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4.03.19 (수)
2014년 3월 19일 수요명설교 사랑의표적
- 선포일
- 2014.03.19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0장 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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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9일 수요명설교_사랑의표적.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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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2014년 3월 19일 수요일 선생님 명설교/ 2005.2.20.주일말씀
사랑의 표적
본문: 마태복음 10장 34-39절
할렐루야! 한 주일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먼저 여러분들에게 평강을 빌며, 온 지구상에 있는 섭리의 사랑하는 사람
들에게 인사를 먼저 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줘서 감사하게 잘 있습니다.
오늘 단상의 본문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절부터 39절까지의
본문말씀을 먼저 봉독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말씀들은 말씀하면서 계속
말하겠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 아비나 어미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
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
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말씀의 주제는 설교하면서 나올 것입니다.
먼저 찬양을 해야 되겠습니다. 찬양은 “내 사랑아”입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이렇게 전에 지어 놓은 곡이 있습니다.
먼저 그 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두 번째는 찬송가 404장 “그 크
신 하나님의 사랑”을 하겠습니다. 이 두 곡을 여러분에게 지휘해주겠습니다.
모두 일어나 기립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체찬양-
♪내 사랑아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오직 사랑 주님사랑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주님 사랑 내 사랑아 오 사랑아
하늘 사랑 형제 사랑 맘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하고 사랑하세 사랑하고 사랑하세 사랑하세
♪ 찬송가 404장 (새 304장)
1.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이제 기대하는 주일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신
분께 우리 모두 먼저 온 사람과 더불어 반갑게 환영을 합니다.
박수 한번 쳐줄까요. 감사합니다. 하나님도 환영하고, 우리 모두 환영하고,
예수님도 환영하고 좋아합니다.
우리가 어느 집에 손님으로 가도 환영하는데, 평생 하나님에게 인연이 되
어서 오는 발걸음인데 얼마나 반가워하겠습니까. 마치 결혼할 때 신부가 신
랑 앞에 올 때의 그 반가움, 이제 영원히 사는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그와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같이 하나님은 반가워하시고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간으로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잘 지도 해주고 돕고, 신앙으로 안
내해 주고 잘 해 주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교회에 가면 무슨 말씀인지 말씀
이 잘 안 들어온다고 합니다. 천천히 할 테니까 들어보세요.
오늘 주제는 “사랑의 표적” 입니다.
아까 봉독한 본문 말씀으로 먼저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이 세
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검을 주러 왔다. 검을 줘서 너희들 싸움을
하게 하려고 왔다. 칼을 주어서 너희에게 싸움을 하게 하려고 왔다.” 했습니
다.
이 검(劍)은 우리가 다 배웠듯이 비유를 한 것입니다. “말씀을 주어서 옳은
진리를 가지고 옳지 못한 진리를 외치는 사람과 가서 싸움을 하라. 말 가지
고 싸움하라. 실상은 그렇게 하려고 왔다.” 하셨습니다.
원래 메시아가 땅에 오는 가장 큰 것은,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전해 주러
옵니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르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그렇
습니다. ‘말씀’을 안 가지고 오면 안 됩니다. 가장 큰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의 말씀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가지고 오니 그
말씀을 들어보자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
한 것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또 한 마디 해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
씀하시기를 나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귀한가 한 마디로 말하면, 내 말 한마디에 온 세
상의 인생들의 운명이 좌우된다.” 했습니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고, 그런
존재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도 “예수님은 메시아니까 말씀이 얼마나 귀한가 그것을 말해 달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말을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안 믿을까봐, 자신의 말을 얼마나 신빙성 있게 믿어줄까 해서 말을 못 하겠
다고 했습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그래서 “내가 믿게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계속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말하
는 것이 그냥 갖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말하면 세계 수
십 개 나라 사람들이 들으니까 그냥 갖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내가 믿도록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비유할 것이 있나 세상에서 찾아봤다. 그런데 비유를 해서 ‘이와 같
이 귀하다. 이와 같이 가치 있다.’ 그럴 만한 것이 눈에 띄지를 않는다.” 했
습니다.
“그만큼 귀하다.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말씀의 귀한 것을 비유를 할 수 없
을 정도로 귀하다. 이제 믿겠느냐.”
“나도 까딱까딱해집니다. 사람이 있잖아요.”
“사람이 문제냐.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사람도 살리는데... 말씀이 더 귀
한 것이지. 그래서 없어. 사람 같으면 이야기를 하지.”
“아~ 그렇지. 말씀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 죽게 하니까.”
임금의 말이 얼마나 귀한지 알겠습니까. 임금의 말이 귀하지 않습니까.
저놈 죽는다 해도 임금이 “아, 살려 줘라” 하면 살 수 있습니다. 사형장으
로 걸어가는 사람도 “야, 일단 살려 줘 봐라. 살려 주고 딱 3년을 줘 보자.
얼마나 좋은 일을 하나 보자. 너, 3년 동안 좋은 일을 하고 오너라. 내가 너
를 살려 주마.” 하면 사는 것입니다.
“3년 후에 다시 보자. 얼마나 좋은 일을 정말로 했나 보자.” 했습니다. 그
사형을 면한 그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정말 내가 꼭 죽을 것인데...’
그는 사람을 죽여서 선고를 받게 된 살인범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할 것
인가 생각하다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아 이 일을 해야 되겠다.’ 하
고 그 일을 3년 동안 했습니다. 3년 후에 임금에게 갔습니다. 임금이 불렀습
니다.
“무슨 일을 했냐?”
“네. 저는요, 사람을 다섯 명 죽였잖아요. 그런데 죽을 사람을 100쯤 살렸
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죽이러 다니는 사람을 계속 밤잠 못 자고 쫓아다녀서, 그놈을 몽
둥이로 후드려 때려서 못 죽이게 했습니다. 그냥 몽둥이 가지고 등짝을 내리
때려서 ‘이놈아!’ 하며 못 죽이게 했더니, 도망쳐서 사람을 못 죽이게 해서
죽게 되어있던 사람을 살려 줬습니다. 그렇게 해서 100명쯤을 살렸습니다.
그렇게도 살리고, 꼭 죽을 수밖에 없는 데 쫓아다녀서 물에 떠내려가는 사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람을 구출해 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100명쯤 되었습니다. 너무 너무 재
미있습니다. 임금님도 한번 해 보면 너무 좋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임금의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아, 나도 못한 일을 네가 했구
나. 참 큰 일했다. 야, 이것이 화젯거리다. 내가 너를 살려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살려 주었다. 그리고 내 말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백성들에게 선언했는
데, 그것도 백성들에게 보여 주게 되었다. 네가 만일 특별한 것을 못 하고
왔으면 내 꼴이 후에 어떻게 되었겠느냐. 앞으로는 무엇을 하려느냐?”
“저는 계속 그것을 하겠습니다.”
“너, 위험하지 않느냐?”
“위험합니다. 너무 위험해요. 몇 번 죽을 뻔했는데 살아났어요. 얻어맞고서
죽을 뻔했는데 그 이튿날 살아났어요. 막 칼에 찔리고 그랬었어요.”
“다섯 명 죽였는데 백 명을 살렸다... 그만하면 됐다. 내가 너를 보호하리
니 너를 누가 죽이지 못하도록 엄명한다. 너를 죽이는 자는 내가 족속을 멸
할 것이다.”
이것을 백성에게 모두 가르쳐 주었더니 너무 엄청난 일을 했다고 백성들이
좋아했습니다.
“아, 나도 그런 데에 신경을 쓰마. 일 년에 사람들이 수백 명씩 죽어 가는
데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죽여서 쓰겠느냐.”
백성이 임금의 말을 지킴으로 임금의 말이 권위에 권위가 서게 되었습니
다.
이마만큼 임금의 말도 권위가 있고 그렇게 엄청나게 가치가 있고 죽고 사
는 것이 좌우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하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도 꼭 죽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살려 주었습니다. 오늘
도 또 살리려고 “오라” 해서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도록 했습니다. 먼저 여러
분을 살려 주고 “몇 명 구했냐?” 물을 것입니다.
꼭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사형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것도 없는데 선고를 받았습니다.
“왜요?”
그렇게 잘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이 사람도 선고를 받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믿었는데 받았습니다.
왜 선고를 받았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복종해서 신앙적으로 선고를 받았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습니다. 육신도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는 길을 가니까 보호해 줄 것을 안 보호해 줬습니다.
보호해 줄 것인데 안 보호해 주니까 그냥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선고
를 받았습니다. 의사가 30분 내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는 길을 가면 막 때려서 선고를 내리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께서 보호해 줄 것을 안 보호해 줍니다.
안 보호해 주는 것도 하나님의 권리가 아니겠습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막
때렸으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럴 수가 있나?’ 하겠지만, 가지 말라는 길을 가
니까 다치게 그냥 놔두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뇌를 다쳐서 30분 안에 죽는
다고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때에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참 많이 살려줬다. 월남
에서 죽을 고비에서 수십 번씩 살려 줬다. 30번 이상 살려 주고, 또 평소 산
에 가서 기도할 때도 살려 줬다. 계속 살려달라고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 살
려 줬으면 뭘 해야지.” 그래서 예수님과 쇼부를 봤습니다.
“내가 살려 주면 뭐 할래?”
“나 하나 살려 주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살려 주겠습니다.”
“어떻게? 네가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살려?”
그때 예수님은 얼굴을 안 보여주고 목 밑으로만 보여줬습니다. 병원에서
침대에서 보는데 목 밑으로만 쳐다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면 살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처럼 말 안 들으면 하나님이 안 도와줘서 죽으니까 그런 사람에게 말씀을
줘서 말 잘 듣게 하면 꼭 죽을 것인데 사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그 동안 예
수님께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멋있는 애들이 다 세상으로 가지 않습니까.
