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4.09.29 (월)
월 새벽말씀 92f4ce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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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9일 새벽말씀(편집본) /2005.2.23
네, 다시 새벽 말씀의 단상 앞에 여러분들과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새벽!
하루 종일을 크게 나누면 아침, 점심, 저녁! 아침이 시작되는 원인은 새
벽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아침이 있으므로 점심이 있고, 점심이 있으므로 저녁이 있습니다.
새벽의 역사, 새벽의 생각, 새벽의 하는 일! 모두 각각 온 종일 하는 일
이 다르지만, 선생은 새벽에 가장 많이 일을 합니다. 신앙적으로도 그렇고,
육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새벽에 깨닫고 받은 모든 것을 낮에
일하기 때문입니다.
금주의 말씀의 주제는 “사랑의 표적을 일으켜라.”입니다.
“그러려면 사랑에 대해서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죽 해 왔습니다. 사랑의 본질 사랑의 근
본을 알기 전에 우리가 또 알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해서, 금주에 이 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전하고 시대에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
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표적을 일으키려면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된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을 먼저 배우고,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배워야 된다!
사람들이 사랑이 좋고, 이성적인 사랑이나 정신적인 사랑, 모두 좋은데
배우지 않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랑의 효력이 별로 없고, 그렇게 큰 하나님이
원하는 만큼 미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배우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배우지 않고 운동을 한다? 배
우지 않고 축구 한다? 배우지 않고 어떤 것을 한다? 그러니까 그 어떤 것들
이 시원찮지요. 보다 이상적이지 못하지 않습니까?
꽃을 기르는 것을 배우면 이렇게 오랫동안 가도록도 할 수 있고, 꽃을
보고 시도 많이 써놓았습니다. 꽃을 보고서 시를 20편 이상 써 놨습니다.
바빠서 그 이후로는 못 썼습니다. 그런데 꽃을 기를 줄 모르는 사람이
라면 벌써 이것을 죽였을 것입니다. 꽃의 생명, 그 짧은 시간을 그것도 오래
못 해 주고 죽입니다. 사람들도 자기 관리를 할 줄 모르면 병들어서 자기를
죽이지 않습니까.
자기 관리 할 줄 모르면 그 짧은 인생을 수한 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보는 시간으로 볼 때 2시간 24분인데 그것을
못 살고 죽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시간 24분은 우리 인생의 날로서는 100
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따진 것으로 보면, 하루가 천 년 같다
는 것으로 따지면, 100년이면 2시간 24분입니다. 따져보면서 우리가 살 때
‘아, 너무 짧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모르면 역사를 못 일으키는 것입니다. 작은 것도 못 합니다.사람이 모
르면 아주 작은 것도 못 합니다. 알면 큰 것도 합니다.
그러면 말씀 하나씩, 이제 하나씩 하나씩 들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역
사를 보면, 어떻게 흘러갔는가 가만히 보세요.
산에 올라가서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나 보았습니다. 오래 전입니다. 이
미 거의 1년 전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
나 보러 갔습니다. 만물을 통해서도 보일 것이고, 깨달아질 것이기 때문입니
다. 내가 깨달으려 하면, 오랫동안 기도하면 깨닫게 해 주고 알려주고 하니
까요.
하나님은 잘 가르쳐 주십니다. 왜? 내가 말을 바로 하니까. 전해 주니
까. 온 지구상에 말을 해서 전해 주니까. 선생님이 말씀을 받으면 나도 필요
하고 여러분도 필요한 말씀들입니다.
역사가 어디로 흘러가나 보았습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산맥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산맥도 여기 배경 사진과 같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렇게 흘러가
지요? 죽죽 흘러갔지요?
하나님의 역사는 흘러 올라갔습니다. 물이 아닙니다. 물은 흘러 내려갑
니다. 바다로 흘러 내려갑니다.
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가고, 산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계속 올라갔
습니다.
‘아, 하나님의 역사는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올라가는구나.’
해가 질 때, 그 때에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동안 전초 하셨습니다. 하
루 종일 전초 했습니다. 내가 그 때 시도 썼습니다.
