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4.01.01 (수)
+ 2014년 03월 주일수요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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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1.01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9장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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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주제 ===
행하는 자만 얻는다.
===================== 본문 ===
[ 마태복음 19장 1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 요한복음 6장 63절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 야고보서 2장 16-17절 ]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실한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행하는 자만 얻는다.’라는 주제로
2014년 3월 첫째 주 주일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여, ‘삶의 지혜’와
‘신앙의 지혜’를 충만하게 받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봄의 계절 3월이 왔습니다.
선생이 오늘 말씀을 받으려고 기도하면서
성자께 말하기를 “이제 한국은 봄의
계절이 왔습니다. 3월 첫째 주
주일말씀으로는 무슨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했습니다.
성자께서 “더 기도해라.” 하시어, 더
기도했습니다. 더 기도하고 있을 때,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축복의 말씀>입니다.
(* 성자의 말씀, 화면을 보면서
듣겠습니다.) <영상1> 중요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왔다고
희망이냐? 나 성자의 일을 받고 그 일을
행해야 희망과 기쁨이다. 또한 따뜻한
봄이 온다고 그냥 얻을 것을 얻겠느냐?
나 성자가 주는 일을 받고, 행할 것을
행해야 얻게 된다. 이제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으니, 나 성자가
너희에게 ‘할 일’을 줘야 된다.
① 고로 너희는 기도하여 내가 주는
일을 받아라. ② 그리고 그 일을
행함으로 얻어라. → 그리함으로 기쁘고
희망찬 봄이 되기를 축복한다.”
하셨습니다. <끝>
이 말씀은 봄의 계절에 성자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전환 : 핵심>
과거를 보더라도 무엇을 얻을 때는
① 먼저 성자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② 그리고
우리가 그 일을 행함으로 얻었습니다.
성자께서 우리에게 ‘할 일’을 안 주시면,
행할 수 없었습니다. 또 성자가 ‘할
일’을 주셨어도 우리가 행하지 않으면,
얻지 못했습니다.
행하지 않은 자는 얻지 못했습니다.
행한 자만 얻고 끝났습니다.
첫째, 행하려면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고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먼저
기도해야 됩니다.
둘째, 얻으려면 행해야 됩니다.
고로 기도하여 성자께 ‘할 일’을
받았으면, 행해야 됩니다.
→ 이것이 순서입니다.
* 선생이 오늘 전할 말씀을 얻으려 할
때 성자는 “먼저 기도해라.” 하셨고,
이에 선생이 기도하니 성자는 대화 중에
<말씀>을 주셨습니다.
첫째, 반드시 실천하기 전에는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성자가 ‘행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시고, ‘실천할 지혜와 힘과 능력과
영력’을 같이 주어 행하게 하십니다.
둘째, ‘행할 것’을 받았으면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얻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입>으로는 ‘말하는 것’이 행하는
것입니다.
<귀>로는 ‘듣는 것’이 행하는 것입니다.
<눈>으로는 ‘보는 것’이 행하는 것입니다.
<몸>으로는 ‘자기 몸을 움직이는 것’이
행하는 것입니다.
<뇌>로는 ‘생각하는 것’이 행하는
것입니다.
자기 주관과 자기 생각대로 행하지 말고,
‘성자가 원하시는 것’을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 육과 혼과 영이 변화되고,
육적으로도 얻고, 영적으로도 영원한
것을 얻어 쓰게 됩니다.
<전환>
사람은 대개 ‘실천하는 뇌, 행하는 뇌’가
굳어 있어서, ‘생각’은 해도 ‘몸’으로는
잘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생각났을
때 즉시즉시 해 버릇해야 ‘행하는 뇌’에
시동이 걸려 잘 행해집니다. 뇌를 쪼개서
봐야 확실합니다. 행할 때는 ‘제시간’에,
‘제때’ 해야 얻습니다.
늦게 행하면, 행해도 아예 못 얻습니다.
혹은 얻어도 조금밖에 못 얻습니다.
일을 할 때는 그에 해당되는 ‘제 할
일’을 ‘제시간’에 하는 것이 <수고한
대로 얻는 최첨단의 방법>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어느 날, 선생이 늦게 자서 피곤하니
새벽에 눈을 뜨고도 바로 안 일어나고,
조금 늦게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성자는 선생이 총 한 정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2
총을 보니, 총알이 연발로 나가는 총이
아니고, 한 발씩 장전해야 총알이 나가는
‘수동식 총’이었습니다. 성자는 내게
말씀하시기를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수동식 총을 가지고 있느냐.”
하셨습니다. <끝>
선생이 새벽기도 시간에 제때 눈을
뜨고도 안 일어나니, 성자께서 내 행위를
‘수동식 총’으로 비유하여 보여 주며 “네
행위가 이와 같다. 적들은 총알이 연발로
나가는 자동소총을 가지고 있는데, 너는
수동식 총을 가지고 있으면 적을 어떻게
이기냐?” 하며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새벽에 눈을
뜨면 즉시 일어나 씻고, 기도하고, 말씀
받아야지. 그래야 ‘자동소총’과 같다.
무슨 일을 하든지, 제때 즉시 하는 자가
‘자동소총’과 같은 인생이다.” 이에
선생은 “새벽에 눈을 뜨면 ‘자동식
총’처럼 즉시 일어나겠습니다!” 하고
약속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섭리사의 누구든지
‘제시간’에 ‘할 일’을 안 하고 늦게 하는
사람은 ‘옛날식 수동 무기’를 가진 자다.
모두 깨닫도록 말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생활 가운데 우리의 적 사탄에게
이기려면, ‘생활의 자동화기’가 되어
성자가 말씀하신 것을 ‘제때 즉시’
행해야 됩니다.
자기가 ‘제때 즉시’ 행하고 있는지,
혼으로 확인하기 바랍니다. 혼으로 안
보고 자기 육을 봐도 ‘제시간’에 못 하는
자의 몸은 ‘수동식 지체’입니다. ‘자동식
지체’가 돼야 얻을 것을 ‘빨리’ 얻고,
‘많이’ 얻게 됩니다.
느리면, 사탄이 이깁니다. 그리고 자기
것을 빼앗아 갑니다. 또 빠른 자들이
자기 것을 가져갑니다. 제시간에 빨리
실천하는 자가 ‘자동무기 같은 몸’이
되어 얻을 것을 얻고, 자기 것으로 쓰게
됩니다. 한 가지를 하고, 그 일이 끝나면
‘연발총’같이 즉시 다음 것을 행해야
됩니다. 이런 자가 ‘자동소총’과 같은
자입니다.
생명을 전도하여 가르치고, 이어서
관리하여 성장하게 하고, 이어서 사명을
주면서 실천하게 해 줘야 됩니다. 또한
새벽에 일어났으면 즉시 씻고, 이어서
기도하고, 이어서 하루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같이 하는 사람이 ‘자동무기
같은 자’입니다. 각자 자기 할 일이
있는데도 제때 안 하고, 아예 안 합니다.
그러면 결국 촛대가 옮겨집니다.
뇌가 굳어서 ‘생각’이 느린 사람은
‘행동’도 느립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빨리 행하면, ‘느린 뇌’가 즉시
고쳐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제 따뜻한 봄이 되었으니 ‘일할 것’도
주고 ‘줘야 될 것’도 준다고, 성자께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행하는 자만
얻는다. 주기는 다 주는데, 행하는 자만
얻는다.” 하셨습니다. 행하되, 제때
행해야 됩니다. 행하되, 먼저 기도하여
행할 것을 얻어야 됩니다.
모두 기도하여 행할 것을 얻고, 빠른
치타들이 되어 사냥하여 얻기를
축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2014년 1월 1일 새해 첫날 선생이
꿈을 꾸고, 섭리사 모두에게 준 꿈을
생각해야 됩니다.
희고 큰 수정 돌 한 개를 줍고, 다른
수석 세 개를 주운 꿈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말씀’을 뜻하며, ‘생명’을 뜻하며,
‘우리가 받을 여러 가지 축복’을
뜻한다고 했지요?
선생은 작년에 7개월 동안 절식기도를
하면서, ‘선생이 해야 될 일’을 계속했고,
또 ‘여러분이 해야 될 일’을 계속 말해
줬습니다. 그러므로 선생이 행한 것은
얻었고, 여러분도 행한 대로 얻었습니다.
생각났을 때가 ‘행할 기회’입니다.
생각난 것을 행하는 사람이 ‘기회를 잡은
사람’입니다. 생각이 안 나면 행할 수
없으니, 생각나게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뇌가 작동됩니다. 그때 ‘성자가
원하시는 할 일’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전환>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입으로 말하는 것은 잘합니다.
그런 쪽으로는 뇌가 많이 발달됐습니다.
그런데 ‘실천하는 뇌’는 발달되지 못하여
차원이 낮고 둔감합니다.
‘실천하는 뇌’가 굳어서 게으릅니다.
고로 마음은 부자이고, 생각은 재벌인데,
행동은 가난합니다.
뇌를 쪼개서 보나 마나입니다. 저마다
말씀을 들으면 ‘실천하는 뇌’가 굳었는지,
안 굳었는지 깨닫고 분별이 될 것입니다.
모두 ‘실천하는 뇌’를 작동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굳은 뇌’가 풀리고, ‘굳은 몸’이
풀립니다. 고로 실천하여 얻는 것이
많습니다. 믿습니까?
행여 ‘얻을 복’을 타고났어도 게으른
사람은 얻지 못합니다. 왜요? 행해야
얻는데, 게을러서 행하지 않으니 얻지
못합니다. 고로 자기 복을 자기가
걷어차게 됩니다.
섭리사에 게으른 원시인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러니 영적으로도 빈곤하고,
육적으로도 빈곤합니다. 실천하면, 즉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어 빈곤이
없어집니다. 말씀해 주어 알려 줬는데도
안 하는 자는 최고로 게으른 자입니다.
<전환>
하나님은 ‘구상’을 주시고, 성령님은
‘감동’을 주시고, 성자는 ‘생명을
보호’하시며 그 육을 통해 우리와 함께
‘실천’하십니다.
자기가 구상하면, 성자가 할 일을 안
주십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구상을
받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움직이고,
성자와 일체 되어 성자가 친히 우리
몸을 쓰고 행하게 해야 됩니다.
말씀을 안 듣고 행하면 안 됩니다.
‘실천할 것’을 자기 방법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제대로 분별하여 ‘성자가
주시는 것’을 실천해야 됩니다.
육적인 자는 ‘성자가 주시는 좋은 것’도
육적으로 보고 행하지 않습니다. 고로
뺏깁니다. <실천할 것>은
첫째, ‘영적’으로 봐야 됩니다.
둘째, ‘앞날’을 내다보고 분별해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3
목이 짧은 돼지는 앞날을 못 내다봐서
죽는 날도 모르고 삽니다. 모두 목이 긴
황새처럼 기도하여 앞날을 내다보고, 꼭
성자가 원하시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얻습니다.
<현재>만 생각하고 “이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하고 부정하며 악평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고 계산하고
분별해야 됩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선생의 어머니는 열일곱 살 때 진산
교촌리에서 월명동으로 시집왔는데, 그때
산골짜기에서 살게 됐다며 그렇게도
울었답니다. 어머니는 밭을 매면서도 늘
나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어머니. 산골짜기로
시집와서 기대가 어긋나고, 아버지가
기대대로 못 해 줬어도 내가 영화롭게
해 줄 테니 희망으로 살아요!” 했습니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인생 다 늙어
가는데, 언제 해 주냐?” 했습니다. 그때
현실만 봤을 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결국 어머니가 월명동으로
시집온 보람이 있게 해 주고 말았습니다.
섭리인들도 그러합니다. 처음에 여러분을
월명동 산골짜기로 데려오니, 모두 한숨
쉬며 “여기서 어떻게 살지?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지?” 하며, 속으로 겉으로
탄식했습니다.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니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끝까지
남은 자들은 결국 성자를 만나고,
이상세계를 이루고, 하늘 궁에서 살게
됐습니다.
<전환>
이제 따뜻한 봄이 되어 ‘실천하는
계절’이 왔습니다. 섭리세계 각 나라
모두 그러합니다. 이때 모두 일어나 빛을
발하며 실천해야 됩니다. 그래야
변화됩니다. 그래야 새로운 것들을 찾고
얻게 됩니다.
그래야 ‘삶의 휴거’, ‘생활의 휴거’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혼과 영이
휴거’됩니다.
‘혼과 영의 휴거’만은 매일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혼과 영의 휴거’를
매일 잊지 않고 행하는 자만 휴거되고,
휴거의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전환>
이 넓은 세상에 얼마나 할 일이
많습니까? 또 이 섭리역사에 얼마나
할 일이 많습니까?
그러니 첫째!
모두 놀지 말고 ‘제때’ 행해야 됩니다.
‘제때’가 ‘만사의 제철’입니다.
둘째!
일할 때는 반드시 ‘기도’해야 됩니다.
- 기도 없이 일만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 기도 없이 일만 하면, 지혜 없이 하니
성자의 뜻대로 못 합니다.
- 기도 없이 일만 하면, 예리하지
못하고 신령하지 못합니다.
일할 때는 사탄을 물리치면서 해야 되니,
기도하여 신령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일하고 얻은 것을 뺏기지 않습니다.
선생이 2월 1일에 또 절식기도를
시작하면서, 성자께 “나와 같이 섭리인
모두 1차 40일 기도를 하게
하겠습니다.” 하니, 성자는 “이미 기도를
시작한 자들과 맞춰서 70일 기도를
하자.” 하셨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일’이라고 했지요?
기도하면, 성자께 ‘할 일’을 받게 됩니다.
성자께 할 일을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성자와 선생과 함께 완전하게
의논하고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됩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했으면, 그냥 두지 말고 계획을
세워서 그에 해당되는 일들을 하나하나
지혜롭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일하면서도 힘들지 않고, 수고한 대로
얻게 됩니다.
기도해야 일이 잘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허락하셨기에
우리가 일할 때 성삼위가 함께해 주시고,
천사도 함께해 주고, 사람들도 함께해
줍니다.
<잠시 쉬었다가>
셋째! 일하면서 잘되고 있는지, 문제가
생기는지, 항상 확인해야 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하듯이 예리하고
안전하게 일하도록 ‘일의 지혜’가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일을 하면, 반드시 그 일로 인해 거기에
해당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니 이를
생각하고 항상 예비하여, 일을 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해야 됩니다.
준비했다가 즉시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집을 지으면, 집 짓는 일로 문제가
생깁니다. 돌을 옮기면, 돌 옮기는 일로
문제가 생깁니다. 기도하면, 기도하는
일로 문제가 생깁니다. 말씀을 전하면,
말씀 전하는 일로 문제가 생깁니다.
전도하면, 전도하는 일로 문제가
생깁니다.
의논하면, 의논할 때 반대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를 알고, 의논할 때는
지혜롭게 같이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성자가 축복을 주시어 일을 해도 일할
때는 그 일로 인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것을 늘 잊지 말고 일할 때는
첫째, 조심하면서 해야 됩니다.
둘째, 문제가 생길 것에 예비하면서 해야
됩니다. 셋째, ‘안전’을 구호로 외치면서
기도해야 됩니다.
이것을 뇌의 생각에서 잊고 행하면,
문제가 일어나도 몰라서 결국 해(害)가
됩니다. 고로 사전에 이를 생각하고 해야
됩니다.
* 며칠 전에 한 제자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월명동에서 선생이 시킨 일을 하고
있는데, 순간 ‘이곳을 피해라.’ 하는
느낌이 들더랍니다. 그 순간 ‘생각났을
때 즉시 행해라.’ 했던 말씀이 생각나서
일을 하다가 즉시 그곳을 피했다고
합니다. 그곳을 피한 즉시 그곳에 돌이
굴러왔고, 피했으니 안 다치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선생님을 통해 주신 성자의
말씀이 역시 일억 천만금의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고 시인하며, “생각났을
때 즉시 안 피했으면, 두 다리가
부러지고 죽었을 텐데, 역시 말씀이
하나님이구 성자이구나!” 하고
감격했답니다.
4
그래서 답장해 주기를 “축복을 주어
일을 해도 일을 하다 보면, 그 일로 인해
문제가 생기니, 항상 문제를 생각하고
해라.” 했습니다.
* 여러분이 일할 때마다 선생이 옆에
가서 일일이 지켜 주지 못합니다. 지켜
줘도 선생은 육신이라서 시간마다 한
곳만 갈 수 있습니다. 고로 ‘말씀’을
주어 ‘말씀’이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게
해 줍니다. 말씀을 주면, 그 말씀이
‘성자’가 되어 여러분을 지켜 줍니다. 그
말씀을 꼭 행해야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 말씀을 행하면 ‘피해’를 당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켜 주시려고
이같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며, ‘성자’이며,
‘보호자’이며, ‘방패’이며, ‘지혜’입니다.
* 고로 사랑하는 자에게는 ‘말씀’을
주고, ‘사는 길과 죽는 길’을 가르쳐
주고, ‘성공 길과 실패 길’을 가르쳐
준다고 했습니다.
‘사는 길과 죽는 길’을 가르쳐 줬으면,
그 말씀을 행해야 죽음을 면하고 살아서
얻을 것을 얻게 됩니다.
‘성공 길과 실패 길’을 가르쳐 줬으면,
그 말씀을 행해야 성공 길로 가서 얻게
됩니다. 믿습니까?
<전환>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일할 때는 혼자 해야 될 일도 있지만,
일이 클수록 혼자서는 힘들어서 못
합니다. 그 일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한
팀’을 이루어 마치 축구하듯, 농구하듯,
배구하듯 해야 됩니다. 그 일의 감독도
있고, 코치도 있고, 지도자도 있어야
됩니다.
한 팀이 되어서 일할 때는 전체를
살피면서 의논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같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서로 지켜
주고 힘이 모아져서 힘든 일도 척척
하게 됩니다.
전도하는 것이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나, 월명동 일을 할 때나, 교회 일을
할 때나, 행정 일을 할 때나, 각 기관과
각 부서의 일을 할 때나, 각종 일을 할
때도 ‘한 팀’이 되어 서로 의논하면서,
절대 하나님의 방법대로 질서 있게 해야
됩니다.
지적하고, 기분 나쁘게 말하고, 힘
빠지게 말하면 절대 안 됩니다. 적극성을
가지되 화평하게 하고, 재미있게
기쁨으로 하고, 쉴 때는 쉬면서 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하고, 성자가 말씀하신
대로 같이 하고, 선생과 같이 해야
됩니다.
행하면서, 꼭 확인해야 됩니다. 실적이
있는지 없는지 보고, 실적이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해야 됩니다. 또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이
있는지 보고, 육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는지 보고, 힘든 사람이 있는지 봐야
됩니다.
감독하는 사람과 지도자는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이 있으면 먹여 주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치료해 주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면서 해야
됩니다.
또 일하는 사람이 선생의 마음에는 맞는
사람인데, 같이 일하는 지도자의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빼면 안 됩니다. 물론
일하는 데에 서로 안 맞으면, 선수
교체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꼭 본인과
의논해서 해야 됩니다.
그 일을 한 지 오래됐으면, 본인 의사에
따라 다른 부서로 보내든지, 계속 그
일을 하려 하면 연수를 받아 더 배우고
연단한 후에 다시 하게 하든지 해야
됩니다.
<전환 : 마무리>
지금까지 말씀한 것 모두, 성자께서
축복을 주시어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계시 말씀입니다. 이제 따뜻한 계절이
왔으니, 굳은 뇌와 몸을 풀고 더욱 뛰고
달릴 때입니다.
성자께서 달마다, 주마다, 날마다
축복으로 할 일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되고, 또 할
일을 받고 나서 행해야 얻습니다.
그러니 꼭 기도하면서 행하여 얻고, 개인
것은 개인이 쓰고, 섭리 것은 섭리인들이
같이 쓰게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성자가 또 주십니다.
여러분의 영과 육에 성자의 사랑과
평강이 충만하기를, 성자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봄이 왔으니, 시 한 편 읊어 주고
마치겠습니다. <영상4>
(영상에 자막과 음악 준비) -
설교자들은 시를 멋있게 잘 읊어 준다.
떠난님도
돌아오고
봄의님도
돌아왔네
님도맞고
봄도맞고
저하늘의
신의님도
맞았도다
고생돼도
참고견딘
보람있다
그수고가
헛되지가
않았도다
세월몸도
님의몸도
신의몸도
변함없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리
5
===================== 주제 ===
생각 실천 실체 창조다
===================== 본문 ===
[ 야고보서 2장 16-17절 ]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할렐루야! 수요일 밤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예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따뜻한 봄의 계절이 왔습니다. 잔뜩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본격적으로
‘행하는 계절’이 왔습니다. 행함으로
‘얻는 때’가 왔습니다.
이때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때입니다.
이에 성자는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시며
‘축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자가 주시는 축복, 성자가
원하시는 일’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기도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기도해야
‘성자가 주시는 좋은 일’을 육적으로
판단하여 버리지 않고, 영적으로
판단하고 행하여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번 주 주일말씀에는 ‘행하는 자만 얻게
된다.’라는 주제로 말씀해 주었습니다.
<핵심>적으로 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여덟 가지를 간단하게 짚어
주고, 이어서 오늘 말씀 전해
주겠습니다.
① 행하려면, 먼저 ‘할 일’이 있어야
됩니다.
② 할 일을 받으려면, 먼저 ‘기도’해야
됩니다.
③ 기도하여 성자께 할 일을 받았으면,
꼭 ‘행해야’ 됩니다.
④ 행하되, 꼭 ‘제시간’에, ‘제때’ 해야
많이 얻습니다.
⑤ 행하면서, 문제가 없는지 꼭 확인해야
됩니다.
⑥ 행할 때는 성자와 분체와 의논하면서
행해야 됩니다.
⑦ 같이 할 일은 한 팀이 되어 꼭 같이
해야 됩니다.
⑧ 마지막으로 <구상>은 ‘하나님’,
<감동>은 ‘성령님’,
<보호>는 ‘성자’,
<실천>은 ‘성자와 분체와 일체 된
우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생각 실천 실체 창조’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여 ‘굳은 뇌와
몸’이 풀려 ‘실천하여 얻는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1. <마음>도 안 쓰면, 무용지물이다.
2. <생각>도 안 쓰면, 무용지물이다.
3. <몸> 도 안 쓰면, 무용지물이다.
4. <뇌>도 안 쓰면, 무용지물이다.
5. <혼>도 안 쓰면, 무용지물이다.
6. <마음과 생각>을 써야 ‘실체’로
남아진다.
7.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하늘의 구름같이 사라진다.
8. <마음과 생각>을 쓰면, 땅의 돌이나
흙이나 나무같이 각종으로 남는다.
9. <마음과 생각>은 하나의 ‘바람’과
같다. 그러나 <마음과 생각>을 써서
<몸>으로 행하면, ‘실체’가 되어 남는다.
10. <마음, 생각, 구상>은 ‘뇌 속의
영상과 같은 차원’이다.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실체 없는 존재’로 끝난다.
11. <뇌 속에 있는 생각들>을 ‘입’으로
내놓으면 ‘실체’가 된다. ‘입으로 말한
것’이 ‘행한 것’이다. 그 말한 것을
들으면, 그 말이 뇌 속에 들어가
<마음>이 되고 <생각>이 된다. 뇌 속에
들어간 생각을 실천하지 않으면, 뇌에
생각만 있기에 ‘관념’으로 끝난다.
12. 생각 실천 실상체다.
* <생각만 한 것>과 <실천한 것>은
다릅니다. ‘얻는 것’도 다릅니다.
* 꿈에서도 <혼이나 영이 실제로 본
것>과 <뇌에 생각한 것이 연상되어
보이는 것>은 다릅니다.
13. 꿈에서도 두 가지 현상으로 보인다.
하나는 ‘자기 혼이나 영이 영의 실체
세계에 가서 보고 듣고 겪는 것’이고, 또
하나는 ‘뇌에만 그 현상이 연상되고
생각나면서 보이는 것’이다. 뇌에
연상되고 생각난 것인데, 꿈에서 혼이나
영이 실제로 본 것으로 생각된다.
14. 낮에 생시에 본 것이 뇌에 남아
있다. 잠을 잘 때, 낮에 생시에 봤던
것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것을 꿈을
꿨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15. TV 화면 보듯이 ‘자기 뇌에 입력된
것이 생각날 때’가 있는데, 그것을
‘혼이나 영이 실제로 본 것’같이
생각하기도 한다.
16.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
뇌에 화면을 보내실 때’가 있고, ‘혼을
돌아다니게 하며 영의 세계를 실제로
보게 하실 때’가 있다. 구분하여라.
17. ‘혼이 직접 본 것을 뇌로 전달하여
그 실체를 볼 때’도 있다.
혼이 뇌를 통해 중계하는 것이다.
* <생각만 한 것>과 <실천한 것>은
다르다고 했지요? 말이 나왔으니, 잠시
혼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말씀했습니다.
계속해서 오늘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18. <마음, 생각, 관념, 구상>만 좋게
하고 살면, ‘마음 천국’에 불과하다.
‘실체 천국’은 못 된다.
19. <마음, 생각, 관념>을 <몸>으로
6
행하고 살면, ‘실체 천국’이 된다. 그러면
자기뿐 아니라 모든 자들도 같이 보면서
쓸 수 있다.
20. <마음, 생각, 관념>에서 끝나면,
꿈만 꾸고 끝난 것과 같다.
21. 좋은 꿈을 꿨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꿈에서 끝난다. 이와 같이
<뇌 속의 좋은 생각, 좋은 마음, 좋은
구상>도 실천하지 않으면, 실제로 얻는
것 없이 그것으로 끝난다.
22. 어떤 사람은 뭐가 그리 좋은지, 늘
기뻐하며 웃으며 살았다. 알고 보니 ‘뇌
속의 마음과 생각’에 엄청난 별장을 지을
구상을 하고 계획을 하여, 그것을
생각하면서 기뻐하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구상만 하고 기뻐하며 살고 있었다.
구상대로 실제로 별장을 짓고 만들어야
되는데, 계속 구상만 하며 기뻐하니
실제로 남은 것은 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이 말하기를
“실제로 별장을 만들어야 너도 거기서
사니 좋고, 나도 구경하니 좋지 않냐?
별장을 다 만들면, 나도 진수성찬을 매일
해 와서 같이 먹자. 산에서 산짐승을
매일 잡아 오는데, 먹고 마실 좋은
환경이 없어서 아쉽게 먹고 있다.
그러니 어서 별장을 지어라.” 했다.
그러나 그는 세월만 흘려보내며 별장을
만들지 않았다. 그저 생각으로만
기뻐하고 살았다. 결국 꿈속에서만
헤매고 사는 자로 끝났다. 이와 같이
<좋은 생각, 좋은 마음, 좋은 구상>은
‘마음’만 기쁘게 할 뿐, 얻는 것이
없어서 실제로는 배고프고 헐벗고 살게
한다.
23. 구상 실천이다.
24. 새벽에 기도하면, 성자가 ‘좋은
생각, 좋은 구상, 깨달음, 할 일’을
주신다. 그런데 그것을 뇌, 마음,
관념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혼자만 기쁘고
‘관념’으로 끝난다. 성자가 주신 것을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실제로 행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꿈에 진수성찬을
보고 만 것과 같다.
25. ‘생각’을 ‘몸으로 실천’하여
‘실상’으로 만들어야 된다.
26.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은
<육의 세계>다. 고로 생각한 것을 행하지
않으면, 배고프다. 고통이다.
27. ‘꿈의 실현’이다. 행해라. 그러면
꿈이 실현된다.
28. ‘마음 부자, 마음 천국’은 이
세상에서는 소용없다.
29. 안 먹어도 마음만 배부르면, 결국
굶어 죽게 된다. 행하지 않아도 생각만
좋게 하면, 결국 때가 되어 추운 겨울이
오면 얼어 죽는다.
* 말씀을 ‘관념’으로만 듣지 말고,
‘행하는 대로 얻는 보화’로 들어야
됩니다. 믿습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전해 줄 테니, 성자의 한 마디 한 마디를
‘행하는 대로 얻는 보화’로 듣고 ‘실천의
축복’을 충만하게 받기를 성자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0. 뇌 공장에서 <마음과 생각>을
만들고, 마음먹고 생각한 것을 <몸>으로
행하여 ‘재창조’해야 된다. 그래야
‘실체’를 얻는다.
31. 뇌에서 구상하고 생각하는 것은
‘1차 창조’다. 몸으로 행하여 만드는
것은 ‘2차 창조, 재창조’다.
32. 천재들은 생각이 많다.
그러나 그만큼 실천하지 못하니,
생각에서 끝난다.
33. 생각 실천 실체다.
생각 실천 창조다.
34.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을 실천하면, 엄청난 것이 실체가
되어 얻게 된다.
35. <마음, 생각, 구상>은 백지장 위의
그림이다. <실천>은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실체가 된다.
36. <하나님의 구상>을 실천해 놓으니,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다.
37. <하나님의 구상>도 실천해 놓지
않으면, 보잘것없다. 실체가 있어야
보이는데, 실체가 없으니 믿어지지도
않는다.
38. <코끼리의 구상>은
<개미의 실천>만도 못하다.
39. 어른이 구상만 해 놓은 것은
‘설계’에서 끝나고, 어린아이가 실천해
놓은 것은 ‘실체 존재물’이 된다.
40. 구상도 커야 하지만, 실천력이
있어야 된다.
* <생각과 실천>, <관념과 실존>에
대해서 참고로 한 가지를 말해
주겠습니다.
41. ‘꿈에서 혼이 보고 들은 것들’이
모두 다 ‘육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혼에서 끝나는 것’이 있고, ‘육에게도
해당되어 육이 실천할 것’이 있다.
구분하고 해야 된다.
42. ‘뇌에서 생각만 하고 누릴 것’이
있고, ‘육으로 실천하여 실제로 생활하며
쓰고 누릴 것’이 있다.
43. 다 ‘관념’이 아니고, 다 ‘실존’이
아니다.
* 이제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것, 쓰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44. ‘사물의 본 가치’가 있고, ‘그것을
쓰는 가치’가 있다.
이 두 가지를 가치로 계산한다.
45. 가령 아름다운 산이 있다 하자. ‘산
값’이 있고, ‘그 산을 활용하고 쓰는
값’이 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산
값보다 2배, 5배, 10배 더 가치 있게
되기도 한다.
46. 종이 한 장, 물감 하나, 붓 하나의
값은 ‘10000원’정도다. 그러나 ‘화가’가
이것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면, ‘1억’도
되고 ‘2억’도 된다. 그러나 ‘일반인’이
이것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면, ‘2만
원, 10만 원’ 정도 나갈 것이다.
47. 사용하기에 따라서 가치가 좌우되고,
사용하되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48. 존재물을 사용하는 자의 능력에
따라서 ‘귀한 가치’로, 혹은 ‘보통
가치’로 사용하게 된다.
49. 같은 ‘금덩이’라도 어린아이가
사용하면 본값보다 못하게 사용하고,
금을 세공하는 자가 사용하면 본값보다
10배 더 귀히 사용한다. ‘자기 몸’도
그러하다.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기
가치’가 좌우된다.
50. ‘자기 몸’을 전능자가 사용하면 만
배, 백만 배, 억만 배 더 가치 있게
7
사용할 수 있다.
51. ‘존재물의 본 가치’보다도 ‘사용하는
자의 가치’가 그리 크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52. ‘큰 돌 한 덩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담을 쌓는 데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그 돌을 가지고 조각하여 세계로
다니면서 조각품을 전시하며 돈을 번다.
53. ‘늙은 호박’이 있다. 어떤 사람은
돼지 밥으로 만들어서 시장에 팔고, 어떤
사람은 호박죽을 쒀서 호텔에 판다.
54. 옛날에 호박이 한창 크면, 따다가
호박전을 만들어서 먹고, 음식을
만들어서 먹었다. 늙은 호박은 “에잇!
빨리 못 따서 늙어 버렸네.” 하고 밭
가에 버리고 왔다.
요즘은 늙은 호박을 따다 호박죽을
만들어서 별미로 먹는다. 사용하는 자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좌우된다.
55. <인생>도 하나님이 쓰느냐, 자기가
쓰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하늘과
땅같이 차이가 난다.
56. 어떤 사람은 소나무를 베다가
‘땔감’으로 하루 쓰고 끝난다.
어떤 사람은 소나무를 베다가 ‘재목’으로
써서 물건을 만들어 100년 동안 쓴다.