멋있는 여자 애들이 술집으로 가고 세상으로 가서 다 타락하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속상합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나에게 지혜
를 주면 말을 잘 해서 그들로 하나님 믿게 만들어서 그런 데에 안 가고 하
나님께 축복 받아서 더 많이 돈도 벌고 더 잘 살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문제없습니다. 살려만 주세요. 내가 그렇게 못하면 죽이세요. 단, 시간만 주
세요. 10년, 5년 그렇게 정하지 말고 평생 동안 시간을 주세요. 평생 동안
하겠습니다. 그것만 계속 할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했지 않았습니
까. 아마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나 하나 살려 줘서 이런 수만의 무리가 한국을 중심해서 세계적으로 엄청
나게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참 하고 있는데 끝까지 하면 엄청날 것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잘 살려 주신 것입니다. 나를 죽였으면 속이 얼마나 아팠겠
습니까. 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데 죽었으면 잊어지지도 않고 너무 속상하
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너무 속상하고 너
무 마음 아픈 것인데 잘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병원에서 나와 이야기하다 없어졌었는데 하나님께 “쟤를
살려 주면 나도 같이 일하겠다”고 하고 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대로
못하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와야 한다 하고서 갔다 오셨던 것입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가만히 있더니, 그 때는 얼굴을 조금 보이면
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라.”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선고를 돌이켜 살렸어요?”
오늘 본문 말씀의 앞 구절에 그 말씀이 있는데 “네가 나를 시인하면 내 아
버지 앞에 가서 너를 내가 시인하고 오리라.” 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
에서 나를 시인해 주면, 내 말을 믿어주고 내 말을 시인하면 나도 아버지 앞
에서 너를 시인해 주고 온다.” 했습니다.
예수님께 어떻게 쇼부를 봤냐고 물었더니,
“네가 말 안 들으면 나 죽는대.”
“네? 아니 내가 예수님을 그렇게까지... 정말 부담되네요. 내가 책임 못 하
면 예수님도 그 책임을 진다구요? 너무 부담되는데, 이렇게 부담되게 인생을
살아야 되나... 내가 과거에 살아봤는데 별 볼일 없이 살았는데... 정말이에
요?”
“그럼. 내가 일단 대답을 하고 왔어. 네가 아까 하도 전도한다고 하길래.”
사실 예수님이 세상에 있을 때 전도하다 말았는데, 내가 다 전도하겠습니
다, 그것도 우리 민족만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돌아다니면서 하겠다고 했었습
니다. 그리고 그 예쁜 사람들 다 하나님을 믿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만들고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수님이 이 말을 전달했을 때 생명을 살려 주겠다고 하니까 하
나님도 선고를 내렸다가 다시 푼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그렇게 큰
것입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결국 회심하고 예수님께 들러붙어서, 예수님도 내가 못 하면 큰일나니까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냐구요? 69년도
인가 70년도... 예수님이 70년도 가을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잊어버리면 말
씀을 해 주십니다.
“70년도 가을이다. 가을 체육대회 갔다가 그랬지 않았느냐.”
이래서 계속 함께해서 이렇게 역사를 펴왔습니다.
예수님이 섣불리 사랑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아예 정말로 사랑해야 된
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해도 나는 몇 가지 때문에 용기를 잃곤 했습
니다. ‘나는 못 배웠다. 하다가 안 되면 버릴지도 모른다. 끝까지 안 해줄 지
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늘 자신이 없었는데 “그것은 걱정하지 마라. 영원히
간다. 네가 나를 버릴래? 나는 너를 안 버린다. 이제는. 내 운명이 같이 들어
있으니까. 나는 니가 나를 버릴까 그것 때문에 걱정된다.”
“아, 그런 걱정은 하지를 말아요.”
“환난 받고 어려움이 있으면 또 달라.”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맺고서 신앙을 출발해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렇게 하
고서 신앙을 출발하여 온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중간에 꿰장 나면 큰일 납니다. 신앙이 꿰장 나면 안 됩니
다. 짐을 짊어지고 가기 전에는 몸뚱이가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짐을
짊어지고, 옹박지를 짊어지고, 고려청자기를 짊어지고 가다가 넘어지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하며 이 말씀을 따르는 모든 세계적인 사람들은 그와 같
은 신앙으로 지금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이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면서
생명들을 구하며 가는 그런 신앙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그런 터전 위에서 그 어려운 환난과 어려움
을 지켜주고 함께해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듣는 어려움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직접 나에게 닥치는 일
들은 이야기를 안 합니다. 그런 것을 붙잡아 주고 함께 하고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내가 월남에 갔을 때에 부모들이 “월남이 위험하대. 굉장하대.”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듣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내가 직접 당한 것을 와서 이
이야기 하니까, 적이 내 가슴에 총을 겨눠서 잡아당겨 버렸던 것을 내가 와
서 이야기하니까 “그런 것이 있었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부
모님들이 그 실감을 잘 못 느꼈다는 것입니다. 나나 실감을 느끼고 당해본
사람이나 실감을 느끼지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 섭리 세계에 그런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
켜 주지 않으면 지킬 길이 없습니다.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섭리
를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절초풍 하는 말씀을 계속 주는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
르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
고 갑니다. 사람을 의지해서는 살수가 없으니까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
습니다.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생명을 어려운 죽음에서 살려 주었다면 그 사람만 의지한다
는 것입니다. 수영하다가 죽을 뻔했는데 누가 살려 주었다면 수영장에 가서
그 사람만 쳐다보고 다른 사람은 안 쳐다봅니다. 자기를 구한 사람만 쳐다본
다는 것입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 책에 썼습니다. “사람이 나와 같이 사실상은 죽을 고비에
안 걸린 사람이 없었다. 걸렸는데 다만 모를 뿐이고, 다만 그것을 고마워하
며 일을 안 해서 큰일을 못 했다.”고 썼습니다.
나는 그 생명 구해 준 것이 고마워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큰일
을 한 것입니다. 너무 하나님께 고마워서 그 일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것
입니다. 명예, 권세, 부귀, 영화가 같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막 무엇을 그냥 축복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생명을 구해 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을 구해 주는 그 일을 하다 보니까 그 일이 바로 축
복이 되었습니다. 내가 생명 구해 주는 일만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간도
생명 구하는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의로운 싸움을 해야 된다고 말씀을 받게 된 것입니
다. 검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말씀!
20년 가까이 산과 생활 속에서 기도하면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끝날 말씀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이 아니고 누구든지 오면 그 말씀을 배워야 됩니다. 온 지구상의 모든 사람
들이 그 말씀을 들음으로 나와 같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 시대급으로 사망
에서 생명으로 옮긴 바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선포하는 말씀은 마치 모세가 율법을 받듯이 시대의 말씀으로
받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신약시대에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선포한 것
과 같이 그런 위대한 말씀을 여러분에게 선포해 왔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하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생하게 바로 전해 주는 것입니
다. 원래는 이것을 간직했다가 다음에 해야 되는데, 어제 받았으면 오늘 전
해 주고 조금 전에 받았으면 지금 전해 주고 하면서 그대로 바로 전해줍니
다.
물론 저장도 하고 책도 쓰지만 지금 바로 전할 때 화끈하고, 확실하고, 생
동적이라는 것입니다.
‘받은 말씀’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지만 들은 말씀은 힘이
덜합니다. 만든 말씀은 아주 힘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검을 받았는데, 바로 진리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받을 때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고욤나무에 참 감나무를 접붙여서 하나가 되면 진액이 따라 올라오는 것입
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과 일체 된 말씀이 그 시대에 선포된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안 되면 선포가 안 됩니다. 말씀이 가도 떨어져 있으니까
통하지를 않습니다.
지구상에 누구 하나라도 하나님과 일체 된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어 전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명의 말씀을 모두 찾고 다니
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10년 간다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 20년 간다고
들을 수 있겠습니까. 30년 간다고 지금 말한 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약 50년 동안 역사를 계속 해 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해왔습니다.
다만 전한 것은 34살부터 전했습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왜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지 않고 검을 주러 왔다”고 했을
까? 무섭지 않습니까. 문자대로 해석하면 무서운 것입니다. 문자대로 검을
주러 왔다 본다면 얼마나 무섭습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너무너무
무섭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자에게 활을 당기신다. 칼을 매일 갈으신다. 칼 갈고 있다.
칼 가는 소리 안 들리느냐.” 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 소리가 안 들리느냐. 내가
너에게 말하려고 말을 준비하고 있다. 무슨 말씀을 할지 아느냐. 책망 말인
지, 칭찬 말인지, 사랑의 말인지 모르지 않느냐. 악한 일을 했으면 반드시 책
망하는 말씀이 나간다. 책망 받으면 거기에 형벌도 같이 가는 것이다. 칭찬
받으면 복이 간다.” 이런 말씀입니다.
성경을 문자대로 풀면 “예수님이 공중에서 오신다.” 했는데 그런 신앙을
갖고 있으면 무서운 것입니다. 왜 무서운가 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을
버려 버립니다.
옛날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하나님이 보내 주는데
그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현재 기독교인들도 그와 똑같이 생각
합니다. 그런데 언제 하늘에서 내려왔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해서 예수님이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이신 예수다. 사람이다. 사람으로 왔다.” 하고 계속 말씀했습니다. 그런
데 그들은 “신으로 온다. 하늘에서 온다.”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온
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사람이신 예수다. 우리와 같은 형제 가운데 있는
예수다.”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사도 요한은 메시아 예수가 육신으로 오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단이
라고 했습니다(요2서 1:7). 메시아는 육신 가지고 있다 했습니다. 유대인들
은 “메시아는 신이다.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다. 사람 같지 않다.” 했습니다.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
그런 말은 집에서 부모들이 많이 하지 않습니까. “원수다, 원수. 네가 원수
다. 아이구 지긋지긋해라. 네가 원수다.”
“어머니가 원수예요.”
“내가 어째서 원수냐, 네가 원수지. 맨날 속 썩이니까. 한두 번이어야지.”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 식의 말씀입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집안에서 서로 원수가 생긴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서로 싸우고.” 그런 어
간입니다. 집안싸움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집안싸움들을 너무 많이 합니다. 가문 싸움, 집안싸움, 형제 싸움, 부부싸
움을 하는데 원수 중에 원수 같아 보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말씀한 것입니
다.
