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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4.10.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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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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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3 목요일 300선의 완전함을 위해선 스스로를 낱낱이 쪼개어 행하기다 작성일 : 2014. 7. 26. AM 12:50 작성자 : 배세한 (자기 전 저의 휴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드린 후에 잠을 잤는데 잠을 자고 있어도 꿈에서 계속 저의 혼이 기도를 했고 자꾸 잠을 깼다가를 반복 하였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제 혼이 여러 가지를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중에 기억나는 기도 내용은 저의 문제점들을 번호로 매겨서 하나하나 따져 보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꿈을 꾼 후에 또 잠에서 깨어 보았는데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켜지는 거실 현관의 등이 사람이 지나가지 않았는데도 순간 불이 켜졌습니다. 그때 성자께서는 말씀 받자 하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사랑아. 지금 이때에 너희들이 행할 것을 보여 주었다. 지금 이때는 그 기도 소리가 한시도 끊겨서는 안 된다. 선생의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듯이 말이다. 너의 꿈은 비유로 보여 준 것이지만 실상이 그러하다. 너를 만들기 위해 기도해야 해. 하나하나 구체적인 것들을 놓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지 휴거 제대로 이룰 수 있다. 휴거 300선은 완전한 상태이다. 신의 형상을 입은 선생과 같이 신의 형상을 입은 것이 휴거 300선이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너의 세밀하고 세세한 것을 놓고서 고쳐 나가며 그것을 알기 위해서 깨닫기 위해서 나에게 기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까요?) 더 깊이 기도해야 한다. 네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고치고 바꿔 나가야 하는지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무엇을 행함에는 단점과 장점이 무엇인지 따지고 따져야 한다. 세밀하게 모든 것을 쪼개고 행해야 한다. 그러기에 절대 생각에서 놓치면 안 된다. 생각에서 놓치게 된다면 자신이 무엇을 행했는지 자신의 행함이 그 상황에서 온전한 행함인지 알지 못하기에 분별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다 고로 온전히 행치 못한다는 것이다. (그때 집중력이 흐트러졌습니다.) 사랑아. 지금 이 순간에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 받는 것이 처음이어서 좀 당황스럽기도 해요. 이게 맞는가 싶기도 하고요.) 나에게 맡겨야 해. 그래야 내가 너를 쓰고 온전히 말할 수 있다. 사랑아 휴거됨에 있어서 힘든 것이 있을 것이다. 너는 무엇 때문에 휴거됨이 어렵다 생각하느냐? (저의 책임분담을 온전히 하지 않아서 성자께서 저에게 주실 것을 주시지 못하시므로 자꾸만 어려워지고 힘든 것 같습니다.) 사랑아. 네가 나로 받을 것만을 생각지 말아라. 생각의 전환을 갖자꾸나. 네가 어려울수록 너의 모순을 완전히 고치기 위해 구체적으로 쪼개고 쪼개서 너의 행함의 모순들을 고치려 하였느냐? (크게는 고치려 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세밀하게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 그것이 온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300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삶을 살아가며 몸부림치고 발버둥쳐야 한다. 그러기에 작은 것 하나부터 세세하게 따져 보고 왜 되지 않는지 왜 온전하지 못한지 찾아보아야 한다. 