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말씀2014.12.25 (목)
141225 성탄말씀 사랑과 평화와 영광
- 선포일
- 2014.12.25 (목)
- 성경 본문
- 누가복음 19장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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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5-성탄말씀_사랑과 평화와 영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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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5일 성탄말씀>
사랑과 평화와 영광
본 문 누가복음 19장 38절
할렐루야!
오늘은 성자께서 첫 번째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며,
성자의 육이 되어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구약 4000년 동안 역사하시며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대로
신약의 때가 됐을 때 세상에 ‘구세주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의 육신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성자께 감사와 사랑을 드리며,
<성자의 초림>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릴 때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어제는 구주를 보내 주신 성삼위께 영광 돌리면서
감사와 사랑의 기념행사를 하기 위해
<말씀>을 ‘핵심’만 전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어제 말씀한 부분’도 한 번 더 말씀해 주고,
<사랑과 평화>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평화>는 ‘사랑’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랑’을 주시려고
예수님의 육신을 통해 이 땅에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 목적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을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내고
‘사랑의 역사’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종교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이성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종’같이 대해 주시며
<4000년 동안> 구약역사를 펴 나가셨습니다.
<4000년 구약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은 이 땅에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시어
예수님을 통해 <아들 시대, 자녀 시대>를 선포하시고,
<차원 높은 자녀 말씀>을 주시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아들 명분, 자녀 명분’을 주고
차원을 높여 <신약 자녀급 구원역사>를 펴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 10-14절을 보면
천사들이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을 두고 말하기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한 것입니다.
<종의 세계>에서 <아들>로 자유를 얻었으니, ‘평화’였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 <예수님의 탄생>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하나하나 핵심을 말씀해 주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랑과 평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구약의 선지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엄청난 표현’을 하면서
메시아가 온다고 하며 대(大)희망을 심어 줬습니다.
이스라엘은 한국의 한 도시 면적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약소국’이었고,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항상 주위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가운데에 두고
전쟁과 정치로 압박했습니다.
대국 앗수르, 갈그미스, 이집트, 바벨론, 블레셋 등이
모두 약소국인 이스라엘의 적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오시고 메시아를 보내서
이스라엘 나라를 구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고 섬기던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강림하신다. 메시아가 땅에 온다.”라는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최고의 낙’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선지자들의 예언>이
무엇이었는지, 화면을 보면서 들어 보겠습니다.) <영상1>
이사야 대(大)선지자는
“여호와는 빠른 구름을 타고 임하신다.(사19:1)” 했고,
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하며,
그가 와서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며 이상세계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사 11:1-10)
또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심판하시리로다.
(사 66:15-16)” 했습니다.
또 “주께서 친히 징조를 보여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했습니다.
다니엘 대(大)선지자는
“내가 밤 환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단 7:13)”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도
‘메시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거기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라.(미 5:2)”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하나님의 핵심 말씀은
“하나님이 온다. 메시아가 온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끝>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고 약속하셨으니,
유대 종교인들은 극심한 환난과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의 강림>을 1년을 하루같이 기다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늘 제사를 드리면서
“언제 오시나? 뒤따라오셨나? 혹여 오늘 오셨나?” 하고
매일 기다렸습니다.
유대 제사장들은 금실로 수놓은 깨끗한 제사장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요즘 천주교 교황이 입는 옷같이 입고 다녔습니다.
옷에다 하나님이 오신다는 성구를 써 넣고,
메시아가 온다는 성구도 써 넣고,
믿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며 메시아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고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더욱 눈 빠지게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자기 민족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고
자기들을 환난과 고통 중에서 구해 주실 것을 희망하며
더욱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결국 하나님은 인간이 기다려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한 뜻>을 펴기 위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곧 ‘예수님’이었습니다.
초림 때 ‘메시아 예수님’은
성경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성령의 역사로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구름’ 타고 온다고 했고
하나님이 ‘불과 칼’을 가지고 오신다고 했는데,
<베들레헴>에서 ‘어린 아기’로 왔습니다.
동방의 세 박사들은 ‘별의 징조’를 보고,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별빛을 따라서 ‘아기 예수’를 찾아갔습니다.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리려고 가지고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별자리’를 귀히 봅니다.