집안에서 화평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화평하겠습니까. 옳은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서로 그렇게 하지 말고 서로 평화롭게 하라는 그 말
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지고 온 진리의 말씀을 틀렸다 하는데 그러면
무엇이 틀렸는가 따지면서 싸움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주장하는 것이 맞냐? 아니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면 구름 타고
온다고 하는데 그것이 맞냐? 지금 땅에서 와서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불신하
느냐?” 하고 가서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말도 아닌 이야기하지도 말아
라. 하나님이 온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왔다면 봤어?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나님을 봤어? 하나님은 신이라 지금 돌아다녀도 안 보인다.” 이렇게 하라
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들이 가서 말씀을 가지고 싸우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어떻게 보이느냐? 하나님이 무슨 잡신이냐. 꿈에 잡신이 보이
듯이 보이느냐. 하나님은 볼 수 없다고 했는데.”
가장 큰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누가 가장 존
재하고 것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누
가 과연 실감 있게 믿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서 실감 있게 일을 하느냐 하
는 것입니다.
누구는 하나님을 봤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이 계심을 확실히 믿고 하고 있
습니다. 하나님은 얼굴만 안 보이지 할 것은 다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딱
한 가지, 얼굴만 안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참 기술도 좋으십니다. 얼굴만 안
보이시고 해 줄 것 다 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몸뚱이만 못 만져 봅니다. 40개국 나라가 다 마찬가지
로 내 몸만 못 만져보지 내가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다 해 주고 있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생의 말씀을 들려주시옵소서.”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하는데 그것을 들려주면 되지 않았습니까.
간혹 “어떻게 인생을 삽니까?” 할 때 대답해 줍니다. 그 대답이 말씀으로
다 가지 않습니까.
말씀을 할 때 오는 말씀으로, 깨닫는 말씀으로 합니다.
“준비됐습니까. 하늘 준비됐어요? 저는 준비됐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냥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순서 있게, 조리 있게, 확실하게, 분명하게 말
씀을 전해 줍니다.
내가 이렇게 쳐다보면 여러분도 잘 쳐다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바라봄의 법칙이지 않습니까.
학교 다닐 때, 고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선생이 자기를 안 쳐다보면 너무
너무 충격 받지 않습니까. 선생이 자기를 안 쳐다보면 ‘어휴 밉쌀 맞어.’ 그
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나 자리 바꿔 주세요.”
“왜? 너 거기 창가가 따뜻하고 좋은데 왜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냐?”
“자리 바꿔 달란 말이에요. 너무 공부가 안 돼요.”
“그래? 어디?”
“선생님이 저기 서 있어 보세요. 저기 앉을 거예요.”
“왜?”
“선생님, 정말 답답해 죽겠네. 선생 보러 왔지 공부하러 왔어요?”
“너 미쳤냐?”
“어이구, 선생님을 좋아하면서 공부해야 공부가 잘되지요. 선생님은 그것을
몰라요? 선생님을 좋아하면서 공부를 해야 공부가 들어오는 거예요. 사람들
을 골고루 쳐다보면서 선생님을 좋아하게 좀 만들어 줘요. 춥지만 저는 저
응달로 갈래요. 선생님이 거기만 잘 쳐다보잖아요.”
“아, 그래?”
“선생님, 집에 가서 거울을 보고 지금 하는 모습 그대로 한번 해보세요. 웃
긴다니까요. 거기만 쳐다보고 있어서 고개가 돌아간 줄 알았어요.”
나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과 화장실 가다가 딱 부딪혔는데 그냥 가면 “치,
나에게 무슨 미운 털 박혔나? 다른 애들한테는 웃어 주더니 나한테는 웃어
주지도 않고. 피... 여자들은 웃어 주고 나는 안 웃어주고? 남잔데 그럴 수가
있어?” 그랬습니다. 어린것이 반항기가 생겨서 그랬습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그러다가 한번은 선생이 웃는 것을 보고 은혜 받았습니다. 다른 여자 보고
웃는데 나를 보고 웃는 줄 알고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공부가 너
무 잘 됐습니다.
원래 내가 밝은 미소의 주인입니다. 여러분이 밝은 미소 운동을 권장하며
웃는 운동을 해도 잘 안되지요? 잘 안 웃어졌을 것입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내가 하면 금방 웃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웃는 모습을 어떻게 봅니까. 하나님이 막 인상 쓰며 “말씀해!”
하는데 내가 웃고 있으면 “너 미쳤어? 저리 가!”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하
나님의 그 모습을 가장 흉내를 잘 내야 최고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웃는 얼굴을 못 보지 않습니까. 지금 웃고 있는가, 심각
하게 있는가 모르지 않습니까. 영화의 주인공을 통해서 그 사건이 ‘아, 그때
저 사람이 웃다가 죽었구나. 아하..’ 하고 안다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면, 처음에는 웃는 것으로 시작해서 인상을 쓰며
슬픔으로 끝이 납니다. 대개 모든 작품이 처음에 슬픔이었다가 점점 가다가
웃음으로 끝나는 작인데, 셰익스피어의 작(作)은 그렇게 슬픔으로 비극으로
끝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점진적으로 웃으면
서 가는 역사입니다. 더 좋게 더 좋게 더 좋게!!!
여러분이 여기에 처음 왔을 때는 ‘여기가 어떤 곳인가?’ 하다가 나중에는
차차 가다보면 점진적으로 좋아지는 역사로 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확 좋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확인해야 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슬픔의
세계에서 점점 가다가 웃음과 기쁨과 희열과 감격과 감사로 가는 역사! 하늘
역사를 보면 계속 그렇게 역사가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집에서 서로 싸우는데, 원수가 집에 있다. 원수가 되어
서로 싸운다. 집안싸움, 가정싸움, 형제싸움, 부부싸움을 한다. 그런데 종교
적으로 볼 때 너희들이 시대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가니까 그들이 그것을 싫
어하고, 바깥에서 하듯이 집에서도 싫어하지 않느냐. 나는 바깥에서 유대 종
교인들이 그렇게 하지만, 너희들은 가정에서 너희가 시대를 따르는 것을 싫
어하는데 가서 이야기를 해라. 내가 너희에게 검을 주었으니, 진리의 말씀을
주었으니 그것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되잖아. 진리는 화평이 아니냐. 사람이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들어야 알지. 이야기를 해 봐라.” 이런 이야기가 죽 연속됩니다.
태양이 멈췄다고 성경에 써 있는데 그것이 맞는가 이야기해보라는 것입니
다. 맞았다고 하면,
“태양은 안 가는데, 엄마. 태양은 안 가는데. 쓰기를 잘못 쓴 거야.”
“그러면 성경이 틀렸단 말이야?”
“그때는 태양이 가는 걸로 봤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니까.”
그렇게 가르치고 해 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검을 주어서 평화롭게 싸우
라는 그런 말들입니다.
“부모와 형제의 그렇게 하는데 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 부모가 똑같
이 나처럼 주장하면 사랑하고 괜찮다. 그런 입장에서 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내 말을 사랑해야 된다. 구원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내 말
을 절대 믿어야 구원에 들어가지, 부모님이 구세주가 아니지 않느냐. 네 형
제가 구세주가 아니지 않느냐.” 하면서 말씀했습니다. 옳은 말이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을 세밀하게 잘 해석하지 못하고 그냥 “부모 형제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합당치 않다.” 그러면 안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언어가 나온
지를 알아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전하는 사람이고, 부모 형제는 이해를
못 하고 반대하고 있지 않느냐. 그 반대하는 말을 듣고 가지 마라. 그러면
그 사람은 내게 합당치 않다.” 한 것입니다.
그 동안 섭리역사를 해오면서, 과거에 배웠던 과거의 기성적인 관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끝내 돌아갔습니다. 내가 “태양이 멈추었다는 성경말씀은 태
양이 멈춘 것이 아니고 바로 시간적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다.” 했을
때 못 믿겠다고 한 사람들은 내가 “너는 내게 합당치 않다.” 했습니다. 그래
서 그냥 갔습니다.
“딸이나 아내나 부모나 처자식을 더 사랑하면 합당치 않다.”
하나님께서 부모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왜 합당치 않다고 했겠습니까.
부모를 사랑치 않으면 까마귀가 눈을 빼어가라 했습니다(잠30:17). 그래놓고
이것은 무슨 말이겠습니까. 잘못된 진리, 잘못된 주관을 갖고 있는 그 관에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따라가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그것입니다.
내가 이 진리를 갖고 왔을 때 환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 반대하며
“이거 큰일 난다. 이런 진리 전하지 마라.”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환
영하고, 빨리 와서 전해달라고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으면 합당치 않다.”
합당치 않다는 말을 계속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사람마다
그 십자가로 죽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삶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가 책임지고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지 그것을 집어던지고 가면 안 된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무엇을 말합니까. 십자가를 크게 몇 가지만 이야기하겠습
니다.
첫째 십자가는 희생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 대신해서 십자
가를 짊어지고 희생했습니다. 십자가에는 ‘희생’이 들어 있고, 또 십자가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했으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
을 십자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고통’이 십자가입니다.
이런 고통을 안 겪으면서 따르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고통과 어려움이 있는데 이것을 안 하고서 어떻게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서 안 하겠다, 십자가를 못 지겠다 하면 신앙생활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나 안 하나 인생 삶의 십자가가 다 있습니다.
그것을 십자가로 표현한 것인데, 그렇게 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
회 다니나 안 다니나 삶의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걱정, 근
심, 염려, 재리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짊어지고서 가고, 또 짊어지고
오면 없애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없어지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것이 없어지게 해 주리라. 염려하지 말아
라. 염려를 내게 맡겨라.”
예수님이 염려를 내게 맡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염려를 맡기라는 것은
염려를 예수님께서 해결해 준다는 것도 있지만, 필요 없이 염려를 가지고 있
어서 맡기라 한 것입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왜?”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산이 무서워요.”
“왜?”
“뱀이 나타날까봐 무서워요.”
“염려를 내게 맡겨.”
왜 맡기라고 했는지 압니까. 겨울이라 뱀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맡기라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필요 없이 하는 걱정 염려가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있고 어느 때는 “내가 앞에 가면서 뱀 다 잡아줄게. 걱정하지 마.” 이래서
맡기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일단 자기 십자가를 버리지 말고 짊어지고 가라. 와서 하늘 앞에 해결하
라.”
