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말씀2014.12.25 (목)
성탄말씀
- 선포일
- 2014.12.25 (목)
- 성경 본문
- 누가복음 19장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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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5 성탄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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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5일 성탄말씀>
사랑과 평화와 영광
본 문 누가복음 19장 38절
할렐루야!
2014년 성자가 떠나시기 전, 마지막으로 맞는 성탄절입니다.
오늘은 성자께서 첫 번째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며,
성자의 육이 되어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오늘 구세주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주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감사와 영광을 무한히 돌려드려야 되겠습니다.
어제는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가 있었죠.
여러분 행복하셨나요?
새 성전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이브행사를 하면서
하늘앞에 영광을 돌리면서 그 뜻을 길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피곤해보이지 않네요? 벌써 2시가 넘었거든요 ᄒᄒ
오늘 예수님의 탄생, 그리고 성자의 초림 축하,
그러면서도 재림의 역사, 귀한 성약의 역사를 맞이한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영광돌리는 귀한 성탄 예배가 되야되겠습니다.
오늘 교역자 공석 교회가 있습니다. 8개.
8개의 한국의 교역자 공석교회 함께 저희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제도 성탄 이브 말씀을 함께 들었는데요,
교역자가 없지만, 성자께서 주와 함께 여러분들의 교역자가 되어서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해주실 줄 믿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구약 4000년 동안 역사하시며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대로
신약의 때가 됐을 때 세상에 ‘구세주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의 육신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성자께 감사와 사랑을 드리며,
<성자의 초림>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릴 때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어제는 성탄 축하 행사를 했죠?
그리고 핵심적으로 예언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어떤 예언이 되었는지
그 말씀을 중점적으로 전해주었습니다.
(구주를 보내 주신 성삼위께 영광 돌리면서)
감사와 사랑의 기념행사를 하기 위해
<말씀>을 ‘핵심’만 전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어제 말씀한 부분’도 한 번 더 말씀해 주고,
<사랑과 평화>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어제는 축하는 날이고, 예술의 행사를 중점적으로 했다면,
오늘은 말씀의 잔치를 중점적으로 할 것입니다.
지금 특별히 허락을 받아서 2시 예배를 드리게 됐는데요,
그 이유는, 늦게 끝났으니까 푹 자고,
멀쩡한 정신으로 와서 말씀의 잔치 같이하자고.
성자는 주와함께 귀한 말씀 준비하셨는데
우리가 제대로 듣지 못하면 말씀의 잔치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초반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오늘은 몸동작으로, 입술로 영광돌리는 것이 아니라,
들으면서, 더 차원 높이 깨달으면서
성삼위께 영광돌리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말씀 시작>
<평화>는 ‘사랑’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평화는 꼭 사랑이 있어야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랑’을 주시려고
예수님의 육신을 통해 이 땅에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 목적은 핵심 하나,‘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을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내고
‘사랑의 역사’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종교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이성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종’같이 대해 주시며
<4000년 동안> 구약역사를 펴 나가셨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서 <4000년 구약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은 이 땅에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시어
예수님을 통해 <아들 말씀, 아들 시대, 자녀 시대>를 선포하시고,
<차원 높은 자녀 말씀>을 주시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아들 명분, 자녀 명분’을 주고
차원을 높여 <신약 자녀급 구원역사>를 펴려 하셨습니다.
여러분, 종이 아들이되고,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그)래서 누가복음 2장 10-14절을 보면
천사들이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을 두고 말하기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렇게, 자녀 명분을 주시고, 아들 명분을 주셨으니,
하늘에는 영광이되고 하늘에는 평화가 되었습니다.
<종의 세계>에서 <아들>로 자유를 얻었으니, ‘평화’였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 <예수님의 탄생>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하나하나 핵심을 말씀해 주겠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말씀들과,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는
어제 말씀을 통해서 핵심을 전해주었죠? 기억나죠?
오늘은 성탄절이기 때문에 한번 더 말씀 해 주겠습니다.
확실히 알아야됩니다. 확실히. 나머지 공부하려고 하지말고,
기회가 왔을 때, 말씀을 통해서 확실하게 배우고,
더 나아가서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야되겠죠?
우리 중고등부 준비 됐죠?
어제 무대 못서서 살짝 힘들기도 할려고 했지만
제일 앞자리를 주면서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자리를 줬죠?
남자 중고등부들이나 중고등부들만 잘 들으면
오늘 말씀은 다 잘듣습니다.
귀한때를 만났죠?
귀한때라는 것은, 항상 말씀을 중심하지만,
지금시대는 말씀을 깊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주일말씀을 잘 들으면 말씀의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만,
잘 듣지 않으면 자꾸 뒤쳐지게 되어있습니다.
귀한 때, 복습도하면서 더 깊이 깨닫기도 하면서 말씀을 듣는다면
어릴때부터 영웅같은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교회 모두 다, 생방송으로 참여하시는 여러분 모두,
다시한번 더 하나님은 어떤 예언을 하시고, 어떻게 예수님이 오시고,
마지막으로 사랑과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말씀을 쭉 들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말씀 잔치, 차원높인 말씀 잔치. 자, 말씀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리고 이어서 <사랑과 평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구약의 선지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엄청난 표현’을 하면서
메시아가 온다고 하며 대(大)희망을 심어 줬습니다.
이스라엘은 한국의 한 도시 면적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강원도만합니다. 매우 작은 나라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약소국’이었고,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항상 주위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가운데에 두고
전쟁과 정치로 압박했습니다.
대국 앗수르, 갈그미스, 이집트, 바벨론, 블레셋 등이
지금은 생소하지만, 성경을 아는 여러분들은 다 아시죠?
모두 약소국인 이스라엘의 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국방력도 약하구요,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민족으로서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오시고 메시아를 보내서
이스라엘 나라를 구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고 섬기던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강림하신다. 메시아가 땅에 온다.”라는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최고의 낙’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선지자들의 예언>은, 엄청난 표현
입니다. 전쟁을 통해서 칼로 어려움을 당하고, 쳐들어오는 가운데서 하나
님의 예언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그 예언을 어제도 들었지만, 오늘 확실
히 한번 더 듣고 넘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무엇이었는지, 화면을 보면서 들어 보겠습니다.) <영상1>
이사야 대(大)선지자는
“여호와는 빠른 구름을 타고 임하신다.(사19:1)” 했고,
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하며,
그가 와서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며 이상세계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사 11:1-10)
또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심판하시리로다.
(사 66:15-16)” 했습니다.
또 “주께서 친히 징조를 보여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했습니다.
다니엘 대(大)선지자는
“내가 밤 환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단 7:13)”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도
‘메시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거기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라.(미 5:2)”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하나님의 핵심 말씀은
“하나님이 온다. 메시아가 온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끝>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이 시대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예언도
생각하면서 듣기를 바라겠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말씀을 들을 때, 이 시대 말씀을 생각하면,
단상에서 말씀하지 않아도, 감동이 두배가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고 약속하셨으니,
유대 종교인들은 극심한 환난과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의 강림>을 1년을 하루같이 기다렸습니다.
그게 4000년입니다.
하나님 앞에 늘 제사를 드리면서
“언제 오시나? 뒤따라오셨나? 혹여 오늘 오셨나?” 하고
매일 기다렸습니다.
우리 한국같은 경우는, 40년정도만 일본의 속국이었는데도요,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큽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00년이었습니다.
그 긴긴 세월을 약소국으로 살았단 말입니다.
