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01.04 (일)
+ 2015년 01월 주일수요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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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4 (일)
- 성경 본문
- 다니엘 12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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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
2015년 01월 04일 주일
source : 만남과 대화 god21.net
[ 다니엘 12장 3절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
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
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사도행전 1장 8절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
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2015년 새해 첫 주일예배>입니다.
하나님과 성자의 사랑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2015년 총 주제>는
“전도하자. 선교하자.”입니다.
올해 총 주제에 따라서
<2015년 새해 첫 주일말씀>은
‘전도, 선교’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왜 전도해야 되는지,
전도와 생명 구원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알게 해 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어야
성령의 뜨거운 감동으로 ‘전도의
시동’이 걸려서 많은 생명들을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돌아오도록
전심을 다해 계속해서 전도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전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뜻을 펴신다.’입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인
<다니엘 12장 3절>을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전도하는 자>는
‘별’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됩니다.
또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자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을 두고 가면서
‘최고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타낸
말씀입니다.
곧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온 세계의 땅 끝까지 ‘주’를 증거하며
전도하자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주도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 예수님’을 세상에
보냈을 때, 예수님이 ‘자기 혼자’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자기 혼자’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자기 혼자’만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했다면, 하나님은 ‘예수님 한
명’에게만 <구원의 뜻>을 펴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외에는 한 명도
전도되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이 지구
세상에 <뜻>을 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예수님도, 제자들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순교’를
하면서까지 ‘전도’했기에 하나님께서
지구 세상에 <구원의 뜻>을 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의 복음>으로
인하여 현재의 <성약역사의 길>이
닦이게 되었습니다. <신약 복음의
터전> 위에 <이 시대 성약 복음>을
새롭게 펴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들도 <이 시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 터전
위에 하나님은 ‘휴거 역사’까지
펴셨습니다. <끝>
★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펼 수 없습니다. 고로 전도하여
<하나님이 목적하신 뜻>을 펴게
하라는 것입니다.
* 지금은 ‘1차 전도의 필요성’을
깨닫도록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이 시대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선생’을 키우시고 <시대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세상에 전하게 하며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이 시대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
곧 <창조 목적과 휴거의 뜻>을 펼쳐
나가셨습니다. <끝>
그런데 만일 선생이 <복음>을 전해도
‘전도’가 안 된다고 하며 전도하다가
말고 ‘농사’나 짓든지 ‘엿장수’나 하고
살았다면, ‘선생 혼자’만 <기독교
주관권의 구원>을 받고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을 펴지 못하여 지금
진행하고 있는 <휴거 역사>를 못 폈을
것입니다.
선생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새 역사>를 펴 나가신다.’ 하는 것을
깨닫고, 전도한 자들이 나가도, 전도가
힘들어도 계속 <시대 말씀>을 전하며
‘전도’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선생이 <새 역사 복음>을 전하기
위해 1978년도에 ‘서울’에 왔을 때,
자리를 잡기까지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처음에 서울에 올라가서 전도하는데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서울 삼각산> 산속에 들어가서
비닐을 쳐 놓고 담요 한 장을 깔고
덮고 자면서, 굶어 가면서
전도했습니다.
<삼각산 기슭의 기도원>에 들어가서
철야하면서 기도하고, 거지같이 밥을
얻어먹으면서, 날이 새면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전도의 힘, 전도의 능력,
전도의 자료는 그동안 성자가 가르쳐
주신 <시대 휴거의 말씀>과 성자께서
하나님과 함께 내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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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는 항상 내 옆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절대신’이라서 안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사랑하니,
<전능자 성자>는 항상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끝>
성자께 배운 말씀을 가르쳐 주면,
어떤 사람들은 “생소하다.” 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단 같다.” 했고,
어떤 사람들은 “기다렸던 말씀이다.”
하며 좋아서 배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사람들을 만나 말씀을 전해 주며
전도하다 보면, 식사 때가 되어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하면, 사 줄 테니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사 주면
먹었습니다. 그리고 또 전도하다가
배가 고파 올 때까지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 밤이 찾아와서 그들은 집에
가고, 선생은 남아서 <삼각산
기도원>에서 집회에 참석하고,
그러고 나서 또 기도하고, 날이 새면
또 나가서 전도했습니다. <끝>
<기도원>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그중의 몇 명은 선생을
보고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기도해 주니, 현장에서 아픈 것이
나았다고 하며 병 고치는 능력이
있으니,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재워 주며
계속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그 집에 며칠씩 묵으면서
<말씀>을 가르쳐 주고, 또 기도해
주고, 은혜 받게 해 주고,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아픈
사람들’을 또 내게 데려왔습니다.
이렇게 <기도원>에 병 고치러 왔다가
선생을 만난 사람들이 선생에게 기도
받고 병이 나았다고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을 소개시키며 데리고 왔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병든 사람들 중에는 ‘일반 병’에 걸린
사람들도 많지만, 거의 다 ‘귀신이
들려서 아픈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신유의 능력>보다는
<사탄을 쫓아내는 능력>으로
일순간에 쫓아냅니다. <끝>
그런데 사탄과 귀신이 금방 나가면,
선생은 그 집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말씀>을 가르칠 시간이 없었습니다.
<말씀>을 안 배우면, 결국 또 사탄과
귀신에게 시달리고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성자는 사탄과 귀신을
점진적으로 쫓아내게 하셨고,
그 기간 동안 <말씀>을 가르치게
하시어 본인이 <말씀의 능력>으로
사탄을 이기고 귀신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선생은 일주일씩 ‘병든 사람의 집’에서
같이 지내며 기도해 주고, 병을 고쳐
주고, 그 집안 식구들 모두에게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가정의 어려운 문제’도
해결됐다고 하며 정말 기뻐했습니다.
이같이 <복음>을 전하면서 나도
‘잘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하며
존재했고, ‘아픈 자들’도 고쳐 주고
‘말씀’도 전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선생이 서울에서 거할 수 있는 자리를
잡기까지 3년 정도 걸렸습니다.
아픈 사람들이 병을 고쳐 줘서
감사하다고 사례를 했는데, 그것을
모아서 <서울 변두리>에 ‘방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때부터는 그곳에서 밥을
해 먹으면서 계속 전도했습니다.
아픈 자들을 계속 낫게 해 주니,
그들이 계속 ‘아픈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아픈 자들’을
중심하여 교회 건물을 얻고,
정식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난한 자, 아픈 자들만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 아픈 자,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조용히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눅 10:24)
“너희는 참으로 복이 있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보고 있고 듣고 있으니, 참으로
복되다.” 이 말씀이 생각나니 더욱
희망이 생겼고,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이야기 잘 전해 주기.)
때는 1979년~1980년 즈음,
선생이 <남가좌동>에서 약 50명을
모아 개척할 때였습니다. 이때 선생의
어머니가 <월명동>에서 서울에 있는
내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어떻게 지내냐?”
“잘 지내요.”
“이제 <서울 큰형 있는 곳>으로 이사
간다. 그래서 <네가 지은 월명동 집>을
팔고 가려고 한다. 말거리 황부근 씨가
산다고 했다. 35만 원 준다더라.
그런데 네가 지은 집이니, 너에게
이야기라도 하고 팔려고 감동되어
전화했다. 이 집을 팔아야 이사 비용이
나온다. 이제 동쪽 부엌 벽도
무너졌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선생은
“저 서울에서 목회 실패하면, 거기
가서 살아야 돼요.” 했습니다. 그 집은
선생이 <베트남 전쟁터>에 다녀온
후에 100년 된 토담집을 다 허물고
새로 지은 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네가 돈이 있으면 사라. 그것으로
이사 비용 대게.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같이 여기서 못 살아.
이제 허리가 아파서 농사도 못 짓는다.
큰형이 빨리 집 팔고 서울로 오라고
수시로 전화한다. 네가 여기 와서 살
거면, 네가 사. 3일만 기다리다가 연락
안 오면, 돈이 안 돼서 못 사는 줄
알고 집 팔고 떠난다. 전화 끊어.
전화비 많이 나온다.” 하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선생은 고민, 걱정,
근심이었습니다. 밥도 안 먹고 방에
들어가서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새벽 4시경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했지?
어머니인가?’ 하고, 기도하다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인 중의
어떤 남자’였습니다.
“선생님, 뭐하세요?”
“지금 새벽기도 중이지. 급한 일이
있어도, 지금은 기도 중이니 기도
끝내고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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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뭐 걱정되는 것 있어요?”
“그래.”
“뭐예요?”
“야~ 내가 말하면, 네가 해결해 줄 수
있겠냐. 하나님께 고해야지.”
“선생님도 걱정을 해요? 이해가 안
되네요. 무슨 걱정인데요?”
“<내 사명>만 하늘에 닿지, 나도
<사람>이니 세상 걱정이 있다.
기도하는데, 너 때문에 리듬 깨졌다.
우리 어머니 전화인 줄 알고 받았어.
너인 줄 알았으면 전화 안 받았다.
전화 끊는다.”
“선생님, 저 선생님 보고 싶은데, 지금
가도 되나요? 허락해 주세요.”
내가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그가
선생을 계속 설득시키느라 긴 시간이
가게 생겨서 “그래, 와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성자는 이미
<내가 기도한 것에 대한 답>을
주시려고 계획하시고 그 기도를
들어주시기 위해 ‘합당한 사람’을
보내셨는데, 선생은 그것도 모르고
‘교인이 오기 전에 빨리 기도해야지.
그가 오면 교회 문을 따 줘야 해서 더
기도 못 하니까 빨리 더 해야지.’ 하고
기도했습니다.
성자께서 계획하시고 ‘그 남자 교인’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려 하시는데,
선생은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가
월명동의 집을 팔면 어쩌지요?
하나님이 돈을 꿔 주시든지, 이 문제를
꼭 해결해 주세요. <월명동>에 ‘뜻’이
없으면 집을 팔겠지만요. 3일 만에
소식 없으면, 어머니가 집을 판다고
했습니다. 어쩌지요? 벌써 날이 새서
이틀째예요.” 하며 다급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었습니다.
푸념인지, 낙심인지, 마음이
먹먹하기만 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교인들에게 돈을 빌리면 되려나?
가난한 사람들이니, 누구한테 돈을
빌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 10만
원이면, 지금의 200만 원도 넘는
큰돈이었습니다.
그때 35만 원이 필요했으니,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적지 않은
액수였습니다.
기도하다가 각종으로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 ‘되겠지.’ 하는
감동이 들어 철없는 어린아이같이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교회 벨이 울렸습니다. 문을 여니
방금 전에 전화했던 그 남자
교인이었습니다. 그는 “선생님, 만나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뭘
걱정하며 기도하신 거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걱정되는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선생님, 그 집 필요하세요?”
했습니다.
선생은
“필요하지. 그리고 내가 지은 집이라서
좋아. 그 집을 팔면, 돌아갈 고향 집이
없어진다.” 했습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선생님, 제가 사 드릴게요!”
했습니다.
“야! 새 집으로 다시 지어서 비싸.”
“얼마나 해요?”
“35만 원이다.”
“킥킥!! 하하!! 35만 원짜리 집도
있어요? 혹시 3500만 원 아니에요?
35만 원으로는 서울에서는 몇 평도 못
사요.”
“아니야. 시골에서는 보통 집 한 채에
몇십 만 원이야.”
“그럼 어서 가서 사세요.” 하면서,
그는 번쩍이는 파란색, 100만 원짜리
수표 네 장과 현금 몇십 만 원을 더
주었습니다.
“어서 가서 계약하세요! 이 돈은 제가
용돈으로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집에 가서 더 가지고 올게요. 선생님
어머니가 고향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기 전에 어서 빨리 가 보세요.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선생님 뵈니
기뻐요.” 했습니다.
기도하니, 성자께서 기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100만 원짜리 수표 네
장은 안 받고, “현금 35만 원만 줘.
그리고 3만 원만 더 줘. 오랜만에
어머니 찾아뵈니, 가다가 사과와 명태
사 가려고. 그리고 차비도 할게.”
하며, 현금 38만 원만 받았습니다.
즉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들고,
얼굴에는 ‘희망 빛’이 찬란하여
열차를 타고 월명동에 가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 앞에 돈을
내놓으니, 어머니는 놀라면서
“교회가 잘되냐?” 하셨습니다.
잘된다고 하며 집값 35만 원을
드리고, 사과와 명태도 드렸습니다.
“어머니, 이 집은 이제 제 집이에요?”
하니, 어머니는 “형들은 다 서울에
집이 있고, 영자는 결혼해서 집이
있고, 다른 형제들은 이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다 팔아 버리라고
한 집이다. 이제 네가 와서 살아라.
부엌 쪽은 흙벽돌이라서 벽이
무너져서 손질해야 된다. 그런데
이 집은 뭐하러 사냐?”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게
“회골 땅은 어떻게 하려고 해요?”
하니, 어머니는 “그 땅을 누가 사
가냐? 그냥 산(山) 되겠지.”
하셨습니다.
“언제 이사 가세요?” 하니,
어머니는 “바로 가야지. 장독은 안
가지고 간다. 놓을 데도 없다.
큰형이 계속 서울로 오라고 전화하니,
할 수 없이 간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대화한 후 인사하고 선생은
다시 서울로 왔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그때 <월명동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더라면, 오늘날 <월명동
자연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작은 곳을 시작점으로 하여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월명동 자연성전>을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하게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끝>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4
<복음>을 전하며 ‘전도’했더니,
하나님과 성자는 ‘전도한 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계속 전도하면,
‘밭에 감춰진 보화 인생’을 만나
<보화가 숨겨진 밭>을 사게 되고,
<하늘의 운>과 <물질의 운>이 오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은 <남가좌동>에서 계속 복음을
전하며 전도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한 청년이 자기 마음대로
연애를 하더니, 결국 교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가 그
교회에서 목회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에게 ‘소돔
땅’을 내주고 ‘삭막한 가나안 땅’을
차지했듯이, 선생도 그에게 ‘그
교회’를 내주고 ‘삭막한 선교지’를
다시 찾아 떠났습니다.
그때 교회 전세금이 500만 원이었는데
교회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으니
전세금을 빼 갈 수는 없고, 내게 30만
원을 주어서 그것을 가지고 선생 혼자
나왔습니다. ‘어디로 가나?’ 하고
기도하면서 30만 원짜리 전셋집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때 <신촌 지역>에서 150군데를
다녔는데, 그 돈으로는 집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이대 앞에
있는 ‘한 평이 안 되는 작디작은 월세
방’을 얻었습니다.
30만 원 보증금에 매달 3만 원씩
내는 방이었습니다. 거기서 다시
<복음>을 전하며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몇 명을 전도했는데
방이 너무 좁아서 모일 수가 없었고,
나중에는 생활비 때문에 월세도 못
내서 보증금 30만 원도 다
까먹었습니다.
그곳에 더 있을 수가 없어서
<다 무너져 가는 삼선교 양로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2000명에
가까운 청년들을 가르쳐서 30여 명을
전도했습니다.
거기서도 따라오다가 다 나가고,
현재 섭리사에 남은 사람들은
배수빛, 정범석, 정용석, 장광희,
강록화 목사만 남았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삼선교에서 벗어나 가톨릭회관,
연극극장 태멘, 독산동, 영동 지하실
교회, 구기동 세검정, 봉천동 역사를
펴며 계속해서 <시대 복음>을 전하며
‘전도’했습니다. 그러다가 현재 오늘과
같은 대(大)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선생은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이미
오래전에 선생으로 인해 3만 명을
하늘 앞에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들이
또 계속 전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됐습니다.
전도해야 <뜻>을 펴고, 전도해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목적>을
이룹니다. <휴거>가 ‘최종 목적’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개인이 구원받고
휴거되는 데서 끝납니다.
전도하면, 자기가 전도한 자들이
나가서 또 전도하게 됩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고, 자기는 <신앙의 조상>이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중요
섭리역사 당세의 여러분 모두는
<성약 1000년 역사>의 ‘신앙의
조상’이 될 자격자들입니다.
지금 자기가 두 명, 혹은 세 명, 열
명, 스무 명을 전도해 놓으면,
전도된 그들이 또 전도하고, 그다음에
전도된 자들이 또 전도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펼쳐져 나갑니다. 결국 수십만 명,
수백만 명, 수천만 명이 되어
<찬란한 생명의 섭리역사>가
펼쳐지게 됩니다.
분체가 살아 있는 당세에 전도해야
각자 개성대로 <성약 1000년 역사의
신앙의 조상>이 됩니다. <끝>
올해 성자께서 누구에게나 많은
생명들을 보내 주시니, 자기가 섭리의
희망을 가지고 굳건하게 서서 하면 다
전도합니다. 올해 <남은 휴거>를
이루면서, 꼭 <전도>해야 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계획하신 <생명의 역사>를 이루지
못하고, 천국에 가도 ‘따르는 자들’이
없으니 ‘그들로 인한 영광’이
없습니다.
어떤 신입생은 1년에 몇 명씩
전도했는데, 어떤 사람은 결혼하고도,
오래됐어도 지금껏 전도를 못 하고
자기 자녀까지 교회에 제대로 못
나오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통해서는
<생명의 뜻>도, <창조 목적의 뜻>도,
<휴거의 뜻>도 펴지 못하십니다.
이들은 겨~우 <개인의 뜻>만 펴고
있을 뿐입니다. 성자가 가면서
책망하시니 말씀을 듣고 깨닫고
전도하고, 자녀도 제대로 가르치기
바랍니다.
전도해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자기를 통해 <뜻>을
이루시고 전도해야 영원히 빛나는
<신앙의 조상>이 되어 그로 인해
‘영원한 영광’을 받게 됩니다.
전도함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뜻>,
<창조 목적의 뜻>, <최첨단 휴거의
뜻>을 펴 나가게 됩니다.
성자와 분체를 사랑하지요?
사랑하면, 전도하여 ‘신앙의 자녀’를
낳게 됩니다. 그 생명을 잘 관리하고
키우면, 하나님께서 ‘큰 뜻’을
펴십니다. 모두 100명, 1000명,
10000명씩 전도하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하기 바랍니다.
혼자서는 그렇게 못 합니다.
