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3.12.15 (일)
131215j목적없으면마음생각무미하다
- 선포일
- 2013.12.15 (일)
- 성경 본문
- 창세기 1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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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5일 주일말씀>
목적이 없거나 흐리면, 마음과 생각이 무미하다
본 문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마태복음 22장 3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강의 만들어서 전하면 좋은 말씀 (생방 예정, 그러나 준비 필수)
할렐루야!
우리의 진실한 마음과 온전한 몸을 드리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예배로 영광 돌리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는 우리의 진정한 예배를 받으시며, 사랑
과 은혜와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
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12월 15일입니다. 다음 주는 크리스마스 주간이니, 크리스마
스 말씀이 나가고, 그다음 주는 정말 2013년의 마지막 주일로 연말 마
지막 말씀이 나갑니다. 고로 오늘 말씀이 금년도 주일말씀으로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오늘은 전 세계 생방송으로 함께합니다.
오늘은 “목적이 없거나 흐리면, 마음과 생각이 무미하다.”라는 주
제로 말씀해 줄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말 잘 듣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야 마음·정신·생각의 문제가 해결되고, 무미하고 흐리멍덩한
마음과 생각이 바뀌어 인생을 보람 있고 찬란하게 살게 되고, 삶의 의욕
을 가지고 확실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정말로 해결하지 못하기에 삶의 희망도 잃
고, 사는 보람도 없이 살아갑니다. 섭리사에 사는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시작>
오늘 새벽에 기도하면서 성자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마음·정신·생각이 또렷하고 찬란합니
다. 그런데 인간들은 마음·정신·생각이 흐리멍덩하고 무감각하여 삶을
무미하게 살고 있습니다. 섭리인들 중에서도 마음·정신·생각이 흐리멍
덩하여 삶을 무미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떻게 하
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처럼 생각이 해같이 또렷하고, 빛같이 찬란하
게 살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선생의 간구를 듣고,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천천히> “<목적>이 확실하지 못해서다.” (기본 제스처)
이 말을 다시 설명하면 ‘<사람이 사는 목적>이 확실하지 못하니, 마
음·정신·생각이 흐리멍덩하고 무미하고 무감각하다.’ 함입니다.
이 말씀에 해당되는 자, 곧 <자기가 사는 목적>이 확실하지 않은 사
람은 말씀을 듣고 ‘목적’을 확실히 다시 배우고 알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가지고, 계속 성자가 해 주신 말씀을 듣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TV에서 동물의 세계를 보면 사냥을 하는 동물들도 평소에는 누워서
뒹굴며 왔다 갔다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저러고 어떻게 사냥하냐?”
그런데 사냥을 시작하면, ‘사냥감을 잡으려는 목적’이 있으니 눈에 빛
이 나면서 정신일도 하여 사냥감을 쫓아갑니다.
또 사냥을 당하는 동물들도 평소에는 누워서 뒹굽니다. 그 모습을 보
면 애간장이 타 “저러다 잡아먹히겠다.” 합니다. 그런데 사냥이 시작되
면, ‘살려는 목적’이 있으니 정신을 칼같이 세우고 도망갑니다. <끝>
이와 같이 사람도 마음·정신·생각이 흐리멍덩하고 무감각하면 인생
을 무미하게 살면서, “나는 왜 살지? 내 마음과 정신이 내 몸 안에 있
나? 나는 무슨 의미로 인생을 살지?” 합니다.
섭리사에서 시대 말씀을 듣고 살면서도 인생이 무미하다고 생각하며
수시로 곤고해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뭘 하긴 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다가 세상으로 발길을 돌려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이는 <목적>이 확실하지 못하니, 거기에 빠져 땀을 흘리면서 집중하
여 목적을 이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로 마음·정신·생각이 흩어져
‘확실성’을 잃고 무미하게 살아가는 차원에 처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목적이 없으면, 생각이 흐리멍덩하고 무미하고 무감각하
다.”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어떻게 항상 마음·
정신·생각이 해같이 또렷하고 빛같이 찬란하고 확실해요?” 하고 성자
께 물었습니다.
이에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목적이 확실하니, 매일 매초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땀 흘리고 심정 태우고 기뻐하며 나의 목적을 알고 행하는
자들과 같이 행하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해같이 또렷하고, 빛같이 찬
란하고 확실한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확실히 들어 보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잘 표현해야 할 영상 –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화면으로 표현할 것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는 천국에서 영원히 사랑하며 살 사랑의
대상체를 만들기 위해 우주를 구상하고, 지구를 구상하여 137억 년의 긴
긴 세월 동안 지상 세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삼위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창조했다.