1년을 하루같이, 매일 소망하고 매일 꿈꾸면서
선지자드를 통해 하신말씀을 유대 제사장들이 매일 전했습니다.
유대 제사장들은 금실로 수놓은 깨끗한 제사장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요즘 천주교 교황이 입는 옷같이 입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냐면,
옷에다 하나님이 오신다는 성구를 써 넣고,
영상 준비할걸 그랬나봐요 다 아시는줄 알고 뺏는데,,ᄒᄒ
메시아가 온다는 성구도 써 넣고,(14:20)
이 앞에 쓰는 모자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써넣어요.
그게 신명기에 한 말씀이 있어요.
“네 머리에 새겨라”하는 말 듣고 이렇게 써넣습니다.
메시아가 온다는 말씀을. 문자 신앙의 대가입니다.
그 정도로 메시아가 오는 것을 희망하고 소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며 메시아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고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더욱 눈 빠지게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자기 민족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고
자기들을 환난과 고통 중에서 구해 주실 것을 희망하며
더욱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결국 하나님은 인간이 기다려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한 뜻>을 펴기 위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곧 ‘예수님’이었습니다.
초림 때 ‘메시아 예수님’은
성경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성령의 역사로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구름’ 타고 온다고 했고
하나님이 ‘불과 칼’을 가지고 오신다고 했는데,
<베들레헴>에서 ‘어린 아기’로 왔습니다.
종교 역사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면서 여러 가지 징조를 보이셨죠.
동방의 세 박사들은 ‘별의 징조’를 보고,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별빛을 따라서 ‘아기 예수’를 찾아갔습니다.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리려고 가지고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별자리’를 귀히 봅니다.
그래서 별로 징조를 보이신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풍수지리로 ‘별 모양의 터’를 귀히 안 보는데
유대인들은 세계적으로 좋은 터는 별같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특징에 맞게 별을 통해서 징조를 보이신것입니다.
실상은 그런 곳에서 큰 인물이 태어난다고 합니다.
먼저는 첫 번째, 세상이 맞지 못했구요,
두번째, 믿는자들이 맞지 못햇습니다. 여러분 이시대도 그러합니까?
어제 말씀 기억하시죠?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세상이 먼저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는지,
종교 지도자들은 알지 못하고 세상에 제대로 증거하지 못한 사건을
어제 성경 본문 말씀을 통해 알았습니다.
여러분 그 내용 한번 더 들어보시겠습니까?
(*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메시아 왕’이 태어났는데,
그 당시에 무지와 오해로 ‘메시아’를 사랑으로 맞지 못했습니다.
화면을 보면서, 그 내용을 들어 보겠습니다.) <영상2>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
하늘에서 ‘한 별’이 강한 빛을 내며 비추었는데,
동방에서 세 명의 박사들은
그 별빛을 보고 예물을 들고 이스라엘을 찾아왔습니다.
먼저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헤롯 왕’에게 들러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했습니다.
헤롯 왕은 그 말을 듣고,
종교 지도자들을 불러서 묻기를
“이 일이 어떻게 된 일이냐.
내가 왕인데, 왕이 또 태어났느냐?” 했습니다.
이에 종교 지도자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되기를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헤롯 왕은 박사들을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에 가서 그 아기를 찾거든 경배하고,
나도 가서 그 아기에게 경배하고자 하니
돌아가면서 내게 말하고 가라.” 했습니다.
그 후 박사들이 별빛을 따라 가다가 별이 멈춘 곳에 갔더니,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 구유에 ‘어린 아기’가 누워 있었습니다.
곧 ‘예수님’이었습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날 밤, 박사들이 자고 있는데
천사가 꿈에 나타나 헤롯 왕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계시했고,
박사들은 그 말대로 헤롯 왕에게 들르지 않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또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미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해라.
그리고 내가 다시 말할 때까지 애굽에 머물러 있어라.” 했습니다.
요셉은 그 계시대로
바로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했습니다.
헤롯 왕은 동방의 박사들이 다시 자기를 찾아와서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을 알려 줄 것을 기다렸으나
박사들이 오지 않으니,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알고 심히 노했습니다.
헤롯은 즉시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들은 대로 ‘아기 예수’가 태어난 그때를 표준 하여
베들레헴과 그 지역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헤롯 왕은 결국 악을 행한 대로 심판을 받아 비극적으로 죽었습니다.
그 후 다시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요셉에게 말씀하시어
예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30세까지 배우고 깨달으며 성장했습니다. <끝>
성경을 여러장을 여러분 이 짧은 순간에 읽으신겁니다.
헤롯 왕은 ‘살인마’입니다.
왕이 무지하고 미련하니, 그같이 미친 짓을 했습니다.
또한 그 때 종교 지도자들은 분명히 예기했죠?
“베들레헴에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끝났어요.
먼저 알아보고 먼저 해석을 해줬어야되는데,
이들도 몰라봤기 때문에 헤롯왕이 더 그같은 짓을 하게된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왕, 헤롯왕은 육적인 정치의 왕입니다.
모르고 오해해서 이같은 짓을 벌인것입니다.
(자기가 왕인데, 누가 또 왕으로 태어났다고 하니
자기 자리를 뺏길까 봐
왕이 태어났다고 했던 그때에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다 죽인 것입니다.)
그 아이의 부모들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무고하게 죽은 아이들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왕이 미련하고 무지하니까 이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것 같으면
사람들을 못살게 하기도 하고, 혹은
자기 마음대로 하며 칼을 휘두릅니다.
메시아는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왔는데,
메시아는 세상 정치를 하려고 온게 아닙니다.
육과 영의 구원, 영원한 생명을 위해 온것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태어나자마자
‘악한 왕’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들이 죽었습니다.
이 성경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도 합니다.
‘왜 하나님은 악한 헤롯을 막지 않으셔서
어린 생명들을 죽게 내버려 두셨나?’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무지하게 행한 ‘헤롯의 잘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마리아 데리고, 미리 애굽으로 피해라.
그리고 내가 말할때까지 돌아오지 마라.(하게 하셨습니다. )
하면서 현몽을 하셨습니다.
악하고 미친 자는 죽여 달라고 하지 말고, 의인이 피해야 됩니다.
.내 앞에 미친개가 나타난거에요 교회오려고 하는데...
앙앙 짖어대는거에요. 그럼 여러분 그때 이럴거에요?
“죽여주세요 하나님.~~~”그때는 뭐가 지혜에요? 피해야죠 언능
그리고 물려놓고 병원가서 “하나님이 나 안지켜줬다”고 그러겠습니까?
밤길을 가는데, 악한사람이 나온거에요.
“하나님 저사람 빨리 죽여주세요 해를 끼칠것같아요.”
말이 안되죠. 어떻게해야죠? 피해야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받아라.”
지혜는 하나님입니다. 왜? 지혜는 오직 하늘에서만 오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쁜사람이 나타나“ 저사람 죽여주세요”그러면 너무 무섭잖아요
그러지말고 먼저는 피하고.
하나님이 행한대로 갚아주기를 기도하면됩니다.
역사를 보면, 지구상의 왕들이
수백만, 수천만씩 무고한 생명들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닙니다.
왕이 무지한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을 바로 심판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입니다. (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헤롯 왕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며 메시아를 기다렸던 유대 종교인들도
세상을 구원하러 온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보이고 <사랑과 평화의 역사>를 펴려고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셨는데,
세상도, 믿는 자들도 ‘평화의 왕’을 몰라봤습니다.