먼저 자기가 전도하고, 자기가 전도한
자들이 또 전도하고, 그들이 또
전도하게 하면서 ‘수많은 군중’을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 전도하여
<신앙의 부모, 신앙의 조상> 소리를
듣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여러분이 차지한 <이 섭리역사>는
선지자들도 왕들도 그토록 기다리며
보고 듣기를 원했던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보고 있고 듣고 있으니,
모두 복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성자께서 시대 구원자를
통해 선포한 말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말씀,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이루는 말씀, <이 시대 말씀>이
‘권능’이며 ‘무기’이며 ‘철장
권세’입니다. 이 <말씀>으로 악도,
불의도, 악평도, 비진리도, 세상도,
사탄도 질그릇 깨뜨리듯 다 깨부수게
됩니다.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5
어디에도 없는 <대(大)희망의
말씀>입니다. 다른 곳에 <희망의
말씀>이 있다 해도 ‘옛 시대’일
뿐입니다. <새 역사>는 오직 성자가
다시 오셔서 ‘새 말씀’으로 역사하는
<섭리역사> 한 곳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전도를 많이 하면 ‘허다한 죄’도 다
덮어 줍니다. 생명을 구했으니,
생명으로 갚아 주는 것입니다.
전도해야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전도해야 ‘자기에게 큰 영광’이
됩니다. 자기가 전도한 자들이 ‘자기의
영원한 영광’이 됩니다. 전도하면
전도된 자들로 인해서 자기가 더욱
튼튼히 존재합니다.
전도한 자들은 ‘영’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생명을 구원한 자들의 영’은
그리도 빛이 납니다. <휴거>되는 데도
‘전도’가 그리도 큽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전도해야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할
운’이 자기에게 옵니다. 선생은
전도해서 <월명동 집>도 샀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백보좌 터’를
차지했습니다. 결국 ‘그 작은 집터’를
중심으로 해서 <월명동>을 개발하여
<이 땅의 하나님의 백보좌인 월명동
자연성전>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함으로 <성전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뜻을 펴시는 발판’을 만든 것입니다.
전도해서 <뜻>을 이루었습니다!
월명동은 <성약 1000년 역사 기간>
동안 ‘하나님의 뜻을 이룰 발판’으로
사용됩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기뻐하시며 그곳에 가면 늘
말씀해 주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끝>
여러분도 전도함으로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바랍니다. 전도한 만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각종 뜻’을
펴십니다. 전도한 만큼, 성자도 분체도
‘최고의 역사’를 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 전도할 때 명심할 것 한
가지만 말씀하고, 또 전도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핵심만 말씀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전도할 때 명심할 것은
‘상대’를 꼭 파악하는 것입니다.
악평하고 꾀는 인사탄인지, 신천지처럼
생명을 사냥하는 자들인지, 어느
교파에 속해 있는지 파악하기입니다.
수료했어도 3~7개월은 꼭 확인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그들에게 전도를 당하게 되고
그들의 꾐에 넘어가게 되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약하니 둘씩 전도하러 가면
됩니다. 또 자기가 전도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다른 사람은 자기와
같은 심정으로 그 생명을 귀히 안
보니, 꼭 전도하면 맡기기만 하지 말고
자기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됩니다.
자기가 <강의>를 못 하면 맡기되,
자기가 ‘신앙의 부모’이니 <관리>는
꼭 해 줘야 됩니다. 그리고 본인도
<강의>하도록 하나씩 배워 나가야
됩니다. 지금은 못 해도 배우면,
후에는 능숙하고 능력 있게 하게
됩니다.
★ 전도를 잘하려면
첫째, ‘기도’로 무장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성자께서 예정하신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 전도를 잘하려면
둘째, ‘말씀’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자기가 진리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신앙의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다.
★ 전도를 잘하려면
셋째, ‘계획’을 세우고 해야 됩니다.
★ 전도를 잘하려면
넷째, ‘담대’하고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 전도를 잘하려면
다섯째, ‘성령의 감동’을 받고 ‘성자와
분체’와 일체 되어 같이 해야 됩니다.
★ 전도할 때는 ‘처음부터 말씀과
설명을 잘해 주기.’입니다. 처음에
잘못 가르치면, 영원히 다시 못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다음에는 ‘전문가와 같이 잘
관리하기. 교역자들이 목숨 걸고
관리하기.’입니다.
★ 연결 - 전초 - 가르치기 -
지혜롭게 잘 관리하기 이것이
<전도의 생명>입니다.
★ <성자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잊으면, 오래된 자들도 신앙이 죽게
되고, 신입생들도 신앙이 죽게 됩니다.
★ 구원자를 증거해야 전도가 되어
구원받고, 가장 강한 희망의 신앙인이
됩니다. 구원자를 증거해야 사탄과
악평자들을 이기고 시험도 이기게
됩니다.
<신약시대> 때는 순교하면서
‘주’를 증거했습니다. 왜 순교하기까지
했을까요? ‘메시아 예수님’을 제대로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육의 순교’가 아니라
‘정신적 순교’입니다. 역시 ‘주’를
제대로 확실히 알아야 ‘주’를
증거합니다.
‘주’를 증거하면, 천법에 의해서
구원자가 하나님 앞에서 그를
인정하고 시인해 줍니다.
한 명당 세 명만 전도했어도 선생은
이곳에 안 왔습니다.
왜 올해 전도해야 되는지 알겠습니까?
올해 10명, 100명씩 전도하겠다고
마음먹고 해 보기 바랍니다.
모두 전도하여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뜻>을 이루게 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지혜>와
<말씀의 능력>이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희망으로
새해를 시작하기 바랍니다.
<광 고>
교역자들 중에 강의를 못 하는 자들이
많다. 올해 3월 중에 ‘강의하는 것’을
시험 보기 바란다.
올해는 올해 전도한 것만 따져서
전도를 제일 잘한 교회와 선교
부서에게 ‘차’로 시상한다.
개인 시상은 실속 있게 ‘그림
작품’으로 시상하겠다.
1차 <7월>에 시상하고,
2차 <12월>에 또 시상하겠다.
<축 도>
2015년 01월 11일 주일
source : 만남과 대화 god21.net
[ 마태복음 19장 1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
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
명들을 지키라
[ 요한복음 14장 15절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
키리라
[ 로마서 1장 20-23절 ]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
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
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
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
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
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은혜와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
감화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2014년에는 성자께서 ‘확인하라.’
말씀하시며 한 해 동안 그 말씀을
생명과 같이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선생은 그 말씀을 생명과 같이 여기며
많은 것들을 확인하여 많은 보화들을
얻었고, 생명도 구했고, 해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2015년에도 성자는
‘중요한 한 마디’를 주시며 한 해 동안
항상 그 말씀을 잊지 말고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마디 말씀’을
오늘 <1월 둘째 주 주일말씀>으로
전해 주겠습니다.
올해 잊지 말고 꼭 행해야 할 말씀은
무엇일까요? 한국말로 ‘세글자’입니다.
성자의 한 마디 말씀... <싸인>
“잠깐만!”입니다. (* 표현)
성자는 “잠깐만” - 이 한 마디 말씀을
해 주시며 올해는 특히! 이 말씀을
명심하고 <성자의 마음과 생각>을
알고 행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잠깐만” - 이 한 마디 말만
듣고는 무슨 뜻인지, 어떤 의미인지,
어떤 계시인지 잘 모릅니다.
이에 해당되는 말을 해 주고 설명을
해 줘야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말씀 시작>
작년 12월 21일에 연말은 꼭꼭
시간을 지키면서 보내려고
최대로 할 일을 하며 시간을
지켰습니다.
일찍 자야 ‘제시간’에 일어나서
기도하는데, ‘밀린 일들’이 있으니,
일찍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 11시가 다
돼서야 잠을 자니, 새벽 1시에
일어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늦게 잤어도
새벽에 내가 정한 시간에 꼭
일어나겠다고 다짐하고 잠을 잤습니다.
잠에서 깨어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3시 15분 전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늦게 잤어도 꼭 일찍 일어나서
<1시 기도>를 하겠다고 하고 잤는데,
늦게 일어난 것입니다.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 천사 너는 왜
나를 안 깨워 줬냐?” 하며 나도
스스로 책망하고, 애꿎은 천사도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2시간이나 늦었으니, 성자와 약속한
시간이 지나갔다. 오늘은 성자와 대화
못 하고 끝났다. 일찍 못 자니, 일찍
일어나지겠냐?
<공적인 일>로 잠을 못 자는 것이지,
<사적인 일>로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공적인 일>을
하면서도 ‘보다 육적인 일’을 줄이고
‘보다 영적인 일’을 할 수 있나?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절대
<영적 시간>을 못 지킨다. 기도고
뭐고, 이것을 해결할 길을 찾아야
된다!’하고 생각하다가, 또 스르르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잠깐만!” 하는 소리가 크게
‘마음’으로 들렸습니다. 남자 음성인데,
‘사람 소리’ 같았습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누구지?’ 하며 문 쪽을
쳐다봐도 아무도 없었고, 방 안을 봐도
아무도 안 보였습니다. 얼른 씻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첫 마디에
“누가 잠깐만이라고 말을 했냐?
할 말이 있으면 해라.” 하며
묻기 시작했습니다.
“내 수호천사가 말했냐?” 하니,
천사는 안 했다고 했습니다.
“주위의 어떤 영이 내게 와서
말했냐?” 하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내 혼이냐?” 물으니, 혼도 그런
말을 안 했다고 했습니다.
“그럼 내 영이냐?” 물으니, 역시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성자께 물었습니다.
“누가 저에게 ‘잠깐만’이라고 했는데,
그 음성이 꼭 ‘일반 사람’
같았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신의 음성>이라도
‘자기 인식’대로 들린다.
누가 책임지고 너를 깨우겠냐.
너는 내 육인데, 네가 늦었다고
포기하고 다시 자려 하기에
내가 너를 부르면서 깨웠다.”
성자의 말씀을 듣고
“성자께서 나를 깨우셨으니,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 주세요.
왜 제 이름을 안 부르고,
‘잠깐만’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잠깐만’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부르는
소리’ 아닙니까?불렀으니, 말씀해
주세요.” 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내 말을 듣고 깨닫는 것은 ‘네
책임’이다. 네 생각과 행위를 보고
말했으니, 생각해 보아라.
네 생각과 행위를 보고,
내가 왜 ‘잠깐만’이라고 했는지 풀어
보아라.” 하셨습니다.
성자께서 ‘잠깐만’이라고 하셨을 때
<내 생각과 행위>가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습니다.
(선생이 깨달은 것을 말하기 전에,
사람들은 언제 “잠깐만”이라고 하는지
잠깐 설명해 주겠습니다.)
사람들도 ‘자기가 처한 환경과 입장과
처지’에 따라서 “잠깐만!”이라고
말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교통순경은 출퇴근길에 차들이 밀릴
때, 뒤차 운전자에게 “잠깐만!”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더는 말을 안
합니다. 교통순경이 그때 왜
“잠깐만!”이라고 했는지,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보면 압니다.
앞에 ‘다른 차’가 지나가고 있을 때,
앞에 ‘사람’이 지나가고 있을 때
“잠깐만!”이라고 말합니다. <끝>
어떤 교역자는 설교를 하려다가
“잠깐만요!”하더니, 단상에서
내려갔습니다. 알고 보니, ‘설교 원고
중의 한 장’을 빠뜨린 것을 알고
가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도로마다 신호등이 켜져 있지요?
신호등은 말없이 ‘빨간불’만 켜고
있습니다. 이것은 ‘잠깐만 멈춰!’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달려오던 차들이
‘빨간불’을 보고 멈춥니다.
그때 신호등은 말없이 잠깐!
‘초록불’을 켜 줍니다. 그 순간
사람들은 ‘초록불’을 보고 건너갑니다.
여기서 ‘빨간불’과 ‘초록불’은
말없이 ‘잠깐만’이라는 <자연계시>로
쓰입니다. <끝><잠시 쉬었다가>
성자가 왜 선생에게 “잠깐만!”이라고
하셨는지 생각해 보고 깨닫고 보니,
성자가 무슨 뜻으로 말씀하셨는지
‘성자의 마음’을 알게 됐습니다.
선생이 늦게까지 일하다가 늦게 자서
<성자와의 새벽 약속 시간>을 못
지키고 2시간이 지난 후에나 잠에서
깼는데, ‘오늘은 기도하기 글렀다.’
하며 포기하고 다른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잠이 드니까, 성자는 “잠깐만!
포기하지 마. 나 왔다. 늦었어도
기도하면, 내가 깨닫게 해 주고 갈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새벽 1시는 네가 정한 시간이잖아.
네가 정한 시간은 지났지만, 아직
3시에서 5시까지 시간이 더 있지
않냐. 늦으면 늦은 대로 기도하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냐.
잠깐만은 ‘그것이 아니다. 그러지
말아라. 네 생각이 틀렸다. 다시
생각해 봐. 나 성자의 생각도 있지
않냐. 내 생각은 다르다.’하며, 상황이
이와 같을 때 ‘성자가 쓰시는 계시의
단어’였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신앙의 길을 저버리고 다른 길을
가려는 자에게 성자는 “잠깐만!”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자의 한 마디
말씀을 무시하고 거기서 더 가면,
실패입니다. 끝장입니다. 차를
운전하다가 뒤로 후진하는데,
행인이 주변 상황을 보고 “잠깐만요!”
했는데,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후진하다가는 20km 절벽 밑으로
굴러서 끝장나게 됩니다. <끝>
왜 ‘이름’을 안 부르고 ‘잠깐만’이라고
하는지 알고 보니, ‘이름’을 부를 때와
‘잠깐만’이라고 할 때는 <뜻>도 다르고
<할 말>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잠깐만!”은 “순간 멈춰라. 더 가면 안
된다.” “그러지 말아라.” “대기해라.
중지해라.” “할 말이 있다.” 하는
뜻입니다. “잠깐만!”은 ‘그 순간 급할
때’ 쓰는 말이고, ‘그 순간 문제가
있을 때’ 쓰는 말입니다.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잠깐만!” 하며 멈추게만 한다.
그때 ‘그 순간 너의 생각과 행실과
입장’을 보면, 왜 “잠깐만!”이라고
했는지 본인 스스로 깨닫는다.”
성자의 말씀을 듣고, 이날 ‘이에
해당되는 잠언 계시를 50편’을
썼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이성적
생각’을 하고 ‘각종 이성 문제’를
일으키러 가려는데, 성자께서 그 순간
“잠깐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자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냥 가다가 문제를 일으켜 결국
<휴거 250~280선>을 가다가
밑으로 떨어집니다. 또 <사명>을
맡겼더니 ‘그 사명의 일’을 하면서
‘이성 문제’를 일으킵니다. 계속
그렇게 하다가는 영혼이 망하니,
성자는 “잠깐만!” 하시며 <사명>을
중단하게 하십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사명이 크냐,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고 휴거시키는 것이 크냐?”
하셨습니다. 2014년에도 자기가 그릇
생각하고 각종 일들을 실수하고
있기에 “잠깐만!” 하며 성자가 멈추게
하셨는데, 그냥 행하다가 실패한
자들이 많습니다.
“잠깐만!” - 성자의 말 한 마디로
<운명>이 좌우됩니다. “잠깐만!”이라고
영감이 오든지, 음성이 들리든지,
만물로 보이면 즉시 깨닫고,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잡아 행해야 됩니다.
‘자기가 할 일’을 잊었을 때도
성자는 “잠깐만!” 하시며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또 ‘한 가지만
생각하고 행하는 자’는 문제를
일으키니 성자는 “잠깐만!” 하고
멈추게 하십니다.
지도자가 영적이지 못하여
성자께서 “잠깐만!” 하고 멈추게
하시는 말을 안 듣고 그냥 행하다가는
책임이 큽니다. <개인>이라면
자기에게만 해가 되고 자기만
실패하고 망하지만, <지도자>라면
자기뿐 아니라 따르는 자들 모두에게
해가 되니 결국 ‘섭리 전체’에게 해가
됩니다.
은하수,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가정국, 장년부 지도자들도
교역자들도 이 말씀을 명심하고
늘 ‘자기 생각과 행실과 입장’을 보고,
성자께서 “잠깐만!” 하고 멈추게 하실
때가 언제인지 늘 신경 쓰고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성자께서 “잠깐만!” 하시면, 꼭
멈추고 다시 해야 됩니다.
“잠깐만” 이 말씀은 생명을 좌우하고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고
축복과 화를 좌우하고
운명을 좌우하는 말씀입니다.
전도해야 될 사람이 있을 때,
위험한 길을 갈 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있을 때,
이성의 유혹에 넘어갈 찰나에,
꾐에 넘어갈 찰나에,
분노 직전에,
혈기 내기 직전에,
말귀를 못 알아듣고 달리 행할 때,
모르고 형제를 오해할 때,
무지 속에 상극할 때
다른 마음을 먹을 때
성자와 심정이 안 맞을 때,
강의를 잘 못 할 때,
성자와 분체를 오해할 때,
악한 마음을 먹을 때,
기도하려고 일어났는데 다시 잠이
들려고 할 때,
감사해야 되는데 불만이 튀어나올 때,
하늘 앞에 감사할 것을 자기 위해 쓸 때,
힘든 생명이 생각날 때,
지갑을 공중전화 위에 두고 전화한 후
그냥 가려 할 때,
아기를 신경 쓰지 않고 잊고 있을 때,
건강을 신경 쓰지 않고 있을 때,
사기꾼인지 모르고 대할 때,
악평자인지 모르고 대할 때,
해서는 안 될 일을 감행하려 할 때,
분별하지 못하고 확인하지 않고 행할 때,
자기 입장만 놓고 행할 때,
차를 타고서 조심하지 않고 달릴 때,
사고 나기 직전에,
휴거를 놓고서 포기하려 할 때,
각종으로 자기가 하던 일을 놓고
포기하려 할 때,
→ 이럴 때 성자는 “잠깐만!” 하고
급히 말씀하시며 잠시 멈추게 하십니다.
“잠깐만!” - 이 음성은 ‘수수한 한
사람의 소리’같이 들립니다.
이때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내가 하고 있던 것에 문제가 있구나.’
깨닫고 즉시 돌이켜 처리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어느 때는 “잠깐만!” 이 말씀이
음성으로 안 오고, 거기에 합당한
만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선생이 편지를 쓰고 봉하기
전에 성자께서 “잠깐만!” 하시며
“누구에게 쓴 편지는 빼고 보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쓴
편지만 빼고, 나머지 편지들만
보냈습니다.
뺀 편지를 읽어 보니,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을 혼내고 책망한
편지였습니다. 몰라서 그러니 가르쳐
주어 다시 제대로 하게 해 줘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같이 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편지, 설명 편지를 써
주며 기회를 주고 용기를 줬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만물을
통해서도 말씀하고 행하니, 거기에
해당되는 만물을 보면 ‘우연’으로 보지
말고, 즉시 하던 일을 중지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구체적인 나
성자의 계시’를 받아라.” 하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어떤 사람이 말씀을 배우고 열심히
하다가 힘드니, 아무도 모르게 섭리를
나가려고 마음먹고 길을 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누가 자기 뺨을 치고 가기에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날개로 자기 뺨을
후려치고 날아가더랍니다.
