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새벽말씀2014.10.04 (토)

토 계시말씀

선포일
2014.10.04 (토)

첨부 파일

2014-10-04 토요일 한계가 없는 신적 사랑, 그 표상 구원자 작성일 : 2014. 7. 9. AM 3:00 작성자 : 주랑솔 (새벽,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나왔습니다. 성자가 기다리다 떠나셨을까 하여 더 간절히 사랑으로 선생님을 부르고, 그 이름으로 삼위를 간절히 찾았습니다. 그리고 사랑 고백을 계속 했습니다. 또한 신의 사랑, 한계가 없는 그 사랑을 더 배우고 더 깨달아, 더 전하고 싶다고 간구했습니다. 그때 성자께서‘너의 사랑 빛이 얼마인지 볼까’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를 뺀 모든 교회가 어둡게 보였고, 하늘의 사랑 빛이 제게 내려왔습니다. 저는 받은 그 빛을 제 안에서부터 비춰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이 교회 전체를 다 덥지는 못했습니다. 그때 제 사랑 빛이 아직 부족하단 것을 깨달았습니다.) * 성자의 말씀 * 네가 늦게 나왔어도, 네가 간절히 기도하니 내가 왔다. 성자 사랑의 해가 그러하다. 지금 그 해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 해가 가기 전 수많은 기회가 남았다. 고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내가 뜨겁게 역사하는 때다. 그러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오늘 새벽도 귀히 잡았구나. 잘했다. 포기하지 않고 나를 만나길 간구했다. 잘했다. 그와 같이 올해도 ‘늦었다’ 여기지 말고 나를 더 잡아라. 마지막의 순간이 더 기회가 많다. 이 기회를 잡는 것이다. 오늘 한계가 없는 신의 사랑에 대해서 물었지. 왜 이 기도를 하였냐. (제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선생님을 사랑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사랑한다!’란 말밖에 표현이 되지가 않습니다. 이게 가끔은 답답합니다. 속상합니다. 또한 사랑이 매일매일 더 뜨거워지고 넘쳐나니, 이 사랑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나의 사랑도 이러한데 신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일까. 한계가 없는 사랑이구나.’이것을 깨닫고 간구한 것입니다.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알고 싶고, 신적 차원의 사랑을 하고 있는 선생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싶어서 기도한 것입니다.) <신적 차원의 사랑> 신의 사랑 그 누가 이해하랴 해본 자만 알지 해본 자 누가 있으랴 아무도 없지 창조주 하나님만 알지 그 사랑 창조하셨고 그 사랑으로 다스리시니 모든 자 품으며 모든 자 용서하며 모든 자 도우며 모든 자와 함께하니 그 사랑 무한하다 하나님을 찾는 자만 돌보심이 아니요 모두를 도우시나니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라 사람들 하나님 또 배신해도 또 그 사랑 주나니 그 사랑 무한하다 그러나 그 사랑 끝 날이 오나니 그 날이 두려운 날이다 그 사랑 끝나기 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사랑한 만큼 뺏으시니 하나님 후회 없이 사랑 주고 후회 없이 다 주는구나 이 사랑 받아 본 자 그 사랑을 하나니 그 사랑 행하는 자 그가 구원자구나 구원자의 사랑 하나님 사랑과 똑같네 그 사랑 알지 못하는 자 그리 사랑하지 않은 자니 구원자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과 닮았구나 사랑하는 나의 신부야 하나님의 한계가 없는 그 사랑에 대해서 왜 그리 간구하였냐. 하나님의 그 사랑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세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없지. 바다가 넓다 하나, 그것과 어찌 비할 수 있겠냐. 하나님은 그가 창조한 모든 것을 다 사랑했다. 고로 온 인류에서 모든 창조물 중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은 것은 단 한 개도 없는 것이다. 그 중 최고의 창조물인 인간을 하나님은 가장 사랑했다. 창조 이래 지금까지였고, 그 사랑은 지속되었다. 변하지 않고 계속되었다. ‘바다와 같다’고 그 사랑을 표현하기도 하지. 무엇 때문일까. 끝도 없이 넓기 때문이기도 하고, 바다는 그 모든 바다 생물을 다 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비할 수 없는 것이다. 내 사랑으로 지금까지 인류는 살아온 것이다. 신의 그 사랑 없었으면 누구도 온전할 수 없었지 않냐. 자연의 법칙과 이치와 모든 물리적 힘과 순리라는 법칙들 모두 누가 만들어 낸 것이냐.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지. 이 모든 힘과 법칙들이 하나님께 적용되는 것이겠냐. 아니지. 하나님을 위한 법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법이었다. 너희들이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 왜? 사랑하니까. 사랑하니 그리 잘 살기를 바라기에 모든 법칙과 이치도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그 사랑 없으면 모든 것은 혼돈의 세계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도 없지. 무엇 보면 알 수 있는 줄 아냐. 구원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표상이 구원자다. 만약 구원자가 없으면 너희에겐 희망도 꿈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기에 이토록 너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구원자를 보내어 구원 역사를 펼치신 것이다. 그 사랑 없었으면, 한이 없이 끝없이 사랑한 그 신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벌써 이 세상은 구원의 역사가 끝난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맞습니다. 