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4.04.11 (금)
동일본순회 진리사랑성령운동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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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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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1 동일본순회 진리사랑성령운동 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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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4월 11일 동일본순회 진리사랑성령운동 말씀 >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또 그와 같이 오신 선생님을 생각하며 다시 기쁜 마음
으로 할렐루야! 안녕하세요. 2014년 정말 좋은 때, 섭리 역사적으로도 좋은 때이지만, 또 우리 일본은
3월말이 되면 일본 국화인 벚꽃이 피는 그런 시기입니다. 어제부터 이 동경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 활짝 핀 벚꽃처럼 여러분의 얼굴이 활짝 피어 있네요. 다시 한번 일본 땅에 성령의 불을
부어주러 오신 성삼위와 선생님께 감사하며 뜨겁게 할렐루야 인사하며 영광돌리도록 하겠습니다. 할렐
루야!
지난 주 서일본 지역순회에 이어서 오늘은 드디어 동일본 지역순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네. 역시 선생
님께서 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성자를 모시고 함께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오신 것을 어떻게 아냐? 바
로 말씀을 주어서 그 말씀 자체가 선생님이 되고 성자가 되어서 우리 가운데 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주었다는 것은 정말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정말 그 속에 있는 모든 말,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준다, 그리고 하늘의 어마어마한 비밀들, 그 속에 감추어진 비밀들을 다 주어서 얻게 한다. 사랑하
기 때문에 말씀을 주고, 또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시대 신부의 말씀을 주시고, 또 구원자를
보내 주셔서 이렇게 성약역사 신부역사가 일본에서 진행되게 해주셨습니다.
또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 이곳에 오셔서 뜨거운 성령의 불로 함께 해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우리 섭리
사의 모든 말씀들은 선생님께서 성자에게 받은 말씀, 또 성자는 선생님에게 주신 말씀, 그 말씀을 통해
서 뜻이 이루어지고 역사가 진행되어지고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서 성령을 받게 됩니다. 오늘 다른 누
가 일본에 오고 싶다고 해서 온 것이 아니라 바로 성자가 오고 싶어서 선생님이 오고 싶어서 그리고 늘
선생님 많이 하시는 말씀, ‘아이따까따’ 너무 보고 싶어서 혼으로만 만나다가 오늘은 직접 사람을 보
내어서 여러분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뜨겁게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비법중에 하나가 바로 나를 사랑하시는 성자와 선생님께서 나 때문에
이 곳에 오셨고, 나 때문에 말씀을 주시고, 나 때문에 성령을 준다고 인지하는 사람들, 오늘은 사람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삼위께서 보낸 자와 함께 역사하는 시간, 나 때문에 성령운동하러 성령운
동은 영적운동이다 하셨습니다. 영적운동을 시켜주러 오늘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자, 2014년 성자 사랑의 해, 여러분들은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이 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습
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중요한 때에 일본 동일본과 서일본을 나누어서 일본 전체에 불을 주시러 오
셨을까? 바로 그 이유는 지난 번에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휴거에 감각을 살려주러고, 지금 이 때가 어
느 때인지는 머릿 속으로는 알고 있는데 감각이 많이 죽었으니까 감각을 살려주고 또 불을 확 지펴주고
그리고 휴거에 시동을 걸어주어서 이제 부지런히 앞을 향해 도전할 수 있도록 성자와 선생님께서 함께
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주시는 지구 세상에 최고의 축복이 휴거라는 것을 인식하고 휴거
를 이루라고 말씀도 주고 성령도 주고 사랑을 주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충만한 성령, 충만한 말
씀, 충만한 사랑을 다 여러분의 것으로 삼기 바라겠습니다. 이번 순회 때, 지난 번에 편지를 주셨는데
요.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게 있어요. 강조하는 것, 무엇이냐? 바로 너희 모두가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
아서 휴거 300선에 도전하라!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됐어요.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말라.
자기를 만들 시간이 부족해서 휴거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도 포기하지 말고, 휴거를 포기한 사람도 또
낙심하고 있는 사람도, 포기하지 말고, 혹은 100선은 됐는데 더 높이 차원을 오르겠다고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도 포기하지 말고, 또 현재 잘 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휴거 300선에 다 도전하게 해주려고 오
늘 선생님이 성자와 함께 오셨습니다. 왜 오셨는지 확실하게 알겠죠? 그렇죠? 말씀을 여기 있는 저를
통해서 전하지만 저는 확실하게 믿습니다. 성자도 오시고 선생님도 오셨기 때문에 오늘 모든 집회가 가
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도전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래. 도전해 보겠다.” 지난 번에 서일본지역에서는 다
얘기했어요. “휴거! 휴거! 절대 포기하지 않겠어! 도전하겠어!” 했는데, 이제 이 불이 꺼지지 않고
모두 휴거 300선 도전에 성공하게 해주시려고 오늘 순회를 이어서 이곳 동경에서 동일본 순회를 시작하
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도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성공으로 이룰 방법을 찾아야 되겠습니
다. 자, 이제 시동이 걸렸으니까 이 시동을 조금 더 조금 더 시동이 꺼지지 않게 오늘 어떤 말씀이 전
해질지 매우 기대가 됩니다.
또 성령의 역사가 기대됩니다. 생명은요. 혼자서 못 낳죠. 아기는 혼자서 못 낳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하나되어야 낳을 수 있습니다. 똑같이 우리 혼자서는 영적 생명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혼자서는 안됩
니다. 자기 혼자서 인간 스스로는 영의 생명을 낳을 수가 없고, 바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구원자
가 함께 해줘야 우리는 영의 생명을 낳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혼자서는 못 하니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구원자도 말씀주고 성령주고 힘주고 능력을 주면서 여러 가지로 도와주면서 함께 해주
십니다.
이번에 선생님의 메시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만 하면 된다.” 너만. 너만. 나만. 나만
하면 된다는 소리예요. “너만 하면 된다.” 이 말은 다른 것은 다 준비되어 있다. 이미 다른 것은 다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너만 하면 된다. 이 말을 잊지 말고 철학으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너만
하면 된다.” 이 말은 말씀도 준다, 성령도 준다, 힘도 준다, 당연하다, 성령도 준다, 능력도 준다, 당
연히 함께 해준다, 주가 돕는다, 주가 기도해준다, 늘 떨어지지 않고 함께 해준다, 꿈으로도 영으로도
직접 함께 해주고, 육으로 직접 못 오면 사람을 보내서 말씀을 보내서 늘, 왜? 구원자는 우리를 구원시
키러 오셨고, 휴거 시키러 왔기 때문에 평생 그 일을 합니다.
너희에게 다 해준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말씀을 들어라. 말씀을 행해라. 그리고 기도해라. 그리고 성
령받아라! 힘받아라! 힘주려고 오신 겁니다. 힘주려고. 그래서 이번 서일본 순회를 통해서 어떤 것을
더 확실히 느꼈냐면 ‘역시 우리가 힘받으려고 순회를 시작했구나. 성자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려고, 선
생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려고 일본 순회를 허락하셨구나.’ 깨달았습니다. 이 순회가 굉장히 중요합
니다. 순회가. 지금 주님이 이곳 가운데 이곳만 쳐다보며 역사를 하실 때 이 순회, 이 때는 너무 중요
합니다.
그 동안 선생님이 잘 안 느껴졌으면 이 때 느끼면 됩니다. 이 때, 그 동안 성자가 잘 안 느껴졌으면
지금 이 때 느끼면 됩니다. 그 동안 느끼지 못 했던 것들을 느끼는 시간이 바로 이 순회, 성령집회 시
간 , 말씀을 듣는 시간, 하나님께서 집중적으로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는 시간입니다. 이 때 힘을 와
장창 받아야 해요. 여러분, 지금 벚꽃이 피고 있잖아요. 아마 날씨만 좋으면 내일 활짝 필 거예요. 이
렇게 벚꽃도 태양이 힘주는 거예요. “너 활짝 펴라! 힘받아라! 빨리 햇빛 힘을 받고 벚꽃아! 빛을 발
하라!” 하나의 만물도 때가 되면 이렇게 빛을 발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된 거예요. 때가.
그래서 지금 이 때 활짝 펴라! 이 때 힘 받아라! 이 때는 최선을 다해서 다른 것에 집중하지 말고 최
선을 다해서 은혜받고 성령받는 시간입니다. 이 때 느낄 것을 다 느껴야 되요. 그 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듣는 거예요. “오늘 정말 깨닫기를 원합니다.” 매일 힘을 받는 것
이 아닙니다. 힘을 받고 그 다음에는 뛰는 거예요. 힘을 받고 그 다음에는 도전하는 것입니다.
자, 비유를 한 번 들어볼께요. 한국에 태권도가 있죠. 태권도를 할 때는요. 시작을 할 때 기합을 넣습
니다. 기합을 넣고 준비를 하고 “얍!”하고 합판을 깨러 가서 깨죠. 힘을 주고 힘받으려고 기합을 넣
잖아요. 그래서 모든 기를 모으는 거예요. 그런데 깨지 않고 계속 기합만 넣는 거죠. 이 시간에. 기합
넣는 소리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할 일을 못한단 말이예요. 우리가 힘받을 때는 뭐라고 하죠? “주
여!” 우리의 기합은 뭐죠? “주여!” 우리의 기합이예요. 주여! 이게 기합이잖아요. 그런데 매일 힘받
으려고 “주여!”만 하다가는 목이 아파요. 계속 힘받으려다가 힘이 빠져 버려요. 힘받으려고 기합을
넣은 건데 계속 소리만 지르니까 힘이 오리려 빠진 거죠. 우리가 이렇게 힘을 받을 때가 따로 있고, 힘
을 딱 받았으면 뛰어야 합니다.
