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4.01.18 (토)
2014년 1월 18일 토요일 씨티엔 선생님 새벽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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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8일 토요일 씨티엔 선생님 새벽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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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8일 토요일 씨티엔 선생님 새벽말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 빨리 대답해야 됩니다. “네. 아멘. 감사합니다. 기다렸는데.” 톡
따라가야 됩니다. 그 정도 빨라야 됩니다. 하나님은 빠른 구름을 타십니다. 선생님이 편지로
물어보든지 혹시나 전화로 물어본다든지 하면 “네” 해야 됩니다. 이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
닙니다. 이것이 내 일입니까? 내가 복음 펴러 왔습니까? 하나님이 복음 펴러 오셨지요. 나
는 사역자요, 사명자 아닙니까. 주인은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말을 한다고 늘
그러지 않습니까.
“반드시 무엇을 할 것을 믿었으면 행하라!” 오늘 저녁에 말씀해서 행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행동하라. 행동치 않은 자는 시대의 말씀을 들었어도 죽은 자들이다. 시체들
이다.” 여러분 교회에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조건 죽은 시체들입니다. 옆에 얼굴은 번
지르르하고 키는 크고 멋있는 옷을 입고 다니고 스타같이 다녀도 무조건 행동치 않는 사람
들은 무조건 죽었습니다. 시체입니다. 그 시체들이 육신은 죽지 않았기 때문에 또 말씀을
듣고 행동하면 바로 살아납니다.
그 일이 참 어렵습니다. 어렵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행동하라. 말 못한다고 하지 말고. 본
래 뱃속에서 말 배우고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나도 처음에 말씀을 전할 때 어떻게 했는
지 압니까? 주일학교 반사가 되었을 때 학생들에게 말을 못 했습니다. 왜? 청중에 대한 부
끄러움 병이 있었습니다. 쳐다보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이 어린 주
일학생들에게 공과책을 내가 읽어 보고 “너희들 나와 같이 계속 읽어라.” 하고 계속 돌려가
면서 읽게 했습니다. 내가 부끄러워서 강의를 못하니까 계속 읽게 했더니 애들이 읽으면서
몇 군데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잘 읽었어. 맞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부끄러워서 늘 잊
어버리니까 강의를 못했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배워서 지금은 이렇게 말을 잘
합니다. “여러분들도 힘들고 어렵지만 자꾸 외치고 가르쳐라. 딸딸거리고 말을 잘 하게.”
그러면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먼저 행하기 전에 자세히 주의해서 보고 행하라. 행해야 된다
는 것을 알았으면 그냥 행하지 말아라. 어떻게 행할 것을 알고서 행해야지. 그것이 지혜다.
행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판단한 것은 지혜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 이것은 슬
기입니다. ‘이 일을 이렇게 행할 것인가, 저렇게 행할 것인가’ 그것이 여러분의 슬기이니 반
드시 행할 때마다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먼저 구상하고 신속히 행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일 하나님에 속한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 물어보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에 속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장이나 회장이나 정치인에 속한 일이라면 그
분께 물어보고 해야 될 것입니다. 이치가 맞지요? 물어보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물어봐도 대답을 못 받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에게 물어보고 보고하고 하는 것입
니다. 왜 그런가 하면, 나는 세계 모든 나라들의 보고가 들어와서 그것을 참고해서 “전체를
보면서 여기는 지금 행해야 된다. 여기는 조금 늦게 행해야 된다.” 합니다. 마치 공항의 관
제탑에서 비행기 전체가 몇 시에 출발, 몇 시에 앉고 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을 집중해서 지시를 받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온 지구상의 전체를 통솔하시기 때문에 물어보고 행해야 됩니다. 기도라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응. 그거 행하지 마. 남 시켰어. 그것 해. 아직 안 시켰어.” 하셔서 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라면 하나님께 물어보고 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상식입니다. 꼭 해야 될 일입니다. 외울 것이 많아서 너무 힘듭니
까? 조금 더 들어보세요. 외우는 법을 가르쳐주겠습니다.
그 다음에 가서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새벽말씀에도 나갔는데 다른 방향으로 나갔
습니다. 여러분 방이 있지요? 어떤 사람은 방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이 옆
방에 와있어도 행동해서 가봐야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행동이 중요한 것입니다. 무슨 말
인지 알겠습니까? 내가 아주 기찬 잠언을 달라고 했습니다. 행동이 귀한 것을 확 깨닫게 기
가 막힌 잠언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네 옆방에 가 있어도 나한테 행동해서 와
봐야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전해봐라.” 그래서 그 잠언을 쓴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옆방에 와 있어도 가보는 행함이 없으면 볼 수가 없다. 가보고 행동하는
것이 그렇게 귀하다.”