처음에는 사람의 지능이 낮아 바로 가르칠 수 없으니, 사람이 점점
성장함에 따라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함
으로 인간이 지상에서 삼위일체를 믿고 섬기고 사랑하며, 삼위일체의 마
음과 정신과 생각을 행하게 했다. 그리함으로 육의 행위를 통해 그 혼과
영이 성장하고 변화되게 했다.
그러다 때가 되어 이 땅에 성자를 보내고, 성자의 육으로 쓸 자를 지
상에서 뽑아 그를 통해 하늘의 비밀을 밝혔다.
그 말씀을 듣고 행하게 하여, 그 영이 ‘삼위일체의 상대 기준’이
되게 만들었다. 그 영들을 휴거시켜 천국에 데려와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를 마음껏 사랑하며 살도록, 이 <목적>을 두고 인간의 ‘육’을 창
조하고, 그 육을 통해 ‘영’을 창조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는 이 <목적>이 태양같이 또렷하니, 마
음·정신·생각이 우주 공간을 꽉 채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쁨으
로 쉬지 않고 행하며 살아간다.
<잠시 쉬었다가> 더군다나 우주와 지구 창조 137억 년 동안 기다리고,
구원역사 6000년 동안 기다렸던 <휴거 때>가 ‘지금’이니, 마치 태양
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듯 <창조 목적과 휴거의 목적>이 더욱더 뜨겁게
내 마음에 들어와 기쁨과 사랑에 벅차서 살고 있다. (하셨습니다.) <끝>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태양같이 또렷한 목적’을 두고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지금까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행하고 계
십니다.
그런데 지구 세상의 모든 자들의 표상으로 시대 말씀을 들은 섭리인
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알면서도 목적을 정확히 두지 못하고 마음도 정
신도 생각도 흐리멍덩하게 무감각하게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목적>을 두고 마음·정신·생각이 똘똘 뭉쳐 마
치 태양 불덩이처럼 빛나고 확실하더니,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정신이 흐
리멍덩하고 감각 없이 살면서, 섭리를 살아가는 삶의 의미도 잃고 ‘내가
이같이 신앙생활 하면 휴거되나? 내 죄가 다 회개됐나?’ 하며 오늘도
무미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창조 목적>을 가지고 마음·정신·생각이 빛나서 목적을
향해 희망을 두고 행하며 확실히 사시는데, 그 목적을 이루도록 시대 말
씀을 듣고 사는 우리가 정신이 흐릿해서 무감각하게 살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목적이 하나님과 같지요?
<창조 목적>과 <휴거 목적>을 이루기를 원하지요?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과 같으니,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우
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 목적에 걸어 놓고, ‘왜 살아야 하는가?’ 확실
히 알고, 땀을 흘리며 희망으로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탈감과 허무함
을 벗어나고, 흐리멍덩하고 의미 없는 삶을 벗어나게 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매일 <창조 목적>을 두고 기쁨으로 행하
며 사시는데, 미약한 인간이 그리 살지 않으니 마음도 방황하고 몸도 방
황하며, 무미한 정신과 마음으로 쓸쓸함, 적적함, 외로움, 고독 속에 세상
여기저기를 기웃거립니다. 그러다 ‘인간이 평생의 사랑의 대상이다.’
생각하고, 이성이나 생각하고, 딴 데 시간을 쓰며 삽니다.
어느 날 선생이 할 일을 두고 열을 내서 하다 보니, 점심 식사 시간
이 다 된 줄도 몰랐습니다. 밥 한 술을 타 놓고 ‘식기 전에 얼른 먹어야
지.’ 했는데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쓰다 보니 오후 4시가 지났습니
다. ‘내가 편지를 쓰다 말고 밥을 먹으면, 이 뜨거운 마음이 식어.’ 하
고 ‘모두 똑같이 귀한 생명이니 모두에게 정성으로 편지를 쓰자.’ 하
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고 나니, 순간 4시간이 지나 오후 4시가 됐던
것입니다. 그동안 밥도 국도 다 식어 버려서 그냥 안 먹고 지나갔습니다.
이같이 무엇에 빠져서 하면 마음·정신·생각이 또렷해져 그 일에 몰
두하니, 먹을 것까지도 생각이 안 났습니다.
휴거도, 자기 할 일도, 기도도, 전도도 ‘목적’을 두지 않으니, 머릿
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가 죄나 짓고 헛된 생각이나 하면서 마음·정신·
생각이 메마른 광야를 헤매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듣고 <삼위일체의 창조 목적>과 <휴거의 목적>을 두고
마음·정신·생각을 해같이 또렷하게 하고 ‘성자 사랑’에 불을 붙여 살
아야 됩니다. 기회를 줬는데도 할 수 있는데도 못 하면, 이는 얼마나 영
원히 후회할 일이며 억울한 일입니까?
