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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4.01.24 (금)

금요 명설교

선포일
2014.01.24 (금)
성경 본문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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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2014년 1월 24일 금요일 선생님 명설교 /2004.5.23. 주일 생활의 빛을 발하라 (부제: 뒷 처리의 빛을 발하라) <본문> 마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 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 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 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 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 다시금 주일 거룩한 날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잘 있었습니 까. 할렐루야! 다시 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또 다시 보게 되었고, 그리고 또 오늘 불치 의 일로 주일을 참석치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꼭 주일만 주일이 아니라 한 주일동안 계속 주일입니다. ‘주의 일’이 아니겠습니 까. 말씀을 듣는 것도 주님의 일, 본인의 일, 하늘의 일입니다. 말씀은 어느 때든지 꼭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특별히 정해놓은 날만 만나고 못 만나지 않습니까. 결혼했을 때 는 식구가 되니까 어느 때든지 만날 수 있고, 연애하고 사랑하는 사람보다도 더 가 까이 살 수 있듯이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언제든지 말씀을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남남이었을 때는 서로 정한 날에 만나고 그때 못 만나면 또 다음 약속에 만나지 만 서로 애인끼리는 언제든지 만나지 않습니까. 시대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이 다 주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만나면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부터 16절까지 본문말씀입니다. <마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 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 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 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 말씀을 듣고 암송도 하고 늘 가지고 다니면서 써야 됩니다. 나는 주일학교 때 부터 성경을 많이 읽었는데 좋은 구절이 있으면 줄을 쳐놓고 그 좋은 성경은 늘 외 우고 다녔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이것을 예수님께서 나에게 “너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 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느냐. 각종 음식이 맛이 있는데 소금이 최대 의 맛을 낸다. 모든 음식이 소금 때문에 맛을 낸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물어봐.” 이러면서 늘 혼자 중얼거리며 내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제의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지난주는 기도의 빛을 발하라고 해서 기도를 했는데, 기도의 빛을 발하라는 것은 한 주일뿐만 아니라 계속 기도해야 됩니다. 매일 드리는 기도를 폐하지 말 것! 매일 드리는 주일예배, 폐하지 말 것! 새벽예 배, 폐하지 말 것! 매일 애인과 얘기하고 대화하는 것, 폐하지 말 것! 매일 오순도순 대화하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 폐하지 말 것! 하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며 사는 것, 폐하지 말 것! 매일 전도하는 것, 폐하지 말 것! 매일 관리하는 것, 폐하지 말 것! 그리고 하나님 부르고 매일 감사하는 것, 폐하 지 말 것! 이런 말씀으로 지난주에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을 폐하니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폐하지 말고 그 길을 가야 됩니다. 폐하 고 가면 안 됩니다. 매일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매일 죄 짓는 것 말고, 매일 의로운 일 하는 것을 폐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읽으면 ‘이것도 폐하지 말아야 되겠구나. 이것도 폐하지 말아야 되겠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거짓말 안 하는 것을 폐하면 안 됩니다. 거짓말 하는 것으로 폐해버리면 계속 또 거짓말해야 됩니다. 선생님께 편지로 자기 죄를 고백하며 “잘못했습니다. 정말로 두고두고 괴로워 못 견디겠습니다.” 하고 그대로 순수하게 일찍부터 고백한 사람들에게는 일찍부터 “이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런 탕감을 세워야 된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체면이 있지 않느냐. 빚을 탕감해 줘도 감사해 하며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데, 죄를 용서해 주고 사해 줬는데 전도도 하고, 애들도 가르치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아라.” 그렇게 해 줬습니다. 내가 그렇게 일일이 다 못 해 주었어도 주일날 말씀 들어보면 ‘아 나도 여기에 해 당되는 구나. 나도 용서해 주셨구나.’ 하고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너무 화가 나서 왜 죄를 밥 먹듯이 짓느냐 하고 책망하면서 용서를 안 해주고 편지도 안 써 줬습니다. 다음에 써 주겠다고 하다가 잊어버린 사람도 있습 니다. 매일 드리는 제물을 중심해서 모든 기도와 찬양과 감사, 이런 것들을 폐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매일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예수 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하루에 100번 했답니다. 그랬더니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선생이 옆에 서 있는 것이 확실하게 느 껴지더랍니다. 그래서 너무 반가워서 실제 선생님이 옆에 서 이는 것 같이 대화를 했답니다. 그 후에 계속 대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신앙은 역시 체험이고, 많이 한 만큼 받는군요. 50번 했을 때는 안 되고, 99번 했을 때도 못 느꼈는데 100번 하니까 체 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편지가 왔습니다. 자기가 100번을 세었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앉아서 “예수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 계속 하면서 체크 했답니다. 어느 때는 10분 있다가도 하고, 5분 있다가도 하고, 계속 그렇게 했답니다. 밤에 잠자는 시간 을 빼놓으면 거의 20시간이 되니까 한 시간에 5번씩 정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선생님이 옆에 서 있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확 느껴지고 웃는 모습도 보이더랍니다. 느낌이 왔다는 것은 벌써 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너 이렇게 하라 하고 감동으로 오지 않습니까. 그 음성이 직접 오는 것 이 아니라 영혼에게 전파되어서 마음으로 솟아나는 것이라고 이미 가르쳤습니다. 그것을 느꼈다고 너무 통쾌하고 감격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도자인데 전국을 돌 아다니며 애들을 관리하는데 한동안 힘들고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힘을 받고 능력 받고 간증거리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내가 늘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나도 하나님께 항상 그렇게 했습니 다. 나는 5300번 까지도 물어보고 대화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과 대화한다 하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면 큰일 날 사람, 이단, 이상하다 그럽니다. 바보들입니다. 모르면 바보, 알면 지혜 자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주제 말씀은 “생활의 빛을 발하라!” 입니다. ‘삶의 빛을 발하라’도 맞습니다. 그런데 삶이라고 하면 특별함이 있고 조금 고귀한 단어가 되지 않습니까. 생활이라고 하면 다 아니까 모든 사람이 쉽게 알아듣게 생활의 빛을 발하라고 한 것입니다. 일상생활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제 말씀을 기록해 놓고, 모두 기록을 손에서 놓고 찬양하겠습니다. 여기 에 해당하는 찬양을 하겠습니다. 전체 찬양은 259장이 되겠습니다. 이 노래를 할 것입니다. 복음의 사자들아 빛 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노래가 우리와 조금 멀 때가 있지 않습니까. 노래 가 우리와 좀 먼 것은 가사를 조금 바꾸면 삼박하니 확 와 닿습니다. 말도 그때 맞 는 말을 할 때 아로 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 합니다. 가사는 이 시대의 잡곡밥처럼 순수하게 ‘사도’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빛의 사도들이여 복음의 빛을 발하라.”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생활의 빛을 발하 라는 것은 후렴에 넣어서 생활의 빛 비춰라로 하겠습니다. 그것만 교정해서 오늘 노래를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을 준비를 다 해놨으니까 우리 화끈하게 세계 전체가 노래하 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낮이 다르고 시간이 다른 데는 후에 예배들 드리겠지만 아시아권은 지금 전체가 찬양대가 되어서 선생님의 지휘에 맞추어 노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지휘할 때 하나님이 쳐다보고 있다 하고서 합니다. 하나님이 안 쳐다볼 리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상식적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상식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안 쳐다보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미워도 쳐다봅니다. 왜 쳐다보 는 것이냐 하면 미워서 쳐다보는 것입니다. ‘저놈의 새끼 밉다’고 쳐다봅니다. 지나가다 독한 개나 인상 얄궂은 개를 보면 어 떻게 저렇게 인상이 더럽게 생겼나 하고 꼭 쳐다보지 않습니까.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선생님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네가 미워도 내가 쳐다본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 랑하는데 안 쳐다보겠느냐. 생각해 보아라.” 그랬습니다. 그때 한 번 그 말을 듣고 이제까지 철학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어도 쳐다본답니다. 죄를 지으면 보기 싫은데 왜 쳐다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기분 나쁜 사람은 안 쳐다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쳐다본답 니다. 심판을 해야 되기 때문에 쳐다본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일을 하면 사랑스러워 쳐다보고, 상을 주려고 쳐다본답니다. 그런 말씀을 한 번 듣고서 영원한 철학으로 삼고 여러분에게 지금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이 노래 부르는데, 하나님이 왜 안 쳐다보겠습니 까.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도 쳐다보려는가. 구름 떼같이 많은데.’ 하고 생각하는데, 하나씩 하나씩 클로즈업해서 전부 봅니다. 시간을 초월해서. 10초면 1억도 10억도 다 꿰뚫어 보고, 1초에 동시에 다 쳐다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각자의 단장을 하 십시오. 그렇게 알고서 오늘 이 시간 멋있게 찬양하는데 옷깃을 여미고 모두 다 일어나겠 습니다. 