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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4.12.09 (화)

화 계시말씀

선포일
2014.1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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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12-09 화요일 지금 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인식관의 전환! 작성일 : 2014. 10. 04. 작성자 : 장정임 (섭리에 전도된 한 회원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과거 기도원 생활 중에 만나 소통하며 생활적 계시를 주던 상대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이 가득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변인들은 그 어머니가 받았던 계시들이 사탄 혹은 잡영이 줬던 것이라 했지만 성자께서는 제게 한 비유의 말씀을 해 주시며 풀어 주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시골 조그만 동네에 한 소녀가 살았는데 이 소녀에게는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자주 만나게 되는 아저씨가 있었단다. 자주 마주치다 보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동네 아저씨를 찾아가 조언을 듣고 고민을 풀며 정이 깊이 들게 되었지. 그 소녀는 만날 때마다 자상하게 챙겨 주던 동네 아저씨가 참 좋았지만 때가 되어 이사를 하면서 다른 마을로 떠나게 되었단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마을에는 그 나라의 왕자가 살고 있었고 왕자는 여인이 된 소녀를 환영하며 소녀 앞에 나타나 깊은 대화와 사랑을 나누길 원했지. 그런데 이 여인은 자꾸 예전 동네 아저씨가 생각이 났던 거야. 마치 첫사랑의 상대를 잃어버리고 새로운 자를 사랑해야 하는 것만 같은 현실 앞에 예전, 동네 아저씨와 나누었던 첫사랑이 떠올라 자꾸만 마음이 울적해져서 눈물을 흘렸지. 하지만 사실은 자기 앞에 새롭게 나타난 왕자님이 과거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 주던 동네 아저씨였어. 소녀가 왕자의 마을에 이사 오기 전에는 왕자가 동네 아저씨로 변장을 하고 소녀가 사는 곳으로 찾아가 만나 주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소녀 앞에 본색을 감출 필요가 없어서 왕자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나타난 것이야. 그런데 소녀는 자기 앞에 나타난 왕자가 본인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옛 동네 아저씨임을 알지 못하고 옛사랑에 자꾸만 미련을 가지고 있으니 왕자 역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야. 그 어머니는 선생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과거 기도원에서 생활할 때 만났던 하나님만 계속 찾으며 그 첫사랑의 그리움에 빠져 있는 것이다. 환경과 상황과 사람을 통해 자신을 사랑해 주던 근본 하나님을 몰라보았으니 인식한 대로 그렇게 자신의 첫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첫사랑의 상대가 바로 지금 자신이 사랑할 상대임을 안다면 아쉬움과 그리움의 눈물이 아닌 기쁨과 환희의 눈물을 날마다 흘리지 않겠느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보느냐, 바알을 하나님으로 보느냐 물었다. 왜? 인간은 누구나 절대자 하나님을 찾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다 자기 인식관대로 사람마다 혹은 부처를, 혹은 조상신을, 혹은 각종의 잡신들을 절대자로 보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산다. 그러나 유일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이를 확실히 안다면 누구든 여호와께로 자신의 모든 사랑을 드리며 나아오리라. 모르니 그 차원에 머물러 우상을 섬기는 삶으로 끝나고 마는 것 아니냐. 나는 너희가 섭리에 오기 전부터, 너희가 나기 전부터 너희를 사랑하여 택한 자다. 고로 너희가 나를 알아보든 못 알아보든 만물, 사람, 환경과 갖가지의 것들을 통해 각각의 때에 맞게, 각자의 수준에 맞게 나타나 너희에게 사랑을 퍼부으며 전달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의 실체를 밝히는 때가 왔고 내가 누구를 통해 너희에게 나타나 마지막 사랑의 뜻을 펴고 있는지까지도 다 밝혔다. 