또 비유를 들어 볼께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매일 붙어 다닐 수 없어요. 24시간 사랑하는 사
람과 계속 속을 딱 붙잡고 다녀요. 계속. “너와 나는 일체야. 매일 한 순간도 떨어질 수 없어.” 그러
면 손에 땀띠나요. 냄새도 나고. 그렇죠? 너무 너무 사랑하는데 “너와 나는 매일 쳐다봐야 해. 한 시
도 딴 데 돌리지마. 눈만 쳐다봐. 계속.”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매일 손을 붙잡고 있을 수 없고 매
일 쳐다볼 수도 없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되냐? 힘받았을 때 힘을 받고 도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랑하는 자와 같이 있었을 때 그 때 사랑을 한 순간 느꼈을 때 그 힘을 가지고 그 느낌을 가지고 하루
종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지 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생활을 하는 게 일체예요. 일체라고
해서 계속 쳐다보는 거죠. 이렇게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때가 있다. 느낄 때가 있고, 그 힘을
가지고 뛸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머릿속에서 힘받았을 때 주님의 사랑을 느꼈을 때 말씀으로
불받았을 때가 있어요. “우와! 다 할 수 있을 거 같애. 힘이 엄청나게 생겨.” 그것을 그 느낌을 가지
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뇌에서 잊지 않고 늘 생각을 하는 것은 마치 눈으로 매일 보는 것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매일 봐야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사람은 생활을 해야 되기 때문에 활동을 해야
되기 때문에 눈으로 계속 쳐다보면 할 일을 못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어때요? 더 차원높은 생각의
뇌를 생각의 눈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뇌에서 늘 잊지 않고 일을 하고 생활을 하는 거예요. 오늘 성
령집회 말씀이 시작됐어요. 어떻게 하면 휴거 300의 도전을 잊지 않고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을까? 휴
거를 이루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두가지를 하고 있어요. 첫 번째 말씀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휴거의 불, 휴거 300선의 도전, 휴거의 감각이 꺼지지 않고 이 목적한 바를 이루려면 바로 생활적 사
랑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생활적 사랑, 오늘 이게 첫 번째 말씀이예요. 생활적 사랑, 성자는 말씀하시
기를 “생활적 사랑이란 특별할 때의 사랑이 아니다.” 했습니다. 특별할 때의 사랑이 아니다. 그러면
생활적 사랑이 뭐예요? 만사의 모든 일을 할 때 사랑의 대상인 성자와 주와 하는 것이다. 언제나 어디
서나 성자와 주를 생각하며 그 말씀을 생각하며 늘 그 때를 떠올리며 그 감각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보세요. 매일 사랑해도 매일 손을 잡고 매일 얼굴을 보고 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매일, 그러면은
사랑, 매일 얼굴을 쳐다봐야 사랑이지. 매일 얼굴만 쳐다보고 매일 붙어있어야 되요. 몸이. 적어도 팔
뚝이 매일 붙어있어야 되요. 몸이 이렇게 붙어 있다고 해서 일체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이 계속
단 1초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 쳐다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잠도 못 자요. “잠자지
마! 너와 나는 일체야! 너와 나는 계속 쳐다보고 있어야 해!” “떨어지지 마! 계속 붙어있어. 감각떨
어질까 두려워. 붙어있어야 돼!” 어떻게 되요? “화장실까지 따라갈거야. 화장실까지.”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화장실까지 따라가고 싶은 심정으로 하는 것이다.” 아시겠어요? 네? 진짜 몸
이 화장실까지 따라가면 좀 그렇지 않느냐? 그 어디라도 따라가고 싶고 잠도 안 자고 싶을 정도로 쳐다
보고 싶은 그 마음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꼭 붙어서 몸이 떨어지고 싶지 않은 그 심정으로 일체되어 사
는 것이 사랑이다. 믿습니까? 화장실까지 따라가고 싶은 그 마음으로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아시겠습
니까?
일체는 무엇이냐? 말 그대로 붙어 있는 거예요. 붙어 있는 거. 떨어지지 않는 거, 몸이 붙어 있는 것
은 일체라 할 수 없다. 왜? 사람은 몸이 붙어 있다고 해서 한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뜻이 같아야
합니다. 하나의 뜻을 이루려면 몸이 붙어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뜻이 같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뜻
이라는 것은 뭐예요? 생각,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생각이예요. 하나님의 생각은 뭐
예요? 성경이잖아요. 성경, 바로 이 시대의 말씀, 성경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에게 매일 전해지는 말씀
이게 바로 성약성경이예요.
바로 이 말씀이 하나님의 생각, 성자의 생각, 주의 생각, 다른 말로 하면 주의 뜻, 하나님의 뜻입니
다. 그래서 우리가 몸이 붙어 있다고 해서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뜻이 같아야 생각이 같아야 마음이
일체되어 있어야 뜻이 일체되어 있어야 뜻을 이룬다. 역사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마음과 생각과 심정이 딱 일체되어 있어야만 육과 혼과 영이 일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로 일체
란 무엇이냐? 주 뜻대로 하는 것, 오직 주의 생각대로 하는 것, 오직 주의 말씀대로 하는 것, 그런데
아직 답이 안 나왔어요. 일체, 주 뜻대로 하는 것, 주의 생각대로 하는 것, 뜻을 맞추는 것이 일체입니
다. 진짜 어떻게? 매일 잠도 안 자고 싶을 정도로 쳐다보고 싶어. 그 마음이 일체되는 거예요.
“그러나 매일 어떻게 매일 눈을 뜨고 자냐? 잠잘 때는 자야지. 일을 할 때는 일해야지.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지 쳐다보고 싶은 그 심정으로 하는 것, 그것이 일체다. 이것이 다른 말로 하면 생활적인 사
랑을 하는 것이다. 늘 생활 가운데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말씀해 주셨습
니다. 늘 말씀하셨죠. 성경에도 나와 있어요. “니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켜라. 니가 나를 사
랑하면 내 말을 지켜라. 나를 사랑한다면 내 말대로 내 뜻대로 해주자. 우리 뜻을 맞추자. 생각을 맞추
자. 마음 확 일체되자. 심정이 일체되자. 나는 너희를 잃고 싶지 않거든.” 하십니다.
한 순간도 한 시도 잊어버리고 싶지 않거든. 그렇다고 매일 쳐다볼 수 없으니까 쳐다보고 싶은 마음으
로 늘 잊지 말고 생활을 하자. 주님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주 뜻대로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순종입
니다. 순종, 주의 뜻대로 하는 것, 사랑하니까. 주의 뜻대로 하는 것, 여러분도 우리 일본 사람들이 주
님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느끼지? 바로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을 보고 느낄 수가 있고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요? “말씀이니까 지켜야지.” 이거랑 말씀은 사랑이야. “주님과 한 뜻을 이루고 싶어.
한 뜻을 이룰 거야. 진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지.” 이러면 사랑입니다. 주 뜻대로 해야지. 맞습니
까?
그래서 순종이라는 것은 복종이라는 것과 달라요. 복종은 절대 복종,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런데
순종은 사랑해서 하는 것, 사랑해서. 뜻이 같아서, 뜻이 같애요. 뜻이.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일본의
큰 특징이 하나 있어요. 선생님께서도 인정하시는 특징, 전 세계도 인정하는 특징, 선생님께서 인정하
시는 일본의 최고의 특징 하나는? 알고 있네요. 순종. 순종을 너무 잘 해요. 그런데 이 말을 듣다가 이
러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순종을 그렇게 잘 할까?’ 비교적 잘 합니다. 비교적. 네.
알겠어요? 민족적인 특성상 사무라이 정신, 다른 민족에 비해서 비교적 충성하는 민족, 지도자에게 충
성, 순종하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어느 민족보다 이 민족은 지도자가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민족성
이 다른 곳에 비해서 비교적 순종하는 나라, 충성하는 나라, 장점이라서 그래요. 그러니까 휴거되기에
굉장히 유리하겠죠? 휴거되기에 아주 굉장히 유리해요. 맞죠? 실력이 뭐냐면 선생님의 철학이 딱 있습
니다. “나의 뜻대로 주 뜻대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이것이 나의 실력이다.” 하늘의 뜻대로 하는 것
이 실력이예요.
선생님께서 며칠 전에 이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주 뜻대로 하는 것이 주가 시킨대로 하
는 것이 못 했어도 잘 한 것이다. 못 했어도. 잘 했어도 주 뜻대로 하지 못한 것은 잘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이게 철학이예요. 일평생 하나님의 뜻대로, 이게 철학이예요. 이 철
학 하나를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세워 왔습니다. 주 뜻대로, 주를 사랑함으로 주 뜻대로, 주의 말씀
대로, 주가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이게 실력이 되요. 알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민족성으로 가잖아요. 일본 사람들이니까 비교적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 민족, 비교적 성령
님의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 민족, 이거는 작년에 이야기해주셨죠. 그리고 올해는 비교적 순종을 잘
하는 민족, 그렇다면 그 어느 사람들보다 휴거되기에 유리하다. 그 어느 사람들보다 영적 실력이 뛰어
나다 함입니다. 영적실력이라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아까 우리 신입생도 간증에서 얘기하잖아요. 세명 다 동일하게 얘기했어요. “선생님 말씀대로 하니까
이렇게 됐습니다.” 간증이 다 그래요. 어때요? 나는 실력이 없는데 말씀대로 하니까 영적실력을 가지
게 돼서 기도함으로 불도 받게 되고, 전도도 하게 되고, 또 아토피도 낫고, 뇌의 병도 나았습니다. 순
종하니까. 믿습니까? 일본의 장점, 순종하는 거. 그렇다면 단점은 무엇이냐? 잘 잊어버린다. 머릿속에
서 잊어버린다기 보다 이 감각을 잘 잊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잘 하는 게 뭔지 아세요? 선생님 편지로
노래짓기, 세계에서 최고로 잘 해요. 우리 섭리역사 전체에서 전세계에서 최고로 잘 하는, 선생님의 편
지를 가장 가치있게 사용하는 민족, 정말 깜짝 놀랬어요. 올 때마다 놀라요. ‘이번에는 또 무슨 노래
를 지었을까?’
가사가 따로 필요없어요. 선생님 편지만 있으면 되요. 그만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는 말씀이니까, 우리에게 준 계시이니까, 이 말씀을 잊지 말고 말씀속에 실천해야지 하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구호처럼 계속 부르면서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뇌에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일본의 장점, 어느 민족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일본 민족
은 정말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세워질 수 없는 섭리역사입니다. 일본에는. 맞아요?