기립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하늘나라도 24장로들이 수금을 켜고 거문고를 켜면서 그들도 노래하고, 이에 맞 추어서 온 세계가 동시에 노래를 한답니다. 너무 웅장하지 않습니까. 기독교에서 찬양할 때 대개 30명, 4-50명, 80명, 큰 행사 때는 몇 백 명이 서서 찬양합니다. 선생님은 하늘나라에서 찬양하는 것을 보고 와서 전체가 찬양을 하자 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가 다 찬양대가 됩니다. 그래도 찬양대는 꼭 있어 야 됩니다. 전체가 이 시간 일어나서 “복음의 사도들아 빛을 발하라. 생활의 빛을 발하라.” 이 노래를 하며 입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발하라고 했으니까 말씀이 멋있게 오늘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지휘대로 가서 지휘하겠습니다. ♪찬송가 259장 1. 빛의 ‘사도’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생활의 빛 비춰라 빛의 사도들이여 생활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도들이여 2. 선한 사역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하시겠네 주의 크신 사랑을 전파하며 생활의 빛 비춰라 빛의 사도들이여 생활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도들이여 단상에 다시 올라왔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본문 말씀을 중심해서 특 히 신약권을 훑으면서 말씀할 것 같습니다. 생활의 빛을 발하라! 사람들이 교육도 받고 수련도 받고 연단을 받으며 각종 특수 훈련도 받고 하는 것은, 생활의 승리를 하며 생활을 잘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니 말씀도 많이 듣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생활의 점수가 생각보다 많이 안 나옵니다. 특히 우리 섭리사로 온 섭리의 생명들은 기독교의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듣는 기 성의 설교시간보다 각종으로 설교를 많이 듣습니다. 진지하게 하고, 다양하게 하고 많이 듣고 있지 않습니다. 1년에 주일날이 50번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일반 교회에서 만약 설교를 매주 1시 간씩 들으면 1년이면 50시간을 듣습니다. 그런데 30분씩 들으니까 25시간 정도를 듣는 것이고, 수요일은 찬양예배라 특별히 말씀들이 많지 않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주일날 평균 1시간 이상의 주일말씀을 듣습니다. 알찬 말씀을 듣고 있지 않습니까. 수요일 날도 한 시간 가까이 들으니 일주일에 두 시간씩 듣는 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1년이면 100시간 정도 들으니까 네 배 이상 알차게 많이 듣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동영상을 통해서 보내고 하기 때문에 1시간, 2시간씩 하지만, 전에 선생님이 한국에 있을 때나 직접 가서 강의할 때는 주일말씀이 3시간씩 할 때가 많 았습니다. 많이 할 때는 주일말씀을 10시간까지 해봤습니다. 수요일 말씀도 어느 때는 새벽 2시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놀랍지요. 하나님께 서 인간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너무 많습니다. 진지하고 사랑스러우니까. 그러나 미워하거나 싸우면 오랫동안 이야기를 못 합니다. 사랑스럽고, 좋고 하니 까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많이 듣습니다. 그렇게 많이 듣고, 찬양도 많이 하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는데 생활 점수는 생각보다 많이 안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안쓰러운데, 앞으로 성장하면 생활 점수가 많이 나오도록 해야 됩니다.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공부를 한 시간에 비해 생각보다 시험 점수가 많이 안 나 오면 너무 슬럼프에 빠지는 일이고 너무 마음이 아프고 쓰린 일입니다. 누구에게 원망도 못하고 그런 사람을 두고 시험으로 인해 시험에 들었다고 합니다. 시험의 실존성에 의식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시험만 보면 슬럼프에 잘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우리도 보면 준비하고 예비도 많이 했는데 이상하니 실존에서 생활 점수가 많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냥 봐서는 잘 모르는데 생활할 때 보면 무섭다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생활할 때 실존성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저 녀석은 고집이 세서 한번 하면 기어코 한다.”고 했습니다. 그 래서 어머니에게 “고집이아니라 집념이 강해서 그래요. 사고, 사상, 정신이 강한 것 입니다.” “니가 사고가 좋고 정신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너는 형제 가운데 무 엇을 시켜 놓으면 기어코 하더라. 그래서 무엇을 하더라도 앞으로 좋은 일을 선택 해서 해야 되겠어. 하면 기어코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하면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환난 때는 못 하지만 환난 이 끝나면 기어코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 따라 가듯이, 제자들도 선생을 따라 하늘을 따라 생활의 점수가 많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도 많이 하면 하늘 인격들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활의 점수가 많이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기도한 보람이 있고, 연단 받든 보람 이 있고, 하나님께 각오를 한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생활의 점수가 많이 나와야 됩 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점수 때문에 너무 너무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어머니가 늘 점수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꼭 보면 91점, 94점, 97점, 98점 그랬 습니다. 간혹 100점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100점 맞았네.” 하고 좋아하시고, 어느 때는 “조금만 더 했으면 100점 나왔을 것인데 97점 나왔네.” 그랬습니다. 그것 때문에 더 공부를 한 것입니 다. 공부를 해서 많이 배우려고도 했지만, 어머니가 점수를 보고 좋아하기 때문에 공부를 한 것도 있습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그래서 시험을 제대로 못 봤을 때는 너무 환장하겠고 내가 고치고 싶었습니다. 고 치고 싶었는데 빨간 색연필이 없어서 못 고쳤습니다. 97점을 100점으로 고치기 곤 란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아니 이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자. 어머니한테 물어보 자. 이것 못 맞혔는데 어머니는 맞힐 수 있겠냐고. 너무 힘들었다고 물어보자.’ 그랬 습니다. ‘이해’ 점수를 내가 못 맞았다고 하면서 이해 책만 사주면 내가 점수 맞겠다고 이 해 책을 좀 사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해 책이 있습니까. 항상 나에게 이해를 못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중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해를 해야 됩니다. 지금도 이해를 못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해를 못 하면 충 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해하고, 여러분은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섭리가 가는 것을 이해하고, 어떤 사건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이해하고, 이렇든 저렇든 이해 를 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좋은 게 좋다고 조금 못 했어도 봐주고, 이끌어 주십니다. 생활의 점수가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는 소금이니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소 금은 짠맛이 최고인데, 짜기 때문에 동서남북 각 지역에 다 사용되고 음식에 다 사 용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짠 맛을 잃으면 되겠느냐. 너희들이 짠 것을 잃으면 아 무 것도 아니다.” 했습니다. 소금이 짠 것이 특성이듯이 여러분에게 특성들이 있습니다. 그 특성을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축구? 참는 것? 나의 특성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잃어버리면 되겠습니까. 사명을 잃어버리면 되겠 습니까. 항상 사명 값을 하고 사명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누구는 못 참아도 나 는 참아야지 그러면서 갑니다. 특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특성 때문에 여기 저기 여러분이 다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의 사명 때문 에 이 사람도 사용하고 저 사람도 사용합니다. 나를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조금 사 용하면 역시 음식의 맛이 안 나지 않습니까. 내 고향 감람산에서 어머니가 나물을 뜯어오면 된장도 넣고, 맛있는 양념도 넣고, 간장을 넣고 주무릅니다. 간장 속에 소금이 조금 들어가 있으니 맛있지 않습니까.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그리고 소금도 약간 넣고 주무르는데 소금이 안 들어가면 맛이 없습니다. 나물은 막 주물 거려야 나물이 흥분되어서 맛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막 주물러서 줄 때 나물이 너무 맛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맛있는가 보니까 주무르면 나물에서 녹말도 나오고, 풋 냄새가 팍팍 풍기니까 맛있습니다. 거 기에 밥을 비벼 먹으면 너무 맛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봄이 돌아오면 그렇게 한 번 해 보세요. 비벼서 먹는 음식을 선생님이 잘 합니다. 선생님이 음식을 잘 만든다, 음식을 맛 있게 한다고 하는데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그것 때문에 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소금 한 가지 가지고도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맹물에 소금 넣고 배추 조금 썰 어 넣고, 무우 조금 썰어 넣고, 다른 것도 조금씩 넣고 하면 맛있습니다. 소금이 전 체 운명을 좌우시킵니다. 소금이 많이 들어갈 곳에 조금 들어가면 맛이 없듯이, 나를 많이 찾아야 될 때 조 금 찾으면 맛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찾아도 또 맛이 없습니다. 짜서 못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에이 짜면 짠 대로 먹어버리자. 물 먹으면 되니까.’ 그러는데 그렇 게 되면 죽탕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아예 밥을 넣고 비비든지, 물을 더 넣어버리든지 해야 됩니다. 음식을 만들 때, 뜨거웠을 때 맛을 본 것이 다르기 때문에 끓이면서 맛이 맞나 계 속 먹어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본인이 맛에 정상이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음식을 할 때 아무리 재료를 넣어도 왜 맛이 없는가 하면, 맛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짠 것을 모르고 싱거운 것을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들은 남편을 부엌으로 수시로 불러들어야 됩니다. 맛을 못 보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여자들만 원망할 것이 아니라 너무 부엌에서 하다 보니까, 음식에 묻혀 있기 때문에 냄새를 못 맡는 것입니다. 남 편은 냄새 안 맡고 방안에 있었기에 맛을 내려면 남편들이 가서 혓바닥을 좀 대 주 고 와야 됩니다. 선생님은 먹어가면서 소금을 넣습니다. 삼삼한 단계와 짭짤한 단계를 구분해서 삼 삼하게 하려면 소금 한 수저를 넣으면 된다, 짭짤하게는 한 수저에다 10분의 1을 더 넣어야 된다, 이런 것을 조절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칼칼하다는 소리가 나 오려면 매운 것을 가지고 조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먹어가면서 계속 조정해야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됩니다. 