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집회 말씀2014.05.23 (금)
5주년 성령집회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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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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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3일 생방송 5주년 성령집회>
여러분들은 혹시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혹은 알에서 태어났나요? 어머니의 태를 거쳐서
다 태어나셨죠?! 잘생긴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이나 키가 큰 사람이나 키가 작은 사람이나
눈이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다 어머니의 태속을 거쳐 태어났습니다.
이 역사도 똑같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알에서 깨어나듯 딱 생긴 역사가
아닙니다.
선생은 신부로서 성자를 맞아서 이 섭리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구시대 기독교 주관권
에서 신앙이 태어났습니다. 그냥 뚝 떨어진 섭리역사가 아니라 선생 역시 태속을 거쳐서 태
어나듯 구시대 신약 주관권에서 신앙이 태어났습니다.
고로 절대 메시아이면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참감나무 격인 예수님
과 신앙의 접붙임을 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성자는 늘 예수님을 통해서 배우게 하셨습니다.
선생은 예수님을 성자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성장기가 될 때까지 예수님을 쓰시고
예수님을 보이면서 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은 예수님을 나의 스승으로 나의 선생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성자가 보낸 예수님을 절대 믿고 사랑하니까 예수님을 보낸 그 성자를
절대 믿고 사랑한 것이 되었습니다.
십대 이십대 때, 이 때부터 선생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보고 대했습니다. 정말로 사랑해서.
그래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내가 신부로서 오직 예수님만 위해 살아야지
예수님은 절대 메시아고 나를 구원하시고 지옥에 안 가게 해주시니까.’ 그거 하나만으로도
평생 예수님만 사랑하며 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 때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초반에 성자께서 재림의 근본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누가 오
시는지 예수님이 어떻게 오는지 그 근본을 밝히시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예수님이
다시 안 오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이 죽어서 다시 못 오듯이 그 영도
다시 오셔도 재림의 역사를 펴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신약권의 주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육도 신약 주관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영 역시 신약 주관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르면 첫날밤인데 신랑 역할, 신부 역할도 하지 못하고 형제같이 이야기만 하다가 미련
하게 끝나고 말게 됩니다. 선생 역시 모르면 그런 격이 되어서 계속해서 형제 주관권 곧 신
약의 주관권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재림주 라고 하면서 자기가 펴는 역사가 새역사다 하는 그런 종교를 한번
보세요. 여러분이 확실하게 알라고 오늘 이 가르침을 줍니다. 그들은 자기가 재림주고 역사
가 새역사다 하지만 말씀을 못 풉니다. 왜 재림주고 새역사인지 말씀을 풀지 못한다는 것입
니다. 교리의 근본은 늘 신약 주관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약 때 역시 구약의 교
리의 근본은 아무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누구만이 벗어났느냐. 예수님만이 벗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안 오시면 도대체 누가 오느냐. 여기에서 문제가 다 발생합니다. 그럼 예수님이
다시 안 오시면 누가 올거냐 이게 문제인거에요. 이걸 정확하게 풀지 못하니까 이단이 되거
나 혹은 신약권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풀어야 되요. 누가 오느냐. 그럼 선생님께
묻잖아요. '그럼 네가 재림주란 말이냐' "말씀을 들어보시오"
예수님이 안 오시면 누가 오시느냐, 이 인봉을 떼야 만이 자기가 먼저 다시 오시는 자를
맞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 오시면 누가 오느냐 이 인봉을 떼야 내가 재림주가 된다
는 것이 아니라 자기 먼저, 인봉을 뗀 사람 먼저 다시 오시는 자를 맞을 수 있습니다. 여기
서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 수 있어요. 누가 오느냐 이 인봉을 떼야 다시 오시는 자
를 먼저 맞을 수 있다. 온전히 새역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선생은 삼위일체인 성자를 풀고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성자가 깨닫게 해주셔도 먼저는 자
기 인식이 온전해야 성자가 주신 것을 믿고 확신하게 됩니다. 먼저는 뭐가 와야 되죠? 이걸
깨달았죠.
하늘에서 근본체 먼저 와야 한다. 이 말은 뭐에요? 본체 먼저 하늘에서 와야 한다. 정확
하게 선생님은 무슨 가르침을 주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체는 신이니까 눈에 안 보인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 때부터 항상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자신의 육으로 택해서 그를 연단시키고 만들어서 그를 통해 시대 말씀을 선포하
며 이끌어 가셨습니다.
먼저는 본체가 옵니다. 그 다음에 그 본체가 땅의 한 사람을 택해서 그를 통해 말씀하십
니다. 누구였어요? 구약 때는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들, 중심
인물들.
그러다가 신약 때부터는 땅의 사명자를 메시아로 택하셨습니다. 선지자와 달라요. 죄를
사할 권세가 있는 메시아를 보내셨어요. 역시 누가 먼저 왔느냐. 본체 먼저 왔습니다. 땅의
사명자를 택했죠. 바로 메시아 예수님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인식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본체 먼저 오고 땅의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본체가 와서 사람으로 뿅 바뀌었어요. 하늘의 신이 왔는데 사람이잖아요. 내려오다가 사람
으로 뿅 바뀐 거죠. 또 모순이에요. 하늘로 뿅 하고 올라가야 하잖아요. 그건 또 육신이라고
믿고 있는 거에요. 모순이 굉장히 많죠. 인식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체를 깨닫지 못하고 하늘 구름만 쳐다보면서 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혹은 아예 허황된 이야기라 생각하고 믿지 않습니다. 두 가지 중 하나겠죠. 구약 때 가장
심각했던 인식 중에 하나, 바로 하나님을 믿던 자들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오시길
기다린 것입니다.
역사의 최고의 오점이에요. 또한 그 인식 때문에 땅에서 예수님이 출현했을 때 아예 믿으
려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맞아도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인식이 무섭다. 인식이 온전해야
깨우쳐 주었을 때 깨닫는다.
구약 때도 그러더니만 신약 때 역시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니까 예수님이 하늘 구름
을 타고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인식 이것 하나 때문에 하늘의 본체 성자가 다
시 오셔서 이 시대의 택한 사명자를 쓰고 나타나셔도 절대 안 믿습니다. 일단 예수님이 아
니니까요.
예수님이 오셨다고 생각해보세요. 진짜 2천 년 전의 예수님이 육으로 오신 거에요. 못 오
시지만 그렇게 가정해 봅시다. 어떻게 알아볼 거에요? 정말 예수님이 그림처럼 생겼을까요?
그림도 수십 개가 있던데요. 예수님을 여러 가지 형상으로 그려놨잖아요. 그럼 어떤 모습으
로 오실 거에요? 수염 다 깎고 나타나시면 어떡할 거에요? 자기 인식이에요. 육신으로 오면
도대체 어떻게 알아볼 것이냐는 거죠. 느낌으로? 텔레파시? 완전 환상이다. 텔레파시는 마
음 통하면 오지 않습니까. 아니란 말이에요. 이 인식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
다. 제일 무서운 인식이에요.
여러분들 머릿속에서도 휴거에 대해 제대로 인식 되어 있지 않으면 휴거가 아예 안돼요.
아예 ‘나는 힘들어, 아예 나는 포기했어. 휴거는 어려우니까 난 절대 못해.’ 이게 인식 자체
에요. 인식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죄에 대한 인식을 무섭게만 느끼는 사람들은 절대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냥 숨겨놔요. 인식이 참 무섭습니다. 인식이 참 중요합니다. 이게 잘
못되어 있으면 아예 깨닫지를 못합니다.
먼저는 하늘에서 근본체, 본체가 딱 오시면 세상의 한 사람을 택한다. 구약, 신약, 다 그렇
게 역사하셨습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죠.