“아, 하나님의 역사는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흘러가는구나.”
어떻게요? 점진적으로, 종의 시대에서 아들의 시대로, 신부 시대로 흘
러갔잖아요.
종의 시대도 그 당세에 차원성을 두고 점진적으로 자꾸 올라갔습니다.
신약 시대도 차원성을 두고 계속 흘러 올라갔습니다. 아무래도 성약 역사를
올라가려니까 계단을 계속 올라가야 되잖아요.
그런데 무슨 힘으로 그렇게 흘러가겠습니까?
물은 밑으로 자꾸 흘러갑니다. 비바람이 치면 힘이 없으니까 자꾸 흘러
내려갑니다. 그래서 산이 이렇게 흘러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비바람이 치면
물이 흘러 내려옵니다. 그래서 산이 이렇게 흘러 내려간 것입니다. 나중에는
바위만 남아있습니다. 힘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흘러 내려온 것입
니다.
이런 산과 물은 흘러 내려갔습니다. 힘이 없으니까 자꾸 낮은 데로 흘
러 내려가는 것입니다. 물은 물렁물렁하니 힘이 없잖아요.
하나님은 역사는 어떻게, 무슨 힘을 갖고서 흘러 올라가느냐?
어떤 힘을 갖고서 올라가느냐?
어떤 힘을 갖고 올라가지요? 지금 하늘의 말씀이 나오잖아요.
선생님이 산에 가서, 대둔산에 가서 기도할 때도 그 영하 15도에 가서
기도하면 이렇게 말씀이 계속 깨달아지고, 들려왔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렇습니다.”
적으려고 해도 얼어서 못 적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다만 저장했습니
다. 그때는 초롱초롱했으니까. 20대에 초롱초롱했고, 30대에 초롱초롱했습니
다.
밥을 굶으니까 말씀 생각밖에 안 났습니다. 결심을 하고 그것을 깨달으
려고 하니까. 총명한 머리로, 다니엘처럼 내 백성을 위해서 깨달으려 하니까.
무슨 힘으로 역사가 자꾸 올라가느냐는 것입니다. 힘이 있어야 올라갈
것이 아닙니까? 무슨 힘입니까?
힘 갖고 하잖아요. 하나님의 능력의 힘을 받고, 그리고 무슨 힘을 받고
하는데 힘 중에는 여러 가지 힘이 있잖아요.
여러분들은 어느 때에 제일 힘이 납니까? 여러분 교회 다닐 때 무엇으
로 힘이 납니까?
여기 새벽 예배 나오면서 무슨 힘 갖고 나옵니까? 힘이 있어서 이렇게
오잖아요. 젊어서요? 물론 젊어서도 오지요. 그와 똑같습니다.
‘무슨 힘을 갖고 있느냐?’ 그것은 따져보면 압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묻지만 하지 말고 확인하고 돌아다녀라.
불교는 그것이 긴가 아닌가 백 여덟 집을 돌아다닌단다. 108집을 거치면서
인생의 고뇌가 몇 가지인가 적어보니까 108가지라고 해서 백팔 번뇌라고 하
잖아. 너희들도 실습을 하라.”
그래서 실습을 떠났습니다. 산에 기도하다가 실습을 떠났습니다. 그래
서 노방 전도하러 다니면서 느낀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보니까 느낀 것입니
다.
불교는 백팔번뇌라고 합니다. 백 여덟 가지 번뇌라는 것입니다. 걱정,
근심, 염려, 재리, 이런 일 걱정, 뭐에 대한 걱정, 뭐에 대한 걱정해서 108개
라는 것입니다.
동냥하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파악해 보니까 여러 가지 걱정들을 하
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로 와라. 걱정들을 해소해 주겠다.”
그래서 걱정 없게 해 달라고 불교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걱정, 근심 있는 사람들을 다 오게 하라는 것입니
다. 말씀 들으면 없어지니까. 뭘 매일 그냥 말씀만 듣습니까? 전도를 해야지
요.
꼭 금년도는 전체가 한 명씩 전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꼭 전도를
해야 됩니다. 그것 뭐 조금씩 몇 백 명씩하고서 했다고 그럽니까?