소금 이야기를 했는데 누구든지 소금을 안 사용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소금입니다. 누구든지 사용하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저 사람은 사용하면 안 돼. 큰일 나.” 이래서는 안 됩니다. 모든 면에 소금 같은 역할을 해야 됩니다. 소금을 사용하기 싫어하는 집이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인데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할 것이냐. 맛이 없는데 무엇으로 할 것이냐. 밟혀 버린다. 자기의 소금 같은 사명을 잃어버리면 밟히고 욕을 먹는다. 밟지 않도록 하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말씀했 습니다. 이와 같이 소금과 빛이라 하며 맛을 내고 빛을 비추라고 말했습니다. 빛을 비춰라1 빛을 발하라! 빛이다. 기도해야 빛을 발하고, 생활해야 빛을 발하며, 각종 의로운 일을 해야 빛을 발하지 않습니까. 그냥 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실천할 때 빛을 발합니다. “너희는 빛과 소금이다. 빛을 발할 때 사람들이 쳐다보고 빛을 따라오지 않겠느 냐.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따라 오니 그렇게 하라. 그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아주 진지하게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끝이 없 는 말씀이 아닙니까. 두고두고 생각해도 끝이 없습니다. 2천년 동안 이 설교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끝이 없지 않습니까. 소금을 연구해서 아는 사람은 소금과 연관하여 여러 가지 비유를 들면서 말씀하 기도 했습니다. 바닷물을 보세요. 민물이 내려와 바닷물에 들어가면 짠물이 되는데 짠물에서 고기 가 살면 죽을 것 같아도 바닷물이 그렇게 짠데도 이상하니 안 죽습니다. 사람들이 바닷물을 몇 모금 먹어보면 알게 모르게 따갑고, 바닷물에 몸을 담궜다가 나오면 몸에 허연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에서 사는 고기들은 신기하게 안 짭 니다. 오히려 소금을 넣어서 절이지 않습니까.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바 닷물은 신기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닷물은 태양에 의해서 증발하면 소금이 됩니다. 소금이 될 때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양열에 의해서 됩니다. 여러분이 소금이라 했는데 하나님의 태양열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에 의해서 되고, 주의 태양열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금과 같이 맛을 발해야 된다. 빛과 같이 빛을 발해야 된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고 사용하면 되겠느냐. 빛이 마루 밑에 들어가면 되겠느냐. 빛을 등 경 위에 두어서 비춰야 되지 않겠느냐.” 했습니다. 빛의 종류가 많습니다. 조명 집에 가보면 여러 종류의 조명이 있는데 그것을 보면 다 사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여러 조명과 같은 그런 색상을 내면서 빛을 발해야 되 겠습니다. 빛을 발하라!! 복음의 사도들이여! 빛을 발해야 됩니다. 분야 분야 빛을 발해야 됩니다. 생활의 빛도 대단히 광범위한 제목입니다. 지금 말씀이 출발해서 가고 있는데 요즘에 우리가 크게 한 일이 무엇입니까. 요즘 우리는 하늘나라의 잔치를 했습니다. 말씀을 퍼부어 잔치를 했습니다. 음식을 퍼부 어 잔치했습니다. 많은 신부들이 오게 하기 위해 하늘의 잔치를 했습니다. 잘 길러 야 되겠습니다. 잔치가 끝나면 뭐 해 줍니까. 뒷일을 해 줘야 됩니다. 안 해 주면 안 됩니다. 우리 마을에서 우리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했을 때 동네 사람들이 와서 담배꽁초 를 얼마나 버렸는지 그것을 다 주워 날랐습니다. 동네가 몇 집 안 되고 아래윗집 사이이지만 당장 눈치를 주더라는 것입니다. “저 집에서 잔치를 하더니 마을이 쓰레기통이 됐구먼.”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 래서 꽁초를 많이 주워 날랐습니다. 그리고 잔치 끝나니까 화장실이 차고 넘쳤습니 다. 동네사람이 다 왔었습니다. 500명까지 왔었으니까 최고 많이 왔었습니다. 그때 는 석막리 사람을 다해도 500명이 안 되었는데 진산면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다 왔 던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왔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이 차고 넘쳤는데 그것을 빨 리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식구들이 사용을 못하니까 그것 해야 되지, 또 잔치 끝나니까 길가를 질퍽거려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흙을 깔아야지, 이런 일들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잔치하다보면 찌꺼분한 쓰레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을 다 치워야 했습 니다. 이런 것을 계속 해대던 것이 생각나는데, 우리들도 하늘나라의 이런 잔치를 했을 때는 반드시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습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가령 집에서 계속 교회 다녔습니다. 말씀 들으러 다니고, 새벽기도 다니고, 주일말 씀 들으러 다니고 하다 보니까 집에서 난리통이 납니다. “너 언제까지 할 것이냐. 끝이 없네. 평생 할 거야? 너 직업이 종교가 아니잖아. 너 지금은 직업이 공부해야 돼. 내가 네 아버지 눈 가려 주고 하는데. 네가 새벽에 나갈 때 네 아버지에게는 공부하러 다닌다고 했단 말이야. 계속 그렇게 되면 안 된 다는 말이야. 잠잠해.” 이런 것에 대한 뒤처리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나 공부만 하다가 늙어 죽겠어요. 아버지 너무 힘들어요. 조금 쉬었다가 해야겠어요.” “그래. 너 공부하러 다닌 것 맞느냐. 교회에 다닌 것이 아니냐.” “그런 이야기 하지 말아요. 공부를 했어요. 교회를 갔어도 공부를 했고, 학원에서 도 공부를 했고 다 짬뽕으로 열심히 하고 돌아다녔어요. 이제 다리 아파 죽겠어요.” 이러면서 뒤처리를 하고, 이것저것 펑크 난 것을 뒤처리를 해야 됩니다. 이런 잔치에 참석하다 보니까 공부를 못 했으면 이제 공부를 빨리 해야 됩니다. 학문도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직장생활도 것도 충성해야 됩니다. 계속 잔치에 가듯 다니면 직장에서 “아가씨, 사장보다 더 일찍 퇴근하네. 출근은 늦게 하고. 사장이네. 아가씨가 사장하고 회장 하지? 하루 이틀이 아니구먼. 오래됐는데 계속 그렇게 할 거여? 회사를 하나 차리 지.” 이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계속 편지를 하며 계속 교류해서 사귀고 하늘을 가까이하게 만들 어 놨으니까, 이제는 계속 편지만 하면 안 됩니다. 그 동안 하늘과 사귀고 인연이 되었으니, 이제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뒤처리를 싹 하고, 찌꺼분한 편지 같은 것 깨끗이 만들어 버리고 컴퓨터 이메일도 모두 깨끗이 해 버려야 됩니다. 인터넷을 깨끗이 안 하면 안 됩니다. 잔치 끝나고 찌꺼분하면 안 됩니다. 편지는 하나의 휴지조각과 똑같습니다. 역사 의 한 군데만 기록해 놓았으면 됩니다. 나중에 빼내면 수만 명의 내용이 다 나옵니 다. 지도자들이 이런 뒤처리를 깨끗이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몇 달 동안 글을 못 썼습니다. 책을 빨리 펴내야 될 것 아닙니까. 요즘에 편 지를 미뤄놓고 연속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하늘 앞에 편지하는 것과 말씀으로 인연 맺어놓고, 은혜 받 고, 말씀의 길을 찾고, 인생의 길을 찾고, 하나님을 발견하고, 시대를 발견하고, 역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사가 가는 것을 알고, 역사의 대열에 섰으니 이제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생활 의 빛을 발하라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이제는 생활의 빛을 발하라! 교회 안에서 말씀을 배우면서 빛을 발했지요. 말씀의 빛을 발하고, 찬양하면서 빛 을 발했는데 이제 이것을 자기의 생활 가운데 혼자 있으나 둘이 있으나 가정사 속 에서 그런 생활의 빛을 발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시간을 내서 공부도 하고, 항상 생활 속에 소금같이 안 쓰여지는 곳이 없도 록 생활의 빛을 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깨닫겠습니까. 모두 끄덕끄덕 하네요.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필요한 말씀으로 늘 채워가니까, 생활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1999년도까지 21년 동안 전반기 역사를 하고서, 쓰레기를 치우는 역사로 한 때 두 때 반 때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와 같이 그런 시간을 가져서 깨끗하게 쓰레기를 치워놓아야 “저 집이 잔치를 하더니 더 깨끗해졌네. 우왕좌왕하고 시끄럽더니 이제 조용해졌네.” 합니다. 계속 잔치해도 동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하는 것입니다. 잔치를 하면 타 동네 사 람도 오고, 이 동네 오니까 우왕좌왕 시끄럽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너무 시끄럽게 해도 안 됩니다. 조용하게 하면서 가야 됩니다. 막 소리 를 지르면서 박수치고 하던 것도 잘 해야 됩니다. “뒤처리를 잘 하라. 잔치 끝나고 뒤처리를 잘해야 된다. 은혜 받고 뒤처리를 잘 해야 된다.” 하늘의 음성에 그대로 토를 달아 이야기합니다. “금식 끝나고 뒤처리를 잘 해야 병이 안 생긴다. 금식할 때 은혜 받고 했는데 이 제 뒤처리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 받은 것 다 까 먹습니다. “편지나 말씀으로 하늘을 사귀고 인연 맺고 역사가 일어났는데, 이것도 뒤처리를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편지 받은 사람들은 개인으로 저장해 놓고 할 것 없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이 그 편지를 보면 야단법석이 난다는 것입니다. 편지 받은 사람은 개인으로 보관하지 말고 뒤처리를 깨끗이 해야 됩니다. 그까짓 편지야 자기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오기까지 있던 일인데, 뭘 가지고 다닙니까. 박물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관에 갈 것입니까? 개인 박물관에 소지할 것입니까? 여러분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왔으니까 그게 큰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편지 보낸 것, 그리고 내가 한 것 다 컴퓨터에 넣어놨습니다. 원하면 주겠습니다. 지금은 전쟁터이니까 없애고 깨끗이 해야 됩니다. 모든 것을 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제 옥동자를 낳았으니까 낳은 다음에 탯줄 같은 것도 버리고, 이리저리 피투성 이의 걸레들도 버리고 깨끗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애기 낳았다고 와서 보니까 피투성이 그대로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런 것도 깨끗이 뒤처리해야 됩니다. 건물을 다 지었으니까 공사 끝나고 거리에 쌓아 둔 찌꺼분한 것 빨리 치워야 됩 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니 공사 끝났다고 이렇게 놔 둬?” 하고 신고에 들어간 다는 것입니다. 깨끗이 처리해서 반질반질하게 해 놓고 “그동안 불편을 드려서 죄 송합니다.” 이렇게 써놓아야 됩니다. 그것이 생활의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되는 줄 압니까. 연애하고,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 다음 에 뒤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썽이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뒤처리를 못하면 너무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전에 석막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겠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인데 잠깐 해주 고 가겠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가르쳐 줬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큰 동네 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정보를 잘 알았습니다. 