하지만 이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여 과거의 사랑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어찌 내 사랑의 뜻이 이루어지겠느냐. 육이 와야 영도 온다. 고로 내가 선생이라는 육을 쓰고 너희를 섭리사에 이끈 것이니라. 시대 중심자를 통한 하나님 사랑이다. 중심자, 보낸 자를 통해 올라오는 사랑의 제단만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고로 구약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고, 신약에서는 예수의 하나님 아버지셨다. 그리고 성약에서는 선생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노라. 고로 선생의 이름으로 삼위 앞에 나와야만 그 사랑을 삼위가 받는다. 그 외에는 모두 강도요 절도라. 너희가 선생 만나기 전에 하나님과 나 성자를 직접 부르며 사랑했다 하지만 섭리사에 와서 선생을 깨달은 후에도 그리 나를 직접 사랑하려 한다면 그것은 선생을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이는 왜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하느냐고 불만하며 하나님께 직접 나가려 했던 유대인과 같은 격임을 알아라. (다음날 계시글을 읽던 중 주신 말씀입니다.) 나 성자가 떠나기 전 지금 이 때 너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인식관의 확실한 전환이다. 내가 성자 사랑의 해를 선포하고 너희와 함께 오면서 가장 강조하며 말씀한 것이 무엇이더냐. 바로 선생을 확실히 깨달아라 함이 아니었더냐. 그런데 어찌 너희 중 많은 자는 내가 떠나면 휴거가 어려워진다는 말에만 초점을 맞추며 조급한 마음으로 우왕좌왕, 힘들어만 하고 있느냐. 낙심하고 자포자기 하려 하기 전에 먼저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 너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실히 깨달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 이대로 나 떠나보내고 나면 너희, 어쩌려느냐. 진정 답답하지만 너희를 두고만 볼 수 없어 또한 가르치고자 하니 잘 듣고 깨닫고 이제라도 선생 제대로 깨달아서 나 떠난 뒤에도, 지상에서나 천상에서나 나와 영원히 사랑하며 사는 신부가 되길 바란다. 어제, 사람을 통해 보고 듣고 겪게 한 것 있지? 그것이 그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섭리사에서 선생이 누구인지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니라. 모르면 그렇게 운다. 나 성자가 떠났다고 운다. 자기 사랑을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운다. 휴거가 끝났다고 운다. 지금 자기 사랑이 눈앞에 나타나 있는데도 옛사랑의 추억만 생각하며 외로움과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선생이 누군지를 제대로 모르면 그리된다. 아직도 선생을 선생으로만 보는 자 있느냐 했다. 이러한 자는 선생이라는 옷을 입은 나 성자를 보지 못한 자요, 선생이라는 옷만 보고 있는 자이다. 너희가 옷을 입지 않고서는 외출하여 세상을 돌아다니지 못하듯 나도 육을 입지 않고서는 지상세계에 나타나 할 일을 할 수가 없다. 지금 지상세계에서의 내 할 일은 인류를 창조한 삼위의 뜻을 이루는 신랑 신부 역사를 펼치는 것이기에 이에 맞는 옷을 입었으니 그 옷의 이름이 바로 선생이다. 너희도 목적지가 어디이냐에 따라 입는 옷이 달라지지? 조문을 갈 때는 상복, 결혼식장에 갈 때는 예복, 해변에 갈 때는 수영복을 입듯이 삼위 하나님도 지상에서 종의 역사를 펼칠 때는 모세라는 종의 옷을 입었고, 아들 역사를 펼칠 때는 예수라는 아들의 옷을 입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선생이라는 신랑의 옷을 입고 너희 앞에 나타나 최종의 뜻을 이루고자 함이니라. 옷을 달리 입었다고 해서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니듯 시대마다 각기 다른 사람을 쓰고 나타나 구원역사를 폈지만 결국 그 모든 주체는 삼위요, 나 성자라. 이를 모르면 어제의 그 사람이 어디 갔냐, 어제 나와 사랑하던 자가 어디로 사라졌냐 하며 슬피 울게 되겠지. 나 성자가 떠나는 것이 두려우냐? 떠나고 나면 너의 휴거가 어찌 될 것인지 걱정되느냐? 나 떠나고 나면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려느냐? 사도행전 1:11 에 너희 가운데 올려지신 이는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하지 않았더냐. 예수의 제자들이 무엇을 보았느냐. 예수 자체냐. 성자 예수냐. 성자 본체냐. 