예수님을 믿다가 온 사람들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예수님을 성자로 생각했습니다. 신
약권에 있는 구시대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성자 예수님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셨다가 육이
부활해서 육이 하늘로 올랐고 다시 육이 이 땅에 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신이 온다고 믿고 있는 것까진 좋으나 그러면 예수님이 하늘에도 육으로 계실 것이냐.
이게 또 걱정이 되겠죠. 그럼 천국은 육의 세계냐. 그럼 그 육은 영원불변한 육이 될 것이
냐. 그럼 영은 대체 어떻게 할 것이냐. 영은 영원히 빛을 못보고 사는 것이냐. 그럼 영은 왜
태어난 것이냐. 육신을 영원불변의 육신으로 만들면 영은 어떻게 할 거에요. 아예 육신만
태어만 되는 거죠. 그리고 수리수리 마수리, 불변의 육신으로 변한다. 이렇게 되는 거겠죠.
수리수리 마수리만 안했지, 수리수리 마수리식 교리인 거에요. 이해가 안 되는 거에요.
육이 부활해서 육이 하늘로 올라가서 육신이 다시 온다. 예수님을 삼위일체 성자 그리고
절대신 창조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부 성자 성령의 근본을 예수님으로 보고 있습니
다. 모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배웠죠.
예수님은 성자의 육신이며 분체입니다. 땅의 메시아입니다. 사람입니다. 하늘에서 성자가
땅에 딱 신의 모습으로 오셔서 사람으로 뿅 바뀌신 것이 아니라, 혹은 신인데 사람인데 사
람으로 온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입니다. 고로 육적으로 볼 때는 그 센터에서는 삼위일체 중의 한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 본체는 아닙니다. 고로 찔렀을 때 피가 나왔고, 때렸을 때 아
파했고, 결국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고로 그 시대 인식이 어땠죠? ‘너는 하나님의 아들
이고 왕이면서 신의 아들이면서 너는 왜 때리는데 피를 흘리느냐. 네가 한번 실력 있으면
능력 있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다 문제였어요. 신의 아들의 권위가 땅에 내려왔습니
다. 그러면서 웃죠. ‘아니, 찌르니 피가 나오네.’ 무섭지 않습니다. 신이면 뭔가 할 것 같잖
아요. 지진을 일으킨다거나 창으로 찌르는데 안 들어간다거나 이렇게 될 줄 알았겠죠. 아니
란 말입니다.
본체는 하나님, 성령님, 성자이십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만이 절대 신이시며 창조자 이
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사람입니다. 땅의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중보하는
중보자입니다. 이 인류의, 신약권 인류에서, 그 시대 인류에서 딱 택함을 받은 단 한사람 입
니다. 신의 임재를 받은 단 한사람. 그가 중보자입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다 그렇게 역사
하셨어요. 둘을 세우지 않았고 한사람은 증거자로 세웠지. 한사람을 세웠습니다.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성자가 보낸 자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어요. 그 위에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
령님과 성자가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3년밖에 복음을 전하지 못하셨죠. 이 3년 안에 삼위일체까지 다 밝
힐 수가 없는 시간입니다. 신약역사는 어리기 때문에 다 밝힐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 보
세요. 3살이 되었으면 도대체 뭘 가르쳐 줍니까. 3살짜리에게 수학을 가르치겠습니까. 3살
짜리는 그것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성경의 모든 비밀을 다 배우고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헷갈렸어요. 그래
서 어느 때는 예수님을 전능자로 표현했습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분이시다. 누구냐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다. 그러면서 중보자라고
얘기했죠. 헷갈려요. 전능자냐 사람이냐. 사람이냐 무엇이냐. 신이냐 인간이냐. 신과 인간은
그럼 같냐. 헷갈린다는 겁니다.
정확히 예수님은 사람입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 고로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육신은 살
아 돌아올 수 없습니다. 분체에요. 성자의 택한 자 메시아의 사명을 하는 자. 하나님의 임재
를 받은 자. 성자의 임재를 받은 자입니다. 이사야 11장에 예언이 되어있죠. 그 위에 모략
의 신, 지혜의 신이 임했다고 했잖아요. 모략도 임하고 지혜의 신이 임한 거에요. 고로 그
말씀과 행함이 전지전능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육적으로 보면 육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한
청년입니다.
이는 마치 무엇과 같으냐면,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전설이죠. 하나의 신화적인 이야기
입니다. 대통령이면 알에서 태어난 사람만 대통령이 되나? 다 평민이에요. 세상의 주권자가
다 똑같아요. 다 감정이 있고 다 혈기가 있고 분노가 있는 인간, 평민이에요. 그 상태에서
연단을 받고 배웁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죠.
예수님 역시 이와 같은 격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한 평민입니다. 혹은 정치가, 역
시 대통령에 비하면 평민이죠. 그러나 대통령이 되면 똑같은 사람인데 주권자가 됩니다. 똑
같은 사람인데 왜 다르냐. 똑같은 사람인데 ‘저 사람은 찌르면 안죽는대..’ 이래서 다른 게
아니라 사명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명이 다르니 권세가 다르겠죠.
예수님 역시 메시아가 아니면 평민입니다. 그냥 인간. 그러나 메시아의 사명을 받았기 때
문에 메시아 입니다. 사명 때문에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똑같은 인간이지만 사명이 다릅니다. 신처럼 찌르면 안죽고 영원 불변하고 살아나고 건드리
면 치유되고 이렇지 않습니다. 그 위에 전능하신 성자가 임하시어서 그 몸을 쓰고 행했습니
다. 전지전능하죠.
선생은 이와 같이 성자의 인봉을 뗐습니다. 여러분은 작년에만 왔다면 이 말씀이 풀리는
과정을 봤습니다. 대단한 것을 목격한 거죠. ‘선생님은 산에서 도대체 말씀을 어떻게 받으신
거야’ 의심하던 사람들도 작년의 과정을 보았다면 '이건 정말 엄청나다' 이 지구 세상의 모
든 비밀을 다 파헤쳐봐도 없었던 말씀이다. 또 2009년에 온 여러분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지만 휴거와 재림의 인봉이 어떻게 풀리는지를 주일 말씀과 수요 말씀을 통해서 목격했
습니다. 원본이 기록 속에 남아있죠. 목격했어요. 여러분들은 목격자입니다. 목격자는 가서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이후에 온 사람들은 모든 말씀을 다 뒤져 보세요. 목격자가 됩니
다. 이렇게 성자와 분체의 인봉을 뗐습니다.
본체 성자, 분체 예수님을 쪼개서 인식을 바로 하니까 그때부터 성자는 예수님을 쓰지 않
고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인식을 달리하니까. ‘아, 같은 인물 아니구나. 본체, 분체구나.’ 이
때부터 예수님을 쓰지 않고,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 역시 처음 교회 오면 목회자를 중심합니다. 안 그런 교회도 있나요? 왜 그러나면
선생이 보냈기 때문에 선생이 하라는 말씀을 전해 주니까 목회자를 보다 중심할 수밖에 없
습니다. 혹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중심해요. 어떻게 까지 얘기 하냐면 '선생님, 말씀 잘
배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니에요.' 그러면서 그날은 말 못하고 집에 와서 생각하죠. 선
생님을 빨리 가르쳐야 되는데 마음만 애가 타며 또 선생님 소리를 듣는 괴로움과 죄책감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저도 그렇거든요. 그러다가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그제야 선생에게
직접 연결이 됩니다.
성자의 입장도 그와 같은 격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니까 땅의 보낸 자니까 성자의 육이
니까 그와 딱 일체됐다가 그를 믿으니까 이제 성자를 발견하고 성자와 바로 일체되는 격입
니다.