그 순간 ‘성자가 만물을 통해 정신
차리라고 하시는구나.’ 깨닫고,
이제는 두렵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다고 하며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선생이 편지해 주기를 “성자께서
비둘기를 통해 정신 차리라고 그리
행하셨다.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열심히 해. 나도 도울 테니, 꼭
휴거돼라.” 했습니다.
선생의 편지를 받고 다시 답이 오기를
“애인이 정신 차리라고 뺨을 때린
것으로 깨닫고 평생 성자와 주를
사랑하며 절대 나가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끝>
이와 같이 성자는 만물로도
말씀하시고, 막으시고, 도우시고
행하십니다. 비둘기가 뺨을 안 때리게
해도 성자는 감동으로 역사하시고
자기 마음을 강하게 하며 도우십니다.
그런데도 그 말을 안 들으면
“할 수 없다.” 하시며, 그냥 당하게
하십니다.
섭리사를 나가려 하는 자들도 못
나가게 막으십니다. 그런데 ‘고집,
성격, 혈기’로 끝내 섭리사를 나가서
고통받습니다.
악평하는 자들도 악평하지 못하게
막으십니다. 그러나 역시 ‘고집, 성격,
혈기’로 계속해서 악평합니다.
그로 인해 행한 대로 받습니다.
성자 앞에 불순종하면 안 됩니다.
이는 자기가 자기를 사망으로 보내는
행위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잠깐만!”
이 계시를 ‘머리’에 외우고, 항상
성자와 대화해야 됩니다.
성자께 “잠깐만요!” 하면서, 성자를
불러야 됩니다. ‘잠깐’으로 운명이
좌우됩니다. 축복과 화가 좌우됩니다.
형제들도, 생명들도 “잠깐만!”으로
살립니다. 형제들을, 생명들을 순간
보고 지나치지 말고 “잠깐만!” 하며
사정을 물어보고 잡아 주면, 그 생명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특히 교역자들과
지도자들은 명심하기 바랍니다.
잠깐이라도 기도하고, 잠깐이라도
생명을 만나 보고, 잠깐이라도 행하는
것이 그리도 큽니다.
“잠깐만!” - 이 말씀은
<2015년 성자의 큰 선물>입니다.
선생은 성자께 이 계시를 받고
이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하니,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이 말을 모두에게 전해 주어
- 너와 같이 모두 나와 교통하게
하고,
- 힘든 생명을 살리게 하고,
- 많은 자들을 전도하게 하고,
- 서로 화목하게 하고,
- 제대로 분별하게 하고,
- 자기 무지를 해결하게 하고,
- 올해 얻을 것들을 얻게 하고,
- 이상의 역사를 일으키고,
- 전도의 역사를 일으키고, 승리의
역사를 펴자.” 하셨습니다.
모두 “잠깐만!” - 이 단어를 뇌 속에
넣고, ‘말씀을 잊으면 죽는다 / 말씀을
행하면 산다.’와 같이
<좋은 쪽>으로 35개의 문장을 만들고
<나쁜 쪽>으로 35개의 문장을
만들어서 외우기 바랍니다.
그리고 겪은 것을 서로 간증하고,
전도하며 <살아 있는 표적의 신앙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가르쳐 주었으니, 성자는 이제
실행하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전에는 몰라서 많은 손해가 갔습니다.
고로 <현재>와 <미래>에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하고 행하여 손해를 보지 말고
얻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성자께서
“잠깐만!” 하며 멈추게 하시면, ‘자기
생각과 행실과 입장’을 보고 즉시
깨닫고 돌이켜 행해야 됩니다.
<휴거>를 두고도 성자는 “잠깐만!”
하며 깨닫게 하시니, 성자께서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됩니다. 기도하거나 무엇을 구할 때
성자가 “잠깐만!” 하시며 “조금 더
기다려. 줄게” 하실 때가 있으니,
선생같이 기도하면서 누가 “잠깐만!”
이라고 했냐고 묻고 자기 주관인지,
천사의 말인지, 성자의 말씀인지
분별하고 파악하고 깨달아야 됩니다.
“잠깐만! 그러면 안 된다. 다시 생각해
봐. 포기하지 마. 잠깐만 기다려. 곧
줄게. 잠깐만! 저 차가 지나간 후에
가라.” 등 성자는 매일 계시해 주시니,
말씀을 귀히 여기고 매일 이와 같이
계시해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작년에도 선생이 <횡재하는 꿈>을
대신 꿔 줬는데, 귀히 여기지 않아서
꿈을 못 이룬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 귀히 여기지 않는지, 정말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처음에는 귀히 여기다가
치매 환자처럼 점점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잊지 않도록 써 놓고 매일
외우고 다녀야 됩니다.
선생은 꿈을 이루려고 2013년에 이어
2014년에도 3월부터 6개월 동안 절식
기도를 하고 또 12월까지 절식 기도를
했습니다. 꿈을 다 이루고도
감사기도를 하니, 생각지도 않았는데
작년 12월 21일에 성자께서
“잠깐만!”이라는 특별 계시를
<2015년 선물>로 주시어 모두에게
전해 줍니다. 성자의 한 마디 말씀을
행하면, 횡재하고 꿈을 이룹니다.
“잠깐만!” 이 말씀 속에 화를 피하고
복을 받고 횡재하는 방법이 들어 있고,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는 방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아멘.)
“잠깐만!” 이 말씀 속에 악을 멸하고
악평자를 멸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아멘.)
성자는 말씀하시면, 즉시 행하십니다.
고로 그 말씀대로 행하면, 즉시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전능자의 한
마디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야
됩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잠깐만!” 이 한
마디가 운명을 좌우합니다.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망합니다.
축복받고 횡재하려면, 말씀을 귀히
여기고 행해야 됩니다. <말씀 자체>가
‘보화’요, ‘현찰’입니다.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자는
뇌의 차원이 낮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잘해도 그 머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자녀 위해, 남편 위해, 아내 위해,
교인 위해, 생명 위해, 각종 것들을
위해 성자께서 “잠깐만!” 하시며
착오한 것을 다시 생각하고 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무시하고 그냥
하면 문제가 생기고, 얻은 것을
뺏기고,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한번은 선생이 ‘어떤 것’을 두고
“그것은 필요 없어요.” 하니, 성자는
“잠깐만!” 하시며 “다시 생각해
보아라. 너 주려고 30년 전부터
그것을 잡고 상황을 틀어 왔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너무도 감격해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즉시 수고하고
열심히 행했더니, 결국 얻게 됐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고생했더니, 그로
인해서 주셨습니다. 행한 대로
‘불가능한 것’인데도 주셨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자기에게
보화’입니다. 그 보화를 얻게
됐습니다. <선생의 것>은 ‘섭리사
모두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개인’을
통해서 <섭리의 축복>을 주시는데,
그것이 필요 없다고 하다가는
뺏깁니다.
다른 사람은 별것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필요한 자에게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사랑하는 애인’같이 절대
필요한 보화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마무리합니다.
‘잠깐만’이라는 말씀을 주시니,
아직 <땅의 주관권>에 계신 성자께서
잠깐만 있다가 가신다는 의도로
들립니다. 어떤 사람은 성자와 멀리
떨어져서 ‘해 그늘’에 묻혔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자의 햇빛’이 아직
비추이고 있습니다.
점점 떠나가십니다.
총알같이 2014년 끝나자마자 떠나지
않으시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서서히 떠나가십니다. 성자가 가시는
길이니, 각자 ‘극치의 사랑’으로 미련
없이 <끝>을 보내기 바랍니다.
<끝>에 못 하여 성자를 좋지 않게
보내 드리면, 그동안 수고한 것이
헛되고, ‘황금’이 ‘은’같이 되고
맙니다.
<끝>에 못 해서 안타깝게 되고,
<끝>에 마음이 변해서 운명이
좌우되는 자들이 많습니다.
말씀을 주신 성자께 진정한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성자와 매일
교통하기 바랍니다.
<축 도>
2015년 01월 14일 수요
source : 만남과 대화 god21.net
[ 마태복음 19장 1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
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
명들을 지키라
[ 요한복음 14장 15절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
키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은혜와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
감화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주에는 올해 잊지 말고 꼭
행해야 할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성자의 특별 계시로서 <2015년
성자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성자의 한 마디가 뭐였죠?
(잠시 기다렸다가)
네! “잠깐만!”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운명을 좌우하고, 축복과
화를 좌우하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선생이 “잠깐만!”이라고 성자의
말씀을 들은 날 즉시 <잠언>으로
기록한 말씀을 설교 식으로 전해
주겠습니다.
주일말씀을 생각하면서
성자의 말씀을 뇌 속에 더 깊이
새기고, 더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말씀 시작>
(* 이 말씀을 받게 된 배경을
<주일말씀>을 통해서도 말해
주었지요? 오늘은 화면을 보면서
핵심을 말씀해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 연말이지만 ‘밀린 일들’이 많아서
밤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꼭 <새벽 1시
기도>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잤습니다.
◈ 잠에서 깼는데 ‘성자와 약속한
시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1시는
이미 지났고, 2시 45분이었습니다.
‘내 기도 시간 끝났다.’ 하며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스르르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잠깐만!”이라는 한
마디가 들려서... 즉시 일어났습니다.
◈ “잠깐만!”이라는 음성이 ‘귀’로 안
들리고 ‘마음’으로 크게 들렸습니다.
누가 잠깐만 보자고 하는 급한 말
같아서 즉시 일어나서 씻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자가
‘천사’인지, ‘내 혼’인지, ‘내 영’인지,
‘타인의 영’인지 파악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 그래서 마지막으로 성자께
물었습니다. “잠깐만이라는 음성이
들렸는데, 평소에 듣던 ‘사람
음성’같지, ‘성자의 음성’은 아닌 것
같습니다.” 했습니다.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신의 음성>도 ‘자기 인식’대로
들린다. 내가 “잠깐만!”이라고 말한
목적은 <신의 음성>을 들려주고자
함이 아니라 너의 잠을 깨우기 위해
순간 부르는 것이 목적이었다.”
◈ “잠깐만!” 하면, 자기가 하던 일을
멈추게 되고, 잠을 자다가 일어나게
되고, 각종으로 생각하고 행하던
것들을 놓고 쳐다보게 되니, 성자는
“잠깐만!”이라고 말씀하면서 급히 나를
깨워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끝>
* 화면을 보면서 <이 말씀을 받게 된
배경>의 핵심을 말씀했습니다. 이제
하나하나 자세히 말씀해 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육의 귀’로 들리는 음성은
<육계에서 하는 말들>이고, ‘영의
귀’로 들려서 ‘뇌’로 전달되는 음성은
<영음>입니다.
◈ <성자의 음성>이라도 하늘이
흔들리고 진동하듯 들리지 않고,
사람끼리 대화하듯 들립니다.
◈ 새벽에 “잠깐만!” 하는 소리가
‘성자 음성’ 같지 않고 천사나, 사람의
영이나, 심부름꾼의 음성 같다고 하니,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누구에게 시켜서 말했어도 ‘내가 한
일’이니, 그 말은 ‘내 말’과 같다.”
하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을 듣고 기록하려다가
성자인지, 성령님인지, 하나님인지,
천사인지, 내 혼인지, 내 영인지
확실히 알아야 제대로 기록한다고
하니, 성자는 “나다. 내가 말했다.”
하셨습니다.
◈ 그 말을 듣고 선생은
“성자가 말씀하셔서 ‘남자 음성’으로
들린 거군요! 그런데 권위 있고
전능한 목소리가 아니라서 성자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했습니다.
◈ 성자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나 성자가 순간 ‘꿈’으로도
보여 주며 깨워 주고, 각종 수십
가지로 너를 깨워 주었다. 오늘은
‘음성’으로 직접 말했다. 왜 ‘음성’으로
깨워 줬는지 아느냐. <말>로 해야 그
순간 네 생각을 자르고 깨닫기
때문이다.”
◈ 선생은 ‘성자와 약속한 시간, 새벽
1시’를 못 지키고 2시 45분에 잠에서
깼습니다. 그때 ‘이미 새벽 1시가
지났으니, 성자는 가셨다. 오늘은 말씀
못 받겠네.’ 하며 잠자리에 누워서
머뭇거리며 딴생각을 하다가
다시 잠이 들려고 할 때 “잠깐만!”
하는 음성이 들렸다고 했지요?
“잠깐만!” 이 말의 의미는
“나 옆에 왔잖아. 자면 안 돼. 늦어도
기도하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선생은 “잠깐만!” 하는 성자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포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늦었을 때 포기한다.
가능성이 없을 때 포기한다.
약속 시간이 지나면 포기한다.
자신이 없으면 포기한다.”
◈ 이날 선생도 ‘성자와 약속한 새벽
1시’가 지났기에 기도하는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는 “잠깐만!” 하시며
“일어나. 나 네 옆에 있다. 포기하지
마. 시간과 무슨 상관있냐. 내가
말했잖아. 늦으면 늦은 대로 하고,
이르면 이른 대로 한다고 했잖니.
1시에 못 일어나고 3시에 일어났어도
아직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은 남아
있잖아.” 하며 나를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섭리사 모두가 알고 포기하지 말고
하라고, 이 말씀을 기록하여 모두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저마다 새벽에 <약속 시간>을 정하고
일어나려 했으나, <약속 시간>을 못
지킬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남은 시간>이 있으면, 늦은
대로 기도해라. 잠깐이라도 나를
만나면서 남은 시간을 쓰자. 내 분체도
<늦은 시간>이지만, 나를 만나서 나와
대화한 것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전해
주지 않느냐. 만사의 모든 일들도 이와
같이 포기하지 말고 해라. <약속
시간>에 늦었어도, 나 성자는 늦으면
늦은 대로 할 일을 한다.
<휴거>도 그러하다. 포기하지 말고
해라. 늦었어도 나머지 시간에 해야
된다.
◈ “잠깐만!” - 이 말은 “그러지 마.
잠시 보자.” 하는 뜻입니다.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가는 자에게
성자도 주도 “잠깐만!” 하며
붙잡으십니다.
또한 사업을 하다가 포기하는 자나,
어떤 일이 안 되어 포기하는 자에게
성자는 “잠깐만!” 하고 부르시며
“남은 시간 가지고 하자. 다른
방법으로 해 보자.” 하십니다.
◈ 포기하는 자들에게 성자는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잠깐만!
늦어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도
내가 다른 데 갔다가 다시 와서
축지하며 행하면 할 수 있다.
나와 같이 끝까지 하자. 늦었어도
시간이 남았는데, 포기하고 안 하냐.
<휴거>도 “약속대로 9월까지 하자.
2014년까지 하자.” 했지만,
아직 휴거되지 못한 자들도 “이제
틀렸네.” 하지 말고, 아직 시간
남았으니 포기하지 말고 해라.”
하십니다. 모두 성자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 행하기 바랍니다!
◈ 사랑하는 애인이 <약속 시간>에
늦었어도, 더 기다립니다. 더
기다리는데도 안 오면, 정말로 못
만나고 끝납니다. 그러나 늦었어도
오기만 하면, <남은 시간>에
잠깐만이라도 만나서 같이 쓰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신부’가 늦었어도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 1분 남았어도 해야 됩니다.
그럼 성자는 전지전능하니, 1분이라도
할 것을 하십니다. 고로 멸망하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 기억하지요?
엎어지면 엎어진 데서 땅을 파게
하신다.)
◈ 범사에 “잠깐만!” 하는 성자의
음성이 ‘마음’에 들릴 것입니다.
그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일을
멈추고 자기 생각을 멈추고, 자기
행위를 멈추고 성자를 잠깐이라도
만나서 포기하지 말고 돌이켜 행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성자의 음성>이 웅장하고
우렁차게 안 들려도 <성자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자의 음성>이라도 자기 인식대로
‘사람의 음성’같이 들리는데,
‘마음’으로 들립니다.
◈ ‘들리는 소리’가 없어도
- 깨달아지면서 들리는 음성이 있고,
- 느껴지면서 들리는 음성이 있고,
- 감동으로 전해지는 음성이
있습니다. 대개 ‘감동’으로
<성자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고로 감동되면, 성자께 이런 감동을
받았다고 하며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됩니다.
◈ 음성을 들었어도 ‘누구의 음성’인지
자세히 파악해야 됩니다. 귀신인지,
자기 주관인지, 자기 혼인지, 자기
영인지, 천사인지, 성자인지 꼭
물어봐야 됩니다. 확인, 또
확인입니다. 계속 물어보면 ‘귀신과
마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말을 들어 보면 압니다.
귀신, 마귀, 속이는 자, 악평자, 악한
자들은 거짓된 말을 하고, 속이는 말을
하고, 나쁘게 말합니다. 고로 금방 다
압니다. 악평자들과 악한 자들은 귀신,
마귀처럼 계속 나쁜 말을 합니다.
그러니 ‘그쪽 주관권’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계속 받습니다.
섭리사 안에서도 나쁘게 말하고
악평하면, 그 사람 역시 속이는 자요,
악평자요, 사망과 어둠에 속한
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가 틀리게
하든지 성자와 생각이 어긋날 때,
성자께서 “잠깐만! 그것이 아니다.”
하며 부르십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날 때,
그들이 다가오는데 모르고 마음 문을
따 주려고 할 때,
이성의 문을 열어 주려 할 때,
술을 먹으려 할 때,
담배를 피우려 할 때,
불의를 행하려 할 때,
혈기를 내며 말을 함부로 하려 할 때,
성자는 “잠깐만!” 하며 브레이크를
밟으십니다. 그때는 반드시 다시
생각하고 바로 생각하고 해야 됩니다.
◈ ‘해서는 안 될 일인데 모르고
하려고 할 때’나 ‘성자를 오해하고
토라져서 가 버릴 때’나 ‘사명을
맡고서 자기 뜻대로 행하려 할 때’나
‘포기하려 할 때’나 성자는 그 양심을
통해, 혹은 그 혼이나 영을 통해,
혹은 사역자를 통해, 혹은 만물을
통해, 혹은 직접 “잠깐만!” 하며
계시하시니 이 말씀을 늘 염두에 두고
마음에 새기고 다니기 바랍니다. <끝>
◈ 성자께서 ‘이름’을 안 부르시고
“잠깐만!”이라는 단어로 말씀하시는
것은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을 보아라. 그러면 안 된다.”
하고 지적하시며 감동을 주면서 ‘해야
할 일’을 바로 인식시켜 주고 생각나게
해 주기 위함입니다.