어떤 사람은 소나무를 캐다가 정원에
심어 ‘작품’으로 만들어 평생 쓰고,
후손들에게 남겨 1000년 동안 쓴다.
<자기 인생>도 그러하다.
어떤 사람은 자기 육을 가지고
아무렇게나 살면서, 하루 즐기고 끝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육을 가지고 육만을
위해 살면서, 평생 육신의 삶만 즐기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자기 육을 가지고 평생
주를 믿고,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행하여 자기 영혼을 구원하고 휴거시켜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한다.
57.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도
그러하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과 지능대로
‘생활의 기구’로 쓰고, 어떤 사람은
‘보화’같이 귀히 빛나게 쓴다.
58. <월명동>도 옛날에는 ‘나뭇길’로
쓰고, ‘나무를 해 가는 장소’로 쓰고,
‘농사짓는 보리밭’으로 쓰고, ‘벼 심는
논’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쓰시니, 나뭇길은
‘산책로’로 쓰고, 월명동 땅은 ‘수만 평의
자연성전’으로 사용하며 세계적으로
세계인들이 귀히 쓴다.
59. 주가 쓰니, 보잘것없는 나귀 새끼도
귀히 썼다.
* 마태복음 21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이방에서 복음을 전하시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두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거기에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와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해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귀 새끼를 타고, ‘영광의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이때 무리의 대다수가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맞이했고, 또 다른 무리는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소리 높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했습니다.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나귀
새끼를 탐으로 겸손함을 나타내셨습니다.
60. 골동품을 수집하는 사람이 시골에
가서 어떤 할머니를 만나 묻기를 “혹시
이 주변에 좋은 단지가 없습니까?”
했다. 그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예쁜
단지가 있어.” 했다. 따라가 보니,
할머니는 ‘고추장 단지’를 보여 주었다.
그 단지는 ‘고려청자’였다. 할머니는
모르니까 ‘고추장 단지’로 사용하고
있었다.
61. <아는 자>가 ‘천한 것’도 ‘귀히’
쓴다. <모르는 자>는 ‘귀한 것’도 ‘천히’
쓴다.
62. 자기 지능대로만 쓴다. 자기
차원대로만 쓴다.
63. 알아도 실천한 대로만 쓰게 된다.
64. <시간>도 아는 자가 귀히 쓴다.
65. 피카소, 레오나르도다빈치가 그린
그림은 그리다가 버린 것이라도 수십억씩
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그린 그림은
잘 그렸어도 얼마 안 한다.
66. 하나님의 작품은 만들다 버린 것도
수백 억, 수천 억의 값이 나간다.
하나님이 제대로 만든 작품은 그 값이
엄청나다.
67. <월명동>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성자의 육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그 값이 하늘과 같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사용하니, 귀하게 쓰여진다. 또 새
시대를 따르는 자들이 사용하니 더
귀하게 쓰여진다.
68. 어떻게 생겼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귀하게 사용하느냐가 문제다.
* 말씀 마쳤습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왔다고
해서 희망입니까? 성자의 일을 받고 그
일을 행해야 희망과 기쁨입니다.
따뜻한 봄이 온다고 그냥 얻을 것을
얻겠습니까? 성자가 주는 일을 받고,
행할 것을 행해야 얻게 됩니다.
성자는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여 ‘성자가 주시는 일’을
받고, ‘그 일을 행함’으로 얻을 것을
얻고, 축복도 받고, 휴거도 완전하게
이루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받았으면 개인의 것은 개인이
쓰고, 섭리의 것은 섭리사가 다 같이
쓰면서, 더욱 ‘가치’를 발하며 ‘빛’을
발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따뜻한 계절이 왔으니, ‘굳은 뇌’와
‘굳은 몸’을 풀고 더욱 뛰고 달리기 위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주시는
‘능력과 영력과 지혜와 힘’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8
===================== 주제 ===
뇌에 불이 나게 겪었으면 겪은 대로
속 시원히 표현하여 말해 주고, 속
시원히 증거하고, 행하여라
===================== 본문 ===
[ 사도행전 1장 8절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실한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전초>
선생이 <3월 16일 생명의 날>
주일말씀을 준비하려고 새벽에
기도하는데, 성자께서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가지는 ‘겪은 대로 속 시원히
표현하고 행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고,
또 한 가지는 ‘선생의 탄생과 선생의
고향 월명동’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한 가지 말씀’을 먼저
해 주겠습니다. ‘겪은 대로 속 시원히
표현하고 행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이어서 오늘 못다
전한 ‘선생의 탄생과 선생의 고향’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오늘 주일말씀>과 <다음 주 주일말씀>은
한 맥으로 이어진 말씀인데, 한 번에
전하기에는 분량이 많아서 나눠서 해
주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말씀>을 듣고, <다음 주
말씀>을 들어야 말씀이 하나로 이어져
확실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생명의 날 전야제
주일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원래 오늘은 ‘빨리 휴거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준다고 했는데, 말씀 순서를
바꾸어 이 말씀을 먼저 전하게 됐습니다.
‘빨리 휴거되는 방법’에 대한 말씀은
<3월 23일 주일>에 해 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뇌에 불이 나게
겪었으면, 겪은 대로 속 시원히
표현하고, 속 시원히 말해 주고,
증거하고, 행해라.’입니다.
<오늘 말씀>과 <다음 주 주일말씀>은
다이아몬드같이 강하고 빛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정말 잘 전하고,
잘 듣고 행하면 말씀을 전하는 자도
‘말씀의 능력’을 받고, 말씀을 듣는
자들도 ‘능력과 불’을 받게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 말씀 시작 >
오늘 말씀을 놓고 새벽에 기도할 때
성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겪을 때>는 뇌에 불이 나고, 살이
찢어지고, 뼈가 깎이고, 신혼골수가 녹고,
애간장이 타게 겪어 놓고서 왜 <말로
표현할 때>는 ‘네 사연, 나 성자 사연’을
시처럼 문학적으로 부드럽고 매끄럽게만
표현하느냐? ‘말하는 대로’ 된다.
당대에도 후대에도 ‘네가 말로 표현한
대로’만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아무리
심정 깊은 사연이라도 약하게 말하면
모두 그 차원으로만 심정을 느끼고,
감동을 받고, 그 차원으로만 행하며
역사를 펴 나가게 된다. 그러니 될 것도
안 된다.
뇌에 불이 나게 겪은 대포 표현하지
않으면, ‘나 성자와 네가 마음과 심정을
태우며 행한 것들’과 그 ‘근본 의미’가
그들의 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나 성자와 네가 원하는 것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인데도 속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 이 말씀이 <오늘 전할 말씀>입니다.
성자의 말씀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겪을 때>는 뇌에 불이 나고, 살이
찢어지고, 뼈가 깎이고, 골이 빠져 땅에
뭉개지도록 겪어 놓고서는 <말로 표현할
때>는 ‘약하게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때>는 그저 ‘머리가 아프게
당했다.’, 혹은 ‘몸이 찢어지게
고통스러웠다.’, 혹은 ‘마음이 타고
심정이 타도록 억울하게 겪었다.’라고
표현했을 뿐 내가 겪은 그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듣는 자들도 그저
‘고통스러웠구나.’ 하며 부드럽게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섭리사에
<말씀의 불>이 뜨겁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뇌가 불이 나게
겪었으니 ‘뇌에 불이 붙어서 다 탈
정도로 지옥의 고통을 겪었다.’ 해야
되는데, 왜 ‘옷이 탈 정도로 고통을
겪었다.’라며 속 시원히 표현하지
못하느냐. 그러니 <쇠칼 같은 말씀>이
<나무칼 같은 말씀>이 되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끝>
사람들은 겪을 때는 고통과 수고와
노력과 애씀으로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겪습니다. 그것은 계속 겪고 싶어도 못
겪습니다. 겪을 때만 겪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겪을 때 세밀하게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뇌에 불이 나게
겪었으면서, 막상 표현할 때는 보통으로
표현하니, 상대도 그 말을 듣고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엄청난 것도 보통으로
알아듣게 됩니다. 자기가 겪은 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상을 받고 잘되기도
하는데, 자기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니, 자기 상을 못 받게
됩니다.
신약성경도 예수님이 겪은 그대로 다
표현하여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겪어서는 그 무시무시한
역사를 이끌어 나갈 수 없었다고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는
시대가 겪은 대로, 사명자가 겪은 대로
사연을 낱낱이 말하며, 뇌에 불이 나게
겪었으니 뇌에 불이 나게 표현하며
외쳐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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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약하면 ‘충격’을 못 받고,
‘은혜’를 못 받고, ‘성령의 불’을 못
받습니다. 기성인들은 말씀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옛날에 불같이 겪었던
것들이 흐지부지해져 잊어버렸습니다.
고로 ‘말씀의 파워’가 약해졌습니다.
고로 ‘불’도 약해지고 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성자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겪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말해라.”
섭리사도 <휴거 역사>를 맞기까지 얼마나
뇌에 불이 나고, 살이 찢어지고, 뼈가
깎이도록 많은 것을 겪었습니까? 겪은
사람은 겪은 대로 증거해 주고, 또
자기도 겪은 대로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휴거 역사>가 제대로 펼쳐지고, ‘휴거’에
성공하게 됩니다.
설교자들도 그러합니다. 선생이
몸부림치며 피눈물나게 말씀을 받아서
주고, 말씀을 정리하고 교정하는 자와
영상을 제작하는 자들도 피눈물나게
만들어서 말씀을 내보냅니다.
그런데 설교자는 자기가 안 겪었으니,
말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 설교가
죽어서 ‘힘’이 안 나갑니다. ‘불’이 안
전해집니다. ‘심정’이 안 전해집니다.
고로 말씀을 듣는 교인들도 그
차원으로만 감동받고 행하게 됩니다.
고로 ‘휴거’에도 지장이 생기게 됩니다.
설교자가 어떻게 설교하느냐에 따라서
교인들의 휴거에 ‘도움이 되느냐’,
‘지장이 되느냐’가 좌우됩니다. 정말
큰일이지요?
그래서 설교를 못 하면, 교인들의 휴거를
위해서라도 즉시 교체하든지, 잘할
때까지 연습을 시키든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들과 강사들은
뇌에 불이 타도록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심정을 쏟아 확실하게 전해 줘야
됩니다! 이제는 선생도 겪은 대로
확실하게 표현하며 말씀할 것입니다.
그래야 섭리사에 <말씀의 불>이 붙게
됩니다.
(다음 주 주일에는 <생명의 날>을 맞아
‘선생의 고향과 탄생’에 대해서 뇌에
불이 타게 말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뇌에 불이 나게 듣고 확실히 증거해
주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는 선생에게
이 계시를 주시고, 바로 선생을
실천시키셨습니다.
이 말씀을 쓰기 전 날, 기도하고 성자께
잠언을 받고났는데, 이가 너무 쑤시고
아팠습니다. 밤새 잠을 못 자고 뇌가
쑤시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기도하여
겨우 조금 고통을 가라앉히고 겨우 잠을
청했습니다.
이튿날이 아픈 치아 때문에 병원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픈 치아는 ‘왼쪽
치아’였습니다. 그러나 밤새 뇌가
쑤시도록 아팠던 치아는 ‘오른쪽
치아’였습니다.
의사에게 ‘오른쪽 치아’가 아프다고 하니,
의사가 어느 정도 아프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뇌가 쑤시게 고통을 겪은 대로
표현하며 말했습니다. 뇌에 불이 날 것
같고, 뇌를 손가락으로 쑤시듯 아파서
밤새 잠을 못 잤고, 정신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의사는 본래 치료하던 ‘왼쪽
치아’보다 ‘오른쪽 치아’가 상태가 더
심각하니, 사진을 찍어 보자고 했습니다.
사진을 찍어 보니, ‘오른쪽 치아’가 썩어
가면서 신경까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안 되겠다고 하며 즉시 드러내고
신경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왼쪽 치아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때 치료를 못 했더라면, 2~3개월은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겪은 대로 말하니, 2~3개월 고생할
것인데 고생을 안 하고 해결됐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기도할 때, 성자께 이가
안 아파서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미리 가르쳐
줘서 네가 겪은 대로 말하여 기적으로
치료했다. 치료해서 안 아프니 얼마나
좋냐. 역시 나 사랑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뇌가
불나게 고통 받았으면, 겪은 대로 불나게
표현하고 말해 줘야 상대가 제대로
알아듣는다고 했지? 네가 그 말에
순종하고 겪은 대로 말해서 이 아픈
고통이 해결된 것이다. 그 날 의사에게
‘조금 아파.’ 했으면, 이번에 치료 못
하고 몇 달 있다가 하니, 이가 계속 썩어
들어가고 신경은 계속 죽어 가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지옥 고통을 겪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시기를 “그래서 전
날 그렇게 이가 쑤시고 아프게 한
것이야.” 하셨습니다. 사람은 뼈저리게
겪어야 정신 차리고 결심하고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암’이나 ‘각종 병’이
있는데, 막 아프다가 안 아프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면 암 1기가 ‘2기’가 되고, 2기가
‘3기’가 되어 결국 ‘말기’까지 가서
목숨까지 잃게 됩니다. 어느 때 성자께서
계획적으로 심하게 고통을 주거나
각종으로 역사하여 ‘생명의 위험한 병’을
발견하게 해 주십니다.
사연이 있어 고통을 주면서 깨닫게 하고,
그로 인해 해결해 주시니, 어떤 일이
닥치면 성자께 고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와 같이 말씀을 전할 때도
<표현의 능력>, <행동의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령, 자기가 어떤 어려운 환난과 고통을
<겪을 때>는 살이 찢어지고, 애간장이 다
타들어 가고, 뼈가 녹고, 뇌에 불이
붙어서 타고, 머리가 쪼개지고 골이 땅에
쏟아져 산산이 흩어지는 지옥의 고통을
받았는데, <말로 표현할 때>는 ‘마음
고생이 많았다. 최고로 고통을 겪어서
힘들었다.’ 한다면, 제대로 전달이 안
되어 듣는 사람은 본인이 못 겪었으니,
한 단계 차원 낮게 느낍니다.
고로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실천’도 그
정도만 하고, ‘감동’도 그 정도만 받게
됩니다. 고로 ‘증거’도 평범하게 그저
그렇게 하게 됩니다. 고로 될 것도 안
됩니다. 결국 속 시원하게 실천하고,
증거하는 자가 없게 됩니다.
또한 당대뿐 아니라 후대까지 역사의
주인이 행한 근본 심정, 근본, 뜻,
진실한 사연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심정’도 ‘느낌’도 봄날의
햇볕같이 은은하여, <역사의 근본>과
<시대의 주인>을 제대로 모르고
‘자기중심’으로 ‘자기를 증거’하게
됩니다.
지도자들이 말씀을 제대로 전해야 자기와
형제들의 ‘소원’도 ‘꿈’도 ‘뜻’도
이루어집니다. ‘성자와 분체’만 최고로
겪고 행하니, 그 심정을 깨닫고 확실히
증거하며 이야기해 줘야 됩니다.
10
그래야 듣는 사람들이 “사명자로서
누구도 겪지 못한 것을 겪었구나.” 하고,
근본을 깨닫게 됩니다. <겪은 것>이
‘특권’이고, ‘사명’이고, ‘권세’입니다.
<겪은 것>을 통해 분별하게 되고, 역사를
알게 되고, 사명자를 알게 되고, 성자를
알게 됩니다.
<겪은 것>을 통해 구원자와 따르는
자들에게 고통을 준 자들에 대해 알게
되어 그들을 멸시하고, 의인과 악인을
정확히 쪼개서 보고, 그 씨족을 달리
보게 됩니다.
지도자가 악평자에 대해서 확실히 가르쳐
줘야 모두 깨닫고, 그들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악평자들의 씨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되지 않습니다.
<전환>
성경을 봐도 그 시대에 <겪을 때>는
엄청나게 겪었으면서, <기록할 때>는
보통으로 기록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신약역사가 와서 신약의 메시아 예수님이
살아 계시면서 역사를 펴 나갈 때,
구약인들은 그렇게도 예수님을 핍박하고
악평하고 대적하며, 개 보듯 무시하고,
애간장을 태우고, 속을 썩이고, 뇌를
파내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과 함께 그렇게도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고통을 주고,
돌을 던지고, 때리고,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뇌에 불이 나게 지옥의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 시대 최고 극형인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살점이
다 떨어지고 뼈가 보일 정도로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피를 다 쏟을 정도로
때렸습니다. 그리고 두 손과 두 발에
못질을 하여 십자가에 매달고, 죽은
다음에도 창으로 배를 쑤셔 다시는 못
살아나게 했습니다.
‘그 시대 최고 악인들’이 ‘그 시대 최고
의인’이며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그리
대한 것입니다. <메시아>는 최고 죄인이
되어 고통을 당하다가 죽고, <메시아에게
고통을 준 악인들>은 살아서 자기들이
잘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행한 대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십니다.
‘메시아에게 고통을 주고 그를 죽인
자들의 영’ 중에서 천국이나, 낙원이나,
선영계에 간 영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지옥 판결을 받고 영원히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족속을 ‘악인 족속’으로
보고, 절대 그들과 섞이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결혼도 안 했습니다. ‘배신자
가룟 유다 족속’으로 보고, 신약역사
2000년 기간 동안 거의 섞이지
않았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알곡과 가라지’를
확실히 쪼개 놔야 하듯이, ‘의인과
악인’을 확실히 쪼개 놔야 하나님이
심판하기 좋습니다.
이 시대도 ‘보낸 자’가 시대 십자가를
지고 있는데도 악인들은 또 고통을 주고
있고, 섭리사 안에서 살면서도 제 갈
길을 가면서 보낸 자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이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도, 성자도,
보낸 자도 ‘행한 대로’ 공의로운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신약역사로 온 자들은
구약역사에 있는 자들을 ‘악한 족속’으로
대하고, 결국 <기독교 왕국>을 건설하여
그들보다 만 배나 잘됐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루시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여자와
원수가 되고, 여자의 후손들도 네
후손들과 원수가 되어 너를 발로 밟고
상하게 하며 살리라. 네가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켜 당대에는 당했지만, 그 신앙의
후손들은 너를 원수로 여기고, 네 머리를
짓뭉개고 살리라.” 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 참고)
결국 하나님의 역사가
‘구약신약성약’까지 흘러오면서, 이제
<성약시대>가 되어 <사랑의 근본 역사>로
복직되었습니다. 성약 때가 되니, 성자는
‘신랑’으로 오시고, 땅에서 성자를 맞은
자가 ‘신부의 조건’을 세워 <신부 역사,
사랑의 근본 역사,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보낸 자’로 말미암아 <성약
신부의 말씀>이 선포되었고, 그 말씀을
듣고 행한 자들이 ‘신부 족속, 의의
족속’이 되어 ‘마귀 족속, 악인 족속’들을
1000년 동안 지옥에 가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구시대 기성은 새 시대
섭리역사를 맞지 못했습니다. 눈이
닳도록 그들을 기다렸으나, 구시대
기성인들은 끝내 섭리역사로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2000년이나 기다렸던
<휴거>를 맞지 못하고, 구시대에서
끝나게 됐습니다. 새 역사에 와서
‘성자’를 따르며, 그의 신부가 되어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깨달아야
됩니다!
<전환>
‘겪은 사람’만 알고, 제대로 말하고,
확실히 증거하고, 확실히 행합니다.
선생과 함께 온갖 환난을 겪은 자들은
그냥 사람들 듣기 좋게 말하고 보기
좋게 행하지 말고, 뇌가 불타게 확실히
말해 주고, 확실히 증거해야 됩니다.
뇌에 불이 나게 표현하고 증거하여
성자와 선생의 심정과 정신과 행실을
모두의 뇌에 확실히 넣어 주어, 감동받고
확실히 믿고 확실히 행하게 해 줘야
됩니다.
선생이 보낸 표상자, 증거자를 보고 따라
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차원에 오르지
못하는 자들까지 그 차원에 올라 살게
해 주고, 그 영이 ‘휴거의 영’으로
확실히 변화되어 빛나게 됩니다.
겪은 사람이 말해야 됩니다. 그래야
성자와 분체의 근본 마음과 정신과
행실을 정확히 머릿속에 넣어 주니, 모두
‘산 자’가 되어 육도 혼도 영도 변화되어
제대로 찬란하게 ‘휴거’됩니다. (아멘!)
성경을 보면, 예레미야는 ‘애가’를 지어
겪은 대로 확실히 표현하며
간구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겪은 대로 확실히 말해야 각종 표적이
일어난다.” 하셨습니다.
<환난을 겪을 때>는 극적으로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왜 <말할 때>는 시인처럼
표현합니까?
<좋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것을 겪을 때>는 극적으로 기쁨을
겪어 놓고서, 왜 <말할 때>는 ‘그냥
좋았다.’라고 표현합니까?
그러면 제대로 증거하지 못하여 본인도
상대도 ‘은혜의 불’을 제대로 못 받아
‘불’이 타지 않습니다. 고로 ‘휴거’도
제대로 안 됩니다. 가르치고 외치는
자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됩니다.
11
어떤 사람은 교회에 온 지 3~6개월이
됐는데도 ‘선생’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대 주인’을 못 찾고
‘진리’를 못 찾으니, 딴 데로 갔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교역자와 전도자와 말씀을
가르친 강사 책임입니다.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지 못하는 자들은
분명히 ‘자기 휴거 속도’도 느릴 테니,
걱정입니다. 선생이 답답하여 섭리사에
왔다가 제대로 못 깨닫고 나간
사람들에게 편지하여 직접 이야기도 들어
보고 사연도 들어 보고 알게 됐습니다.
확실히 빨리 증거하지 못하면, 성자가
자기에게 연결시켜 준 생명을 뺏깁니다.
이제는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의 뇌에
불이 나도록 못 한 것은 확실하게
지적해 주겠습니다.
생명을 전도해 오면 ‘말씀’을 깨닫게 해
주고, ‘시대’를 깨닫게 해 주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 내에 못 깨우쳐 주면,
환난이 와서 나가게 되고, 혹은 희망하던
기대가 어긋나서 나가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거북이는 느려서 생명을 뺏깁니다. 고로
빠른 치타에게 생명을 맡겨야 됩니다. /
<주님의교회>같이 생명을 전도해 오면
‘뜨겁게, 확실하게, 빨리’ 가르쳐야
됩니다. <주님의교회>에서 말씀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와서 보면,
3~6개월 만에 핵심을 깨닫고 그에 따른
신앙고백을 하니, 생명들의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각 교회에서 편지들이 오면, ‘말씀을
배운 기간’과 ‘신앙고백’을 보고, 얼마나
확실히 잘 가르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원찮게 가르쳐 놓으니, 배운 사람도
희망이 없으니 다시 진리를 찾으러
헤매다가 이단 종교로 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섭리사를
비난합니다. 고로 말씀을 가르친 자가
책임을 못 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가르친 사람이 제대로 못 가르친
책임이며, 배운 사람도 제대로 못 배운
책임입니다.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배워야 됩니다.
<전환>
* ‘확실히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이
나왔으니, 무엇을 확실히 해야 하는지 몇
가지 더 말씀하겠습니다.
- 전도하면, 전도한 사람의 이름을
피스넷에 올려 줘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전도자로 올라가 있기도 합니다.
선생과 같이 전도한 사람들이 있기에
선생이 압니다. 그런데 전도자 기록을
보면, 그 부서에서 다른 사람을 전도자로
올려놓기도 합니다. 그러니 전도자가
힘이 빠집니다.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옆에서 도운 사람을 전도자로 올리지
말고, 전도자와 관리자를 분별해서
올려야 됩니다. 교역자들은 이것을
제대로 해 줘야 됩니다.
- 또 한 가지, 교역자들은 ‘전도 실적’을
정확하게 올려야 됩니다.
말씀을 제대로 못 배워서 선생도 모르는
사람들을 수료시키니, 수료를 해도 바로
나갑니다.
어떤 교회는 20명이 수료했는데, 수료
이후 현재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10명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2013년
전도 우수교회로 뽑혀 상을 받았으니,
그 교회 교인들도 황당해했습니다. 그
교회는 <섭리역사> 책에서 빼라고
했습니다.
교단에서 엉성하게 파악하니 그러합니다.
고로 교단도 이름만 있는 부서는 다
없애고, 실무진만 남겼습니다. 또
교역자들도 자기 주관대로 거짓으로
실적을 올리니, 그러합니다.
앞으로 수료 인원을 올릴 때도
<주님의교회>같이 정확히 파악해서
올려야 됩니다. 표상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워야 됩니다.
* 또 무엇을 확실히 해야 하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 격월간지 <섭리역사>에 글을 쓰는
사람도 스릴 있게 표현하고, 확실하게
표현해야 됩니다.
- 편지로 보고하는 사람도 하고자 하는
말을 잘 표현해야 됩니다. 말을 제대로
해야 그 말을 듣고 감동되어 들어주게
됩니다.
-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절히
자기 마음으로 표현하면서 기도해야,
성자께서 그 말을 들어주십니다.
시원찮게 표현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해
주기로 예정된 것도 안 해 줍니다. 속
시원히, 화끈하게, 감동되게 말하면서
기도해야 들어줍니다.
- 전도할 때도 시원찮게 말하면 ‘희망이
없다’ 생각하고 안 옵니다. 세상을
뒤집는 희망의 말씀이 있다고 하며,
확실히 이끌어야 됩니다.
- 희망으로 전도해 왔는데, 막상 강의할
때는 시원찮게 표현하니, 전도된 사람이
기대만 잔뜩 하고 실망하게 됩니다.
말씀이 뇌에 깊이 들어가 꽂히지 않으니,
뇌에 불이 안 붙어서 “기대에 어긋났다.”
합니다.
<말>도, <행실>도 확실히 해야 반응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말씀은
‘인류를 구원하고, 영원한 목적을 이루게
해 줄 성자 말씀, 주 말씀’입니다. 고로
진지하게, 확실하게, 자신 있게 전해
줘야 됩니다.
- 신앙고백도, 회개도 확실하게 화끈하게
해야 됩니다. 죄를 지을 때는 화끈하게
짓고, 회개할 때는 별것도 아닌 것같이
고하면 안 됩니다.
<이성 죄>도 화끈하게 지어 놓고 회개할
때는 무섭다고 하지 않으니, 선생은 어떤
사람에게 자기 죄를 무섭게 깨닫고
회개하라고, 7년 동안 근신하고 10명을
전도하여 성자께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13년 동안 한 명도 전도를 안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성 죄>를 짓고 자기 생명을
유실시켰으니, 생명을 전도하여 채워야
확실히 용서받게 됩니다. ‘전도가 얼마나
중한지’ 깨닫게 하려고 말해 줬습니다.
죄를 등한시하고 대충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성자도 분체도 용서해 줬나,
안 해 줬나 분별하지 못하게 답도
시원찮게 해 줍니다.
죄를 지었으면 낱낱이 고해야 됩니다.
그래야 낱낱이 용서해 줍니다. 죄를
지었으면 화끈하게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야 화끈하게 용서해 줍니다.
죄를 짓고 나서 부끄럽다고 회개하지
않으면, 회개하고 죄를 고할 때까지
‘휴거의 영’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12
<죄와 휴거>는 ‘상극’입니다. 확실히 말
안 하면 모르니, 확실히 말해 줍니다.
- 자기 공적도, 자기가 행한 것도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말할 것은
확실히 말하기 바랍니다.
- 시대 증거, 보낸 자 증거, 말씀 증거도
확실히 해야 안 믿을 사람도 믿게
됩니다. 믿습니까?
* 성자는 100% 확실히 하라고 하시는데
자기가 확실히 안 하니, ‘자기 휴거’도
그 정도로만 엉성하게 이루게 됩니다.
<겪을 때>는 뇌가 타게 겪었는데
<표현과 행실>은 옷이 탄 정도로만 하니,
겪은 것처럼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속 시원히 겪었으면 속 시원히 표현하고,
속 시원히 말해 주고, 속 시원히
증거하고, 속 시원히 설명하고, 속
시원히 가르치고, 속 시원히 행해야
된다는 것을 정말 깨닫기 바랍니다.
믿습니까?
오늘 말씀을 들었으니,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대로 속 시원히 표현하여 그 말이
듣는 자의 뇌 속에 확 박히고, 태풍에
파도치듯 감동받게 해 줘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깨닫고 실천하여 자기도
상대도 희망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속 시원히 사랑해
주십니다.
<전환 : 마무리>
‘뇌에 불이 나게 겪었으니, 겪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제대로 말해 주고,
제대로 증거해 주고, 제대로
행하기.’입니다. 뇌에 불이 나게 겪어
놓고서 제대로 증거하지 않고 행하지
않으면, 역사가 펴지지 않고, 그로 인한
상도 받을 수 없고, 표적도 일으킬 수
없고,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이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이는 자는 ‘말씀의
능력’을 받고, ‘불’을 받게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빨리 자기 마음을
비우고 성자의 정신을 받아들여 자기
뇌에 꽉 채워 ‘골 찬 인생’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한 대로 때에 따라 역사를
펴십니다. 고로 늦으면, 그에게는 역사를
못 폅니다. 두 명이 따라오든지, 다섯
명이 따라오든지, 따라오는 대로 때에
따라 역사를 펴십니다. 말씀대로 행하여
‘힘과 능력’을 받고, 100% 변화를
이루는 여러분이 되기를 성자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3
===================== 주제 ===
성자가 육신 쓰고 행하심을 믿고
그 말씀을 듣고 행하여라
===================== 본문 ===
[ 요한복음 5장 24절 ]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성자가 계시해 주신 여러 가지
말씀들을 <잠언>으로 하나씩 전해
주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깨우쳐 줄
것이니, 마음에 확 들어오는 잠언은 아예
뇌에 새기고 자기 것으로 삼아 행하기
바랍니다.
성자의 한마디 말씀은 ‘일억 천만금’
같습니다. 듣고 행하는 대로 생명이
되고, 듣고 행하는 대로 복을 받고, 듣고
행하는 대로 보호자가 되어 자기를 지켜
주며, 듣고 행하는 대로 소망을 이루고,
듣고 행하는 대로 변화되어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주 말씀처럼 전하는 자도 뇌에
불이 나게 심정 깊이 전하고, 듣는
자들도 뇌에 불이 나게 심정 깊이
깨달으려 하며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깊이 깨닫고 감동받아 그 단계에서 불이
나게 행하여 얻을 것을 얻고, 성공하게
됩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1. <시대 말씀>은 ‘사탄’도 듣고 ‘사탄이
쓰는 자들’도 듣는다. 고로 성자가
은밀하게 말하는 소리를 기도하여
깨달아라.
2. 성자께 계시를 못 받으면, 성자가
은밀하게 말씀하시는 소리만큼은
깨닫도록 그 정도는 기도해야 된다.
3. ‘비유’를 배웠으니, 비유로 말하는
것을 깨달아라.
4.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자는 성자와의
감이 멀어져서 성자가 말씀하셔도 못
깨닫는다.
5. 평소에 기도하는 자는 ‘기도의 줄’로
성자와 연결되어 통한다.
6. 성자는 <깊은 비밀>은 속삭이시고,
<일반 것>은 모두에게 전파하신다.
성자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려면, 깊이
기도해야 된다.
7. (성자) 나 성자는 나의 사랑의
대상에게만 말해 준다.
8. 하늘의 비밀을 알려고 하는
자들에게만 합당하면 은밀히 깨우쳐
준다.
9. 계시받는 자도 은밀한 것을 알려고
하는 자만 성자가 은밀히 깨우쳐 알게
하신다.
10. (성자) 나 성자는 기도하는 대로만
깨우쳐 준다. 나 성자의 계시가 특별히
의미 없다 하지 말고, 깊이 들어 봐라.
11. 귀한 말씀을 마지막이라고 하며
긴박하게 외쳐도 ‘심령이 죽은 자’는
모른다. 고로 눈을 감으면 옆에서 원수가
칼로 자기를 찌르러 와도 모르듯
그러하다.
12. 심령이 죽지 않도록 기도해라.
13. 기도하지 않으면, 성자와의 감이
멀어진다.
14.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감각이
떨어진다.
15. 기도하지 않으면, 육적으로
돌아간다.
<전환>
16.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뤄야
‘휴거 자격자’가 된다. <창조 목적>을
이루지 않고서는 휴거되지 않는다.
17. 하나님이 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육과 영’을
창조하셨는지, 그 목적을 모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천국>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18. 하나님과 성자를 ‘신랑’으로 삼고
그의 신부가 되어 살라고 ‘천지 만물’과
‘인간의 육과 영’을 창조하셨다.