이 성자에 대해서는 선생이 기도하고 먼저는 나의 차원에서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깨달으
니까 성자는 그 터전 위에 깊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성자 본체, 분체 인봉은 휴거의 인봉을 뗀 다음에 뗐습니다. 본체의 인봉, 휴거의 인봉,
이 두 인봉은 구원역사 6천년 만에 처음으로 풀리는 인봉입니다. 어디를 찾아봐도 이와 비
슷한 말씀도 없었어요. 이전의 모든 말씀도 어땠나, 이와 같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신약의 주관권에 있는 기성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배웠냐면, '하나님은 빛이시니라.' 그렇게 말하니 정말 빛이시니라 하고 가르쳤어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빛인 줄 알아서 희망이 없었어요. 빛과 같이 살아야 하나. 매일 빛으
로만 나타나시면 어떻게 같이 살아요. 그런데 교회에서 이런 생각하면 '너 사상이 이상해
절대 그런 생각 하면 안돼.' 하니 티를 못내는 거에요. '천사는 중성이니라.'라고 가르쳐서
저는 어린나이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중고등학생들한테 얘기하는 거에요. '너희
한번 섭리사의 전도사들한테 배워봐라.' 며칠이면 폭발한다.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배워야
되요. 섭리사만 은하수부터 중고등학생까지 다 선생님 말씀 근본으로 가르치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거 안 배운단 말이에요. 배부른 소리 하면 안되요.
하나님에 대해서 천사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너무 막연하게 알고 있으니까 일단 딴생각
을 못하게 하겠죠. '안 돼, 질문하는 게 아니야.' '정말 하늘이 말리나요?' '진짜 말리니까 그
렇게 믿어야돼.' 진짜 이렇게 가르친다니까요. 다른 이유가 없어요. '말린다고 하면 말리는
거지, 빛이라고 하면 빛인거지.' 풀수가 없어요. 성자도 모르고 성령님도 모릅니다. 절대 성
령님은 천모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성령님은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동그란 마음. 성체. 동그
란 성령이 우리에게 다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다만 기도할 때, 말씀할 때, 축도할 때 이
단어는 잘 써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하노라' 모르는데 그 축원이 제대로 되겠
습니까. 그러니까 주인이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그 마음이 그 답답함이 어떠하겠습니
까.
지금 이 시대는 이것을 보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참담하도다, 그렇게 얘기하는 너희들이
참담하도다.' 예수님 때랑 똑같아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교리를 가르치니까 '참
담하도다, 감히 신성을 모독하는 자도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정확하게 계신다면 역사를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스승은 무엇을 가르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스승은 무엇을 가르치
는 사람인가. 스승은 무엇인가. 참 스승의 실력이 어떠한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스승의 자
격과 함께 스승의 한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냥은 못합니다. 스승을 그냥 할 수 있는 것
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승의 실력, 스승의 한계, 스승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참 스승은
무엇인가. 학문의 스승이 아니다. 평범한 상식, 지식, 평범한 세상을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
다. 이런 스승은 세상에 많습니다.
6천년동안 풀지 못했던 성경의 의문들을 풀어주면서 하늘의 비밀을 가르쳐주는 자가 참
스승 하늘의 스승이었습니다. 역시 신약 때는 예수님이었죠. 4천년동안 풀지 못했던 의문을
가르쳐주며 하늘의 비밀을 다 가르쳐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 가르치는 선생이
며 스승이었습니다. 하나님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생, 스승, 성경에 다 말했죠. ‘선
생이여.’ 선생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거
부반응을 일으키니까 그냥 선생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 메시
아다'라고 하면 거부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유대인들은 거부반응으로 돌을 던졌다. 거부반응
을 일으키다 못해 돌을 들어 던졌습니다. 거부반응 너무 심하게 일어나니 예수님을 더 싫어
해요. 그래서 선생으로 나타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가 있냐면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
역시 하나님을 가르치는 선생으로만 인식하고 그 인식이 뇌에 굳어있었습니다.
이 시대 한번 생각해보세요. 각 교회 휴거 진단하고 있죠. 저희 주님의 교회 역시 마찬가
지로 왜 휴거를 인식하지 못하는가. '그를 몰라요.' 그를 어떻게 알고 있냐면, 중고등부는
3:3:3 이렇게 나왔어요. 충격적이죠. ‘그는 그다’ 35% ‘그는 하나님을 잘 가르쳐주는 선생이
다’ 30%.
진짜 심각하죠. 왜 그러느냐. 그를 메시아라 하면 모르니까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신약역사 때 역시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때도 하나님을 가르치는 선생으로만 인식하고 그
렇게 뇌가 굳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제일 먼저 예수님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았습니
다. 그리고 시인했죠. '주는 나의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면서 그때
부터 예수님을 주로 메시아로 불렀습니다. 그 후부터 이 사건이 있은 후부터 예수님을 확실
하게 믿는 자들은 원시 언어인 ‘선생’이라 안 불렀습니다. 하늘에서 보시는 메시아, 주로 부
르기 시작했습니다.
메시아, 구세주, 재림주. 기성사람들에게 재림주, 하면 진짜 거부반응 보일 거에요. 이런
단어와 이런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즉시 심한 경기를 일으키게 됩니다. 일단 안
들어요.
'재림, 휴거 어떻게 일어나는지 아십니까?'라고 이렇게 전도하면 큰일 납니다. 왠 줄 아세
요. ‘도를 아세요’가 됩니다. ‘휴거를 아십니까.’ 이러면 안되요.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재
림, 휴거 뿐만 아니라 메시아, 구세주, 재림주 이 말에 일단 거부반응을 일으켜요. 왜? 몰라
서.
선생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실하게 믿지 못했을 때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메시아,
구세주라고 부르면 은근히 거부반응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
실하게 알았을 때는 예수님을 보고 누가 선생, 중심인물, 선지자라고 하면 너무 너무 싫었
습니다. 또 소크라테스, 석가, 공자와 같이 동급 취급을 하면서 예수님을 4대 성인이라 하는
것이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어떻게 메시아랑 성인이 똑같냐. 메시아는 죄를 사하는데요. 영
혼을 구원해서 천국에 가게 하는데 어떻게 똑같냐. 그래서 예수님을 부를 때는 오직 메시
아, 구세주라고 불러야 속이 시원했습니다.
또한 무엇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깨달았냐면, 오직 그만이 죄를 사하는 권세
가 있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예수님을 더욱 더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놀라운 거죠. 누구도
죄는 못 사해요. 내가 메시아가 아닌데 ‘죄를 사하노라’ 하면, 수 만 마리의 사탄이 나한테
다 붙어서 '넌 오늘 죽었어. 내 밥이야. 감히 죄를 사하다니. 그 죄가 너한테 다 붙었노라'
한다니까요. 진짜 죄를 내가 감당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정말
메시아로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졌을 때 진짜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죄를
사할 권세가 있느냐 없느냐 이것 하나로 메시아냐 아니냐 결론이 나겠죠.
지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모르면 거부반응 일으킵니다. 여러분도 그랬죠. 처음에 몰랐
을 때 누가 구세주, 메시아 하면 자체로도 거부반응이 일어나면서 감당이 안 돼요. 모르니
까.
그러나 주를 확실히 아니까 증거합니다. 주를 주로 부르지 아니하면 무엇으로 부른단 말
이냐. 이것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가르쳐라. 무슨 말 하는지 깨달았습니까. 모두가 주님을 제
대로 못 깨달은 시절이 있었어요. 그 때는 누구나 거부반응이 일어나요.
