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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014.12.19 (금)

금 계시말씀

선포일
2014.12.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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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9 금요일 끝까지 하는 것 - 성삼위가 만족하시는 지점까지 행하는 것 작성일: 2014. 09. 18 작성자: 정빛별 (선생님을 보면서 끝까지 행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으면서 끝까지 한다고 하고선 끝까지 행하지 못했던 저를 발견했습니다. 기도하는 중 성자께서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자의 말씀* 사랑아. 오늘은 내가 섭리사 끝까지하는 정신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끝까지 하는 것, 늘 선생이 얘기했었지. 끝까지하는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잘될 때, 재미있을 때,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은 누구나 잘하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 해도 해도 안 되고, 해도 실패하고, 희망과 소망이 없고, 못할 때 그때 하는 게 진짜 하는 거지. 그때 끝까지 하느냐, 그때 포기하느냐, 거기서 끝까지 하느냐, 못 하느냐가 좌우된다. 끝까지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든지 안 되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그때 행하여 결국은 행하는 것이 바로 끝까지 행하는 것이다. 그때 행하는 자가 진정 선생과 같은 정신을 가진 자라 할 수 있다. 끝까지 하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할 수 있을 때, 잘할 때 행하는 것은 얼마나 쉽겠냐. 하지만 해도 해도 안 되고, 아무리 행해도 실패하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도해도 안 되고, 안 바뀌고 변화가 없고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될 때는 얼마나 답답하겠느냐. 방법을 모르겠고, 도저히 어찌 해야 될지 모르겠고, 기운 빠지고 낙심 되고 힘 빠져서 아무것도 못할 때 그때 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느냐. 분명 말씀에는 하면 된다고 했는데 안 되고 노력도 다 하고 최선을 다 했는데도 안 되면 얼마나 낙심이 되고 속상하고 기운이 빠지고 용기가 안 나고 하기가 싫겠느냐. 그 마음 내가 다 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안 되서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고 있을 때, 힘이 들어 지쳐 쓰러졌을 때, 그때 행하느냐 행치 못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도는 뒤집어진다. 그때 행했을 때, 한 걸음 더 내딛어서 걸어갔을 때, 역사는 일어나는 것이다. 끝까지 행하는 것은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안 될 때, 도저히 할 수 없을 때, 포기 하고 싶고 낙심해서 무너졌을 때, 그 무너진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일어나서 행하는 것이다. 되어지는 환경, 현실을 보며 낙심하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될 거라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현실에 낙심하고 힘 빠지지 말고 끝까지 행하는 것이다. 그때 행하는 자가 진정으로 끝까지 행하는 자이다. 그때 행하는 자가 진정 선생의 정신을 받은 자다. 할 수 있을 때 하는 자는 당연한 거지. 할 수 없을 때 행하는 자가 진정 선생을 닮은 자이다. 너희가 정말 감사해야 할 것이 있다. 세상에서 심판 받은 곳에서는 아무리 몸부림치고 노력하고 목숨을 다 할지라도, 끝까지 행하여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사망 선고 받은 곳에서 열심을 내어 행한 것은 결국 다 영원한 멸망 지옥 파멸이 아니겠느냐. 세상에서 성공하고 모든 것을 다 얻은 자들일지라도 그들의 끝은 결국 어디이겠느냐. 