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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4.05.25 (일)

140525 주일말씀 자기와 싸워서 이기고 성자를 차지해라

선포일
2014.05.25 (일)
성경 본문
로마서 7장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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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525-주일말씀_자기와 싸워서 이기고 성자를 차지해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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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5일 주일말씀> 자기와 싸워서 이기고 성자를 차지해라 본 문 로마서 7장 21-23절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실한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 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마지막 주 주일은 특히 이 달에 새로 오신 분들과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을 위해 말씀하며 예배 드리는 주일입니다. 새로 오신 분들 환영합니다. 그리고 말씀 듣고 있는 분들, 끝까지 잘 듣기 바랍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관리하는 여러분들도 수고 많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귀와 마음을 열고 이왕 배우는 것 ‘제대로’ 배워야 하겠고, 가르치는 사람은 성자와 주의 심정을 가지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제대로’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운동할 때도 몸을 제대로 움직여야 움직이는 만큼 몸에 효과가 일어 나지요? 제대로 하지 않으면, 수백 번을 반복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집중해서 제대로 해야 행한 만큼 얻게 되고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말씀>도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집중해서 들어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자기에게 말씀하실 때 들리 고, 깨달아지고, 느껴집니다. ‘생각하는 것’이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생각하면, 그 순간 우리가 하나님 과 성령님과 성자를 ‘쳐다보는 것’이 됩니다. 그 순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선연히 <마음>으로 깨달아지고 느껴집니다. 믿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생각하고 찾으면서 <말씀>에 귀 를 기울임으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쳐다보고, 사랑하고, 만나는 시 간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자기와 싸워서 이기고 성자를 차지해라.’라는 주제로 성자 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시작> 새벽에 기도하는데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싸워서 이기지 않고서는 차지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기본 제스처) 싸워서 이기지 않고서는 <성자>도 차지할 수 없고, <시대 말씀>도 차지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섭리역사>도 차지할 수 없고, <구원자>도 차 지할 수 없고, <구원>도 차지할 수 없고, <휴거>도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과, ‘누구’와 싸워서 이겨야 할까요? 먼저는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자기를 가리킨다.) 누구든지 먼저 ‘자기’라는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먼저는 자기가 허락해야 됩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들은 모두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 자’를 배우고, ‘이 시대’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태우며 말씀을 전해 줘도 첫 번째는, ‘자기’가 받아들여야 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자기’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 말씀을 듣지 말라고 방해해도 ‘자기’가 허락하면 듣게 됩 니다. 