그런데 '나는 알아, 쟤는 몰라. 답답해. 주를 밝히자. 그의 이름을 밝히자.' 그러면 그 사람
은 밝히자마자 거부반응이 확 일어나면서 받아들이질 못하는 거에요. 이건 2세도 차근차근
가르쳐줘야 되요. 지금 이 얘기하는데 '지금 예수님 메시아 얘기 하는구나.'라고 알아들은 2
세들이 제가 보기에는 50%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직까지도 선생님을 '예수님이 보낸 사람'
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왜 그런지 가르쳐야 되요. 주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단어가 나오면 거부반응이 나와요. 2세들은 어렸을 때 거부반응을 안보이다가 학교가면
거부반응 일으켜요. 제대로 가르쳐야 됩니다.
모르면 와닿지 않고 모르면 부담스럽고 모르면 싫습니다. 주라도, 메시아라도 싫어요. 모르
니까 '날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그것 자체도 마음에서 거부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를
알아야 휴거 되고 싶고 그를 알아야 천국도 가고 싶은 것입니다. 맞습니까?
지금은 선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구세주, 메시아를 받아들이며 성자와 일체됐는지
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마음, 뜻, 목숨 다해서 오직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만일
보통으로 예수님을 사랑했다면 성자가 나를 쓰셨겠습니까.
자기 것이 아니라면 메시아라도 그 이름이 거북한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니까 내 메시
아, 내 주님이 아니니까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주님이면 어때요. 내 주님! 나의 전부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사랑 이러면
막 자랑하고 싶어요. 내 간판으로 내 간판은 예수님이다. '너 간판 있냐' '나 제일 큰 간판
있다' '쟤 약간 신에게 미쳤나봐' 미친게 진짜 미친 것입니다. 어떻게 미쳤어요? 도달한 것
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간판이 더 큰 거에요. 그것으로 인해서 권세를 내세우게 됩니다.
자기 것이 아닌 거에요. 나의 전부가 아니고 나의 기쁨이 아니고 소망이 아니에요. 그러
면 예수님이 오히려 부담스럽고 메시아를 멀리하고 싶은 겁니다. 메시아가 내 것이 되지 못
하면 나의 기쁨이 되지 못하면 그냥 멀리 하고 싶어요. 자기 것이니 자랑하고 싶고 증거하
고 싶고 외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입니다.
선생은 정말 흠없이 완전히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결혼도 안하고 살았습
니다. 오직 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시죠. 그러나 결혼을 하기 싫었기 때문에 결혼을
안한 것은 아닙니다. 짝사랑 하던 여자도 있었습니다. 3년동안 많이. 결혼하면 여러 가지가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사랑으로 결혼을 안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들었습니다.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배우자가 밥도 해주죠. 속상할 때 이
야기하면 풀어주죠. 아플 때 나를 도와 줄 수 있죠. 애기도 낳아 살죠. 외롭지 않게 해주죠.
효자손이 없어도 등 간지러울 때 긁어주죠. 옥수수통 없어도 피곤할 때 마사지 해주죠. 또
밤중에 너무 물먹고 싶은데 '물 좀 떠다줘' 할 수 있죠.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부침개도 부쳐
주죠. 나는 바쁠 때는 밥을 안 먹고 쌀을 볶아먹으니까 또 내가 바쁘면 쌀도 볶아주죠. 결
혼하면 이렇게 좋은데 결혼을 안했습니다. 팔방미인들이 눈앞에 와서 결혼하자고 하는데도
정말 예수님을 사랑해서 안하겠다고 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100% 사랑했습니다. 단 0.1%도 빠짐없이 정말 사랑했습니다. 진짜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듯이.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는 성자
본체를 몰랐습니다. 그래도 구세주 예수님만 보고 결혼을 안 하겠다고 결심하고 오직 예수
님만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모시고 살면 사실 외로워요. 왜? 영이니까. 영이니까 말도 잘 안통해요.
차라리 육신이 있는 벙어리가 나았습니다. 수화로 통하면 되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가끔 나
타나시고 또 기도를 깊이 해야만 나타나셨습니다. 혹은 극적으로 이럴 때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산에서 기도하다가 먹을 거 없고 추워서 집으로 도망쳤을 때. 그제야 나를 쫓아오셨습
니다.
사람이 육적으로도 희망이 있어야 되는데 당장 뭘 먹고 살아야 될지 모르겠고 인생 앞날
걱정되고 당장 너무 춥고 배고팠습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해서 산의 칡뿌리를 캐먹을 정
도였으니까요. 그런데도 계속 기도만 해야 되니까요.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산에서 집으로 도망을 와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번은 선생이 도망을 치고 횟골(현재 선생님 자화상 바위 있는 쪽)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나
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게 해준 것이 없고 너무 고생만 시키니까 민망하여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춥다고 하는데도 예수님은 불도 못 피워 주셨습니다. 영이니
까. 차라리 휠체어에 탄 사람이 낫죠. 영이라 온 몸이 멀쩡하고 수족이 멀쩡해도 영이니까
사랑하는 자가 추워해도 나무 하나 가져다가 불을 붙여 주지 못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입고 있던 옷을 보니까 안빨아서 너무 더러웠습니다. 내가 신부인데 도망쳤으니까 신랑인
예수님의 옷을 빨아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옷이 더러운 것이었습니다. 그걸 보니까
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모질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너무
배고프고 추워서. 그래서 애써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참으로 생각이 깊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 같이 살면 참 좋은데 그런데 걱정이 되는 것은 예수님은 메시아니까 내가
예수님에게 심부름을 시킬 수도 없고 화난다고 해서 분풀이 할 수도 없고 만왕의 왕 예수님
이니까 말도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부침개 좀 부쳐주세요 할 수가 없고, ‘나 예수님보고 결
혼 안했는데 여자 대신 나에게 뭘 해줄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혼날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께 뭘 하나 부탁할 것이 없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탈이 났어요.
설사가 막 나는 거에요. 화장실에 갔는데 휴지가 없는 거에요. 이 때 결혼한 아내에게 부탁
한다면 발바닥에 불이 나게 와서 휴지를 갔다 줄텐데. 예수님은 구세주라서 사랑해서 같이
살아도 이런 걸 시킬 수가 없지 않습니까. 혹여 해주신다 해도 영이니 휴지 한 장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만일 결혼해서 애기를 낳는다면 애기가 두 살만 되더라도 휴지는 가져다 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한거죠.
만일 짐이 딱 세 개가 있는데 옮겨야 되는 거에요. 혼자는 두 개 밖에 못드니까 차에서
두 개 짐을 들어서 집에 갔다 놓고 다시 와봤더니 하나를 누가 가져간 거에요. 아기가 있다
면 가족이 있다면 그 짐 하나를 지켜줄 텐데요.
그래도 메시아는 영혼을 구원시켜서 천국에 가게 해주니까 메시아 딱 하나 보고서 결혼하
지 않고 예수님만 보고 살았습니다. 결혼을 안 하고 산다는 것은 보통 각오가 아니었습니
다. 어떤 제도 속에서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주교는 제도 속에서 결혼을
안하죠. 어떤 제도 속에서 결혼을 안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없어서 결혼을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개신교로 바뀌었을 때는 또 결혼을 해야 목
회를 할 수 있어요. 문제 생길까봐 결혼을 꼭 시킵니다. 세상의 이런 모든 눈초리를 이기면
서 결혼을 안해야 되는 거에요.
