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4.03.03 (월)
월 새벽말씀
- 선포일
- 2014.03.03 (월)
- 성경 본문
- 야고보 2장 26
첨부 파일
- PDF
20140303 월 새벽말씀.pdf
153.3 KB
* 2014년 3월 3일 월요일 새벽말씀(14분32초)
할렐루야!
오늘은 월요일 새벽입니다.
금주의 말씀은 야고보 2장 26절,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실이 없는 자는 죽었다.”는 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돌비에 새기지 말고, 마음 비에 새긴
말씀이다.”했습니다. 구약 말씀은 돌비에 새겼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돌에 새겨서 받았습니다. “이제
신약말씀은 심정에 넣고, 마음에 새겨라. 너희들이 붓을 놓아라. 컴퓨터를 놓아라. 왜 너희들이 기록에만 빠져
있고 행실 치 않느냐? 머릿속에다 기록하라. 내가 간단하게 말씀을 하마.”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정말로 적고
싶지요? 너무 엄청난 말씀이 막 가니까 모세가 십계명을 돌에다 새기듯이 적고 싶지만 마음에다 적으십시오.
그래서 실천해야 됩니다.들었으면 바로 칼날같이 실천해야 됩니다. 사냥꾼이 사냥하러 갔을 때에 토끼가 지나가고
노루가 지나가면 그 순간에 쏴야 되지 않겠습니가? 적기가 떠서 아군들을 폭격한다면 그 순간에 복사포를 날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번개처럼, 총알처럼 그 순간에 해야 됩니다. 늘 신령한 기도를 하고 하늘의 떨어지는 영감,
하늘의 떨어지는 말씀을 바로 실천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얼마만큼 실천하는지 압니까? 기도하면서 잊어버리니까
바로 씁니다. 바로 실천을 같이 해야 됩니다.
하늘은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지 않습니까? 임금의 잔칫집에 임금이 가서 한 사람에게 “너는 왜 옷을
안 입고 왔느냐? 혼인잔치 집인데.”했을 때 대답 안 했습니다. “즉시 쫓아내라. 잘했든지 못했든지 말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즉시 안 한다고 쫓아내 버렸습니다. 아마 그 순간에 “옷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구해도 구해도
없습니다. 벗고 오려고 했는데, 또 그러면 예의가 되지 않아서 그랬습니다.”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도
무슨 이야기를 할 때 즉시 말을 안 하면 그냥 현장에서 계획이 돌아갑니다. 알겠어요. 빨리 말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급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했을 때 우리가 아무리 금방 해도 시간이 늦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1초는 우리의 1000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빨리 한다 해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거기에다 조금 꿈틀거리면
얼마나 늦는지 압니까? 그래서 칼날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영감의 말씀이 “칼날같이 진행해.” 그랬습니다. “행동치 않는 자는 다 죽은 자다. 죽은 자는 사망에
처한 바가 된다.” 여러분의 신앙이 죽었나 안 죽었나는 보면 압니다. 새벽예배에 죽은 자들은 새벽예배 때 말씀을
듣지 않고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그냥 잠을 잡니다. 그는 일단 죽은 자입니다. 그러다가 주일날은 또 살아납니다.
주일날 와서 말씀 들으면 주일날은 또 살아납니다. 수요일 날 와서 또 살아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자기 할
것을 못하는 사람들은 일단 죽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일일이 다 얘기합니까? 선생님께서 여러분이
죽었나 살았나 일일이 가르쳐줄 필요가 없습니다. 핵심만 가르쳐주면 아는 것입니다. 수학도 공식만 가르쳐주면
본인들이 다 풀어헤칠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것이 선인가 어떤 것이 악인가 이 백성들이 선악을 구분 못
한다.” 그랬습니다. 칼날같이 시작하니까 지금 칼날같이 말씀이 빨라졌습니다.