육으로는 이 땅에서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 살고, 영으로는 천국에서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 영원히
살라고 창조하셨다. → 인간이 세상에서
살 동안 이 책임분담을 해야 ‘휴거
자격자’가 되어 성자가 ‘휴거’를
결재하신다.
19. 각자 ‘자기 기회’가 있다.
그 기회를 잡고 행하는 것이다.
<전환>
20. <예술>은 ‘인간이 살아 있는 것 그
자체’다.
21. <인간>은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
22. <인간의 삶>이 ‘삶의 무대 위의
예술’이다.
23. 하나님께 마음을 안 드리면, 살아
있는 예술이 못 된다.
24.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야 그
‘행위’도 ‘육’도 ‘예술’도 받으신다.
25.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체’다.
26. 하나님은 실력보다 ‘마음’을 보신다.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을 먼저 받으시고,
그 ‘육’도 받으신다.
27.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위해서 무대에 올라라.
청중은 삼위일체께 영광 돌리는 데
구경꾼이다.
28. 청중을 보고 하나님의 무대에 서지
말아라.
14
29.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가서 무대에
서려면, 이 세상에서 오직 100%
하나님을 향한 무대를 서는 실제 연습을
해야 된다.
30. 천국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마음’을
본다.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보고 영광 돌리는지, 그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31. 이 세상에서 자기 마음을 100% 다
하나님께 쏟아 영광 돌리며 무대에 서는
자가 천국에서 볼 때 ‘예술인’이다.
32. 천국 무대 설 자가 누구인지,
땅에서 다 뽑는다. 이 세상 무대에 설 때
자기 마음이 오직 하나님께 100% 향해
있는가를 보고, 천국 무대에 설 자를
뽑으신다.
33. 섭리인들은 모두 하늘 무대에 선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100% 향하게 하고 무대에 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의 전, 하늘 무대에 서는 것인데
왜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을 보려
하느냐. 그런 자는 양심껏 하늘 무대에
올라가지 말아라.
34. 사전에 이것을 교육하고, 하나님
영광의 무대에 오르게 하여라.
35. <지구>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무대’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면서 시대 말씀을 듣고 의롭게
살면서 창조 목적을 이루고 사는 자가
‘지구에서 가장 큰 자’이며 ‘최고의
예술인’이다.
36. 예술의 근본자이신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무대’를 창조하시고,
거기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이
‘하나님의 최고 예술 작품’이다.
37. 인간은 어떤 것을 만들 때 ‘돈을
벌기 위한 마음’으로 만들고, ‘자기가
쓰기 위한 마음’으로 만든다.
38.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랑의
마음’으로 만드신다.
39. 고로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상체’다.
40. 하나님의 힘의 근원은 ‘사랑’이다.
41. 그러나 인간들은 ‘힘의 근원’을 찾지
못한다. 힘의 근원은 ‘사랑의 근본체인
하나님’이시다.
42. 똑똑한 사람이 하나님과 성자를
사랑한다.
43. 에너지 중에서 ‘사랑의 에너지’가 그
힘이 제일 강하다.
44. 하늘을 뚫는 기도를 해라. 무엇으로
그 높은 하늘을 뚫겠느냐.
가장 힘이 센 ‘사랑’으로 하늘을 뚫는
기도를 해라.
<전환>
45.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쓰신다. 성자도 그러하시다.
46. ‘예수님의 십자가 길’은 예수님을
불신한 자들과 구원할 자들을 구하는 데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길이다.
‘살리는 길’은 오직 인류의 죄를 대속할
메시아가 대신 죽어 줌으로 그들을 살
길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삼는
길밖에 없었다.
47. 자기 사랑하는 자를 뺏겼는데, 그
사람을 다시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온갖 창피, 능욕, 모욕, 억울함, 비수를
다 참을 수밖에 없다. 그 길만이 뺏긴
애인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
48. 신약에서 성약으로 오는 데에는
‘해산의 고통’이 있다.
49. 성자의 신부가 되는 데에도 ‘해산의
고통’이 있다.
50. ‘해산의 고통’을 못 참으면,
<생명>을 못 낳는다.
51. 예수님은 ‘십자가 해산의 고통’으로
<2000년 신약역사>를 낳았다.
52. ‘성약역사 해산의 고통’으로 <성자의
재림>을 맞아 <신부 휴거 역사>를 낳아
시작하게 되었다.
53.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에게도
‘의인’에게도 모두 다 해당된다.
<전환>
54. 관리자는 파트별로 뽑아라.
55. 관리자끼리 서로 항상 의논하고
연구해라.
56. 관리에 빈틈이 생기면, 사탄이
틈타서 그 생명을 끌고 간다.
<전환>
57. <육>은 ‘혼’에 이끌려서 행해야
되고, <혼>은 ‘영’에 이끌려 행해야 되고,
<영>은 성자와 주께 이끌려서 행해야
된다.
58.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성자의 마음을 가지면 ‘치유의 은혜’를
받는다.
59. 기도해 주는 자가 ‘성자’와 일체
되고 ‘아픈 자의 마음’과 일체 되면,
성령이 임하여 아픈 자가 치유된다.
60. 성령을 부어 줘도 ‘자기 마음’에
막히고 ‘죄’에 막히면, 성령을 못 받는다.
자기 마음을 비우고 죄를 회개하여
깨끗한 자로서 기능을 해야 성령을
받는다.
61. 육적으로 자부하지 말고, 영적으로
자부해라.
62. <자기 영의 도구>는 ‘육’이다.
늘 건강관리다.
<전환>
63. ‘꾸준하게 한 것’이 ‘후다닥 많이 한
것’보다 많이 남는다.
64. 꾸준하지 않으면 멀리 못 간다.
65. 꾸준히 행하는 자가 특별한 신앙을
가진 자다.
66. 자극적으로 충동적으로 하면, 순간은
승리하지만 전체는 승리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친다. <전환>
67. 사탄은 자기가 ‘중심’이 되고
‘주체’가 되려다가 사탄이 되었다.
68. 인간도 하나님과 성자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자기가 중심이 되면 사탄
된다.
69. 여자는 남자가 될 수 없듯이,
인간은 ‘주체’가 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앞에 대상체’다.
15
70. 성자가 신랑으로서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일체 되어도, 성자는
‘전능자’이며 ‘신’이시다. ‘주체’다.
‘조물주’다.
71. 인간이 성자와 사랑으로 일체 돼도
인간은 항상 ‘대상체’다.
72. (성자) 나 성자가 이 세상에 내
육으로 보낸 자는 ‘인간’으로서 너희
같이 대화하고, 같이 살고, 같은 육체를
가졌지만, 그는 하늘이 세운 ‘주체’다.
그에게 ‘구원의 열쇠’를 주었다. 그를
통해 ‘구원의 길’이 열린다.
73. 성자가 보낸 자를 어떤 입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근본’이
좌우된다.
<전환>
74. (성자) 사람들은 나 성자가 ‘이
땅의 사명자의 육신’ 쓰고 온 것을 믿지
못한다. 초림 때도 하나님과 나 성자가
‘예수’의 육신 쓰고 온 것을 믿지
못했다. 나 성자가 육신 쓰고 온 것을
믿지 못하여 보낸 자를 믿지 못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다.
75. (성자) 하나님도, 나 성자도 어느
시대든지 육신 쓰고 구원역사를 편다.
76. (성자) <재림역사>도 나 성자가
육신 쓰고 한다.
77. (성자) 나 성자가 보낸 자의 육신
쓰고 한 내 말을 믿고, 나를 맞으면
된다.
78. 계시자는 자기가 중심이 되면 안
된다.
79. 계시자는 오직 계시를 주는 성자를
중심해야 된다.
80.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던
구약인들’을 데리고 <구약역사>보다 더
차원 높여 구원역사를 펴려 하셨다.
그러나 구약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님을 배척한 연고로
‘이방인’을 데리고 <구약>보다 차원 높인
구원역사를 펴셨다. 그것이
<신약역사>다.
81. 성자가 재림하신 이때도 그러하다.
하나님과 성자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던 자들’을 데리고 <신약역사>보다
차원 높여 구원역사를 펴려 하셨다.
그러나 기성인들은 성자가 육신 쓰고
행하시는 것을 불신했다. 고로 성자가
육신 쓰고 행하는 것을 받아들인
‘이방인들, 젊은이들’을 데리고
<신약역사>보다 차원 높여 <성약역사>를
펴 나가신다.
82. 한 남자가 본래 사랑하던 여자를
데리고 사랑의 뜻을 펴려고 차원 높여
왔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 남자를 받아
주지 않고 불신까지 했다. 고로 그
남자는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여자를
데리고 사랑의 뜻을 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러했다.
83. 하나님은 본래 믿고 있었던 자들을
통해서 뜻을 이루어, 그들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 뜻을
이루려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믿고 살았던 기성인들을 아예 놓으셨다.
그들이 불신한 연고다.
결국 새로운 세계의 새 생명들을 데리고
새 역사를 펴 나가셨다. 결론적으로 더
빨리 역사를 펴게 됐다.
84. <종교개혁>도 이미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통해서 믿지 않는
자들까지 믿게 하며 새롭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믿고 있었던 자들이
불신함으로 새로운 어린 자들을 데리고
새롭게 하셨다. 그리함으로 <개신
기독교>를 낳았다.
85. 하나님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해당되는 사명자를 쓰고 행하신다. 아는
자만 따라간다.
86. 하나님과 성자가 육신 쓰고
행하심을 믿어라. 그러면 구원이다.
87. 하나님은 하늘의 뜻을 두고
<역사>를 차원 높여 펴 나가신다. 냇물이
강으로 흘러가고, 강이 바다로 흘러가듯,
종은 아들로 흘러 강이 되고, 아들은
신부로 흘러 바다가 된다. <신부 역사>가
종착지다. 마지막 역사다. 이 역사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기필코 이룬다.
88.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멈추지 못한다.
그러니 인생들이 시대 사명자의 외침을
듣고 따라가야 된다.
89. 그 시대 하나님의 살아 있는 역사를
따라가지 않으면 ‘고인 물’이다. 따라가는
자들은 살아 있고 차원을 높여 간다.
‘흐르는 물’이 되어 썩지 않는다.
<전환>
90. 성자가 ‘신랑’으로서 이 땅에 준비된
신부들을 휴거시켜 데려가는 것은 ‘딱 한
번뿐’이다.
91. 모든 역사는 한 번이다. 구약 한 번,
신약 한 번, 성약 한 번이다.
92. 1000년 성약역사 혼인 잔치가
끝나면, 성자는 1000년 동안 신부
역사를 편 곳에 또 신부를 데리러 오지
않으신다. 그러면 혼인 잔치 끝나고 또
혼인 잔치 하는 격이다. 결혼은 한
번뿐이다. <전환>
93. 성경에서 홀연히 변화된다고 했는데
‘홀연히’란, ‘자기도 언제 됐는지
모르게’라는 말이다.
94. 먼 길을 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홀연히 먼 길을 와 있다.
95. ‘홀연히 오셨다’ 함은 ‘알지 못하는
때에 와 있다’ 함이다. <전환>
96.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절대
사랑했으면 흔들리지 않았다.
97. 세례요한은 메시아를 절대 사랑하지
않았기에 실족하고, 멀어지고, 피하게
되고, 미워하게 되었다. 고로 역사를 못
폈다.
98. 사람은 자기 뇌의 인식관대로
판단한다.
‘부정’혹은 ‘시인’, ‘선’ 혹은 ‘악’이다.
99. 자기 인식관대로 알고 있는 지식이
자기 판단을 좌우한다.
100. 자기가 무지하면, 무지한
인식관대로 판단하고 행한다.
101. <인식관>은 ‘가르치는 자’에 의해
조절되고, ‘주변 환경’에 의해 조절되고,
‘자기가 보고 듣는 것’에 의해 조절된다.
<조절 인식관>이다.
102. 사탄은 ‘잘못된 인식관’으로
조절한다.
103. 세상의 유명한 사람이 말하면,
그릇된 말이라도 옳게 인식한다. 본인이
직접 해 보고 손해를 보면, 그제야 그
말을 부정한다.
104. 언론, TV, 뉴스, 각종 선전들만
보고 인식하면 실수한다.
16
105. 오직 ‘전능자의 생각’을 머리에
두고 인식하면 안 속는다.
106. 사람이 하나님과 성자의 말씀을
절대 받아들이고 신이 되어서 세상
것들을 분별하고 살아야 된다.
107. 나쁜 말이나, 부정적인 말이나,
악평은 더 인식이 확 박혀 영향을 잘
받는다.
108. 이성에 잘 빠지는 자가 성적인
말을 들으면, 합리화해서 성적인
인식관을 갖게 된다.
109. 유대인처럼 기존 인식관이 뇌와
마음에 꽉 차 있는 자는 새로운
인식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난다.
110. 기성은 모든 것을 자기 주관권의
인식관으로 보기에 새 역사로 오지
못하고 기성에서 끝난다.
111. 이미 자기 주관권의 법, 풍습,
교리, 습관이 뇌에 꽉 차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부정하고 자기
인식으로 분석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
112. 새 진리가 맞아도 기존 인식관
때문에 부정한다.
113. 성자가 보낸 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관을 없애지 않고서는 <휴거>가 안
된다. 결국 그 영혼은 그릇된 인식관의
세계로 간다. 사명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관을 없애지 않고서는 휴거는 안
된다.
114. ‘성령의 불’로 그릇된 인식관을
불태워야 된다.
그릇된 인식관도 죄이기 때문이다.
115. <사랑 교육의 핵심>은 이것이다.
모든 것을 볼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마음에 꽉 채우고 보아라!
<전환>
116. <인간이 노력하여 맞는 기회>가
있고 <하늘이 준 기회>가 있다.
117. <사람이 주는 기회>나 <자기가
노력하여 얻는 기회>는 구멍가게만 하게
작은 기회다.
118.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는 평생 한
번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기회를 잡고
가면서, 계속 ‘때’를 맞는 것이다.
119. 이 땅에서 세계 재벌이 돼도
구원받지 못하고 휴거되지 못한 자는
모두 구멍가게 삶을 산 것이다.
120. <기회>는 사생결단하고 잡아야
잡힌다.
121. <육계의 기회>를 잡아 차원을 높여
성공하고, <영계의 기회>도 잡아 차원을
높여 성공해라.
122. <시대 말씀>에서 눈도, 마음도,
정신도 떼지 말아라. 떼면 방향 잃는다.
123. <기회>를 잡으려면 목적한 바에
전심을 쏟고, 거기서 눈도 마음도 떼지
말아야 된다.
124. 세상을 위해서 살면, 성공해도
결국 ‘자기 죽은 시체’를 남기고, ‘사망에
가서 영원히 살 영혼’을 남긴다.
125.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를
위해서 살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
영혼’을 남긴다.
<전환 : 마무리>
126. 성자와 사랑을 맺으면 ‘이별’이
찾아온다. 그러나 곧 다시 만난다.
127. 성자와 사랑을 맺지 못하고
이별하면 ‘아주 떨어지는 이별’을 한다.
128. 사랑하는 자와 언제 이별할지
모르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미련 없이
사랑하며 산다.
129. 곧 성자와 이별이다. 성자는 곧
떠나신다. 그 날과 그 때는 모른다.
고로 “오늘뿐이다.” 생각하고, 성자를
하루 종일 붙잡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라.
그러면 이별해도 그동안 맺은 사랑으로
인해 어느 날 또 오신다.
130. 성자와 사랑을 맺고 이별하면
성자와 ‘사랑 줄’이 연결되어 있기에
기다리다 보면 또 오신다.
131. 맺지 않은 사랑은 ‘영원한 이별’로
끝난다.
132. 성자와 ‘희망 있는 이별’을 해라.
(이별해도 후에 다시 만나도록 지금
성자와의 사랑을 맺어 놓아라.
이것은 ‘희망 있는 이별’이다.)
17
===================== 주제 ===
네 민족의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리라 네게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 본문 ===
[ 마태복음 2장 6절 ]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
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
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 누가복음 2장 14절 ]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
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
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실한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선생이 태어난 날입니다.
<생명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이 태어난
사연’과 ‘선생의 고향 월명동에 얽힌
하늘의 뜻과 사연’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오늘은 <섭리사 생명의 날>로서 모두
‘말씀의 잔치’에 참여하러 왔으니, 깊은
말씀을 듣고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전초>
선생이 오늘 말씀을 준비하려고 새벽에
기도하는데, 성자께서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 가지는 ‘겪은 대로 속 시원히
표현하고 행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고,
또 한 가지는 ‘선생의 탄생과 선생의
고향 월명동’에 대한 말씀입니다.
‘겪은 대로 속 시원히 표현하고 행하는
것’에 대한 말씀은 지난주에 미리 말씀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생명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의
탄생과 선생의 고향 월명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성자가 해 주신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지난 주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 터전 위에 오늘 말씀을
듣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역시 다이아몬드같이 강하고
빛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정말 잘
전하고, 잘 듣고 행하면 말씀을 전하는
자도 ‘말씀의 능력’을 받고, 말씀을 듣는
자들도 ‘불’을 받게 됩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오늘 성경 본문 말씀 마태복음
2장 6절을 보면,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했습니다.
이는 ‘메시아 예수님이 탄생하실 것’을
말한 것이며, ‘앞으로 예수님이 행하실
것’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예수님은 ‘베들레헴’이라는 아주 작은
고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적으로 그 작은 고을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베들레헴이 작지만,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하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어
역사를 펴 나가셨고, 예수님은 온 세상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수십억 명을
‘다스리는 주’가 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작지
않은 고을’이 되었고, 예수님은 ‘온
인류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끝>
<전환 : 첫 번째 말씀>
* 이제 이 시대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곧 ‘선생의 탄생’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선생의 고향은 <월명동>이고, 선생은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그때 월명동은
달이 밝다고 해서 ‘달밝골’로 불렸습니다.
마을이 너무 작아 ‘골짜기’로 불린
것입니다.
그때 당시 우리 동네에는 ‘네 채의 집’이
있었습니다. 윗집은 박 목사님 집이었고,
아랫집은 선생 집이었고, 그 아랫집은 고
목사님이었고 그 아랫집은 남 집사님
집이었습니다. <끝>
온 동네 사람들은 모두 교회에
다녔습니다. 집이 네 채밖에 없어서
마을이 매우 작았지만, 그 당시에 네
집에 목사만 여섯 명이 있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열세 명의 목사를 낳았습니다.
월명동은 ‘성직자 마을’이기도 합니다.
선생의 할아버지는 왕 밑에서 수종을
들며 정치를 하시다가 일제 강점기에
난(亂)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공주’가 고향인데 ‘진산 묵산리’로
피했다가 ‘달밝골’, 곧 ‘현재의
월명동’으로 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월명동에 3원짜리 초가집을
사서 살기 시작하셨고, 거기서 둘째
아들을 결혼시키고, 셋째 아들인 우리
아버지를 결혼시켰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우리 아버지는 우리 어머니와 결혼하시어
선생의 할아버지가 3원을 주고 산
월명동 초가집에서 살면서 7남매를
낳았고, 선생은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끝>
어머니 고향은 ‘진산 교촌리’입니다.
넷째인 규석 목사만 한국 남북 전쟁이
있었던 6.25 때 태어나서 고향이
‘월명동’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와 같은
‘진산 교촌리’입니다. 규석 목사는
어머니와 ‘고향’도 같고, ‘태어난 집’도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머니와
한방에서 살면서 어머니 시중을 드는
사명을 가지고 삽니다.
18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선생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갓난아기 때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서 아팠습니다. 온갖 약을 다 먹여도
못 고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저녁부터 죽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녁이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이불로 덮어서 방 윗목에
밀어 놓았습니다.
(그때도 원수 사탄 마귀가 내게 갖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사탄 마귀가 원수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탄 마귀를 모두 없애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는 밤이 깊어지면, 모두 잠을 잘
때 죽은 아기를 항아리에 넣어서 갖다
묻으려고 장소를 봐 놨다고 합니다.
그곳이 지금의 자연성전 잔디밭에서
전망대로 가는 골짜기였습니다. 사람의
눈에 잘 안 띄는 곳이었습니다.
아기에게는 ‘질항아리’가 ‘관’입니다.
태어난 지 1년 된 아기니까 ‘작은
항아리’에 넣어 뚜껑을 덮고 땅에
묻으면, ‘묘’가 됩니다.
밤중이 되어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들자
우리 어머니는 마침 시집간 딸네 집에
와 있었던 친정어머니와 의논하고,
아기를 땅에 묻으러 가려 했습니다.
묻기 전에 마지막으로, 죽었지만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려고, 얼굴까지 푹 덮어 놓은 홑이불을
벗기고 호롱불을 밝혀 얼굴을 봤답니다.
그때 아기가 눈을 뜨고 ‘깜빡깜빡’ 하고
있더랍니다. 어머니는 ‘지금 이때만 눈을
뜬 것인가?’ 하고 감격해서 쳐다보는데,
‘나 안 죽어요.’ 하는 느낌이 오더랍니다.
어머니는 꼭 끌어안고 아랫목에 놓고는
‘혹시 다시 죽지 않으려나?’ 하고,
새벽까지 철야하며 지켜봤답니다. 그때
‘아기가 안 죽고 살겠구나.’ 하는 마음이
오더랍니다.
날이 새고 친정어머니가 “아기 잘 묻고
왔냐?” 하는 말에 “다시 살았어요!”
하니, “명도 길다. 그러나 죽었다
살았으니, 잘 봐야 된다.” 하셨답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밥을 하면서도
어떻게 되는지 계속 지켜봤는데, 아기가
손을 흔들면서 똘망똘망하게 웃더랍니다.
그 후 3일 만에 죽었다 살아나서 퉁퉁
부었던 온몸의 붓기가 쫙 빠져 정상이
되었고, 그때부터 건강하게 컸답니다.
<끝> 어머니가 겪은 대로 아기가 죽었다
살아났으니 명이 길다고 하며 아기의
이름을 ‘명석’이라고 지었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3-5절을 보면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니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했는데, 이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 아기가 그때 죽었다면, ‘이 시대
휴거’고, ‘이 시대 구원’이고 끝장날
뻔했습니다. 그래서 전능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살리셨습니다. <전환>
선생의 생일은 음력 1945년 2월
3일입니다. 양력으로 따지면, 1945년
당시 음력 2월 3일은 ‘3월 16일’입니다.
선생이 태어났던 해인 1945년까지
한국은 40년 동안 일제의 침략을 당하여
일제강점기였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으로부터 해방됐습니다.
그때 <제2차 세계대전>도 끝났습니다.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게도 치열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명자를 보내신 그
해에 종결되면서 <평화의 역사>로
바뀌었습니다.
중국의 <추배도>라는 예언가들의 책을
보면, 1300년 전에 예언하기를 ‘옆
나라에 한 사람이 태어나면, 그 민족이
해방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도 <민족의 형벌 기간>인 40년,
곧 한 때 두 때 반 때가 끝나면
하나님이 보낸 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면, 하나님은
세계 각 나라 여기저기에서 ‘보낸 자,
그’를 놓고 각종으로 예언하게 하고,
여건을 만들어 역사하시며 ‘그’가 그
예언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이미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졌고, 또 지금도 행하고
있는데 누가 아니라고 말합니까?
또 월명동 주변 지역에도 각종 전설이
있는데, 월명동에서 전설의 주인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전설대로 행하니,
누가 아니라고 합니까? 이미 행하여
세계적으로 수많은 군중들이 구름같이
몰려오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환>
선생이 갓난아기 때 죽을병에 걸려 숨도
못 쉬고 눈을 감았을 때,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보려고 들추어
보지 않고, 그냥 안고 가서 땅에
묻었다면, 선생은 아기라서 말도 못 하고
그대로 묻혀 버렸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확인했기에 살았습니다.
생명들도 그러합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가지고 봐야 됩니다. 선생도 그 일을
거울로 삼고, 생명이 다 죽어 가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가지고 살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2000년도 초, 선생이 유럽 이탈리아로
선교를 나가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에게 홑이불을
덮어씌워 놓은 상태였습니다.
선생은 그 말을 전해 듣고 “홑이불을
다시 열어 봐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토끼 눈같이 눈을 뜨고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보고픈 아들을
못 보고 떠나니, 눈을 뜨고 가셨구나.’
생각하고, “따뜻하게 이불로 덮어 주고
절대 몸을 묶지 말고 기다려라. 내
하나님께 갔다 올 테니까...” 했습니다.
<끝>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굳기 전에 손과
발과 몸을 주물러서 곧게 해 주고 묶어
줘야 됩니다. 이것을 ‘초염(初殮)’이라고
하는데, 초염을 해야 시체의 팔다리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의를
입혀서 관에 넣고, 시체를 묶어서
홑이불을 덮어야 됩니다.
시간상 어머니도 수의를 입히려면, 몸이
더 굳기 전에 빨리 초염을 하고 시체를
묶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아직
묶지 마라.” 했습니다. 그러나 큰형과
작은형이 있으니, 곤란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다려. 내가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해 보고,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 미련 없이 묶자.”
했습니다.
19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각 지역 교회들이 나눠서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선생은 세 시간 동안 기도하면서,
그동안의 모든 사연을 하나님께 다
고했습니다. “저와 어머니 사이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이름으로
약속한 것이 있는데, 제가 그 약속을 못
지키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분명히 내가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어머니는 안 죽는다고 했는데, 나 보고
싶어서 토끼 눈같이 눈을 뜨고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쓰러워할 것이며,
나의 원수들은 얼마나 좋아서 잔치를
하겠습니까?
성약역사 1000년 동안 후손들에게
설교로 이 이야기가 전해질 텐데, 내가
한국에 없는 사이에, 그것도 악인들이
득실대는 이때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두고두고 섭리인들이 힘 빠지고,
낙심하고, 슬퍼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때가 되어 돌아가셨든지,
책임을 못 해서 돌아가셨든지, 살려
주세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이름으로 어머니와 약속한 것이 있는데,
제가 아직 한국에 못 가서 지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를 만나서 그 약속을
지키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며
간구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나의 진실한 간구를
들으시고 “걱정 마라. 알았다. 어머니
영을 다시 돌려보냈다.” 하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얼마 후에 한국에서 전화가 오기를
어머니가 눈을 떠서 깜빡깜빡하고,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던 손과 발과 몸이
따뜻해지고 살아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선생 갓난아기 때 살아나듯
살아났습니다!
어머니는 올해 97세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14년째 더 살고 계십니다. 이
사연은 섭리사의 기쁨과 표적이 되어,
오늘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끝>
이와 같이 선생이 시대 십자가를 지고
전체를 위해 대신 죽어 주었으니,
섭리인들 전체가 대신 살아났습니다.
이를 알고, 그 조건 위에 자기를
만들면서 기필코 휴거를 이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선생이
성자께 “어머니와 아버지 둘 중에 누가
더 오래 삽니까?” 하고 물어봤는데,
성자는 “왜 생명의 비밀을 물어보느냐?”
하셨습니다.
선생이 “일찍 가시는 분에게 신앙을 더
넣어 주고 잘해 줘야 합니다.” 하니,
성자는 “아버지가 먼저 죽고, 어머니가
더 오래 산다.” 하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성자의 말씀대로 아버지는 87세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97세인데
아직까지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는
섭리사 대(大)행사가 끝나고,
1997년도에 돌아가셨습니다. 만일
어머니가 2000년도에 돌아가셨다면,
그때가 83세였으니, 아버지보다 일찍
돌아가신 것이 됩니다. <끝>
하나님과 성자가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고 계십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성자가 개인·민족·세계에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고 계십니다!
고로 선생 이름으로 나간 모든 말은
정녕 다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성자가
하신 말씀대로 말하니, 그 말은 정녕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이 ‘책임’을
해야 됩니다.
선생이 태어나고 삶으로 인해 섭리인들
모두가 살게 되었고, 시대 말씀을 듣고
성자를 믿고 사랑함으로 구원받게
되었고, 휴거까지 이루게 되었습니다.
성자가 사명자를 통해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전환>
지금도 선생은 어디에 있어도 ‘성자의
육’이 되어 행하기에 여기서 기도해도
지구 세상과 각 민족에 기적들이
일어나며, 지구 세상 모두가 선악 간에
행한 대로 받는 역사가 날마다
일어납니다. 섭리인들이 이것을 모르면
소경이고, 귀머거리이며, 굴속에서 혼자
사는 자입니다. 그런데 섭리인들 중에서
70%가 제대로 모르고 삽니다.
성자는 “신부가 소경이고 귀머거리이니
답답하다. 어떻게 그들을 신부로
삼겠느냐.” 하시며, 선생에게도
이야기하십니다. 제대로 못 가르치니
그러합니다. ‘징조와 표적’을 보려면
설교를 잘 듣고, 마음의 창을 열고
세상을 내다봐야 됩니다.
뉴스를 보고 듣고, 현실을 봐야 됩니다.
성자께 물어보고 계시를 받아도 그
사람의 수준과 차원대로만 받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세상을 내다보며 자기도
어느 정도 아는 수준이 있어야, 성자가
계시를 주셔도 성자의 수준대로 깨달아
알게 됩니다.
선생은 매일 기도합니다.
세계 국방, 정치, 국회, 판검사, 경제,
종교, 우상 종교, 이단 종교, 언론인들,
썩는 예술 세계, 이성 세계, 사랑 세계,
사기꾼들, 폭력자, 테러 집단, 악인들을
놓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성자께 낱낱이
고하며 그들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평화롭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본인들도 자기 죄를 알고 회개하도록
성령께서 감동을 주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온 인류의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매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대표자가 책임지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대표자의 기도를
중심해서 받으시고, 기도한 대로
행하십니다.
대표자인 사명자가 기도하지 않으면 그
모든 화가 내게 오니, 매일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로 선생이 꼭꼭
기도하도록 선생을 위해 기도해 줘야
됩니다. 기도는 ‘멋’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무’로만 생각해도 안
됩니다.
최근 2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 동안
각종 서류와 써야 할 말씀이 밀려서
자정 12시까지 일을 하고 새벽에 늦게
일어나 ‘새벽 제시간’에 기도를 못
했습니다. 그리고 3일 동안 ‘낮에도
밤에도 제시간’에 기도를 못 했습니다.
제때 기도를 못 하니 ‘또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 하며 걱정되고
불안했습니다.
그 무렵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국내에서도 참사가 일어나 초상집이
되었고, 해외에서도 참사가 일어나
시체들을 실어 오지 않았습니까? (참고
: ‘한국 부산외대 사건’과 ‘이집트 버스
폭탄 테러 사건’)
* 2월 17일 저녁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려고, 경주의 한
리조트에 갔는데, 그곳 체육관에서
신입생들과 관계자들이 다 모여 있을
때에 폭설로 인한 눈의 무게를 못 이겨
20
체육관 지붕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 사고로 인해 10명이 숨졌고, 10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 2월 16일 오후 이집트의 한 도시에서
한국인과 기타 외국인이 타고 있던
관광버스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때 4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국내에서 참사가 일어난 학교에는
섭리인들이 많습니다. 너무 걱정되어
성자께 기도하니, 성자께서 “내가 다
뺏다. 다 살렸다. 내일 편지가 올
것이다. 봐라.” 하셨습니다.
다음날 부산에서 보내온 편지를 보니,
부산외대에 다니는 섭리 사람 중에서는
한 사람도 신입생 환영회에 안 갔다고
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밤낮 지킨다. 내 마음을 알고,
너희도 나 성자와 내 분체를 지켜라.”
하셨습니다.
기도 안 하면, 바로 표가 납니다. 선생이
대표이니, 민족과 세계를 위해 하루 세
번씩 꼭꼭 제시간에 기도합니다.
섭리사는 민족과 세계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니, 전체를 보고 모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모두 선생과 같이 민족과
세계 전체를 위해 기도해 줘야 됩니다.
<전환>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선생은 월명동에서 태어나 계속해서
월명동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산(山)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남자들에게 국방의 의무가
주어지기에 3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그때 <베트남전>에 참전했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살아서 돌아와 이어서 또
산기도를 했습니다. 산에서 기도한
기간은 총 21년이었습니다.
21년 동안 산에서 기도를 하면서
성자께 ‘시대 말씀’을 받았고, 33년 동안
<사생애 기간>을 보냈습니다. 이때는
기도만 하지 않고, 거리를 걸어 다니고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계속 말씀을
외치며 전도하면서, 혼자 <생명 구원의
역사>를 펴고 다녔습니다. 금산, 대전,
전주, 서울 등 타 도시를 다니면서
거리에서 외쳤습니다.