무엇이 죽었느냐에 따라 무엇이 부활할지를 알 듯 누가 올라가는지를 보았냐에 따라 누가 다시 오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내가 이 땅에 와서 누구의 몸을 쓰고 역사한 것을 보았더냐. 선생이지 않느냐. 선생의 육과 영을 쓰고 역사함을 보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나 성자 본체가 간다 하여도 너희 곁엔 나와 일체 된 선생의 육과 영이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 그러나 선생을 선생으로만 보는 자, 선생을 나로 보지 않는 자, 선생이 나인 것을 머리로만 아는 자는 선생과 내가 일체 됨을 근본으로 깨닫지 못한 고로 내가 떠난 뒤 공허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힘들어질 것이다. 잘못된 인식관이 사랑하는 자를 눈앞에 두고도 그를 찾아 먼 길을 나서게 만드는 것임을 알아라. (성자 주여, 섭리사 모든 자들은 선생님이 성자의 육이시며 성자와 선생님을 일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이 어느 수준까지 이르러야 성자가 보시기에 선생님을 온전히 아는 자라 인정하실 수 2 있으신가요?) 너희 중엔 혼체로 선생의 모습을 하고 온 나 성자를 만나 보았다 증거하는 자들이 있지? 그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선생이요, 선생이 나다. 고로 선생의 모습을 한 나 성자를 정확히 보고 그리 증거하는 것이다. 나와 선생이 일체 되었다는 것을 머리로만 인식하고 있는 자는 그 혼체가 선생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나 성자를 볼 수가 없다. 혼체가 활동하는 세계는 영계에 속해 있으며 영계는 사고 실상의 세계인 고로 자기 뇌가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냐에 따라 그 생각이 실상으로 나타나 보인다. 즉 육이 나와 선생의 일체 됨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혼과 영은 육이 인식한 대로 역시 인식하여 보고 대하게 되는 것이라. 너희들 중 대부분은 선생이 나와 일체 된 자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 아는 것이 혼과 영의 차원으로까지 깊어지지 못했다. 혼과 영이 확실히 인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려면 반드시 선생을 깊이 깨닫고자 하는 기도의 몸부림과 생각의 몸부림이 필요하다. 그럼으로 그 아는 것이 육의 차원을 뛰어넘어 혼과 영까지도 확실히 아는 차원에 이를 때 삼위가 인정하는 수준이라 말할 수 있다. 너희는 반드시 내가 떠나기 전에 이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 선생을 진정으로 아는 단계이며 이 단계에 이르러야 너희가 비로소 휴거되었다 할 수 있다. 고로 선생 아는 차원이 휴거의 차원이라 말한 것이다. 모순과 체질 잘 안 고쳐지고 고친 듯하나 다시 못된 근성들이 툭툭 튀어 나와 힘 빠지는 이유도 선생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그러하다. 선생을 머리로만 아니 그러하다. 왜? 선생이 곧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 말씀이지 않느냐. 고로 선생이 누구인지 머리로만 아는 자, 말씀도 머리로만 알기에 행실이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말씀을 귀로 듣고 그대로 줄줄 외치기만 한다 해서 말씀을 아는 자라 할 수 있냐? 아니다. 말씀이 귀를 통해 뇌로 들어가 입이 아닌, 손과 발과 온몸으로 나와야, 즉 육화 되어야 말씀을 제대로 아는 자라 말할 수 있다. 그러하듯 선생을 육으로만 안다고 해서 선생 아는 자라 못한다. 혼과 영이 깨닫고 시인하고 마땅하게 대하는 자라야 선생 아는 자라 할 수 있다. 결국 선생 아는 차원이 어느 차원인지 알면 나머지는 그와 같이 그러함을 다 확인할 수 있기에 교역자들도 교인 면담 시 선생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느냐를 핵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역자부터 선생을 혼과 영적 차원으로 깨닫고 있지 못한다면 면담도 아무 소용이 없질 않겠느냐. 인식관의 전환이다. 근본은 쪼개어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지만 작품은 한 덩어리로 봐야 제대로 보인다. 전체를 보는 눈이 있어야 돌에서도 형상을 찾아 낼 수 있다. 못 찾으면 그냥 돌 자체만의 값만 매길 뿐. 그러나 그 속에서 형상을 찾으면 그 땐 부르는 대로 값이 나가게 되지 않겠냐. 신약시대 예수의 제자들이 불같은 사도역사를 일으켰던 원동력이 무엇이더냐. 바로 ‘성자 예수’ 였다. 