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4.08.22 (금)
금요 명설교
- 선포일
- 2014.08.22 (금)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1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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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2일 선생님 명설교
할렐루야! 오늘은 7월 26일 수요일입니다.
먼저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절 한 절만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
지난주 말씀은 마태복음 10장 26절로 27절까지 말씀했지요?
너희가 들은 것을 전하라!
오늘 새로운 신입생들과, 그리고 기존에 있던 자들, 또 요즘에 새로 전도돼
서 온 여러분들, 세계 각 나라 모두 동일할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은 “너희 들은 것을 전하라.” 했습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 모두 예수님을 좇으면서 무엇을 들었습니까? 예수님으로
부터 들은 것은, ‘새로운 시대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복음을 들은 것을 전하라. 옛 시대의 복음이 아니고 새로
운 시대의 복음을 모두 전하라.” 그랬습니다.
왜 전해야 되고, 어떤 입장에서 전해야 될 것을 모두 가르쳐 주었지요?
오늘 말씀은 한 구절 더 11장 1절을 봤습니다. 11장 1절의 말씀에, 예수
님께서 제자에게 이렇게 명하시고 또 전도를 하시려고 여러 동네로 떠나갔
는데 “그들을 가르치시며 그들을 전도하려 떠나시더라” 그랬습니다.
예수님도 전도를 어떻게 하셨는가 하면,
여러 가지로 전도하는 방법이 다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전도한 방법은 상
황에 따라 달랐지만, 가장 큰 것은 <시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님도 일생 동안 살아계셨을 때 한 일이 무엇인가 하면 <전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전도하다가 그들을 관리하고, 가르치고, 지도해 주고, 이런 일
로 전체의 삶을 살았습니다.
전도를 보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시대에도 전도할 때는 모든 상황이
다릅니다.
전하는 사람의 상황도 다르고, 듣는 사람의 상황도 다르고 이 모든 것이
너무 많지만 근본적인 것은, 시대의 말씀을 전하라! 이 시대에 너희들이 들
은 말씀을 전하라!
여기에 있는 선생님도 어떻게 전도를 하였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그저 보
통 ‘전도’ 하면 “예수 믿으시오. 하나님 믿으시오. 그러면 복 받고 살 수 있
습니다. 병도 낫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것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시대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몰라서 못 믿습니다. 어떻게 믿어야 되는
지, 그리고 존재하고 계시는지 모르고, 그리고 믿어야 될 필요성도 못 느끼
기 때문에 못 믿습니다.
그래서 이지가지 각종각색으로 믿고 싶어도 못 믿고, 믿어야 될 필요성,
‘믿어서 내가 무엇이 좋아지는가?’ 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못 믿는 것입니
다. 이런 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이야기를 해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신앙의 지식이 있어야 되고 아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누구
한테 들은 것을 전하는가 하면, 예수님 시대 때에는 예수님께 들은 것, 선지
자 시대 때에는 선지자에게 들은 것,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를 통해서 깨달
음을 주어서 깨달음을 받았으면 그것을 선지자가 세상에 가서 전파합니다.
또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가서 전하는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모두 일깨어라.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부
지런히 내 말을 순종하라. 내가 너희에게 보낸 선지자의 말을 들어라.” 하면
그 말을 모두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역시 하나님께서 깨우쳐 준 시대의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
님을 깨우쳐 준 말씀은 성경에 있는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릇되
게 알고 있던 것을 바로 가르쳐 주고, 바로 인식시켜 주시고, 하나님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것을 확실히 깨닫
고 “그 가르치심이 권세 있다.” 하고 하나님의 존재성을 확신하게 되었습니
다.
<메시아>가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권위 있게, 가장 깊게, 가장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그 다음에는 선지자들이 깨닫고 가르치는 일이 있고, 시대의 중
심인물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배워야 되고 가르쳐야 되는가 하면, 온 인류에
게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온 인류 세상에게, 모든 인생들에게 개인은
개인대로, 세계는 세계, 민족은 민족대로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실천해야
우리 인생들이 자기 최대 삶의 꿈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꿈을 이룰 뿐만 아
니라 살아생전, 죽어서도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계획한 삶은 자기의 계획한 대로 살았는데도 결국 “인생은 허무
하다.” 그랬습니다.
자기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이상을 누리고 살았는데도 “결국은 허무하다.”
합니다. 허무한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만 위해서 살다가 죽었으니 허무한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는
그냥 사라지고 없어지니까.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건강하고 잘 늙지도 않고 오랫동안 사는 것! 그것은 육적인 세계로써는 해결
이 안 됩니다. 80년, 90년 살고 나면 벌써 늙어서 오래 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일개 국가적으로나 여러분 주변에 있
는 사람들도 보면 오래 살아야 될 사람들이 벌써 다 죽어서 없지 않습니까.
나라의 경제의 큰 지도자들도 죽었고, 정치하는 사람들도 오래 된 사람들
은 다 죽었고, 친구들도 오래 된 사람들은 다 죽었고,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만 나이 먹은 사람들을 보면 친구들이 다 죽어서 자기 나이 또래에서는 살
아있는 사람이 몇 명 없을 정도이든지 혹은 친구들은 다 죽고 자기밖에 안
살아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꾸 죽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젊은 사람도 나이 먹
은 사람도 인생은 앞으로 다 죽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살아 있을 때
부지런히 이렇게 사는 것인데...’ 하며 살다가 죽는 것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잠도 잘 자고 멋있게 놀고, 이런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생
각하며 삽니다.
어떻게 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인생이 허무하다.” 합니다. 잘살아도, 많
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세를 누리고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도 죽을 때는 허
무하다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살다가 죽으니까 허무한 것입니다. 그렇게 안 죽고 계속
살면 허무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 때문에 허무하다는 이야기가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하게
지내고 잘 먹고 편안하게 지내면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건강하게 살고 편하게 삽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서는 살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육신이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종교에서 가르치고 종교에서 답을 주지, 다른 데서는 답
을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만 이것의 답을 얻을 수 있지, 다른 것으로
는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궁극적인 문제가 너무 크고 많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이 엄청난 허무를 없애고 인생의 허탈을 없애는 길
입니다. 그러려면 육신은 오래 못 살고 영원히 사는 것은 영혼밖에 없습니
다. 100년, 200년, 300년, 500년, 1000년, 만 년, 10만년, 10억년, 100억만
년... 이렇게 오랫동안 사는 것은 영혼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썩지도 않고 죽
지도 않는 것은 영혼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창조할 때 영혼을 자기와 같
이 영원히 존재하게 창조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존재하게 하려면 먼저 육
신을 갖고 있을 때 하나님을 믿고,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지를 가르침을
받고 배워야 이상을 누려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존재물 중에서도 보다 오랫동안 있게 하려면, 가령 철 같은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금, 은, 쇳덩어리 철이 있습니다. 철을 어떻게 하면 100년, 200년, 500년,
1000년, 10000년 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지?’
철도 갖다 놓으면 녹슬어서 녹으로 끝나 버리고 녹아서 없어져 버립니다.