이렇게 말씀 줄 때에 힘내서 전도하고 그래야 됩니다. 이렇게 막 할 때
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단상에 계속 안 섭니다. 알겠습니까?
이런 때에 같이 전도 해다 놓고, 자기가 하지 않으면 힘듭니다. 전도
못 하면 “왜 너 못했느냐?” 하고 생명을 구원하지 못한 심판을 받게 되고,
하나님도 자기 생명을 살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도 열심히 안 하면 마치 결혼해서 아기 못 낳는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됩니다.
하나를 전도 못 했다고 “너는 무익한 사람이다. 밖에 나가라.” 그랬
습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그런데 전도 못 한 사람, 많습니다.
자기가 전도 못한 사람은 지금 가장 양심에 가책이 될 것입니다. 이 말
씀에 해당되니까. 하나님께서 무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잖아요.
선생님이요? 개인 하나하나를 붙잡아 준 사람만 해도 천 명이 넘습니
다. 지금 천 명이 훨씬 넘습니다. 개인 하나 하나를 잡아 주었습니다. 전체가
말씀 듣고 다 왔지만. 그렇게 손을 대서 오게 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선생님은 전도합니다. 편지를 합니다. “내가 꼭 너를 전도할
테니까 나로 인해서 전도가 되어라.” 하고 애들에게 “나에게 소개시켜 줘
라. 그러면 내가 전도를 할 테니까.” 그래서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 세 번 편지를 하면 전도가 됩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
사합니다.” 합니다. 그렇게 전도를 합니다. 전도하기 너무 쉽습니다.
누가 생땅이라도 연결만 시켜라. 그러면 내가 편지를 몇 번 해 줄게.
내가 글을 잘 쓰잖아요. “하나님이 너에게 한 말이 있는데, 들어볼
래?” 하고서 딱 받아서 전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부르듯이 너를 부른다. 성경 어디 몇 장을 봐라. 아무개야!
너는 나를 믿고 살아라. 내가 너를 전적으로 축복해 주겠다.” 하는데 싫어
합니까? 다 좋아하지요.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 전체를 두고 전도한 사람을 기르
는 일을 하지 않습니까? 전도를 꼭 해야 됩니다.
전도 안 한 사람들은 절대 안 됩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아마도 자기 축
복을 받는데, 자기 사역을 하는데 지장이 클 것입니다.
중심권 역사!
무엇을 가지고 힘을 내서 역사가 막 올라가느냐?
무엇을 가지고 합니까? 불교인들은 깨닫습니다. 나도 돌아다니면서 깨
달았습니다.
“무엇이 나에게 힘을 받게 하는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할 때 제일 힘이 있었
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진실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할 때 제일 힘
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힘>을 받고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확실한 진리>를 깨우쳐
주었을 때, 그 진리의 힘! 그래서 사랑의 힘, 진리의 힘!!
하나님과 예수님을 내가 사랑함으로 진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전할 때 힘 있고, 주님을 사랑할 때 힘 있고, 내가 이들을 사랑해줄 때 힘
있고!
이 두 가지 힘을 갖고서 종교역사가 힘을 받고 역사가 차원성을 두고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흘러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흘러 올라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 진리의 힘을 갖고! 나머지는 거기에 해당되게 오는 힘들이다.
모든 존재하는 데 있어서 존재물이 힘으로 존재하지 않느냐.
이 꽃도 힘으로 버티는 것입니다. 막 물을 빨아올리고 생기가 있고 이
렇게 힘으로 있습니다. 잘 관리할 때 그 힘이 3달 갈 것이 넉 달 가게 되고,
더 가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관리를 잘못하면 석 달 갈 것도 두 달
가고, 두 달 갈 것이 한달 밖에 못 가는 것입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꽃 관리 네 관리다. 꽃만 관리하지 말고 너도 네
건강을 관리하라.” 그렇게 건강에 신경 써 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건강법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
은데 하면 좋아집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사람들이 약을 쓰듯이 그렇게 해서
나으면 “세상 사람도 낫는데.” 하기 때문에 어떤 것은 조금만 해도 낫게
만들고, 능력으로 낫게 만들고, 어느 때는 1백만분의 1초에 낫게 만드십니
다.
