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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4.03.07 (금)

2014년 3월 7일 금요일 선생님 명설교

선포일
2014.03.07 (금)
성경 본문
마태복음 6장 25-34

첨부 파일

2014년 3월 7일 금요일 선생님 명설교/2005.3.6 주일말씀 하나님이 지켜주는 표적 본문: 마태복음 6장 25-34절/이사야 43장 1-7절/시편121장 할렐루야!! 여러분들 다시 한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온 세계 각 나라 여러분, 안녕 하셨습니까. 오늘 처음으로 나오신 신입생들과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기쁜 마음으로, 그리 고 반가운 마음으로 환영합니다. 아마 저와 같이 하나님도 좋아하시고 환영할 것입니다. 오늘 오래 된 사람뿐 아니라 오늘 처음 온 사람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말씀을 전해 줄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합니다. 푸짐한 하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주일동안 “나를 따라 오라”는 그 말씀을 가지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제자들을 전도하고 돌아다닐 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도해야 역사를 펴지 않습니까. 그 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며 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메시아도 전도를 해야 역사를 폅니다. 하나님도 구약 시대 때 전도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을 전도해서 역사를 쫙 펴나갔던 것이 구약에 나옵니다. 여러분이 전도해서 교회에 계속 데려다 놓으면 나는 말씀을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말 씀 전하는 데에 전념하고, 여러분은 전도하는 데 전념하고 잘 관리해 주는 것에 전념하며 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신약의 말씀과 구약의 말씀, 이 두 군데서 준비가 되었습니다. 먼저 신약 말씀 먼저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부터 마음이 감동되는 데까지 읽어내려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43 장 1절부터 하나님이 말씀하신 한 단락까지 죽 내려가며 봉독하겠습니다. 또 시편 121편을 찾아놓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마태복음 6장 25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기 전에 말씀한 내용과 또 설교에서 핵심을 써놓은 말씀입니다. <마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 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 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 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 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 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 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 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 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사43:1-7>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 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 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 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 성들로 네 생명을 내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 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무릇 내 이름 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 었느니라” 하나님이 직접 이사야 선지자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시편 121장을 봉독하겠습니다. 봉독할 때 본문 말씀을 잘 기억해 놓으시기 바랍니 다. 그래야 말씀할 때 깨닫게 됩니다. <시121편>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 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 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 며 또 네 생명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것은 다윗의 믿음과 그렇게 사는 것을 보고, 다윗이 자기를 지키는 하나님을 시인하며 노 래한 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고, 다윗은 겪고 말씀하고,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말 씀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시편 23편과 이사야 26장 3절 등등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 것도 말씀할 때 말 씀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의 표적”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표적을 행하셔 온 것을 말 해 주고, 지금도 너희에게 표적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보아라 하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을 알아 줘야 됩니다. 가령 먼 타국에 애인이 소포를 보냈는데 받았다는 소식이 있으면 또 보내고 받았다는 소식 이 없으면 못 보내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확인하실 것입니다. “너희들 내가 표적 행한 것을 말해 줄 테니 혹시 너희가 본 일이 있냐? 그리고 또 보고 싶 냐? 너희에게 각각 표적이 필요하면, 원하면 구하라. 그러면 내가 행하리라.” 하나님이 뭘 도와주시면 행하시는 자체가 표적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지킨다” “하나님이 지켜주는 표적” 이런 주제가 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하고, 말씀을 듣는 시간으로 가겠습니다. 찬양은 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이 찬송가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는 나의 목사시니” 이 찬송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켜준다는 노래로 두 찬송을 선택했습니다. ♪453장(새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1.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2. 예쁜 새들 노래하는 아침과 노을 비끼는 고운 황혼에 사랑하는 나의 목자 음성이 나를 언제나 불어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3. 못된 짐승 나를 해치 못하고 거친 비바람 상치 못하리 나의 주님 강한 손을 펼치사 나를 주야로 지켜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아~멘 위 찬양 ‘아멘’이 끝나면 아래 내용 생략하고, 그대로 마무리 하고 말씀으로 곧바로 들어가 게 해 주세요~^^ 네, 이제 말씀의 단상에 올라왔습니다. 지난주 말씀을 새벽제단에 계속 나오면서 들었을 것 입니다. “나를 따라 오라” 하며 시작한 역사는 신약의 거대한 역사를 낳았습니다. 신약 역사가 얼마 나 큰가 하면, <천주교 세계>와 <개신 기독교>의 400년 역사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세계적 인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신약역사가 예수님이 한 사람을 전도함으로 시작 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서 시작했지요. 그리고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섭리하다가 그들이 크다가 깨졌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이성의 타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다 큰 사람, 노아를 가지 고 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됐는데, 악인도 다 멸하게 의롭게 살려고 했는데 아들이 아버 지가 하는 일에 ‘믿음과 실천의 조건’을 못 세워서 또 자녀 때는 깨졌습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400년 있다가 하나님을 안 믿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다가 ‘전도’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 한 마디’를 했는데, 그가 말을 듣고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계속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의 본처의 몸에서 아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본처가 아기를 못 낳았습니다. 아기를 낳아야 자기가 하나님을 잘 섬기듯 그 아들에게도 “너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살아라.” 하려 는데 아들이 없었습니다. 부인이 아기를 못 낳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할 수 없이 여종를 통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갈이라는 여종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이 회교의 조상입 니다. 거기서 회교의 자녀들이 나오게 되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서 “야 네 몸에서 네 얻은 몸에서 아기를 낳아야지. 너는 지금 종의 몸에서 낳은 자를 중심하여 네 후손으로 삼고 네 아는 신앙을 다 밀어주려고 하는데, 네 몸 에서 난 자라야 된다.” “(사라가)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시기가 벌써 지났습니다. 아기를 낳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다.” 그래서 다시금 본 부인에게서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기 낳을 때가 지났는데 하나님께 서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표적을 일으켰습니다. 그 때 이삭을 낳아서 이삭의 자손에게 하나 님이 역사했습니다. 이삭을 늘 쓰셨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제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죽지 않는 제물이었습니다. 이삭과 종의 부인의 아들과 항상 싸웠습니다. 유대 종교와 회교와 많이 싸우지 않습니까. 지금은 기독교와 안 좋습니다. 그 자손에서 두 자손이 뻗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입장이 곤란하였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하였지만, 이렇게 엄청난 지구촌을 뒤엎는 두 종교의 자손으로 뻗 어 나왔습니다. 회 교의 세계도 엄청나게 뻗어 나왔고, 그리고 유대 종교가 죽 뻗어 나와서, 이후에는 기독교 (천주교와 개신교)로 뻗어 나왔습니다. 지난주에는 그런 말씀과 더불어 새로운 말씀을 죽 해 주면서 하나님을 따라가야 될 입장을 말씀했습니다. 나도 전도해서 오늘날 이런 역사를 계속 일으키고 여기까지 왔노라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 다. 