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4.12.29 (월)
월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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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본문
- 요한일서 4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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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월요일
2014년 연말에 할 일,
서로 사랑하자
작성일 : 2014년 11월 11일 새벽 1시 45분
작성자 : 장정희
(성찬식이 끝난 후 새로운 각오로
117기도를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기도 시간에 뜨겁게 찬양하고 성자께 떠나시기
전, 선생님의 조건으로 남은 2014년 연말에
대한 말씀을 주십사 부탁드리니 해 주신
말씀입니다.)
*성자의 말씀*
사랑하는 내 신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니
사랑의 휴거 말씀이다.
곧 이 시대 사명자 선생에 관한 증언이니라.
선생을 깨닫는 것이 사랑이요, 휴거이니
휴거는 사랑이요, 선생이니라.
선생이 휴거란 말은
이와 같으니
요한일서 4장 1절에서 4절을 보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2014년 마지막 남은 기간을
이 말씀을 철저히 너희 뇌에 새기며 보내어라.
영이 무엇이냐.
진리이며 사랑이니
곧 삼위와 그 보낸 자이니라.
영은 신이니 신랑이니
사랑의 주체이니라.
세상에 자기가 신이다, 메시아다, 하나님이다,
하며
세상을 미혹하는 자가 많으나
너희는 이로써 분별하라.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으로
곧 나 성자와 분체 선생이니라.
나 성자가 육체로
이 땅에 신부들을 위해 강림했으니
이가 선생이니라.
나 성자가 선생의 육을 쓰고 왔음을
시인하는 영마다 휴거 될 것이요,
선생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휴거되지 못할 것이다.
영은 영으로 알 수 있으니
선생에 대한 깨달음은
신령한 너희 영이 깨닫고 고백하는 것이니라.
선생이 나 성자의 육임을 부인하는 자는
세상에 속한 자이니
세상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의 것이니라.
적그리스도는
사탄과 사탄의 몸으로 쓰이는 자이니
선생을 부인하는 자의 영은
사탄에 속한 영이기에
부인하는 것이니라.
2014년 막바지의 영적 전쟁은
적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전쟁이니
이가 영적 아마겟돈 전쟁이다.
사탄과 메시아의 전쟁,
구시대와 새 시대의 전쟁,
악과 선의 전쟁,
영적 죽음인 타락과 영적 회복인 사랑의
전쟁이다.
그리하여 육계와 영계는
이 전쟁에 휩싸여
지옥과 천국의 생과 사로
갈려지고 있으나
보라.
그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영적 아마겟돈 전쟁에서
선생이 사탄을 이기었으니
증표는 너희의 영 휴거다.
섭리사의 영 휴거 역사다.
그가 사탄을 이기고 부활하였기에
나 성자가 선생의 영을 쓰고
영 재림하여 영 휴거 역사가
2013년부터 일어나
2014년 지금 정점을 찍고 있으니
이 영 휴거가 그의 승리의 증표이다.
선생의 사탄과의 승리는
첫째, 그가 십자가 희생을 하여
너희와 인류의 죄를 대속한 것
둘째, 그 대가로 휴거 말씀을 받은 것
셋째, 그가 휴거 말씀을 받아
너희에게 전해 주어 너희가 영 휴거되는 것
넷째, 너희가 영 휴거될 수 있도록
그가 말씀 받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절대적 조건을 쌓은 것.
이 모든 것이
선생이 사탄을 이긴 증표이니
너희는 그가 사탄을 이긴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300선 영 휴거되어 사탄을 완전히 이기어라.
이것이 남은 2014년 연말 동안
너희가 할 일이다.
핵은 사랑이다.
연말에 섭리사 너희가
할 일의 핵은 사랑이니
선생처럼 사랑으로
사탄을 이기어라.
선생이 사탄과 싸워 승리한 방법은 이것이다.
올해 성찬식의 핵의 말씀이자
연말의 핵의 말씀이다.