그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오라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자기의 목숨을 얻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이
야기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다가 자기의 생각으로 가면 신앙의 목숨을 잃어
버리지 않습니까. 구세주와 일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핍박한다고 무
서워서 도망가면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이런 신앙의 목숨을 이야기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안 하면 죽었다 하고, 하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적
인 단어도 되고, 또 실제의 목숨을 이야기한 것도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참새가 두 마리가 있는데 그 목숨이 사람에게 달
려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감동시켜서 참새를 못 죽이게 하면 못 죽이는
것이다.” 했습니다(마10:29). ‘참새가 죽이듯이 너도 죽는다.’ 하는 뜨끔한
영감이 오면 참새를 죽일 사람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영감을 보
내서 일을 하십니다.
“자기의 목숨을 잃는 자는 또 얻는다.”
씨를 뿌렸을 때 씨가 죽어 목숨이 없어졌습니다. 그랬지만 죽어서 수백 배
를 얻지 않습니까.
선생님을 보세요. 목숨을 잃었지 않습니까. 산에 있을 때 살아 있는 사람
같이 살지 않고 나의 생활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에 들어박혀서 인생을 잃
어버렸습니다. 청춘도 잃어버리고, 삶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목숨을 얻
었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얻어서 나와 많은 생명들을 위해서 주게 되었습니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다.
이런 말씀이 본문에 죽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짊어지고 꼭 가야
되겠습니다. 어렵다고 안 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인생의 삶의 십자가를 짊
어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어려운 것, 힘든 것, 희생적인 것, 고통스러운 것, 남을 위해서
짊어지는 것, 창피한 것들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인데 훌러덩 벗고 팬티 하나 걸치고 십자가에 있었을 때 너무너무 부
끄럽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부끄러운 일을 다 당해도 직접 짊어지고 가라. 그렇게 하며 따르라.
그렇게 하며 따라가야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저마다 다 그런 것들
이 있는 것이다. 그 어려움을 못 참으면 안 된다. 내가 또 함께하고 하나님
께서 함께하지 않느냐.”
누구든지 그래야 됩니다. 조그마한 어린아이에게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
린아이 것이니 얼마나 작겠습니까. 조그마합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자기 고통을 자기가 겪으며 크면서 올라
오지 않습니까.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너무 고생
스럽고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라. 일단 너희들 보따리를 짊어지고 오라.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없애 주리라. 믿고 가라. 사망권
에 있는 무거운 짐들이니까 생명권으로 가자.” 이렇게 없어지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고, 가정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고, 그리고 이해하고
싸움하지 말고 위해 주고 섬겨 주고, 이런 것들이 자기의 십자가입니다. 그
것을 못하면 다 깨지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이만큼 하고, 다음 다른 말씀으로 건너가겠습니다. 건너 타기입
니다.
본문 말씀을 했으니 이제 시대의 말씀을 해 나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것
도 다 시대의 말씀입니다.
신앙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성장하면서 범죄 해서 타락되지 않았습니까.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하와가 이성의 꼬임을 받고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몸을 내줬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자기 몸 자체가 선실과입니
다. 남자는 몸 자체가 생명나무입니다. 남자는 나무, 여자는 과일, 확대시키
면 그렇습니다.
축소시키면 여자는 금단의 열매를 선실과라고 하고, 남자는 금단의 나무를
생명나무라고 합니다. 나무와 과일은 일체 세계가 아닙니까. 나무만 있어도
쓸쓸 적적, 과일만 있어도 그냥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무에 과일이 달려 있
으면 “야, 멋있다. 진짜 멋있다. 사진 찍자.” 합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 위해서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그 목적 하나
만 가지고 창조하겠습니까. 그러면 확대시킨 세계에서는 봤으니, 축소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을 때 영광 받기 위해서 낳았습니까. 자녀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큰일 납니다.
“나는 너에게 영광 받으러 왔는데 너는 나에게 영광 돌리는 것이 뭐냐? 내
가 영화를 보려고 낳았다. 네가 나에게 영화를 좀 보게 해 줘라.”
“엄마, 내일 영화(映畵) 티켓 끊을게.”
“그것 말고. 영화(榮華). 너로 인해서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그래
서 너를 낳은 거야.”
“미치네. 미쳐. 어떻게 금방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줘. 세상 성공하기 어려
운데.”
그러면 자녀들이 부담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내가 너를 크게 기대한다. 나를 기쁘게 해 달라. 부모를 기쁘
게 해야 된다. 아무개 부모 아들은 너무 부모를 기쁘게 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을 그렇게 해석해 보십시오. “나는 영광 받기 위해서 너를 창
조했다. 네가 영광 돌릴 것이 무엇이냐?” 그러면,
“부담돼서 못 살겠네요. 하나님, 나 그냥 죽어야겠네요. 너무 부담되네요.”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기 위해서 창조도 하였지만, 그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왜
창조했는가 하면, 아빠랑 엄마가 너무 사랑하다가 자식을 낳았습니다.
사랑하니까 사랑이 나온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계속 힘을
쓰니까 계속 힘이 나왔습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역사했습니
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사랑하다가 낳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서 낳았으니까 또 사랑을 주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려고 낳은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을 사랑하다가 낳
았고,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다가 낳았으니까 사랑의 세계로 온 것입니다. 그
러니 남자도 여자도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낳았다는 것입
니다. 사랑하려고 낳은 것입니다. 그러면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펴나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영광 받으려고 낳았다고 하면 적어도 10살 가지고는
영광 못 돌릴 것입니다. 20살이 돼도 힘듭니다. 30살이 되어도 출세해서 부
모에게 영화를 끼치기 힘든 것입니다.
내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영광을 위해서 인간을 창조했다고 그렇게 배
웠습니다. “야, 부담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했다 하는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노래라도 불러야 하는데 내가 노래도 부르지 못하는 주제이
지만 한번 해볼까?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하나님, 영광 받으셨어요?”
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과 같으니 다시 깨닫고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는 목적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너무 많으셨습니
다.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 구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려고, 하늘나라를 보이는 이 땅에 이루
려고 창조한 것입니다.
자기 부모님이 큰 엄청난 집을 짓고 멋있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만으로
는 또 하나의 집을 짓고 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별장이야 필요하겠지만
또 하나의 집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살림살이를 하면서 잘 되는 것을 보
려니까 사랑하다가 아들을 낳아 부지런히 길렀습니다. 그를 위해 집을 크게
멋있게 지어 주고 잘 살게 해 주면서 “너도 아버지 어머니처럼 이렇게 재미
있게 살아라.”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 지구상에 또 하나님의 보이는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
이 창조된 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 때문에 우리를 낳았다. 사랑 때문에 우리를 시
작했다. 하나님이 사랑하려고 우리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
려고 창조했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계속 우리를 사랑하
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미워하지요.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이상세계를 만들려고 한다.
이런 것은 하지 마라. 이성으로 타락하지 마라.” 했습니다. 그것을 성경에는
“선악과를 따먹지 마라. 동산의 과일을 따먹지 마라.” 했습니다.
지체의 동산이 있지 않습니까. 여자의 지체의 동산에 과일이 있지 않습니
까. 그것을 따먹지 말라 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것을 따먹습니까. 이성의 관
계를 하면 따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말아라. 꼭!”
“네!”
“그게 제일 귀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꼬여도 따먹지 말고 아무리 뭐라고 해도 따먹지 마.”
“알겠어요. 하나님은 그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하세요?”
“아니야. 들었어? 따먹지 마!”
“그게 그렇게 귀한가.”
“그게 귀하다니까. 나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살아.”
하나님이 하와에게도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냥은 못 따먹습니다. 정식으로는 못
따먹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냥은 안 됩니다.
사랑하면 사랑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천사장이 사랑하니까 하와가 사랑했
습니다. 하와가 사랑을 하지 말았어야 됩니다. 천사장이 사랑했어도 사랑만
받고 놔뒀어야 됩니다.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밥 사주면 밥만 먹고 밥
사주지 말아야 됩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그와 같이 했어야 하는데 사
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랑했습니다. 그냥은 안 되
니까 꼬였다고 했습니다. 꼬임에 넘어갔다고 했습니다.
어떤 여자가, 조그만 유치원생 하나가 거리에 돌아다니는데 보니까 자기
친구의 딸이었습니다. “이리와 내가 뭐 사 줄게. 너 아무개야!” 하니까 가만
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유치원생이면 5살이지 않습니까. “싫어요.” “반가워
서 뭘 사 주려고 하는 거야.” 하는데도 말을 안 들었습니다.
“뭐 하나 사 줄게.” 해도 “안 먹어요. 싫어요.” 했습니다.
‘이상하다.’
반가워서 무엇을 하나 사 주려고 하는데 받지도 않고 싫다고 안 받았습니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다. 저기 상점에 가자고 하니까 싫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그 친구에게 가서 “친구야. 야, 내가 네 딸한테 어떻게 한 줄 아
냐. 30분을 쫓아다녔는데 아무 것도 안 받고 결국 그냥 말더라. 상점 가자고
해도 안 가고 꼼짝도 안 하던데. 어떻게 된 것이냐? 왜 그러냐?” 했더니, 어
린이 유괴 사건 때문에 아빠가 교육시켰다는 것입니다.
“너는 누가 무엇을 사 준다고 해도 먹지 마라. 그것 먹으면 죽는다. 절대
먹지 마라. 그 사람 따라가면 죽는다. 아기를 칼로 찔러 죽인 사람 있잖아.
그렇게 돼버려. 그런데 아주머니나 어른들이 잘 그런다. 조그만 어린아이도
따라가지 마. 혼자 놀다가 들어와.” 그 교육을 아빠가 밥만 먹으면 계속 시
켰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안 따라 간 것입니다. 안 따라가면 괜찮다고
하니까 자기 엄마 친구인데도 안 따라간 것입니다.
그 엄마 친구가 “야, 나도 불안한데 내 딸 그렇게 교육시켜야 되겠다. 내가
맨날 불안하거든. 안되겠다. 얼마나 교육시켰어?” 하니까 아빠가 항상 그 이
야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누구 따라갔어?”
“안 따라갔어.”
“안 따라갔어?” 하고 확인하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빠도 마음을 확
놓고 자기도 마음을 놓고 산다고 했습니다.