한국에서는 풍수지리로 ‘별 모양의 터’를 귀히 안 보는데
유대인들은 세계적으로 좋은 터는 별같이 생겼다고 합니다.
실상은 그런 곳에서 큰 인물이 태어난다고 합니다.
(*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메시아 왕’이 태어났는데,
그 당시에 무지와 오해로 ‘메시아’를 사랑으로 맞지 못했습니다.
화면을 보면서, 그 내용을 들어 보겠습니다.) <영상2>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
하늘에서 ‘한 별’이 강한 빛을 내며 비추었는데,
동방에서 세 명의 박사들은
그 별빛을 보고 예물을 들고 이스라엘을 찾아왔습니다.
먼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헤롯 왕’에게 들러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했습니다.
헤롯 왕은 그 말을 듣고,
종교 지도자들을 불러서 묻기를
“이 일이 어떻게 된 일이냐.
내가 왕인데, 왕이 또 태어났느냐?” 했습니다.
이에 종교 지도자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되기를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헤롯 왕은 박사들을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에 가서 그 아기를 찾거든 경배하고,
나도 가서 그 아기에게 경배하고자 하니
돌아가면서 내게 말하고 가라.” 했습니다.
그 후 박사들이 별빛을 따라 가다가 별이 멈춘 곳에 갔더니,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 구유에 ‘어린 아기’가 누워 있었습니다.
곧 ‘예수님’이었습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날 밤, 박사들이 자고 있는데
천사가 꿈에 나타나 헤롯 왕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계시했고,
박사들은 그 말대로 헤롯 왕에게 들르지 않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또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미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해라.
그리고 내가 다시 말할 때까지 애굽에 머물러 있어라.” 했습니다.
요셉은 그 계시대로
바로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했습니다.
헤롯 왕은 동방의 박사들이 다시 자기를 찾아와서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을 알려 줄 것을 기다렸으나
박사들이 오지 않으니,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알고 심히 노했습니다.
헤롯은 즉시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들은 대로 ‘아기 예수’가 태어난 그때를 표준 하여
베들레헴과 그 지역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헤롯 왕은 결국 악을 행한 대로 심판을 받아 비극적으로 죽었습니다.
그 후 다시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요셉에게 말씀하시어
예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30세까지 배우고 깨달으며 성장했습니다. <끝>
헤롯 왕은 ‘살인마’입니다.
왕이 무지하고 미련하니, 그같이 미친 짓을 했습니다.
자기가 왕인데, 누가 또 왕으로 태어났다고 하니
자기 자리를 뺏길까 봐
왕이 태어났다고 했던 그때에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다 죽인 것입니다.
그 아이의 부모들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무고하게 죽은 아이들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으면
자기 마음대로 하며 칼을 휘두릅니다.
메시아는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왔는데,
메시아가 태어나자마자
‘악한 왕’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들이 죽었습니다.
이 성경말씀을 보고
‘왜 하나님은 악한 헤롯을 막지 않으셔서
어린 생명들을 죽게 내버려 두셨나?’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무지하게 행한 ‘헤롯의 잘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미리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악하고 미친 자는 죽여 달라고 하지 말고, 의인이 피해야 됩니다.
역사를 보면, 지구상의 왕들이
수백만, 수천만씩 무고한 생명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바로 심판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헤롯 왕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며 메시아를 기다렸던 유대 종교인들도
세상을 구원하러 온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보이고 <사랑과 평화의 역사>를 펴려고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셨는데,
세상도, 믿는 자들도 ‘평화의 왕’을 몰라봤습니다.
<사랑과 평화>로 세상을 구원하는데,
무지한 자들은 예수님을 쫓아 핍박하고, 죽이러 다녔습니다.
고로 세상은 평화롭지 못하게 됐습니다.
왜 예수님을 맞지 못했을까요?
첫째, 헤롯 왕처럼 무지하여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 메시아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온다. 하늘 구름을 타고 메시아가 온다.” 예언했는데
- 예수님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지도 않았고,
- 하나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왔고,
- 그것도 일반 사람과 똑같이 한 여인의 몸에서 잉태된 한 사람이
메시아라고 하며 나타났습니다.
→ 그러니 믿지 않은 것입니다.
처녀, 곧 히브리어로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했고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오신다.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는 말씀만 가지고
다른 사고를 가지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보고
“네가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느냐?” 하며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고,
오히려 적그리스도라 하며 핍박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고 설명을 잘해야 됩니다.