요한일서 4장7절에서 10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핵은 서로 사랑, 형제 사랑이다.
선생은 자기를 핍박한
구시대와 악평자들을
너희들과 똑같이 사랑하였다.
자기 목숨보다 그들과 너희들을 더 사랑하여
사탄에게 승리하였다.
오직 사랑으로 승리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 성자를 너희에게 보낸 이유가
너희와 그들의 죄를 대속하기 원함이며
나 성자와 내 몸인 선생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
너희와 그들의 죄를 깨끗케 하기 위함이니
선생은 사랑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였다.
고로 사랑은 나 성자와 내 몸인 선생이니
너희는 선생이 사랑임을 깨달아라.
그리하여 선생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영이 사랑인 선생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세상인 사탄에 속하였단 의미이다.
그러나 선생을 사랑하는 자는
그 영이 사랑인 선생에게 속하여
세상인 사탄에는 속하지 아니한다.
또한 사랑은 하나님이니
선생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요,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는
사탄에게 속한 자이다.
하나님이 나 성자와 선생을 이 땅에 보내심이
하나님이 너희를 먼저 사랑했다는 증표이니
고로 섭리사야,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근본인
나 성자와 선생을 사랑하라.
그것이 구원이며 휴거이다.
휴거는 나 성자와 선생을 알아야 휴거되며
휴거의 차원은 나 성자와 선생을
얼마만큼 사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휴거 300은 삼위가 선생을 사랑하는 차원,
곧 선생이 삼위를 사랑하는 차원이니
이 차원은 삼위가 선생을
이 세상에 보낸 근본 뜻을
제대로 깨닫는 차원이다.
근본 뜻은 요한일서 4장 11절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너희를 이같이 사랑하여
선생을 보내었으니
너희는 선생을 삼위처럼 사랑하라.
또한 너희 형제들은 선생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삼위 차원으로
선생을 사랑하는 것이며
형제를 선생처럼 사랑하는 것,
휴거 300의 근본 뜻이다.
선생같이 사랑하라 해서
형제를 선생처럼 대하라는 말이 아니라
선생처럼 귀히 여기고 사랑하라 함이니
너희는 정확히 분별하고 확인하고 행하여라.
선생을 진실하고 절대적으로 사랑하듯
형제를 사랑할 때도 그러하란 말이다.
형제가 선생은 아니라는 말이다. 알겠느냐.
(네.)
사랑하는 섭리사야,
마지막으로 나 성자가
2014년 연말을 결산하며 당부하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선생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고로 선생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선생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나 성자와 선생이
목숨 걸고 구한 너희 형제들 또한
선생과 나 성자에게 속하였다.
고로 형제들을 사랑하는 자는
선생과 나 성자를 사랑하는 자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선생과 나 성자를 사랑하지 않는 자다.
그러한 자는 결코 300선 휴거되지 못하니
300선 휴거의 근본 핵이
형제 사랑임을 깨닫고
그 형제 사랑이
선생 사랑, 나 성자 사랑임을 깨달아
2014년 연말을 형제 사랑으로
300선 휴거의 정점을 이루자.
요한일서 4장 12절로 마무리 짓겠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온전한 형제 사랑을 이룬 자,
그에게 삼위와 선생이 거하니
삼위와 선생은 사랑인지라
그에겐 사랑이 거한 자가 되어
반드시 300선 휴거를 이루느니라.
그는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여 신이 된
나 성자의 신부 온전한 300선 신부이니라.
300선 휴거는 온전한 사랑이니라.
남은 연말,
섭리사 모두가
300선 휴거를 이루라고
나 성자가 간곡히 말하였다.
샬롬.
2014-12-29 월요일
나 떠나면 선생이 곧 나다
작성일 : 2014. 10. 28(화) 새벽 1시 30분
작성자 : 주은혜
성자가 떠나는 것이 너무 슬퍼서
며칠 째 기도 시간에 울기만 했습니다.