여러분을 전도해서 교회를 만들고 계속 해왔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주의 말씀은 하나님이 전도해다 놓았으니 지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키고, 또 전도하기 전에 우리가 세상에 살 때도 지켜 주고 했던 여러 과정들을 말씀하실 것 같습니 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표적, 하나님이 지키시고 주가 지키시는 것에 대한 말씀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신약의 말씀 가운데 마태복음 6장이 가장 핵심적인 말씀이 되겠다 해서 마태복음 6 장을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인생이 물질과 살고 있는데 물론 물질이 필요하다. 그러나 목숨 때문에 물질세계가 필요한데, 그렇다고 물질로 가면 되겠냐. 그러면 안 된다. 배고프지 만 그것이 아니다. ‘아우 먹어야 되는데...’ 하겠지만, 그것은 너희들 생각이다. 내 말을 들어 라.”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목숨이 귀하냐? 의복이 귀하냐? 먹는 것이 귀하냐? 목숨이 귀하지 않느냐.” “목숨을 연명하려면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 조금 더 들어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염려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고 살까 걱정하는 것과 똑같다. 어린아이가 ‘엄마, 나 뭐 먹고살지? 엄마, 나 뭐 입고 살지?’ 하는 것과 똑같다. 부모가 있지 않느냐. 너희에게 천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나에게만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도 다 해 준다. 너희들이 하루 종일 걱정하고 있어봐라. 키 작다고 하루 종일 걱정한다고 키가 크겠냐. 그게 필요 없는 짓다. 하 나님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고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다. 그 대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라. 너희 해야 할 일을 해야지. 너희 할 일만 하면 돼. 어린아이가 부 모 앞에서 좋아하고 기뻐하고 ‘엄마, 엄마’ ‘아빠, 아빠’ 이런 것만 하면 되지 않느냐. 바로 그것이다.” 어린아이가 하루 종일 “뭘 먹고 살지? 뭘 입고 살지?” 그래서 엄마가 “너 뭘 그렇게 두런 거리냐?” 물었는데 “엄마, 나 뭐 먹고살아? 하루 종일 그 걱정했어.” 그러면 “으하하하.” 하 고 웃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쟤 큰일 났네. 저렇게 자꾸 걱정하는 것을 보니까 이상하네. 이상하네...’ 그런다 는 것입니다. “니가 얼마나 먹고살겠다고 그렇게 걱정하냐? 저기 소를 봐라. 엄청나게 먹어도 네 아버지 가 베다가 갖다 줘서 다 먹고살지 않느냐. 소가 하루 종일 걱정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겠 냐. 니가 걱정하는 것이 그와 똑같다. 그러니까 그런 걱정하지마!” “누가 해 주는데?” “엄마 아빠가 있잖아.” 그런 얘기나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하시며 꽃 비유를 들었습니다. “백합화를 봐 라. 누가 와서 거름하고 물 주는 자가 없어도 꽃이 핀 것을 봐라. 향기를 토해 진동하고 아 름답지 않냐. 솔로몬이 옷을 잘 입었으나 저렇게 옷을 잘 입고 향기가 진동했느냐. 솔로몬 의 옷에서 저렇게 향기가 났느냐. 솔로몬이 왕으로 옷을 잘 입었는데 그 옷보다 낫다.” 하 시며 비유를 들어 말씀했습니다. 단상의 이 꽃도 보십시오. 꽃이 걱정한다고 내가 물을 더 주겠습니까. 내가 알아서 맞춰서 해 준다는 것입니다. 꽃이 ‘하우 나 큰일 났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 하면 안 되지 않습니 까. “너희들, 들의 잡풀들을 봐라. 그것들이 걱정하고 있냐? 아무 것도 아닌 잡초들을 보라. 저 들도 다 살아서 싱싱하지 않느냐. 때가 되면 비가 내린다. 다 살아서 싱싱하지 않느냐. 월명 동의 잔디뿐 아니라 저들도 잘 크고 있지 않느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것 걱정 하지 말아라. 염려하지 말아라.” 사람이 염려 걱정 때문에 너무 머리가 아픕니다. 여러분, 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 때문에 머리가 아프지 않습니까. 그것을 하지 말아 라 하셨습니다. “하지 마라! 그게 필요 없는 것이다. 염려하려면 기도하면 되지 않으냐.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다. 찾으라. 준다. 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가지고 뜻을 이루려고 하는데 안 주겠냐?” 어린아이가 “엄마 젖 줘! 젖 줘!” 그러면 “또 먹을 거야?” 하며 또 주지 않겠습니까. 그만 먹는다고 해도 “더 먹어. 더 먹어.” 하면서 자꾸 더 준다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라. 염려하는 것은 흔히 하나님을 안 믿는 이방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일이 아니 냐.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그러느냐?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이 됐는데 뭘 걱정이냐?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됐는데 뭘 걱정하느냐? 하나님이 해 주시는데!” 예수님도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 탁월하게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존재자인가, 전능하신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 인간에게 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확 믿고 그로 인해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금주의 말씀이 이런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너희를 지켜 준다는 말씀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았는데 뭘 걱정하느냐?” “아니... 커서 어떻게 하지? 지금은 젖 먹고사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하지?” “조금 있으면 부모들이 먹는 음식 먹고살고 밥 먹고살지.” “나중에 더 커서 어떻게 하지?” “더 크면 더 좋지. 이제 결혼시키지. 집도 주지. 재산도 주지.” “더 크면 어떻게 하지?” “더 크면 이제 지가 컸으니 가서 일해서 돈 벌지. 끝이 없다.” 여러분이 항상 그랬습니다. 과거 10년 전 5년 전에도 늘 걱정했습니다. 맨날 걱정했습니다. 걱정 근심 염려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알아보시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 할 필요 없다”고 메시아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하지 마라.” 했을 때 안한 사람은 안 하게 되었고, 한 사람은 계속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시 지켜라!! 내 말은 생명이니 지켜라.” 했을 때 지킨 사람은 머리가 안 아프고 잘 삽니다. 걱정하고도 살아보고 안하고도 살아보았더니 똑같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주 십니다. 하나님이 천부인데! 부모인데 안 주겠습니까. 이 세상의 부모는 구해도 없을 때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꾸짖지 않고 준다.” 했 습니다. 부모는 달라고 하면 “야! 이제 다 컸으니까 니가 좀 해. 너는 맨날 돈만 달라고 하 냐? 나는 뭘 쓰란 말이냐? 돈이 어딨냐? 돈을 어디서 파 오냐? 흙을 파듯이 파냐? 니가 벌 어야지.” 이렇게 꾸짖는데, 하나님은 “우리 돈이 필요한데...” 했을 때 꾸짖었습니까. “내가 돈이 어딨냐? 내가 돈을 어떻게 보내냐? 하늘나라에 너희들 나라의 돈이 있냐?” 하고 꾸짖 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말씀하면 하나님의 위신이 있고, 또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씀하 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겠다고 선지자들로 얼마나 말씀을 많이 했습니까. 또 예 수님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성서에 선지자나 메시아로 말한 것과,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이 말한 것은 다 책임 져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대단하신 것입니다!! 엄청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회장이 “아 방송합니다. 우리 아들딸들이 열 명인데 우리 아들딸들이 여러분에게 뭘 해 준다고 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제가 다 책임지고 해 주겠습니다. 혹시 백지 수 표를 긁어놨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랬다면 보통이 아니라는 것입니 다. “내용이 뭔 줄도 모르면서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아 내용이 뭔 줄 몰라도 내가 다 해 주겠습니다.” 그랬다면 그 만큼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 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선지자들이 백지 수표를 다 긁어 버렸습 니다. 메시아는 더 크게 긁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백지 수표를 긁은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말아라.” 하고 딱 긁 어놨습니다. 그러면 염려 안 하면 됩니다. 염려해야 될 일인데 염려하지 않아서 안 되면 그 것을 책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걱정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하고 백지 수표를 딱 긁어놨습니다. 예수님이 또 마태복음 7장에도 긁어놨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하나님 이름으로 찾으 라,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어준다.” 이렇게 수표로 긁어놨습니다. 왜 받고서도 가만 히 있습니까. ‘아 이것이 백지 수표란 말이냐? 에이!’ 하고서 구겨 버리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제 일 처음에 성경 말씀을 가지고 “말도 아닌 이야기를 써놨네. 에이 앞뒤가 안 맞네.” 그랬습 니다. 어렸을 때 그랬습니다. ‘이렇게 많이 해 준다고 했는데, 그러면 기독교인들이 다 부자 가 됐을 것인데 왜 기독교인들이 부자가 안 됐을까?’ 그랬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 무 섭습니다. 오늘에 오르기까지는 너무 너무 오랜 역사에 걸쳐 올라온 것입니다. 조건대가입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공약하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산 자들이 복 있다. 천국이 너희 것이다.” 이렇게 해 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의를 위해 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해 준다고 했으니까 다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것에 대해 선생님이 들었습니다. “성경의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렇게 많은 것을 약속했는데 이것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를 믿고서 내가 보낸 자들이 말한 것을 내가 다 책임져 주겠다.” 그것을 듣고 내가 껌벅 했습니다. “우와!”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마음놓고 성경의 몇 장 몇 절, 몇 장 몇 절을 다 이야기했더니 “그럼!” 하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이 시대에 말한 것도 책임져 줍니까?” “그럼 책임져 주지. 법칙 벗어난 것은 안 되지만 다 책임져준다.” 했습니다. “야~~~” “그렇게 해도 사람들이 도전하고 바라고 그래야 되지 않겠냐?” 