그리고 병든 자들과 약한 자들을 살려
주고, 하나님을 믿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는 뇌가 타고, 몸이 마르고, 뼈가
마르도록 굶었고, 잘 곳이 없어서 산과
들에서 자면서 살았습니다. 겨울에는
온몸이 다 얼고, 심장만 안 얼어서 겨우
살아서 기도했습니다.
민족과 세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작은 지구본을 사다 놓고,
거기에 양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서른네 살 때부터 <섭리역사
공적 역사>를 펴면서 <공생애 기간>이
시작됐습니다. <끝>
<전환 : 두 번째 말씀>
* 이제 ‘선생의 고향 월명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성자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혹시 자기 고향에 다른
사람들은 한 명도 없이 초가집 짓고
혼자 사는 사람 있습니까?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9>
선생의 고향은 <월명동>입니다. 원래는
비좁고, 척박하고, 인적이 드물어 외롭고
쓸쓸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내 고향 전체’를
<자연성전, 하늘의 궁>으로 구상하여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선생 집 한 채’만
허락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기적이고 표적입니다.
성자는 “월명동 자연성전에는 네 집만
짓도록 허락한다.” 하시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가 네게 준 말씀을
믿고 따르고 행하는 자들은 <신앙의
전>인 <나의 자연성전>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평생 자기 것으로 삼고
사용하게 하자.” 하셨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이 시대에 내가
보낸 자를 통해 나 성자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이 시대에 해당되는
<신부급 구원>을 받고 변화되고 휴거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리라.” 하셨습니다.
<끝>
섭리역사는 1978년부터 21년 동안 공적
역사를 펴 오다가 1999년부터 14년
동안 무덤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 <영적 부활>을 이루고,
구시대에서 독립하여 <영적 독립>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휴거의 때>를 맞았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휴거>는 6000년
구원역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세상은 <창조 목적>을 두고 창조했다.
<창조 목적>은 ‘삼위일체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이 삼위일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시대 구원자를 맞아 그 말씀을
듣고 인간이 삼위일체를 100%
사랑하면, 인간은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 <천국 황금성>으로
휴거된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 창조 목적을
이루어 너희 영을 휴거되게 하려고, 이
세상을 창조했다.” 하셨습니다. <휴거>를
이루어 <창조 목적>을 완성하게 하기
위해 이미 1978년부터 역사가 시작되어
올해로 36년째 펴 나가고 있습니다.
<휴거의 말씀>은 특히 2009년부터
구체적으로 자세히 선포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휴거>로 <창조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섭리역사를 기르면서
역사를 펴 온 기간입니다.
성자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때가 되면,
끝나는 것은 끝난다.” 하셨습니다.
(* 중요한 말씀, 화면을 보면서
듣겠습니다.) <영상10>
<휴거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선포된 지
이제 ‘6년’이 되었습니다. ‘6수’는
‘끝나는 수’입니다. “때가 되면, 끝나는
것은 끝난다.” 하신 말씀처럼, ‘성자는
올해 떠난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뇌를 불태우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 뇌가 불타고, 마음이
애타서 불이 나게 행합니다. <끝>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지난날
<겪을 때>는 ‘뼈저리게’ 겪어 놓고서
<표현하고 행할 때는> 그냥 ‘마음
저리게’ 겪었다고 표현하며 그 정도로만
행하느냐. 그러면 당대에도 후대에도
보고 듣는 자들이 그 차원으로밖에 안
행하고, 안 변한다. 뇌가 불타고 심정이
타고 죽고 싶도록 지옥같이 겪었으니,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금 목숨 걸고
행해야 된다. 그리함으로 꼭 휴거돼야
한다.” 하셨습니다.
(생방 설교 때 추가 설명 : 섭리사 무덤
기간 동안 우리가 얼마나 뇌가 타도록,
살이 찢어지도록, 뼈가 녹도록 고통을
겪다가 오늘날 <휴거 역사>를 맞게
됐느냐? 그때를 생각하고, 지금 목숨
걸고 행해야 된다. 우리가 휴거되지
21
않으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늦게
와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가르쳐서
알게 해 줘야 된다.)
조은 목사나, 범석 목사나, 앞에서
앞장서서 행한 사람들을 보세요. 과거에
뇌에 불이 나도록 원통하게 겪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목숨 걸고 행하고
있습니다.
선생도 그러했습니다. 과거 20대에 동네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과 구시대
기성인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설움을
당했습니다. 또한 섭리사 환난기 때 사탄
마귀와 악한 자들로 인해 뇌가 타고,
살이 찢어지고, 뼈가 녹고, 골이 다
빠지는 듯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사연을 뇌에 확 박아 놓고, 그때를
생각하면서 목숨 걸고 뇌에 불이 나도록
밤낮으로 극적으로 조건을 세워 이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영적 부활>을 맞고,
<휴거 역사>를 맞게 하고야 말았습니다.
<전환> * 계속해서 ‘선생의 고향
월명동’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1>
여러분도 모두 ‘고향’이 있지요? 고향이
‘도시’인 사람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의
고향의 모습과 현재 고향의 모습이 많이
다를 것입니다.
예전에 있던 냇물도 없어지고, 산도
없어지고, 예전에 살았던 집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고로 고향이 고향 같지 않고,
고향의 향기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 인파가 몰려들어 고향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서울, 인천,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전주, 그리고 제주도에 있는 도시를
보면, 모두 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끝>
고로 하나님은 선생을 ‘도시’에서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시는
20만 평, 30만 평에 있는 집들을 다
사서 그곳에 빌딩을 짓고 새로 건물을
지어 버렸습니다. 고로 그곳은
<자연성전>으로 개발할 수 없습니다.
전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선생을
‘바닷가’에서도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닷가 근처는
해수욕장이니, 그곳도 <자연성전>으로
개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2>
그래서 하나님은 선생의 조상 때부터
<자연성전>으로 개발하기 제일 좋은
<월명동>에 자리 잡게 하셨습니다.
월명동은 <자연성전>이 되기에 가장 좋은
입지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과
천연으로 된 것들도 이미 갖춰져 있고,
또한 옆에 바위 절경이 펼쳐진 대둔산도
있습니다. 그리고 월명동은 그 위치가
해발고도가 높은 맨 위라서 물도
깨끗하고, 다른 마을의 하수에 영향을
안 받습니다.
‘자기 고향이 도시이면’, 너무 개발을
많이 해 놔서 ‘고향의 향기’가 안
납니다. 또 ‘자기 고향이 도시가 아니면’,
너무 개발을 안 해 놔서 고향에 가도
아직도 볼 것이 없어 쓸쓸한 곳이 많을
것입니다. 또 고향이지만, 온 마을
사람들이 같이 쓰니까 자유롭지
못합니다.
선생의 고향에는 ‘선생 집 한 채’만
있고, 나머지는 다 <자연성전>으로
개발되었습니다. 고로 이 시대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마음대로 자기 것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유롭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개발했기에 깨끗하고,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합니다.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돌도 있고,
물도 있고, 잔디밭도 있고, 운동장도
있고, 산책로도 있고, 전망대도 있고,
호수도 있으니,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진달래와 철쭉이 핀 길을
그대로 살려 더 개발했기에 고향이 더욱
빛나고 뜻이 있습니다.
‘내 고향’을 하나님의 구상대로
만들었듯이, ‘나’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었습니다. <끝> 월명동을 여러분의
<영적 고향>으로, 또 <육의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 놨으니 실컷 쓰고
전도하며, 월명동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하는 자가
되어 시대의 뜻을 펴 주기 바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3>
오늘 성경 본문 말씀에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한
것같이, 월명동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대로 개발하여 가장 작지 않은
땅, 이 시대 <하나님의 자연성전>이
되었습니다. 또한 네 가구만 살던 작은
동네였지만, 그곳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릴 자가
나왔습니다. <끝>
한국에서도 한 동네에 네 가구만 있는
마을은 보기 드뭅니다. 월명동은
그야말로 인적이 드문 외롭고 쓸쓸한
산골이었습니다. 선생이 20여 년 동안
월명동에 살면서, 20대 때 예수님께
말하기를 (그때는 성자 본체가 예수님
통해 나타나실 때) “이곳은 너무도 깊은
산골짜기인데다가 마을에 집도 네 채밖에
없어서 너무 쓸쓸해요.” 했습니다.
이에 성자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곳은 거룩한
성전이 되고,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와 큰 곳이 된다. 현재보다 미래를
보아라. 미래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내가 네게 준 말씀을 듣기
위해 청중들이 밀려오고, 너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밀려올 텐데, 그들이 앉고 설
곳을 만들려면, 네 청춘 다 늙는다.”
하셨습니다.
그때 선생은 “얼마든지 청중들이
밀려와도 저는 좋아요. 제가 열심히
일해서 길을 넓게 닦고, 청중들이 앉고
설 자리를 만들어야지요. 그들을 위해
수고하고 고생해도 괜찮아요!” 했습니다.
결국 성자의 말씀대로 월명동에는 매일
쉬지 않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밀려오고,
계절 따라 세계 수십 개국에서 사람들이
밀려옵니다. 어느 때는 골짜기가
미어지도록 수많은 군중들이 밀려옵니다.
서로 보고 놀라서 ‘나 앉을 자리
있으려나?’ 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4>
한때 운동장 끝 호수 쪽에 8m쯤 깊이
파인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흙을 채워
앉을 곳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흙을
20트럭씩 부어야 운동장 한 평이 생길
때였습니다. ‘큰일 났다. 청중이 밀려와도
다 앉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하는데...’ 하며 걱정했습니다. <끝>
하나님과 성자의 말씀대로 안 만들어
놨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만들어
놓으니 땅도 이상세계가 되었고, 그
공적으로 하나님과 성자가 천국에서
신부들이 거할 곳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22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밀려와서 신앙의
삶을 사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월명동은 이 민족에서 가장 작지 않은
고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다스리는 자는 ‘하나님과 성자의
절대적인 말씀’을 가지고 이 시대 온
인류를 다스려 나갑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의 고향을 하나님의 구상에 따라
<자연성전>으로 깨끗이 만들었듯이,
여러분도 자신을 점점 변화시켜서
‘마음과 행실’을 깨끗이 만들어
<하나님의 궁>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5>
처음에 월명동을 개발할 때는 선생이
가진 땅이 집터 200평밖에 안 됐습니다.
조금씩 자꾸 사서 결국에는 전체를 다
차지하고, <자연성전>으로 개발했습니다.
<자기>도 그러합니다. 아직 조금밖에 안
만들어졌어도 오직 하나님과 성자의
뜻대로 조금씩 자기를 만들어서 결국
전체를 다 차지하여 <300선 휴거의
영>으로 만들기 바랍니다.
또한 월명동 전체의 땅을 다 사서
<자연성전>으로 개발하고 ‘선생의 집 한
채’만 지었듯이, 오직 하나님과 성자의
뜻대로 자기를 만들어서 100% 변화시켜
자기 마음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살게 해야 됩니다.
<섭리사>도 그러합니다. 지금은 ‘시대
복음’으로 민족 세계 전체를 취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끝>
<전환 : 마무리>
오늘은 선생의 생일을 맞아서 ‘선생의
탄생과 고향’에 대해서 당대의
여러분들도 제대로 알고, 후대들도
제대로 알고 살라고 길게 말씀해
줬습니다. 제대로 말해 주었으니, 모두
제대로 증거해 줘야 됩니다.
선생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수백 개 해
주는 것보다, 오늘 말씀을 제대로 듣는
것이 ‘선생이 볼 때는 더 큰일’이고,
‘여러분에게도 유익한 일’이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원하시는 일’입니다.
선생 생일 축하한다고 선생에게만
말하지 말고, 선생을 보내 주어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영광 돌리고 기도해야 됩니다.
알겠지요? 이것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원하시는 일’입니다.
생일잔치 때 먹고 마셔도 ‘알고’ 먹고
마셔야 기분이 좋고 기쁨이 넘칩니다.
‘땅에 평화, 하늘에 영광’이 어디서
오는지 깨달아야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성령님께로부터,
성자께로부터, 보낸 자로부터 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자를 대하는
대로 ‘땅에 평화’가 오고 ‘하늘에 영광’이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예수님 때는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니,
그 당시에 ‘평화’가 사라졌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자’가 ‘평화의 왕’인데,
그를 핍박하고 시대 십자가를 지게 하니
‘평화’가 깨졌습니다. 겨우 그가 간구하여
<고난의 역사>로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본래 뜻했던 ‘큰 평화’는
깨졌습니다.
성자는 보낸 자의 조건으로 성약역사에서
‘휴거의 때’를 맞게 하시고, 섭리사를
따르는 자들을 <휴거>에 집중시키고
<휴거>를 신경 쓰게 하며 역사를 끌고
가고 계십니다.
고로 각자 <휴거>를 이루지 못한다면,
보낸 자의 조건도 헛되고,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참고 견디며 주를 따르는
자신의 노력과 수고도 헛되고, 성자의
행하심도 헛됩니다.
이 시대에 알지 못하여 섭리사를
핍박하고 악평하는 자들로 인해 뇌에
불이 나게 고통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때는 뇌에 불이 나게 모두
자기를 만들고 최고 차원으로 휴거돼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고, 소원을
이루고, 꿈을 이룹니다. 믿습니까?
과거에 뇌에 불이 나게 겪었으니, 겪은
대로 표현하고 말하고 행해야 안 될
것도 된다는 말씀, 꼭 잊지 말기
바랍니다. <말씀>이 ‘성자와 선생의
생일 선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선물로 주어 평생
귀히 쓰게 해 줬으니, 모두 잊지 말고
실천하면서, 말씀으로 증거도 하기
바랍니다.
또 자기가 겪은 것이 있으면 편지로
이야기하여 해결하기 바랍니다. 선생에게
편지 쓰는 순간부터 해결되기도 할
것입니다.
급할 때는 편지하기보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기도하면 해결되게 해
주니, 모두 기도하기 바랍니다.
원래 지난 주 말씀과 이번 주 말씀을
한꺼번에 전해 주려고 했습니다. 선생은
하나의 말씀으로 쭉 써 내려갔습니다.
정말 몸부림치면서 받은 말씀이고,
뼈마디와 온몸이 저리고 쥐가 나서 몸이
굳으면서까지 만들어서 보내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 교정한 조은 목사와
영상을 제작한 사람들도 뼈마디가 저리고
온몸에 쥐가 나도록 만들어서 보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귀히 듣고 행하여 ‘화’를 ‘복’으로
바꾸어 살기를 축원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 사랑하는 선생님 ♡♡♡
생신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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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사랑의 표적
===================== 본문 ===
[ 마태복음 10장 34-39절 ]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
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
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
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
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
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
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
는 자는 얻으리라
할렐루야!
한 주일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먼저 여러분들에게 평강을 빌며, 온
지구상에 있는 섭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먼저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줘서 감사하게 잘
있습니다.
오늘 단상의 본문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부터 39절까지의
본문말씀을 먼저 봉독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말씀들은 말씀하면서
계속 말하겠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말씀의 주제는
설교하면서 나올 것입니다.
먼저 찬양을 해야 되겠습니다.
찬양은 “내 사랑아”입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이렇게 전에 지어 놓은 곡이 있습니다.
먼저 그 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두 번째는 찬송가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하겠습니다. 이 두
곡을 여러분에게 지휘해주겠습니다.
모두 일어나 기립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체찬양- ♪내 사랑아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오직 사랑 주님 사랑
주님 사랑 내 사랑아 오 사랑아
하늘 사랑 형제사랑 맘과 뜻과 목숨다해
사랑하고 사랑하세 사랑하고 사랑하세
사랑하세
♪ 찬송가 404장 (새 304장)
1.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제 기대하는 주일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신 분께 우리 모두 먼저 온 사람과
더불어 반갑게 환영을 합니다.
박수 한번 쳐줄까요. 감사합니다.
하나님도 환영하고, 우리 모두 환영하고,
예수님도 환영하고 좋아합니다.
우리가 어느 집에 손님으로 가도
환영하는데, 평생 하나님에게 인연이
되어서 오는 발걸음인데 얼마나
반가워하겠습니까. 마치 결혼할 때
신부가 신랑 앞에 올 때의 그 반가움,
이제 영원히 사는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그와 같이 하나님은 반가워하시고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간으로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잘 지도 해주고 돕고,
신앙으로 안내해 주고 잘 해 주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교회에 가면 무슨 말씀인지
말씀이 잘 안 들어온다고 합니다.
천천히 할 테니까 들어보세요.
오늘 주제는 “사랑의 표적” 입니다.
아까 봉독한 본문 말씀으로 먼저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이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검을 주러 왔다. 검을 줘서 너희들
싸움을 하게 하려고 왔다. 칼을 주어서
너희에게 싸움을 하게 하려고 왔다.”
했습니다. 이 검(劍)은 우리가 다
배웠듯이 비유를 한 것입니다. “말씀을
주어서 옳은 진리를 가지고 옳지 못한
진리를 외치는 사람과 가서 싸움을 하라.
말 가지고 싸움하라. 실상은 그렇게
하려고 왔다.” 하셨습니다.
원래 메시아가 땅에 오는 가장 큰 것은,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전해 주러
옵니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르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그렇습니다. ‘말씀’을 안 가지고 오면 안
됩니다. 가장 큰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의 말씀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가지고 오니 그
말씀을 들어보자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또 한 마디 해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귀한가 한
마디로 말하면, 내 말 한마디에 온
세상의 인생들의 운명이 좌우된다.”
했습니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고,
그런 존재자라는 것입니다.
24
예수님에게도 “예수님은 메시아니까
말씀이 얼마나 귀한가 그것을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말을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안 믿을까봐, 자신의 말을 얼마나 신빙성
있게 믿어줄까 해서 말을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믿게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계속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말하는 것이
그냥 갖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말하면 세계 수십 개 나라
사람들이 들으니까 그냥 갖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내가 믿도록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비유할
것이 있나 세상에서 찾아봤다. 그런데
비유를 해서 ‘이와 같이 귀하다. 이와
같이 가치 있다.’ 그럴 만한 것이 눈에
띄지를 않는다.” 했습니다.
“그만큼 귀하다.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말씀의 귀한 것을 비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 이제 믿겠느냐.”
“나도 까딱까딱해집니다. 사람이
있잖아요.”
“사람이 문제냐.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사람도 살리는데... 말씀이 더 귀한
것이지. 그래서 없어. 사람 같으면
이야기를 하지.”
“아~ 그렇지. 말씀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 죽게 하니까.”
임금의 말이 얼마나 귀한지 알겠습니까.
임금의 말이 귀하지 않습니까.
저놈 죽는다 해도 임금이 “아, 살려
줘라” 하면 살 수 있습니다.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사람도 “야, 일단 살려 줘
봐라. 살려 주고 딱 3년을 줘 보자.
얼마나 좋은 일을 하나 보자. 너, 3년
동안 좋은 일을 하고 오너라. 내가 너를
살려 주마.” 하면 사는 것입니다.
“3년 후에 다시 보자. 얼마나 좋은 일을
정말로 했나 보자.” 했습니다. 그 사형을
면한 그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정말
내가 꼭 죽을 것인데...’
그는 사람을 죽여서 선고를 받게 된
살인범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아 이 일을 해야 되겠다.’
하고 그 일을 3년 동안 했습니다. 3년
후에 임금에게 갔습니다. 임금이
불렀습니다.
“무슨 일을 했냐?”
“네. 저는요, 사람을 다섯 명
죽였잖아요. 그런데 죽을 사람을 100쯤
살렸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죽이러 다니는 사람을 계속
밤잠 못 자고 쫓아다녀서, 그놈을
몽둥이로 후드려 때려서 못 죽이게
했습니다. 그냥 몽둥이 가지고 등짝을
내리 때려서 ‘이놈아!’ 하며 못 죽이게
했더니, 도망쳐서 사람을 못 죽이게 해서
죽게 되어있던 사람을 살려 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100명쯤을 살렸습니다.
그렇게도 살리고, 꼭 죽을 수밖에 없는
데 쫓아다녀서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구출해 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100명쯤 되었습니다. 너무 너무
재미있습니다. 임금님도 한번 해 보면
너무 좋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임금의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아, 나도 못한 일을 네가 했구나. 참 큰
일했다. 야, 이것이 화젯거리다. 내가
너를 살려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살려
주었다. 그리고 내 말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백성들에게 선언했는데, 그것도
백성들에게 보여 주게 되었다. 네가 만일
특별한 것을 못 하고 왔으면 내 꼴이
후에 어떻게 되었겠느냐. 앞으로는
무엇을 하려느냐?”
“저는 계속 그것을 하겠습니다.”
“너, 위험하지 않느냐?”
“위험합니다. 너무 위험해요. 몇 번 죽을
뻔했는데 살아났어요. 얻어맞고서 죽을
뻔했는데 그 이튿날 살아났어요. 막 칼에
찔리고 그랬었어요.”
“다섯 명 죽였는데 백 명을 살렸다...
그만하면 됐다. 내가 너를 보호하리니
너를 누가 죽이지 못하도록 엄명한다.
너를 죽이는 자는 내가 족속을 멸할
것이다.”
이것을 백성에게 모두 가르쳐 주었더니
너무 엄청난 일을 했다고 백성들이
좋아했습니다.
“아, 나도 그런 데에 신경을 쓰마. 일
년에 사람들이 수백 명씩 죽어 가는데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죽여서 쓰겠느냐.”
백성이 임금의 말을 지킴으로 임금의
말이 권위에 권위가 서게 되었습니다.
이마만큼 임금의 말도 권위가 있고
그렇게 엄청나게 가치가 있고 죽고 사는
것이 좌우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하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도 꼭 죽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살려 주었습니다. 오늘도 또
살리려고 “오라” 해서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도록 했습니다. 먼저 여러분을 살려
주고 “몇 명 구했냐?” 물을 것입니다.
꼭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것도 없는데 선고를 받았습니다.
“왜요?” 그렇게 잘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이 사람도 선고를 받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믿었는데 받았습니다. 왜 선고를
받았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복종해서
신앙적으로 선고를 받았습니다.
육신도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는 길을 가니까
보호해 줄 것을 안 보호해 줬습니다.
보호해 줄 것인데 안 보호해 주니까
그냥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선고를 받았습니다. 의사가 30분 내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는 길을 가면
막 때려서 선고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호해 줄 것을 안 보호해
줍니다. 안 보호해 주는 것도 하나님의
권리가 아니겠습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막 때렸으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럴 수가
있나?’ 하겠지만, 가지 말라는 길을
가니까 다치게 그냥 놔두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뇌를 다쳐서 30분 안에 죽는다고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때에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참 많이 살려줬다.
월남에서 죽을 고비에서 수십 번씩 살려
줬다. 30번 이상 살려 주고, 또 평소
산에 가서 기도할 때도 살려 줬다. 계속
살려달라고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 살려
줬으면 뭘 해야지.” 그래서 예수님과
쇼부를 봤습니다.
“내가 살려 주면 뭐 할래?”
“나 하나 살려 주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살려 주겠습니다.”
“어떻게? 네가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살려?” 그때 예수님은 얼굴을 안
보여주고 목 밑으로만 보여줬습니다.
병원에서 침대에서 보는데 목 밑으로만
쳐다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면 살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처럼 말 안 들으면 하나님이 안
도와줘서 죽으니까 그런 사람에게 말씀을
줘서 말 잘 듣게 하면 꼭 죽을 것인데
사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그 동안
예수님께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멋있는
애들이 다 세상으로 가지 않습니까.
멋있는 여자 애들이 술집으로 가고
세상으로 가서 다 타락하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속상합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25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나에게 지혜를
주면 말을 잘 해서 그들로 하나님 믿게
만들어서 그런 데에 안 가고 하나님께
축복 받아서 더 많이 돈도 벌고 더 잘
살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문제없습니다. 살려만 주세요.
내가 그렇게 못하면 죽이세요.
단, 시간만 주세요. 10년, 5년 그렇게
정하지 말고 평생 동안 시간을 주세요.
평생 동안 하겠습니다. 그것만 계속 할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했지
않았습니까. 아마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나 하나 살려 줘서 이런 수만의 무리가
한국을 중심해서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참 하고
있는데 끝까지 하면 엄청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잘 살려 주신 것입니다.
나를 죽였으면 속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데 죽었으면 잊어지지도 않고
너무 속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너무
속상하고 너무 마음 아픈 것인데 잘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병원에서 나와
이야기하다 없어졌었는데 하나님께
“쟤를 살려 주면 나도 같이 일하겠다”고
하고 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대로
못하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와야 한다
하고서 갔다 오셨던 것입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가만히
있더니, 그 때는 얼굴을 조금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라.”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선고를
돌이켜 살렸어요?”
오늘 본문 말씀의 앞 구절에 그 말씀이
있는데 “네가 나를 시인하면 내 아버지
앞에 가서 너를 내가 시인하고 오리라.”
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해 주면, 내 말을 믿어주고 내 말을
시인하면 나도 아버지 앞에서 너를
시인해 주고 온다.” 했습니다.
예수님께 어떻게 쇼부를 봤냐고
물었더니,
“네가 말 안 들으면 나 죽는대.”
“네? 아니 내가 예수님을 그렇게까지...
정말 부담되네요. 내가 책임 못 하면
예수님도 그 책임을 진다구요? 너무
부담되는데, 이렇게 부담되게 인생을
살아야 되나... 내가 과거에 살아봤는데
별 볼일 없이 살았는데... 정말이에요?”
“그럼. 내가 일단 대답을 하고 왔어.
네가 아까 하도 전도한다고 하길래.”
사실 예수님이 세상에 있을 때 전도하다
말았는데, 내가 다 전도하겠습니다,
그것도 우리 민족만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돌아다니면서 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쁜 사람들 다 하나님을
믿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만들고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수님이 이 말을 전달했을 때
생명을 살려 주겠다고 하니까 하나님도
선고를 내렸다가 다시 푼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그렇게 큰 것입니다.
결국 회심하고 예수님께 들러붙어서,
예수님도 내가 못 하면 큰일나니까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냐구요?
69년도인가 70년도... 예수님이 70년도
가을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잊어버리면
말씀을 해 주십니다. “70년도 가을이다.
가을 체육대회 갔다가 그랬지 않았느냐.”
이래서 계속 함께해서 이렇게 역사를
펴왔습니다.
예수님이 섣불리 사랑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아예 정말로 사랑해야 된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해도 나는 몇
가지 때문에 용기를 잃곤 했습니다.
‘나는 못 배웠다. 하다가 안 되면
버릴지도 모른다. 끝까지 안 해줄 지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늘 자신이
없었는데 “그것은 걱정하지 마라. 영원히
간다. 네가 나를 버릴래? 나는 너를 안
버린다. 이제는. 내 운명이 같이 들어
있으니까. 나는 니가 나를 버릴까 그것
때문에 걱정된다.”
“아, 그런 걱정은 하지를 말아요.”
“환난 받고 어려움이 있으면 또 달라.”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맺고서 신앙을 출발해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렇게 하고서
신앙을 출발하여 온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중간에 꿰장 나면 큰일
납니다. 신앙이 꿰장 나면 안 됩니다.
짐을 짊어지고 가기 전에는 몸뚱이가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짐을
짊어지고, 옹박지를 짊어지고,
고려청자기를 짊어지고 가다가 넘어지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하며 이 말씀을 따르는 모든 세계적인
사람들은 그와 같은 신앙으로 지금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이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면서 생명들을 구하며 가는 그런
신앙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그런 터전
위에서 그 어려운 환난과 어려움을
지켜주고 함께해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듣는 어려움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직접 나에게 닥치는 일들은
이야기를 안 합니다. 그런 것을 붙잡아
주고 함께 하고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월남에 갔을 때에 부모들이
“월남이 위험하대. 굉장하대.”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듣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내가 직접 당한 것을 와서
이이야기 하니까, 적이 내 가슴에 총을
겨눠서 잡아당겨 버렸던 것을 내가 와서
이야기하니까 “그런 것이 있었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부모님들이 그 실감을 잘 못 느꼈다는
것입니다. 나나 실감을 느끼고 당해본
사람이나 실감을 느끼지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 섭리 세계에 그런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켜 주지 않으면 지킬 길이 없습니다.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섭리를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절초풍 하는 말씀을 계속
주는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갑니다. 사람을 의지해서는 살수가
없으니까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생명을 어려운 죽음에서
살려 주었다면 그 사람만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수영하다가 죽을 뻔했는데
누가 살려 주었다면 수영장에 가서 그
사람만 쳐다보고 다른 사람은 안
쳐다봅니다. 자기를 구한 사람만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 책에 썼습니다. “사람이
나와 같이 사실상은 죽을 고비에 안
걸린 사람이 없었다. 걸렸는데 다만 모를
뿐이고, 다만 그것을 고마워하며 일을 안
해서 큰일을 못 했다.”고 썼습니다.
나는 그 생명 구해 준 것이 고마워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큰일을 한
것입니다. 너무 하나님께 고마워서 그
일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것입니다.
명예, 권세, 부귀, 영화가 같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26
막 무엇을 그냥 축복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생명을 구해 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을 구해 주는 그
일을 하다 보니까 그 일이 바로 축복이
되었습니다. 내가 생명 구해 주는 일만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간도 생명
구하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의로운 싸움을
해야 된다고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검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말씀!
20년 가까이 산과 생활 속에서
기도하면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끝날
말씀이 아니고 누구든지 오면 그 말씀을
배워야 됩니다. 온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들음으로 나와 같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 시대급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바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선포하는 말씀은 마치
모세가 율법을 받듯이 시대의 말씀으로
받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신약시대에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선포한 것과
같이 그런 위대한 말씀을 여러분에게
선포해 왔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하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생하게 바로 전해
주는 것입니다. 원래는 이것을
간직했다가 다음에 해야 되는데, 어제
받았으면 오늘 전해 주고 조금 전에
받았으면 지금 전해 주고 하면서 그대로
바로 전해줍니다.
물론 저장도 하고 책도 쓰지만 지금
바로 전할 때 화끈하고, 확실하고,
생동적이라는 것입니다. ‘받은 말씀’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지만
들은 말씀은 힘이 덜합니다. 만든 말씀은
아주 힘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검을
받았는데, 바로 진리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을 때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고욤나무에 참 감나무를 접붙여서 하나가
되면 진액이 따라 올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과 일체
된 말씀이 그 시대에 선포된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안 되면 선포가 안
됩니다. 말씀이 가도 떨어져 있으니까
통하지를 않습니다. 지구상에 누구
하나라도 하나님과 일체 된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어 전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명의
말씀을 모두 찾고 다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10년 간다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 20년 간다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 30년 간다고 지금 말한
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약 50년
동안 역사를 계속 해 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해왔습니다. 다만 전한 것은
34살부터 전했습니다.
왜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지 않고 검을 주러 왔다”고 했을까?
무섭지 않습니까. 문자대로 해석하면
무서운 것입니다. 문자대로 검을 주러
왔다 본다면 얼마나 무섭습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너무너무
무섭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자에게 활을 당기신다.
칼을 매일 갈으신다. 칼 갈고 있다. 칼
가는 소리 안 들리느냐.” 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 소리가 안 들리느냐. 내가 너에게
말하려고 말을 준비하고 있다. 무슨
말씀을 할지 아느냐. 책망 말인지, 칭찬
말인지, 사랑의 말인지 모르지 않느냐.
악한 일을 했으면 반드시 책망하는
말씀이 나간다. 책망 받으면 거기에
형벌도 같이 가는 것이다. 칭찬 받으면
복이 간다.” 이런 말씀입니다.
성경을 문자대로 풀면 “예수님이
공중에서 오신다.” 했는데 그런 신앙을
갖고 있으면 무서운 것입니다. 왜
무서운가 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을
버려 버립니다. 옛날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하나님이
보내 주는데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현재 기독교인들도 그와
똑같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언제
하늘에서 내려왔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해서 예수님이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신 예수다. 사람이다. 사람으로
왔다.” 하고 계속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신으로 온다. 하늘에서 온다.”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사람이신 예수다.
우리와 같은 형제 가운데 있는 예수다.”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사도 요한은 메시아 예수가 육신으로
오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단이라고
했습니다(요2서 1:7). 메시아는 육신
가지고 있다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는 신이다.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다. 사람 같지 않다.” 했습니다.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
그런 말은 집에서 부모들이 많이 하지
않습니까. “원수다, 원수. 네가 원수다.
아이구 지긋지긋해라. 네가 원수다.”