여러분, 선생님의 상황을 한번 보십시오. 이런 걸 다 견뎌야 됐습니다. 제도 속에서 결혼
을 안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현재 기독교의 제도를 이겨가면서도 결혼을 안해야 되요. 그런
데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이게 참 진실인데요. 하나님이 아시고
성자가 아십니다. 외쳐야 됩니다. 그래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신부가 되서 살았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냥 구세주
나를 구원하는 자로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구세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결혼을 안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사랑하니까 오직 예수님만 모시고 살려고 결혼을 안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역사가 일어났느냐, 결국 이렇게 후회 없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산 것이 전능하
신 삼위 일체 성자를 모시고 산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에게는 성자 본체 인봉은 엄청난 것 중에 하나, 최고의 인봉이었습니다. 이
모든 역사가 결국 성자 본체, 삼위 일체를 향해 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 엄청난 영광을 누
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자 초림 때, 즉 신약 때 성자의 육 성자의 분체이며 메시아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한 것이 그를 보낸 성자를 사랑한 것이 되었죠. 그래서 결국 어떤 역사를 맞게 되었느
냐. 성자의 재림역사의 성자의 재림을 가장 먼저 맞고 땅에서는 하늘 앞에 첫 번째 신부로
부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영, 휴거의 영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늘 선생이 성자를 어떻게 모시고 사는지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매일 매시간 오
직 사랑의 대화입니다. 오직 영광입니다.
섭리 사람들이 말을 안들어서 너무 속상하게 할 때면 사실 스트레스가 엄청납니다. 그래
도 인상을 쓰면 내 본래 성격이 솟아 오르니까 성자 앞에는 인상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오
직 사랑의 대화로 풀어나갑니다.
이 역사를 만나서 이 시대를 따르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은 성자의 신부 맞습니까? 맞다
고 아멘 크게 외치는 사람은 휴거에 자신이 있거나 없거나 일단 이 역사가 휴거의 역사임을
아는 사람들이에요. 신부 역사임을 아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성자는 누구고 이 시대 보낸
성자 육신은 누구인지 아니까 이 역사는 정말 기성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또 여기서는 아멘 하지만 돌아가서 말하라고 하면 못 말해요. 그래서 앞으
로 섭리사는 교역자들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으로 성자 본체 분체, 휴거, 재림, 이것을 가르쳐
주어라. 집에서 본인이 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인정이 된다는 거에요. 지금은 아멘 하
지만 돌아가면 또 몰라요. 그러니까 헷갈리는 거에요.
그러니 여기서는 아멘하면서 눈물을 흘려요. 주님을 보았다고 하면서. 그래놓고 '기성과
뭐가 다른지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면담하면서 '너 지금 나 놀리
니' 했습니다. '그 때 너 분명히 눈물 흘리면서 주를 보았네 하지 않았니. 니가 본 주님은
누구니. 그거 먼저 물어볼게.' 그랬어요. '저의 깨달음은 하나의 꿈에 불과 한 것 같아요'라
고 하는 겁니다. 정말 생명을 탓할 것이 아니라 가르치자.
선생님이 우리를 시대 선고를 받으시고 5년을 펜으로 가르치고 계시거든요. 사실 이거 미
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앉아서 쓰실 것 같죠. 엎드려서 쓰신단 말이에
요. 알아야 되요. 앉아서 쓰지 않습니다. 너무 좁아서 책상을 안 둔단 말입니다. 그 정도는
알아야죠. 5년 동안 우리가 얼마나 휴거에 대해서 성령 역사에 대해서 못 깨달았어요. 성자
에 대해서 분체에 대해서 얼마나 못 깨달았습니까. 5년을 포기하지 않구요, 더 말씀의 양을
늘려 가면서 매일 새벽 잠언을 보내면서요. 아직도 못 보낸 말씀이 수두룩해요. 제가 증거
하죠. 3명이 꼬박 선생님이 쓰신 글을 받아서 타자로 옮겨도 몸살 난다. 그 정도로 가르칩
니다.
우리도 그 정신을 받아서 먼저 깨달은 사람들은 외쳐야 되요. 생명들이 모른다고만 하지
말고 알 때까지 전해주면 되잖아요. 포기는 이르다는 거에요. 나도 몰랐으니까. 매일 조는
사람들 보면 안타까워서 가르쳐 줘야 돼요. '저거 꿀밤을 한 대 줘.' 하지 말고 진짜 가르쳐
줘야 됩니다. 말씀의 꿀밤을 줘야 되요.
여러분, 성자의 신부 맞죠? 성자의 신부가 맞습니다. 신부라면 신부의 간판만 가지고 있
지 말고 정말 신랑 되신 성자를 모시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결혼해서 사랑 때문
에 살듯 살아야 되요. 그래야 휴거의 영이 되어서 땅에서 육신이 성자와 같이 살듯이 천국
에서도 영이 천년동안 성자 모시고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여기서 해야 되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휴거 때를 맞아 성자의 신부가 되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시대 휴거
의 영이 되서 땅에서도 신부로 살고 천년 혼인잔치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살듯
해야 된다. 그런데 뭐라고 말씀 하셨냐 하면, 천년 혼인잔치가 끝나면 그 후에 혹여 상황이
달라지더라도 성자와 같이 살게 된다. 천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아요. 지금
빨리 만들어라. 지금 죽기 전에 땅에서 해 놔라. 죽은 후에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아느냐. 천
년 혼인잔치는 휴거 때를 만나서 휴거된 영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천년에 딱 한 번의
혜택이 있죠. 천국에서 천년 휴거 혼인 잔치를 할 수 있는 대상들은 천년 성약 역사 중에
딱 한기간입니다.
천국이고 그 어디고 안 맞으면 못삽니다. 하나의 대학도 그렇게 학교가 안 맞고 과가 안
맞으면 기어코 그만둬요. 안 맞으면 미치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천국이랴. 집도 안 맞으면
뛰쳐나오는데요.
천국, 사랑의 세계니까 사랑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거기서 살 거에요. 거부반응 일어나서.
천국은 어떤 세계인지 아십니까. 특히 천국 황금성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신랑으로 모시면
서 사랑의 주체로 모시면서 살잖아요. 매일 사랑이에요. 그런데 사랑이 없는 사람이 거기
가면 거부반응이 일어나요. 심지어 한국에서 좋다는 김치도 먹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부반
응 일으킵니다. 하물며 천국은 사랑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가서 살 수 있겠어요. 안 맞아서
못산다는 거에요.
성자 마음, 성자 체질로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 휴거 되는 것은 뜯어 고치는 거에요.
뜯어 고쳐서 나를 만드는 거에요. 성자의 체질로 성자의 마음으로 사랑덩어리로 다시 만들
어야 천국 가죠. 천국은 매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영광 돌리면서 사랑하며 사는 곳인
데 지금 여기서도 안 맞는데 어떻게 할거에요.
아까 한마음으로 찬양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왜요? 금요일 체질이 이렇지 않으면 못
견디는 거에요. 지금 금요일 체질도 핏대 세우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사람이 있고 이 분위
기를 못 견디는 사람이 있어요. 왜 눈이 꼭 튀어나올 정도로 해야 되는 것이냐. 그냥 조용
히 하고 갈 수는 없는 것이냐. 체질이 안 맞으면 불금이 불금이 아닙니다. 안 맞아서 싫어
요. 이것도 이런데 천국은 도대체 어떻게 가서 산단 말입니까.
땅에서 육신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천국에서 영도 한다. 모르면 와닿지 않고 모르면 부
담스럽고 모르면 싫다. 가르쳐줘야 된다. 그리고 배워야 한다.
좋아서 가야죠. 힘들어서 가면 안됩니다. 천국은 힘든 세계가 아니에요. 끌어서 온 세계가
아니에요. 천국에서 '야~ 오늘 하나님께 가자고~' 할 수가 없어요. 천국에서도 그 꼴 볼려
면 천국 가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체질이 안맞으면 못산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오늘 하나님께 기도드리자 영광 돌리자 하는데 혼자 자고 있고 그러면
발로 차서 깨울 수도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요. 못 간다는 거에요. 누가 끌어서 가는 세
계가 아니에요. 좋아서 영광돌리고 좋아서 사랑하고 그런 세계가 천국이죠.