내가 너의 모순들과 문제의 해답을 알려 주지 않더라도 너 스스로가 그것을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때가 오니 너무 급한 마음이 들어요. 성자께서 그 답을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된다면 온전한 답이 되지 않는다. 내가 처음에 선생에게 월명동 야심작의 구상을 지금과 같이 주지 않았다 고로 5번이나 돌이 무너졌었지. 하지만 절대 선생의 마음은 무너지지 않고 무엇이 잘못되었나 세밀하게 따지고 따지며 끊임없이 발전하며 만들어 나갔기에 결국 지금의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야심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사랑아. 그와 같다. 때가 급하다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순 없다. 하나님의 법칙을 거스를 순 없어.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 다음에는 너희가 찾아봐야 한다. 그래야 너를 만들지 않겠느냐. 그 과정에서 너를 만드는 것이고 곧 휴거됨에 있어서 너희가 가야 할 길이다. 다이아몬드가 원석 그대로였다면 절대 그 아름다움을 빛낼 수 없듯 너희가 겪고 이겨내므로 닦고 깎아 결국 완전한 신부의 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온전히 이루었을 때 휴거 300선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성자 주님.. 지금 시간이 얼마 없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요?) 내가 말했지 않냐. 불가능해도 될 때까지 된다고 그리고 너희 모두는 휴거 200, 300선은커녕 100조차도 올라올 자 얼마 없었어. 하지만 선생의 그 조건으로 너희 대부분이 100선은 올랐듯 선생의 조건으로 300선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급히 행해야 한다! 다시 말한다. 너 자신을 세세히 따져 보고 분석해 나가며 나에게 기도하며 너를 완전하게 만들어 나가야 해. 내가 전에 너에게 말했을 것이다. 온전함은 완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맞다. 자신을 갈고 닦으며 온전한 삶을 사는 것은 결국에는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함이다. 깊이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주세요!) 다이아몬드를 예로 들자. 다이아몬드 원석은 잡석만 제거하고 조금만 깎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온전하다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완전하여 그 원석만을 얻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캐느냐? 아니다 원석을 캐고 58면으로 깎고 또 깎는 이유는 완전한 다이아몬드로서 제 값을 하기 위해 원석을 캐고 깎고 깎는다. 그와 같이 완전함을 목적으로 사는 삶이 결국 온전한 삶이라는 것이다. 또 그런 온전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나는 너희에게 말씀을 주고 너희를 만들게 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진정 너희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가 늘 따져 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늘 완전함의 경지에 올라 계시지 않느냐. 그러니 늘 자신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인지 따져 봐야 한다. 사랑아. 네가 꾼 꿈과 같이 그리해야 해. 나에게 더 기도하고 매달리며 너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고쳐가며 해결해 나가도록 하자. 그러면 그럴수록 너의 삶의 변화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하기에 또 선생 조건 너무 크기에 말씀 준다는 걸 알아. 늘 나 옆에 있으니 함께하자. 내가 너의 휴거를 너보다 더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고 너의 차원에서 힘들어하지 말고 더 비우고 나에게 나아와라. 인도하여 주리라. 너의 영원한 신랑 성자다. 샬롬 2014-10-23 목요일 선생님의 가치 작성일 : 2014년 8월 9일 작성자 : 윤마루 (월명동 소나무에 대한 과거 주일말씀을 보며 선생님께서 저희들을 소나무처럼 가치 있게 관리해 주셨음을 느꼈습니다.) * 성자의 말씀 * 나의 사랑아, 사랑하는 자여. 