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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4.06.09 (월)

월 새벽말씀

선포일
2014.06.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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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새벽말씀 아직 많이 안 왔네. 그지? 야 저기 보니까 폈다 폈어. 드디어 폈다. 다 폈어. 만발했어. 만 발. 그지? 한번 병든 것 잡으니까 저렇게 되었다니까. 이 벚나무에 대해서 아는 사람, 손들어 봐. 저 벚나무에 대해서 아는 대로 이야기해 봐. 상식적으로. 아는 사람, 없어? 아이구.. (죽으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손을 대서 살았어요.) 제일 잘 아는군. 나와 운동하더니 영감을 탁 받아서 알게 된 것이다. 저 벚나무, 내가 계속 기도해서 살렸습니다. 오그락 오그락, 오그락 병에 걸린 것을 여러 분이 봤을 것입니다. 잎사귀가 오그락 오그락 하고, 잡아당기면 휘어졌습니다. 그 전에는 작 았습니다. 잡아당기면 휘어질 정도로 작았습니다. 그리고 병이 들어 있으니까 보기 싫었습니다. 그 런데 보니까 저기도 벚나무가 한 그루 있어야 되겠고, 여기도 꼭 한 그루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런 벚나무 하나까지도 하나님이 관심을 가집니다. 아! 지금 그 얘기했다 혼났습니다. “너는 성경을 읽고도 또 착각하느냐? 애들처럼. 들풀 하나도 하나님께서 돌보시거늘, 벚나 무랴. 그래도 풀이 아니고 나무인데.” 하셨습니다. 저 벚나무를 두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심정을 저기에 나타낸 것입니다. 나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생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니까. 거름도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지질을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 해부터 살아나서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옆의 나무보다 제일 잘난 척하고 있습니다. 위치도 제일 높습니다. 소나무 앞의 벚나무는 잘난 척하며 막 크다가 소나무 가린다고 잘렸습니다. 소나무를 가 린다고 잘랐더니 잠잠해졌습니다. “너는 그것으로 개성을 살리며 살아나가라. 다른 나무가 따라오지 못하리라. 내가 너에게 축복하여 네가 비는 대로 복이 되게 하리라.” 그랬습니다. 저 나무에게는 위로는 크지 말고, 옆으로 퍼지라고 했습니다. 위로 크면 자른다고 했더니 이제 안 큽니다. 동그랗게 분재 벚 나무를 만들었습니다. 나무도 훌륭한 나무가 되려면 오랫동안 손이 가듯이 오랫동안 해야 됩니다. 저것도 분재 벚나무로 동그랗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분재 벚나무로만 만들면 보기 싫습니다. 저쪽 소나무 뒤의 것도 잘렸습니다. 벚나무 때문에 소나무가 독립수로 안 보인다고 해서 잘랐습니다. 여기에 벚나무들이 하나, 둘, 셋, 네 개, 다섯 개.. 이게 다 자생 벚나무입니다. 심은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많으니, 다른 골짝까지 하면 벚나무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니까 피면 붙은 것같이 보입니다. 여러분을 보니까 자연을 볼 줄 모릅니다. 자연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여기는 그렇지 않은데, 저쪽으로 보면 벚나무가 쫙 절었습니다. 여기가 굉장히 벚나무가 많은 곳입니다. 엄청납니다. 진해까지 벚나무를 보러갑니다. 차 비도 없는데.. 진해만 좋은 줄 알았잖아요. 앞으로 5-6년 가면 엄청날 것입니다. 내가 바빠서 그런데, 올해는 그냥 보고 내년부터는 전부 엠에스 동원시켜서 뱀 없을 때 초봄에 1인당 벚나무 10 개씩 손질해 주라고 할 것입니다. 가지 쳐 주고, 칡넝쿨 죽여야 합니다. 칡넝쿨도 죽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는 사람, 손들 어 봐요. 상식적인 것입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뿌리를 캐어 먹어 버리면 됩니다. 두 번째는 칡넝쿨의 목 부분을 잘라 버리면 죽습니다. 세 번째는 모가지를 안 잘라도 줄기를 자르고 거기에 농약을 바르면 죽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다음해에 다시 납니다. 줄기만 끊으면 오히려 뿌리는 자꾸 더 굵어집니다. 내가 평소에 하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에 여러분이 잊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잊는 것이 아니라 하도 많이 가르쳐 주 어서 잊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전설이 다 얽혀있습니다. 