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4.12.28 (일)
주일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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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8일 주일말씀>
인생 사는 맛
본 문 시편 28편 5절
할렐루야!
하나님과 성자의 사랑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의 역사가
2014년 마지막 주일, 섭리역사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이 <2014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2014년 한 해 동안 단 한 주도 빠짐없이 말씀을 주시고,
단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말씀까지 주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주신 성자와
그 말씀을 펜으로, 손으로 다 받아써서 전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와 사랑의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한국 교단, 한국에있는 현직 목회자들,
그리고 목회를 막 나가기 직전에 있는 몇분들과 함께
생방송 현장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맡아야될 목회자들이 받아야될 교육은 또 따로 있기 때문에,
오늘은 현직 목회자들만 이곳에 참여해서 예배후에 교육을 받게됩니다.
부서 중앙은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다음에 또 따로 다시 교육해주신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당 뒤쪽에 중고등부가 많이 배치가 되어있는것 같은데요,
거기서 성자를 모시고, 뜨겁게 말씀 듣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은 성자께서 <2014년 마지막 주일말씀>으로
‘인생 사는 맛’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인생 사는 맛, 맛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으면
맛을 느끼도록 행해야 되는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인생사는 맛, 또 다른 말로 하면,
‘섭리를 사는 맛’.
우리는 섭리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또 하나는‘신부로서 사는 맛’.
‘인생 사는 맛’,‘섭리를 사는 맛’,‘신부로서 사는 맛’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들이 2014년을 제대로 살았는지,
못살았는지 점검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1차 점검을 하고,
2차 12월 31일 송구영신 말씀을 통해 점검을 하면서
연말을 매듭짓도록 할겁니다.
오늘 설교를 해야할 목회자들이 현장에 참석해있기 때문에
오늘도 전체 생방송으로 함께 말씀을 듣게됐습니다.
12월 계속 생방송으로 함께하니 좋습니다.
생방송 현장에서 함께 하고 계신 여러분 모두와,
그리고 각 교회에서 함께하고 계신 여러분 모두
<2014년의 마지막 주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말씀’으로 성자와 주와 호흡하며
‘말씀’으로 성자와 주와 심정과 마음을 맞추며,
감사와 사랑과 감동과 기쁨이 넘쳐 나는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 사는 맛, 섭리를 사는 맛, 그리고 신부로서 사는 맛이 무엇인지
그 말씀, 시작해볼까요? 귀한 말씀, 맛있게 드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
<말씀 시작>
(*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닫도록 ‘맛’에 대해서 설명해 주겠습니다.
여러분 배고픈 시간인데요, 배고프게 맛에 대해서
설명을 잠깐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음식은 ‘성분’에 의해 ‘맛’이 각각 다릅니다.
또한 음식은 ‘요리’하기에 따라서 ‘맛’이 달라집니다.
음식은 ‘맛’ 때문에
사람들이 더 찾기도 하고,
음식 값이 더 비싸지기도 하고,
음식점이 멀리 있어도 그곳까지 찾아가게 됩니다.
그 ‘맛’ 때문에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됩니다.
만일 음식이 맛이 없다면,
음식으로 인한 기쁨도 없고, 느낌도 없고, 별 생각도 없을 것입니다.
<끝>
음식의 천국, 대만의 모습이었네요.
음식 맛없으면 정말 먹기 싫죠? 음식은 맛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자는 맛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음식도 ‘맛’이 있어야 찾게 되고 기쁨을 얻듯이,
인생도 ‘맛’이 있어야 기쁘고 보람 있다.
(잠시 쉬었다가) <인생의 맛>은 무엇이냐?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실까요? 인생의 맛은 무엇이냐?
지금 한번 힌트를 드릴게요,
말씀도 음식과 똑같다고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음식 재료는 똑같은데
여기서 어떻게 해야지만 조금 더 맛이 달라질까?
요리하기에 달렸죠? 그렇다면 인생은?
(잠시 쉬었다가) ‘생각하(는 것’이)기에 따라 달라진다.
<음식>은 요리하기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고,
<사람>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2005년도에 선생님께서 흰머리가 잔뜩 나셨었습니다.