귀를 기울이라. 네가 나에게 묻느냐? 진정, 사람에게 묻지 않고 나에게 묻느냐? (아멘, 새벽 시간이 성자께 질문하기에 가장 좋은 때입니다.) 그래, 그러하다. 오직 나만 바라보며 가라. 월명동 소나무는 누구를 상징하느냐? (첫째로 선생님, 그리고 교역자, 마지막으로 저희들을 상징합니다. 한 나라, 한 지역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하다. 이번에는 너희 각자를 소나무로 보고 이야기하겠다. 너는 너의 가치를 누가 인정해 주었느냐? (부모, 형제, 친구들, ... 이 정도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면서 너를 인정했다고 하나 단순히 비교하여 보다 나은 자를 가리는 수준이구나. 즉, 상대적인 판단밖에는 안 되는 것으로서 기준이 모호하고 본래 가치를 드러내기 어렵다. (맞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서 뛰어나다고 판단되면 인정해 주었습니다.) 물론 선생도 그 지역, 그 센터에서 개성의 빛을 발하는 것을 설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 각자의 본연의 가치를 인정한 자가 있더냐. (아닙니다. 없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타인의 가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절대적 기준이 없으니 상대적인 비교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다. 네 말대로 절대적 기준은 오직 근본에서 찾아야 하나 세상은 그러한 기준이 없이 떠도는 입장이구나. 선생은 하나님을 근본으로 깨달으니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을 알아야 그 상대체로서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알고 설명해 준 선생이다. 그런 스승 밑에서 너희가 존재함을 진정으로 감사할지어다. (아멘!) 너의 가치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라. 자기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자는 상대의 가치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인류의 근본적인 상대자가 누구이더냐? (성삼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자가 절대 가치를 가진 존재를 인식할 수 있더냐? (불가능합니다. 말로는, 머리로는 인식할 수 있겠으나 진정한 가치와 본질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다. 자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니 전능자 하나님부터 시작해 타인의 가치도 모르고 살아가니 가치 없게 인생을 살아가며 허무한 삶, 허탄한 것에 자신의 시간과 소중한 것들을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너는 진정으로 깨닫느냐? 깨달으면 외쳐야 되지 않겠느냐? 이 말씀을 외쳐라. 자신의 삶의 가치를 모른 채 죽은 듯이 살아가는 저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산송장처럼 살아가는 자들도 있구나. 전능자로부터 시작해야 함을 깨달으라. 기준점이 없는데 이디서부터 자신의 가치를 측량할 수 있으리오. 슬픈 현실이다. 어서 가서 저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하자. 근본자 하나님을 알게 하여 그로부터 오는 사랑에게서부터 자신의 의미를 부여 받음을 진정으로 깨우쳐 주어라! (아멘, 믿습니다. 사랑으로 창조된 세계에 살면서 전능자의 사랑을 모르니 삶의 이유를 못 찾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답은 사랑이 아니냐. 자신의 가치를 상대 이성의 사랑으로부터 찾는 자는 그 이성이 사라지면 죽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그러하니 100년짜리, 50년짜리 인생이 아니겠느냐. 변질된 사랑이다. 근본의 영원한 사랑에 비하면 순간일 뿐이다. 남녀 간의 이성적 사랑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다. 사탄, 불법자는 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다른 사랑은 없고 오직 이성간의 사랑만이 최고의 사랑인 것처럼 눈을 가리고 있다! 외쳐라. 이 시대 말씀을, 근본의 사랑을 전하여라. 너희가 먼저 그 근본의 사랑을 충만히 누리고, 느낀 사랑을 전하여라. 