맞습니까? 두 번째로, <말씀>을 들었으면 ‘자기’가 믿고 따라야 됩니다. 물론 믿도록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자기가 계속 말씀을 밀어내고 안 믿으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시대 말씀>을 들어 봐야 ‘하나님’도 알게 되고, ‘성령님’도 알 게 되고, ‘성자’도 알게 되고, ‘이 시대’도 알게 되고, ‘구원’도 알게 되고, ‘휴거’도 알게 되고, ‘천국’도 알게 됩니다. 세 번째로, 말씀을 들었어도 결국은 ‘자기’가 행해야 말씀대로 얻 게 됩니다. 아무리 <운동법>이 완벽하고 좋아도 결국은 ‘자기’가 수고하고 노 력하면서 움직이지 않으면, 그 <운동법>은 자기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맞지요? 이와 같이 아무리 <생명의 말씀>이라도 결국은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하면서 행하지 않으면, 그 <생명의 말씀>은 자기에게 역사하는 힘이 없습니다. 노력하고 수고하고 몸부림치며 행한 자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 긴 자’입니다. * 그래서 먼저는 ‘자기’와 싸워 이겨야 <시대 말씀>을 차지하게 됩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서 <시대 말씀>을 차지한 자는 결국 <하나 님, 성령님, 성자>도 차지하게 되고, <이 시대 하나님의 역사>도 차지하 게 되고, <구원자>도 차지하게 되고, <구원과 휴거>도 차지하게 되고, <천국>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전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사랑하며 살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첫 번째로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됩니다. 이 싸움은 ‘<하나님과 성자의 생각>이 우선권이냐.’, 아니면 ‘<자 기 생각>이 우선권이냐.’ 하는 싸움입니다. (오른손을 기본 제스처 하듯 우측으로 뻗고, 왼손을 기본 제스처 하듯 좌측으로 뻗는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매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 <성자의 생각>과 <자기 생각>이 일체 되어 있다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자의 생각>과 <자기 생각>이 다를 때는 ‘성자의 생각대로 할까? 내 생각대로 할까? 성자가 원하시는 대로 할까? 아니면 내가 좋은 대로 할까?’ 하며 <자기와의 싸움>을 하게 됩니다. - 또한 자기가 하는 일이 다 <성자와 주의 일>이라도 ‘맨 앞에 성 자와 주를 앞세우고 늘~ 모든 것을 성자와 주께 묻고 그 생각으로 하느 냐.’, 아니면 ‘자기 생각대로 하느냐.’ 하는 <자기와의 싸움>을 하게 됩니다. - <자기 생각>을 <성자와 주의 생각>이라고 판단하고, 자기 생각대 로 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때 <자기 생각>이 섞였다고 판단 하고, ‘정신 차리고 아예 <성자와 주의 생각>대로 가자!’ 하기도 합니 다. → 이럴 때마다 ‘자기’와 싸워서 ‘성자와 주’를 차지해야 됩니 다. 믿습니까? (한 손 기본 제스처) 항상 <자기 생각>과 <성자의 생각>을 놓고 싸워서 ‘자기’를 이기 고 <성자의 생각>대로 해야 ‘성자’를 차지하게 됩니다. (양손 기본 제스처)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를 믿고 ‘나 성자의 신부’가 되어 사 는 너희가 ‘오직 하나님 뜻대로, 주 뜻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자기 생 각대로 사는 자가 90%다. 자기와 싸워서 <자기 생각>을 아예 다 없애고 ‘나 성자’를 차지하 고 ‘나 성자가 시키는 대로, 하나님 뜻대로’ 하는 자는 10% 정도다. 분별해라. 너희가 나의 뜻대로 한다고 하지만, 네가 알아서 100% 하는 것과, 내가 시켜서 100% 하는 것은 다르다. 항상 ‘자기’와 싸워서 이기고, <나 성자>를 차지하고 <내 육>을 차지하고 살아라. ‘자기’와 싸워서 이기고 행해야 나 성자가 함께 행한 다.” 하셨습니다. 자기와 싸워서 <자기 생각>을 싹 버리고 오직 성자가 시키시는 대로 해야 ‘성자가 그 몸을 쓰고 행한 일’이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로마서 7장 22~2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하나 의 다른 법, 죄의 법>이 <하나님의 법>과 싸워 나를 사로잡는도다.” 