그들은 예수와 나를 동일 인물로 인식했고, 그러했기에 그들은 신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었으며 신을 증거하였으니 신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시대는 차원을 높여 더 근본을 가르쳐 주었으니 더 완벽한 신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 이 때, 자기의 혼과 영이 선생을 확실히 아는 차원까지 이르게 된 자는 나 성자가 떠나도 차를 타고 가는 격으로 휴거를 이룰 수 있다. 아니, 나 성자가 떠나기 전에 휴거를 이룬 자가 될 것이다. 선생이 휴거의 문이요, 핵임을 잊지 말아라. 모든 말씀 속에 모든 휴거의 비밀을 다 밝혀 두고 떠나는 성자니라. 2014-12-09 화요일 선생님의 육의 귀함을 알아라. 인식의 전환 작성일 : 2014. 10. 7. AM 1:15 작성자 : 손영해 (선생님을 혼체로 만나길 간구 드렸습니다. 선생님의 혼체가 오셔서 “인식은 결정이다.”하셨습니다. 섭리사에 전할 말씀이 있으시다며 말씀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사랑아. 내 말이 들리느냐? 마음속으로 네가 찾아 나 선생이 왔다. 혼체로 만나니 더 가까이 만나 깊이 대화할 수 있어서 좋구나. 사랑아. 이제 때가 되어 성자도 떠나시는 때가 되었다. 성자가 떠나시는 의미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나의 말을 잘 받아서 섭리사 모든 자들에게 알게 하자. 사랑들아. 인생들아. 나의 육신을 보내신 뜻을 진정 알고 살아라. 너희도 육신 있는 존재이지 않느냐? 육은 육으로 통하지 않느냐? 나를 보내 육 가진 너희와 통하라고 나를 보냈다. 나의 육신을 보내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시키고 휴거시키려 나를 보낸 것이다. 나사렛 예수는 신약역사를 펴기 위해 이 땅에 강림하였다. 그의 육이 있었기 때문에 하늘의 말씀을 받아 육과 영을 구원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의 육을 보내신 그 의미와 뜻을 진정으로 깨닫고 하나님과 성자의 심정을 깨달아야 한다. 인류 창조 이래 처음으로 하늘 신부된 나이다. 첫 신부 되어 많은 자들을 신부로 만든 나이다. 육 보내어 역사한 것이다. 육신을 보내지 않았다면 어찌 이 땅 가운데 역사를 펼 수 있었겠느냐? 육신이 있기에 보이는 육과 시대 말씀을 육신 통해 받기에 가능한 역사이다. 육 보내신 보낸 자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 육을 통해 역사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알아야 해. 만약 육 보내지 않았다면 어찌 시대 말씀을 너희에게 줄 수 있으며 어찌 신부로 너희를 휴거시킬 수 있겠느냐? 진정 그리하니 육 보내신 그 뜻과 심정을 깨달아 육의 가치를 알고 인식을 하라는 말이다. “인식이 결정이다.” 라는 말을 알지? 인식을 이제 성자가 떠나시면 육인 내가 보낸 자라는 것을 시인하고 인식하고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식의 전환을 하여 결정하는 단계가 300선 완전의 휴거의 단계 나를 시대 보낸 자로 확정하여 인식하는 단계가 중요한 것이다. 인식의 전환의 때이니라. 그리하여 보이는 성자로 인식하여 나를 그리 대하라 함이다. 성자가 곧 떠나시니 나의 육을 통해 이제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이것을 완벽히 전환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섭리역사를 만나 휴거길 가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다. 인식을 나로 전환해야 된다. 내가 누구인지 섭리사 모든 자들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나를 온전히 깨닫고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 내가 너희를 온전히 휴거시킬 수 있음을 알아라. 예수 때에 예수를 부인한 자들은 구원시킬 수가 없었다. 그 육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찌 구원할 수 있겠느냐? 지금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육 부인하면 성약역사의 구원을 온전히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육을 받아들였던 자들이 신약 차원의 구원을 받은 것이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네가 메시아냐?” 하며 핍박하고 반대한 자들은 결국 신약급에 해당되는 구원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이 시대 또한 그러하다. 만약 나의 육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성약급에 해당되는 휴거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육신을 100% 받아들여야 한다. 