내가 전설을 만들어 놓고 다닙니다. 저 것은 사람을 기도 해서 낫게 하듯이 낫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나무는 기도하면 죽습니다. 이 근방에 기도해서 죽은 나무가 많습니다. 오아시스 샘 옆의 왜송이 죽었습니다. 그 나무가 왜 죽었는가 하면, 샘으로 낙엽이 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모기 망을 쳐도 잎사귀가 하도 작으니까 다 들어갔습니다. 소나무 낙엽은 두 개라 가다가 걸치기라도 하는데, 이놈의 낙엽은 작아서, 못핀보다 더 작아서 그 사이로 쏙쏙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그리로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수천 개 떨어지니까 들어 간 것입니다. “야, 너 나무! 진짜 도움이 안 된다. 멋있는 나무인데 도움이 안 된다.” 했습니다. 그런데 차마 큰 나무이니 자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나무가 죽었습니다. 사랑을 안 준다고 죽었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엠에스도 사랑 안 주면 죽는구나. 관심을 가져 줘야 되겠구나.’ 그 나무를 안 베려고 여러 가지를 연구했습니다. 샘에 비닐로 씌워 보기도 했는데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잎사귀 없어지라고 가지를 따 주기도 했습니다. 조금 떨어지라고. 그래도 결국에는 떨어 졌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낙엽 안 건진다고 맨날 혼났습니다. 엄청나게 안개가 꽉 찼습니다. (쌤, 손목의 시계를 보시다.) 몸이 가볍더니, 시계를 안 차고 왔습니다. 운동할 때 장갑만 껴도 무거움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추워서 장갑을 끼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풀리면 다 귀찮스럽습니다. 그래서 장갑 낀 것, 시계 낀 것도 다 풉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정신 가지고 움직이는 것 입니다. 신발 같은 것도 조금 오래된 것은 무거움을 느낍니다. 섭리 뛸 때도 남이 거추장스럽게 막기 전에 본인이 거추장스러워서 다 막습니다. 아침에 운동을 안 했더니, 여기는 꼭대기라 뛰어 다니기가 힘듭니다. 숨이 먼저 찹니다. 전망대 둘레에 길을 닦아야 되겠습니다. 한 바퀴를 돌면 꽤 깁니다. 가는골이 좋습니다. 거기도 올라오는 길입니다. 여기도 올라오는 길이고. 마당은 너무 가 깝고, 또 질퍽거립니다. 이 근방을 도는 것이 좋습니다. 이 주변을 돌아보니 누가 차타고 올라오려고 하다가 말고 내려간 자국이 있었습니다. 오늘 산 주인이 온다고 연락이 왔기에 왔다갔는가 하고 기도했더니 “가보면 될 것이 아니 냐? 왔다갔으면 차 자국이 있을 것 아니냐?” 하셨습니다. 지금은 실체 시대입니다. 어느 사람이 선생님이 대만에 간다는 소리를 듣고 중국 말을 배웠답니다. 그 사실은 몰랐었는데 그에게 밤에 전화해서 혼냈습니다. “너는 말을 안 하고 혼자서 딴 짓하고 있느냐? 말을 해야 알지.” 그런다고 데리고 갈 것 같습니까? 가고 싶다고 나에게 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구하라 주실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열어줄 것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구하다가 혼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심을 잊어버리고 구하다가 넘어 진다는 것입니다. 구할 놈은 입을 딱 다물고 있고, 구하지 않을 놈은 입 벌리다가 혼났습니다. 그것을 보고 “선생님, 헷갈립니다.” 하는데, 직책 맡은 사람이 한국에서 일해야지 뭐 하러 거기에 갑니까? 자기 직책도 큰데. 혼을 냈더니, “잘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잘하겠습니다.” 했지만, 말은 안 믿습니다. 이제는 말은 안 믿고, 실제 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주일날 운동 안 하다 운동을 하니까 쥐가 났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안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도했습니다. 그 동안 운동 안 해서 쥐가 났습니 다. 나야 이유가 많습니다. 일어나서 아침 기도해야지, 일해야지 하는데 언제 운동할 시간이 있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댔다가는 큰일 납니다. “내가 그 이유를 모르느냐? 네가 목숨이 걸려있다고 해도 안 하겠느냐? 안 하니까 이런 날이 닥치는 것이다. 그게 아침 조깅 안 한 결과다.”하십니다. 근육통이 나면 앉아서 꼼짝을 못하기에 창피스럽게 끝납니다. 쥐난 것은 그냥 풀리지만, 근육통은 6개월이 걸립니다. 지금도 안 풀렸습니다. 