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4.03.17 (월)
월 새벽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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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7일 새벽말씀
오늘은 2006년도 3월 16일 목요일, 새벽말씀입니다. 말씀 듣기 전에 먼저 기도하겠
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만군의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금주의 말씀과 같이 “다윗의 동
네에서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났다. 가보라.” 이런 말씀을 출발해서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
께서 하신 역사를 시대의 모든 자들에게 말씀했으니 우리는 듣고 따라오는 자들입니다. 만
군의 하나님께서 성지땅 월명동으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을 만방의 모든 사람에게
말씀했고, 그곳에 가보니 정말로 예사롭지 않은 하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듣고 보고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하나
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뻐하며 살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새벽도 말씀해 주시고, 인자와
사랑과 공의와 진리와 능력으로 더해 주시고, 온 지구촌의 사람들이 알고 깨닫고 이제는 역
사 앞에 주인공이 되어서 가게 해 주시옵소서. 영육을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강건케
해 주시옵소서. 내가 기도하고 간구하오니 지식과 지혜들이 충만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 환경, 배경도 많이 봅니다.
선생님이 난 고향도 그야말로 다윗 동네, 예수님이 나신 곳에 제사장이 많이 나듯이
목사들이 많이 났습니다.
마을치고 불과 몇 집이 안 되는데도, 지금까지 치면 10명이 넘는 것 같습니다. 12명
이 되는 것 같습니다. 왜 많이 났다고 할 수밖에 없느냐면, 월명동 그 초가집 마을에 넷 집
이 있었습니다.
넷 집에서 목사님들이 한 10명쯤 났다면 많이 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밑의 50호
가 넘는 마을에서도 목사님이 한 명인가 났습니다. 내가 지금 버뜩 생각하기로는 한 명의
목사님이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가르쳐 주겠습니다.
(석막리 마을 사진) 이것을 보면서 하겠습니다. 여기는 석막리 마을입니다. 이렇게 큽
니다. 여기에 그 전에는 80호였습니다. 이 위는 월명동으로 넷 집이 있었습니다.
넷 집에서 목사님들이 지금까지 한 10명 쯤 12명쯤 났습니다. 큰 마을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까지 내가 알기로는 목사 한 명 밖에 안 났습니다. 여기는 80호, 85
집이었습니다. 그러면 20배도 더 큰 마을이고, 월명동은 20배도 더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
데 목사님들이 10명 이상 났습니다.
우리 집에서만 해도 목사님들이 여섯 명이 됩니다. 한 집에서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러니까 나는 목사님 많은 집에서 났습니다. 마을도 목사님 많은 마을에서 났습니다.
윗집에서 두 명, 아랫집에서 두 명, 그 옆집에서 2명인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12명
같습니다. 12명이 났습니다. 20배도 더 작은 곳인데, 20배 이상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
다.
월명동이 환히 보이지요? (또 다른 석막리 사진) 여기 중간 마을에서는 목사들이 안
났습니다. 이 중간 마을에도 집들이 있는데, 여기는 목사님들이 안 났습니다.
(석막교회 야외 예배 기념촬영 사진)
목사님들 된 사람들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여기가 우리 마을에 있는 청년들입니다.
거의 다 우리 마을 사람입니다. 몇 명은 큰 마을 사람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이것이 우리
마을 사람들입니다.
큰 형인 정인석 목사, 고승일 목사, 정광석 목사, 건너 뛰고 박주홍 목사, 그 다음에
선생님, 그리고 박영래 목사입니다. 이 분만 큰 마을에서 하나 난 박시흔 목사입니다. 사진
이 하도 작아서 안 보입니다. 그리고 정영자 권사, 여기 앉아 있는 용석이 목사입니다. 그런
데 범석 목사는 어디 갔는가 안 보입니다. 이와 같이 전부 있습니다. 여기는 우리 윗집에
있는 박옥단으로 영자 친구입니다. 여기는 순희라고 고 목사님 동생, 여기는 아버지 장로님
이고, 이렇게 전부 월명동 사람입니다. 큰 교회 전체가 월명동 교회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진 찍어 놓으라고 하셔서 찍다시피 했습니다. 그 때 나를 감
동시켰습니다. 감동 시킨 것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찍자고 막 그래서 찍었습니다. 증거
를 세워 주려고 그런 것입니다.
