생이 저토록 고생스럽지 않을 것이나 아직도 굳어진 뇌를 풀지 못해 휴거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신광야적 삶에 머물러 있으니 이를 아는 선생이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한 너희와 여전히 눈과 귀가 막혀 있는 인류를 위하여 조건을 또한 세우고 있는 것이니라. 역사가 보이지 않느냐. 너희는 선생으로부터 왜 출애굽의 역사를 배웠느냐. 출애굽 역사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이냐. 함께 나왔으니 끝까지 함께 가야 하지 않겠느냐. 뜻은 분명한데 왜 가려 하지 않느냐. 출애굽이 목적인 자에게는 애굽을 빠져 나오는 것만으로 목적 달성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그 러나 6000년을 기다려 온 하늘의 역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1차, 2차, 3차, 연속 뜻을 세우며 끝까지 가는 것이다. 끝은 너희가 생각하는 끝이 아니라 하지 않았더냐. 하늘의 마지막 뜻이 다 이루어져야 끝나는 것이다. 그 뜻은 사랑이니 사랑이라는 최종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가 고비마다 서 있는 것이다. 그 고비를 뛰어 넘을 때마다 필요한 것이 진리 말씀이니라. 현재 섭리는 굳은 뇌를 풀라는 진리 말씀이 선포되었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만 최종 목적을 향한 마지막 고비를 넘을 수 있음이니라. 모세와 함께 애굽을 빠져 나오긴 했으나 애굽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신광야에서 잘못 형성된 체질과 습관이 그대로 굳어져 버리면 결코 가나안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게 되니 곧 휴거의 가치를 온전히 모르는 자가 되는 것이다. 모르니 신광야로 만족하는 자가 되고 나아가 차라리 애굽에 있었다면 고깃국이라도 먹으며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미련한 생각을 가지고서 오도 가도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처량하게 느끼기까지 하는 자가 되듯, 지금도 뇌가 굳어서 휴거의 가치를 모르니 ‘꼭 휴거되어야 하나’, ‘휴거 100선에 머무르기만 해도 괜찮지 않나’, 혹은 ‘이렇게 휴거되기 힘들 바에야 그냥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이나 하고 살 것을..’하며 회의를 느끼기도 하는 것 아니겠느냐.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은 갈 수 없다 생각하는 자에게는 결코 열리지 않는 길이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가나안이 이룰 수 없는 큰 놋 성벽으로만 보일 뿐이다. 휴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호와를 사랑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말았듯, 변변한 무기 하나 없던 이스라엘 족속이 보낸 자를 중심하여 31개 가나안 족속을 차례차례 쳐부수고 그 땅을 차지했듯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너희 힘으로는 결단코 휴거가 불가능하지만 투철한 믿음과 사랑으로 전능자와 땅의 구원자를 붙잡는다면 가나안 정복의 역사, 휴거의 역사는 찬란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보낸 자를 통해 전하는 진리 말씀을 듣고 행하여라. 지금은 진정 굳은 뇌를 풀 때이다. 애굽 근성부터 시작하여 출애굽 이후 알게 모르게 형성된 잘못된 체질과 습관 역시 모두 풀자. 선생 통해 다시 한 번 기회와 시간을 준다고 말했잖니. 하늘의 역사는 항상 신세대를 발판 삼고 더욱 차원을 높여 나간다. 구약 안에서도 이슬람 앞에 유대교가 차원 높은 역사가 되었고, 신약 안에서도 구교 앞에 신교가 차원 높인 역사가 되었듯, 마지막 성약 안에서도 보다 구세대 앞에 신세대가 차원 높은 휴거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래된 자들, 선생 곁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울고 웃으며 역사를 일구어 온 자들이 후발로 뛰어 든 신세대와 함께 마지막 목적지인 가나안 땅, 곧 휴거의 최고지에 합당한 자들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신세대가 가진 굳지 않은 뇌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휴거되어 최종 목적지인 성약성에 들 수 있다. 예전의 것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하늘 역사는 날마다 차원을 높이며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역사이다. 고로 어제의 방식, 어제의 생각을 고수하는 자는 도태되고 만다. 어제의 것을 주장하는 자가 곧 굳은 뇌를 가진 자니라. 옛것을 버리고 날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중심하여 새것을 따라라. 애굽에서는 애굽의 법이 통하고 신광야에서는 신광야의 법이 통하겠지만 가나안에서는 가나안에 해당되는 법을 따라야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음이니라. 신광야의 법이 아무리 옳았어도 그것은 신광야에 해당될 뿐이다. 때가 왔기에 가나안에 합당한 법을 선포하며 너희를 이끄는 선생의 마음을 헤아리길 바라노라. 선생과 함께 완전한 성약역사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현재 섭리사 신부들에게 필요한 핵을 말씀한 성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