진정 그러합니다. 맞아요. 진짜 맞습니다.) 구원자로 너희는 죄에서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졌고, 다시 태어나게 되었지. 그럼으로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인간 근본의 기쁨과 희망을 알게 되었고, 인간의 근본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인간의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내가 창조한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그것은 원시적으로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참 된 기쁨을 누린다는 것이다. 자유, 사랑, 행복, 기쁨, 평화, 자연스러움 등 이 모든 것은 내 근본의 창조로, 이 모든 것을 너희가 얻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구원자는 내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지. 인간에게 구원자가 없으면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으로 지금까지 구약에는 중심인물을, 신약에는 예수를, 성약에는 선생을 보내어 사랑의 역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란 ‘구원자를 보낸 사랑이다’ 이 한마디면 해결이다. 구원자를 보낸 사랑이 최고의 사랑인 것이다. 이 말이면 된다. 족한 것이다. 그러니 구원자를 통해 신의 한계가 없는 사랑을 배워라. 느껴라. 그로 인해 너희가 얻을 것과 누릴 것이 다 있음을 알아라. (성자 주님, 그럼 구원자의 사랑을 자세히 보면 거기서 하나님의 끝도 없는 사랑, 신의 사랑을 볼 수 있겠네요.) 사랑하는 나의 신부야 나의 사랑아. 당연하지. 선생 사랑 자세히 보아라. 거기서 신의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핵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너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 끝까지 또 용서해 주는 것, 이것이 가장 크고도 큰 구원자의 사랑인 것이다. 보아라. 선생 아직도 "너희 죄를 고하라." 라고 말하고 있다. 이 휴거가 이뤄지고 있는 이때, 다시는 용서가 없을 것 같은 이때도, 그는 끝까지 너희에게 손 내밀고 있는 것이다. 휴거 때 죄 있는 자에게 어떤 무서운 심판의 칼이 내려올지 알기에 그는 또 먼저 사랑의 손을 내민 것이다. 그냥 버려두지 않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 줄 아냐. 너희에게 ‘죄를 고하라’ 한다 하여 그 용서가 쉬운 것이라면, 그 말이 귀한 것이 아니지. 끝까지 용서해 주려는, 끝까지 참아 주고, 끝까지 받아 주는 그 사랑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신의 사랑이다. 한계가 없는 사랑인 것이다. 이 죄를 용서하기 위해 자신이 찢어지게 아플 것보다, 너희가 지옥 가서 고통 받을 것이 더 아프기에 자신을 희생하는 그 사랑인 것이다. 사랑하는 신부들아 선생의 이 사랑 앞에 자신을 다 내려놓아, 신의 사랑을 받고, 근본의 사랑과 행복을 누리자. 너희들끼리, 너희 스스로 하늘 사랑 어찌 알겠냐. 신의 사랑 어찌 알겠냐. 인간끼리 사랑으로는 알 수 없지. 오직 하늘 사랑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 구원자 오늘도 너희에게 그 사랑 주고 있구나. 사랑이 넘치는 자에게는 더 큰 사랑을 주고 있고, 죄를 품고 있는 자에게는 끊임없이 그 죄를 회개하라고 말하고 있다. 위대한 사랑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한계가 없는 신의 사랑이나 그 사랑이 끝나는 때는 있다. 이 말을 무섭게 명심해라. 이 말이 어떤 말인지는 내 사랑으로 얻을 것을 말했으니, 그것의 반대가 아니겠냐. 내 사랑이 끝난다는 것이 어떤 무서움인지 이것을 잊지 말고, 구원자의 그 사랑 안에 다 들어와라. (성자 주님, 그럼 이 사랑은 저희는 할 수 없는 것인가요? 신적 사랑은 구원자만 가능한 건가요?) 나의 사랑아 너희는 너희들 차원에서의 신적 사랑이 있다. 너희는 그리하면 그것이 신적 차원인 것이다. 다만 구원자가 가진 그것과는 차이가 있겠지. 하지만 너희도 나의 마음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어 주고, 인내하고 하는 것이지. 그러나 그 근본에는 인본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마음, 나의 마음으로, 구원자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나와 선생과 일체지. 일체 되지 않은 자 그 사랑은 너의 사랑이지. 인본적 사랑이야. 그러나 나와 일체 된 자의 하늘 사랑, 신적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되니, 나와 일체 되어 신의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자. 알겠지? 휴거된 차원만큼 그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높고 큰 하늘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휴거된 영 되어 진정 하늘 사랑 신의 사랑 전하는 자 되자. 알겠지? 더 높이 올라가서 완전한 신의 사랑을 전하자. 알겠지? 내 사랑의 메신저 되어 줄 거지? 선생의 사랑 메신저 되어 줄 거지? 사랑 받고, 그 사랑 전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 사랑한다. 2014-10-04 토요일 기도에 대한 인식관과 자세 작성일 : 2014. 7. 15. AM 01:47~ 작성자 : 정초랑 (‘성자시여, 오늘 저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하고 여쭈었을 때, “오늘은 기도에 대해 말해 줄게. 잘못된 기도를 하는 자들이 너무 많으니, 이를 고칠 수 있게 알려 주자. 