◈ “잠깐만!” - 이 단어로 말씀하실
때는 “잠깐 대기해라. 내 말 좀 듣고,
그리하지 말아라. 네 생각과 행실을
순간 멈추어라.” 하심이니, 깨닫기
바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 성자가 “잠깐만!” 하고
중지시켰는데 더 가다가는 마치
절벽이 뒤에 있는 줄 모르고 차를
몰고 후진하다가 절벽으로
굴러떨어지듯, 가던 길에서 뒹굴게
됩니다.
◈ “잠깐만!” 했을 때는 뒤에 절벽이
있거나, 앞에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그때는 즉시 ‘자기
생각과 행실’을 중지하고, 성자께
집중하고 확인해야 됩니다. 그러면
성자가 왜 “잠깐만!” 하고
말씀하셨는지 깨닫고 ‘자기 생각과
행실’을 돌이켜 제대로 함으로 화를
면하고 생명길로 가게 됩니다. <끝>
◈ 과거에 성자가 “잠깐만!” 했는데도
즉시 ‘자기 생각과 행동’을 중지하지
않고 행한 것은 모두 해가 되었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 성자는 언제든지 “잠깐만!” 하니,
그때는 즉시 ‘자기 생각과 행실’을
중단하고 돌이켜 제대로 행해야
됩니다.
◈ 섭리사를 나가는 자들에게도
성자는 “잠깐만!” 하고 잡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안 듣고 가다가
결국 절벽으로 떨어져 그 세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 이성의 꾐을 받아 타락하기 직전에
성자는 “잠깐만!” 하고 막으셨습니다.
그러나 말을 안 듣고 그냥 간 자들은
타락함으로 인생에 해가 되었고,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즉시 돌이켜 <생명길>로
오기도 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성자는 과거에도 “잠깐만!” 이라고
말씀하시며 하던 일을 멈추게 하시고
돌이켜 행하여 ‘얻을 것’을 얻게
하셨습니다. 몇 가지를 이야기해 주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 <가는골의 감나무>는 큰 가지와
작은 가지가 서로 껴안고 있듯이
꽈배기처럼 꼬여 있어서 둘 다
고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베려고 톱을 댔을 때 성자는
“잠깐만!” 하셨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늘의 사명을
받고 고향을 떠나갈 때어머니에게
기도해 달라고 하니, 어머니가 이
감나무 밑에서 나를 껴안고 울면서
뜨겁게 기도해 주었지. 그것을
상징하도록 감나무의 큰 가지가 작은
가지를 껴안고 크게 하셨구나. 성자가
이같이 행하셨구나.” 깨닫고, 그
감나무를 <섭리사 천연 기념 나무>로
키우고 있습니다.
◈ <성전 안 분재 솔>도 처음에는 그
바위를 발견했을 때, ‘바위’만 성전
안으로 가지고 오고 ‘바위 위에 난
소나무’를 톱으로 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낫’으로 나무를 쳤는데, 낫이
부러졌습니다. 옆의 제자에게 “톱
가지고 왔지? 이리 가져와라.”
했습니다. 그 제자는 “죄송해요.
오늘은 톱을 안 가지고 왔어요.”
했습니다.
“내가 일하다가 벨 것이 있으면 베야
하니, 너는 톱을 가지고 다니라고
따라다니게 했잖니. 그냥
따라다니려면, 뭐하러 따라다니냐.”
했습니다. 그 제자는 뛰어가서 톱을
가져오겠다고 하며, 10m쯤
뛰어갔습니다.
그때 내 입에서 “잠깐만!” 이라는
말이 나오며 “오늘은 낫만 가지고
그냥 따라와라. 급하다. 가는골로
가자.”하며 같이 가는골로 갔습니다.
그때 그 말 때문에 ‘바위 위에 난
분재 솔’을 안 벤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이 ‘바위 위에 난
희귀종 분재 솔’이었던 것입니다.
◈ <Y자 소나무>도 베려고 톱을
나무에 대면 “잠깐만! 베지 마.” 하는
감동이 들었고, 주인이 쫓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베지 않았습니다.
결국 분체를 상징하는 <상징 솔>이
되었습니다. <끝>
◈ 이렇게 성자는 “잠깐만!” 이라는
말을 예전부터 쓰시며, ‘하지 말아야
될 것들’을 막으시어 ‘해’를 면하게
하시고 ‘얻을 것’을 얻게 하셨습니다.
* 오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 자연성전의 돌 조경을 쌓을 때,
서울 명동에서 전도된 사람들이
인사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 선생은 “나 바빠. 이쪽으로 와서
인사하고 가라고 해. 여기 진흙탕이니,
멀리서 손만 흔들고 가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음으로 감동이 오기를
“잠깐만 갔다 오자.” 했습니다.
앞산 돌 조경을 쌓다가 운동장으로
가서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자들에게 지시를
하려고 골프카를 타고 회골 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인사해 준 사람들
중에서 서울 명동에서 온 자들이
회골로 따라왔습니다.
선생은 그 중의 한 소녀에게 잠깐 몇
마디를 해 주었습니다. “나 누구다.
평생 믿고 끝까지 따라야 된다. 나
바빠.” 하고 한마디 해 주고 왔습니다.
◈ 후에 알고 보니, 그날 ‘잠깐의
시간’에 ‘운명이 걸려 있는 한 사람’
때문에 선생이 돌 조경을 쌓다가
운동장에서 회골로 간 것입니다.
순간 2~3분의 시간으로 한 생명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끌고
왔습니다. 성자가 보내 주신 예비된
자였습니다. 그 신입생은 ‘조은
목사’입니다. 그때 칠보단장하고 온
자들은 거의 다 나가고, <잠깐의
시간>으로 전도한 조은 목사 한 명만
남았습니다.
◈ 성자는 이같이 ‘순간, 잠깐’으로
운명을 좌우시키신다는 것을
선생은 성자의 분체로 쓰여지면서
많은 일을 행하면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마무리>
◈ “잠깐만!” 이 말씀 속에
화를 피하고 복을 받고 횡재하는
방법이 들어 있고,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는 방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아멘.)
“잠깐만!” 이 말씀 속에
악을 멸하고 악평자를 멸하며,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아멘.)
“잠깐만!”이 말씀으로
전도도 하고, 생명도 살리고,
자기 무지를 깨달아 돌이키고,
성자가 원하시는 옳은 일을 행하고,
항상 성자와 분체와 일체 되어 살면서
날마다 승리의 삶, 표적의 삶을 살게
됩니다.
◈ 성자의 한 마디 말씀 외쳐 보고
마치겠습니다! - “잠깐만!”
2015년 01월 18일 주일
source : 만남과 대화 god21.net
[ 역대하 35장 21-25절 ]
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
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
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
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
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
노라 하나 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
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
그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
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
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25)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
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
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
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 에스겔 18장 19-20절 ]
19)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
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
냐 하는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
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
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
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 에스겔 18장 32절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
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
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은혜와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
감화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올해 잊지 말고 꼭 기억하고 행해야
될 첫 번째 말씀>이 뭐였지요?
<싸인> ‘잠깐만!’입니다.
<올해 잊지 말고 꼭 기억하고 행해야
될 두 번째 말씀>은
<싸인> ‘잊으면 죽는다.’입니다.
이 말씀은 <작년 송구영신말씀>과
<신년 첫 주일말씀>으로 잠깐 전해
주었는데요, 오늘은 조금 더 깊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전초>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인
<에스겔 18장 19-20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잊었기에 ‘죄’를 짓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영혼이 죽게 됐다’
했습니다. 죄를 지으면, 그 영은
‘사망에 거하는 영’이 됩니다.
그것이 ‘죽은 것’입니다.
또 <역대하 35장 이하>를 보면,
요시야 왕은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지켜 주겠다는 약속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으니, 하나님께서
‘애굽의 느고 왕’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기 민족을
도우러 온 ‘애굽의 느고 왕’과
싸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잔치나 했으면
<국방 문제>가 다 해결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 결국 화살을 맞고
‘육’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그리도 괴롭히던
‘갈그미스’를 두고 ‘유다의 요시야
왕’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려고
‘애굽의 느고 왕’을 보내어 그들을
통해 ‘갈그미스’를 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느고 왕’은
자기들이 ‘갈그미스’를 치도록
요시야 왕에게 길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으니, 자기 민족의 국방 문제를
해결하러 온 ‘느고 왕’을 오해하여
그들이 자기 민족을 치는 줄 알고
느고 왕의 군대와 대적하여 싸우다가
결국 화살을 맞고 죽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과거도 현재도 하나님과
성자가 하신 말씀을 잊고 안 하면
죽습니다.
<말씀 시작>
오늘 말씀을 듣고 잊으면, 매일
‘손해’가 가고 ‘실패’합니다.
‘잠깐만!’은 <2015년 성자의
선물>이라면, ‘잊으면 죽는다.’는
<2015년 교훈의 말씀>입니다.
<평생 앞길에 생명이 되는
말씀>입니다.
<성자의 특별 계시>에 속합니다.
무엇이든 잊으면 죽는다고
성자께서 ‘각 분야별’로 하신
말씀입니다.
잊으면 ‘그 일’이 죽고, 혹은 ‘시간’이
죽고, 혹은 ‘영’이 죽기도 하고,
혹은 ‘육’에게도 해가 되고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잊으면 죽는다.’ 이 말씀을 모두 잊지
않도록 외우기 바랍니다.
한국말로 여섯 자밖에 안 되니,
한 번 들으면 모두 외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수십 번씩 반복하여
<노래>가 되게 해야 됩니다.
매일 <성자의 음성>을 ‘자기’를 통해
듣고 싶다면, 매일 ‘잊으면
죽는다.’라고 반복하여 말하면 됩니다.
<성자의 음성>을 직접 듣기 어려운데
자주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자기가 <성자의 말씀>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성자의 말씀>이니,
말하는 자에게 성자가 늘 함께하시며,
자기 자신을 통해 성자가 말씀하시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구원자의 말 역시 그러합니다.
꿈에서나 생시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들은 음성을 평소에 생활
속에서 계속 반복해서 말하니,
어느 날 그 음성이 선생의 말에
섞여서 신비하게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너무 감동되어서 기도하고 물어보니,
삼위일체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한 말을 잊지 않고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행하니,
나 삼위일체의 마음과 심정과 통하여
네 입으로 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주신
말씀을 단상에서나 생활 속에서나
마음과 심정을 다해 반복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외치면, 자기
음성이 신의 음성으로 변화되는 것을
‘전하는 사람’도 깨닫고 되고,
‘듣는 사람들’도 깨닫게 됩니다.
그 말씀을 늘 전할 때마다
전하는 자와 함께 듣는 자에게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모두 경험해 봤을 줄 압니다.
이 시간, 딱 세 번만 성자가 하신
말씀을 심정을 다해 같이 말해
보겠습니다.
<자막>
잊으면 죽는다.
잊으면 죽는다.
잊으면 죽는다.
이번에는 설교자가 <성자의 음성>같이
한 번만 더 말해 보겠습니다.
잊으면 죽는다.
성자의 음성과 비슷하니,
감동이 되어 가슴이 찡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지금부터 ‘잊으면 죽는다.’
이 말씀을 받게 된 사연을 말씀해
주겠습니다.
선생이 ‘어떤 일’을 두고 열심히 글을
쓰면서 거기에 해당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다른 일을 못
하고 시간에 쫓겼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하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글을 쓰며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겠지요? 다른 사람들도 글을 쓰며
수고하는데, 나만 빠질 수도
없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성자는 “하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잘됐다!” 하며 집어치우고,
급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일에 해당되는 사람이
선생에게 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부탁한 글을 다 썼냐고 묻는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성자의 뜻인가?’
생각하고, 다시 그 일을 꺼내어 밤을
새워 글을 써서 보내 줬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잘되게
기도했습니다. ‘그 일’에 수고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꿈을 꿨는데, 좋은
꿈을 꿨습니다.
‘일이 잘됐나 보다.’ 하며 희망을 갖고
기다렸는데, 희망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성자께 물어보니,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성자의 마음이
상하여 3일 동안 성자와 대화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3일 반 후에 성자는
“잊으면 죽는다.”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왜 그 일이 잘 안 됐나.’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그것의 답이었습니다.
‘성자가 하신 말씀을 잊으면
죽는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힘들게 ‘그 일에 해당되는 글을 쓸
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 말을
잊고서 했으니, 결국 ‘그 일’이 죽은
격이 되어 안 된 것이 아니냐.
왜 ‘과거’를 잊고 ‘내 말’을 잊었느냐.
만사의 모든 일도 ‘내가 한 말’을
잊으면,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육신’이 안 죽어도
‘그 일’이 죽고, ‘그 시간’이 죽는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육신에 해당되는 것’을
말했는데 그 말을 잊고 자기 생각대로
행하면 ‘육에 해당되는 것들’이
죽는다.
<죽음>은
‘끊어졌다. 안 됐다.’ 함이다.”
하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 말씀은 2014년에 받았습니다.
선생은 성자께 말했습니다.
“사실 ‘잊으면 죽는다.’ 이 문장만
보면, ‘죽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두렵고 별로입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삶 속에서 정말
필요한, 생명과도 같은 귀한
잠언입니다.
이 잠언을 글로 써서 공적자들에게
선물하겠습니다.” 했습니다.
성자는 내 말을 듣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삶 가운데서 ‘황금’을 얻고
‘생명’을 얻고 ‘밭에 감춰진 보화’를
얻는 잠언이다. 늘 목에 걸고 다니고,
뇌에 외우고, 마음에 새기자. 섭리세계
전체에 <설교>로 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 성자가 떠나도 <내 말씀>만 잊지
않고 지키면, 분체를 중심해서 나
성자가 늘 너희 앞에 나타나
너희 옆에서 너희를 지켜 주는 것과
똑같다. 나 성자가 옆에 있어도 <내가
한 말>을 잊고 안 지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떠나면 어떻게 살까
걱정하지 말고 <내 말씀>만 잊지 말고
전심으로 지켜라.
그러면 ‘너’도 걱정이 없고
‘나 성자’도 걱정이 없다.
나의 말씀을 들을 때만 기억나고 눈에
보일 때만 기억나니, <핵심 말씀과
잠언>은 ‘글’로 써서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입 밖으로 말하고 암기하며
생활에 부딪히면 결정할 때 써라.”
하셨습니다.
<성자의 말씀>을 ‘성자’로 여기고 매일
써먹어야 됩니다. 안 쓰면, <육>도
<영>도 안 변하고 <생활>도 안
변합니다.
현재까지 보고가 들어온 것들 중에서
<잠언>을 제일 많이 외우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작은 교회의 교인인데,
작년에 그림 잠언집들을 다 외웠고
매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300번씩 부르며 사랑한다고
고백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보고한 후로 <잠언>을 더 많이
봤을 것이니, 그때보다 <잠언>을 더
많이 외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이에 비해서 <전도>를
많이 못 하니, 그것이 흠이라고
했습니다.
계속 <성자의 말씀>을 뇌에 새기고
<성삼위>를 부르는 만큼 ‘능력’이 와서
올해는 꼭 ‘생명’을 전도하기를 기도해
주었습니다.
20개에서 30개씩은 <핵심 잠언>을
외우고, 매일 <삼위일체>를 100번에서
300번씩은 꼭 부르도록
여러분 각자에게 ‘책임’을 주니,
올해는 모두 꼭 행하면서 성자와
교통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이 수시로 성자를 부르니까
어느 날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수시로 부르니,
내가 도적같이 와도 너에게는 숨길
수가 없다. 네가 부를 때마다 내가
대답해야 되니 그러하니라.”
하셨습니다.
그때 선생이 성자께 묻기를
“매사에 성자와 그 분체인 구원자를
계속 부른다면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하니,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시험을 이기고, 그 시간에 잡생각을
안 하게 되고, 사탄 마귀가 틈도 못
탄다. 그리함으로 휴거 못 될 자들도
휴거된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늘 생각 속에 ‘나 성자와 분체’를
잊지 않으니, 그 생각이 ‘기’가 되고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한 대로, 부르는
것이 그리도 크다.
또한 부르는 만큼 나 성자와 분체와
<심정 일체> 되어서 살아 있는 신앙이
된다. 그리함으로 ‘이성’도 이기고
‘영’도 신령해진다.” 하셨습니다.
성자와 분체를 부를 때마다 쳐다보면
고개가 아프니, 부를 때마다 ‘눈과
마음’을 맞대고 서로 통하면서 살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잊으면 죽는다.’에 대해서 성자가 해
주신 말씀은 각종으로 수백
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 말씀해 줄 수 없으니,
오늘은 30여 개만 말씀해 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무엇을 잊으면
죽는지 알고, 나머지도 그와 같이
그러하니 나머지는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현실 가운데 깨닫기
바랍니다.
100개, 1000개의 잠언을 순간 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잊으면 죽는다.’라는 문장을 놓고,
여기에 해당되는 단어를 넣고 100개,
1000개를 만들어서 암기하면
순간 1000개의 잠언을 외우게 됩니다.
<작년 송구영신예배> 때 말씀했지요?
성자를 잊으면 죽는다. 분체를 잊으면
죽는다.
말씀을 잊으면 죽는다. 사랑을 잊으면
죽는다. 말씀을 행하면 산다. 성자와
분체를 사랑하면 산다. 이렇게
<잠언>을 만들어서 외우면서
써먹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지금부터 ‘잊으면 죽는다.’에 대해서
성자가 해 주신 말씀을 30여 개만
전해 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여기서부터 ‘분홍과 파랑 글씨’는
자막 처리해 준다.
첫 번째
‘성자의 말씀을 잊으면 죽는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자의 말씀을 잊지 않고 행하면,
산다.’입니다.
두 번째 ‘기도를 잊으면 죽는다.’
또 하나는 ‘기도하면 산다.’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기도의 세계>에서 산
자가 있습니까? 지구 세상에서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진정 기도해서 신앙이
죽은 자도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세 번째 ‘성자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잊으면, <사랑>이 죽는다.’
형제도 그와 같이 사랑하는 것을
잊으면 <자기>도 죽고 <형제>도
죽는다. 그러나 사랑하면 산다.’
<잠시 쉬었다가>
네 번째 ‘주일말씀, 수요말씀,
새벽말씀을 잊으면 죽는다.
<영>도 죽고, <혼>도 죽고,
<육신>도 산 신앙에서 죽고 해가 된다.
잊지 않고 행하면 산다.’
선생이 왜 이같이
‘인생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받게
됐는지 압니까?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수천 번씩 읽고 그렇게도
기도하며 21년 동안 오직 그것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내걸고, 그 말씀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절대! 지키니,
하나님은 성자와 함께 나를 ‘구원의
사명자’로 쓰셨습니다.