여기 있는 꼬마 이 애도 목사가 되었습니다. 번데기만한 애가 박주홍 목사 아들인
데, 아버지가 7살 때부터 기도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계속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하도 노
래를 많이 불러서 목이 쉬어서 음성이 제대로 안 난다고 목사 시키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전부 다 11명인가, 12명이 목사 되었습니다.
이것이 전부 다 달밝골 청년들입니다. 세 명만 아니고 다 달밝골 사람들입니다. 그래
서 달밝골 교회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달밝골로 옮겨가지 그러느냐고 했습니다. 그 동에 사
람들 교회 다니라고 거기다 짓는다고 하니까 “에이, 새벽마다 종 울리고 하니까 달밝골로
교회 옮겨가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100%는 안 나왔습니다.
고 집사의 아버지는 고집이 세어서 안 나왔고, 남 집사의 아버지는 남이라고 안 나오
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박주옥 목사님의 아버지는 박 대장이었습니다. 낫 만들고 호미 만들
었습니다. 그래서 대장이라고 안 나왔습니다. 그렇게 세 명만 안 나오고 다 나왔습니다. 세
명의 어른이 안 나오고, 아버지는 나왔습니다. 그렇게 그 마을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야기하니까 재미있잖아요.
그와 같이 월명동 마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한 것입니다. 월명동 마을을 하나님
께서 옛날부터 그렇게 역사를 해 온 것입니다. 그 전 것은 나는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 때도 잘 모릅니다. 겨우 할아버지가 와있다는 것만 알지, 나는 우리 당세밖
에 모릅니다. 우리 아버지가 와서 아버지와 내가 같이 살은 이야기 밖에 모릅니다. 지금까
지 살았던 이야기만 압니다. 지금까지 살은 것은 내가 활동했을 때부터는 내가 잘 압니다.
마을의 다른 사람은 다 이사 갔고 내가 주인공이 되었으니까요. 내가 활동했을 때부터는 내
가 잘 압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았을 때는 내가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압니다. 그 전의 할아버지 때
를 물어 보았습니다. 이 설교하러 나오기 전에 새벽에 어머니와 이야기했습니다.
그 마을에서 할아버지가 역사한 이야기들을 보면, 할아버지를 그 마을로 오도록 하나
님께서 이동시켰습니다. 화전민들이 거기에 그렇게 모여들어 살았답니다.
우리 윗집도 박주홍 목사라고 화전민이었고, 우리 집도 화전민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었습니다. 아랫집 고 집사님네도 화전민에 해당되었습니다. 고 집사님네도 목골 근방에서
이사 왔습니다. 화전하러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 집은 화전보다도 금 캐러 왔답니다. 거기
광산이 좋아서 금을 캤습니다.
원래 살기를 공주에 살았는데, 아버지 형님이 그곳 광산으로 취직해서 온 것입니다.
거기서 있다는 소리만 듣고 온 것입니다.
일본 강점기 때에 정치가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일본이 한국에 1905년도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할아버지가 공주에 살았는데, 거기로 거쳐 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한 9살 8
살 때 데리고 온 것입니다.
아까 보니까 “하도 오래 되어서, 들은 이야기로는 네 할아버지가 네 아버지를 업고
왔다고 하니까 7살 8살 되었겠지. 어렸을 때 온 것으로 알고 있다.” 했습니다.
묵산리에 한 1년 있다가 왔습니다. 정치 생활하다가 그렇게 되니까, 목숨이 위험하니
까 거기로 도망쳐서 산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묵산리에서 1년쯤 농사지으며 일해 주다가 넘어온 것입니다. 정치의 암행어사 하다가
거기로 온 것입니다. 정치세계는 손을 놓았으니까 이제는 안 맞지요. 조용히 와서 은둔생활
하려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장남이 와서 거기에 가서 일한다는 소리 들어서 그쪽으로 머리를 틀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 중에 다른 집도 아니고 가운데 집으로 왔습니다. 만일 가운데 집이 아니었으면 곤
란했습니다.