기도에 대한 인식관과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하시며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의 말씀 * 기도한다 해서 모두가 나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도라고 해서 다 같은 기도가 아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기도해도 그 마음의 중심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에 따라 기도의 차원이 좌우되고, 나 성자의 심정에 합당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상달되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그저 한 마디의 말로, 너희의 내뱉음으로 끝나 버리는 기도가 있다.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 하시고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최고 권위자 성삼위 하나님의 발 앞에 아무 기도나 올릴 수가 있겠느냐. 그 중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기도가 있다면 너희는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지 말아라. 눈치 보며 하는 기도를 하지 말아라. 사람 의식하며 하는 기도를 하지 말아라.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기도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서 잘못된 관을 가지고 행하는 자가 태반이다. 기도는 성삼위를 만나기 위한 수단이지, 기도가 최후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말을 듣고서 그리 행하는 자 누구인지 목 빼고서 찾아볼 필요 없다. 바로 너 이야기다. 뇌가 굳어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아직도 남의 이야기로만 듣고 가볍게 넘기는구나. 내가 이 시간 적나라하게 밝히겠다. 새벽에 기도하는 모두의 현실을 보아라. 자신의 기도가 민망하냐? 다른 사람이 들을까 걱정되느냐?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다. 기도를 엿듣지 말아라. 기도를 엿듣는 자는 나에게 와야 할 사랑을 빼앗아 가는 사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자로, 너희가 엿들음으로 인해 나에게 온전히 와야 할 기도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마니, 듣는 자는 들음으로써 오는 자신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엿듣게 되는 것 또한 나에게 집중치 못한 결과 나타나는 모습 중 하나이니,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두가 나에게 집중하여라. 다른 것 신경 쓰지 말고 오직 깊은 기도로 나와 단둘이 만나자. (성자 주님, 깊은 기도라 말하면 막연히 어렵게만 느끼고 포기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모두가 알기 쉽게 풀어서 말씀해 주세요.) 깊은 기도는 사랑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나오는 기도로, 다른 말로 풀면 100% 나 성자에게 집중하는 기도를 말한다. 마음, 정신, 생각, 행동, 말투 하나하나 모든 것이 나에게 맞추어진 기도지. 기도하는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빼앗기고 싶지 않아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나를 느끼기 위해 나에게만 집중하는, 즉 모든 것을 나에게 내어 준 결과 나와 너 사이에 오직 사랑만이 남게 되는, 극적 단계를 뜻한다. 나는 보이기 위한 기도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는 자가 교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니, 졸더라도 ‘주님이 지금 내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빨리 깨서 주님 만나야지!’ 이 생각이 아니라, ‘아, 다른 사람들이 보는데... 일어나면 안 졸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처럼 해야지.’ 하며 행동을 취하는구나. 다른 사람 보기에는 부끄럽고 내가 앞에서 지켜보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냐? 나를 홀로 두고선 진정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냐. 너희의 굳은 뇌가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구나. 이 모습이 진정 신랑을 만나기 위해 사랑으로 준비하는 신부의 모습이 맞는지 너희는 한 번 생각해 보아라. 신랑과 신부가 너무도 사랑해서 1:1로 사랑을 나누는데 다른 사람을 의식할 틈이 어디 있느냐. 부부의 은밀한 침실 안에 다른 사람을 들여다 놓고서 사랑을 나눌 것이냐. 정말 사랑해서 나누는 사랑이 아니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가짜 사랑으로 변질되어선 안 된다. 이 외에도 -새벽에 교회에 나와 기도 시간을 채운다는 자기 만족감에 앉아 시간만 떼우고 가는 자 -청중의 분위기에 묻혀 중언부언 기도하는‘척’하는 자 -기도하며 계획적으로 조는 자 -예배 끝난 후 돌아가서 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자 -멍 때리고 있는 자 -사랑이 아닌, 자신의 요구만 늘어놓는 자 이런 자들의 기도 속에 내가 온전히 거할 장소가 있겠느냐. 나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아라. 내 심정이 어떨지 헤아려 보아라.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나는 기도를 해도 주님이 느껴지지 않아.” 심히 안타깝고도 안타깝구나. 선생은 수십 년간 나에게 말씀을 간구하며 매일 기도를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마음 가운데 편안함과 쉬움, 익숙함이란 없었고 늘 새로움과 떨림, 낮은 자의 자세로 나아온다. 느껴지지 않는다 말하기 이전에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돌이켜보아라. 그토록 위대한 사명자도 나를 만나기 위해 변함없이 매일 몸부림을 치건만 자신이 얼마나 행하고서 나를 판단하는 것이냐. 