그 때마다 성자께서 나타나서 위로하시고
말씀도 주셨는데
슬픔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날은 성자께서 제게
‘나 떠나면 선생 통해 전부 한다.
내가 곧 선생이요, 선생이 곧 나다.’하셨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이것에 대해 제게 친절히
설명하셨고
이후 받아 쓴 말씀입니다.
*성자의 말씀*
내가 말씀해 줄게.
내가 떠나도
내가 네 뇌 스마트폰에
사랑을 넣어 주고,
말씀을 넣어 주면 된다.
그러면 대화도 할 수 있고
서로 소통할 수 있으니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다만 나와 직접 함께 있던 것과 다르겠지.
신랑이 해외에 출장을 가면
전화로, 문자로
서로 이야기하고 안부를 확인하겠지.
그처럼 네가 나에게
항상 안테나를 켜 놓고 있으면
뇌 스마트 폰으로
내가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그 메시지를 받고 또 힘을 내고
나의 뜻, 주의 뜻을 이루면서 행하면 돼.
헤어지는 것 아니고,
더 차원 높여서 만나면 되는 것이다.
알겠지.
그리고 선생 있잖아.
내가 선생 통해서
섭리의 모든 일,
전 세계의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다.
절대적으로 선생 통해 하니
선생이 곧 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본체, 분체 일체라고 말씀 했지.
그 말씀이 2015년부터는
절대적인 말씀이 된다.
선생이 너희의 죄를 대속하여
육이 매인 후로
내가 너희의 앞에 가까이 나와서
너희 각각에게
이 시대와, 휴거와, 선생에 대해
깊이 깨닫게 했다.
때가 되어
본체, 분체를 밝히면서
쪼개서 보는 것에 대해서도 알게 해 주었고,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에 대해서도
깊이 밝혀 주었다.
고로 섭리의 모든 자들은
선생이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임을
각각의 차원에 맞게 깨달았다.
내가 떠나고 나면
선생과 나는 다시 일체되어 행하니
선생 안에 내가
절대적으로 존재하며 행할 것이다.
곧, 선생을 나로 생각하고 행하면 된다.
내가 선생에게
절대적으로 말씀과 앞으로 행할 것과,
능력과 권세와 모든 것을 주고 떠나며,
또한 하늘나라에서도
선생을 통해 이 세계를 다스리고
육계의 모든 것을 행할 예정이니
너희도 선생을 나 본 듯 대하고
행하면 되는 것이다.
(성자 주님, 전반기에도 선생님을 성자로 보고
행했잖아요.)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알고 대하는 것과
모르고 대하는 것이
아예 다르고,
아는 수준도 완전히 달리해서
대하는 것이 다르다.
전반기 때는
아예 쪼개어지지 않은 채로
선생을 대했다.
그러니 잘못 알고 대할 때가 많았다.
오해도 했지.
지금은 너희가 모두 배웠으니
쪼개어 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다시 말하는 것은
내가 떠나면 선생을 통해
모든 것을 행하니,
그가 곧 나다.
내가 역사의 시작부터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했지만,
내가 떠나면
이 세상의 주인은
바로 선생이 되고,
선생을 통해서
나에게 나올 수 있는 것이
더 절대적이게 될 것이다.
왜 그러한지 생각해 볼까.
사랑아,
조은 목사를 보아라.
조은 목사를 통해
선생이 말씀을 주고, 행하게 하고,
그를 선생에게 나오는 길로 삼았다.
사람들은 조은 목사를
성령을 주는 성령의 상징체로도 보고,
또 선생의 말씀을
대언해 주는 자로도 보고,
선생의 심부름꾼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선생의 뜻을 가지고 나타나면
조은 목사를 어떻게 보냐.
곧 선생으로 보기도 한다.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조은 목사가 선생이라는 말이 아니다.
선생의 뜻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선생의 대신자,
곧 선생의 정신을 전하는 자로
선생과 동일시해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조은 목사를 보면
좋아하고, 감동받고,
은혜를 받는 것 아니냐.
