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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014.06.13 (금)

140613 금요말씀

선포일
2014.06.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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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3일 금요말씀> 교역자가 설교할 것 할렐루야! 금요일 밤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뇌의 차원을 높이는 법’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이 말씀은 영계에서 성자께 배운 <뇌의 생각의 계시>입니다. 진짜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더 좋은 것을 행하고, 더 좋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여, 뇌의 차원을 높여 더 좋은 것을 행하고 더 좋게 변화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시작> 오늘 말씀의 핵심을 먼저 말씀해 주겠습니다. 잘 듣기 바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뇌의 생각>은 마치 ‘몸’과 같습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자기 몸>을 가지고 ‘어떤 일’을 시작하면, 그때는 다른 것은 못 하고 ‘그 일’만 하게 됩니다. <뇌의 생각>도 ‘몸’과 같이 그러합니다. 작은 생각이나 큰 생각이 나 ‘어떤 생각’을 하면, 그때는 딴생각은 못 하고 ‘그 생각’만 하게 됩니다. <끝> <뇌>는 한 개지, 두 개가 아닙니다. 고로 혹여 ‘딴생각’을 하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진행되 며 중심이 되어 있기에 다른 것은 못 합니다. 가령 배고파서 ‘어떤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그때는 ‘다른 음 식’이 생각나지 않고, 일단 그 음식에 빠져서 맛있게 먹습니다. ‘그 음 식’을 다 먹어야 ‘다른 음식’이 생각납니다. 이와 같이 <뇌>도 ‘어떤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다른 생 각’이 나지 않고, 일단 그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 생각’이 끝나야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손>을 가지고 ‘글’을 쓰면, 그때는 그것만 하지, <손>으 로 ‘다른 것’은 못 합니다. 글 쓰는 것이 끝나야, 손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때 는 그것만 생각하지, ‘다른 것’은 생각이 막혀서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생각’을 하고 난 후에야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 좋은 것’이 있어도 일단 ‘지금 진행 중인 생각’이 끝나야 ‘다음 것’을 생각하면서, 그제야 두 가지를 비교해 보고 ‘왜 아까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 하며, 모순을 알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뇌의 생각>은 ‘눈’과 같습니다. 동서남북에 있는 것 중에 ‘한 가지’만 보게 됩니다. ‘그것’을 볼 때는 ‘다른 것’은 못 보고, ‘그것’을 다 본 후에야 ‘다른 것’을 보 게 됩니다. 그제야 ‘더 좋은 것’도 보게 됩니다. <끝> <뇌의 생각>은 ‘어떤 자료’를 뇌에 넣고 생각하기로 결정하면, 좋 으나 나쁘나 거기에 ‘생각의 시동’이 걸려서 그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 에 따라 결정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수가 많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한 가지’를 생각해 보고 그 생각이 끝나면 ‘또 다른 것’도 생각 해 보면서, 적어도 3~4가지는 골라서 생각하며 판단해 보고 답을 찾아야 됩니다. 그중에서 ‘제일 차원 높게 생각한 것’을 골라서 결정해야 됩니 다. <끝> 사람은 어떤 것을 놓고 생각할 때, 그 센터에서 제일 좋은 답을 찾고 ‘이것이 최고다!’ 하며 결정합니다. 다음 날 그것을 놓고 다시 생각하면, ‘왜 어제는 이같이 낮은 생각 에 꽉 막혀서 생각했지? 그때는 왜 딴생각을 못 했지?’ 합니다. 