나에 대하여 함부로 결정짓지 말아라. 나는 변함없이 늘 너희 앞에 있으나, 나를 만나고 느끼는 것은 너희의 행함으로 얻어 낼 책임분담이니라. 기도. 허리는 바르게 펴고 두 손은 공손하고도 가볍게 모은 후, 두서없이 중언부언 말하는 것이 아니라 또박또박, 알아들을 수 있게 입 밖으로 고해라. 먼저는 자신의 주관을 온전히 비울 수 있게 해 달라 하늘 앞에 간구한 후 기도의 문을 여는 것이다. 때로는 기쁘듯, 때로는 심정 타듯, 때로는 위로하듯, 때로는 부탁하듯, 때로는 속삭이듯,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에 맞게 기도해야 하며 오직 나 성자의 심정에 합당한 기도다. 장시간 기도했다 해서 온전히 기도한 것이 아니다. 짧은 시간 기도하여도 얼마나 간절히 나를 만나기 원하며 핵을 치느냐가 중한 것이다. 모든 기도의 핵은 오직 사랑이어야 하며, 그 중심은 나 성자를 향해야 한다. 알려 주었으니 이젠 변화된 모습으로 만나자. 사랑해서 말한 성자니라. 샬롬 2014-10-04 토요일 휴거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다 작성일 : 2014. 6. 26. AM 3:20~4:10 작성자 : 김향미 (한 사람이 다른 형제와 자기의 휴거 차원을 비교하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후 며칠 간 두 차례, “휴거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다. 성자는 형제들과 너를 비교하지 않으시고 절대적인 기준에 맞춰 휴거의 정도를 측량하신다. 그러니 시기질투 할 필요가 없다. 옆에 더 잘하는 자가 있으면 자극을 받고 더 열을 내면 되고, 옆에 더 못하는 자가 있으면 도와주고 함께 휴거를 이루어 나가자.”라고 하시며 말씀 받자고 감동을 주셨습니다. 최근 교회에서 형제와 자신을 비교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서, 이에 대해 말씀 주시기를 간구 드리니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자의 말씀* 가치를 모르니 자신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다른 사람이 더 커 보이고 비교하는 것이다. 사랑아 네 간구에 나 왔어. 말씀 줄게. 집중하자. 사랑아 내 말했지? 휴거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라고. 상대평가가 무엇이고, 절대평가가 무엇이냐? (사전을 찾아보라고 하셔서 찾아보았습니다.) [절대평가: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 의하여 개개 학생의 성적을 평가하는 방법. / 상대평가: 학업성과를 다른 학생과 비교하여 성적의 위치를 부여하는 평가 방법] 사랑하는 자야.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차이가 어떠하냐? (“절대평가는 정해진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하는 것이고, 상대평가는 상대적으로 타인과 비교하며 점수 매기는 것입니다.”) 그래 사랑아. 휴거는 절대평가라 하였지? 그러면 옆에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있겠느냐? (“아니요. 전혀 없어요.”) 그래 그렇지. 휴거 100, 200, 300선도 절대적인 기준이 각 선마다 있지 않느냐? 100선의 기준 주를 온전히 깨닫는 단계 완전히 회개한 단계 200선의 기준 모순을 모두 고친 단계 삶의 중심이 주가 된 단계 300선의 기준 삼위의 눈으로 주를 깨닫는 단계 신의 사랑을 하는 단계 이렇듯 각자 기준점에 따른 필요한 사항들이 있지 않느냐. (휴거는 타인과 상대적으로 비교하지 않고,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개개인에게 점수가 매겨지나, 반면 개인이 이루는 휴거의 기준은 각자 모든 사람들의 환경적 요소를 면밀히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00선의 요구 항목을 이수하면 100선 B학점 200선의 요구 항목을 이수하면 200선 A학점 300선의 요구 항목을 이수하면 300선 A+학점 네 형제가 A+ 휴거를 이수하였다 해서 옆에서 보며 비교하며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각자의 자라온 환경에 따라 배운 공부의 양과 질, 학습 능력에 차이가 있고 그 모든 것을 공의롭게 보고 판단하여야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벌써 휴거 300선을 이루었다고 하자. 그는 자라온 환경적인 측면에서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도움이 있었고 어릴 때부터 자신감을 키우는 활동들을 많이 하여 그에 따라 자신감 있게 휴거의 항목들도 하나하나 빠르게 이루었다면 그는 환경적 측면에서 유리한 것이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100선을 겨우 이루었는데 환경적인 측면에서 교회에도 갈 수 없고 말씀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환경적인 요소, 어릴 때부터 형성된 성격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되어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데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니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다기보다 각자 다른 출발점에서 휴거의 스타트를 끊어 과정 중에 이수하는 휴거 점수는 천차만별이구나. 그에 따른 결과도 천차만별처럼 보이지만, 아무리 부모의 적극적 지지, 환경적으로 신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최종 점수가 나온다. 어찌 직장 생활하며 휴거를 이룬 자와 풀로 섭리를 뛰며 휴거를 이룬 자를 동일한 기준과 잣대로 평가하겠느냐? 각자 모든 사람들의 기준은 상대적이니 그리되었을 때 가장 공의롭다 할 수 있는 것이지. 또한 상대평가가 아니므로 옆에 사람과 나를 전혀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나의 가치를 모르면 나를 돌아보기 전에 남을 본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그러하고 피해 의식, 열등감에 살아온 자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사랑들아. 