그런 작은 유치원생도 교육을 받으면 그대로 하는데, 하와는 14살 15살이
되었는데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교육했는데도 그 말을 안 들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교육을 잘 못 지킨다는 것입니다. 분석해본 결과 사람의
세계는 잘 지키는데 이상하게 못 지킵니다.
하와가 말씀을 어긴 죄와, 두 번째는 몸을 내어준 이성의 범죄, 이 두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진리와 사랑’이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가장 큰 ‘진
리와 사랑’이 파괴되었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사랑 가지고 천국을 이루는데
진리와 사랑이 파괴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지킨다면 그 다음에 가서는 하나님이 그 나
름대로 다 줍니다. 결혼해서 어른이 되었는데 “선악과 조심, 선실과 조심!”
이렇게 안 합니다. 그때는 이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다른 데에 사랑
을 뺏기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럽니다.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갖추
어져야 됩니다.
나는 모르니까 하나님께서 단상에서 말씀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인간의 입장에서 탈을 쓰고 말씀해달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임금이 탈을 쓰고 시골로 다녔습니다. 임금인지 모르고 임금을
잘 대접하면 그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노인이 임금이 그렇게 돌아다니
는 것을 보고 잘 대접해 주니까,
“당신은 참 복 있는 사람이시오.”
“왜요?”
“나 같은 사람에게 대접해 주고 해서 너무 복 받겠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가 임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이, 누가 이렇게 보기 싫게 돌아다니고 있어. 이렇게 바쁜 때에 뭐라도
해야지.”
“당신은 정말 복이 없는 사람이오.”
“웃기네 정말.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임금이었
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탈을 쓰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생의 몸을 쓰고, 육신
을 쓰고 나타납니다. 그냥은 말이 안 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
둥번개 치면서 호령치는 순간에 나타납니다. 그럴 때에 사람들이 “아! 하나
님이 소리 지르는 것 같다.” 그럽니다. 그런데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말하는
것은 인생의 몸을 통해서 타고 나타납니다. 옛날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아담 하와를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사랑함으로 사랑의 종
주국을 만들어서 한 가정을 만들어 세계로 뻗어가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데 그것이 사랑함으로 깨어졌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하와와 또 이성적인 육
적인 관계를 가지니까 또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됐느냐?”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지켜
주라고 한 천사가 그렇게 해서 내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괜찮다고 하며 나를
꼬였어요. 하나님이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괜찮다. 전혀 그것은 상관없
다. 너 조심하라고 그렇게 한 것이지 전혀 상관이 없어.’ 하며 꼬였습니다.”
죽는다고 한 말처럼 죽었습니다. 육신은 안 죽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
졌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오다가 잘려져 버렸습니다. 그것이 죽은 것입니
다. 말씀이 오다 끊겼습니다. 사랑에 타락되면 말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에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타락되면 할 말이 없으니까 끝납니다.
어느 시대든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것을 절대 믿어야 됩니
다. 그래야 첫 번째 하나 성공한 것입니다. 50점!
그 다음에 가서는 사랑을 선포하면 사랑 문제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사
랑 문제는 꼭 선포합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하나님 절대 사랑!’, 젊은 사
람들은 ‘절대 하나님 사랑!’
예수님이 “나보다 네 형제나 자매를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 했습
니다. 그것은 불법이요 비 진리입니다.
요즘에 나는 그럽니다. “나보다 네 애인을 더 사랑하면, 내가 너희를 구원
하러 왔을진대 너희가 그렇게 하면 구원을 못 한다.”
애인 말을 듣고 가는데 어떻게 구원하겠습니까. “오늘 나 따라서 교회 가
자.” 했는데 “나 우리 애인 따라 가야 돼요.” 그러면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
다. 나보다 네 애인을 더 사랑하면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내 말보다 자기
애인의 말을 더 들으니까 구원을 못 시킨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시키러
온 사람이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제나 자매를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 했지만, 나는
“네 애인을 더 사랑하면 구원을 못 시킨다.” 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왜?
힘이 없습니다. 오늘 교회에 말씀 들으러 가자했는데 자기 애인을 따라서 놀
러 간다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구원을 시키겠습니까. 주일 말씀을 들어야 구
원시키는데, 이치가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리와 사랑’을 선포해서 진리를 절대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진리를 믿고 따르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문제입니다.
애인 사랑, 이성의 사랑, 물질의 사랑, 환경의 사랑, 돈의 사랑, 입고 먹는
의식주의 사랑, 그렇지 않으면 친구의 사랑, 친구의 사랑에 어울리다 보니까
교회 못 다니게 되고, 술사랑, 향락 사랑, 부모 사랑, 이렇게 하다보니까 하
나님의 사랑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 사랑과 진리를 하나님께서 선포
하십니다. 그 말씀 두 개를 완전히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주님, 하나님! 사랑의 세계는 3천 명 예쁜 여자
들을 갖다 놓고 그리로 갈래 이리로 갈래 해도 안 갑니다. 나에게 해 보십시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오. 예수님도 아예 그렇게 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사랑의 기준을 딱 세워야 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
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기준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
랑의 기준과, 진리의 말씀에 절대 기준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받고 그것을 시인하고 완벽하게 서고 사랑에 완벽히 서야 됩니다. 이 두 가
지가 서야 그 터전 위에서 역사를 시작합니다.
아담 하와가 그렇게 못해서 역사가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나서 하나
님께서 속상하니까 소식이 없었습니다. 1600년 동안 지상에 대해서 ‘아, 이
제 틀렸다.’ 하신 것입니다.
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다가 상처받고는 한동안 여자에 대해서 관심이 없
었습니다. 그런 입장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지구촌이 너무 비참하게 되지 않
았습니까.
“너희는 너희 생각대로 살아라. 아담이나 좋아하고 실컷 살아라. 하와나 좋
아하고 실컷 살아라. 천사나 좋아하고 실컷 살아라.”
천사는 악명 높은 악인이 되었습니다. 악마, 사탄이 되었습니다. “나는 너
희들에게 관심 못 두겠다. 너희들 아니어도 얼마나 사람이 많냐.” 하고 끝났
습니다.
그리고 계속 있다가 1600년 만에 노아를 불러서 “노아야! 너는 시대에 완
전한 자구나. 의롭게 살았구나. 내가 지금 또 역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나
하나님이다.”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모든 이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았는데, 너만 의롭게 사는구나. 이
세상에 호흡 있는 것을 내가 다 멸해야겠다. 더 이상 못 보겠다. 너 하나 보
고 역사를 한번 시작하겠다. 방주 만들어라. 앞으로 홍수심판 한다. 양심심판
을 하겠다. 저들에게도 살려면 만들라고 하라. 잣나무로 만들어라. 그러나
10년 있다가 하겠다.” 했습니다.
120년 만에 하겠다고 한 것이 그게 10년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120년이
아니라 10년입니다.
역사의 주인이니까 알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대해서 물어보십시오. 내가 다
대답해 줄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것에 대해서 다 물어보십시오. 다 대답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됐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을 충분히 인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노아에게 10년의 기간을 주었습니다. 그때는 한 달이 한 살입니다. 그러니
까 지금의 10년은 그 때의 120년입니다. 노아에게 “120년 만에 심판하리
라.” 했기 때문에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120년 만에 심판한 것으로 알고 있
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10년입니다. 하나님께 확인, 예수님께 확인, 다 확인했습니다.
“10년이 맞다. 네가 지구상에서 인봉을 뗀 것이다.” 하셨습니다. 인봉 뗀
것이 한두 가지입니까. 그 인봉 뗐다고 내가 큰 것이 아니라 나는 다른 사람
과 임무가 다르지 않습니까. 일반 사람이 아니니까 그 정도는 당연한 것입니
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을 때 계속 연구하며 결심하고 읽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능은 이 세상의 초등학교 학문밖에 안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학
교는 못 가봤습니다. 공부 하러는 1년도 안 들어가 보고 하루도 안 가봤습니
다.
그러니까 하늘의 지능을 가지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니
까 하늘의 지능, 하늘의 지혜가 와서 푼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성경학자들은
못 풀었습니다. 120년이라고 지금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석 책에 보면
120년이라고 다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한 달은 한 살로 보고, 보름을 한 살로 보기도 했습니다. 아담은
930살 살았지 않습니까. 왜 타락했는데 930살을 살았습니까. 타락 안 한 아
브라함은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175살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시대가 차
이가 있으니까, 아담보다 2000년 후니까 역사를 계산할 줄 알았던 것입니
다. 노아 때도 아브라함보다 옛날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홍수로 심판한다고 말씀 하신 후 10년 만에 심판한 것
입니다. “방주 만들어라. 하나님이 심판한다.” 하니까 “무슨 심판이야? 다 필
요 없어. 물 좀 많이 달라고 해. 지금 가물어 죽겠어.” 그랬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똑같이 그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입니
다. 인생살이의 이야기들은 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지금 말 빠르다고 지적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이 왜 그렇게 말이 빨
라졌냐. 말씀이 어디로 지금 흘러 가냐. 천천히 하지.” 하셨습니다.
심판을 10년 만에 했습니다. 의인과 악인을 같이 심판했습니다. 노아만 빼
내고 한 것이 아니라 같이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해서 노아만 살았습니다. 창세기 6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금 노아에게 열심히 살아라 했습니다. 그런데 노아
아들이 또 말을 안 들었습니다. 노아를 아버지로 보고 아버지로만 대한 것입
니다.
노아는 그때 당시 구원주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육신을 쓰고 역사하기
때문에 노아를 통해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노아를 아버지 입장
으로만 대하니까, 홍수심판 때는 죽지 않고 살기는 살았는데 두 번째 역사를
시작하려니까 꿰장났습니다. 부모 마음대로 못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로 표현되었는데, 부모 말을 안 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부모 말을 안 들었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포도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만들어 먹고서 벌거벗고 드러누워 있는
데 함이라는 아들이 와서 보고 자기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저기 벌거벗고
있다.” 해서 두 형제가 얼른 뒷걸음을 치고 가서 덮어 주고 왔습니다.
노아가 깨어나서 “누가 이랬냐?” 했더니 “함이 그래서 이렇게 했습니다.”
