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4.06.27 (금)
2014년 6월 27일 금요말씀 배로 도 해라
- 선포일
- 2014.06.27 (금)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5장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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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7일 금요말씀-배로 도 해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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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7일 금요말씀>
배로 더 해라
본 문 마태복음 25장 14-30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이번 주에는 ‘배로 더 해라.’라는 성자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선생이 할 일이 수북이 쌓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간구할 때, 성
자가 주신 말씀입니다.
‘배로 더 해라.’ 이 말씀은 시간이 남아 여유가 있을 때 주신 것이 아니
라 할 일이 수북이 쌓여 있을 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이 없는데 여기서 배로 더 하라고 하시니,
행해 보지 않고서는 그 뜻을 모릅니다.
‘반드시 성자의 깊은 뜻이 있다.’ 생각하고, 그때부터 배로 더 행했습니
다. 역시 말씀은 행해 봐야 그 깊은 뜻을 압니다. 배로 더 행했더니 현실의 어
려움과 고민과 걱정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합니다. 안 되는 일, 어려움이 있을 때 오히려 배로 더 행해
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해결됩니다. 정녕 성자의 말씀대로 됩니다.
그래서 성자는 먼저 선생이 겪게 하시고, 선생이 행하면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전체에게 전하게 하십니다. 여러분도 그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선생
처럼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일말씀에 이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
합니다.
<말씀 시작>
배로 더 하려면, 먼저 ‘생각의 차원, 행실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배
로 행하면 얼마나 좋은 일이 일어나는지 먼저 인식해야 됩니다.
그리고 <육>으로만 보지 말고, <마음·정신·생각>을 집중하여 보고,
<혼>으로도 보고, <영>으로도 봐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사람에게는 <육체>가 있고, <마음·정신·생각>이 있고,
<혼체>가 있고, <영체>가 있습니다.
고로 사람은 무엇을 볼 때, ‘4가지 방법’으로 봅니다.
첫째, <육의 눈>으로 봅니다.
둘째, <마음과 생각의 눈>으로 봅니다.
셋째, <혼의 눈>으로 봅니다.
넷째, <영의 눈>으로 봅니다. <끝>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중요
현재 자기가 보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이만큼’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사방>을 ‘배’로 더해 보겠습니다. <사방>을 ‘배’로 더하니 ‘네
배’나 커지게 됐습니다.
이와 같이 <육의 눈>으로만 보던 것을 ‘배’로 하면, <마음·정신·생각
의 눈>으로 보게 되고, <혼의 눈>으로 보게 되고, <영의 눈>으로 보게 되어
더 깊은 차원으로 깨닫고 행하게 됩니다. <끝>
‘배’로 더 많이 보고 깨닫고 행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꿈에 보는 것들은 <혼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혼>으로 보면 <육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크게’ 보이고, ‘더 자
세하게’ 보이고, ‘더 실감 나게’ 보이고, ‘더 감동되게’ 보이고, ‘100
배나 1000배 더 느껴지면서’ 보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혼>은 <육>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고, 신령하고, 느끼는 강도가 높기 때
문에 훨씬 강도 높게 보는 것입니다.
<육의 눈>으로는 ‘멀리 있는 것’은 잘 안 보이고 흐릿하게 보입니다. 그
러나 <혼>이 보면 ‘지구 이 끝에서 저 끝까지’도 훤히 보입니다. <혼의 급
수>가 높으면, ‘하늘나라에 있는 것’까지도 봅니다. <끝>
똑같은 것을 봐도 <육의 차원>에서 보면 감탄을 못 하는데, <혼의 차원>
에서 보면 감탄합니다.
고로 <육>으로 분별하기 힘든 것은 <혼>으로 분별해야 됩니다.
<혼>은 ‘신령한 존재체’입니다. 고로 모든 것을 깊이, 높이, 구체적으로
압니다. 아는 대로 더 깊이 있게 구체적으로 봅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혼>은 <마음·정신·생각> ‘자체’가 아닙니다.
<혼체>가 따로 있고, <마음·정신·생각>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정신·생각>이 ‘자기 육신’을 쓰고 보는 것과, <혼>이
보는 것은 비교가 안 되게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다만 <마음·정신·생각>이 <혼>과 일체 되어 깨닫는 것입니다. <끝>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혼> 역시, <영>이 아닙니다.
<혼체>가 따로 있고, <영체>가 따로 있습니다.
<혼>은 ‘육’보다 차원 높게 구체적으로 보듯이, <영>은 ‘혼’보다 훨
씬 더 차원 높게 구체적으로 봅니다. <영>은 ‘생각의 차원’이 가장 높습니
다. <끝>
사람이 똑같은 것을 보고 생각해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보는
차원, 생각하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영>으로 보면 ‘영’으로 보이고, <육>으로 보면 ‘육’으로 보입니다.