조은 목사가 그냥 왔다면
다들 그리 기뻐하겠냐.
선생의 말씀, 선생의 정신과 함께 오니
조은 목사를 선생 보듯 반가워하고
조금이라도 그 말씀을 더 들어 보려고 하고,
그 정신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다.
선생은 나 성자의 육이다.
내 정신을 받는 유일한 자요,
내 생각과 내 말씀을 듣고
전하는 유일한 사명자다.
고로 그가 내 정신을 받아 말씀을 전하면
섭리의 모든 자들이 시대 비밀을 알고,
하늘의 뜻을 알게 되니
곧 선생이 내가 되는 것이다.
내가 하늘나라로 돌아가게 되면
쪼개어 보지 말고,
선생을 곧 나라고
더욱 생각하면서 행하면 된다.
내가 선생을 절대적으로 도우면서
그가 행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쪼개어도 볼 줄 알고,
하나로도 볼 줄 알아야
차원 높은 신부지.
쪼개어만 봐도
하나로만 봐도 틀렸다.
때에 따라 쪼개어서
본체, 분체 행하고,
때에 따라 하나 되어
사명자의 머리에
곧 본체의 생각이 임하여
신이 되어 행하는 때가 있으니
제대로 알고 행해야 한다.
더 차원 높여서 가는 자들이 되자.
선생도 이제 극도의 차원으로 올라섰으니
너희도 선생을 통해
더욱 극도의 휴거의 선에 오르는 자들이
되어라.
선생에게 내가 말씀을 주고, 성령을 주고,
내 뜻을 전할 때 그 뜻을 통해 나를 만나고,
말씀을 통해 나를 느끼며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각각에게도 감동으로, 은혜로
나타나겠지만
선생을 중심한 섭리사니,
선생을 통해 절대적으로 나타나 행한다.
고로 그의 모습을 통해
나의 모습을 보고 느끼길 바란다.
내가 떠나도 걱정하지 마.
내가 뇌 사랑 작동이 되는 자에게는
말씀을 통해서도, 선생을 통해서도
극도로 나타난다.
항상 선생 극으로 깨달으라고 했다.
2015년은
선생을 더욱 절대적으로
중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선생에게 딱 붙어서 행해.
선생 사랑이
곧 성자 사랑이 된다고
성자 사랑의 해에 말했지.
내년은
선생을 중심하는 것이
핵심이다.
방향이다.
그가 행하는
신성을 바라보고 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알고 행하길 바란다.
너희를 너무나 사랑한다.
사랑하여 귀한 말씀을
너희에게 전해 주고 간다.
일체로 보는 것,
본질을 깊이 알고 일체로 보는 것이
얼마나 수준 높은 도인지를
너희가 진정 알아야 한다.
내가 떠나도
나는 선생의 육신을 통해
이 땅 가운데 있으니
선생의 주인이 된
이 육신의 세계를
섭리사 모든 자들이 복음으로,
성약 역사를 깊이
펼쳐 나가는 자들이 되길 바라고,
깊이 있게 깨닫기를 바란다.
사랑해.
선생 있으니
선생 마음껏 사랑하면
나를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행해.
안녕.
너를 진정 사랑하는,
성자다.
2014-12-29 월요일
성자가 떠나시기 전 심정
작성일 : 2014. 10. 17. PM 3:00
작성자 : 주랑솔
(갑자기 월명동에 가고 싶어 성자와
떠났습니다.
가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동안 가 보지 못한 극기봉을
향했습니다.
가는 동안 ‘성자가 떠나시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성자 주님 정말 좋네요. 주님과 떠난 여행 참~
좋네요.
그런데 주님 정말로 주님과 떠나는
마지막 여행인 건가요?”)
사랑하는 자야.
어찌 그리 생각하냐.
(“성자께서는 곧 떠나신다고 하였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 신께서 친히 이 땅에 내려와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휴거까지 시켜주고 가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성자가 계셔서 외롭지 않았고, 힘들어도
쓰러지지 않았고,
근본의 행복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고의 인생이 되었으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막상 성자께서 떠나실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야
오늘 내가 너 이리로 불렀다.