“어머니가 원수예요.”
“내가 어째서 원수냐, 네가 원수지. 맨날
속 썩이니까. 한두 번이어야지.”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 식의
말씀입니다. “집안에서 서로 원수가
생긴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서로
싸우고.” 그런 어간입니다. 집안싸움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집안싸움들을 너무
많이 합니다. 가문 싸움, 집안싸움, 형제
싸움, 부부싸움을 하는데 원수 중에 원수
같아 보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말씀한
것입니다. 집안에서 화평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화평하겠습니까.
옳은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서로 그렇게
하지 말고 서로 평화롭게 하라는 그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지고 온 진리의 말씀을 틀렸다 하는데
그러면 무엇이 틀렸는가 따지면서 싸움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주장하는 것이 맞냐? 아니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면 구름 타고
온다고 하는데 그것이 맞냐? 지금
땅에서 와서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불신하느냐?” 하고 가서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말도 아닌
이야기하지도 말아라. 하나님이 온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왔다면 봤어?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을 봤어?
하나님은 신이라 지금 돌아다녀도 안
보인다.”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들이 가서 말씀을 가지고
싸우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보이느냐? 하나님이
무슨 잡신이냐. 꿈에 잡신이 보이듯이
보이느냐. 하나님은 볼 수 없다고
했는데.”
가장 큰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누가 가장
존재하고 것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누가
과연 실감 있게 믿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서 실감 있게 일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구는 하나님을 봤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계심을 확실히 믿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굴만 안
보이지 할 것은 다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딱 한 가지, 얼굴만 안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참 기술도
좋으십니다.
얼굴만 안 보이시고
해 줄 것 다 해 주십니다.
27
여러분이 선생님의 몸뚱이만 못 만져
봅니다. 40개국 나라가 다 마찬가지로
내 몸만 못 만져보지 내가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다 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생의 말씀을 들려주시옵소서.” 하는데
그것을 들려주면 되지 않았습니까.
간혹 “어떻게 인생을 삽니까?” 할 때
대답해 줍니다. 그 대답이 말씀으로 다
가지 않습니까. 말씀을 할 때 오는
말씀으로, 깨닫는 말씀으로 합니다.
“준비됐습니까. 하늘 준비됐어요? 저는
준비됐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냥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순서 있게,
조리 있게, 확실하게, 분명하게 말씀을
전해 줍니다.
내가 이렇게 쳐다보면 여러분도 잘
쳐다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바라봄의 법칙이지 않습니까.
학교 다닐 때, 고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선생이 자기를 안 쳐다보면 너무 너무
충격 받지 않습니까. 선생이 자기를 안
쳐다보면 ‘어휴 밉쌀 맞어.’ 그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나 자리 바꿔
주세요.” “왜? 너 거기 창가가 따뜻하고
좋은데 왜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냐?”
“자리 바꿔 달란 말이에요. 너무 공부가
안 돼요.” “그래? 어디?”
“선생님이 저기 서 있어 보세요. 저기
앉을 거예요.”
“왜?”
“선생님, 정말 답답해 죽겠네. 선생 보러
왔지 공부하러 왔어요?”
“너 미쳤냐?”
“어이구, 선생님을 좋아하면서 공부해야
공부가 잘되지요. 선생님은 그것을
몰라요? 선생님을 좋아하면서 공부를
해야 공부가 들어오는 거예요. 사람들을
골고루 쳐다보면서 선생님을 좋아하게 좀
만들어 줘요. 춥지만 저는 저 응달로
갈래요. 선생님이 거기만 잘
쳐다보잖아요.”
“아, 그래?”
“선생님, 집에 가서 거울을 보고 지금
하는 모습 그대로 한번 해보세요.
웃긴다니까요. 거기만 쳐다보고 있어서
고개가 돌아간 줄 알았어요.”
나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과 화장실
가다가 딱 부딪혔는데 그냥 가면 “치,
나에게 무슨 미운 털 박혔나? 다른
애들한테는 웃어 주더니 나한테는 웃어
주지도 않고. 피... 여자들은 웃어 주고
나는 안 웃어주고? 남잔데 그럴 수가
있어?” 그랬습니다. 어린것이 반항기가
생겨서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선생이 웃는 것을 보고
은혜 받았습니다. 다른 여자 보고 웃는데
나를 보고 웃는 줄 알고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공부가 너무
잘 됐습니다.
원래 내가 밝은 미소의 주인입니다.
여러분이 밝은 미소 운동을 권장하며
웃는 운동을 해도 잘 안되지요? 잘 안
웃어졌을 것입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내가 하면 금방 웃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웃는 모습을 어떻게 봅니까.
하나님이 막 인상 쓰며 “말씀해!”
하는데 내가 웃고 있으면 “너 미쳤어?
저리 가!”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그 모습을 가장 흉내를 잘
내야 최고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웃는 얼굴을 못 보지
않습니까. 지금 웃고 있는가, 심각하게
있는가 모르지 않습니까. 영화의
주인공을 통해서 그 사건이 ‘아, 그때 저
사람이 웃다가 죽었구나. 아하..’ 하고
안다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면, 처음에는
웃는 것으로 시작해서 인상을 쓰며
슬픔으로 끝이 납니다. 대개 모든 작품이
처음에 슬픔이었다가 점점 가다가
웃음으로 끝나는 작인데, 셰익스피어의
작(作)은 그렇게 슬픔으로 비극으로
끝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점진적으로 웃으면서
가는 역사입니다. 더 좋게 더 좋게 더
좋게!!! 여러분이 여기에 처음 왔을
때는 ‘여기가 어떤 곳인가?’ 하다가
나중에는 차차 가다보면 점진적으로
좋아지는 역사로 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확 좋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확인해야 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슬픔의 세계에서 점점 가다가 웃음과
기쁨과 희열과 감격과 감사로 가는
역사! 하늘 역사를 보면 계속 그렇게
역사가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집에서 서로 싸우는데,
원수가 집에 있다. 원수가 되어 서로
싸운다. 집안싸움, 가정싸움, 형제싸움,
부부싸움을 한다. 그런데 종교적으로 볼
때 너희들이 시대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가니까 그들이 그것을 싫어하고,
바깥에서 하듯이 집에서도 싫어하지
않느냐. 나는 바깥에서 유대 종교인들이
그렇게 하지만, 너희들은 가정에서
너희가 시대를 따르는 것을 싫어하는데
가서 이야기를 해라. 내가 너희에게 검을
주었으니, 진리의 말씀을 주었으니 그것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되잖아. 진리는
화평이 아니냐. 사람이 들어야 알지.
이야기를 해 봐라.” 이런 이야기가 죽
연속됩니다.
태양이 멈췄다고 성경에 써 있는데
그것이 맞는가 이야기해보라는 것입니다.
맞았다고 하면,
“태양은 안 가는데, 엄마. 태양은 안
가는데. 쓰기를 잘못 쓴 거야.”
“그러면 성경이 틀렸단 말이야?”
“그때는 태양이 가는 걸로 봤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니까.”
그렇게 가르치고 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검을 주어서 평화롭게 싸우라는
그런 말들입니다.
“부모와 형제의 그렇게 하는데 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 부모가 똑같이
나처럼 주장하면 사랑하고 괜찮다. 그런
입장에서 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내 말을 사랑해야 된다.
구원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내 말을 절대
믿어야 구원에 들어가지, 부모님이
구세주가 아니지 않느냐. 네 형제가
구세주가 아니지 않느냐.” 하면서
말씀했습니다. 옳은 말이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을 세밀하게 잘 해석하지
못하고 그냥 “부모 형제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합당치 않다.” 그러면 안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언어가
나온지를 알아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전하는 사람이고, 부모 형제는 이해를 못
하고 반대하고 있지 않느냐. 그 반대하는
말을 듣고 가지 마라. 그러면 그 사람은
내게 합당치 않다.” 한 것입니다.
그 동안 섭리역사를 해오면서, 과거에
배웠던 과거의 기성적인 관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끝내 돌아갔습니다. 내가
“태양이 멈추었다는 성경말씀은 태양이
멈춘 것이 아니고 바로 시간적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다.” 했을 때 못
믿겠다고 한 사람들은 내가 “너는 내게
합당치 않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갔습니다.
“딸이나 아내나 부모나 처자식을 더
사랑하면 합당치 않다.”
하나님께서 부모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왜 합당치 않다고 했겠습니까.
부모를 사랑치 않으면 까마귀가 눈을
빼어가라 했습니다(잠30:17).
28
그래놓고 이것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잘못된 진리, 잘못된 주관을 갖고 있는
그 관에 따라가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그것입니다. 내가 이 진리를 갖고 왔을
때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
반대하며 “이거 큰일 난다. 이런 진리
전하지 마라.”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환영하고, 빨리 와서
전해달라고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으면
합당치 않다.” 합당치 않다는 말을 계속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사람마다 그 십자가로 죽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삶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책임지고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지
그것을 집어던지고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무엇을 말합니까.
십자가를 크게 몇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첫째 십자가는 희생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 대신해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희생했습니다. 십자가에는
‘희생’이 들어 있고, 또 십자가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했으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을 십자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고통’이 십자가입니다.
이런 고통을 안 겪으면서 따르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고통과 어려움이 있는데 이것을
안 하고서 어떻게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서 안 하겠다, 십자가를 못
지겠다 하면 신앙생활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나 안 하나
인생 삶의 십자가가 다 있습니다. 그것을
십자가로 표현한 것인데, 그렇게 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 다니나 안
다니나 삶의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걱정, 근심, 염려, 재리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짊어지고서 가고, 또 짊어지고 오면
없애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없어지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것이
없어지게 해 주리라. 염려하지 말아라.
염려를 내게 맡겨라.”
예수님이 염려를 내게 맡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염려를 맡기라는
것은 염려를 예수님께서 해결해 준다는
것도 있지만, 필요 없이 염려를 가지고
있어서 맡기라 한 것입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왜?”
“산이 무서워요.”
“왜?”
“뱀이 나타날까봐 무서워요.”
“염려를 내게 맡겨.”
왜 맡기라고 했는지 압니까. 겨울이라
뱀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맡기라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필요 없이 하는
걱정 염려가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있고
어느 때는 “내가 앞에 가면서 뱀 다
잡아줄게. 걱정하지 마.” 이래서
맡기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일단 자기 십자가를 버리지 말고
짊어지고 가라. 와서 하늘 앞에
해결하라.” 그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오라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자기의 목숨을 얻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다가
자기의 생각으로 가면 신앙의 목숨을
잃어버리지 않습니까. 구세주와 일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핍박한다고
무서워서 도망가면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신앙의 목숨을 이야기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안 하면 죽었다 하고, 하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적인
단어도 되고, 또 실제의 목숨을 이야기한
것도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참새가 두
마리가 있는데 그 목숨이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감동시켜서
참새를 못 죽이게 하면 못 죽이는
것이다.” 했습니다(마10:29). ‘참새가
죽이듯이 너도 죽는다.’ 하는 뜨끔한
영감이 오면 참새를 죽일 사람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영감을
보내서 일을 하십니다.
“자기의 목숨을 잃는 자는 또 얻는다.”
씨를 뿌렸을 때 씨가 죽어 목숨이
없어졌습니다. 그랬지만 죽어서 수백
배를 얻지 않습니까.
선생님을 보세요. 목숨을 잃었지
않습니까. 산에 있을 때 살아 있는 사람
같이 살지 않고 나의 생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에 들어박혀서 인생을
잃어버렸습니다. 청춘도 잃어버리고,
삶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목숨을
얻었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얻어서 나와
많은 생명들을 위해서 주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씀이 본문에 죽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짊어지고 꼭 가야
되겠습니다. 어렵다고 안 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인생의 삶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어려운 것, 힘든 것,
희생적인 것, 고통스러운 것, 남을
위해서 짊어지는 것, 창피한 것들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인데 훌러덩 벗고 팬티
하나 걸치고 십자가에 있었을 때
너무너무 부끄럽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부끄러운 일을 다 당해도 직접
짊어지고 가라. 그렇게 하며 따르라.
그렇게 하며 따라가야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저마다 다 그런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 어려움을 못 참으면 안
된다. 내가 또 함께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느냐.”
누구든지 그래야 됩니다. 조그마한
어린아이에게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린아이 것이니 얼마나 작겠습니까.
조그마합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자기
고통을 자기가 겪으며 크면서 올라오지
않습니까.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너무 고생스럽고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라. 일단 너희들 보따리를
짊어지고 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없애
주리라. 믿고 가라. 사망권에 있는
무거운 짐들이니까 생명권으로 가자.”
이렇게 없어지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고, 가정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그리고 이해하고
싸움하지 말고 위해 주고 섬겨 주고,
이런 것들이 자기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못하면 다 깨지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이만큼 하고, 다음 다른
말씀으로 건너가겠습니다. 건너
타기입니다. 본문 말씀을 했으니 이제
시대의 말씀을 해 나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것도 다 시대의 말씀입니다.
신앙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성장하면서
범죄 해서 타락되지 않았습니까.
하와가 이성의 꼬임을 받고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몸을 내줬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자기 몸 자체가 선실과입니다.
남자는 몸 자체가 생명나무입니다.
남자는 나무, 여자는 과일, 확대시키면
그렇습니다. 축소시키면 여자는 금단의
열매를 선실과라고 하고, 남자는 금단의
나무를 생명나무라고 합니다. 나무와
과일은 일체 세계가 아닙니까. 나무만
있어도 쓸쓸 적적, 과일만 있어도 그냥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무에 과일이 달려
29
있으면 “야, 멋있다. 진짜 멋있다. 사진
찍자.” 합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 위해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그 목적 하나만
가지고 창조하겠습니까. 그러면 확대시킨
세계에서는 봤으니, 축소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을 때 영광
받기 위해서 낳았습니까. 자녀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큰일 납니다.
“나는 너에게 영광 받으러 왔는데 너는
나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 뭐냐? 내가
영화를 보려고 낳았다. 네가 나에게
영화를 좀 보게 해 줘라.”
“엄마, 내일 영화(映畵) 티켓 끊을게.”
“그것 말고. 영화(榮華). 너로 인해서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그래서
너를 낳은 거야.”
“미치네. 미쳐. 어떻게 금방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줘. 세상 성공하기 어려운데.”
그러면 자녀들이 부담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내가 너를 크게 기대한다.
나를 기쁘게 해 달라. 부모를 기쁘게
해야 된다. 아무개 부모 아들은 너무
부모를 기쁘게 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을 그렇게 해석해 보십시오.
“나는 영광 받기 위해서 너를 창조했다.
네가 영광 돌릴 것이 무엇이냐?”
그러면,
“부담돼서 못 살겠네요. 하나님, 나 그냥
죽어야겠네요. 너무 부담되네요.”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기 위해서 창조도
하였지만, 그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왜
창조했는가 하면, 아빠랑 엄마가 너무
사랑하다가 자식을 낳았습니다.
사랑하니까 사랑이 나온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계속 힘을
쓰니까 계속 힘이 나왔습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역사했습니다.
사랑하다가 낳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서 낳았으니까 또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려고 낳은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을 사랑하다가
낳았고,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다가
낳았으니까 사랑의 세계로 온 것입니다.
그러니 남자도 여자도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낳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낳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펴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영광 받으려고
낳았다고 하면 적어도 10살 가지고는
영광 못 돌릴 것입니다. 20살이 돼도
힘듭니다. 30살이 되어도 출세해서
부모에게 영화를 끼치기 힘든 것입니다.
내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서 인간을 창조했다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야, 부담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했다 하는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노래라도 불러야 하는데
내가 노래도 부르지 못하는 주제이지만
한번 해볼까?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하나님, 영광 받으셨어요?”
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과
같으니 다시 깨닫고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는 목적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너무 많으셨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 구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려고,
하늘나라를 보이는 이 땅에 이루려고
창조한 것입니다.
자기 부모님이 큰 엄청난 집을 짓고
멋있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만으로는
또 하나의 집을 짓고 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별장이야 필요하겠지만 또
하나의 집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살림살이를 하면서 잘 되는 것을
보려니까 사랑하다가 아들을 낳아
부지런히 길렀습니다. 그를 위해 집을
크게 멋있게 지어 주고 잘 살게 해
주면서 “너도 아버지 어머니처럼 이렇게
재미있게 살아라.”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 지구상에 또 하나님의
보이는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이
창조된 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우리를 낳았다. 사랑 때문에 우리를
시작했다.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우리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려고 창조했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계속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미워하지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이상세계를 만들려고 한다.
이런 것은 하지 마라. 이성으로 타락하지
마라.” 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는
“선악과를 따먹지 마라. 동산의 과일을
따먹지 마라.” 했습니다.
지체의 동산이 있지 않습니까. 여자의
지체의 동산에 과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따먹지 말라 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것을 따먹습니까. 이성의 관계를
하면 따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말아라. 꼭!”
“네!”
“그게 제일 귀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꼬여도 따먹지 말고 아무리 뭐라고
해도 따먹지 마.”
“알겠어요. 하나님은 그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하세요?”
“아니야. 들었어? 따먹지 마!”
“그게 그렇게 귀한가.”
“그게 귀하다니까. 나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살아.”
하나님이 하와에게도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냥은 못 따먹습니다. 정식으로는 못
따먹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냥은 안 됩니다.
사랑하면 사랑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천사장이 사랑하니까 하와가
사랑했습니다. 하와가 사랑을 하지
말았어야 됩니다. 천사장이 사랑했어도
사랑만 받고 놔뒀어야 됩니다.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밥 사주면
밥만 먹고 밥 사주지 말아야 됩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이 했어야
하는데 사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랑했습니다.
그냥은 안 되니까 꼬였다고 했습니다.
꼬임에 넘어갔다고 했습니다.
어떤 여자가, 조그만 유치원생 하나가
거리에 돌아다니는데 보니까 자기 친구의
딸이었습니다. “이리와 내가 뭐 사 줄게.
너 아무개야!” 하니까 가만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유치원생이면 5살이지
않습니까. “싫어요.” “반가워서 뭘 사
주려고 하는 거야.” 하는데도 말을 안
들었습니다.
“뭐 하나 사 줄게.” 해도 “안 먹어요.
싫어요.” 했습니다.
‘이상하다.’
반가워서 무엇을 하나 사 주려고 하는데
받지도 않고 싫다고 안 받았습니다. 저기
상점에 가자고 하니까 싫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그 친구에게 가서 “친구야. 야,
내가 네 딸한테 어떻게 한 줄 아냐.
30분을 쫓아다녔는데 아무 것도 안 받고
결국 그냥 말더라. 상점 가자고 해도 안
가고 꼼짝도 안 하던데. 어떻게 된
것이냐? 왜 그러냐?” 했더니, 어린이
유괴 사건 때문에 아빠가 교육시켰다는
것입니다.
30
“너는 누가 무엇을 사 준다고 해도 먹지
마라. 그것 먹으면 죽는다. 절대 먹지
마라. 그 사람 따라가면 죽는다. 아기를
칼로 찔러 죽인 사람 있잖아. 그렇게
돼버려. 그런데 아주머니나 어른들이 잘
그런다. 조그만 어린아이도 따라가지 마.
혼자 놀다가 들어와.” 그 교육을 아빠가
밥만 먹으면 계속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안 따라 간 것입니다. 안
따라가면 괜찮다고 하니까 자기 엄마
친구인데도 안 따라간 것입니다.
그 엄마 친구가 “야, 나도 불안한데 내
딸 그렇게 교육시켜야 되겠다. 내가 맨날
불안하거든. 안되겠다. 얼마나
교육시켰어?” 하니까 아빠가 항상 그
이야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누구 따라갔어?”
“안 따라갔어.”
“안 따라갔어?” 하고 확인하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빠도 마음을 확
놓고 자기도 마음을 놓고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 작은 유치원생도 교육을 받으면
그대로 하는데, 하와는 14살 15살이
되었는데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교육했는데도 그 말을 안 들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교육을 잘 못 지킨다는
것입니다. 분석해본 결과 사람의 세계는
잘 지키는데 이상하게 못 지킵니다.
하와가 말씀을 어긴 죄와, 두 번째는
몸을 내어준 이성의 범죄, 이 두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진리와 사랑’이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가장 큰 ‘진리와
사랑’이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사랑 가지고 천국을 이루는데 진리와
사랑이 파괴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지킨다면
그 다음에 가서는 하나님이 그 나름대로
다 줍니다. 결혼해서 어른이 되었는데
“선악과 조심, 선실과 조심!” 이렇게 안
합니다. 그때는 이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다른 데에 사랑을 뺏기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럽니다.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갖추어져야 됩니다.
나는 모르니까 하나님께서 단상에서
말씀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입장에서 탈을 쓰고 말씀해달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임금이 탈을 쓰고 시골로
다녔습니다. 임금인지 모르고 임금을 잘
대접하면 그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노인이 임금이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잘 대접해 주니까,
“당신은 참 복 있는 사람이시오.”
“왜요?”
“나 같은 사람에게 대접해 주고 해서
너무 복 받겠습니다.” 그랬습니다. 그가
임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이, 누가 이렇게 보기 싫게
돌아다니고 있어. 이렇게 바쁜 때에
뭐라도 해야지.”
“당신은 정말 복이 없는 사람이오.”
“웃기네 정말.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임금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탈을 쓰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생의 몸을 쓰고,
육신을 쓰고 나타납니다. 그냥은 말이 안
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둥번개 치면서 호령치는 순간에
나타납니다. 그럴 때에 사람들이 “아!
하나님이 소리 지르는 것 같다.”
그럽니다. 그런데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말하는 것은 인생의 몸을 통해서 타고
나타납니다. 옛날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아담 하와를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사랑함으로 사랑의
종주국을 만들어서 한 가정을 만들어
세계로 뻗어가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랑함으로 깨어졌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하와와 또 이성적인
육적인 관계를 가지니까 또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됐느냐?”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라고 한 천사가 그렇게 해서 내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괜찮다고 하며 나를
꼬였어요. 하나님이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괜찮다. 전혀 그것은 상관없다.
너 조심하라고 그렇게 한 것이지 전혀
상관이 없어.’ 하며 꼬였습니다.”
죽는다고 한 말처럼 죽었습니다. 육신은
안 죽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오다가 잘려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죽은 것입니다.
말씀이 오다 끊겼습니다. 사랑에
타락되면 말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에
타락되면 할 말이 없으니까 끝납니다.
어느 시대든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것을 절대 믿어야 됩니다.
그래야 첫 번째 하나 성공한 것입니다.
50점! 그 다음에 가서는 사랑을
선포하면 사랑 문제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사랑 문제는 꼭 선포합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하나님 절대
사랑!’, 젊은 사람들은 ‘절대 하나님
사랑!’ 예수님이 “나보다 네 형제나
자매를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
했습니다. 그것은 불법이요 비
진리입니다.
요즘에 나는 그럽니다. “나보다 네
애인을 더 사랑하면, 내가 너희를
구원하러 왔을진대 너희가 그렇게 하면
구원을 못 한다.” 애인 말을 듣고 가는데
어떻게 구원하겠습니까. “오늘 나 따라서
교회 가자.” 했는데 “나 우리 애인 따라
가야 돼요.” 그러면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나보다 네 애인을 더 사랑하면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내 말보다 자기
애인의 말을 더 들으니까 구원을 못
시킨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시키러
온 사람이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제나 자매를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 했지만, 나는 “네
애인을 더 사랑하면 구원을 못 시킨다.”
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왜? 힘이
없습니다. 오늘 교회에 말씀 들으러
가자했는데 자기 애인을 따라서 놀러
간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구원을
시키겠습니까. 주일 말씀을 들어야
구원시키는데, 이치가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리와 사랑’을 선포해서
진리를 절대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진리를 믿고 따르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문제입니다.
애인 사랑, 이성의 사랑, 물질의 사랑,
환경의 사랑, 돈의 사랑, 입고 먹는
의식주의 사랑, 그렇지 않으면 친구의
사랑, 친구의 사랑에 어울리다 보니까
교회 못 다니게 되고, 술사랑, 향락
사랑, 부모 사랑, 이렇게 하다보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 사랑과 진리를 하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그 말씀 두 개를 완전히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주님, 하나님!
사랑의 세계는 3천 명 예쁜 여자들을
갖다 놓고 그리로 갈래 이리로 갈래
해도 안 갑니다. 나에게 해 보십시오.
예수님도 아예 그렇게 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사랑의 기준을 딱
세워야 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기준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기준과, 진리의 말씀에 절대
기준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받고 그것을 시인하고 완벽하게 서고
사랑에 완벽히 서야 됩니다. 이 두
31
가지가 서야 그 터전 위에서 역사를
시작합니다.
아담 하와가 그렇게 못해서 역사가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속상하니까 소식이
없었습니다. 1600년 동안 지상에 대해서
‘아, 이제 틀렸다.’ 하신 것입니다.
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다가 상처받고는
한동안 여자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입장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지구촌이 너무 비참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너희는 너희 생각대로 살아라. 아담이나
좋아하고 실컷 살아라. 하와나 좋아하고
실컷 살아라. 천사나 좋아하고 실컷
살아라.”
천사는 악명 높은 악인이 되었습니다.
악마, 사탄이 되었습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관심 못 두겠다. 너희들
아니어도 얼마나 사람이 많냐.” 하고
끝났습니다.
그리고 계속 있다가 1600년 만에
노아를 불러서 “노아야! 너는 시대에
완전한 자구나. 의롭게 살았구나. 내가
지금 또 역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나
하나님이다.”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모든 이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았는데, 너만 의롭게 사는구나. 이
세상에 호흡 있는 것을 내가 다
멸해야겠다. 더 이상 못 보겠다. 너 하나
보고 역사를 한번 시작하겠다. 방주
만들어라. 앞으로 홍수심판 한다.
양심심판을 하겠다. 저들에게도 살려면
만들라고 하라. 잣나무로 만들어라.
그러나 10년 있다가 하겠다.” 했습니다.
120년 만에 하겠다고 한 것이 그게
10년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120년이
아니라 10년입니다.
역사의 주인이니까 알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대해서 물어보십시오. 내가 다
대답해 줄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것에
대해서 다 물어보십시오. 다 대답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됐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을 충분히 인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아에게 10년의 기간을 주었습니다.
그때는 한 달이 한 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10년은 그 때의 120년입니다.
노아에게 “120년 만에 심판하리라.”
했기 때문에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120년
만에 심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10년입니다.
하나님께 확인, 예수님께 확인, 다
확인했습니다. “10년이 맞다. 네가
지구상에서 인봉을 뗀 것이다.”
하셨습니다. 인봉 뗀 것이 한두
가지입니까. 그 인봉 뗐다고 내가 큰
것이 아니라 나는 다른 사람과 임무가
다르지 않습니까. 일반 사람이 아니니까
그 정도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을 때 계속 연구하며 결심하고
읽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능은 이 세상의
초등학교 학문밖에 안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는 못 가봤습니다. 공부 하러는
1년도 안 들어가 보고 하루도 안
가봤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지능을
가지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하늘의 지능, 하늘의 지혜가
와서 푼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성경학자들은 못 풀었습니다.
120년이라고 지금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석 책에 보면 120년이라고
다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한 달은 한 살로 보고, 보름을
한 살로 보기도 했습니다. 아담은 930살
살았지 않습니까. 왜 타락했는데
930살을 살았습니까. 타락 안 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175살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시대가
차이가 있으니까, 아담보다 2000년
후니까 역사를 계산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노아 때도 아브라함보다
옛날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홍수로 심판한다고
말씀 하신 후 10년 만에 심판한
것입니다. “방주 만들어라. 하나님이
심판한다.” 하니까 “무슨 심판이야? 다
필요 없어. 물 좀 많이 달라고 해. 지금
가물어 죽겠어.” 그랬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똑같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입니다.
인생살이의 이야기들은 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지금 말 빠르다고 지적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이 왜 그렇게 말이
빨라졌냐. 말씀이 어디로 지금 흘러
가냐. 천천히 하지.” 하셨습니다.
심판을 10년 만에 했습니다. 의인과
악인을 같이 심판했습니다. 노아만
빼내고 한 것이 아니라 같이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해서 노아만 살았습니다. 창세기 6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금 노아에게
열심히 살아라 했습니다. 그런데 노아
아들이 또 말을 안 들었습니다. 노아를
아버지로 보고 아버지로만 대한
것입니다. 노아는 그때 당시
구원주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육신을
쓰고 역사하기 때문에 노아를 통해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노아를
아버지 입장으로만 대하니까, 홍수심판
때는 죽지 않고 살기는 살았는데 두
번째 역사를 시작하려니까 꿰장났습니다.
부모 마음대로 못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로 표현되었는데,
부모 말을 안 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부모 말을 안 들었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포도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만들어
먹고서 벌거벗고 드러누워 있는데
함이라는 아들이 와서 보고 자기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저기 벌거벗고
있다.” 해서 두 형제가 얼른 뒷걸음을
치고 가서 덮어 주고 왔습니다.
노아가 깨어나서 “누가 이랬냐?” 했더니
“함이 그래서 이렇게 했습니다.” 해서
노아가 일어나자마자 “함을 저주한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노아가 잘못한 것 같지만 노아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다 풀어야 됩니다.
아담으로 하려고 했던 일을 노아를 통해
했는데, 그것을 자녀들이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아담을 통해서 하려고 했던
일을 노아를 통해서 하는데 그것을 절대
순종하고 따라갔어야 됩니다. 그것을
함이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절대 무엇을 하는 것을
봐야 그를 통해 역사를 합니다. 기어코
한 번이라도 해야 됩니다. 시킨 것을 안
하면 헛일입니다. 역사가 가더라도
기어코 그것을 해야 됩니다. 1600년
만에 그 일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못 했으니까 하나님이 노아의
입을 통해서 저주를 한 것입니다. 함에게
“너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노아가 술 먹고
술주정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1600년 동안 기다렸다가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아담에게 못한 일을 그
나름대로 그 주관권에서 한번 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400년, 400년, 400년,
400년, 1600년 만에!!
아담 후 1600년 만에 노아에게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말씀하기가 힘듭니다. 하나님은 안
나타납니다. 일개 왕도 아닌데 하나님이
나타나겠습니까.
32
이 지구상의 일개 왕들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하면 통장 정도 밖에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원의 숫자를 볼지라도,
권한을 볼지라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
왕은 5년 10년 임기가 끝나면 끝나지
않습니까. 끝났는데도 계속
왕이겠습니까. 기한이 끝나면 하나의
백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을 줘서 그때만 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의 주권, 신앙의
주권이 제일 오래갑니다. 하늘나라까지
계속, 영원까지 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큽니까. 하늘나라의 주권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수종 들고, 하나님을 모시고
벼슬하는 것이 그렇게 큽니다.
내가 옛날에 중고등부 반사를 안 한다고
했었습니다. ‘에이 무슨 중고등부 교사를
하냐.’ 하며 안 한다고 했습니다. 한자리
맡으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습니다.
‘월남까지 갔다 왔는데 내가 또 이런 것
하냐? 옛날에나 했지. 다 컸는데.’
그랬습니다. 그때 내가 서서히
빗나갔던가 봅니다.
그날 밤에 꿈에 예수님이 깨달으라고
보여준 것이 있습니다. 꿈에 보니까
주일학교 반사들이 하늘나라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초라하게
돌아다니고 다 엄청난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벼슬에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별을
달고 스타가 되고 장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야, 중고등부 교사가
하늘나라에서는 장관 취급을 하는구나.
그러면 목사는 어떻게 될까? 우와~’
그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안
하고, 교회 가서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니까 금년도는 중고등부 반사가 다
차서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근방에
교회 반사자리가 빈 곳을 돌아다녀
보니까, 4km 산 너머 교회에 주일학교
반사 자리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주일학생 3, 4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거기에 가서 “나 여기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까 “거기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다니냐.”고 했습니다.
“하겠다. 그럴 마음이 있다. 월남도 갔다
오고 했으니 잘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못 하냐.” “거기는 반사 자리가 없다.”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꿈에서 본 것은
이야기 안 해 줬습니다.
거기에서 목숨을 걸어놓고 열심히
했습니다. 한참 3개월 동안 목숨을
걸어놓고 했더니, 꿈에 보니까 내 어깨에
중령 계급장이 달려 있었습니다. 별
달려면 아직도 멀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 후로는 꿈에 안 보였는데, 4킬로
떨어진 교회까지 날아다녔습니다. 거기서
주일학생을 150명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있던 석막리 교회는
70명에서 80명이었습니다. 나는 그
산골짝에 가서 3명 가지고 150명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다시 넘어와서 석막교회를
지었습니다. 거기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장년부를 맡는다
어쩐다 했는데 “못 맡긴다.” 해서 투표를
해서 웃기는 사람에게 넘어가고 나는 안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지으라고
보내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 후에 다른 사람이 나를 보더니 “에!
