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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4.06.04 (수)

140604 수요말씀 사람도 역사도 커야 된다

선포일
2014.06.04 (수)
성경 본문
마태복음 16장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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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4일 수요말씀> 사람도 역사도 커야 된다 본 문 마태복음 16장 1-4절 *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 양손이나 한 손 기본 제스처 할렐루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실한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 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 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이번 주는 ‘섭리역사 복음의 시작’을 기념하여 <알파절>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일말씀을 통해서 ‘알파절의 의미의 핵심’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모든 말씀이 다 생각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나서는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생각>에서 잊으면, 잊어버립니다. <눈>에서 안 보이면, 잊어버립니다. 외우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말씀의 핵심’을 외워야 됩니다. 그러면 그 ‘핵심’으로 인해서 ‘전체’가 기억납니다. 생각나야 행하게 되고, 행해야 변화되고, 행해야 얻게 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생각에서 잊고 사니, 안 믿고 자기 좋은 대로 사는 것입니다. 고로 <복음>을 전하여 생각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자가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며 잊었던 것을 생각 나게 해 주고, 모르는 것을 알게 해 주겠습니다. 사람들은 ‘육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육을 멋있게 만들고 가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마음의 아름다움’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고로 ‘마음’이 거칠거칠합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몸짱보다 마음짱이다.” 하셨습니다. ‘마음이 짱’이어야 ‘행실도 짱’이 되고, 그에 따라 ‘영혼’도 아름답게 변화되어 ‘영혼 짱’이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여 <성자의 마음>으로 멋있게 만들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의 역사는 ‘때’를 따라 차원을 높여 <구역사>에서 <새 역 사>로 뒤바뀝니다. 그러나 역사가 차원을 높여 좋게 바뀌어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 좋은 역사가 왔는데도 안 받아들일까요? ‘기존의 자기 삶’ 때문 에 역사가 좋게 바뀌어도 못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존에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다르면, 역사가 좋게 바뀌어 도 흡수를 못 하고 못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맞으면 ‘나쁜 것’도 받아들이고,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좋은 것’도 안 받아들입니다. <자기 마음의 체질>과 <생각의 체질>과 <몸의 체질>대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근본은 <절대 하나님의 진리>로 분 별할 수 있습니다. 고로 <새로운 말씀>, <새로운 역사>를 넣어 줄 때는 가장 먼저 ‘잘 못된 마음과 생각’부터 바로 잡아 줘야 됩니다. 그 후에 <새로운 것>을 넣어 줘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4000년 구약역사가 지나니, 하나님은 ‘때’에 따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하나님을 믿던 자들은 ‘잘못된 메시아관, 잘못된 사 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구름을 타고 눈에 보이게 직 접 올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땅’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몸을 쓰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성자와 함께 강림하셨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하나님을 믿던 자들은 <자기 마음>과 <자기 신앙의 체질>에 안 맞으니, 메시아가 와서 온전히 행했어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배척하고, 막고, 대적하고, 핍박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 신약역사가 지나니, 하나님은 ‘때’에 따라 <새 역사>를 시작하시고 <새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기성인들은 ‘잘못된 재림관’을 가지고 있기에 <자기 생각> 과 다르고 <구시대 신앙의 체질>과 맞지 않으니 아무리 <새 역사>가 시 작됐어도 <성자가 보낸 자>를 배척하고 <새 역사>를 배척하고, 막고, 이 단시하는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들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살아도 그 나름대로 잘 살아갑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체질>과 <자기 주관>을 ‘삶의 진 리’로 알고 살아가고, ‘하나님의 진리’로 알고 살아갑니다. 