썩어서 없어집니다. 철도 결국 그렇게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안 썩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100년, 500년,
1000년씩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면, 우선 쉬운 방법으로 이야
기할 때 철이 녹슬기 전에 용광로에서 녹스는 것을 다 태워 버립니다. 태워
버리고 다시 주문해서 만들면 철이 천 년씩, 만 년씩 갑니다. 놔둬 버리면
녹슬어서 다 변해버리고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철도 썩습니다. 돌들도 그냥 오래갈 것 같아도 계속 비바람 맞고 눈보라치
고 하면 돌들도 퇴석됩니다. 결국은 없어집니다. 계속 비바람 맞고 하면 결
국 없어집니다.
비석을 봐도 그렇습니다. 무덤 앞에 돌에다가 글을 써놓은 것을 보면 그렇
게 깊이 써놓았어도 비바람 맞고 오랫동안 가면 다 없어집니다. 비 맞아서
퇴석돼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래 가면 그렇게 다 없어집니다.
그것을 비바람 안 맞게 잘 보관하면 오래 가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오래
갑니다. 아주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해서 완전히 고체의 세계로 딱 넣어 놓
으면 천년만년 가도 끄떡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인생을 육신이 죽고, 영혼 가지고 영원히 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엇인가 하면, 아까 이야기한 철과 같이 계
속 변화를 시켜야 됩니다.
사망에서 썩는 몸들, 죄짓고 악하게 살면 철이 썩듯이 자꾸 썩어 들어갑니
다. 그러면 바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육신도 일찍 죽고, 악하게 살다 보면 하
나님의 심판 받고 죽게 됩니다.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악하게 살다가는 하
나님의 심판받고 죽고, 선하게 살면 육신 오래 삽니다. 육신이 명대로 삽니
다. 건강도 잘 관리하면 80년, 90년, 100년까지 삽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
입니다.
영혼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믿고, 영원한 존재자와 같이 하나
되어서 일체되어서 살면, 철이 늘 변화를 받고 썩을 때 용광로에 가서 녹여
버리고 다시금 또 제련시키고 하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있는 것입니다. 존재
가 됩니다.
금 같은 것은 녹이 슬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서 없어집니다. 철
같은 것을 캐내고 한계가 있으니까 또 캐서 녹슬어 버린 것을 또 갖다 제련
시키고, 또 만들어 쓰고 또 만들어 쓰고 하지 않습니까.
철이 오래된 것은 1000년 전, 1500년 전에 쓰던 것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녹슨 대로 놔뒀으면 녹슬어서 썩어서 없어져 버리고
삭아서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을 영원히 살
게 존재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대로 하면 오래갑니다.
어떠한 음식이나 음료수 같은 것도 가공시켜서 만들어 놓으면 썩지 않고
오래가지 않습니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 영혼을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선지자나 메시아에게 하나님께서 사명을 줘서 가르쳐서 내보내는 것
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면, 그대로 살면 우리 영혼들도 영원히 영원히 천
년, 만 년, 10억년, 영원히 어떤 연도를 이야기할 수 없이 영원히 존재하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음료수가 썩지 않는 것은 어디에
서 가르치는가 하면 역시 음료수 공장에서, 그리고 연구하는 연구진들이 연
구하고 만들어내서 거기에서 가르칩니다.
사람이 어떻게 일찍 죽나 보니까 병들어서 일찍 죽더라는 것입니다. 그래
서 의사들에게 맡기면 의사들이 수술해서 끄집어내서 자르고 다시금 보충해
서 자기 수한대로 오래 살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인생이 영원히 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 가르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꽃집에서 화분을 사다 놓더라도 보통 사다 놓으면 오래 못 갑니다.
꽃집에서는 항상 꽃이 피어서 만발하는데 이상하게 사다놓으면 오래 못 갑
니다. 그것은 기술이 없어서입니다. 그때는 꽃집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계속 듣고 관리법을 배우면, 그래도 오래갑니다. 연속 피는 열대지방의 꽃은
12달 계속 연속해서 로테이션으로 핍니다.
이와 같이 하는 자들이 한다는 것입니다.
옷도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옷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오
랫동안 입어도 새것같이 입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오래 못 입습니다. 쓸 줄을 모르고 관리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관리할 때, 영혼을 관리할 때 영원히 존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아시니까 인생의 허무를 없애고 영원히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신이 죽어도 영혼이 영원히 살게 했으니 허무함이 없는 것입니
다.
죽음 때문에 허무가 오고 죽음 때문에 인생이 허탈감이 오는 것이 아닙니
까. 무엇이 계획대로 안 되었을 때 허탈감이 오는 것입니다. 동일한 것이 아
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것을 가르쳐 줘서 배우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입
니다.
영계를 보면, ‘육신을 통해서’ 영계의 세계를 존재시키는 것입니다. 육신을
통해서 영혼이라는 세계를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이 있을 때 아무
수고도 않고 애씀도 없었는데 어떻게 영원한 세계를 갈 수 있습니까. 못 가
는 것입니다. 수고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세계에서 일생동안의 수고의 대가를 통해서 영혼의 영원한 세계가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이 사는 동안에 영혼이 영원히 사는 문제가
좌우되는 기간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이 사는 기간을 통해서 ‘영원히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의롭게 삶으로, 선하게 삶으로, 참되게 삶으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참과 의로움을 하나님 외에는 모릅니다. 어떤 것이 의로운 것인지, 어떤 것
이 선인지, 어떤 것이 악인지 모르니까 악을 행해도 우리는 뭘 행했다 하면
의를 행했다고 소리를 칩니다. 또 의를 행하면서도 모르고 ‘우리가 잘못되었
나?’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정확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저울이니까!
가장 큰 것은 종교에서 인생의 허무를 깨우쳐 주고,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
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배웠으니까. 이런 것을 전하라! 가르쳐
줘라!
또 하나는 <시대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해당되는 복음’을
넣어줍니다. 그 시대에 해당되는 복음을 전합니다.
<그 시대>가 지나가면 ‘그 복음’은 역시 끝납니다. <그 시대>에서 ‘그 복
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람들의 성장기를 볼 때 10대 때는 10대에 해당되는 사명이 필요하
고, 부모들도 그 교육을 하고 학교에서도 10대에 해당되는 교육을 시킵니다.
10대가 넘어가면 10대 교육은 안 시킵니다. 20대 교육을 시킵니다. 대학
교육을 시킵니다.
10대까지는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을 시킵니다. 10대가 넘어갔을
때는 10대 교육을 하면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자기가 다 알아버렸으니까 반
복되는 상황이 됩니다.
30대에는 30대 해당되는 교육을 시키고 가르쳐 줘야 도움이 되는 것입니
다. 30대인데 20대에 해당되는 교육을 자꾸 시키면 혹시 모르는 사람이면
가르치면 되겠지만, 이미 다 배우고 지나갔는데, 이미 자기가 봤는데 또 그
것을 가르치면 반복되기 때문에 그것은 별로 호기심이 없습니다.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가르칠 때는 점진적으로 차원적으로 계속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배우고 싶고 이상적인 것을 일으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도 자꾸 점진적으로 계속 역사를 하시면서 그 시
대를 가르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지금은 구약시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역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때는 이미 2000년 전에 다 끝났습
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구약시대, 율법의 시대라고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주었습니다. 그때는 그 상황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 십계명의 법을 줬
습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법을 줬습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시 오리라고 한 때까지
2000년의 역사가 그 시대의 역사입니다. 2000년 속에서도 시대마다 항상
새로운 말씀으로 방향을 틀어서 말씀했습니다.
