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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4.12.28 (일)

141228 주일말씀 인생 사는 맛

선포일
2014.12.28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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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8일 주일말씀> 인생 사는 맛 본 문 시편 28편 5절 할렐루야! 하나님과 성자의 사랑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이 <2014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단 한 주도 빠짐없이 말씀을 주시고, 단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말씀까지 주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주신 성자와 그 말씀을 펜으로, 손으로 다 받아써서 전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와 사랑의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성자께서 <2014년 마지막 주일말씀>으로 ‘인생 사는 맛’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2014년의 마지막 주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말씀’으로 성자와 주와 호흡하며 ‘말씀’으로 성자와 주와 심정과 마음을 맞추며, 감사와 사랑과 감동과 기쁨이 넘쳐 나는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닫도록 ‘맛’에 대해서 설명해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 음식은 ‘성분’에 의해 ‘맛’이 각각 다릅니다. 또한 음식은 ‘요리’하기에 따라서 ‘맛’이 달라집니다. 음식은 ‘맛’ 때문에 사람들이 더 찾기도 하고, 음식 값이 더 비싸지기도 하고, 음식점이 멀리 있어도 그곳까지 찾아가게 됩니다. 그 ‘맛’ 때문에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됩니다. 만일 음식이 맛이 없다면, 음식으로 인한 기쁨도 없고, 느낌도 없고, 별 생각도 없을 것입니다. <끝>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음식도 ‘맛’이 있어야 찾게 되고 기쁨을 얻듯이, 인생도 ‘맛’이 있어야 기쁘고 보람 있다. (잠시 쉬었다가) <인생의 맛>은 무엇이냐? (잠시 쉬었다가) ‘생각하는 것’이다. <음식>은 요리하기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고, <사람>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사람이 생각을 안 하면, 인간으로서 ‘각종 맛’을 못 느낀다. 사람이 생각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음식을 먹지 않는 것과 같아서 ‘인생의 맛’을 못 느낀다.” (하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 사람이 ‘먹는 것’이 희락이고 천국인데, 음식이 맛이 없으면 ‘음식 희락, 음식 천국’을 못 느낍니다.  사람도 생각을 안 하면, 뇌가 굳어서 ‘인생의 맛’을 못 느끼고, 맛을 모르니 기쁨이 없습니다.  생각을 안 하면 뇌가 굳고 멍청해집니다. 총명함이 없어지고 흐리멍덩해집니다.  그러다 결국 ‘맛을 잃은 굳은 뇌’가 되어 ‘맛을 잃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 사람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맛’을 느낍니다. 좋게 생각해야 ‘좋은 맛’을 느낍니다. 나쁘게 생각하면 ‘나쁜 맛’만 느끼게 됩니다.  그러나 ‘좋은 생각’도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가 계속 ‘좋은 생각’을 한다 해서 계속 좋게 느끼기에는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의 육신>은 항상 ‘육적인 것’을 생각합니다. ‘자기 삶, 자기 생활’을 생각합니다. ‘지구 세상 주관권에 해당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고로 <육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니,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해도 한계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살고 있어도 막상 생활할 때는 ‘자기 생각’을 합니다. 자기 삶에 처해서 그 생각에 빠져서 행합니다. 이런 자들은 그냥 믿기만 하고 사는 자들로서 ‘믿음’으로 <하나님 주관권 안>에서 살고 있기는 합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성자는 이것을 지적하시며 “믿고만 사는 것이 인생으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인 줄 알고 산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선생은 지난 세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기만 하고 교회에 가서 기도만 하고 찬양만 하는 차원에서 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성자의 수준을 맞추는 ‘분체’가 되지를 못합니다.  