스스로 먼저 그 사랑의 깊이와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서야 어찌 전할 수 있겠느냐? 너는 근본자 나 성자와 얼마나 깊은 사랑을 하고 있느냐? 전도도 사랑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나 근본자와의 사랑을 회복하라. 창조의 첫 시작에서부터 다시 하여라. 선생이 그 출발점이다. 성약의 완성된 사랑, 완전한 사랑의 표상이 된 선생이 있으니 그에게 배워라. 그가 왜 나의 육이겠느냐? 실체 사랑의 구현자가 아니냐. 이 땅에 그 사랑을 실체로 이룬 자가 아니더냐. 선생의 가치를 깨달으라. 여호와가 사랑하는 그를 제대로 깨달으라. 나 성자가 가장 사랑하는 선생의 가치를 알아라. 모든 근본의 세계는 성삼위와 선생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알아라. 자를 잴 때도 원점에서부터 재야 하듯이 시작점을 알아야 하고 또한 그 간격도 정확해야 하듯이 근본의 사랑인 창조 목적을 깨닫는 데서부터 사랑의 체계가 잡혀 나가 각자 자신의 가치를 재대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진정 알아라. 네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네가 밟고 있는 땅과 밤하늘에 펼쳐지는 우주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첫 근본의 사랑이 너의 가치를 부여한다. 이것이 없이 남녀 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친구 사이의 사랑, 이웃 간의 사랑만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니 턱없이 작고 작게 느껴지는 것이다. 근본의 행복과 기쁨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너는 이 말씀을 가지고 전초도 하고 강의도 하여라. 깊은 깨달음이다. 너의 선생의 조건으로 깨닫게 해 주었으니 진정 그를 증거하여라. 그의 가치, 성삼위의 가치, 너희들의 가치를 정확하게 깨닫게 해 주어라. 네가 왜 가치 있는 존재인지! 너의 스승이 먼저 자신의 가치를 진정으로 깨달았기에 온 인류에 그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약인들이 진실로 자신의 가치를 깨달았겠느냐? 사실 그들의 가치는 자녀급이로구나. 온전한 창조 목적을 이루는 때는 선생이 신부의 조건을 완전히 세워 신부의 사랑이 시작된 이후이다. 결국 창조주 하나님과 인류의 사랑이 완성 단계로 올라오게 된 것은 선생으로부터 시작됨을 깨달을지어다. (아멘! 저의 뇌의 용량을 초과하도록 엄청난 깨달음이 밀려옵니다.) 네가 선생에 대해 더욱 이해하고 깨닫고자 하니 알려 주었다. 선생을 깨달으라. 더 깊이 연구하여 그를 깨달으라. 선생이 여호와 하나님의 가치를 깨닫는 만큼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그와 같이 그러하다. 너희가 선생의 가치를 깨달을수록 자기 자신의 가치가 더해짐을 알아라. (아멘, 진정으로 깨달으면 지금과 같이 살지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과 저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더욱 깊이 알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사랑아, 너의 선생의 사랑에 집중하여라. 나 성자와 일체 된 선생을 사랑하여라. 그 사랑의 깊이와 강도가 너의 존재를 더욱더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아멘, 진실로 중요한 답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네가 이것을 제대로 깨달으려면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실천해야 한다. 당장 네 옆에 선생의 혼체를 인식하고 그와 함께하여라. 그것부터 시작이다. (아멘! 더욱더 깊이 알고 싶습니다. ) 계단을 생각해라. 네가 이만큼의 깨달음을 온전히 실천하여야 더욱 깊은 것을 알게 되리라. 선생의 말씀 공부가 그러했다. 한계까지 이르렀을 때 그것을 넘어서야 다음 단계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을 깊이 깨닫고자 몸부림치는 자, 그 깨달음대로 누릴 것이다. 깊은 깨달음을 전해 준 성자니라. 2014-10-23 목요일 환상을 통해 깨우쳐 주었으니 차원 높은 삶을 살자 작성일 : 2014. 8. 