그러니 그들에게는 ‘끝까지 행하면 된다는 것, 끝까지 행하면 승리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 온전하게 적용될 수 없다. 잠깐만 기쁘고 행복하고 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러니 끝까지 행하라. 이 말은 너희 섭리사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너희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이 말을 진정 이룰 수 있는 자들은 오직 너희뿐이다. 성삼위가 직접 사랑하는 너희 섭리인들에게만 준 축복이다. 너희는 누구나 너희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행하면 이 엄청난 축복을 얻을 수 있다. 오직 너희만 가능하다. 너희에게만 준 축복의 열쇠이다. 그러니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느냐. 하지만 너희는 너희만 포기하지 않고 행하기만 하면 100% 얻을 수 있으며 휴거되어 영원한 천국 황금성까지 그 축복이 지속되니 얼마나 복 되고 복된 인생이더냐. 하지만 이런 엄청난 축복을 감당하려면 너희가 꼭 행해야 될 것이 있다. 너희가 꼭 명심하고 지켜야 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끝까지 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너희가 지켜 행하기만 한다면 너희 중에 그 어떤 누구도 어린 자부터 장성한 자에 이르기까지 내가 주는 모든 축복을 다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니라. 끝까지 하면 된다는 이 말씀은 내가 섭리인 모두에게 준 축복의 말씀이니 끝까지 행하고 포기하지 말아라. 휴거도 너희가 원하고 바라고 소망하는 모든 것들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고 넘어졌을지라도 그랬다면 다시 일어나서 다시 행하자. 끝까지 하는 것은 어렵지만 행하면 쉽고 재미있는 것이다. 알겠지? 섭리길 끝까지 가면 너와 나 만나지 않겠냐. 너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된 것이 있더냐. 더 이상 이것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것이 있더냐. 그렇다면 네가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된 것이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보기에는 100%로 모든 노력을 다해서 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성삼위가 보기에는 아직 100%로 모든 노력을 다해서 채워지지는 않은 것이다. 낙심 말고 다시 행하면 된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 끝이 가까이 있다. 낙심 말고 끝에 도달할 때까지 행해라. 네가 봤을 때 100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아니라 성삼위께서 보셨을 때 100퍼센트 완벽하다 흡족하다 느끼는 지점까지 행하자. 그것이 바로 끝까지 행하는 것이다. 네 차원에서 이 정도 했으면 되겠지? 하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바로 성삼위께서 보셨을 때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행하는 것이 바로 끝까지 행하는 것이다. 월명동을 보아라. 선생은 100%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행했지만 계속 무너졌다. 그때 선생은 해도 해도 안 되니 ‘뜻이 아닌 것인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하며 기도하며 결심했다 돌은 무너졌어도 내 마음만 무너지지 않았으니 다시 행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행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월명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월명동이 바로 선생의 끝까지 정신의 대 걸작품이 아니겠느냐. 선생이 100% 책임 분담을 다 했어도 하늘이 원하는 지점까지 행한 것이 아니었으니 거기에서 조금 더 행하여 결국 하늘이 원하는 지점까지 행하였다. 네가 보기에 최선을 다하여 끝까지 행했더라도 결과물이 없다는 것은 끝까지 행한 것이 아니다. 하늘이 원하는 지점까지 행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되어지는 지점까지 행한 것이 아니다. 