가운데 그 집을 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역사는 내가 잘 압니다.
그것은 뭐 거울같이 압니다. 내가 왜 아는가 하니 형제들보다 내가 주인공이라 나에 대한
이야기가 거기 들어있어서 세밀하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자리 잡고 하나님께
서 역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또 다른 형제들은 다 외국으로 갔는데 우리 아버지만 못 갔습니다. 작은 아
버지도 외국으로 나가고, 큰 아버지도 심천으로 나가 살게 되었습니다. 충청도 심천으로. 충
북 근방입니다.
작은 아버지는 그 때 당시 일본으로 징용 끌려갔습니다. 아버지도 일본의 징용 끌려
가게 거의 99.9% 되었었답니다. 아버지도 일본으로 징용 끌려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어머
니가 오징어 국을 삶아 주었답니다. 멀리 간다고.... 그런데 그것 먹고 체해서 뚱뚱 부었답니
다. 사람도 몰라볼 정도로 뚱뚱 부었답니다. 못 가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때
끌려가면 큰일 납니다.
일본으로 끌려가면 일이 안 되니까요. 하나님 뜻이 있을 때는 걱정 근심할 것이 없습
니다. 하나님 뜻이 있느냐 없느냐만 알면 됩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있게 만들어야 됩니다. 뜻만 있게 만들면 아무도 손을 못 댑니다.
그때 당시 아버지가 일본으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체한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러
간 것입니다. 신고하러 간 것입니다.
“우리 남편이 이렇게 아파서 움직이지를 못한다. 뚱뚱 부었다.” 이것을 금산에 이야
기해 주러 어머니가 간 것입니다. 그렇게 신고했더니 거기서 뺐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으로 그렇게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집에서는 큰 아버지도 나가 살고, 작은 아버지도 일본 갔는데, 아버지만 남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다른 곳으로 이동했으면 곤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그렇게 하
십니다. 무슨 뜻이 있는 곳에 역사하십니다.
우리 섭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외출하는 것도 뜻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또 아버지는 그동안 월명동에 살면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너무 많았답
니다. 광산 일을 하는데 부여 쪽, 장성 등 그쪽으로 갈 일 많았습니다. 40년 동안 광산 일
을 했으니까 웬만하면 따라 나가야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외부에서 살았기 때문에 웬만하
면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부인도 따라가고, 어머니도 따라가고, 애들도 몇 명 없으니까 따라
가게 되었는데 이상하니 안 따라갔습니다.
아버지가 만일 광산에서 연애를 했으면 달랐습니다. 아버지 말 들어보면 다른 사람은
연애를 많이 한답니다. 광산에서 밥을 해 주는 이런 사람이 있답니다. 남자가 밥해 먹지 못
하니까요. 그러다가 결혼해서 살고 집에 안 가고 하는데, 아버지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
다고 했습니다.
내가 물어보니까 한 번 “자네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어. 몇 푼만 주면 빨래해 주고
그러는데. 광산에서 사람 붙여 주는데.” 했고, 한번은 빨래해 주러 여자가 왔는데 밥도 안
시키고 가라고 내보냈답니다. “내 부인 있으니 가라. 나 혼자 밥해 먹는다.” 하며 아버지가
광산에 있으면서 항상 혼자 밥을 해 먹었답니다. 그러면서 한 3년 만에 오시고, 5년 만에
오시고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6.25때 쯤에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6.25때는 이사 많이 다녔습니다. 6.25났
을 때 교촌리로 이사 갔다가 다시 또 왔습니다. 외가집 교촌리 가서 8개월 살다 왔다고 합
니다. 진산면 교촌리 알지요? 그리로 이사해서 외갓집에 있다가 7달 정도 있다가 왔답니다.