선생님도 말씀을 전할 때 주일말씀하고 수요일 말씀이 다르지 않습니까.
지난주 말씀하고 새롭게 오는 주일은 또 다릅니다.
한 주관권의 역사이지만, 더 차원을 높여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처음 전도되어 왔을 때는 우리 섭리의 상황을 가르쳐 줬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초급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배워 들어갑니다. 중급을 듣게 되고 고
급을 듣게 되면 이제 핵심적인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일말씀 듣
고, 수요일말씀 듣고, 특강말씀 듣고, 인생말씀, 하늘의 말씀을 자꾸 전해 듣
습니다. 그러면서 무럭무럭 계속 성장합니다.
나무가 성장하도록 거름을 주는 것도 어린 묘목 때 거름 주는 것 다르고,
컸을 때 거름 주는 것이 다릅니다.
그와 같이 모든 곡식도, 사람도, 동물도 모두 그때 해당되는 복음을 주고,
그때 해당되는 관리를 하고, 그때 해당되는 역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 해당되는 역사를 펴는데, 구약 사람들은 예수님
이 왔을 때부터 그만 끝나라고 했는데도 지금도 모르니까 계속 구약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구시대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새로운 역사가 왔으니 예수님의 역사의 시대도 이제 딱 끝났습니다. 하
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깨닫고 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나로부터 듣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역사를 지금 가고 있습니다. 1000년을 통해서 가고 있습니다.
구약의 4000년 역사, 신약의 2000년 역사, 지금부터 1000년 역사! 그러면
7000년 역사인데, 7000년 역사가 간다는 것은 바로 성경에 있는 말씀 그대
로입니다.
세 마끼를 쪼개어 놨습니다. 상, 중, 하로 쪼개듯이 과거 <구약의 세계>가
한 역사, <신약의 예수님 역사>, 또 <이 시대의 성약의 역사> 해서 세 개의
역사가 차원성을 통해서 높여 올라갑니다.
구약은 4000년 동안 뛰었습니다. 신약은 반절만 뛰었어도 그만큼 했습니
다. 2000년 동안 했는데 더 많이 했습니다. 성약시대는 그것의 반절인 1000
년 동안 역사를 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7000년 동안 하도록 성서의 모
든 역사를 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만든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늘 보기 때문에, 만들어 전하면 성경과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풀고서 맞아야
됩니다.
이런 역사가 진행되어 왔는데, 지금 가장 큰 것은 ‘그 시대의 말씀’을 전해
야 된다! ‘그 시대의 말씀’을 안 전하면 필요가 없다! 지나간 역사를 전할 필
요가 없다!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우리 ‘이
시대의 말씀’을 전해 주면 바로 “새로운 시대의 말씀이다! 이 시대에 해당되
는 말씀이다!” 그럽니다.
“보라. 새것이다. 옛 것은 지나갔다.” 하며 모두 긍정성을 갖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런 것을 하나씩 하나씩 우리가 깨닫고 알아야 됩니다.
‘그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신약인들은 신약역사, 2000년
된 역사를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해당되는 역사입니다.
우리 이 시대에는 이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듣고 이 시대에 해당되는 삶
을 살아야 됩니다. 가장 크지 않습니까.
20대가 넘었는데도 10대와 같이 어울리고 10대 속에서 살고 10대 지식을
배운다면 그것은 역시 이치가 맞지 않고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30대가 되었으면 벌써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 들어가서 뛰고 달려야 하는
데, 30대에 이제서 대학 공부를 하고 앉아 있으니까 한바탕 뒤떨어진 것입
니다.
40대에는 벌써 기업을 잡고 일을 하고 뛰고 달려야 합니다. 늦으면 나이만
먹었지, 조금밖에 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람이 개인 노정을 뛸 때는 개인 노정을 뛰어야 됩니다. 그 다음
에 가정 노정을 뛸 때는 가정 노정을 뛰어야 됩니다. 그리고 가정 노정이 끝
났으면 민족 노정을 뛰어야 됩니다. 민족적인 역사를 하면서 가야 됩니다.
민족 역사가 끝났으면 그 다음에는 세계적인 역사를 펴 나가야 됩니다.
선생도 개인 신앙 노정을 걷다가, 다음에는 가정 주관권 안에서 교회 다니
고 가정 주관권의 역사를 폈습니다.
그것이 끝난 다음에 가서는 민족적인 섭리를 폈습니다. 대한민국 전국을
누비고 돌아다니면서 한 교회에 있지 않고 계속 전국 교회를 가르치고 관리
했습니다.
한국의 역사가 끝나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습니
까. 뛰어서 세계로 나와서 개척해서 지금은 세계 노정의 역사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해당되는 일을 하고 그때 해당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신앙 세계뿐
만 아니라 어떤 모든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의 세계도 그렇게 너희
들이 살아야 됩니다.
이것은 유치부부터 시작해서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다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다 동일합니다.
그런 삶을 살아야지, 옛날식으로 살면 옆의 사람이 보면 “아이구, 옛날 시
대에 빠져 사네.” 하고 어울리지를 않습니다.
보다 새로운 것! 얼마나 요즘은 빨리 지나갑니까. 그래서 우리 섭리사의
이 주관권 안에서도 새로운 역사가 날마다 바뀌는 것입니다. 더 새로운 차
원! 더 새로운 차원!
봄의 계절이 가고 여름 계절이 왔는데 아직도 봄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러면 쓰겠습니까.
여름 계절이 왔으면 여름 계절에 해당되는 상황을 펴면서 일을 하고 땀 흘
리고 열심히 뛰고 달려야 됩니다.
여름의 한계가 끝났으면 이제는 삼사분기 가을일을 열심히 뛰고 달려야 됩
니다. 거둬들이고 타작하고, 그 다음에 끝났으면 이제 겨울에 들어가서 겨울
일을 또 해야 됩니다.
계절에 따른 역사와 같이 하나님은 모든 때를 통해서 방향을 돌립니다.
때를 통해서 모든 자연의 법칙을 돌리며 거기에 해당되는 일을 하라고 그
렇게 돌려주는데, 사람들은 그런 배경이 가는데 그런 때와 시기로 가고 있는
데 그것을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때에 역사를 해야 되
는 것입니다.
“제때에 일을 하지 않으면 손해가 간다. 유익이 없다. 수고의 유익을 얻을
수 없고 거둬들일 수 없다.”
대개 제때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게으르다고 판단하시고 게으르다고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겨울철에 거두는 사람은 거둘 수도 없거니와 사람들이 쳐다보고 모두 비웃
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고 봄씨를 여름철에 뿌리면 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수확을 제대로 거둘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아, 그거 봄씨네. 봄에 씨를 뿌리는 것인데, 지금 거기에다 씨를
뿌리면 나겠어?”