갔다 와서 기계로 새벽 3시까지 털었습 니다. 그래도 안 풀렸습니다. 그것은 운동을 해야 됩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딱 한 가지만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허락해 달랬는지 압니까? 뭘 허락해 달라고 했는지 맞춰 보십시오. 아침에 체육복만 입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맞추는 사람은 보통이 아닙니다. 그렇게 정장하고 오던 사람이 허락 안 받고 체육복 입었다가는 큰일 납니다. 체육복만 입 게 해 달라고 해서 어제 한 바퀴 뛰고, 오늘도 뛰었습니다. 그런데 뛰기가 너무 좁습니다. 어제 회골로 해서 동그래산 팔각정까지 뛰어 가서, 동그래 산에서 잠시 말씀을 전했는데, 열댓 명만 모였더라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 칼 같은 말씀이 었습니다. 5분 동안 전했습니다. 나는 한다고 하면 바로 합니다. 한다고 하고서 바로 안 하면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돌리십 니다. 한다고 하고서 안 하면 나는 그날로 죽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확 일어나서 하 고, 긴장되어서 새파래 갖고 가면 늦었어도 하나님께서는 봐 주십니다. 그러면 안 해도 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세를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실 때 “앞으로 5분 있다가 네가 있는 그 자리에 폭탄이 떨 어진다고 하는데도 거기에 있을래?” 하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떤 계시가 아니라 무엇이 온다고 해도 그럴 때는 빨리 뛰어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시간을 5분으로 정해서 그 시간 안에 움직입니다. 나는 빨리 하면 목욕탕에 가서 머리 감고, 때 밀고, 전신 마사지하고 나오는데 3분 걸립니다. 3분 후에 총 쏴서 죽인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 시간에 드라이까지 다 합니 다. 그렇게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순간 빨리 합니다. 볼 찰 때도 순간은 빠릅니다. 애들은 순간 빠르지를 못합니다. 나는 상당히 빠릅니다. 지금 부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생활적 부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내가 부활되어서 올라왔나, 어떻게 생활해서 올라 왔는가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제 작은형이 왔었는데 돌 쌓는 것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매일 기도해 준다고 했습니다. 앞산 무너진 것을 보고서 매일 기도했다고 했는데, 이제 무너진 것이 어느 정도 올라왔습니 다. 초근초근 쌓으라고 했습니다. 천천히 쌓으라고 했습니다. 어제 돌이 하나 올라가다가 못 올라갔는데, 그런 것까지 미리 전날 밤에 다 봅니다. 호피 석을 올리다가 못 올렸는데 내가 전에 본 것이 있어서 “내려라. 아예 부터 파고 들어가라.” 했습니다. 전날 그렇게 세밀하게 보여 주십니다. 전부 압니다. 운전사가 놔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과 아닌 것도 다 압니다. 전날 다 프로그램을 보고서 나오기에 아는 것입니다. 내일 어떻게 될 것인가 미리 한번 두들겨 보고 나옵니다. 위험이 없는지, 어떻게 되는지 미리 두들겨 보고 옵니다. 두들겨 봤어도 인간의 책임이 있기에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책임분담은 두들겨 보면 아는데, 내 책임분담은 내가 금방 잊기에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 때그때 얘기해 달라고 합니다. 볼을 찰 때도 다치고 난 다음에 찍어 바르기만 한다고 의사들 혼냈습니다. 다치기 전에 미리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오랜만에 축구를 하기에 아대를 꽉 조이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피가 안 통하니까 쥐가 났던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니까 옆에서 그것을 지적해 주면서 끄르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의사가 할 일입니다. 다친 다음에 쳐 바르는 것이 의사가 아닙니다. 선생님도 누구를 관리할 때에 이미 시험 들었을 때는 늦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힘이 들 고, 고통이 일어납니다. 그 전에 느낌을 받고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을 내가 일일이 못하니까 이렇게 설교 가운 데 넣어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가 나가면 풀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암시를 합니다. 