선생이 지난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으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한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으니, 핵심만 말해 주겠습니다. 잘 듣고 모두 표상자같이 살라고, 오늘 말씀을 해 주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주일을 지키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사는 것은 <기본 생활>입니다. 이같이 살면 ‘하나님 주관권 안에서 사는 자’ 취급을 받습니다.  선생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살면서 매일 수시로 의논하고, 이야기하고, 가장 우선순위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항상 생각하여 그 생각을 알아내고, 늘 대화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종일 찾아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으면 즉시 행했습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기만 하고, 생활할 때는 자기 생각, 자기 삶, 자기 생활에 빠져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체 신앙’입니다.  삼위일체를 ‘부모’로 믿기만 하고 ‘애인’으로 믿기만 하지, 자기 삶 속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살면 <인생의 맛, 신앙의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믿기만 하고, 주일만 지키고, 찬양만 하고, 기도만 하지 말고, 자기 삶 속에서도 계속 생각해야 됩니다.  한 지붕 아래 같이 살아도 생각하지 않으면, 서로 몸이 닿고 같이 밥을 먹어도 그 마음과 생각을 모릅니다. 고로 심정에 안 맞아서 ‘남남’과 같습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으면서 <하나님 주관권 안>에서 같이 살아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 마음과 생각을 모릅니다. 삶 속에서 늘 하나님, 성령님, 성자 생각을 해야 수시로 말씀하시는 삼위일체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게 되고, 자꾸 물어보고 그것에 대해 대화하게 되고, 그러니 더욱 정이 붙고 사랑이 붙게 되고, 알고 깨달으니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섭리를 사는 맛, 신부로서 사는 맛’입니다.  부모도, 형제도, 애인도, 부부도, 사랑하는 자도 믿기만 하고 그냥 살면, ‘각각 자기 삶’입니다. 늘 생각해야 됩니다. 의논해야 됩니다. 대화해야 됩니다. 말해야 됩니다. 이것을 안 하면 ‘같이 사는 맛’이 없습니다. 또한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 <인생의 맛>은 첫째, ‘생각하는 맛’이고, 둘째, ‘행하는 맛’입니다. <끝>  사람이 생각해야 생각에 따라서 ‘맛’을 느끼고, 자꾸 움직이며 행해야 그 행위에 따라서 ‘삶의 맛’을 느낍니다.  몸은 서로 닿아야 느낍니다. 바람도 불어와서 몸에 닿아야 차갑고 더운 것을 느낍니다. 이와 같이 행해야 ‘맛’을 느낍니다.  눈은 봐야 느끼고, 귀는 들어야 느끼고, 말은 해야 내용대로 느낍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몸은 행해야 ‘삶의 맛’을 느낍니다.  생각으로 하면 ‘생각’이 맛을 느끼고, 몸으로 하면 ‘몸의 신경’이 맛을 느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존재하셔도, 자기와 함께하셔도, 자기를 도우셔도, 자기에게 말씀하셔도 가만히 있으면 못 느낍니다. 성자와 분체가 옆에 와 있어도 자기가 생각하지 않으면 평생 못 느끼고 모릅니다. 생각해야 생각으로 느낍니다. 또한 자기가 행하여 몸에 닿게 해야 몸이 느낍니다. <끝>  <몸>이 가만히 있더라도 <생각>이라도 하면, 생각이 느낍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부르며 합당한 기도를 하면, 생각이 일체 되어 생각이 삼위일체께 닿아서 느껴지고 깨달아지고 감동됩니다.  성자를 생각하여 <생각>이 성자께 닿으면, ‘생각’이 성자를 바로 느낍니다. 자기가 성자의 생각대로 행하여 <몸>이 성자께 닿으면, ‘몸’이 성자를 바로 느낍니다. <영>이 성자께 닿고 <영의 생각>이 성자께 닿으면, 성자를 바로 느낍니다.  결혼해서 ‘살’이 닿고 ‘마음과 생각’이 닿아 늘 말하고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의논하고 같이 행하면서 살듯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도 그렇게 살아야 관심과 사랑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 성자와 분체를 진정 사랑하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성자와 분체를 진정 사랑하면, 그 말씀을 안 지킬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고 관심이 있는데 대화를 안 할 수가 없고, 기도를 안 할 수가 없고, 감사를 안 할 수가 없고, 매순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끝>  사람이 ‘말’로는 별말을 다 하면서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지는 ‘그 생각과 행실’을 보면 압니다.  