거기 있을 때 영자 밑의 규석이를 거기서 낳았다고 합니다. 규석이 고향은 교촌리라
고 합니다.
이사 갔다가 그 다음에 다시 또 왔습니다. 이사 갔다가 대개는 산골짝이 위험하다고
다른 사람들은 살러 안 왔답니다.
그리고 이사 갔을 때 다 불을 질렀답니다. 월명동 마을이 다 나갔습니다.
(초가집 그림) 그 때 다 불을 질렀었는데, 우리 집만 불을 안 질렀답니다. 옆집은 새
집으로 큼직하게 잘 지었는데도 불 질렀습니다. 고 집사님 집도 불 지르고 다 불 질렀는데,
우리 집만 불 안 지르고 그대로 놔두었답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너무 화가 났답니다.
왜 화가 났는가 하니, 불을 안 질러서 좋기는 좋은데 불을 질렀어야 새로 짓는데 새로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북한 인민군에게 욕을 하면서 “잡놈들, 불 좀 팍 질러놓고 가지, 불
안 지르고 갔다.”고 했답니다.
월명동 마을, 선생님이 난 마을, 거기서 났기 때문에 이야기합니다. 거기서 그런 식으
로 배경을 깔았습니다.
아버지도 꼭 외국에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때는 금을 많이 캤습니다. 내가 보
았는데, 하여튼 큰 가방으로 돈이 하나 가득히 가지고 왔습니다. 가방 길이가 1미터 됩니다.
옛날 가방은 큰데, 하나 가득 돈을 갖고 왔었습니다. 그 때는 금을 캐서 팔은 돈이라고 했
습니다. 그래서 대전역 옆에 7채 정도 집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와 둘이 의논하러 왔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사자고 하니까, 아버지가 또 “돈으로 갖고 있는 것이 낫지 않겠어?
전쟁터에 돈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낫겠어.” 하셨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입니다.
또 아버지가 “이것, 아무래도 투자하는 것이 낫겠어. 금 캔 사람으로 땅을 사는데.”
하면 어머니가 또 “고향을 버리고 가서 어떻게 거기서 삽니까? 대전에 집 사놓고 나는 여기
서 살 것입니다. 집장사하고 끝냅시다.” 하니 “나는 그렇게는 하기 싫어.” 하며 둘이 계속
안 맞았습니다. 하나가 이러면 저리로 틀고, 하나가 저러면 이리로 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틀게 하신 것입니다. 못 나가게.
일단은 인간의 의향대로 하게 놔두십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둡니다. 그러나 마
지막은 하나님께서 틀어 버립니다. 이렇게 틀고, 저렇게 트십니다.
여러분들도 무슨 일을 할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이렇게 저렇게 하는데, 결국 하
나님의 뜻이 아니면 마지막에 틀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돈이 어떻게 된 지를 나
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께 물어보면 히적부적 어디 갔는지 모르게 다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 후에 계속 살면서 “그때 집을 못 샀다. 그때 대전에 집을 샀으면 떼부자가 되었는
데.” 아버지도 항상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그것을 못 생각했다. 그것을 그때 샀어야 하는데. 자네가 틀었잖아.”
“어디 내가 틀었어요? 당신이 틀어놓고요.”
서로 그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계속 무엇이 힘들면 “그때 집을 샀어야 하는데.. 우리는 때가 지나갔어. 아이고, 그
좋은 때가 지나갔어.”
하나님이 틀었던 것입니다.
만약 대전으로 갔으면 대전에서 내가 있으면서 성지땅 만들어야 하는데, 뜻이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어떤 것을 예정해 놓은 것은 뺏기지 않습니다. 그냥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 대전 역으로 갔으면 내가 웃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참 10대 나이에 내가 대전에 나
가서 살았으면 웃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정론에도 조금 썼는데,
이렇게 자세히는 안 썼습니다.
대전으로 이사 안 가고 거기에 있게 되어서, 거기를 개발하게 만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그러니까 하나님이 돈 그런 것을 다 주관하십니다.