사랑의 힘! 사랑으로 그렇게 올라온다!!
<중심 역사>는 항상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해서 가며, 그
에게 가장 큰 말씀을 시대의 중심적인 말씀을 줘서 끌고 가게 하신다는 것
입니다.
중심 역사가 그리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주변사 역사입니다.
나머지는 주변사 역사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결혼식장에 가면 신랑과 신부가 거기의 중심인물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신부의 친척들, 신랑의 친척들, 신부 신랑의 친구들, 그리고 나머지는 축하객
입니다. 그렇게 흘러갑니다.
중심권의 역사는 사랑!!
결혼식 때 최고의 사랑과 그 법칙을 가지고 한 그 두 사람이 핵심이지
않습니까? 남자와 여자.
그와 같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역사의 흐름은 하나님이 표상한 사람, 지
구상에서 최고 사랑하든지, 최고로 하나님께 관심을 갖고 사는 그 인생에게
역사가 바로 가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바로 가서 그를 중심해서 끌고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가 중심권이 되어서 갑니다. 시대가 험하면 이렇게 가고, 그렇지 않
으면 또 저렇게 가고 합니다. 물이 흘러갈 때에 가로막히면 산 끄터리까지
저 멀리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안 가로막힌 평야지는 그냥 흘러가고, 가다가
또 산이 가로막혔으면 저리로 흘러 가버립니다. 이렇게 이리 저리로 다 흘러
가게 되어있습니다. 물이라는 것은 꼭 그렇습니다.
산골짝에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세요. 산이 가로막혔으면 이리로 가다
가도 저리로 가는 것입니다. 또 그리로 가면서 그쪽 마을 사람들 쓰게 만들
어 줍니다.
“그와 같이 물은 결국 흘러간다. 바다까지.”
막고 막으면 그 강이, 막고 또 막고 또 막는다? 그러면 어떻게 가는지
압니까? 계속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여리 구불 흘러갑니다.
비행기 타고 가면서 선생님은 강을 많이 구경합니다. 창가에 앉아서 특
히 많이 구경합니다. 그리고 땅을 많이 쳐다봅니다. ‘하나님도 이렇게 쳐다
보시겠지.’ 하며 봅니다.
그 강이 흐른 것이 아주 묘기이고, 볼만한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강이
구불구불 흘러 이렇게 갔다가, 다시 또 저리로 갑니다.
‘어, 저 강이 어디로 갔나?’ 하고 위에서 쳐다보면 다 보입니다. 산
이 막혀서 둘러가느라고 저리로 돌아 산을 한 바퀴 돌아서 왔다가 다시 또
다른 데로 빠져나갑니다.
‘결국 막아도 가기는 가는구나.’
그렇게 하다보니까 100리 흐를 강이 1000리까지 흘러가면 강이 더 유
명한 강이 되는 것입니다.
강은 적어도 1000리 이상은 흘러가야 강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냇물
은 100리만 흘러가도 냇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랑 같은 것은 그냥 한 10리 흘러갑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합해집니
다. 냇물이 합해지고, 냇물이 100리씩 흘러가면 굉장히 큰 것입니다. 그러다
가 결국 강물로 합해집니다. 합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강물이 그래서 1000리나 흘러가야 그 강이 유명한 강이라고 합니다.
크다고 하면 3000리, 4000리씩 흐릅니다. 그러면 그 강이 무지무지하게 큽
니다. 멀리까지 흘러가니까 그 동안 그 안에 들어오는 작은 냇물 줄기가 많
이 들어오니까 오래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치가 있다. 그렇지 않느냐?” 하나님께서는 이치이십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 않느냐?” 하십니다.
<사랑> 때문에 가깝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뭐 하러 가깝
게 삽니까?
“사랑 때문에 가깝게 산다. 사랑은 가장 힘을 폭발시킨다. 진리는 가
장 능력과 힘을 폭발시킨다. 사랑과 진리는 그 시대 역사의 강줄기 돼서 중
심역사가 흘러갔다.”
