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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4.07.23 (수)

2014년 7월 23일 수요말씀 생각이 살아 있는 자가 산자다

선포일
2014.07.23 (수)
성경 본문
마태복음 22장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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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3일 수요말씀> 생각이 살아 있는 자가 산 자다 본 문 마태복음 22장 32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이번 주 주일에는 ‘네 발의 신을 벗어라.’라는 주제로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주일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 <순간의 기회>는 ‘순간의 생각과 실천’에서 온다. <생각>과 함께 <몸>이 동시에 즉시 행해라. 그래야 ‘자기 희망’도 이루고, ‘휴거’도 이룬다. 그러나 ‘어떤 생각으로 행하느냐’가 중요하다. 거룩한 곳에서 ‘네 발의 신’을 벗어라. 성자 앞에서 ‘네 주관과 잔꾀의 신발’을 모두 벗어 버려라. ‘자기 주관’을 빨리 버릴수록 <성자의 생각>이 임하여, 그 생각으로 행하니 빨리 휴거된다.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수시로 읽으면서, <자기 생각과 자기 사고>를 늘 점검하고 온전한 정신으로 행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생각>에 대한 말씀을 집중적으로 해 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생각이 살아 있는 자가 산 자다.’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시작> 생각을 안 하면, 생각이 있어도 못 쓰게 됩니다. 생각을 안 하고 있는 상태는 죽은 상태입니다. ‘생각이 죽은 자’는 죽어 있는 자입니다. ‘생각이 산 자’가 살아 있는 자입니다. 생각은 없어서 못 쓰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을 안 해서 못 쓰는 것입니다. 생각에서 잊으면, 끝납니다. <눈>으로 봐도 <생각>에서 잊고 보면 안 보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눈>은 ‘하나의 기구’입니다. 마치 ‘비디오’나 ‘카메라’와 같습니다. 비디오나 카메라는 ‘스위치’를 켜야 작동하지요? <생각>이 ‘스위치’와 같습니다. 고로 사람은 생각하고 봐야 보입니다. <끝> * 사람은 늘 ‘눈’으로 보지만, 목적한 것을 ‘생각’하고 보지 않 으면 못 봅니다. - 가령, 몇 사람이 자기 집에 왔다 갔다 합시다. 누가 무슨 옷을 입 었는지 생각을 안 하고 보면, 옷은 봤는데 무슨 색의 옷을 입었는지는 기 억나지 않습니다. - 또 자기 고향에 ‘형상바위’가 10년, 20년 동안 존재하고 있었 는데, <눈>으로는 그 바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상을 인식하고 <생각>하고 보지 않았기에 그 바위가 ‘형상석’인지는 몰랐습니다. → 그래서 무엇을 볼 때는 <눈>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 나하나 <생각>하고 봐야 보입니다. * 지도자들도 생명들을 관리하면서 ‘생각하는 쪽’만 보입니다. 그래서 ‘배우고, 알고 보기’입니다. - 가령 생명들 중에 이성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런데 지도자가 그쪽으로 생각하지 않고 보면, 이성 문제가 있는데도 평생 봐도 안 보입니다. - 혹은 생명들 중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런데 지도자가 그쪽으로 생각하지 않고 보면, 재능이 있는데도 발견하지 못하 고 인재를 썩히게 됩니다. - 생명을 관리하는 데 있어 생각 없이 관리만 하면, 그 생명이 함정 에 빠지기 바로 직전에 처해 있어도 딴 일을 합니다. → 그래서 무엇을 보더라도 <생각의 스위치>를 켜고 ‘생각’하고 봐야 하고, 무엇을 하더라도 <생각의 스위치>를 켜고 ‘생각’하고 행해 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생각하고 봤어도 ‘생각’에서 잊으면, 모릅니다. <뇌>는 ‘원동기 역할’을 합니다. <생각>은 ‘뇌가 기능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생각>이 <뇌>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고로 뇌가 굳지 않게 하려면,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계속 생각하지 않아서 뇌가 굳어 버리면, 나중에는 생각하는 것도 귀 찮습니다. <생각>이 ‘뇌의 생명’입니다. 고로 <생각>을 잃으면, ‘본 것’도 잃게 되고, ‘들은 것’도 잃게 되고, ‘행할 것’도 잃게 됩니다. 