<전환>
지금까지 딱 한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목적이 없거나, 목적을 잃었거나, 목적이 흐릿하
면 마음·정신·생각이 무미하고 무감각해져 ‘나는 왜 사는가?’ 하며
마음이 구름같이 떠다니게 됩니다.
사람은 몸을 가지고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고로 마음·정신·생각의 <목적>이 확실해야 됩니다.
그러나 <육적인 목적>은 가져도 곤고하고, 이뤄도 허무합니다. 오직
<영원한 목적>을 최우선으로 하고 행해야 됩니다. 이것만이 육도, 마음
도, 혼도, 영도 영원한 기쁨과 사랑과 희망의 삶을 살게 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돼지, 소, 양, 닭 등 동물들은 나름대로 먹고 자고 즐기며 삽니다. 이
들은 살면서 “우리는 노는 것이 목적이야. 먹고 자는 것이 목적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내 생각은 그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를 기르는
목적이 있어. 너희를 키워 잡아먹으려고 그 목적을 두고 기른다.” 합니
다. 주인의 생각과 동물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람들도 세상을 살면서 먹고, 즐기고, 취하고, 사랑에 빠지고, 물질
과 향락과 명예에 빠져 살면서 “인생 사는 목적이 뭐야? 우리 마음대로
즐기며 사는 것이지. 인생은 돈 잘 벌어서 잘 먹고 잘사는 거야.” 하며
삽니다. 그러나 창조주 삼위일체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오직 육을 통
해 영을 구원하고 휴거시켜 천국에 와서 살게 하는 <창조 목적>뿐입니
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끝>
주인이 돼지를 가수 시키려고 키웁니까? 아니면 먹고 놀면서 살라고
키웁니까? 아들딸이 결혼하는 날에 돼지를 잡아서 잔치하려고 그 목적을
두고 키웁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하루도 연장하지 않고, 정한 날에 예비된 영을 휴거
시켜 천국에서 <사랑의 혼인 잔치>를 하려고 인생들을 창조하셨고 키우
십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우주같이 그 큰 사랑을 다 해 주면서 영원히 같
이 살려고 키우십니다.
이것이 ‘삼위일체가 인생 창조한 목적, 기르는 목적’입니다. 믿습
니까? 아멘!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하나님은 지구 수백 개보다 더 크게 천국을 만들어 놓고, 온갖 보석
과 황금으로 꾸며 놓으셨습니다. 작게는 안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전지전
능한 스케일대로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지구를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보세요. 인간들이 각자 100년밖에 못 쓰는데도 이리도 엄청나게 창
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영원히 쓸 천국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창조해
놨는지 생각해 보세요. 모두 가 보지는 못했지만, 성자가 허락하여 영계
에 가서 본 자들이 천국을 증거하는 말을 들었지요?
그 엄청난 천국에 저마다 자기 육이 세상에서 세운 ‘공적’과
‘의’대로 <황금 집>과 <정원>을 지어서 살면 됩니다. <끝>
왜 전능자가 다 해 주는데도, 자기 몸은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데도 못 합니까? 진정 하고자 하지 않아서 못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듣고, 마음·정신·생각이 살아나 해같이 또렷하고 빛나게
되어 ‘휴거의 확실한 목적’을 두고 휴거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강하게>
모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마음을 받아라! (아멘!)
<전환>
이제 성자가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영상5>
<성자의 말씀>
너희 중의 어떤 사람은 ‘이 시대 휴거를 목적으로 두고 사는 데 첫
사랑’을 잃었다. 어디에서 잃었는지, 오늘 말씀으로 찾고 살아나라! 그
렇지 않으면 삶의 희망도 의미도 없어 스스로 “나는 왜 사는가?” 하게
된다.
올해 얼마 남지 않은 아주 짧은 기간에 매일 ‘목적’을 두고 전심을
다해 기도하고, 내 분체와 붙어 일체 되어라. 그래야 나 성자와 연결되고
일체 되어 마음·정신·생각이 해같이 또렷하고 빛같이 찬란하게 돌아온
다. 그러므로 목적이 확실해져 목적을 두고 행하게 된다.
사람이 ‘큰 목적’에 집중하고 행해야 마음도 생각도 정신도 하나로
똘똘 뭉쳐 빛나고 확실해진다. 그러므로 그 생각이 형체를 이루게 된다.
구름도 뭉쳐야 덩어리가 되어 보인다. 네 마음·정신·생각이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인생 사는 것도 확실하여 늘 힘써 행한다.
각 교회 각 부서는 모두 몇 명을 전도할지 ‘목적’을 확실히 정하
고, 그것을 이루려 해야 이루어진다.