사람이 유익 때문에 또 가깝게 지냅니다. 그 사람이 유익하면 가깝게
지내고, 유익하지 않으면 멀리 합니다. 유익합니까? 가깝게 해야지요. 유익하
면 가깝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늘 수고하고 애쓰고 막 몸부림치고 하면 나는 무
엇 하는지 압니까? 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위대한 시대의 말씀을 잘 듣
고, 잘 깨닫고 하늘나라까지 가게 하는 일만 전문하면 됩니다. 선생님만 쳐
다보고 있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은 그것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완벽하게
해 주면 되니까. 행동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됩니다. 누가 합니까? 여러
분들이 해야지요. 행동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같이 살 수 있는 시작의 원인이 되었고, 또 사랑 때문에
헤어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약하고, 사랑이 식든지, 사랑이 깨어지면 또 헤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늘과 헤어지는 것입니다. 나와 헤어지면 하늘과 헤어지는 것입니
다.
‘선생님과는 헤어지고 가서 하늘과 같이, 하나님은 뭐 자유롭게 섬길
수 있겠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보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고욤나무 접붙이려고 잘랐는데 “이 나무 아니면 안 되느냐?” 할
때는 그냥 죽는 것입니다. 왜 죽느냐면 잎사귀가 없어서 숨을 못 쉬니까 죽
는 것입니다.
감나무 잎사귀여야 숨을 쉬거든. 그래서 접붙였다가 말은 사람들은 그
냥 맙니다. 일반 교회 다닌다고 하는데, 거기서도 육신이 다니기만 합니다.
열심히 다니는데도 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옛날에 그렇게 교회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예
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그것이 사망권의 삶이지, 생명권의 삶이냐? 영계
에서 보면 다르다니까.” 그래서 놀랐습니다. 다릅니다. 확실하게 보장이 되
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씩 점검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표적은 신부들이 일으켜야 된다!
신부들이 사랑의 본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사랑의 본체입니다.
왜? 왜 우리가 사랑의 본체이지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하도 사랑을 밧데
리 충전하듯이 충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퍼부어 주시며 사랑했습니
다. 그래서 우리 신부들이 사랑의 본체들입니다.
철학적인 논리가 아닙니까? 또 하나는 아예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입
니다. 사랑의 본체로 창조하셨습니다. 보이는 유형세계의 사랑의 본체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를 해 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사랑의 충전이 되어서 사랑이
나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사랑을 충전시키고, 다양한 사랑의 말씀이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을 주셔서 사랑을 충전하고 그 말씀이 다
양한 말씀으로 지혜와 지식과 총명의 말씀과 명철의 말씀으로 말씀이 나가
는 것입니다.
“신부들이 사랑의 표적을 일으킨다.”
항상 여자가 그렇습니다. 또한 우리 인생들은 신부들이지 않습니까? 우
리가 하나님께 사랑의 표적을 일으켜야지, 하나님은 사랑의 표적을 계속 일
으켜 왔는데, 뭐.
“지금은 우리가 일으켜야 될 때다.” 그 선이 왔습니다. 우리가 해야
될 때라고.
우리 인생들이 해야 될 때입니다. 말씀이 이미 나갔습니다. 모두 들어
보십시오. 오늘 말씀은 오늘 말씀만 하겠습니다.
“우리가 해야 될 때다.”
꽃에서 향기 날 때가 지났습니다. 열매가 되었으니까 열매가 부지런히
커야 열매에서 향기를 풍긴다는 것입니다. “이제 너희들이 해야 될 때다.”
죽은 역사도 하나님이 사랑하면 살아나고, 사랑하고 진리 주면 살아납
니다.
“에스겔아, 이스라엘 민족을 내가 사랑한다.”
“감사하옵나이다.”
“가서 말씀을 전해 주어라.”
전해주니 살아났습니다. 죽은 역사도 하나님이 사랑하고 말씀을 주면
살아납니다.
죽은 사람들도, 신앙 죽은 사람들도 여러분들이 말씀 주면 살아나고,
그래도 안 되면 또 선생님께 연락해서 선생님이 말씀 전해 주면 살아납니다.