성경을 제대로 못 풀면, 하나님이 오셔도 못 맞고 끝납니다.
이 시대도 성경을 제대로 못 풀고
하나님과 성자가 예수님을 통해 하신 말씀을 못 알아들어서
이 시대에 성자께서 다시 오시어
‘시대 구원자’를 통해 행하시는데도 모르고 못 맞고 끝났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땅에서 오는 자>는 ‘한 형제’로 오고,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그 사람의 육신’을 쓰고 ‘영’으로 강림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이라서 오셔도 안 보입니다.
이사야 11장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 위에 <여호와의 신>이 강림하신다.’ 한 대로
이새의 줄기에서 ‘예수님’이 태어나,
그 위에 <여호와의 신>이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오셨는데,
땅의 인간인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키우시고
30세 때부터 ‘인류를 구원할 말씀’을 선포하며
인생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불과 칼’을 가지고 오셔서
‘불과 칼’로 심판하셨습니다.
‘불과 칼’은 <말씀>을 비유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불과 같다. 검과 같다.’ 했습니다.
하나님과 성자는 예수님이 살아 있는 동안
예수님을 통해 불같은 말씀과 칼 같은 말씀으로
인생들을 공의롭게 가르치시고 선과 악을 가르시면서
인생들을 구원하시며 뜻을 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구름’ 타고 오셨습니다.
‘구름’은 <사람>을 비유한 것입니다.
정화되어 깨끗한 것을 ‘구름’으로 비유합니다.
<예수님>은 깨끗한 여자 ‘마리아’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처녀, 곧 젊은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예언된 대로
깨끗한 인(人)구름인 ‘마리아’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른 자들’이
깨끗하게 정화된 자들로서 <구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믿고 따르는 자들’을 타고 나타나셨습니다. <끝>
구약 4000년 동안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맞지 못한 것은
지도자들이 성경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문자대로만 가르친 죄 때문입니다.
성경의 예언은 엄청난데
- 메시아가 ‘어린 아기’로 ‘땅’에서 나타나니
모두 알 수가 없었고,
- 자기 주관과 생각에 빠져 있으니
그렇게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 블레셋 등 강대국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왔고,
이제는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으니
어서 하나님이 오셔서
원수들에게서 자기 민족을 구해 달라고 했는데,
‘어린 아기’가 와서 ‘평화의 왕’이라고 하며
세상을 구한다고 하니 믿겠습니까?
“하나님이 온다. 인자가 구름 타고 온다.
불과 칼을 가지고 와서 악인들을 다 심판한다.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번개가 번쩍이듯 온다.
그가 오면 많은 자들이 통곡한다.
그가 세상을 다스린다.” 하며 엄청나게 예언했는데,
땅에서 자기들과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세상을 구한다고 하니 믿겠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예언했으나 문자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과 성자는 ‘영’으로 강림하시어
‘그 시대에 가장 합당한 한 사람의 육신’을 쓰고
순리적으로 구원의 역사를 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성자와 함께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강림하시어
‘예수님’을 통해 불과 칼 같은 말씀으로 시대를 심판하시고,
믿는 자들의 육과 영을 구원하시고,
종에서 자녀로 부활시키며 <신약 구원역사>를 펴 나가셨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자기들이 선조 때부터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죽인 것입니다.
모르니까 예수님을 보고
“너는 하나님을 빙자하여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하느냐.” 하면서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의로운 일’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기 잘못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최고로 사랑하는 민족으로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아. 이스라엘 야곱의 족속아.
처녀들아. 사랑하는 자들아.” 하셨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보낸 자를 죽였으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칭찬했던 자들이 생명을 죽이면 어이가 없고
행한 대로 갚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섭리사에서도 잘한다고 칭찬했던 자들이
몰라서 생명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정말 생명 관리를 잘해야 됩니다.
‘전기선’을 타고 ‘전기’가 오듯
‘예수님의 육신’을 타고 ‘하나님과 성자’가 강림하셨는데,
‘전기선’을 자르니 ‘전기’가 끊기듯
‘예수님’을 죽이니 ‘평화’가 끊어지게 됐습니다.