그때는 ‘그것’만 보고 생각하며 진행했기에 ‘그 생각’이 머릿속 에 꽉 차서 ‘다른 생각’을 못 한 것입니다. → 이는 <눈>이 ‘어떤 것’을 보고 있을 때는 ‘다른 것’을 전혀 못 보는 것과 같고, <손과 몸>이 ‘어떤 일’을 진행 중일 때는 ‘다른 것’은 전혀 못 하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 사람이 ‘이성’을 생각하고 있거나 ‘이성’을 만나고 있으면, 그 때는 ‘성자가 하신 말씀’이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로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다 ‘이성 생각’과 ‘이성의 행위’가 끝나면, 그제야 ‘내 가 왜 이랬지?’ 하며 정신을 차리고 후회합니다. - 또한 ‘혈기’를 내고 있으면, 그때는 ‘다른 것’이 전혀 생각나 지 않고 계속 혈기를 내게 됩니다. 혈기를 다 내고 나서야 ‘내가 왜 그 랬지? 왜 화를 참지 못했을까?’ 합니다. - 또한 졸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으면, 그때는 ‘다른 것’이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 졸고 나서, 잠을 자고 나서야 ‘왜 이렇게 졸았 지?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잤지?’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은 이 말씀을 쓰기 전날 밤에 ‘어떤 일’을 놓고 생각했습니다. 일부는 알고, 일부는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뇌에 넣고 예측하며 생각했습니다. ‘과연 앞으로 어떻 게 될 것인가?’ 하며, 그 상황을 그림으로 그리고, 잘 예상해 놓았습니 다. 물론 성자께도 묻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이상적인 것은 없다.’ 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전날 생각하며 그린 것을 다시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어제는 그렇게만 생각했지? 그때는 이런 방법만 내 생각에 꽉 차 있었구나.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했습니다. 어제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하지 못하고 계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이상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판단한 것이 정 말 맞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작업을 해 봐야 알겠지만, 미리 추산해 봐야 된다. 오늘 예측이 맞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자께 물었습니다. “어제는 최선을 다해서 깊이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것밖에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놓고 생각하면, ‘그중의 한 가지’만 집중적으 로 생각하게 된다. 자기가 <생각의 결정>을 하고 진행하면, 뇌의 중심에서 ‘다른 것’ 은 생각하지 못한다. 고로 ‘더 좋은 것’이 있어도 막히는 것이다. 내가 뇌를 창조하여 잘 아니, 늘 내게 물어보고 배워라. 자기 인식을 결정하고 그 생각을 가지고 진행하면, 그중에서만 제일 좋은 것을 고르고 최고라고 한다. 그대로 해 버리면 실수하게 되고, ‘내 가 왜 그랬지?’ 하게 된다. - ① 마치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으면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쥘 수 있듯이, 오늘은 어제 생각한 것을 끝냈으니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 - ② 오늘 생각을 달리하여 어제와는 다르게 추산하여, 어제보다 더 나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 ③ 또 <밤>이 아닌 <새벽>에 기도하며 생각했기에 더 총명한 정 신으로 더 나은 생각을 한 것이다. - ④ 또 어제 생각해 놓은 것을 보고, 그 터전 위에 더 차원 높게 다 른 쪽을 생각했기에 더 나은 생각을 한 것이다.” 하며, 성자는 내 신혼 골수를 감찰하시고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로 <오늘의 생각>이 <어제의 생각>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실제로 일을 해 봐야 정확히 알게 됩니다. 고로 실제로 일을 해 보기 전에 미리 예측하고 추산해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과거의 것’을 보고 ‘현실과 미래의 것’을 추산하면, 현실과 미 래에서 겪었을 때 비슷한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과거의 것’을 보고 ‘현실과 미래의 것’을 추산하면, 현실과 미래에 가서 볼 때 어떤 것은 맞는 것도 있지만, 그렇 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역사>는 ‘동시성’으로 가지만, ‘차원 높여’ 흐르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 ‘어떤 가게’로 갈지 결정하고 그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서 제일 좋은 것을 사 가지고 나오게 됩니다. 