<구원의 사명자>는 스스로는 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합격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님이 뽑으시는 구원의
사명자’입니다. 사람은 ‘돈’을 쓰면
뽑기도 하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마음’에 맞으면 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다 보고 뽑으십니다.
<말씀>을 절대 바로 알아야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되고,
또 <그 말씀을 절대 순종하고 행할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구원자>라도 ‘자기 실력의 말’을
전해서는 인생들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절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말씀을 받아서 전해 주어, 그 말씀을
행하게 해 줘야 됩니다. 그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구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시키시는 대로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휴거 때>를
맞아 ‘휴거’를 얻게 됩니다.
구원자만 믿어서는 <구원>도 <휴거>도
안 됩니다.
‘그가 하는 말’을 듣고서 ‘그’를
구원자로 믿고, ‘그가 전해 주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절대
신으로 믿고,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됩니다.
그러면 육도, 마음도, 혼도, 영도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즉시 나와
‘휴거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를 벗어나서는
<구원>도 <휴거>도 안 됩니다.
‘예수님’을 안 믿고
‘예수님 말씀’만 행한다고
구원받겠습니까?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안 믿고
‘그가 전한 말씀’을 100% 행한다
해도 자기 기분만 좋은 데서 끝날
뿐이지, <구원>도 <휴거>도 이루지
못합니다. <구원>과 <휴거>는
‘구원자를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구원자’를 믿고 ‘그가 하는 말’을
듣고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보낸 자>를 ‘자신의 육’으로
삼으시고 인간의 육과 영을 구원하고
휴거시키기 때문입니다.
성자께 기도하기를 섭리사를 나가서
‘선생이 성자께 받은 말씀’을 이용하고
‘선생’은 불신한다고 하니,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낸 자, 나의 육>을 버리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를 버린
것이 되어 <말씀>을 행해도 그 수고가
헛되다. 질서를 파괴하는 자들을 네가
아느냐.”
“모릅니다.”
“그런 자는 성경 말씀대로 불법을
행한 자들이다. 다 내게서 물러가라.
그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곳이
있다.” 하셨습니다.
섭리사에 왔으나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고 <성자의 계시>를 귀히
여기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사는 자는
‘자기라는 우상’을 섬기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가짜 인생’입니다.
“나는 너를 모른다.”
- 이 말씀에 해당되는 자입니다.
이 말씀을 잊으면 죽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섯 번째 ‘혼의 가치성을 잊으면,
<혼>이 죽는다.’
<혼의 가치성>을 잊지 않고 귀히 보고,
늘 기도하고 행하는 자는 밤마다 꿈
영계에서 ‘자기 혼’이 활동하면서
육으로는 체험하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것들을 체험하고 보게 됩니다.
자꾸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선생은 <혼>으로 ‘횡재하는 꿈’을 꾸고
‘비밀’을 알고 그것을 <내 육>에게
말해 주어 그로 인해서 ‘보화’를
얻었습니다. <혼>을 귀히 보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면, <혼>이 급이 낮아서
<혼계>에서 ‘죽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혼>은 실제로 ‘육신이 사고 날 것’을
미리 알고, 영감과 직감으로 <육>이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육이 죽을 것’인데 산 자들도
많습니다.
또한 <육>은 평생 천국에 못 가는데
<혼>이 천국에 가서 보고 옴으로
<육>에게도 희망이 생겨서 다시
신앙이 살아나 휴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혼의 가치성>을 알고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큽니까? <끝>
<혼의 세계>에 대해서는
구원역사 6000년 만에 완전히 인봉을
뗐습니다.
‘성자 재림의 선물’로 해 주신
말씀입니다.
<혼>에 대해서 배우기만 하지 말고
써먹어야 됩니다.
<육>이 <혼>과 늘 대화하고,
<혼>을 애인같이 껴안고 사랑하며
살아야 <혼>이 꿈에 ‘육이 못 하는
것’을 다 하고 다닙니다.
말로는 이해만 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생각을 집중하고 기도하며
<혼>을 써 봐야 됩니다.
생각을 깨끗하게 하고, 성자께
집중하고, 자꾸 기도해야
<혼체>가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혼>은 ‘육이 못 하는 것들’을 합니다.
이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여섯 번째
‘건강관리를 잊으면 죽는다.’
건강관리를 잊으면 <육신>이 고통받고,
아파서 활동을 못 하니 <신앙>까지도
죽이게 되고, <육신>도 수명대로 못
살게 됩니다.
건강관리를 잊지 않고 매일 행하면
<건강 천국>이 되고, <몸>도 귀하게,
튼튼하게, 아름답게, 신비하게,
웅장하게 만듭니다.
건강해야 성자를 제대로 사랑하며
모시고 살 수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일곱 번째 ‘생명 관리를 잊으면
죽는다.’
‘생명 관리’를 잊는 자는
마치 엄마가 어린아이를 물가에 놓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밭을 매러 간 것과
같습니다.
엄마가 할 일을 하다가
갑자기 ‘물가에 놓고 온 아기’가
생각나서 다시 물가로 와 보니,
아기는 이미 물에 떠내려가서 죽은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죽는 아기가
1년이면, 지구 세상에 수천 명씩
됩니다.
또한 잠잘 때 ‘아기가 옆에 있는 것’을
잊고 잠을 험하게 자다가 자기 몸으로
아기를 깔아뭉개서 죽이는 일도
많습니다.
또한 ‘약한 토끼 새끼 마음을 가진
아기의 마음’을 잊고 심하게 혼내고
때리다가 아기가 놀라서 심장마비가
일어나서 죽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엄마가 자기를 그렇게 때릴
줄 몰랐는데 때리니, 너무 충격 받고
놀라서 혀를 내밀고 눈을 부릅뜨고 쭉
뻗어 죽었습니다.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너무 많고,
<신앙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더
엄청나게 많습니다.
전도자나, 관리자나, 지도자나,
목회자가 ‘거친 말과 행동’을 휘두르니
‘무력적인 말과 행동’에 충격 받고
놀라서 쓰러지고, 배신감과 혐오감으로
수백 명이 신앙을 저버리기도 합니다.
이 말을 잊으면, 힘들게 생명을 전도해
놓고서 전도자, 관리자, 지도자,
목회자가 ‘생명’을 죽이게 됩니다.
‘자기의 거친 말과 행동’으로 생명을
죽이면, ‘영적 살인자’가 됩니다.
모두 깨닫고 회개해야 됩니다.
이것을 깨닫고 생명을 전도하고
관리해야 올해 전도가 잘되어
<폭발적인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무리 ‘육이 큰 어른’이라도
처음 섭리사에 오면 ‘영은
아기’입니다.
그때부터 <영>이 ‘새로운 영’으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육신>만 보고서 어른인데 못
한다고 혼내고 화내면 그 <영>이
놀라고 <육>도 놀라서 경기를
일으키면서 “엄마, 왜 이래? 엄마, 나
살고 싶어. 나 좀 살려 줘. 엄마
무서워. 아빠 무서워.” 합니다.
중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어른이든 3년 이상을
웃으면서 대하고, 인상 쓰지 말고,
말로 채찍질하지 말고 잘 가르쳐야
됩니다.
어떤 엄마는 ‘아기의 심장의 강도’를
모르고 대합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강아지와 놀아라.” 했습니다.
아기는 강아지가 자기에게 다가오니,
너무 무서웠습니다.
엄마는 이것을 보고
“야~ 그까짓 강아지가 뭐가 무서워?
병신...” 하면서 아기를 그대로 두고
자기 할 일을 했습니다.
강아지는 아기에게 다가와서 좋다고
혀로 얼굴을 핥아 주었습니다.
엄마는 할 일을 하면서 그것을 보고
“강아지 귀엽지?” 했습니다.
그런데 아기는 너무 놀라서 기절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너는 왜 가만히 있어?” 했습니다.
엄마가 한참 있다가 아기에게 가 보니
아기는 놀라서 심장마비가 왔고, 눈을
뜨고 죽어 있었습니다.
아기는 어른과 ‘심장의 강도’가
다릅니다. 그러나 미련한 엄마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신앙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전도하여 낳은 어린
생명’을 죽입니다.
섭리사에서 ‘어린 생명의 마음’을
모르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죽은
아기 생명’이 매년 1000명 이상
됩니다.
지금 선생은 성자가 계시하시는 대로
기록하고 있고, 그 말씀을 여러분
모두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뇌가 성장 중인 아기’와 ‘신앙이 성장
중인 아기 신앙인’은 ‘어른’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죽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여덟 번째
‘감사를 잊고 안 하면 죽는다.’
감사를 잊고 안 하면 <신앙>도 죽고,
<경제>도 죽고, <희망하던 것들>이 안
되고 죽게 됩니다.
섭리사에 ‘감사하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감사하는 자들
덕’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경제의 메마른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감사>도 ‘하는 자’만 하고,
‘안 하는 자’는 안 합니다.
감사를 피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말’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물질 축복’을 주시면 ‘물질’로도
감사해야 됩니다.
그리함으로 <축복의 뜻>을 펴 나가야
됩니다.
선생도 감사하지 않았을 때는
‘메마른 땅’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금은 ‘말’로도 감사하고,
마치 애인이 배고플 때 어떻게
해서든지 먹여 주듯 하늘 앞에 정말
감사해서 ‘물질’로도 감사합니다.
선생은 갇혀 있는데 어떻게 ‘물질’로
하늘 앞에 감사하는지, 모두 ‘혼’으로
보기 바랍니다.
선생도 심어야 ‘열매’를 얻게 됩니다.
‘감사 생활’을 잊지 말고,
자기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감사>를 잊으면 ‘경제’가
죽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아홉 번째 ‘찬양과 예술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잊으면
<자기 예술>도 죽고 <하나님의 예술
세계>도 죽는다.’
천국에 갔다 온 자들도 말하는데,
땅에서 <육>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의 영이 천국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열 번째 ‘전도를 잊으면
<섭리세계>도 죽고,
<개인 신앙>도 죽는다.’
올해는 <선교하는 해>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그를 통해 ‘생명의 뜻’을 펴지
못합니다.
<분체>를 제대로 깨닫고 전도해야
그로 인해 제대로 알고 전도하여
‘생명의 뜻’을 폅니다.
전도를 안 한 자는 ‘생명의 자녀,
생명의 자손’이 없으니
<신앙의 부모, 신앙의 조상> 소리를 못
듣고
<하나님의 뜻>을 못 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전도해 놔야 100년, 200년, 300년,
500년, 1000년이 가면
‘자기 신앙의 후손들’이 만 명,
100만 명, 1000만 명씩 됩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열한 번째 ‘이단 종교를 잊으면
죽는다. 당한다.’
이단 종교인들은 전도해 가려고
교회 안까지 들어옵니다. 고로
<이단 종교>를 잊으면, 생명을
뺏깁니다.
열두 번째
‘악평자를 잊으면 죽는다. 당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언제나
어디서나, <악평자들>과 <악평자들의
말>을 잊으면 죽습니다.
그 말은 항상 ‘악’이며 ‘거짓’입니다.
열세 번째
‘사탄을 잊으면 죽는다. 당한다.’
어디를 가든지 <사탄>을 잊으면
‘육’도 손해, ‘혼’도 손해, ‘영’도
손해입니다.
그러다가 ‘육신’이 죽으면,
그 ‘영혼’이 아예 <지옥>에 가서
살아야 됩니다.
최고로 악한 자들의 영도 지옥에
가는데, <사탄>을 잊고 살다가
사탄에게 당하여 악한 자들의 영과
같이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열네 번째 ‘지난날 하늘의 은혜와
사랑을 잊으면 죽는다.’
지난날 죽을 고비에서 살려 준 것과
각종 어려움과 환난에서 도와준 것을
잊으면 죽습니다. 끝장납니다.
열다섯 번째 ‘희망과 꿈을 잊고
자포자기하면 죽는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도 남은 시간을
가지고 하면 됩니다. 더 이상 못 할
것 같아도 남은 힘으로 하면 됩니다.
포기는 절대 금물입니다! 포기하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열여섯 번째 ‘잠깐만!
- 이 말씀을 잊으면 죽는다.’
열일곱 번째
‘안전 운전을 잊으면 죽는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운전할 때 졸고, 신호를 위반하고,
과속하다가 사고 나서 죽는다는 것을
잊고 운전하면 죽습니다.
또한 자기는 운전을 잘해도
다른 차가 잘못해서 사고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고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가 납니다. <끝>
열여덟 번째 ‘꽃에 물 주는 것을
잊으면 꽃이 죽듯이 생각났을 때
기록하는 것을 잊으면 죽는다.
잊어버리니 ‘그 생각’이 죽고,
행하지 못하니 ‘육’도 ‘영’도 죽은
자같이 된다.’
<잠시 쉬었다가>
열일곱 번째 ‘사명을 하려면 남녀가
화목하게 뭉쳐야 한다며 남녀를 섞고
한 덩이로 일을 시키면서 남녀를
쪼개는 것을 잊으면 결국 ‘이성
타락’으로 이어져 각 부서가 죽는다.’
창세기 3장 말씀을 보면,
“만지지도 말아라.” 했습니다.
남녀가 섞여서 자꾸 보게 되면, 마음이
갑니다. 관리하고 화목하자는 명목으로
자꾸 만나다가 눈이 맞는 사람이
생기고, 만지게 되고, 결국 타락하게
됩니다. 화목이라는 명목으로 남녀를
섞으면 그 ‘화목’이 결국 ‘이성 타락’이
됩니다.
선생이 성자와 함께 36년 동안
섭리사를 이끌어 오면서, 직접 보면서
처리한 문제입니다. 남녀가 같이 할
것은 같이 하되, 그 안에서도 쪼개서
해야 됩니다.
그래야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개성의 빛’을 발하게 되고,
그로 인해 ‘더욱 웅장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쪼개지 않는 것은
‘사탄의 방법’입니다.
만지면 죽을까 하니,
만지지도 말아야 됩니다.
만지고 싶으면, 성자의 손을 꼭
잡으세요! 그리함으로 성자께 끌려
올라가 휴거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열여덟 번째는 ‘쪼개는 것을 잊으면
죽는다.’입니다.
열아홉 번째
‘이성 행위, 자위행위, 만지는 행위가
잘못됐다는 것을 잊으면 죽는다.’
‘그러다가 네게 일이 터져서 죽을까
하노라. 이 말을 잊지 말아라.’
<잠시 쉬었다가>
스무 번째
‘성령의 감동을 잊으면 죽는다.’
감동을 받았을 때,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동을 거부하면 손해가
가고, 행하지 못하여 결국 ‘그 일’이
죽게 됩니다. 고로 감동됐을 때, 즉시
행해야 됩니다.
스물한 번째
‘성자 중심을 잊으면 죽는다.’
‘성자 중심’을 잊으면 ‘자기 육성의
생각’만 남아서 ‘육’으로 행하니,
‘육’도 ‘영’도 사망권으로 가서
죽습니다.
스물두 번째 ‘가치를 잊으면 죽는다.’
성자의 가치, 분체의 가치, 섭리의
가치, 말씀의 가치, 자신의 가치를
잊으면 죽습니다.
스물세 번째 ‘자기 권위를 잊고
자기를 업신여기고 행하면 죽는다.’
자기 자신을 귀히 봐야 됩니다.
시대 말씀을 듣고 주를 깨닫고 사니,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신부의 권세,
신부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신부로 사는 자신의 권위를 잊지 말고,
매일 ‘신부’로서 합당하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스물네 번째 ‘매일 회개를 잊으면
<죄인> 되어 죽는다.’
분체가 ‘극한 조건’을 세움으로
2014년까지 행한 모든 것들을 100%
깨끗하게 해 주었습니다.
성자가 떠나시기 전에
섭리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시는 ‘용서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 또 죄를 지으면 안
되겠습니다.
특히 ‘이성 죄’는 절대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용서받았어도 마치 생활할 때
쓰레기가 생기듯 각종으로 꺼리는
것들이 생기니 매일 분체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또 깨끗하게 용서받았으니,
이제는 매일 온전히 행함으로
‘황금성으로 가는 성자 사랑의
대상체’로 자기를 만들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스물다섯 번째
‘화목과 화평을 잊으면 죽는다.’
스물여섯 번째
‘휴거를 잊으면 죽는다.’
휴거되려는 자는
매일 <휴거>를 잊지 않습니다.
스물일곱 번째 ‘자기가 맡은 사명의
가치를 잊으면 죽는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자기가 맡은
사명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사명>에서 죽습니다.
또한 섭리사에서 일을 안 하고 놀면서
자기 시간만 많이 쓰는 자들은
<사명>에서 죽습니다.
또한 하늘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하나님과 성자의 일을 맡은 가치를
잊고 사명의 가치를 잊으면
<사명>에서 죽습니다.
스물여덟 번째
‘부지런함을 잊으면 죽는다.’
스물아홉 번째
‘열심을 잊으면 죽는다.’
서른 번째
‘하고자 하는 마음을 잊으면 죽는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잊으면, 열정이
식고 불이 식어 버립니다. 성자도 주도
그에게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서른한 번째 ‘첫사랑을 잊으면 <육>도
<영>도 죽는다. 첫사랑을 살리지
않고서 ‘휴거’되는 자는 없다.’
서른두 번째 ‘설교자들은 설교할 때
제스처, 강약, 정확한 발음, 성령의
감동, 성자와 주의 심정을 잊고
설교하면, <은혜>가 죽고, <성령의
역사>가 죽고, <성자와 주의 심정>이
죽는다.’
서른세 번째 ‘가정국과 장년부는
자녀 관리를 잊으면 죽는다.’
자기 자녀를 관리하지 않고 자기
자녀를 구원하는 데에 신경 쓰지
않으면 그로 인해 ‘경제’가 죽고,
‘사랑’이 죽고, ‘영’이 죽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잊으면 죽는다.
- 이 문장에 그에 해당되는 단어를
넣으면 100개, 1000개의 잠언을
암기하게 됩니다.
그 말씀을 외우고 생활 가운데 행하면
- 해를 당하지 않고,
- 얻을 것을 얻고,
- 육도 혼도 영도 죽지 않고 살게
되고,
- 생명도 살리고 얻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표범이 자기 새끼에게 먹이를 주려고
사냥을 다니다가 먹이가 안 잡히니
해가 지도록 사냥을 했습니다.
다른 짐승이 새끼를 잡아가는데도
어미 표범은 새끼를 두고 온 것을
잊어버리고 사냥만 합니다.
그러다 사냥하여 먹이를 가지고
왔는데, 새끼는 하찮은 짐승에게
잡아먹힌 후였습니다. 이와 같이
잊으면 죽고, 잊으면 뺏깁니다. <끝>
하찮은 화분의 꽃도 ‘물 주는 것’을
잊으면 죽습니다. 나무에 올라가는
사람이 ‘떨어진다는 것’을 잊으면
떨어지게 됩니다.