전도뿐 아니라 생명들에게 시대 말씀을 가르쳐서 확실히 알게 해 주
는 것도 ‘목적’을 확실히 세우고 행해라. 그 목적한 바가 확실하면, 그
마음과 관념이 실체가 되어 행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얻게 된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말씀을 듣고 머릿속과 마음속에다만 넣고 있으면, ‘관념’이 되어
결국 ‘무(無)’로 사라진다. 그러나 생각과 관념을 ‘육’이 행하면, 혼
도 영도 흐릿했던 형체가 또렷하게 형체를 이루며 실체로 변화된다. 그러
니 행함이 얼마나 중하고 귀하고 크냐. <끝>
내 분체는 행하면 얻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에 어느 상황에서도 행
하여 얻지 않느냐.
어느 날 너희 선생이 내게 말하기를 “이제 월명동에는 작품이 없어
요. 그러나 작품이 땅에 묻혀 있으면 아까우니 꼭 찾고 말겠어요!” 했
다. 그래서 내가 “찾기 어렵다.” 했다. 그래도 찾아본다고 하며 혼으로
계속 찾으러 다녔다. 결국... 찾았다!!
생각한 것을 머릿속에만 넣고 가만히 있지 않고, 귀히 여기고 행하니
얻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휴거>에 목적을 두고, <휴거>를 귀히 생각하고
행해라. 너희 육이 행해야 너희 혼과 영이 변화되어 휴거된다.
네 육이 잘 안 될 것 같다 생각하고 가만히 있으면, 네 혼과 영도 변
화되지 않는다. 네 육이 조금이라도 행하면, 네 혼과 영이 조금이라도 변
화된다. 행하는 대로 변화된다. 고로 행하여라!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내 분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면, 또 오죽 답답했으면, 너희 대신
6개월의 긴긴 기간 동안 <절식 기도>를 해 주면서까지 너희가 휴거되도
록 조건을 세웠겠느냐. ‘사랑’이 아니면, 그같이 못 한다. 내가 안다.
그 마음을...
내 분체가 너희를 사랑하여 정성을 들이고 기도해 주며 조건을 세워
주었으니, 이제 너희가 하면 된다. 바로 ‘너’를 위해서, ‘너의 휴거’
를 위해서 조건을 세워 주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너희 선생의 조건을 생각하면서 행하여라. 하는 만큼 된
다. 그리함으로 모두 휴거돼라! <끝>
너희 선생은 6개월의 절식 기도 기간 동안 차원을 높였기에 거기서
멈추면 아깝다고 12월 한 달 동안 더 조건을 세운다고 하며, 지금 하고
있다.
<휴거의 가치>를 알아라. 너희 선생은 지구를 다 준다 해도 그것 안
받고 휴거된다고 하며 그 가치를 깨달았다. 그 정도는 돼야 한다.
고로 선생 자신은 휴거됐어도 그 영을 더 빛나게 하면서, 그 육을 가
지고 사랑하는 너희를 위해 매일 쉼 없이 몸부림치지 않느냐.
오늘 주일말씀이 금년도 마지막 주일말씀이다. 다음은 크리스마스 말
씀과 연말 말씀만 만났다. 이제 끝났다. 이 말씀이 2013년 마지막 주일
말씀이다.
하나님의 뜻을 떠난 자유의지는 자기 예정과 자기 운명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와 구원자 안에서의 자유의지는 신의 예정과
신의 운명이다.
올해 모두 살아나야 내년도 ‘성자 사랑의 해’에 연결된다.
<휴거의 목적>은 ‘사랑’이 아니냐. 사랑에 불붙여라!
내년에는 한 차원 더 높여 말씀이 나간다.
내년도가 왜 ‘성자 사랑의 해’인지 눈치챘느냐. 왜 ‘성자 사랑의
해’라고 했는지 깨달아라. 못 깨닫고 사랑하면 불같이 사랑해도 의미가
없다. 고로 그 사랑은 나 성자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나의 사랑과 평강을 빈다.
2013년 한 해 동안 힘든데도 모두 각자 맡은 사명을 하며 따라오느
라 수고했다. 전도하고, 강의하고, 관리하고, 설교하고, 집회하고, 사랑의
집을 짓고, 월명동을 관리하는 등 각자 사명을 하느라 수고 많았다.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내 분체가 기도했으니, 그 대가로 더욱 주겠다!
연말에는 나 성자와의 사랑에 최고로 불을 붙이는 때다. 헛된 세상
사랑에 빠지고, 이성으로 치우치고, 너희 마음과 생각이 다른 데로 흘러
가면, 내년도 <성자 사랑 열차>를 못 탄다.
성자다. 사랑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