달밝골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고, 큰 동네에서 정보가 들어오면 우리 어머니한테 정보가 옵니다. 전화는 없는데 교회 가면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듣고서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니까 같이 밭 매는 나한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 잔대울에 아무개가 있잖아. 그 애가 석막리 어떤 머슴아, 누구의 아들하고 둘 이 연애를 했대.” 학교 내에 지은 관사 옆의 외딴 집에 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집 앞에 큰 보 리밭이 있는데, 그 분이 밤에 여자랑 연애하고 뒹굴어서 그 보리밭을 다 뭉개놨던 것입니다. 그래서 보리밭 주인이 자기 보리밭을 다 절단냈다고, 지금 막 물이 올라갈 때인데 절단을 냈다면서 노발대발하여 그냥은 못하니까 술 먹고 “이 잡놈, 잡년들. 개 같은 년들, 개 같은 놈들. 연애하다가 뱀이나 물려라. 보리밭에 뱀이 나타나 그들을 물어 야 되는데 왜 뱀에 안 물렸을까. 너무 너무 속이 상하다.” 했답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한 짐을 들 정도로 다 빠대 놓았답니다. 너무 속상하다고 하며 그 이야기를 해서 동네사람이 난리통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지는 모른다는 것이었습니 다. 우리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내게 해 주면서 보리밭 주인이 그놈들 뱀이나 물렸으 면 좋겠다 하고 노발대발하면서 돌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시골이라 여관도 없고 어디 잠깐 들어갈 데도 없으니까 보리밭에 가서 연애잔치 를 하고 뒹굴었던 것입니다. 그랬으면 넘어진 보리를 세워 잡매어 놓고 뒤처리를 하고 갔어야 했는데 그것을 안 해놓고 갔던 것입니다. 주인이 아침에 나타나서 맨 날 쳐다보는데 이만큼이 푹 꺼져버려 낙정이 되어 버렸고 진대기를 쳐놓고 갔더라 는 것입니다. 그렇게 빠댄 것이 분명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연애 한번 안 해봤지만 진대기를 치는 것은 호랑이도 아니고 개새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전 히 난절하게 떡판을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두 놈이 올라타서 눌러놨다는 것입니 다. 그 남자가 광산을 다녀서 말을 너무 잘했습니다. 광산을 다니면 이야기를 야하게 도 잘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날 만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 보리밭에 가서 연애를 했다고? 내가 이해가 잘 안 간다.” 했더니 “아이구 그만 둬. 너는 내 말을 항상 모르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내가 듣고 너한테 이야기해 준 것인데 내가 그 말 도 안 하려고 했어.” “아니 어머니, 좀 더 내가 생각 좀 해 보고...” “나는 니가 껄껄거리고 웃을 줄 알았더니 웃지도 않고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하냐. 없는 걸로 하자.” 그랬는데 그러고서 일주일 있다가 어머니가 또 내게 “야, 저 잔대울에 아무개 여 자애 있잖아. 그 애가 뱀 물려서 뚱뚱 부어있단다. 독사에 물렸단다. 그런데 머리가 길잖아. 그 머리를 잘라서 다리를 꼭꼭 묶어놨대. 그런데 늦게 묶었단다. 의사들이 왔다갔는데 살짝 들은 이야기인데, 보리밭에서 물렸단다. 보리밭이 다른 데가 있냐. 그 애들이 연애하다가 뱀에 물린 것 같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은밀하게 소문나버렸 다.” 그러면 그때 즉시 묶지 왜 안 묶었냐고 하니까 밤이라서 몰랐다고 하더랍니다. “길가에서 물렸다고 해서 어떻게 밤에 길가에서 물렸냐, 거기가 어디냐, 뱀이 물 면 멀리 못 가고 있다, 잡으러 가지 하니까 보리밭이라서 갈 수도 없는 곳이라고 그랬단다. 보리밭을 뭉갠 그 여자가 뱀에 물린 것 아니냐. 동네 사람들은 다 그러게 생각하더라. 소문이 나서 거진 다 알게 되었단다. 그 놈들이 그 뒤처리를 잘하지.”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지금 생각나서 했는데 재미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그와 같이 하늘과 잔치해도 잔치하고 뒤처리를 꼭 해야 됩니다. 그것과 흡사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생각나서 했습니다. 이 단상의 말씀은 그때그때 말씀이 타다닥 떠올라서 그것을 해 주는 것입니다. 다 른 것은 일절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하라고 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뒤처리를 꼭 해야 됩니다. 공부한다고 밤새 새벽공부를 하고, 또 교회 간다고 부산하게 화장하고 옷을 이놈 입었다 저놈 입었다 해 놓고 화장보따리도 집 어던지고 나가 버렸던 것입니다. 엄마가 “야 밥 먹어라.” 하고 가보니까 옷을 이놈 저놈 늘어놓고, 화장품도 여기 저기 놓고 난리통을 쳐놓고는 없어졌던 것입니다. “아니 얘가 이게 뭐야. 제 남동생들도 크는데 다 큰 년이 이게 뭐지? 남동생들이 이런 팬티 같은 것 보면 어떻게 하라고. 별것이 다 있네.” 엄마가 계속 기다리다가 전화를 했습니다. “너 지금 뭐하냐.” “나? 새벽기도 해.”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여. 방안이 꽉 들어차서 뭐냐. 너 뭐하는 거여. 미쳤냐? 왜 교회 다니면서 그렇게 다니냐.” 하고 야단법석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화장하고 옷 갈아입고 깨끗이 해 놔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놓고 욕 얻어먹고 “어머니는 나에게 시험을 준다. 어머니에게 마귀에 들렸다, 귀신 들렸다. 어머니는 왜 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느냐.”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빛을 발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엄마한테도 빛을 발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게 생활의 빛을 못 발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 갈 때도 그렇고, 전도하러 갈 때도 그렇고, 깨끗하게 탁탁 해 놓고 다니고, 시간 되면 일찍 들어오고, 새벽까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의도 늦게까지 하지 마십시오. 4시간, 5시간 할 이야기가 있어도 1차 한 시간하고, 두 번째 시간에 또 하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막 하면 듣는 사 람도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생활의 빛을 발하고, 시간의 빛을 발하면서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을 몇 가지를 들어 말씀했습니다. 한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드시 건물을 짓고 공사 끝났으면 뒤처리를 해 줘야 됩니다. 공사 끝나고 그것을 안 해주면 “건물을 지었는데 이 새끼들 손 안 대네. 나 길바닥의 못에 찔렸어. 못에 찔려서 못 가겠어. 그냥 못 있겠어. 이 새끼들 도대체.” 하고서 할 수 없이 거기에 써 붙입니다. “이 새끼들, 공사하고 그냥 둬서 나 못 찔렸다. 회사 가는데 못 가겠다. 일어나지 를 못 하겠다.” 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건물 주인이 누구여.” 하고 다 욕을 합니 다. 다 주인한테 화살이 날아옵니다. 반드시 보람 있게 했으니 보람 있게 흔적도 없 이 뒤처리를 해야 됩니다. 우리는 전쟁터에서 전쟁을 하면 적을 죽였을지라도 뒤처리를 꼭 했습니다. 반드시 죽은 적을 꼭 가서 묻어 줍니다. 한국 사람들은 가서 적을 묻어 줬습니다. 월남에서 230명의 적이 죽었을 때에도 전부 묻어 주었습니다. 묘를 왕릉처럼 크 게 해 주고 기도도 해 주고, 했습니다. 그렇게 뒤처리를 해 주는 것입니다. 전쟁하고 바로 뒤처리하고, 작전하고도 뒤처리를 합니다. 먹고 깡통 같은 것을 남 기면 큰일 납니다. 완전히 소각하고 묻고 깨끗이 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적들이 그 지나간 위치를 알아버립니다. 완벽하게 하고 지나가야 됩니다. 그 뒤처리하기가 제 일 어렵습니다. 꼭 그런 것을 하라고 말씀 가운데 그 뒤처리하는 빛을 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제목도 나온다면 생활의 빛 가운데 “뒤처리의 빛을 발하라”는 그런 말씀이 다시 나갑니다. 예수님은 일생을 살아가는데 사람들에게 늘 방법을 가르치고 처세를 가르쳐 주셨 습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애인이었습니다. 애인같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애인도 그렇게 자 세히 못 가르쳐 줍니다. 주님은 더 생각하고 염려하며 가르쳐 주고, 밤에 기도해서 가르쳐 주고, 또 떠오르면 가르쳐주고 그랬습니다.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가도 록 가라.” 하셨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살아나가면서 계속 문제들을 일으켰습니다. 생활의 빛을 발할 줄 모릅니다. 근신하고 걱정하며 염려하며 계속 가야 되는데 근신할 줄을 모릅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스톱 안 되는 차는 누가 그것을 몰고 갑니까. 아무리 좋은 차 라도 브레이크가 안 듣는다면 자기 차만 박치기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차를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박치기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차라도, 아무리 벤츠라도, 아무리 포드라도, 아무리 폭스바 겐이라도, 아무리 세계적인 리무진이라도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는다면 누가 타겠습 니까. 옆의 차를 그냥 박아 버리는데 큰일 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브레이크를 잡 을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 가운데 늘 생활의 빛을 발하라 말씀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에도 보면 생활의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아라.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생명을 빼앗긴 다. 스스로 너희들은 조심하라. 누가 조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야 된다.” 했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청소하고, 본인 스스로가 조심하고, 본인 스스로 공부하고, 본인 스스로가 기도하고, 본인 스스로가 관리해 주고, 본인 스스로가 청소를 하고 깨끗이 하고 그래야 됩니다. ‘하이고 없는 집에 누가 쳐다보는 사람도 없는데.’ 하고서 청소를 안 하면 안 됩니 다. 누가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고? 육적인 사람들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 고 누가 오나 안 오나, 사람이 오나 안 오나 늘 청소하고 깨끗이 해야 사람들도 오 게 되고, 하나님도 늘 쳐다보고, 주님도 쳐다보고 갔다가 그냥 안 옵니다. 냄새 맡아 보고 더러운 화장실은 안 들어가지 않습니까. 산에 가서 실례를 할망정 안 들어가지 않습니까. 더러울수록 깨끗이 청소를 해야 됩니다. ‘에이 더러운데 청소해도 빛도 안 나.’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끗이 청소를 해 야 됩니다. “하나님이 오시는데 냄새나면 안 된다.” 이것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나 나와 같 이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밤낮주야로 23년 동안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런데 잘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깨끗이 청소하고 이렇게 하라. 하나님이 쳐다본다.” 그렇게 해도 그것을 못 느끼 더라는 것입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120이 넘으면 그것을 알지 않습니까. 120이 못 되면 그것을 모릅니다. 천재는 한 번 하면 하는데 둔재는 몇 번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신다는 사람들이 그것을 모릅니다. 