올해 ‘전도를 많이 하려고 하는
마음’을 잊으면 죽습니다.
‘목숨 걸고 관리하는 것’을
잊으면 죽습니다.
사람을 ‘신’같이 100% 믿으면,
언젠가는 당하고 실수하고 실망합니다.
설교를 듣고도 말씀을 잊어버리면
생활할 때 생각을 딴 데 두고 살게
되고, 그로 인해 꼭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러니 <성자의 말씀>을 항상 써 붙여
놓고서 늘 암기하며 지켜야 됩니다.
<성자의 말씀>을 잊고 살다가
마음이 죽고 신앙이 죽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다가 성자와 대화하지 못하고
같이 살지 못하다가 이제는 성자가
떠나가시고 ‘교통’만 해야 한다고
후회하는 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사람은 ‘신’이 아니라 잊어버리니,
꼭 써 붙여 놓고 암기하여 생각에서
잊지 말고, 또 옆에서도 자꾸 말해
주기 바랍니다.
잊으면 죽는다.
‘죽음’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처음에는
꺼려졌지만 말씀을 들어 보니 너무
좋지요?
올해 이 말씀을 진짜 ‘보화’로 여기고
‘애인’같이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써야
되겠습니다.
무기요, 놋성벽이요, 복이요,
밭에 감춰진 보화를 찾게 하는
잠언입니다.
이 말씀이 ‘성자’가 되고 ‘주’가 되어
혼자 있어도 ‘자기’와 함께하며
‘자기’를 살립니다.
<축 도>
2015년 01월 25일 주일
source : 만남과 대화 god21.net
[ 요한복음 14장 6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성자께서 그 육을 통해 어떤
말씀을 해 주셨는지, 희망을 가지고
궁금해할 것입니다.
오늘 전할 말씀은 성자께서 <2015년
1월 1일 새벽에 주신 말씀>입니다.
작년에는 ‘수석 네 개를 주워 횡재하는
꿈’을 주시고 그에 따라 ‘많은
보화들’을 얻게 하셨는데, 올해는
‘무슨 꿈을 주실까?’ 희망했습니다.
그런데 성자는 ‘꿈’을 안 주시고
‘말씀’을 주셨고, 이 말씀이 ‘올해
희망의 꿈’이라고 하시며 섭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모두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생각을 집중하기 바랍니다.
< 말씀 시작 >
선생도 2014년 12월 31일
여러분이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맞춰서 같이 예배드리고,
2015년 1월 1일 새벽까지 있다가
이어서 새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운을 타야 된다.
땅의 운이 있고, 하늘의 운이 있다.
지금은 <성자 시대>이니,
‘나 성자의 운’을 타야 된다. 그 운은
‘이 땅의 나의 육’을 통해 나타내고
‘나의 육’을 통해 보내 준다.”
하셨습니다.
(* 그리고 성자는
‘그 육을 통해 주시는 운’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말씀, 화면을 보면서
듣겠습니다.) <영상1> 중요
나 성자가
‘내가 보낸 자를 통해서 주는 운’은
<바다의 배의 돛>과 같고,
<공중의 독수리의 날개>와 같고,
<땅의 자동차의 엔진>과 같다.
자기 노력과 수고, 자기 재능과 능력은
‘자기 운’이다. 이는 마치
<돛이 없는 배>와 같고,
<날개가 없는 독수리>와 같고,
<엔진이 없는 자동차>와 같다.
핵심이 없으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가
‘보낸 자’를 통해 ‘운’을 주면 너희
모두가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능히 갈 수 있다.
(하고,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2015년의 꿈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성자께서 그 육을 통해 ‘하늘의 운’을
준다고 하십니다!
그 <운>은 ‘성자’이고 ‘구원자’이며,
그 <운>을 ‘배의 돛, 독수리의 날개,
차의 엔진’으로 비유했습니다.<끝>
<뜻>은 ‘구원자’요,
<근본>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이십니다.
여기서 <뜻>은
‘삼위가 주시는 운’입니다.
고로 ‘하늘의 운을 탄 자’,
곧 ‘주의 운을 탄 자’는 그 ‘운’을
타고서 <목적한 희망의 장소>로 능히
가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노 젓는 배>와 <돛이 달린 배>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압니까?
<땅>과 <하늘>같이 차이가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중요
<돛이 달린 배>는 ‘바람’으로 가니
힘들지 않고, 파도를 헤치고 갑니다.
그러나 <돛 없이 노 젓는 배>는
‘손과 팔’로 저어서 가야 하니
힘들어서 머나먼 항해를 할 수 없고,
파도에 밀려서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손으로 노를 젓는 것>은
‘자기 힘과 능력과 재능’이고,
<돛을 달고 가는 것>은
‘성자와 땅의 구원자의 운’입니다.
‘주의 돛’을 달지 않고 손으로 노 저어
가는 자는 힘들게 고생하며 ‘멀고 먼
365일의 신앙의 항해, 삶의 항해’를
해야 됩니다. 고로 힘들어서
‘1년의 항해’를 다 하지 못하고
‘자기 목적과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의 돛’을 달고 가는 자는
쉽게 ‘365일의 신앙의 항해, 삶의
항해’를 하여 목적지까지 가고,
그 힘으로 ‘자기 목적과 뜻’도
이룹니다. <끝>
이 세상 사람들은 힘들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연구하고,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어 내고, 갖은 생각을
하며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힘이 안 들고, 고생을 덜 하고,
쉽고 편하게 살기가 정말로
어렵습니다. 좋은 환경에 살고, 좋은
집에서 살고, 쉽게 돈을 벌어서 쉽고
편하게 인생 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력도 하고 수고도 하여
보다 편히 사는 자들을 보면
‘나는 언제 저렇게 살 수 있나?’
부럽기도 하고 낙심도 될 것입니다.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중요
인생 바다를 항해할 때
‘자기라는 배’에 ‘내 육의 돛’을
달아라. 그것이 ‘인생의 노’를
저으면서 고생하지 않고 힘 안 들이고
인생을 쉽고 편하게 사는 길이다.
너의 중심에
‘나 성자와 내 육’을 모시고 살아라.
그것이 ‘돛을 다는 것’이고, 힘을 안
들이고 쉽게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그것이 ‘운’이며 ‘횡재하는 것’이며,
‘밭에 감춰진 보화’다. 이 말씀이
‘꿈’대신 너희에게 주는 ‘횡재하는
운의 말씀’이다.
(하고,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밭에 감춰진 보화>를 찾고 싶습니까?
얻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밭에 감춰진 보화>를 찾도록 말씀해
주겠습니다. <밭에 감춰진 보화>를
얻으려면, 먼저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사야 됩니다. 그래야 ‘그 속에
묻힌 보화’도 자기 것이 됩니다.
(* <밭>은 무엇이고, <보화>는
무엇일까요?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밭>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그 시대의 하늘 뜻을 이루려고 쓰는
자’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육’이니 <밭 역할>을 해
줍니다.
<그 속에 묻힌 보화>는
‘성자’이십니다. 그리고 성자와 하나
된 절대신 ‘하나님과 성령님’입니다.
밭을 사라는 것은
- 보낸 자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
-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서 그를
‘자기 구원자’로 깨닫고,
- 그를 믿고 그와 일체 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로 말미암아
- 그 속에 묻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캐내게 되고,
- ‘삼위’를 자기 소유로 삼고 살다가
- ‘휴거’로 <영원한 천국 황금성>을
상속받게 됩니다.
또한 땅에서도 거액의 보화를 캐낸
자와 같이 잘되고 형통하여
육신쯤이야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끝>
<잠시 쉬었다가>
이제 성자가 ‘땅에서 할 일’을
다 끝내시고 떠나시니, 땅에서 계실
때와는 다르게 <질서>가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양쪽 차선’을 다 사용했지만,
이제는 ‘한쪽 차선’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동쪽 문’과 ‘남쪽
문’을 다 사용했는데, 이제는 ‘남쪽 문
한 곳’만 사용합니다.
그 문으로 통하지 않는 자는
다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이제는 ‘그 육’을 통해서만 도적같이
합당하게 나타나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중요
너희는 ‘배’다. 내 육은 ‘돛’이다.
<돛>은 ‘돛단배의 날개’와 같다.
<돛>을 달아야 ‘세상 바다’에서 날면서
산다.
<주의 돛>을 달아야 힘들지 않게
편하게 전진하며 신앙의 항해, 휴거의
항해, 인생의 항해를 할 수 있다. <끝>
<돛>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보기 바랍니다. <영상6 - 그림>
(* 여기서 선생님이 그린 돛단배의
돛을 보여 주고, 돛만 따로 떼어서
보여 준다.)
(한국 사람, 일본 사람, 중국 사람,
한자를 아는 사람은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돛은 ‘主’모양으로 생겼다.
‘主(주)’가 누구냐? )
성령의 눈과 귀가 있는 자는 보고
듣고 깨닫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 급절한 시대에 ‘돛’ 없이는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머나먼 인생 길, 휴거
길>을 못 갑니다. 올해도 ‘개인
부족으로 인한 환난’이 있기에
모두 ‘돛’을 달고 출발해야 됩니다.
그냥 ‘노’를 저어서 가다가는 얼마 못
갑니다. 힘이 센 장사라도 ‘돛’ 없이
‘노’를 젓고 살면 힘이 없어서 얼마 못
갑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중요
주(主)는 ‘생명의 돛’입니다.
‘주의 돛’을 달고서 <전도>도 하고
<각종 사명>을 하며 외쳐야 됩니다.
주(主)는 ‘희망의 돛’입니다.
‘주의 돛’을 달아야 ‘경제, 건강, 각종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목적’을
이루면서 보람차게 살아갑니다.
주(主)는 ‘진리의 돛’입니다.
‘주의 돛’을 달지 않고 가면
‘비진리의 돛’을 달고
<사망의 인생 바다>로 갑니다.
주(主)는 ‘휴거의 돛’입니다.
‘주의 돛’을 달아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모시고
‘육’도 ‘혼’도 ‘영’도
‘성령의 뜨거운 바람’을 타고서
‘하나님의 뜻’을 향해 편히 가면서
시대를 희망으로 살아가며
<휴거>를 이룹니다.
주와 일체 되지 않은 자는
‘주의 돛을 뺀 자’입니다. 그러니
노를 저으면서, 파도와 싸우며
고생하며 가야 됩니다. 가다 보면,
파도에 밀려서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성자는 떠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 주(主) >라는 돛을 ‘뇌’에 깊이
꽂아라. 그래야 그를 통해 ‘나 성자’도
제대로 안다. 그를 제대로 가르쳐라.”
하셨습니다. <끝>
<주(主)>라는 돛을
‘마음과 생각의 중심’에 꽂고
‘생활’에 꽂고 인생을 쉽게 편히 살고
승리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9>
오직 ‘주의 돛’만 달아야 됩니다.
나머지는 ‘돛을 꽁꽁 맨 줄들’입니다.
<자기>라는 배에 <주>라는 돛을
달아야 튼튼하고, 화평과 사랑이 넘쳐
서로 하나가 됩니다. 그로 인해
‘전도’하여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되고,
<교회>라는 배에 ‘많은 생명들’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 오늘 핵심 말씀을 다시 화면을
보면서 들어 볼까요?) <영상10> 중요
<구원자>는
지구 세상의 73억 명을 태운
‘지구’라는 배의 ‘돛’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이 <돛>을
가지고 ‘지구’를 조종하십니다.
<돛>은 ‘세상 바다에 묻힌
보화’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감춰진 인생 보화’를 찾게 됩니다.
<끝>
이 시대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주신 ‘주(主)라는 돛’을 단 자만
<인생>을 쉽게 편히 살고,
<휴거>도 힘들지 않게 이루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으로
모시고 <천국 황금성>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선생은 성자께 ‘휴거된 영들’은 어떻게
생활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휴거된 영들은 이제 <황금성>에 가는
자격자가 되었다. 고로 육신이
지상에서 사는 것과 상관없이
이제 자유롭게 <황금성>에 드나들게
된다.
<휴거 잔치>는 세상 혼인 잔치처럼
‘하루’가 아니고 ‘한 기간’이라서
‘한 기간’을 두고 <황금성>에서
‘휴거 잔치’를 하게 된다.”하셨습니다.
<전환>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올해 횡재하는 꿈>은 무엇이냐?
배에 돛을 달라는 말씀이다.
<돛>은 ‘내 육’이다.
<배>는 ‘너희 각자’다.
내 육으로 말미암아
나 성자는 주기도 하고 뺏기도 한다.
이제 내가 손을 놓았으니,
‘내 육의 손’을 잡아라.
<돛>은 ‘배의 힘’이며,
‘공중의 독수리의 날개’와 같으며
‘차의 엔진’과 같다.
<나 성자>와 <나의 육>은
‘너희의 돛’으로서 너희의
‘힘과 능력’이며
‘운’이다.
돛을 달아라! 높이 달아라!
그래야 세상 환난과 고통을 이긴다.
나 성자가 올해 진실로 ‘운’을 쏟아
주기 위해 사랑하는 자들에게 말한다.
섭리의 배들아. 꼭 돛을 달아라.
돛을 안 단 자들은 출발을 안 시킨다.
돛을 달지 않은 저 배들을 보아라.
힘들어서 파도에 밀려나 울고 있다.
돛을 달지 않고 출발하려는 배들은
그동안 여러 가지의 유혹에 빠져 있던
자들이다. 나 성자가 너희를 부르니,
내 말을 듣고 깨닫고 돛을 달아라.
그리함으로 이성 유혹과 세상 유혹을
이기고, 자기중심과 자기 생각을
몰아내라.
이 시대의 지혜자가 누구냐?
‘돛’이 무엇인지 찾고 단 자다.
<돛 없는 섭리 인생>은 파도치는
세상에서 이리저리 밀려다니다가
2015년 한 해 동안 또 이성에 빠지고
각종 유혹에 빠져 부끄러운 짓만 하게
된다. 네 소유를 다 팔아서 ‘돛’을
사라.
<돛>을 사야 그로 인해
‘그 속에 묻힌 나 성자’를 찾고,
나 성자와 일체 되어 얻고 누리게
된다.
사람들이 ‘나 성자와 분체’가
그리도 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모르니, 세상 사람들이 ‘생명과 같이
귀하게 쓰는 존재물’을 두고 비유하여
말하였느니라.
(하고,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전도할 때도 이와 같이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
‘생명과 같이 귀히 쓰는 것’으로
비유하여 <주>를 증거하고 깨닫게
하면, 거부감 없이 말씀을 듣고,
제대로 인식하게 됩니다.
<주>를 증거할 때는 ‘사명의 핵’을
감추고 돛을 달라는 말씀처럼 ‘비유’로
하는 것이 ‘말의 지혜’입니다.
예수님도 <어부>에게는 어부가 최고로
생명시하고 귀히 여기는 ‘그물’로
비유를 들어 ‘자신’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보화를 좋아하고 생명시하는
자들>에게는 ‘천국’을 ‘밭에 묻힌
보화’로 비유하여 ‘천국’을 깨닫게 해
주고 귀히 보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길과 생명’으로 비유를 들어
‘자신’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또한 <병든 자들>에게는
‘의사’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며
“네 영을 살리는 의사가 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믿고 따른 후에
“그것이 나다. 너를 구할 자가 나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도
‘그 사람이 가장 귀히 여기는
존재물’이나 ‘그 사람이 최고로
사랑하는 자’로 비유를 들어
<구원자>를 가르쳐 주고 증거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귀한 존재’이며
‘그 사람보다 더 영원히 너를 사랑해
줄 귀한 자’라고 비유해 주며 <말씀>을
넣어 줘야 됩니다.
꼭 <핵>은 감추고
‘귀한 사람’이나 ‘귀한 존재물’로
비유를 들어 ‘구원자’를 가르치고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지혜’입니다.
‘저마다 좋게 인식하는 것’이나
‘매일 보고 귀히 사용하는 것들’을
말해 주면서 ‘말씀’을 가르쳐 줘야
- 말씀을 좋게 인식하고 말씀이 뇌에
쑥쑥 잘 들어갑니다.
<진리>가 ‘돈’같이 소중하고 유익을
주니, 원하는 꿈을 이루려면
영과 육이 다 잘되는
‘이 시대 진리의 말씀’을 배우라고
하면서, 말씀을 배우면 무엇을 얻는지
보라고 하며 ‘희망’을 줘야 됩니다.
증거하는 대로
성자와 성령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의 <인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식을 뒤엎어야 ‘진리’가 들어갑니다.
고로 인식을 뒤엎으려면 ‘합당한
비유’로 설명을 잘해야 됩니다.
<육 사랑>을 좋아하는 자에게
“육의 사랑은 한계가 있고 권태가
있다. 육의 사랑으로는 얻지 못하는
‘황금 같은 사랑’이 있다. 너도 배우고,
그 사랑을 해 보아라.” 하고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며 희망을 주면서
무한한 전능자 신의 사랑, 영의 사랑,
배의 돛의 사랑을 가르쳐 줘야 됩니다.
하나님과 성자께서
‘이 시대 사명자를 통해 주신 참된
진리’로 그 사랑이 시작된다고 하며
확실하게 가르쳐 줘야 됩니다.
<돛을 단 배>의 ‘돛’같이 필요하다고
인식시키면서, 그 사람의 생각에
맞춰서 잘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리고
<육적 사랑>도 <영적 사랑>으로
행하면 1000배, 10000배 더 느끼고
가치 있고, 육도 영도 건강하다고
가르쳐 줘야 됩니다.
<지혜의 비유>로 설명을 잘해 줘야
‘그릇된 인식의 배의 돛’을 돌리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섭리사에 온 지 20년이
되도록 ‘선생’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는데, <2014년 크리스마스의 장편
설교>를 듣고 <시대>가 바뀌면
‘말씀’도 ‘사명자’도 바뀐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가 설명을 잘해
줘야 됩니다.
<시간>이 가면 ‘밤’이 ‘낮’이 되고,
<시대>가 가면 ‘그 시대 사람’으로
바뀌고, ‘건물’이 바뀌고, ‘차’도
바뀌고,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어린 딸’이 결혼하여 ‘엄마’가 되고,
<시대>가 더 가니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시대>가 더 가니, ‘할머니’가
죽듯이,
<시대>가 가면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시는 구원자’도 바뀐다는 것을
인식해야 됩니다.
선생은 10대에 이 진리를 깨닫고
<새 시대의 것>을 배우고 믿고 따르니
<시대 사명자>가 됐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빠른 구름’, 곧 ‘빠른 자’를 쓰십니다.