슬쩍 암시를 주어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막 소리를 쳐서 부르지 않습니다. 안개처럼 슬쩍 가렸다가 보였다, 가렸다 보였다 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강연보다도 인생살이를 하나님께서 늘 가르쳐 줍니다. 선생님도 하나님께 그 렇게 늘 배웠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에게 전해야 기술이 늡니다. 설교만 했다가는 설교가만 필요합니다. 교역자만 필요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것은 생활 속에 누구나 다 필요합니다. 생활사의 일이기에 설교가나, 목회 하는 사람이나 안 하는 사람이나, 사업하는 사람이나 다 필요합니다.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내 놓아야 됩니다. 사람들이 기도는 100점인데 생활은 0점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는데 그런 일이 많습니다. 나도 기도 해 봐서 압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는 100점인데 생활은 0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고 물으니 비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대로 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모든 사람이 성경을 믿습니다.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인데 내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묻는 제자들이 없더라는 것 입니다. 아예 선생님을 택해서 구원하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내가 무엇인가를 했습 니다. 기도 생활을 했다구요? 기도를 나보다 더 많이 한 사람이 많습니다. 옥살이하면서 요한계 시록만 1만 독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불길이 스치는 것은 나와는 다릅니다. 나는 슬슬 해도 성경에 나옵니다. “외치지 도 않고, 소리치지 않을지라도 온 백성이 말을 듣고 따라 온다.” 했습니다. 기성은 그렇게 막 외치며 끌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새 역사가 나타나서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 하고 슬슬 전하지 않습니까. “저것은 옷이 더 멋있는데 8만 원짜리이고, 이것은 순수하게 생겼어도 150만 원짜리다.” “어째서 그렇느냐?” “이것은 이런 옷감으로 이렇게 만들서 그렇다.” 이렇게 설명할 때 인식을 합니다. 그럴 때 “아, 그렇구나. 보는 것과 전혀 다르구나.”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돌을 쌓으면서 무엇을 느낀 줄 압니까. ‘아, 돌은 들어보기 전에는 모르겠구나.’ 그것을 느꼈습니다. 전에 쌓을 때는 돌이 무겁다 는 것을 느꼈는데, 이번에는 돌은 들어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느꼈습니다. 돌을 들어보면 보는 것과 항상 틀렸습니다. 반반한 돌이 있어서 “저 돌을 가져와라. 빨리 올려라.” 하여서 올려서 갖고 오면, 한쪽이 기울었습니다. 그런 것을 2-30번 체험하고서는 “돌은 들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너, 다시 사람 봐라.” 이와 같이 나를 그렇게 교훈하셨습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큰 공사에 딱 한 도를 주십니다. “너, 다시 사람 봐. 사람은 다 겪어봐야 알아. 그냥 봐서는 모른다.”하셨습니다. 왜 또 그런 계시를 하셨을까요? 겪어보지 않고서 인정해 주니까 그러신 것입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압니다. 3년을 겪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돌은 들어보고. 내가 직접 내려가서 반듯하다고 보고서 올렸는데도 막상 오면 돌아가 있습니다. 돌은 중 량이 있어서 눈으로만 봐서도 모릅니다. 사람도 겪어 봐야 압니다. 그 전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겪어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여자가 지구상에 정말 살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정도까지 생 각하며 삽니다. 여기 월명동에도 ‘정말 내 마음에 드는 돌이 있을까?’ 합니다. 우선 들어오는 돌중에서는 그나마 이 놈이 낫다고 하면서 쌓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대한민국 돌을 다 안 봤으니까요. 