“야, 이 젊었을 때 죽으면 아깝잖아. 내가 너 살릴게. 살고 싶어? 죽고
싶어?” 할 때 살고 싶다고 하면 “이렇게 하면 사는 거여. 교회 나오면 살
아지는 것이다. 나머지는 내가 책임질 테니 그렇게 하자.” 하면 말씀 주니
까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사랑이라도 다 받고 죽어야지, 사랑도 다 받
지 않고 죽냐? 사랑 다 받고 죽지.”
“하나님이 나는 안 사랑합니다.”
“그것은 네가 생각한 것이지. 그리고 가물다가 비가 와야 되는 거야.
곧 비가 오니까 빨리 준비해.”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도 이 시대에 이 기온과 같습니다. 어느 때는 확 추울 때가
있고, 어느 때는 더울 때가 있고, 어느 때는 비가 안 와서 가물 때가 있고,
어느 때는 또 앞으로 비가 올 때도 있습니다.
비가 안 올 때는 대체를 해야지요. 본인이 물이라도 줘야지, 왜 가만히
놀고 있습니까? 뭐 하러 비가 오기만 기다립니까? 물을 주어야지요. 그러면
안 죽지 않습니까. 꼭 선생님만 손을 대야 낫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 동안 우선 더 안 죽게 물을 주고, 그러면서 하늘 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면 살아납니다. 그 사랑을 받고 좋아하다가 잘되면 괜
찮은데 그러다가 마음이 해이해져서 멀리하면 또 하나님이 안 사랑합니다.
물을 안 줍니다. 비를 안 줍니다. 그러면 또 마릅니다. 그러면 다른 나무를
다시 심든지, 비를 주어서 다시 그 나무를 길러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묘목으로 바꾸어 보든지 하는 것입니다. “이 묘목은 잘 안 되니
까 다른 나무로 하자.” 하고서 또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두
고 하시니까.
사랑해야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심어서,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사랑의
세계를 만들었는데,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니까 그냥 바로 스스로
끝났습니다. 안 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랑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
랑함으로 씨를 뿌려서 지구상에 이제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종자가 퍼졌습니
다. 오염시킨 것도 4000년 동안 없애 주었습니다. 타락한 것. 그리고 신약시
대 때 또 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너희들이 할 만큼 되지 않았느냐? 너희들이 사랑하면 내가 사
랑 시작하겠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다 컸으니까. 다 컸는데 뭐 하러 남
자가 계속 쫓아다닙니까? 결혼해서 사니까 이제는 여자가 사랑해야지요. 자
기가 사랑 받으려면 자기가 남자를 사랑해 주고, 남자도 여자를 사랑해 주고
그래야 합니다.
연애할 때는 남자가 목숨을 걸어놓고 쫓아다녔으니까 이제는 여자가 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여자가 안 해 주면 그 사랑을 못 받
는 것입니다. 여자가 해 주는 것입니다.
“아, 그냥 약혼 전에 연애할 때는 나를 그렇게 쫓아다녔는데 지금은
사랑이 식었어.”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식은 것이 아닙니다. 이제 한계까지
간 것입니다. 더 이상 못 합니다. 하도 사랑을 퍼부어서 했기 때문입니다. 그
래서 여자가 이제 사랑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는 사랑체이기 때문에 여자가 안 하면 안 됩니다. 나이 먹은 40대,
50대, 60대, 70대도 똑같은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사랑해 주어야 됩니다.
“에이, 선생님은 남자니까 맨날 남자만 사랑하라고 하시네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본인은 하지 마. 하기 싫거들랑 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지
내.”
하나님께서 그럽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말하
는 것은 온 인류에게 선포되는 말씀이다. 이 지구상에 있는 중심권의 역사로
부터 시작해서 온 그 중심권의 말씀은 누구의 말씀이 되는가 하면, 이방의
세계까지 다 진리는 공통성이다.”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우리 말씀이 우리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들으러 안 와서 그렇지 온 인류가 다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여자가 남자를 사랑해야 사랑이 이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
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든지, 그
러면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가 사랑해야 사랑의 역
사가 일어납니다. 아니면 안 사랑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둘 중의 하
나가 사랑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꽃을 사랑하면 꽃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꽃이 나에
게 신경을 받게끔 암시를 하든지, 느낌을 주든지, 내 마음을 감동시키면 내
가 꽃에 손을 댑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여러분들 사랑하든지, 여러
분이 나를 사랑하든지 해야 됩니다.