그때 말했습니다“나를 억울하게 하는 자들로 인해서
이렇게 흰머리가 많아졌습니다”
그때 성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 생각이 뭐냐. 생각하기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즉시 마음을 고쳐먹기를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흰머리가 많아졌네요?”
그러니 갑자기 감사와 기쁨과 보람이 넘쳐나면서
흰머리도 멋있게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인생 사는 맛, 삶의 맛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SS, 캠퍼스, 청년부, 가정국, 장년부 우리 교역자들 모두가
똑같은 상황 가운데서 여러분의 생각에 따라서 삶의 맛,
섭리를 사는 맛이 다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맨 뒤에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
현장에서 말씀을 듣고 있지 않은 사람들,
생각하기에 따라서 말씀의 맛 또한 완전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을 안 하면,
인간으로서 ‘각종 맛’을 못 느낀다.
사람이 생각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음식을 먹지 않는 것과 같아서 ‘인생의 맛’을 못 느낀다.”
(하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사람이 ‘먹는 것’이 희락이고 천국인데,
음식이 맛이 없으면 ‘음식 희락, 음식 천국’을 못 느낍니다.
사람도 생각을 안 하면,
뇌가 굳어서 ‘인생의 맛’을 못 느끼고,
맛을 모르니 기쁨이 없습니다.
생각을 안 하면 뇌가 굳고 멍청해집니다.
총명함이 없어지고 흐리멍덩해집니다.
그러다 결국 ‘맛을 잃은 굳은 뇌’가 되어
‘맛을 잃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끝>
눈 보셨어요? 생각 안하고 있으니까 멍~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생각하는 맛’ .
사람은, 총명해야됩니다.
총명은 어디에서 오느냐, 바로‘생각’,‘정신’에서 옵니다.
이것에 따라서 삶을 보고, 사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인생을 보는 모든 관들이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똑같이 직장을 다니며 힘들어도, 똑같이 고생을 해도,
똑같이 어려움을 느껴도, 똑같이 주를 믿어도
이 생각과 정신에 따라서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인생 역시 달라지게 되죠?
<잠시 쉬었다가>
사람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맛’을 느낍니다.
좋게 생각해야 ‘좋은 맛’을 느낍니다.
나쁘게 생각하면 ‘나쁜 맛’만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많이 생각을 해보셨을거에요. 좋은생각 좋은생각..
그러나 이 ‘좋은 생각’도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가 계속 ‘좋은 생각’을 한다 해서
계속 좋게 느끼기에는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나는 계속 좋은생각을 하고 사는데
왜 생각에 한계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육신>은 항상 ‘육적인 것’을 생각합니다.
‘자기 삶, 자기 생활’을 생각합니다.
‘지구 세상 주관권에 해당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니 좋은생각을 해도 자기 앞에 처한 어려움이 생기거나,
자기 삶을 보게되면 금방 좋은 생각에서 나쁜 생각으로
전환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로 <육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니,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해도 한계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살아도(고 있어도)
또 섭리사에서 살아도 막상 생활할 때는 ‘자기 생각’이
툭 튀어나오게됩니다. (을 합니다. )
튀어나오기만 하면 좋은데 튀어나온 상태애서 들어가질 않습니다.
그 상태로 자기 생각을 안고 살아가게 되죠.
자기 삶에 처해서 그 생각에 빠져서 행합니다.
거기에 빠져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육신이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믿고,
섭리 주관권 안에 살아도 자기 삶에 처해서 생활할 때
자기 생활에 빠져 사는자들은
(이런 자들은) 그냥 믿기만 하고 사는 자들로서
‘믿음’으로 <하나님 주관권 안>에서 살고 있기는 합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고,(습니다.) 섭리에도 많이 있습니다.
성자는 이것을 지적하시며“니네가 이래서 인생 맛이 없는것이다”
말씀 하셨습니다.
“믿고만 사는 것이
인생으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인 줄 알고 산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은 지난 세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기만 하고
교회에 가서 기도만 하고 찬양만 하는 차원에서 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성자의 수준을 맞추는 신부,
그리고‘분체’가 되지를 못합니다.
선생이 지난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으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한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으니,
기본적인 핵심 (만 말해 주겠습니다.)