<사랑과 평화>로만이 세상을 구원하는데,
무지한 자들은 예수님을 쫓아 핍박하고, 죽이러 다녔습니다.
혈안이 되어있다고 했어요. 매일 혈안이 되있어서
예수만 생각하면 죽이고싶어요, 예수만 생각하면 때리고싶어요.
예수만 생각하면 가두고싶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들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지는 인생 평생 육신도 그러하거니와, 영도 그러하거니와,
후대까지 그렇게까지 만듭니다.
메시아를 사랑하지 못하니까 (고로) 세상은 평화롭지 못하게 됐습니다.
왜 예수님을 맞지 못했을까요?
첫째, 헤롯 왕처럼 무지하여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 메시아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요즘 기독교인들 보세요.
자기 생각대로 메시아가 않오면 무조건 이단인겁니다.
무조건 구름타고 오셔야되요. 하늘에서. 영광으로 오셔야됩니다.
그 사람만 메시아가 됩니다.
이들도 똑같았습니다. 왜? 분명히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온다. 하늘 구름을 타고 메시아가 온다.” 예언했는데
- 예수님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지도 않았고,
- 하나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왔고,
- 그것도 일반 사람과 똑같이 한 여인의 몸에서 잉태된 한 사람이
왔습니다. 그것도 애기로 왔어요.
그러면서 메시아라고 하며 나타났습니다.
→ 그러니 믿지 않은 것입니다.
처녀, 곧 히브리어로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했고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했잖아요 (는데,) 이거 두 개만 봐도.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이 말을 해석하면서 젊은 여인 딴사람,
베들레헴 딴사람, 그리고 가장 큰 사고를 두었던 것이,
하나님은 구름 타고 오신다. 다른 말씀 생각지 않고
이 말씀만 가지고 다른 사고를 가지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요즘 시대 어때요. 여러분 그 관 다 깨져서 섭리사로 오셨죠?
그쵸? 같이 말씀 듣는 사람들
하늘 구름타고 온다는 관이 안깨졌으면 여기 못있습니다.
육신 부활 관이 안깨져 있으면 여기 못앉아 있는다는 것입니다.
24일은 신입생들과 함께하는 축하잔치
25일은 섭리인들과 함께하는 말씀잔치입니다.
성경에 많은 말씀이 있어도, 해석이 안되면 닫아버려요,
그 말씀을 인봉해서
“열면 이단이야. 풀지마. 계시록도 풀지 마.
하늘에서 구름타고 오신다. 예수님의 육신이 다시 오신다”
그말 외에는 하면 안됩니다. 그럼 이단입니다.
유대인들과 똑같습니다. 다른 사고를 가지고 기다리는것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예언이 있는데 그런 말씀만 핵심으로 보는것입니다.
(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오신다.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는 말씀만 가지고
다른 사고를 가지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보고
“네가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느냐?” 하며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고,
오히려 적그리스도라 하며 핍박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예언의 말씀대로 그 위에 신이 강림한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고 설명을 잘해야 됩니다.
성경을 제대로 못 풀면, 하나님이 오셔도 못 맞고 끝납니다.
4000년간 문자대로만 가르쳐왔으니,
따르는자들도 문자신앙이 그대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 신앙이, 유대족속의 피가 지금 믿는 자들에게 까지 넘어와서
지금도 문자해석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 시대도 성경을 제대로 못 풀고
하나님과 성자가 예수님을 통해 하신 말씀을 못 알아들어서
이 시대에 성자께서 다시 오시어
‘시대 구원자’를 통해 행하시는데도 모르고 못 맞고 끝났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눈만뜨면 혈안이 되어서 욕할 생각,
아니라고 막을 생각, 오직 그생각 뿐이니
말씀을 전해줘도 듣지 않습니다.
“구름타고 와야지”구름타고 정말 오면 믿나 모르겠어요.
진짜 하늘에서 슈유융 내려오면 진짜 믿을라나 그것도 의문이더라구요.
그러면 또 예수님처럼 세마포 입고 수염 이렇~~게 해가지고 그렇게,,,
근데 늘 예기하지만 예수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거든요..
그림을 그려서 표현하기도 하고 영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육신으로 보는것은 또 틀려요. 표현하는것 뿐이죠.
메시아는 말씀을 가져오기 때문에 말씀으로 판단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언을 이루면서 오기 때문에 예언도 다시 깊이 보면서
다시 그 뜻을 알아야지만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예수님, 메시아가 맞았습니다. 정말 구름타고 왔고,
정말 불과 칼을 가지고 왔습니다. 맞습니까?
어제 그말씀 들었죠? 오늘 그말씀 한번더 들어보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땅에서 오는 자>는 ‘한 형제’로 오고,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그 사람의 육신’을 쓰고 ‘영’으로 강림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이라서 오셔도 안 보입니다.
이사야 11장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 위에 <여호와의 신>이 강림하신다.’ 한 대로
이새의 줄기에서 ‘예수님’이 태어나,
그 위에 <여호와의 신>이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오셨는데,
땅의 인간인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키우시고
30세 때부터 ‘인류를 구원할 말씀’을 선포하며
인생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불과 칼’을 가지고 오셔서
‘불과 칼’로 심판하셨습니다.
‘불과 칼’은 <말씀>을 비유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불과 같다. 검과 같다.’ 했습니다.
하나님과 성자는 예수님이 살아 있는 동안
예수님을 통해 불같은 말씀과 칼 같은 말씀으로
인생들을 공의롭게 가르치시고 선과 악을 가르시면서
인생들을 구원하시며 뜻을 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구름’ 타고 오셨습니다.
‘구름’은 <사람>을 비유한 것입니다.
정화되어 깨끗한 것을 ‘구름’으로 비유합니다.
<예수님>은 깨끗한 여자 ‘마리아’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처녀, 곧 젊은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예언된 대로
깨끗한 인(人)구름인 ‘마리아’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른 자들’이
깨끗하게 정화된 자들로서 <구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믿고 따르는 자들’을 타고 나타나셨습니다. <끝>
역사는 동시성,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구름, 깨끗한 구름 타고 오시고,
이 시대를 따르는 청중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그리고 불과 칼같은 말씀으로 시대를 심판하고,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약 4000년 동안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맞지 못한 것은
지도자들이 성경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문자대로만 가르친 죄 때문입니다.
성경의 예언은 엄청난데
- 메시아가 ‘어린 아기’로 ‘땅’에서 나타나니
모두 알 수가 없었고, 믿을수도 없었습니다.
- 자기 주관과 생각에 빠져 있으니
그렇게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시대도 그러합니다. 아이 벤자가 화가있다.
그럼 임신한 여자들은 다 화가 있게요?
여러분 저희 자녀가 6남매가 아니겠습니까?
엄마가 기독교 4대 집안 아니겠습니까?
매일 생각했대요. 아이 벤자는 화가 있다. 나에게는 화가 있다.
매일 회개하면서 사는거에요. 그게 아닌것을 알지 않습니까?
아이벤자가 무엇입니까? 자기 주관과 생각을 말하는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오히려 종교인일수록 새시대 말씀을 선포하면
아이 벤 자가 화가 있듯이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어떻게 얘기하냐면“어떻게 그렇게 성경이 이루어지냐. 말도 안된다.”
이시대 역시 그러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종교의 지도자들이 왔다 갔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이루어지면 너무 허무해. 어떻게 저 땅에서,
작은데서. 이건 너무 허무한 일이야.”
