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3.11.29 (금)
진리성령운동 말씀
- 선포일
- 2013.11.29 (금)
- 성경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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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1월 29일 진리성령운동 말씀 >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그 보낸 자의 조건과 희생으로 허락하신 성령의 역사
입니다. 너무나 값지고 귀한 역사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다시 오신 성자와 그 육이 되는 자를 증거하시
면서 더욱 더 강력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거부할 수 없는 영적인 역사로 섭리역사에 영적인 역사를 일으
키고 계십니다. 이 성령은 돈을 준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가 다 내것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그 지구를 지불한다고 해도 성령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성삼위가 허락하셔야만 받을 수 있는 성삼위의 역사입니다. 결코 사람이 진행하는 것이 아닌,
성삼위가 진행하시는 영적역사임을 다시 한 번 시인합니다. 성자는 말씀으로 가장 강력히 역사하시죠.
성령님도 성자와 그 육을 증거하실 때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시고, 역사를 해주십니다. 자, 우리는 이 말
씀을 듣기 전에 항상 찬양을 합니다. 이 찬양은 말씀의 전초자에 불과하다 했습니다. 고로 말씀을 듣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정갈하게 하고, 이미 말씀을 들음에 있어서 그 역사에 빠져들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 찬양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말씀을 듣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전초하려고 찬양을 부를텐데요. 이 찬양은 어느 누가
인도하는 찬양인도가 절대 아닙니다. 찬양 때 굳이 계시를 받으려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찬양 때 무언
가를 엄청나게 깨달으려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진실한 마음을 이 곡조있는 가사, 이 가사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서 성삼위께 여러분의 마음을 고백하면 됩니다. 우리가 평소에 부르던 찬양인데
조금 더 정성껏 마음껏 힘껏 다해서 부르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 성령님께 드리는 것,
그리고 성자께 드리는 것, 춤을 추려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오직 여러분의 마음을 온전하게 진실로 고
백하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여러분, 말씀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자, 가사를 생각하면서 이제 우리의 마음을 고백할 겁니다. 이 시간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우리의 진실한 마음이 이 가사처럼 그와 같은
삶을 살겠다고 정말 진심으로 고백하는 시간이 바로 이 찬양시간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나타나실 성
자를 여러분의 마음으로 이미 맞이하고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미 성령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오늘 성
령역사에 이루어질 말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성자 앞에 나를 구원하는 자 앞에 우리의
마음을 진실로 간절히 간절히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섭리를 사는 우리의 인생, 인생이 얼마나 기쁘고 얼
마나 행복한지 곡조있는 가사를 통해서 여러분, 고백해 보고 싶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성삼위께
고백해 봅니다. 행복한 마음을 담아 우리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찬양
뜨겁게 박수로 다시 한 번 영광돌립니다. 성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대에 빛을 발하라.
자, 여러분 빛을 발할 준비 되셨습니까? 여러분의 혼에 영에 육에 엄청난 빛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그대여’ 찬양
여러분 모두에게 진리와 사랑의 빛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진리와 사랑의 섭리, 이 섭리역사는 어두
운 세상을 찬란하게 비추이는 하나님의 진리의 역사 사랑의 역사입니다. 이 역사에 오게 해주신 성삼위
께 이 시대 구원자께 진실로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성령의 역사, 여러분 모두에게 이 뜨거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이 역사에 오게 해
주심을 감사하며 이 가사가 나의 뜨거운 고백이 되어서 여러분의 마음을 하늘 앞에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 품에 안겨서’ 찬양
이제 내일이면 11월 30일을 맞게 됩니다. 선생님의 6개월의 긴긴 절식기도가 끝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2013년도도 거의 다 끝나갔습니다. 2013년 올해 섭리역사로 온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의미
깊고 너무나 중요한 해입니다. 여러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역사적으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정확하
게 거쳐서 때를 따라 이 역사는 독립의 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새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
었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레일은 끝났습니다. 더 이상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습니다. 재림과 휴거의 역
사를 이루어서 그 레일에서는 성자를 맞을 수가 없습니다. 갈아타야 합니다. 레일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약역사로 갈아타서 성약의 레일을 타야 만이 재림과 휴거역사를 이루어서 다시 오신 성자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창조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구약의 예
언, 신약에서는 절대 풀 수 없고, 신약의 예언도 신약에서는 풀 수 없습니다. 구약의 예언은 신약이 와
야 풀 수 있고, 신약의 예언은 성약이 와야 풀 수 있습니다. 예언은 문제와도 같습니다. 예언을 이루려
면 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답이 문제를 풀 수 있지, 문제가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니다. 재림
과 휴거의 예언을 가지고는 어느 정도 재림이 일어난다, 휴거가 일어난다 어느 정도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룰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9절에서 13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이미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부
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
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
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
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확실히 볼 것이요.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는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보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 날이 와야 이미 온전히 안다고 했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서 25절을 보면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서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믿음이 온 후로는 우
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신약의 말씀은 우리를 초등교사처럼 인도할 수는 있지만, 장성
한 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 모든 뜻을 파헤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와야 한 없
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시대를 완전하게 풀어 줍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신약 때도 그러했고, 바로 동시
성으로 그와 같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이미 배웠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
는 성자의 말씀을 듣고 이 시대를 깨닫고,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강의는 못 하더라도 제가 여기서 “성자가 다시 오신 목적은 뭐죠?” 하면 한 마디라도
대답을 합니다. 창조목적은 뭐죠? 대답은 합니다. 맞습니까? 이미 배웠단 말입니다. 이 시대가 성경에서
그토록 예언했던 휴거역사가 시작된 시대이며 영휴거가 올해에 선포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
다. 이 역사의 흐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꼭 이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꼭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
을 알았다면 여기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하도 많이 이야기해서. 목적이 무
엇인지를 알고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역사를 따르면서 올해 이 때가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벌써 11월이 갔다는 겁니다.
12월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의 삶 가운데 바삐 움직이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아직도 자기의 삶
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휴거되려면 성자와 그 보낸 자를 100% 믿고 시대 말씀을
100% 믿고 행해야 된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 100% 흔들림이 없는데 왜
이러지? 알기는 아는데, 99%는 아닌 거 같애요. 그런데 왜 아직 나는 휴거되지 못 했을까? 왜 더 차원
을 높이지 못할까? 알기는 아는데 왜 아직까지 변화되지 못 할까? 혹은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
들도 하나를 배웠으면 그걸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이게 완벽하게 내 삶 가운데 들어오지 못하
는 것일까?
이미 성경의 인봉들은 거의 다 풀려서 2013년도에는 정말 봇물터지듯이 나왔습니다. 거의 감당하지 못
할 정도로, 여러분들이 지금 매번 새벽잠언을 받고 있잖아요. 그 아까운 잠언들이 사실 설교로 따지자면
그 잠언 하나에 설교가 세 개씩 나옵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보내주는 거예요. 그런데 못 깨
닫는단 말이예요. 여러분들에게 50개씩 60개씩 보내주고 싶은데 다 감당을 못 합니다. 그래도 말씀이
남아돕니다. 그 정도로 선생님께서 한국에 들어오시고, 2009년, 2010년, 2011년 특히 11년, 12년, 13
년은 엄청난 말씀을 보내 주셨습니다. 타자로 쳐도 감당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말씀을 값없이 받았는데 왜 나는 더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주님이 나를 봤을 때
“내가 너를 보니 진짜 만족한다. 내가 너를 쳐다보니 흡족하구나.” 이렇게 해 드리지 못할까? 정말 마지
막 역사를 이루는 이 때임을 알고 있습니까? 들어서라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깨닫지는 못 해도 지식으
로라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이게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왜 이 마지막 역사를 이루는데 성자가 흡족
하게 “정말 만족하게 정말 만족하다. 흡족하다. 말할 게 없다. 마음으로 그냥 통해버려. 진짜 짱이다. 진
짜 엄청나다.” 왜 이렇게 하지 못할까? 여러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뇌가 아직 굳어있나?’ 성자는 말씀하십니다. “너 언제까지 뇌 풀고 있
을래?” 뇌만 계속 풀고 있는 거예요. 뇌만. 왜 열심히 하다가도 순간 자꾸 실수하는 것일까? 휴거 100
선이 안되서? 그러면 왜 100선은 안되는 것일까? 왜 자꾸 90선에서 머물고 있는 것일까? 왜 변화는 됐
는데, “정말 진짜 변화됐다.” 할 정도의 변화말이예요. 그냥 내가 변화는 되었는데 딱 내 눈에는 변화된
게 없는 거예요. “너 진짜 다른 사람 되었다. 예전에 너의 성향이 없어지고 너 진짜 거듭났다.” 왜 이렇
게까지 변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 왜 이 때를 더 실감하지 못할까? 그리고 선생님께 물어보죠. “선
생님, 실감이 안 나는데요. 어떻게 해야 실감이 나죠?” 선생님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말씀해 주지만
가슴을 친다는 겁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까?”
여러분은 지금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말씀을 받아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어요. 다
주지를 못 합니다. 여러분이 다 감당을 못 해서. 1년 동안 일주일 내내 말씀을 준다면 지금 쌓인 말씀을
다 들을까? 말까? 그건 좋은데 여러분이 행할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주일, 수요일, 새벽, 금요일,
금요일도 선생님 명강의도 듣게 해줘야 하구요. 사실 잠언도 설교로 엄청나게 많이 있는데요. 못 주고
있어요. 수요말씀 경우도 속편으로 또 옵니다. 원래 할 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하나만 선별해
서 나가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감당을 못 할 정도의 말씀이 있는데도 우리는 생각합니다. ‘한 마디만
더 해주세요. 저한테.’ 말씀을 듣고, 다음 주 또 기대하겠어. 기대만 하고 있는 거예요. 기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말씀에 중독되면 안 된다.”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여러분, 중독이라는 말은 뭔
지 압니까? 어떤 한 가지에 빠진다는 거예요. 중독이라는 표현은 좋은 표현이 아니지 않습니까? 중독,
빠져요. 예를 들어서 게임만 해도 이 뇌가 전두엽이 움직여요. 게임만 해야 행복을 느낀답니다. 이 게임
을 계속 해서 중독을 느끼면 게임 외에는 다른 것에는 반응을 안 한대요. 오직 게임을 해야 반응을 합
니다. 이성에 중독이 되면요. 이성에 빠져서 그것을 즐겨야 그것에만 즐거움을 느끼는 거예요. 왜 하나
님을 전해줘도 모를까? 왜 그럴까? 세상 것에 중독이 되었어요. 그것에만 빠졌어요. 텔레비전에 중독된
다고 하죠. 매개체 있잖아요. 사람의 감성을 울리는 그게 있지 않습니까? 떨리게 하고, 갑자기 광고 나
오고, 너무 중요한 순간에 내일 한다고 하고, 예고편도 안 보여주고, 사람을 자극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자극적으로. 거기에 중독이 되면 거기에 빠져야 재미가 있어요.