전도할 생명들이 많은데
<설명>을 잘하고 <말>을 잘하는
자들이 정말 필요합니다.
성자가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말해
줘야 귀에 면봉을 끼우듯,
<말씀>이 상대의 마음에 쑥~
시원하게 들어갑니다.
<전환, 말씀 마무리>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돛을 달아라.
- 이 말씀은 성자께서
<꿈 대신 주신 말씀>으로
<올해 최고의 말씀>이며,
<1년 동안 최고로 잘되는
방법의 말씀>입니다.
12월이 될 때까지
이 말씀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래야 꿈이 이루어지고, 보화도 얻고,
행복도 얻고, 보람도 누리고, 사랑도
지혜도 운도 옵니다. 이 말씀으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올해는
‘자기 부족한 것’을 채우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안 하는 만큼
사탄이 칩니다. 고로 반드시
‘부족한 것들’을 채우며
‘자기 할 일’을 꼭 해야 됩니다.
‘돛’만 ‘자기라는 배’에 달면 됩니다.
<돛>은
‘성자의 육’입니다.
‘성자의 분체’이며,
‘성자의 구원의 심부름꾼’입니다.
이제 성자가 떠나시니,
‘그 육, 분체, 심부름꾼’을 스마트폰
쥐듯 꼭 쥐고 다녀야 됩니다.
그래야 성자와 통합니다.
<돛>을 달면,
‘돛’이 방향을 잡고 배를 몰고 갑니다.
그러나 자기가 ‘노’를 저으면,
자기 생각과 자기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방향을 잃고
힘들어합니다.
<돛>을 달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시고 능력과 권세로
힘껏 역사하여 이끌고 가십니다.
그래서 “삼위일체가 육으로 쓰시는
‘구원자의 돛’을 달아라!”한 것입니다.
절대 말씀에 순종하면,
절대 잘되고 형통합니다.
<구원자>를 알아야 됩니다.
<구원자>를
아는 만큼 구원해 주고,
아는 만큼 형통하고,
아는 만큼 행하게 되고,
아는 만큼 휴거됩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영상11> 중요
<구원자>라는 ‘문’을 통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연결되어
‘휴거 차원’으로 올라갑니다.
항상 ‘육’을 통해서 ‘영의 세계’로
갑니다.
<성자의 육>이 하듯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성사됩니다. 믿기만 하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림을 그리는 자가 앞에서 시범을
보이며 그림을 그리면, 그 그림을 보고
그려야 그리는 대로 그려지지,
마음만 먹는다고 해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이 연결되면,
‘신호’가 오고 ‘화면’이 나오고
‘소리’가 들립니다.
자기가 전화를 걸어야 통하듯이,
자기가 <성자의 육>과 교통해야
느껴집니다.
그것이 일체 된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끝>
선생은 여러분의 혼과 영과 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생각하지 않으니,
안 통하는 것입니다.
본인만 찾고 부르면, 통하게 됩니다.
실제로 해야 해집니다.
실제로 생활 속에서 찾고 부르는 자는
<주의 돛>을 ‘뇌’에 꽂고 ‘생각’에 꽂은
자입니다.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5
(* 화면을 보겠습니다.)<영상12> 중요
<땅의 핵>인
‘보낸 자의 돛’을 달아야
<하늘의 핵>인
‘성자의 돛’도 달게 됩니다.
<핵>은 ‘핵폭탄’과 같습니다.
<보는 데 핵>은 ‘눈’이며,
‘마음의 눈, 영의 눈’입니다.
바다의 <배의 핵>은 ‘돛’입니다.
땅의 <자동차의 핵>은 ‘엔진’입니다.
공중의 <독수리의 핵>은 ‘날개’입니다.
<이 세상과 천국의 핵>은
‘삼위일체’이며 ‘구원자’입니다.
<핵>은
‘답’입니다.
‘주인’입니다.
<핵>을 알고
<핵>과 일체 되면,
성공합니다.
성자는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돛을 단 큰 배’다.
수영한 후에 지쳐서 배를 찾아오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배에 태우는 자가 되어라.
지쳐 방향을 잃고 다니다가는
바닷물을 먹고 죽으니, 잘 보아라.
또한 악인이 배에 기어오르는지
잘 보아라.” 하셨습니다.
환난 때나 어려울 때나
‘핵심자, 주’만 찾고 믿으면 이깁니다.
인생의 희망은 ‘핵심자’입니다.
<이 시대 하늘의 운>은
‘구원자’입니다.
그는 ‘인생의 돛’입니다.
그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고,
그 돛을 ‘자기 마음의 중심’에 꽂고,
그를 꽉 붙들고 <섭리의 항해>를 하고,
<휴거의 항해>를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인생의 보화>를 찾게 되고,
<인생의 운>을 타게 되고, 휴거되어
<영원한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됩니다. <끝> <전환>
(* 오늘 말씀 멋있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영상입니다.
이 영상과 함께
<성자의 말씀>을 들으면서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영상13> 매우 중요
<돛>은
‘독수리의 날개’와 같습니다.
<독수리>는 ‘무기’를
열다섯 개나 지니고 다닙니다.
철창(鐵槍) 같은 발톱 여덟 개,
철창 같은 부리 한 개,
철 몽둥이 같은 좌우의 날개 두 개,
레이더와 같은 눈 두 개,
초인 같은 힘,
그리고 시속 180km로 빠르게 나는
속도가 무기입니다.
고로 독수리는 ‘공중의 왕’입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그리고 주는
‘독수리와 같은 돛’입니다.
<자기>라는 ‘배’에
‘독수리와 같은 삼위일체와 주의 돛’을
달면, 인생의 항해, 신앙의 항해,
섭리의 항해, 휴거의 항해,
2015년의 항해는
문제없습니다!
돛을 달아라!
이 말씀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성삼위의 큰 축복>과
<운>을 부어 줍니다.
<축 도>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6
2015년 01월 28일 수요
[ 시편 23:1-6 ]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
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
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
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
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
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
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
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
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
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장, 구약 817페이지.
자 찾은 줄 알고 봉독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귀로 듣고,
나는 눈으로 보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6절까지 봉독했습니다.
다리가 아픈 사람들은 뒷줄에 가서
서서 들어도 괜찮습니다. 음성만 들을
수 있으면 자유롭게 하십시오. 듣고서
소화만 시키고 잘 깨닫고 은혜만 많이
받을 수 있다면 그 자리에 드러누워서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껌 씹는
것만큼은 확실히 지적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꼭 편안하게 들어요.
그리고 자기 자리가 습기가 차고 물이
올라온다면 거기에다 샘을 파십시오.
물도 귀한데.
이곳은 여러분이 늘 오고 갔던 성지
땅 월명동, 선생님의 고향이자
여러분의 영적인 고향인 바로
본토입니다.
여러분이 여름철에 와서 잡초는 뜯고
잔디는 남겨뒀던, 이 노천 섭리의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동기가 있다면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여기서 드리게 되었지만, 그 명령이
나게 된 동기가 있으니 어제 구정
때문에 밀려오는 인파 때문에
평창동에서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하늘 앞에 경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내려왔습니다.
하늘을 경배하기 위해서 모여든
인파가 2000여명이 넘게 와서 떡국도
먹고 가고, 밤참도 먹고, 오늘 아침에
밤참을 먹은 사람들은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먹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계속 남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쁘게 해 준다면 마당에
뛰어 돌아다니는 개도 잡아 주라고
했습니다. 아깝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를 영광스럽게 하는데
아까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졸려서 더 이상 못하겠다며
들어갔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잘
데가 없으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불가에 앉아서
20여명이 마지막 빈대떡을 부쳐
먹으면서 남았다고 합니다.
어제부로 이곳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얘기했습니다. 왠고하니, 원래는
서울의 성내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는데, 지방으로 예배드리러 간 것이
아니라 고유명절 설을 쇠러 갔기
때문에 얼마 되지 않은 인원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름이 많이 있는 곳으로
구름을 타러 손오공은 가야 된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하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모이게 되었는데
날씨가 추워서 조용하게 한 200여명이
들어가는 비닐하우스(막사)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녹화해서 전국과
세계로 보내려 했습니다.
“오늘, 비밀로 하고.. 가까운 곳에서는
오고, 먼 곳에서 오면 올라오기
힘들다. 오늘 같은 날 무지하게 많이
오려고 할 텐데 길이 막힌다.
내려오는 것은 좋다. 올라갈 때
힘드니까 오지마라.”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만 와서 하늘을
중심해서 주일을 지키고, 각 나라도
비디오로 보내자.”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날씨가 사정없이
푹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원을 보니
전체가 비닐하우스(막사) 속에 다
들어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날씨가
이렇게 너무너무 좋게 된 것입니다.
날씨가 이렇게 좋으면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으니 겨울철 놀이인 스키를 탈
수 없습니다.
스키장이 완전히 녹아내리면 안
되겠기에, 저쪽 높은 산 밑에 가서
눈을 전부 끌어다가, 한 70-80 포대
끌고 왔습니다. 그래서 뿌려 놓은 것이
이만치 남아있습니다. 오전에는 스키를
탔습니다. 예배를 드려야 되기 때문에
조금만 타다가 끝마쳤습니다.
아마 하나님이 그럴 것입니다.
“저놈들 봐라. 지독한 놈들! 어휴,
억척같은 놈들! 더 심하게 표현하면
악착같은 놈들이네. 아 그렇지, 그렇구
말구! 지난주에 내가 악착같이 살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인생을
살라고 했기 때문에 그러하겠지만
저놈들, 저렇게 하듯이 섭리를 뛴다면
내가 걱정할 것이 없지.” 할 정도로
했습니다. 포대로 눈을 무척 많이
날랐습니다.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응달도 눈이 다 녹았는데,
양달에 눈이 있는 것은 눈을 가져다
퍼 부었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만일 눈을 안 준다면
전 엠에스를 동원시켜서 대둔산
쪽에서부터 훑어다 갖다 놓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본적인 것은 주시되 그
나머지 인간의 책임분담은 해야
됩니다.
기본 없이 맨바닥에는 못 만듭니다.
어렵습니다. 그것은 아주 힘듭니다.
너무 무리한 미친 짓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을 줬을 때
‘어디까지인가 한번 해 보자’ 하고
해야 됩니다.
이곳도 다른 곳과 같이 눈이 녹았을
텐데 계속 녹기 전에 붓고, 녹기 전에
붓고 해서 모든 자들이 재미있게
쳐다볼 수 있는 눈요기가 되었습니다.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7
그와 같이 그냥 놔두면 없어집니다.
오늘의 눈 한 삽은 내일의 다섯
삽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눈은 흙발로 밟으면 금방 녹아
버립니다. 빨리 녹으라고 미끄러운
곳에 흙을 뿌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흙 묻은 신발을 신은 사람은 눈 위로
못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눈이 더 이상 안 온다면 내일쯤
스키장을 폐장(閉場)해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왔을 때
스키장이 없으면 쓸쓸하니, 하나님께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어떻게 해
주시려나 모르겠습니다.
아마 ‘너무 지나치게 하면 안 되겠다’
하고 눈을 주실 것입니다.
스키장에서는 눈이 금(金)이라고
합니다. 돈이 떨어진다고 한답니다.
제설기로 한 번 뿌리려면 한 3억씩
들어가니까.
사람이 많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중국 사람들을 다
동원시키면 한 주먹씩만 가져와도
무주 스키장보다 눈이 더 많을
것입니다.
어른들! 장년부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축복 가정들, 중고등부,
캠퍼스, 직장 이곳까지 오는 데 수고
많았습니다. 오래 걸린 사람들은
7-8시간, 10시간도 넘게 걸려서 오고
일찍 온 사람들은 30분 만에 온
사람도 있습니다. 차타고 오기
지루하지요?
어제까지는 좋았는데, 떡국도 주고
좋았는데 감히 엄두를 못 냈습니다.
오늘은 준다는 소리를 안했습니다.
선물로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다 나눠
주는데, 아까 보니까 나눠 줄만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 많은 인원에게
떡국을 먹이려면 한쪽에서 삶다보면
금방 해가 넘어갑니다.
그래서 여기에 올 때는 빵빵하게 잔뜩
먹고 와야 됩니다. 짜게 먹지 말고,
무조건 싱겁게 먹고 오면 배가 금방
안 꺼집니다. 짜게 먹으면 금방
꺼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시편 23편
말씀입니다. 주제의 말씀은 “하늘
중심” 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말씀하겠습니다.
다윗의 시(詩)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한 말씀입니다. 마이크 소리 잘
들리지요?
하나님께 향한 신앙의 고백도 되고,
자기 신앙의 간증도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다. 목자가
되다시피 하니까 부족함이 없더라.”
사람이 부족함 없이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지가지
부족함이 없다? 다윗은 이지가지
부족함이 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었고, 그리고 40년 동안이나
통치하게 되었으며, 백성들이 애인같이
좋아하는 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왕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실상은 처음부터
왕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을 왕이 아닌 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숨어서, 이미
내적인 주권은 다 그에게 넘어
갔습니다. 결국 그가 40년 동안
통치권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다윗의 특기를 몇 가지로 얘기한다면,
그는 남몰래, 누가 보나 안보나 조용히
늘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며,
기뻐하며 애인을 숨겨놓고 좋아하듯이
그렇게 시중들듯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늘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손뼉 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좋아하고, 찬미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성격은 순수했습니다. 그의
직업부터도 양을 기르는 직업이라
상당히 순수하고, 양에 대한
주인의식이 대단히 강했습니다.
말 못하는 양들이기 때문에 주먹만 한
사람일지라도 책임을 져야 되는
입장을 느끼고 항상 양들 앞에 왕을
살아 먹다시피 했습니다.
말 못하는 양들에게 항상 주권자의
행실을 해 줘서 무서운 사나운
동물들이나 짐승들이 한 마리라도
해치면 죽자 사자 쫓아가서
때려죽이고 내려오는 그런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런 성격이 점진적으로 컸고,
결국적으로 하나님의 눈에 띄게
되었고 하나님의 보호자가 되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표상인물이 되었고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통일왕국 시대 때 또 하나의
중심인물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저거 데려다가 주권자 삼아 놓으면
나의 영광을 거침없이 나타내겠고,
악착같이 억척같이 정말로 불티나게
영광을 나타내겠구나.’ 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착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영광을 받기보다,
가정적 단위의 영광을 받기보다, 또
하나 민족적으로 영광을 받기보다 또
하나 세계적 영광을 받는 것을 더
좋아하시고 천주적 영광을 받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민족적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근본은 어디서 나타났느냐?
양을 칠 때에 하나님께 하던 것을
그대로 확대시켰습니다.
그래서 결국적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기쁘게 하는 그
모습이 시대가 갔지만 웅장스럽고
대단한 것을 오늘도 내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을 열게 해서 말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의 입장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처지들입니다.
여러분도 과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고마워하고 기쁘게 했던
일들이 있다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도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가지고,
그런 삶을 가지고 지금도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보고 뭘 느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는 여러 가지
풍기는 것이 있습니다.
‘상당히 멋있게 인생을 살아간다.’
‘아주 억척스럽다.’
‘무섭다.’
‘지독하다.’
‘성질머리가 대단하고, 한다면 해
버린다.’
‘사정없다. 남이 안 하면 혼자라도
하고.’
‘밤중도 새벽도 상관없는 사람이다.’
이런 것을 많이 느낄 것입니다. 바로
그런 것이 하나님께 쓰여지는 데 좋은
성격들입니다.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8
어떤 사람은 내 성격을 보고
‘별로 안 좋다.’ ‘너무 강하다’
‘너무 어쩌다.’ 하지만 6월에 엿가락
늘어지듯이 늘어지는 성격은 나름대로
쓰일 곳이 따로 있지만 항상 그러면
안 됩니다.
나도 늘어질 때는 엿가락보다 더
늘어지고, 들어붙을 때는 끈끈이 보다
더 들어붙습니다. 자기 성격을 여러
가지로 쓸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목자다.
부족함이 없다.” 했는데 여러분은
부족한 것이 많지요? 부족함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 사는 데에도 부족한
것이 많고 앞으로도 부족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과거에도 곤고함을 받았고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있었고 젊음에
희망이 없었고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한 가지 비법이 뭔고 하니, 하나님을
참 목자로 삼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 시대 보낸 자를 늘 자기
목자로 삼아야 됩니다! 평생에 자기의
목자로 삼고, 자기 인도자로 삼아야
됩니다. 자기 인생의
리더(leader)자로 삼고, 자기 인생의
중심자로 삼아야 됩니다.
그 사람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야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보낸 자를 자기 마음으로 모셔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한 사고(思考)가 되어야
됩니다. 내가 그라면 내가 여러분의
사고가 되어야 됩니다. 내가 여러분의
영인체가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육인체가 되고.
나는 하나님을 그렇게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육신이다. 하나님은 내
생각에 들어오셔서 나를 좀 주장해
주십시오. 내가 생각을 해봤자 거기가
거기이고, 새 발의 피요, 모기 다리에
워커(walker)를 신긴 것과 똑같으니
안 됩니다.” 했습니다.
내가 제일 처음에는 내 마음대로 해
봤는데 안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탁하기를 “하나님이 꼭 나의
정신머리가 되어 주고 내 생각이 되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금방 잊어
버려집니다. 자기 육신의 눈이 있는
고로 자기가 하다가 안 되면 그때
찾고 그럽니다. ‘아이코, 처음부터
맡긴다고 했는데, 왜 이럴까?’ 이것이
여러 수백 번, 수천 번.
꼬집어 가면서 매질을 해 가면서
대갈통을 때려가면서 고쳤습니다.
어디가도 금방 금방 잊어버립니다.
요새도 그렇습니다. 자칫하면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가야 합니다.)
“너는 내 앞에 가지 말고 내가 너를
인도하여 앞에 갈 테니까 내 뒤에
따라오라” 하는 시(詩)를 지었지요?
<참조> 시 동행
동 행
앞에 가다 너는 뒤를 돌아다 보아라
내가 너와 함께 가는가 하고, 내가
가는 길은 네가 가는 길과는 달라.
내가 네 뒤를 따라 동행하는가 하고
너는 자주 뒤를 돌아다 보아라.
옛날 선지 에녹같이
나와 평생 동행하려면
너는 나를 늘 생각하여라
너는 오늘도
지금 이 길을 걸으면서
그 일들을 하면서
내가 너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지
앞 뒤 좌 우 돌아다 보아라
혹여 너 홀로 걷거들랑
속히 나를 찾아 오너라
그 누가 손짓하여도 가지 말고
나를 찾아 오너라
이제부터 내가 앞장 설게다
너는 내 뒤를 한치 거리도 두지말고
바짝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인도하고 지도하리라
자, 어서 내 손을 잡거라
내 우편에 서거라
같이 동행하자
내 옆에 서서 발을 맞추며 가자
도란도란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네 인생이 다 하도록
기쁨이 충만하리라.