모르고 핍박하고 죽였으나
<사랑과 평화의 왕, 메시아>가 없으니 <평화>가 깨졌습니다.
그리함으로 이스라엘은 ‘비참한 전쟁’을 맞았고 폐허가 됐습니다.
청년들은 다 잡혀갔습니다.
하루 종일 가도 ‘청년 한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행한 대로 받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이를 예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전환>
* 어제는 ‘성탄 축하’를 했으니,
오늘은 <성탄절>을 맞아 ‘말씀 잔치’를 해 볼까요?
성자도 원하시고, 말씀을 전해 주는 선생도 원하고,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도 원하니
말씀을 그대로 마무리하려다가
여기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선생은 군대에 갔을 때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전쟁터에 한 번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고,
남은 군 복무 기간 동안 ‘한국 전방’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때 북한을 보면서 항상 생각했습니다.
‘왜 남쪽 한국은 가만히 있는데,
북쪽이 한국을 쳐들어와서
6.25전쟁 때같이 또 사람을 죽이려 하지?
무차별하게 사람을 죽이는 지도자는 심판을 받아야 된다.
남쪽을 무력으로 침범하려는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60만 명의 젊은이들이 전방에서 근무하면서
추위에 떨며 지옥 고생을 한다.
북한 때문에 40년 이상 이리도 고생을 한다.
내가 북한에 가야 된다.
다윗이 악한 골리앗과 싸워서 이기듯,
내가 북한에 가서 기도해야 된다.’ 하며
“하나님, 제가 가야겠어요. 저와 같이 북한에 가요.” 하고,
한국에서 북한으로 가는 ‘간첩’을 지원했습니다.
책임 지휘관들이 내게
왜 ‘간첩’으로 북한에 가려 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전쟁>에 한 번 갔다 오고 나서 또 가려 했으나,
이번에는 ‘베트남’에 안 가고 ‘북한’에 가서
다윗이 골리앗 죽이듯 할 일을 하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군에서 서류 신청을 받고 나서 일주일 후에 다시 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동의 없이는 안 된다고 하며 못 가게 했습니다.
결국 ‘북한’에는 못 가고,
<베트남 전쟁터>에 두 번째로 가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선생은 그때부터 전쟁에 참전하면서
‘북한의 골리앗’을 놓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후 한국에 살아 돌아와서 ‘하늘의 사명’을 받고
마치 에스더가 왕 앞에 자기 민족이 당하는 어려움을 놓고 고하듯,
한국을 침략하는 북한을 놓고 더욱 하나님 앞에 고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에
하나님은 ‘북한의 골리앗’에 대한 것을 꿈으로 계시해 주시며
제일 먼저 ‘그의 죽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21일 안에 그 지도자가 죽었습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선생이 2차 파월하여 두 번째로 <베트남>에 갔을 때
내가 없는 사이 우리 중대 안에서만 약 20명이 죽었고,
옆의 연대에서는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선생이 1차 파월하여 첫 번째로 <베트남>에 갔을 때는
우리 중대에서 1년 동안 두 명밖에 안 죽었습니다.
불과 3개월밖에 안 지나서 다시 갔는데,
그 짧은 3개월 만에 그리도 많은 아군들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가 없으니,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생에게 무조건 함께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은 적들을 향해 총은 쏘되,
적의 몸에는 총구를 겨누지 않았습니다.
도망가라고 옆에다 쐈습니다.
적이 나를 죽이려 해도 죽이지 않고, <사랑의 전쟁>을 했습니다.
어느 때는 총을 버리고 쫓아가서 적을 안고 울고 기도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나’도 살고 ‘적’도 사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어
내가 속해 있는 중대의 전우들과 한국군들이
많이 안 죽도록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선생이 한국에 왔다가 다시 2차 파월해서 가 보니,
선생이 없었던 3개월 동안
우리 중대에서만 20명 이상이 죽었고,
옆의 연대는 적의 대대가 쳐들어와서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그때 시체를 치운 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하루 종일 아군의 시체를 차로 실어 냈다고 했습니다.
마치 돼지들이 떼로 죽어서 차로 실어 내는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2차 파월하여 다시 1년 동안 <베트남 전쟁터>에 있었습니다.
그때 <도깨비 6호 작전>을 했습니다.