너에게 깊은 말씀 주려고.
너 이곳에 처음 왔다고 하였지?
(“네. 처음 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민망하네요.”)
너에게 이 극기봉은 내가 떠나기 전
깊은 대화를 하였던 첫 추억이 생기는 곳이네.
처음 온 것 치고 의미가 꽤 크구나.
(“사실 운동을 싫어해서 이런데 올라올
생각조차 못했죠.
근데 요즘 주님과 함께 운동해서 건강해졌기에
이곳도 이리 올라왔습니다.
성자 주님 가시는 길을 붙잡으면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붙잡고 싶은 이 맘은 어쩌죠?”)
나의 사랑아, 내가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아
오늘 내 말을 잘 들어보겠니?
신약 예수가 죽고 나는 다시 하늘로 떠났다.
그래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하늘에서 역사를 펴 나갔다.
그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전혀 느끼지
못했냐?
아니다.
신령한 자는 다 느꼈다.
너희에게 아주아주 다행인 것은
너희에겐 아직 살아 있는 시대 사명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있음에 너희가 직접 나를 만나지
못한다 하여도 그를 통해 삼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없을 때가 더 심각하게
삼위를 느낌이 어려워지는 것이지.
지금은 너희가 신령하기만 하다면,
너희가 휴거만 되었다면 괜찮다.
너희가 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너 내가 보이니?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나는 신이기에 보이지 않지.
느끼는 것이지.
뇌로 보는 것이야.
이렇게 나를 느끼고 보는 자는 신령한 자이다.
그러니 이리 신령하게 자신을 만들어 놓으면,
더 나아가 휴거시켜 놓으면 나를 느낄 수 있고,
하나님과 성령님을 느낄 수 있는 것이야.
휴거된 영은 황금성까지 왔다 갔다 하지 않냐.
그럼 뭐가 다르겠냐.
너는 이미 황금성에서 나를 만나고 있잖아.
(“맞습니다.”)
그 느낌으로 나를 계속 만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성자가 떠나신다는 데 슬프죠?
슬프면 안 되는 것인데... 그죠?
저한테는 성자 주님뿐이어서 더 그런
건가요?”)
내가 떠난다는데 전혀 슬퍼하지 않아도
내가 서운하지 않겠냐.
그러나 내가 떠난다니
나를 붙잡고 싶다고 말하는 자도 드물다.
그만큼 자기 살기에 바빠서 나를 잊고,
내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가 많구나.
자기 사랑하는 님이 떠난다는데 슬퍼해야지.
선생 그 심정으로 나를 붙잡고
또 사랑하고 또 말씀 받고 하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정한 날은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가지 말라고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면
얼마나 내가 뿌듯하겠냐.
이 글을 읽으면 많은 자들 나를 붙잡겠다며
기도하겠지?
그러나 너희가 이 글을 읽을 그때는
내가 이미 하늘 저 황금성의
내 자리 가까이까지 갔을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들아
내가 이 땅에 내려왔음이 무엇이냐.
진정 직접 이 땅에서 직접 통치한 것이다.
이렇게 네 옆에 떡하니 서 있다는 것이다.
선생 육신 통해서 직접 역사를 펼치고 있고,
내가 나를 찾는 자 옆에 직접 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도 지금 나의 말을 받아 적고 있지
않냐.
내가 떠나고 나면
너는 나를 만나기 위해 황금성에 와야 한다.
황금성에 와서 내 심정 받아서 가야 한다.
그러니 계시가 받기 쉽겠냐.
너 황금성에 왔다 가려면
얼마나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냐.
(“황금성에 가려면 2배 3배는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
계시도 때가 있다.
내가 떠나면 어떠하겠냐.
계시의 문도 좁아진다.
받을 수 있는 자가 한정되어진다.