너희의 마음 가운데 조금이라도 잔재된 의심, 불신의 마음이 든다면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 머릿속에 나를 확실히 받아들여야 한다. 성자가 떠나시는 것도 나의 육신이 곧 성자임을 확정 짓기 위해 떠나시는 것이다. 이제 육신의 귀함을 알았느냐? 보이는 성자임을 알았느냐? 인식이 곧 결정이다. 나로 인식하여야 한다. (아멘. 시대 보낸 자라는 것을 시인합니다.) 사랑아. 내가 왔다. 너희가 기다린 내가 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시대 보낸 자를 확실히 보다 깊이 깨달았다면 이렇게 살지 않고 더 불 받아 뛸텐데 그리하지 못하고 망각의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더욱 확실히 깨달아 역사를 일으키고 싶어요.) 사랑아. 진정 그 말이 합당하다. 섭리사 모든 자들이 3 나를 확실히 깨닫고 안다면 그리 살지 않을 텐데 시대 보낸 자 성약의 문을 연 자가 왔다는 것을 보다 깊이 깨달았다면 그리 살지 않을 텐데 너희들의 깨달음이 부족하다! 매일 인식하여라. 보낸 자가 왔다는 것을 성약역사에 내가 왔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삶도 인생도 그리 살지 않을 것이다. 사랑들아. 이제 인식하자. 나의 육을 받아들이고 인식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지를 말이다. 섭리사 아직 나를 인식하는 것이 부족하다. 나를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이 부족하다. 나의 육을 귀히 보는 자 부족하다. 그러니 진정 인식하자. 그러면 삶도 휴거도 달라질 것이다. 심정을 깨달아라! 지금이 어느 때인지, 진정 역사의 때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여 지연된 역사라는 것을 깨달아라 이 시대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핍박하니 지연되어 이제야 육을 드러내는 것임을 지금이라도 확실히 깨달아 역사를 굳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지연되면 더 높은 휴거를 이루지 못하고 더 높은 천국의 휴거 문을 열 수가 없다. ‘나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아느냐?’가 휴거의 관건인 것이다. 그러니 더 높은 차원의 휴거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식하는 것이다. 사랑들아. 만약 핍박과 반대 역사가 없었다면 나의 육을 숨길 필요가 있었겠느냐? 나의 육을 드러내 역사를 펼쳤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하지만 핍박하고 반대하니 예수를 앞세워 역사를 펼쳤던 때를 기억하지? 이것은 심정을 깨닫는 것이다. 나의 육을 드러내지 못하고 핍박하니 숨길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알아야 한다. 심정을 알아야 내가 너희에게 더 깊은 말을 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깨닫는 자는 복이 있을 것이다. 깨닫고 행하는 자는 복된 자이다. 이제 곧 성자가 떠나신다. 떠나시면 나로 하여금 역사가 펴 나가게 된다. 사랑들이 부디부디 나를 아는 복된 자들이 되어라. 부디 나를 앎으로 역사의 길에 복된 자들이 되어라. 사랑한다. 나 선생 인식을 전환하고 나의 육의 귀함을 알라고 말한 선생이다. 사랑한다. 2014-12-09 화요일 휴거의 차원을 높이려면 지금 이때와 선생의 가치를 깊이 깨달아라. 작성일 : 2014. 10. 2. 작성자 : 정빛별 (월명동 잔디밭 기도굴에서 기도하면서 ‘섭리인들은 휴거를 포기도 하고 휴거에 대해 낙심도 하는데 성삼위께서는 그런 모습의 저희를 보실 때 많이 답답하실 텐데 어떻게 포기하지 않으시고 모든 섭리인들을 끝까지 이끌어 오실 수 있으신가요? 성삼위의 마음은 어떠시기에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아직 그 정도 차원이 아니니 성삼위의 마음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때 성자의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휴거의 가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성삼위시기에 휴거를 절대 포기할 수 없으신 성자의 심정이 느껴졌고 성자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자의 말씀* 사랑아 네가 내 심정 받았다. 그게 내 심정이다. 내 마음이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답답하다고 한심하다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 타락한 인류를 끌어 올리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인간을 성삼위가 본래 바라고 원했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6000년이 걸렸다. 