유대 종교인들, 자기 주관, 생각에 빠져서,
“땅에서 메시아가 나타나서, 저 애기가 우리를 구원한다고?”
믿을 수 없는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 블레셋 등 강대국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왔고,
이제는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으니
어서 하나님이 오셔서
원수들에게서 자기 민족을 구해 달라고 했는데,
‘어린 아기’가 와서 ‘평화의 왕’이라고 하며
세상을 구한다고 하니 줘도 싫습니다.
심히 걱정되죠. 정말 저가 우리를 구할 수 있을것인가.(믿겠습니까?)
“하나님이 온다. 인자가 구름 타고 온다.
불과 칼을 가지고 와서 악인들을 다 심판한다.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번개가 번쩍이듯 온다.
그가 오면 많은 자들이 통곡한다.
그가 세상을 다스린다.” 하며 엄청나게 예언했는데,
땅에서 자기들과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세상을 구한다고 하니 믿겠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예언했으나 문자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과 성자는 ‘영’으로 강림하시어
‘그 시대에 가장 합당한 한 사람의 육신’을 쓰고
순리적으로 구원의 역사를 펴 나가십니다.
뿅~! 하고 마술을 일으키듯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순리적으로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자와 함께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강림하시어
‘예수님’을 통해 불과 칼 같은 말씀으로 시대를 심판하시고,
믿는 자들의 육과 영을 구원하시고,
종에서 자녀로 부활시키며 <신약 구원역사>를 펴 나가셨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자기들이 선조 때부터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죽인 것입니다.
모르니까 예수님을 보고
“너는 하나님을 빙자하여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하느냐.” 하면서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의로운 일’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기 잘못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전합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기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최고로 사랑하는 민족으로서
성경을 보면 어떻게 기록되어 있냐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아. 이스라엘 야곱의 족속아.
처녀들아. 사랑하는 자들아.” 늘 이렇게 말씀 하셨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이 보낸 자를 죽였으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칭찬했던 자들이 생명을 죽이면 어이가 없고
행한 대로 갚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늘 이걸 가르치십니다.
“고집을 비워라. 고정관념 그 사고가 너를 죽일 수도 있으니
그걸 버려야된다”
“왜? 내껀데? 내가 살아온 내 인생의 일부야.”
근데 그것을 못버려서 메시아를 죽이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너의 주관, 너의 생각, 너의 아집,
너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대하라 합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셔도, 말씀하셔도
계속 고집대로 말씀이 들립니다.
“아니야. 그건 아니야. 요건 맞어. 저건 아니야. ”
하나님의 말씀이 이건 맞고 저건 틀린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섭리사에서도 잘한다고 칭찬했던 자들이
몰라서 생명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정말 생명 관리를 잘해야 됩니다.
전기는 어떻게 들어올까요? 그냥 빵? 마술처럼? 숑?
제가 한번 해볼까요?“꺼져랐!”안꺼집니다.
진짜 꺼지면 황당하죠. 진자 꺼지면 제가 굉장히 당황했을거에요.
꺼지라해서 꺼지지 않구요, 이 전기가 어떻게 들어오냐면,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위, 전기선이 다 깔려있어요.
배선 작업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예배를 못드립니다.
이 LED도요, “뿅 없어죠!” 뿅!~ 하고 없어지는게 아니구요,
지금 이 뒤에 배선작업이 되어있어요.
‘전기선’을 타고 ‘전기’가 옵니다 (오듯)
이와같이 하나님과 성자는‘예수님의 육신’을 타고
(‘하나님과 성자’가) 강림하십니다. (셨는데)
이 시대 역시 그러합니다.
육신은 한번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시대는 그시대 사명자를 쓰시고,
이 시대는 이 시대 사람을 뽑아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역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강림해서
전기선 타고 오듯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그래서 사람이지만,‘하나님이 임한자’다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도 맞고, 신도 맞다.
땅에서 보면 사람이요.
하늘로 보면 하나님이 임하셨으니 하나님입니다.
맞습니까? 그러나 본질은 다르죠.
하나님은 하나님. 땅의 사람은 땅의 사람입니다. 맞습니까?
그러나 ‘전기선’을 자르니 ‘전기’가 끊기듯
‘예수님’을 죽이니 ‘평화’가 끊어지게 됐습니다.
땅몰랐죠. 100%몰라서 죽였습니다. 왜 몰랐을까요? 자기 고집, 생각을
못버려서 몰랐어요. 선생님 말씀하셨죠? 눈이 아둔해서 발바닥 두께만하
다. 발바닥 뒤에 굳은살 보셨습니까? 굳은살은 막 벗겨도 안아픈게 굳은
살이에요. 발바닥 굳은살만큼 아둔하니 모르는 겁니다.
(모르고 핍박하고 죽였으나)
<사랑과 평화의 왕, 메시아>는 죽여서 없어졌습니다.
그리하여 <평화>가 깨졌습니다.
그리함으로 이스라엘은 ‘비참한 전쟁’을 맞았고 폐허가 됐습니다.
그 아름답던 이스라엘 성전도 없어졌습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통곡의 병만 남아있죠.
그곳에 가장 싫어하는, 미운 물건이 세워졌죠. 그곳에.
바로 이슬람의 성전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지은 성전인데,,,
하나님이 하신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입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서 청년들은 다 잡혀갔습니다.
하루 종일 가도 ‘청년 한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행한 대로 받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이를 예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평화롭지 못하게 하니까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전환>
* 어제는 ‘성탄 축하’를 했(으니,)죠?
자 오늘 말씀 들으니까 좀더 깊이 들어가죠?
아 이제 좀 살맛나지 않습니까?
역시, 이래서 말씀 들어야되.
어제는‘어 정말 이러고 끝나는건가? 어? 정말?’
‘아, 이러고 끝나겠지. 당연히 신입생 불러 왔으니까.’
‘그런데 이거 신약만 이야기 하고 끝나는거야?’
어 그것만 하고 진짜 끝났어요.
그래서 오늘 말씀잔치. 성탄절을 맞이한 말씀잔치.
지금부터 섭리의 향기가 막 나기 시작하네요. 섭리속의 향기.
역시 말씀이죠. 할 얘기가 많죠. 할얘기가 많아도.
2시간 이상은 요즘 안합니다.
오늘은 <성탄절>을 맞아 ‘말씀 잔치’를 해 볼까요?
성자도 원하시고, 말씀을 전해 주는 선생도 원하고,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도 원하니
말씀을 그대로 마무리하려다가
여기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해 주겠습니다.
사실 지금 전하려는 이 사연도 여러분들이 자세히 알면 좋은데요,
여러분들에게 핵심만 전달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말씀 이 말씀을 전하기 전에 한 가지만 증거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역사속의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증거 하십니다.
사람이, 자기가 행한일을 드러낸다 해도
하나님이 볼 때 아닌 일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하나님이 보실 때 맞는 일은 증거하게 하십니다.
왜? 그 일이 정말 맞기 때문에.
그중에 한 가지 사연, 여러분들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연인가 화면을 보면서 말씀을 쭉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선생은 군대에 갔을 때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전쟁터에 한 번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고,
남은 군 복무 기간 동안 ‘한국 전방’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때 북한을 보면서 항상 생각했습니다.
‘왜 남쪽 한국은 가만히 있는데,
북쪽이 한국을 쳐들어와서
6.25전쟁 때같이 또 사람을 죽이려 하지?
무차별하게 사람을 죽이는 지도자는 심판을 받아야 된다.