주님의 말씀이 재미있어 들어봐. 그래도 재미가 없어요. 거기에 중독이 돼서. 술에 중독이 되면 술을
먹어야 기쁩니다. 맨정신으로는 친구도 못 사귑니다. 약간 한 잔 쫙 걸쳐줘야 약간 정신이 딱 보이면서
사람도 잘 보이고 사람도 괜찮아 보이고, 술친구를 사귀게 됩니다. 정신이 멀쩡하면 못 사귀는 겁니다.
여러분, 실제로 제가 면담을 했었는데요. 전반기에 오신 분이구요, 저도 너무 잘 아는 분이구요. 제가 신
입생 때 인사를 할 만큼 굉장히 선배님이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순회를 갔는데 정말 끔찍한 모습으로
계시더라구요. 이번 순회 말구요.
보니까 알콜 중독이예요. 물었어요. 그거 끊을 수 없냐고. 선생님은 또 너무 사랑하는 거예요. 끊으라고
하니까 못 끊겠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왜 그러신지 아십니까? 이유가 너무 충격적인 거예요. 예전에
선생님을 만났을 때 젊었을 때 뛰던 거 있잖아요. 기분 좋은 거, 그 행복이 지금 자기 삶에서 못 느끼니
까 술을 먹으면서 자꾸 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젖어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현실에서 행하면 되는데
행하지를 않는 거예요. 못 행하겠고. 그러니까 옛날에 과거에 선생님과 축구하고 말씀을 듣고 그 것만
생각하면서 술기운에 술을 못 끊겠다고 하는 거예요. 술이 들어와야 판단을 자기 정신에서는 판단을 못
하니까 술이 들어와서 제 정신 아닌 상태에서 사는 게 편한 겁니다. 너무 충격을 받은 겁니다.
이렇게 사람이 중독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가지에 빠져서 그것만 해야 느끼지 못 느낍니다.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못 느낍니다. 우리 섭리사에서 사는 사람들도 중독이 된 게 있어요. 말씀을 듣는 것에 중독이
되어 있어요. 새로운 말씀을 한다고 하면 그냥 엄청나게 모여 있어요. 또 했던 말씀을 또 해준다고 하면
반으로 줄어 있어요. “오늘 한 마디 있는데 그건 대박, 어제 주셨대. 어제.” 그러면 그거 있잖아요. 카카
오톡으로 탁 번지면서 내일 끝내준대. 내일 그거 있단다. 사람이 듣는 것에 중독이 되어 있어요. 새로운
것에 반응하는 거죠. 그런데요. 실천하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듣는 데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
게 중독된 거예요.
똑같은 말씀을 듣는데, 듣는 것은 좋은데 실천하는 것은 안 좋으니까 이것은 100% 중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자는 우리에게 지적을 하셨습니다. “섭리의 모든 사람들 말씀에 중독이 되어 있으면 안 된
다. 이 말씀을 연구하고 이 말씀을 외쳐야 된다. 그리고 이 말씀을 행해야 된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역사를 실감하지 못 하고, 왜 주께서 말씀하신 엄청난 역사인 줄 아는데 머리로는 아는데 왜 이렇게 실
감이 안 느껴질까? 오늘은 이것에 대한 말씀을 할 겁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여러분이 한 단계 더 차원
을 높여서 진짜 “맞어. 맞어.” 하고 깨닫는다면 2013년 남은 이 시간 아깝지 않게 보낼 수 있으리라 믿
습니다.
자, 사람은요. 꿈을 꿀 때 설렙니다. 기뻐요. 좋은 꿈을 꿀 때는.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거야.’ 생각
만 하기만 해도 좋고 설레잖아요. ‘내일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거야. 내가 지금 현재에는 이래도 미래
에는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생각하면 설레고 기쁘게 됩니다. 그렇지만 꿈만 꾸고 있으면 얻어지는 게
없어요. 실제로 얻어지는 게 없기 때문에 너무 곤고하고 너무 허무합니다. 실제로 얻어서 내 것이 되야
그렇게도 기쁩니다. 곧 사람은 꿈이 아닌 실체를 얻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실체. 믿습니까? 성자 주님도
꿈처럼만 생각하니까 실체라고 느끼지 않으니까 성자와의 사랑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자, 대학교에 처음 입학한 사람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으니 내 앞에 멋진 내일
이 펼쳐질거야. 하는 즉시 입학한 다음에 “힘들어. 노는 게 재미있었어요.” 실제로 본인이 노력하고 공
부하고 행해야 되는데 시간 쓰기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고 또 공부할 건 너무 많고 성공은 다 하는 것
도 아니고 힘들다는 겁니다. 꿈과는 항상 다릅니다. 직장 생활 딱 시작했어요. 어렵게 입사를 한 거예요.
꿈을 꾸죠. ‘한 달만 일하면 월급만 나와.’ 그런데 월급만 생각을 하는데 한 달이 안 가요. 엄청 길어요.
그러면서 나중에 불만을 하게 되죠. ‘쥐꼬리 만한 월급 주면서 한 달이 죽어도 안 간다.’ 뭔가 굉장한 커
리어맨, 커리어우먼으로 굉장히 활동을 할 거 같지만, 막상 부딪혀 보면 상사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업무
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육신이 피곤해요. 그러니까 힘드니까 꿈과 다르다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 결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섭리 사람들도 축복식을 기다리고 있죠. 축복대상자들,
“꿈이 있어. 뜻이 있는 짝과 결혼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가정국에게 물어보면 잘 압니다. 물어보세
요. 1년 365일 평생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하나님의 역사에서 사는 것이니까 싸움도 없고, 부딪힘도
없고, 사랑과 화평이 가득하며, 늘 뜻뜻뜻 귀합니다. 사랑이 가득합니다. 늘 그런지 물어보세요. 표정보
시면 알 거예요. 막상 결혼생활을 시작하면 꿈꾸던 것과는 100%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를 만났어. (깨달았을 때) 내 앞이 정말 탄탄대로여서 아무런 어려움 없
이 모든 것을 이기고 살 거 같아요. 와봐! 와봐! 성령의 검도 있고, 말씀의 검도 있고, 다 죽었어!” 하는
데 세상 삶과 딱 맞부딪혔을 때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내가 꿈꾸던 것과는 현실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꿈,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이 꿈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꿈만 꾼다면 허공을 잡고 바람을 잡는 것
과 같아서 얻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꿈꾼 것을 이루려면 꿈꾼 것을 행해야 합니다. 생각한 그것
을 행해야 됩니다. 구상한 그것을 행해야 됩니다.
우리 섭리사의 사람들도 그래요. “나 목회자됐어. 나 진짜 말씀을 엄청 준비하고 외쳤어.” 이게 꿈꾼
것과 다른 거예요. ‘제스처 팍팍 나가고 불이 나가고 시선처리 완벽하게 될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나는
작아지는가?’ 꿈꾼 것과 현실이 다르고, 사람들의 얼굴은 자꾸 어두워지면서 꿈꾼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
다. 여러분, 그런데요. 꿈꾼 것과 같게 하려면 그만큼 행해야 합니다. 내가 설교자예요. 제스처가 많이
나가려면요. 이미 꿈꾼 것과 같이 제스처가 손을 번쩍번쩍 들면서 연습하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여러분, 행하지도 않았는데 얻게 된다면 모든 질서가 깨지게 됩니다.
보세요. 학식과 지식을 머릿 속에 넣지도 않았는데 나는 다 알고 있는 거예요. 그냥 잠자고 일어났더니
과학의 세계가 다 잡히고, 수학의 세계가 다 잡힌 거예요. 그러면 뭐하러 수능공부를 해요? 나는 공부한
적이 없는데 다 알어. 그렇죠? 여러분, 그러면 누가 공부를 합니까? 미쳤나요? 공부하게요? 보세요. 먹
지도 않았는데 배가 부른 거예요. 그러면 누가 뭣 하러 먹겠습니까? 씻지도 않았는데 깨끗해지는 거예
요. 아침에 딱 일어났는데 머리가 싹 벗겨져 있고, 여자들은 화장까지 되어 있는 거죠. 아무 것도 안 했
는데. 누가 씻겠습니까? 씻는 사람이 이상하죠. 그렇죠? 만들지도 않았는데 단상이 만들어진 거예요. 단
상에 만들지도 않았는데 꽃꽂이가 꽂아져 있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만들고 행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말씀을 행하지도 않았는데 천국에 간다면 누가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안 믿어
도 천국에 가고 안 행해도 천국에 가는데. 맞지 않습니까? 섭리사와서 신부로서 살지 않았는데 나는 신
부가 된 거예요.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술과 담배도 다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다 만나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한 거죠. 그런데 나는 성자의 아주 사랑하는 신부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섭리
사에 와서 이 고생을 하면서 말씀을 행하며 이 핍박을 받으며 증거하겠습니까? 우리가 증거 안 해도 하
나님은 신부로 삼아주실텐데. 어때요? 이치가 맞습니까? 그냥은 되는 것이 이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입
니다. 그러면 뭐하러 사람을 창조해요? 사람은 왜 만들어요. 쟤는 왜 돌아다녀? 가만히 있지. 그렇지 않
아요? 왜 멋있게 몸을 만들려고. 안 한단 말이예요.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너의 꿈을 이루려면 행해라.” 다른 차원으로 들어야 됩니다. 행해야 니 것이 된
다. 인봉의 말씀은 다 풀렸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한 마디만요. 한 마디만 더 듣는다면 “그래. 열
심히 해. 열심히.” 우와! 열심히. 한 마디만 더 주세요. 입학하는데 한 마디만 더. 종강하는데 한마디만
더. 그러나 정작 그 동안 준 모든 말씀들은 행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뇌에서 굳어서
다 죽어버립니다. 이것은 이따가 충격적으로 말씀을 할 거예요.