여러분, 다 인정하잖아요. 예수님을 먼저 느끼기 보다 이 보이는 것을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보이는
선생님이 이 역사에 오셔서 직접 하나 하나 초창기 때부터 역사를 일구어 주시고, 일본이라는 땅에 정
말 많은 발길을 해주시고 올 수 있을 만큼 오셨으니까요. 허락하신다면 환란 중에도 오셨으니까요. 몸
이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있을 때나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일본은 항상 거쳐 가셨습니다. 여러분들을
계속 잡아준 거예요. 그러니까 장점이 무엇이냐? 보이는 육신, 성자의 육을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어떤 소리까지 하냐면 “예수님을 통해 전도하는 것보다 선생님을 통해 전도하는
것이 더 빠릅니다.” 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 보이는 육신을 여러분들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보이니까. 전능하신 성자를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 가미사마는 많지 않나? 이것도 가미사마, 오사카에
가도 가미사마가 많고, 홋카이도에 가도 많고, 절에 가면 가미사마, 유일신에 대해서 몰랐어요. 유일신
에 대해서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성자가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선생님을 통해 삼위일체의 존재를 알게 되요. 그런데 감각이 없단 말이
예요. 그런데 말씀의 핵심이 뭔 줄 아십니까? 보이는 자를 통해 보이지 않는 자를 찾는 것이다. 왜? 하
나님의 종교역사 6천년 역사는 하나님이 직접 하지 않으시고 다 사람을 보내서 하셨습니다. 그런데 역
사가 왜 깨졌느냐 하면 그 보낸 자를 믿지 않아서 깨졌습니다. 보낸 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그를 보
내신 하나님도 성자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이 성자가 잘 안 느껴지면 선생님을 통해 느끼면 됩니다. 그러면 이제 뭐가 남았어
요? 선생님을 잊으면 안 되겠죠? 그 육신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역사, 지금 진행되는
역사, 감각은 뭐라고 했죠?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각이다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육신이 죽지
않은 것 자체가 살아있는 감각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자, 성자는 영이시고, 신이라서 확인이 잘 안
된다. 그런데 성자 분체는 육이라서 보이기도 하고, 대화도 할 수 있다. 편지로도 대화하고, 말씀으로
도 대화한다. 여러분, 실질적으로도 편지가 오고 가요. 나 개인으로 오지 않아두요. 지금도 편지가 오
고 가요. 말씀으로.
어때요? 죽기 전에 쓴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으면서 쓴 말씀, 그것도 10년 전, 5년 전에 쓴 말씀이 아
니라 지금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생생한 말씀을 편지써서 붙이듯이 전화해서 전화를 바로 하듯이 이메
일을 바로 보내듯이 그렇게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게 감각이예요. 살아있는 감각입니다. 성자는
늘 말씀핫비니다. 분체를 통해 본체를 대하여라. 분체를 통해 본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고로, 분체를
느끼고 그를 제대로 알고 그와 일체되는 것이 성자와 일체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믿습니까?
일본도 또 유리하다. 전능하신 신은 모르겠지만 말씀을 들으면 선생님은 알겠다. 유리하다는 것입니
다. 똑같애요. 우리는 영적인 민족이 아닌 거 같애. 그래서 영이 있다는 것을 잘 못느끼겠어. 잘 됐다.
그러면 니 육신은 보이지 않냐? 육신은 보여서 알고, 자기 마음은 자꾸 생각하니까 안다. 자기 육과 마
음을 통해서 자기 영을 아는 것이다 했습니다. 아시겠어요?
선생님이 항상 어떻게 가르치시냐면요. 내가 엄청 깨끗해. 정말 깔끔쟁이야. 깔끔쟁이. 너무 너무 깔
끔해.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너무 너무 깔끔한 거 아니야? 그렇게 깔끔해서 뭐 할
건데?” 선생님은 어떻게 가르치시냐면 “그와 같이 회개도 깔끔하게 하면 좋겠지? 그와 같이 머릿 속
에 있는 생각도 깨끗하게 하면 좋겠지? 그와 같이 그러하다. 그와 같이 그러하다.” 비유를 굉장히 많
이 들어주세요. 육과 같이 영도 그러하다. 믿습니까? 맞아요?
비유를 많이 들잖아요. 과일나무는 육신이다. 과일나무를 길러야 열매가 열린다. 이와 같이 육신이 잘
행해야 영의 열매가 열린다. 이와 같이 이러하다. 이와 같이 이러하다. 선생님의 최고의 설교법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과일나무를 가꿈과 같이 과일나무를 가꾸어라. 말이 안 되요. 과일나
무를 가꿈과 같이 너의 육신을 가꾸어라. 이것이 바로 이러하다. 이와 같이 분체를 대함과 같이 성자를
대하여라. 성자가 안 느껴지면 선생님을 느껴라. 그 육신을 느껴라. 그를 통해 성자께 나아가는 것이
다. 알겠습니까?
여기서 일본이 폭팔적인 역사를 일으키려면 삼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나를 위로해주는 선생
님, 우리가 전도를 잘 하면 돼지도 잡아주시는 선생님,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말씀도 주시고 늘 함께
해주셔. 지금은 내가 육신으로 못 봤지만 옛날에 그렇게 해주신 것을 보니까 그렇게 축구도 해주시고
말씀도 전해주시고 배구도 해주시고 병도 고쳐주시고 다 해주셨네. 아, 진짜 마음에 위로가 되는 선생
님이 아니라,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의 육은 위로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자입니다. 우
리를 구원하는 자, 왜 어떻게 구원하는 자가 됐느냐? 그 육신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
과 성자가 하시니까 가능하다. 그냥 나의 위로자, 나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아니라. 나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나의 휴거를 위해 가르쳐 주는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그런 선생님이십니다.
역사의식을 가지라고 했어요. 역사의식은 무엇이냐? 선생님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자가 함께 하는 성령님이 함께 하는, 역사적인 구약과 신약 위에 세워진 성약역사, 그거를 생각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의식이예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다. 성령님의 역사다. 성자의 역사
다. 그가 보낸 자다. 이럴 때 힘이 불같이 오면서 폭발이 되어버려요. 폭발이 일어나요. 여기서. 아시
겠습니까?
자, 이제 계속 말씀을 전하면서 장점과 단점을 보고 있는데요. 말하다 보니까 장점이 굉장히 많아요.
그렇죠? 자, 그럼 장점을 또 말할께요. 장점은 비교적으로 완벽주의자가 많다. 특히 동경에는 많은 거
같아요. 행사 한 번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준비, 완벽한 셋팅, 완벽한 준비, 그걸 굉장히 중
요하게 생각하더라구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하대요. 불안
하대요. 괜히. 완벽하지가 못 하니까. 오늘도 여기 순회를 시작하다가 보니까요. 오늘 스탭들이 그랬어
요. “완벽합니다. 준비 완벽합니다.” 그러더라구요. 네.
그러다보니까 얼굴이 어떠냐면요. 일본 사람들의 자신있는 얼굴 있잖아요. “준비됐어. 음.”준비가
뭔가 안 됐을 때, 약속을 뭔가 못 지킬 거 같을 때 뭔가 해야 되는데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는 계속
すみません(스미마센)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저는 오늘 스탭들에게 그 얼굴을 봤어요. 눈을 딱 뜨면서
“완벽합니다.”그러는 거예요.
네. 이것은 작년에 순회왔을 때도 말씀드렸지만,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너무 불안해 하는 스
타일이어서 뭘 안하려고 해요. “내가 완벽하지도 않은데 무슨 말씀을 전하지?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어떻게 하지?” 불안, 불안, 완벽하지 못 한데서 오는 불안함, 초조함, 이런 것이 많다보니까요. 단점
이 뭐냐면 완벽하지 않은 것 같으면 위축감을 받습니다. 아마 이건 일본 사람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사람이 그러지 않나 싶어요. 내가 완벽하지 못 하다고 생각할 때, 특히 섭리사에 온 사람들은 내가 완
벽하게 만들어지지 못 했다고 생각할 때 새벽에 뭔가 일어났는데 뭔가 내가 부족한 거 같을 때, 기도하
기도 미안하고, 성령받기도 미안하고, 계속 미안해서 불이 안 오는 거예요. 불이.
계속 말씀을 들을 때 “미안해, 미안해.” 이러다가 나중에 더 발전이 되면 “그런데 내가 왜 미안해
야 되지? 매일 미안해서 못 살겠어.” 매일 미안하니까 힘든 거예요. 기쁘지가 않은 거예요. 여러분,
사람이 매일 미안해 보세요. 계속 미안하면 기쁨이 폭발이 안 되요. 이게 이 일본 사람이, 선생님이 모
든 민족을 다 대해 보셨잖아요. 이 일본 사람이 독일 사람과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그 중에 하
나가 완벽성, 완벽주의자 성향, 독일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음, 이만하면 됐지. 영어로 하면 “that's
enough." 이만하면 충분하지.
여러분, 이게 한국말로 하면“그냥 괜찮아.” 이 정도, “됐지.” 이런 식, 뭐 망치지는 않을 정도야.
그 정도면 괜찮아. 큰 일이 일어나겠어? 이 정도, 그런데 이게 독일말에 “이만하면 됐지.” 이 말은
독일말에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냐면요. “perfect." 완벽하다. 민족성이 달라요. 민족성이. 선생님이
독일가서 깜짝 놀래신 거예요. 씽크대를 만드는 데요. 거기는 다 조립을 하거든요. 하나 하나 자로 다
재가지구요. 1cm 까지 다 재가지구, 그래서 선생님이 그걸 보고 깜짝 놀래시더라구요. 그리고 해놓고서
완벽하게 해놓고서요.“음. 이만하면 됐지.”민족성이예요. 민족성.
이런 민족성은 너무나 좋지만, 완벽하지 못 할 때는 계속 불안하고, 위축이 되는 겁니다. 위축이. 위
축이 되다보면요. 불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계속 미안하고 안될 거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힘
들다는 겁니다. 휴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완벽하게, 완벽한 세팅을 다해놓고 주님을 맞이하고 싶
은데 항상 부족하니까, 막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거 휴거 300선 좋았어. 휴거 300선으로 가
자.” 했는데 이제 또 내년에 또 봐야죠. 내년에. 그렇죠? 그렇잖아요.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이제는. 올해는 굉장히 중요하다. 올해는 정말 변화되자. 변화된 정도가 아니
라 차원을 더 높이자. 일본 사람들이 불을 받아왔어요. 일본 사람들이 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예
요. 이미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체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영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
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자는 인간으로서 신이 된다.”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이 말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말씀 하나를 믿는 거 자체만으로도 신을 받는다니까요. “저 말씀이 주님이 오신 것을 믿습
니다.”할 때 주님의 신이 와요. 믿습니까? 이게 세상에서 누구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완벽
한 차이가 있어요. 하늘, 땅 차이예요.
세상에서 누구의 말을 들으면 “내가 너를 밥 사주고, 내가 너를 우리 집에 초대할게.” “믿습니다.
해주십시오.” 그러면, 이제 조금 힘이 오겠죠. “맛있는 거 먹겠구나. 집을 구경하겠구나.”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에요. 말씀을 주는 대로 받아들이면 능력이 와요. 말씀을 받아들이면 힘이 와요. 그냥 힘
이 아니란 말이예요. 일본 사람들은 보면은 영적인 거예요.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다 영적입니다. “그
동안 나는 기도의 불을 받았는데 나는 기도로서 주님을 좀 못만나는 거 같애. 생활이 굉장히 중요한데.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 생활적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활에서 늘 화장실까지 따라가고 싶은 마음
으로 그렇게 살라고 했는데.” 그렇게 무슨 일이든 그렇게 일체되어서 하라고 했는데 잘 할 거 같은데
도 가다보면 불이 자꾸 식는 게 문제인 거예요.