“이제 무엇보다도 이 시대는 시대의 말씀을 좇지 않은 자는 다 죽었느니라.” 사망에 거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만 이 시대에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시대의
말씀을 들었으니까 살아있고, 그리고 실천하는 자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우리 섭리사도 다 살은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만 살아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활, 열의 하나를 드리는 자들은 살았습니다. 그들도 감사에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수시로 범사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며 기뻐하며 춤을 추며 하나님을 섬겨 모시는 사람들도 예술로 살아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자는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보시지 않으면 인생들이 개판이 되어버립니다. 마음까지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생은 마음이 한 세상, 육신이 한 세상입니다. 육신만 보면 마음 세계에서 별 일을 다
저지르니까 마음까지 보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금주의 말씀과 같이 “살아있으려면 말씀을
가지고 그대로 해라. 이유가 없다. 그것은 산 자요, 안 하는 사람은 죽은 자다. 사망에 거하는 자다. 그리고
마귀와 사단 속에 주관 받는 자가 된다.”
그러니 새벽에도 칼날같이 자기 시간에 기도해야 됩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습니다. 정한 시간이
있습니다. ‘에이, 나는 자신 있으니까 새벽 3시에 일어나겠다.’하는 자는 3시에 산 자입니다. ‘에이 나는 조금
자신 없으니까 4시로 정하겠다.’ ‘나는 4시 반.’ 그렇게 해서 자기들이 실력껏 하나님께 해야 됩니다. 모든
전도하는 것도 정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달에 실력껏 한 명 하겠다.’ ‘나는 두 명 할 수 있다.’ ‘나는 세
명 하겠다.’ ‘나는 이달에 삼십 명에게 복음을 전하겠다. 몇 명이 돌아오나 보겠다.’ 이런 계획이 있게
살아야지,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따라만 가면 안 됩니다. 사지로 끌려가는 짐승들은 아무 계획 없이 그냥
딸려갑니다. 그러나 끌려가지 않는 자들은 자기 계획을 세워놓고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선생도 ‘오늘 무엇, 무엇, 무엇을 하겠다.’하고 매일 1년 동안 정해 놨습니다. 그것을 매일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못 하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내가 못 하면 나만 죽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일 꽃나무에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내 행실도 죽었지만, 꽃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이들을 살피고 말씀을 주지 않으면
나도 죽지만 그들도 다 죽어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더 있습니까?
그런데 어떤 것은 죽으면 다시 못 살리는 것이 있습니다. 나무가 죽었는데 살릴 수 있습니까? 심령은 죽으면 또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사망으로 가라지 처럼 사라져버리면 못 살립니다. 그래서 “이는 살아날 수가
없다. 불가능하다.”하고 심판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릴 것이 있고, 못 살릴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서 회개하고 살아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못
살아납니다. 이것은 아무리 말씀을 주어도 안 살아납니다. 말씀을 주었는데 믿지를 않습니다. 행동을 안 합니다.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살아나고 싶어도 안 됩니다. 아무리 말씀을 주어도 아예 누워버리고 못
사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회개의 기회를 주어도 안 됩니다. “이런 것은 마치 나무가 죽어서 말라버린 입장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단계는 절대 가면 그냥 영원히 끝난다.” 그래서 선생님께 제자들이 물어보며 “선생님,
이를 좀 살리십시오.” 그러면 “이것은 안 된다. 나무가 죽은 것같이 죽어버렸다. 그러니 불사르고 없애버리자.
놔두면 오히려 예수님 말씀같이 땅만 버린다. 없애 베어버리자.”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믿고 깨닫고 가야 될 것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로 오늘 말씀이 왔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하니까 “행동 안 하면 다 죽은 것이다. 생명록에도 역시 지워진 바가
된다. 이제 행동하면 산다.”했습니다. 그래서 가다가 죽었다 살았다, 죽었다 살았다를 많이 하면 결국 죽습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 집의 형제들이나 부모님이나 누구든지 죽었다 살았다 하면 그것은 “아이고, 틀렸다.
죽겠구나.” 그럽니다.