휴거는 절대평가다. 100선 200선 300선 기준에 따라 이수할 것들을 이수하면 각자 휴거 100선 200선 300선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 남을 보며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라 각자가 배로 행함으로 자기 자체 수준을 100선 200선 300선의 기준을 향해 맞추어 나가야 할 때가 아니냐? 옆에 사람 보다가 시간 다 간다. 기준 자체가 다른데, 왜 그 사람과 너를 비교하느냐? 그러니 낙심하고, 저 사람만 휴거된 것 같고 지치고 걱정되고 불안한 것이지. 네가 하늘 앞에 너 스스로 온전하면 휴거를 이루는데 걱정이 반으로 줄 것이다. 자신감을 가져라. 너와 그 사람은 휴거로 인해 싸울 필요 없다. 서로 도와주고 함께 휴거를 이루어 나가야 해. 네 상황 다 알고, 네 자라온 환경, 그리하여 굳어진 성격, 근성 네 모든 것을 아는 전능자가 아니냐. 그러니 너의 휴거를 평가할 때 언제 섭리에 왔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성격이 형성되어 어떻게 신앙에 영향을 미쳐 왔는지.. 가문과 조상의 덕은 없는지 2세인지 아닌지 등 여러 가지를 보고 아주 정확하고 확실하게 측량하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공의가 아니냐. 70억 인류 그리고 섭리 신부들 한 명 한 명 개개인의 점수를 개개인의 모든 환경, 성격적 요소를 고려하여 재고 있으니 옆에 누가 휴거 차원이 높아 보인다 해도 좌절하지 말고 비교하지 마라. 너와 그는 다르다. 알겠느냐? 시작점부터 다르고, 그에 따라 이루는 과정도 다르다. 길도 다르고 때도 다르다. 각자의 휴거길 각자의 때에 맞춰 삼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휴거를 진행하고 있으니 평가는 우리에게 맡기고 네 하루하루 삶을 온전히 살 때 서서히 휴거되어 결국 창조 목적을 이루어 영원히 황금성에 나와 함께 살게 되리라. 끝까지 하자 포기하지 말자. 절대평가의 기준점은 네 선생이다. 시대의 기준자 신부의 기준자 휴거의 기준자 시대 단 한 사람이 기준 세워 있으니, 그를 보고 측량하고 ‘내가 얼마나 휴거되었나?’ 따져보고 계산해 보자. 알겠지? 오직 절대 기준 선생과 비교다. 선생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 선에 이루었나 보아라. 선생처럼 얼마나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는지 얼마나 깨달았는지 얼마나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선생처럼 신의 성품으로 거듭났는지.. 네 선생이 절대적 휴거의 기준이니 네 선생보고 정확하게 측량하자 알겠지? 이러한 이치로, 영계에 가도 자기 수준에 만족하며 살게 된다 함이다. 서로를 비교할 필요조차 비교할 잣대조차 없는 것이다. 모든 자가 기준이 다르고, 이룬 결과가 다르니 각자 자기가 이룬 것에 만족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흡족해하고 행복해하며 사는 곳 그곳이 바로 영계 천국이구나. 그러니 그곳은 비교 없이 개인 천국이 되는 것이지. “저 사람 삼위와 더 가까이 있네?”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이미 자기가 행해 온 결과에 따라 천국 영계의 위치가 정해졌고 자기 삶의 결과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사는 곳이지. 휴거는 상대평가가 아니다. 네 형제가 찬양을 잘 한다고 해서 너는 찬양을 못하는 음치라 해서 그는 휴거되었고, 너는 안 되었느냐? 아니다. 각자의 달란트, 개성이 있고 각자의 휴거의 길이 있으니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아 더욱 잘하게 만들고 자기가 못하는 것을 찾아 더욱 보완하면 그 누구도 휴거를 능히 다 이룰 것이다. 결국 내가 얼마나 주를 더 사랑하느냐가 휴거의 척도가 아니겠느냐. 네 선생 얼굴로 휴거되었느냐? 키로 휴거되었느냐? 공부로 휴거되었느냐? 아니지 않느냐.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니, 최고로 일등 휴거된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눈에 보이는 몇 가지 것들로 휴거 차원을 비교하지 말고 누가 차원이 높다하며 서로 판단하며 말하지 말고 자기 수준, 자기 차원을 명확히 보고 판단하여 얼마 남지 않은 휴거 때에 각자 시간을 아끼자. 자기 휴거 이루기에도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구나. 남을 보고 비교하고 자신을 판단하며 낙심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희망 삼아 나 성자가 계획한 구상과 뜻을 생각하고 행함으로 휴거를 이루어 나가자. 사랑들아. 서로 비교하고 넘어지는 자들, 자포자기 하는 자들 있기로 내 너희들 걱정 반으로 줄여 주고자 말했다. 힘내자. 걱정해도 달라지지 않으니 그 시간에 너를 어떻게 더 변화시키고 만들지 고민하고 깊이 생각하여 너 개인에게 투자하는 나의 금 시간을 헛되게 하지 말자. 알겠지? 사랑해. 걱정을 줄이고, 휴거의 소망을 배로 하기를 바라는 성자다. 안녕. (“아멘! 선생님. 해 주실 말씀 있으신가요?”) *선생님의 말씀* 사랑들아. 휴거가 쉬운듯 하나 또 어렵지? 쉬워 보이다가도 어려워져서 낙심 좌절하게 되지? 137억 년 6000년 역사 이래로 딱 한 번 있는 역사다. 그러니 쉬울 일이 있겠느냐? 가장 큰 인류의 소망을 거머쥘 자들이 너희 한 명 한 명이니 감사하며 기뻐하며 매일을 살아가자. 휴거는 나와 하면 즐거워. 나도 이곳에서 성자와 함께하니 행복하다 하지 않느냐. 사랑하다 보면 자연스레 휴거 300. 그 이상까지 도달해 있을 것이다. 휴거를 간절히 소망하고 네 자신을 영원한 소망으로 삼고 너 하나 만드는데 시간 잘 쓰자. 다른 사람 볼 필요 없어. 그 사람 기준 잣대로 너도 그 같이 할 필요가 없다. 각자 자기 수준과 정도에 맞게 차원 높여 점차 점차 이루는 것이다. 하루 만에 이루는 휴거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 차원 높여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변화에 변화를 이루는 것이 휴거라 하지 않느냐. 휴거에 대해 착각하지 말고 휴거는 매일 네 삶의 변화이니 네 삶이 변화되는 것을 인지하면서 절대 기준 보고 휴거 수준을 매일 검사하고 측량해 나가자. 