진정 나를 찾고 나에게 매달려 받게 되거나,
황금성에 직접 와서 받아 가야 한다.
정말 선생 말 외에는
말씀이 희귀해지는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기성의 말씀 가뭄은 더욱더 심각해질 것이다.
가물다 못해 기근에 기성의 백성들은
말씀에 굶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꾸 섭리사의 말씀에 호시탐탐 탐을
내게 된다. 너희 말씀밖에는 새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이 말씀을 지키고, 선생을 지켜야 한다.
계시도 넘쳐날 때 감사히 보는 것이다.
받을 수 있을 때 받아라.
(“성자주님 그럼 제가 황금성에서 계시를
받아야지만 받게 될 텐데, 더 어렵겠네요.”)
너 황금성에 자주 오니?
네 영은 매일 왔다 갔다 할지라도
네 뇌의 눈, 생각의 눈이 황금성에 오는 것은
쉽지 않지?
(“네 그렇습니다.
잘해야 한 달에 3~4번 정도 가는 것
같습니다.”)
나와는 매일 통하는데,
황금성에 오는 건 3~4번이면 1/10도 안 되는
것이다.
그만큼 쉽지 않다.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차원 높여야 한다.
너의 육의 행실에 따라 영은 스스로
변화하지만,
너의 혼체 활동과 뇌의 눈의 시력을 키우는
것은
네가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노력할게요. 그래서 성자가 떠나셔도
황금성에서 만나고 그 심정도 받아올래요.”)
사랑하는 나의 신부들아
내가 왜 휴거되라고 하냐.
지금 내가 강력히 역사한다고 휴거되라고 하는
이때도 자기 갈 길 바쁘고, 자기 휴거되기
바빠서, 나의 심정 헤아리기가 어디 쉽냐.
어렵지. 내가 이 땅에 있는 동안도 이러한데,
내가 떠나고 나서 너희의 환경도 여건도 쉽지
않은 때에 휴거되려고 하면 앞뒤가 보이겠냐.
허겁지겁, 아등바등 이지.
그러한데 내가 보이겠냐.
나를 만나는 감이 지금 네 옆에 있는데도
없는데, 떠나고 나면 어찌 만나는 감이 쉽겠냐.
점점 더 어려워지지.
그거니 휴거되지 않으면
정말 나를 영영 떠나보내는 것이 된다.
내가 네 옆에서 그리도 너를 쳐다보다가
갔는데, 결국 눈 한번 맞춰 보지 못하고
나를 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한 것이 된다.
네가 휴거되면
비록 네 육이 알지 못해도 영은 알고 있으니,
때에 따라 꿈에서나 생각으로
나를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네가 휴거되지 못하면
정말 이제 영원한 이별이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들아
너희는 성자의 본체 신이 너희 삶에 들어가고,
너의 옆에 있고, 함께 먹고 마시며 살았던
최고의 주인공의 삶을 살았다 회자된다.
그 얼마나 엄청난 삶이냐.
성자가 너를 안았고, 너를 쳐다보았고,
너와 함께 웃었고, 함께 울었다니 말이다.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힌 역사를, 인생을 네가 산
것이다. 바로 네가.
옆 사람도 아니고 뒷사람도 아닌
바로 너라는 것이다.
바로 너!!!
왜 자꾸 이것을 잊고 사느냐.
안타깝게 말이다.
내가 나와 통하라고 얼마나 애타게 말하였냐.
그래서 선생 통해 얼마나 가르치고 또
가르쳤냐. 나를 느끼라고, 나를 쳐다봐 달라고,
나와 대화하자고 말이다.
그런데도 안 들린다 하고, 안 보인다고 하고,
안 느껴진다고 하면서
나를 그리도 애간장 태우더니만
결국 내가 떠나기 전
휴거되지 못한 자들이 참으로 많구나.
내 이 모든 무거운 짐을 선생에게 지어 주고
가야 하니 마음이 저민다.
그래도 휴거된 자들이 있어 한시름 놓는다.