“허, 잔소리 많네. 내가 열심히 하는데 무슨 잔소리가 많어.”
그런데 하나도 안 났습니다.
봄씨는 봄에 씨를 뿌려야 나지, 씨의 법칙적으로 볼 때 안 납니다. 여름에
뜨거운 훈기에 뿌려야 나는 씨는 뜨거울 때 뿌려야 됩니다. 여름 씨는 봄에
뿌려도 안 나고, 가을에 뿌려도 안 납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모든 절대적인 법칙과 절대적인 이치에 해당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에이, 안 된다. 나는 농사짓는 운을 못 탔는가 보다. 장사 운을 못 탔는가
보다.” 그러는데 제때 못해서 그렇습니다.
제때 하면 누구든지 못하는 사람도 잘 할 수 있다! 제때 하면 문제가 안
생긴다! 제때 반드시 하도록 하라!
그래서 반드시 때를 타야 됩니다. 제때 못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열
심히 없는 사람이다, 무지의 사람이다, 모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 것입니
다.
선생님도 제때 했기 때문에 이 역사를 이렇게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제때 못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항상 추궁하고 제때 하라고 깨달음을 받습
니다.
건널목을 지나갈지라도 제때 못 건너가면 뒤에서 빵빵거리고, 차들이 우루
루 하고 밀려옵니다.
“죽으려고 환장했냐?” 하고 운전수가 내려서 책망을 합니다. “다리가 짧아
서 빨리 못 건너갔냐? 몸뚱아리가 쇳덩어리냐? 한번 받히고 싶어?” 그럽니
다.
제때 항상 건널목을 건너가듯이 제때 일을 하도록 하라!! 알겠지요?
여기에 있는 기치를 벌인 군인 형상의 돌처럼 긴장돼서 해야 됩니다. 군인
이 숲속에서 긴장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긴장성을 풀면 안 됩니다.
긴장을 풀지 말고 하라고 저 작품을 줍게 만들고, 주워 놓고 “이래서 이
작품을 주웠다.”고 나를 교육을 시켰습니다.
하나는 근엄한 모습, 하나는 웃는 얼굴입니다. 그리고 뭔가 지식있는 머리
를 갖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작품도 줍게 했습니다.
반드시 제때 꼭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말씀을 들었으니 전해야 됩니다!! 제때! 무엇을 전하느냐? 바로
가르쳐야 됩니다.
전도할 때 “하나님 믿으시오. 예수님 믿으시오. 우리 선생을 믿으시오. 왜
그렇게 의심들을 합니까.” 하지 말고 가르쳐야 됩니다. 배운 것을 가르쳐주
면 ‘아, 들을 것이 있다.’ 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들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주니
까, 들으니까 ‘아, 이것은 절대적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잘 됩니다.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한 대로 그대로 살면 잘살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지금
내 입을 통해서 말씀을 하도록 감동을 시키고 하도록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
니 안 될 수가 있습니까. 한번 그렇게 살아보라는 것입니다.
제때에 꼭꼭 일을 하면서 살아봐요. 바로 정신변혁이 일어나고, 생활변화가
일어납니다. 안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하면 바로 그날 일어나는 것
입니다.
새벽에도 제때 나와서 기도하고, 제때 일을 하고, 제때 깨닫고, 제때 쓰고!
제때 못하면 잠언도 못 받고 시도 못 받고 말씀도 제대로 못 받습니다. 제
때 꼭꼭 해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나도 지금 제때 말씀을 전해 주니까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게 되지, 제때에
내가 말씀을 안 전해 줬으면 여러분이 늦어서 제때에 못 들었을 것입니다.
여유 있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되, 여유 있게 못 하면 용납이 안 됩
니다. 비행기 지나가고 나서 비행기 타러 온 사람과 똑같습니다. “왜 이제
왔느냐?” 하니까 준비하느라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 것은 안 통합니다. 오
히려 알몸뚱이로 와서 타고 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보따리 하나 사서
외국에 가서 살망정. 옷을 챙기다 보니까 늦었다고 하는데, 옷은 외국 가서
사면 됩니다. 그러니까 지혜롭게 급한 것 먼저 챙겨서 가야 됩니다.
몸뚱이 챙기고 돈 챙기면 다른 것은 외국에 가서 사면 될 것 아닙니까. 외
국에 더 헐한 것도 많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롭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할 일을 먼저 탁탁탁탁 하고, 비호같이 움직여야 됩니다.
볼 차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늦게 가면 뺏깁니다. 꼭 그래야 됩니다.
늦게 하면 안 된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하나 하나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깨우쳐
줘야 되겠습니까.
“너, 하나님을 봤냐?” 하면 못 봤으니 못 봤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러면서 어떻게 전하냐?” 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하면, 여러 가지가 많지만
“네가 하나님을 절대 믿고 한번 해 봐라. 있는가 없는가. 네가 겪어야지.
이 캄캄한 밤에 가 봐라. 가면 반드시 환한 빛이 있으리라. 도시가 나오리라.
지금은 캄캄하지만 가 봐라. 나도 가 봤더니 그런 빛을 봤다. 하나님을 봤냐
고 하는데, 그것은 네가 모르는 소리다. 하나님은 인간이 보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므로 못 보게 만들어 놨어. 물론 메시아나 어떤 특수한 선지자들은 봤
다고 성경에 나왔더라.”
흔히 보면 “너는 하나님 봤냐?” 하는데, 대통령도 옛날 같으면 못 봤습니
다. 옛날 왕들은 모시는 사람도 제대로 못 봤다고 합니다. 합당치 않기 때문
입니다.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합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합당해야, 적당해야 같이 레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합당치 않기로 안
보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합당치 않다 하셨습니
다.
전기의 마이너스, 플러스가 만나듯이 만나면 되는데 그런 단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영으로서는 하나님을 마음대로 본다.” 이렇게 모두 가르치는데 그것
이 아닙니다.
이태리에 있을 때 내가 환난으로 인해서 여러 보고들이 들려왔습니다. 글
을 쓰는데 너무 골치 아팠습니다. 그때 당시 한국으로 쫓아갈 수도 없고 아
니라고 따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아니 결혼하는 사람이, 동네 사람 이 사람 저 사람이 ‘야, 이 새끼야. 니
결혼하는 여자, 내가 데리고 살던 여자여. 야 이 새끼야, 첫날 저녁에 알 거
여. 너 가봐. 결국 너한테 갔다가 올 거야.’ 이런다고 해서 거기에 신경 쓰
냐? 그전에 그 여자 사귀었을 때 다 알아보고 다 했는데, 그것을 믿고 살아
야지. 누가 악평해도 얼른 재치 있게 생각해야지. ‘아,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저 새끼가 쫓아다니다가 군침 삼키고 짝사랑했구나.’ 얼른 그렇게 좋게 생각
해야지. ‘약이 오르니까 그렇게 하는구나.’ 그래야지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느냐?”