끝까지 행하는 것은 네 수준과, 네 차원의 끝까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가 원하는 수준과 차원까지의 끝까지 행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성삼위가 보았을 때 만족하는 차원의 끝까지 행함으로 열매를 열게 되며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끝까지 행하는 것에 대해 깊은 도를 일깨워 주었으니 끝까지 행하여 성삼위가 섭리사에만 주는 무한한 축복을 다 받고 휴거의 영이 되어서 영원한 저 천국까지 다 받아가는 귀한 신부들이 되자. 사랑한다. 너희에게 준 최고 축복인 휴거를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영원한 천국 황금성에서 모든 축복을 다 받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알겠지? 사랑해. 사랑해서 너희에게 영원한 축복을 준 성자니라. 2014-12-19 금요일 어여 첫사랑의 불을 붙여라. 먼저 네 뇌를 온전케하라. 작성일 : 2014. 10. 6. AM 01:30 새벽기도 작성자 : 김기수 (며칠 전, 한 생명과 대화를 하는 중에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왜 도와주지 않으시냐 하며 의문을 가지고 원망하는 말들을 하였습니다. 1시간을 넘게 설명을 하며 대화를 하면서, ‘왜 그는 아직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기 주관에서 못 벗어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뇌를 먼저 고쳐라. 그리고 뇌 사랑이다.’하는 음성을 듣고 오늘 새벽기도 시간에 성자께 더욱 자세히 깨닫길 간구할 때 마음으로 들려온 음성을 기록하였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성자시여, 시대 사명자 통하여 오랜 세월 말씀을 깊이 전해주시어도 변화되지 못하고 자기 주관으로 섭리 말씀을 판단하고 깨닫지 못하여 오해하는 자들과 대화하면 너무나 답답합니다. 왜 그들은 그러한 사상의 주관을 못 벗어나는지요? 또한 제 자신을 돌아보니 보다 차원을 높이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순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사랑아, 진정 변화되어서 휴거를 이루고 싶으냐? (네, 성자시여. 변화를 이루어 휴거된 진정한 시대 신부가 되고 싶습니다.) 말씀을 많이 듣고 오랜 세월 듣는다고 하여 다 깨닫겠느냐. 첫 사랑이 중하다. 처음 말씀 들을 때 나 성자를 깨달아 만나 사랑하는 그 순간이 너무나 중하다. 그 때 자신의 주관을 버리고 나를 인정하고 내 분체를 정확히 깨닫고 인정하여야 그 이후 듣게 되는 말씀이 온전히 들려져 자신의 변화를 가져 오게 된다. 말씀을 처음 듣고도 온전히 자신을 비우지 못한 자는 그 이후 계속 말씀을 들어도 결국 자신의 생각에 막혀서 말씀 통해서 역사하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섭리를 인정하며 따라오는 자들 중에도 아직도 나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자기중심 인본주의 신앙을 하는 자들이 있구나. 첫사랑이다. 첫사랑에 성공하지 못한 채 그냥 섭리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 진정 안타깝구나. 이 시대 신부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섭리 잔치에 구경꾼인 자들 분위기만 좋아하지 말고 음식만 좋아하지 말고 잔치의 핵을 잡아라. 혼인 잔치의 핵은 신랑 신부이다. 사랑이다. 핵을 깨닫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안타까운 자들아, 어서 깊은 사랑의 세계 깨달아라. 아직도 자기를 위한 혼인 잔치임을 깨닫지 못하고 분위기만 보고 음식만 보고 좋다, 안 좋다 판단하며 들러리 되어서 살아가느냐. 이미 혼인 잔치가 깊어서 신부집 잔치 끝나고 신랑집으로 가려 하는데 신부 될 자들이 사랑으로 단장치 못하여 신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여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구나. 어서 첫사랑의 불을 붙여라. 나와의 첫사랑, 곧 최고로 극적으로 나를 깨닫는 그 순간이 네게 필요하다. 너와 나는 뇌 통한 뇌 사랑이다. 뇌 사랑으로 나를 느껴 깨닫는 것이다. 나를 육체적 사랑으로 만날 수 있겠느냐. 나는 전능자이니, 나를 만나고 나와 사랑을 나누려면 네 뇌를 사용하여라. 인간을 창조할 때 뇌 속에 육의 것과 영의 것 모두 넣어 놓았으니 육의 것을 생각하고 육의 것을 찾으면 뇌는 너에게 육의 것을 내놓을 것이요, 영의 가치를 깨닫고 영의 것을 구하면 뇌는 너에게 영의 것을 내놓으리라. 