성자는 우리에게 그래서 “너희들 말씀에 중독이 되었다.” 듣는 데서도 기뻐하지만 듣는 데서만 기뻐한
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앞으로는 이 말씀을 행해서 니 것으로 만들어야 된다 했습
니다. 내 것이 안 만들어서 실감이 안 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왜 성약독립역사가 나는 실감이 안 되지?
성약의 독립역사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영휴거가 진행되는데 나는 실감이 안 될까?
아직 그것이 내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약독립의 때 이 영휴거의 때 실감하려면 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한가지 답입니다. 행하는 것, 실천, 그것이 답입니다.
선생님의 6개월의 절식기도 이것이 얼마나 큰 조건이었는지 내가 행해보지 않으면 실감을 못 합니다.
선생님 기도하셨다고 하는데 내 삶에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어요. 나는 똑같이 힘들어요. 본인이 행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섭리사에는 아직도 핍박이 있고, 아직도 악평이 있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런데 제가 단상에서 늘 이야기하죠. 이미 섭리역사는 선생님의 조건으로 무덤기간 벗어났다. 옛날 핍박
이 있는 것과 지금 핍박이 있는 것과는 같아? 절대 틀리다. 그것은 있잖아요. “절대 틀립니다.” 그것은
믿고 기도하면 그냥 와요. 절대 다르다. 그냥 와요. ‘정말 다르네. 똑같은데 다르네. 정말 부활됐네. 섭리
역사 무덤기간에 있는 게 아니네.’ 깨닫고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덤 속에 갇혀 있으니까 무덤
속에서 나온 섭리역사를 실감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영적으로 해방이 안 되어 있으니까 영적
으로 해방된 구원자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본격적으로 말씀을 해주겠습니다. 성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실천은 사랑 실체다.” 다른 말
로 하면 실천은 실체를 낳는다.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 이 마음만 있는 거예요. 뜨거운 걸 어떻게 하지?
그런데 가지고만 있으면 관념으로만 끝납니다. 실체로 남는 게 없어요. 그러니 허무하고 남는 게 없어
요. 그런데 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을 하잖아요. 그러면 실체가 됩니다. 내가 만질 수 있게 된
다는 것입니다. 사랑만 하는 생각과 사고는 관념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생각과 관념을 그
대로 실천하면 실체로 변화가 됩니다. 여러분, 지금 하반기에 진행되는 성령집회 말씀은 선생님께 제가
직접 코치를 받아서 직접 가져옵니다. 달라요. 이 하반기에 전해지는 모든 말씀을 완전히 여러분의 것으
로 만들기만 해도 여러분은 휴거됩니다. 믿습니까?
생각과 관념을 실천해야 실체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존재물이 된다는 거예요. 성자를 어떻게 사
랑해? 생각만 하는 거죠. 그런데 말씀에 다 나와 있습니다. “성자를 사랑하는 게 뭐예요?” “말씀에 다
나와 있어. 성자를 왜 사랑해야 해? 배워봐. 이상하게 감동된다. 성자사랑 마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전혀 없었는데 너 이상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감동될 거야.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들어봐. 멈추지 말고
말씀을 들어봐. 그리고 아니라고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여봐. 그리고 그것을 머릿 속으로 넣어봐. 그리고
니 입으로 한 번 시인해봐. 느껴질 때까지 불러봐.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봐.” 이미 말씀을 다 주었죠.
“100번이라도 300번이라도 실감이 날 때까지 불러 봐.” “실감이 안 되는데요?” “그러면 1,000번 불러
봐.” “1,000번을 불렀는데도 실감이 안 되는데요?” “그러면 10,000번이라도 불러봐.” “10,000번 불렀
는데 실감이 안 됐는데요?” “그럼 100,000번 불러봐.” 그 안에 휴거가 나옵니다. 10만번을 주님을 불렀
는데 응답 안 하실 주님이 아니시라는 겁니다. 믿습니까? 마음으로 시인하는 겁니다. 이미 마음 속으로
는 들어오지 않았어도 이미 시인하는 겁니다. “성자는 나의 신랑, 나는 신부, 좀 간질간질하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부르셨죠? 약간 좀 그래요.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불러 주셨죠? 이 땅에서
도 나를 사랑해 주시고, 내 영을 만들어서 천국에 데려 가서 영원히 그것도 신부성에 데리고 가기 위해
나를 불러 주셨다고 나는 배웠습니다. 성자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하셨죠? 내 영이 성자와 영원
히 함께 살 수 있는 거죠? 육신의 삶이 다가 아니죠? 영의 삶이 있는 거죠? 내가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 하나 불러 보겠어요. 먼저 받아들이고, 육의 삶이 아닌 내 영을 위해 기도도 해볼 거구요. 하나 하
나 말씀을 받기 위해 기도도 해보고, 외쳐보기 위해 노력도 할 거예요.” 행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역사를 이루십니다. 반드시 역사를 이루세요. 그리고 행하는 것이 힘들다 하지 않
는다는 것입니다. 해보는 거예요. 힘들다고 하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일단 안 해본 사람이예요. 저도
단상에 올라오기 전에는 “힘들어.” 하다가도 단상에 올라오면 힘든 마음이 없어져요. 실행하고 있기 때
문에. 생각보다 안 힘들어요. 막상 행해보면 또 생각보다 힘듭니다. 그래서 더 연구하고 노력을 하게 됩
니다. “나 이상한 생각이 머릿 속에 자꾸 들어." 그러면 말씀이 이미 나왔죠. "너 강인한 정신을 칼로
삼아 확 쳐버려!” 그런데 그걸 안 해. 그것을. 강인한 정신을 머리로 확 삼아가지고, “안돼. 너 안돼. 너
혼나! 안돼! 안돼! 절대 안돼! 보지마! 꺼! 집으로 가!” 이렇게 해야 하는데 그걸 계속 보고 계속 들으면
서 “나 너무 힘들어. 주님. 나 지켜주세요.” 계속 이래요. 말씀을 행하고 있는 게 아니예요.
“나 새벽에 기도해야 하는데.” 하면서 계속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거예요. 그걸 실천이라는 거예요. 알
겠습니까? 이걸 안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걸 안 하면 안 됩니다. 성자께 정을 자꾸 붙이는 거예요.
세상에는 사랑이 막 꽃피워지나요? 딱 지나가는데 눈이 마주쳤어요. 인생 천생배필, 인연을 만났어요.
여러분, 사귀어 보세요. 천생연분인지. 사귀어서 오래 만나고 알고 보면 첫눈에 반한 것과는 전혀 다르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을 붙이는 것입니다. 자꾸 행해보고 불러보는 것입니다. 이게 실천이예요. 안
좋은 생각은 잘라버리고 자꾸 주님의 생각을 머리에 넣는 것이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 정도는 시간을 딱 정해 놓습니다. 저도 “안 된다. 안 된다.” 했거든요. 하루에 나
두세시간 밖에 못 자는데, 하루에 저는 네 번 기도하잖아요. 네 번 기도시간을 정해놓으니까 힘들어서
미치겠는 거예요. 네 다섯시간 만에 기도를 하니까요. 뭐 좀 하려고 하면 기도해야 되는데 정말 좋은 게
뭐냐면요. 5분을 기도하더라두요. 성자를 안 잊어버려요. 절대 잊지 않습니다. 기도를 해야 되니까. 안
행했을 때는 무조건 힘들다고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요. 되는 거예요. 저는 더 차원을 높일 겁니다.
아직은 너무 부족하니까. 몸이 너무 힘들고 직장다니니까 바쁘다고 하지만 저도 정말 직장인같이 바뻐
요. 선생님은 얼마나 바쁘시겠습니까? 바쁘다고 하면서 못 하니까 다 시간을 쪼개 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시간을 쪼개니까 쓸 수 있는 겁니다. 행하니까 할 수 있는 겁니다. 못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실천을 하는 겁니다. 못 한다 하지 말고 어떻게든 할 수 있다니까요. 실천하면 사랑도 실체가 됩
니다. 아직까지 사랑이 실체가 안 돼서 잡히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왜인 줄 아세요? 관념사랑으로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 부르는 실천, 기도하는 실천, 주님을 사랑함으로 뭔가 사랑하는 실천을 해야지만 이게
실체가 되어서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정말 변화되나요? 진짜요?” 의심도 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 의심병 좀 고쳐라.
제발. 고쳐라.”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뵈러 갔을 때 이것을
말씀하시는데요. 행하라는 그 한 마디가 다르게 들리더라구요. 정말 행하면, 변화된다. 진짜 행하면 혼과
영이 변화가 된다. 정말 변화가 된다. 확인도 할 필요가 없다. 정말 변화된다. 이것은 절대 법칙이니 의
심도 하지 말아라. 행하는 만큼 변화된다. 적게라도 행해. 적게라도 변화되게.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뭔
지 아세요? “작아도 실체가 중요하고, 커도 실체가 중요하다.” 여러분, 우주만한 다이아몬드가 내 머릿
속에 들어 있는 거예요. 이것과 손톱만한 다이아몬드가 내 손안에 들어 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분, 뭘 갖
겠습니까? 머릿속에 다이아몬드를 갖겠습니까? 실제로 된 작은 다이아몬드가 손 안에 있는 것을 갖겠습
니까? 이거 해서 빨리 뭘 해야죠. 저는요. 성전 지을 거예요.