고로 ‘더 좋은 하나님의 말씀’과 ‘더 좋은 하나님의 뜻’과 ‘더 이상적인 역사’가 와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행하지 못합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기 전까지는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기도하고 성경을 보면서 각 교파의 지도자들이 인도하는 대로 하나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하며 각각 인생을 살아갑니다. 혹은 <자기 생각과 주관>을 내세우며 그것을 ‘삶의 진리’로 생각 하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때가 되어 <메시아>가 와서 온전한 길을 말해 주었으나, 잘못된 길을 가던 자들과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며 차원 낮게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 을 하던 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 안 받아들일까요? 자기가 가던 길에서 걸어 나와서 다시 메시아가 가르친 ‘새로운 길’을 따라가야 하니, <자기 생각과 체질>에 안 맞으 니, 오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가던 길을 그대 로 가는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 역사>를 시작하시고 <메시아>를 보내셨어도 받아들이 고 알고 따라가는 자들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새로운 구원 길>을 갑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의 체질’을 바꾸고, ‘새 역사 메시아의 말씀’ 을 듣고 행하며, ‘메시아와 일체’ 되어 살아야 자기 육과 마음과 영혼 이 온전히 바뀌면서 새로운 세계로 거듭나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메시아>가 이 땅에 나타나 ‘새 복음’을 선포하며 행해도 처음에 는 별 표가 안 납니다. <새 역사>는 한두 달 만에, 1년 만에, 2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 닙니다. 시대를 따라오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과 성자가 이끄시는 대로 해마다 행하며 나가야 ‘성’을 쌓듯이, ‘빌딩’을 짓듯이 점점 <표>가 나고, <역사>가 보이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역사>라도 가정적, 민족적, 세계적인 역사를 이루 며 한 시대가 가야 온전하게 뜻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4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며 ‘하늘에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했습니다. 이는 ‘예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맞으면, 표적을 보여 봐라. 네 말 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맞다면, 표적을 보여 봐라.’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 주는 대신, ‘때’에 대해 말하며 날카롭 게 지적했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 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 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했습니다. <섭리역사>를 따라오면서도 ‘육적인 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세계 를 잘 모르니, ‘육의 눈’만 크게 뜨고 역사가 빨리 안 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섭리역사가 왜 이리 발전이 없냐? 왜 작냐?” 하며 지적했습 니다. <하나님의 역사>라도 행해야 크는데, ‘자기 할 일’은 겨우 자기를 유지할 정도로만 하고, ‘역사’가 산같이 크게 되기만을 기대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라면, <메시아>라면, 마치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려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오듯, 하루아침에 금방 역사를 크게 이룰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자기 생각보다 역사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얄팍한 생각 으로 ‘역사가 아니네. 사명자가 아니네.’ 하며 실망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알았느냐.” 했습니다. 역사를 이루려면, 행해야 됩니다. 단계별로 성장해야 됩니다. <구원자>와 <구원받을 자들 전체>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부지런히 행해야 역사가 크는 것이 보입니다. 큰 나무를 보세요. 하루아침에 그렇게 크게 됐습니까? 아무리 퇴비하 고 물을 줘도 해마다 몸통이 1cm씩 조금씩 크지, 5cm, 10cm씩 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를 보세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예수님 을 메시아로 삼고, 2000년 동안 역사를 폈습니다. 2000년 동안 역사를 펴니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단계별로 진행됩니다. (오른손을 펴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세 번 정도 단계를 그으며 손을 올린다.) 