예수님은 항상 나에게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너무 원통한 이
야기를 들으니까 화가 났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왜 그러냐 하고 가서 싸울 수도 없습니다. 왜. 우리는 착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제까지 몸부림쳤는데 악한 사람이 되기 싫다는 것
입니다.
괜히 성질내면 하나님께서 혈기 부렸다고 큰 축복을 안 주는 것입니다. 그
래서 안 하는 것입니다.
그놈들이 무서워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만 혈기 부리고 화내면 내가
하나님께 받을 축복의 조건을 거의 다 세웠는데 못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 혈기부리는 것, 화내는 것, 분노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선생님도
저놈한테 꼭 화낼 일이 있어서 화를 내면 엄청난 손해가 갔습니다. 한두 번
이 아니고 일이백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 마라. 나를 미워한다고
해서 너희들이 쫓아가서 애들과 싸우지 마라.”
들려오는 새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새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
습니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새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새들도 증거합니다. 내
가 강하게 이야기하면 새도 한마디씩 이야기합니다.
이와 같이 정말로 참아야 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새들도 혈기내면 안 된
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내가 새를 톡톡 건드려봤습니다. 그랬더니 혈기 있는 새는 막 혈기
를 부리다가 나중에는 뻗어 죽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별것을 다 해 봤습니
다. 혈기 내다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했으면 내가 먹을 것도 갖다 줬을 것입
니다.
이와 같이 동물도, 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들은 것을 전하라! 가르쳐라! 그리고 혈기 내지 마라! 그것이 굉
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때 당시 화가 나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너무너무 답답하니까 “하
나님, 나 좀 한 번 보러 와 주세요. 보고 싶습니다.” 하고 침상을 적시면서
뒤집어져서 기도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너무 억울하게 하니 원통하다고 눈물 흘리면서 하나님
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는지 압니까. 분명히 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늘 나를 보지 말고 나도 보여 달라고 그랬더니만 하나님이 “인생
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 합당치 않다.” 그랬습니다.
왜 합당치 않냐고 하니까 “그것은 생각해 봐야지. 왜 합당치 않은지.” 하셨
습니다.
내가 보면 또 옆의 사람들도 하나님 봤다는 이야기를 하면 다 극적인 상황
에 가서 보여 달라고 할 것 아니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옆에 오셨습니다.
그때에 시를 준 것이 “초처럼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거기 서 있어 봐라.
하나님이 지나가다 보게.” 그 시입니다.
“뭣 하러 안 운 체하고 눈물 닦을 필요 없다. 그대로 보여 줘라.” 하고 예
수님께서 나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눈물을 보고 그 다음에 모든 일을 조용하게 해 줬습니다.
그때 당시 내가 하나님을 봤다고 하면 옆의 사람들도 “우리도 보여 주세
요. 똑같은 하나님 믿고 똑같이 가르치는 것 믿고 따라가는데 왜 안 보여 줍
니까.” 하면서 어려울 때마다 보여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마음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선생님 전화 한 번만 해 달라고 합니
다. 한 번 해 주면 애들이 전부 어렵다고 전화해 달라고 하고 편지해 달라고
하고 끝이 없이 합니다. 그런 격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만물을 통해서 늘 나타나시고 말씀하
십니다.
내가 새를 사올 때 그랬습니다. “저 새를 통해서 나를 교육을 시켜주고 교
훈해 주고 깨닫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새 교훈을 많이 받았습니다. 내가 새 시장에 가서 새를 사왔습니다.
새가 거기에서는 잘 울었는데, 오니까 잘 안 울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정
이 잘 안 가고 밥 주는 것도 시원찮아졌습니다.
새가 울고 노래하고 그래야 되는데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
니다.
‘아, 내가 새처럼 하나님께 노래를 잘 안 하나? 아, 하나님이 싫어하겠다.
노래해야겠다.’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노래하면 밥을 잘 주고 좋아하겠다. 때에 따라서.’ 그것을 결국 깨달았습
니다.
그런데 노래하라고 그렇게 해도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서는 열심히 했는데, 왜 여기에서는 안 하냐? 뭐가 부족하냐?”
물어봤습니다. 새 파는 곳이 여기저기에 여러 수십 군데이지 않습니까. 물
어보니까 많이 있다가 혼자 있으면 안 운다고 한 마리 더 사가라고 했습니
다.
‘이거 한 마리 더 사가라는 작전 아닌가?’ 했지만, 또 한 마리를 사다 놨습
니다. 그래도 별로 안 울었습니다. 노래를 잘 안 했습니다.
그 중에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잘 울었습니다. 어느 때 우는
가 하면, 내가 말씀을 막 할 때는 울었습니다. 나를 따라서 말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말씀을 안 하면 또 안 했습니다. 한 마리는 하는데 한 마디는 안
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새들은 “너는 바깥에서 있어라. 너 노래도 못하는데 방안에
서 똥 싸는 것 똥 치워가면서 내가 할 수가 없다.” 하고 바깥에 내 놓았는데
한 이틀 있다가 가보니까 고양이가 잡아먹고 싹 없어졌습니다. 털만 남아 있
었습니다.
‘아, 노래를 하든 못하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든 못하든, 나에게 노래를
해 주든 안 해 주든 살리려면 냄새나도 똑같이 취급을 해 줘야겠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섭리사람들 전체를 두고 ‘잘하든 못하든 그들은 섭리 안에서 살게
만들려면 내가 그냥 똥 치워 주고 밥 주고 해야 되겠다.’ 그것을 깨닫게 되
었습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노래를 하겠지.’
그 이름을 ‘벙어리새들’라고 이름을 지어주면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도를 깨달았습니다.
‘아, 노래를 못 하고 다른 것을 못 해도 내가 새를 사랑하고 좋아하면 밥을
줘야 되는 거구나!’ 그 도를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은 큰 사람이기 때문에 큰 것을 깨닫습니다. 조금 깨닫지 않고 크게
깨닫습니다.
그런데 노래하는 새가 노래를 했는데, 또 보통밖에 못했습니다. 그래서 또
가서 또 사왔습니다. 알고 보니까 오래된 새가 잘 운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야 잘 우는데 1년 된 것은 잘 안 울고, 2년 되면 조금 더 잘
울고 3년, 4년 되어야 잘 운다고 했습니다. 새가 한 20년을 산다고 했습니
다.
저 우는 새는 월남에 있는 새입니다. 내가 월남에 있을 때 숲속에서 늘 ‘저
새, 한국에 잡아가서 월명동에 갖다 놔야겠다.’ 그러던 새를 결국은 열대 지
방에서 구했습니다. 열대 지방, 아주 더운 데에서만 있는 새입니다.
매일 목욕도 시켜주고 닦아주고 그럽니다. 제일 처음에는 찬물에 씻기니까
너무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야, 이 병신아. 누가 너를 목욕시켜 주는 사람이 있어? 누가 목욕
을 시켜 주냐? 니가 노래해서 좋아서 그러는데.” 그랬지만 좋아서 그러는지
를 몰랐습니다. 계속 무엇을 주고 다독거리고 했더니만 이제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우니까 막 목욕하고 싶다고 신호를 보냅니다.