선생이 그자들을 크게 쓸 것이다.
휴거에 직접 손대도록 사용할 것이다.
이렇게 선생 몸 되어서 휴거를 외쳐 줄 자들이
생겨나 그들에게 선생 짐 조금 덜어 주고 가니,
나는 다행이라고 선생에게 말한다.
이제 휴거 때가 지나고 나면
말씀이 어떻게 나갈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마지막 기회가
조금이라도 남은 이때라 이때를 잡아 본다.
이 때를 선생에게 맡긴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들아
나와 함께하는 남은 휴거 때를 기쁘게 지내자.
얼굴 인상 찌푸리며 힘들어하면서 휴거되려
하지 말고, 웃으면서, 행복해하면서
나와 함께 휴거의 길을 가 보자.
이 길이 내가 떠나기 전
너와 함께하는 추억이라 여기며 말이다.
네가 오늘 휴거되기 위해
새벽을 깨우고 기쁘게 맞이한 그 시간이
나와 또 하나의 추억을 쌓고
행복을 만드는 시간이라고 여기며 말이다.
이와 같이 하루하루 남은 며칠을 지내자.
잊지 말아라.
너의 인생 내가 함께한 인생이다.
직접 내가 함께 걸어온 인생길이다.
최고의 축복된 인생이다.
나 떠나고 선생 믿고 따라와라.
그만 잘 따라오면 된다.
알겠지? 그와 손잡고 황금성에 오자.
사랑한다.
너에게 남은 모든 사랑 한가득 너의 영혼육에,
너의 가슴속에, 너의 뇌에,
너의 인생에 퍼부어 주고 가는 성자다.
사랑한다.
2014-12-29 월요일
성자는 이제 떠나는 길이다
작성일 : 2013. 11. 20(목)
작성자 : 정별해
(기도 중에 성자 주님이 예전처럼 강하고
또렷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대화하고 있는 기분이기에
“성자 주님, 지금 어디쯤 가고 계신가요?
예전처럼 느껴지지가 않아요.
제가 환경이 변해서 그런 것인가요?”했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아니다.
네가 나를 부르고, 뒤돌아보게 했으니
내가 계시한다.
정확하게 받아서 정확하게 전해 줘라.
나 성자는 지상을 떠나가고 있다.
이제 나도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해 줄 것을 다 해 주고,
마지막 때 처리할 일들을
마지막으로 처리하고 간다.
내가 올해 초에
‘1년이라도 나와 사랑하자.’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그때는 너희가 감이 없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고
흐지부지 잊고 살았던 자들도 있다.
그러나 보아라. 어떠하냐.
나 성자가 그렇게 재촉하고 휴거를 돕고,
선생을 통해 말씀을 준
지난 1년을 되돌아보아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진정 너희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너희 붙잡고 서 있었다.
그런 나를 잡은 자는 나의 계시도 받고,
깊은 나의 심정도 알게 되었다.
또 선생과 소통하고, 함께하며
그의 육이 되어 휴거되었다.
나 성자는 미련이 없다.
미련도 후회도 없이 다 주었다.
너희가 원하는 것도 합당한 것은 다 해 주고
간다. 성자가 지상에 내려와
보낸 자를 통해 역사하는 이 기간,
이때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면,
내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나를 불같이 열렬하게 사랑했을 것이다.
너희 각자의 사랑의 깊이를 확인해 보아라.
지상에 온 성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아라.
그것이 네 휴거선이다.
이제 내가 가면,
‘개인의 역사’다.
개인이 잘하는 만큼
그에 해당되게
개인에게 역사가 돌아간다.
교회가 잘하면,
그 교회에 해당되게 역사가 진행된다.
즉, 모두에게 동일하게 엄청난 성령을 퍼붓고,
동일하게 더할 수 없는 사랑을 해 주며
내가 함께하고 역사해 주는 기간은
끝이라는 말이다.