섭리 역사 이 땅에서 지상천국 이루어져야 천상천국 이루어진다. 이 ‘지상천국, 천상천국’
도 사람들이 '지상천국 좀 이상한 거 같애' 합니다. 우리 노래하잖아요. '뜻피는 섭리사에'
에 지상천국이 나왔거든요. 저희 교회 한 신입생이 지상천국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면서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구요. 그런데 여러분, 별 말이 아니에요. ‘지
상천국 이뤄야 천상천국 이룬다. 땅에서 천국 인생 살아야 네 영이 천국 간다.’ 얘기해 주란
말이에요. '왜? 이게 지상천국 아니니.' 이러면 안된다는 거에요. 풀어주란 말이에요. 왜 지
상천국이라 하는지, 땅에서 이루어야 영도 그와 같이 변화 되서 똑같이 이루지 않느냐. '땅
에 있으니 땅을 지상이라고 하지. 땅천국, 그것도 이상하지 않니. 멋있게 권위있게 지상천
국. 천상천국은 위에 있으니 천상천국이지.' 이해 잘 되죠. 가르쳐야 되요.
섭리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육적 소망은 왜 없는가. 왜 영적 소망만 자꾸만 얘기
하는가. 지금 휴거 때니까. 지금 휴거되야 되니까 영 휴거를 강조할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섭리사 36년 오면서 영휴거를 이렇게 강조한 적은 처음이에요. 영휴거 때니까요.
가을이 왔으면 빨리 빨리 추수하라고 하지 물주라고 안 그래요. 추수하라고 하면 '왜 과
일나무가 추수 소망만 있습니까' 이런다니까요. 이거랑 똑같아요.
영적 소망은 추수 소망이다. 영적 소망은 영을 거둬들이는 추수 소망이다. 추수 때니까
추수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당연히 육적 희망이 있죠. 육적 희망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삽니까.
육적 희망 뭐에요? 정말 육적 희망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세요. 저는 내 영을 만드는 과정
입니다. 지금 저는 과정이 육적 소망 전체에요. 모든게 다. 여긴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
고 다 들어 있다. 그러나 육적 소망의 기본은 돈과 명예만이 아니라 내가 즐거운 것이에요.
내 육이 즐거운 것이 육적 소망 아니에요? 내 꿈을 이루는 과정이 육적 소망 아닌가요? 육
적 소망 당연히 있죠.
또 하나의 육적 소망, 주를 만나는 것. 주가 영이야. 그가 영으로만 나타나시는 게 아니니
까요. 그래서 만날 수 있어서 육적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죽었어요. 진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죽은 거에
요. 그런데 돈하고 재산만 남기고 갔어요. 그러면 '돈과 재산을 남겨놓고 갔네. 육적 소망이
영원하다' 이럴 거에요?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이런 여자는 참 무서운 여자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면 돈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매일 곡하면 산다니까요. '나는 너 없
이는 못살아. 너 때문에 이렇게 살았는데, 육적 소망이 하나도 없어.' 왜? 육이 죽었으니까
요. '돈만 남겨놓고 가. 육적 희망이야' 하는 사람은 가식으로 사는 사람이죠. 물질에 빠진
인생이죠. 너무 없어도 안 되겠지만요. 실질적으로 기본은 그런 것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자를 통한 육적 소망은 사랑하는 자와 같이 사는 거죠. 그게 육적 소망이지 사
랑하는 자가 남기고 가는 재산은 너무 아니잖아요. 그럼 육적 소망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사
람들은 너무 행복하고 좋게요? 아니지 않습니까.
주가 살아있어서 좋고 성자는 영이지만 그 육을 통해서 볼 수 있으니 육적 희망이 넘치고
또한 내가 육이 살아있으니까 내 영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잖아요. 과정이 희망인 거에
요. 우리는 과정이잖아요. 희망을 이룰 때는 과정도 있고 결론도 있습니다.
과일나무 보세요. 과정은 과일나무를 키우는 것입니다. 과정 가운데 기쁨이 있어요. '얘를
잘 키워서 열매를 맺어야지' 그래서 농부가 열심히 물을 뿌려주고 퇴비를 주면서 관리해주
는 거에요. 벌레도 잡아주고. 그게 육적 희망인거에요. 과정의 희망이 있으면 결국 결과에
희망이 있죠. 영적 희망은 열매를 얻는 희망이다.
휴거도 똑같습니다. 과정도 좋은 거에요 우리 과정 없어요? 과정 가운데 낙을 누리며 가
는 것이 육적 희망이에요. 과정 가운데 돈이 진짜 희망인가 하는 인식을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공부, 내가 하고 싶은 걸 육적으로 다 하는 게 육적 희망으로 알고 있어
요. '내가 하고 싶은 걸 주님이 다 하게 해주신다면 난 육적 희망이 있는 섭리사라고 생각
한다.' 말이 안되요. 모순이 많습니다.
육적 희망은 과정의 희망을 말합니다. 내 육신이 살아있으니까 과정가운데 나를 만드는
희망이 있는 거에요. 그게 육적 희망이죠. 그러다가 결과는 육의 노력, 수고, 모든 것을 휴
거된 영으로 열매를 얻는 거에요. 이것이 영적 희망입니다.
과연 육의 소망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걸 다하는 것인가. 그럼 정말 하고 싶은 거
다하라 하고 보내면 이 사람은 육적 희망, 영적 희망 다 잃어버립니다.
정말 우리가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인식이 무섭다. 인식이 잘못되어 있으니 성자가 깨닫
게 해주셔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다. 우리 SS '난 육적 희망이 없어, 섭리사 살면서 너무
구속이 심해. 저 TV 하나를 못봐.' TV 보는게 육적 희망이라면 너무 우리 인생이 안타깝지
않나요.
휴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육적 희망 영적 희망을 동시에 누리면서 가는 것
이 섭리역사의 희망입니다. 육으로 만든 모든 과정이 영으로 다 간다는 거에요.
저금한 모든 게 이자가 백배 붙는다는 거에요. 희망이다. 은행에서 희망은 이자다. 돈을
넣었는데 이자가 없는 거에요. 왜 돈을 넣겠습니까. 이자가 많으면 희망 아니겠습니까. 그러
니 투자하는데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잖아요. '은행에 빠듯하게 매일 적금 부어야 돼. 육적
희망이 없어.'라고 하는 사람 있나요. 모순이 있지 않나요. 자기가 희망으로 적금을 부으면
서 희망이 없다는 거에요. 사람은 모순이다. 모순이 너무 많다. 우리는 실질적인 육적 희망
도 있잖아요.
육은 무익하다 하는 이유를 깨달으란 말이에요. 육은 무익하다 하니까 '육은 다 필요없
어.'하면 영은 육신이 필요한데 어떻게 합니까. 육은 무익하다 하는 것은 결과를 두고 말하
는 것이죠. 쪼개라. 쪼개서 보는게 인생의 큰 비밀이고 인봉이다. 결과로 봤을 때 육은 죽으
니까 무익하다는 것이지 과정으로 봤을 때는 육은 정말 위대하고 필요하다.
뭘 놓고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에요. 땅에서 보면 분체가 엄청 중요하다. 하늘에서
보면 본체가 더 중요하다.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 가운데 선생 역시 육적 희망, 배고픔이 걱정이었지만 예수님만 너무나 사랑하며
사니까 성자를 맞이하고 재림역사 맞이하고 부활의 영, 휴거의 영, 신부로서 제일 먼저 됐
습니다.