<영>으로 보는 것과 <육>으로 보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 <육>으로 볼 때는 ‘서쪽’으로 보이는데, <영>으로 보면 ‘동쪽’으로
보입니다.
- <육>으로 보면 ‘육의 만물’이 보이는데, <영>으로 보면 ‘영의 만
물’이 보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첫째 <육 차원>, 둘째 <육의 마음·정신·생각의 차원>, 셋째 <혼의 마
음·정신·생각의 차원>, 넷째 <영의 마음·정신·생각의 차원>이 완전히 구
분되어 있습니다.
이 ‘네 가지’가 구분되어 있으면서도, 또 일체 되어 수수 작용을 하며
서로 도우면서 존재합니다. 고로 잘 분별해야 됩니다. <끝>
<육의 차원>으로만 보고 행하지 말고, <사방>을 ‘배’로 하여 <마음·정
신·생각의 차원>, <혼의 차원>, <영의 차원> ‘네 가지’로 보고 깨닫고 행
하여 ‘배’로 얻고 살라고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육의 실력>에 따라 <혼>도 <영>도 발달됩니다.
<자기 육>은 ‘자기 혼’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확인해서 알지만, <자
기 혼>은 ‘자기 영’을 ‘혼의 눈’으로 쳐다보고 압니다.
<자기 육>이 ‘자기 혼’을 부르면 바로 대답하지만, ‘자기 영’을 부르
면 바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고로 ‘자기 육’이 ‘자기 혼’을 통해서 ‘자기 영’을 부르고 찾으면,
육과 영이 잘 통하게 됩니다.
이는 <영>은 차원이 높아서 <육>과는 잘 안 통하는데, <혼>과는 잘 통합
니다.
그래서 ‘혼’에 대해 가르쳐 줬습니다. ‘영’과 통하려면 힘드니, 쉽게
‘혼’을 통해서 영과 통하면서 영의 상태를 알라고 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 <혼>은 ‘자기 애인 같은 존재’라면, <영>은 ‘자기 왕 같은 존재’입
니다.
<자기 육>이 <자기 혼>과 통하면 <자기 영>과 잘 통합니다.
<자기 혼>은 <자기 육>과 잘 통하고 <자기 육의 마음·정신·생각>과 잘
통합니다.
- 또한 <분체>는 인류에게 ‘혼 같은 존재’이고, <성자>는 ‘영 같은 존
재’입니다.
고로 <육> 같은 ‘우리 인생들’이 <혼> 같은 ‘사명자, 분체’와 통하면
<영> 같은 ‘성자’와 잘 통합니다. <끝>
수영법을 안 배우면, 깊은 물에서나 낮은 물에서나 수영을 못 합니다. 이
와 같이 <혼>에 대해서 안 배우면, ‘자기 영’과 안 통합니다.
『<육>은 ‘마음·정신·생각’과 통하고, <마음·정신·생각>은 ‘혼’
과 통하고, <혼>은 ‘영’과 통하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배우면, 유(有)다. 안 배우면, 무(無)다.” 하셨습니다.
<세상의 것들>도 배우고 겪고 나서 봐야 알게 되니, 그때부터는 ‘근본’
을 보게 됩니다. 고로 더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합니다.
<영계>도 ‘혼’이 ‘육’을 통해서 깊이 기도하고 성자께 배우고 알고서
봐야 더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보입니다.
글을 써도 반복하면서 개발해야 멋있는 글 작품이 됩니다.
반복해서 행하고 노력해야 됩니다.
<길>도 개발하지 않으면 ‘소로 길’이라서 차가 못 다닙니다. 그러나 개
발하면 차가 다니는 ‘고속도로’가 됩니다.
자기 <마음·정신·생각>도, <혼>도, <영>도 개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
고 깨닫고 느끼고 행하면, 작고 보잘것없습니다.
배우고 개발하고서 보고 느끼고 행하면,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되
고, 제 기능을 하여 ‘배’로 행하여 ‘배’로 얻게 됩니다.
<육 차원>, <마음·정신·생각 차원>, <혼 차원>, <영 차원>은 한 단계
씩 더 높아지지만, 이 ‘한 단계’가 상상도 못 하게 엄청난 차이입니다. ‘얻
는 것’도 다르고, ‘보는 것’도 다릅니다.
<전환>
이제 ‘배로 더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배만 더 커도, 상상도 못 하게 큽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길이 55m 운동장을 ‘배’로 넓히면 <국제 규격 운동장>이 됩니다.
그러나 ‘그대로’ 두면 <일반 운동장>에 불과합니다.
배로 더 행하는 것이 그리도 큽니다.
배로 하면 <세계형>이 됩니다.
건물도, 집도, 환경도 ‘배’로 크게 만들면 상상도 못 하게 커져서, 다른
느낌을 주고, 전혀 다른 환경이 됩니다.