사람이 돈을 벌을 수 있는 운이 트였으면 일단 돈은 법니다. 그래서 돈 가지면 다 할
것 같아도 하나님이 틀면 안 됩니다.
다 못했습니다. 이사도 못 가고, 거기에 집도 못 지었습니다. 집도 짓지 못하게 만들
었습니다. 그 집에 그런 많은 돈이 있는데, 이사를 안 가면 거기에 집이라도 지었어야 하는
데 안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듯 사람의 인력으로 못 한다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
의 뜻이었습니다.
매일 고생하니까 하늘을 쳐다보고 민망하게 사는 모습 쳐다보면서 ‘아, 이것이 무엇
인가?’ 하고 매일 그런 이야기만 하고 살은 것입니다.
그냥 ‘뜻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잘 먹으나 못 먹으나 하나님 뜻이다. 하나님 뜻이
요. 너무 좋아.’ 이렇게만 하며 계속 살았어야 됩니다.
요즘에서야 어머니가 그럽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이 이제
다 이해가 된다.” 했습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요?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하도 감이 안 잡혀서 그런 이야기
를 안 했답니다. 사람들이 어머니께 많은 이야기를 했답니다.
어머니 6살 때 누가 이야기를 했답니다. 앞날을 내다보는 유명한 점술쟁이요, 관상쟁
이가 이야기했답니다. 어머니 6살 때입니다. 외갓집이었습니다. 오철승이라는 사람으로 의사
였답니다. 본래 의사가 아니고 돌파리 의사랍니다. 오철승이라는 사람이 주사를 잘못 놓고,
침을 잘못 꽂아서 아기가 하나 죽었답니다.
그래서 경찰이 잡으러 온다고 하여 도망치는 날 아침에 우리 어머니께 하는 말이 “너
는 앞으로 자식을 하나 낳는데, 천석 같은 자식을 낳으리라.” 그 때 옛날에 천석이라면 최
고입니다. 억대 재산가, 백만장자, 이와 같습닏. 그 때 시골에서는 만석짜리는 없고 천석이
라고 하면 끝난 것입니다.
“천석 같은 자식을 하나 낳는다.” 했답니다. 어머니는 6살이니까 그것을 못 알아듣는
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항상 어머니가 시집가서 힘들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너는 시골로 시집가지만 천석 같은 자식을 낳든지 천석을 받는 집으
로 간다고 했으니까 가서 살아봐.” 그랬답니다. 그래서 그것을 늘 머리에 두었답니다.
17살 때 시집오면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려서 많은 말들을 듣잖아요. 그것을
머릿속에 넣고 항상 살았답니다.
“천석 같은 자식을 낳든지, 천석을 받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천석을 받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천석을 받으려면 엄청납니다.
천석을 잡으려면 진산면 안에 있는 땅을 거의 다 붙어야 됩니다. 농사지으면 도지는
십일조이기 때문입니다. 천석을 받으려면 만석을 농사지어야 됩니다. 그것을 옛날에는 도지
받는다고 합니다. 말만 천석꾼이지, 옛날에는 천석꾼이 별로 없었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밑의 집에서 천석꾼이 나왔습니다. 천석을 도지로 받더랍니다. 그 집
에는 밥하는 사람이 한 2-30명 되었답니다.
어머니도 거기 가서 밥해 주고 밥도 먹고 그랬다고 했습니다.
‘왜 내가 천석 받는다고 했는데 저 집으로 가버렸네.’ 했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
니다.
“너는 천석 받는 것이 아니라, 천석 같은 자식을 둔다는 이야기다.” 하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큰형을 생각했습니다. 아침에도 알아보니까 큰형을 생각했습니다. 큰형, 장남이 서울
로 가니까 말은 안 해도 기대를 좀 걸었답니다. 말을 하고 틀리면 안 되니 부끄러워서 말은
안 하고요.
또 작은형이 정치 일을 하니까 ‘둘째가 무엇이 될까? 국회의원이 되려는가?’했답니다.