근데 보아라. 6000년이 걸린 역사가 선생 1명이 완벽하게 조건 세움으로 불과 몇 십 년 만에 몇 년 만에 휴거를 완성하지 않았냐. 그래서 사명자의 조건이 엄청나고 위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통해 사랑의 완벽한 창조 목적의 뜻을 이루려 했지. 그게 깨어지고 나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역사하셔서 인간을 종급으로 이끌어 오신 것만 4000년이 걸렸다. 겨우 종급 구원을 완성하기까지가 4000년이 걸린 것이다. 신약 2000년을 통해서는 겨우 아들급 구원을 이루어 완성했다. 그것도 성자의 육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면서까지 해서 겨우 완성한 것이다. 이렇게 타락한 인류를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은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다. 하나님의 상대체의 극에서 사탄의 상대체의 극으로 떨어졌으니 극에서 극으로 끌어올리기가 쉽겠느냐. 아예 깨진 항아리 그릇을 다시 붙이는 게 얼마나 어렵겠느냐. 이 모든 구원 역사 구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6000년을 이끌어오면서 하늘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구나. 하지만 그래도 창조 목적 포기할 수가 있겠느냐. 사랑하는 너희 인류를 버릴 수가 있겠느냐. 구약과 신약역사의 조건 앞에 사탄은 점점 굴복했고 드디어 그 조건의 발판으로 성삼위는 선생을 계획하여 길렀다. 하늘의 완벽한 조건과 선생의 조건이 결국 100%로 완성되고 승리하여 선생이 최초의 신부의 조건을 세웠다. 선생은 진정 위대한 조건을 세웠다. 하늘 역사 때를 맞춰 성삼위도 100% 너희를 위해 조건을 세웠지만 선생이 수십 년 동안 목숨 걸고 100% 땅의 조건 세웠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너희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 선생이 신부 조건을 완성한 후에 선생을 만났고 선생과 같은 동시대에 태어났기에 선생을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그가 세운 모든 조건과 성삼위가 그동안 세운 모든 6000년 역사의 조건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대의 혜택이며 사명자의 조건의 혜택이다. 너희는 그러니 지구 역사상 가장 축복을 받은 시대에 태어난 자들이다. 하늘의 때와 하늘의 조건과 땅의 조건이 삼위일체가 되어 완벽하게 역사를 이룬 당세를 만난 너희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여기에 너의 100% 완벽한 행함의 조건이 더해진다면 이 모든 것을 너의 소유로 가져 영원한 천국 황금성을 바라볼 수 있고 네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이때는 실로 엄청나다. 성삼위는 드디어 이 역사를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격 감사가 차고 넘친다. 너희는 얼마나 이 역사를 실감하며 살고 있느냐? 얼마나 이때가 엄청나게 귀하며 최고 행운의 축복의 역사임을 시인하느냐? 선생의 조건이 진정 얼마나 엄청난지 깨달아야 한다. 너희는 선생처럼 조건 쌓지 않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선생을 믿고 따라가기에 아무 값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얻었으니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이 엄청난 역사에 살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이 역사 지금 이때의 가치를 깨달을 때, 선생의 조건을 깨달을 때 휴거의 차원이 더 높아지고 너의 행함의 차원이 달라진다. 깨닫기 위해서는 기도하며 행하고 선생처럼 삶으로 이 역사를 실제로 체휼하고 느껴 보아라. 그리고 생각해 보아라. 70억 인구 중, 인류가 창조된 이후로 태어난 인류 중에,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자들과 현재에 육신이 살아서 존재하는 수많은 자들 중에 이 때에 태어나 이 시대를 만나 선생을 믿고 따라가며 황금성에 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자들이 얼마나 되겠느냐.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났던 수많은 인류 중에, 지금 이때에 태어나서 이 시대를 만나 선생을 만나 믿고 따라가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행운인지를 깨달아라. 