그때 ‘다른 가게의 물건’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실제 생각과 행동 은 ‘그 가게의 물건’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 몸, 한 마음, 한 생각>이라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있으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가게’에서 나와 ‘다른 가게’로 가면, 그제야 생각과 행동을 달리하게 됩니다. 이는 ‘한 가지 생각’이 끝나니, ‘다른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에 따라서 <몸>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가게’에 가서 아까 자기가 산 것보다 더 좋고 이상적인 것을 발견하면, 그제야 ‘지금 본 것이 훨씬 낫네. 왜 아까 그 가게에서 고를 때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했지?’ 합니다. <육의 몸>은 ‘어떤 한 가지’를 하면, 그것이 끝나야 그제야 ‘다른 것’을 하게 되고, <뇌의 생각>은 ‘어떤 한 가지’를 생각하면, 그 생각 이 끝나야 그제야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한 가지’를 생각하고 결정해 놓고 그것이 최고라고 하지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해 보면서 적어도 ‘세 가지’는 생각해야 됩니 다. 그러면 첫 번째 생각한 것보다 두 번째, 세 번째에 생각한 것이 훨씬 이상적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을 생각하고 결정할 때 ‘한 가지’를 생각하고 있으 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중심이 되어 ‘더 좋은 다른 것’이 있어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마치 어떤 사람을 쳐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만 보이고, ‘다른 사 람’은 눈에 안 보이듯 합니다. ‘그 사람’을 다 보고 판단하고 나서야 ‘다른 사람’도 쳐다보고 생각하게 됩니다. 고로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는 먼저 동서남북으로 생각을 해 보고, 그 중에서 ‘어떤 생각이 제일 이상적인가?’ 비교해 봐야 됩니다. 그러면 그중에서 ‘제일 뛰어난 생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문제가 있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의논하고 결정할 때도 ‘한 가지’만 생각하고 결정하면 안 됩니다. 나중에는 분명히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납니다. 고로 결정하기 전에 생각을 여러 가지로 해 보고, 비교해 본 후에 결정해야 됩니다. <장점>이 많아도 꼭 <단점>이 있습니다. 이때는 <장점>이 더 많으 니, <단점>을 없애고 하면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오늘은 ‘뇌의 차원을 높이는 법’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영계에서 성자께 배운 <뇌의 생각의 계시>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생각하며 행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한 가지 생각’이 뇌에 꽂히면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 고, 그것 때문에 자제하지 못하고 분노와 혈기를 분출하게 됩니다. 사람은 ‘한 가지’만 생각하고 행하면 실수를 많이 합니다. 또한 다 른 쪽으로 더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센터에서만 보고 거기서 제일 좋은 방법으로만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체가 열 가지이면 열 가지를 다 보고, 자로 재 보고, 저 울에 달아 보고, 그중에서 제일 좋고 합당한 것을 택해서 하십니다. 선생이 월명동 작업을 할 때 ‘어떤 한 가지’를 생각하고 ‘이렇게 해야지.’ 하며 구상해 놓고, 그다음 날 다시 보면 ‘내가 어제 왜 그렇 게 생각했지? 이것은 정말 아니야.’ 하게 됩니다. 그때는 그 생각의 차 원에서만 최고로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생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고, 5~10개의 구상을 놓고, 그 중에서 무엇이 좋은지 성자께 보고하고 의논합니다. 그때 또 <성자의 생 각과 구상 차원>에 올라가서 생각해 보면, 또 생각이 달라집니다. 