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4.06.18 (수)
140618 수요말씀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가 기회이니, 그때 해라
- 선포일
- 2014.06.18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4장 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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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18-수요말씀_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가 기회이니, 그때 해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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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8일 수요말씀>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가 기회이니, 그때 해라
본 문 마태복음 24장 42-44절
할렐루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실한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배로 영광
돌리러 온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
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이번 주 주일에는 <꿈>에 대해 말씀하면서 ‘꿈을 예사로 보지 말아
라. 꿈은 계시다.’라는 주제로 말씀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주일말씀으로 못다 한 말씀을 이어서 전해 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가 기회이니, 그때 해라.’입니다.
(천천히 말하면서 양손 기본 제스처)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시작>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 해라.” (강조하며 두 번 반복하기)
질문입니다. 성자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 먼저 청중에게 답을 받아 볼 것. 두세 명 정도만.
그리고 답을 맞힌 사람이 있으면, 박수 쳐 주고 칭찬해 주고
답을 맞혔어도 정확하게 답을 한 번 더 말해 주기.
두세 명이 답을 말했으나 답이 없으면, 객관식으로 문제를 내 준다.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 해라.” (강조하며 말하기)
객관식으로 문제를 내겠습니다.
1번,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 하고, 안 도와주면 하지 말아라.
2번,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 적게 도와줘도 그때가 해야 될 기회다.
고로 도움이 적다고 생각하지만 말고, 그때 해야 된다.
몇 번이 답일까요? (청중의 반응을 보고 잠시 기다렸다가)
네! 2번이 답입니다. (그리고 답을 한 번 더 말해 준다.)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 해라.” 이 말은...
→ 실 가닥만큼 적게 도와줘도 그때가 해야 될 기회다.
고로 도움이 적다고 생각하지만 말고, 그때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천천히 읽어 주면서, 양손이나 한 손 기본 제스처하며 말하기)
<잠시 쉬었다가>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 그때가 기회다. 그때 해야 된다.”
(천천히 읽어 주면서, 양손이나 한 손 기본 제스처하며 말하기)
모든 일은 성자가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와줄 때 해야 됩니다.
적게라도 도와줄 때 해야지, 그때 못 하면 혼자 해야 되기에 하기 힘
들고 어렵습니다.
새벽에도 혼자 일어나기 힘드니, 성자는 깨워 주고 도와주십니다.
성자가 강하게 깨워 주셔도 ‘몸에 살짝 스치는 바람’같이 지나가며
깨워 주십니다. 그때가 일어날 기회입니다.
힘들어도 그때 일어나야지, 그때 못 일어나면 못 일어나고 끝납니다.
그때 일어나서 ‘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육신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그리도 큽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자>는 살아 있으니 행할 수 있고, <죽은 자>는
더 이상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는 그
리도 큽니다. 그 육도 영도 그리도 차이가 있습니다.
<행하는 자>와 <행하지 않는 자>의 차이는 그리도 큽니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행하는 자>는 행하는 만큼 변화를 이루고 얻게
되지만, <행하지 않는 자>는 아무리 자기에게 실력과 재능이 있고 여건
이 되어도 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변화되지 않고 얻지도 못하기 때문입니
다.
행한 것만 남아 있습니다. (천천히 말하면서 양손 기본 제스처)
<자기 육신>을 연구하고 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몸 가리킨다)
<자기 생각>을 연구하고 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머리 가리킨다)
<자기 뇌>를 연구하고 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머리 가리킨다)
육신도, 생각도, 뇌도 가지고 있기만 하면 가치대로 쓰지 못합니다.
연구하여 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그 값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 <육신과 생각과 뇌의 특징>을
한 가지 예를 들면서 말해 주겠습니다.
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려면, 수면 상태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눈’을 떴어도 ‘몸’과 ‘마음·정신·생각’은 97% 수면 상태입니
다. 고로 잘 안 일어나집니다.
이때는 ‘몸’도 ‘생각’도 실 가닥만큼만 잠이 깨어 있습니다.
(‘실 가닥만큼만’ 할 때, 천천히 말하면서 손으로 얇은 실을 표현한다.)
이때 ‘실 가닥 같은 생각’을 잡고 일어나야 됩니다.
(‘실 가닥 같은 생각’ 할 때, 역시 천천히 말하면서 손으로 얇은 실을 표현한다.)
이렇게 일어나면, 앉아 있어도 ‘몸과 생각’은 잠에 취해 있기 때문
에 또 졸립니다. <육신>은 누구나 그러합니다.
그러니 힘들고 졸려도 자꾸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여 <체질>
이 되게 해야 됩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 천천히 말한다.)