선생님, 이마에 별이 몇 개 있네요.”
그랬습니다. 환상에 군인으로 보이는데,
별이 몇 개나 붙었다고 했습니다. 몇
개냐고 했더니 “많이 붙었어요. 슬쩍
봤는데요. 군인같이 보여요.” 했습니다.
나는 눈치 챘습니다. 그 때는 이미
오래됐을 때입니다. 그래서
복직했습니다. 여러분들, 중고등부를
함부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고등부, 유초등부의 하나님의 직책들을
웃기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크고 어마어마하게 큰 것입니다.
생명들을 다루는 사람들의 그 직책이
엄청나게 큽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보낸
자의 직책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노아 때에 그런 일이 있었고, 노아까지는
했는데 노아 자녀들이 그러니까 하늘
역사가 또 그렇게 깨졌습니다.
그 후에 400년 있다가 하나님께서
섭리를 해야 되겠는데, 하나님이 놀면
뭐하겠습니까. 누구를 택해서 해야
되겠는데, 턱을 고이고 보시니 지구상에
믿는 사람 중에는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른 데를 쳐다봤습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을 보니까 거기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빼내 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상 섬기는 데 보니까
너무 기가 막히게 잘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에게 절도 하고
섬기는 것을 보니 진짜 부러워
죽겠더라는 것입니다. ‘저것들이 다
나한테 와서 영광 돌려야 하는데. 저
중에 하나 빼내어 와야 되겠다. 에이
한번 해 보자.’ 하고 하나님이
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
장사하는 아브라함의 가문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우상을 만들고
아브라함은 우상을 팔고 그랬습니다.
‘저놈이 말을 들을라나.’ 하시고 하나님이
밤에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누구십니까?”
“나는 하나님이다.”
“너는 너의 친척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하는 데로 가라. 내가 너에게 복을
주마.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서 가나안
땅에 가라. 내가 인도하겠다.”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대개 꿈에
줍니다.
결국 그리로 가도록 하나님께서
감동하니까 갔습니다. 거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기듯이 그렇게 무섭게 섬긴 것입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법이
엄청난지 압니까. 방바닥에 머리카락만
빠져도, 그렇지 않으면 정성들이다가
무엇만 이상이 있어도, 쌀래기 하나만
이상이 있어도 큰일 나는 줄 압니다.
그런 신앙을 하는 사람이 우상 섬기는
신앙이고 미신 섬기는 사람들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그런
신앙이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하나님께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미신에게
우상에게 하니까 보기 싫지 하나님께
하면 괜찮지 않습니까.
미신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 “못 하나만
잘못 박으면 나는 큰 신한테 저주 받아
죽는다. 안 박을 거야. 어느 날 이사
가야지.” 그럽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 묻지도 않고 아무
때나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원래
하나님과 통하면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느 날 이사 가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하는 것입니다. 못 통하니까
못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너무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첫 번째 잘 한 것은
하나님의 말을 듣고 자기가 섬겼던 신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믿음의
조건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가 섬기는 신을 버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예수님 때 베드로가 그물을 집어던지고
나를 따르라 하니까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와 같이 집어 던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33
확실히 몰라서 못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따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우상을 집어던지고
가야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
좇아가야 뭔가가 일어나지 사람을
쫓아가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가겠다고 하고 따라갔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면서
좋아하며 허허벌판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 해서 가나안 땅으로 갔는데
옛날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못하고, 또 노아가 일하다가
아들 때문에 못하였던 것을 아브라함을
그 땅에 배치하여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로 아브라함을 배치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려고
하시는데 왜 사람들이 못하냐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말씀이 나올 것입니다.
오늘의 핵심적인 말씀은 아직 안
나왔습니다. 핵적인 말씀은 아직 싸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니까 아브라함이 너무 잘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아침에 제물, 저녁에
제물에도 제물을 드렸습니다. 양을
길렀는데 그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주려고 길렀습니다.
손님이 왔어도 무엇을 해 주면 맛있게
먹으면서 너무 좋아하는데, 양을
기르면서 “이놈은 하나님께 드려야지.
이놈은 하나님께 드려야지. 저놈도
드려야지.” 그러면서 너무 재미있게 제물
드리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두 번째,
제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데에
성공한 것입니다.
첫째는 옛것을 버렸고, 두 번째는 제물
드리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순서가 가야 됩니다.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옛날에는
몸을 안 받았습니다. 구약 때는
“타락되어서 더럽다.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 짐승을 드려라.” 했습니다.
“오히려 짐승이 없으면 배추를 드려라.
고구마를 갖다 드려라. 너희 누추한 몸을
안 받겠다.” 하고서 4천 년 동안 안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깨끗한 몸을
가지고 나타나서 그 몸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지금은 몸이 제물입니다. 몸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선생님도 하나님께 몸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쓰고 싶으신
대로 쓰시라고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냥은 안 씁니다. 연단 받게 하고
멋있게 만들고 예쁘게 만들어서 쓰시는
것입니다. 멋있게 진리로 만들고, 절대
사랑으로 만들고 해서 쓰십니다. 그래야
내놓고 “여봐라. 얘 봐라. 이렇게 너희도
하도록 하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잘 한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었습니다. 100세
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100세 때에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느냐구요?
그때도 역시 시간적인 것을 따지는 법이
있습니다. 그때도 나이 치는 법이 차이가
있습니다. 100세 때는 자식을 낳기가
힘듭니다. 100세까지 살기도 힘듭니다.
그때도 나이가 아기를 낳을 만한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못 낳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야만 낳지
사람으로서는 못 나을 나이였습니다. 그
나이쯤 되었습니다.
사라가 이미 나는 경수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내 아내가 경수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경수가 끊어진 나이쯤
된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다
나옵니다.
“네 아내가 분명히 아기를 낳으리라.”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는데 경수가 문제냐.”
그것을 믿어서 그 다음에 가서 결국
낳았습니다.
“믿습니다. 하나님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해서 이삭을 낳아 잘
길렀습니다. 이삭을 기르면서 ‘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이 먹었을 때 얻은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은 것, 하나님이 함께 해서
얻은 것이 얼마나 큽니까. 그래서 이삭을
너무 너무 사랑하고 좋아했습니다.
이삭을 하나님이 줘서 얻었으니 너무
귀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귀하게
길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리아 산에서 네
아들을 내게 바쳐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아내도 바치라고
하면 바칠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내도
바치고 아들도 바치고 자기도 바치고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역사를
꺾어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니 대답을 했습니다.
“네. 시간은요?”
“내일 아침에 일찍 떠나라. 아침 제물로
받겠다.”
제물을 바치려면 뻔합니다. 칼을 가지고
찌르고 찢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네.”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기는 식으로 잘
바쳤습니다. 일반 사람 같으면 “하나님,
정말이에요? 다른 것 받으면 안돼요?
왜 하나님이 준 아들을 바쳐야 되지요?”
그랬을 것입니다.
“이래서 아들을 줬구나. 뜻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고는 아들을 묶고
내리치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여봐라~ 알았다!
손을 금하라! 네가 나를 사랑한 것을
내가 확신했으니까 됐어! 내가 사람을
제물로 잡으라고 하겠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확실히 알았어. 네 아들을
죽을 때까지 데리고 살아. 내가 네
아들을 축복해 주리라. 네 것이다. 네가
데리고 평생 살아.” 했습니다.
이삭도 “아버지, 나 없어지면 그렇게
아세요. 여기 있다가는 언젠가는
죽겠군요. 아버지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며 안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주셔서 너를 바치려고
했다.”
“감사하네요.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안
받으셨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봤대.”
“아, 나는 그날 아예 죽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하늘나라 가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아브라함이 이삭도 철통같이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제물 드린 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그 자녀들이 다 잘되었습니다.
이삭도 잘되고 야곱도 잘되고, 요셉도 잘
됐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그렇게 팔려갔는데도
총리대신이 되지 않았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고 감옥에 갔어도 잘 됐습니다.
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네 자손들을 잘 되게
해주겠다. 3, 4대까지 잘되게 한다.”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렇게 잘 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너는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하라.” 했습니다.
400년 전에 노아의 아들 함이 조건을
못 세웠습니다. “네가 그 조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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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웠으니 아브라함이라 하라.” 하신
것입니다. 원래 노아 때 그 역사가
일어나서 노아 때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못했습니다. 노아 때는 신광야급밖에 못
왔습니다. 아담, 하와는 애굽고역급의
종살이에 들어 있었고, 가나안복지급
역사는 아브라함이 세 번째로 올라
찼습니다.
이제 마지막 말씀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보따리를 끌러 주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자손에서
모세도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요셉
밑에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요셉이
죽고 400년 만에 나타났습니다. 큰
인물들은 400년에 하나씩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그 자손들이 죽 뻗어 내려온
것입니다.
회교는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아기를
못 낳았을 때, 몸종 하갈을 통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몸종을 통해서 낳은
자식이 회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마호메트가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이라는 자가
났습니다. 그가 회교의 조상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내가 크다, 내가 크다
하고 계속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에 이스마엘은 종의 몸에서 났기
때문에 꼼짝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쳐다보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분명히 하라. 이삭을 중심해서
역사가 간다.” 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
중에서 이삭을 중심해서 역사가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했는데 그 자손에서 계속
내려와서 다윗도 나고 그랬습니다. 조건
세운 위에 역사해야 됩니다.
누가 이런 절대 조건을 세워야 그 믿고
따르는 자손이 잘되는 것입니다. “너와
같이 이들을 축복해 주리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조건이 큽니다.
중심자가 조건을 세우면 전체가 다
살아나고, 조건을 못 세우면 전체가 죽는
것입니다. 너무 엄청나지 않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근본체가 인간을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인간들은
세상의 사랑에 갈등하고서 “세상은
그렇다.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 하고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는 역사로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왜 깨어지는
줄 압니까. 둘이 계속 사랑하는데, “야,
우리 그렇게 영원히 살자. 역시 지상
천국을 이루며 살자.”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전지전능하시고,
인간들은 사랑에 굶주려서 그냥 막
빨려 들어가서 사랑이 안성맞춤으로
이루어졌는데, 대개 그 사랑이
깨어졌습니다. 왜 깨졌을까? 그것이
오늘 주일 말씀의 핵입니다. 그 말씀을
받고서 “주일날 이 말씀을 하겠다.
주일날 말씀이 너무 엄청나겠다.”
했습니다. 그 것을 내가 바로 뗐습니다.
‘왜 깨질까?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데! 하나님이 사랑에
전지전능하시지 못할까?’
아담 때도 깨지고, 노아 때도 아들
때문에 깨지고 계속 깨졌습니다.
사랑과 진리를 가지고 역사 하는 것인데
깨졌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때는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했습니까. 절대 목숨을 다 바치면서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얻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이
“못하겠습니다. 하나님.” 그랬으면
하나님이 그 사상 없애려고 죽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는다.”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
자손이라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여기 말씀으로 하라.
여기가 본문이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안 하면 하나님께서 그 꼴을 못
보고 기어코 없앱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없앱니다. 병들게 하여 없애든지
없앱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멘.” 하며 하나님께 늘 바치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때 그것이
안됐습니다. 하나님은 늘 역사 하는데,
하나님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절대 해야 됩니다. 그게 인간의
절대적인 ‘책임’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둘이 좋아서 “너 좋고 나
좋으니 같이 살자. 정말 좋다.”
하였습니다. 둘이 좋아서 사귀는데 안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살아보니까 우리
어때? 좋지? 살자.” 그러면서 약혼식
때까지 연애하면서 둘이 살아봅니다.
“좋다. 만족하다. 너도 만족, 나도 만족.
좋다.” 하며 서로 사랑을 퍼붓고
사랑했습니다. 딴 데에 사랑을 안 주고
계속 퍼붓고 사랑하는데도 이상하니
깨집니다. 왜 깨질까? 둘 중에 하나가
뭔가 잘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자가
바람을 피웠던지, 남자가 바람을
피웠던지 뭔가 못 해서 안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상에 완전히
지상천국을 만들려고 계속 쏟아서 하는데
안 되지 않습니까. 인간이 못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너희들 그렇게
살아봐라. 근심, 걱정, 염려를 배에 잔뜩
먹고 배만 나오지. 잠만 많이 자봐라.
잠탱이만 되지. 옷만 잔뜩 입고 돌아다녀
봐라. 외식만 되지. 한번 해 봐라. 좋은
장소만 돌아다니며 구경만 해 봐라. 연말
때 얻어맞으려면 그렇게 해 봐라. 연말
심판이 있지 않느냐.”
인간이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것이
진행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사랑이 됩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법이 바뀌었습니다. 옛날은
하나님이 계속 이들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한도 끝도 없고 사랑이
지쳐버리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서 계속
사랑하는데, 여자는 안 사랑하면 사랑이
지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아무리 사랑해도 여자가
사랑치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짝사랑입니다.
그래서 후반기부터는 법이 바뀌었습니다.
선생님이 여기서 법을 바꾸면 세상 법이
다 바뀌는 것입니다. 지금은 옛날과
다릅니다. 예수님 때만 해도, 신약 때만
해도 그 죽자 사랑했는데, 지금은 법이
바뀌었습니다. 온 인류의 누구든지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가 하면, 오직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든 말든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계속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거들떠보지,
안 그러면 거들떠보지 않겠다고 선포를
했습니다.
구약 4천년 동안 그랬지, 신약 2천년
동안 그랬지, 6천년동안 그랬습니다. 이
시대 천년 때에, 신부 시대 때에는
너희들이 사랑해야 되지 않겠느냐
했습니다. 그래서 성약역사는
<신부역사>를 선포했습니다. 신부역사를
선포하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더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짝사랑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짝사랑은 안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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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의 역사는 해 봤자 좋은 꼴이 안
일어납니다. 짝사랑할 때도 그랬는데,
여자가 와서 막상 하기 싫은 남자를
사랑해 보십시오. ‘에이 아무 것도
아니다.’ 하고 도망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평소에도 싫었는데, 하도 좋아해서
사랑해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다.’ 하고
확인하고는 도망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지금 섭리도
똑같습니다. 옛날에는 전반기만 해도
목숨을 걸고 사랑했지만 지금은 안
그럽니다.
“너희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라. 그
기간은 후반기 역사다.”
언제까지인가 하면 천년 동안이다
했습니다. 영계에 가서도 그렇습니다. 이
법 하나만 알면 됩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말씀이 오든지 옵니다.
말씀만 와도 이 사랑이 깨지면 안
됩니다. 말씀이 오는 것의 핵심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온갖 30개론 전체가 “너희가 나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더 이상
못하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한번 그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계속 법이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법이 바뀌었다. 천법이
바뀌었다.” 온 인류 전체의 법이
바뀌었습니다. 선생님 입을 통해
선포해서 법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해
보라는 것입니다. 옛날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절대 하나님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를 해서 시대의
말씀이 선포되고 옳은 진리가 선포되지
않았습니까. 벌써 주일말씀을 매듭지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 하나님을 목숨을 걸고
사랑하면 성공하겠구나.’ 이것을 배우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공합니다! 내가
그래서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해서 성공했습니다. 사랑에
성공했습니다. 이 지구상의 사람들이
사랑에 성공을 못했는데, 나는 사랑에
성공을 했습니다. 사랑에 성공했나 안
했나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사랑에 성공했습니다. 그 조건
터전 위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에 어떤 큰 재난이 일어날
때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한다.” 하시면
그전에는 내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여, 내가 당하겠습니다.”
그렇게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너무너무 고통이 컸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하지 말아 달라고 해서
하나님이 안 하셨는데, 그로 인해 내가
받는 고통이 너무 너무 컸습니다. 지금은
내가 그렇게 잘 안 합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이 몇 개 있습니다.
너무너무 큰 것을 내가 뭣도 모르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말렸습니다. 시대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역사를 말렸습니다.
“하나님, 내가 사는 민족에 전쟁 안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전쟁이 100% 일어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형벌을 받고 탕감을 전부 다
받겠습니다. 내가 전쟁에 참전해서 너무
너무 머리 아프고 너무너무 잔인한 꼴을
봤습니다.”
6.25도 있었고 월남전쟁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받게 되었는데,
그게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갈 때 이렇게 엄청난 문제가
있었고, 어마어마한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하면 “아멘.” 그럽니다. 안 그러면 내가
받으니까 그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받는
대신 물론 좋은 것도 있습니다.
애인끼리도 그렇습니다. “저것 안
되겠다.” 할 때 옆에서 막 참으라고
합니다.
“참어? 니가 책임질 거야?”
“책임질게.”
“그러면 니가 해. 니가 책임지고 해.”
그랬으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됩니다.
책임지고 참아 줘야 합니다. 일단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 책임을 져보고 너무
엄청난 고통이 있으니까 나중에는 안
말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메시아
되었습니까. 사랑 때문에 메시아 된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니까 “너는 종이 아니고 내
아들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메시아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다. 너희는 이 말을
들으라. 다 이의 말을 들으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의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왜 예수교가 사랑의
종교일까 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때 당시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4천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아들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만 딱 하나 인정받았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누구든지 너희는
이의 말을 들으라. 내 아들이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아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아들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이
시대에 해당하는 사랑을 하면, “너는 내
신부다. 내 애인이다. 내 것이다. 내
사랑하는 내 신부다.” 그러는 때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다.”
하니까 “참람하다. 감히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가 있느냐.”
그랬습니다. 종들은 그렇게 못합니다. 그
조건을 세우니까 아버지라고 한
것입니다. 너무 사랑하니까 자꾸
불러지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남자를 너무 사랑하니까
오빠라고 하다가 나중에 가서 “여보!”
라고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너무
사랑하니까 그렇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생활이 그러니까
‘아버지’라는 소리가 나오게 것입니다.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생활 하니까
나와지는 것입니다. 둘이 같이 사니까
‘여보’ 소리가 자꾸 나와지는 것입니다.
같이 안 살아보십시오. ‘여보’ 소리가 안
나옵니다. 여러분의 아빠 엄마가 “여보,
여보! 당신. 여보, 여보. 사랑해.” 하지
않습니까.
‘여보’ 소리가 어디서 나온 줄 압니까.
평소에 안 나옵니다. 둘이 극적으로
사랑할 때 극적인 세계에 들어갔을 때
‘여보’ 소리가 나온답니다. 결혼한
사람에게 언제 나오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때 나온다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로 계속 살아가야 하나님에게
아버지 소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극적으로 사랑하면 ‘신랑 되신 하나님!’
이라 하게 됩니다. 그러한 생활을 해야만
그런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안 하면 못 받는 것입니다. 남을
구제하고 사랑해야만 거기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거기에 해당하는 잠언이
떠오르겠지요.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메시아가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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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록 하라고 예수님이 가르치니까
사람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모든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권이 된
것입니다. 그게 신약 2천년 역사입니다.
“나와 같이 하늘을 섬기고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되 신부로서 살아라.” 하니
여러분이 현재 전부 신부 입장에서
하늘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대의 복을 받고, 시대의 말씀을 듣고
역사가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이렇게 역사하는 데가 없습니다. 딱 한
군데 여기서 역사가 가는 것입니다. 이게
성약의 역사입니다. 역사 같지 않지요?
구시대 사람들은 역사가 일어날 때 크게
일어난다, 나팔 불며 어마어마하게
일어난다 했습니다. 아까 보았듯이
아브라함 하나 가지고 역사를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아담 하나 가지고 역사했고,
노아 하나 가지고 역사를 했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역사가 일어날 줄 압니다.
예수님 시대 때도 엄청나게 역사가
일어날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소근 소근
이야기하며 마치 어린아이들이 뭐 하듯
하면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게 역사였습니다.
큰 나무에서 역사가 일어난다 했다면
그게 뭐겠습니까. 새순이 났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새순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것을 손으로 톡 떼면
떼어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숨깁니다. 집에서 화분에 새순이 날 때
뭘 해 놓습니다. 혹시 어린아이가
잡아당길까봐 순이 클 때까지 그렇게
둡니다. 새 역사, 새순이라 했습니다.
새로운 순이 그렇게 나오는데 누가
그것을 쳐다보고 역사를 기대하겠습니까.
엄청나게 크게 일어날 줄 알고 있기에
기대를 안 합니다.
전부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아주
신진들이 아기처럼 하면서 그 역사를
펴고 있습니다. 역사가 어떻게 크는가
하면 그 어린아이가 커가면서 역사가
크는 것입니다.
내가 역사를 할 때 혼자 하지
않았습니까. 그 어린 사람들이 커가면서
30대 40대가 되고 20년씩 크니까
역사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도 한
20년은 커야 1차 빛을 봅니다. 또
20년을 커야 후반기 빛을 봅니다.
우리가 1차 빛을 보았습니다.
역사도 그 역사를 하는 사람의 나이와
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이 크면서 역사도
크고, 어린아이가 스무 살 먹으면 빛을
보듯이 빛을 봅니다. 20대에 청춘의
빛을 보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한
40대가 되어야 여봐라 하고 빛을
봅니다. 역사도 한 40년이 가야 큰 빛을
봅니다. 큰 빛을 보려고 세계로 자꾸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구시대 사람들의 그 억센 손으로 새순을
못 다룹니다. 화분에서 새로운 꽃
몽우리가 아주 조그맣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다 큰 꽃은 억센 손으로
다루어도 괜찮습니다. 새로 나오고 있는
것은 억센 손으로 다루면 톡 부러집니다.
억센 손으로 새로 나오는 꽃 몽우리를
만지면 안 되듯이 구시대 사람들이
새로운 어린아이의 역사를 손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끼리 크게 놔둬야
됩니다. 10대를 40대가 손대면서 “에이,
이렇게 하면 안 돼!” 하면 부러지고
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대는
10대의 지도자를 세워서 10대들이 끌고
나가게 하라 했습니다. 위에서는 코치만
하라는 것입니다. 20대는 20대가 끌고
나가고 40대가 주물주물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안 들어. 시대
차이가 있어.” 그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언제 도표로 세밀하게 말씀을 할
것입니다. 영계에서 일어난 역사,
육계에서 일어난 역사를 말씀할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는 구시대 사람들이 참석하기
어렵습니다. 구약사람들이 신약역사에
참석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참석해봤자
나이를 먹어서 빛을 못 봅니다. 다만
어린것을 기르는 것밖에 못 합니다.
구약의 사람들이 볼 때 어린 예수님이
와서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엄청나지 않았습니까.
성약의 역사도 보면 신약역사의 거친
손이 대면 그냥 끝납니다. 성약역사는
가냘픈 어린아이가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다가 한 20년 커야 역사가 강하게
돼서 안 부러집니다. 20년이 가면
다시금 또 어린아이들이 또 와서 역사를
밀고 가는 것입니다. 그들을 우리가 막
손대면 안 되고 우리는 코치를 해야
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커
올라와야 됩니다. 그들은
어린순들입니다.
나이 많은 40대 50대들이 열다섯 살
먹은 사람들을 손대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억세서 안 됩니다. 자기
스타일로 하니까 안 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길러야 됩니다.
새로운 역사는 점진적으로 잘 길러가야
됩니다. 역사를 기르는 것을 역사의
주인은 알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사랑의 표적을 일으키자.”
입니다. 이번 주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표적을 일으켜 봐요. 사랑함으로 무슨
표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의 표적의
일으키면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랑의 표적을
일으키자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배운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가게 해
주시옵소서. 나머지 말씀은 내일
아침부터 내 입을 통해서 죽 할 것인데,
모두 와서 듣고 사랑의 큰 은혜를 받게
해 주시옵소서. 반드시 사랑에 실패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못 해서
사랑에 실패하지 하나님이 못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인간이
몰라서 하다 말고 실망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다 말고,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갈다 말고 그러니까 안됐다 했습니다. 이
말씀을 후에 할 것인데, 모두 듣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사랑의 표적을
일으키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사랑의 표적을
일으키게 사랑의 불을 보낼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되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주 예수의
사랑하심과 내가 사랑함이 이들에게
영원토록 충만할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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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성자 사랑에 불타고 신령해야
육과 혼과 영이 빨리 변화되어
빨리 ‘휴거의 영’이 된다
===================== 본문 ===
[ 요한복음 4장 23절 ]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고린도전서 2장 13-14절 ]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 사회자는 주제를 먼저 말해 주지
않는다. 설교 도중에 주제가 나올
것이니, 먼저 주제를 소개하지 않는다.
꼭! 명심할 것!!!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실한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휴거 차원을 빨리
높이고, 빨리 휴거되는지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여 <휴거의 희망>이 활활 타올라
흔들림 없이 행할 힘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시작>
새벽에 기도할 때 성자께 말했습니다.
“<휴거 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하니,
섭리 사람들이 조급해하며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아예 휴거되기를 포기하고 안
따라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빨리
휴거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또 말했습니다.
“제게 보내온 편지들을 보면, 계시를
받고 성자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대개
휴거 차원이 높다고 하며, 계시 받는
사람들은 성자와 대화하니까 성자가
감동되어 그들의 영을 빨리 변화시켜
휴거되게 해 주시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이에 성자는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는 휴거를
빨리 시켜 주고, 누구는 늦게 시켜
주겠냐. 그렇다면, 모두 다 휴거시켜
버리겠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본인이 행하여 자기 육을
변화시키고, 자기 영을 변화시켜서
휴거되는 것이다. 나 성자는 분체와 함께
<휴거의 말씀>을 주며, 힘을 주고 함께해
주는 책임을 한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더 기도를 깊이 하고
다시 성자께 물었습니다.
“요즘 섭리사에 온 사람들은 말씀을
늦게 들어서 휴거에 늦었다고 애간장을
태우고, 섭리 온 지 오래된 사람들
중에서 아직 휴거되지 않은 사람들은 더
애간장을 태웁니다. 빨리 휴거되는 길을
가르쳐 주세요.”
이때 성자는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며
‘주제’입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자막 준비> “나 성자와의 사랑에
불타서 행하며 신령한 자가 되면, 빨리
실천하게 되니 육과 혼과 영이 빨리
변화되어 빨리 휴거된다.” 하셨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힘차게 전해
준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신령하려면, 기도하여 나 성자와
대화하자. 그리고 나와 뜨거운 사랑을
하자. 신령한 주일말씀, 수요말씀,
새벽잠언을 듣고, 치타처럼 빨리
실천해라. 나 성자와 보이는 내 육을
사랑하지 않으면 신령한 자가 아니며,
기도를 깊이 안 하는 자는 신령한 자가
아니다.” 하며 화끈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화끈하게 전해 준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주제는
‘성자 사랑에 불타고 신령해야 육과 혼과
영이 빨리 변화되어 빨리 <휴거의 영>이
된다.’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중요
누구든지 성자와 분체와 일체 돼야
신령하게 됩니다.
성자와 일체 되려면, ‘진실한 기도’를
끝까지 해야 됩니다.
(확실히 강조하며 전해 준다.)
그래야 영의 세계인 혼의 세계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고, 고칠 것을 고치고
자기를 온전히 만들기 위해 행합니다.
‘육’이 만들어지는 만큼 ‘혼과 영’도
만들어져 빨리 ‘휴거의 영’으로
변화됩니다. <끝>
<전환 : 중요>
변화가 돼도 늦게 변화되면, ‘때’를
놓치게 됩니다.
제때 변화돼야 전능하신 하나님의
<휴거의 때>를 맞춰서 휴거됩니다.
늦으면, 행했어도 보람이 없습니다.
모두 지난날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생활하면서 원했던 것이 있었는데, 제때
행하지 못한 것은 행했어도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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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시험을 앞두고 공부해야 하는데
그때는 공부하지 않고, 시험이 다 끝난
후에 공부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미
시험이 끝난 후라 공부했어도 시험과는
무관하니 보람이 없습니다. 맞지요?
행하되, 제때 행해야 제때 변화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빨리 알고 빨리 행해야 육도 혼도 영도
빨리 변화되어, 빨리 ‘휴거의 영’이
됩니다. <끝>
세상 일도 그 일을 할 때 전적으로 해야
표가 나게 완성됩니다.
집을 지을 때도 전적으로 안 하면
시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습니다.
‘휴거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적으로 행하지 않으면 5년, 10년
행해도 휴거 완성을 못 합니다.
1년이라도 휴거에 전적으로
몰두하겠다고 하면서 해야 육도 혼도
영도 표가 나게 변화됩니다.
그래야 자기 영이 300선까지 휴거되어
마음을 놓게 되어, 자기 육도 여유가
생겨 다른 일도 전적으로 자신 있게
하게 됩니다.
<최고 중요>
지금 이때 가장 급하고 최우선으로 할
일이 어떤 일인지 깨닫고, 그 일 먼저
해야 됩니다. 그것 먼저 안 하면, 시간이
흘러가서 뺏깁니다. 이 시대적으로 볼
때, 또 우리 전체 신앙적으로 볼 때,
지금 최우선으로 할 일은 <휴거>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일’이며, ‘지금 이때 꼭
해야 될 일’입니다.
<성자 사랑의 해>에 ‘휴거의 일’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다른 일에
밀려서 할 수가 없고, 또 하더라도 반도
못 하게 됩니다. <휴거의 때>가 왔을
때는 ‘휴거에 해당되는 말씀’을 풍족하게
주어 ‘행할 방법’을 줍니다.
성자는 꼭 ‘때’에 맞게 말씀을 주십니다.
고로 <휴거의 때>가 지나면, 다른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휴거>가
끝나서 하고 싶어도 못 하고, ‘하늘
문’도 닫히고 ‘지상 문’도 닫혀 버립니다.
<휴거의 때>가 되었기에 하나님은 능력과
힘과 지혜를 주시고, 성령님은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며 성령의 불을 주시고,
성자는 급히 휴거의 말씀을 주시며
도우시고, 그 육신을 통해 재촉하면서
함께 행하십니다.
<전환>
오늘은 어떻게 하면 빨리 휴거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자 사랑’을 근본으로 하여 ‘사랑의
불’을 태우고 신령해야 그만큼 빨리
행하여 육도 혼도 영도 빨리 휴거된다고
했습니다. 신령함을 위해서 깊이
기도하고, 신령한 말씀을 잘 듣고
행함으로 성자와 일체 되면, 신령해져
빨리 행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충성하고, 화목하고, 고생돼도 자기
책임을 하며, 성자를 사랑으로 대하면서
사랑의 불을 붙이고, 휴거의 때에 휴거에
해당되는 일을 전적으로 행한 자들을
영계에서 보면, 생각지도 못한 자들이
‘휴거의 영’이 되어 ‘휴거의 높은 차원’에
있었습니다.
<전환>
<성자와의 소통>은 같이 사는 자와 늘
통하듯, 아예 ‘생활’이 돼야 합니다.
<회개>는 누가 말을 안 해도 죄를
지었으면 자기가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바로 청산해야 됩니다.
죄를 짓고 시간을 끌면 자기 공적이
사라지고, 말씀을 들어도 무거운 죄 짐
때문에 행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회개해 놓고 또 죄를
지으니까, 이제는 자신이 없다고 하며
아예 회개를 안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죄를 보고 끌고 가니, 자꾸 죄를
짓는다며 포기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더
괴롭습니다.
죄를 지으면, 해를 넘기지 말고 즉시
성자와 분체에게 회개해야 사탄이
떠나고, 자기 육도 혼도 영도 죄의
사슬에서 풀려납니다. 고로 그때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행하게 됩니다.
마치 모기가 자기 살에 앉아서 피를
빨고 있을 때 즉시 때려잡듯이, 죄를
지으면 빨리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회개>란, ‘입으로 죄를 고하기.
그리고 다시는 그같이 안 하기’입니다.
- 가령 술과 담배를 했으면, 다시는 안
하겠다고 입으로 고하고, 그때부터 술을
안 먹고, 담배를 안 피워야 ‘회개한
것’입니다.
- 음란물을 봤으면, 다시는 안 하겠다고
입으로 고하고, 그때부터 음란물을 안
봐야 ‘회개한 것’입니다.
- 이성의 죄를 지었으면, 다시는 안
하겠다고 입으로 고하고, 그때부터
이성의 행위를 안 하는 것이 ‘회개한
것’입니다.
누구보다 자기가 자기 행위를 잘 아니,
자기가 자기를 매일 관리하며, 자기 육을
가지고 확실하게 행해야 됩니다.