한가지만 여러분에게 가르쳐 줄것입니다.
잘 듣고 모두 표상자같이 살라고, 오늘 말씀을 해 주는 것입니다.
올 한해, 횡재하는 꿈,“너희 다 가져라”헀습니다.
그 꿈을 가진자는 횡재하는 꿈을 이루었는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대로‘인생 사는맛’,‘섭리 사는맛’,‘표상자와 같이’,
이 한마디를 지켜 행한다면,
그 맛이 여러분의 삶가운데 떨어지지 않을줄로 믿습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지도자나, 섭리를 Full로 뛰는 사람이나, 혹은 반만 뛰는 자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나
하는일만 다르지 이 말씀은 누구나 지켜야 할 말씀이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주의 발판을 까는자나, 영적으로 주의 발판을 까는자나
누구나 기본으로 알아야 될 생명의 말씀임을
명심하기를 바라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주일을 지키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사는 것은
<기본 생활>입니다.
이같이 살면 ‘하나님 주관권 안에서 사는 자’ 취급을 받습니다.
여러분 한번 점검 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선생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살면서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시로 의논하고,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가장 우선순위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항상 생각하여
그 생각을 알아내(고)는것에 집중하고, 그것에 보람을 느끼고,
늘 대화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종일 찾아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으면 즉시 행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기만 하고,
생활할 때는 자기 생각, 자기 삶, 자기 생활에 빠져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체 신앙’입니다.
그러니 힘이 없는겁니다.
주일만 지키는 사람들은 시체신앙을 하는것과 같다 했습니다다.
삼위일체를 ‘부모’로 믿기만 하고 ‘애인’으로 믿기만 하지,
자기 삶 속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살면)을 빼놓고 사는것입니다.
그러다 주일에 와서 다시 회개하고 다시 말씀듣고,
아멘으로 화답하고, 헌금 좀 하고, 봉사 조금 하다가, 다시 돌아가서,
자기 삶에 다시 빠져 살다가...
이것은 하나님 주관권 안에 있긴 하나,
인생의 맛, 신앙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시체 신앙’과 같다 했습니다.
음식도 맛이 없으면 넣었다가 뱉고,
한번 가면 다시 가고싶지 않습니다.
하물며 인생, 평생 주를 믿으며 영원히 같이 살것인데
신앙의 맛, 인생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인생의 맛, 신앙의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믿기만 하고, 주일만 지키고, 찬양만 하고, 기도만 하지 말고,
오늘의 핵심 말씀, 자기 삶 속에서도
주를(계속) 항상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 핸드폰, 요즘 손에 많이 들고다니죠? 가끔씩 어때요?
“어디갔지? 어디갔지?” 찾을때가 있죠?
이게, 손에서 딱 놓았을때 생각에서 가장 잘 잊어버립니다.
손에서 놓고있으면 어디다 뒀는지 순간 잊어버리게됩니다.
이와같이, 생각에서 잊으면, 잊어버린다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길“잊으면 죽는다”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을 잊으면 죽는다.
주를 잊으면 죽는다.
성자를 잊으면 죽는다.
신앙도 죽고, 생각도 죽고, 행실도 죽고, 우리의 열정도 죽고, 열도 죽고,
성령도 죽습니다. 식어버립니다.
잊으면 안됩니다. 어디서? 주일에 와서 말고 삶속에서, 생활가운데..
한 지붕 아래 같이 살아도(생각하지 않으면)
남남처럼 사는 사람들이 이세상 너무나 많습니다.
서로 몸이 닿고 같이 밥을 먹어도
그 마음과 생각을 모릅니다. 왜? 같이 살기는 하는데,
부부끼리 대화가 없어요. 부모와 자녀끼리 대화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과 생각을 알수가 없는겁니다.
한 교회라는 지붕아래 같이 살아도, 몸이 닿으면서 살고 있어도,
서로 의논하지 못하고, 대화하지 못하니
그 마음과 생각을 모르는 것입니다.
고로 심정에 안 맞아서 ‘남남’과 같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으면서
<하나님 주관권 안>에서 같이 살아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 마음과 생각을 모릅니다.