그래서 그때 섬짓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안 돌리면 바깥에 벗어나서 사탄에게 잡아먹힘을 당한다.”
사실상 그동안 섭리사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꼴들을 많이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면 그런 이야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합당치 않은
일이니 하나님 볼 수 있는 단계까지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죽은 다음에 하나님을 마음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세계도 바
로 육신만 벗어난 세계입니다. 육신만 벗어난 세계에 불과한 세계라는 것입
니다. 그런데 금방 하나님을 보겠습니까.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요, 천주의 왕이요, 근원자이십니다. 이 세상의 왕들
을 거기에다 어떻게 비합니까. 숫자적으로도 비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1차
알기로 하나님께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따르는 천군들, 천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살아서 이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합해서
얼마나 됩니까?”
“한 4천억이 된다.” 하셨습니다.
제일 처음에 내가 어렸을 때는 한 2천억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보다 더
크니까 더 크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모르고 하느냐에 따라서 구원이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
엇이 좌우되는가 하면 그만큼 지식이 좌우되고 하나님을 대단하게 보고 그
때부터 ‘와, 엄청나구나. 어마어마하구나. 그러니 아무 직이 없어도 4천억이
따르니까 엄청난 존재자구나.’ 하고 당장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디에 가서 모든 수많은 제자들이 따른다고 하면 그것 하나만 가지
고도 깜짝 놀랍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그것 하나만 보고도 깜짝 놀랍
니다. 나도 그러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선생님, 저 전도 한 50명 했어요.”
하면 “와, 많이 했네.” 합니다. 그가 잘 배웠냐, 못 배웠냐 이런 것을 떠나서
“와, 많이 했다.” 하고 좋아해 주고 기억을 합니다.
이제 매듭짓는 말씀을 하겠습니다. 중요한 말씀이니 잘 듣기 바랍니다. 이
것을 먼저 하려다가 어려우니까 늦게 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꼭 중요한 말씀을 하겠습니다. 전도! 전도를 하는
사람들도 중요하고, 전도되는 사람들의 중요성도 가르쳐 주겠습니다.
딱 세 가지로 나누겠습니다.
※ 누가 전도를 하느냐의 문제가 큽니다. 확대시키면, 어느 세계로 전도를
해서 가느냐. 어느 세계의 종교!
다시 말하면 만일 여러분들이 구약인들에게 전도를 당해 가면 어떻게 되는
가 하면, 지금도 구약인들이 전도를 하지 않습니까. 회교인들, 유대종교인들,
율법에 속한 사람들에게 전도 당해 가면 기껏해야 종 취급밖에 안 해 줍니
다. 엄합니다.
내가 거기에 가보니까 너무너무 엄하고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래도 믿어야
그 나름대로 어느 단계까지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멸망으로 안 가고
생명권으로 간다고 가르칩니다.
- 유대인들이나 회교인들에게 전도되어 가거나 율법주의 속에 전도되어
가게 되면, 거기에서 종 취급 받고 이미 역사가 끝난 구약 세계의 역사 속에
서 종들 취급 받고 사는 것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것이 오늘 준비하다가 온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꼭 전하
자고 해서 전하게 된 것입니다.
- 그리고 신약인들에게 전도를 당하게 되면 형제 취급받고 이미 역사가
끝난 데에 가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거기에 있어봤지요? 기독교인이 80%, 70%이지 않습니까. 거기
에 있으면서 찾다가 이리로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불러낸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안
보냅니다. 그래도 뭔가 뜻이 있어서 보낸 것입니다.
신약에 해당되는 대우를 대우고 그런 품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
에서는 종 대우는 안 해 줍니다. 종 대우는 안 해 주고 아들 대우를 해 줍니
다.
신약인들에게, 바로 기독교인들에게 전도를 당해 가면 바로 그 정도의 대
우밖에 안 해 줍니다.
‘많이 했는데 왜 그 대우밖에 못 받나?’ 하고 늘 부족함을 한탄하고 너무
갈등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나도 신약 속에서 지금까지 계속 있었으면 겨우 석막리 교회에서 크고 자
라면서 그 대우 받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새로운 세계로 전도되었습니다. 사실상 예수님이 전도했
습니다.
예수님이 이 새로운 세계에 전도를 했는데 그냥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
수님을 더 이상적으로 사랑하고 싶은데 그 길이 무엇이냐? 예수님이 새로운
시대에 말씀을 전할 것이 무엇이냐?” 하고 계속 먼저 기도를 했습니다.
내 자체부터 변화되고 완벽하게 되고 변화가 되어야 큰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큰 것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어쩌고저쩌고 해도 여러분이 닦여지지 않으면 큰 것을,
벼슬을 얻을 수 없습니다. 큰 벼슬을 못 얻는 것입니다. 주지를 않습니다.
그만큼 닦여지고 그런 자세가 되어 있어야 주고 그만큼 배우고 터득하고
그만큼 알아야 그만큼 하늘 벼슬을 주지, 안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나를 만드는 일에 전문으로 뛰었습니다. 목숨을 걸어놓고! 그
것은 내 삶과 연결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배고프니까 뛸 수밖에 없고
졸리니까 잘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발버둥치면서
‘오직 신앙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이 길은!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세상의
부모도, 형제들도 이 문제를 해결 못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
다.’ 해서 오직 하나님께 매달리고 불철주야로 산에 가서 뒹굴고 울고 짜고,
항상 그런 시간을 한 20년 동안 보냈습니다.
점진적으로 10대, 20대의 기간을 두고서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요즘 사
람들이 기도하는 것이 기도입니까? 밤이 새도록, 7일, 8일이 가도록 눈을 뜨
지 않고 기도하고 그런 하염없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잠이 어디에 있습니까. 잠이 문제입니까? 목숨을 걸어 놓고 ‘내가 죽는다.
잘못하면 내가 지옥간다.’ 이런 것을 가지고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기도를 해서 깨닫게 되고, 알게 되고, 극적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
다. 온 인류가 그런 조건 못 세운 것을, 조건을 세우고 얻게 되고, 받게 되었
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런 그릇이 되어 있고 그런 것을 깨달았으니
까 “바로 그러하다. 맞다.” 친히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내가 예수님을 보고 싶다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닦여지고 완
벽하게 되니까 이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를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올리고 이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주고 세상을
구원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을 깨닫고 알고, 왜 죽었나를 깨닫고 알아버렸습니다. ‘구세주가 예
정되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인생들이 못 믿어서 불신함으로 때려죽였구나.
그럼으로 인해서 모든 이들의 죗값을 대신해서 죽었구나.’ 이런 것을 확실히
깨닫고 알고 하니까 “재림은 이렇게 한다. 사람을 통해서 재림한다.” 하고
재림의 세계를 깨닫게 해 주시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와 같이 너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 같은 입장에서 역사를 펴나간다. 하
나님의 재강림도 그러하다. 성약의 재강림도 그러하다.”는 것을 20년이 넘었
을 때부터 확실히 깨닫기 시작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조금씩 조금씩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엄청난 것을 전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온 인류가 지구상에 2000년 동안 살아간 사람들이 엄청 많지 않습니까.