뇌의 가치와 기능을 깨닫고 활용하고 개발시켜라. 육의 삶을 추구하면 네 뇌는 육의 것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요, 영의 삶을 추구하면 네 뇌가 영적으로 발달해 나갈 것이다. (성자시여, 동일한 섭리의 말씀을 듣고도 어떤 자는 많은 시간이 흘러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어떤 자는 짧은 시간에도 많은 변화를 이루어갑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요?) 발달과 변화는 먼저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깨닫느냐에서 출발한다. 곧 말씀을 듣고 감동받았을 때 그것을 꽝하고 마음에서 충격적으로 인정하여 깨달은 것을 행하여 나감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이때 말씀을 깊이 깨닫지 못하여 자기 생각으로 말씀을 판단하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이와 같은 자들은 씨앗이 길가에 뿌려진 것과 같은 입장이 아니냐. 고로 말씀을 듣는 그 순간이 너무나 중하다. 진정으로 자기 생각 내려놓고 말씀을 깊이 듣고 깨달아야 된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이다. 이때 얼마나 감동받고 말씀을 깊이 듣느냐에 따라서 크고 작은 네 운명이 결정되어진다. (말씀을 깊이 듣지 못하는 자들, 말씀을 들어도 자기주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 이들은 어떻게 해야 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요?) 사랑아, 몸이 아픈 자가 음식만 많이 먹는다고 건강해지겠느냐. 병이 치유되겠느냐. 치료를 받아야지. 그래야 음식이 몸에 온전히 흡수되어 영양분으로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 흡수되지 않는 영양분이 그 몸을 이롭게 할 수 있겠느냐. 고로 먼저는 고쳐야 한다. 단순히 체한 것인지 깊은 병인지 파악하여 약을 먹을 것은 약을 먹고 안 되면 수술을 해야지. 이와 같이 파악하여 생명들을 관리하여라. 또한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여 자신이 건강한지 병이 있는지 파악하여 어서 치료하여라. 휴거를 완성하는 이 중요한 때에 자신의 뇌가 병들어서 온전히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휴거에 지장을 준다면 얼마나 큰 문제이냐. 고로 뇌를 먼저 치료하여라. 이미 뇌 치료에 대해서 내가 말씀을 전하였나니 다시 읽고 깨달을지어다. 치료하려면 상처 난 부분의 썩은 것을 도려내고 약을 발라야 깨끗한 새살이 올라오듯이 먼저는 자신의 잘못된 주관과 사상을 버려야 한다. 아직도 요리조리 변명만 하며 자신의 부족을 고치지 않는 자들아, 다 썩어서 사망에 던져지기 전에 어서 고쳐라. 언제까지 사람 눈만 피하며 살려느냐. 네가 나 전능자의 눈을 피하겠느냐. 네가 어디에 숨겼느냐. 네 잘못된 사상과 주관으로 인한 행위로 냄새를 내며 살아가니 어디에 있으나 다 드러나지 않느냐. 어서 암덩이 같은 너의 모순들을 제거하여라. 뇌를 고쳐야, 네 행위가 고쳐지나니 말씀으로 네 뇌를 정결히 씻어라. 네 뇌에 각종의 모순된 사상을 가득 채우고 나의 말씀을 듣느냐. 합당치 않느니라. 어서 너의 것을 내려놓고 정결히 한 후에 전능자의 말씀을 듣고 네 뇌를 고쳐라. 그리하면 마치 깨끗이 씻은 잔에 깨끗한 물을 담는 것과 같으니 주인이 기뻐하며 그 것을 취하리라. 휴거의 출발은 변화부터이며 온전한 변화는 온전한 뇌에서부터이다. 온전한 뇌가 되어져야 말씀을 들어도 감동을 받게 되고 뇌 사랑에 불타게 된다. 뇌를 점검하여라. 자신의 뇌가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 확인해 보아라. 그리하면 네가 부족하여 다시금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먼저는 뇌를 온전케 하라. 그리고 뇌 사랑이다. 뇌를 정결히 하여라. 너의 정결한 마음 정신 곧 정결한 뇌를 보고 역사하는 주 성자니라. 2014-12-19 금요일 2세 관리 교육 (부모 교육, 교사 교육, 목회자 교육) 작성일 : 2014. 11. 8. 새벽 1시 작성자 : 주은혜 (교회에 예배를 드릴 때 특히 부모님을 따라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조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피곤했나 보다.’ 생각했는데 예배 때 깨어 있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 정도여서 한번은 ‘내가 가서 깨울까..’