4~8. PM 7:00~10:00 작성자 : 장태규 (요즘 교회 상황을 볼 때 섭리에 온지 수십 년 된 교인들이 기본 신앙생활에 힘들어하고 지도자간 심정 다툼과 영적 파장으로 인해 새벽은 물론 예배 시간에도 분위기가 산만하여 목회자와 일체 되지 못한 부분을 두고 새벽과 저녁에 기도드릴 때 4층으로 이루어진 한 건물을 보여 주시며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처음 건물을 볼 때 1층은 아예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되어 있었고, 2층부터 보였으나 이내 제가 궁금해서 집중하여 기도하니 총 4층을 전부 보여 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환상 내용* 1층을 보니 현관문에 X자 모양의 검은 각목을 박아 놓아 흡사 흉가 같았고 자세히 보려 할수록 소름이 끼쳤습니다. 2층 안은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허름한 움막과 초막들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순간 모든 움막과 초막 안을 보니, 가마솥 옆에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옷은 검은 계통이었으며 얼굴도 검게 탄 모습이었습니다. 대형 가마솥은 장작불만 피워져 있었으며, 씻기 위해 물을 데워야 하는데 데우려는 의지도 없고 대부분 목욕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세상적인 잡담만 무성했습니다. 3층 안에는 대리석으로 호화스럽게 장식된 목욕탕이었고 대형 욕조 안에는 몸을 씻고, 닦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타인의 몸을 닦아 주는 일에도 열심을 내니 얼굴이 빛이 나며 화평한 얼굴이었습니다. 마지막 4층은 보라색 은은한 빛이 찬란하고 싱그러운 향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안을 보니 흰옷의 긴 드레스 차림의 여자 한 분이 1:1로 앉아서 면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또 장면이 바뀌어 면담해 주던 분이 칠판에 구약 신약 성약의 삼각형 도표를 그려 놓고 서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차례대로 지나가는 환상이라 15일 동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실 가닥같이 스쳐지나가는 것도 잡아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나 회개하는 심정으로 성자 주님께 환상을 깨우쳐 주시기를 교회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수회에 걸쳐 간구하자 성자께서 오심을 느끼게 되어, 감동으로 받아 기록하였습니다.) *성자의 말씀* 사랑아 집중하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마. 1층은 신약과 이방인이 생활하는 터전이라 시대의 흐름과 차원성에 따라 성약과 비교 자체가 안 되므로 보고 들을 필요성이 없는 고로, 상징으로 문을 걸어 잠가 보인 것이다. 2층은 설명하련다. 새역사에 와서 말씀 듣고 시대 주를 따르나 세상과 기성에서 베인 습관과 체질, 잘못된 인식관을 버리지 못하여 잦은 죄를 짓고, 세상과 섭리를 겸해서 오락가락 살아가니 섭리인들의 혼과 영이 차원을 높이지 못하여 옛집, 움막과 초막의 삶이 반영된 장면이란다. 굳어진 뇌로 새 시대 말씀을 자기 것으로 받지 못하니, 자기 생각을 내세워 남의 허물만 들춰내고, 자신의 들보는 애써 감추고 있구나. 그러나 지금 이때는 시대 보낸 자에게 권한을 주어 죄를 사해 주려 밤낮 지켜보며 피눈물을 쏟아 내고 있는 때이다. 3층을 보자 이곳은 2층과 대조적이다 시대 보낸 자 통해 말씀을 듣고 깨달아 자기 주관과 사상을 비우고 자기 죄까지 씻으려 몸부림치고 있지 않느냐 더욱 차원을 높여 깨달으니 형제의 몸 닦는 일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 의의 축복으로 표정들이 빛이 나게 보여 준 영적 상황이다. 3층과 같은 삶을 살 때 나 성자와 육 된 선생이 정말 보람이고 더 기쁨이다. 마지막 4층은 삼위가 있는 거룩한 곳이다. 이곳에는 누구든지 자기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오직 전능자 삼위의 말씀으로 자기 주관으로 인한 마음과 행실을 다 버리고, 삼위의 생각을 닮고 삶을 살아라. 지금은 휴거의 끝자락에 있기에 힘들고 어렵더라도, 조그마한 실수도 있으면 안 되는 때이다. 복음의 핵심지인 이 땅 이곳에서 세월호 대형 참사를 거울로 삼아 시대 보낸 자가 교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제대로 알고 온전한 휴거를 이루게 해 주려는 심정으로 기른 교역자들을 연수를 통해 심정 다해 교육하였다. 