한번은 성자를 부르니까 성자가 '제발 부르지 마' 이러는 거에요. 성자는 무슨 뜻으로 '제
발 부르지 마' 하셨을까요? 객관식이었으면 1번 ‘바빠, 부르지 마.’ 2번 ‘너는 왜 사람 부르
듯 신을 부르니, 부르지 마.’ 3번 ‘내가 너 왜 나 부르는지 뻔히 다 안다, 그러니 부르지
마.’ 4번 ‘너 기어이 내가 대답해야 말할래, 너 나 옆에 있는 거 몰라? 너가 안 불러도 옆에
있으니까 이야기해. 늘 옆에 있으니까.’ 답은 4번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건빵을 나눠 드릴까요? 건빵이 왜 맛있어요? 주는 사람이 다르잖아요.
선생님이 꼭 간증하라고 하신 게 있아요. 제가 4학년 때 우리교회 선생님이 300원짜리
빵빠레 아이스크림을 사주셨어요. 저는 우리교회 주일학교 선생님이 너무 싫었어요. 한 번
제 동생에게 소리를 지르셨거든요. 제가 기성교회 다닐 때 대장을 많이 했는데 교회선생님
이 빵빠레 사주시면 애들 인솔하면서 버리라고 했습니다. 안 버리면 안 놀아주니까 버려야
되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주는 사람이 너무 싫어서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사주셨는데
뭘 사주셔도 다 버렸어요. 주는 사람이 너무 싫어서요.
저는 떡을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누가 떡을 주면 그렇게 떡이 맛있더라구요. 나는 안줄까?
이래요. 누가 주냐에 따라 다른 거에요. 내가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떡을 받고 싶은 게 아
니라 마음을 받고 싶은 거에요.
이런 게 즐거움이고 기쁨 아닌가요. 싫은 사람이 뭘 갖다 주면 너무 싫잖아요. 좋은 사람
이 뭘 주면 그게 맛있어서가 아니라 ‘나 정말 받고 싶은데, 진짜 주면 좋겠고’ 그렇잖아요.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기 마음이 중요해요. 좋아야 되요.
성자는 말씀하셨어요. "너 기어이 내가 대답해야만 말할거야? 나 항상 옆에 있으니까 그
냥 말해. 왜 불러. 그냥 말하지. 니가 말하면 니 귀로 니 말이 들리잖아. 나 항상 네 옆에
있다. 니 귀가 내 귀다.“
'얼마나 붙어있는데요?' "네 살과 뼈가 붙어 있듯이 붙어있다."
그러고도 선생은 또 성자를 불렀습니다. 왜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불렀을까요? "사랑하니
까" 부르지 말라고 하는데 정말 부르고 싶어서 성자를 부르는 것이 아예 뇌 체질이 되고 몸
체질이 되어서 안 부르면 못사니까 그래서 또 불렀습니다.
스승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한마디 더 하면서 스승 시범을 보이고 마치겠습니다.
참 스승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죠. 인생을 아무나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아무나 사
하는 것이 아니구요. 몰라도 구분은 해야 됩니다. 구분하려면 제대로 알고 확실하게 구분해
야 되겠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비슷합니다. 뇌와 생각의 차원이 다 비슷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살기 때문에 거기서 거기다. '너 희망이 뭐니?' '잘 먹고 잘 사는 거죠. 좋은 차 타고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집 살면서...' 그게 만연해요. 다 비슷해요. 이건 다르지 않습니다. 섭
리사에서도 누구의 말을 들어도 다 비슷합니다. 세상 사람들 마찬가집니다. 사람들 만든것
을 보면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비슷합니다. 여러분 우주 봤어요? 별 작품? 그 작품을
사람은 못 만들어요 다 거기서 거기에요. 사람이 만드는 것은 기술이 좀 더 발전 되었다 뿐
이지.
요즘 스마트폰 사용하잖아요. 스마트폰도 어디가 하나 월등하지 않고 비등비등하죠. 그래
서 경쟁을 하죠. 정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월등한게 하나 나왔어요. 그럼 그 회사는 독
주를 할 것입니다. 작품을 봐도 만든 걸 봐도 다 비슷해요. 사람 말을 들어봐도 다 비슷합
니다. 그들은 참 스승이 하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학문의 스승이라 많이 배워야 한다. 인생의 스승이 아니라 학문의 스승이니까 세상의 스
승이니까 돈 많이 버는 법은 이것이다. 말 잘하는 법 가르쳐주고요. 사람들은 다 비슷합니
다. 보다 더 구도가 좋은 것 뿐입니다.
이와 같이 각 종교의 교리를 들어보면 다 비슷합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어요. 땅의 것을
배우기 때문에 한계 상황 주관권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것을 배우면 달라집니다. 절대 신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고 깨우쳐주시고 성
령님과 성자가 가르치며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배운자는 다르죠.
성자께 배운 자는 말이 다릅니다. 땅과 하늘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것을 똑같
이 배웠어도 사람을 보면 다릅니다. 이 사람들은 서로 하는 말이 비슷하니 놀라지 않아요.
그런데 그 중에서 이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성령님과 성자가 임재하여서
시대의 뜻을 펴는 자는 다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신의 차원 신의 생각 신의 정신으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
리고 삼위는 그와 일체 되어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펴나가십니다. 안 가르쳐 주면 모
르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알죠. 그리고 그 터전위에서 자꾸 깨
달으니까 더 많이 알게 되죠.
선지자, 메시아 각 사명대로 하나님은 깨닫게 해주십니다. 사명을 해야 되니까. 가르쳐 주
지 않으면 사명을 못하니까. 메시아 사명인데 구원자 사명인데 인생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거에요. 그러면 뭘로 사명할 거에요. 죄사할 권세가 없는 거에요. 그러면 뭘로 사명할 거에
요. 사명을 해야 되기 때문에 성삼위가 임재해서 역사를 펴야 하기 때문에 가르쳐주십니다.
그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만 전하면 안됩니다. 그를 믿어야 되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만 듣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었어요. 예수님을
믿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고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만 가져다가 ‘예수님은 나도 몰라
내가 아들이야’ 똑같이 얘기하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들의 말을 듣는 자는
권세를 얻을 것이다. 영생을 얻을 것이다.’ 아들이 됩니까? 지옥에 가죠.
그가 전하는 말, 하나님이 임재한 자, 성자, 성령이 임재한 자, 사명을 받은 자의 말을 듣
고 따라야 됩니다. 고로 그를 발견해야 되요. 그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역사
성약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누가 해요? 하나님이 하세요. 성령님, 성자가 하십니다. 삼위가
먼저 본체가 오고 땅의 한사람을 세워서 그를 통해 하십니다.
그 시대 모든 사람 중에서 딱 한사람만 세워요. 두 명이 아니에요. 딱 한사람 세웁니다.
신약 2천년 중에서 딱 한 사람이었어요. 하늘이 임재한 자. 나머지 목사들 다 예수님의 제
자들이에요. 예수님과 어떻게 동급 취급을 하겠습니까. 예수님만큼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그 한사람에게만 시대의 것 하늘의 것을 가르칩니다. 고로 그가 가르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이 가르치는 것과 전혀 비슷하지 않습니다.