<체질>이 되면,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 ‘몸과 생각’이 30% 이상
강하게 되어 수면 상태라도 쉽게 일어나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뇌’도 하나의 지체입니다. 잠을 자다가 ‘눈’을 떠서 잠에서 깼
어도 ‘뇌’는 97%가 아직 수면 상태입니다. 고로 마치 발이 저릴 때
발을 마사지하듯 머리를 지압해 주면, 뇌의 수면 상태가 풀립니다. 그러
고 나서 일어나면, 일어나기 아주 쉽습니다.
‘생각’이 깨어나도 ‘뇌’라는 지체가 수면 상태에서 완전히 깨어
나지 않으면, 비몽사몽 상태에서 다시 잠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자가 강하게 잠을 깨워 주셔도 실 가닥만큼만 자극이 오고 느껴집
니다. 이는 ‘몸과 생각과 뇌’가 수면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실 가닥 같은 생각’ 할 때, 역시 천천히 말하면서 손으로 얇은 실을 표현한다.)
고로 성자가 실 가닥같이 도와줘도 그때가 기회이니 그때 하라고 말
씀한 것입니다.
평소 때도 성자가 성령님과 함께 도와주며 강하게 생각나고 느껴지게
해 주셔도 인간은 실 가닥만큼만 느낍니다.
이는 자기 ‘몸과 마음과 생각과 뇌’가 그때 자기가 하는 일에 집중
하고 있어, 마치 수면 상태와 같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 천천히 확실히 말한다.)
고로 성자가 강하게 도우며 느끼게 해 주셔도 자기는 실 가닥만큼만
느끼고 깨닫는 것입니다.
잠을 완전히 깬 상태에서 무엇을 보거나 들으면 확실합니다.
이와 같이 ‘육과 마음과 뇌’가 무엇에 집중하는 육적 수면 상태에
서 ‘정신과 생각’을 영적으로 집중하여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성자의
도움이 실 가닥같이 느껴지지 않고 강하고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 천천히 확실히 말한다.)
사람이 ‘다리’가 저릴 때는 자극을 줘도 조금만 느껴지고, 어떨 때
는 아예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음과 생각’도 어떤 것에 쏠려 있을 때는 성자가 강하게 자극을
주셔도 실 가닥같이 느껴지고, 혹은 아예 못 느끼기도 합니다.
고로 자기가 먼저 성자를 찾고 생각을 집중하여 강하게 해야, 성자의
말이 마음으로 강하게 들려오고, 성자가 각종으로 전하시는 메시지가 확
실하게 느껴지고 깨달아집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 천천히 강조하며 말한다.)
<잠시 쉬었다가>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24장 42절에서 44절을 보면, “그
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
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
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했습니다.
이는 <재림> 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생활 가운데 매일, 매
시간 찾아오시는 성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둑이 자기 집에 언제 올지 알고 깨어 있다면, 절대 자기 집을 뚫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자가 자기를 언제 찾아올지 알고 깨어 있다면, 매일 성
자를 맞고 대화하며, 성자가 하시는 말씀을 느끼고 깨달아 성자가 원하시
는 대로 살 것입니다.
삶을 살면서 ‘몸과 마음과 생각’이 어떤 것에 쏠려 있을 때는 성자
가 강하게 자극을 주셔도 실 가닥같이 느껴지고, 혹은 아예 못 느끼기도
합니다.
고로 자기가 먼저 성자를 찾고, 성자께 생각을 집중해야 됩니다.
그러면 성자가 자기에게 오셨다는 것을 알고, 성자의 말이 마음으로
강하게 들려오고, 성자가 각종으로 전하시는 메시지가 확실하게 느껴지고
깨달아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기도할 때, 더욱 한 가지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해도 <자기가 구할 것>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생각’이
그쪽으로 쏠려서 성자가 말씀하셔도 못 느낍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 천천히 강조하며 말한다.)
기도할 때는 ‘마음과 생각’을 <성자>께 집중하고 대화해야 됩니다.
그래야 성자의 말씀이 마음이 들려오고, 느껴지고, 깨달아집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 천천히 강조하며 말한다.)
<기도>와 <대화>는 다릅니다.
<기도>는 자기가 성자께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고,
<대화>는 성자를 앞에 두고 성자께 집중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끼리도 같이 대화해야 서로 마음이 통하여 상대가 하는 말이 잘
들립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견’만 들어 보라 하며, 상대의
말은 잘 듣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말은 듣고도 버려야 됩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혼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나 자기가 구할
것만 말하지 말고, <성자>께 집중하여 성자가 하시는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느끼고, 깨달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오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새벽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똑같은 생각을 해도 ‘낮’에 생각한 것과 ‘새벽’에 생각한 것은
그 차원이 땅과 하늘 차이입니다.
새벽에는 뇌가 매우 총명한 상태라서 차원 높은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제시간에 잠을 깨고 일어나서 기도하며 성자와 대화하고 하루를 시작
해야 됩니다.