기도의 불을 많이 받았는데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또 자신이 없고, 말씀의 불도 다 받았습니다. 안
받은 사람이 없어요. 불은 이미 받은 거, 작게라도 다 떨어졌어요. 알겠습니까? 아주 작게라도 떨어졌
다니까요. 이게 식는 게 문제에요. 꺼지는 것이 문제예요. 불은 꺼지는 게 문제예요. 조금씩은 다 받았
습니다. 감동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어요. 아무도 없다. 우리 일본은 말씀으로 주와
소통하는 능력, 기도하면서 주와 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 성령을 받아서 영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이 부
족하다? 주님은 “아니다. 아니다.” 했어요.
아니다, 다 한다. 작게나 크게나 다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매일 연습하지 않으니까 완벽하지
않은 거예요. 매일 연속되지 않는, 매일 연속되지 않음으로 인한 불안함, 초조함, 그러면서 이렇게 생
각하는 거죠. “불을 받았으나 나는 왜 못 하는가?” 하면서 불이 또 식게 되는 거예요. 이 도전이라는
것은요. 여러분, 꿈을 이룰 때까지 포기하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내가 한 번 도전이라고 하잖아
요. “내가 도전이다. 도전. 인격의 도전이다. 사랑의 도전이다. 시대말씀의 도전이다.” 하시면서 매
일 도전, 도전하시거든요. 꿈을 이룰 때까지 포기를 안 하는 거예요.
이 도전해서 꿈을 이룰 때까지, 그 지점에 갈 때까지, 목적지에 갈 때까지 우리의 최대의 암적인 요소
는 바로 연속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오는 실망감, 연속되지 않음에서 오는 자괴감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하는 거예요. 아까 초반에 말씀했죠. 지금 봤을 때, 지금 말씀을 들을 때, 기도할 때, 성령을
받을 때, 불 딱 받았을 때 그 때를 기억하라. 그 때를 기억하라. 매일 눈을 쳐다볼 수 없지. 사랑한다
고 해서 매일 쳐다볼 수 없지. 매일 힘만 받을 수 없지. 매일 기합만 하고 살 거예요? 그렇게 “주여!
주여! 주여! 주여!”계속 이러고 있어야 되요.
그 때를 생각하라. 힘받았을 때를 생각하라. 성령받았을 때를 생각하라. 1%라도 감동을 받았
을 때를 생각하라. 그 때를 생각하라. 그 때를 생각하고 그와 같이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
를 봤을 때, 그 때 그 감각, 봤을 때 그 감각으로 하루를 살아가듯이 성령의 불을 받았을 때,
주일말씀을 들었을 때, 아멘으로 화답했을 그 때, 하나라도 감동을 받았을 때 그 때를 생각하
라. 그 때는 바로 불이 탈 때다. 감동이 올 때는. 그래서 불이 탔을 때 하는 것이다. 불이 꺼지
면 재만 남는다.
네. 이 때 불꽃을 활활 태워서 뭐라도 끓여야 되요. 아주 작게 손톱만큼, 불이 붙었잖아요. 나
는 진짜 손톱만큼 밖에 불이 안 붙었어요. 그러면 김이라도 구워 먹어라. 알겠어요? 김을 구워
먹으면 굉장히 맛있거든요. 그만한 불로 김이라도 구워먹을 수 있잖아요. 그렇죠? 맞앙쇼? 자,
불이 딱 났을 때 불이 모락모락 활활 타고 있을 때 국수라도 끓여 먹어라. 불이 탔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 때 해버려야 되요. 그래서 순회 때가 굉장히 중요하고, 성령집회 때, 주일예배
때, 말씀을 들을 때, 새벽예배 때, 이런 생활 속에 힘받는 지점이 딱 있어요. 힘을 주는 지점,
여기서 힘을 딱딱 받고 가야 되요. 아시겠습니까?
뇌에서 잊지 마라. 생활적인 사랑을 해야 된다. 힘을 받았으면 움직여야 한다. 힘받고 움직이
는 것이다. 힘을 이 때 받아라. 말씀을 들을 때 최고로 집중해서 말씀듣고, 기도할 때 기도하
고, “새벽기도 해라!” 이 말은 “복종하겠나이다.” 이게 아니라 “새벽기도 해라.” 이 말을 하면
“또 힘을 받으라고 하는 말이예요? 힘주려고 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요. 새벽기도
해라 이 말은 사랑의 힘을 받고 하루를 살아라. 그 힘받고 살아. 왜? 하루 24시간 매일 힘받고
사는 게 아니니까 새벽에 기도하고, 잠언 하나라도 기억하면서 그 힘으로 살아.
“주일예배 꼭 드려라.” “예. 복종하겠나이다.” 그것이 아니라 “주일예배 와서 하늘이 주시는
복을 받고 힘받고 살아라.” 알겠습니까? “성령집회 꼭 참여해서 성령받아라.” 이 말은 바로 “너
희 성령의 뜨거운 힘을 받고 도전하라. 불꺼지지 말아라. 능력을 받아라.” 함입니다. 아시겠습
니까? 매일 힘받는 것이 아니다. 힘받는 지점이 있다. 힘받는 꼭지점이 있다. 그 때 힘을 받고
주와 일체되어서 생활하는 것, 이 생활적 사랑입니다.
우리가 휴거의 불이 꺼지지 않고, 휴거에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면 휴거 때인 이 때 계속 말씀
을 전해주고 있으니까 힘받고 가서 뛰고, 말씀듣고 힘받고 가서 행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얍! 힘을 계속 가지고 있는다고 해서 지구를 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조금씩 조금씩 힘을
딱 받았을 때 또 하고, 또 하고, 이렇게 하면서 또 하는 것이다. 지구와 같은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모았다가 한 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모으고 하고, 모으고 하고, 모
으고 하는 것, 점점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힘을 받았을 때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을 받고 자
기가 생활 가운데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받았을 그
때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받고 생활 속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 운
명은 좋게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좋게 예정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들에게
는 다 좋은 예정만 되어 있습니다. 불길한 예정은 없습니다.
모두가 휴거되는 것은 절대예정입니다. 절대예정, 모두가 천국 황금성에 가는 것은 절대예정
입니다. 모두가 성자사랑의 대상체가 되는 것은 절대예정입니다. 절대예정, 아예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섭리사에 데려 왔어요. 사랑하지 않아서 데려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일만 시키려고? “쟤는 부지런히 일만 시키다가 나중에 따로 살아야지!”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영원히 같이 살아야지. 영원히 천국에서 같이 살아야지. 지금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가깝게 영원히 사랑하며 살아야지.” 그래서 데려 왔단 말이예요.
예정은 다 좋게 되어 있는데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신부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신부
생활을 했느냐가 문제다. 기도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이름으로, 그 시간에 무슨 기도를
했느냐가 문제다. 일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일을 했느냐가 문제다. 이 휴거 때가 문제가 아니
다. 이 휴거 때에 너희가 휴거의 일을 했느냐가 문제다.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한 일만 남는다
고 했습니다. 생활적인 사랑, 생활에 이 생활 가운데 주를 모시면서 힘을 받고 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힘, 이 휴거의 시동을 주님이 걸어주시는 데요. 이 힘을 받고, 오늘 전하는 말씀을 듣고
아예 철학으로 삼고 2014년은 휴거 이루면 되요. 믿습니까? 주와 함께. 오늘만 힘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힘 딱 받고 큰 힘을 주고, 생활 가운데 계속 이 꼭지점마다 계속 힘을 줍
니다. 계속. 말씀으로, 성령으로, 기도할 때, 생활 가운데 계속, 그 힘을 받고 주와 일체되어서
뛰는 겁니다. 일체되려면 잊지 말아라. 잊으면 안 된다. 뇌에서 잊으면 몸도 멀어집니다. 이게
첫 번째 말씀이예요.
음,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 이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고 두 번째 말씀을 시작할 거예요.
사랑이 무엇이냐 하면, 남자와 여자가 육적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하체사랑이다. 육적
사랑이다. 이거는 짐승도 합니다. 짐승도. 짐승이 하는 그 사랑을 인간이 그대로 하는 것은 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육적관계만 맺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무엇이냐?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사랑이란, 일체된 생활이다.” 일체된 생활, 성자와 주와 늘 일체되어서 하는 그
런 삶, 그것이 쉬지 않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지금 이 성령집회 은혜를 받을 때, 기도할 때, 이 때를 생각하면서 늘 주님과 몸이 일체된 것
이 아니라 마음일체, 뜻일체, 생각일체되어서 살아가는 그 삶, 이 삶이 바로 휴거를 이루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사랑은 무엇인가? 일체된 생활, 일체
란 무엇인가? 주 뜻대로 하는 삶,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삶, 뜻이 같은 것, 이것이 바로 일체,
마음일체, 혼일체, 그러므로 육신일체, 믿습니까?
자, 이제 휴거의 불이 식지 않고 도전의 불이 식지 않는 두 번째 말씀, 아까 힘은 계속 축적
할 수가 없다고 했어요. 힘은 계속 모아버리면 힘이 그냥 들어버려요. 힘을 계속 힘준다고 해
서 힘이 주면 힘이 오히려 든다고 했죠. 똑같이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시간은 모을 수가 없습
니다. 참 신기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시간을 모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저금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시간을 저금해서 선생님께 선물로 드리면 최고의 선물이겠다.’ 매일 그랬거든요. ‘내가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하루에 3시간씩만 선물을 드리면 선생님은 그 시간에 엄청난 일을 하시
겠지?’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왜냐하면 시간은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 시간이라는 것은 참으로 애석하게도 축적할 수가 없고 저금할 수가 없습니다. 네.
써도 지나가고, 안 써도 지나가요. 이 시간인데요. 참 신기한 시간입니다. 때라는 거예요. 때는
잡아도 지나가고 안 잡아도 지나갑니다. 이 때예요. 때. 봄에 놀아도 시간은 지나가고 봄에 열
심히 일했어도 봄은 지나갑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시간을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서 남는
것이 있느냐, 남는 것이 없느냐가 좌우가 되겠죠. 그렇죠? 여러분, 지금 이 시간도 똑같아요.
성령을 받느냐, 아니면 자기 혼자 생활을 하느냐. 29일 토요일, 3월 29일 토요일 이 시간은
그냥 지나가버립니다. 때는 지나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때는 진짜 지나버리면 아무 소
용이 없다. 오죽 하면 성자께서 선생님을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셨냐면, “때를 잡은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요. 가장 축복받은 자다.”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은 때를
잡은 사람, 자기 때를 잡은 사람, 아시겠습니까?