기도, 말씀, 심정, 성령의 역사, 성자 사랑, 증거, 회개, 전도, 관리, 강의,
실천하기도 ‘배’로 더 하면, 육과 혼과 영에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 전혀
다른 형체로 차원 높여 변화됩니다. <끝>
55미터 운동장을 배로 넓혀 110m가 되니 <국제 규격 운동장>이 되듯이,
현재 <자기가 하는 것>을 ‘배’로 더 하면 ‘세계형으로 쓰여질 형체’로 변
화됩니다.
배로 더 하면, 운명이 달라집니다.
배로 더 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배로 더 하면, ‘두 배’로만 커지지 않습니다.
사각형을 <사방>으로 ‘배’로 넓히니, ‘네 배’가 됐지요?
이와 같이 배로 더 하면, ‘세 배, 네 배’로 커집니다.
한 겹 줄로 들 때는 ‘하나’를 드는데, 배로 하여 두 겹 줄로 들면 ‘두
개’만 드는 것이 아니라 네다섯 개를 들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배로 하면, ‘세 배, 네 배’가 됩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조금만 더’ 커도 표가 나게 잘 보이고, ‘조금만 더’ 해도 안 될 것이
됩니다. 고로 배로 하라는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9>
가령 90cm의 길이로는 짧아서 평생 안 될 것인데, 거기서 ‘조금 더
10cm’가 길어지니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조금 더’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끝>
‘조금 더 하는 것’, ‘조금 더 차원을 높여 한 차원 더 높아지는 것’이
그리도 큽니다.
그 ‘조금 더’에서 <운명>이 뒤바뀌고, <기적>이 일어나고, <안 될 것>
이 됩니다.
그래서 성자는 “조금 더 하여 한 차원 더 높이 올라라.” 말씀하신 것입
니다. ‘조금 더 하는 것’ 역시 ‘배로 하는 것’입니다.
휴거도 ‘100~200선까지’가 <1차원>이고, ‘200~300선까지’가 <2
차원>입니다. ‘한 차원 더’ 높은데,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 바쁜 <휴거 때>에 어떤 사람은 ‘노는 데’ 시간을 배로 쓰고, ‘쉬
는 데’ 시간을 배로 쓰고, ‘필요 없는 것을 하면서’ 시간을 배로 쓰면 안
됩니다. 그러면 손해입니다.
- 어떤 사람은 <강의 시간>을 ‘배’로 늘려서 한 시간 강의할 것을 두
시간씩 합니다. 그러니 듣는 사람이 한계가 와서 배운 것까지 모두 잊어버립니
다.
‘강의할 때 배로 할 것’은 무엇일까요? <시간>은 ‘반’으로 줄이고,
배로 <수준>을 높이고, 배로 <강도>를 높이고, 배로 ‘성령의 불’을 받아 심
정 뜨겁고 화끈하게 강의하라는 말입니다.
- 어떤 사람은 배로 더 크게 하라고 하니, 몸을 배로 더 크게 키워서 비만
이 되었습니다. 배로 더 하라는 말의 이치를 알고, 말귀를 알아듣고 해야 됩니
다.
- (한국에서만 전할 부분) 어떤 사람은 ‘배’로 하라고 하니 ‘먹는 배’
로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배’로 하라고 하니 ‘차’로 안 가고 ‘배’로 갑
니다. 배로 하라는 말의 이치를 알고 해야 됩니다.
- 배로 하라는 말씀을 듣고, <편지>를 배로 쓸까 걱정됩니다.
- 어떤 사람은 배로 하라고 하니, ‘불의한 행위’를 배로 더 행합니다.
‘누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그렇게 할까?’ 하지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성
자의 말씀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그렇게 행하고도 남습니다.
* 배로 하라고 하니 ‘이치’에 맞지 않게 배로 하면, 옷을 배로 큰 것을
사 입은 격이 되어 옷이 벗겨져 알몸으로 다니게 되고, 신발을 배로 큰 것을
사서 신은 격이 되어 신발이 벗겨져서 엿장수가 가지고 갑니다. ‘배로 할
것’을 분별해야 됩니다.
- <운동>도 배로 더 할 사람만 배로 해야지, 배로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배로 하면, 몸에 무리가 되어 병이 되고 수술까지 해야 됩니다.
- <잠>도 워낙 안 자는 사람은 배로 자도 되지만, 원래 배로 자는 사람은
잠을 반으로 줄여야 됩니다.
- <말>도 생각하지 않고 배로 많이 하는 사람은 쓸데없는 말을 하여 실수
하게 되니, 반으로 줄여야 됩니다. 말만 많이 하면 전화세만 많이 나옵니다.
말이 너무 많으면, 실수하게 됩니다. 고로 ‘말 값’이 ‘묵은 나물 값’이 됩
니다.