- 가령 새벽 1시에 일어날 사람이 새벽 1시에 잠에서 깼는데도 더
자다가 새벽 3시에 일어나면, 마치 열차를 타고 가다가 첫 번째 역에서
내려야 되는데 세 번째 역에서 내리는 격이 됩니다.
고로 그 역에 해당되는 배경을 보게 되고, 그 역에 해당되는 코스를
겪게 되듯이, 꿈속에서도 그에 해당되는 것을 필요 없게 겪게 되고, 사몽
과 잡몽을 꾸게 되고, 필요 없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 가령 오전에 신앙생활을 할 사람이 오전에 안 하고 계속 가면, 오
후부터는 다른 배경과 상황을 거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다 해질 때
돌아오면, 그제야 신앙에 해당되는 것을 보고 느끼게 됩니다.
새벽에 제시간에 일어나지 않고 또 자면, 사몽과 흉몽과 잡몽을 꾸게
되고, 혼이 사탄 주관권을 다니게 되고, 꿈에 혼이 필요 없는 장소를 다
니고 필요 없는 배경을 보게 됩니다. 제시간에 일찍 일어나면, 그런 꿈을
꿀 필요가 없게 됩니다.
<산길>을 가다가 길이 끝나면 되돌아와야 됩니다. 길이 끝났는데 거
기서 더 가면, 필요 없이 가시넝쿨과 잡초 밭으로 더 가게 됩니다.
<꿈길>도 그러합니다. 일어날 시간이 됐는데 더 자면, 혼이 필요 없
는 배경을 보고 겪으면서 사몽과 흉몽과 잡몽만 더 꾸게 됩니다.
그러니 새벽에 성자가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울 때, 그때 일어나서 성
자와 대화하며 기도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기도뿐 아니라 모든 일을 할 때에는 성자가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울
때 미루지 말고, 그때 해야 됩니다.
(‘실 가닥’ 표현하고, 뒤에 강조하며 한 손 기본 제스처)
성자께서 성령과 함께 <영감, 직감, 느낌, 감동>을 실 가닥만큼이라
도 줄 때 미루지 말고, 그때 해야 됩니다.
(‘실 가닥’ 표현하고, 뒤에 강조하며 한 손 기본 제스처)
사람이 숲속에서 눈으로 호랑이 꼬리를 조금만 봤더라도 그것은 호랑
이이니, 즉시 뒷걸음질을 하며 도망쳐야 됩니다.
호랑이 전체 모습을 다 보고 나서야 뒷걸음질 치고 오려 합니까? 그
러면 호랑이가 보고 앞걸음하여 쫓아옵니다.
이와 같이 <영감, 직감, 느낌, 감동>이 실 가닥만큼이라도 올 때, 그
때 즉시 해야 됩니다. 성자가 실 가닥만큼이라도 도울 때, 그때 즉시 해
야 됩니다. (‘실 가닥’ 표현하고, 뒤에 강조하며 한 손 기본 제스처)
그때그때 오는 <영감, 직감, 느낌, 감동>은 ‘성자의 구상’입니다.
그 구상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 구상은 ‘생각’으로 전달됩니다.
어떤 참사나 어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영감, 직감, 느낌, 감동, 깨달음>을 ‘마음’에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때 그 <영감, 직감, 느낌, 감동, 깨달음>을 예사
로 생각하고 미루면서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사고를 당하고, 다치고,
죽기도 합니다.
영계에 가서 사고를 당해서 죽은 자의 영에게 물어보면, 압니다.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앞에서 말했지요? 사람이 잠에서 깨면, ‘몸과 마음과 생각과 뇌’가
수면 상태이기 때문에 곧바로 깨기 어렵습니다. 이때 머리를 자극해 주면
수면 상태가 빨리 풀립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때
‘몸과 마음과 생각과 뇌’가 그것에 집중하고 있기에 다른 것은 생각나
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자가 말씀하시고 도우셔도 잘 모릅니다.
그때 성자를 찾고 부르면서 <성자>께 집중하며 뇌에 자극을 주면, 뇌
가 풀려서 잘 깨닫게 됩니다.
<영감, 직감, 느낌, 감동, 깨달음>을 강하게 받으려면, ‘마음과 생
각’을 <성자>께 집중하여 행해야 됩니다.
한 가지를 집중해서 보면 잘 보이듯, <성자>께 집중하면 성자의 말씀
이 마음에 들려오고 느껴지고 깨달아집니다.
<영감, 직감, 느낌, 감동>이 크고 강하게 올 때만 믿고 행하지 말고,
실 가닥만큼이라도 오면 그때 즉시 행해야 됩니다. 그때가 하나님과 성령
님과 성자가 도우실 때입니다. (‘실 가닥’ 표현하고, 강조하며 양 손 기본 제스처)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