그 심정 받고 처소로 돌아간 목회자가 교인들의 휴거 상태를 매일 점검하려 면담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니, 해당 교회 실제 상황을 영적으로 스쳐 보여 주었다. 영계 상황은 속일 수가 없이 여실히 다 드러난다. 나 성자와 선생은 한시도 쉬지 않고 각 교회 지역을 순방하며 목회자를 쓰고 반드시 역사하노니 목회자와 일체 되어 전심으로 휴거에 집중해 다오 닭 날개 아래에 새끼를 모음같이 이 시대 첫 신부의 조건으로 성삼위의 사랑으로 품은 섭리의 신부들아 심정 태워 당부한다. 자기 주관과 사고 꺼림 있는 마음과 행실의 죄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청산하여라. 사랑들아 온전한 마음, 정신, 생각에 축복 더하니 혼적 차원으로 휴거의 삶을 한 기간을 두고 지속하여 300선 휴거를 꼭 이루어 다오. 때가 되어 나의 보좌로 돌아갈 때가 임박했으니 이 심정의 말씀도 곧 거두게 될 것이다. -정결한 신부만 데려갈 사랑의 신랑 성자- (이후 성자 주님께 섭리에 온지 오래된 자들을 놓고 조금 더 말씀해 주시기를 간구하였을 때 성자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성자의 말씀* 섭리 인생 오래된 선배들 중에 자신을 고치고 만들고 조금 더 행하면 300선 고지가 눈앞이거늘 무지함과 죄 속에서 낙심과 포기를 거듭하니 그 빌미로 사탄이 들어오고 마음과 행실이 수시로 흔들리니 오랫동안 벌어 놓은 휴거 점수가 깎이는구나. 이 위급한 상황이 비단 한 교회만이 아니라 섭리의 많은 교회들이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구나. 그러하니 시대 보낸 나의 육이 쓰러져 가면서까지 조건을 세워 주었노라. 오래 전부터 삼위의 사랑으로 품은 먼저 온 사랑들아 온전한 마음, 정신, 생각, 행실로 한 기간을 두고 지속적인 휴거의 삶으로 300선 휴거를 이루어 다오. 먼저 온 자로서 먼저 되어 주기를 심정 태워 당부한다. 2014-10-23 목요일 1. 전도는 쉽다 2. 성자와 분체와 함께 하기다 작성일 : 2014. 8. 8. 작성자 : 이선진 (어제 퇴근 후, 성자와 주와 섭리 형제들과 같이 노방 전도를 나갔습니다. 이렇게 정식으로 서로 약속을 하고 전도를 나간 것은 오랜만이어서 조금 떨리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성자와 주와 같이 전도하러 가는 것이니 힘이 났습니다. 전도 중, 정말 재미나고 순수한 생명을 만나 제 스스로가 재미있었고 막 전도한다는 강박관념보단 성자·주와 신부될 자 고르러 간다는 편한 마음으로 한 생명 한 생명 만나니 그리 괴롭고 힘들지도 않고 쉬웠습니다. 이렇게 함께 전도한 스토리를 가지고 다음날 새벽에 대화했고 말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진정 사랑하는 자야, 네 주관·판단·생각·긴장 다 빼버리고 오직 나와 이 시대 분체와 깊은 사랑의 마음으로 나아가니 전도하기 쉬웠지? 예전처럼 갖가지 긴장·두려움·불안·초조함 가지고 전도했을 때에 비해 훨씬 쉬웠지? (네, 맞아요. 제 생각·판단·주관 다 빼버리고 오직 성자께 제 뇌를 맡기고 전도하니 별로 힘들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어요. 쉬웠고 웃음이 절로 나왔고 재미있었어요.) 그래, 전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신랑과 함께, 어떠한 강박증도 없이, 마음의 긴장 풀고 자연스럽게 그저 성령의 감동 따라 물 흐르듯 한 생명 한 생명 만나고 대화하고 또 그 다음 생명 만나러 가는, 아주 즐겁고 재미있는 행위이다. 막 어떻게든 수료시켜 섭리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운 채, 첫 단계 첫 만남이니만큼 그 단계적인 말·행위로 자연스럽게 생명의 마음 감동시키면 되는 것이다. 조급해할 것도 위축될 것도 없고 말 그대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기다.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생명 구원권은 성자와 주와 네가 쥐고서 그 생명에게 베푸는 입장이지, 그 생명이 너에게 뭔가를 베푸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네가 세상에 속해 있는 그 어떤 생명보다 우월한 하늘 신부이며 생명 구원권의 주인임을 인식하고 도리어 그 앞에서 당당하고 떳떳해 해라. 되레 세상 속 그 생명이 네게 와 구걸해야 할 입장 아니냐. 그렇지? (맞아요. 정말 그래요. 절대 안 잊고 당당할 게요.) 또한 한 인생이 다른 인생 만나 인생 얘기하는 게 뭐 그리 어색한 일이며 이상한 행위이냐. 인생 얘기하는 게 죄이냐. 아주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중 하나 아니냐. 