남쪽을 무력으로 침범하려는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60만 명의 젊은이들이 전방에서 근무하면서
추위에 떨며 지옥 고생을 한다.
북한 때문에 40년 이상 이리도 고생을 한다.
내가 북한에 가야 된다.
다윗이 악한 골리앗과 싸워서 이기듯,
내가 북한에 가서 기도해야 된다.’ 하며
“하나님, 제가 가야겠어요. 저와 같이 북한에 가요.” 하고,
한국에서 북한으로 가는 ‘간첩’을 지원했습니다.
책임 지휘관들이 내게
왜 ‘간첩’으로 북한에 가려 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전쟁>에 한 번 갔다 오고 나서 또 가려 했으나,
이번에는 ‘베트남’에 안 가고 ‘북한’에 가서
다윗이 골리앗 죽이듯 할 일을 하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군에서 서류 신청을 받고 나서 일주일 후에 다시 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동의 없이는 안 된다고 하며 못 가게 했습니다.
결국 ‘북한’에는 못 가고,
<베트남 전쟁터>에 두 번째로 가서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선생은 그때부터 전쟁에 참전하면서
‘북한의 골리앗’을 놓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후 한국에 살아 돌아와서 ‘하늘의 사명’을 받고
마치 에스더가 왕 앞에 자기 민족이 당하는 어려움을 놓고 고하듯,
한국을 침략하는 북한을 놓고 더욱 하나님 앞에 고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에
하나님은 ‘북한의 골리앗’에 대한 것을 꿈으로 계시해 주시며
제일 먼저 ‘그의 죽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21일 안에 그 지도자가 죽었습니다. <끝>
부연설명 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지금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함께 증거 하시는 말입니다.
한국의 모든 군인들, 미국과 연합해서
그렇게 치려고 했으나 치질 못 했습니다.
우린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냥 때가 되어 죽었다? 꼴좋다? 이게 아닙니다.
온 부대, 온 전체 수십만명의 사람이 해도 안되는 일을
하나님이 해서 가능한 것 입니다.
두 번째 골리앗도 죽었죠, 그것도 어떻게 됬죠?
그렇게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 했던것?
순간 허무하게 가버렸습니다.
세 번째 골리앗 역시 그렇게 된다고 하나님은 역시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를 깨고 무력으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도 이스라엘과 같은 입장입니다.
남북으로 갈려있죠, 주위에는 대국으로 둘러싸여있습니다.
중국, 그리고 일본이죠.
수도없이 침략을 당했습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이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국방력으로 해결할 수없는것이 평화입니다.
오직 메시아를 사랑 해야 이뤄집니다.
사람이 이룰 수 없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은, 1차파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때
전쟁은 죽어도 안가겠다 했습니다.
차라리 1년에 만명씩 전도하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내셨습니다. 뜻이 있었습니다.
이 베트남전에 대한 얘기도 책 3권정도를 읽어야
그제서야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핵심적으로 한가지만 이야기를 할겁니다.
선생이 2차 파월하여 두 번째로 <베트남>에 갔을 때
내가 없는 사이 우리 중대 안에서만 약 20명이 죽었고,
옆의 연대에서는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선생이 1차 파월하여 첫 번째로 <베트남>에 갔을 때는
우리 중대에서 1년 동안 두 명밖에 안 죽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3개월밖에 안 지나서 다시 갔는데,
그 짧은 3개월 만에 그리도 많은 아군들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가 없으니,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데 있어서 그냥 무조건
하나님이 선생에게 무조건 함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했기 때문에 함께 한 것입니다.
그냥이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증거합니다.
그냥 그냥 이건 그냥 내 말이니까.
아무도 모르니까 전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눈뜨고 보시고, 성자가 눈뜨고 보시면서
행한 것 그대로만 말씀을 전합니다.
선생은 적들을 향해 총은 쏘되,
적의 몸에는 총구를 겨누지 않았습니다.
도망가라고 옆에다 쐈습니다.
선생님은 또 유탄 발사기 사격수였습니다.
먼곳에서, 400M 거리이상에서 정확하게 적을 쏘는
그런 유탄 발사기 사수였습니다.
이것은 총을 잘 쏴야지만 할 수있는 것입니다.
적이 나를 죽이려 해도 죽이지 않고, <사랑의 전쟁>을 했습니다.
어느 때는 총을 버리고 쫓아가서 적을 안고 울고 기도해 줬습니다.
그랬더니 ‘나’도 살고 ‘적’도 사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죠.
“결국 옆에다가 총쏘면 그사람이 살아서 나 죽이는거 아니야?
그래서 죽여야되”다 그렇게 생각하죠.
그러나 선생님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구원과 사랑과 평화를 위해서
보냈기 때문에 나를 그렇게만 쓰셨다.”
어떻게요? 구원 하는데만, 살리는데만 쓰는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죠.
“이 적이 살아서 결국 나 죽일거니까 다 멸해야되”
그게 바로 이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저 민족이 죽어야 우리 민족이 살아.”
그래서 멸절을 하려고 하는것입니다. 이길 때가지. 항복 할 때까지.
그래야 이기니까, 내가 좋으니까. 사람의 생각입니다.
“저들이 살면 또 우리를 처들어올거야.”
하나님의 생각 다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안되는 상황에서도 꼭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생명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니
하나님께서 행한대로 갚아주셔서
적도 살고 나도 살고 우리도 살게 하신것입니다. 믿습니까?
이정도 조건은 세워야
하나님이 역사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성자의 증거를 그대로 증거합니다.
성령과 함께 말씀하니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어
내가 속해 있는 중대의 전우들과 한국군들이
많이 안 죽도록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선생이 한국에 왔다가 다시 2차 파월해서 가 보니,
선생이 없었던 3개월 동안
우리 중대에서만 20명 이상이 죽었고,
옆의 연대는 적의 대대가 쳐들어와서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그때 중대장이 정말 고민을 했던 내용이
다 베트남전 안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때 시체를 치운 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하루 종일 아군의 시체를 차로 실어 냈다고 했습니다.
마치 돼지들이 떼로 죽어서 차로 실어 내는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2차 파월하여 다시 1년 동안 <베트남 전쟁터>에 있었습니다.
그때 <도깨비 6호 작전>을 했습니다.
베트남전 읽어보면 재밌는데요,
제가 군대 얘기 제일 싫어하고, 제일 이해 안되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전 3권 다 읽어보면요, 눈물이 축축 흘러요. 진짜로.
그래서 저를 쓰셨나봐요.“네가 은혜 받으면 다 은혜받을것이다.”
왜? 군대쪽으로 정말 차원이 낮거든요.
전혀 아무것도 이해를 못하니까요.
그런데 베트남전 3권을 다 읽고
선생님과 글작업을 하면서 정말 군인이 다 됐어요.
이 안에서 도깨비 6호작전을 했는데, 되게 유명한 작전이었습니다.
이때 어떤 적들과 붙었냐면,
그 작전 때 선생이 잠시 한국에 귀국했을 때
우리 옆의 연대원들을 싹 쓸었던 적의 대대와 맞붙게 됐는데,
그 대대를 멸하여 수백 명의 적군들이 죽었습니다.
우리 중대 앞에서 죽은 적들만 해도 벌판에 늘비했습니다.
그 전쟁으로 죽은 적들이 2~300여 명 됐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들에게 붙여서 쳐부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선생은 ‘적의 몸’에 총을 안 쏘고
도망가라고 ‘적의 머리 위’에나 ‘공중’에 총을 쐈습니다.