이런 잠언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행하면 마음이 발달되고 생각으로 행하면 생각이 발달된다.”
‘생각’과 ‘마음’은 표현이 다른 단어입니다. 마음과 심정은 “아, 심정 몰라주네.” “내 마음
몰라주네.” 그것은 같은 말입니다. 보다 깊이 이야기하려면 “저거 심정 몰라주네.” 합니다.
외국에서는 단어가 없으니까 “마음 몰라주네.” 하지요? 우리는 “심정 몰라주네.” 합니다.
그리고 몸으로 행하면 몸으로 보이는 세계로 우리가 발달됩니다. 보이는 세계로 자꾸 발달
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인 마음으로만 행하면 마음의 세계만 발달해서 영의 세계만 자꾸
보게 되는 것입니다.
“뇌로 행하면 뇌만 발달되고 머리로만 알게 된다.” 아까 들어보라고 했지 않습니까? 대책을
세워 놓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시 못 적는다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머리 발달을 시켜줘야
지.” 하나님은 대책없이 그런 이야기를 안 하십니다. 대책을 세워놓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손으로만 계속 무엇을 해버릇하면 손이 발달이 많이 됩니다. 발로만 하면 발 발달됩
니다. 쓰는 대로 발달되는데 여러분은 그동안 글로 쓰는 암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써
야 암기가 됩니다. 그런데 안 쓰고 암기를 해버릇하면 그 사람들도 못지않게 암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가 어느 정도까지인가 하면 거의 암기를 합니다. 내가 책을 60권 이
상 썼지만 책없이 내용을 거의 압니다. 책 없이 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보면 “이건
이렇게 되었다. 저렇게 되었다.” 그것을 거의 압니다.
성경도 그렇게 암기했지 성경을 창세기 1장서부터 계시록까지 안 보고 외우지는 못합니다.
거기까지는 암기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충 ‘이런 글로서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었다’
이것을 다 암기를 하고 있습니다. 몇 장 몇 절에 무슨 말씀이 있다 이것은 일부밖에 모르
고, 내용에 대한 것은 창세기는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암기를 하고, 출애굽기는 이런 내
용이 있다고 영적과 육적으로 암기하고,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
을 영적과 육적인 말씀을 암기하고 이렇게 암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만 암기해
도 실천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전혀 잊어버렸을 때 못 하지 머릿속에 약간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약간만 있으면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로 써 놓은 것은 행동하기 힘듭니
다. 그러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자꾸 돌기 때문에 안 하고는 못 배깁니다. 머릿속에 있어서
자꾸 호기심이 가집니다.
가령 종이에다 이렇게 글씨를 썼습니다. “어디에 가면 그늘나무 밑에 정자에서 여자가 12시
에서 1시까지 노래를 부르는데 그렇게 예쁜 여자가 있다.” 그것을 잊어버릴까봐 썼습니다.
한 사람은 그것을 머리에다 외웠습니다. 머릿속에 있으니까 자극이 있어서 자꾸 거기를 가
보고 싶은 것입니다. 자극이 더 강합니다. 종이에다 써놓은 것은 봐야 자극이 조금 있습니
다. 그래도 그 자극이 덜합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은 자극이 강합니다.
그래서 계시 받은 것이 강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내 말을 듣고 종이에다 쓴 계시는 두 번
째 계시이기 때문에 자극이 약합니다. 이렇게 꽃에 손을 댔을 때 자극하고 여기에서 마음으
로 쳐다보는 자극하고 다릅니다. 직접 머리에다 기록한 것은 안 하고는 못 배깁니다. 그래
서 “머릿속에다 넣어줘라.” 합니다. 소개만 하십시오. “거기에 가면 이 엄청난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말씀을 듣는데 일사천리로 세계를 향해서 가고 있다.” 자꾸 넣어주면 그것을 머릿
속에 외워져서 가보고 싶어합니다. 온다는 것입니다.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전도하
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야, 네 뇌 속에다 내가 불을 보내리라.” 하셨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말
씀이 아닙니까. 불을 보내니까 바로 불이 났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로 불나게 뛰었습
니다. 달려가면서 외치고 뛰어가면서 외쳤습니다. 머릿속에 있으니까. “내가 너의 종이에다
말씀을 보내리라.” 그러면 말씀을 볼 때만 됩니다.
여러분, 암기 잘 하는 사람이 있지요? 나도 암기는 정말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질이 없었습니다. 구구단을 못 외워서 만날 청소하고 그랬습니다. 암기법을 자꾸
써버릇해서 쓰는 것으로만 암기가 되었습니다. 왜 내가 그랬냐 하면 ‘쓰는 데는 천재도 못
당한다.’ 그런 철학이 들어갔습니다. ‘천재도 쓰는 데 앞에는 날개를 못 친다. 쓰는 놈이 최
고다. 그것은 안 잊어버리니까.’ 그러나 한번 외우는 놈 앞에는 쓰는 놈이 못 따라갑니다.