지구상의 모든 돌을 안 봤으니까요. 여기에 들어온 돌중에서 고릅니다. 그러니 1/100만, 1/1000만 을 보는 것입니다. 가지고 온 돌은 좋다는 것에서 골라온 것이니 100분의 일이나, 10000분의 일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그 중에서 가져왔으니 백분의 일은 될 것입니다. 그 런 중에서 좋다고 하는 것이지, 전체를 본다면 더 좋은 돌이 많아서 다 물러나야 할 돌입니 다. 더 좋은 돌이 온다면 다 물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좋은 돌이 4덩이가 왔는데 기계 때문에 못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코앞에다 놓았다가는 뒤를 싹 가리기에 안 됩니 다. 그런 것이 기술입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내가 첨단으로 경험한 것이 있는 데, 돌을 통해서 인간을 교육시킵니다. <생활의 부활>을 이야기했습니다. 얼마큼 실천을 하느냐면 “너는 한번 한다 했으면 일을 하다가 해(害)가 와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내 앞에서 한번 한다고 했으면, 하나님 앞에서 한다고 했으면 해가 올지 라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약속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조금 해가 온다고 하겠다고 했 던 것을 안 합니다. 요새 선생님은 하나님께 많이 혼납니다. “그러다 보면 너만 머리 아프다. 고칠 것은 딱딱 고치게 하고, 싫은 소리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몽둥이는 안 때릴지라도 입의 막대기만큼은 써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내가 볼 때는 사람을 만들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만들어도 안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이 지구상에서 내가 마음에 드시나, 후회를 하시나?’ 생각하게 되었습 니다. 나는 항상 사람을 통해서 교육을 받습니다. 누가 말을 안 들으면 ‘혹시 내가 하나님 앞에 말을 안 들어서 그러나?’ 이것을 늘 먼저 생각합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 따지면 그런 것도 있다 하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얘기한 것이 생활적인 부활입니다. 생활의 부활을 하고, 시대적인 부활을 해야 됩니다. 앞산이 부활되고 있습니다. 전에 식당 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설교할 때 앞산을 투시하면서 새 것으로 보여주리라고 했습 니다. 지금은 굉장히 안전하게 쌓습니다. 흙을 벗겨놓으면 겁날 것입니다. 저런 것도 크레인 사 장을 전도해서 했지, 아니면 못했습니다. 누가 크레인이 쑤셔 박혀 가면서 하겠습니까? 미 국 사람들은 100톤을 들 수 있는 기계를 만들면 60톤 든다고 해 놓습니다. 그렇게 안전하 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60톤 드는 기계라면 100톤 든다고 해 놓습니다.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팔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볼펜을 만들어 놓고서는 “이 볼펜은 손가락이 없어지면 없어지지 안 없어집니다.” 하면 거기에 속습니다. “나는 항상 볼펜에 대해서 연구해서 만들었기에, 볼펜 다마에 대해서 연구 많이 했습니 다. 이것은 오래 갑니다.” 하면 속습니다. 그러나 사다가 써보면 다른 것과 똑같습니다. 그 런데 그 말을 갖고서 장사해서 먹고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가 제일 싫다고 하십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무조건 성밖에 있습니다. 천국을 못 갑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나에게도 거짓말 하고 한번 걸리면 여지없이 찍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해도 찍습니다. 포클레인이나, 크레인도 바짝 들면 배나 들지만, 멀리서 들면 못 듭니다. 사람들이 일할 때도 내 일이라고 하면서 바짝 끌어안고서, 가슴속에 집어 처넣고서 한다면 큰일도 간단합 니다. 멀리 쳐다보면 안 됩니다. 사람도 멀리서만 쳐다봐서는 속을 모릅니다. 사람이 “할 일을 어느 정도는 다했다.” 할 정도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아버지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가 더 사셨으면 좋은데.. 나도 저럴까?’ 하면서 더 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 해 놓고, 세계 120나라에 복음을 넣어놓고, 어느 정도는 해 놓으려고 합니 다. 