사도 바울은 자기 마음에 ‘두 가지의 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자기 영성대로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육성대로 하고자 하는 <죄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서 <자기 육적인 생각>이 자꾸 <하나님의 법>과 싸워 서 자기 생각대로 행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은 ‘육’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육적인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당장 <몸>이 피곤하면, 몸이 피곤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지요? 몸이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은데, <영>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육적인 생각>이 먼저 오고, <영적인 생각>은 나중에 옵니다. ‘육’을 가지고 살아가니, <육>이 먼저이고 <영>은 나중입니다. 영감이 와도 <자기 육적 영감>이 먼저 옵니다. 근본 세계에서 오는 <성자의 영적 영감>은 나중에 옵니다. 고로 늘 ‘자기’와 싸워 이겨서 <자기 육적 생각>을 제치고, <성자 의 생각>을 차지해야 됩니다. (기본 제스처) 계시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성자를 생각하며 기록한 내용’과 ‘성 자가 주셔서 기록한 내용’은 겉으로 보면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소화하여 행해 보면, <맛>도 다르고 <차원> 도 확연히 다르고, <역사하는 힘>도 다릅니다. <자기 육성과 자기 의지>도 ‘성자’에 대해서 말하고, <성자의 영 성과 의지>도 ‘성자’에 대해 말하니, 그냥 보면 비슷합니다. 그러나 지 혜로 분별하면, 염소와 양을 구별하듯 확실히 분별하게 됩니다. <전환> 항상 <성자>를 놓고, ‘자기’와 싸워서 <성자>를 차지해야 됩니다. 자기와 싸운다는 말은 수고하고 노력하고 몸부림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놓고,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 하고 행하고 일함으로 싸워서 <희망>을 차지하게 되고, <원하던 것>을 차지하게 됩니다.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수고하고, 노력하고, 고생하고, 일하면서 싸우기입니다. ★ 자기가 존재하려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잘되고 형통하려면, ‘자기와 싸워 이기기’입니다. ‘수고와 노력과 몸부림과 땀 흘림’입니 다. ‘땀’보다 더한 것이 있으니 ‘보이지 않은 심정의 눈물’입니다. (초록색 부분 : 한 손 기본 제스처) 그래서 선생은 매일 ‘나’와 싸웁니다. ‘사탄’과 싸우기 전에, ‘나를 믿지 않는 자들’과 싸우기 전에 먼 저 ‘나’와 싸웁니다. 그리함으로 ‘성자’를 차지하고 존재합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나를 따르는 자들’을 두고 매일 나와 싸우면서, 수고와 노력과 몸부림으로 땀을 흘리며 보이지 않는 심정의 눈 물을 흘립니다. 그 수고로 인해 <성자의 말씀>을 받아 ‘나’도 존재시키고 ‘나를 따르는 자들’도 존재시키고, ‘섭리역사’도 존재시키며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갑니다. (*) ‘살아 있는 자’만이 존재합니다. (한 손 기본 제스처) <육>이 살아 있어야 존재하듯, ‘성자’를 향해서, ‘하나님의 뜻’ 을 향해서 <마음과 생각>도 살아 있고 <영>이 살아 있는 자가 날마다 수 고하고 노력하고 자기와 싸워 이기면서 자기를 존재시킵니다. 그리함으로 더 나아가 ‘세상’과 싸워 이기며 존재하고, ‘사탄’과 싸워 이기며, <뜻과 목적>을 이루면서 더 힘 있게 존재합니다. ‘싸움과 노력과 수고’ 없이 그냥 한 일은 모두 ‘자기와의 싸움’ 에서 져서 한 일입니다. ‘이기고 한 일’과 ‘패하고 한 일’ 중에서 어떤 것이 큽니까? 어떤 사람은 성자와 분체를 믿고 그 말씀을 행하며 살면서도 그 일을 ‘노동’으로 여기며 힘들게 행하며 삽니다. 진실로 수고하고 노력하고 땀을 흘리며 <자기 구원과 휴거>를 위해 서 그 일을 ‘낙’으로 삼고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로 행했어도 ‘패하고 한 일’이 되어 <자기 변화>가 일어나지 않 는 것입니다. <기회>가 와도 자기와의 싸움을 하면서 수고하고 노력하고 기도하면 서 해야 기회를 ‘승리’로 이끌어 갑니다. <휴거>도 마찬가지입니다. ‘휴거의 때’를 맞아 ‘휴거의 기회’가 왔어도 자기와의 싸움을 하면서 수고하고 노력하고 기도하면서 해야 <휴 거 300선>까지 ‘승리’로 이끌어 <천국 황금성>을 차지합니다. 수고와 노력과 몸부림으로 ‘자기’와 싸워 이겨서 <성자>를 차지해 야 됩니다. 그리고 <휴거>를 차지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인생을 ‘수고와 노력 없이 사는 자’도 있고, ‘수고하고 노력하며 사는 자’도 있습니다. 