농부가 있어요. 곡식의 씨를 열트럭을 받은 거예요. 이 사람이 축복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열
트럭을 받아놓고 가만히 봄에 잠만 자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곡식의 트럭을 한 트럭
밖에 못 받았어도 봄에 씨를 뿌리면 이 사람은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때가 굉장히 중
요합니다. 우리의 젊은 날도 마찬가지이고, 중년도 마찬가지이고, 가만히 있다고 해서 200세까
지 살 수 있다면, 가만히 있는 만큼, 앉아있고 누워있는 시간만큼 수명이 연장된다고 하면 얼
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사람이 쉰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게 아니예요. 사람이 수명이 200세까지 연장이 되면
좋은데 그게 아니예요. 고로, 젊을 때는 미련없이 젊음을 쓰라고 했습니다. 젊을 때 미련없이
젊음을 써라. 오늘 3월 29일도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미련없이 최고로 성자를 불러가며 주
님을 불러가며 최고로 은혜를 받아라. 그로 인해 얻을 것을 얻게 됩니다. 보세요. 과일이 있어
요. 과일을 아껴두면 썩어버립니다. 아까워도 먹어야 되요. 아니면, 건조해서 과자로 만들어야
됩니다. 안 그러면 다 썩어버려요. 고로, 주님은 우리에게 늘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젊음을 아
끼지 말고 시간을 아끼지 말고, 더 늙기 전에 어서 해라. 어서.” 이 늙기 전에 하는 것, 때에
맞추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주 성령집회 때 이 부분을 핵심적으로 다뤘어요. 이 때, 때에 대한 것은 어느 때인가?
이 때를 깨닫기 위해 주님의 말씀을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이 때가 어느 때인지, 휴거의 때,
휴거 때 휴거되어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이번에 무슨 말씀을 하셨냐면요. 성령을 주는 것도,
사랑을 주는 것도, 말씀을 주는 것도, 기도해 주는 것도, 조건을 세워주는 것도 다 휴거되라고,
모든 이유는 왜? 휴거 때이니까. 지난 후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천년 역사 기간 동안
한 번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딱 한번 있는 때, 그 때가 지금이다. 이 때 미련없어야 할 때, 후
회도 없이 뛰어야 할 때, 아시겠습니까?
육신이 늙어죽으면 못 가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이 이 세상에서 행하고 수고하고 노력
한 모든 것, 너희들의 눈물, 너희들의 수고, 너희들의 몸부림, 너희들이 행한 모든 것은 너희들
의 영혼이 가져간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아깝지 않게 행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
리의 육신을 통해서 우리의 수고로 만들어진 우리의 영혼은 천국으로 가지고 갈 수 있어요. 아
시겠습니까? 그래서 가만히 있지 말아야 됩니다. 이 때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진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최고의 때, 2014년 성자가 떠나시기 직전, 가만히 있으면 아까운 때, 은혜 못 받으면 아까운
때, 이 목적지를 이루는 과정, 목적을 이루는 과정, 지금 아직 과정중이예요. 목적지가 아니예
요.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두 번째 말씀이 나올 거예요. 이 때 미련없이 뛰
어야 하는데, 과정 중이라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우리가 자꾸 힘들어지고 어려워지고 감각을
잃게 되고 불이 식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목적을 이루는 과정 중에
도 기뻐하라. 즐거워 하라. 목적을 이루는 과정을 즐겨라.” 즐기는 것입니다.
즐기면서 해야 되요. 지금 다. 스텝을 밟아가면서 거의 생활을 해야 되요. 즐기면서 하라는
거예요. 설교자들 말씀준비를 어떻게 해야 해요? 스텝을 밟으면서. 이 정도는 되야 되요. 아시
겠습니까? 그것이 심판의 말씀이든 회개의 말씀이든 모든 것은 기뻐함으로 감사함으로 해야
되는 이 때, 지금 이것은 과정중, 얼마 남지 않은 과정중입니다. 과정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
며 살고, 목적지에서도 주와 함께 기쁨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중요해요.
이제 말씀할 거예요. 이 과정에서 낙을 누리지 않으면 목적지에 가기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
다. 불가능합니다. 과정 중에 낙을 누리지 않으면 목적지로 가는 게 아예 불가능합니다. 선생
님은 말씀하십니다. “섭리역사에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저는요. 환란 때 이 말씀을 머리에 뇌
에 아예 못이 박히게 박았어요. 세상에서는 믿지 않아서 고난의 주로 갔고, 고난의 역사가 되
었지만 섭리역사 안에서는 나를 받아줌으로 영광의 주가 되고, 영광의 역사가 되었다고 했습니
다.
선생님께서 항상 노래도 슬프게 부르는 걸 싫어해요. 슬프게 말고, 심정은 있지만 심정을 담
아 기쁘게, 그래서 이번에 천지창조, 선생님께서 구상을 주셨어요. 우리 오사카에서도 한 번
했는데요. 내일 할 거예요. 안 하면 안 되니까. 선생님께서 구상을 주시면서 뭐라고 했냐면은
하나님의 기쁨을 표현해 달라.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기쁨을. 슬픈 거 싫어 하십니다. 희망의
역사, 기쁨의 역사, 그래서 성자는 늘 선생님에게 “환란 중에도 기뻐하라. 결국 잘 되니까. 끝
까지만 하면 되니까. 결국 잘 되니까 기뻐하라. 감사하라. 심정의 눈물은 흘리지만 그렇다고
질질 짜고 있지 말고, 기뻐하고 감사하라. 희망을 가지고 살아라.” 어제도 희망에 관한 말씀 잠
언을 통해서 계속 전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잠언을 통해서. 그렇죠?
어떤 것은 과정 중에 얻고 끝납니다. 어떤 것은 목적지에 가서 얻어요. 두 개로 다 얻습니다.
여기서 얻는 것이 있고, 거기 가서 얻는 것이 있어요. 휴거되는 과정 중에 얻는 것이 있고, 휴
거됐을 때 얻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니 목적지에 가서만 다 얻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과정 중에 기뻐하고, 즐거워 하고 감사해야 그 감사함으로 즐거워 함으로 목적을 이루게 된다
고 하셨습니다.
기쁨은 두 가지에서 발생됩니다. 한 가지는 상대에게서 옵니다. 상대가 막 기쁘게 해줘요. 나
는 재미도 없는데 기쁘지 않은데 자꾸 기쁘게 해주고 기쁘게 해줘요. 그러면 괜히 기뻐요. 즐
거움이 와요. 또 하나는 이 자체 뇌에서 스스로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것이 옵니다. 성자는 말
씀하시기를 “너희가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 신진대사가 잘 되고, 뇌에서 엔돌핀도 나오고, 다이
돌핀도 분출된다. 그리함으로 각종 정신병도 낫고 육적인 치명적인 병도 낫게 된다. 이 기뻐하
고 즐거워 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신앙의 병, 마음의 병, 영의 병까지도 치료하게 된다.” 하셨습
니다.
어때요? 여러분, 과정 중에 병을 치료받으며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이냐? 잘 될 때는 기뻐할 수 있는데, 잘 안 될
때는 기뻐할 수 있는 거예요. 휴거의 기쁨, 그래, 휴거의 기쁨으로 즐거워 하고 싶은데 매일
즐겁지가 않아요. 왜요? 최선을 다 했는데, 잘 안 됐을 때. 오늘 새벽에 최선을 다해 기도를
했는데 주님을 못 느낀 거예요. 그 때 오는 상실감이 있어요.
이 때 순회 때 불을 받으려고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졸립지? 나는 진짜 구제불능이야. 이럴
때 졸다니. 이런 사람은요. 순회 끝나면 낙심을 해버려요. 저 어제도 문자 하나 받고 왔어요.
한국 사람인데요. 생명의 날 선생님 생신 때 말씀 때 졸은 거예요. 낙심을 엄청 했나봐요. 생
명의 날, 생명이 살아나야 하는 그 날, 월명동 가서 성자사랑의 집에서 참여하고 있는데, 생방
송 현장에서 졸다니 진짜 미치는 겁니다. 최선을 다 했어요. 깨보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계속
졸리는 거예요. 이 때는 정말 미치는 거예요. 여기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준비한 사람들 있어
요. 나는 진짜 열심히 했는데, 너무 열심히 준비하다 보니까 말씀 때 너무 피곤한 거예요.
진짜 성령받으려고 최선을 다 했는데, 아예 최선을 다 안 했으면 모르는데 휴거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한 거예요. 최선을 다 했는데도 안 될 때가 있어요. 이 때가 불이 그냥 식어 버립니
다. 기도하려고 최선을 다 했는데 주님이 느껴지지 않고, 말씀을 듣고 전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는데 전도도 안 되고, 변화도 일어나는 거 같지 않고, 최선을 다 한 것이 무슨 보람이 있
는가?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오늘 말씀을 합니다. 거기에 답이 있어요.
자,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오늘 이 말씀이 너무 좋아요.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다 살아났
어요. 음. 여러분들이 이제 최선을 다 할 거잖아요. 휴거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거잖아요. 오
늘도 불받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거고, 전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고, 특히 선생님을 느
끼기 위해, 성자를 느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인데 최선을 다한 것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선
생님은 말씀하셨어요. “참 신기해. 최선을 다했는데 행한 것이 무너지기도 하더라.” 어느 누구
보다 섭리역사 어느 누구보다 그 좌절감을 가장 많이 맛본 사람입니다. 선생님이 최선을 다하
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저는 선생님을 모시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진짜 깜짝 놀랄 정
도로요. 만약에 그러지 않았으면 제가 이 자리에서 선생님을 증거할 정도에 사명을 못 받았을
거예요.
모든 순간 최선을 다 하시는 선생님, 특히 저는 일본땅에 왔을 때 그걸 제일 많이 느꼈어요.
보는 육이 중요하니까 영적 감각이 부족하니까 진짜 쓰러지실 때까지, 원래 쓰러지실 때까지
하시지만, 진짜 이 나라에 오시면요. 정말 최선을 다 해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해주시고 가셨
거든요. 내 마음이 감동이 될 정도로, 보고 있으면. 최선을 다 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누구보다
최선을 다 했으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하잖아요. 최선을 다 한 생명이 나가기도 했어요.
아니 구원자가 손을 댔는데, 구원자가 그것도 최선을 다 했는데, 그냥 막 한 것이 아니라 최선
을 다 했는데, 그 생명이 무너졌다.