그가 바로 온 지구 세상의 참 스승입니다. 그가 하는 말씀이 참진리 입니다. 그래서 참
진리는 그 시대에 단 한곳에서밖에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두개도 아닙니다. 말씀만 갖다
가르쳐도 되지 않습니다. 그를 발견하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비밀은 하
나님만 아시죠. 땅의 보낸 자도 다 모릅니다. 그러나 그래도 지구 세상에서 제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를 스승이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도 자신을 스승이라 했습니다. 하늘의 스승을 말한 것입니다. 그냥
하늘을 잘 가르쳐 주는 자, 아니에요, 하나님이 임재해서 메시아의 사명을 받고 죄사함을
해주며 용서해주며 인생을 구원하는 자,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선생,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오직 시대의 한사람을 통해서 시대 구원의 뜻을 펴십니다. 예
수님 때는 초림, 이제는 성자가 다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성
자가 다시 오셨죠. 역시 육신이 필요합니다. 그 육신이 누구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근본자가 아닙니다. 삼위 일체 근본자, 구원의 근본자, 메시아의 근본은 성자
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땅의 쓰는 자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다
른 것은 사명이 다릅니다. 그는 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적 차원의 지혜를 가졌습니다. 신
이 임했기 때문에. 신이 임해서 진리를 외치니까 신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1장의 말씀처럼 지혜와 모략의 신이 임해서 생명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
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 시대 성자의 육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누구
를 통해 나타나실까. 다시 오실 것은 맞는데 누가 오실 것이며 누구를 통해 오실 것인가.
그 말씀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섭리 역사 모든 자들이 정확하게 다시 한번 알아야 합니
다. 그러면 능력이 달라진다. 힘이 달라진다.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했죠. 분체 깨달았다. 분
체를 깨달은 자는 능력이 오게 되요. 삼위 일체를 깨달으면 삼위일체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
에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는 창조주 하나님과 천모 성령님, 메시아 성자 본체를 제
대로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성령님의 이름, 성자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행한대로
될 것이다.
예수님 때도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고 다녔을 때 한 사람이 말했죠. 저들이 하는 것이 정
말 하나님이 하는 일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이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무너뜨릴 것이고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면 세워질 것이라. 그러니 두어라. 욕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하
나님의 역사가 아니되겠느냐. 욕을 안하고 칭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데 맞는게
되겠느냐.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이냐. 이 시대 섭리역사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가르쳐야 되요.
그래서 예수님 때 상황을 비유로 들고 있습니다.
이는 성삼위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으며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의 주인이 되어서 인생들
을 최고의 천국으로 이끌어 주는 자입니다. 천국의 주인이 아니라 이끌어 주는 자. 또한 영
이 영원히 존재하도록 휴거의 길을 알려주고 가르쳐 주는 자. 그래서 우리는 이를 참스승이
라고 부릅니다. 인간에게 최고의 이상을 가르쳐주죠. 만일 자기를 믿고 따랐는데 그 영이
사망으로 가고 지옥이나 음부 무저갱으로 가게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구원자가 아니죠.
스승도 아닙니다. 반드시 구원받게 해주어서 영을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해주는 자가 스승
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스승을 따르고 있습니까. 정말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쉽게 포기할 게
아니에요. 사람이 자살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의 많은 사
람들이 힘들어서 자살을 다 할거에요. 그만큼 사람이 생명 보존력이 뛰어나요. 막상 자살하
는 사람도 누가 뒤에서 퍽 치면 '아이고, 나 죽을 뻔했네' 그런다고 하지 않습니까.
구원자를 알고 내 영을 알고 구원자가 누구인지 알면 내 영의 생명을 쉽게 포기 하지 않
는다는 것입니다. '나 휴거 포기해야지.'라고 안한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로 그 영을 가
게 해주는 스승을 여러분은 만나지 않았습니까.
잘못된 신을 가르치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는 우상의 스승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제일 싫어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 비진리를 제일 싫어합니다. 그런데 어떻
게 그들을 스승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뇌의 차원이 낮으니까 그렇습니다.
차원을 높여라. 차원 높은 말씀을 듣고 차원을 높여라. 육적 희망 영적 희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분별하며 차원 높은 세계를 따라라. 네가 그 세계를 오면 발견하리라. '난 성자가
안보여, 주가 안보여' 왜 그럴까. 성자는 높은 차원에 계시는데 내가 낮은 차원에 있으니까.
올라와라. 다음 단계로 올라오면 보일 것이다. 차원을 높여라 했습니다.
그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자기를 믿고 따라오게 하지 않습니다. 영원하신 삼위일체를 알
게 해주십니다. 휴거의 길,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토록 좋아하시는 진
리만을 전하십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야 성령 충만합니다.
성자 본체 분체 인봉,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엄청난 비밀입니다. 그로 인해서 성경의
다른 모든 비밀들까지 파헤치게 됩니다. 그 인봉을 왜 뗐을까. 제발 알아라. 본체와 분체를
알아라. 그리고 그 힘과 능력 받고 살아라. 이 말씀 전하면 안돌아올 사람이 없으니 전하라.
안들으면 또 전하라. 그리고 기도해주어라.
이 말씀에 대적할 자 없다고 했습니다. 살아계신 삼위일체를 정확하게 증거하기 때문에
삼위일체는 이 말씀에 대적하는 것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도우십니다. 함께 하십니다. 삼
위가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또한 구원자를 나타내기 때문에 모순이 없습니다. 신과 인간을 쪼개며 본체와 분체를 쪼
개며 하늘과 땅을 쪼개는데 어디 모순이 있겠습니까. 그를 믿고 삼위를 믿으니 사탄이 틈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고 외치면서 살아야 언제라도 힘이 들 때마다 그가 잡아주면 '그가 그가 아니
야. 그는 그지. 그러니 내가 그 힘을 받고서 휴거의 길을 가야지. 포기하지 말아야지.'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니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에게 부침개
하나 부쳐달라고 하지 못하지. 그래도 메시아니 따라야지 이건 제대로 아는 자다. '저 힘들
어서 안가겠어요.' 못깨달은 자. '그래도 가야지' '그럼요 가야죠. 내가 당신이 누군지 아니.
내가 따라갑니다.' 그래야만 휴거의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휴거, 재림에 있어서 왜 이렇게
깨닫지 못하고 왜 이렇게 더딘 것일까. 속이 탄다 애가 탄다 연구하기 바랍니다. 왜 휴거의
길을 자꾸 멈추려고 하는 것인지. 자기 자신을 깨닫길 바라겠습니다.
성령역사 5주년, 성령이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 성자 본체와 분체를 깨닫게 하는 일을 하
셨습니다. 그를 깨달아야 그가 하는 모든 말에 힘을 받고 생기를 받아 다시 일어나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쓰러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2014년 5월, 이제 6월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6월, 7월 휴거 200선 다 오릅시다. 왜 못 올
라요. 전체 교회에서 각자 더 체크하고 힘 있게 가르치는 해가 되야 됩니다. 그리고 8월 9
월 300선으로 올라야죠. 교역자 책임 질 거에요. 선생님 함께 해주실 겁니다. 포기하지 마
시고 높이 오르고 분석하고 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를 알고 휴거의 길
을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성자는 그 육을 통해서 말씀합니다. "포기하지 마. 인생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니다. 귀하게 창조했으니 멈추지 마라. 말씀 줄게. 도와 줄게. 그러니 네가 행하면 된다.
포기하지 마라"
주를 알았네. 난 이제 주를 알았네. 진정으로 고백해야죠. 그래야 힘이 솟아나지 않습니
까. 우리의 모든 생각들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 깊이 새기고 주를 깨닫는 시간, 주께 고백하
는 시간, 주께 자기의 인생을 맡기는 시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심하는 시간, 포
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시간 가져야겠습니다.
난 이제 알았네. 더 이상 의심치 않으리. 주님을 만나고 내 인생을 맡겼네. 가장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육신도 영도. 말씀으로 진리로 오직 6천년 만에 처
음으로 선포되는 진리의 말씀, 이 비밀의 말씀으로 여러분들을 이끌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