나를 보세요. 나를 책임져 주지 않았습니까. 나에게 해 줬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책임지 고 수백 건 수천 건 도와줘서 이 만큼 올라 온 것입니다. 한 두 개? 일이백 개 도와줘서 온 것이 아니라 수천 건 도와줘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 다.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요.” 했습니다. 이것도 책 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로 화평하게 지내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우애 있게 지내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렇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딱 인정해 준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기리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고 메시아를 절대 믿으면 서 행하면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역사가 일어나리라.” 했습니다. 일반 산은 못 옮깁니다. 산 은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을 믿게 만들어 놓는다, 불가능한 일을 하게 된다, 그런 말씀입 니다. 너무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믿고 기도한 것은 다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서 그릇 준비하고 서 있으라! 이런 책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눈을 닦고 또 닦고, 눈을 크게 뜨고 봐도 그런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또 “아픈 자, 병든 자, 고통을 받는 자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낫게 해 주 리라.” 그랬습니다. 구약 때부터 그랬습니다. ‘아 왔는데 안 나았는데요.’ 이런 사람들은 왜 안 나았는지 그 다음 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 다. “믿음이 없는 자여.” 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왜 그렇게 걱정들을 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여!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없는 자다. 하나님을 절대 믿지 못하는 자들아. 믿음이 없는 자여!” 병든 자를 데려다 놓았는데 안 나으니까 “믿음이 없는 자여. 왜 안 믿느냐. 믿은 사람은 다 나았는데 왜 안 났느냐. 어째서 안 났느냐. 믿음이 없는 자여.” 했습니다. 나도 아팠을 때 병이 나아 봤습니다. 많이 아팠었습니다. 그 때에 믿음이 어느 정도 있어야 되는가 하면,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믿습니다!” 하고 그것만 의지했습니다. 아주 결심하 고 그렇게 했더니 서서히 나아 들어갔습니다. 왜 서서히 나았냐 하면 그 동안 회심하는 마 음을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아까 내가 200명 두고 확 뒤집어 놨는데, 800이 모인 자리에서 아까 한 이야기를 또 해야 하나? 그러면 안 되는데... 아까 200명도 내내 이 800명 가운데 들어 있는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까 들었던 200명의 사람들이 이 사람의 말을 들어봐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말을 들어 보라. 어마 어마한 이야기를 한다. 너무 감동적이다.” 그랬는데 ‘할까 말까...’ 하다가 안 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있었는데 안 해 버렸습니다. 그 때 아팠습니다. 아파 가지고 열흘 동안 고생을 하는데 죽을 뻔했습니다. “너 왜 믿음이 없느냐. 하면 되지!” 그런 마음이 왔는데도 안 해 버렸던 것입니다. 내가 20 대 때 일입니다. 그때 안 했습니다. 전도할 사람을 안 하면 그렇게 큰 고통을 받더라는 것 입니다. 그 때 회심을 했습니다. 회심하면서 서서히 나았습니다. 작년에 내가 너무 과로에 들어가서 순간 아팠을 때는 너무 너무 지나치게 아팠습니다. 그때 내가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 하늘의자를 딱 잡았더니 순간 나았습니다. 그냥 만지면서 몸 이 찌르르 하면서 일순간 그냥 나아 버렸습니다. 그 의자는 내가 매일 닦아 주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잘 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갖다 놓고 그럽니다. 그리고 “하나님, 얘가 열심히 합니다. 기억해 주세요.” 그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역사할 때 믿음을 보십니다. 내가 겪어보니까 절대적인 그런 믿음을 가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닐 때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했던 사람이 있 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는데 딱 잡으니까 예수님이 “너의 믿음대로 나아라.” 했습니다. 그랬 을 때 어떤 사람은 나았고 어떤 사람은 안 나았습니다. 믿은 사람 중에 봉사가 눈을 뜨고 그랬습니다. 얼마나 놀랄 일입니까. “네 믿음대로 나아라!”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낫습니다. ‘아.. 나도 믿어봤는데 왜 안 될까?’ 내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몇 년 되었습니다. 누가 아프다고 해서 똑같은 약들 을 사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 권사님한테는 편지가 왔습니다. 잔디밭을 매는데 무릎이 쑤 시고 아프다고 해서 바로 약을 사서 보냈습니다. 거기에 해당되는 약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먹고 바로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는 안 먹었다고 편지가 왔습니다. 100개를 보내 줬는데 두갠가 세 개를 먹었을 때 나았다고 했습니다. 옆의 사람은 똑같이 줬는데 나았다는 소리가 안 나왔습니다. 편지가 안 왔습니다. 나았다고 편지를 보내온 권사님에게 물어보니까 자기는 선생님의 손이 닿았던 것만 잡아도 낫는다고 항상 생각을 했답니다. ‘분명히 이 병을 선생님이 만졌다. 분명히 남의 손을 안 거 치고 선생님의 손이 닿아서 보냈다.’ 생각했답니다. 그 약을 보낼 때 “수고했다”고 하며 내가 직접 사서 보냈다고 했는데 그 약을 먹으면 낫는 다고 확신이 왔답니다. 그 약을 한 번 먹었는데 쑤시는 것이 바로 낫더랍니다.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대로 나아라!! 그런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한 주일 동안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많이 해 줄 것입니다. 그 런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병이 있어도 낫는다는 것입니 다. 크고 작고가 상관이 없습니다. 월명동 물을 먹으면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서 절의 스님이 왔었습니다. 그분이 암이었는데, 새벽에 와서 그 물을 먹고 갔답니다. 우리 애들이 보고서 “안녕하십니까? 우리도 이 물이 너무 좋아서 뜨러 왔습니다. 어떻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한참 이야기를 하다 가 “내가 사실 암인데 이 물을 먹고 나았다.” 그러더랍니다. 어디 절에서 왔냐고 하니까 서 울 쪽의 절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한 번 더 뜨러 왔는데 참으로 하나님이 귀한 물을 줬다.” 그러더랍니다. 그 이야기 를 듣고 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 줬던 것입니다. “내가 그 스님을 직접 봤습니다. 나았다 고 했습니다.” 이런 편지가 왔었습니다. 그 스님은 먹고 가다가 나았다고 하더랍니다. 그 분 이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하나님이 주신 물은 반드시 낫는다, 병이 낫는다고 인정을 한 것입니다. 그 물을 먹고서 가다가 나은 사람들이 나에게 많이 접수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나을 수가 있냐?’ 하고 내가 의심이 갈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로 역사를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있을 때는 기도를 해 주고 했는데 없으니까 더 역사해 달라고 했습니 다. 성경에 이런 약속들을 했는데, 이렇게 약속한 것이 세상에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서 책을 보면 둘에다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 그런 약속만 있습니다. 성서의 말씀에만 약속이 여러 수천 군데 나옵니다. 하나님이나 그렇게 약속하지 일반 사람 은 그렇게 못합니다. 능력이 있어야 약속을 지키지 않겠습니까. “구하라, 주겠다! 찾으라, 찾 게 해 주겠다!”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걱정이 있으면 하늘 앞에 구하고 찾고, 주의 이름으로 구하라! 그러면 염려할 것이 없다.” 사람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고, 수심에 찬 그런 인생들을 살고 있습니다. 거의 그렇습니다. 뭐가 조금 안 돼도 걱정 염려를 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염려하지 마라 했 으니 염려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염려하지 마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또 염려들을 하는구나. 너희들 지금 때가 어 느 때냐? 염려할 때냐? 하나님이 지금 너희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옛날 종들에게도 그렇게 역사하며 함께했는데, 아들 시대 때도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신부시대인데 왜 염려를 하느 냐? 신부들이 왜 걱정을 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여! 믿는 믿음이 없는 자여!! 주를 믿는 믿 음이 없는 자여!” 하나님과 주를 웃기게 본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구약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하셨습니까? 안 보이시는 하나님이 하늘나 라에서 무엇을 하셨는지는 하늘나라 건(件이)기 때문에 자세히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지상 나라의 성경을 통해 나타난 것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돕고 함께하고, 보다 고통 스러울 때 이끌어 내고 했습니다. 아무나 그렇게 안 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섬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아주 본격적으로 계속 이끌어 내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서 외치고 돕는 일만 했습니다.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계속 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 그것만 나와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하루 종일 뭐했나 보면 거진 아기 살피는 일만 한 것입니다. 아기에게 젖 주 고 기저귀 빨고, 아기가 따뜻하게 불을 때고, 아기를 위해서 젖이 많이 나게 잘 먹고, 이런 일만 거진 하듯이 하나님은 마치 어린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처럼 부모처럼 사람들에 대해서 계속 그것만 하신 것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성경을 수백 번씩 수천 번씩 읽어도 그것만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나한테 성경을 다시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사를 봐도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요셉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전적으로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전부다 성공을 시켰습니다. 