그 작전 때 선생이 잠시 한국에 귀국했을 때
우리 옆의 연대원들을 싹 쓸었던 적의 대대와 맞붙게 됐는데,
그 대대를 멸하여 수백 명의 적군들이 죽었습니다.
우리 중대 앞에서 죽은 적들만 해도 벌판에 늘비했습니다.
그 전쟁으로 죽은 적들이 2~300여 명 됐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들에게 붙여서 쳐부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선생은 ‘적의 몸’에 총을 안 쏘고
도망가라고 ‘적의 머리 위’에나 ‘공중’에 총을 쐈습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렇게 하면,
그 적군이 살아서 또 아군들을 쳐들어와 죽이지.’ 합니다.
이것은 <사람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안 되는 상황에서도, 꼭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생명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어
‘나’도 살게 하시고, ‘우리’도 살게 하시고,
‘적들’도 살게 하십니다.
평소에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전능자는 ‘전능자의 말씀을 행하는 자’에게 절대 함께하십니다.
선생은 나의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성자께서 ‘구원과 사랑과 평화’를 위해 보냈기에
나를 그렇게만 쓰셨습니다.
그렇게도 산과 들을 누비며 전투를 했지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나를 지키시며
절대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하게 하셨고,
그 후 3년 있다가
40년 동안 지독하게 계속됐던 <베트남전쟁>이 끝났습니다.
선생은 ‘전쟁 중의 극한 상황’에서
형제를 네 몸같이 여기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최고의 한 법>을 실천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은 ‘사회 경력’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경력’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성경을 이룬 경력’만 화려합니다.
‘세상 경력’도 세우기 어렵지만
‘성경을 이루는 경력’ 세우기가 더 어렵습니다.
성경을 이루면, ‘하나님이 시대에 쓰시는 주인공’이 됩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핍박했지만
‘원수를 멸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해서도 안 되고
혼자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뤄야 되기에
원수라고 해서 절대 멸하면 안 됩니다.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고 주인이 되었기에 안 하는 것입니다.
산에서 토끼를 사냥하는 자들도
하지 말라고 말린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산을 내가 쓰니 내 산이다.
이곳에 산짐승들이 와서 사니, 내 동물이구나.
죽이면 안 되겠다.’ 하고 깨달으면 총을 버리게 됩니다.
사람은 하지 말라고 말린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혈기를 못 내게, 화를 못 내게 막는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쳐서 깨닫게 해야 됩니다.
본인이 알고 깨달으면,
도끼 가지고 자기 발목을 안 찍듯 화를 안 냅니다.
어떤 사람이 북한에서 한국으로 왔다가
한국이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실망하고
또 부모가 보고 싶어서 다시 북한으로 가려고 하다가
잡혀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계속해서 마음을 못 잡고 온갖 생각을 하면서
한국에서 사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며칠 동안 이야기해 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 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네가 북한에 있을 때 너무 배고파서
풀뿌리를 캐 먹으면서 그리도 울어 대서
하나님이 보시고 ‘안 되겠다.’ 하고
‘남쪽으로 내려갈 마음’을 주셔서 오게 된 것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올 때
그 추운 강을 헤엄쳐 건너오는 중에
떠내려가서 죽을 뻔한 것을 하나님이 잡아 주셨다.
또 북한군들의 눈에 띄면 잡히니
눈에 안 띄도록 안개가 끼게 하고 비가 오게 해 주어
한국까지 오게 해 주셨다.
그 후에도 다 올 때까지 때마다 사람을 보내어
한국까지 오게 하신 거야.
이제 마음 고쳐먹고,
여기서 나가면 한국에서 배불리 먹고 살아 봐.
너 북한에 있을 때는 비쩍 말라서 50kg이었는데
지금은 80kg이나 나가잖아.
여기 와서 축복받아서 코끼리 되고, 돼지 됐잖니.
그게 네 소원이었잖아.”
하며 몇 번을 말해 주니 깨닫고,
평생 하나님을 믿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해 주었습니다.
“나가서 살다가 힘들면, 내 이름 대고 찾아와.
나 있는 곳에서 나무도 손질해.
내가 땅도 줄 테니 옥수수, 감자 농사도 지어 봐.
농사지으면 내가 팔아 줄게.” 했습니다.