암기법. 암기를 하는 사람은 별로 쓰지를 않습니다. 내가 암기를 잘 하는 사람을 몇 사람
봤는데 노트가 없었습니다. 계속 암기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해보면 압니다. “너 그런
것 어떻게 아냐?” 하니까 “선생님 한번 물어보세요. 어디까지 아나.” 그래서 물어봤더니 줄
줄줄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 얘는 암기에다 아예 길을 들여 버렸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암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암
기하는 것이고 암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한번 이야기해보십시오. 오늘 처
음 온 신입생들이 한번 이야기해볼까요? 암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뭔가? 이야기했어요? 벌
써 대답이 다릅니다. 신입생들이 요새 잘 합니다. 대답하는 교회가 있고 대답 못하는 교회
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능차이입니다. 교육 차이 아니겠습니까. 학교를 좋은 대학교 나왔다,
좋은 고등학교 나왔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무조건 정신 차리는 데에 좌우됩니다. 여러분 전
체가 대답한다면 무엇이지요? 행동하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그것은 최
고 무서운 것입니다. “실천자 같이 무서운 놈이 없다.” 악인들이 이것을 듣고 실천하는데
그것은 안 됩니다. 악인들은 실천한다, 그것은 실천해도 무섭지 않습니다. 왜? 악인들은 실
천할수록 죄악이 관영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 칩니다. 악인들이 지혜를 받을 것은 무
엇인가 하면, 악을 조금씩 실천하면 죽는 날이 오래 있다가 죽습니다. 악을 막 실천하면 바
로 관영되기 때문에 똥통에 똥이 차고 넘치면 처리시키듯이 바로 처리 시킵니다.
의인들은 빨리 실천해야 됩니다. 왜? 의가 관영해 버리면 심판이 아니라 축복을 주십니다.
어느 기간까지 어떤 의가 얼마나 찼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고 은혜를 주신다
는 것입니다. 해 보십시오. 이 밤중에 어떻게 해를 보냐구요? 아니, 행해보라 그것입니다.
바쁘니까 한 자만 말한 것입니다. “해보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신
다.” 하나님 마음을 너무 잘 알지요? 하루에 그래도 계속 대화를 하고 사는데 거짓이겠습니
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와라. 들어서 말씀을 듣고 소화하라.”
기도해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은 수요일 제단 말씀을 통해서 세계 각 나라에
여러 말씀을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충격도 받고 은혜도 받고 깨달음을 받고 뜨거움을 느꼈
으니 이제 실천함이 필요하오니 꼭 실천케 해주시옵소서. 실천한 자는 기록한 사람보다, 머
리에다 기록한 사람보다 더 엄청난 근본을 가져갔습니다. 왜 목적지도 안 가고 만족하느냐
그랬습니다. 목적지에 가서 만족해야지. 사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사과나무
심었으니까. 가꾸었습니다. 기쁘지요. 거름했습니다. 기쁘지요. 꽃이 피었습니다. 기쁘지요.
열매가 열었어요. 기쁘지요. 거기서 끝났습니다. 슬프지요. “열매를 따먹어야 되지 않겠냐?
왜 목적지까지 못 가고 모두 기뻐하느냐?” 그랬습니다. “모든 만사대사가 끝까지 가야지 왜
행실도 안 해보고 적는 데서 기쁘고 머리에 외운 데서 기쁘냐? 마음의 감동 받고 불 받은
데서 끝나느냐? 행실 해보고 기뻐해야지.” 이런 말씀을 하신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영광을
돌리며 살게 축복해주시고, 잘못된 자들, 이 엄청난 세계에서 말씀을 다 가지고 가서 전하
는 사람들, 약은 사람들, 교회도 오지 않고 구원을 대기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 섭리 나라
에 와야만 된다 했습니다. 내 지체에 붙어야만, 내 포도나무에 붙어서 가지가 열려야 거기
에서 포도 열매를 맺지 그렇지 않은 것은 다 남 가지라고 했습니다. 돌 포도나무요, 돌팔이
들입니다. 내가 20년, 30년 동안 배운 것을 전한 것을 그들은 역시 감정을 갖고서 다른 데
가서 전하고 다른 교단에 줘서 거기에 가서 머슴 살고 있습니다. 다 이런 것은 깨지고 깨질
지어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능력으로 지켜주시옵소서.
성부, 성자, 성신의 큰 능력과 권능이 이들 위에 함께 하고 온 나라들에게 함께 하고 충만
해서 실천의 기대에 능력과 권능에 은혜를 더욱 충만히 주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기도하옵나
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