실컷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불현듯 아쉽거나 힘들면, 그제야 성자와 분체를 생각합니다. 마치 미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바깥을 쏘다니다가 비가 오니 집 생각이 나서 그제야 전화하듯 합니다. 이런 신앙생활로는 <휴거>가 안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 <천국 황금성>은 범사에 ‘성자와 주’를 생각도 안 하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하늘의 최고 수준의 신부 말씀>을 듣고, 정말 ‘신부로서 같이 사는 삶’을 살면서 최선을 다해 행해야 가는 나라로 하나님은 아예 정하시고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끝>  섭리사를 벗어나서는 온갖 행위를 다 해도 <황금성>에 못 갑니다. 섭리사를 벗어나서 하나님을 믿으면, 이는 마치 죽음의 선고를 받았는데 모르고 충성하는 격입니다. 마치 폭발하여 추락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희망으로 가는 격입니다. <전환>  이 말씀이 <올해 마지막 주일설교>입니다. 2014년 올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살았는지, 제대로 못 살았는지 <올해 마지막 주일설교>를 통해 가르쳐 줬습니다.  오늘 말씀을 잘 듣고 2015년부터는 ‘정말 온전한 신앙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성자가 가셔도 늘 교통하게 됩니다.  성자가 가시면 <교통하는 시대>로 바뀝니다. 그동안 성자가 옆에서 같이 사셨는데도 대화 한 번 못 해 본 자는 얼마나 억울합니까? 이제 애인과 같이 살다가 애인이 외국으로 가고, 전화만 하는 격이 됩니다. 더 이상 성자가 옆에서 같이 사는 때는 없습니다. 이제 천국에 가서나 보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겨서 성자를 늘 생각하고, 성자와 대화하고 이야기하면서 <교통하는 삶>을 꼭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교통마저도 못 하면 외롭고, 쓸쓸하고, 곤고하고, 힘듭니다. 고생길이 확 열려서 그 길로 가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 오늘 말씀은 <인생의 맛, 섭리의 맛, 신부들이 사는 맛>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를 항상 생각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를 항상 불러야 됩니다. 부르면, 100% 통합니다. 항상 생각하고 부르면서 통하며 살아야 신부로서 섭리 인생을 사는 맛이 나고, 생활의 맛이 나게 됩니다. 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해 고통이 임한다.” 하셨습니다. 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생각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의논하고 이야기하고, 그 생각대로 행해야 인생의 맛을 느끼고 마음 천국, 생활 천국을 이루며 휴거되어 삽니다.  집에서도 부모와 형제에게 관심을 가지고 늘 이야기하고 의논하여 같이 행해야 마음으로도 삶으로도 가정의 맛을 느낍니다. 그리함으로 평화롭고 화평한 가정이 됩니다.  교회에서도 교역자와 지도자들과 교인들과 늘 의논하고 이야기하고 같이 행해야 맛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고 화평하고 화목하게 됩니다.  늘 주를 생각하는 신앙을 하고, 늘 주와 의논하고, 상의하고, 대화하고, 기도로 통하고, 글로도 통해야 생각의 맛, 신앙의 맛, 인생의 맛을 느끼고 <천국>이 됩니다. 또 말씀대로 행해야 지상의 삶이 <천국의 삶>이 됩니다.  성자를 중심하여 늘 ‘생각’을 놀리지 말고 생각하여 <마음 잔치>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 오늘의 마지막 영상입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 나쁘게 생각하면, ‘나쁘고 괴로운 맛’을 느끼게 됩니다. 악하게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면, 즉시 ‘고통’이 옵니다.  <육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성자와 주와 함께 ‘좋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생각’이 <꿈>이 되어 더욱 기도하고 행하게 되고, 그것을 행함으로 ‘기쁨의 맛’을 보게 됩니다. 그리함으로 육도 영도 ‘더욱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고 ‘희망’이 생깁니다. <끝> * 이제 모두 이해하고 깨달았으니,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 앉으나 서나,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성령님 생각, 성자와 분체 생각을 하면서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기 바랍니다. 그 생각으로 새해에 좋은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희망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