아까도 말했죠, 하늘의 말씀을 지킬 자,
이 말씀을 평화의 전쟁으로 이끌어갈 자
그 조건이 한곳에서 일어나야 그 조건에 의해서
평화로 끌어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해하지 않았습니까?
선생은 나의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했습니다.
왜 베트남에 가기 싫다고 하는데도 그렇게 보냈냐면
“네가 가야한다. 조건 세우라”했습니다.
예수님의 조건 하나가 전 세계를
아들로 부활시키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 사명자의 조건이 크다고 예기하는거죠.
그렇게도 산과 들을 누비면서 수많은 전투를 했지만,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나의 생명을 지켜주셨고,
그러면서도 절대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하게 하셨고,
그 후 3년 있다가 혹독했던 베트남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거 생방송으로 할려다가 시간이 안맞아서 교역자에게 맡겼거든요.
원래 따지면 5시간짜리 말씀인데 줄여서 이야기를 해야되서..
보세요. 이 베트남 전쟁이 어땠냐면,
인류 역사상 최고로 혹독했던,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아주 잔인한 전쟁의 하나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수치가 됬어요. 베트남전쟁 때문에,
그런데 이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했던 10여년만 전쟁을 한것이 아니라
이미 40년 전부터 프랑스로부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계속 전쟁을 해왔어요. 그리고 안에 남북이 갈라져서 내전이 일어나고,
일본하고 전쟁하고, 프랑스는 독립 안줄려고 계속 침투해주고,
그러다가 프랑스가 포기 해버린거에요.
그런데 미국이 다시 들어온거에요. 난 포기 못한다.
그러다가 혹독하고 잔인한 전쟁이 시작된겁니다.
그래서 40년을 갔어요. 이 전쟁이.
오늘 교역자가 이 부분이 이해가 안된다고 문자가 많이 왔거든요.
어? 미국이랑 전쟁한건 10몇년밖에 안됬는데
40년동안 일어난 전쟁이 끝난다면 말이 안된다구,,,
그게 아니라구, 30년을 베트남을 고통속에 있다가
나중에 미국한테 엄청 당한겁니다.
엄청난 첨단의 무기를 가지고서 초토화 시켜버렸어요.
어떻게 했냐면, 여러분 옜날에 영화좀 보셨죠?
전쟁 일어나면 어떡하죠? 그냥 위에서 다 쏴버리죠.
그래서 어떻게 됬었냐면,
이 베트콩들이요, 베트남 지형이, 요롷게 다,
저도 안가보기도 했는데요,
머릿속에 다 들어있어요. 글을 하도 많이 봐가지고.
바위로 되어 있습니다. 바위 지형으로.
근데, 이래서 베트콩들이 이겼습니다.
왜냐면은, 그 지형을 아는 사람들은 민간인밖에 없는거에요.
그니까 적군들이 들어와도 파악을 못하는거에요.
그런데 미국사람들이 그렇게 못하니까
미군들이 위에서 포를 때려버리는겁니다.
래서 밑에 운둔해있던 베트콩들은 바보가 되는거에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너무 땅이 떨려서.
베트남이 지금도 전쟁으로 인한 복구를 하지 않습니까?
땅이 다 초토화가 된겁니다. 이런 혹독했던 전쟁이.
사랑과 평화의 전쟁 후, 한때 두때 반때후, 3년 후에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자를 통해서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끝나게 하신 후에,
이 전쟁을 끝나게 하신것입니다.
(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렇게 하면,
그 적군이 살아서 또 아군들을 쳐들어와 죽이지.’ 합니다.
이것은 <사람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안 되는 상황에서도, 꼭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자기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생명을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어
‘나’도 살게 하시고, ‘우리’도 살게 하시고,
‘적들’도 살게 하십니다. )
평소에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전능자는 ‘전능자의 말씀을 행하는 자’에게 절대 함께하십니다.
선생은 나의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성자께서 ‘구원과 사랑과 평화’를 위해 보냈기에
나를 그렇게만 쓰셨습니다.
그렇게도 산과 들을 누비며 전투를 했지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나를 지키시며
절대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하게 하셨고,
그 후 3년 있다가
40년 동안 지독하게 계속됐던 <베트남전쟁>이 끝났습니다.
선생은 ‘전쟁 중의 극한 상황’에서
형제를 네 몸같이 여기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최고의 한 법>을 실천했습니다.
성자께서 이 부분을 가장 크게 보시는 것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처음 들으면 감동이 그렇게까지 안오겠지만,
먼저는 선생님의 글 작업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구요,
10년동안 다듬고있으니까.
그 심정을 깊이 이해하면 정말 전쟁의 울림같이
여러분의 뇌속에 울림이 일어날겁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은 ‘사회 경력’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경력’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성경을 이룬 경력’만 화려합니다.
‘세상 경력’도 세우기 어렵지만
‘성경을 이루는 경력’ 세우기가 더 어렵습니다.
성경을 이루면, ‘하나님이 시대에 쓰시는 주인공’이 됩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핍박했지만
‘원수를 멸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해서도 안 되고
혼자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뤄야 되기에
원수라고 해서 절대 멸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정말 그의 제자이고 성자의 신부라면,
그의 뜻을 따라야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에게 해가 됩니다.
그런 일이 몇가지 있었기 때문에.
참는다고 참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고 주인이 되었기에 안 하는 것입니다.
한번 예를 들어드릴게요. 졸려요. 졸린거 하나만 예를 들어볼게요.
졸지마! 한다고해서 참아집니까? 그러면 더 미친다니까요? 진짜?
안졸고싶은데 이게 안된다니까요? 참신기하죠?
여러분 다 얘기할까요? 맞아요. 제가 답을 얘기 안해도 다 알거에요.
졸린다고 조는게 아니더라고요. 말씀들을때.
정말 깨달으면 안자도 들리더라구요.
여러분 그런 일이 발생할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졸린다고 다 졸린게 아니더라구요.
막는다고 다 막아지는게 아니더라구.
내가 깨닫고 내가 순간 정신을 차리면 그 정신이 돌아와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과학적으로도 맞는 말이에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진짜 일주일씩, 이틀씩, 3일씩 밤새는데
정신차리는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어제 하루 잠깐 피곤했다고 해서
오늘 막 조는것은 사람 하기에 따라 다릅니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
본인이 얼마나 깨달았느냐에 따라서 완전 달라집니다.
여러분 다 경험해보셨죠? 그쵸 그쵸?
어느날은 10시간씩 자고왔는데도 엄청 졸립잖아요.
어느날은 2시간 3시간 자고왔는데 그렇게 말씀이 잘들리지 않습니까?
달라요. 참는다고 모든 것이 참아지는것이 아닙니다.
깨닫고 주인이되면 안해요. 그리고 조절하겠죠.
“내가 잠을 못자면 내일 분명히 말씀 못들을거니까 그냥 자야되!”
그러고 불 끄고 이불 쓰고 자잖아요.
일본사람들이 이걸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11시가 되면 불을 다 소등합니다.
왜냐면 새벽기도 가야된다고 하면서,
한국에 있는 주님의 교회 사람들 가서 다 놀랬죠?
“아니, 목사님 다자요. 11시 되면 불끄고 다 자요.”
안하는 사람 있으면 조금 특이한 사람인거에요.
안해요 안해요. 조절을 다 한다는 겁니다. 맞습니까?
산에서 토끼를 사냥하는 자들도
하지 말라고 말린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산을 내가 쓰니 내 산이다.