남녀가 결혼해서 태 안에 아이를 가졌다 해도 금방 옥동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태 안에서 커야 나옵니다. 옥동자가 태어나도 유년기 – 소년기 – 청소년기 – 청년기를 거치면서 ‘몸’도 ‘마음’도 성장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메시아>가 출현하고 <새 역사>가 시작됐어도 금방 커지 는 것이 아닙니다. 행하면서 커야 됩니다. 농사도 금방 짓는 것이 아닙니다. 금방 농사지어서 과일과 채소와 곡 식을 풍성하게 거두어 진수성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산을 개간하고, 밭을 일구고, 거기에 씨를 뿌리고, 풍우대작을 만나면서 가꾸고, 땡볕에서 고생하고, 또 정해진 기간까지 봄과 여름을 보내야 하고, 가을을 맞아 곡식과 열매가 익어야 되고, 추수 때를 맞아 거둬야 됩니다. 그러다 어느 한 날에 거둬들인 것을 가지고 진수성찬을 만들어 사랑하는 자와 함께 먹게 됩니다. 이와 같이 <메시아>가 땅에 와서 <새 복음>을 전하며 <새 역사>를 시작해도 ‘정한 때’까지 ‘한 시대’가 가야 풍성한 가을의 때를 맞아 <혼인 잔칫날>을 맞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메시아>는 ‘육신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쓰이는 육신’입니다. 그는 ‘근본의 창조주’가 아닙니다. ‘절대 신’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과 성자가 택하여 메시아로 쓰는 자’입니다. 그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명>이 다릅니다. 마치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듯이 뽑힌 자입니다. 대통령도 대통령이 안 됐다면, 평민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 뽑혔기에 <사명>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사람’을 ‘사명자’로 뽑아서 쓰셨습니다. 선지자 때는 ‘선지자’를 뽑아서 쓰시며 뜻을 이루셨습니다. 사사 때는 ‘사사’를 뽑아서 쓰시며 뜻을 이루셨습니다. 중심인물 때는 ‘중심인물’을 뽑아서 쓰시며 뜻을 이루셨습니다. 메시아 때는 ‘메시아’를 뽑아서 쓰시며 뜻을 이루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 있다고 해요. 자기의 사랑의 뜻을 펼 ‘왕비’를 뽑 을 때, ‘백성’ 중에서 뽑지, 어디에서 누구를 뽑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자도 ‘이 땅에 사랑의 뜻을 실현할 자’를 뽑 을 때는 ‘이 땅의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쓰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이 땅에서 뽑은 ‘메시아’는 하나님과 성 령님과 성자와 일체 되어 행하면서, <시대 말씀>을 받아들이고 <메시아> 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자들을 온전하게 만들면서 인생들을 구원합니다. ‘온전하게 되기’가 <구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과일나무도 처음부터 과일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어린 묘목을 심고, 나무가 다 크면 3년은 길러야 과일이 겨 우 몇 개씩 열리기 시작합니다. 과일나무가 온전히 다 커서 과일이 열리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 게 됩니다. 과일이 열렸어도 ‘여러 단계’를 거쳐야 결국 다 큰 과일이 됩니다. <사람>도 <역사>도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과정’을 거쳐야 ‘목 적’에 도달하게 됩니다. 믿습니까? <과정>에서 ‘희로애락’을 느낍니다. 농사짓는 사람들도 ‘곡식과 열매를 키우는 재미와 즐거움과 보람’ 으로 삽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언제 크지?” 하며 가을만 기다리고 있으면, 지쳐서 쓰러지고, 지겨워서 농사짓다가 도망가게 됩니다. ‘만드는 즐거움’, ‘키우는 즐거움’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즐거움이 있습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됐어도 추수 때를 기다려야 됩니다. 과일이 열렸어도 “언제 이 과일을 따 먹지?” 하며, 눈 빠지고 마음 빠 지게 과일나무만 보고 있다고 해서 과일이 익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에 농사지은 과일을 갖다 먹으면서, 희망으로 과일나무에 퇴비 하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 줘야 됩니다. 그리고 추수 때 추수하는 것입 니다. 여름에 농사짓다가 비가 온다고 해서 “왜 비가 오지? 오늘 일해야 되는데...” 하며 하늘을 원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여름철에 농사짓다 비가 오면 땀에 젖은 옷을 빨고, 때를 밀고, 머리 를 감으면 재미있습니다. 또한 비가 내려야 과일나무가 잘 크고, 곡식이 빨리 큽니다. 농사도 여러 번 지어 봐야 농부가 ‘날씨’와 ‘농사일’ 때문에 속 썩지 않고, 스스로 분개하지 않고, 희망으로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신앙 농사>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메시아>가 와서 <시대 새 복음>을 선포하며 역사를 펴 나가 도 순간 역사가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택하신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서, 그들에게 <성 자가 주신 새 복음>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으로 시작되고, 그다음에 두 명, 열 명, 백 명, 오백 명, 천 명, 한 나라, 두 나라, 열 나라... 