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랬다가 사춘기라 예민할 텐데 친하지 않는 사람이 와서 깨운다고 놀라서 시험 들거나 상처를 받아 교회에 오지 않겠다고 할까봐 매번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집에 오면서 ‘성자 주님, 그래도 깨우는 게 맞겠지요? 성자께서 선생님을 통해 말씀하시고, 예배 때는 삼위가 오시는데 조는 것은 예의가 아니에요. 하지만 깨우면 그 아이가 상처를 받으면 어쩌지요?’하고 말씀드렸더니 성자께서 ‘말씀을 몰라서 그래. 몰라서 못 알아들어서 조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못 알아들으면 졸리고, 지루하고, 시간이 늦게 가는 것처럼 그 아이들은 그런 것이야. 영적으로 조건 잡힌 것도 있겠지. 하지만 말씀을 몰라서 그런 것이 크다. 내가 부모에게, 교사에게, 목회자에게 교육해 줄게.’하고 말씀해 주시며 그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눴고 정리한 글입니다.) *성자의 말씀* 너희가 관리하는 아이들이 교회의 말씀 시간에 자꾸 조는 것은 말씀을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너희 모두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 시간이나, 강연 시간에 졸았던 경험이 있지 않냐. 그처럼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서 조는 것이다. 다들 아이가 졸면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깨우곤 한다. 깨워도, 깨워도 아이는 말씀을 들을 의지가 없으니 딴 짓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곤 하지. 말씀을 못 알아들으니까. 너희는 지금 너희에게 떨어지는 말씀들이 그냥 쉽게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냐. 이 말씀은 영계의 것을 말과 글이라는 것을 통해서 너희에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들린다고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선생이 지금껏 전해 주고 있는 말씀은 지속적으로 차원을 높여 나가며 극도의 차원으로 올라가고 있는 말씀이다. 고로 아무런 기본이 없는 아이들이 이 말씀을 들으면 그냥 ‘말’로밖에 들리지 않고 이해가 어려우며 자신의 관심 밖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니 깊이 듣지 못한다. 너희 주변을 둘러보아라. 예배 때 말씀을 열심히 듣는 사람들은 실제 행실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런데 말씀을 열심히 듣지 않는 자는 어떠냐. 그의 삶도 휴거에 대해 열심이지 않다. 왜냐하면 말씀을 하나의 글과 말로 들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고, 자신과 직결되는 것임을 아는 자는 말씀을 귀하게 듣고 귀하게 행하지. 그러니 아이가 예배 때 계속 조는 것을 탓하지 말고, 말씀을 다시 차근차근 가르쳐 알아듣도록 해라. 부모의 손에, 교사의 다그침에 주일 예배를 드리는 아이들이 많다. 그 아이들이 너희의 걱정이 되고, 기도의 주제가 됨을 내가 안다. 하지만 세상의 생명들을 전도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라. 어릴 때부터 섭리에서 큰 자들도 실상 그 속을 뒤집어 보면 말씀을 잘 모르고, 섭리에 대해 잘 모른다. (성자 주님, 2세들 면담을 해보면 특히 신앙이 안 좋은 아이들이 항상 말씀이 비슷비슷한 것 같대요.) 깊이를 모르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알면 차원도, 수준도 다르고 매일, 매번 다른 말씀이라는 것을 놀라며 듣는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 겉에서 보는 사람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지. 그만큼 몰라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것이니 알고 관리해 주어라. 교사들도, 목회자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섭리 2세들을 잘 관리해 주어야 한다. 안다고 생각하고 대하지 말고 모른다고 생각하고 대하고, 부모가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지 말고 너희가 다시 새롭게 가르치고 새 사람 만든다고 생각하면서 이끌어라. 실상 모르는 자들이 너무 많다. 교사, 부모, 목회자가 세 겹줄이 되어야 한다. 