한국 땅을 위해 최선을 다해 해주었는데, 기도해 주었는데 핍박의 땅이 되었다. 선생님은 이
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행한 것이 무너지더라. 그런데 거기서 또 최선
을 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뭐라고 하셨냐면, 이유를 말해 주셨어요. “거기서 또 최선을 다
해야만 2차원으로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또 무너졌다. 그러면 거기서 또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러면 3차원에 오른 것이다. 거기서 또 무너졌을 때 또 한 번 최선을 다하면 4차원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또 무너졌어요. 거기서 또 최선을 다하라. 그랬더니 5차원에 오르더라.” 이해
되게 설명해 주겠습니다.
월명동, 자연성전, 최선을 다 했으나 4번 무너진 월명동 자연성전입니다. 뒤에 사진 보여요?
오사카랑 동일본, 서일본 다 합쳐서 지금은 350명의 생명들이 다 참여하고 있어요. 월명동에
안 가본 생명들도 있어서 지금은 설명할께요.
이곳은 지구촌에 최고 단 하나 밖에 없어요. 자연에 지은 성전, 산책로만 해도 한 시간 이상
이예요. 월명동에 지은 자연성전, 자연에다 지은 성전입니다. 여기서도 단연 핵심은 야심작이
라고 불리우는 이곳입니다. 이걸 야심작이라고 합니다. 야심작, 하나님의 구상, 땅에는 이런 구
상이 없어요. 세계 어디에 가도 이런 구상이 아예 없습니다. 이런 큰 돌을 쌓지를 않아요. 쌓
다가 죽으니까. 그래서 사람은 아예 이렇게 구상을 하지 않습니다.
저거는 지금 거의 100톤, 104톤, 50톤, 거의 몇 십톤이예요. 거의 저런 돌로 다 쌓은 거예요.
하나님의 구상, 야심작, 그런데 이곳을 쌓을 때 4번 무너졌습니다. 어떻게? 두 번째 무너진 것
을 볼까요? 이렇게 무너졌어요. 진짜 실제로 찍은 거예요. 그 때.
다시 최선을 다 했어요. 선생님은 최선을 다 했습니다. 다시 쌓았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또 무너졌습
니다.
좀 모양이 다르죠. 여기서 최선을 다 했는데요. 네 번째 또 무너졌습니다.
최선을 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말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의 야심작으로 최선을 다 해서 했는데
무너졌어요. 네 번, 그런데 이 네 번째까지는 세상 차원의 선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차원의 최고의 선,
다섯 번째 마지막 지금의 모습, 이 모습,
이 모습이 바로 하늘 차원의 최고의 선이었다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첫 번째 안 무너졌다
고 생각해 보세요. 그냥 아까 그대로 끝났어요. 무너졌어요. 다시 차원을 높인 거예요. 반복해서 배운 거
예요. “음, 이렇게 쌓으면 무너지는구나.” 두 번째 또 무너졌어. “이렇게 쌓아도 무너지네.” 다시 쌓았어
요. 또 무너졌어요. “이렇게 쌓아도 무너지네.”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최선을 다 하면서. 고로 만들면서
마지막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 행하셨습니다. 그래
서 이곳 월명동은 하나님의 자연성전, 하나님의 구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자께서 선생님에게 “돌을 잘 쌓아도 니가 돌을 잘 쌓아도 네 번은 무너지고 다섯 번은 안 무너
질 것이다.” 말씀하셨다면, 미리 첫 번째 돌을 쌓을 때 말씀하셨다면요.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지 못 했
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왜? 어차피 다섯 번째는 세워지니까. 그렇다면 네 번째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
해서 네 번째 차원으로 오르지 못 했을 것이다. 4차원에 오르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면 5차원으로 올
라가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같이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한 대걸작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자는 이래서 장래의 일을 안 가르쳐 주신다. 그렇다면 인간이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서도 보세요. 만일 성자께서 저에게 “조은아. 다 성령받아. 어차피 성령받게 돼있어. 어차
피 다 성령받는다.” 이렇다면 제가 이렇게 애가 탈까요? 계속 애가 타는데요. “주여! 성령받아야 되는데.
다 성령을 받아야 되는데.” 최선을 다 할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어차피 성령을 받을 거니까 “여러분, 어
차피 다 성령을 받을 건데요. 말씀을 듣고 따라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내려 올 거예요. 그런데 애
가 타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지, 안 받을지. 나는 몰라요. 그런데 성자가 오셨으니까. 그런
데 모르는 거예요. 애가 타면서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최선을. “주여. 오시옵소서. 내게 오시옵소서. 선
생님 오셨으니까. 선생님, 함께 하는 거예요. 함께. 함께. 내게 역사, 역사. 믿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
요? 믿습니까? 맞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죠?
하늘의 법칙상 그래요. 미리 알려줄 수가 없어요. 네. 미리 다 아는데 뭐. 예정은 되어 있으나 과정 중
에 낙을 누리면서 과정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예정
은 되어 있으나 다 휴거되는 것은 예정이 되어 있으나 과정 중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것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에 가르쳐 줄 수가 없습니다. 고로, 오늘 말씀의 핵심은 “무슨 일을 하는데
무슨 일이 안된다고 해서, 열심히 다 해서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는데 안 된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라.
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했습니다 우리는 매순간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집회 올라오는 매 순간 땀을 흘리면서 수고한 만큼 최선을 다한 만큼 이 선에서 다
음 선을 넘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최선을 다 했을 때 보람, 최선을 다했을 때의 기쁨, 이 최선이 그리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작년에 제가 일본 순회를 왔을 때, 동경에서 하체 마비가 왔어요. 그 상황에서 오사카로
건너가시면서 그 상황에서 암일 것 같다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갔고, 검사를 한 결과
암진단이 나왔어요. 말기였습니다. 말기. 너무나 신비한 것은 척추로 전이가 되었기 때문에 뼈로 전이가
되었기 때문에 간이나 폐로 전이되는 속도가 늦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요. “아빠 살 것이다.” 하나님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분명히 산다. “책임분담만 다 해. 분명히 살어.”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아빠는 어떻게 했냐면요. 영육을 같이 하셨어요. 그 아픈 와중에도 쓰러지면서
계속 꼴깍꼴깍 하는 거예요. 계속 열이 나니까 계속 쓰러지는 거예요. 누워 있다가도.
그래도 새벽말씀, 새벽기도, 주일말씀, 수요말씀, 한 번도 빠짐없이, 꼴깍하면서도 찬양까지 다, 자체기
도회, 명설교, 빼놓지 않고 말씀을 듣는 거, 그리고 두 번째로 뭘 했냐면요. 하루에 세시간, 한국으로 법
정시간, 한국에서 재활하는 시간 법정시간 세 시간을 다 채웠어요. 그 움직이지 않는 그 다리를 가지고.
매일 세 시간씩 최선을 다 했어요.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고 가족들도 최선을 다해서 아버지를 돌봤어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마지막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게 만들어 놓자. 선생님께서 그러시잖아요. “죽어도
여한이 없게 해놔.” 그러면 사람들은 서운해 하잖아요. “그러면 죽는다는 말인가?” 그러면 죽는다는 말
인가?
여한이 없게 최선을 다 해놓습니다. 최선을 다 해놓습니다. 미래를 가르쳐 주지 않으니까요. 최선을 다
하는 거예요. 너무 살고 싶으니까요. “선생님도 만났는데 선생님보다 일찍 죽으면 돼? 안돼. 최선을 다
하자.” 저도 아빠한테 말 했어요. “아빠. 최선을 다 했으니까 죽어도 아깝지 않은 거야. 최선을 다 했으
니까 여기서는 죽어도 아깝지 않은 거야. 미련도 없다. 후회도 없다.” 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 이렇
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정말 지금까지 되리라곤 상상을 하지 못 했는데요. 벌써 정상인처럼 활
동을 하지 않습니까? 병원에서는 놀랍니다. 병원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최선을 다 하면서 본인이 최선을 다하지 못 했을 때, 그 때
느끼지 못 했던 생각들을 느끼게 되요. ‘이게 보람이구나. 이게 최선이구나. 우와! 미련도 없다. 후회도
없다.’ 선생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야심작을 네 번째 쌓으면서 하나님의 구상을 받아서 반복해서 돌쌓
는 법을 배웠다.” 배웠어요. 그냥 반복하면서 배워 버렸어요. 터득해 버린 거예요. 계속 해서 최선을 다
해서 생명을 키웠는데 그 생명들이 무너졌을 때, 최선을 다한 것은 어디가지 않고 선생님은 배웠어요.
이제 생명을 어떻게 다루는 것인지를. 구원자라고 해서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역시 땀흘리고 연단
받고, 최선을 다하면서 하늘의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라고
해서 수고하지 않았느냐. 이 땅을 만들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고, 땀흘린 것입니다. 애를 태운 거예요.
여러분, 믿습니까?
일본 섭리를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고, 노력하고, 안 되면 최선을 다하고, 그러면서 반복해서 배운 거예
요. 방법들을 터득한 거예요. 매순간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상대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 “최선을 다하라. 반복해서 배우고, 차원을 높이고, 뜻을 이루는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성자가 우리를 아무리 사랑하셔도 답을 미리 가르쳐 주지 않으십니다. 왜냐? 우리가 답
을 알면 우리 인간은 답만 찾아갑니다.
여러분, 답을 안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시험을 볼 때 답만 안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험볼 때 문제
는 하나도 모르는데 답만 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어때요? 답만 외웁니다. 답만 외워도 대학교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때요? 남는 게 없어요. 인생은 답만 가지고서는 남는 게 없어요. 아는 게 없어요.
답만 외워서는 뭐가 어떻게 됐는지를 몰라요. 아무 소용이 없어요. 문제를 같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답을 안 보람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성자가 우리에게 미리 가르쳐 주시면, 답만 아는 격이기 때문에 우
리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일단 답을 알아서 왔는데, 왜 온 거지?” 문제를 모르면 안 되는 거예요. 과정
중에 얻는 것이 없습니다.
공부하는 과정 중에 세상을 터득하게 되고, 학문을 터득하게 되고, 과학도 터득하게 되고, 음악도 터득
하게 되고, 배우면서 터득하게 되는 것인데 답만 알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은 잘 된다. 그런데
과정 중에 최선을 다 하는 것, 무너졌어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믿습니까? 그
러면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주 안에서 끝까지 하면 결국은 잘 되지.” 선생님은 월명동 야심작을 쌓을
때 4번이나 최선을 다 했는데도 4번이나 다 무너졌을 때 “무슨 사연이 있겠지.”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이걸 꼭 해드려야지. 그리고, 따르는 사람들, 우리 섭리의 하늘의 신부들과 같
이 귀히 써야지.” 이러면서 희망에 불탔다고 했습니다. 전혀 다른 생각이 안 들었대요.