점점 군중이 따르게 됩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행하면서 점점 창대하게 됩니다. ‘과정’ 중에 희로애락이 있고, 보람이 있고, 성장도 합니다. ‘과정’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농사, 신앙 농사>입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 자께서 절대적으로 함께하시며,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믿고 따르고, 말씀대로 뛰면서 행하면서 뜻을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믿습니까?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너 혼자 신앙 농사 짓느냐.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하지 않느냐. 너의 사랑하는 신랑이 있지 않느냐. 밭매다가 허리 아프면 일어나서 걷다 오고, 더우면 씻고 오고, 배고프면 먹고 해라. 그렇게 힘내서 하면, 잡초 가 덜덜 떤다. 곡식이 잘도 자란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랑하는 자를 놀라게 하십니다. - 어느 날 성자는 “네가 본 나무를 캐 와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 봤더니, 지난해 겨울에 쏟아진 눈이 수북이 쌓여, 바람이 부니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너무 놀라고 실망했습니다. 실망하고 있는데, 그 옆에 ‘더 멋진 좋은 나무’가 있어서 더 놀랐 습니다. 성자가 “이 나무를 캐 가자.” 하시어 더 놀랐습니다. - ‘멋있게 쌓은 야심작’이 무너져서 놀랐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성 령님과 성자께서 “더 멋있게 쌓자!” 하시어 더 놀랐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야심작>이 다섯 번 무너지게 하시어 나 를 다섯 번 놀라게 하시고, 여섯 번째에 멋있게 쌓아 ‘대 걸작’을 만들 게 하여 마지막으로 놀라게 하시고 ‘야심작 작업’을 끝내셨습니다. ※ - 어느 날 귀히 키우고 기른 자가 섭리를 떠나서 정말 놀랐습니다. 이때 하나님과 성자가 “그 사람 대신 이 사람을 기르자.” 하시어 더 놀 랐습니다. 결국 그 사람을 길렀는데, 그 사람이 결국 ‘사명의 거목’이 되어 ‘나를 돕는 나의 분신’이 되었습니다. 이에 더욱 놀랐습니다. - 나를 핍박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그리도 나를 미워하 는 것을 알고 너무 놀랐습니다. 그때 성자는 나를 그리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더욱 놀랐습니다. 성자가 “환난을 통해 연단받고 더욱 역사를 창대하게 만들자.” 하시어, 더욱 놀랐습니다. 결국 그 말씀대로 되고야 말았습니다. 137억 년 만에 처음 있고 한 번뿐인 <휴거>, 6000년 구원역사에서 처음 있고 한 번뿐인 <휴거>를 지금 이때 이루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게 하고야 말았습니다. 지금 <혼인 잔치 역사>가 이 땅에서 진행 중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결국 하는 만큼 잘됩니다. 왜요? 하나님이 정해 놓은 역사이니, 하는 만큼 잘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해 놓은 역사라도 뛰고 달려야 잘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되는 것이 운명이다.’ 하고, 되는 대로 삽니다. 그래서 ‘관념 철학가, 운명론자’들은 놀면서 삽니다. 앉아서 손금이나 봐 주고, 관상이나 봐 주면서 삽니다.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에 따른 운명>입니다. 이렇게 알고 사는 자는 앉아 있지 않고 뛰면서 행하면서 삽니다. 이들은 ‘실존 철학 인생들’입니다. ‘관상’도 ‘손금’도 ‘팔자’도 타고나기로는 잘될 운명인데, 실 제로는 잘 안 됐습니다. 왜 그럴까요? 앉아서 가만히 있고, 누워서 잠잘 때에 ‘좋은 기회’가 다 지나간 것입니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고 요리해서 먹고 즐겼어야 했습니다. 그때 뛰고 달리며 행했어야 했습니다. <신이 인간을 향해 정한 운명>은 이것입니다. ‘자기가 할 일을 행하는 것’에 따라 삶의 운명이 좌우되게 공의롭 게 운명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 이루어지는데, 얼마만큼 인간이 ‘자기 책 임’을 하면서 ‘자기 할 일’을 하느냐에 따라 더욱 창대하게 이루어집 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모두 ‘휴거될 관상’이고, ‘휴거될 운명’을 타고났어도 얼마만큼 ‘자기 속에서 악과 불의와 모순’을 쪼개 내고, 얼 마만큼 ‘자기 할 일’을 하며 자기를 만들면서 온전하게 하느냐에 따라 서 <휴거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전환 : 마무리> 오늘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말씀을 빨리 써서, 우편물이 떠나기 1초 전에 보냈습니다. 1초가 늦어서 선생이 여기서 오늘 못 보내면, 주말이 껴서 4일이 늦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몇 배나 늦게 되는 겁니까? 따지려니 머리에 쥐가 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계산하려면 골이 아프니, 선생이 순간 계산해 볼게 요. 하루는 ‘24시간’이니, 4일이면 ‘96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초’로 따지면 ‘345,600초’입니다. 고로 ‘1초’빨리 행하니, 기적을 일으켜서 ‘345,600배’ 빨리하 게 됐습니다. 따져 보니 기적이지요? * 마지막으로 시 한 편 읊어 주고 마치겠습니다. <기적> 오늘도 나는 나로 인하여 기적을 보았다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마음 빠져 행하니 성자께서 나로 하여금 기적을 일으키게 함께하셨다 시간적 기적을 일으키니 하는 일도 기적이었다 종일 빨리 뛰어 시간의 칼자루를 잡고 1초 빨리해서 삼십만 배 이상 빨리하는 표적을 일으켰다 자기 행위로 자기 기적을 보아라 자신이 생긴다 용기가 생긴다 삶의 맛이 난다 이상세계다 내 기적은 청중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