부모는 교회에만 아이들을 맡기지 말고, 전적으로 책임진다고 생각하고, 교사는 부모에게만 아이들을 맡기지 말고 자꾸 아이들을 직접 관리하며 목회자는 일이 많으니 아이들을 세밀하게 챙겨 주지 못한다고 생각 말고 최대한 2세 아이들을 신경 써라. 2세 농사 실패하면 안 된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2세들이 중요하다. 그들은 섭리에서 자라고, 앞으로 섭리를 물려받을 자들이니, 그들의 가치를 알고 이끌어야 한다. 강압적으로 하지 말아라. 2세들 억지로 교회 데리고 오고, 억지로 말씀 듣게 하고, 억지로 한다. 억지로 하면 더 반발하고 싶게 되니 약속하고, 설명해 주면서 교회로 이끌어 와라. 너희보다 더 나 성자를 잘 만날 자들인데 교육이 잘못되어 제대로 크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교정해 주어라. 희망도 주고, 자부심도 주되, 2세라는 압박을 심어 주지 말아라. 그 부담감에 도망치고 싶다고 하는 자들도 있고, 2세가 싫다고 내게 기도하는 자도 있다. 신앙을 가르쳐 주어야지, 부담부터 가르쳐 주면 되겠냐. 내가 그들을 사랑하니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장년부 2세들, 부모 따라 섭리에 온 은하수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섭리에서 크는 모든 자들, 신부로 키워야 한다. 한 생명 한 생명 귀한 자들인데 안 잡힌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되겠냐. 왜 신앙이 안 잡히는지 교회에서, 집에서 연구해야 하고 세상에 자식을 빼앗겼으면 세상에 어떻게 빼앗겼는지 찾아내서 너희도 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을 뺏어 와라. 부모들 기도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겠냐. 아이가 신앙이 잘 서기만 기도하는 자들이 있다. 아이에게는 무섭게 하고 감정대로 하고, 기분대로 하는데 기도는 아이가 휴거되게 기도한다. 너희가 아이의 입장이 되어 보면서 2세 관리하여라. 그러면 쉽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르치는 일이 중하고, 알게 하는 것이 귀하며, 스스로 행하게 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 신경 쓰며 행하자. 목회자들도 교회 2세들 얼마나 많냐. 가정국 수만큼 2세들 있으니 2세들이 뒤집어지면 교회도 부흥된다고 생각하고 투자해야 한다. 새 생명들 데리고 오겠다고 생각하고 전도만 하지 말고 투자해라. 뿌리는 만큼 거두어진다. 뒤집어지기만 하면 열심히 할 자들이니 희망을 가지고 하자. 2세들 관리하는 교사들, 지도자들 수고가 많다. 생각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가치 있는 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하면 변한다. 부모와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교역자와 함께 교정하고, 교정으로 안 되면 기도하며 선생에게 보고해라. 선생도 2세를 두고 기도하면서 온전히 크게 신경 쓴다. 교사, 목회자, 부모가 세 겹줄이고, 또 교회, 선생과, 내가 세 겹줄이 되어서 영육으로 구하고 잘 관리하자. 아이들 못한다고 눈치 주지 말고 아예 신입생이라고 생각하고 대해. 죄 문제도 꼭 해결해 주고, 안 되면 기다려 주면서 잘못 난 가지 잘라 주면서 하자. 수고가 많다. 오늘 내가 코치했으니 더 잘하자. 부모들, 선생 말씀 듣고, 내 말씀 듣고 신이 되어라. 너희가 완전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섭리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몇십 년간 신앙했는데 완전해지지 않으면 아이들은 ‘신앙해도 별 것 없네.’ 하며 ‘나도 신앙 안 하고 말지.’ 생각하고 신앙 안 하는 자들 있으니 가슴 뜨끔 생각하면서 신앙하는 자들 되어야 한다. 부모는 가정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명심하자. 너희를 사랑하여 기도한 대로 코치했다. 안녕. 성자다. 2014-12-19 금요일 선생의 조건을 깨달아라 작성일 : 2014. 10.19 AM 08:00 작성자 : 주빛청 (정말 내가 300선 휴거가 될 수 있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에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 종일 방안에 처박혀 울고, 낙심했습니다. 그날 저녁 캠퍼스 철야가 있어서 함께 기도하고 잠깐 잤는데 꿈을 꿨습니다. 섭리 사람들과 관광버스 같은 차를 타고 2차선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가던 중 차가 멈췄습니다. 