커도 작아도 실체가 좋습니다. 실체를 가지고 있어야 허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말 행하는 것이 너
무나 중요합니다. 행해야 실체가 되기 때문에. 사람이 먹지도 않았는데 영양분이 가나? 아니 영양분이
가. 장이 아무리 안 좋아도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 여러분, 장이 안 좋아서 먹는 족족 빼내는
거예요. 그래도 안 먹으면 말라죽구요. 먹어야 됩니다. 작게라도 먹으면 내가 흡수를 못 하더라도 소화
는 어느 정도한다는 것입니다. 육이 행하면 영은 변화를 이룹니다. 작게라도. 이것을 여러분의 머릿 속
에 완전히 넣어야 되요. ‘이렇게 하면 내가 변화가 될까? 내가 여기서 tv를 딱 끊고, 세상을 딱 잘라버
리고, 지금 주님을 한 100번 불러야지. 부르면서 내가 진짜 주님의 뜻대로 살고 모든 것을 딱 끊을 수
있도록 강인한 정신력을 주시옵소서.’ 하는 것과 ‘그냥 나 몰라. 주시겠지.’ 완전 틀리다는 거예요. 맞습
니까?
뱃속에 태아도 엄마가 부르면 반응을 합니다. ‘쿵쿵’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 살아있기 때문에. 살
아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에 반응을 합니다. 하나님 역시 살아있기 때문에 정신과 생각과 행실이 살아
있는 자에게 반응을 하시고, 정신과 생각과 행실이 살아있는 자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낍니다. 말씀이
듣는 대도 기쁘고, 행하는 데도 기쁜 상태가 되야 뇌가 어느 것에도 중독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성
자를 어떻게 사랑해? 너무 어려워.” 하지 말고,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말씀을
듣고 네 머릿 속에만 넣고 있으면 그것은 관념에 불과하다. 그 말씀을 행하면 실체를 얻게 된다.” 어떻
게? “네 영도 실체가 되고, 천국도 실체가 되어서 너의 것이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행하기가
어렵다.
집을 짓기 위해 구상하는 것은 얼마나 쉽겠냐? 여러분, 머릿 속으로 열채도 지을 수가 있어요. 오분만
줘도 머릿속으로 여러분이 짓고 싶은 집을 벌써 하나 다 지었어요. 벌써 선생님 방 하나 짓고, 거실도
크게 짓고, 벌써 3층 집을 다 지었어요. 구상은 생각은 쉬워요. 이것을 지으려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신앙에서도 이 뇌에 말씀을 들으면 기쁩니다. 하지만 실체로 행할 때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계
별로 행해라. 그러면 실체를 얻게 된다. 다시 한 번, 어떻게? “영의 실체를 얻게 되고, 혼의 실체를 얻게
되고, 천국이 꿈이 아닌 실체가 되어서 너의 것이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창조되었습니다. 행해야. 영은 달라요. 생각하면 행하고 있어요. 우리는 하늘의 상대체로
되었기 때문에. 사람은 구분이 되어 있어요. 생각과 실천이 구분이 되어 있어요. 구상하고 실천하고, 생
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관념적인 사랑은 실체가 없어서 그냥 관념으로 끝나는 사랑은 남는 게 없어요.
그러니 이 사랑은 실체가 없이 끝이 나게 됩니다. 철학에도 관념철학과 실존철학이 있어요. 관념철학에
서 한 차원을 높여야 실존철학이 됩니다.
자, 유명한 철학가 니체가 있죠? 니체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
람들이 부패했어요. “어쩜 저런 사람들을 놓고서도 하나님이 심판을 안 하시지? 신은 없다. 신은 죽었
다.” 자기가 행해보지도 않고 신은 죽었다고 한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절대 타락하고 부패된 인간에
게는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정말 썩은 게 있어요. 정말 썩은 게 있으면 사람도 옆에 안 갑니다. 똥이
있는데 똥을 만지고 가까이 가나요? 더럽다고 피하게 된단 말이예요. 하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곳에서
는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의 세계, 기쁨의 세계에 계신단 말이예요. 하나님을 느끼려면 본인이
그쪽으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로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계속해서 자기가 부패하고 타락하고, 이성적인 것만 느끼면서 “하나님은 하나도 안 느껴지는데?” 이렇
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세계로 바로 오면 바로 느껴져요. 하나님은 그렇게 나타나신다
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나 쫙 나타나서 알아보지도 못 해요. 눈을 막고 있는 사람이 뭐가 보이겠습니까?
뭘 알아보겠습니까? 눈을 열어서 봐야 보인다는 겁니다. 신도 똑같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타락하고 부패된 길을 가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니체는 모르고, “신은 죽었다. 신은 없
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때요? 행해보지를 않았어요. 그냥 생각한 거예요. 사람이 생각한 것을 행해
야 집도 지어보고, 환경도 만든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과 성자와 성령님의 머리에서 생각한 게 말씀입니다. 알겠습니까? 삼위의 이 머리에서 나온 생
각이 바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 육신이 행하면 여러분의 혼도 영도 확실하게 변화됩니다. 확실하
게 변화됩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생각한 것을 얼마나 행했는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구상과 실
행, 관념과 행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개월 동안 실제로 절식기도를 했다. 새벽 1시, 오후 7시, 오후 1시
이렇게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면서 절식하면서 조건을 세웠다. 실제로 했다. 내 관념에서만 “해야지.” 하
고 완벽하게 시간을 지키면서 절식도 한 게 아니라 실제로 행했다. 생각으로만 하지 않았다. 고로 나의
두뇌의 차원은 어디까지 높아졌는지 이제 묻지도 못할 정도로 높아졌고, 내 혼과 영은 이제 실제로 더
날아다니고, 우리 휴거될 자들의 섭리인들 혼과 영이 실제로도 변화되고 달라져서 휴거의 길에 실제로
얻었다. 또 못 얻을 것이었는데, 아주 귀하고 신비한 것들을 얻게 되었다. 생명들도 얻게 됐다. 행하지
않았다면 실체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한마디를 정말 눌러서 “정말 행하면 변화
된다. 너 행하면 변화돼. 행하면 갚아주는 것, 행하는 대로 갚아주는 것이 하나님의 법 아니냐?” 그 말
씀을 하시는데 불이 오는 거예요.
이게 진짜 작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엄청나게 깨달았습니다. “6개월 동안 실제로 절식하시면서 관념적
으로 있었던 것을 실체로 행하니까 성자가 실체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은 더 차원을 높인 시대의 말씀
이었다.” 어때요? 실체로 남아져 있습니다. “내 육이 행하는 대로 실체가 되더라. 실제로 내 혼이 움직
이더라. 내 육이 기도하고 행하니까 실제로 내 영이 변화되더라.” 여러분, 보십시오. 내 육이 회개하잖아
요. 실제로 자기 영이 깨끗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이 바로 꿈에서 목욕을 한다니까요. 바로 움
직입니다.
교회 처음에 왔어요. 말씀 하나 들었어요. “회개하라. 회개하면 네 영이 깨끗해지리라.” 회개한 거예요.
“주의 이름으로 회개하라고 해서 회개합니다. 성자 주님. 저 회개하고 싶습니다.” 회개했더니 회개가 됩
니다. “성자께 받은 말씀을 가지고만 있지 않고, 내가 어려워도 핍박해도 힘들어도 가만히 가지고 있지
않고, 실제로 행했다. 머릿 속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랬더니 섭리역사가 실체가 되었다.” 맞습니까?
여러분, 선생님 기나긴 시간 동안 민족적으로 정말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간 동안에도
성자께 받은 말씀을 머릿 속에 저장해 놓지 않았습니다. 다 저장해 놓았어요. 그러므로 실체가 되어서
여러분들이 여기 앉아있습니다. 섭리역사는 작아지지 않았구요. 커졌어요. 그것이 실체가 되어서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아,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 맞구나. 절대 행한 대로 갚아주시고 얻게 해주시는 구나. 행함에
있어서 주저하는 자, 이걸 몰라서 그렇겠습니까? 진짜 깨달으면서 듣기를 바라겠습니다. “나는 실천자
야. 나는 진짜 실천자다. 왜? 섭리역사에 이 성자의 말씀은 영원불변하고 변함없는 이 진리이기 때문에
실천하는 대로 행하는 대로 그대로 얻게 된다.” 실천이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 행하는 대로 갚아
주는 공의의 법, 내가 행하는 것이 내가 지불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돈을 지불하는 거예요. 돈이 어
디 있어요? 여러분, 돈 없다고 한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육신 하나 하나가 행하는 것이 여러
분의 영을 위해서 지불하는 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을 사는 것입니다. 공의의 법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선생님께서 기도 많이 해주셨죠. 정말 엄청나게 기도해 주셨습니다. 섭리사에 많은 사람
들이 기도해 줬습니다. 그 기도를 받고 본인이 실천하지 않으면 정말 본인이 건강하고자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행해야 행한 만큼 값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했는데도 건강이 안 좋아졌어.
그러면 여한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요. 책임분담 다 했고, 선생님 기도 다 해주셨고, 섭리 역사 사람
들 엄청나게 기도해 줬는데 행했는데도 안 되는 거 보니까 저는 주님께 다 맡깁니다. 아주 자신있게 맡
깁니다. 내가 다 행했습니다. 아쉽기도 하지만 내가 떳떳하게 내 육과 영혼 다 드립니다.”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선생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내 육이 실제로 기도하면서 보니까 내 육이 기도하는 대로 내 혼이 움직이
더라.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있었다.” 여러분, 지금 이것은 말씀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혼은 선생님의 육에게 가서 말했어요. 나 찾았다고. 그래서 찾았습니다. 혼에게 그 말
을 들었죠. 선생님 육신 못 움직이시잖아요. 그래서 누구에게 시켰습니다. “너 거기 가봐라. 거기 있나
가봐.” 정말 실제로 몸을 시켜서 딱 가서 행하게 했더니만 실제로 혼이 찾은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앞으로 다음 주 새벽 잠언에도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꿈을 꾸고 뭘 찾게 되었는지는 안 나오지만
그런 것을 찾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것, 우리가 모르는 것을 엄청나게 지금 행해놓고 계세요.