성자도 <자기 생각>에서 잊고 있으면, 그 시간에는 성자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로 ‘성자’를 잃게 됩니다. 생각날 것이 생각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생각납니다. ‘자기를 위해서 행할 것’이 있는데, <생각>에서 잊어버리고 못 하 는 자들이 많습니다. 깊은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할 일’을 자꾸 생각하고, ‘성자와 주’를 자 꾸 생각하고, ‘말씀’을 자꾸 생각하고, ‘생명들’을 자꾸 생각하여 생 각에서 잊지 않고 행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방에 전깃불이 켜져 있으면 방이 밝지요? 이와 같이 항상 ‘성자’를 생각하고 ‘주’를 생각해야 <만물>과 <생각>으로 전해져 오는 ‘성자와 주의 말’이 밝게 들립니다. 사람은 생각에서 잊으면, 생각날 때까지 모릅니다. 모두 생각해 보세요. 어떤 물건을 어디에 뒀는데 <생각>에서 잊고 있으면, 다시 찾을 때까 지 모르고 살지요? ‘성자’도 ‘주’도 ‘말씀’도 <생각>에서 잊고 있으면, 생각날 때 까지 모르고 자기 삶에 빠져서 살지요? <생각>에서 잊으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아무리 <생각>으로 부르셔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로 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부르며, 범사에 이야기하고 대화하기 바랍니다. <생각>에서 잊지 말라고 늘 부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성자를 생각하는 시간’은 마치 눈으로 쳐다보듯 ‘생각의 눈으로 성자를 쳐다보는 시간’입니다. 그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생각>으로 말씀하십니다. 성자는 전능자이며 절대 신으로서 <생각>에 역사를 하십니다. 성자를 늘 부르면 <자기 생각> 속에 ‘성자’가 살아 있으니, 늘 성 자와 교통하며 그 생각을 받아서 살게 됩니다.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신이라서 내가 불러도 너는 모른다. 너는 육이니, 먼저 나를 불러라. 그러면 나는 즉시 알고 너와 통한다. 고로 ‘인간 먼저 생각하기’다. <생각의 불>을 켜라. <생각의 눈>을 떠라. 그래야 보인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는 <생각>이 ‘실상 세계’입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생각하면, ‘행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말씀하시면, ‘행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축복을 주실 때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생각>으로 대화하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만물’을 보이고 ‘사람’을 보이면서 <생각>나게 하시며 대화하시고, 생시에서도, 꿈에서도, 영계에서도 <생 각>나게 하시며 대화하십니다. 그때 자꾸 이야기하기 바랍니다. 생활 속에서 그때그때 잊지 않고 ‘주’를 생각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됩니다. <생각>이 죽어 있으면, <구원>도 <휴거>도 안 됩니다. 생각이 죽어 있으니, ‘구원받을 생각’과 ‘휴거될 생각’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생각한 것만 행하게 되는데, ‘구원과 휴거’를 잊고 살고 ‘성자와 주’를 잊고 사니, <구원과 휴거>는 저 멀리 떠나가게 됩니다. <생각>이 ‘축복’입니다. <생각>이 ‘생명’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꿈을 꿔도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생각>이 흐릿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에서 잊었기 때문입니다. 꿈을 꾸면, ‘꿈에서 혼이 본 것’이 ‘자기 육의 뇌와 생각’에 입 력됩니다. 그러나 ‘생각의 강도’가 약하면, 곧 잊어버립니다. 생각이 청청할 때는 ‘새벽’입니다. 고로 꼭 ‘새벽’에 생각하고 행해야 됩니다. 모두 <새벽 체질>로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새벽에 일어났다가 다시 자는 체질 말고, 새벽에 일어나서 청청한 생 각으로 하루를 사는 체질로 만들라는 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생각>이 죽어 있으면, 하루가 다 지나도 생각이 안 나서 못 합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만물’이 살아 있고 ‘사람’이 살아 있어도 한 세월이 가도 모릅니다. <생각> 없이 대하면, 대해도 모릅니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둘이 같이 사랑하며 살아도 모릅니다. 