4번이나 무너졌는데도. “나는 하나님 사랑하니까 꼭 해드려야지. 우리 섭리의 사람들, 앞으로 밀려올
생명들을 위해서 같이 만들고 그들을 위해서 귀히 써야지.” 그러니까 돌이 무너졌는데요. 마음은 꺽이지
않았다. 유명한 말씀입니다. 성약 천년동안 남을 유명한 말씀, “돌은 무너졌으나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
았다.” 꺾이지 않았대요. 선생님은 “돌이 무너졌어도 내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생명이 무너졌어도 꺾이
지 않았다. 다시 또 해야지. 하는 마음의 감동이 왔다.” 했습니다. “이까짓 돌, 무너졌다고 내가 그냥 하
다고 말랴! 내 끝까지 해야지.” 하는 그 정신으로 끝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했습니다. “누구나 최선을 다 했는데도 무너졌느냐. 최선을 다 했는데도 하는 일이 잘 안
되느냐. 최선을 다 했는데도 뭔가 이루어지지 않았느냐. 또 세워라. 또 세우면 된다.” 믿습니까? 그 주님
의 정신 딱 받는 순간, 나는 육적이라 힘이 없고, 나는 육적이라 포기를 너무 잘 하고, 불이 너무 잘 식
지만, 하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즉시 하늘의 신이 하나님의 신, 성령님의 신, 성자의 신이 내게 와서
영적 능력이 생기고, 인간으로서 신의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기어이 다시 다섯 번째 돌을 쌓지 않았다면, 작품을 만들지 못 하고 그냥 수고만 하고 끝났을 것입니
다. 이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꼭 휴거시켜라. 무너졌으면 세워! 또 세워! 최선을 다해서 너희를 휴거
시켜라! 최선을 다해서 너희를 만들어라! 조건 세워 주고, 만들어 주고, 기도해 주고, 도와주고 함께 해
주었으니 너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도 세워 주고 싶냐! 일본 전체 국민을 세워주고 싶냐! 이 역사가 정
말 당대에 엄청나게 뻗어나가서 이 일본이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다 굳건히 세워드리면 진짜 좋겠다. 그
러려면 너 먼저 세워라!” 자기 먼저 세우는 것입니다. 자기를 먼저 세우면 남도 세워 줄 수 있다고 했습
니다.
자기를 휴거시키면 남도 휴거시킬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휴거, 최선을 다 했는데도 뭐가 되지 않을
때 낙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수고한 공력은 무너졌어도 그 수고한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어서 그 수
고한 운이 항상 따른대요. 네. 만약에 오늘 성령을 받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오늘
졸아버린 거예요. 그런데 수고한 공력은 무너지지 않아서 생활할 때 그 운이 따라줘요. 생명을 최선을
다해서 전도했는데 무너졌어요. 결과 안 됐어요.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또 다른 생명에게 투자하면 결국
그 생명이 잘 됩니다. 그 운이 따라줘서. 수고한 것은 무너졌어도 그 운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너희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고했는데 공력이 무너졌다고 해서 문앞
에서 포기하지 말아라. 문 앞에서.” 네! 여러분들은 다 휴거의 문 앞에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휴거의
문을 따고 들어갔구요. 포기하지 말아라. 그냥 차원이 높아지겠냐! 그냥. “저는 휴거 100선이나 됐는데
여기서 어떻게 되나요?” “최선을 다해라! 주와 일체되어서.” 주와 일체되어 최선을 다하며 늘 힘을 받으
면서 해 나가는 것입니다. 반복하면서, 최선을 다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우면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사랑, 죄를 지어서 무너졌냐? 혹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 무너졌냐? 포기하지
말아라! 다시 쌓으면 된다. 다른 공력 무너졌냐? 포기하지 말아라! 다시 쌓으면 된다. 무너진 돌조경 다
시 쌓는 격이다.” 하셨습니다.
얼마든지 휴거될 수 있는데 휴거가 안 되는 이유는 자기 공력이 무너졌다고 자기의 사랑이 무너졌다
고, 자기가 최선을 다 했는데 낙심하면서 포기하는 거 때문에, 이거 때문에 휴거될 사람도 못 되는 것이
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작게 하든 크게 하든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조금씩 차원을 높여서 조금
씩 차원을 높여서 올라가는 것, 포기하면 그대로 끝, 그렇지만 계속 해서 차원을 높여서 행하면 반드시
다음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포기하면 아예 휴거는 끝, 그러면 포기하지 않으면 휴거 60은 있는
거예요. 아직 90은 있어요. 포기하면 0, 끝입니다. 가지고 있으면 90, 95, 99, 여기서 계속해서 차원을
높여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1%만 가능성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라. 그리고 주와 같이 해라. 나와 같이 하자.
그러면 2%, 3%, 10%, 50%, 70%로 가능성이 생긴다.” 1%의 가능성을 가지고 100%를 만드는 것입니
다. 그래서 비유를 들어 주셨어요. 그래서 어떤 100%를 하다가 무너진 거예요. 그런데 40%가 남아있어
요. 그런데 포기해 버립니다. 섭리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무너진 것이 0은 없습니다. 섭리에 0%는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포기한 사람은 0%예요. 죄가 있어도, 최선을 다해서 못 했어도 모든
사람은 1% 이상, 아니 1%만 되나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40%가 남아있어도 포기해 버
린대요. “성공법을 모르기 때문 아니겠느냐. 성공법을. 1%만 남았어도 하면 되는데. 성공법을 모르기 때
문이다. 너희 안에 휴거의 가능성, 성자와의 사랑의 가능성이 1%만 있어도 포기하지 말아라. 하다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고로 자신감이 없어도 하는 것이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절대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성자는 여러분의 육신이 죽을 때까지 여러분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
런데 자기가 자기의 할 일을 버리고 자기가 성자도 버리고, 자기가 주도 버리는 것이랍니다. 자기가 자
기를 버리면 안 됩니다. 휴거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자기를 버리는 것, 바로 포기, 자포자기,
매순간, 크게든 작게든 포기는 해버리면 안 되겠습니다. 휴거도 포기 안하면 다른 것도 포기 안 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새벽기도를 못 했어. 오늘의 기도를 포기해 버릴래. 오늘의 기도를 포기해 버리겠
어.” 하지 말고, 일어나서 기도하세요. 눈을 떠서 일어났는데 “어! 이것이 왠 일이야! 70일 첫 사랑의 기
도 첫 날, 첫 날 꼭 이래야 되겠니!” 그렇잖아요? 포기하지 말라! 일어난 즉시 하라. 늦어도 하라. 늦었
어도 포기하지 마라. 늦었어도. 여러분, 믿습니까? 왜? 지금은 늦었어도 휴거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그
것도 엄청나게 역사해 주고 있는 진행과정 중이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말라. 늦었어도. 아침에 기도
못 했어요. 그러면 점심에? 점심에라도 하라. 점심에 못 했으면 저녁에라도 하고 자라.
제가 한국 순회중이었는데요. 성령집회 순회 중이었는데, 그날 순회날 아침에 새벽에 못 일어난 거예
요. 여러분은 괜찮지만 저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잖아요. 정말 아침에 눈을 떴는데요. 너무 놀라서
“어!.....” 이랬어요. 그러면서 다시 눈을 감았어요. “몰라. 나는 시계를 못 봤어.” 그런데 또 더 낙심되는
건 뭔지 아세요? 진짜 깜짝 놀라서 눈을 떴는데요. 거기서 또 잤어요. 한 시간을. “정말 니가 사람이냐?
진짜. 너 진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데. 부흥강사인데. 너 부흥강사 맞어? 니
가 은혜를 줄 수 있겠어?” 이건 성자가 나한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나한테 하는 소리인 거예요.
“너 진짜 미쳤어. 너 오늘 무슨 날인지 알어? 너 오늘 순회가는 날이야. 오늘 저녁에 성령집회 있는 날
이야.”
그러니까 어떤 줄 아세요? 미안한 거예요. 하늘 앞에. 그래서 계속 그냥 씻었어요. 모르는 척 하고, 그
런데 계속 마음이 꿉꿉한 거예요. 안 씻은 것처럼. 그리고 계속 준비를 했어요. 결국 어떻게 어떻게 하
다가 결국 오후 4시가 된 거예요. 네. 차를 타고 가고 있었어요. 그 지역으로. 그런데 도저히 마음에 불
이 안 오는 거예요. 아침에 기도도 못 했고, 늦었어도 포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너무 미안하니까 기도가
안 되는 거예요. 너무 미안하니까. ‘오늘 같은 날, 하필 오늘 같은 날은 기도해야지. 미안해. 성자, 선생
님께 너무 미안해서 오늘 나한테 역사해주시지 않는 거 아니야? 오늘은 나 성령의 불이 없을 거야.’ 혼
자 그랬어요. ‘오늘 나는 성령의 불을 내뿜지 못할 거야. 기도도 안 했고. 기도도 안 한 사람이 무슨 성
령의 불을 내뿜겠어?’ 그런데 안 갈 수는 없으니까 가면서 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가면서 선생님의 말씀이 딱 생각났어요. “으이그. 으이그. 또 잊어버렸어. 늦었어도 포기하지
말라.” 그 때 내가 딱 성자를 딱 붙드는 심정으로 다리를 딱 붙잡고, “주님, 정말 오늘 저 불 안 주실 거
죠? 주실 거예요? 안 주실 거예요? 주실 거예요? 안 주실 거예요? 진짜 저 지금이라도 기도하니까 진짜
해주실 거죠? 해주셔야 해요. 주님 없으면 저 안되요.” 불이 막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떤 마음을 보
시냐! 어떤 마음을 보신 거예요? 미안해 하는 마음, “그래도 하니까 그래 진짜 니가 기도하려고 했었구
나. 진짜 나와 함께 하려고 하는 구나. 너 나 없으면 안 되지? 내가 눈치챘어. 너 나 없으면 진짜 안 되
는 구나.” 그런 마음을 아시니까 역사를 해 주시더라구요.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늦었어도 자기가 자기를 버리면 안 된다. 어느 누구도. 멈추면 안 된다. “휴거
200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아직 100선도 안 된자들이 무슨 휴거 300선을 꿈꾸냐구. 나는 휴거
300선 꿈꿀 자격이 없어. 휴거 100선이나 나는 이뤄야지. 200선이나 되면 많이 된 거야.” 포기하지 말
라. 300선에 일단 모두 다 도전입니다. 도전. 믿습니까? 자기가 자기의 할 일 휴거 300선을 버리면 안
되겠고, 자기가 성자를 버리면 안 되고 자기가 주님도 버리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성자는 말씀하셨어요. “너희의 육체덩어리는 다 할 수 있다. 살아있잖아. 그러나 왜 너희의 마음과 생
각이 너희를 버리느냐. 왜 자꾸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마음이 오늘은 힘받아놓고, 내일은 왜 잊어버리느
냐. 왜 잊어버리느냐. 지난 날을 생각하라. 곤고할 때는 지난 날을 생각하라. 왜 변화무쌍한 너의 그 마
음이 너를 버리냐.” 자기가 탔던 차가요. 기름이 없어서 못 가는 것인데 차가 고장났다고 하면서 차를
버리는 격이라고 했습니다. 파악해서 차에 기름만 넣으면 되는데 차를 버려 버리는 거예요.