앞을 보니 가야 할 길에 철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더 이상 이 길로는 못 간다. 돌아가라.’했습니다. 섭리 사람들은 무슨 일이냐며 당황했고 잠시 후 누군가가 가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더니‘ 아 원래는 안 되는데..’하면서 다시 문을 열어 줬습니다. 순간 우리에게 누군가 큰 백이 있어 그 사람의 권위, 권세로 문을 열어 줬구나 생각이 들며 선생님 생각이 났습니다. 다시 버스가 출발했고 문을 통과했습니다. 길을 가고 있는데 옆 차선에 흰색 소형차가 박살이 나서 지붕이 다 내려앉고 바퀴도 다 뽑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깼습니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그냥 꿈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전날 크게 낙심했던 것이 떠오르며 연관된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을 두고 기도하며 간구할 때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성자시여, 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내가 너에게 말할지니 너는 동일한 심정으로 적을지니라. 계시다. 혼을 통해 계시한 것이다. 네가 그 때 낙심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귀한 휴거의 때를 낭비하니 내가 계시한 것이다. 네가 탄 차는 휴거 버스가 맞다. 함께 휴거를 이루어 가고 있는 자들을 상징한 것이다. 첫째는 선생의 조건이다. 둘째도 선생의 조건이다. 너희가 선생의 조건 없이 휴거 버스를 탈 수 있겠느냐. 너희가 그의 조건 없이 통과할 수 있었겠느냐. 셋째도 그의 조건이지. 네가 그 꿈을 꿀 수 있는 이유도 그의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조건 없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있더냐. 휴거라는 창조 목적의 완성이 누구로부터 이루어지느냐. 알아야 한다. 너희는 진정 알아야 해. 저 세상은 몰라도 너는, 내 신부는 알아야지.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냐. 선생 육신 쓰고 내가 조건을 쌓고 있는 것이다. 전능자 황태자 나 성자가 너를 위해 못 먹고 못 자 가며 조건을 쌓는다. 너희는 알아야 할지라. 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현재 지치고 힘든 자들 있느냐. 염려함에 잠 못 이루는 자들 있느냐. 너의 마음을 나 성자에게 내려놓아라. 내가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 너 나 믿지? 전능자다. 내가 누군지 알아야 해. 누군지 알면 휴거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버릴 권세도 취할 권세도 내게 있다 했다. 정말 애간장이 다 녹아 없어지도록 간절하다면 너는 나를 붙잡아야 한다. 나를 붙잡아야 휴거된다. 나를 붙잡아라. 붙들어라. 정말 깨끗하고 진실한 사랑만이 나를 붙들 수 있다. 그것만이 떠나가는 나를 고개 돌려 돌아보게 할 수 있느니라. 마지막으로 보고 있다. 더 거둘 자가 있는지. 혹여 거두어들이지 못한 열매가 있지는 않은지. 너는 누구의 조건으로 계시를 받냐? (선생님의 조건입니다.) 누구의 조건으로 나의 앞에 나아오느냐? (선생님의 조건입니다.) 너희 모두의 기도를 받음도, 모든 너희의 사랑을 받음도 오직 선생의 조건 때문이니라. 갈 길이 바쁘다. 나 떠나도 너희 죽는 것 아니다. 허나 영혼의 운명을 생각해라. 육신을 통해 속히 영혼을 변화시켜라. 할 수 있다. 선생 조건이‘99’이니 너희는‘1’만 하면 할 수 있다. 내 심정 받아라. 내 심정 받아서 하라는 것은 일체 되어서 하자 함이다. 계시, 선생의 조건으로 받는 것이다. 귀히 여겨라. 귀히 여기는 자는 더 준다. 더 받으려면 더 준비해라. 불안해하지 마라. 나 네 옆에 있다. (박살난 차가 무엇인지 계속 궁금했습니다. 처음에는 구역사나 이단을 뜻하나? 했는데 계시를 정리할 때 말씀해 주셨습니다.) 길가에 박살이 난 차는 휴거 도중에 포기한 자를 상징한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너희에겐 내가 있지 않냐. 왜 선생의 조건을 생각지 않지? 너희, 그 조건 다 너희에게 줬다고 했는데도 무엇이 두려운 것이냐. 믿음 위에 너희가 조금, 아주 조금 행할 것들만 꼭 행하면 된다. ‘99’위에 ‘1’만 해라. 책임분담의 역사다. 성자는 말해 주고 떠난다. 안녕. 선생의 조건을 깨달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