알겠지? (“절대적 기준이 있어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그래 내가 기준 세워 놓았으니 편하게 휴거 이루며 오려무나. 안녕. 사랑해. 선생이다. 2014-10-04 토요일 선생을 빼고 하는 증거, 강의, 전도는 나 성자를 빼고 하는 것과 같다 작성일 : 2014. 8. 11. PM 02:44 작성자 : 신연호 (어릴 때부터 삶이 너무 힘들어 도대체 인생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찾아온 생명을 만나게 되어 같이 밥을 먹으며 말씀을 권했습니다. 처음엔 선생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른 여러 가지 방향으로 설득하고 말씀에 대한 가치를 말해 보며 말씀 듣기를 권했지만 생명은‘들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반응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며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생명은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생각해 보고 연락 주겠다.’는 태도로 반응이 바뀌었습니다. 조금 더 이야기하고 헤어질 때 생명이 먼저‘또 보자!’는 말을 하며 헤어졌습니다. 선생님을 증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가지 방향으로 깨달아져 바로 교회로 달려와 기도할 때 성자께서 “증거, 강의, 전도 모든 것들에 있어 선생을 빼고 하면 나 성자가 함께할 수 없다. 특히 지금 섭리사 전반적으로 전도에 열이 올라 택한 자들을 데려오고자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여 열심히들 하고 있는데, 핵심인 선생 증거를 하지 않는다면 시대의 택한 생명들을 잡아올 수 없다. 오직 선생을 증거하는 것만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아름다운 빛과 같으며 오직 선생만이 그들이 마음이 동하여 스스로 따라올 눈부신 빛의 길이니 이는 나 성자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으며 나 성자는 선생이라는 확실한 발판 위에서 확실하게 역사할 수 있기에 때문이다. 수준 높은 택한 생명들이 너의 빛을 보고 따라오겠느냐? 너의 정신의 빛, 너의 영혼의 빛으로 생명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의 영혼을 이끌겠느냐? 선생의 빛을 보여 줘야 따라온다. 이것을 섭리사 전체가 확실하게 알고 수준 있게! 정확하고 확실하게! 선생을 증거해야 한다. 그래야 너희 휴거의 역사도 새 생명의 역사도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라고 하시며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의 말씀 * 선생 증거가 핵이다. 내 여러 계시자들을 통해서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선생을 증거하고 이 시대를 외쳐라! 지금도 계속 말하고 있지 않냐. 내 심정의 소리인 말씀에 귀 기울여 봐라. 주일, 수요, 금요 말씀, 매일 새벽 잠언 말씀들과 집회와 행사 등의 모든 공적 말씀들을 자세히 봐봐. 그 중심에 무엇이 있느냐? 나 성자의 심정의 가장 깊은 곳엔 선생이 있노라. 너는 내 심정을 느끼느냐? 발견하였느냐? 너무나 사랑하는 그를 증거하고 외쳐 주기만을 너에게 바라고 있는 내 심정을 알고 있느냐? 선생 통해 주는 모든 나 성자의 말씀들의 핵심은 선생이며 나 성자는 너희가 이를 확실히 깨닫고서 무지하여 사망에 처해 있는 나의 생명들에게 속 시원히 가르쳐 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내 소원을 이뤄다오. 네가 나의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 내 가장 원하는 바를 이뤄 주기를 바라면서 나의 속 깊은 심정을 각종 말씀들로 내비치며 가르쳐 주고 있지 않느냐. 기도하며 선생 증거에 대한 말씀들 다시 보면서 그 속에 있는 내 심정을 먼저 발견해 주길 바란다. 내 심정 안다면 지금처럼 자기 자신의 스타일과 자기 원하는 방법대로 그저 편안한 방식으로 그저 익숙한 방식으로만 선교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 많은 자들이 전도를 하고 있지만 내 말씀 그대로 행하여 증거하고 외친다기보단 이것저것 의식되는 것들이 많으니 이것 빼고 저것 감추며 슬슬 분위기만 좋게 하고 너희의 마음만 만족스런 수준으로 하고 있진 않느냐? 선생 조건 완전하며 나 성자 코치 온전하다. 실속과 결과가 없음은 땅의 흠과 부족으로 인함이니 행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는 이 때 선교에서 행하여도 결과가 나오고 있지 않다면 절대 성공의 법칙 나 성자의 말씀에서 벗어나 행하기에 그런 것은 아닌지 철저히 쪼개 보고 점검해 보아라. 선생 향한 나 성자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 네가 선생 사랑하고 그의 희생과 억울함을 안다면 내 너무나 사랑하는 그를 바라보는 나 성자의 심정을 네가 정녕 느낀다면 진정 이 무지한 시대 앞에서 듣든지 아니 듣든지 외칠 수밖에 없노라. 조은이처럼 세상 앞에 담대히 외칠 수밖에 없다. 지금 이러한 자가 섭리에 얼마나 있냐? 너희 각자의 모습을 보며 깨닫거라. 아직 알지 못하고 심정을 모르고 사는 인생인지 진정 알고 사는 인생인지 자신의 행위를 보면 자신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나와 심정 일체 되어야지. 사랑하는 자와의 심정 일체를 위해서 매일 삶의 일체를 이루고자 실천으로 도전해라. 행하는 대로 실천하는 대로 정신과 심정 선물로 받는다. 심정 정신 삶 모두 일체 되어 같이 살자꾸나. 나와 함께 멋지게 선생 증거하며 하늘의 신부들을 탄생시키는 생명 역사를 이루자꾸나. 나 성자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선생을 증거할 때 사로잡혀 버리는 생명들이 오직 선생과 나 성자만 보고 따라올 나의 신부들이니 이런 생명들을 찾아 주기를 내 부탁하는 바이다. 시대의 핵이 무어냐? 그 시대 보낸 자다. 왜 그 시대 보낸 자가 핵이냐? 그 시대 보낸 자의 말씀이 온 지구촌 모든 인생들의 근본 답이 되며 길이 되는 나 성자의 말씀이며 삼위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 보낸 자를 통해 시대의 인생들에게 전할 말을 전하고 들을 간구를 들으며 이뤄 줄 뜻을 이뤄 주기에 그 시대 보낸 자는 그 시대 인생들에게는 나 성자가 된다. 