그들이 다 이 재림의 역사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다 이 역사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먹고 사는 것이 그렇게 큽니까? 입고 사는 것이 그렇게 큽니까? 나도 중요
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깊이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영생에 관한
문제이고, 영원한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고 이상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르면 일 저지르고, 모르면 실패하고, 모르면 슬픈 세계로 가버리
고 말고, 안타깝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많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할 때 보면 항상 뭔가 들을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항상 10대
들도 들어보면 ‘아, 이런 말이구나.’ 합니다.
기독교에 가보면 맨날 그 이야기 하다가 끝납니다. 그래서는 영혼은 구원
하는데 제대로 구원을 못 시킵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시키는 것이 아닙니
다. 구원을 시켜도 부끄러운 구원을 시킵니다.
완벽하게 가르쳐야 됩니다. 완전하게! 비행기가 떠서 공중을 날아가는데
그 속에 300명, 400명씩 타고 가는데, 잘못하면 떨어져서 다 죽지 않습니
까. 완벽하게 만들어나가야 됩니다. 완벽하게! 완전하게!
100%, 120%, 150% 완벽한 말씀을 전해서 구원에 이르게 만들고 역사하
는 것입니다.
‘구원자 메시아’만이 구원은 시키지, 다른 사람은 하나도 구원을 못 시킵니
다. 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만 구원을 시킵니
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는 구원이 안 됩니다. 오직 그를 통해서만!
그에게 말씀이 나가서 제자들이 생기고 제자들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
다.
이런 말씀을 전하라! 영생하는 말씀을 전하라! 돈 가지고 구원을 못 시키
고, 금은보화보다 더 귀한 것이 말씀이요, 진리이다!
- 이 시대에 전도되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해당되는 나와 같이 애
인취급을 해 주십니다.
나도 기독교 신앙생활을 했는데, 못 살고 배고프고 굶주리고 신앙도 병들
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말씀을 듣고 이 시대급으로 하나님을 섬기
고 주를 섬기고 사랑하니까 바로 “신부다.” 하고, 바로 ‘신부 취급’을 해 주
고 신부로 삼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 같이!
그래서 생활할 때 항상 보면 제자들과 부딪히는 것은 “내 옆에 하나님이
계시고 주님이 계신데 어떻게 그렇게 사냐?” 늘 그럽니다. 백 번, 천 번 지
적받습니다. 그래서 옆에 못 오게 하고, 옆에 못 살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곳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닦은 조건을 이제까지 하나도 못 세웠습니다. 제대로 못 세
웠습니다.
금식하는 문제도 그렇게 기나긴 역사를 못 세웠고, 전도하는 문제도 그렇
게 못 세웠고, 말씀을 전하는 데도 못 세웠고, 연단하는 데도 못 세웠고 못
세웠습니다. 하나도 제대로 한 사람이 없습니다. 원래 제대로 해야 제자가
되지 않습니까.
청소하는 것, 하나님을 모시는 것,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떨림으로 모시고
존귀케 여기고, 이런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하면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감
히 옆에 못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선생님은 하나님을 딱 보여주지도 않고 눈, 코 이렇게 안 보여줬어도 이미
가르쳐줬습니다. 하나님이 눈, 코, 입이 있다는 단계를 다 초월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눈 두 개 있고, 코 있고, 남성으로 존재하고 계시다. 그리고 하
나님은 늘 만물을 통해서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고, 새를 통해서도 말씀하시
고, 지나가던 빵빵 자동차 소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응용해서 말씀하신
다. 한번 씸뿍 보여 주고 마는 것보다 만물을 통해서 늘 수시로 말씀하시니
너무 좋다. 그리고 선생님을 통해서 주일말씀, 수요일말씀을 말씀하신다.”
선생님이 말씀할 때 확 큰소리치고 하면 ‘아!’ 하고 놈을 타는데, 그냥 이
야기하면 그것이 하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인지 모르는데 선생님은 거진 하
늘의 말씀을 전합니다.
평소 때도 사적 세계에서도 늘 이야기하는 소리가 늘 신과의 대화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 세상을 어떻게 구원시키고 끌고 나갑니까. 한 명도 구원을
못 시킵니다.
나를 만들 때 아예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반지를 만들듯이 만들고, 시
계를 만들듯이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그 일만 하는 것입니다.
시계를 만들면 시계는 계속 그 시간 알려주는 일만 해 줍니다. 고장 나면
못합니다. 고장 나면 고쳐야 됩니다.
그와 같이 내 인생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래서 원수를 사랑하는 인생을 만들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을 못하는 것입니
다. 그런 인생이 안 되었으면 벌써 초전박살 내버렸을 것입니다.
어디로 전도되어 가느냐에 따라서 (구원이) 좌우됩니다. 불교로 전도되어
간다? 극락? 극락이 어디인지 압니까? 불교는 인생의 허무를 깨우친 종교가
아니겠습니까.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만이, 그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온 지구상
전체에서 머리는 딱 하나입니다. 머리를 통해서 하고, 모두는 지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전도가 잘못되어 가면 완전히 그 인생은 그렇게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알
겠습니까? 참 중요한 것입니다. 얼른 전도를 해서 본인 것을 만들어야 됩니
다.
전도는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산에 과일들이 여러 가지가 열려 있
는데, 적기에 가서 자기가 따먹으면 자기 과일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도는 누가 하나님 것으로 데리고 오느냐! 불교인들이 하나님
것으로 끌고 갑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전합니까.
여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들을 보면 ‘인생은 허무하다. 뭐하다.’ 이런 것을 깨달았던 것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의 한계를 못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정확하게 해야 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
는 선생님을 통해서 말씀 전하는 것을 항상 소홀히 듣지 말고 생명시해야
됩니다.
가장 큰 것이 그것입니다. 어디로 전도되어 가느냐.
여러분이 이곳으로 전도되어 온 것은 천 배 만 배 이상적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천 배만 좋아지고 이상적입니까. 기독교에 있을 때보다 내
가 천 배 좋아졌습니까? 10억만 배도 더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다른 세계로
와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도 다른 세계입니다.
신부된 것하고 형제된 것하고는 너무나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형제 취급하는 것하고, 종 취급하는 것하고, 애인같이 같이
사는 것하고 너무너무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상상을 할 수 없는 차이가 있
습니다. 그것은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섭리로 온 것이 작은 일입니까? 그런데 그럭적럭 하면 안 됩니다.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안 됩니다. 누가 잘해 주면 잘해 주는 대우, 가치를
이것을 느끼고 품위를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오늘 이 섭리에 새로 온 여러분들, 이 시대로 온 것을 너무 감격하지 않습
니까.
‘다 교회가 있는데. 큰 교회가 있는데...’ 하면 나는 속으로 까불지 말라고
합니다.
‘까불지 마라. 나는 천막 속에서, 그냥 기절초풍할 만한 그런 어떤 가시덤
불 속에 내가 있어도, 금으로 만든 교회에 있는 것보다 낫다. 나한테 오는
것이 낫다. 너희들은 근본이 뭐냐?” 하고 속으로 비웃습니다.