성공시키고 잘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나라에 가 있을 때 거기서도 잘 크게 전적으로 살폈습니다. 그들이 고생하며 종살이 할 때도 계속 살폈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돼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보내 서 이끌어 왔습니다. 거기서 이끌어 낼 사람이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야 너희들 나가라.” 하기 전까지는 누가 감히 이끌어 내겠습니까. 이끌어 낼 사람이 없습니다. 온 민족 이 일어나서 완벽하게 왕을 중심하여 명령까지 하면서 “절대 놔두지 마라. 이것들 나가면 안 된다.” 그렇게 했는데도 하나님이 기어코 모세 하나를 보내서 빼내지 않았습니까. 하늘 에서 형벌을 주지 않았습니까. “이놈들 400년이나 부려먹었으면 됐지, 더 부려먹는다고? 이 민족이 너희들이 낳은 민족이 냐? 나의 민족인데 말을 안 들었다. 그래서 거기 가서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 끝났기 때문 에 데리고 오는데, 왜 말이 많으냐? 그 동안 부려먹은 삯을 줘야지. 삯을 줬느냐? 싸가지 없는 놈들.” 하며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홍해 바다를 가를 때 역사하시고, 그리고 아말 렉 족속과 싸워서 이기게 만들며 역사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우리가 언제까지 싸움만 하고 사느냐?” 그런 소리가 자꾸 나오니까 모세를 통해 “쟤들이 자꾸 원망을 한다. 못하게 하라. 조금만 가면 되니까.” 했습니다. 모세가 와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왜 자꾸 하나님을 원망하느냐? 그렇게 하지 말아라. 큰일 난다.” 그랬더니 “아니 우리가 지금 안 하게 되어 있냐.” 하며 모세를 원망하 고 그랬습니다. 계속 원망하고 불만 불평하고, 가나안 복지에 가서 구경하고 왔어도 지도자 들이 “아, 거기 못 간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안 되겠다.” 하셨습니다. 포용하 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하늘나라의 천사들이 보지, 영계의 천사들이 보지, 많은 지상에 있는 나라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저렇게 말을 안 듣는데 그냥 두면 되겠습니까. 혼 내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아 말을 안 들으면 저렇게 하나님께 혼나는구나.’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너희들끼리 한번 살아봐라.” 그러니까 거기서 지치고 쓰 러지고, 이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2세들, 20대였던 사람들, 원망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여호수아가 데리고 그대로 가나안 복지로 갔습니다. 거기서 젖과 꿀이 흐르는 역 사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많은 원주민들이 있었으나 싸워서 이겨 버렸습니다. “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 하며 나아갔기 때문에 31개 왕들과 싸워서 다 이겨버리고 멋있게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계속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올 한 해도 감 사합니다. 또 이렇게 됐어요.” 이러면서 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크나 작으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크나 작으나 따르는 지도자를 좋아하고 주를 사랑하고 위해 주고 사랑하며 섬기면서 가야 자꾸 뭘 주고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집에서 웃으면서 계속 살아보십시오. 무슨 복이 오나 한번 하루 종일 웃으면서 살아보십시오. 소화가 잘 되겠지요. 소화가 잘 되는 것도 복이 아 니겠습니까. 웃으면서 하루 종일 살아보십시오.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웃으면서 살면 양심에 가책이 없지 않습니까. 누구는 인상을 쓸 줄 몰라서 인상을 안 씁니까. 웃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서 로 웃고 사는데 인상을 쓰면 안 되지요. 다 웃고 재밌게 사는데 인상을 쓰면서 “허이구 섭리사 힘들어. 비전이 없어. 섭리사 뭐...” 그러면서 어쩌구 저쩌구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불만 불평하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들어가면 빼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무섭습니다. “행한 대로 받아 라.” 그럽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때는 엄청나게 사랑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 고 계속 불만 없이 살면 한 번도 안 찍히고 계속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 나 지금 인상을 쓰고 있어요.” “왜?” “교회도 가기 싫고요. 말씀도 듣기 싫고요. 그래서 새벽예배도 안 가고 주일도 안 갔어요.” “왜 안 가? 왜?” “나 좀 붙잡아 주세요.” “그래? 내일부터 가면 되지, 뭘 붙잡냐? 내일부터 꼭 가라.” 그런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그렇게 옵니다. 무조건 무단결석하고 무조건 불만하면 나중에 가서는 사탄들이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썩어 들어간다. 내 것이다.” 그런다는 것입니다. 썩고 버리는 것들만 사탄들이 가지고 갑니 다. 개가 주인이 먹는 것을 못 먹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개가 주워 먹고 고양이가 주 워 먹습니다. 불만 불평하지 말고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 하시면서 오셨습니다. 개인이나 민족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항상 열심히 해 줬는데, 말을 안 듣고 감사할 줄 모르고 고마워할 줄 몰랐을 때는 자동적으로 하 나님이 때리기 전에, 하나님이 이렇게 가라 했는데 말을 안 듣고 저리로 가면 딱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린 것도 아닌데 법칙을 벗어나서 다리를 다치고 큰일을 당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법을 줬는데 하나님의 법을 벗어나면 자동적으로 다치고, 죽기도 하고, 원통한 일도 당하고, 화도 당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받은 것을 모르고 ‘아 왜 하나님이 나에게 화를 줬지? 하나님은 정말 무서 워. 너무 무서워.’ 그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해서 잘 다독거리고 잘 만들어 영화를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막 화(禍)를 주고 그러겠습니까. 가지 말라는 길을 하와와 아담이 갔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 후 에 회개하고 “하나님, 내가 가지 말라는 길을 가서 이렇게 됐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러 면 “그것 봐. 가지 말라는 길을 왜 갔어. 많이 다쳤네.. 석 달 동안 고통을 받겠네.” 석 달 동안 고통이 끝난 다음에 다시금 치료해주고 하나님이 도와주고 빨리 낫게 해주고 또 섭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만 불평하고 ‘아 나는 싫어. 싫어.’ 하면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심판을 감행합니다. 심판을 받고서 다시금 복직하는 데는 천년 혹은 2천년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구 약 때는 그랬습니다. 지금 시대 때는 천년이 핵심이니까 300년 혹은 200년 100년이 걸리 겠지요. 영계까지 가서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 하고 지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에 대해 모르는데, 알고 살도 록 하라.”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는 법을 정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 여기에서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들이 가다가 떨어져서 다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심판도 아직 안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 이 때린 것이 아니라 본인이 법칙을 벗어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 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3장을 보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 있지 않습니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제 내가 이야기한다. 또 이스라엘 민족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한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는데 뭘 두려워하느냐. 내가 구원하고 내 가 너를 지키는데 뭘 두려워하느냐. 늘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함께할 것이요. 떠내려가지 않게 할 것이 요.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엄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혹시 불 가운데 가도 타죽지 않 게 하리라.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게 하리라. 대저 나 여호와는 너의 하나님이다. 너 하나 보고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안 믿지 않느냐. 거룩한 자요, 구원자이다. 애굽을 주지 않 았느냐. 구스를 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를 지키는데 무엇을 걱정하느냐. 너희 자손들이 동 방에서부터 오리라. 걱정하지 말아라. 또 누가 너를 힐문하느냐? 힐문하지 말아라. 놓으라. 잡은 자들아 놓으라. 그리고 누가 너를 구류하느냐. 구속하느냐. 구속하지 말아라. 당장 놓 으라. 나는 너희를 돕는 자이고 너희 사랑하는 하나님이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사랑할 때는 사랑하면서 잘 지냈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 님이 축복해 줘서 너무 잘 지내니까 나중에는 우상을 섬겨 보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 을 즐거워하며 섬기지 않고 저희들끼리 놀기만 하고, 점진적으로 타락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회개를 시켰으나 회개를 잘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는 하나님께서 그동안 한 것을 다 심판하셨습니다. 개인도 민족도 항상 그렇게 해 왔습니 다. 말만 잘 들으면 영원히 잘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옆에 가까이 있을 때는 잘 하다가 멀어 지면 딴 마음을 먹고 하는데 그러면 큰일 납니다. 그러면 심판이 간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았을 때는 잘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잘 하는데, 그러다가 은혜 받 고 제 갈 길로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두방정을 떠는데 그러면 오래 못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너무 간사하다”는 말 씀을 많이 주셨습니다. 