이곳에 산짐승들이 와서 사니, 내 동물이구나.
죽이면 안 되겠다.’ 하고 깨달으면 총을 버리게 됩니다.
사람은 하지 말라고 말린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말린다고 안했으면 매일 설교중에 말리는 설교만 했을걸요?
“안하길 바란다~ 내가 말린다~ 오늘 거기 안가기를 바래~
내가 너를 말린다~ 내가 말려 너를~”
그러면 우리를 말리니까~? 말린다고 안하면 다 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말린다고 안하는게 아니잖아요.
혈기를 못 내게, 화를 못 내게 막는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쳐서 깨닫게 해야 됩니다.
섭리사 여러분 말씀 보세요.
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하지말아야 하는지,
그걸 다 설명해주니까
말씀이 기성보다 두배, 혹은 세배 깁니다.
설명을 해줘야되기 때문에, 가르쳐서 깨닫게해야되기 때문에,
본인이 알고 깨달으면,
도끼 가지고 자기 발목을 안 찍듯 화를 안 냅니다.
여러분, 도끼가지고 여러분 발목 찍을 사람 있어요?
알면 안한다는 겁니다.
왜 ‘가르쳐서 알게 해줘’야 되는가
실제 사례를 말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이야기.
어떤 사람이 북한에서 한국으로 왔다가
한국이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실망하고
또 부모가 보고 싶어서 다시 북한으로 가려고 하다가
잡혀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계속해서 마음을 못 잡고 온갖 생각을 하면서
한국에서 사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며칠 동안 만날때마다 이야기해 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 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네가 북한에 있을 때 너무 배고파서
풀뿌리를 캐 먹으면서 그리도 울어 대서
하나님이 보시고 ‘안 되겠다.’ 하고
‘남쪽으로 내려갈 마음’을 주셔서 오게 된 것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올 때
그 추운 강을 헤엄쳐 건너오는 중에
떠내려가서 죽을 뻔한 것을 하나님이 잡아 주셨다.
또 북한군들의 눈에 띄면 잡히니
눈에 안 띄도록 안개가 끼게 하고 비가 오게 해 주어
한국까지 오게 해 주셨다.
그 후에도 다 올 때까지 때마다 사람을 보내어
한국까지 오게 하신 거야.
이제 마음 고쳐먹고,
여기서 나가면 한국에서 배불리 먹고 살아 봐.
너 북한에 있을 때는 비쩍 말라서 50kg이었는데
지금은 80kg이나 나가잖아.
여기 와서 축복받아서 코끼리 되고, 돼지 됐잖니.
그게 네 소원이었잖아.”
하며 몇 번을 말해 주니 깨닫고, 한번이 아니라
몇~번을 말해주니 그제야 깨닫고
평생 하나님을 믿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설명 진짜 잘해줬죠? 그쵸?
우리도 몇 번을 생명들에게 설명을 해줘야됩니다.
한번,“본체 분체 알겠어? 못깨달았어?”이러지 말고
“이랬잖니~ 저랬잖니~”하면서 설명을 해줘야되겠습니다.
그리고 또 말해 주었습니다. 아~ 이게 우리랑 다른점이죠.
“나가서 살다가 힘들면, 내 이름 대고 찾아와.
나 있는 곳에서 나무도 손질해.
내가 땅도 줄 테니 옥수수, 감자 농사도 지어 봐.
농사지으면 내가 팔아 줄게.” 했습니다.
그러니, 얼굴에 생기가 돌고 빛이 났습니다.~ 뒤까지 책임을 져주면서
누군가가 후원을 해준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희망을 가지고 좋아하다가 나갔습니다.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게 해야 좋아합니다.
하지마, 가지마, 한국 좋아, 북한보다 좋아. 가지마.
이러면 안가는게 아니에요. 이해시켜주고, 설명시켜주고.
우리도 똑같에요.“기성과 우리는 달라. 알지? 깨달았지?
오늘 말씀 들어봤지? 완전 다르잖아?”
그러면 애들이 반응이 어떻죠?
‘옹?’이러니까 다시 저한테 문자 보내죠?
“목사님 얘가 기성의 차이점을 못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정말 반성해야됩니다 여러분.
몇 번을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줘야됩니다.
이와같이 해야됩니다.
선생님께서 우리를 이와같이 가르치셨기 때문에
우리 지금 이나마 있는거에요.
여러분들이 처음에 말씀 이해 못했던 때를 생각하면서,
지금도 말씀 이해 못하는 자들 꾸준히 가르쳐주면서
꾸준히 가르쳐주면서 성장시키고 이해하게 해줘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늘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게 해주고,
그 생명이 처한 상황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으니까
기도하면서 지혜 받아서 이와같이 말해주는겁니다.
오늘 사연 잘 기억하시고,
‘아 저렇게’동서남북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죠. 짧은 말에.
그렇게 설명하면서 주와 같이 생명 살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전쟁터에서 ‘적’은 기회만 있으면 쏴 죽이려고
총구를 겨누고 총을 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기회만 있으면 <살릴 기회>를 찾아서
적군들도 아군들도 살렸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예수님을 부르면서
<사랑과 평화의 전쟁>을 했습니다.
모두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는 자기에게 ‘말의 총과 검’을 던져서 아프게 해도
자기는 기회가 있는 대로 ‘사랑과 화평의 말’을 해야 됩니다.
조건이 붙었죠. 기회가 있는데로. 기회만 나면.
기회만 나면 피하려고 하지말고 기회만 있으면
사랑과 평화의 말을 해야됩니다.
정말 이런자에게는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그런 자와
함께하십니다.
신부는 ‘성경말씀을 지키는 재미’로 살고
‘신랑 되신 성자의 말씀을 지키는 재미’로 사는 것입니다.
이 맛에 대해서는 주일날 더 해드리도록 하구요.
선생이 <성경말씀>을 지키고 <성자의 말씀>을 지켰으니 이야기하지,
안 지켜 놓고 10년, 20년, 30년 동안 계속 이야기하겠습니까?
지킨것은 평생 이야기하고, 천국가서도 영원히 이야기합니다.
“나 그때 사랑했잖아요.~ 원수를 사랑했잖아요~”그러면 성자께서
“네입! 그거! 귀! 지겹다! 그만하자!” 그러는것이 아니라,
말할때마다“그렇군~ 정말 잘했구나~”하시죠 아시겠습니까?
한번 행하고 영~~어엉원히 말하는거에요. 아시겠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맛이 나고,
지킬 이유가 명백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평화롭게 살면 개인도 민족도 10000배나 좋게 되고,
미워하고 싸우면서 살면 전쟁을 안 해도 10000배나 손해 간다.”
하셨습니다.
평화입니다. 평화. 그래서 어제 계속 외쳤잖아요.
“펴어엉ᄋ화~ 평엉ᄋ화~”
선생이 겪고 나서 보니, 정말 성자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철학은 이것입니다
“좋은게 좋은거다 누가 나쁘게 대하더라도
궂이 니가 나쁘게 대할 필요가 있냐? 좋게 대하라.”
어떻게요? 처음에 들으면 진짜 황당하다니까요.
“어어엉?? 어떻게요?” 지금은 아멘하죠?
지금은 아멘 잘한다니까요?
생활가운데 그 일이 닥치면“내가 그거는 못하겠습니다.”
나온다니까요.
그래도 평화롭게 살면 개인도 만배나 잘됩니다.