결국 <자기>를 존재시키기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 는 것입니다. (‘자기’할 때 손으로 자기를 가리킨다) ‘수고와 노력 없이 인생을 쉽게 사는 자’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결국 얼마나 수고하고 노력하며 자기와 싸워서 이기느냐에 따라서 <자기 소원>을 이루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수고와 노력 없이 하는 자’가 있고, ‘수고하 고, 노력하고, 애쓰고, 힘쓰며, 심정의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자’가 있습 니다. 역시 ‘수고와 노력 없이 쉽게 사는 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얻 는 것이 없습니다. 수고하고, 노력하고, 애쓰고, 힘쓰며, 심정의 눈물을 흘리면서 행하는 자는 결국 행한 대로 <구원>을 얻고, <자기 소망>을 이루고, <휴거>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함으로 <성자>도 차지하고, <주>도 차지하고, <천국 황금성>도 차지하게 됩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노력하고 심정의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삶을 살아라. 그래야 추수 때 많은 알곡을 얻는다.” 하셨습 니다. 먼저는 ‘자기 이기기’입니다. 그다음에 ‘상대 이기기’입니다. (‘자기’ 할 때 한 손으로 자기를 가리키고, ‘상대’ 할 때 앞을 가리킨다. 손가락으로 하면 상대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이 되니, 한 손 전체로 가리킨다.) <자기 이기기>란, 자기 마음과 행실을 다스리고 주관하고 지배하여 ‘세상 헛된 것’에 자기를 뺏기지 않고, ‘이성’에 자기를 뺏기지 않 고, ‘잘못된 말’에 자기를 뺏기지 않고, ‘사탄’에게 자기를 뺏기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기는 목적>은 ‘성자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자기’와 싸워 이기고 ‘성자’를 차지하여, 성자가 자기를 딱 붙들고 하게 하면, 쉽습니다. 편안합니다. 영원한 승리의 길로 따라가 게 됩니다. <전환> <육신>은 수고하고 노력하면서 자기와 싸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육에 속한 마음>도 ‘왜 굳이 수고하고 노력하면서 싸워야 하지?’ 하며 자기와 싸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는 자기 마음대로 하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자>를 두고, ‘성자의 생각’대로 수고하고 노력하면서 자 기와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자기 육>과 <육에 속한 마음>은 성자를 자기 생각대로 대하려 합니 다. 그러니 그 말씀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자는 <영에 속한 성자의 마음>으로 성자를 대하기 원하십 니다. 그래야 ‘성자’를 차지하고, ‘성자의 생각’대로 행하게 됩니다. 매사에 매번 ‘자기’와 싸워 이겨 ‘성자’를 차지하고 행하며 살아 야 됩니다. 새벽에도 ‘자기’와 싸워 이겨 ‘성자’를 차지하고 성자와 대화하 며 교통해야 됩니다. 성자와 주를 믿어도 그냥 믿고 살면, 헛살게 됩니다. 매사에 ‘자기’와 싸워 이겨 ‘자기 생각’을 다스리고 지배하면서, ‘성자’를 차지하여 ‘성자의 생각’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행한 만큼 얻게 되고, 행한 만큼 변화되고, 변화된 만큼 휴거 되어 <천국 황금성>을 차지하게 됩니다. * 여기까지 선생이 나와 싸워 이기고 ‘성자’를 차지하여 <성자가 주신 말씀>을 받아썼습니다. 그랬더니 성자가 또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 조금 더 하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전환>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신약>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싸워서 차지해도 ‘신약’이다. <낙원>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싸워서 차지해도 ‘낙원’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싸워서 차지해도 ‘세상 것’이다.”