어느 정도는 사상 교육을 시키고, 책도 다 써놓기 위해서는 시간이 다 나옵니다. 비약은 없습니다. 실제로 해 보면 생각보다 늦기도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재어볼 때, ‘아 많은 것을 다 못 하겠구나. 내가 계획한 것을 다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거서 온종일 막 뛰고 달리는 것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정말로 시간이 없습니다. 밥 먹을 때도 더 먹고 싶어도 밥숟갈을 놓고서 뛸 정도로 합니다. 그러나 설교시간 만큼은 그렇게 안하고, 충분히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변하는 것이 기 충분히 안 하면 큰일 납니다. 일반적인 것은 정신 못 차리고 착착착 해 나갑니다. 여러분은 생활의 부활을 많이 했습니다. 기도하는 것, 할 일을 부활이 다시 일어나야 됩 니다. 성경에 보면 더 좋은 부활이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을 맞기 위해서 쓰리고 안쓰러움을 겪는 것입니다. 여기는 자연이 다 갖춰져 있습니다. 자연 벚도 많아서 빨갛습니다. 외부 사람들은 여기 못 와서 안달입니다. 고등학교 중학교 각 학교에서 여기로 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공사한다고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 열었다가는 관광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 게까지는 못합니다. 좋은 장소를 빌려 쓰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어딜 가면 좋은 장소를 빌려 쓰기 힘들지 않습니까. 다들 한 번씩 와 보겠다고 하지만, 우리로서는 365일 행사가 꽉 차 있습니다. 생활의 부활도 심정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늘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야 됩니 다. 말씀 나온 것을 참고해서 열심히 해야 됩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인생살이, 인간 이 해야 될 일의 방향! “네가 못을 박아야 나도 못을 같이 박고, 네가 못을 박은 것이 틀리다면 내가 그것을 참고 로 가르쳐 주마.” 할 때가 있습니다. 의로 채워 주시옵소서. 만군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 능력, 의, 권능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가 생활적인 부활이 되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말씀의 부활은 되었으니, 이제는 생활 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함을 받도록 축복해 주시고, 의로 채워 주시옵소 서. 아버지의 인자와 사랑과 공의로 이들을 축복해 주시고, 의롭게해 주시옵소서. 이곳을 중심한 전국과 세계 모든 각 나라에서 섭리 나라를 귀한 눈으로 쳐다보는 모든 자 들에게 다 눈을 돌리게 해 주시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가 하는 것을 따라서 우리에게 신 경써 주신다고 했습니다. 곡식이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주인이 무슨 거기를 쫓아다니면서 관심을 갖겠습니까? 좋은 열매 맺은 것을 주인이 본다면 먼 길로 여행가는 길이라고 해도 잡초를 뽑아놓고 갑니 다. 우리도 좋은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의 그런 관심을 받는 존재자들이 되도록 해 주시옵소 서. 의와 사랑과 공의와 진리로 함께해 주시고, 나를 통해 말씀한 것은 하늘이 시킨 것인 줄 알고서 부지런히 열심히 충성을 다하여 살아서 충만한 열매를 맺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거침없이 나가게 해 주시고, 의 로 채워 주시옵소서. 모든 환경을 다스리게 해 주시고, 지혜롭고 슬기롭게 판단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축 복해 주시옵소서. 내가 이들을 축복하니 다 그렇게 될지어다. 아픔과 병듦과 고통과 모든 것, 그리고 모든 환난과 각종 각색으로 가정, 모든 이런 것들 이 잘 처리되게 해 주시옵소서. 성지 땅의 남쪽 벽화를 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은총과 은혜를 베푸시고 의로 채우시옵소 서. 흙이 무너져서 다시 쌓는 것이 아니고, 계획적으로 자연성전의 남쪽 벽화를 하고 있다고 알고서 가오니, 구상과 모든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사고와 해됨이 없도록 하시고, 해 놓고 후회됨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은총과 의로 채워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