신앙도 보십시오. 죽었다 살아났다 하는 사람은 결국 죽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찾습니다. “얘가 이렇게 죽었다
살았다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하면 선생님께서 편지해서 “내가 너에게 말하는데, 앞으로 한 달 동안 내가
너에게 손을 대겠다. 이때 손잡고 사망 길을 벗어나자.”하면 같이 면해서 사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못 사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편지를 합니다. “내가 마지막 너에게 편지 쓰는데, 이 편지 받고 움직이지 않으면 영원히
너에게 편지 안한다. 영원히 나는 못 한다. 내가 못 하면 너는 사망으로 간다. 지옥으로 간다.” 그렇게 하면 그
다음에 편지가 오는 사람이 있고, 안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오는 사람은 그냥 끝난 것입니다. 그러면 안
합니다. 그 다음에 왔다고 해도 안 해줍니다. 그 다음에 왔다고 해도, 선생님께서 찾던 자가 왔다고 해도 안
합니다. 왜? 나는 위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법이 있어서 그 법을 못 벗어납니다. 내가 한 법을 내가 번복할 수가
없습니다. 살리려면 역시 살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 허점이 자꾸 있으면 내 자신이 나의 오류를 찍는 것이 됩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역시 자각해서 열심히 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마음에다 뿌리박고, 칼날같이 행동하라. 번개처럼 깨닫고 칼날같이 행동하라. 그러면 그 주관권을 벗어나
가게 된다.” 전쟁터에 있을 때에 가장 많이 써먹는 것입니다. “아주 초전박살. 아주 긴밀하게 행동하라.” 빨리
행동하고 지나가버려야 적들이 오기 전에 지나갑니다. 버뜩거리고 버쩍거리고 해야 됩니다. 그런 것이 패기 있게
못 움직이면 안 됩니다. 이것을 우리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패기의 능력입니다. 버쩍거리고 움직이고 해야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꿈틀꿈틀하며, 꼭 늑대같이 움직이고, 또 비가 쏟아지기 전의 먹장구름같이 꿈틀꿈틀 그러면 안
됩니다. 버쩍거리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 아침 말씀은 야고보서 2장 26절과 고린도서 3장 3절 말씀에 의해서 우리가 조명했을 때 “버쩍거리고 하라.
그러면 머리에도 다 외워지게 되고, 실천하게 된다. 뭐하러 써놓고 있느냐? 얼른 실천해버리면 끝나는데.”
심부름을 받았으면 빨리 가서 전해서 심부름을 해버리고 끝나버리면 머리에 외울 것이 없습니다. 해버렸으니까요.
그렇지요? 실천해버렸으니까 따로 암기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천했으니까요. 이와 같이 실천자의 방법이
있습니다. 실천해버리는데 뭐하러 머릿속에, 머리 아프게 있습니까? 얼른 실천해버리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듣는 시간만 딱 기록하는 것 그리고 컴퓨터 치는 것을 하지 말고, 일단 끝난 다음에 컴퓨터 기록도
하고 그러라는 것입니다. 끝난 다음에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끝난 다음에는 얼마든지 기록하십시오. 오늘은 잠언은
한 3개 정도밖에 안 됩니다. “칼날같이 실천하라. 다른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회개도 칼날같이 빨리 하라.”
내가 글을 쓸 때에 이런 소매 끝에 먹물이 튀게 됩니다. 얼른 쫓아가서 빨리 지우면 지워집니다. 그런데 조금 10분
있다가 지우면 물이 꽉 배어버립니다. 그것이 원리이지 않습니까? 손가락을 싹 베였을 때 빨리 가서 붕대 가지고
탁탁 감으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동일한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은 번개처럼 해버리라고 했습니다. 총알처럼 실천하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오니 우리가 그런 삶을 살도록 해주시옵소서. 그런 철학을 갖도록 오늘 말씀을 했으니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게 해주시옵소서. “왜 실천치 않느냐? 빨리 해야지.” 성부, 성자, 성령의 큰 능력과 권능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영원할 지어다. 아멘.
오늘 기록했습니까? “번개처럼 실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