자기 방 깨끗이 하고, 심령을 깨끗이 하고, 가시덤불 같은 마음을 깨끗이 하고 잡 초를 뽑아내고, 그 가라지들만 뽑으려고 하지 말고 자기 마음속의 가라지를 뽑으라 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가라지와 마음속의 잡초 뽑아내고, 마음속에 의로운 일을 먼저 하고, 마 음속의 사자 쫓아내고 마음속의 이리와 광야의 독한 동물, 뼈다귀만 깨물어 먹는 하이에나 같은 동물도 쫓아내고 이러면서 깨끗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늘 그렇게 해 왔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있지 않느냐. 하나님이 허락 지 않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절대 떨어지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 이 그런 하나님이냐. 너희들 모른다.” 예수님이 왜 뛰어난가 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믿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존재자인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깨달은 대로 하나님이 어느 정도라고 자기가 아는 대로 성경 에 써놓은 것입니다. “참새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안 죽어. 하나님이 허락하면 황소도 죽고 코끼 리도 죽는다. 하나님을 알아야지. 왜 그렇게 두려워하느냐. 이제는 두려워할 것 없 다. 하나님이 허락해야지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안 떨어진다. 아무리 두려워해도 허 락하면 그냥 끝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인생을 가르치면서 “끝까지 견뎌야 한다.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 을 수 있다. 끝까지 견뎌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죄 없는 예수님을 쫓아다니고 하는 것 보고 너무 화가 났습 니다. 주님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 그렇지 않은데 주를 쫓는 것을 보고 칼 을 빼서 제사장 하인의 귀를 쳤지 않습니까. 그래서 귀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 귀를 붙여주면서 빨리 낫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베드로야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하는 것이다. 세상을 칼로 잡으려고 하느냐. 선으 로 잡고 사랑으로 잡아야지.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한다. 내 사랑하는 제자들도 누구든지 마찬가지다. 망한다. 절대 검을 쓰지 말도록 하라.”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 까.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래야 평화가 있고 이상세계가 오고 천국이 이루어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지지만, 모든 제자들이 행한 일이 예수님께로 다 불똥이 튀었습니다. 다 예수님이 책임을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제자들이니 당신이 책임지라. 당신이 하기 곤란하니까 당신이 시킨 것 아 니냐.” 그렇게 예수님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악한 일을 하면 절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믿고 그냥 가고, 자기 일만 하고 가야 됩니다. 그래야 구원이 이루어지지 치고 박고 하다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도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누구를 때리거나 분노해서 저희들끼 리 싸웠다 해도 다 내가 시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법적으로나 사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따져도 그렇게 시키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시킬 수도 없거 니와 화가 나서 분노는 해도 그렇게 시키지를 않습니다. 이미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 가서 맞고 돌아오고, 동네 사람들에게 혼나고 하도 그래 버릇했습니다. 나를 이렇게 사용하려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월남 가서도 전쟁하면서 그 사람들을 죽여야 공적인데 안 죽이고 전쟁했지 않습 니까. 원수를 사랑할 때 어떻게 했는고 하니, 그 사람이 나라고 생각 했습니다. 나 라면 어떡할까, 내 총부리에 죽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한번 사람이 살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때 살려주면 평생 사는데 하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뿐만 그 집안을 생각하고 그의 사랑하 는 여인을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때 사랑도 몰랐습니다. 그 여인을 생각했고, 자식들을 생각하고, 부모들을 생각했습니다. 내 총 한 방 갖 고 그 쓰린 꼴이 일어나며 끝나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그가 총에 맞고 뒹굴고 버리 적 거리는 것을 부모가 직접 볼 때, 애인이 직접 볼 때 어떻겠는지 생각했습니다. 바꿔놓고 그것을 생각할 때 정말 총을 못 쏘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을 한 번 도 아니고 두 번을 살았습니다. 월남에 66년도 갔다가 67년도 말까지 있다가 오고, 68년도에 갔다가 69년도 말 까지 있다가 왔습니다. 두 번이나 했습니다. 적을 안 죽이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적을 살리겠다고 했더니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사랑하라” 했습니다. 사랑해서 역사가 일어나고 서로 살게 되지 않았습 니까. 늘 그것을 가르쳐준 것은 이야기만이 아니라 “너희도 나를 따라 오려면 그렇 게 하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을 저지르고, 나쁜 일을 하든지 화가 나고 혈기가 나서 두드려 패면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다 내가 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회의 법입니다. 사회의 지도자들 중에서는 대개 시키기 때문에 그러하다 생각합니다. 그냥 전쟁할 리가 있겠냐 그렇게 생각합 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여러분 원수가 생겼으면 사랑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원 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해야 됩니다. 원수를 맺으면 해결이 못 됩니다. 내가 가 장 손해 가는데 내가 원수 사랑하자 했으니 그렇게 해야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이 있으 면 그 예물을 안 받으니까 가서 형제와 사화하고 와서 예물 드리라 했습니다. 이러 면서 신약 말씀에 이지가지 이지가지로 사람들을 전부 교육시켰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시킨 만큼 생활의 빛을 못 발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 했습니다. “나를 두고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이 하늘 나라를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말 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간다. 누가 내 제자냐, 누가 내 형제냐, 내가 내 자매냐. 내 말을 들어야 되지 않겠느냐.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마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마음 으로 살인하면 실제 살인하는 것과 똑같다.” 했습니다. 미워하다가 때리게 되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에게 노해서 분노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지옥 갈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형제에게 노만 해도 지옥에 간답니다. 너무 무섭지 않습니까. 저놈 미련한 놈이라고 만 해도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처럼, 오직 하나님의 자녀처럼, 오직 하나님의 애인처럼 참고 견디며 살으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참아집니다. 그리고 여러분 일순간의 분노 때문에, 혈기 때문에, 미워하기 때문에 사탄이 치는 것입니다. 사탄이 들어와서 사탄이 같이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간교한지 압니까. 사탄이 들어와서 서로 싸움하게 만드는데, 결국 은 서로 후회합니다. 전쟁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우리가 싸움해야 되는가 합니다. 서로 휴전하면 끝나 버리지 않습니까. 그 동안 서로 손해 갔다고 하며 손해 갔으니 딱 휴전하고 끝나버 리면 됩니다. 이런 일을 주님께서 말씀하시며 “형제와 화목하라. 서로 송사하려고 하면 송사 못 하게 하고 서로 타협하라.” 이런 이야기를 마태복음이 다 끝날 때까지 이야기했습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니다. 여러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원하노니 핍박하는 자를 위 해서까지 기도 한번 해 봐라. 하늘나라 가려면 그래야 된다. 하늘나라는 비교가 안 된다. 그것을 자존심 때문에 못하느냐. 하나님께만 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하라.” 그 러면서 열심히 한번 멋있게 해보라고 주님께서 계속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안 사랑하는 사람, 미워하 는 사람도 사랑해야 되지 않겠느냐. 서로 사랑하라. 우애하라. 역사를 이루어 나가 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5장에 말씀해서 계속 있습니다. 5장만 듬성 듬성 이야기해도 끝이 없습니다. “맹세만 하지 마라. 그게 헛맹세다. 실제로 행동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불같은 말씀을 외쳐도 불을 못 받는 원인은 불이 안 나가서 안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불 받을 수 있는 준비가 안 되고, 오래되고 찌들려서 그렇다는 것입 니다. 야망이 다른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늘을 가까이 대하는 사람들은 더 시험 들고 더 못 견뎌하고, 더 내게 걱 정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를 안 보고 열심히 하고 나를 안 보고 충성스럽게 하는 사람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안 보고 하는 사람이 더 큽니다. 솔직히 말해서 봐봤자 점수를 별로 못 얻습니다. 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 높습니 다. 내가 사람의 인물을 볼 때 너무 높이 봅니다. 왜냐하면 내가 천사들을 봤기 때 문이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인물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여 러분을 안 보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안 보고 사는 것이 복일 것이다 합니다. 여러분도 나를 안 보 는 것이 낫습니다. 보면 인성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 합당치 않다. 안 보고 믿는 것이 더 크다. 하나님을 보면 지금보다 100배 신앙생활을 더 잘해야 한 다. 봤기 때문에 그만큼 잘해야 한다.” 그랬습니다. 선생님 옆에 오면 너무 눈에 띄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못하는 것이 눈에 띄고, 잘하는 것은 얼마 없습니다. 저희들끼리 있을 때는 눈에 띄는 것이 없고, 잘한다고 눈에 띄었는데 내 옆에 오면 맥을 못 씁니다. 너무 눈에 띄는 게 많아서 하루에 30 개, 40개 지적 받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엄청나지 않습니까. 완벽해야 되기 때문입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니다. 그러느니 멀리 있으면서 지적 안 받으면서 감사하면서 크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안 보고 하나님을 믿고 나를 안 보고 믿는 것이 훨씬 이상적입니다. 보 면 내가 그렇게 대하지를 못합니다. 지금은 신같이 대하고, 완전히 신같이 우러러 대합니다. 그 꼬마들을 어린아이들을 우러러 대하고, 우러러 대합니다. 세계적인 인 물이 그렇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 가서 거울을 쳐다보십시오. 화장을 지우고 거울을 쳐다보십시오. 하 늘의 사랑을 그렇게 사무치게 받을 사람들인가. 퍼부어 받을 사람들인가 한번 생각 해 보라는 것입니다. 생각할 때 너무 감사하지요. 