해서 노아가 일어나자마자 “함을 저주한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노아가 잘못한 것 같지만 노아가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다 풀어야 됩니다.
아담으로 하려고 했던 일을 노아를 통해 했는데, 그것을 자녀들이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아담을 통해서 하려고 했던 일을 노아를 통해서 하는데 그것
을 절대 순종하고 따라갔어야 됩니다. 그것을 함이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절대 무엇을 하는 것을 봐야 그를 통해 역사를 합니다. 기
어코 한 번이라도 해야 됩니다. 시킨 것을 안 하면 헛일입니다. 역사가 가더
라도 기어코 그것을 해야 됩니다. 1600년 만에 그 일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
다. 그런데 못 했으니까 하나님이 노아의 입을 통해서 저주를 한 것입니다.
함에게 “너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노아가 술 먹고 술주정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닙니
다. 1600년 동안 기다렸다가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아담에게 못한 일을
그 나름대로 그 주관권에서 한번 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400년, 400년,
400년, 400년, 1600년 만에!!
아담 후 1600년 만에 노아에게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말씀하기
가 힘듭니다. 하나님은 안 나타납니다. 일개 왕도 아닌데 하나님이 나타나겠
습니까.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이 지구상의 일개 왕들은 어느 정도로 보는가 하면 통장 정도 밖에 안 됩
니다. 하나님 나라의 인원의 숫자를 볼지라도, 권한을 볼지라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 왕은 5년 10년 임기가 끝나면 끝나지 않습니까. 끝났는데도 계속
왕이겠습니까. 기한이 끝나면 하나의 백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을 줘서 그때만 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의 주권, 신앙의 주권이 제일 오래갑니다. 하늘나라까지 계속,
영원까지 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큽니까. 하늘나라의 주권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수종 들고, 하나님을 모시고 벼슬
하는 것이 그렇게 큽니다.
내가 옛날에 중고등부 반사를 안 한다고 했었습니다. ‘에이 무슨 중고등부
교사를 하냐.’ 하며 안 한다고 했습니다. 한자리 맡으라고 했는데 내가 싫다
고 했습니다. ‘월남까지 갔다 왔는데 내가 또 이런 것 하냐? 옛날에나 했지.
다 컸는데.’ 그랬습니다. 그때 내가 서서히 빗나갔던가 봅니다.
그날 밤에 꿈에 예수님이 깨달으라고 보여준 것이 있습니다. 꿈에 보니까
주일학교 반사들이 하늘나라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초라하게
돌아다니고 다 엄청난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벼슬에 떨어졌다고 했
습니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별을 달고 스타가 되고 장관이 되어 있었습니
다. ‘야, 중고등부 교사가 하늘나라에서는 장관 취급을 하는구나. 그러면 목
사는 어떻게 될까? 우와~’
그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안 하고, 교회 가서 자리가 있냐고 물
어보니까 금년도는 중고등부 반사가 다 차서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근
방에 교회 반사자리가 빈 곳을 돌아다녀 보니까, 4km 산 너머 교회에 주일
학교 반사 자리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주일학생 3, 4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거기에 가서 “나 여기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까 “거
기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다니냐.”고 했습니다. “하겠다. 그럴 마음이 있다.
월남도 갔다 오고 했으니 잘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못 하냐.” “거기는 반
사 자리가 없다.”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꿈에서 본 것은 이야기 안 해 줬습
니다.
거기에서 목숨을 걸어놓고 열심히 했습니다. 한참 3개월 동안 목숨을 걸어
놓고 했더니, 꿈에 보니까 내 어깨에 중령 계급장이 달려 있었습니다. 별 달
려면 아직도 멀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 후로는 꿈에 안 보였는데, 4킬로 떨어진 교회까지 날아다녔습니다. 거
기서 주일학생을 150명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있던 석막리 교회는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70명에서 80명이었습니다. 나는 그 산골짝에 가서 3명 가지고 150명을 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다시 넘어와서 석막교회를 지었습니다. 거기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장년부를 맡는다 어쩐다 했는데 “못 맡긴다.” 해서 투표를
해서 웃기는 사람에게 넘어가고 나는 안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지으라
고 보내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 후에 다른 사람이 나를 보더니 “에! 선생님, 이마에 별이 몇 개 있네
요.” 그랬습니다. 환상에 군인으로 보이는데, 별이 몇 개나 붙었다고 했습니
다. 몇 개냐고 했더니 “많이 붙었어요. 슬쩍 봤는데요. 군인같이 보여요.” 했
습니다. 나는 눈치 챘습니다. 그 때는 이미 오래됐을 때입니다. 그래서 복직
했습니다. 여러분들, 중고등부를 함부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고등부, 유초등부의 하나님의 직책들을 웃기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엄
청나게 크고 어마어마하게 큰 것입니다. 생명들을 다루는 사람들의 그 직책
이 엄청나게 큽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보낸 자의 직책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노아 때에 그런 일이 있었고, 노아까지는 했는데 노아 자녀들이 그러니까
하늘 역사가 또 그렇게 깨졌습니다.
그 후에 400년 있다가 하나님께서 섭리를 해야 되겠는데, 하나님이 놀면
뭐하겠습니까. 누구를 택해서 해야 되겠는데, 턱을 고이고 보시니 지구상에
믿는 사람 중에는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른 데를 쳐다봤습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을 보니까 거기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빼내 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상 섬기는 데 보니
까 너무 기가 막히게 잘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에게 절도 하고 섬기는
것을 보니 진짜 부러워 죽겠더라는 것입니다. ‘저것들이 다 나한테 와서 영
광 돌려야 하는데. 저 중에 하나 빼내어 와야 되겠다. 에이 한번 해 보자.’
하고 하나님이 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 장사하는 아브라함의 가문으로 갔
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우상을 만들고 아브라함은 우상을 팔고 그랬습
니다.
‘저놈이 말을 들을라나.’ 하시고 하나님이 밤에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
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누구십니까?”
“나는 하나님이다.”
“너는 너의 친척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하는 데로 가라. 내가 너에게 복을
주마.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서 가나안 땅에 가라. 내가 인도하겠다.”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대개 꿈에 줍니다.
결국 그리로 가도록 하나님께서 감동하니까 갔습니다. 거기에서 아브라함
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섬기듯이 그렇게 무섭게 섬긴 것입니다. 우
상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법이 엄청난지 압니까. 방바닥에 머리카락만 빠
져도, 그렇지 않으면 정성들이다가 무엇만 이상이 있어도, 쌀래기 하나만 이
상이 있어도 큰일 나는 줄 압니다. 그런 신앙을 하는 사람이 우상 섬기는 신
앙이고 미신 섬기는 사람들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그런 신앙이었
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하나님께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미신에게 우상에
게 하니까 보기 싫지 하나님께 하면 괜찮지 않습니까.
미신 섬기는 사람들을 보면 “못 하나만 잘못 박으면 나는 큰 신한테 저주
받아 죽는다. 안 박을 거야. 어느 날 이사 가야지.” 그럽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그런 것 묻지도 않고 아무 때나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원래 하나
님과 통하면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어느 날 이사 가면 좋겠
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하는 것입니다. 못 통하니까 못 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너무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첫 번째 잘 한 것은 하나
님의 말을 듣고 자기가 섬겼던 신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믿음의 조
건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가 섬기는 신을 버리는 것이
어렵습니다.
예수님 때 베드로가 그물을 집어던지고 나를 따르라 하니까 예수님을 따랐
습니다. 그와 같이 집어 던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확실
히 몰라서 못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따르라’고 말씀하
지 않습니까.
우상을 집어던지고 가야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 좇아가야 뭔가가 일
어나지 사람을 쫓아가서는 안 됩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아브라함이 가겠다고 하고 따라갔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을 섬기면
서 좋아하며 허허벌판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
로 올라가라 해서 가나안 땅으로 갔는데 옛날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
가 타락하여 못하고, 또 노아가 일하다가 아들 때문에 못하였던 것을 아브라
함을 그 땅에 배치하여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로 아브라함을
배치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려고 하시는데 왜
사람들이 못하냐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말씀이 나올 것입니다. 오늘의 핵심적인 말씀은 아직 안 나왔
습니다. 핵적인 말씀은 아직 싸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니까 아브라함이 너무 잘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물을 드
렸습니다. 아침에 제물, 저녁에 제물에도 제물을 드렸습니다. 양을 길렀는데
그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주려고 길렀습니다.
손님이 왔어도 무엇을 해 주면 맛있게 먹으면서 너무 좋아하는데, 양을 기
르면서 “이놈은 하나님께 드려야지. 이놈은 하나님께 드려야지. 저놈도 드려
야지.” 그러면서 너무 재미있게 제물 드리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두 번째, 제
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데에 성공한 것입니다.
첫째는 옛것을 버렸고, 두 번째는 제물 드리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순서가 가야 됩니다.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옛날에는 몸을 안 받았습니다. 구약 때는 “타
락되어서 더럽다.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다. 짐승을 드려라.” 했습니다. “오히
려 짐승이 없으면 배추를 드려라. 고구마를 갖다 드려라. 너희 누추한 몸을
안 받겠다.” 하고서 4천 년 동안 안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깨끗한 몸을 가지
고 나타나서 그 몸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지금은 몸이 제물입니다. 몸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선생님도 하나님께 몸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쓰고 싶으신 대로 쓰시라고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냥은 안 씁니다. 연단 받게 하고 멋있게 만들고 예쁘게 만들어서 쓰시는 것
입니다.
멋있게 진리로 만들고, 절대 사랑으로 만들고 해서 쓰십니다. 그래야 내놓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고 “여봐라. 얘 봐라. 이렇게 너희도 하도록 하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잘 한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없었습니다. 100세 때
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100세 때에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느냐구요? 그때도 역시 시간적인 것
을 따지는 법이 있습니다. 그때도 나이 치는 법이 차이가 있습니다. 100세
때는 자식을 낳기가 힘듭니다. 100세까지 살기도 힘듭니다.
그때도 나이가 아기를 낳을 만한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못 낳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야만 낳지 사람으로서는 못 나을 나이였습니
다. 그 나이쯤 되었습니다.
사라가 이미 나는 경수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내 아내가 경수가 끊어졌
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경수가 끊어진 나이쯤 된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다 나옵니다.