행실은 실체를 낳는다. 가만히 있었으면 그것을 못 찾았을 것인데 행했더니만 실체를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아도 실체를 얻어야 되고, 커도 실체를 얻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혼으로
그걸 본 거예요. 그런데 그걸 그냥 보고 오면 꿈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꿈이었네. 끝나요. 여러
분의 혼체를 정말 활동시켜서 낮에 혼이 본 것을 활동해 보십시오. 내가 꿈에 금덩어리를 발견한 거예
요. ‘로또 샀는데 나 로또 당첨되려나?’ 그런데 로또 당첨이 안 된 거예요. 그러면 생명을 발견하려나?
그런데 생명도 아닌 거예요. 알고 보니까, 어떤 사람이 나한테 정말 금반지를 선물로 준 거예요.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요. 꿈이 어디서 어떻게 풀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꿈에 본 것을 낮에 육이 행해도 “실제로 꿈이네.” 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이루어졌네.” 한다는 것입니
다. 여러분 꿈을 실제로 행해야 됩니다. 어젯밤에 잠자면서 꿈꾼 것도 행하구요. 여러분이 꿈꾸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행함으로 얻게 된다는 거예요. “나는 생명을 정말 전도를 많이 하고 싶어.” 가만히 있으
면 아무 것도 못 하는 거예요. 저도 처음에 섭리에 왔는데 너무 말씀을 전하고 싶은데 실력이 없잖아요.
‘와! 저런 기라성 엄청나다. 말씀 진짜 잘 전하는데 나는 신입생이고 아무 것도 모르는데 정말 할 수 있
을까?’ 그 상태로 지금까지 있었으면 나는 아무 것도 못 했을 것입니다.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
라도.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요. 예전에 아침말씀 전해주셨거든욘. 그러면 서울에 와서 그걸 전해주는 거
예요. “이거 오늘 아침말씀이다.” 그것만 전해줘도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그거 하나 하나 적어서 다 전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같은 동네에 있어도 아침말씀에 늦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어? 나 늦었어.” 그러면 제가 “앞
부분 이런 얘기해주셨어요.” 그러면 “고마워. 동생아.” 그래요. 이렇게 하나 하나 실천하면서 내가 부족
해도 하다보니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행한 만큼 쌓이는 겁니다. 행한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말
을 진짜 죽어도 못 할 것 같은데. 제가 그랬잖아요. “저는 죽어도 못 합니다.” 선생님께 매일 하던 말이
예요. 죽어도 못 합니다. 내 몸이 죽어야 합니다. 정말 죽어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죠? 안 죽
었는데 하고 있잖아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너 거짓말쟁이 아니야?” 안 죽었는데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 사람들이 저를 너무 이상하게 보니까 저는 죽어도 못 합니다.” 안 죽었는데 하고 있지 않습니
까? 섭리사에 어떤 사람이 있죠. 제가 단상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인데 어떤 장년부 분이 “내가 지구가
무너지기 전에는 교회를 안 간다.” 여러분, 지구가 안 무너졌는데 그 분은 너무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또 잘 모르시는 분, 이방이세요. 휴거된다고 새벽에도 열심히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죽어도 못 한다고 “나는 체질이 안 맞어. 섭리 체질이 아니야. 나는 죽어도 못 한다.” 는 것을 하고 있
어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 없고, 계속 해서 자꾸 행하면 죽어도 못할 것 같은 것이 행한 만큼 쌓여
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를 부흥강사 시키실 줄 어떻게 알았어요? 죽어도 못 합니다. 죽어도. 죽어
도. 죽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전하는 게 쉬웠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쉽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죽어도 못 한다고 하잖아요. 힘들어 죽겠어. 맛있어 죽겠어. 안 죽습니다. 죽는 것
보다 말씀을 실천하기 쉽고, 죽는 것보다 성자를 사랑하는 것이 쉽고, 죽는 것보다 말씀을 외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믿습니까? 선생님이요. 어느 날 꿈에 정말 좋은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안 행하고 넘어간
거예요. 그래서 얻어진 게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은 아주 좋은 꿈을 꾼 겁니다. 어디서 꿈이 이루
어질지 모른다 하고 그 날은 말씀도 교정하고 시도 쓰면서 행했는데 결국 엄청난 차원의 시 열 두 편이
나왔습니다. 그 꿈은 꿈에 아주 아름다운 여자를 만난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말도 안 했대요. ‘누구
지? 모르는 여자네. 아니 섭리사에 많은 제자들이 있는데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꿈에 보이지?’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다가가서 선생님께서 그 여자에게 물으신 겁니다. 선생님이 호기심이 많으세요.
“어디 살아요?” 그러니까 그 여자가 “왜 물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솔찍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니 나는 나를 따르는 제자들이 수만명이 되는데
아니 제자들은 찾아도 하나도 안 보이고 모르는 여자가 있기에 너무 생소해서 묻는 거예요. 어디 삽니
까?” 여자는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 제자들이 그렇게 많아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성자가 가르쳐 주신 말씀을 전했더니 듣고 “이게 시대진리이고, 하늘이 보낸 자가 맞
습니다.” 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이예요? 저도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가는지 그 진리를 찾고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그 즉시 그 자리에서 말씀 몇 개를 가르쳐 주었답
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진짜 이 말씀 맞습니다. 혹시 제가 찾던 사람 맞습니
까?” 하기에 선생님께서 너무 좋아하면서 “영원히 주를 사랑하면서 살아라.” 하면서 손을 잡고 12군데
를 데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12군데를.
그리고 꿈을 깨고 나서 ‘오늘은 누가 깨달았다고 하는 편지가 오겠구나.’ 하고서 하루 종일 편지를 기
다렸는데 요놈의 편지가 안 왔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실망하지 말고 내가 생시에 꿈을 이루어보자.”
하면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계시글 중에 결재한 것도 다시 보고, 글도 교정하고, 시도 멋있게 썼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요. 시를 사랑하는 여인으로 보신다고 합니다. 내 여인, 기도의 여인, 시의 여인 이렇게
얘기하시잖아요. 그 이유가 뭐냐면은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시상이 오면 딱 붙들고 안 놔줘요. 그래서
시를 기어코 써냅니다. 그래서 시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여인으로 써냅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랑하는
여인, 혹시 그 아리따운 여인이 시의 여인인가?’ 하면서 시를 쓴 겁니다. 그런데 바로 글이 잡혀서 시를
썼는데 아주 상차원의 높은 시, “으아! 정말 좋다.” 할 높은 시를 12편이나 썼다고 합니다. 꿈은 이렇게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기다려도 안 오고, 저것도 기다려도 안 오니까 이렇게 하면서 12군데를
데리고 다녔잖아요. 12편의 시를 받은 겁니다.
이렇게라도 행한다니까요. 꿈이라도 그냥 개꿈이라도 잘 해석해서 열심히 행하면 얻는다니까요. 진짜
요. 이같은 꿈을 그냥 두면 흘러가서 관념이 되고 끝나지만 행하니까 꿈을 이룬 겁니다. “나는 꿈자리도
좋지도 않고 나는 태몽도 좋지도 않아.” 그러지 말구요. 여러분이 꿈을 가지고 멋있게 이루어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꿈을 가지고 계산하면서 해몽하면서 실천하라 했습니다. 여러분, 섭리사 오기 전에 꿈이 있
을 거예요. 저도 꿈 해몽을 이렇게 합니다. 저도 섭리사 오기 전에 매일 결혼하는 꿈을 꿉니다. 얼굴 안
보이는 신랑과 함께. 얼굴이 왜 안보여?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한데? 섭리와서 풀었죠. 성자
를 만날 꿈이었구나. 섭리사에 와서 여러분의 꿈을 하나 하나 이루라는 겁니다. 믿습니까?
또 선생님이 어느 날 생명이랑 꿈을 꾸신 거예요. 어떤 상대 한 명이랑 축구를 하신 거예요. 그런데 이
상대가 선생님 골대까지 와서 공격을 하는 겁니다. 정말 간신히 전력을 다해서 뛰어가지고, 그 뒤에서
상대를 제치고 막았습니다. 그래서 그 골을 선생님 골대 앞에서 상대편으로 멀리 던지면서 간신히 어려
움을 위기를 극복을 했습니다. 꿈을 깼는데 새벽 1시가 넘은 겁니다. 생각해 보니까 이 새벽 정한 시간
에 나에게는 1시인데 이 1시를 넘겨서 일어나니까 아슬아슬하게 시간의 공격을 하는 꿈을 꾼 겁니다.
‘이제 낮에는 시간에 공격을 당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하루 종일 펜을 놓치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이
때가 11월 10일 성찬식, 이 때 잠언이 많이 왔어요. 그 잠언도 거두라. 지금 이 때는 거두어 될 때라는
설교말씀 수요말씀 받아보셨죠? 그 말씀도 그 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성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매일 행하는 자가 영웅이다.” 매일 행하는 자가 영웅이다. 영웅이 되고 싶
으면 매일 행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행하는 자는 영웅입니다. 이 부분을 선생님께서 빨간 줄을 쭉쭉쭉
그어서 “정말 중요한 말씀이다.” 라고 하셨어요. 매일 행하는 자는 영웅이다. 행하는 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절대 쉽지가 않습니다. 말씀을 외치고자 하는 마음은 정말 뜨거운데요. 말씀을 실제로 외치
는 자는 굉장히 적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 행하는 것은 진짜 힘들어요.
매일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그렇게 힘들어요. “내가 내일 아침에는 무조건 물
한 모금을 마실거야.” 여러분 마셔보셨어요? 그렇게 뻑뻑하고 안 들어가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먹는 것도 실행하는 것도 그렇게 힘들다는 것입니다. 매일 조깅하는 것도 10년, 20년 틀이 잡혀야 가능
하다는 거예요. 형제 사랑? 마음으로는 쉽죠.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다른 교회로 내가 옮겨왔거든. 안
보니까 형제사랑이 돼. 나는 휴거되어야 하니까 훌훌 털어버리고 용서하자.” 그런데 그 애가 우리 교회
로 옮겨버린 거예요. 그 순간부터 내 얼굴은 표정관리가 되지 않죠. “쟤는 도대체 왜 온 거야?” 형제 사
랑 쉬울 거 같죠? 쉽지 않습니다. 막상 내가 싫어하던 형제가 눈 앞에 있었을 때도 사랑할 수 있느냐?