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니까 너무 보고 싶어 서!! 옥동자가 배안에 있는데 그냥 보고 싶어서, 얼른 낳아 보고 싶어서 병원에서 빨리 낳는 약 먹고 얼른 낳아버렸습니다. 낳아보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7달 만에 낳으 니까 뭔가 모자라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완성해야 됩니다. 완성한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제서 겨우 복음 으로 난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말씀 듣고 뒤처리하면서 계속 길러야 됩니다. 다 됐 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전문자를 보세요. 그 사람이 올림픽 경기 때 어떻게 하는가 보세요. 그 때까지는 수십 년씩, 십 년씩, 8년씩 기어 올라온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해야 합니다. 뉴스를 통해서 올림픽 경기의 기록자들과 선수들을 보세요. 수영선수나 달리기 선 수를 보세요. 축구 선수를 보세요. 그 사람들은 피눈물 나는 연습을 수백 번씩 했습 니다. 그렇게 해서 거기에 도전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겨우 복음으로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지 않습니까. 이제는 사망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오직 한 주인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자기들의 행실로 사망에서 생명으 로 넘어온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왔으니 이제 여기에서 살아야 합니다. 빛을 발하며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힘들다고 그 길을 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의 은혜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여러분! 나의 과거를 볼 때, 15살 때부터 시작해서 피눈물 나는 고통 속에 기도도 하고, 환난과, 어려움과, 가난과, 찌들림과, 인생의 머리 아픈 일들과, 고독과, 고민 과, 걱정과, 실의와 고뇌를 겪으면서 왔습니다. 월남 가서 고통당하고, 적들의 무서운 그 두려움, 죽음의 공포증을 겪었습니다. 하 루를 살아도 살아야 산 것을 보장하고 그런 세계를 거치면서 산 기도를 하면서 그 오랜 세월동안 섭리를 펴면서 왔던 일이 가물가물한 옛날인데 엊그제 같습니다. 뒤 로 잡으면 그림이 잡히듯이 잡힙니다.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인생이 금방 간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눠 보세요. 버뜩 버뜩 가지 않습니까. 인생 40살이 되었으면 잠자는 시간 다 빼면 12시간밖에 안 남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 가서 따져보세요. 밥 먹는 시간, 뭐하는 시간 다 빼면 섭리 뛰는 시간 이 없고 기도하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생활 속에 빛을 발해야 됩니다. 마음으로 범죄하는 것을 탁 끊어야 됩니다. 마음의 이성범죄를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면 행실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면 바로 행실로 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 면 일단 살인한 것으로 칩니다. 그것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인생살이 하는 법과, 각종 인생 생활하는 법을 가르쳐 줬는데도 그래 도 제자들이 못 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죽은 다음에 후회하고 울고 짜고 정말로 땅을 치고 후회하고 그랬지 않습니까. 정말로 잘 해야 됩니다.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절대 투덜대면 사탄이 옵니다. 사탄이 가입합니다. 분노하든지 혈기 내든지 미워하든지, 악인 때문에 분노하든지 행악자들 때문에 분 노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악인으로 인해서 분노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괜히 자기만 분노하면 사탄이 가입해서 자기 갈 길만 잊어버리는 것입 니다. 모두 견고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야 됩니다. 사람에게 두 가지가 환난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무능하고 무지해서 오는 환난이 있습니다. 환난 때에 형제끼리 서로 하나 되고 믿어주고 이야기해야 되는데 ‘쟤는 이상하다’ 하고 속닥속닥합니다. 이상하면 가서 사람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혹시 환난 때 자기 힘이 모자라서 매달렸던 것을 놓치면 또 그것은 눈감아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형제들이 잘못했을 때에 둘이만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눈감아 주었다가 다시 돌이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서로서로 형제끼리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화목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서로 화목해야 됩니다. 서로 화목하고 위해주고, 섬겨주고 해야 됩니다. 형제끼리 화목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화목한 사람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혹시 저 사람이 잘못 되었어도 믿어주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서로 화목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서로 진지하고 이야기도 하고 좋아하고 대화하다 웃고 서로 그런 것을 못하더라 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활 점수가 안 나옵니다. 우리가 화목하게 지내지 않으면 역사를 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그 어려운 것을 이기려면, 화목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일을 맡겨 놓으면 서로 못 믿어하고 서로 화목치 않고 서로 찢고 발립니다. 뒤에 서 편지 오는 것을 보면 열심히 충성하고 일한 사람을 두고 “돌 아이다, 이상한 놈 이다. 뭐한 놈이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는 놈은 왜 우는가 하면 무슨 뜻이 있어서 우는 것이니까 파악해 봐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기를 꺾어놓고 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여기서 저기서 보고를 하면서 “선생님 제가 책임집니다. 이렇습니다.” 합니다. 선생님이 못 봤으니까 우선 하나님께 물어보긴 물어보지만, 그런 보고를 받으면 정말로 그런 일 이 있는 가 하게 되고 어느 때는 “ 너 조심해.”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나까지 그러 면 “선생님도 나를 몰라본다.” 하게 됩니다. 얼토당토 않는 누명을 씌우고 그러는데, 형제들이 그러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 가 들린 것이고, 귀신이 들려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옛날 노방전도 다닐 때 교회에 전도한 사람을 데리고 가서 “이 사람을 전도 했습니다. 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데 가난해서 못 간다고 합니다. 성미 쌀 좀 갖다 주십시오.” 하니까 두 말을 갖다 줬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어떻게 그를 찾아냈냐고 했습니다. 보니까 남편이 교회에 못 가게 핍박한 집이었습니다. 부인이 나가버리고 애들이 굶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안 주겠다고 하기에 그래도 주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안 한다고 회개했으니까 남편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에게 쌀 좀 주라고 해서 줬습니다. 그때 그렇게 하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병든 자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계속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몇 살 때인 줄 압니까. 월남 갔다 와서 25살, 26살, 27살, 28살 때 밤에는 산 기 도를 하고 낮에는 전도하고 돌아다닌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나가야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에 겨울옷을 여름철에 헐하니까 사다놨다가 겨울에 나누어주고, 겨울철에 여름옷 사다가 나누어주고 했습니다. 대전 인동시장에 가서 한 장소를 뚫어놓고 그렇게 했습니다. 요즘에도 보면 “지도자라서 강의 때 입으려고 옷 한 벌을 사고 싶은데 돈이 없고 옷이 없네요.”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도자들을 보면 얼마 못 받지 않습니까. “안타깝기도 하지만 앞으로 해나가자. 너희들이 풍부하게 있어서 괜히 다른 짓하 는 것보다 낫다. 세계의 부자 교단들 보라. 애들을 잘못 길렀잖느냐. 부자 집은 애 들을 잘 못 기르지 않느냐. 너희들은 가난해도 나와 같이 진실하게 선하게 의롭게 살아야 된다. 참고 견디면서 하도록 하자.” 했습니다. 이와 같이 지도자들이 옷도 한 벌 깨끗하게 못 입고 다니니까 “우리 교사님은, 우 리 강도사님은 맨날 저렇게 옷 한 벌을 갖고 산다. 안됐다. 선생님이 옷 좀 해 주 지.” 하다가 어떤 사람은 편지를 했더라는 것입니다. “나를 지도하는 사람은 너무 가난한가 봐요. 옷을 못사 입어서 맨날 똑같은 옷을 입고 나와요. 맨날 빨아서 허름해졌어요. 요새 해어진 옷을 입는 사람이 별로 없거 든요.” 그런 데에 선생님이 전부 내보내줍니다. 계속 가고 있습니다. 내가 가난하게 살아 봤기 때문에 압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면서 어려움도 극복해 나가면서 이기고 나 가도록 하십시오. 요즘 선생님도 옷이 없어서 너무 뜨겁고 했는데 여러분이 옷을 보내줘서 그 옷 입고 첫 번째 설교하는 것입니다. 설교할 때 너무 더웠는데 이제 조금 덜합니다. 이 옷 입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의입니다. 기독교에서는 검은 가운을 입고하는데 나는 검은 것은 싫어하니까 하얀 것을 입 습니다. 이것은 평소에는 입지 않고 주일단상에만 입고서 그대로 걸어놓았다가 씁 니다. 여러분도 주일날 올 때는 깨끗한 옷을 입고 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와야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합니다. 예배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드리러 와야 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이지가지 해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헌금한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그것은 그런 데로 쓰려고 합니다.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도와줘야 될 입장에 있는 사람들, 목회자가 생일날인데 케익을 사 준다든지, 열심히 강의하러 다니는데 교통비도 없 는 사람들 이런 파악을 세밀하게 해야 됩니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안 하면 안 됩니다. 세밀하게 파악해서 하되, 내가 이것 을 다 못 받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각 나라가 다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파악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댐에 물이 갇혀 있는데 놔두면 그냥 흘러가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물을 알아서 ‘이 논은 말랐으니까 물을 꼭 내려 보내야겠다.’ 이것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합니까. 내가 회계를 하고 있겠습니까. 나는 안 합니다. 거기의 돈이 모자라면 여기서 하고 저기서 하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봉급도 아니 고 월급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용돈을 주시는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생활하려면 50만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50만원씩 댈 수 있는 힘이 없으니 25만원, 30만원씩 선교비를 받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생활을 하라고 했습 니다. “나를 보라. 