회개한 후에 ‘몸’으로도 온전히 행했으면,
‘육’이 회개되고 구원된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각오하고 끝나면,
‘마음’이 회개된 것입니다.
<죄>는 그렇게도 자기에게 ‘짐’이 되고
‘해(害)’가 됩니다. 죄 때문에 회개할
때까지 죗값을 받게 됩니다. 또 구원자도
그 죄 짐을 지고 가니, 모두에게 큰
손해입니다.
고로 빨리 회개하여 없애자고 설교해도
1년, 2년, 3년, 5년, 7년씩 회개를 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개 편지가 오면, 선생은 그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기도하고 고해 줍니다. 그냥 쉽게
“용서한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죄지은
자의 죄를 고했을 때, 삼위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하십니다.
<용서받는 조건>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죄를 짓고 회개하여 용서받을 때까지,
‘구원자’는 죄의 짐을 지고 ‘죄를 지은
자’와 같이 십자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회개하면 ‘구원자’도, ‘죄를 지은 자’도
십자가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끝>
각자 ‘할 일’을 하면, 자기도 구원자도
십자가를 안 집니다. 고로 빨리 ‘할
일’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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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도 하는 사람들만 하지 말고
전체가 하고, <관리>도 하는 사람들만
하지 말고 전체가 하고, <강의>도 전체가
열을 내서 해야 ‘교회’가 부흥되고,
‘섭리사’가 계속 대역사를 일으켜 세상을
다스려 나가고, 시대 황금 어장을 잡아
나가게 됩니다! (힘 있게 외치기!)
<새 시대 새 역사>는 새 역사로 온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자기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안 하면, 물이 흘러
바다로 가듯 생명들이 사망의 바다로
갑니다.
<전도>는 휴거되는 데 있어서 그리도 큰
공적입니다. 목사, 강도사 급은 1년에
2명씩은 책임지고 전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사명이 인정되고, 사명이
상실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구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목사,
강도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을
구하지 못하면 호칭도, 사명도, 간판도
없어집니다.
왜 ‘목사, 강도사 직급’을 주겠습니까?
사명을 받고, 그 사명에 따라 능력 받고
생명을 구하라고 ‘권한’을 준 것입니다.
성자의 몸이 되어 생명들을 사망에서
이끌어 구원해 오라고 사명을 준
것입니다.
목사나 강도사가 된 지 3년, 7년, 10년
됐어도 전도를 한 명도 못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전도했으나 그 생명이
섭리사를 나갔으면, 또 전도해야 됩니다.
생명을 구할 수 있어야 ‘목사, 강도사’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도 전도 안 하는데,
어떻게 전도하라고 시킬 수 있겠습니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목사나 강도사는
못해도 1년에 기본으로 2명씩은 꼭
전도해라.” 하셨습니다. 책임분담
목표입니다. 앞으로는 교인들과 따르는
사람들이 목사와 강도사들에게 전도를 몇
명 했는지 수시로 물어볼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박진감
넘치게 영상 표현할 것!
선생은 여기 있어도 1년에 기본으로
몇십 명은 전도합니다. 편지로 합니다.
내게 편지로 연결해 주면, 마치 독수리가
사냥하듯 끝까지 하여 꼭 전도하고
맙니다. 능력이 있으니 합니다.
진로를 가르쳐 주지, 육계와 영계를
꿰뚫어 인생을 멘토링해 주지, 묻는 것에
대답해 주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매일
기도해 주며 사탄을 물리쳐 주니, 처음
신앙을 하는 자들도 전도되고, 신앙이
죽은 자도 살아나 다시 전도됩니다. <끝>
전도하지 않으면, 성자와 구원자와 일체
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성자>는 ‘구원의 근본자’이십니다.
고로 성자와 일체 되면, 할 일이
뭡니까? ‘구원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구원하고, 형제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휴거시키고, 형제들을 휴거시키는
것입니다. 이로써 성자와 일체 됐다는
것을 더욱 알게 됩니다. 믿습니까?
(하나하나 또박또박 말하되, 외치기!)
<전환> * 여기서부터 심정으로 외치면서
마무리해야 된다.
기도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그 기도를 받고 행하십니다. 고로
자기도 신령해져 빨리 행하게 되어
‘휴거’도 빨리 되고, ‘전도’도 잘하고,
‘강의’도 성령의 뜨거운 감동으로 잘하게
됩니다. ‘매일 신령한 기도’입니다.
선생은 매일 하루 세 번씩 각 나라
대통령들, 국회의원들, 판검사들,
정치인들, 경제인들, 군인들, 언론인들,
우상을 섬기는 자들, 종교인들, 악한
자들을 놓고 기도합니다. 또 예술 세계,
이성 세계를 놓고 기도합니다. 온 세계
전체를 위해 대표로 기도합니다.
매일 하루 세 번씩 각종 것들을 놓고
기도하지 않으면, 문제들이 터집니다.
그러니 불안해서 내 마음이 안정이 안
됩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표가 나게
잘됩니다.
온 세계가 화평하고 평화롭게 살도록
낱낱이 기도합니다. 모두 기도하지
못하니, 선생이 대표로 대신 해 줍니다.
행해 놓고 바랄 것을 바라야지, 안 해
놓고 바라면 되겠습니까?
선생은 ‘70일’ 기간을 정해 놓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났고, 두 달째입니다.
섭리사를 위해 낱낱이 기도해 놓았으니,
여러분 각자가 정신 차리고 행하기만
하면 얻을 것을 얻게 됩니다. 믿습니까?
조건 세워 놓고, “행하여 가지고 가라!”
하는데, 그것도 못 가지고 갑니까? 이는
“밥상에 밥 차려 놨으니, 빨리 와서
먹어라!” 하는 격입니다.
“돈은 이미 줬으니, 가서 찾아가라!”
하는 격입니다. 값은 지불해 놨으니
찾아가기만 하면 되듯이, 선생이 기도해
놨으니 이제 여러분이 행하여 얻으면
됩니다.
섭리사 전체를 놓고 기도해 주고,
개인까지 기도해 줍니다. 편지 안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다 기도해 줍니다.
기도로 편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줍니다.
그리고 ‘혼’으로 답을 줍니다.
육으로 편지를 써서는 조금밖에 못
줍니다. 고로 꿈이나 생시에 ‘혼’으로
답을 주고 깨닫게 해 줍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평소에 기도하고 신령해야 그
답을 받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말’로 하면, 한꺼번에 수만 명에게 다
감동을 주면서 사망에서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몸’으로 하면, 좌우
양손에 한두 명씩 잡고 겨우 사망에서
끌어냅니다. <끝>
<사랑>도 ‘몸’으로 하면, 한 명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뇌, 마음, 혼’으로
하면, 지구 세상 모두를 다 사랑해 줄 수
있습니다. 고로 최고 차원 높은 ‘뇌
사랑’을 하라고 했습니다. 육보다 뜨거운
사랑이 ‘뇌 사랑, 정신 사랑, 영
사랑’입니다. ‘마음’이 사랑으로 불타면,
‘육’도 사랑으로 불타게 됩니다.
<전도>도 ‘육’으로 끌어서 전도하니, 한
사람이 겨우 한두 명 전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외쳐 주면, 한자리에서 수십
명, 수백 명을 감동시켜 전도하게
됩니다. 말의 능력대로 만 명도
감동시켜서 끌어옵니다. 마음을 감동시켜
주면, 마치 시동 걸린 차같이 자기가
자기 몸을 끌고 따라옵니다.
선생이 축구 할 때, 선생에게 패스한
사람이 선생과 함께 제일 볼을 많이
넣었습니다. 1년에 150회 경기를
했는데, 2000골 이상 넣었습니다. 혼자
골인을 해도 실상은 패스한 사람과 같이
넣은 것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에게 생명을 패스한 사람이 제일
많이 전도했고, 선생과 제일 많이 의논한
교회가 작년에도 제일 많이
전도했습니다.
40
그 사람과 그 교회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비교해 봐요. 그 사람, 그 교회는
당연히 잘한다고 하지 마요. ‘왜 잘하게
됐을까?’ 생각해 봐요.
성자의 방법대로 하고, 늘 의논하면서
하고, 말씀을 외치면서 하니까 잘되는
것입니다. 그냥 잘되는 것은 없습니다.
잘될 행위를 하니까 잘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전도해서 생명을 기르면, 자기는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못 주니, 그
생명이 못 큽니다. 그렇다고 본인이
사명을 줄 수도 없습니다.
결국 선생이 성자와 의논하여 사명을
줍니다. 누가 어떻게 길렀는지 보고,
사명을 줍니다. 기록을 보고 사명을
줍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옛날에 ‘목사
직책’을 받고 ‘사명’을 받았는데, 혼자서
크니 사명이 없고 ‘무직’입니다.
10~15년씩 전도사를 하고 있고,
7~8년씩 강도사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과 소통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기른 자는 빨리 신학을 하게
하고 공적을 세우게 하여 ‘목사’, 혹은
‘강도사’로 임명합니다.
올해는 과연 ‘어느 차원의 누구’를
전도했는지, 그 공적을 볼 것입니다.
공적대로 자기 영혼이 거할 ‘천국 집’이
지어져 갑니다.
* 이제 말씀 마치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중요
환난이 와도 분체와 일체 된 자는
성자와 일체 되어 버틸 힘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힘을 받고 무서운
환난도 이깁니다.
그러나 개인은 힘이 없습니다. 사탄을
이겨야 되니까 자기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분체와 일체 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고로 희망을 가지게 되고,
힘이 솟아납니다. 흰 눈이 수북이 쌓여
있어도 봄이 오면 눈이 녹듯, 환난이
있어도 환난이 있어도 분체가 끝까지
잡아 주니, 결국 환난도 없어지고 그
사람도 살아납니다. 믿습니까?
(외치기) <끝>
성자의 사랑과 평강이 충만하여 모두
성자 사랑에 불타고 신령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41
===================== 주제 ===
놀지 말고 일하자
===================== 본문 ===
[ 마태복음 20장 1-16절 ]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
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
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
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
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
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
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
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
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
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
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
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
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
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
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
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
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
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할렐루야!
거룩한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먼저
성경을 보겠습니다. 성경은 마태복음
20장 1절부터 16절까지입니다. 그러면
20장 1절부터 몇 절만 봉독하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7절까지 봉독했습니다. 이후 나머지
구절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같은 한 맥락의 말씀입니다.
먼저 오늘 새로 온 여러분들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요즘에 말씀을 듣고 수료한 신입생
회원들, 오늘도 말씀을 잘 해 줄 테니까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가슴 깊이 머리 깊이 깨닫고, 큰 감동을
받고 또 한 주일동안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 인생이 하나 되어서 큰 역사의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온 새로운 신입생들도 환영합니다.
여러분에게 계속적으로 하늘의 귀한
말씀을 전해서 여러분이 인생의 곤고에
빠지지 않고 희망과 소망을 이루게 해
주기로 약속하겠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열심을 다 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람을
통해 불러주셨습니다. 감격하고 감사하며
말씀을 듣기 전에 전체가 기립해서
웅장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유감없는 주일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 지휘 단상으로 옮기겠습니다.
♪ 찬송가 580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1.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그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2.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봄 돌아와 밭 갈 때니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그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3.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곡식 익어 거둘 때니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날에 일 가려고 그
누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이제 주일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이야기를 먼저
들어볼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시대를 깨우쳐
주기를 “천국은 마치 이러하다. 하나님은
마치 이러하시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대하는 것이 바로 이러하다.”
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이 구절을
그냥 봐서는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못
합니다. 왜 이런 비유를 하셨나도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이 어떻게
품군을 얻는다는 이런 비유가
필요하나?’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이
그러하다. 이 세상에 현재 하나님의
역사를 이렇게 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입장에서 20장 1절부터 16절까지
비유해서 말씀하셨다고 알면 되겠습니다.
현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때에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일군들을
찾으러 나간 어떤 주인의 입장과 같다.”
했습니다. 그 주인은 곧 하나님입니다.
주인은 곧 메시아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포도원은 그 시대의 종교를 말합니다.
예수님 시대 때 신약의 종교, 신약의
역사가 이러하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은 “성약역사가 입장이 이러하다.”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 일꾼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일꾼들을 데려와야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른
아침에 거리에 나갔더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포도원에
큰일을 할 거리가 많이 있는데, 와서 일
좀 해 달라. 그러면 내가 일하고 나서
하루 품삯을 꼭 주겠노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42
그리고 또 가다 보니까 오전 10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우리
포도원에 일 좀 하려고 하는데 일꾼이
필요하니, 일 좀 해 달라. 값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많이 줄 테니까
와서 일 좀 해 달라.”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열한 시, 열두 시, 오후 한
시, 두 시, 세 시에도 나가서 “우리
포도원에 일들이 있으니 와서 일 좀
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니, 이제 가서
일을 어떻게 합니까?” “내가 상당한
금액을 줄 테니 일 좀 꼭 해 달라.”
그 후에 또 가다보니까 오후 5시가
되었는데, 장터에서 그때까지도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놀지 말고 우리
포도원에 와서 일 좀 해 달라. 뭐
하느냐. 놀고 있지 말고 일하자.”
“우리에게 일시키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포도원에 와서 일하자. 상당한 값을
주리라.” 그래서 장터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이 상당한 값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일을 하러 갔습니다.
온종일 일을 한 후 일이 다 끝났을 때
주인이 와서 먼저 온 자로부터 나중 온
사람에 이르기까지 품삯을 줬습니다.
일찍 온 사람들에게 수고했다고 하루
품삯을 줬습니다. 그 후에 쳐다보니까
늦게 온 사람들에게 자기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이여, 우리는 8시간 일했고, 그들은
5시간밖에 일을 안 했는데 어떻게 그리
많이 주나이까?”
“주인이 많이 주든 적게 주든
당신들에게 약속한 것을 주면 되었지 뭘
그것을 묻느냐. 예의가 없는 말을
하느냐.”
“아니, 우리는 8시간 일했고 이
사람들은 5시간 일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주나이까. 그것도 못 물어봅니까?”
“그건 내 마음인데, 주인 것을 가지고
주인 마음대로 하는데 그것을 왜
물어보느냐. 주인의 마음이다.” 하니까
여기에서 불만을 품었습니다.
“우리는 8시간 일했고 그 사람들은
5시간을 했으면 가령 우리에게 10만원을
주면 그 사람들에게는 7만원만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보다
더 많이 줍니까?”
“그것은 나 주인의 뜻이다. 주인이
그들에게 손해가게 주겠느냐. 다 일한
만큼 준 것이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너희가 악하니까 나를 악하게 보느냐.
그렇지 않다. 내가 선하게 모든 것을
분배했노라.” 했습니다.
“천국은 마치 이와 같이 이러하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일을 하시는데 이와
같이 이러하시다.”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입장을 말한 것입니다.
신약 시대 때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서 일하신 것이 마치 포도원에
일하라고 보낸 입장과 같다 했습니다.
포도원은 ‘종교’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운영하는 ‘종교를 포도원 농장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복음으로 불러 와서
“일 좀 하라. 와서 일하자. 왜 놀고
있느냐. 일하자.” 했을 때 “우리를 쓰는
자가 없습니다.” 했습니다. 인생은 쓰는
자가 없으면 놀 수밖에 없습니다.
거리에 나가 보면 사람들이 죽 앉아
있습니다. 일꾼이 필요하면 거기에 가서
“우리 일 좀 해 달라”고 하며 데리고
갑니다. 그런가 하면 아예 아침부터
온종일 일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우리 포도원에서 일하자. 상당한 값을
주겠다.”
두 가지로 쪼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본적으로 “너희가 일하면
그 돈을 꼭 주겠다.”
<두 번째> 늦게 온 사람들에게는 값을
안 정하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한 값을 줄 것이다.” 이 두 가지로
정해놓고 하나님은 일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입니까?
미리 정해놓고 품삯을 받는 세계를
원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일하는
대로 주면 좋겠다.’ 합니까.
각 나라별로 다르겠지만 한국은 열흘
일할 것을 자기가 닷새 만에 일을 해
버리면 열흘 한 만큼의 품삯을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깨도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일들을 하면 열심히
악착같이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시대 때 “이 시대가 그러하다.” 하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대가가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수고하는 대로 주는 대가가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그냥 주겠다고만 약속했지
얼마를 주겠다는 약속은 안 했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나 안드레나 요한과 같은 제자들이
모두 인생세계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기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했을 때 따랐습니다.
따르면서 열심히 해서 인생 중에, 젊은
사람 중에 더 이상 갈 수 없는 이상의
세계를 이루면서 미련 없는 삶들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삶,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은 정말로
위대한 삶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선생도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생명을 구원하는 자가 되게 하리라.”
했을 때 하나님을 따르고 주를 따라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돈 버는 일도 재미있고, 사업하는
일도 재미있고, 예술성의 일도
재미있는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같이 재미있는 것이 없습니다.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그런 것을
다 포함해서 합니다.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을 왜 모릅니까. 비교를 하지 말라
했습니다. “아예 비교를 하지 마라.
여호와를 섬기고 즐거워하며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것, 시대를 좇아 사는 것 같이
보람 있는 것이 어디 있느냐. 세상에서
사업하는 것에 비교를 하느냐. 비교를
하지 마라.”
보다 멋있고 이상적인 세계의 삶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고생도 하고, 어려움을 겪고,
인생 포기작전도 하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자포자기도 하고... 그럴지라도
그런 세계에서 계속 기어 올라오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겪고,
느끼고, 밟히고, 몸부림치다가 ‘끝났다.
이제는 끝났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런 세계까지 갔을 때에서 하나님은
“봐. 됐지. 이제 더 이상 갈 수 없지?”
“더 이상 갈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인도할 때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구나. 주가 나를 인도하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시대의 포도원에 여러분이
불림을 받아 왔습니다. “와서 일하자.
상당한 값을 주리라. 내가 너희에게
약속하리라. 상당한 값을 주리라. 오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한 값을 줄 테니까
와서 일하자.”
43
하나님의 이 시대의 성약 나라의
포도원에, 이 사업지에 여러분이 불림을
받고 왔습니다. 일찍 온 사람, 늦게 온
사람, 더 늦게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삯은 하나님이 정한 기본적인 기본금이
있습니다. 기본금이 있는가 하면, 그
수고하는 대로 대가를 주기도 합니다.
요즘에 회사들이 경영하는 것을 보면
이런 상태로 행하는 것을 봤습니다. 한
달의 기본급 얼마이고, 나머지는 얼마나
뛰고 달리느냐에 따라 거기에 해당되는
축복을 해 줘서 해당되는 일을 한 만큼
대가를 받도록 경영을 합니다. 그래서
실력대로 얻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요즘의 회사들이 하는데, 이미
이런 상황을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종교 경영에 적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런 방법을 이미
2000년 전에 하셨다는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잘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 우리에게도 이런
경영을 하십니다. “기본금은 항상
주신다. 그리고 나머지는 상당한 값을
주겠다고 했으니 수고하는 대로 주리라.
열심히 하면 하는 대로 주리라”
하십니다. 행한 대로 준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오래되고 일을 못
해도 하나님이 주는 기본금은 항상
받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루의 일을
했으니까 받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들, 늦게 온 사람들은 늦게 왔다고
악착같이 열심히 하다보니까 주인의 눈에
띄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여러분이 놀지 말고 일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주일말씀의 주제가 “놀지 말고
일하자.” 입니다. “놀면 안 된다. 노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지. 아니, 오전까지
노는 것은 몰라도 오후까지 놀고 있어?
왜 노느냐.”
“일거리가 없어 놉니다. 누가 우리를
쓰는 자가 없어서 놀고 있습니다.”
“정말로 놀고 있네. 때가 어느 때라고
놀고 있느냐.”
“6년 동안 우리가 환난 때문에 일을 못
했는데 놀아서 쓰겠느냐. 일해야지.”
“놀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자. 일한
표는 있는데 논 표는 없으니까 부지런히
일하자.” 전도해서 가르치고, 그리고
본인도 성장하고, 그리고 교회 일을 돕고
교회에서 열심히 뛰고 달리자는
것입니다. 젊었을 뛰어야 됩니다.
선생은 어렸을 때에 ‘참 인재가 썩고
있다. 나도 그 나름대로 인재인데
교역자들이 설교만 하고 그냥 그것으로
끝난다. 인재가 썩고 있다. 가르치고
만들면 훌륭하게 쓰여지는데 현재
기독교가 지도자들이 약하다. 지도자들이
지도를 제대로 못 한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안되겠다. 여기서 내가 있을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양식을 채우고, 내가 더
말씀으로 채우고 더 뛰면 되지 않겠냐.
교역자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서는 양이
안 찬다. 더 하자.’ 하면서 기도도 더
하러 다니고 말씀도 더 보고 전도도
하러 다니니까 양이 찼습니다.
마치 굶은 사람, 배고픈 사람이 양이
채우듯이 자꾸 더 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뛰고 달리면서 열심히 해야
됩니다. 열심히 뛰고 달리고 양을 채워서
산에 가서 밤새도록 기도하고, 그리고 또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날만 노래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열심히 뛰고 달렸습니다. 열심히
뛰고 달리면서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나아갔더니 이제는 이 세상으로 저
세상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들면 엄청나게
쓰여진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장
눈에 들면 엄청나게 쓰여지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하나님의 눈에 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쓰시겠다’ 하면서 열심히 해야
됩니다.
‘충성’이라는 단어는 여러분이 해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쟤는 정말 충성하는구나.”
이것을 늘 알아야 됩니다. 충성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뼈빠지게 계속 해야 됩니다.
그러면 주인의 눈에 띄는 것입니다.
충성하고 열심히 하며 젊음을 놓치지
말고 10배, 100배, 1000배 열심히
써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단상의 꽃들을 보십시오. 계속 갈리지
않습니까. 일주일이 가면 갈려야 됩니다.
기간이 길어봤자 일주일입니다. 이와
같이 젊음이 꽃과 같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열어도 한 때 그 해에
열어서 익었다가 끝납니다. 인생은 한
마끼입니다. 두 마끼도 아니고 인생
일생이 한 마끼입니다. 제대로 해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10배, 100배, 1000배
얻는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놉니다. 하는 사람은 10배에서 100배,
1000배를 하는데 안 하는 사람은
그대로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십시오.
목숨을 걸고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상당한 값을 줄 것이다.
상당한 값을 줄 때 부지런히 일하라.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하자.”
일하려면 건강해야 되겠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일하게 되었으니
열심히 일해야 되겠습니다. 놀면
뭐합니까. 놀면 무(無)입니다. 일해야
무엇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는 자에게 자꾸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사장들은 일을 많이 했다고 봅니다.
사장은 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계속 일을 했던 것입니다.
사장이 그 회사를 일으켜놓고 이제는
혼자 힘으로는 하지 못하니까 많은
사람을 데려다가 일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장은 왜 맨날 노는데 돈이 생기지?’
이렇게 생각하는 자도 있지만 사장이 그
회사를 경영하기까지 청춘이 늙을 때까지
일을 한 것입니다. 회사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자가 사장들입니다. 제일 많이
뜁니다. 사장들은 5배, 10배가 아니라
30배, 50배, 100배 뜁니다. 그러니까
사장입니다.
여러분도 지도자가 되면 따라오는
사람들보다 5배, 10배, 20배, 30배
뛰어야 됩니다. 그래야 잘되고 형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이 사람처럼
“왜 우리는 이만큼만 줍니까? 많이
줘야지 왜 이것만 줍니까?” 그 소리를
안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면서 열심히
하자.” 알겠어요? 믿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죽도록
충성하자.”
전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전도하는 것 같이 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재미있고 좋고, 인생을
구원하는 데 크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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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전에도 놀고 오후에도 또 놀 것입니까.
오전에는 놀았으니 오후에는 놀면 안
되겠습니다.
놀았으니 이제 일하자!
공생애 기간이 지나가고 이제는 부활생애
역사입니다. 부활생애 때는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10배, 100배, 1000배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때 두 때 반 때 기간에 참고
견디며 공적을 세우고 조건을 세워
놓았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끌어다가
두드려 패고 우리를 괴롭히고,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우리의 권세가
깨어지기까지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사탄이 못 건드리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끄덩이를 잡고
잡아당기고 때리려면 때려라. 마음대로
하라.” 해서 다 하고 끝나고 갔다는
것입니다. 다시 또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쓰린 고통을 받았던 것,
몸부림을 쳤던 것, 한을 품었던 일들을
이 부활기를 통해서 한없이 해야 됩니다.
그냥 그럭저럭 해서는 안 됩니다. 원한이
되어서 일하겠다고 했던 것을 한없이
해야 됩니다.
적어도 1차 6년 동안은 밀어붙일
것입니다. 고통 받은 만큼 앞으로 7년
동안은 멋있게 계속 밀어붙일 것입니다.
그러면 7년 동안 고통 받은 한이 1차
풀릴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 가지고
되겠습니까. 7년 동안 밀어붙이면서 1차
이 복음의 포도원에서 일을 하는 데에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모으고 헤쳐야 되겠습니다.
“일하라!”
“할 일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종교세계에서 일하는
것을 적은 것으로 보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봅니다. 웃기네, 웃겨, 정말
웃깁니다. 웃기는 것도 여러 가지인데
비웃깁니다. 비웃는 웃음을 말합입니다.
종교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는
것을 그렇게 작은 일로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그렇게 작은
일로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축복해 주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축복한 것이
얼마나 큰지를 감히 비교를 하지 말아라.
어떻게 비교가 되느냐. 비교하지 말아라.
악인이 모은 재산을 의인에게 다 바치게
해 버린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안 바치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가
죽기까지 하면서 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역사의 기틀을 잡으면 이
세상부터 영원까지 주권을 잡고 흔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침에 기도하는 가운데 크게 느낀 것이
있는데, 오랫동안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행복한 시간일지라도, 아무리
사랑의 시간일지라도 짤막한 시간에
누리고 그것으로 끝난다면 아무 것도
아니고 허무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오랫동안 영원히 역사가
진행되도록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사탄들이 막고 방해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지랄지랄 개지랄들을 합니다.
영원히 축복받고 가는 길을 막습니다.
그런 축복받는 사람들이 없어져 버려야
자기 머리가 안 아프기 때문입니다.
잘되는 것은 안 보여야 머리가 안 아픈
것인데, 잘되는 것이 보이고 자기는 안
되니까 시기 질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6수면 다 끝나고
7수면 다 끝납니다. 때가 되면 다
끝납니다. 5월, 6월, 7월에 산에 그렇게
무성했던 풀들이 9월부터는 사라집니다.
때가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때가 되기
전에 해도 안 되지만, 때가 되었을 때는
반드시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하자는
것입니다.
빛나게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그냥
그럭저럭 살면 안 됩니다. 인생 빛나라고
이름을 ‘빛나’라고 지어 준 자도
있습니다. 그는 빛나게 살 때 기쁜
것입니다. 이름까지 좋게 지어 줬는데 안
하면 안 됩니다. 빛나라고 ‘빛나’라고
이름 지어 주고, 각종으로 이름들을 지어
줬는데 열심히 하니까 너무 좋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인생을 멋있게
아름답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선생님 이름도 해와 달이 들어 있습니다.
“해같이 빛나게, 달같이 광명하게
아름답게 멋있게 인생을 살자” 하며
이름값을 하는 것입니다. 이름값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 이름값을 하면서
열심히 살기 바랍니다.
나는 포도원 주인입니다. 여러분에게
실제적으로 실감적으로 야기하겠습니다.
나는 포도원 주인인데 여러분을
불렀습니다. “와서 일하라. 내가 상당히
주리라.” ‘상당히 준다는 이야기한 지가
옛날인데 언제 주려는가 모르겠다. 인생
다 늙는데...’
“그동안 줬잖아.”
“언제 줬어요?”
“그동안 너희에게 줘 왔어. 주면서 계속
역사를 해 온 거야. 하루 품삯을
밀리지를 않아. 남의 돈 가지고 있다가
어떻게 하려고. 일 했으면 줘야지.
100% 줬다. 모두 줬다.”
“어? 받은 것이 없는데요.”
“뭘 안 받았어. 다 쓰고 먹고 모두
인생을 살아왔으면서.”
여러분에게 상당한 값을 주겠다고 해서
모두 오지 않았습니까. 아직 일하는 중에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 축복해달라고, 이들이 와서
일했으니 축복해 주시고, 명예도 주시고,
그리고 각종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축복해 주고, 인생을 축복해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늘 그럽니다. “너희들을 위해
축복했으니 잘 될 거다. 반드시 그
축복이 다른 데로 안 가고 너희들에게
갈 것이니 모두 받아라. 축복을 받고
잘되도록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기쁘게
살도록 하라.”
선생도 포도원에 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상당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갚아주셨습니다. 말을 할 수 없이
갚아주셨습니다. 사탄과 마귀들과 나쁜
놈들이 또 시기할까봐 말을 안 하는
것입니다. 상당한 값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애인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신부가 되었으니
하나님 것이 우리 것이 된 것입니다. 쓸
수만 있고 다스릴 수만 있으면 하나님이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동으로 서로 해가 뜨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너희 땅이니라. 남에서 북까지
너희 땅이니라. 밟기만 하면 너희 땅이
될 것이다.” 했습니다. 얼마나 큰
것입니까. 밟기만 하면 우리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월명동도 우리가 밟아대니까 우리 땅이
되지 않았습니까. 온 세계는 복음으로
밟는 대로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10명 아니라 100명 아니라 1000명,
10000명씩 복음을 전한다고 각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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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지 그저 ‘올 여름에는 2명
전도해야지, 3명 전도해야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2명, 3명도 기르다가
죽지 않습니까. 100명, 10000명
하겠다, 10만명 하겠다!! 하며
밀어붙이면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오늘 주일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듣고 새겨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일하고 있다. 놀지 말아라.
왜 노느냐. 교역자 발령을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놀지 말아라. 무엇을 하라. 왜
대기만 하고 있느냐. 계속 하도록 하라.
교육도 받으면서 전도하도록 하라.
의식하지 말도록 하라. 부딪혀 하도록
하라. 무엇이 겁나느냐. 하나님이 주신
주권이 제일 크다. 가장 위대하다. 가장
멋있다. 가장 좋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
시대에 우리가 펴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을 작은 일로
생각하지 말아라. 대단히 크고
큰일이다.”
세상에 대통령의 주권이 그렇게 큽니까.
크기는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주권이 그렇게 작은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니라. 이렇게
큰 주권을 받고 왜 하나님의 일을 안
하느냐. 부지런히 하라. 그러면 내가
상당히 주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자신 만만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상당히 주시고 나에게 주듯이
항상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는 일할 때마다 ‘정말로 내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다.’ 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랬습니다. 그림을 그릴지라도
‘야, 내가 큰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크게 갚아 주고 계시다. 인생을 사는
것도, 건강을 볼지라도 참 은혜를
받았어. 정말 확인해보니까 은혜를
받았구나.’ “정말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격하며 이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써야지요.”
그리고 명예로 볼 때도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명예를
주셨습니다. 큰 벼슬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환경을 주셨습니다. 성지
땅을 주셨으니 얼마나 큽니까. 큰 회사
그룹의 회장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크겠습니까. 그쪽 면으로는 클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와 바꾸겠습니까.
내가 한 나라의 주권자와 사명을
바꾸겠습니까. 어떤 나라 대통령이
나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나보다 훨씬
부러운 일을 하십니다. 나도 할 수
있으면 다 집어던지고 하고 싶습니다.”
했습니다.
또 98년도에 어떤 사람은 나에게 오더니
자기 사업지하고 바꾸자고 했습니다.
사업지가 얼마나 크냐고 했더니 국가
공정가격이 500억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그 사업지를 뭐하고 바꿉니까?”
했더니, 이곳 월명동과 나를 따르는
사람들하고 바꾸자고 했습니다. 자기는
사업으로 인해 머리가 아프다 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외치고, 선을 가르치고, 악을 버리라고
하니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 대신 인계할
때 ‘꼭 이분을 따라 다니라’고 인계를 해
줘야 됩니다. 안 따라다니면 내가 회사를
다시 받겠습니다.” 회사가 어디냐고
했더니 서울 영등포 지역에 있다고
했습니다. 건물도 많고 엄청나다
했습니다. 그때 당시 회사가 돌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내가 깨달았습니다. ‘내가 작은
일로 생각할까봐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는구나. 이렇게 크다. 이렇게 큰
역사다.’ 라는 것을 그때 그를 통해서
더욱 깨달았습니다. ‘야, 이게
큰일이구나. 내가 큰 회사 사장보다 더
낫구나. 이 사람도 나를 부러워하는구나.’