여러분 지금 보세요. 몸이 여기 교회 딱 와있다고 해서
말씀 다 들리는것 같습니까?
‘교회에만 몸을 갖다 놓자. 그럼 말씀이 다들릴거야’
이상하게 안들려요.
왜요? 생각 빼놓고 왔거든요. 생각이 다른데 있거든요.
선생님 항상 말씀하셨어요.“네가 주의 무릎위에 앉아있어도
생각이 딴데 있으면 남남이다”
극적인 비유를 들었죠.
“몸이 2억만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생각하면 같이 있는것과 같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삶 속에서 늘 하나님, 성령님, 성자 생각을 해야됩니다. 그 무엇보다.
수시로 말씀하시는 삼위일체의 말씀을 듣고 그래야 깨닫고 알게 되고,
자꾸 물어보고 그것에 대해 대화하게 되고,
그러니 더욱 정이 붙고 사랑이 붙게 되고,
알고 깨달으니 자꾸 행하게 됩니다.
생각의 맛, 생각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섭리를 사는 맛, 신부로서 사는 맛’입니다.
부모도, 형제도, 애인도, 부부도, 사랑하는 자도
믿기만 하고 그냥 살면, ‘각각 자기 삶’입니다.
믿음으로는 하늘까지 갈 수없습니다.
뭐라고했죠? 사랑입니다. 사랑은 같이 사는 삶입니다.
늘 생각해야 됩니다.
의논해야 됩니다.
대화해야 됩니다.
말해야 됩니다.
이것을 안 하면 ‘같이 사는 맛’이 없습니다.
이것을 안 하면 ‘믿는 맛’이 없습니다.
또한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에 늘 말했죠.
“너희가 의논하지 않으면 경영하는 바가 파해진다” 했습니다.
경영이 이루어지려면 하늘과 소통, 형제와 소통, 부부와 소통,
부모 자녀간에 소통, 교역자와 교인들간에 늘 소통입니다. 믿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인생의 맛>은 첫째, ‘생각하는 맛’이고,
둘째, ‘행하는 맛’입니다. <끝>
그쵸? 첫째, 생각하는 맛, 생각만하고 끝나면
그 인생은 생각에서만 기쁨을 누리고 끝나지만
그것을 행하면서 몸을 움직이면서 맛도 느끼고
그럼으로 얻으면서 맛을 느끼게 됩니다. 맞습니까?
사람이 생각해야 생각에 따라서 ‘맛’을 느끼고,
자꾸 움직이며 행해야 그 행위에 따라서 ‘삶의 맛’을 느낍니다.
몸은 서로 닿아야 느낍니다.
바람도 후~ 불어와서 몸에 닿아야 차갑고 더운 것을 느낍니다.
이와 같이 행해야 ‘맛’을 느낍니다.
인생의 맛이 없으신 여러분, 말씀이 맛이 없고,
주를 믿는 것이 맛이 없고, 섭리로서 사는것이 맛이 없는 여러분,
오늘 생명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직 맛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말씀은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행한다면 인생이 맛이 있는 인생으로
바로 뒤바뀌게 될줄로 믿습니다.
눈은 봐야 느끼고, 귀는 들어야 느끼고,
말은 해야 내용대로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법칙이죠.
보게하시고, 듣게하시고, 행하게 하시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몸은 행해야 ‘삶의 맛’을 느낍니다.
생각으로 하면 ‘생각’이 맛을 느끼고,
몸으로 하면 ‘몸의 신경’이 맛을 느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존재하셔도,
자기와 함께하셔도, 자기를 도우셔도, 자기에게 말씀하셔도
가만히 있으면 못 느낍니다.
성자와 분체가 옆에 와 있어도
자기가 생각하지 않으면 평생 못 느끼고 모릅니다.
생각해야 생각으로 느낍니다.
또한 자기가 행하여 몸에 닿게 해야 몸이 느낍니다. <끝>
생각하고 행함으로 살아 움직이는 섭리역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
다.
어느때는 <몸>이 가만히 있(더라도)어야 될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몸을 못움직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생각을 놀리지 마라.