옛날에 그때는 아르바이트 할 것도 없으니 굶었지 않느냐. 너희는 아 르바이트도 하고 열심히 뛰고 달리고 해야 되지 않겠느냐.” 돈만 계속 더 주기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조금씩 하면서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 사업하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회사에서 돈 들어오는 것이 전혀 없습니 다. 우리 어머니가 옛날에 나물 뜯어다 밥해 주고 했기에, 특별히 용돈이 없으니까 교 회에 헌금하려면 100원 하고 200원 하고 끝났습니다. 그것도 보리를 한 되 내고 한 말 내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우선 해 나가도록 하라는 것입 니다. 헌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봅니다. 여러분 전체가 다 하나님 께 바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달에 100만원이 있어야 유지된다고 할 때 여러분 이 20만원씩 용돈을 받으면 매달 70만원씩은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섭리나라가 잘되고 물질로도 잘 돌아갑니다. 100% 예언합니다. 하나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님께서 지금 물질을 주고 싶어도 물질을 주면 빌딩 사고, 아무래도 생각이 따라간 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기도하면서 그랬습니다. 2시간동안 기도했는데 기도한 것을 또 여 러분에게 보내주겠습니다. 그 때 기도한 것이 있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났는데, 잠을 깼으나 기도가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안 했습니 다. 왠고 하니 ‘맨날 환난 바람 불고, 어려운 바람 불고, 애들도 못 만나고, 꿈만 갖 고 있고, 악한 가라지들 때문에 맨날 속상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해결하면 되 는데...’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괜히 투덜투덜 하게 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4시가 될 때까지 기도도 않고 누워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옆에 와 있는 것 을 느낌으로 압니다. 6시가 넘어갈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다가 일어났습니다. 일어 나서 불도 안 켰습니다. 그런데 조금 훤해지면서 시커먼 모기가 한 마리 지나갔습 니다. 내방에 모기가 없었거든요. 쫓아가 모기를 잡으러갔더니 안 잡히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모기 때문에 3시간씩 고생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새벽 3시에 일어 났는데 모기가 돌아다녀서 “이놈의 모기 나를 물었어? 가만 안 둔다. 내 피를 빨아 먹었어. 내 귀한 피를. 내 피가 얼마나 비싸다고. 이 잡놈의 새끼야 너까지 나를 괴 롭혀.” 하며 3시간을 쫓아다녔는데 못 잡았습니다. 그래서 모기는 정말 신이다 했습 니다. 예수님께 한 번만 보여달라고 했더니 “지금 시간이 어느 때냐. 기도하는 때인데. 왜 모기 쫓아다니면서 3시간을 뺏기느냐. 3시간이면 엄청난 시간인데 모기 때문에 뺏기느냐.” 했습니다. 그때 나에게 하나 깨우쳐 달라고 하니까 “다른 사람은 신경쓰 지 말라. 너를 원망하는 사람을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기도만 해라. 뭐 하러 모기 에 신경을 쓰느냐. 모기가 너를 물어 죽이느냐. 모기가 물어 죽으면 책임질게.” “모기가 물어 죽지는 않지만 피를 빨아먹는데 너무 성질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모기에 안 뜯겨 봤습니까.” “나도 모기에 다 뜯겨 봤다. 그래도 너는 피가 알칼리성이라 모기가 잘 못 물고, 조금씩 뜯다가 말지 않느냐. 모기가 못 무는 체질이 아니냐.” “기분이 나쁩니다.” “기분이 나쁘면 일 저지르지.” 그때 그 계시를 받고 그때부터는 모기를 안 잡았습니다. 그 날 두어 시간 기도하 고 새벽에 말씀 받고 시 받고 하다 보니까 오후 3시, 4시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그 렇게 살고서 나중에 예수님에게 “예수님! 모기 한번만 눈에 띄게 해 주세요.” 했습 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모기 잡는 연습을 계속 하면서 한 번만 보여 달라고 했더니 나중에는 느낌이 오 기를 ‘장농 속에 들어있다. 장롱 속에 들어가서 옷 속에 붙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내가 노루 잡듯이 살살 다가가서 ‘휭’ 하고 날아가는 것을 탁 때려잡았습니 다. ‘야, 이 쌍놈의 모기. 진짜 내 시간 다 잡아먹었다.’ 하나님께서 모기 같은 것을 가지고 즉시 교육시키고, 자연계시를 통해 보여주셨습 니다. 오늘 아침에도 모기를 찾아서 잡으려 했습니다. 분명 서랍 있는 곳으로 갔는데 계 속 뒤져도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모기인데 날파리만 왔다갔다하면서 나에게 자기를 인식시키려고 하길래 “날파리 너는 아니여.”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휴 기도해야지.’ 하고서 기도하려고 하니까 내가 기도하는 장소로 모기가 날아가길래 저놈이다 하고 탁 잡았는데 피가 툭 터졌습니다. 그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투덜대면, 감사하고 고마워하지 않으면 사탄이 온다. 문 열어놓으면 모기 들어오 듯이 투덜대면 사탄이 들어온다. 사탄은 문을 잠궈 놔도 들어오고 벽을 뚫고 들어 오고 다 들어온다. 공기보다 더 잘 들어오지 않느냐. 그러니까 투덜대지 말고 감사 하고 고마워하고 감격해야지. 또 그러느냐. 그것 신경 쓰지 말고 너를 신경 써라. 너와 나랑 잔치 집에서 잔치나 하지 동네 개 짖는다고 쫓아가서 입을 묶어놓으면 되느냐. 그 집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너희가 잔치하니까 동네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산 너머 사람이 오니까 개가 짖는 것이 아니야. 네가 개가 되어봐라 그 럴 수밖에 더 있냐. 이해를 하겠잖아. 똑같다.” 그래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투덜대면 사탄과 귀신이 온다는 것을 내 가 상식으로 알았지만, 내가 또 깜빡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생활점수가 나오 도록 하라는 영감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해야 됩니다. 무조건 투덜대면 안 됩니다. 감격함으로 살아야 합니 다. 누구 때문에 못한다 하지 말고 무조건 우리는 해야 됩니다. 감사하면서 해야 합 니다. 여러분도 내가 편지 못한다고 누구에게는 한다 하지 마세요. 내가 그렇게 하다 보 니까 글을 못 썼습니다. 기도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런 기도를 해서 멋있는 글 을 쓰고 멋있는 역사를 남기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나에게 시간을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편지만 쓰고 전혀 못하니까 서서히 마음에 불만이 오더라는 것입 니다. 편지를 쓰다 보면 그것을 다 하려고 몸부림을 치게 되고 뒹굴고 그랬습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나중에는 편지만 보면 “또 왔어? 안 할 수가 없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 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쟤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죽을 때까지 이야기해도 끝이 안 난다. 어렸을 때 하던 이야기 지금도 하잖아. 인생 이야기는 끝이 없어. 하다 보면 또 그 이야기 또 그 이야기. 애들도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할 말이 없으니까 여기 서 끝나고 하나님 역사로 돌리자” 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씀으로 돌렸습니다. 이제 기도로 돌렸지요. 그리고 이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희 생활 속에서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생활 속에 내가 가담해서 말할 것이다. 음성을 들어라.” 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이런 일을 하느냐. 오늘은 이렇게 하느냐.” 그런 음성이 들릴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음, 기특하네. 신앙 잘 지키고 있네. 생활의 빛을 발하는구나.” 하실 것이고, 이와 같이 “생활 속에 너희들에게 함께할 테니까 생활을 지키면서 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9절 이하에 보면 “환난을 이겨야 된다. 환난을 이겨야 인자가 나 타난다.” 했습니다. 환난을 이겨야 됩니다. 육신이 나타날 때도 있지만, 영체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해가 떨어지고 달이 빛을 못 내며 환난이 있으리라. 환난 후에 인자가 하늘 구름 을 타고 오리라.” 했습니다. 환난 때에 오면 안 되지 않습니까. 환난이 끝나고 와야 되지 않습니까. 모든 환난 을 참고 견뎌야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13절에 보면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 원을 받으리라 하며 천국복음이 세상 끝까지 가야 된다 하면서 참고 견디라고 말씀 했습니다. 24장 37절 이하에서는 “시대가 이와 같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들어가서 살라 고 해도 관심이 없었지 않느냐. 시집가고 장가가고 여행가자 뭐하자 하는데 심판의 날까지 모른다. 지금도 그러하다.” 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와서 심 판해도 모르고 인자가 와서 도와줘도 모른다. 역시 노아 홍수 때와 같이 시대도 똑 같다.” 시대도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온 세계가 이성으로 물들어 있 고 자기 꿈만 꾸고, 먹고 사는 것과 입고 사는 데에만 신경 쓰기에 인자가 왔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선생님이 여러분의 옆에 가서 서 있다 옵니다. 영체가 서 있다 옵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서 있다 보면 어느 때는 여러분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끝나버리고, 자기 할 일 다 하 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래놓고 주일날 말씀에 이야기합니다. 너 정말 이렇게 할 것이냐 하고 말합니다. 그것은 누구의 보고가 아닙니다. 내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욕심을 부리지 마라. 너는 이렇게 하도록 하라. 너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 나 오해하지 말도록 하라. 네 생각대로 살 지 마라. 절대로 마음 놓고 살지 말아라.” 마음 놓고 산 사람들은 고통 받지 않습니까.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하늘이 말한 것을 지켜라. 하늘은 내 입을 통해서 말씀하고, 나는 하나님이 아니 다. 내가 조건을 세워서 내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선포했다.” 하나님이 그냥 선포하면 무서워서 못 알아듣습니다. 감동 받는 것은 맞는가 아닌 가 모르는데 내 입을 통해서 똑똑히 이야기하니까 전달되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으니까 지키지 않으면 큰일 난다. 죽을 때도 있고 병들 때도 있고 심판을 받는다. 빛을 발하자. 생활의 빛을 발하자.” 말씀했습 니다. 구원에는 신경을 안 쓰고 사는 데만 혈안 되어 살고 있습니다. 취하고 먹고 마 시고 합니다. 누가 먹지 말라고 입을 안 만들어 놨습니까. 먹기는 먹되, 역시 하나 님을 무시하고 멀리하고 인생사는 데에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 떻습니까. 과거가 엊그제 같은데 인생 몇 십 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지나갑니다. 여러분 하늘 위해서 산 것밖에 없습니다. 정말 구원을 꼭 이루어야 됩니다. 정 말 구원을 안 이루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최고 보람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앙 뺏기지 말고 총력을 해야 됩니다. 무엇이라도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그대로 하고, 싱싱한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아야 됩니다. 