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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3.12.04 (수)

계시말씀 5243f5bd

선포일
2013.12.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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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원하는 소통 작성일 : 2013. 10. 01(화) 새벽 2시 작성자 : 주은혜 (며칠 전 제가 마음으로 깊이 성자를 그리워하며 ‘정말 성자를 만나고 싶다!’하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일이 많아 깊이 기도하지 못하여서 깊이 있게 성자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자께서 원하는 차원에서 만나지 못하고 내 수준 내 차원으로 성자를 만나니 속 시원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성자께서는 ‘나 성자가 원하는 차원에서 너희의 마음이 내게 닿아 그 마음으로 만나야 진실로 만나는 것이지.’하고 말씀해 주시면서 성자와의 소통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어 저에게 성자와 소통이 되지 않는 자들이 가는 영계에 가보지 않겠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순간 좋지 않은 곳으로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겁이 나서 성자께 ‘꿈에서 제 혼체로 가보면 어떨까요?’ 여쭈니 성자께서는 ‘그렇게 하자.’하셨습니다. 그날 밤에 저는 꿈에서 혼으로 성자와 소통이 안 되는 자들이 있는 영계를 가게 되었습니다. 성자의 손을 잡고, 기도 중에 혼으로 영계를 가면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지켜봤었는데 꿈으로 가니 저 혼자 직접 소통이 안 되는 곳에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곳은 무척 어두웠고 사탄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끌고 가서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탄에게 질질 끌려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탄에게 맞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자는 사탄에게 강간을 당하기도 했으며 마치 사탄이 사람들을 종 부리듯 하며 끌고 다녔습니다. 성자의 손을 잡고 볼 때보다 가까이 경험하고 보니 공포감이 대단했습니다. 사탄이 제게 가까이 오려 할 때 저는 그곳에서 도망쳤고 이어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성자와 대화하며 성자께 이 꿈을 풀어 달라고 했을 때 성자는 ‘기도를 해도 나와 소통이 되지 않는 기도를 하면 낮은 차원에 거하게 된다. 자꾸 낮은 차원에 존재하면 어느 순간 어둠이 덮치고 사탄이 덮쳐 사탄에게 끌려 다니게 되는 것이다. 고로 무엇을 해도 나와 소통하는 삶이요 선생과 소통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후 오늘 소통에 대해 성자께서 말씀해 주셔서 받아 쓴 말씀입니다. *성자의 말씀* 성자는 사람과 달라서 얼굴을 맞대고 만난다고 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네 마음속에 살아 있는 성자와 만나야 만나는 것이지. 고로 성자와 소통하는 것 성자와 만나는 것은 단순히 기도만 해서 말씀만 보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자가 원하는 차원까지 네가 올라와 깊은 마음으로 서로 소통해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더 쉽게 설명해 보자. 나 성자와 네가 성자 사랑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자. 그런데 너는 성자 사랑의 집 1층에 있고 나는 3층에 있다면 만날 수 있겠냐. 같은 곳에 있다 해도 다른 층에 있으니 만날 수 없다. 그처럼 섭리의 모든 자들도 섭리 안에 있지만 섭리 안에서 모두 나를 깊이 있게 만나며 소통하고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를 깊이 만나려면 나 있는 곳까지 와야 한다. 섭리역사 독립의 역사가 되었으니 신부가 먼저 신랑을 찾고 성자가 원하는 곳까지 너희가 와야지 나와 소통하고 나를 만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성자가 계시는 곳까지 갈 수 있나요?) 각 개인마다 성자가 서 있는 차원이 다르다. 성자는 공의로운 분이기에 각각의 차원마다 그에 맞게 성자는 거하고 있다. 어떤 자는 조금 더 낮은 차원에서 성자를 맞고 사는 자가 있고 어떤 자는 더 높은 차원에서도 성자를 만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왜 그러할까? (아마도 낮은 차원이라도 신앙이 어린 자라면 성자께서 수준을 낮추어 주셔서 조금만 수고해도 만날 수 있도록 하시고 높은 차원에 있는 자는 장성한 자니까 성자께서 그 차원에 맞게 계시는 것 같아요. 성자를 만나려는 노력은 각각 상대적인 거니까요.) 그래, 맞다. 어린 자나 장성한 자가 동일하게 같은 곳에 서 있으면 공의롭다 할 수 없겠지? 그 개인에 맞게 성자를 만날 수 있는 차원이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은 나 성자는 너희의 차원보다 한 차원 높이 있다는 것을 알아라. 이 말은 너희가 지금 신앙을 하는 차원 노력보다 조금 더 할 때 성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차원을 높이는 자는 매일 성자를 만나며 살 수 있고 자신의 차원에서 주저앉은 자는 섭리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성자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성자께서 원하는 차원까지 올라와야 성자와 깊이 소통하는 것이고 또 성자께서 원하는 차원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 차원보다 조금 더 높은 차원 하나를 더 한 삶에서 성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공통적으로 만나는 성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이 세계는 신앙 세계고 섭리라는 하나님의 역사다. 고로 누구든지 섭리세계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역사인 고로 하나님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산다. 매일 차원을 높이지 않아도 자신의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삼위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차원을 높일수록 공통적인 사랑이 아니라 개개인의 섭리역사를 느낄 수 있고 개인에게 직접 역사하시는 삼위를 만날 수 있다. 즉 섭리 안에는 절대적 삼위의 사랑과 상대적 삼위의 사랑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너도 나를 항상 만날 수 있는데 나를 그리워하지 않았냐. 그 이유와 같다. 네가 나를 항상 만날 수 있는데도 나를 그리워함은 더 높은 차원으로 더 깊이 나를 만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마음 내 마음 깊이 닿아 만났다면 그리워하거나 만나고 싶어 하지도 않았겠지. 차원을 달리해야 할 때가 되었으니 나를 만나고 있으나 나를 못 만난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냐. 누구든 나를 만나고 있으나 누구든 나와 대화하고 있으나 나와 모두 소통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나와 소통이 되는 자는 나와 마음이 통하는 자요 내가 각각에게 원하는 차원까지 오른 자다. 그 차원이 되려면 자신의 차원을 넘어야 하고 말씀으로 기도로 선생 사랑으로 각각의 그 단계의 수준을 넘고 한계를 넘어야 된다. 큰 깨달음을 발판으로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항상 너희를 따라다니고 지켜본다고 해서 너희와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지. 너희가 항상 새벽마다 나를 찾고 부른다고 해서 너희와 내가 만나는 것도 아니다. 신과 인간이 만날 때는 마음과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 꿰뚫어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소통이요 만남이다. 이것을 알아라. 차원성을 높여라.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 차원에서 한 차원만 더 높이면 성자가 보인다. 너희가 하던 것을 조금 더 하면 너희가 하던 수고를 조금 더 하면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생각할 때 조금 더 하면 성자와 마주하고 대화하게 될 것이니 나를 잊지 말고 나와 소통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성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