모두 ‘한 가지’만 생각하고 그냥 진행하면, ‘더 좋은 것’이 있어 도 ‘자기가 진행하고 있는 것’만 최고로 봅니다. 모두 전날 생각한 것을 새벽에 총명할 때 다시 생각해 보고, 전날 생 각한 것과 비교해 보기 바랍니다. 어떤 작품을 만들 때도 ‘첫 번째 한 것’보다 ‘한 번 더 한 것’이 훨씬 낫듯이, <생각>도 더 해 볼수록 글씨 쓰듯 더 좋아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자기 인식>과 <자기 생각>대로 계시가 옵니다. 성자가 계시를 주셔도 <자기 인식>, <자기 생각>대로 판단합니다. 고로 처음에 <자기 인식>이 그리도 중합니다. <자기 인식>은 ‘자기 결정’입니다. 고로 <자기 인식>을 빼고 성자께 물어야 이상적입니다. <자기 인 식>, <자기 생각>이 있는 상태에서 성자께 물으면, <자기 인식> 위에 <성자의 생각>이 들어오니 성자의 계시가 차원 낮게 깨달아지고, 아니면 성자 생각과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인식>대로 자기가 믿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 차원’대로 인식하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으로 잘못 인식하 기도 하고, 혹은 <하나님과 성려님과 성자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잘못 인식하기도 합니다. <생각의 차원>, <뇌의 차원>의 낮으면, 아예 높은 차원의 것은 생각 하지 못합니다. 아이큐 120은 뇌의 생각의 그릇이 120입니다. 고로 아 이큐 150 차원의 것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고로 배워야 하고, 물어봐야 됩니다. 어릴 때 어린 대로 인식한 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커서도 그 대로 인식합니다. 고로 제대로 확인하고,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물어봐 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종이 한 장, 지폐 한 장은 가볍습니다. 종이나 돈이 가볍다고만 인식 하면, 틀렸습니다. 1m 높이의 종이를 들어 보세요. 1m 높이의 지폐를 들어 보세요. 만 원짜리 지폐로 10억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갈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들어 보면, 못 듭니다. 뱀을 <실제>로 한 번도 못 본 사람은 ‘뱀이 아무리 커도 어떻게 황 소를 먹어? 깨물어 씹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황소를 먹냐? 못 믿어.’ 합니다. 그 생각으로 뱀 옆에 갔다가는 뱀에게 잡아먹힌 후에 뱀의 배 속 에서 ‘그것이 아니네.’ 하며 인식을 달리합니다. 메시아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고 인식하던 자들 중에 ‘인(人)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고 믿은 자들만 ‘인식의 흑암 세계’를 벗어 나게 됩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생각>은 ‘눈’과 같습니다. <눈>으로 한 번 무엇을 보면, 그 순간 에는 그것만 보고 판단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도 어떤 것을 생각하면, 그 순간에는 그것만 느끼고 판단하게 됩니다. 사람은 ‘먼저 뇌에 입력되고 인식된 것’을 믿어 버리고, 그것을 우 선권으로 하여 뇌가 작동됩니다. 또 ‘먼저 눈으로 본 것’을 중심하여 모든 것을 보게 됩니다. ‘육신이 이 세상에서 인식한 것’과 ‘영이 영계에서 본 것’은 완 전히 다릅니다. <육의 세계>는 ‘물질세계’입니다. <영의 세계>는 ‘영체 세계’입 니다. 고로 생각과 행실, 체재와 법이 다릅니다. 사람은 <자기 인식>을 믿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 습니다. 고로 모르니, ‘죽는 길’로 가면서도 희망에 차서 갑니다. 사람은 <자기 인식>대로 보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합니다. 고로 실수 하고, 손해를 보고, 문제가 닥치게 됩니다. 고로 각종으로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한 후에,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행해야 됩니다. 그 순간에는 최고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하지만, ‘그때 그 순간, 그 차원의 생각’입니다. 그 차원만큼만 보고 생각하고서는 최고로 생각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가령 월명동을 갔다 합시다. 먼저 <호수>에 돌 쌓은 것만 보고, 그중 에서 제일 큰 돌만 찾고서 “저 돌이 월명동에서 제일 크다.” 결정하면, 거기서만 놀다 오며, 그 인식대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더 좋은 생각’을 안 하고 그 상태로 결정해 버리면, 그 이상을 보 고 생각하지 않으니 그 차원에서 끝난 것입니다. 