물론 이 시대에는 자신의 인생을 깊이 생각해 보거나 진리·선의 인생 살고자 하는 자가 적기에, 대화해 보고 자신의 인생을 변화·발전시키는 것보다 육적 쾌락·소망에 미쳐 있다 싶으면 그냥 인사하고 헤어지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만들고 개척하려는 자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시대 복음으로 그 단계적인 차원의 얘기를 해 주고, 그런 자가 아니면 만나서 반가웠다고 인사하고 각자 제 갈 길 가면 되는 것이다. 섭리사, 전도를 너무나 어렵고 어색한 행위로 잘못 인식하는 자들이 많다. 또한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이미 그 생명에게 앞으로 섭리사의 모든 말씀· 휴거 말씀까지 다 전하여 깨우치고 선생까지 깨닫게 하는 과정까지 다 머릿속에 그리니, 너무도 부담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 단계에 해당되는 생각만 하고, 그 때에 맞는 생각만 하여라. 섭리사 신부들아, 어렵지 않다. 너희는 선생의 전도를 해야지 왜 너희의 상상 속에 빠져 너희 식의 전도를 하느냐. 선생은 자신의 주관·판단·계산 다 비우고 오직 신인 성삼위께 자신의 뇌를 맡겼다. 그리고 목표한 생명의 수·시간 등을 생각하며, 그저 자신의 모든 힘을 빼고 성삼위께 모든 걸 의지한 채 한 생명 한 생명에게 성령의 감동에 따라 나아갔고 감동이 이끄는 대로 생명과 소통하고 대화했다. 그래서 그 다음 단계로 생명이 올라오면 ‘올라왔구나.’하고 그 다음 단계의 복음을 전해 주었고, 또 그 다음 단계로 올라오면 그 다음 단계의 복음을 전해 준 것이었다. 그러다 더 올라오면 이 시대 섭리역사와 주까지 깨우쳐 전해 준 것이고, 만일 생명이 자신의 주관으로 역사·주를 부인하고 안 받아들이면 먼저 주관부터 비우고 오라고 말했고, 비운 자는 끝까지 인도해 주고 비우지 않은 자의 촛대는 다른 자에게로 옮겨 그자를 키웠다. 사랑아, 언제 어디서나 네 마음·네 주관 비우고 내가 네 발길 인도하는 대로 따라와 감동이 되는 생명에게 말 걸고 대화하고 소통하기다. 이를 최고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스릴을 느끼기다. 나 성자와의 최고의 사랑의 행위라 생각하기다. 네 주관의 신발을 다 벗어던지고 오직 나에게 간구하고 의지하는 만큼, 나 성자·주가 친히 함께하리라. 그리고 그 생명이 네가 던진 시대 복음의 밧줄을 잡고 온다면 그 다음 단계, 또 그 다음 단계적인 시대 복음을 전해 주어 이 역사와 주를 깨닫게 해 주어 나 성자의 신부로 만들어 주기다. 그저 그때에 맞는 한 단계, 한 단계의 것만 생각하고 순리적인 이치로 행하면 되니 편하다. 즐겁다. 쉽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뜻이 있는 생명을 만날지 모르며, 또한 현재 섭리사 신부 중 어떤 자는 원래 전도자가 의도한 생명이 아니었는데 의도했던 생명은 나가고 그 생명의 지인으로서 우연히 섭리 말씀을 듣고 주를 깨달아 현재 섭리에서 휴거의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 이와 같다. 생명 역사는 생명 자체적인 책임 노선이 반드시 들어 있기에 너무나 변화무쌍하며 그 결과를 신인 나 성자도 장담 못 해. 그러니 깨끗이 한 점 호리라도 남김없이 네 발의 신을 다 벗어던지고 기도하며 감동의 물줄기만 자연스럽게 좇아와라. 그 길 끝에 준비된 생명 신부될 생명 서 있다. 매일매일 복음의 신발·기도의 신발을 신고 신부의 사랑으로 오직 신랑만 의식하며 한 생명 한 생명 만나 보기다. 안녕. 휴거에 있어 꼭 해야 하는 전도에 대한 너희의 굳은 인식관을 말랑말랑하게 해 주며, 함께 전도하면 쉽다고 말한 성자다. (이 말씀을 다 받은 후 우연히 이메일을 열어 보고 싶다는 감동에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집안 핍박으로 인해 연락이 두절되었던 생명에게 최근 단상 말씀 따라 편지 말씀을 써서 보내 주었었는데, 그 생명이 편지로 보내 준 말씀 잘 받았다며 포기 않고 계획 세워 열심히 실천하겠다는 메일이 이 말씀을 받고 있던 새벽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 감격한 마음에 성자와 주를 또 불렀는데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거봐. 다 내게 맡기고 담대하게 생명 위해 기도하고 생명에게 이 시대 복음 전해. 그러면 시간은 좀 오래 걸릴지 몰라도 성자와 나는 너희와 같이 최선 다해 실체로 생명 관리· 양육하니 살 생명은 반드시 산다. 생명 구하는 영웅에게 인내와 끈기는 필수다. 나 선생의 생명을 향한 인내·끈기를 본받고 배워. 언제나 나 선생도 네 곁에서 함께 전도하고 관리하고 강의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