그러니, 얼굴에 생기가 돌고 빛이 났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좋아하다가 나갔습니다.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게 해야 좋아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전쟁터에서 ‘적’은 기회만 있으면 쏴 죽이려고
총구를 겨누고 총을 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기회만 있으면 <살릴 기회>를 찾아서
적군들도 아군들도 살렸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예수님을 부르면서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했습니다.
모두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상대는 자기에게 ‘말의 총과 검’을 던져도
자기는 기회가 있는 대로 ‘사랑과 화평의 말’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그런 자와 함께하십니다.
신부는 ‘성경말씀을 지키는 재미’로 살고
‘신랑 되신 성자의 말씀을 지키는 재미’로 사는 것입니다.
선생이 <성경말씀>을 지키고 <성자의 말씀>을 지켰으니 이야기하지,
안 지켜 놓고 10년, 20년, 30년 동안 계속 이야기하겠습니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평화롭게 살면 개인도 민족도 10000배나 좋게 되고,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면 전쟁을 안 해도 10000배나 손해 간다.”
하셨습니다.
선생이 겪고 나서 보니, 정말 성자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선생은 지금도 ‘대통령, 국회, 국방, 판검사들’을 놓고
매일 하루 세 번씩 꼭꼭 기도 조건을 세웁니다.
전쟁 중에서 성경을 지키고 살아 돌아온 자가 기도하고
시대 사명자가 기도하니
하나님은 피하지 않고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한국만 잘돼도 안 되니, 전 세계를 놓고 기도합니다.
한국은 전 세계의 140분의 1밖에 안 되니
한국만 평화롭게 되어서 140명 중의 한 명만 평화로우면,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전 세계가 다 평화롭게 되도록 기도합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개미>도 ‘조건’이 없으면 못 잡아당긴다.
<코끼리>라도 ‘조건’이 있으면 잡아당길 수 있다.”
그러니 ‘기도 조건’을 세워라.
네가 기도 안 하면 큰일 난다.” 하고 깨우쳐 주셔서
선생은 섭리뿐 아니라
민족과 세계, 모든 종교들을 놓고 다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평화의 왕, 예수님’을 보내셨을 때,
제일 먼저 ‘종교인들’이 평화롭게 대하지 않고 미워해서
전 세계의 판국이 ‘전쟁’으로 변하게 됐습니다.
믿는 자들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 됩니다.
그의 법을 지켜야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천국에 가려고만 하지,
<성경의 법>은 안 지킵니다.
그러니 그 값을 <보낸 자>가 다 받고
대신 ‘시대 십자가’를 지고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평화>가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평화>가 없습니다.
상대가 잘못했어도 무조건 사랑해 놓고 봐야 됩니다.
잘하는 자를 사랑하고,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표적’이 아닙니다.
못하는 자와 자격이 없는 자도
사랑으로 대하고 평화롭게 해야 ‘표적’입니다.
누구든지 ‘사랑과 화평’으로 대하는 것은
성자의 신부라면 모두 다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을 안 하면 ‘신부’가 아니고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한 자가 기도하니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도’를 실천한 대로
그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섭리인 모두는 교회마다, 가정마다 절대 평화롭게 해야 됩니다.
<평화의 기준>을 세워야
하나님은 그 행한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펴십니다.
행하지 않는 자를 통해서는 뜻을 안 펴십니다.
<평화>는 ‘절대 사랑’입니다.
<사랑> 없이는 평화롭게 못 합니다.
<전환 : 마무리>
* 이제 다시 ‘메시아 강림’에 대한 말씀을 하면서,
<성탄 말씀>을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들이 메시아를 몰라서 맞지 못하여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의 길, 고통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온다.”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며
<신약 2000년 역사>를 펴 왔습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이 온다. 구름 타고 온다.
불에 옹위되어 수레를 타고 온다.” 했고,
<신약 때>는 “예수님이 온다. 구름 타고 온다.
하늘에서 영광으로 온다. 기다려라.” 했습니다.
<구약 4000년> 동안 ‘하나님’을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안 오시고 ‘예수님’을 통해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 2000년> 동안 ‘예수님’을 기다렸으나
그가 하늘에서 구름 타고 왔습니까?
이미 ‘오실 때’가 지난 지 14년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메시아를 다시 보내 주십니다.