고로 생각하면서 행해야 됩니다. <생각>이 살아서 행하는 자는 10배, 100배 더 행합니다.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늙어도 <생각>은 늙게 하지 말아라. 젊은이들 중에서 ‘생각의 늙은이’들이 너무 많다. ‘행실’을 보면 안다. <몸>은 쉬어도 <생각>은 쉬지 말고 놀리지 말아라. <생각>은 아무리 해도 피곤하지 않다. 생각을 많이 하면 뇌가 일을 한다. <생각>이 빛이 나도록 늘 생각해라. 그리고 생각한 것을 잊지 않도록 늘 기록하고 보아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생각날 때는 평생 잊지 않을 것 같아도 생활하다 보면 일순간 잊어버 립니다. 생각할 때는 눈으로 보이듯 보입니다. <눈>을 돌리면 보이던 것이 사 라지듯, <생각>을 돌리면 일순간 생각에서 사라집니다. 생각을 집중해야 잊지 않고, ‘깊은 것’을 생각하고, ‘높은 것’도 생각나게 됩니다. <생각>도 ‘하나의 육체’와 같습니다. <육신>이 열 내서 행할 때 잘됩니다. <생각>도 열 내서 집중해서 땀 흘리며 해야 잘됩니다. <생각의 강도>가 그 사람의 ‘지능의 강도, 삶의 강도, 혼의 강도, 영의 강도’입니다. 생각을 집중하여 ‘다이아몬드 같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금 같은 시간’을 가지고 <금>을 캐듯, ‘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자기 시간들을 <황금 시간>으로 써야 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생각>은 ‘빛’보다 400억만 배 빠릅니다. <혼체>와 <영체>도 그러합니다. 빛보다 빠른 <생각>도 둔하면, 늦어서 얻을 것을 못 얻습니다. <육>은 ‘움직이고 행한 것’이 행한 것이지만, <생각>은 ‘생각한 것’이 행한 것입니다. ‘생각 없이 사는 자’는 인생을 헛사는 것입니다. ‘생각의 눈’을 뜨고 ‘육의 눈’으로 쳐다보세요. 그래야 입력됩니다. 그래야 찾을 것을 찾게 됩니다. ‘생각의 눈’을 뜨고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생각>과 같이 <행동>도 살아 있어 10배, 100배 얻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생각>을 ‘자기 애인’이라고 생각하고, ‘주’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성령님, 성자’라고 생각하고, 분마다 생 각해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이 무엇이 생각나서 적으려는데, 그 순간 잊어버렸습니다. <생각>은 일순간에 스쳐 지나갑니다. 어느 때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생각한 것을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귀히 쓰던 물건’도 쓸 때 생각나서 잘 쓰다가,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몇 주, 몇 달이 가도록 아예 생각이 안 나서 못 씁니다. 생각 날 때까지 모릅니다. ‘사람’도 생각이 안 나면, 못 씁니다. 고로 성자께도, 그 사람에게도 자꾸 말해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관리해야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생각해도 행하지 않으면, ‘행동이 죽은 자’입니다. <생각>과 <행동>입니다. <생각>하고 <실천>해야 뇌가 굳지 않습니다. <생각>과 동시에 <몸>이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 희망’을 이루고 ‘목적’을 달성합니다. 생각과 동시에 행하는 자가 ‘자기 변화’를 이루고, ‘차원’을 높 이고, 자기를 만들고, 결국 ‘휴거’를 이루게 됩니다. 생각만 하면 ‘실체’가 남지 않습니다. <생각>을 <실천>해야 ‘실체’가 남아 육이 쓰게 됩니다. * 그래서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생각났을 때 바로 해라. 그때 안 하면 잊는다. 생각났을 때가 기회다. 그때 즉시 행해라! <생각>과 동시에 행하여라! 그러면 희망을 이루고 목적을 달성한다.” (하셨습니다.) <생각이 살아 있는 자>가 ‘시대 말씀’을 듣고 ‘시대 구원자’를 찾고, 그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찾고 일체 되어 사랑하며 삽니다. 또 생각이 살아 있으니 말씀대로 행하여 빨리 ‘자기 변화’를 이루고 ‘휴거’됩니다. <살아 있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도 살려서 이 귀한 때에 머뭇거리 면서 귀한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자기가 행할 것’을 속히 행하 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생각과 행동>이 살아 있는 자’에게 더욱 강력히 역사하십니다.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