이제 내가 해 줄 만큼 해 주었으니,
그동안 해 준 것을 가지고
얼마나 더 사랑하고, 열심히 하고,
역사를 펴느냐에 따라
개인의 역사, 교회의 역사,
민족의, 세계의 역사가 달라진다.
선생도 나의 육이 되어서
더욱 지도할 것이나
그 차원대로 역사하며 지도할 것이다.
개인이 만든 그릇에 따라서
물을 부어 준다.
할 일을 준다.
깊은 심정을 준다.
나 성자가 지상에 있을 때
돕고 함께하며 같이 만든
너의 그릇에 따라서
네 개인 역사의 시작이 달라진다.
나는 선생에게 모든 통치권을 넘겨준다.
보낸 자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택한
분체로서 나의 육이다.
그러니 나는 영으로 영의 세계에 있고,
보낸 자는 나의 육으로 육의 세계에 있는
것이다. 내 분신, 분체가 육의 세상에 있으니
그것이 선생이다.
영적으로 깊이 깨달아라.
나 성자는 이제 떠나는 길이다.
올해 너희의 휴거를 도우며 최고로 역사했다.
이제 지상의 역사를 정리하고,
해 줄 것을 더욱 해 주고,
해결할 것을 더욱 해결하며
완전하게 만들어 놓고,
나는 가고 있다.
(성자 주님, 성자께선 순간 천국에 갈 수
있으신데, 왜 한 기간 동안 ‘가고 있다.’라고
표현하시나요?)
역사를 보아라.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갈 때,
신약에서 성약으로 넘어갈 때,
딱 한 순간 역사가 바뀌더냐.
사명자를 보내고, 준비시키고,
행하게 하고 조건을 세우게 하여
나의 말씀을 주고 서서히 외치게 한다.
하나님의 정한 날이 있지만
그 날을 위해 준비하고 만드는 기간 또한 있다.
또, 그 정한 날 선을 긋고 역사가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날부터 서서히 천천히 역사가
진행된다.
모든 것은 순리다.
나 성자가 떠나는 것 또한 마찬가지야.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해 줄 것을 해 주며
선생에게 마지막 권세를 모두 넘겨주는
기간이다. 내가 휙 가 버리는 것이 아니고,
지상의 역사를 하나씩 살펴보며
마지막으로 보고 가는 기간이다.
나 성자가 지상에 마지막으로 있는 기간이다.
그러니 나는 떠나면서 누가 부르면
뒤를 돌아보는 입장이다.
알겠느냐.
너희의 얼굴을 마주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펴는 지상 역사가 끝나간다.
나 성자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진정으로 깨달아라.
나는 너희와 더 사랑하고 싶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와 사랑하며,
신이 되어 신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어라.
그것이 인생으로서
최고로 잘한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더 많이 부르고 찾아야
나 성자가 느껴지고, 내가 가까이 갈 것이다.
지금 내가 떠나는 중이라, 바쁘다.
계시도 네가 더 많이 연구하고 깨닫고 알아야
내가 이야기할 것이다.
말씀도, 각자 수준대로 깨달으니
그 깨달음의 깊이와 차원을 달리해야
내가 새로운 것을 줄 것이다. 알겠지?
더 잘하자. 열심히 하자.
마지막 때, 마지막 순간이 귀하다.
성자와의 인연은 영원한 인연이니,
지상에서도 가장 좋게,
천국에서도 가장 좋게 만들자.
지금도 나를 부르고 찾는 자에게는
얼굴을 마주하고,
가장 가까이서 역사하는 성자다.
내가 떠나기 전까지다.
천국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너희와 가장 가까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말고,
지금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나 성자가 지상에 있을 때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라.
할 말을 해.
또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라.
나 성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지금 다 풀어 놓는 것이다.
성자가 가는 길에,
어디쯤 가고 계시냐고 묻는 자가 있기에
뒤돌아서 계시했다.
미련 없는 자들이 돼.
끝까지 나는 너희를 정말 사랑한다.
나와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