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노력하면서 싸워서 차지해도 ‘무엇’을 놓고 노력하며 싸 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은메달>을 놓고 싸우면, 이겨도 ‘은메달’입니다. <금메달>을 놓고 싸워서 이겨야 ‘금메달’입니다. <성자>를 우선으로 하여 싸워서 차지해야 ‘금메달’입니다. <성자>를 우선으로 하되, ‘신랑으로 오신 성자’를 ‘사랑’으로 싸 워서 차지해야 ‘금메달’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마지막 섭리역사인 <성약역사>를 만나, ‘시대 보 낸 자’를 맞고, 그를 통해 <새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신랑으로 다시 오신 성자’를 ‘사랑’으로 맞아 ‘금메 달’을 차지하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중요 <구약역사>는 ‘동메달’, <신약역사>는 ‘은메달’, <성약역사>는 ‘금메달’ 격입니다. <구약역사>는 ‘자기 혼자 사는 시대’이고, <신약역사>는 ‘앞으로 오실 성자를 기다리며 사는 시대’이고, <성약역사>는 ‘신랑으로 다시 오신 성자를 맞고 사는 시대’입니다. 고로 <성약역사>로 와서 ‘신랑으로 다시 오신 성자’를 놓고 수고 하고 노력하며 자기와 싸워서 이겨야 ‘금메달’과 같은 <성약역사>를 차지하여 <천국>을 차지하고, 천국에서도 <신부급 천국>을 차지하고, 더 나아가 <황금성>을 차지하게 됩니다. <끝> 이와 같이 똑같이 <구원>을 놓고 싸워도 어떤 시대를 만나 수고하고 노력하며 싸우느냐가 중요합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중요 ‘사랑하는 자를 기다리며 사는 것’과 ‘사랑하는 자를 맞고 사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 그 차이는 ‘자전거’와 ‘차’ 차이입니다. <성약 섭리역사>는 ‘사랑하는 자를 기다리며 사는 시대’가 아닙니 다.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같이 사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섭리역사>에 왔더라도 ‘연애하며 사귀고 있는 자’가 있고, ‘사랑하는 성자를 진짜 만나서 같이 사는 자’도 있습니다. → 그 차이는 ‘차’와 ‘비행기’의 차이입니다. 또한 ‘음식을 안 먹고 보는 것’과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의 차이입니다. <끝> <섭리역사>에 와서 ‘성자와 그 육’을 맞고 살더라도, 자기와 싸워 이겨서 성자와 완전히 ‘생각 일체, 심정 일체, 행동 일체, 사랑 일체’ 되어 성자와 같이 살아야 됩니다. 지금은 ‘연애하는 정도로 끝나는 시대’가 아니라 ‘같이 사는 시 대’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중요 성자가 다시 오시어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성약 섭리역사>에 와 서 수고하고 노력하며 ‘자기’와 싸워 이겨야 ‘신부’로서 <성자>를 차지하여 <천국>, 곧 <신부급 천국>을 차지하게 됩니다. <성약역사> 기간 중에서도 ‘성자의 육이 살아 있는 기간’에 <휴거 때>를 맞고, 수고하고 노력하며 ‘자기’와 싸워 이기는 자가 ‘최고로 빛나는 구원’을 이루고, ‘최고로 빛나는 면류관’을 받게 되고, ‘최고 로 빛나는 영’이 되어 휴거됨으로 <천국 황금성>을 차지하게 됩니다. <끝> <전환> 오늘은 자기와 싸워서 이기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와 싸워서 이기려는 목적>은 ‘성자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자기’와 싸워 이기고 ‘성자’를 차지해야, 인생을 살아가면 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자기가 성자를 딱 붙들고 하게 되고, 성자도 그 육과 생각과 혼과 영을 딱 붙들고 행해 주십니다. 그러니 곁길로 새지 않고, <영원한 승리의 길, 휴거의 길, 천국의 길>로 가게 됩니다. 이 말씀을 쓰는데, 성자께서 한 장면을 보여 주셨습니다. (* 오늘의 마지막 영상입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선생이 한 제자와 함께 바위 절벽 길을 올라가는데, 처음에는 손바닥 으로 짚고 무릎으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다가 선생은 “여기에는 밧줄을 매자. 여기는 무릎으로 기지 않아도 된다.” 하고, 밧줄을 매어 그것을 잡고 보다 편히 올라갔습니다. 조금 더 가다가 “여기는 필요 없이 돌이 많이 쌓여 있어 위험하니, 모두 헐어 버리자.” 하고, 쌓인 돌을 다 헐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보다 위험하지 않고 안전했습니다. <인생길>을 가는 데 있어서 ‘성자와 주’를 차지하여, 필요 없이 위 험한 것들은 다 헐어 버리고 그가 이끌어 주는 대로 가라는 계시였습니 다. <끝> 자기 <육적인 마음>과 <영적인 마음>, 두 마음이 싸워서 <육적인 마 음>을 이기고 ‘성자와 주’를 자기 것으로 완전히 차지한 자가 ‘승리 한 자’로서 ‘성자와 일체 된 자’입니다. 그런 사람이 휴거되어 생명도 살리고, 교회도 부흥시키고, 부서도 부 흥시키고, 주의 몸이 되어 역사를 일으키며, 사탄을 멸하게 됩니다.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