“네 아내가 분명히 아기를 낳으리라.”
“경수가 끊어졌습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는데 경수가 문제냐.”
그것을 믿어서 그 다음에 가서 결국 낳았습니다.
“믿습니다. 하나님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해서 이삭을 낳아 잘 길
렀습니다. 이삭을 기르면서 ‘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했구
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이 먹었을 때 얻은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은 것, 하나님이 함께 해서
얻은 것이 얼마나 큽니까. 그래서 이삭을 너무 너무 사랑하고 좋아했습니다.
이삭을 하나님이 줘서 얻었으니 너무 귀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귀하게 길
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리아 산에서 네 아들을 내게 바쳐라.” 했습니다. 아브라
함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아내도 바치라고 하
면 바칠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내도 바치고 아들도 바치고 자기도 바치고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역사를 꺾어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니 대답을 했습니다.
“네. 시간은요?”
“내일 아침에 일찍 떠나라. 아침 제물로 받겠다.”
제물을 바치려면 뻔합니다. 칼을 가지고 찌르고 찢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것을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네.”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상을 섬기는 식으로 잘 바쳤습니다. 일반 사람 같으면 “하나
님, 정말이에요? 다른 것 받으면 안돼요? 왜 하나님이 준 아들을 바쳐야 되
지요?” 그랬을 것입니다.
“이래서 아들을 줬구나. 뜻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고는 아들을 묶고
내리치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여봐라~ 알았다! 손을 금하라! 네가 나를 사랑한 것을
내가 확신했으니까 됐어! 내가 사람을 제물로 잡으라고 하겠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확실히 알았어. 네 아들을 죽을 때까지 데리고 살아. 내가 네
아들을 축복해 주리라. 네 것이다. 네가 데리고 평생 살아.” 했습니다.
이삭도 “아버지, 나 없어지면 그렇게 아세요. 여기 있다가는 언젠가는 죽겠
군요. 아버지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며 안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주셔서 너를 바치려고 했다.”
“감사하네요.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안 받으셨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봤대.”
“아, 나는 그날 아예 죽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하늘나라 가는 것으로 생각
했어요.”
아브라함이 이삭도 철통같이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제물 드린 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라 했습니다. 그 자녀들이 다 잘되었습니다. 이삭도 잘되고 야곱도 잘되고,
요셉도 잘 됐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그렇게 팔려갔는데도 총리대신이 되지 않았습니까. 억울
한 일을 당하고 감옥에 갔어도 잘 됐습니다. 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축
복을 해 주었습니다. “네 자손들을 잘 되게 해주겠다. 3, 4대까지 잘되게 한
다.” 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
렇게 잘 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너는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하라.” 했습
니다. 400년 전에 노아의 아들 함이 조건을 못 세웠습니다. “네가 그 조건을
세웠으니 아브라함이라 하라.” 하신 것입니다.
원래 노아 때 그 역사가 일어나서 노아 때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못했습
니다. 노아 때는 신광야급밖에 못 왔습니다. 아담, 하와는 애굽고역급의 종살
이에 들어 있었고, 가나안복지급 역사는 아브라함이 세 번째로 올라 찼습니
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이제 마지막 말씀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보따리를 끌러 주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역
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자손에서 모세도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요셉 밑에
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요셉이 죽고 400년 만에 나타났습니다. 큰 인물들
은 400년에 하나씩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그 자손들이 죽 뻗어 내려온 것
입니다.
회교는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가 아기를 못 낳았을 때, 몸종 하갈을 통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몸종을 통해서 낳은 자식이 회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마호메트가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이라는 자가 났
습니다. 그가 회교의 조상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내가 크다, 내가 크다 하고 계속 싸웠습니다. 그러나 그
때 당시에 이스마엘은 종의 몸에서 났기 때문에 꼼짝 못했습니다. 아브라함
은 쳐다보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
를, “이것을 분명히 하라. 이삭을 중심해서 역사가 간다.” 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 중에서 이삭을 중심해서 역사가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했는데 그 자손에서 계속 내
려와서 다윗도 나고 그랬습니다. 조건 세운 위에 역사해야 됩니다.
누가 이런 절대 조건을 세워야 그 믿고 따르는 자손이 잘되는 것입니다.
“너와 같이 이들을 축복해 주리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조건이 큽니다.
중심자가 조건을 세우면 전체가 다 살아나고, 조건을 못 세우면 전체가 죽
는 것입니다. 너무 엄청나지 않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근본체가 인간을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인간들은 세상의 사랑에 갈등하고서 “세상은 그렇다. 하나
님을 사랑해야겠다.” 하고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는 역사로 돌리게 되었습니
다. 그래서 둘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왜 깨어지는 줄 압니까. 둘이 계속 사랑하는데, “야, 우리
그렇게 영원히 살자. 역시 지상 천국을 이루며 살자.”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전지전능하시고, 인간들은 사랑에 굶주려서 그냥 막 빨려
들어가서 사랑이 안성맞춤으로 이루어졌는데, 대개 그 사랑이 깨어졌습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왜 깨졌을까? 그것이 오늘 주일 말씀의 핵입니다. 그 말씀을 받고서 “주일
날 이 말씀을 하겠다. 주일날 말씀이 너무 엄청나겠다.” 했습니다. 그 것을
내가 바로 뗐습니다.
‘왜 깨질까? 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데! 하나님이 사랑에 전지전
능하시지 못할까?’
아담 때도 깨지고, 노아 때도 아들 때문에 깨지고 계속 깨졌습니다. 사랑과
진리를 가지고 역사 하는 것인데 깨졌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때는 했습니
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했습니까. 절대 목숨을 다 바치면서 했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얻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하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
이 “못하겠습니다. 하나님.” 그랬으면 하나님이 그 사상 없애려고 죽였을 것
입니다. 예수님이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는다.”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 자손
이라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여기 말씀으로 하라. 여기가 본문이다.” 예수님이 그랬
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안 하면 하나님께서 그 꼴을 못
보고 기어코 없앱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없앱니다. 병들게 하여 없애든지 없
앱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멘.” 하며 하나님께 늘 바치고 해야 된다는 것
입니다.
아담과 하와 때 그것이 안됐습니다. 하나님은 늘 역사 하는데, 하나님만 한
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절대 해야 됩니다. 그게 인간의 절대적인 ‘책
임’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둘이 좋아서 “너 좋고 나 좋으니 같이 살자. 정말 좋다.” 하
였습니다. 둘이 좋아서 사귀는데 안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살아보니까 우
리 어때? 좋지? 살자.” 그러면서 약혼식 때까지 연애하면서 둘이 살아봅니
다. “좋다. 만족하다. 너도 만족, 나도 만족. 좋다.” 하며 서로 사랑을 퍼붓고
사랑했습니다. 딴 데에 사랑을 안 주고 계속 퍼붓고 사랑하는데도 이상하니
깨집니다. 왜 깨질까? 둘 중에 하나가 뭔가 잘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자
가 바람을 피웠던지, 남자가 바람을 피웠던지 뭔가 못 해서 안 된 것입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하나님은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상에 완전히 지상천
국을 만들려고 계속 쏟아서 하는데 안 되지 않습니까. 인간이 못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너희들 그렇게 살아봐라. 근심, 걱정, 염려를 배에 잔뜩 먹고 배만 나오
지. 잠만 많이 자봐라. 잠탱이만 되지. 옷만 잔뜩 입고 돌아다녀 봐라. 외식
만 되지. 한번 해 봐라. 좋은 장소만 돌아다니며 구경만 해 봐라. 연말 때 얻
어맞으려면 그렇게 해 봐라. 연말 심판이 있지 않느냐.”
인간이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것이 진행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
나님과 사랑이 됩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법이 바뀌었습니다. 옛날은 하나님이 계
속 이들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한도 끝도 없고 사랑이 지쳐버리는 것입니
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서 계속 사랑하는데, 여자는 안 사랑하면 사랑이 지
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아무리 사랑해도 여자가 사
랑치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짝사랑입니다.
그래서 후반기부터는 법이 바뀌었습니다. 선생님이 여기서 법을 바꾸면 세
상 법이 다 바뀌는 것입니다.
지금은 옛날과 다릅니다. 예수님 때만 해도, 신약 때만 해도 그 죽자 사랑
했는데, 지금은 법이 바뀌었습니다. 온 인류의 누구든지 어떻게 해야 성공하
는가 하면, 오직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하든 말든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계속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거들떠보지, 안 그러면 거들떠보지
않겠다고 선포를 했습니다.
구약 4천년 동안 그랬지, 신약 2천년 동안 그랬지, 6천년동안 그랬습니다.
이 시대 천년 때에, 신부 시대 때에는 너희들이 사랑해야 되지 않겠느냐 했
습니다. 그래서 성약역사는 <신부역사>를 선포했습니다. 신부역사를 선포하
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더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짝사랑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짝사랑은 안 이
루어집니다.
짝사랑의 역사는 해 봤자 좋은 꼴이 안 일어납니다. 짝사랑할 때도 그랬는
데, 여자가 와서 막상 하기 싫은 남자를 사랑해 보십시오. ‘에이 아무 것도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아니다.’ 하고 도망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평소에도 싫었는데, 하도 좋
아해서 사랑해 보니까 아무 것도 아니다.’ 하고 확인하고는 도망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지금 섭리도
똑같습니다. 옛날에는 전반기만 해도 목숨을 걸고 사랑했지만 지금은 안 그
럽니다.
“너희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라. 그 기간은 후반기 역사다.”
언제까지인가 하면 천년 동안이다 했습니다. 영계에 가서도 그렇습니다. 이
법 하나만 알면 됩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말씀이 오든지 옵니다. 말씀만 와도 이 사랑이 깨지면 안
됩니다.
말씀이 오는 것의 핵심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온갖 30개
론 전체가 “너희가 나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더 이상 못하겠다. 너
희가 나를 사랑하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해 주겠다.”는 말씀입
니다. 한번 그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계속 법이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법이 바뀌었다. 천법이 바뀌었
다.”