구약에 태어났다면 그때 아무리 네가 한평생을 목숨 다해 행했어도 종을 면치 못한다. 천상천국에 와도 구약급 천국밖에는 갈 수가 없다. 신약에 태어났다면 그때 네가 순교하며 나를 위해 한평생을 살았어도 아들급밖에는 될 수 없다. 천상천국에 와도 아들급 천국밖에는 올 수 없다. 이때는 네가 노력 한다고 해서, 맞고 싶다고 해서 맞을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여태껏 태어난 자들을 합치고 온 영계를 통틀어서 지금 이때에 태어난 자들은 확률적으로 수십 억 조 분의 1이다. 너는 온 지구촌에 있는 바닷가의 많은 모래알 중에 딱 한 알 같은 인생이다. 이때는 성삼위가 너에게만 준 축복이며 사랑이다. 선생은 그 가치를 뼈저리게 느끼니 4 너희 모두 다 이때 휴거시키고자 몸부림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 가치를 아는 자, 휴거를 영원히 상속받는다. 가치를 모르는 자, 휴거를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이 휴거가 얼마나 귀한지, 황금성에 가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이 역사를 만난 것이 얼마나 귀한지, 사명자를 만난 것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아라. 선생은 지금 이때를 위해 성삼위께서 계획한 하늘의 사명자다. 그와 같은 지구상에 태어난 것과 그와 같은 민족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 감격하라. 이 귀한 휴거의 가치를 알기에 성삼위는 너희를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낙심하고 못하고 죄를 지어도 성삼위는 이 가치를 절실하게 느끼며 이 역사가 어떤 역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 너희를 너무 귀하게 여긴다. 그러니 너희를 귀하게 이끌어 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알겠지? 기도해 봐. 황금성에 갈 수 있는 이 시대를 만나고 사명자를 만난 이 당세 때 태어난 것의 가치를. 성삼위는 6000년을 기다리고 이룬 휴거 역사를 너희는 사명자의 조건으로 몇 년 안에 쉽게 이루고 있다. 얼마나 엄청나고 휴거를 이루기 쉬운 때냐. 이렇게 휴거를 쉽게 이룰 수 있게 만들어 준 사명자에게 감사해라. 휴거 선을 완벽하게 올리고 단번에 쉽게 휴거를 이루려면 사명자의 가치, 이때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 사랑한다. 진정 이때의 가치를 깨달아 성삼위와 선생의 심정 받고 행하여 휴거의 차원을 쉽게 올리기를 원하노라. 6000년 동안 지금 이때만을 바라고 기대하며 역사를 이끌어 온 성삼위다. 6000년 동안 하늘의 사명자들이 지금 이때를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했다. 그 모든 조건과 선생의 조건을 네가 다 받고 네가 이루어 주어야 하는 때다. 네가 꼭 이뤄 줘. 그들과 선생과 성삼위의 눈물의 한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 이때에 태어난 네가 꼭 그 사랑 결실로 이루어 줘. 사랑한다. 2014-12-09 화요일 나 성자는 이제 떠난다. 작성일 : 2014. 09. 30. AM 03:40 작성자 : 김형순 (성자와 선생님께 감사할 일이 있어 그 일을 두고 성자와 대화하던 중에 성자의 사랑한다는 말씀에 나에게 그렇게 엄청나게 많이 사랑한다고 표현해 준 사람은 이제껏 없었다며 사랑이 가장 큰 힘임을 절감한다고 말씀드렸고 감사해 할 때 받은 말씀입니다.) *성자의 말씀 * 나 성자는 진리와 말씀으로 나타났고 이 세상을 다스릴 주를 뽑아 그를 통해 나의 일, 구원의 일을 하게 하였다. 나 성자는 세상의 빛이요, 희망이 되었고 그 빛으로 다가오는 자, 그 빛 안에 거하는 자에게 나의 본 모습 성자 본체의 모습을 나타내고 알게 해 주었다. 성자가 이 땅에 와 크고 큰 역사를 이루고 이제 떠나가니 내가 육천 년 구원 역사의 최고의 황금의 때 다시 오지 않을 성자 본체의 모습으로 나타나 함께해 주고 이제 간다. 나는 이미 내가 데려갈 자를 뽑았고 그들을 거두어 가매 앞으로 이와 같은 큰 역사가 또 언제 있겠느냐.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하나 이미 휴거 300선에 오르지 못한 영이 그 시간이 남아 있더라도 쉬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성자여! 하루만에도 휴거선이 높아진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 하루란 깊이가 더해진 후에 하루이지, 그냥 하루가 아니다. 나 성자가 선생 통해 조건을 세우게 하고 이제 떠나. (“성자여 허나 계속 통하는 자와는 영원히 통한다 했는데 맞지요? 그리고 떠난 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나 성자가 떠나도 생각으로 마음으로 영으로 혼으로 통하는 자는 계속 통해. 