기름이 있는데 차가 안 가져요. 그러면 정비사를 불러 보아라. 그러면 사소한 것에 고장나서 사소한 것
이 고장나서 시동이 안 걸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름, 성령, 충만한데 지금 충
만하게 부어주는데, 그런데도 왜 나라는 차가 안 가나? 시동이 안 걸리나? “마음의 시동이 안 걸려서 그
렇다. 마음. 고로 정비사를 불러 보아라. 하나님, 그가 보내신 구원자, 그의 말씀을 듣고 정비받고 자기
를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것, 자꾸 변하고 자꾸 위축되는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알고, 이해하고,
쑥스럽지만 다시 하자.” 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좀 쑥스럽지만 위축받았던 네가 쑥스럽지만 자꾸 자꾸 왔다갔다 변했던 네가 쑥스럽지만 그 마음을
알고 나도 이해하니 너도 이해하고 우리 쑥스럽지만 다시 시작해 보자.” 이렇게 휴거의 시동을 걸고, 휴
거의 불을 주고, 휴거의 감각을 주기 위해서 선생님께서 성자와 함께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기를
안 하시는데 우리가 포기하는 것이 항상 문제이구요. 성자는 불이 안 식는데 우리가 불이 식는 것이 문
제입니다. 오늘 그 해결책, 그 방법을 주셨습니다. 휴거의 시동을 걸어주시고, 그 방법대로 해 나가면은
일본 2014년 불나게 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나는 나약하다. 나는 항상 나약하다. 나 혼자서는 안 된다. 나는 신이 아니다.” 그러니까 전능자의 말
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즉시 인간으로서 즉시 신이 되어서 그 생각과 그 뜻, 그 심정이 내게 고스란히
와서 뜻대로 행하게 됩니다. 믿습니까? 주와 함께. 주와 함께. 주와 일체되어서, 뜻일체, 마음일체, 심정
일체, 생각일체, 그 뜻과 일체되면 포기가 없다고 합니다. 주님은 죽어도 포기를 안 하시니까. 생활 속에
서 주님을 늘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그렇게 하면서 일생 일대의 최고의 휴거를 이루어 가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계속 해서 휴거의 불, 휴거의 감각, 계속 해서 휴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죠.
이 때 한 번 뿐인 휴거 이것을 위해서 역사가 흘러왔고, 이것을 위해서 역사가 고난도 받았고, 이것을
위해서 구약도 있었고, 신약도 있었고,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힘도 들었고, 이것을 위해서 몸부림도 쳤
고, 이것을 위해서 선생님은 시대 십자가를 졌고, 이것을 위해서 섭리사는 시대의 핍박을 받았고, 이것
을 위해서 말씀만은 계속 주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 주고, 이것을 위해서 참고, 견디며, 힘들어도, 어
려워도, 지금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이거를 위해서, 이 때를 위해서 나는 살아가야 된다. 이 때를 위해서 나는 쓰
러질 수 없다. 이 때를 위해서. 마지막 역사, 신약역사 때는 죽어서 못 했으니까 이 때를 위해서 나는
살아서 돌아가야 된다.” 이 정신 하나로 지금까지 오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이 때를 위
해 그리고 휴거된 자들을 보기 위해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다음 역사를 펼쳐 가기 위해서 지금 이 때 내
가 최선을 다해야 된다. 지금 이 때 낙심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 지금 이 때 건강관리도 해야 된다. 뛰
어야 하니까. 앞으로. 이 때를 위해서 힘들지만 참고 견딘 조건, ‘더할 수 없는 조건’ 여러분, 찬양하죠.
왜 그렇게 나 섭리사 오기 전부터 왜 이렇게, 왜 이렇게 말씀을 주고, 왜 그 길고 길게 또 매일매일 하
루가 멀다 하고 왜 7개월 조건 쌓아주고 절식기도 조건 세워주고 또 세워줄까?
왜 이렇게 휴거, 휴거, 휴거 이렇게 하는 것일까? 이게 목적이니까. 이 때를 위해. 지금 섭리사에 모든
사람들이 휴거만 된다면 섭리역사는 다른 역사를 쓰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중요합니다. 내가 휴거만
된다면 300선까지면요. 정말 엄청나죠. 우리가 휴거만 된다면 우리가 휴거된 상태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섭리역사는 다른 역사를 쓰게 되요. 다른 역사를. 이전과는 다릅니다. 여러분, 휴거됐으면 남들에게
불을 붙이게 되어 있어요. 휴거 200선 이상이면요. 불을 붙여요. 휴거 200선이면 불을 붙이고 생명을
살릴 정도가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모두 휴거 200선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휴거 300선이면요. 그냥 100% 일체된 상
태에서 주와 일체된 상태에서 포기가 없구요. 낙심이 없구요. 그냥 불덩어리예요. 불덩어리. 이 상태에서
선생님을 맞이하고 또 제 2의 남은 역사를 써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부활의 역사, 남은 역사, 여러
분, 세상을 뒤집어 버립니다. 뒤집고도 남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사도시대 때 그 몇 사람을 가지고서
성령의 역사를 일으켰는데요. 이 엄청난 인파들이 일본 이 인원이 모두 다 휴거만 되어 버리십시오. 뒤
집어요. 뒤집고도 남아요. 믿습니까? 여러분, 휴거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까 간증했죠? 야! 영휴거를 위해서 이 휴거를 위해서 해나갔더니 육신의 병도 낫고 이 휴거가 정말
모든 꿈을 이루는 모든 육신과 영혼과 꿈을 이루는 최고의 축복이구나. 최선을 다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다 무너졌어도 우리를 핍박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우리가 휴거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일본민족
부터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민족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이 역사를 펴나갈 수
있습니다. 이미 신약시대와는 비교가 안되는 역사가 지금 펼쳐져 나가고 있습니다. 놀래죠. 사람들이 다
보면 놀래죠. 저기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저기는 도대체 뭐야? 도대체 뭐하는 거야? 다 죽은 줄 알았어
요. 세상은 우리가 다 죽은 줄 알았죠. 깜짝 놀라죠.
여러분, 여기서 휴거되어 보십시오. 이미 뒤집는 역사입니다. 여러분, 휴거가 뒤집는 역사를 이룰 수 있
는 기본바탕입니다. 이거 하나가 있으면 선생님이 그 동안 조건을 세워주고 우리 얼굴도 못 보구요. 감
각도 없어요. 우리는 선생님 못 봐서 감각이 없어요. 핍박도 받았어요. 이 모든 것이 한방이면 그냥 해
결되요. 우리의 눈물, 설움, 구약 때 이루지 못한 것, 신약 때 이루지 못한 모든 역사의 꿈을 이루게 됩
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시면서 막 기뻐하시면서 천국의 황금성을 그냥 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조목적을 이룬 자에게, 꿈을 이뤄준 자에게, 뜻을 이뤄준 자에게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
여러분, 허상이 아니고 망상이 아니고 이 힘을 갖지 못하고, 이 꿈을 갖지 못하고, 이 불을 갖지 못 하
면 이 섭리역사에서 무슨 불을 갖고 살겠습니까? 성자와 사랑일체되고, 선생님을 만나고, 그는 구원자이
고, 성자는 영원한 신이고, 우리의 영은 휴거되고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그 소망이 없다면 그 꿈이 없다
면 그 축복이 없다면 섭리사의 최고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것이 최고의 비전입니다. 믿습니
까? 이 감각이 다 살아나야 됩니다. 이 비전이 다 살아나야 됩니다.
휴거의 비전이 살아나야 섭리사의 비전, 일본의 비전, 각 민족의 비전들이 살아납니다. 믿습니까? 오늘
말씀의 뜨거운 불, 뜨거운 성령, 사랑하는 데도 최선을 다해 보세요. 아깝지 않습니다. 반드시 주님과의
사랑을 보지 않아도 혼적으로 더 차원높게 오르면서 최고의 휴거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뜨거
운 성령의 불을 지펴 주면서 시동만 건 것이 아니라, 아예 그냥 질주하게 해주려고 달리게 해주려고 성
자께서 선생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휴거의 비전이 충만하길 바라며 나머지의 모든 것, 이제 말씀을 받아들이면 신이 되었으니까 성령의
뜨거운 불길 받으며 자신이 고백을 하면서 성령의 뜨거운 불을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되니까 성령의 힘으로, 사랑의 힘으로, 주님의 힘으로, 그 조건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고, 더 높은 차원을
향해 도전하는 일본, 전세계, 우리 섭리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신을 받는 시간, 받아봐야 알겠죠. 주님을
찾아봐야, 이 말씀을 인정해야 하나님의 역사임을 주님의 역사임을 이것은 정말 이루어짐을 주님은 나
를 위로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나를 휴거시키러 나와 영원히 같이 살려고 그냥 불러준 것이 아니라, 내가
고백해야 내가 고백하고 내가 자꾸 얘기를 해야 내가 성자와 자꾸 대화를 해야 대화가 이루어지고 꿈이
이루어지고, 성령을 받고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최선을 다 한 것, 우리의 최선을 다한 것은 무너지지 않으니 오늘 주와 일체되는 시간, 주님의 몸은 볼
수 없으나 눈은 직접 마주 칠 수는 없으나 생각이라는 눈을 가지고, 영원히 붙어 있고 싶다, 영원히 함
께 하고 싶다, 그 일체된 생각, 함께 하는, 뜻을 함께 하는 생각을 함께 하며 그리고 우리의 모든 마음
을 함께 하는 그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순종하되 사랑함으로, 이제 완전히 주님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일본, 떨어지지 않는 민족, 떨어지지 않는 섭리역사 되기를 원하면서 간절히 기도함으로 간구함으
로 주님을 부릅니다.
‘성령의 힘으로’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