평생, 죽을때까지 놀리지 말아야 할것은 생각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에 생각을 가둘 수 있는 존재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자유를 주셨어요. 생각의 자유.
하나님이 품안에 꼭 안고있어도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생각을 놀리면 안됩니다.
좋은 생각, 주와 일체된 생각, 그 생각을 해야 몸도, 삶도,
그와 같이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몸이 가만히 있더라도 생각하면 느낀다. 고로 주를 생각해라.
버스를 타고 가는데 너무 찬양 하고 싶고 치어 하고싶은거에요.
그런때는 하지 마시고, 좀 자제하시고 주를 생각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와서 몸을 움직일 수있는 때는,
움직이면서 또 행하면 되지 않습니까?
막 전도하고싶은거에요. 공부를 하고있는데,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도 하고 싶다고 해서
수업시간에 탁 뛰어나가서 사람을 찾아다닌다?
병원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때는 이 마음을 가지고나가서
“이따가 끝나면 꼭 한명이라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니 생각 생각. 아시겠습니까?
“몸이 가만히 있더라도 생각하라”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면서 생각해야되겠습니다.
기도할때도 몸은 많이 못움직이잖아요.
기도하면서 막 계속 움직일 수 없잖아요.
이때는 기도할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부르며
합당한 기도를 하면 됩니다.
그러면 생각이 일체 되어 생각이 삼위일체께 닿아서
느껴지고 깨달아지고 감동됩니다.
성자를 생각하여 <생각>이 성자께 닿으면,
‘생각’이 성자를 바로 느낍니다.
자기가 성자의 생각대로 행하여 <몸>이 성자께 닿으면,
‘몸’이 성자를 바로 느낍니다.
<영>이 성자께 닿고 <영의 생각>이 성자께 닿으면,
성자를 바로 느낍니다.
결혼해서 ‘살’이 닿고 ‘마음과 생각’이 닿아
늘 말하고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의논하고 같이 행하면서 살듯이,
이와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도 그렇게 살아야됩니다.
늘 이야기하라. 늘 대화하라. 늘 말하라. 언제든지 행하라는 것입니다.
입으로 할 수 없을때 생각으로, 몸으로 할 수 없을때 생각으로.
그러나 입으로 할 수 있고, 몸으로 할 수 있으면
자유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길, “이렇게 관심과 사랑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게
된다(됩니다.)”
하셨습니다.
뭘로요? 관심과 사랑으로.
이게 다 적용 됩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가정 천국 이룹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교회 천국 이루고요
관심과 사랑으로 이 세상에 평화로운 천국을 이루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목적까지 이루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성자와 분체를 진정 사랑하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성자와 분체를 진정 사랑하면, 그 말씀을 안 지킬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고 관심이 있는데 대화를 안 할 수가 없고,
기도를 안 할 수가 없고, 감사를 안 할 수가 없고,
매순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끝>
아멘 아멘 맞습니다. 진짜 맞죠.
사람이 ‘말’로는 별말을 다 하면서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지는 ‘그 생각과 행실’을 보면 압니다.
영상에서 설교했듯이, 사랑하고 관심이 있는데,
어떻게 대화를 안하고, 기도를 안하고, 찬양을 안하고,
감사를 안하고, 사랑을 안하고, 관심을 안가질 수 있겠습니까?
실컷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불현듯 아쉽거나 힘들면,
그제야 성자와 분체를 생각합니다.
마치 미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바깥을 쏘다니다가
비가 오니 집 생각이 나서 그제야 전화하듯 합니다.
이런 신앙생활로는 <휴거>가 안 됩니다.
휴거는 무엇입니까? 휴거되면 영원히 성자와 주와 같이 살거든요?
같이 사는건 무엇입니까?
그냥 같이 사는것이 아니라 늘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먹고,
즐기고, 나누고 함께 누린다는 것입니다.
불현듯 미친사람처럼 뛰어나가서 눈이오거나 비만 오면 찾지 말고,
늘 함께 의논하고 대화하면서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천국 황금성>은
범사에 ‘성자와 주’를 생각도 안 하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하늘의 최고 수준의 신부 말씀>을 듣고,
정말 ‘신부로서 같이 사는 삶’을 살면서
최선을 다해 행해야 가는 나라로
하나님은 아예 정하시고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끝>
아멘, 여러분들의 나라,
꼭 같이 사는 삶으로 행해서 차지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섭리사를 벗어나서는 온갖 행위를 다 해도 <황금성>에 못 갑니다.