하나님과 성령님께서도 이와 같이 행하시기에 인생들에게 그는 곧 성삼위가 된다. 섭리 안에서도 이것을 확실하게 깨닫는 자가 적다. 그러니 외치는 자가 적은 것이다. 너희 선생이 어떠한 자인지 깨닫고 합당히 대하여라. 너희가 선생을 대하는 대로 영원한 운명까지 갈리고 있는 이때다. 시대와 인류 앞에 시대 사명자의 빛은 성삼위의 빛임을 확실히 깨닫고 외쳐다오. 오직 선생의 빛으로만이 온 세상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으니 이는 나 성자가 선생에게 생명 구원의 권한을 위임하였음이니라. 너희는 선생과 일체 됨으로 나 성자와 일체 되어 나와 함께 사망의 영을 영원한 생명의 영으로 구원시키는 최고로 가치 있는 사역을 하자. 나는 구원의 근본자이며 선생과 나는 구원 사역의 총 사령관이노라. 나의 사랑의 파트너가 되어 다오. 택한 생명들은 인간이 볼 수 있는 인생 빛 중 유일하게 삼위의 빛을 온전히 발할 수 있는 선생의 빛이 아니면 따라오지 않는다. 아직 성장 중이고 만들어 가는 과정 중에 있어 천차만별로 미완성급인 너희들의 빛으로 생명을 끌다가는 너희들보다 급이 높은 사탄들이 그 생명의 영혼을 세상으로 사망으로 채어 가버리고 만다. 온전하고 완전한 조건의 삶을 살고 완전하게 삼위와 사랑으로 일체 되어 절대 사탄 불가침인 오직 선생만이 어떠한 사탄의 권세도 깨부수고 생명을 안전하게 삼위에게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자이니라. 선생이 있는 곳에 내가 간다. 선생이 나타나는 곳에 나 성자가 나타나 역사한다. 이는 너희가 내 육인 선생을 증거하고 드러내러 그가 나타날 때 나 성자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나타나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역사들 또한 펼칠 수 있으니 이리 될 수 있도록 너희는 모든 역사의 핵심에 선생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해다오. 선생 증거라는 철로로 삼위의 역사함이라는 열차가 다닐 수 있는 것이니 하늘 역사 열차의 첩경을 평탄케 해다오. 선생 증거라는 철로를 온 지구촌에 깔아 다오. 알겠느냐? (아멘!) 사탄과 생명을 두고 영적 전쟁을 치르는 이때다. 너의 생명을 두고서 관리할 때나 섭리와 세상의 생명을 두고서 관리할 때나 너는 언제나 선생을 머리로 두어 나 성자를 머리로 두라. 너는 선생의 지체가 되고 선생의 육신이 되어라. 네가 사라지고 오직 선생만이 나타날 때 그를 통해 나 성자가 너의 생명, 섭리의 생명, 세상의 생명, 모든 생명을 완벽하게 살리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겠노라! 완벽하게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무엇이냐 너의 100% 비워짐과 선생을 100% 받아들임으로 너와 나와의 일체가 100%를 이룰 수 있게 된다. 너와 나의 완전한 사랑 일체의 역사는 곧 너의 완전한 휴거의 역사를 이룬다. 너 하나 개인의 문제도, 여럿의 단체의 문제도 이와 같이 오직 100% 선생이 하도록 그의 뜻대로 진행하여 그를 통해 나 성자가 직접 진두지휘하며 사랑하는 너흴 위해 행할 수 있게 해다오. ‘100% 말씀대로 하기!’ 하늘과 함께 최고 차원으로 일체 되어 하늘이 역사를 이루도록 하는 최고의 명답이다. 선생과 함께 나 성자와 함께는 오직 네가 자신을 비우고 선생으로 채울 때 가능하다. 이 때 너는 땅은 땅이되 하늘이 강림하여 천국이 이뤄지는 지상천국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다. 선생이 인간으로서 신이 된 것과 같이 너도 선생과 일체 되어 신이 된 자의 애인이 되고 나 성자의 신부가 되어라. 모든 행사를 하늘의 뜻대로만 진행하여 확실한 성공으로 이루자꾸나. (아멘! 하늘 행사의 최고 핵심 역사인 인간 구원! 인간의 영을 삼위의 신부로 만들기를 최고 차원으로! 최대한으로! 하늘과 함께 이루고 싶습니다. 오직 하늘이 원하시는 생명만을 콕콕 집어 데려오기에 초점을 맞추고 24시간을 매일 써야 할 때인 줄 압니다. 분별력이 부족한 제 눈엔 모든 인생들이 생명으로 보이나 삼위의 눈엔 이때에 합당히 먼저 데려올 생명이 보일 줄 아오니 제게 삼위의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삼위와 같은 눈인 선생님의 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을 찾고 찾으며 발견하는 족족 뛰어가겠나이다. 하늘의 무한한 기운으로 번개같이 달리겠나이다. 생명 앞에서 제 주관 버리고 제가 이 시대 사명자의 말씀 따라 그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시대 주에게 제 몸을 맡김으로 성자께 제 몸을 내어드리겠으니 부디 저를 통해 생명을 살려 주시옵소서. 영, 혼, 육으로 수준 있게 갖추어 선생님과 성삼위의 가치를 알아보고 오직 성자 사랑과 주 사랑만으로 기뻐 좋아하며 영원한 휴거 길을 끝까지 달려갈 하늘 사랑이 굳건한 귀한 생명을 찾고 싶습니다! 삼위와 주님께서 택한 자를 찾고 싶습니다!) 최고의 택한 자가 어떤 자이냐? 바로 때에 합당한 자가 수준 있는 자요 그 시대 택한 자이다. 너는 나와 같은 생각이 되어 나와 같은 시선으로 생명을 보라. 전쟁 때라면 용맹한 영웅이 합당한 자일 것이며 환란 때라면 지혜로운 통치자가 합당한 인물이지 않겠느냐? 지금은 신랑과 신부의 시대다. 바로 사랑의 시대다. 하늘이 주는 사랑의 가치를 알아주고 자신도 하늘 향한 절대 사랑과 절대 믿음의 삶을 살면서 오직 사랑의 이유로 하늘의 뜻을 속 시원히 이뤄 주며 끝까지 변치 않고 더욱 그 사랑이 활활 타오르는 자가 이때에 합당한 사랑의 영웅이요 내 진정 데려오길 원하는 하늘 신부로서 합당한 생명이로다. (아멘! 이때에 합당한 사랑의 영웅 될 자 제가 주를 사랑하니 제가 찾겠나이다. 물고기들도 각 물고기의 종류마다 좋아하는 미끼가 있어 어떤 미끼를 쓰냐에 따라 그에 해당되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섭리는 문화 예술의 각종 다양한 미끼로 세상 고기들을 모으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소수만이 사랑의 영웅으로 남아지고 대부분은 세상으로 돌아가 버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의 영웅으로 남을 자들만 찾아 데려올 수 있을까요?) 예술로 모으면 예술인이 모이고 문학으로 모으면 문학인이 모이듯이 삼위의 사랑으로 고기를 모아야 삼위의 사랑의 영웅들이 모인다. 