우리가 제일 처음에 시작할 때는 우리도 접방살이 하니, 기독교인들이 무
시하고 웃기게 봤습니다.
마치 그것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이 초가집 짓고 사니까 “하이고,
논뙈기도 없고 밭뙈기도 없는 사람이다. 아이고, 저기는 뭐 애들만 북실북
실.” 그렇게 무시하듯이 한 것입니다.
지금 월명동에 가서, 그리고 석막리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해 보십시오. 나를
무시합니까? 무엇을 가지고 무시합니까. 무시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배움
가지고 무시할 것입니까, 금전을 가지고 무시할 것입니까, 환경 가지고 무시
할 것입니까, 집을 짓고 사는 것을 가지고 무시할 것입니까, 인격을 가지고
무시할 것입니까, 사람이 따르는 것을 가지고 무시할 것입니까. 무시할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이 나를 제일 처음에 시작할 때 무시하던 것이 마치
그런 입장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주 이단이다, 아주 나쁜 놈이다 하며 별
놈의 욕들을 다 했습니다.
남을 욕하고 그렇게 하더니 잘된 것이 있나 보십시오. 기독교에서 해 놓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에서 해놓은 것을 다해도 나만
큼 못 해 놓았습니다. 무엇을 해 놓았는지, 어떤 것을 해 놨는지 있으면 내
놓아 보라는 것입니다.
신부라면 신부 입장에서 참으로 잘 해야 됩니다.
신부!! 하늘과 사는 신부! 나와 사는 신부가 아니고, 신부 시대에 하나님과
살라고 내가 붙여 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붙여 놓았습니다. 가령,
내가 위의 높은 사람과 사귀어 놓았을 때 그 사람에게 가면 그 사람에 해당
되는 일들을 해야 되는데, 못하면 큰일 납니다. 개망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섭리사에 전도되어 왔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 많은 종교
가 있는데.
불교로 갈 가능성이 있었고, 기독교로 갈 가능성이 80-90%였지 않습니까.
우리는 맨날 악평 듣고 하니까 이리로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와 보니까 그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말씀도 비교가 안 되고, 시대도 비교가 안 되고, 하는 짓이 비교가 안 된다
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유치원입니다. 유치스럽게 합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신광야 역사! 가나안 복지 역사가 아닙니다.
여기는 어른들의 역사, 정말 하나님의 신부된 입장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해야 됩니다. 많이 배우고 밤잠 못 자고 느끼고 깨닫고 영광 돌리
고 꼭 하나님께 할 바를 하고 매너 있게 하고 품위 있게 해야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하면서 여기에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들은 것을 전하라! 나에게 들은 것을 전하라!
오늘 말씀을 와서 들으니까 어떻습니까. 오래된 사람들, 흐리멍덩하게 마십
시오. 큰일 납니다. 망신당합니다. 반드시 정신 차리고 근신하고 열심히 하라
는 것입니다.
이 돌같이 기치를 벌인 군인처럼 패기 있게 움직이고, 열성을 가지고 하나
님을 모시고 산다고 생각하고!
늘 하나님은 옆에 계시고 쳐다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쳐다만 봐
도 옆에 계신 것이나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주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주가 와서 세상에서
뛰고 있는데 흐리멍덩하게 살면 너무너무 답답합니다. 답답하면 가서 붙잡고
있지를 않습니다. 섭리를 돌리고 갑니다. 돌리고 가야지 뭐 하러 계속 있습
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패기 있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늘 뛰고 달리자는 것입니다.
작품을 주웠을 때 “기치를 벌인 군인같이 살고, 한쪽으로는 웃으면서 살아
라. 지구상에서는 희망과 소망이 최고니까.” 하셨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나를 길러서 이렇게 하나님
께 신부 되게 하심을 감사하고, 주의 신부로 삼으심을 감사하며 목숨을 걸어
놓고 열심히 해야 하는데, 늘 부족할 때가 너무 많고 문제 생길 때가 있사오
니 용서해 주시고 열심히 뛰고 달리겠으니 은혜로 더해 주시옵소서.
긴장된 마음을 풀지 말고 항상 열심히 뛰고 달리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더
해 주시고 은총을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듣고 모두 감동받은 대로 행하게 해 주시옵소서. 감동 받은
대로 사명을 맡긴다고 했습니다. 실천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많은 생명들을 전도해서 차고 넘치게 해 주시옵소서. “아니, 시대가 왔는데
기독교도 아니고 천주교도 아니고 시대가 와서 하나님의 역사가 왔는데, 너
희들이 기다리는 자가 왔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먹고 살기에만 힘쓸래?
그런다고 먹고 사는 것이 그렇게 부하게 될 것 같으냐. 그렇지 못하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신앙생활 하는 것보고 축복해 주겠다.” 하나님께서 말씀했
고 나도 그러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영육을 힘 있게 붙잡아 주시고 나로 하여금 만날 사람은 만나고 볼 사람은
보게 하여 주었으니 뜻있게 의미 있게 늘 살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성부 성자 성신의 큰 능력과 권능이 이들과 온 지구상에 있는 나라들에게
축복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옵소서.
미국이나 캐나다는 집회가 이제 끝났는데 미국도 중고등부들 열심히 하라
고 했습니다.
중고등부들이 열심히 해서 틀을 만들게 축복해 주시고, 많은 사람들이 돌
아오게 미국도 중고등부가 잘되게 해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아시아 쪽의
각 나라들도 중고등부를 모두 시작했으니 한국처럼 때 몰려 5000명, 6000
명, 7000명 막 밀어닥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게 축복해 주시기를 믿습
니다.
다 다른 세계로 가면, 종교로도 빠지지 않고 세상에 빠져 버리면 모두 심
판을 받고 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총과 은혜를 주시고, 세상 사람들은 계속 10대들을 끌어다가
타락시키고, 10대들을 데려다가 세상에 빠뜨리고 그러니 모든 그런 짓을 하
는 자들을 막으시고, 내가 와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니 섭리역사로 모두
와서 영광 나타내게 해 주시고, 대학부들도 모두 그리 되게 해 주시고, 계속
하는 짓을 하나님께서 틀으사 계속 하나님께 돌아오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내가 기도하오니 하나님께서 틀면 안 될 것이 없다 했으니 그리함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 성부 성자 성신의 큰 능력과 권능이 이들 위에 함께하고 영
원할지어다. 아멘.
이제 말씀을 마쳤습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무럭무럭 성장
됩니다. 선생님께서 단상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90%, 내 말씀은
10%입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예수님 때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불같은 말씀을 하셨
던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데 주력하고 세밀히 들어야 됩니다.
“들은 것을 전하라.” 들은 것을 평생 동안 전하고 또 새로운 말씀을 전하
면 또 전하고 해서 시대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죽 오게 만들기 바랍니다. 그
러면 되는 것입니다. “야, 교회 다니자.” 이것도 좋은데 가르치라는 것입니
다. 그러면 그들이 올 수 있는 여건과 발판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
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