온 인류 전체의 법이 바뀌었습니다. 선생님 입을 통해 선포해서 법이 바뀌
어 버렸습니다. 해 보라는 것입니다. 옛날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절대 하나님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를 해서 시대
의 말씀이 선포되고 옳은 진리가 선포되지 않았습니까. 벌써 주일말씀을 매
듭지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 하나님을 목숨을 걸고 사랑하면 성공하겠구나.’ 이것을
배우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공합니다! 내가 그래서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해서
성공했습니다. 사랑에 성공했습니다. 이 지구상의 사람들이 사랑에 성공을
못했는데, 나는 사랑에 성공을 했습니다. 사랑에 성공했나 안 했나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사랑에 성공했습니다. 그 조건 터전 위에서 역
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에 어떤 큰 재난이 일어날 때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한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하시면 그전에는 내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여, 내가 당하겠습니다.” 그렇
게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너무너무 고통이 컸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하지 말아 달라고 해서 하나님이 안 하셨는데, 그로 인해 내가 받
는 고통이 너무 너무 컸습니다. 지금은 내가 그렇게 잘 안 합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이 몇 개 있습니다. 너무너무 큰 것을 내가 뭣도 모르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말렸습니다. 시대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역사를 말렸습
니다.
“하나님, 내가 사는 민족에 전쟁 안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전
쟁이 100% 일어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형벌을 받고 탕감을 전부 다 받겠습니다. 내가 전쟁에 참전해서 너
무 너무 머리 아프고 너무너무 잔인한 꼴을 봤습니다.”
6.25도 있었고 월남전쟁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받게 되었는데,
그게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갈 때 이렇게 엄청난 문제가
있었고, 어마어마한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겠다고 하면 “아멘.” 그럽니다. 안 그러면 내
가 받으니까 그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받는 대신 물론 좋은 것도 있습니다.
애인끼리도 그렇습니다. “저것 안 되겠다.” 할 때 옆에서 막 참으라고 합니
다.
“참어? 니가 책임질 거야?”
“책임질게.”
“그러면 니가 해. 니가 책임지고 해.”
그랬으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됩니다. 책임지고 참아 줘야 합니다. 일단 책
임을 져야 됩니다. 그 책임을 져보고 너무 엄청난 고통이 있으니까 나중에는
안 말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메시아 되었습니까. 사랑 때문에 메시아 된 것입니
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니까 “너는 종이 아니고 내 아들이
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메시아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다. 너희는 이 말을
들으라. 다 이의 말을 들으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의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왜 예수교가 사랑의 종교일까 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했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로 인정받았습니다.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그때 당시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4천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아들이
라고 인정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만 딱 하나 인정받았습니
다.
“너는 내 아들이다. 누구든지 너희는 이의 말을 들으라. 내 아들이다.” 했
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아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아
들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이 시대에 해당하는 사랑을 하면, “너는 내
신부다. 내 애인이다. 내 것이다. 내 사랑하는 내 신부다.” 그러는 때입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다.” 하니까 “참람하다. 감히 어떻게 하
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가 있느냐.” 그랬습니다. 종들은 그렇게 못합니다.
그 조건을 세우니까 아버지라고 한 것입니다. 너무 사랑하니까 자꾸 불러지
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남자를 너무 사랑하니까 오빠라고 하다가 나중에 가서 “여
보!” 라고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너무 사랑하니까 그렇게 하게 되는 것입니
다.
예수님이 자기의 생활이 그러니까 ‘아버지’라는 소리가 나오게 것입니다.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생활 하니까 나와지는 것입니다. 둘이 같이 사니
까 ‘여보’ 소리가 자꾸 나와지는 것입니다. 같이 안 살아보십시오. ‘여보’ 소
리가 안 나옵니다. 여러분의 아빠 엄마가 “여보, 여보! 당신. 여보, 여보. 사
랑해.” 하지 않습니까.
‘여보’ 소리가 어디서 나온 줄 압니까. 평소에 안 나옵니다. 둘이 극적으로
사랑할 때 극적인 세계에 들어갔을 때 ‘여보’ 소리가 나온답니다. 결혼한 사
람에게 언제 나오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때 나온다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로 계속 살아가야 하나님에게 아버지 소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극적으로 사랑하면 ‘신랑 되신 하나님!’
이라 하게 됩니다. 그러한 생활을 해야만 그런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안 하면 못 받는 것입니다. 남을 구제하고 사랑해야만 거기에 해당되
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거기에 해당하는 잠
언이 떠오르겠지요.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메시아가 된 것입니
다. 그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도록 하라고 예수님이 가르치니까 사람들도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모든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권이 된 것입니다.
그게 신약 2천년 역사입니다.
“나와 같이 하늘을 섬기고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되 신부로서 살아라.” 하
니 여러분이 현재 전부 신부 입장에서 하늘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대의 복을 받고, 시대의 말씀을 듣고 역사가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이렇게 역사하는 데가 없습니다. 딱 한 군데 여기서 역사가 가는 것입
니다. 이게 성약의 역사입니다. 역사 같지 않지요?
구시대 사람들은 역사가 일어날 때 크게 일어난다, 나팔 불며 어마어마하
게 일어난다 했습니다. 아까 보았듯이 아브라함 하나 가지고 역사를 일으키
지 않았습니까. 아담 하나 가지고 역사했고, 노아 하나 가지고 역사를 했습
니다.
새로운 역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역사가 일어날 줄 압니다.
예수님 시대 때도 엄청나게 역사가 일어날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소근 소근
이야기하며 마치 어린아이들이 뭐 하듯 하면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게 역사였습니다.
큰 나무에서 역사가 일어난다 했다면 그게 뭐겠습니까. 새순이 났다는 것
입니다. 아주 작은 새순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것을 손으로 톡 떼면 떼어집
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숨깁니다. 집에서 화분에 새순이 날 때 뭘 해 놓습
니다. 혹시 어린아이가 잡아당길까봐 순이 클 때까지 그렇게 둡니다.
새 역사, 새순이라 했습니다. 새로운 순이 그렇게 나오는데 누가 그것을 쳐
다보고 역사를 기대하겠습니까. 엄청나게 크게 일어날 줄 알고 있기에 기대
를 안 합니다.
전부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아주 신진들이 아기처럼 하면서 그 역사를 펴
고 있습니다. 역사가 어떻게 크는가 하면 그 어린아이가 커가면서 역사가 크
는 것입니다.
내가 역사를 할 때 혼자 하지 않았습니까. 그 어린 사람들이 커가면서 30
대 40대가 되고 20년씩 크니까 역사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도 한 20
년은 커야 1차 빛을 봅니다. 또 20년을 커야 후반기 빛을 봅니다. 우리가 1
차 빛을 보았습니다.
역사도 그 역사를 하는 사람의 나이와 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
인이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이 크면서 역사도 크고, 어린아이가 스무 살 먹으
면 빛을 보듯이 빛을 봅니다. 20대에 청춘의 빛을 보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람이 한 40대가 되어야 여봐라 하고 빛을 봅니다. 역사도 한 40년이 가야
큰 빛을 봅니다. 큰 빛을 보려고 세계로 자꾸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구시대 사람들의 그 억센 손으로 새순을 못 다룹니다. 화분에서 새로운 꽃
몽우리가 아주 조그맣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다 큰 꽃은 억센 손으로 다
루어도 괜찮습니다. 새로 나오고 있는 것은 억센 손으로 다루면 톡 부러집니
다.
억센 손으로 새로 나오는 꽃 몽우리를 만지면 안 되듯이 구시대 사람들이
새로운 어린아이의 역사를 손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끼리 크게 놔둬
야 됩니다.
10대를 40대가 손대면서 “에이, 이렇게 하면 안 돼!” 하면 부러지고 깨진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대는 10대의 지도자를 세워서 10대들이 끌고 나가
게 하라 했습니다. 위에서는 코치만 하라는 것입니다.
20대는 20대가 끌고 나가고 40대가 주물주물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안 들어. 시대 차이가 있어.” 그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언제 도표로 세밀하게 말씀을 할 것입니다. 영계에서 일어난 역사,
육계에서 일어난 역사를 말씀할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는 구시대 사람들이 참석하기 어렵습니다. 구약사람들이 신약
역사에 참석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참석해봤자 나이를 먹어서 빛을 못 봅니
다. 다만 어린것을 기르는 것밖에 못 합니다.
구약의 사람들이 볼 때 어린 예수님이 와서 역사를 했던 것입니다. 제사장
들은 엄청나지 않았습니까.
성약의 역사도 보면 신약역사의 거친 손이 대면 그냥 끝납니다. 성약역사
는 가냘픈 어린아이가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다가 한 20년 커야 역사가 강
하게 돼서 안 부러집니다. 20년이 가면 다시금 또 어린아이들이 또 와서 역
사를 밀고 가는 것입니다. 그들을 우리가 막 손대면 안 되고 우리는 코치를
해야 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커 올라와야 됩니다. 그들은 어린순들입
니다.
나이 많은 40대 50대들이 열다섯 살 먹은 사람들을 손대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억세서 안 됩니다. 자기 스타일로 하니까 안 됩니다. 그들은 그들 나
2005년 3월 6일 주일말씀
름대로 길러야 됩니다.
새로운 역사는 점진적으로 잘 길러가야 됩니다. 역사를 기르는 것을 역사
의 주인은 알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사랑의 표적을 일으키자.” 입니다. 이번 주에 하나님을 사랑
함으로 표적을 일으켜 봐요. 사랑함으로 무슨 표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
의 표적의 일으키면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랑의 표적을
일으키자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배운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가게
해 주시옵소서.
나머지 말씀은 내일 아침부터 내 입을 통해서 죽 할 것인데, 모두 와서 듣
고 사랑의 큰 은혜를 받게 해 주시옵소서. 반드시 사랑에 실패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이 못 해서 사랑에 실패하지 하나님이 못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했
습니다. 인간이 몰라서 하다 말고 실망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다 말고, 사랑
의 십자가를 지고 갈다 말고 그러니까 안됐다 했습니다. 이 말씀을 후에 할
것인데, 모두 듣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사랑의 표적을 일으키게 해 주시옵
소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사랑의 표적을 일으키게 사랑의 불을 보낼 것을 믿습
니다. 그렇게 되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주 예
수의 사랑하심과 내가 사랑함이 이들에게 영원토록 충만할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