허나 통하지 못하고 휴거되지 못한 자들 곁에서 떠난다는 것이다. (“떠난 후 통하는 자들은 차이를 못 느끼나요?”) 계속 나와 대화하며 통하게 된다. 휴거의 기회는 아직 있다. 허나 내가 그리도 알려 주고 말해 주어도 아직도 감 못 잡고 헤매고 있는 자들도 많아. 이제 그들에게는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나 성자는 이 시대 나의 사랑하는 신부들, 나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나타나 시대 생명의 말씀을 주고 이제 떠난다. 언제 다시 이렇게 지상에 나타나 크게 역사할지 기약이 없고 다만 나의 분체 통해 나타나고 내 사랑하는 신부들 통해 나타난다. 사랑아! 다 때가 있잖아! 너 알잖아? (“네 성자여”) 내가 내 사랑을 그리도 표현하며 나를 사랑해 달라 애걸하고 애원했다. 그 때가 기회였어. 그 때 내가 찾아와 신부를 찾을 때 그 때가 기회였어. 하늘의 때는 순리로 큰 뜻에 의해 움직이며 운행되는데 그 때를 잡지 않고 안일하고 태만하니 어찌 성자의 신부가 되겠느냐? 나는 그 무엇도 보지 않았다. 오직 말씀에 순종해 행했는지 날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먼저 사랑하며 내게 그 사랑의 문 열어 주었는가 그것만 보았다. (“성자여 사랑합니다.” ) 엄밀히 따져 그 때가 다 갔음을 밝히고 나는 떠난다. 구원 역사 육천 년 만에 이렇게 내가 나타나 역사한 일이 있었겠느냐? 누구도 가리지 않았고 누구든 도왔다. 도와주었는데도 못 하니 때 지나가고 후회하고 통곡이다. 허나 다시 그 때가 오지 않는다. 지금은 모르나 갈수록 더 느끼게 될 거야. (“휴거 안 된 자 너무 힘들어지면 어떡하나요?”) 내가 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각자 그리도 함께하고 도와주었다. 내가 할 바를 다했어. 선생 통해 말씀하고 수많은 계시자 통해 말하고 계속 교육하고 부흥강사 통해 방송하고 성령 주며 할 바를 다 하였다. 이제 나 성자는 본체의 모습으로 돌아가 선악을 분별하고 매 맞을 자와 안 맞을 자를 분별하며 또 다른 차원의 역사를 이룰 것이다. (“성자시여 휴거가 생각보다 많이 되었나요?”) 나 성자가 도우고 선생 조건으로 많이 되었다. (“감사드립니다.”) 허나 선생이 더한 조건을 세우고 그 때를 또 잡고 늦추고 있으니 아직 그 휴거 차원이 낮은 자는 더 최선을 다해 행하고 사랑하며 그 한계를 뛰어넘어 어서 와야 한다. 나 성자는 미련도 없이 퍼부어 주었기에 미련도 없이 떠날 것이며 분체의 조건으로 더 휴거되는 자가 있기는 하겠지만 많지는 않다. 하늘은 익은 곡식이 썩기 전에 거두어 이미 곳간에 들였으며 거둠을 당한 자들의 축복은 이 세상 최고의 기쁨이고 권세가 된다. (“통한 자 계속 통하고 차원을 높인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휴거 300선이 된 자들은 그들의 행위로 더욱 차원을 높여 나가며 나 성자의 몸이 되고 사랑이 되어 큰 뜻을 이루며 살게 될 거야. 나 성자가 준 기회의 때를 잡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 신랑에게 등불을 밝혀 맞았으니 신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 기뻐하며 잔치한다. 하늘의 혼인 잔치 황금성 휴거 잔치를 한다. 5 황금성에 휴거된 자들을 위해 해 놓은 것을 보면 기절초풍이다. 감사 감격이다. 너희를 위해 그리 준비하고 예비한 황금성이다. 기뻐 환호하며 뒤집어져 감사하며 미치도록 만끽하게 될 거야. (“성자시여 사랑합니다.”) 감사 감격해야지. 휴거가 얼마나 귀한지 가치 있는지 알아야 안 뺏겨. 나 성자는 이 땅의 구원 역사를 펴고 그 절정의 때에 나의 신부들을 도우며 천국 황금성에 데려간다. 이들은 나의 신부로 나의 사랑스런 사랑의 대상이 되어 영원히 기뻐하며 희망 삼고 사랑하며 살 거야. 시 줄게. 제목 : 황금성의 축복 빗물에 쓰레기가 쓸려 내려가듯 하늘이 준 은혜의 단비에 쓰레기 같은 마음들이 씻겨 내려 깨끗한 샘이 되었구나. 그 깨끗한 구름 타고 나 성자가 강림하였으니 시대 본체, 분체 맞은 자들에게 여라. 내가 만든 그 시대 배를 타고 내가 만든 그 시대 말씀의 배를 타고 세상 걱정, 염려, 재리 그 어떤 유혹도 이기고 사랑해서 다 이긴 자들에게 이제 황금성의 축복이 이루어졌고 황금성의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네. 나와 함께 모진 바람 비바람도 마다치 않고 함께한 분체의 애절한 기도와 사랑이 조건이 되고 등불이 되어 진정한 이상세계 사랑의 이상세계 주와 함께 맞는 이상세계 펼쳐지네. 나는 그 이상세계 안에 거하는 성자 본체로다. (“와~ 감사드립니다.”) 나 성자가 떠나도 나와 함께하는 자들은 계속 나를 느끼고 만난다. 그 믿음을 잃지 말고 나와 연속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하자. (“아멘”) 어김없이 때를 따라 역사하는 나 성자가 시대 사랑하는 신부들에게 찾아가 말하고 떠나며 이제 새롭게 또 역사가 흘러가니 낙심 말고 희망으로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