더 좋고 큰 돌을 찾겠다 생각하면, 먼저 것보다 더 좋고 큰 돌을 찾 아 <청기와 집>쪽에 돌 쌓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제야 ‘더 좋고 큰 돌 을 찾았다.’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내면, 또 그 차원에서 끝나게 됩 니다. ‘다른 데 더 좋고 큰 돌이 있나?’ 생각하고 찾으면, <야심작>을 보게 됩니다. <야심작>을 보면, 지금까지 본 돌들을 생각하면서 “여기서 찾은 것이 최고 좋아!” 하게 됩니다. <끝> <눈>은 ‘자기가 보는 것’만 보고 판단하며, <생각>은 ‘자기가 생 각하는 것’만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자기가 보고 생각한 것’ 외에 ‘다른 것들’을 보고 생각해야 됩 니다. 그러면 ‘전보다 더 좋은 것’도 보게 되고, ‘전보다 더 못한 것’도 보게 되어 “과연 이것이 제일 좋다.”, 혹은 “이것이 생각한 것 보다 못하다.” 판단하게 됩니다. 어느 때는 ‘그 어떤 것보다 못한 것’을 먼저 보고, 그것만 좋게 인 식하고 최고로 보고 섬깁니다. 곧 우상입니다. 집을 지을 때도 ‘전에 구상한 것’과 ‘다시 구상한 것’을 비교해 봐야 됩니다. 둘 중에 나은 것을 선택하여 행하고, 둘 다 비슷하면 또 생 각해야 됩니다.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차원이 천층만층입니다. 사람의 두뇌는 생각할 수록 ‘차원의 계단’을 밟고 오르기 때문에 생각할수록 ‘훨씬 더 좋은 것’을 생각하고 실천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한번은 선생이 <편지의 답>을 급히 보내야 해서 급히 답장을 썼습 니다. 다 써 놓고 ‘이 사람에게 이것이 최고 답이다.’ 했습니다. 다음 날 편지를 부치기 전에 써 놓은 답장을 한 번 더 읽어 봤습니 다. 그런데 답이 부족했습니다. 그제야 ‘내가 왜 이렇게 썼지? 왜 이렇 게만 생각이 돌아갔지?’ 생각하고, 다시 답장을 썼습니다. 비교해 보니 ‘이전 답’과 ‘다시 쓴 답’은 땅과 하늘 차이였습니 다. 다른 센터로 다시 보고 생각하여 다시 쓰니, ‘차원 높은 답’이 되 었습니다. * 또 한번은 <폭포수>를 놓고 몇 달 동안 어떤 형상을 구상했습니 다. 그때는 ‘이게 최고다. 그 환경에서는 더 이상적인 구상은 없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 구상대로 실천하기 직전에 ‘다른 구상은 없을까?’ 하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때, ‘전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또 다른 구 상’이 떠올랐습니다. 전에는 폭포수를 ‘4미터 높이’로 구상했는데, 다 시 생각하여 ‘10미터 높이’로 구상했습니다. 그제야 ‘몇 달 동안 연구한 것인데, 왜 10미터를 생각하지 못하고 4미터에서 생각이 막혔지? 왜 전에는 10미터로 할 생각이 안 돌아갔 나?’ 했습니다. ‘전의 것’에 생각의 시동이 걸려서 그것만 만족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자는 “<눈>은 한 번 ‘그것’을 보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 여 ‘다른 것’은 안 보인다. <생각>도 한 번 ‘그것’을 생각하면, 그것 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되어 그 생각이 끝나도록 ‘다른 것’은 생각나 지 않는다.” 하며 코치하셨습니다. * 여러분도 <사명>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자기가 보고 생각한 것’ 대로만 하지 말고,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한 번 더 생각하면, 완전히 다릅니다. <사명>을 하거나 <일>을 할 때, 반드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비교하여 ‘가장 좋은 것’을 택하여 행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자기 인식대로 자기가 믿으니, 자기 인식대로 결정하게 됩니다. 자기가 ‘생각으로만 생각해 놓고 보는 것’과 ‘실천해 놓고 보는 것’은 다릅니다. 그때 그 주관권에서는 ‘그것’만 생각하기에 그것을 최고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끝나고 ‘다른 생각’을 해 보면, ‘먼저 생각 한 것’은 ‘나중에 생각한 것’보다 못합니다. ‘나중에 생각한 것’은 ‘먼저 생각한 것’ 터전 위에 생각하니 훨씬 나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월명동 야심작>도 여섯 번까지 다시 쌓게 된 것입니다. 손으로 어떤 글씨를 써 봐도 그때는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또 써 놓고 비교해 보세요. 두 번째가 더 잘 써졌습니다. 이는 손의 감각 이 전보다 풀렸기 때문입니다. 