진짜 웃는 얼굴도 인사까지 하고 진짜 표정관리 안 됩니다. 형제 사랑이 이렇게 힘들어요. 실행하는 것
이.
생각으로는 기도를 세 시간도 하고 싶어요. 막상 무릎을 딱 꿇으면요. 15분 딱 지나면 쥐는 왜 이렇게
나니? 왜 이렇게? 힘들어요. 여러분, 힘듭니다. 한 시간 내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
닙니다. 매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거 절대 쉽게 보면 안 됩니다. 어려워요. ‘새벽에 일어나야지.’
마음은 벌써 일어났어요. 100번, 1,000번 일어났어요. 그렇지만 내 몸은 아직 누워 있습니다. 그것을 실
행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니까요. 마음으로는 100번은 일어났으나 내 몸은 자고 있다는 것입니다. 얻어지
는 게 없죠. 성자 사랑한다? 마음으로는 넘치고 넘쳐나는데 실제로 삶에 성자를 100번도, 10번도 부르
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선생님을 믿는다? 마음으로는 내 것을 다 주죠? 지구라도 줄 수 있을 만큼
흔들림 없이 믿지요. 그런데 실제로 말씀을 하나 하나 행하면서 믿지를 못 하니까 실체가 없는 거예요.
믿어도.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자를 믿고 사랑해도 얻어지는 게 큰 게 없는 거 같
은 거죠. 관념은 아래 단계이고, 실체는 위의 단계입니다. 그 단계까지 위로 올라와야 실체가 있다는 것
입니다. 자신이 있다고 하고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아요. 행해야 되요. 올라와야 됩니다. 믿
습니까?
성령받고 다음 날 진짜 ‘요즘에는 외치고 싶어 미치겠어. 무슨 말 해도 진짜 전도하고 싶어.’ 다음 날
안 행하면 진짜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성령도 다 식어 버립니다. 어마어마하게 불같이, 등에 땀이 다 날
정도로 불같이 성령을 받았는데도 내가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전도하고 싶어.’ 하고 싶
어. 마음은 큰데 행하지 않으면 단 한 사람도 전도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외치고 싶어. 100분 설교 준
비하고 싶어.’ 100분 설교 준비하지 말고 5분 설교라도 준비하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행하는 데
로 연결이 안되면 실질적으로 얻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면, 사랑의 표를 내라. 사랑의 표를 좀 내라. 신부가 신랑을 맞으면
표가 나는데 첫 번째는 대화를 하게 된다. 신부가 신랑을 맞으면 표가 나는데 두 번째는 할 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대화하며, 표를 내고, 너희 할 일을 하며 제발 나를 맞은 표를 내라.” 말씀하셨습
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잖아요. 너무 답답하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섭리, 노래
가사처럼 정들어 사는 섭리 힘이 들어도 섭리만을 사랑하며 주님만을 영원히 사랑할 건데 왜 쟤는 저렇
게 보지? 내가 행해야지. 내가 표를 내야지. 주와 더 대화를 해야지. 주와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줘야
지.’
여러분, 선생님 보십시오. ‘주님이 정말 나의 신랑임을 보여 주시지 않습니까? 그는 나의 신랑이시오.
속이야기 해주시는 것을 봐라.’ 하면서 나타내 주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믿고 따르지 않습니까?
“그래. 정말 신부맞다. 그 말을 들어보니, 역사 흐름을 보니 정말 맞다.”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정말
변화되어야 합니다. 정말 변화됐는데. 변화가 된 거 같은데? 제 동생은 지금 앞에 앉아있거든요. 얘가
조금 미쳤어요. 성자께 약간 닿았겠죠. 그런데 여기서 그대로 두면 또 다시 돌아갑니다. 변화하려면 완
벽하게 돌아가야 되요. 변화는 완전한 변화를 이루는 겁니다. 성령집회도 진정 나와야 해요. 가고 싶어
서요. 변화되려면 정말 이렇게 변화되어야 해요. 완전히 180도 변화되어야 해요. 360도 변화되면 원점
으로 변화된단 말이예요.
성자의 생각으로 뒤집어져야 하는데요. 여러분, 레슬링할 때 절대 안 뒤집힙니다. 어때요? 잡는 데 안
뒤집히는데 잡으면 승리하는 겁니다. 뒤집히면 실패하는 겁니다. 한 번 힘을 주고 누르면 누가 힘으로
눌러도 뒤집히지 않는 겁니다. 맞습니까? 절대 뒤집어지고 변화되는 겁니다. 변화는 옛날로 돌아가지 않
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해요. 어떤 사람은 “3년 동안, 7년 동안 잘 했는데 왜 이래?” 변화가 완
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래요. 나비가요. 다시 애벌레로 돌아가는 일이 있을까요? 벌레도 곤충두요.
한 번 완벽하게 변화되면 옛날로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죽을 때도 나비의 모습입니다. 그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정말 변화되었다면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는 이성으로 흐르지 않는 겁니다. 이
게 변화예요.
나 스스로도 인정하는 겁니다. “너 정말 변화됐다.” 저는 제에게도 얘기하거든요. “너 아직 그거 멀었
다. 아직 혈기가 남아있다. 그건 고쳐야 된다. 그렇지만 정말 착해졌다. 정말 조은이 너 정말 착해졌다.”
내 동생들이 인정을 하니까요. 여동생이 “언니, 진짜 변화됐다. 좀 달라졌다.” 좀 따뜻해졌다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성령받은 표예요. 좀 따뜻해졌어요. 원래를 확실하게 하는 성격이라서 좀 차가운 부분이 있
거든요. 이렇게 뭔가 변화되면 정말 변화되었다. 선생님께서 저를 보실 때도 “니가 진짜 변화되었더라.
이제 나한테는 니가 편지로 안 따지더라.” “그렇죠? 저 정말 변화되었죠?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일이
맞는 건가요? 물어보고 싶은데요.” 왜 그것이 맞습니까? 왜 그래야만 합니까? 하면 안된다는 거죠. 이
제. 바뀌는 거예요. 정말 똑같은 상황이 왔을 때도 똑같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모습에서 반
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진정한 변화입니다. 딱 보니까 남자 중고등부들이 보이
네요. 남자 중고등부 여러분, 정말 변화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변화 많이 이루었으니까 완벽하게 딱 뒤집어져서 “진짜 전세계에 어떻게 저런 중고등부들이 다 있어?
남자가 왜 저래? 남자가 진짜 보물이네. 청소년들 진짜 엄청나네.” 들어야 되요. 제가 어디를 가든지 남
자 중고등부들도 많더라구요. 정말 변화되는 겁니다. 정말. 다시 돌아가면 안 되요. 성자의 말씀은 생명
입니다. 생명. 생명이지만, 머릿속에만 묶어 두고 관념으로만 끝나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 성자의 말씀은
생명인데도 그냥 머릿속에서 관념으로만 끝나면 얻는 것이 없어요. 생명이 아니예요. 고로 말씀이 실감
이 안나고 내게는 생명이 되지 않습니다. 행하면 실체가 되어서 영도 생명의 영이 되고, 혼도 생명의 영
이 됩니다. 실체가 된다는 말입니다. 의심도 하지 말고 오해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느낄 거야? 어떻게 만날 거야? 그가 역사하는 단계까지 올라와라.
선생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그냥 말씀 주시지 않았다. 내가 그 말씀을 행하는 단계까지 행했을 때 성
자는 그 지점에 계시면서 말씀을 주셨다.” 여러분, 보세요. 섭리역사 성약의 부활, 이 부활을 이루기까지
부활의 말씀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부활되고 나니까 엄청난 말씀이 나오잖아요. 성자 본체분체 말씀이
부활을 맞고 행했으니까 그에 맞는 말씀이 나온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무덤에 있는데 어떻게 본체 말
씀을 나타낼 수 있었겠습니까? 행했기 때문에 그 차원에서 받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실감하지 못 하고, 성자를 실감하지 못 하고, 선생님 조차 실감하지 못 한다는 것은 안 보여서
그런 게 아니예요.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 영상을 봐도 실감이 안 난대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여러분, 이 말은요. 선생님을
영상으로 봐도 실제로 봐도 늘 나왔던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을 안 본 여러분들은요. 아예 그
런 생각을 하지 마세요. 옛날에도 지금에도 선생님을 직접 봐도 “실감이 안 나네.” 하는 사람들 많습니
다. 얼마나 좋습니까? “진짜 비디오로 정말 살아있네. 저렇게 말씀하셨네. 진짜 하셨네.” 확인할 수 있잖
아요. 얼마나 좋아요? 여러분들이 실감하시기 바랍니다. “영상 너무 멀고, 언제까지 계속...” 자기가 자
기 생각을 관념으로 계속 묶어두는 거예요. ‘저렇게 진짜 해보셨구나. 진짜 하셨구나. 진짜 맞구나. 와!
실감나네. 실감네. 선생님 말투는 저렇구나. 하나도 안 들었으면 조은 목사님 말투인 줄 알았네.’ 생각하
지 않았을 것입니까? 전혀 다릅니다. 전혀.
실감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꿔야 해요. 말씀에 중독되면 안 되겠습니다. 중독 안 된 사람
도 심각하지만요. 어느 것도 중독되면 안 되겠습니다. 말씀에 중독되어도 안 되겠으며, 세상것 에 중독
이 되어 그것에만 들어와야 그것에만 기뻐하며 반응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시
대말씀을 듣고, 생명의 말씀을 듣고 내 혼과 영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보람을 누리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만족은 행하는 데서 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자는 말씀하시
기를 “내가 준 어마어마한 많은 말씀들이 너의 머릿속에 관념이 되어 묻혀 있다. 그것을 꺼내서 써라.
그러면 바로 실체가 된다.” 했습니다.
물이 굳으면 차갑게 해서 물이 굳으면 얼음이 되어 무겁습니다. 물이 끓으면 기체가 되어 가볍게 날아
갑니다. 사람의 생각도 실천하지 않아서 관념이 되어 뇌속에서 계속 굳어 있으면 머리가 무거워요. 말씀
때문에. 이것을 자꾸 행하면서 가볍게 만들어 줘야 됩니다. 말씀을 행하지 않으니까 실체가 없는 것입니
다. "말씀을 행하지 않으니까 남는 게 하나도 없던데요." 개인면담 해드릴께요. 오세요. “말씀을 제가요.