여러분이 귀한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자기 직분이 귀한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것을 모르면 정말로 받은 것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약 나라의 포도원에, 종교의
세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와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감독이 되어서
일하니까 여러분은 감독의 말을 듣고
부지런히 열심히 놀지 말고 일하기
바랍니다.
어디서든지 무엇을 하든지 꼭 하되 자기
공적은 자기 앞에 가는 것입니다. 남이
못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선생이 몰라
줘도, 안 봐도 열심히 하십시오. 일일이
보고를 다 안 해도 하나님이 보시니까
자기 위치에서 충성하며 열심히 일하고,
일에 대해서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이야기를 하고 건의를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 좋은 일을 맡길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나에게 묻지 말고
‘아, 나는 이런 일을 해야겠다.’ 하는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포도원에서 일하는데 ‘이제
포도원에 거름하는 일이 끝났으니...’
하고 놀고 있으면 “왜 노느냐?”
“거름하는 일이 끝나서 논다.” “그러면
꽃이 많이 열렸으니 꽃을 따내야지.
전지가위질도 해야지.” 한다는 것입니다.
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포도원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서 일을 해야 됩니다! 왜 남 일
같이 생각하면서 머슴처럼 일을 합니까.
머슴은 항상 정해진 값만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늦게 온 사람들은 자기 것 같이
부지런히 했습니다. ‘늦게 왔으니까
열심히 해야지.’ 그러면서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일이라는 것은 일을 하면 할수록 늡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5시간 할 것을
1시간에 하게 됩니다. 일의 요령을
배워서 그렇습니다. 그림도 오랫동안
많이 그려보면 금방 척척척 그리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포도원의 일들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일하라고 보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할 일을
주십니다. 어떻게 할 것을 주십니다.
일하면서 싸우면 주인이 너무
싫어합니다. “여보시오. 아까 토닥토닥
하더니 결국 싸움이 일어났군요. 괭이
들고 삽을 들고 싸움이 붙으면 큰일
납니다. 피를 보는 것입니다. 제발
자중하시오. 내가 여러분의 일을
하다보니까 내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하면서 싸우지 말고, 주먹 가지고
싸우는 일은 없을지라도 싸우다보면 일을
못하니까 주인에게 손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싸우려면 일하지 마라.
포도원에서 나가 싸워라. 섭리를
나가라.” 이런 입장과 같습니다.
일하면서 싸우지 말고, 기분 좋게
일하고, 노래하면서 일하고, 열심히
일하면 주인이 흥겨워서 새참도 갖다
주고, 더 주고 싶고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일하면서 인상 찌푸리고
일하면 그것도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런 일을 모두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 그래야
남아진다.” 세상일을 해도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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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을 할지라도 정말 실질적으로
하나님 앞에 유익을 줘야 됩니다.
회사를 다닐지라도, 세상에서 어떤
학문을 할지라도 그 학문을 함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실질적인 유익을
줘야 됩니다. 안 주면 나부터도 인정을
안 해 줍니다.
세상의 일을 하고 직장을 다닐지라도
하나님 앞에 이익을 줘야 됩니다. 물질의
이익을 주든지 나아가서는 어떤 이익을
줘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거기에
참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지가 벌어서 지가 다 먹고, 구원이나
받으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래. 기본적인 것은 너희에게 해
주겠다. 내 것을 가지고 내가 너희가
행한 대로 준다. 그러나 상당한 역사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역사는 내 역사다.’ 하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성약의 역사는 내
역사다. 내 것이다. 내가 책임을 져야
된다’ 하고 일을 해 왔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사고로 일을 하는지
압니까. 월명동에서 일할 때도 ‘이것은
내 집이다. 내가 별장을 만든다. 내
집이다.’ 이렇게 하면서 일을 해야
됩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서
일을 하라!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자기
것입니다. 원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자기
것으로 가지고 일을 하라. 그러면 너희들
것이다. 실컷 써라. 멋있게! 세계도 계속
만들어 나가자.” 자기 것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것이다.’
하는 소유권의 사고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내 것이다.’ 하며
일을 해야 됩니다. 내 것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열심히 해야 됩니다. ‘내 일이다.
내가 해야 하지 다른 사람은 못 한다.’
이러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을 할
때 그런 마음을 가져야 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할 때 부딪히지 말고 다치지
않게 일을 해야 되고, 심정 상하지 않게
해야 됩니다. 일을 하다 보면 이 주관 저
주관이 나오고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합니다. 교역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이야기를
들어봐야 되겠습니다. 감독보다도 일을
직접 해보면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왜 거기를 안 파내느냐. 파내지.”
“못 파겠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이 사람아, 그러면 나와! 당신 안
쓰겠어.”
다른 사람이 해도 못 판다고 해서
봤더니 바위 덩어리였습니다. 그래서 못
판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감독들은 잘
지켜보고 왜 못 하는가, 왜 안 되는가를
지켜봐야 됩니다. 전도가 왜 안 되는가,
왜 이렇게 되는가 저렇게 되는가 보라는
것입니다.
자신 있게 해야 됩니다. 끝까지 해야
됩니다. “너희 믿음이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 그것도
없느냐” 했습니다.
열심히 하던 자들이 환난 때 나가서 안
나옵니다. 내가 지역을 책임진
교역자들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애가 안
나옵니다. 이제는 전혀 올 수가
없습니다.” 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기도하면서 그런 애들이라도 꼭 오면
좋겠다 하면서 계속 기도했더니 어제
월명동에 와서 내가 대화를 했습니다.
이와 같이 계속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 우리가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안 잊어버리고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야 되겠습니다. 끝까지 1년씩,
2년씩 계속 해야 됩니다. 내가 그랬지
않습니까. “사람이 신앙이 죽으면 윗목에
가만히 갖다 놔라. 그러면 또 살아난다.
때가 되면 살아난다. 갖다 묻지 말아라.
묻으면 안 살아난다. 윗목에다 해놓고
수시로 언제 살아나나 하고 떠들어보라.”
선생님이 어렸을 때 거의 죽어서 우리
어머니가 흰 천으로 덮어놓았답니다.
해 넘어 갈 때 묻으려고 떠들어봤더니
눈만 살아서 눈을 까막까막 거리고
있더랍니다. 눈이 살았는데 갖다 묻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덮어두었다가
밤에 묻으려고 밤에 또 떠들어 보니까
눈을 감고 있더랍니다.
‘아 죽었구나.’ 하고서 덮으려고 하니까
눈을 뜨더랍니다. 눈 한번 뜬 것 때문에
안 묻었습니다. 눈을 안 떴으면 그 때
묻었다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큼만 살아
있어도 안 묻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다
죽고 조금만 살았어도 내가 안 묻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묻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많이 살았는데
묻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쟤는
틀렸다. 쟤는 말 안 듣는다.
틀려먹었어.” 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명을 잘 살리는 줄
압니까.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신앙이 있으면
긍정적으로 봅니다. 바늘구멍만큼만
신앙이 살아 있으면 됐다고 합니다.
“자신 있다.” 합니다. “너는 못해도 내가
다시 너를 살릴게.” 합니다.
“정말루요? 살려주세요.”
“하루아침에 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가다보면 살아난다. 불같이 살아날
것이다. 기질을 가지고 열심히 하자.”
이와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 생명을
살리는 일, 구원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을 갖고 해야 되겠습니다.
모든 일을 자신을 갖고 해야 됩니다.
IMF 시대라고 해도 자신 있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 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닙니다. IMF가
있을지라도 긍정적인 사람은 다
승리합니다. IMF가 아닐지라도 부정적인
사람은 성공을 못하는 것입니다.
섭리를 오다가 나간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고들을 했습니다. 부정성이
많았습니다. “힘들다. 안 된다. 뭐하다.”
했습니다. 웃깁니다. 안 되기는 뭐가 안
됩니까. 가면 갈수록 자꾸 잘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가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기는
역사가 일어나리라.”
그러면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러면 다 같이 기도하고 축도까지 해
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포도원에 부름 받은
사람들의 비유와 같이 오늘날 이 시대에
부름을 받은 우리들에게 “충성하여
열심히 해서 포도원에 일하라. 놀지 말고
일하라. 왜 노느냐. 왜. 놀지 마라.
세상일은 세상일이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라. 지금은 봄이 왔다. 지금은 부활
역사가 펴가고 있다. 환난 때가 아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며 뛰고 달리자.
하나님의 일이 작은 일이 아니다.
큰일이다. 영원히 후회 없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 열심히 일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해 주시옵소서. 내가
이들을 축복하오니 이들에게 하나님의
일자리를 주시고, 포도원에 와서 이
섭리나라에 와서 일하게 해 주시옵소서.
너무 너무 일들이 많이 있사오니 열심히
일하게 해 주시옵소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옵소서.
47
“놀지 말라. 생각한 것을 실천하라
그러면 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바치고
드린 모든 자에게 10배, 100배 채워
주시고,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며 일한
모든 자에게 충만히 채워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이 온 지구촌에 있는
모든 섭리나라에 충만하고, 지구촌에
있는 모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자들에게 충만하며, 이방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이끄심이 크게 더해 주시옵소서.
삼위의 능력과 권능과 은혜와 나의 빈
평안이 영원하고 영원할 지어다.
네 주일말씀 여기서 마쳤습니다.
10대들도 열심히 일하고, 자기의 신앙을
꼭 지켜야 됩니다. 신앙을 안 지키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학교 공부하고 뭐 하는
것을 지그재그로 잘 해야 됩니다. 그까짓
학교 공부하면서 하면 되지, 학교 공부
때문에 못한다고 할 것이 뭐 있습니까.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직장 다닌다고 못합니까. 직장에
전도하러 간다고 생각하면서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고갈 때 하기
바랍니다. 못 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부끄러워하지 마라. 전도할 때
부끄러워하면 평생 영원히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주일말씀 모두
마치겠습니다. 신입생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까. 일하라고 여러분을 불러 온
것입니다. 인생 문제 해결하라고
하나님이 불러왔으니까 아리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을 모두 마치고,
빠이빠이 안녕!
========== me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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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가느냐가 문제다
===================== 본문 ===
[ 여호수아 10장 12절 ]
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
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
다 하매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실한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3월 마지막 주 주일입니다.
마지막 주 주일은 새로 온 사람들을
위해 말씀해 줍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자의 말씀은
전체 누구에게나 그 차원대로 해당이
됩니다. 마치 때가 되어 식사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하듯이, ‘영혼의
양식’인 <성자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오늘은 성자께서 분체인 선생에게 무슨
말씀을 해 주셨는지, 모두 궁금할
것입니다.
주제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가느냐가 문제다.’인데요, 주제만
들어서는 방향 잡기가 힘듭니다. 말씀을
들어 보면, 정말 희망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온 세상을 다 뒤져 봐도
찾을 수 없는 ‘최고로 영원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여 지식의 차원을
뛰어넘어 말씀을 깊이 깨닫고 시인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주시는 축복
받기를 축원합니다.
<전초>
이 달에 새로 오신 여러분, 그리고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수료해서 신앙을 키워
가고 있는 여러분 잘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도 이 시대에 성자가 주시는
말씀의 근본을 깊이 배우는 만큼 희망이
이루어져 기쁨입니다.
‘말씀을 깊이 배우고 깨달은 자’와
‘말씀을 깊이 안 배우고 깨닫지 못한
자’는 ‘자기 최고의 희망과 꿈이
이루어진 자’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자’같이 차이가 납니다.
세상에는 ‘자기 소원을 이루고 사는
자’와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해 희망에
차서 사는 자’가 있습니다. ‘희망을
이루고 사는 자’와 ‘희망을 아직 이루지
못하고 사는 자’ 둘 다 기뻐하며 삽니다.
그러나 누가 희망을 이루고 기뻐하며
사는지, 누가 아직 희망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목적을 향해 희망 있게
사는지는 ‘겉’만 봐서는 모릅니다.
두 쪽 다 기뻐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희망을 이룬 자만 불안하지 않고
100% 기뻐하며 삽니다.
‘이 시대 희망을 찾은 자’는
<새 시대 사람>이고, ‘이 시대 희망을
못 찾은 자’는 캄캄한 기성에 사는
<구시대 사람>입니다.
말씀을 다 듣고 ‘시대’를 깨닫고 사는
자들은 정말 희망이 이루어져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었어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자들은
희망이 마음에 뜨겁게 불타지 않습니다.
열 일 제치고 ‘자기’를 위해 부지런히
말씀을 배워야 됩니다. 깊이 깨닫도록
배워야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여러분의 인생을 놓고 행하시는
일이니,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보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 시작>
*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지금
이때가 어느 때인지, 도표를 그려 주면서
아주 간략하게 핵심만 설명해
주겠습니다.
(이 부분에 ‘섭리역사 흐름’에 대해
‘휴거 역사’에 이르기까지 간단하게
핵심만 첨가할 내용 있음. 부흥강사
설교 시 첨가)
* 섭리사에 와서 말씀을 깊이 배우고
깨닫고 나면, 반드시 <휴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때가 당대에 한 번뿐인
<휴거 기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왜
나는 섭리사에 늦게 전도됐을까?
섭리사에 일찍 온 사람들도 휴거되는 데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늦게 왔으니
어쩌나?’ 합니다.
비단 이제 섭리사에 온 사람들뿐 아니라
섭리사에 온지 1~2년 사이에 온
사람들이나 3~10년 된 사람들도 이
시대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휴거 기간>을 깨달아 ‘시간적으로 볼 때
내게는 시간이 부족한데, 과연 나는
휴거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때가 그런 때이니,
이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마치 올림픽에 나가서 경기를
하는 사람이 ‘분’과 ‘초’를 다투듯 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육>은 땅에서 휴거되고, <혼>은
혼으로서 휴거되고, <영>은 영으로서
휴거돼야 합니다.
<육>은 ‘땅’에서 휴거를 이루는데,
육이 ‘시대 구원자’를 맞고, 그가 전하는
<시대 성약 말씀, 휴거 말씀, 신부
말씀>을 듣고 행하여 성자와 사랑 일체
됨으로 이룹니다.
그러면 <혼과 영은> ‘자기 육의 행위’를
받고 ‘신부’로 변화됩니다. 그렇게 땅에서
살다가 성자 본체가 오시면, 혼이 영과
일체 되어 ‘휴거의 영혼’으로서 성자
본체를 맞고 <천국 황금성>에 가게
됩니다. <끝>
49
<전환>
‘휴거된 자’만 마음이 놓이고, ‘휴거되지
않은 자’는 신앙생활 한 지 오래된
사람이나, 이제 온 사람이나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휴거>는 돈을 내고 물건을 사 가듯 할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시대 말씀을
듣고 깨닫고 행함으로 육도 혼도 영도
변화되고 완성되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자의 사랑의 신부’가 돼야 휴거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사람이나, 이제 온 사람이나,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나,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중년이나, 청년이나,
청소년이나 시대 말씀을 듣고 자기가
행해야 되니까 절대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과 행실>이 필요하니, 누구라도
휴거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자기 성격과 근성을 고치는 것,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게 만드는 것, 성자를
사랑하여 자기 육과 혼과 영을 성자의
신부로 변화시키는 것 등은 누구든지
자기가 어떻게 될지 장담을 못 합니다.
자기가 행하면서 자기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육과 혼과 영을
변화시켜 자기 영을 휴거시키는 것은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 밥을 남이 대신 먹어 줄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먹어야 자기가
존재합니다.
- 운동도 남이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운동해야 자기가 건강하게
존재합니다.
-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남이 대신
사랑해 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사랑해야
사랑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휴거도 그러합니다. 자기 육이 시대
말씀을 듣고 깨닫고 행해야 자기 육과
혼과 영이 변화를 이루고, 점점 완성되어
휴거됩니다.
“너는 휴거되겠다.”, 혹은 “너는 휴거 안
되겠다.” 누가 말할 수도 없습니다.
<휴거>는 ‘인물’로나 ‘체구’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선수는 기본적으로 체격
조건이 되면 “야~ 이 사람은 운동선수가
되기에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으니,
운동선수가 되기에 유리하다.” 하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휴거>는 ‘겉모습’을 가지고서는
장담을 못 합니다.
“나는 간판이 있어.”, “나는 교수야.”,
“나는 사장이야.”, “나는 명예가야.”,
“나는 학벌이 좋아.”, “나는 인물이
좋아.”, “나는 키가 커.”, “나는 체력이
좋아.” 하며 “그러니까 휴거에 자신
있어!” 할 일도 아닙니다.
“나는 어려서 휴거에 자신 없어.”, 혹은
“나는 나이 먹어서 어른이라 휴거에
자신 있어.” 할 수도 없습니다.
간판이 좋으면 자존심과 교만이 앞서고,
뇌가 굳어서 강합니다. 고로 자기를
만들기가 더 힘듭니다. 그러나 자존심과
교만이 꺾이고 뇌가 풀리면, 누구보다
휴거되기에 유리합니다.
10대, 20대는 약하지만, 그 대신 성품이
아직 세상으로 굳지 않았기에 어른보다
자기를 빨리 변화시킬 수 있으니,
휴거되기에 유리합니다.
10대, 20대의 단점은 인터넷, TV, 썩는
세상 문화, 이성에 쉽게 빠지니
휴거되기에 불리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안 하면 휴거되기에 유리합니다.
성장한 청년들과 어른들은 힘이 있어서
휴거되기에 유리한 장점이 있으나, 자기
삶이 바쁘고 자기 배움에 바빠서 휴거에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이 단점입니다.
어른이나, 청년이나, 청소년이나, 인물이
잘났거나 못났거나, 잘살거나 못살거나,
키가 크나 작으나, 학벌이 좋으나 안
좋으나 ‘휴거되기에 유리한 자’는 이런
자입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세상을
구원하고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낸
‘시대 구원자’가 주는 <시대 말씀>을
정확히 배우고, 알고, 믿고, 깨닫고,
정확히 행하는 자입니다.
그 터전 위에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자신을 변화시켜 새롭게 만들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시대
구원자와 일체 된 자입니다. 이런 자는
‘휴거되기에 매우 유리’합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육도 혼도
영도 변화를 이루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성품을 닮게 되고,
‘성자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 ‘하늘의
신부’가 되고, ‘휴거의 영’이 됩니다.
<휴거>는 ‘겉모습’으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깨달았습니까? 누구나
그만큼 ‘장단점’이 있으니,
‘겉모습’만으로는 휴거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① 자기를 구원하고
휴거시킬 자가 누구인지 100% 알고,
② 그를 믿고 따르며, ③ 그를 통해
전해지는 <성자의 말씀>을 믿고 행하여
자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휴거됩니다.
<전환>
‘문제’에 대한 오늘의 핵심 말씀 : 중요
* 선생은 성자께 간구했습니다.
“지금은 <휴거 때>이며, <휴거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섭리역사로
오는 자들을 보면, 때가 때이니만큼
시간상 자기를 만들고 변화시켜 휴거시킬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러니 이대로는
휴거가 안 되겠습니다.
시간만 많으면, 내가 열심히 가르치고
도와서 모두 능히 휴거되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해가 지듯 <휴거
때>도 끝나니, 그때까지 ‘휴거되지 못한
자들’을 생각할 때 정말 안타깝습니다.”
* 지금은 <휴거 때>이고, 그나마 <휴거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시간이
부족하여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선생’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이며,
‘휴거된 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왜요? 선생과 휴거된 자들은 휴거되지
않은 자들이 휴거될 때까지 자기 몸같이,
자기 영같이 가르쳐 주고 관리해 주고
이끌어 줄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 선생은 또 간구했습니다.
“모두 휴거되도록 모든 것을 다 해
주었는데도, 아직도 <휴거의 가치>를
모르고 살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볼 때 뇌에 불이 나고 애간장이
탑니다.”
* 그리고 한 사람의 편지를 성자께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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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편지를 읽어 보니 이 급한 때에
이성에 빠져 살고, 자기중심으로 살고
있네요. 이런 사람은 내 시간만 뺏으니,
구원받고 휴거되기에 가능한 사람들만
손대야지,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 지금은 <70일 조건기도 기간>이니,
성자께 낱낱이 물어보고 대화했습니다.
“편지들을 보니 휴거되지 않은 자들은
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휴거
기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자들은 시간상 휴거가 힘들지 않아요?
또 요즘 새로 오는 사람들은 그나마
늦게 왔으니, 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은 잔칫집의 손님격이
아니에요? 새로 온 자들의 영들을 보면,
정말 어립니다. 그 어린 영들을 언제
키워서 휴거시키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또 이들을 지도하고 구원하는 ‘성자
분체’가 자신 있어야 되는데, ‘시간’으로
보나 ‘이들이 하는 것’으로 보나, 계산해
보면 자신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모두의 <휴거>를 위해 그동안 섭리역사를
키우고 성장시켜 온 지 올해로 36년이나
됐고, 그렇게도 <휴거>에 대해 뇌에 불이
나게 말하며 하늘의 비밀을 가르쳐 주어
<휴거>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그나마 이제 <휴거 기간>이 끝나 갑니다.
시간이 부족하니, 섭리사에 늦게 온
자들은 더욱 시간이 없습니다. 이
시간으로는 아직 휴거되지 않은 자들을
‘휴거의 영’으로 만드는 데 자신이
없습니다. 작년에 모두의 <휴거>를 위해
‘7개월 동안 절식 기도’를 하고, 올해 또
‘70일 절식 기도’를 하면서, 이들을
휴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좀 하다가 열이 식어서
마치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자가 뛰다가
말듯 하니, 해 보나 마나 시간상 어렵지
않습니까? 분체가 밖에만 있어도 어느
정도 자신하고 하겠는데, 모두들 내
심정도 모르고 살고, 휴거가 중한 것도
모르고 사는 이들을 쳐다보니
안타깝습니다.
<시간>으로 보나 <이들이 하는 행위>로
보나, 아직 휴거되지 못한 자들이 휴거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되나요? 하늘이 무너진 격인데,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까?” 하고, 성자께
간구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에 성자는 분체의 간구를 듣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전에 더 이상 신앙이 살기
어렵다고 했던, 한 생명이 있지 않았냐.
그 애를 연단할 때, 힘들다고 제 갈 길
가고 섭리사를 나가겠다고 했던 자가
있지 않았냐. 그래도 네가 내가 시키는
대로 해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그
생명이 다시 기적적으로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와 같이 다른 사람들도 내가
너를 통해 주는 말씀을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시간이 부족해도
누구나 휴거될 수 있다. 알았지?”
하셨습니다. (아멘!)
<잠시 쉬었다가>
* 오늘 ‘이 엄청난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지금 말씀할
테니, 정말 잘 들어야 됩니다.
이 말씀은 섭리사에 온 지 오래된
사람이나, 이제 온 사람이나, 인물이
좋은 사람이나 안 좋은 사람이나, 학벌이
좋은 사람이나 안 좋은 사람이나,
어른이나 청년이나 어린아이나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제 와서 휴거되는 데 충분한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더 잘 들어야
됩니다. 또한 섭리사에 온 지 오래됐어도
아직도 휴거되지 못한 안타까운 자들은
이 말씀을 잘 듣고, 지금! 말씀대로
실천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됩니다.
<전환>
‘문제에 대한 답’-오늘의 핵심 말씀:중요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 성자의 영원하고 귀한 말씀을 화면을
보면서 듣겠습니다. 정~말 잘 듣기
바랍니다.) <영상2> 오늘 말씀의 핵심,
중요
목적지까지 가는 데 있어서 시간이 많이
남았는지, 적게 남았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비행기’로 가느냐, ‘차’로 가느냐,
‘자전거’로 가느냐, ‘뛰어서’ 가느냐,
‘걸어서’ 가느냐가 문제다.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서
<시간 문제>는 해결된다. ‘비행기’로
가거나 ‘차’를 타고 속력을 내서 간다면,
먼 거리라도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다.
(잠시 쉬었다가) 휴거도 그러하다.
휴거되는 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도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도 ‘비행기’로
가듯이, 나 성자와 분체와 일체 되어
사랑 충만하고 성령 충만하여 간다면,
누구나 적은 시간을 가지고도 휴거될 수
있다. 또한 ‘차’를 타고 속력을 내어
가듯이, 나 성자와 분체와 일체 되어
사랑하면서 성령 충만하여 간다면,
이들도 휴거될 수 있다.
그러나 늦어서 시간이 없는데 자전거로
가거나 걸어가듯 ‘사랑’도 ‘말씀 실천’도
‘행실’도 안 한다면, 그만큼 어렵다.
남은 시간에 비행기를 타고 가듯
전심으로 빠르게 가느냐, 차를 타고 가듯
하느냐, 자전거를 타고 가듯 하느냐,
걸어가듯 하느냐에 따라서 ‘남은 시간을
가지고 휴거를 이루느냐, 못 이루느냐.’가
좌우된다.
그러니 <시간>만 따지고, 시간이 없다
하며 낙심하지 말아라.”
(하고,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 모두 ‘그릇된 행실’을 버리고, ‘근성’을
버리고, ‘육에 속한 것’을 버리고, 목숨
걸고 성자와 분체와 일체 되어 뇌에
불이 나서 비행기를 타고 가듯 행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모두 자기를 만들어
‘성자의 신부’로 완성시키는 것이
가능하고, ‘휴거되는 것’이 가능하고,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전환>
오늘 말씀을 잘 깨닫고 알았습니까?
정말 알았습니까? 설명은 다 했으니,
이제 각자 기도하고 각오하고, 차를 타고
속력을 내어 가듯 하고, 비행기를 타고
가듯 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자기 인생의 남은 시간이 적고, 또 어떤
일을 하는 데 남은 시간이 적고, 자기
소원을 이루는 데 남은 시간이 적고,
휴거되는 데 남은 시간이 적지만
51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행하며
사느냐>가 문제다.”라고, 성자는 오늘
새벽 분체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걷는 것, 뛰는 것,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 차를 타고 가는 것,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크냐. 마음과 정신과 행실에 따라,
비행기를 타듯 나 성자와 분체와 일체
되어 행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따라
<남은 시간>이 좌우된다.” 하셨습니다.
오늘 문제를 해결하는 ‘진리의 생명의
답’을 줬으니, 모두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힘을 내서 열심히 해야
되겠습니다!
‘답’을 받았으면, 전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에 힘들다고 하면서
섭리사를 나가려고 하던 자를 선생이
전적으로 이끌어 와서 다시 휴거의 길을
가게 한 것같이, 여러분도 그와 같이
됩니다. 믿습니까?
전도, 관리, 말씀, 만사의 모든 사건들과
일들을 두고도 오늘 말씀같이 행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하시면, 하루 만에 판국이 달라집니다.
성자의 이름으로 성자의 사랑과 평강을
빕니다.
<전환>
*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을 확실히 뇌와
마음에 새기도록 쉽게 <잠언>으로
정리하며 말씀해 줄까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일억 천만금과 같이 귀합니다.
1.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사람을 그릴 때 크게만 그린다고 해서
어른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른 모습으로
그려야 작게 그려도 어른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크게 그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작게 그려도 어른의 모습으로
그려야 된다.)
이와 같이 시간도 많이 쓴다고만 해서
많은 것을 하는 게 아니다. 적게 써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2. (* 다음 잠언도 화면을 보면서
듣겠습니다.) <영상4>
무거운 바위를 옮길 때도 ‘손발과
몸’으로 하면 평생의 시간을 다 써도
불가능하지만, ‘중장비’로 하면 짧은
시간에도 한다.
이와 같이 시간이 많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3. (* 다음 잠언도 화면을 보면서
듣겠습니다.) <영상5> 목적지가 가깝고
먼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가느냐가
문제다.
‘자전거’로 가느냐, ‘차’로 가느냐,
‘비행기’로 가느냐에 따라 갈지, 못
갈지가 좌우된다.
<휴거>도 그러하다. 시간이 많이
남았느냐, 적게 남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성자와 분체와 일체 되어서 하느냐,
누가 도와줘서 하느냐, 자기중심으로
스스로 하느냐에 따라 휴거될지, 안
될지가 좌우된다.
4. 휴거되는 데 시간이 없어서
불가능해도 성자와 그 육인
구원자와 함께하면 할 수 있다.
5.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6. 갈 길은 천 리인데 시간은 하루밖에
안 남았다 하자. 이때 ‘몸’으로 가면 못
간다. ‘자전거’로는 갈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차’로는 충분하다.
<휴거>도 그러하다. <휴거 기간>을 봤을
때 자기를 만들고 변화하는 데 시간이
부족하여 불가능해도 자기가 어떤
마음으로 성자와 그 육과 함께 남은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휴거될지, 안
될지가 좌우된다.
7. 밀린 일을 다 하기에는 ‘하루의
시간’을 가지고 불가능했다. 자정
12시부터 ‘하루 종일’ 하니까 충분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8. ‘청춘’이 남아 있어도 자기 주관대로
그 귀한 청춘의 시간을 쓰면, 휴거되기에
불가능하다.
9. 적은 시간이 남아서 불가능해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행하면 능히
할 수 있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10. 적은 시간이 남아서 휴거되기에
불가능한 자도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영적으로 하면 충분히 휴거될 수 있다.
11. 시간상 <육적>으로 하면 못
해도 <영적>으로 하면 할 수 있다.
12. 시간이 없으니 <혼자> 하면
불가능해도 <함께> 하면 가능하다.
13. 휴거는 ‘영’이 하니, ‘영’으로
신령하게 해야 된다.
14. 영적으로 한다는 말은 육은 가만히
있고 혼과 영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혼과 영의 신령함을 가지고 육을 통해서
하고, 혼과 영이 직접 할 것은 혼과 영이
하라는 것이다.
15. 육에 속한 것은 육이 하되 혼과
영과 함께 하고, 영은 영계에 가서
성자를 만나 영에 속한 것을 해야 된다.
16. 육신은 천국에 못 간다. 그러나
자기 육신이 성자와 그 육과 일체 되어
영적으로 행한 것은 <영적 공로>가 되어,
육신의 행위로 인해 ‘영’이 변화되어
영이 다 얻어서 천국에 가지고 간다.
17. ‘육신’뿐만 아니라 ‘육의 세계에
있는 것’은 <천국>에 못 가져간다.
그러나 ‘육신’도 ‘육의 세계에 있는 것’도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 대신 천국에다 <황금 집>을 지어
주시고, 하나님께 드린 것을 기념하여 더
웅장하게 만들어 주신다.
18. 모르면, 자기 밭에 보화가 묻혀
있어도 땀이 흘러 내[川]가 되도록
고생하며 농사만 지으면서 인생 한탄하며
산다.
네 육 속에 보화가 묻혀 있다. ‘육의
행위로 변화되고 휴거되어 영원한 천국에
거할 영 보화’가 묻혀 있다. 이것을
모르면 땀이 흘러 내[川]가 되도록
고생하며 육만을 위해 살다가 육으로
끝난다.
19. 모르면, 앞날에 자기 애인이 될
자인데 자기 원수가 데려가도 쳐다보기만
하며 부러워한다. 알면, 당장 자기
애인이 될 자를 원수에게서 뺏어 온다.
20. 모르면, 자기 것인데 남이 그것을
가지고 누리면서 자기를 일꾼으로 쓰고
부리는데도 모르고 인생 한탄하면서
산다. 알게 되니, 그 날의 해를 안
넘기고 자기 것을 빼앗아 자기를 부리던
자에게 벌금을 물리고, 그를 종으로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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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알고 행하는 것’이 <보화>이며
<축복>이다. 저 하늘의 전능자는 알고
있다. 그를 사랑하는 자만 <보화>를
얻는다.
22. 모르면, 원래 자기 조상의 땅인데
타인에게 대가를 주며 사정하면서 한 해,
한 해 빌려서 그 땅에 농사를 짓는다.
알게 되니, 장롱 속에 있던 땅 문서를
보여 주며 “이 땅은 우리 조상의
땅이다!” 따지고, 그동안 땅을 빌려
쓰면서 지불한 값을 다 돌려받으며
배상하게 하고, 그날 바로 땅을 빼앗아
버린다.
23. 모르면, 자기의 사랑하는 자인데
거지한테 뺏긴다.
24. 모르면, 한낱 배설물 같은 마귀에게
자기 것을 뺏긴다.
25.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보낸
자인데 그에게 해를 주면, 그 누구라도
행한 대로 10배나 갚아 주며 가만두지
않기로 ‘천법 1항’으로 정하셨다. 또한
보낸 자가 원하는 대로 처벌하기로
하셨다.
분체가 보낸 자에게 해를 주는 자도
마찬가지다.
========== mem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