선생은 지금도 ‘대통령, 국회, 국방, 판검사들’을 놓고
매일 하루 세 번씩 꼭꼭 기도 조건을 세웁니다.
전쟁 중에서 성경을 지키고 살아 돌아온 자가 기도하고
시대 사명자가 기도하니
하나님은 피하지 않고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자를 절대 피하지 않습니다.
한국만 잘돼도 안 되니, 전 세계를 놓고 기도합니다.
한국은 전 세계의 140분의 1밖에 안 되니
한국만 평화롭게 되어서 140명 중의 한 명만 평화로우면,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전 세계가 다 평화롭게 되도록 기도합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개미>도 ‘조건’이 없으면 못 잡아당긴다.
<코끼리>라도 ‘조건’이 있으면 잡아당길 수 있다.”
그러니 ‘기도 조건’을 세워라.
네가 기도 안 하면 큰일 난다.” 하고 깨우쳐 주셔서
선생은 섭리뿐 아니라
민족과 세계, 모든 종교들을 놓고 다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평화의 왕, 예수님’을 보내셨을 때,
제일 먼저 ‘종교인들’이 평화롭게 대하지 않고 미워해서
전 세계의 판국이 ‘전쟁’으로 변하게 됐습니다.
믿는 자들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 됩니다.
그의 법을 지켜야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천국에 가려고만 하지,
<성경의 법>은 안 지킵니다.
그러니 그 값을 <보낸 자>가 다 받고
대신 ‘시대 십자가’를 지고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평화>가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평화>가 없습니다.
상대가 잘못했어도 무조건 사랑해 놓고 봐야 됩니다.
잘하는 자를 사랑하고,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표적’이 아닙니다.
못하는 자와 자격이 없는 자도
사랑으로 대하고 평화롭게 해야 ‘표적’입니다.
누구든지 ‘사랑과 화평’으로 대하는 것은
성자의 신부라면 모두 다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을 안 하면 ‘신부’가 아니고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한 자가 기도하니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도’를 실천한 대로
그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섭리인 모두는 교회마다, 가정마다 절대 평화롭게 해야 됩니다.
<평화의 기준>을 세워야
하나님은 그 행한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펴십니다.
행하지 않는 자를 통해서는 뜻을 안 펴십니다.
<평화>는 ‘절대 사랑’입니다.
<사랑> 없이는 평화롭게 못 합니다.
<전환 : 마무리>
* 이제 다시 ‘메시아 강림’에 대한 말씀을 하면서,
<성탄 말씀>을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들이 메시아를 몰라서 맞지 못하여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의 길, 고통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온다.”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며
<신약 2000년 역사>를 펴 왔습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이 온다. 구름 타고 온다.
불에 옹위되어 수레를 타고 온다.” 했고,
<신약 때>는 “예수님이 온다. 구름 타고 온다.
하늘에서 영광으로 온다. 기다려라.” 했습니다.
<구약 4000년> 동안 ‘하나님’을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안 오시고 ‘예수님’을 통해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 2000년> 동안 ‘예수님’을 기다렸으나
그가 하늘에서 구름 타고 왔습니까?
이미 ‘오실 때’가 지난 지 14년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메시아를 다시 보내 주십니다.
그런데 누가 다시 오겠습니까?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선생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신 성자께 21년 동안 성경을 배우고,
‘메시아 강림과 재림’에 대해, ‘성경’에 대해 제대로 알고
36년 동안 가르치고 외쳐 왔습니다.
“내 말 좀 들어 봐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대로는 안 온다.
하늘 구름 타고 안 온다. 땅에서 온다.
주관권 역사다.
예수는 <신약 주관권 역사>를 편다.
육신은 한 번 죽으면, 다시 못 산다.
<성약 재림의 뜻>은
하나님이 예수님 시대처럼
‘그 시대에 합당한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를 키우시고 가르치시고 성장시켜
‘그의 육신’ 쓰고 와서 펴신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리함으로 메시아 재림주를 허황되게 기다리게 하지 않고
‘하늘 구름’을 쳐다보게 하지 않고
‘인구름’을 쳐다보게 하며
‘성경에 예언된 뜻’을 펴면서 왔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메시아’를 허황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순리에서 벗어나 꿈결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사랑과 평화의 왕’으로 보내셨는데,
육적인 자들이 메시아를 ‘사랑’으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함으로 ‘평화’가 깨졌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너무 ‘오해’를 잘합니다.
헤롯 왕은 ‘종교의 왕, 예수님’을 오해하여
예수님이 자기 앞에 나타나 ‘자기 왕 자리’를 뺏을까 봐
잘못된 생각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 당시에 많은 생명들을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위치에 올랐는데,
옆에 누가 또 나타나면 의식하고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듯 모함하고 몰아내려 합니다.
그런 자들은 다 ‘헤롯 족속들’입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이 나타나니 죽이려 쫓아다녔고
천주교인들은 ‘루터’가 나타나니 죽이려 쫓아다녔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새로운 역사를 펴시니,
이 시대에 무지한 자들도 혈안이 되어
‘시대 사명자’를 잡아 가두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그리도 핍박했으나,
결국 예수님을 중심한 <신약역사>는
2000년이 흐른 지금, 온 지구 세상을 덮었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섭리역사, 성약 재림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앞으로 100년만 가도 ‘시대 복음’이 지구를 뒤덮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누가 핍박하고 막는다고 막아지지 않습니다.
누가 아니라고 해서 아닌 것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신 뜻>을 결코 이루고 마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제 하나님은 성자와 함께 구원의 차원을 높여
“이 시대 보낸 자를 믿고 따르고,
그를 통해 선포하는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더 사랑하여 ‘신부’같이 대하겠다.” 하며
<사랑의 역사>를 선포하셨습니다.
<평화>는 <사랑>입니다.
결국 <사랑>만이 온 세상을 잡아 다스리고,
생명길로 가게 하고,
이 시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합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세상은 ‘사랑’을 깨뜨려도
우리만이라도 깨뜨리지 말고 서로 화평, 서로 사랑으로 대해야
<휴거의 새 역사>를 펴 나갑니다.
한 곳이라도 샘물이 있으면 모두 목마르지 않고 살게 되듯,
우리만이라도 ‘사랑’을 깨뜨리지 않고 하면
생명들을 다 살릴 수 있습니다.
선생은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보냄을 받은 자 예수님을 그같이 사랑하니
근본자 성자를 그같이 사랑한 것이 되어
‘성자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예수님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니 예수님이 성자께 추천하여
이 시대 뜻을 펴는 데 ‘성자의 몸’이 되었습니다.
벌써 성자가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오셔서
아들의 말씀을 선포하며 행하신 <신약 2000년 역사>가 끝났고,
성자가 ‘이 시대 사명자의 육신’을 쓰고 오셔서
신부의 말씀을 선포하며 행하시는
<성약 1000년 역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성경에 예언된 <휴거 역사>도 진행되고 있고,
이제 성자는 ‘땅에서 성자로서 할 일’을 다 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시는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모두 성삼위를 사랑하고, 시대 보낸 자를 사랑하고,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늘에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가 옵니다.
그래야 <구원과 휴거의 역사>가 찬란하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를 사랑하면서 기도하고
형제를 사랑하면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사랑하니 희생해 주고,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예수님의 나심>을 축하하며,
더불어 <이 시대 축복의 역사>를 맞은 것을 감사하며,
사랑과 평화의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영광 돌리기를 바랍니다.
* 말씀 여기서 마칩니다. 성자의 사랑과 평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