“처음에 남자나 여자 중에 누군가 하나가 사랑해야 사랑이 시작되지
않느냐?”
루시퍼가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나쁜 사랑
도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제는 완벽하게 심어놨습니다. 절대 하나님의 사랑, 그
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을 사랑해야 큰사랑을 얻을 수 있고, 큰사랑이 들어갈 수 있습니
다. 세상 것은 해 봤자 그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들어요.
“이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봐서 좋으면 한다. 너희 사랑이 온
전하면. 너희들이 해야 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가서 ‘너, 나를 사랑할래? 내
가 너를 사랑한다.’고 이와 같이 안 한다.”
왜? 너무 투자를 다 했습니다. 더 이상 투자하면 안 됩니다. 부도 나
버립니다. 온 인류에게 더 이상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투자를 더 할 수 없
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투자해야지요. 이제는 그것을 다른 곳에다 투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행한 것을 다른 곳에다 행했
으면 소돔 땅도 뒤집어졌을 것이다.” 그랬습니다.
“너희들에게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너희들은 오히려 행한 대로 받아
라.”그랬습니다.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더 이상 안 한다 하
신 것입니다.
사람이 남녀의 사랑이나, 인간의 사랑이나, 하늘과 땅의 사랑이나 사랑
의 호기심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청소년들은 사랑의 호기심을 갖고 희망으로 삽니다. 그래서 공부도 열
심히 합니다. ‘아, 나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못 하면 내 호기심대로 좋은
사람 못 만나.’ 이렇게 하면서 사랑의 호기심 갖고서 공부도 하고, 사랑 갖
고서 무엇도 합니다.
‘아, 내가 좋은 사람 만나려면, 내가 무엇을 하려면, 멋있게 하려면.’
하면서 사랑의 호기심을 갖고서 얼굴도 손질하고, 옷도 멋있게 입고 다닙니
다. 그러다가 사랑의 호기심이 상실되면 지루합니다.
그 사랑의 호기심이 상실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런 사랑의 말씀이
왔기 때문에 사랑으로 본 것입니다.
진리의 호기심도 있고, 사랑의 호기심도 있고, 인생의 삶의 호기심도
있습니다. 그 기미를 잃습니다. 그 중의 어떤 학생은 기미를 잃었습니다.
“나는 그런 것 다 싫다. 다 필요 없다.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윗집에 있는 여자는 사랑하고 연애하고 돌아다녔는데 망해 버렸다. 그런 것
다 필요 없다.” 그렇게 호기심이 없으니까 공부도 잘 안 하고, 호기심이 없
으니까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냥 낙천주의가 됩니다.
사람이 나이가 먹든지 뭐하든지 음식을 잘 먹다가 음식의 기미를 잃어
버리면 건강에 지장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호기심을 잃고, 인간에 대한 것
들을 다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진리의 호기심, 사랑의 호기심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을 사랑하는 호기심,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호기심! “하나님
을 사랑하는 호기심을 잃어버리면 인생이 지겨워서 그 긴긴 역사를 어떻게
살래?”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그 남은 여생을 살래? 무엇으로 그 공허를 채울
래?”
사랑의 호기심을 가지고 “앞으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대. 앞으로 선
생님이 이렇게 하신대. 앞으로 이렇게 한 대.” 이런 호기심!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그래서 그런 호기심을 갖고서 사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듣
고 영광을 나타내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날
마다 나타나 말씀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하다가 또 시간 때문에 중간에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님의, 사랑하심으로 날마다 나를 가
르쳐 주시고, 인자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듣고 모두 그렇게 살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내가 빈 평안이 이들에게 충만하고, 삼위의 능력과 권능이 이들에게 영
원히 함께할지어다. 아멘.
네 말씀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