고로 사랑아, 삼위의 사랑으로 생명을 모아라. (삼위의 사랑으로 생명을 모르라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생명을 모을 삼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세요.) 삼위의 사랑은 삼위 자체다. 삼위는 이를 말씀으로 나타낸다. 삼위의 사랑은 선생 통해 주는 삼위의 말씀이며 말씀을 행하는 선생의 행함 하나하나가 삼위의 사랑이다. 선생은 삼위를 사랑하여 삼위의 진리 실천으로 자신의 영혼육을 100% 가득 채워 삼위와 완전한 사랑 일체를 이룬 고로 그의 모든 행함과 말씀이 삼위의 사랑이노라. 선생의 모든 것이 삼위의 사랑이노라. 고로 사랑아 네가 질문한 삼위의 사랑으로 생명을 모으라는 말은 선생으로 생명을 모으라는 말이다. 삼위를 사랑하고 삼위의 사랑의 말씀을 사모하며 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단체가 섭리사가 아니더냐. 이는 곧 선생을 사모하며 선생의 모든 것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단체가 섭리사라는 말이다. 선생과 함께 선포하는 삼위의 사랑 가득한 뜻을 삼위와 선생을 사랑하여 모두 이루어 버리는 사랑의 역사. 삼위를 신랑으로 모시며 삼위 앞에 온전한 신부인 삼위의 신부 역사 사랑의 성약 역사가 바로 섭리역사다! 섭리사는 ‘선생과 진리 사랑으로 나 성자와 삼위와 사랑하는 신부 단체’다! 섭리사가 예술 단체냐? 문화 단체냐? 외모와 여러 육적 능력이 뛰어난 자들을 모아 놓는 단체냐? 왜 너희들은 예술이 훌륭한 자, 배경이 좋은 자, 외모가 뛰어나고 각 분야의 지식이 많은 자들을 찾는 방법들만으로 생명을 데려오려 하느냐? 선생과 신앙 이야기는 뒤로 미뤄 두고 문화 이야기 예술 이야기만 계속하며 생명과 거리가 가까워진다면서 좋아하는 자들이 많다. 물론 그렇게 사람의 개성 따라 특성 따라 문화와 예술로 생명의 마음을 열고 열려진 마음의 문을 통해 선생을 소개하며 이 시대 신랑 신부의 사랑의 신앙을 넣어 주는 것은 합당한 방향이다. 하지만 선생을 소개하는 타이밍이 대체적으로 너무 늦다. 이것이 빠질 수 없는 핵심이고 목적인데 생명과 상황과 분위기를 의식하며 자꾸 뒤로 미루고 그저 생명의 분위기만 맞추다가 선생으로 생명을 잡을 타이밍 놓치고 생명 놓치어 삼위의 심정과는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선생을 증거하는 시대의 핵심 말씀들을 넣어 주는 타이밍이 섭리사 전반적으로 모두 너무 늦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는 개선점을 밝히 드러내고 고칠 방향을 확실히 제시해 주어 고칠 것을 고쳐 삼위의 뜻대로 진행함으로 섭리안의 삼위의 모든 선교 역사가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려는 의도이니 적어도 두 번째 만남에선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선생과 선생을 증거해 주는 핵심 말씀들로 생명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라. 지금 이렇게 빠르게 진행해도 시급하다. 다른 의식되는 것들이 많은 것을 안다. 그 의식되는 것들까지도 활용해서 자연스럽고 더 멋있게 선생 증거할 수 있는 재료와 말씀을 깊이 심어 줄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도록 모두가 선생을 증거하기를 더욱 연구하며 그를 증거하는 핵심 말씀들을 전하는 스터디를 진행하여라. 너희 안에서도 서로 전해 주고 증거해 주며 불을 주고받으며 능력이 더욱 커지는 경험들을 해야 한다. 기도로 내게 배우며 말씀 연구해서 선생 전하는 능력을 연속 키우고 갈고 닦아라. 뭐든지 많이 행할수록 실력이 는다. 삼위의 눈엔 이 지구촌의 모든 인생들이 다 보인다. 그들의 영체들, 혼체들이 다 보인다. 뜻이 있고 사연이 있는 생명들이 많고도 많구나. 섭리사로 와서 선생 통한 나 성자의 말씀을 사모하며 오직 선생 사랑과 삼위와 함께하는 진리 실천 사랑에 미쳐 하늘의 뜻을 창대히 이룰 자들이 많이 보이는구나. 이때 진정 하루 속히 섭리로 와야 할 세상 속에 있는 자들, 삼위의 기준으로 수준 있는 자, 능력 있는 자, 심정 있는 자를 데려오기에 문화 예술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문화 예술을 접으라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가미하는 것이며 핵심은 선생과 그의 말씀으로 잡기다. 이를 여러 번 말했는데도 문화와 예술로만 오랜시간 생명을 잡아두면 온전한 생명의 결실을 이룰 수 없다. 어떻게 잘 데리고 와서 같이 지내다 보면 될 것이라 생각하느냐? 남자가 여자를 집에 데리고 들어와서 아무리 각종 것들을 같이 즐기며 놀아도 핵심 사랑의 행위를 하지 않으면 생명 역사는 일어날 수 없다. 핵심 사랑의 행위는 핵심 사랑의 지체로 한다. 이 지체로 하지 않으면 어떤 사랑의 행위를 해도 생명 역사는 일어날 수가 없다. 섭리역사의 핵심은 성자 사랑이며 성자 사랑의 핵심은 선생과 진리로 사랑이다. 섭리 와서 아무리 많은 문화 활동 같이하며 여러 가지 행사에 많이 참여한다 한들 핵심 선생과 진리로 성자 사랑이 제대로 안 되면 혼과 영이 신부로 재탄생하는 성약급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 생명은 섭리 행사 참여해도 영적 결실이 실제로 맺어지진 않는다. 선생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핵심 성자 사랑도 안 되고 영혼이 신부로 제대로 변화되지 못한다. 아무리 해도 핵심 지체 없이는 아이가 태어날 수 없듯 아무리 해도 선생 없이는 이 시대 신부의 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핵이 선생임을 근본의 성자가 교육했다. 시대 증거, 역사 증거, 말씀을 전하는 강의에서 모두 선생을 증거하며 선생을 전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핵심은 목적이며 실속이며 결과이다. 핵심 잃으면 실패다. 핵심 잡아야 성공한다. 오늘 나의 여러 심정을 전하였다. 날 사랑하는 자는 내 원하는 바 뜻을 이뤄 주며 그와 나는 깊은 사랑의 역사를 이루고 생명의 역사 또한 따라오게 될 것이다. 널 진정 사랑하여 삼위의 성약 섭리의 핵심인 선생 사랑을 잡고 우리 사랑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를 함께 이루며 영원한 황금성의 행복까지 같이 누리자고 사랑의 말씀으로 교육한 성자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