그 때는 국회위원 나간다 안 나간다 했습니다. 갈 수 있는 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 틀었던 것입니다. 계속 틀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서 ‘범석이가 굉장히 사상이 무섭고 호랑이 새끼같이 생겼다는데 범석인
가?’ 하고, 나는 마음에 안 두었답니다. 나는 그냥 착하기만 해서, 나에게 교육시킬 때 “사
람이 너무 착하면 안 된다. 무엇인가 욕심도 부리고, 무엇인가 하고 돌아다녀야지. 그냥 착
하기만 하고.. 아이고, 너는 도대체 모르겠어.”
맨날 나를 보고 그랬습니다. 나를 보고 무엇인가 불만이 좀 있었습니다. 착하기만 하
고 휴지나 줍고 돌아다녔습니다.
어디 갔다 오면 포켓 무엇을 잔뜩 넣고 오는데, 어머니가 무엇이냐고 하면 휴지 이런
것을 잔뜩 주워갖고 다녔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갖고 다니느냐?”그 러면서 살았습니다. 착하기만 하고 말도
못하고 그래서 나에게는 기대를 안 했답니다. 나는 심부름 시키면 잘 잊어버려서, 다른 짓
하고 오니까 싫어했습니다.
여섯 살 때 들은 이야기가 80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80년 만에 어머니가 확실하
게 믿게 되었습니다.
이미 형제들이 다 손을 들고, 희망이 끝나고 하니까 나만이 남아서 “너를 두고 말한
것이다. 그 오철승이라는 분이 말한 것이 너를 두고 말한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
었을까? 그 말대로 됐네.. 관상쟁이가 관상도 잘 보네.”
“하나님이 말 해 준 것입니다. 그 소망 갖고 계속 살라고 하나님이 말 해 준 것입니
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 해 준 것을 몰랐지 않았습니까? 그 소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
른 이야기 하나도 믿지 말고 그 소망만 갖고 자식들을 계속 열심히 키웠으면 됐습니다. 그
런데 어머니는 6.25 끝나고 또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신기하게 금도 많이 캐고 돈도 있었는데, 또 가난에 시달렸다니, 말도 잘 안 맞는 말
같지요?
하나님께서 보이고, 그것은 그것이고, 돈은 돈이고, 또 때가 되면 없어지고. 또 연단
시키려니까!
많은 이방 세계의 많은 세상의 예언가들, 점쟁이들에게 막 해 버렸습니다. 그것을 주
인들은 이루어 나갑니다.
여러분도 어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런 꿈을 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점쟁이를
통해서 준 것도 있고, 어떤 사람은 관상쟁이를 통해서 준 것도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주었었습니다. 한번은 굉장히 실의에 빠졌었습니다. 남만 전도하고
돌아다니는데, 그 사람들을 보면 다 부자이고 잘 먹고 사는데 나는 배고파하면서 매일 돌아
다니고, 전도만 하다 보니까 ‘이것이 뭐냐? 그 사람은 다 잘 먹고 잘 사는데.’ 했습니다. 그
래서 그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 무엇하고 사나?”
“농사짓고 삽니다.”
“옷이 그것이 뭐야? 좋은 세상인데. 교회 다녔으면 잘 먹고 잘 지내야 되지 않겠어?”
하면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전 인동의 주차장을 지나가는데 점쟁이가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에게 딱 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내가 아주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남만 전도하고 돌아다니느라 차비도 없고 그랬
습니다. 버스가 지나가는데 차도 못 탔습니다. 월명동은 대전에서 70리니까 멀어서 걸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오라고 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무슨 점을 보느냐? 나는 교회 다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너무 엄청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 지랄하네. 돈 받으려고 그러지?”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큰 사람이 그런 이야기하면 섭하지요. 이렇게 큰 인물인데 어떻게 그런 이야
기를 합니까? 어울리지 않게요.”
“그럼, 보십시오. 당신, 무엇을 보느냐?”
“세계를 누빕니다.”
그분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손바닥에 대(大)자가 있는 것을 그 분이 가르쳐 주었습니
다. 오른 쪽은 그 분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나는 당시 머리가 나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말하기를 “이렇게 손이 일자로
딱 쥐어지면 천재적인 머리를 갖고 있다.” 했습니다.