선지자들도 말씀하기를, 사람들이 너무 간사하다 했습니다. 개인도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하고, 잘만 하면 계속 축복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축복을 받 고서 대개 사람들이 해이해지고 다른 데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처음에 돈 벌 때는 피눈물 나게 돈 벌면서 “나도 이제 정말 잘 살고, 애들 잘 기르 고 산다.” 해 놓고 돈 벌고 나면 이리저리 막 돌아다니고, 돈을 퍼붓고 돌아다니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회사가 싹 날라 가게 합니다. 그때서야 ‘회사가 어떻게 날라 갔지? 그 동안 먹은 것만 남아 있구나. 그 동안 입은 것만 남아있구나’ 그런다는 것입니다. 대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잘해 주면 반드시 그것을 가지고 그대로 계속 가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개인 적, 민족적, 세계적으로 계속 축복해 주십니다. 나중에 가서는 하늘나라까지 축복해 줍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주 근신하고, 그 리듬을 깨뜨리 지 말고 죽 가라는 것입니다. 리듬을 깨뜨리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 리듬을 깨뜨리지 않고 계속 갔습니다. 창세기 18장, 19장에 보면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가 죽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리듬을 안 깨뜨리고 계속 가니까 계속 잘된 것입니 다. 죽을 때까지 잘됐고, 그러다가 그 자녀들도 계속 잘됐습니다. 아들 이삭, 손자 야곱, 증 손자 요셉 그대로 잘 됐습니다. 모세도 계속 꾸준하게 갔습니다. 선지자들도 꾸준하게 가니까 계속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를 중심해서 민족과 세계를 흔들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예수님도 어떤 환난이 있어도 꾸준하게 갔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이 있어도 그대로 올라 가서 십자가로 지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할 때 복을 끊이지 않게 퍼부어 주신다는 것입니 다. 다윗을 보십시오. 시편 121장에서 어디서 도움이 오는가 하고 눈을 들어보니 여호와께로 오더라 했습니다. 밤낮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켜 주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래서 살 았지 않습니까. 다윗은 17살 때 일어났습니다. 17살 때 눈에 띄었습니다. 옛날사람인데도 17살에 일어났는 데, 지금 사람들은 20살, 30살이 되어도 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종교개혁을 했던 루터도 열일곱, 애굽나라의 총리를 했던 요셉도 열일곱 살 때부터 인생길 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17살이 너무 너무 귀한 때입니다. 내가 늘 “10대에서 결정된다. 10대에 잘 결정하라. 10대 에서 결정된다.” 하지 않습니까. “그때 못하면 10년 후에 27살 때쯤 한번 생각해 보라. 그 때 또 결정해야 된다. 그때 못하면 37살 때쯤 해서 결정된다.” 합니다. 미끄러지면 큰일 납니다. 미끄러지면 안 됩니다. 미끄러지면 그 사람이 다시 올라오기를 언 제 기다립니까. 하는 사람 붙잡고 역사를 가는 것입니다. 내가 늘 이야기하는 것이 10대에 있었던 일들이 너무 푸짐하고 크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10대에 각오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누구를 닮겠다. 어느 부흥강사를 담겠다.” 했지만, 나는 “예수님을 닮겠다” 고 결심했습니다. 훌륭한 부흥강사도 있고, 훌륭한 사람도 많이 있었지만 나는 어느 대통령 닮겠다고도 하지 않고 나는 “오직 예수님 닮겠다. 예수님의 성격을 닮겠다. 예수님같이 하 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닮겠다.” 했습니다. 그것이 10대에 결정한 것입니다. 산기도 다니면서 사람들이 “나는 어느 부흥강사 같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싫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닮게 해 주세요. 나는 예수님만 닮을 테니까.” “응? 부흥강사들 같이 막 외치고 하는 것 닮지?” “싫어요. 나는 예수님만 닮을 것입니다. 예수님같이 설교도 하고, 주님과 같이 잘 하고 싶어 요.” 예수님의 설교는 스릴 있는 설교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너무 깊은 설교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실천하면서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이 지키시는 일들을 오늘 잘 들어보십시오. 어떤 상태에서 지키시고, 함께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시고, 표적을 일으키시는가 잘 들어보십시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님을 중심한 두 개의 이야기를 묶어서 말씀할 것입니다. 그리 고 이 시대 치도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이 시대도 그렇습니다. 항상 개인이든 민족이든 세계든지 하나님 께 잘 하고 늘 가기만 하면 계속 역사를 펴면서 축복을 주십니다. 개인도 죽을 때까지 계속 주고, 그 자녀들까지 삼사대까지 준다고 했습니다. “네가 잘하면 네 당세에서부터 삼사 대 까지 잘되게 해 준다. 못하면 삼사 대까지 화를 받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조건을 세운 사람 밑에 가 있어야 됩니다. 삼사 대까지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 대적인 조건을 세운 자의 자녀가 되면 너무 좋지요. 그런 절대적인 조건을 세운 사람을 너 무 좋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육은 “화평케 하라. 서로 우애하고 살아라. 서로 원수 없이 살아라. 그런 조건을 세워야 된다. 그리고 구하라. 준다. 구해 봐. 내가 구해야 되겠느냐. 그건 네 것이 아니냐. 네가 구할 것이잖아.” 하면서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그대로 하니까 받은 것입니다. “환난 때 참어. 끝까지 참고 믿고 따라가야 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라야 돼.” 그렇게 가르치니까 그대로 한 것입니다. 이 시대도 조건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나는 ‘기독교들이 모두 왜 신앙이 죽어 있고, 믿어도 외식으로 믿고 그럴까?’ 했습니다. 기 독교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입장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그렇게 공경하고 좋아하고 그렇게 잘하는 자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애인들은 그렇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의 부인이나, 어떤 여자 애인 남자들은 정말로 너무 진실로 사랑하고 너무 좋아하 는 것입니다. 꽉 껴안고 그럽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버지를 막 껴안고 그렇게 좋아하지 못 합니다. 어렸을 때는 해도 커서는 못하지 않습니까. 나는 생각했습니다. ‘안 되겠다. 예수님을 형제로 보고 구세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애인이 다. 아주 애인같이 대해야 되겠다.’ 했습니다. 대둔산에 기도하러 다닐 때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껴안고 다니고, 키스하고, 가서 앉아서 뒹굴고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정말 못 봐 주겠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크면서 대둔산에 다닐 때 못 볼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때 딱 생각했습니다. ‘내가 못 볼 것을 본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달렸다. 나도 예수님을 저렇게 붙잡고 키스하고 뒹굴어버려야 되겠다.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하며 살겠다.’ 했습니 다. 그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뒤집어진 것입니다. ‘주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야겠다.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살아야지.’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런 신 앙의 불이 붙어서 조건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깨끗이 살아야 되겠고, 정결하게 살아야 되겠고, 선하게 살아야 되겠고, 원수를 사랑하면서 살아야 되겠고, 신약의 말씀의 법을 다 지켜야 되었습니다. 형제의 선을 넘어가려니까 그렇게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단정히 해야 되겠고, 예쁘게 해야 되겠고, 늘 목욕재계를 해서 깨끗이 해야 되었 습니다. 남자를 가까이 하려면 여자가 늘 깨끗해야 되지 않습니까. 정신적으로 깨끗하고 행 실적으로도 깨끗해야 되지만 육적으로도 깨끗해야 됩니다. 땀 냄새가 나고, 입 냄새가 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계속하면서 늘 목욕하고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 서 모셔온 것입니다. 그런 조건을 딱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니까 말씀을 가르쳐 줘서 알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계속 가르쳐 주고 이야 기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어떻게 해서 알았습니까. 여러분이 나를 사랑하고 너 무 좋아하니까 말씀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이렇게 알게 되고, 새로운 시대 가 온 것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새로운 시대입니다. 서로 형제같이 사랑하다가 애인같이 사랑하게 돼서 애인이 됐으 니 새로운 세계 아니겠습니까. ‘애인 시대’가 와 버린 것입니다. 그런 시대로 뒤바뀌어 버렸 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새로운 역사가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천년 동안 너희들이 나와 같이 신부같이 지낼 것이다. 천년 동안 혼인잔치하며 살 것이다. 너희들은 그때 세마포 옷을 입고 살 것이 다.” 그러니까 그것이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그렇게 하면 그런 조건의 터전 위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님을 우러러 애인같이 섬기게 사는 것입니다. 더 이상이 없지 않습니까. 최고이지 않습니까. 최고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때 예수님이 메시아인데, 예수님과 한 형제로 살았습니다. 다 종들로 사는데 형제로 사니 거기서 더 이상 없지 않습니까. 소원이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애인 으로 섬기고, 주를 애인으로 섬기고 주가 애인화 됐으니 그보다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제 일 큰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조건이 없이 입만 벌리고 “나도 그렇게 하겠다. 나도 애인같이 그렇게 하겠 다.”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 돼. 조건이 있어. 그런 조건을 모두 절대적으로 가지고 가야 된다. 