그런데 누가 다시 오겠습니까?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선생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신 성자께 21년 동안 성경을 배우고,
‘메시아 강림과 재림’에 대해, ‘성경’에 대해 제대로 알고
36년 동안 가르치고 외쳐 왔습니다.
“내 말 좀 들어 봐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대로는 안 온다.
하늘 구름 타고 안 온다. 땅에서 온다.
주관권 역사다.
예수는 <신약 주관권 역사>를 편다.
육신은 한 번 죽으면, 다시 못 산다.
<성약 재림의 뜻>은
하나님이 예수님 시대처럼
‘그 시대에 합당한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를 키우시고 가르치시고 성장시켜
‘그의 육신’ 쓰고 와서 펴신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리함으로 메시아 재림주를 허황되게 기다리게 하지 않고
‘하늘 구름’을 쳐다보게 하지 않고
‘인구름’을 쳐다보게 하며
‘성경에 예언된 뜻’을 펴면서 왔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메시아’를 허황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순리에서 벗어나 꿈결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보내셨는데,
육적인 자들이 메시아를 ‘사랑’으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함으로 ‘평화’가 깨졌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너무 ‘오해’를 잘합니다.
헤롯 왕은 ‘종교의 왕, 예수님’을 오해하여
예수님이 자기 앞에 나타나 ‘자기 왕 자리’를 뺏을까 봐
잘못된 생각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 당시에 많은 생명들을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위치에 올랐는데,
옆에 누가 또 나타나면 의식하고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듯 모함하고 몰아내려 합니다.
그런 자들은 다 ‘헤롯 족속들’입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이 나타나니 죽이려 쫓아다녔고
천주교인들은 ‘루터’가 나타나니 죽이려 쫓아다녔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새로운 역사를 펴시니,
이 시대에 무지한 자들도 혈안이 되어
‘시대 사명자’를 잡아 가두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그리도 핍박했으나,
결국 예수님을 중심한 <신약역사>는
2000년이 흐른 지금, 온 지구 세상을 덮었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섭리역사, 성약 재림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앞으로 100년만 가도 ‘시대 복음’이 지구를 뒤덮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누가 핍박하고 막는다고 막아지지 않습니다.
누가 아니라고 해서 아닌 것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신 뜻>을 결코 이루고 마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제 하나님은 성자와 함께 구원의 차원을 높여
“이 시대 보낸 자를 믿고 따르고,
그를 통해 선포하는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더 사랑하여 ‘신부’같이 대하겠다.” 하며
<사랑의 역사>를 선포하셨습니다.
<평화>는 <사랑>입니다.
결국 <사랑>만이 온 세상을 잡아 다스리고,
생명길로 가게 하고,
이 시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합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세상은 ‘사랑’을 깨뜨려도
우리만이라도 깨뜨리지 말고 서로 화평, 서로 사랑으로 대해야
<휴거의 새 역사>를 펴 나갑니다.
한 곳이라도 샘물이 있으면 모두 목마르지 않고 살게 되듯,
우리만이라도 ‘사랑’을 깨뜨리지 않고 하면
생명들을 다 살릴 수 있습니다.
선생은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보냄을 받은 자 예수님을 그같이 사랑하니
근본자 성자를 그같이 사랑한 것이 되어
‘성자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예수님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니 예수님이 성자께 추천하여
이 시대 뜻을 펴는 데 ‘성자의 몸’이 되었습니다.
벌써 성자가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오셔서
아들의 말씀을 선포하며 행하신 <신약 2000년 역사>가 끝났고,
성자가 ‘이 시대 사명자의 육신’을 쓰고 오셔서
신부의 말씀을 선포하며 행하시는
<성약 1000년 역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성경에 예언된 <휴거 역사>도 진행되고 있고,
이제 성자는 ‘땅에서 성자로서 할 일’을 다 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시는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두 성삼위를 사랑하고, 시대 보낸 자를 사랑하고,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가 옵니다.
그래야 <구원과 휴거의 역사>가 찬란하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를 사랑하면서 기도하고
형제를 사랑하면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사랑하니 희생해 주고,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예수님의 나심>을 축하하며,
더불어 <이 시대 축복의 역사>를 맞은 것을 감사하며,
사랑과 평화의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영광 돌리기를 바랍니다.
* 말씀 여기서 마칩니다. 성자의 사랑과 평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