그같이 <눈>도 방향을 돌려서 다시 보고, <생각>도 방향을 돌려서 다시 생각하면, 눈과 생각의 감각이 풀려서 ‘다시 보고 생각한 것’이 ‘전의 것’보다 더 좋게 보이고 더 좋게 생각됩니다. 어린아이에게 시장에서 사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고, 고른 후에 만 족하냐고 물으면 “만족해요.” 합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나올 때 그 옆 가게의 것을 다시 보면 “저것을 고를 걸, 괜히 이것을 골랐네.” 합니 다. 전보다 더 좋은 것을 보니 그러한 것입니다. 어른도 그러합니다. 사람을 볼 때도 그러합니다. 그때는 ‘그 사람’이 최고로 보이고 만 족했지만, 차원을 높여서 보면 아닙니다. 고로 아예 100명, 1000명을 보고서 차원 높여서 보고 선택하고, 선택한 후에도 계속 차원 높게 만들 어 줘야 됩니다. 자기 지능, 아이큐, 뇌의 차원, 생각의 차원을 높이려면 반복해서 생 각하고 해 보고. 또 다른 방향으로 많이 생각하고 해 봐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구약>이 그 시대에서 더 이상이 없는 최고 차원의 역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씀’도 ‘제도’도 최고라고 생각했 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가 오니, 비교가 안 됐습니다. <구약시대>는 ‘분 재 소나무’와 같았고, <신약시대>는 ‘정원 소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래도 구약인들은 <구약>만 보고 <신약>은 못 보고 따르지 않았습 니다. 신약인들만 알고 따랐습니다.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신약역사>가 더 이상 없는 최고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말씀’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실상 신약 주관권 안에서 는 더 이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약역사>에 비하면 <신약역사>는 ‘정원 소나무’와 같고, <성약역사>는 ‘온 산에서 최고로 큰 표송’과 같습니다. 그만큼 ‘말 씀’도 차이가 나고, ‘위치’도 차이가 납니다. 그래도 신약인들은 자기들 것만 보니 차원을 높이지 못하여 <성약> 을 못 봅니다. 성약인들만 알고 따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하나님의 역사>는 마치 열차가 가는 것과 같습니다. 고로 ‘시간’ 이 가고 ‘세월’이 갈수록 ‘거리’가 멀어지고 ‘위치의 차원’이 높아 집니다. <과거 역사>는 ‘과거 위치’에 있고, <현재 역사>는 ‘현재 위치’ 에 있습니다. <미래 역사>는 ‘미래 위치’에 있습니다. 고로 <미래 역 사>는 ‘미래’에 가야 그 차원에 오르게 됩니다. <끝> 집을 고르든지, 차를 고르든지, 각종 물건을 고르든지, 사람을 선택하 든지 <인식>을 바로 하고, <전체>를 다 보고 확인한 후에 최종 결정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볼 때도 그러합니다. <인식>을 바로 하고, 역사가 커 가는 것을 보고 판단해야 됩니다. 사람이 컸어도 뇌가 성장하지 않으면 더 이상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라도 커야 발전됩니다. <성약역사>가 왔어도 커야 발전됩니다. 역사의 유년기 – 소년기 – 청년기 – 중년기가 다릅니다. <종교>도 ‘자기 지능대로, 자기 뇌의 차원대로’ 믿고 삽니다. ‘지 능’이 낮고 ‘뇌의 차원’이 낮으니 샤머니즘 신앙을 하고, 이단을 온전 한 종교로 인식하고 믿는 것입니다. 또한 ‘지능’이 낮고 ‘뇌의 차원’이 낮으니 새 역사를 몰라보고 구시대에 머물러 새 역사를 막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생각’을 최고로 생각하고 만 족해합니다. 뇌가 크고 성장하면,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 오늘의 마지막 화면을 보면서 말씀 마치겠습니다.) <영상7> <과거의 구(舊)종교>는 컸어도 ‘그 주관권 안’에서만 완성됐지, <구역사>가 <새 역사>는 아닙니다. <구역사>가 아무리 커도 지금 막 시 작하여 크고 있는 <새 역사>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이는 마치 ‘병아리’ 중에서 최고로 큰 병아리를 골라도 ‘어미 닭’ 중에서 아무거나 막 고른 닭과도 아예 비교가 안 되는 격입니다. 또한 마치 ‘눈썹’ 중에서 최고로 긴 눈썹을 골라도 ‘긴 머리’에 서 아무렇게나 막 뽑은 머리카락과도 아예 비교가 안 되는 격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역사>와 <새 역사>의 차이입니다. <끝> 오늘 말씀! ‘한 가지’만 보고 그것을 최고 이상적이라 하지 말고, 반복해서 보고 생각하고, 다른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보고 생각하라고 했 습니다. 이것이 ‘뇌의 차원을 높이는 인봉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