그런 조건을 세우지 않고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시대에 미끄러져 가리라.” 스키를 잘 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꾸 올라가서 ‘나도 해야지’ 하고 올라가다가는 “어..” 하 고 바닥까지 미끄러져 나갑니다. 안 죽기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스키를 탈 줄 알고 조건이 있어야 척척 스키를 탈 수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여러분도 그러하다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조건을 이 시대에 세우니까 시대의 역사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가끔 선생님이 이사야 43장의 말씀을 합니다. “네가 불 가운데 가도 안 타죽으니 걱정하지 마라. 물이 너를 엄몰치 못하리라. 물을 건너 갈 때 괜찮다. 염려하지 말아라. 왜 구류하느냐. 왜 얘를 구속하느냐. 놓아라. 북방에 이르기 를 놓으라. 왜 걔를 잡고 있느냐. 놓으라. 남방아 구류하지 말아라.” 이런 말씀들을 할 때는 그런 환경에 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한 것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하면 ‘왜 거기를 자주 하는가? 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말씀하는가? 왜 하나님이 지켜 준다고 하는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에게 해당되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주지를 않습니다. 나와 한 몸이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을 여러분에게도 주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프니까 “머리 아프지 말아라.” 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몸체라, 지체라 왜 머리가 아픈지를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가 아프면 지체도 고생이 많습니다. “염려하지 말아라. 불 속에 들어가도 타죽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또 물 속에도 들어가 도 괜찮다. 불 속도 괜찮다. 지난날 과거의 일을 생각지 않느냐. 월남에 있을 때에 총을 쏘 고 잡아당기고 했는데도 안 죽지 않았느냐. 왜 그것을 또 잊어버렸어?” 하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이 말씀을 듣고, “너희들 걱정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아라. 왜 걱정하느냐. 뭐가 걱정이냐? 어떤 거여. 어디가 아퍼? 쌀 떨어졌어? 구하라. 카드빚이 있어? 하나님께 구하라. 갚아 달라고..” 누가 카드빚이 2000만 원이 있다고 나에게 구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이러합니다...” “그러냐? 알았다. 직장생활 해야지. 어디 가서 직장 생활하라.” 해서 직장생활 했습니다. 어 디 회사에 보냈는데 선생님이 보내니까 회사 사장이 너무 감격하면서 “사람 보내 줘서 고맙 다.” 하면서 잘 쓰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걔가 빚을 졌으니까 한 2년 3년 동안이면 갚을 수 있으니까 잘 훈련돼서 잘 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그 다음에 4개월 만에 편지가 와서 “저, 빚 다 갚았습니다.” “어떻게?” “사장님이 갚아 줬습니다.” “아니, 얼마나 돈을 받길래?” “빚을 갚아 주었고, 조금씩 조금씩 갚다가 못 갚으면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매달 나 에 게 돈을 주네요.” 그렇게 해서 끝나버렸습니다. 얼마나 큽니까. 그 은혜를 감격하고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열 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주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안 하면 안 됩니다. 안 하면 또 빚을 지는 것입니다. 늘 고마워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냥 축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주는 사람에게 늘 고마워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살아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사람이 100명 중에서 잘 해야 10명만 고맙다고 하는 것이 옵니다. 내가 축복 은 해 줍니다. 100% 해 줄 수 있는데 하나님께 고맙다 하고 감사하다는 소리를 안 해서 잘 못 해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축복해 주마.” 하면 축복이 100% 됩니다. 그러나 그 후에 축복 받고 그것을 가 지고 다르게 나갈까봐 축복을 안 해 주는 것입니다. “네가 축복하는 대로 축복을 받으리라. 네가 심판하는 대로 심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 런 조건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조건을 세웠으니까 이 성경말씀의 인봉 을 다 떼어버린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 다 해도 아마 성경말씀을 못 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애인이니까 가르 쳐 준 것입니다. 문제는 가르쳐 주고 나 혼자만 알라 하는 것이 아니라 또 가르쳐 주라고 하니까 입이 아픈 것입니다. 평생을 해야 됩니다. 이제는 책에 써놓고 그만 하겠다고 합니 다. 그래서 책에다 전부 써놓고 놓고 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를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오늘 새벽에 전초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벽에 잠언을 40개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매달렸는지 모릅 니다. “주일날이지만 꼭 잠언을 줘야 합니다. 오늘 말씀할 때 하겠습니다.” 하며 잠언 말씀을 달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잠언 말씀을 안 하시고 다르게 가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달라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을 때 첫 번째 잠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지킨다고 했는데 지키는 데에 대해서 말씀을 달라.” 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잠언이 왔습니다. 1. “너를 지키는 나 여호와는 네 옆에 있다.” 하는 그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적 었습니다. “너를 지키는 나 여호와는 네 옆에 있다.” 해서 양손으로 양쪽을 탁 잡았습니다. “어? 안 잡히는데요.” ‘옆이 아니라 조금 멀리 있을까?’ 하고 기도하다가 무릎을 펴고 가서 또 싹 잡았습니다. 그때 두 번째 음성이 들렸습니다. 두 번째 잠언입니다. 내가 이런 것을 자세하게 해 줘야 압니다. 안 해 줄 수도 있습니다. 원래는 이것을 안 해 줘야 됩니다. 교육상으로도 원래 안 해 주는데 여러분에게 할 수 없이 몇 개만 해 주겠습니다. 2. “나는 영이니 영의 세계에 있노라.” “나는 영이니 영의 몸으로 영의 세계에 있노라.” 해서 ‘아 하늘나라에 계시구나.’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 영의 세계에 있다?? 이 세계도 영의 세계인데... 내 영도 이 세상에 살고 있 는데.’ “우리를 보시며 우리 옆에 천사를 보내놓고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쳐다보고 계시다.” 영의 세계에 계시면서 천사를 보내 놓고 있고. 이러면서 하나하나 말씀을 해 주신 것이 40 편을 주었습니다. 말씀이 한번 나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꼬치꼬치 물어서 받아냅니다. 선생님이 옛날 어렸을 때, 6살인가 7살 때 어떤 동네 청년이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다 녔습니다. 그 청년이 그것 만드는 데 보름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을 7일 동안 계속 울 면서 쫓아다녀서 기어이 내가 빼앗았습니다. 나중에는 울면서 우리 어머니에게 와서 “얘 좀 어떻게 해 주세요. 다른 것을 해 줄 테니까. 이것은 정말..” 그랬는데, 우리 어머니가 “왜 그 걸 그 애에게 보였어? 보이지 말지.” 했답니다. 6.25 때 피난 갔을 때 교촌리에 있는 외갓집으로 갔습니다. 그 청년이 외갓집 동네 사람이 었습니다. 이름이 성렬이입니다. 일곱 살 때 하도 그 이름을 불러 대서 이름도 안 잊어버립 니다. “성렬아, 나 줘. 나 줘.”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안 잊어버렸습니다. 나중에 7일이 넘고 8일째는 그 사람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자 너 해.” 그랬습니다. “아주 줬지?” “아주 줬다.” “감사하다. 너무 고맙다.” 했습니다. 그렇게 받아 가지고 쓰다가 내가 쏠 줄을 몰라서 또 물 어보러 갔습니다. 속상해 하고 있는 그 사람의 집에까지 쫓아가서 물어봤습니다. 그 집이 교촌리 끝에 있었는데 그 집까지 가서 물어봤습니다. 가서 물어봤더니, “여기에다 돌을 얹어놓고 쏘는 거야.” “손이 너무 아프다.” “너는 어리니까 손이 아프지. 헝겊으로 감고 해.” “너무 좋다. 이제 알았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빼앗았습니다. 그것이 강철로 만든 것이라 손이 너무 아팠습니다. 용수 철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기질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그런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 받은 말씀인데, 이것은 지금 안 해도 됩니다. 새벽말씀 때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이 쳐다보고 있으면 옆에 있는 것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한번 잡아보려고 지금 얼마나 벼르고 있는 줄 압니까. 예수님은 잡았습니다. 기도할 때 많 이 잡히셨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게 웬 일이냐.” 하셨습니다. 내가 확 잡았었습니다. 내 영이 예수님을 잡았을 때 육신을 잡은 것과 느낌이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내 육신으로 잡을 때는 영이라서 안 잡힙니다. 내 영으로 잡아야 됩니다. 산에 있을 때 사람이 없으니까 너무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산에 있을 때 아무도 없고 예수님이 나타나니까 너무 좋았습니 다. 너무 사람이 보고 싶어 환장하는 판국인데 예수님이 나타나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늘보좌에 계셔 너희를 쳐다보고 있어도 네 옆에 있는 것과 같다. 지키고 있으 니까. 네 옆에 지금 천사 있다.” 기도하고 있으면 천사들이 바로 옆에 있지 않습니까. 한 5미터 10미터에서 쳐다보고 있습 니다. 사탄들이 오는가 지켜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한 번 잡아보기를 원하고 한번 붙잡아보려고 하는 그런 애타 는 마음을 지금도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도전하고 좋아하고 가까이하고 그래야지, 하나님을 그냥 대하 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했는지, 얼 마만큼 해야 되는지를 모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략)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해도 예수님이 나에게 첫사랑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산에 있을 때 는 진짜 정말로 좋아하더니, 세상에 나오고서 너무 달라졌다.”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너무 쇼크를 받고 너무너무 열심히 하는데도 예수님께서 어느 때는 째려 보십니다. 자기 사랑하는 자가 째려보면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산에 있을 때는 오직 예수님밖에 몰랐습니다. 