나는 그 때 항상 사람들에게 머리 나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사상’ 금입
니다.” 하고 학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나도 몰랐는데, 몸이 아파 절에 가서 한 3년 동안 있으니까 스님들이 이야기 전해
주고 해서 보니까 이것이 사상 금이고, 정신 금입니다. 막 금이 졌을 때는 막 살아도 잘 됩
니다.” 그 이야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좌측 손을 보자고 했습니다. 좌측 손을 또 보니까 딱 대(大)자가 있습니다.
대자가 아주 크게 써져 있습니다. 완벽하게 써져 있습니다. 이 대(大)자를 보더니 큰 사람이
라고 하면서, 엎드려서 땅에 절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뿐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깨를 보니까 이 어깨 밑에 세상 사람이 따
라온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말씀했습니다.
그 때 그것을 생각하면서 말없이 어려움을 당해도 나는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이 믿어
지고, 그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 사람이 말한 대로 생각되었습니다. 그 사람
이 나를 보고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월남 갔다 왔을 때입니다.
“월남 갔다 왔다.”고 하니 “그것이 아니고 천운 가지고 세계를 돌아다닌다. 당신은
‘역천자’ 아니면 ‘순천자’, 둘 중의 하나가 된다. 극과 극의 사람이 된다.” 했습니다. 선생님
은 하늘의 순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선생님 낳은 날을 중심해서, 지금으로부터 1945년 2월 3일 새벽에 낳았지만,
내가 남으로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역사를 해야 되고, 내가 남으로 땅에 평화가 일어나
는 역사가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관상에 대해서 생각할 때 뜻이 있는가 하지만, 100% 뜻이 있습니다. 왜 뜻
이 있는가 하면, 그가 봐서 맞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시40:7> “너를 해서 두루마리 책에 기록되었다”
“예수님에 대해서 구약에 예언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우리 육신이 구약이 아니겠
습니까. 인간의 육신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 보지 않습니까. 탁 쳐다보고서 “쟤 저렇다!” 하면 그것은 빼도 박도
못하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상을 고치면 다른 사람이 되지만, “저렇게 생긴 사람
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고 압니다.
섭리사에서 말썽부리는 사람을 보십시오. 관상을 보면 그 틀이 나옵니다. 그러나 사
상을 고치면 괜찮습니다.
너희를 위해서 다윗의 마을에 구주가 났다. 예수니라! 너희를 위해서 월명동 구원자
가 났다. 너희를 위해서 월명동 마을에, 달밝골 마을에 났다. 그래서 달밝골 마을에 사람들
이 모여오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냥은 안 모입니다. 달밝골 마을에 무엇 때문에 모입니까. 나 때문에 온 것입니다.
구원 때문에 온 사람들입니다.
인생 강의를 한다고 모여 온 것이 아니라, 구원! 내가 너희를 구원하리니, 나를 따라
와 나의 말을 들어라. 그러면 너희들이 구속함을 받을 것이고, 이 시대에 천국을 이룰 것이
다.
그 말만 한다고 따라 오는 것 아니고, 모든 것을 그렇게 하기 때문에 따라오는 것입
니다.
외롭고 쓸쓸한 마을이었지만, 소쩍새 우는 마을이었지만 이곳에 너희를 위해서 하나
님이 구주를 나게 했다. 예수님 때 베들레헴에서 나듯이 똑같이 동시성이지요.
나뿐만 아니라 세상에 난 여러분들! ‘생명의 날’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인도 하시는가 깨닫고 열심히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온 세계의 섭리의 말씀을 듣고 따른 자에게 평강이 충만하기를 빌고, 지혜와
지식 충만하기를 빕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말씀을 듣고
열심히 하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을 감하고, 나를 나게 하심을 감사하고, 그 우환, 그 어
려움 고통 가운데 나를 길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내가 이 일들을 다 하는데 전력 다
하게 해 주시옵소서. 온 지구촌에 역사와 은혜가 충만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