섭리사 안에서 투덜대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을 해도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한 일인데 이래도 투덜, 저래도 투덜 하면 안 됩니다. 환난이 일어나면 의인들은 맨날 회개하고 눈물겹고 하는데, 악인들이 일어나서 의인들을 심판하고, 역사가 그렇게 왔습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그래도 구약에서 신약까지 보면 악인들이 결국 망했지 않습니까. 악인들이 망하는 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악인들은 망해서 끝났고, 의인들은 살아서 땅을 차지해서 살 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도록 하고, 내가 여러분에게 진실로 말하노니 여 러분은 내 지체들이니까 항상 머리가 시키지 않은 짓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범 죄한 것입니다. 말씀을 다 했든지 못했든지 여기서 마치려고 합니다. 꼭 소금이 되어서 소금 같이 안 쓰여지는 데가 없이 맛을 내면서 돌아다니라는 것입니다. 소금을 고르게 뿌리듯이 여러분도 고르게 쓰여지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 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고르게 쓰여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그렇게 해서 빛을 발하도록 하고, 생활의 빛을 발하고 생활의 점수가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매너, 말하는 것 생활 점수, 남 서운하게 막 말하지 말고, 옷 입는 생활의 점수, 씻고 닦는 생활의 점수, 우애의 생활 점수, 화평의 생활점수, 소금같이 골고루 골고 루 하면서 삼삼하게 칼칼하게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너무 흐적부적 하면 안 됩니 다. 싱겁게 살면 절대 안 됩니다. 칼칼하게! 꼭 그렇게 하길 바랍니다. 꼭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꼭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의 사랑하는 제자가 될 수 없고, 구원의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중고등부도 늘 신경써주고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저희들끼리만 놀지 말고 장남들이 다 큰 놈들이 막내와 같이 놀고 같 이 이야기하고, “너 잘 지내야 돼. 그 남자 조심해야 돼. 오빠는 그 여자의 유혹을 이겨버렸다. 누가 나를 그렇게 연애하려고 하는데 계속 참고 있다. 너는 어떻게 이 겼어? 너도 이야기해봐.” “나는 있잖아. 남자가 쫓아다녀도 이겼어. 너도 그렇게 이 겨.” 그렇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교육을 안 시키고 저희들끼리만 어울리고, 저희 들끼리만 먹고 마시고 하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데려다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섞어찌개도 같이 먹게 만들고 그래야 됩니다. 중고등부 출신들이 와서 중직자들이 많이 되었습니다. 17, 18, 19살 때 열심히 하던 애들, 어렸을 때부터 좇아다니던 이런 애들이 다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만 모여서 섞어찌개에 먹고 불고기판에 앉아서 놀지 말고, 반 드시 신경 쓸 그룹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그들 중에는 카바레에 가서 춤을 추고 술을 먹다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확 돌이키고 살아 보겠다고 결심을 하고 입술을 깨물고 엄마를 전도하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너 참으로 훌륭하다. 열심히 해라.” “나 이렇게 타락되었어도 선생님 받아줘요?” “그럼. 다시 잘 하도록 하라.” 이런 애들 저런 애들 같이 어울리고 하십시오. “아이고, 그 애는 아무것도 모르고 삐쭉빼쭉 해.” 하지만, 하나님이 “너, 기준!” 하면 그 기준을 가지고 맞춰 나간다는 것입니다. 탕자들이 돌아왔을 때 기뻐하며 잔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표상들이 나타났을 때 그래야 됩니다. 그러면서 신경 써 주고, 대학부들도 신경 써 주고, 신입생들도 계속 신경 써 주면 서 잔치도 해 주고, 나아가서는 너희들 공부하느라고 수고했다 해 주고 해야 합니 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견디고 또 견디고, 힘들지만 견뎌야 됩니다. 대개 보면 전도할 때는 막 잘해주다가 전도 끝나니까 열심히 잘 안 해 준 다고 서운함 타는데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자족 자립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안 해줘도 내가 잘 해줄 것입니다. 말씀 듣고, 주일말씀 들어보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서로 우애 있게 하고 서로 좋아하고 서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대개 보면 은혜 받고 후유증이 있습니다. 탈진성이 있으니까 그때 조심해야 됩니다. 100미터, 500 미터를 뛰어갔다 온 사람은 끝난 다음에 힘이 없어 퍽 쓰러집니다. 그때 조심해야 됩니다. 옆에서 붙잡아주고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내가 15살 때는 누가 같이 하는 사람이 없고 응원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동 네 사람도 나를 응원하지 않았고, 식구들도 너 잘된다 잘하라 이렇게 하지 않았습 니다. 여러분에게는 내가 “너희들 잘 된다.” 했으니 믿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요새 여러분은 17, 18, 19인데 다 컸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누가 안 잡아 줘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예 자립을 하라는 것입니다. 각 교회 단상을 아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선생님이 이 단상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 줄 압니까. 단상 뒤는 거룩한 곳이요, 단상 속에는 찌꺼분한 것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만 넣어놓고 있습니다. 단상은 법궤를 넣어놓는 곳이기 때문에 깨끗이 해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야 됩니다. 이렇게 생겼어도 이것이 세계적인 단상입니다. 단상은 항상 깨끗이 하고 정결케 하고 닦고 씻고, 단상 앞에 와서는 특히 말조심 하고 아주 조심합니다. 하나님이 성 전에 계시매 성전에 와서 말조심들을 해야 됩니다. 이런 것들이 ‘생활 점수’에 극적으로 들어 있으니까, 꼭 그렇게 해서 영광을 돌리 며 가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빛을 발하라고 한 말씀에 이어서 생활의 빛을 발하라 했습니다. 생활 점수가 안 나오면 되겠느냐. 기도를 많이 하고, 말씀을 많이 받아놓는 사람들이 생활 점수가 많이 나와야지 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했으니 이제는 서로 지켜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랑이 신 부에게 어긋나게 할 때는 너무 신부가 실망하게 되고, 신부가 신랑에게 실망하는 일을 하면 너무 신랑이 실망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신랑 우리는 신부들이라고 했습니다. 주는 신랑, 따르는 자들은 신부 라고 했습니다. 역시 잘하게 해 주시길 믿습니다. 모두 조마조마 하고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신앙의 자리를 잡고 굳건히 성장하라 고 했습니다. 성장치 않고 어떻게 하늘을 만나려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모두가 다시 금 생각하고 생각하게 해 주시옵소서. 아까 하고 싶어도 못 한 이야기가 있는데 “주님은 우리에게 안 보이고 몸이 없 어서 마음대로 못하지 않느냐”고 하니까 “그것이 아니다. 몸이 없으니까 더 잘 한 다”고 하셨습니다. 청중에게 육신을 보이며 몸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이 좇아 와서 일을 못한다 하 셨습니다. 안 보이니까 조용히 가서 사람들을 보고 다스리고 하지 않습니까. 너도 한국에서나 외국의 각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일을 더 못한다 했습니다. 안 보 는 데 있음으로 더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냐 했습니다. 안 보이니까 더 사모하 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고 함으로 그들이 더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 했습니다.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오,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해서 하나님의 할 일을 더 못하겠느냐. 보여야 일을 하겠느냐. 그러면 보여야 더 일 을 많이 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보여 줬을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안 봐도 더 일 을 많이 하니까 그리 알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과 은혜를 주시고 의로 채워 주시옵소서. 온전케 해 주 시길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소금과 같이 고르게 고르게 모든 사람에게 고르 게 고르게 소금의 맛을 들이면서 삼삼하게, 칼칼하게, 매콤하게 모두 삶의 요리를 하면서 인생을 살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지혜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통하는 것도 가르쳤습니다. 모두 가르쳤으니 못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한번 생 활들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모두 생활들을 하게 해주시옵소서. 성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모든 못할 것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모성신이 되어서 늘 엄마같이 관리해 주시고, 은총을 주시고 애인처럼 함께해 주시길 믿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 늘 우리를 수시로 관리해 주시고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 시고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진실로 하늘을 섬기고 사는 사람이 실감 있게 실제 모시고 섬기고 사는 것을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강림했는데, 강림해서 살고 있는데, 땅에서 역사하고 있 는데 물론 하늘에 왔다갔다 하지만, 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이 늘 우리 옆에 계 시고 있고, 주님이 옆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사 를 배치시켰는데 1년이 가도 말 한 마디 안 하니까 가면서 무심하다 했습니다. “너는 언제부터 왔느냐.” “1년 전에 왔는데 이제 갈 날이 되었는데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3년 배치 됐는데... 정말로 무심합니다.” 그랬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이와 같이 천사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니 모두 똑같다고 했습 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실책들을 범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내가 빈 평안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영원하기를 원합니다. 악인으로 인해서 노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겨나가야 된다고 했 2004년 5월 23일 주일말씀 습니다. 사람이 시간을 요리하기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항상 좋은 게 좋다고 감격하고 감사하며 주님 고맙습니다 하고 늘 감사할 것이 무엇인가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엔돌핀이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불만하면 역시 사탄들이 오고 귀신들이 온 다고 했습니다. 절대 하지 않게 해 주시길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삼위의 능력과 권능이 이들에게 영원토록 충만하고 영원하고 원하옵고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러면 여기서 안녕 빠이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