옆의 아무 것도 안 쳐다봤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신부라 함을 받는 것입니다. “선생님, 저 목사님이 맨날 신부라고 하는데 신부예요? 남잔데 맨날 선생님의 신부라고 해 요. 자기는 누구보다 신부라고 하고 그래요.”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여. 자기 신앙에 달려 있어.”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됐다는 이야기예요? 가르쳐 주세요.” “그래. 신부여.” “그래요?” “그럼.” “그런데 저는 마음에 거슬리더라구요. 남자 목사가 계속 ‘너희들만 신부냐? 나도 선생님의 신부다.’ 그러더라구요. 아, 신부군요!” “그래. 본인한테는 이야기하지 마라.” 했습니다. 신부는 신부 짓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금 말씀을 합니다. 그런 환경과 어려움에서 수천 번씩 지켜 주셨습니다. 그 지켜주셨던 이야기들을 다 말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도대체 불가능한 세계에서 일어난 것만 핵심적으로 책에 써 놓았습니다. 잠언에도 그 상황을 축소시켜서 넉 줄에다 썼습니다. 잠언을 쓸 때는 “어떤 청년이 있는데 그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되었노라.” 하고 썼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글입니다. 그 런데 “어떤 청년이 있었는데 그러했다.” 이런 식으로 썼습니다. “옛날 어떤 마을에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너무 너무 살기가 어려워서 산에 가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데, 아니 살려고 기도했는데 호랑이가 와서 덥썩 껴안으며 ‘먹을 것이다.’ 했 는데, 그가 호랑이에게 너무 잘해서 호랑이가 잡아먹지 않고 갔노라. 옛날이야기니라.” 그렇 게 써 놨습니다. 그러니까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잠언에도 나갔습니다. ‘아 옛날이야기도 여기에 썼구나.’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때도 그러하고, 계속 그렇게 지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늘 교육하면서, 가르치면서, 말씀을 해 주면서, 기도해 주면서, 아픈 환자들을 붙잡아 주면서 그렇게 역사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보면 “네 믿음대로 병이 나아라.” 그렇게 하면서 지켰습니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또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더 크게 대폭적으로 역사를 해 나 갔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도 해 나가고. 사람에게 일어난 이적과 기적은 자기에게 해당되는 기적을 일으키기 때문에 옆 사람들은 모 릅니다. 자기만 압니다. 내가 아픈데 병이 나았다 하면 나만 하루 종일 좋은 것입니다. 너무 좋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 아는 것입니다. 나에게만 해당되는 기적이니까. 자 기에 해당되는 기적을 일으켜주시며 자기에 해당되게 지키시는 것입니다. -. 또 나를 ‘물’ 가운데 지키셨습니다. 선생님이 과거에 교회 가다가 장마가 져서 큰물이 내 려가는데 거기를 건너가다가 떠내려갈 뻔했는데 그 때 살았습니다. 10대 때인데 그때 교회 에 가다가 살았습니다. 그것도 책에 써 놨습니다. -.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 (‘단’이라는 병에 걸렸을 때) 우리 어머니도 포기했었습니다. 그 러나 시체같이 되었지만 혹시 살까 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쳐다보는 가운데 다시 살아났습니다. 여러분도 누가 힘든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살피라는 것입니다. 1년 동 안, 5개월, 혹은 4개월 동안 꼼짝도 않고 있어서 찾아갔더니 숨만 빨딱빨딱 쉬고 있으면 살 아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계속 함께 하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어렸을 때 어머니 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살아났습니다. -. 그리고 또 어렸을 때, 6살 때, 6.25 때, 11미터에서 155미리 포탄이 터졌는데, 그 옆에 있었습니다. 앞에 아무런 장벽이나 막아줄 것이 없었는데 거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 니다. 하나님이 불 가운데 지켜 줬던 것입니다. 그때 완전 불바다가 되고 파편 바다가 되었습니 다. 거기에 여섯 살 난 어린아이가 서 있었으니 파편 하나만 박혔어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안 맞았습니다. 여섯 살 때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너무 잘 아십니다. -. 그리고 산에 기도하러 다닐 때, 대둔산 절벽에서 뒹굴었습니다. 그 바위 절벽에서 50미 터 아래로 뒹굴었습니다. 뒹굴면서 머리도 부딪히고, 몸도 부딪히며 도랑이 있는 곳까지 내 려갔는데, 피도 한 방울 안 나고 긁힌 데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날 밤에 또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호랑이가 나를 덮치는 그런 밤을 보냈던 것입니다. 한국 산에서 호랑이를 봤다는 이야기를 하면 옛날이야기 같아도 나한테서 들으면 너무 많습 니다. 내가 한 20년 동안 산에 살았기 때문에 호랑이를 많이 봤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20대, 30대 때에는 동네 사람들도 호랑이를 많이 봤습니다. 석막리에 가서 한번 물어보십시오. 호랑이를 봤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호랑이 불을 봤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암리에 가서도 호랑이를 봤다는 사람이 있는가 물어보십시오. 호랑이는 개를 끌어다가 잡아먹습니다. 개를 끌어다가 잡아먹는 것은 호랑이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런 무서운 세계에서 지켜 주셨습니다. -. 한국에 있을 때, 뱀, 독뱀, 독사가 산에서 기도할 때 우글거렸습니다. 뱀이 기도하다 보 니까 내 주위에 수북했습니다. 월명동 말고 천안 배방산에 들어가서 기도할 때입니다. 5월 말경이었습니다. 내 옆에 독사가 우글우글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사방 3미터 가까이 되는 곳에 독사가 왔다갔다했습니다. 사람 냄새 맡고 뜯어먹으려고 엄청나게 많이 쫓아 왔었습니 다. 그때 끝까지 무릎을 안 펴고 1주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때 금식하며 끝까지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서 그 때부터, 1978년부터 섭리를 편 것입니다. 무서 운 사상을 가지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그렇게 하나님이 지켜주셨던 일들이 너무 많아서 책에 다 못 씁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할 때 내놓으면서 조목조목 일사천리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다 못합니 다. 핵심만 한다 해도 한 달 안에 못다 합니다. 아주 큰 것만, 깜짝 놀랄 일들만 해도 30개 가 넘습니다. 일반적인 것까지 하면 1년 동안 해도 못 다 합니다. 책에 쓰기는 했는데 일부 밖에 못 썼습니다. “그와 같이 너희들을 지켜 주리라. 네가 가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내가 여러분을 모두 데리고 가니까 이와 같이 다 사랑해 주겠다고 하셨 습니다. 모세를 사랑하니까 모세가 이끌고 가는 그들을 같이 사랑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러 니까 투덜대지만 말고, 감사하고 고마워하기만 하면 축복을 계속 받는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 받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걱정합니까. 여러분들 걱정하는 것을 내가 일일이 이 야기를 안 합니다. 몇 가지 있지요? “아, 나는 나이를 먹어서 어떡하지. 40대인데... 이제까지 너무너무 고생이 극심했는데 50대 는 어떡하지? 60대는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양로원 가야지. 70대 가면 양로원 가야지 뭐. 어떡하지.” “양로원에서 누가 받아준대?” “우리 섭리에 양로원 생길 것 아니겠냐.” 그런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이거 결혼도 않고 가는데 앞으로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합니까? 다 필요 없는 귀신이 씨 나락 까먹는 이야기들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필요 없는 이야기들을 할 때 “귀신이 밤에 씨 나락 까먹는 소리다. 씨앗 하려고 매달아 놓은 것을 귀신이 까먹는 소리들을 한다.” 그런 말을 하셨습니다. 쥐가 씨 나락 까먹는 소리들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 필요 없는 이야기들 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산에 있으면서 기도할 때 그랬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어떻게 먹고 하 냐. 밭을 매서? 나는 밭 매는 것이 정말로 싫어. 농촌에 사는 게 너무 너무 싫어. 진절머리 나. 아, 공부를 좀 해야 되는데 공부는 안 되고 미치는 거여..’ 맨날 그런 걱정만 계속 했다는 것입니다. 굴속에서 기도하면서도 그랬습니다. ‘아 정말로 어떻게 해야 되나? 옷? 옷은 반 벗고 살아도 먹는 것만 잘 먹고 살면 되겠다.’ 그랬습니다. 33살, 34살 됐을 때도 사명을 알았을 때인데도 걱정을 했습니다. 사명을 알았을 때는 ‘이들 을 어떻게 전도할까? 언제 돌아오게 할 것인가. 설교는 또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고 맨 날 걱정했습니다. 그러다 단상에 올라가서 하면 또 설교가 되고, 사람들이 설교를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난주의 설교를 또 한 번 해 볼까. 은혜 받았다고 하는데... 다음 주에는 어떻게 할 까?’ 이와 같이 맨날 그렇게 했는데 다 필요 없는 걱정이었습니다. 맡기고 올라서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하려니까 안 되었던 것입니다. 본인이 하지 않고 “하나님, 준비됐습니다. 준비됐어 요? 하나님, 말씀하세요. 사랑하는 자들에게 말씀해 주시옵소서. 주님, 말씀해 주시옵소서. 주님 것은 주님이 말씀하고, 하나님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고, 성령 것은 성령님이 말씀하고, 모세 것은 모세가 말하고, 내 것은 내가 해야지.”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월남 갔을 때 ‘아, 이거 어떻게 살아가나? 죽으면 정말 억울하다. 한번 살아 보려고 해 봤는 데 죽어 가면 너무 억울한데...’ 했습니다. 월남 갔을 때가 21살 때입니다. 너무 배고프고 굶주리고 살다 갔었기 때문에 ‘많이 먹자, 군대 식량 C레이션을 많이 까먹 자.’ 했습니다. 깡통 안에 고기가 들어 있는 C 레이션이 군대 식량이었습니다. 그것을 많이 먹어서 뚱뚱해 져서 65, 66키로까지 나갔었습니다. 나중에는 성경에 구하라 한 것이 있으니까 하나님께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나 꼭 살아가고 싶습니다. 살아가서 전도도 하고, 많은 일을 하고 싶다. 나는 꼭 살아가고 싶습니 다. 예수님이 말한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너의 생명이다 하 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이제 깨달았으니 죽으면 너무 억울합니다. 이렇게 생명이 귀한 것을 몰랐습니다. 너무 너무 귀한 것을 알았습니다.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고 기도했을 때, 그때 하늘이 새파래지면서 “정녕코 살아가리라.” 그랬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정녕코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너 살아간다.” 