- 배로 하라고 했다고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배로 쓰면 안 됩니다. 그
러면서 섭리를 뛰면서 빚 졌다는 인식을 주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배로 성자
의 심정거리가 됩니다.
* 배로 하라고 하니, 말귀를 못 알아듣고 분별하지 않고 무조건 배로 할까
봐 성자도 선생도 말씀을 전해 놓고도 걱정입니다.
<성자가 원하시는 것들>과 <자기가 꼭 행해야 할 것들>을 ‘배’로 더 하
라는 말입니다.
- 기도, 감사, 말씀 듣기, 말씀 깊이 보고 깨닫기, 전도, 관리, 회개, 성자
사랑, 생각 온전하게 만들기, 자기 만들기 등은 <휴거의 차원>으로 ‘배’로
해야 됩니다.
- 지금보다 배로 ‘혼적인 자, 영적인 자’가 되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배로 얻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려면, 먼저는 배워야 됩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고, 써 보고, 말하면서 연습해 보고, 그다음에 입으로 해 보는 것입니다.
‘혼적인 자, 영적인 자’가 되려면, 먼저는 배워야 됩니다. 그리고 자꾸
생각해 보고, 자꾸 해 봐야 됩니다. 그래야 차원이 높아집니다.
반복해서 차원 높여 생각하면서 하면, ‘선생’이 됩니다. ‘박사’가 됩
니다. ‘도사’가 됩니다. ‘달인’이 됩니다.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하면, 결국 목적한 대로 변화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0>
나무에 못을 박을 때도 반복해서 박아야 결국 나무끼리 연결하여 갖가지
물건들을 만들게 됩니다. 반복해서 행하니, 형체가 바뀌었습니다. 나무의 운명
도 바뀌었습니다.
강가의 조약돌도 반복되는 풍화작용에 의해 큰 돌이 손에 쥐는 조약돌로
변화된 것입니다.
바늘에 실을 넣는 것도 반복하면 들어갑니다.
천 리 길도 반복해서 걸어야 목적지에 다다릅니다.
하다가 말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끝>
반복하면, 안 될 것도 됩니다.
반복하면, <느낌>도 <깨달음>도 <상황>도 달라지고, <모양>도 <형상>도
달라지고 변화됩니다.
그러나 똑같은 차원에서만 반복하면 지루하고, 호기심이 사라지고, 권태가
오고, 발전이 없습니다. 반복해서 행하되, 차원을 높여서 생각하고 행하면서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행해야 됩니다.
그러나 ‘죄’나 ‘악한 행위’는 반복해서 행하면, 결국 세월호가 침몰하
듯 인생이 침몰하고 맙니다.
<중심>을 잃으니, 배가 뒤집혀 침몰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과 생각’도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반복하면서, 생명길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말씀 마무리>
주일과 수요일에 이어서 오늘도 ‘배로 더 해라.’라는 성자의 말씀을 전
해 주었습니다.
첫째, <육 차원>, <마음·정신·생각 차원>, <혼 차원>, <영 차원>으로
보는 것에 대해 말씀하면서, 더 깊고 신령하게 혼적, 영적 차원으로 보고 배로
행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둘째, 배로 하면 ‘두 배’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세 배, 네 배’더 커
지고 잘되니, <형체>가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지고, <문제>가 해결되고,
<안 될 것>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조금 더 하는 것’ 역시 ‘배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그
‘조금’에서 <운명>이 바뀐다고 말씀했습니다.
셋째, 배로 행하되 말귀를 알아듣고 ‘배로 행할 것’은 배로 행하고,
‘반으로 줄일 것’은 반으로 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넷째, 처음부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완성하는 것
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반복해서 하되, 차원을 높이면서 생각하고 행하라고 했
습니다. 그러면 느낌도, 깨달음도, 상황도, 형체도, 운명도 달라진다고 말씀했
습니다.
<자기>가 ‘자기 희망’입니다.
<자기>를 ‘자기 희망’으로 만들려면, <자기>가 행해야 됩니다.
성자는 우리가 ‘희망’을 향해 행하도록, 분체를 통해 ‘희망의 자료’를
주십니다. 바로 ‘말씀’입니다.
이 ‘희망의 자료’, 곧 ‘말씀’을 가지고 자기가 하나하나 행하다 보면,
<자기>가 ‘희망’이 됩니다.
그리고 성자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가 꼭 할 것>들을 배로 행하면, <자기
희망과 꿈>을 배로 빨리, 배로 크게 이루게 되고, <휴거>도 배로 빨리, 배로
크게 이루게 됩니다.
‘희망의 자료, 말씀’이 모두의 뇌와 생각에 가득 차고, ‘성자의 갖가지
도움’이 모두에게 충만하고, ‘배로 행하고자 하는 정신’이 모두에게 충만하
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