섭리역사. 하나님의 신부역사. 성약 천년 역사.
구약과 신약 다음에 세워진 역사.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진행되는,
정확한 때에 따른 역사입니다.
이 역사를 벗어나서 이 역사에서 전하는 말씀을
다른곳에서 전한다 해도 사명자가 있지 아니하면
이 시대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황금성을 차지하는 역사는 절대 이룰 수 없습니다.
섭리사를 벗어나서 하나님을 믿으면,
이는 마치 죽음의 선고를 받았는데 모르고 충성하는 격입니다.
마치 폭발하여 추락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희망으로 “목적지까지 가겠지?” 하는 (가는) 격입니다.
이 귀한 섭리역사에서 시대 복음으로 완전하게 자리매김 해야됩니다.
앞으로 주를 세상에서 증거할자도,
섭리 안에서 영적 지도자가 되어서 증거 할 모든 사람들도
기본은 무엇이냐.
복음이 완전히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를 완전히 아는것입니다.
주를 완전히 알지 못하는 지도자는 생명을 가르칠 수가 없고,
주를 완전히 모르는 세상의 발판자들은
주앞에 세상의 발판을 깔아줄 수가 없습니다. 맞습니까?
오늘 말씀, 주와 함께 사는 삶, 정말 신부로서의 삶.
이런 자들이 앞으로 세상을 다스릴 주권도 하나님은 주실것일 줄로 믿고,
섭리의 영적 지도를 할 수 있는 지도권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전환>
이 말씀이 <올해 마지막 주일설교>입니다.
2014년 올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살았는지, 제대로 못 살았는지
<올해 마지막 주일설교>를 통해 가르쳐 줬습니다.
또 제대로 살았는지 못살았는지,
하늘은 어떻게 여러분들에게 갚아주셨는지,
나머지는 31일 송구영신 말씀으로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듣고
2015년 부터는 ‘정말 온전한 신앙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이 2015년 선교하는 해로 가는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
지금 이 시점은 성자가 떠나시는 길에 있는 시점이라고 했습니다.
언제쯤 떠나실지는 어떤 모임에 하나 말씀을 해주셨는데,
여러분 귀 있는 자는 소문을 통해서 숙숙 들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이 말씀을 지켜 행하면, 그러면 성자가 가셔도 늘 교통하게 됩니다.
성자가 가시면 시대가 바뀝니다. 어떻게 바뀌냐면,
같이 사는 시대에서 <교통하는 시대>로 바뀝니다.
그동안 성자가 옆에서 같이 사셨는데도
대화 한 번 못 해 본 자는 얼마나 억울합니까?
남은시간, 없다 생각하지 마시고,
“28일 29일 30일 31일 아따 많이남았다.”
4일남았네요 4일. 그치않습니까?
올 한해 잘 보내야되겠습니다.
그래서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애인과 같이 살다가 애인이 외국으로 떠나(가고)는
그런 격과 같아서 이제는 전화(만 하는 격이)로 하면서
계속 교통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끊기는게 아니라
계속 교통입니다.
더 이상 성자가 옆에서 같이 사는 때는 없습니다.
이제 천국에 가서나 보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잊지 말고 마음에 새겨서
성자를 늘 생각하고, 성자와 대화하고 이야기하면서
<교통하는 삶>을 꼭 살아야 됩니다.
아 이래서 올해 생각에대해서 정말 많은 말씀을 하셨구나.
작년부터 뇌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인생은 생각하는 맛이다. 생각으로 살아간다.
생각에서 잊으면 다 잊어진다.
“선생님 생각 안나요. 생각.”
“그래? 생각해. 그게 답이에요?”
“음 그게답이다”
“성자. 성자 자꾸 잊어버릴거같아요. 어떡해요?”
“음 생각해.”
“그게 답이에요?”
“음 최고의 답이다.”
최고의 생명의 말씀입니다. 생각하면 잊었던것이 생각이 납니다.