하 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응답을 받고서 ‘아, 살아가는구나.’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텔레비전 사갈 걱정하고 C레이션으로 나온 것을 가지고 간다고 모으고 했습 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살아갈 지도 모르면서 저렇게 하나.’ 했습니다. 나를 살아가게 한다고 하시면서 모든 부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거진 다 살아왔습 니다. 99.9% 살아왔습니다. 180명 중에서 2명인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 2명이 왜 죽었나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해도 여러분이 그 동안 들어서 알 것입니다. 그러니까 99.9%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부대는 많이 죽었습니다. 나를 살아오게 하면서 나와 같이 있던 부 대도 전부 해 준 것입니다. “나와 같이 여러분도 축복해 주니까 그런 줄 알도록 하라! 전혀 필요 없는 걱정을 하지 말 아라.” 오직 하나님만 잘 믿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혹시 잘못했으면 하나님께 “잘못했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섭리를 하십니다. 탕감 기간이 길지 않고 바로 섭리하십니다. 그러나 고집부리면 애인일지라도 그 탕감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잘 하겠다고 결심하 고 확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어려운 고비를 한없이 겪었는데도 안 죽었습니다. 너무 많이 겪으니까 나중에 가서는 ‘왜 나에게만 이렇게 죽을 고비가 많이 오지?’ 했습니다. 하필이면 죽을 고비에는 꼭 내가 가더라는 것입니다. 부대에서 다른 사람이 갈 것도 그 날은 이상하니 내가 가게 되었 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안 죽고 살아간다고 약속했잖아.” 그런 영감만 계속 오는 것입니다. “너는 정녕코 죽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무 무서웠습니다. 99.9%가 자신이 없었습니다. ‘곧 죽겠다.’ 하는 생각이 들고 1% 정도만 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녕코 살아간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날 한 말이 확 실히 맞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래서 확인을 했습니다. “그때 새파란 하늘이 너에게 증거가 되었잖아. 그때 내가 쳐다보는 것 같지 않았느냐. 그 증거로 하늘이 순간 새파랗게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 닥치지요?” “너는 안 죽는다고 했으면 되잖아. 목적만 이행해주면 되잖아. 내가 말한 목적만 이행해 주 면 되지 않겠느냐.” “아, 내일도 또 죽을 고비로 가는 것 아니야? 하나님, 예수님! 간이 타서 못 살겠습니다. 너 무 무서워서 간이 탑니다. 간이 타서 못 살겠습니다. 간이 녹아집니다.” “너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 간이 타든, 간에 불이 붙든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 이런 식이었 습니다. 그런 스릴 있는 것을 너무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니까 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가운 데서 살았으니까 ‘이건 완전히 하나님이 살려줬구나.’ 하는 것입니다. 월남 편에서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것을 18편을 썼는데, 일반적인 세계는 너무 많았습니다. 잊어버려서 다 못 썼습니다. 37년, 38년 된 것을 이제 쓰려니까 어떻게 쓰겠습니까. 월남에서 그런 환난과 어려움을 계속 겪어왔습니다. 너무 무서운 것을 겪은 것입니다. 오스라지게 죽으려다가 살아난 것... 적이 와서 총을 딱 겨누고 있는데 그때 당시 삶을 포기 안 하겠습니까. ‘아 나는 죽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정녕코 살아간다고 한 것이 정녕코 죽는다는 이야 기였구나.’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는 것입니다. ‘정녕코 죽는다는 이야기가 아니겠 어? 내가 책임분담을 못해서 죽는다는 것이 아니겠어?’ 그랬습니다. 사람이 걱정하면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말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녕코 살아간다고 했다. 정녕코!!’ 그렇게 엄청난 죽을 고비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녕코 살아 왔습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서도 성경 보면서, 기도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산에 있 으면 크리스마스 때 행사하라고 추리가 왔습니다. 그러면 애들이 교회에 안 다니니까 다 나 한테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산에다 사방으로 걸어놓고 그랬습니다. 중대장이 “야, 정 병장 그거 끝날 때 싹 걷어가야 돼.” 해서 “알았습니다. 싹 걷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를 쳐다보고 계십니다. 얼마나 좋아하 시겠습니까.” 했습니다. 그때 중대장도 교회에 다녔는데 속으로는 늘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표를 안 냈습니다. 왜 그 렇게 믿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도 예수님을 믿고 교회는 다녔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다 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 작전할 때 산꼭대기에 크리스마스 추리를 해놓고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고 팍팍 전 쟁포 소리같이 들린다.” 하면서 노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애들이 와서 같이 노래를 했습 니다. 중대장이 “야, 너무 크게 하지 마. 지금 작전 중인데.” 그랬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즐거워하면서 사는데, 우리 부대에서는 나 혼자 그렇게 하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여러 죽을 고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스릴 있는 것들을 겪으면서 왔던 이야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정녕코 잘 되리라. 걱정하지 말라. 하늘의 신부들 아. 걱정하지 말아라. 왜 걱정하느냐. 너, 타죽지 아니하리라. 불 가운데 가도 타죽지 아니하 리라. 물을 건널 때도, 그런 큰 어려운 시험이 있어도 안 떠내려가리라. 그 대신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구원하는 사람을 원망하면 누가 구원해 주느냐. 자기를 구원할 자를 원망하면 안 된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를 원망하면 안 된다. 자기가 잘못한 것을 탓해야 된다.” 항상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너희들, 걱정하지 말아라! 누가 너희를 힐문하느냐? 누가 너희를 잡고 늘어지 느냐. 누구냐? 잡지 마라! 이놈의 사탄들이 잡았구먼. 이놈의 마귀들이 잡았구먼. 마귀야 잡 지 말아라. 사탄아, 잡지 말아라. 놓아라! 잡지 말아라. 왜 걱정하게 잡고 그러느냐. 근심 걱 정하게 하느냐. 사탄아, 놓아라! 마귀야, 놓아라! 귀신들아, 놓아라! 왜 걔를 잡느냐. 너는 두 려워하지도 말고 염려도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너를 도울 자들이 가리라. 늘 이 야기하고 대화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선생님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께 “너무 감사합 니다.” 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은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너희들 어려운 것을 걱정하지 말아라. 그 대신 이 시대의 말씀을 듣고 따르니. 그리고 오 늘 처음 온 사람들도 말씀을 듣고 와라. 걱정하지 말아라. 내 보낸 자가 말하면 내가 다 들 어주리라.” 내가 아까 오늘 말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너희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픈 것,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들의 믿음대로 나아지게 하리라. 항상 하나님이 사랑하니까!” 내가 하나님께 그랬습니다. “하나님, 이사야 43장을 늘 내게 말씀하셨고, 시121장에도 있는 데 지금도 그렇게 해요? 내가 확인하고 해야 되지 않겠어요? 내가 그것을 의식하고 하나님 의 말씀을 통역해야 되지 않겠어요? 예수님, 그렇지 않아요? 맞잖아요?” “물어봐 네가.” “하나님, 이와 같이 지금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시대가 이렇게 왔는데.” 했더니 이런 말씀 이 왔습니다. “야, 네가 어떤 어린아이를 기른다 하자. 네가 자식을 낳아서 기른다 하자. 그 애가 어렸을 때는 사랑해 주고, 컸을 때는 사랑 안 할래? 크는 대로 더 사랑해 주고, 거기 해당되는 대 로 다 도와주고 그래야지. 그와 같이 섭리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네가 어떤 여자를 길렀다 치자. 그 목적이 네가 사랑하는 애인 되게 하기 위해서 기른다 하자. 그런데 그때만 하고 컸을 때는 안 할래? 컸을 때 더 잘해 줘야지. 컸으니까 같이 살려면 더 잘해 줘야지.” “아~!” 그렇게 말씀이 두 번 왔습니다. “그와 같이 나도 너희들을 어렸을 때부터 기른 것은 다 마음이 있어서 기른 것이다. 너희들 이 잘되는 것 보고 싶어서, 영화롭게 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길렀다.” 내가 이 꽃을 잘 기르는 것도 꽃 피는 것을 보고 싶어서 기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재를 기르는 사람도 멋있는 나무를 보고 싶어서 기르는 것이고, 모든 개발하는 것은 멋 있는 것을 보고 싶어서 하는데 너희들을 안 하겠어? 하지! 그럼. 외쳐.”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시대의 말씀을 잘 듣고 “아멘!” 하고, 오늘 처음 온 사람들에게도 하 나님이 “와서 말씀을 들어라. 시대의 말씀을 듣고 신부같이 살아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책 임져 주마. 해 주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신랑으로 강림했습니다. 무엇을 보고 강림했겠습니까. 그 동안 우리를 길렀으니 우리를 보고 강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부로서 신랑을 대하듯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 다. 오신 자는 신랑이요, 기다린 자는 신부입니다. 그런데 왜 못하고 걱정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행하신 표적” “하나님이 지켜주는 표적”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러면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제 이들에게 축도까지 하겠으니 의로 채워 주시옵소서. 이제까지 말한 모든 말씀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감사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지금은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과 은혜가 이들에게 함께하고 주 예수의 사랑하심과 성령 의 감동감화하심이 이들 머리 위에 영원히 함께하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안녕~~ 그러면 여기서 안녕을 고합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