다 행해봤는데요. 남는 게 없던데요.” 하는 사람 오세요. 저는 정말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없을 겁니
다. “내가 다 했더니 진짜 말씀대로 하는 대로 다 했더니 하나도 안 남았습니다.” 거짓말입니다.
행했는데 남아지는 게 없다구요. 아닙니다. 거짓말입니다. 100% 남아집니다. 교훈도 되고, 터전이 되어
서 다음에 행할 수 있는 실체가 되어 내가 얻는 것도 됩니다. “전도했는데요. 하나도 남는 게 없었어
요.” 거짓말, “쓰라린 마음은 니가 남는다.” 뭐라도 남는다니까요. “해보니까 이게 진짜 전도 쉬운 게 아
니네. 정말 사람한테 외면당한 기분이 장난이 아니네. 안 해봤을 때는 ‘뭘 그렇게 외면한다고 하지.’ 했
는데 당해보니까 사람이 외면을 딱 해버리는데 아프네. 아퍼. 자존심 상해.” 그 마음이라도 남는다는 것
입니다. 어떤 사람은 바로 행해 버리니까 말씀을 듣는대요. 어? 이런 애도 있네. 신기함이 남는다는 것
입니다. 전도하면 남는 것이 있습니다. 전도가 안 되어도 밑거름이 되어 반드시 생명이 결실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100% 행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선생님은 성자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혀가 닳도록 나를 가르치소서. 내가 몸이 닳도록 행하
겠나이다.” 여러분,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혀가 닳도록 나를 가르치시면 나는 몸이 닳도록 행해 드리겠
나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주여. 혀가 닳도록 나를 가르치소서. 정말 고이 고이 간직
하고 저장하여 머릿 속에다 묶어 두겠나이다. 아무 데도 새나가지 않게 잘 저장해 놓겠나이다.” 여러분,
김치가 아니니 말씀을 잘 숙성시키고 저장해 둘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행해야 됩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말씀을 행하지 않으니 관념으로 끝나서 말씀이 너희 머릿속에 묶여 있는 것처럼
천국도 묶여졌고, 니 혼도 묶여졌고, 니 영도 묶여졌다.” 했습니다. 여러분이 행하지 않고 여러분이 관념
으로 묶어두고 있으면 여러분의 혼, 영, 천국 다 묶여져 있습니다. 풀어야 되요. 이것은 정답 하나, 행함
으로 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했죠. 뇌를 언제까지 풀건데? 언제까지 풀고 있을 건데? 다리
가 뭉쳤어요. 언제까지 풀 거예요? 1년 365일 허벅지만 풀고 있는 거예요. 어때요? 어느 정도 풀었으면
나가서 뛰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허벅지 풀다가요. 종아리 풀다가요. 1년 365일 풀기만 하면 가서 잠이
나 잡니다. 너무 근육이 풀려 가지구요.
뇌를 언제까지 풀 거예요? 여러분, 뇌를 어떻게 푼다고 했죠? 행하면서 풀어라. 행해야 풀려요. 그냥
안 풀려요. 여러분. 맞습니까? 이성으로 굳어진 뇌는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안 행해야 풀린다는 거예
요. 맞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위행위로 굳어진 뇌가 안 행해야 풀린다는 거예요. 계속 행하면서 뇌는 안
해주기를 바라고 있으면 안 되요. 말씀 마무리 하겠습니다. 휴거 때, 독립 때를 맞았는데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아. “11월이야. 11월이 끝나고 있어. 어! 어!” 기본적으로는 아쉬워하며 다 이래요. 안 그런 사람
이 섭리사에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은 그럴 거예요. “왜 저래? 11월이 끝났다는데
연말이니까 즐기고 좋은 거 아니야? 연말이면 놀고 먹지.”
우리는 연말이라면 모든 사람의 반응이 어떻죠? “어이구...” 다 이러죠. “연말이야!” 하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거의 다 없을 거예요. 왜 그러는지 우리는 알잖아요. 심통,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게 있잖아요.
‘이 연말, 이 휴거의 때 마지막, 연말, 성자 재림하시고 그 육으로 역사하시는 마지막 11월이 얼마 안
남았어. 절식기도 해주셨는데 그 의미가 얼마나 큰지 잘 모르겠어. 알고 싶은데.’ 모르고 싶은 사람이 여
기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알고 싶은데. 정말 하고 싶은데. 실감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안되지?’ 답은
하나,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해봐야 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선생님께서 이렇게나 기도해 주시는데, 내가 하루에 기도 이만큼 밖에 안 하고, 이만큼
역사 일으키는데 엄청나게 기도하면 진짜 더 크게 선생님의 심정과 성자의 심정을 받겠구나.’ 자부했다
니까요. 행하지 않았을 때는 모릅니다. 해봐야 안다는 거예요. 5분이나, 10분이나, 30분이나. 1시간이라
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생님 절식기도 누구 때문에 해줬습니까? 누구 때문에요? 답이 딱
나와야 되요.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해준 것입니다. 니가 아닌 나입니다. 쟤 때문이 아니예요. 바로 나입
니다.
나 때문에 절식기도를 해준 겁니다. 너무 답답해서. 그 조건으로 우리는 휴거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
것을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포기는 완전 금물이예요. 선생님께서 나를 위해 조
건을 세워주시고, 성자께서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해주시는데 내가 포기하면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자와 사랑하며 살아야 될 때가 아니냐. 너 언제까지 꿈만 꾸면 살래? 언제까지 뿌리기만 하
며 살래? 이곳은 꿈을 실현하는 성약역사가 아니냐? 천국을 실현하는 역사가 아니냐? 그런데 니가 아니
면 누가 이루냐?” 그 심정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행하지 못 함으로 꿈을 실현하고, 천국을 실
현하는 역사인데도 보여주지 못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약하다고 생각하고 안하면 진짜 되는 거 하나
도 없습니다.
저는요. 진짜 나약한 사람으로서 제가 매일 미약하고 나약하다는 기도를 많이 해요. 여러분이 보실 때
는 말씀을 담대히 외친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요. 정말 미약하고 정말 부족합니다. 그리고 무서워요. 세
상이. 저는 처음에는 섭리사도 무서웠어요. 얼마나 무서웠으면 장년부나 가정국 모임 가기가 싫었습니
다. 왜냐하면 제가 나이가 너무 어린 거예요. 섭리 연륜도 어떤 사람은 20년씩이나 넘어 버렸는데, 지금
10년 정도 밖에 안 넘은 사람이 단상에 서서 그 사람의 얼굴만 쳐다봐도 무서운 거예요. “얼마나 잘하
나 보자.” 진짜 그렇게 안 했는데도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너무 미약하고 연약하고 내
가 뭘 잘 할 수 있지?’ 내가 너무 두려운 겁니다.
그래서 밑에서 진짜 주님 내가 하는 거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께 받은 말씀만 외칠 거니까 내 말 안할
거니까 코치해 주신 대로 할 거니까 나는 담대하게 자신있게 올라갈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밑에서 계
속 무장해요. 그러면서 내가 올라가면 진짜 기도한 대로 능력을 주시는데요. 그거는 행해보지 않은 사람
은 진짜 모릅니다. 미약하고 부족하지만 그동안에 정말 많은 세월 속에서 정말 많은 어려움 속에서 굳
건하게 믿음을 지키고, 선생님을 증거하면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내 능력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걸 알
고 있습니다. 미약하고 부족하지만 행하면 발전이 일어나는 거예요. 행하면 자꾸만 역사가 일어나는 거
예요.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꼴보기 싫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거야.” 아무 것도 알아주
는 사람도 없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가서 움직였을 때는 마음이 풀리는 사람도 있고, 선생님에 대해서
조금 더 깨달아 주는 사람도 있고, 너무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 와중에 2007년도, 2008년도 얼마
나 힘들었습니까? 그 와중에도 이거는 선생님 말씀을 외치고 증거하기 전에 사람들이 저를 오해하니까.
그런데요. 내가 당장이라도 가잖아요. 그러면 내가 가서 선생님 이야기해주잖아요. 그러면 와서 신입생
이 그러는 거예요. “저 선생님에 대해서 오해가 풀렸어요.” 너무 기쁜 거예요. 그 순간 내가 안 갔으면.
저 사람 하나를 못 풀으니까. 다 그런 거 아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행하니까 행한 것만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이 행한 것으로 정말 많은 역사를 이룰 수 있겠더라구요. 여러분, 행해야 합니다. 선생님, 어떤 어려움
에서도 멈춰 계신 적이 없습니다. 역사는 살아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멈춰 있었다면 핍박도 멈춰 있을
겁니다. 그건 100입니다. “죽었어. 건드릴 필요도 없어.” 이미 죽은 자를 무엇 하러 건드릴 필요가 있습
니까? 살아있으니까 “너 죽어! 너 죽어!” 하면서 계속 건드리는 것입니다. 멈추어 있는 역사가 되면 안
됩니다. 앞으로 가야할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야기하죠. “당세에 뜻을 이루자. 선생님 살아계실 때, 신약역사와 다르다. 정말 빛을 발할 수
있다. 봐라.” 예수님 시절, 35년 됐을 때 보세요. 여러분, 진짜 정말 부활은 됐지만, 무덤기간 갖지 않았
습니까? 아직 박해는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섭리역사 35년 만에 이와 같은 역사를 이루었어요. 신약
역사보다 두배 빨라요? 그러면 2배, 70년, 그렇게라도 계산을 해봐도 섭리역사 어마어마하게 큰 겁니다.
“당대에 이건 안 돼. 더 크게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해. 선생님 살아계실 때 선생님 위신도 세워드리고 성
자의 권위를 드높이 세워드리자. 이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가 정말 맞어. 니가 잘못 생각하는 거니까 들
어봐.”