생각하면 기억에서 멀어졌던것이 기억에서 가까워지게 됩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교통마저도 못 하면 외롭고, 쓸쓸하고, 곤고하고, 힘듭니다.
고생길이 확 열려서 그 길로 가게 됩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 생각하지 않음으로
건설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했습니다.
고생길이 확 열리느냐, 교통의 길이 확 열리느냐,
여러분의 생각에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휴거를 포기한 여러분들, 포기하지 마십시오.
성자는 떠나시지만, 성자의 분체가 살아있는 이 시대가
휴거 기간입니다.
그러나 각자 자기의 휴거를 이루는 기간이 또 따로 잇겠죠.
아직 휴거는 진행되고 있지만, 성자가 계실때와는 판국이 다릅니다.
많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말고 교통하는 삶을 삶으로 인해서
남은 휴거를 모두 이루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기도 드리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인생의 맛, 섭리의 맛, 신부들이 사는 맛>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를 항상 생각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를 항상 불러야 됩니다.
부르면, 100% 통합니다. 주문을 외워놓으세요 머릿속에.
부르면 100% 통한다. 안통하는데요? 아~~니~? 100% 통한다.
항상 생각하고 부르면서 통하며 살아야
신부로서 섭리 인생을 사는 맛이 나고, 생활의 맛이 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해 고통이 임한다.” 하셨습니다.
똑같이 앞에 어려운 일이 있는데,
그 순간 하나님은, 성령님을, 성자를 주를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고통스럽게만 여기면서 끝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 한계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니 한계를 뛰어 넘는 성자의 말씀을 들어야만
영육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다른 길 희망의 길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생각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의논하고 이야기하고,
그 생각대로 행해야 인생의 맛을 느끼고
마음 천국, 생활 천국을 이루며 휴거되어 삽니다.
집에서도 부모와 형제에게 관심을 가지고
늘 이야기하고 의논하여 같이 행해야
마음으로도 삶으로도 가정의 맛을 느낍니다.
그리함으로 평화롭고 화평한 가정이 됩니다.
교회에서도 교역자와 지도자들과 교인들과
늘 의논하고 이야기하고 같이 행해야
맛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고 화평하고 화목하게 됩니다.
오늘 교역자들 말씀 통해서도 정말 많은 교육 받고 있죠?
늘 주를 생각하는 신앙을 하고,
늘 주와 의논하고, 상의하고, 대화하고,
기도로 통하고, 글로도 통해야
생각의 맛, 신앙의 맛, 인생의 맛을 느끼고 <천국>이 됩니다.
또 말씀대로 행해야 지상의 삶이 <천국의 삶>이 됩니다.
성자를 중심하여 늘 ‘생각’을 놀리지 말고 생각하여
<마음 잔치>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 오늘의 마지막 영상입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나쁘게 생각하면, ‘나쁘고 괴로운 맛’을 느끼게 됩니다.
악하게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면, 즉시 ‘고통’이 옵니다.
<육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성자와 주와 함께 ‘좋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생각’이 <꿈>이 되어 더욱 기도하고 행하게 되고,
그것을 행함으로 ‘기쁨의 맛’을 보게 됩니다.
그리함으로 육도 영도 ‘더욱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고
‘희망’이 생깁니다. <끝>
좋은생각, 그러나 딱 하나 더 붙죠? 성자와 주를 중심한 좋은 생각.
그러면 그 생각이 너의 꿈이 된다 했습니다.
우오와~~ 너무 멋있는 말이지않습니까?
우리의 꿈이 되고., 그것을 행하면 그 꿈이 이루어지고,
그 꿈이 이루어지니까 더 하고싶은 의욕이 생기고 희망이 생겨서
더 다른차원으로 도전하게 된다 했습니다.
성자와 주를 중심한 여러분들의 좋은 생각들이
여러분들의 꿈이 되어서 그 꿈을 이루는 2015년 맞이하기를
기도 드리겠습니다.
* 이제 모두 이해하고 깨달았으니,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앉으나 서나,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성령님 생각, 성자와 분체 생각을 하면서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기 바랍니다.
그 생각으로 새해에 좋은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희망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성자와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