당대에 어마어마한 역사를 이루어 드리고 싶고, 여러분 벌써 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진짜 선생님
성자 사랑의 집 위에서 말씀을 전하셨으면 좋겠다. 여러분, 요즘에 월명동에 가면 자리를 물색하고 다니
지 않습니까? 어딜 앉지? 어딜 앉아야 되나? 우리는 당대에 큰 뜻을 이루어 드리고 싶습니다. 연예인들
이 10만명 모아놓고 콘써트를 했다고 하면 저는 마음이 억장이 무너져요. “지가 뭔데? 10만명 모아놓고
콘써트를 하는 거야? 진짜 선생님도 저렇게 해드리고 싶다.” 꼭 시대의 말씀 어마어마하고 진리이고 거
짓이 없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당대에 이루어 드리자. 하늘의 권위를 좀 높이 세워드리자.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열심히 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 거두어야 합니다. 과거에 다 뿌려놓은 것을 지금 거
두면서 우리가 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선생님도 떳떳하게 증거하고, 인생 보람도 누리고, 힘들다고 하
지 말고 행하는 것입니다.
왜 힘들다고 하느냐? 안해서 그렇지. 막상 나가서 뛸 거 생각하면 힘든데, 막상 새벽에 나가서 뛰어봐.
기분 상쾌하다! 여러분, 보세요. “새벽에 나 나가기 너무 힘들어.” 했는데 데리고 나가잖아요. “뛰어보니
괜찮네.” 그런다니까요. 막상 안 하면 관념에 묻혀서 너무 힘들어지고, 막 생각이 짬뽕되고 너무 어렵게
커져요. 어렵게. 어렵게. 막상 행하고, 부딪히면 그만한 어려움이 있지만 해결책을 찾게 되고, 자꾸 나가
서 더 노련하게 되고, 자꾸 방법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죽지 않았는데 말씀을 전해서 그걸 회개하고 있습니다. “죽어도 못 하겠어요.” 한 것을
회개합니다. 죽기 전에 다 하겠습니다. 죽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니까 죽기 전에 꼭 모든 것을 행하는
자가 되겠다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뤄야죠. 당대에 이루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행
하기만 하면 실체가 되어서 바로 지금 오늘부터라도 내일부터라도 없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너 말씀 머릿속에만 넣고 있지마. 관념이 되어서 무(無)로 사라진다. 아무 것도
없다. 너가 행하면 니 육신이 행하면 너의 영도 실체, 혼도 실체, 천국도 실체, 선생이 행한 것도 실체가
된다. 섭리역사도 실체가 된다.” 여러분, 이 역사 유령의 역사로 만들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행한 것을 “뭐 있어?”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께서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
얼굴을 직접 못 보면서 이런 민족적인 환란을 당하시면서도 이렇게 행하신 것이 무(無)로 사라지지 않
게 유(有)로 진짜 행해놨다 진짜 해놨다 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행함이 답이라는 것입니다. “내 분체가
오죽 답답했으면 6개월의 기간 동안 절식기도를 했겠냐. 사랑이 아니면 그같이는 못 한다.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내가 그 마음을 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합니다. 더 사람의 증거는 너무나 약하
고, 감동이 약하니까 성령이 그 마음을 활짝 열고, 그 마음이 순수한 자에게 불같이 증거하기를 원합니
다. 성자도 이 시대도 분체되는 자도 성령께서 증거하시면 거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더 큰 역사가 일
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는 하면 됩니다. 가만히 있지 마세요. 가만히 있으면 안되요. 짜증내고 있으면 “짜증내지
마.” 이것부터 바로 해야 되요. “왜 그래? 너 짜증내는 성격부터 고쳐!” 그리고 바로 고치는 거예요. “안
돼. 짜증내지 마. 안 해 안 할거야.” 가만히 있으니까 머리가 터질 것 같애. 가만히 있으니까 속이 터질
거 같애. 그러면 차라리 산에 가서 소리를 지르세요. 아!! 그렇게 하시라니까요. 뭔가 방법을 써가면서
행해야 된다니까요. 안된다고 하지 말고. 아시겠어요? 꼭 그렇게 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
니다.
새벽에 정말 졸려요. 여러분, 새벽에 다 경험해 보셨을 거예요. 진짜 졸린데 진짜 새벽에 기도하려고
애쓰면 졸음이 다 날아간다니까요. 해보셨어요? 진짜 신기하다니까요. “졸려. 졸려. 그런데 오늘은 안 졸
려. 그런데 기도하니까 졸려.” 그런 날이 있어요. 안 하려고 하니까 그래요. 행해야 합니다. 행하고자 하
는 이 마음이 아주 불같이 타올라야 해요. 여러분의 마음 속에 “행하고 싶어. 진짜 행하고 싶어. 행하고
싶어 죽을 거 같애. 당장 튀어나가고 싶어. 뛰어나가자. 하자!"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이 말씀이 너무나 중요하냐면 이제 2014년이 우리에게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014년은 이제 성
자 사랑의 해예요. 성자 사랑의 해. 이제는 2014년부터는 역사의 흐름이 바뀝니다. 흐름이라는 것이 있
습니다. 영휴거가 선포되었고, 이제는 부활되었기 때문에 흐름 자체가 바뀝니다. 성자 사랑의 해, 이걸
깨달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왜 성자 사랑의 해인지, 정말 본인이 실제로 행하면서 성자를 사랑하면서 휴
거되면서 인생을 살지 않으면 2014년 주제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점점 갈린단 말이예
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완전하게 분별되고, 그 다음에 때가 되면 때가 될수록 선과 악은 정확하게
분별이 됩니다. 처음에는 섞여 있어서 잘 몰라요. 신약과 성약이 섞여 있어서 모른단 말입니다.
어때요? 때가 되니까 완벽하게 분별이 됩니다. 물과 기름이 분별되듯이 누가 봐도 분별이 된다는 것입
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이 역사로 불러오고 이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이와 같이 절식기도 조건을 세워
주시는 이유를 알겠습니까? 한 명도 낙오되면 안된다는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어떤 특정한 사람을 두고 행한 것이 아니라, 섭리 전체를 두고 행한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낙오되면 안
되는 거예요. 바로 자기 자신이. 내년 성자 사랑의 해, 이제는 “이끌어 주세요.” 가 아니라 진짜 주님과
함께 발맞추어 나가는 그런 찬란한 섭리역사를 세상에 보여 주고, 모든 사람에게 떳떳하게 보여 주는
역사가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기대되지 않습니까? 자, 기대만 하지 말고 꿈을 품고 살아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자, 한 가지
더 마지막으로 목적이 약한 사람은 절대 목적을 다시 세우기 바랍니다. 그럼 안 행해져요. 목적이 없으
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어요. “너희의 목적에 있어서 첫사랑을 잃은 자들은 목적을 다시
세워라. 너의 목적과 나의 목적을 같게 하자. 그 목적이 흐릿해지거나 그 목적을 잃어버리면, 절대 행함
의 불이 나지 않는다.” 알겠습니까? 동물이 사냥할 때요. 사냥하기 전에는 막 뒹굴면서 자요. 그러다가
딱 사냥 표적을 딱 발견하면 눈에 불이 나갑니다. 그거 하나만 놓고 행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게 목적을 잃었으면 그 첫사랑을 잃었으면 여러분의 목적이 성자와 같게 만드시기를 바라
겠습니다. 믿습니까? 목적을 향해 정확하게 달려 나가서 이 섭리역사 ‘힘이 들어도 오직 주님만을 사랑
하는’ 이 아니라 ‘힘이 들어요. 왜 힘들어요?’ 하나 더 붙이게 ‘힘이 들어요.’ 하면 우리는 ‘왜 힘들어요’
하게, 이렇게 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주님께 말씀드릴 수 있게, 알겠어요? ‘정들어 사는 섭리’ 하면 ‘이미
정들었어요.’ 이렇게 하면서 알콩달콩 신부 혼인잔치 역사니까 여러분, 모두가 영육간에 정말 이 노동자
의 얼굴 다 빼고, 섭리 열심히 뛰면서 왜 노동자의 얼굴을 하고 있느냐? 왜 핍박받은 자처럼 얼굴이 그
러냐? 콱 쾡해가지고. 신부의 얼굴, 행복한 얼굴, 기쁨의 얼굴로 만들기 위해서는 꼭 목적을 정확하게
잡고 이 자신있는 섭리역사를 몸으로 잡고 행함으로 이 섭리역사가 충만하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성령 뜨겁게 받아야 되겠죠?
이제 우리 오늘은 이것만 기도합시다. 선생님 조건 세워주시고, 이 역사가 무덤에서 벗어났다고 했는데
실감이 안 나는 거죠. 벗어날 수 있도록 행함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행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이 자꾸
약해지는 부분들, 뇌는 풀린 거 같은데 아직까지 행하지 못 하는 이 부분들, 빨리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일 수 있도록 행하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그 능력을 받았으면 그 능력을 시험
해 보는 거예요. 나가서 능력을 받았나 시험해 보고 행해보는 겁니다. “되네. 되네.” 하면서 기쁨을 누리
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조건 아깝지 않게 6개월의 절식기도의 조건이 얼마나 큰지 여러분이 몸소 느껴
보시길 바라겠고, 앞으로 행함에 있어서 꿈과 생각과 다릅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니야. 내가 나 스스로는 못 했지만 선생님께서 나를 위해 조건을 세워 주셨으니
까 해야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조건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행하
시는 생각과 정신이 여러분의 머릿속에 완전하게 들어가기를 바라겠습니다. “진짜 주님, 변화됐으면 완
전 이왕이면 완전 변화되게 해주세요. 과거로는 아예 돌아가지 않겠어요.” 완전하게 변화될 수 있도록
행함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성령의 불길이 뜨겁게 내려와서 선생님의 절
식기도 내일 끝나는데요. 이 성령집회, 올해 마지막으로 한 번 남겨놓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는 산삼같은 인생이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면 이제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도록 성자의 사상,
그 정신을 가지고, 선생님의 정신을 갖고 행하는 능력이 충만하게 해달라고 행함에 있어서 절대 주께서
함께 해주시고 성령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진정 간구하면서 행함에 불이 일어나는 내가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불길이 내게 내려와.
‘임하소서 성령이여’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