나는 이 세상 저 세상
다 이렇게 살려고
너와 세상을 창조했노라.
1990년 12월 10일 평창동
너(자기) 혼자 가다 보면 금방내
잊어버리고 금방내 골치가 아픕니다.
쉽게 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맡겨버리고 사는 인생!
어디까지 맡기느냐? 자기 책임분담만
빼놓고 나머지는 다 맡기면 됩니다.
자기 책임분담까지 맡기면 넋 나간
사람이고, 약간 똘아이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물건이 있어도 다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책임분담은 자기가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맡겨야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중심한 신앙을
했기에 중심인물이 된 것입니다.
중심인물이 된 사람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을 중심했기에 중심인물이 된
것입니다.
중심한 중에서도 가장 극적으로
중심했습니다. 가장 근본적으로
중심했습니다. 중심인물들은.
알겠습니까.
다윗도 그 시대 중심인물이 된 것은
하나님을 절대 중심했습니다.
중심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그것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해 왔습니다.
하나님을 중심했다는 사람은, 그것은
다 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미
올라간 것입니다. 단계에, 독수리처럼
올라간 신앙입니다. 한번 그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절대 중심한 신앙!
알겠습니까. 어디를 가더라도 하늘
생각! 화장실에 갔을 때도 하나님
생각을 한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것이 잘 안되니까 성경을
자꾸 읽어야 됩니다. 사상이 박히게!
사고(思考)가 들어박히게!
톨스토이의 사상이 들어가려면
톨스토이의 작품을 자꾸 읽어야
됩니다. 저서를 읽어야 됩니다. 석가의
사상과 정신이 들어가려면 불경을
자꾸 읽어 대고 팔만대장경을 계속
읽어야 됩니다. 그러면 석가를 중심한
사상이 박혀 버립니다. 이북 사람들은
어떻게 김일성의 사상이 박혔는고
하니, 김일성의 말이 당원들을
중심해서 계속 전달되어서 밤새도록
듣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의 사상과
정신이 들어가려면 그의 말씀을 자꾸
읽고, 말씀을 듣고, 보낸 자의 말씀을
자꾸 들어야 됩니다. 내 말을 자꾸
듣게 되면 금방 또 들어갑니다.
‘아, 그를 중심해야 되겠구나.
그래야 부족함 없이 살 수 있겠구나!’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9
머리에 복잡한 것이 없어지면 부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가 잘
돌아 갑니다. 머리가 안 돌아가면
손발이 고생입니다. 그것을 조금 더
인격적인 말로 한다면, “수족(手足)이
고생이다” 하지요. 진짜로 머리가 안
돌아가면 수족이 고생입니다. 정말
지혜롭게 되어야 합니다. 지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지요?
지혜가 뭔지 압니까? ‘안다’
그것입니다. 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의 지혜는 이 세상의 학문과
지식을 아는 것이고, 하늘의 지식과
지혜는 하늘의 상황을 안다,
그것입니다. 하늘 상황을 앎으로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는 또 무엇이냐? 부담되지 않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런 지혜를 늘 구하고
간구해야 되겠습니다. 정말로 지혜를
달라고.
여러분들, 지혜를 받고 싶습니까?
말씀의 지혜는 받았습니다. 무조건
내가 가르친 말씀을 믿으면 그것은
말씀에 대한 지혜를 이미 받은
것입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독교에
가면 왕 살아 먹는다니까. 완전히
휩쓸어 버립니다.
그러나 나를 떠나서 이 말씀으로 왕
살아 먹으려고 했던 자들은 나한테
허락을 안 받고 갔기 때문에 가서
똘아이가 돼서 ‘야, 이단 놈아!’
하고서 혼나고 마빡 깨지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나한테 “가겠습니다.”
허락받고 어인(御印)을 찍고
가보십시오. 그렇게 하나, 안 하지요.
나는 말씀 가지고 왕 살아 먹잖아요.
지혜의 말씀을 가지고. 믿습니까.
“어떻게 말씀을 이렇게 신비하고 기가
막히게 풀었습니까? 정말 말씀의
지혜를 받으셨습니다.”
정말 지혜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다음은 하나님을 목자로 삼을 때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목자(牧者)로
삼아라. 영적인 세계에서는 하나님을
절대 목자로 삼고, 육적인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보낸 자를 목자로 삼아야
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이 보낸
자를 절대 목자로 삼아야 됩니다. 자기
정신으로 삼고, 자기 마음대로 모셔야
됩니다. 믿습니까.
지난 주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답을 줄까요?
‘적극적인 삶’ 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했는데 그것은 말씀이 깊이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핵심 되는 주제는 일부로
돌려놓고 한 것이었습니다.
근본의 답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메시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야만이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해서만이
받고 주고, 받고 주고, 주고받고, 받고
주고, 받고 주고, 주고받고 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게
근본철학입니다.
딴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을 통해서
애기를 낳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런
표현이나 똑같은 말씀입니다.
부모로서는 자기 아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고 싶어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영광은 아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영광을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 영광은 자식으로만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그 보낸 자를
통해서만이, 그리스도로만이 영광받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꼭 준다는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딸들이 많이
있는데, 할아버지의 말을 잘 안
들었습니다. 아버지만 좋아하고
할아버지의 말을 잘 안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하고는 노래방에도 잘 안
가고, 뺀돌뺀돌 하고 니밀니밀 합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을 이뻐하고
좋아하는데. 그래서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딴 것 없다. 제
할아버지를 존경하게 만들려면 딴 것
없다. 꼭 무엇이든지 줄 것을
할아버지한테 놓고 가면 된다.’ 하고서
자기 아버지에게 “애들이 오면 말을
듣는 대로 주세요. 용돈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했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니까, 애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아버지한테 가면 아버지가 다독거려
주기만 하고 돈도 안 주고 먹을 것도
안 주니까, 항상 돈을 받으려고
할아버지에게 쫓아가서 굽실거리고
할아버지를 좋아했습니다.
알롱거렸습니다.
그때부터 손자들이 자기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을 봤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를 통해서 주면 저를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부터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엠에스를 무시하고 있으면 슬쩍
그에게 싸인(sign) 해 주며 임무를
줍니다. 내가 그 애를 잘 만나 주고
그를 통해서 들어오게 만드니까
할 수 없이 그에게 굽신거리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도 그런
입장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그 시대의
영광을 받았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그
시대에 모든 것을 채찍 했고, 다윗을
통해서 그 시대의 복을 주었고, 다윗을
통해서 그 시대의 모든 운명을
좌우하셨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전쟁하셨고, 다윗을
통해 모든 하나님의 사고와 사상을
나타냈습니다. 다윗은 육신이고,
하나님은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상과 정신과 모든 것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중심자를 통해서.
다윗의 전쟁은 곧 누구의
전쟁이었지요?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와 싸우는 자와
싸우고 다투는 자와 다투고”
이렇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참조 시 35:1)
하나님의 세계는 바로 그런
일들입니다. 믿습니까.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바로 여러분들
속에도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개체의 삶이. 중심권의 명령을 통해서.
“혹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갈
때, 두려움의 골짜기를 갈 때, 무서운
골짜기를 갈 때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목자가 되기
때문에 그렇지,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해 준다는데
안 될 리가 있습니까.
다윗은 그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어디서 느꼈는고 하니, 전쟁하면서
죽음의 골짜기를 느꼈습니다.
들어갔다 하면 몇 명밖에 안
살아오는데 그것이 사망의 골짜기이지.
블레셋 대군의 그 무시무시한
골짜기를 자기가 철조망같이 그리고
울타리같이 아끼는 군인들을 데리고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0
갔을 때 그저 퍽퍽 들어간 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이니까
블레셋에게는 목자가 아니니까,
(하나님이) 함께 했기 때문에 두렵지
않더라 그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안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함께 한다? 어느
정도껏은 몰라도 근본문제의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근본문제의 두려움은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고는, 근본 문제의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는가 안
하는가, 한번 하나님이 기와 함께하는
것을 느껴본 사람은 손들어 봐요.
자기는 확실히 함께하시는 것을 크게
못 느껴본 사람들 손들어 봐요.
없지요?
함께하기는 함께하는데 좀 시원찮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가 알아야
“약간 시원찮다는데 어떻게 된
현판입니까?” 하고 이야기를 하지요.
약간 시원치 않다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약간 시원찮게
하나님께 대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점진적으로 올라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단체보다도,
어떠한 모임보다도, 어떠한 종교의
모임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많이
깨우쳐 줬을 것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날씨를 보십시오. 많이
푹해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이 안 보이지요?
나는 하나님이 보이는지 압니까? 나도
안보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뭘 통해서 압니까.
바람을 뭘 통해서 압니까. 바람이 안
보이잖아요. 느낌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있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없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솔직하게 손들어 봐요. 없습니까?
이야기하겠습니다.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 나왔습니다!
말씀 자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오시면 실체의
영체가 옵니다. 봐서 아는 것이
아니고, 느낌으로 압니다. 느낌으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추운 날씨입니까, 더운 날씨
입니까? 겨울 날씨 치고 추운
날씨입니까, 더운 날씨입니까.
“따뜻한 날씨입니다.”
따뜻하지 않고, 포근한 날씨입니다.
여러분은 문학적 표현이 약합니다.
포근하다고 해야 맞습니다. 태양이
없는데 뭐가 따뜻합니까? 태양이 있을
때 “따뜻하다”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태양이 가려져 있을 때는 “포근하다”
해야 문학적인 표현이 됩니다.
다윗도 꼭꼭 쳐다본 것이 아닙니다. 늘
깨닫게 해 주고, 느끼게 해 주고, 늘
들려오고 그래서 안 것입니다.
믿습니까?
내가 여기에 있는데 왜 여러분은
선생님이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삽니까? 영체이기 때문에 왔다갔다
하며 무한한 세계를 돌고 돕니다.
하나님은 더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아주 소수의 무리입니다.
하나님이 등장하면 천천만 영들이
옵니다. 이 골짜기가 메어지게 옵니다.
이 작은 인원을 보고 옵니다. 애인
하나 때문에 어떤 군대장관이 어디
가는데, 자기 애인을 만나러 가는데
따르는 사람이 무지무지하게 갑니다.
애인 하나 만나러 가는데!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이 애인들을 만나러 여기에
오는데 하나님은 천천만 영들을
데리고 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게 바로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야, 다윗은 특수인물이니까 그렇지.’
하지만 다윗을 따라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겠습니까?
안하시겠습니까?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볼 때도
특수인물이 필요 없습니다. 따라갈 때
함께하신다! 상식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함께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에게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는다면, 나를 따라 올 때
그 따라 오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안 하겠습니까. 함께하지요!
그렇게 흐름으로 보는 것입니다.
저렇게 경사졌는데 물이
내려가겠습니까? 안내려가겠습니까?
내려가지요. 그런 흐름으로 볼 때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함께 안 하겠는데.’
그것은 자격지심입니다.
‘나는 죄도 짓고 말 안 했는데.’
그것은 따로 따집니다. 죄 지은 것은
따로 따집니다. 따라갈 때는
하나님께서 일단 함께해 줍니다. 조건
안 잡히게. 그러나 죄를 지은 것은
따로 따집니다. 그것은 따로
국밥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나는 죄를 지어서 함께 안 할 텐데’
하지만, 중심자를 따라가면 일단은
거기에 해당되는 혜택을 받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자기가 죄를
지었다. 회개치 않았다. 중심자의
마음을 거슬리게 했다.’ 그것은 따로
국밥으로 처리되어야 됩니다. 그것은
심판의 말씀이 나가지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됩니다.
대강이라도 알아야 우리가 사는 데,
하늘 앞에 답답한 소리를 안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녀봤을 것입니다. 요새는 전쟁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니라,
골목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밤늦은 골목길, 사고(事故)의
골짜기입니다.
또 여러 가지 각종각색으로 있습니다.
자포자기의 사망의 골짜기, 고뇌의
골짜기, 염려의 골짜기, 이런 모든
자기 성격의 무서운 골짜기, 자기의
모든 혈기,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
이런 것들을 다 사망의 골짜기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 골짝에서 하나님이
함께해서 여러분을 살려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일순간에 자살하고
싶고, 일순간에 포기해버리고,
일순간에 완전히 다 떨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보다 마음을
철저하게 수도생활 해야 됩니다.
아무리 뻔지름하게 생겼어도 마음이
흔들려 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를 죽입니다.
저주를 하다가 “너 같은 것은
죽어버려야 돼” 하고 죽어버립니다.
자살행위가 아니겠습니까?
다른 것이 아무리 연단되고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마음이 서지 못하고
마음이 어리다든가 마음이 깨닫지
못하면, 그렇게 되면 인생을 제대로 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1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음이 어리면
육신이 아무리 커도 헛일입니다.
이 감나무는 이 골짝에 들어와서 바로
고욤나무에다 접을 붙였습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열다섯 먹었을 때
바로 접을 붙였습니다. 딴 데도 다
고욤나무입니다. 저 나무는 늦게
접붙여서 늦게 컸습니다. 늦게
접붙이니까 이 감나무보다 훨씬
작지요.
<갑>이라는 사람은 15살 때
접붙였는데, <을>이라는 사람도 똑같은
고욤나무에다 접을 붙였습니다. 여기
시커멓게 고욤나무가 보이잖아요.
여기를 자른 것입니다. 저기도 밑이
시커멓잖아요. 거기를 자르고 붙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똑같은 고욤나무였는데, 늦게 자르고
붙인 것입니다. 여기는 일찍 자르고
붙이고. <갑>이라는 사람은 열다섯 살
때 접붙이고, <을>이라는 사람은 38살
때 접붙였습니다. 그러니까 감나무가
늦게 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의 말씀
가운데 “내가 그리스도로 인해서
접붙임을 받았다” “예수님은
참감나무요 너희는 고욤나무들이다”
했습니다.(참조. 롬 11장)
빨리 자르고 접을 붙여야 됩니다.
그리스도에! 알겠습니까. 영적인
세계도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50살 먹었는데
영인체가 작습니다. 왜 그럴까? 늦게
구주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마흔다섯 살 먹은 사람이 마흔 살에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마흔다섯이
적은 나이입니까? 부러진 90인데.
그런데도 영인체는 다섯 살밖에
안됐습니다. 왜? 마흔 살 때 하나님을
믿고 구주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접을 붙였다 그것입니다. 사십
살에 접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20살밖에
안됐습니다. 그런데 일곱 살 때 접을
붙였습니다. 스무 살 먹은 애가 훨씬
더 큽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어른들인데도 애기입니다.
영인체가 애기입니다. 왜 애기냐? 잘
못 먹어서 그렇냐? 늦게 접붙였다는
것입니다. 구주를 늦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아까 <을>과 같이 늦게
접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온
사람들은 키가 커도 영적인 세계를
기준해서 어리니까 잘 대해줘야
됩니다. 이제 온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이니까.
잘 못 대해 주면 서운한 것은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오고 심정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된 사람들은 좀
아무렇게나 대해줘도 괜찮습니다.
영인체가 컸기 때문에 다 이해를
합니다. 서운하게 대해 줘도.
‘서운하게 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이렇게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해 줬다.’ 하는 것을 압니다.
영들이 컸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 온 사람들은 조금만
서운하게 대해주면 영이 어리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고 막 삐쳐서 그냥
돌아다니고 그럽니다. 마음이 영이나
똑같습니다. 사람의 육인체는 덜
합니다. 영인체와 다릅니다.
영인체를 따로 대해주고 육인체를
따로 대해야 됩니다. 바로 그 사람의
마음, 그 사람의 영, 그 사람의
심령문제는 영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영이 어리다고 생각하면서 어린
사람은 어리게 대해주지 않으면
절대로 존재를 제대로 시킬 수
없습니다.
좀 어려운 이야기지요? 아까 7분 전에
더 깊은 이야기도 해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한 말이지,
내가 한 말입니까? 내가 해놓고 깊은
이야기가 안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옆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지라도 해
받을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했다.”
함께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했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종입니다. 그 시대의 종
대장입니다. 종인데도 하나님이
함께했습니다. 주인이 종 가는데 같이
갔다는 것입니다. 왜 주인이 종 가는
데 따라갔을까?
구약시대 때는 종 시대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중심자도 종입니다.
왜 종을 주인이 따라갔을까?
“주께서 나와 함께했다” 그것은 따라
다녔다는 것입니다. 왜 함께했을까?
이쪽 줄!
왜 주께서 종을 따라 갔을까?
(하나님이 세운 자이기 때문에)
밑에 줄!
내가 이야기 하겠습니다. 맞았나,
틀렸나 답안지를 발표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맡겼기 때문에
따라다녀야 됩니다! 종한테 일을
맡겨놓고 밭에 가 봤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일 잘하는가 하고 지적도
하려고. 일을 맡겼기 때문에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일을 맡겼으니까
따라다녀야지요. 돈 보따리 맡긴 것과
똑같은데. 그렇지요?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쉽고도 어렵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모르더라구요. 왜 따라다녔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맡겼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알아야 되는데 여기저기서
간접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어리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어리지 않습니까?
내가 적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신약 때는 주인이
아니고, 아들에게 일을 맡겼기 때문에
분명히 아버지가 아들도 아끼고,
따라다닌 것입니다. 예수님도 신약
때에 다윗 같은 입장에서 종교
통일왕국의 왕을 살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일을
맡겨 놓고. 믿습니까.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시대는 애인시대이기
때문에 애인에게 하나님일 일을
맡겼기 때문에, 일 때문에 따라다니는
것은 근본이지만 또 하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따라다닙니다. 애인은!
대개 애인은 일을 맡겼기 때문에
따라다니는 것도 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따라다닙니다.
사랑 때문에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좋아서!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일과
사랑 때문에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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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시대는 어떤 사랑인가 하면,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애인시대에는
에로스적인 사랑 때문에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따라오고도 남지요.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꼭 따라다니십니다.
사랑할수록 더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심권을 품어야 됩니다.
아들의 마음을 품은 자는 아버지가
함께하시고, 아들의 마음을 품지 않은
자는 아버지가 함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니
잔이 넘친다.” 했습니다.
옛날에는 왕에게도 뿔의 기름으로
예식을 거행했지 않습니까? 요즘의
기름은 무슨 기름을 붓는가 하면, 바로
말씀의 기름을 붓는 것입니다. 잔이
넘치지요.
잔이 넘친다는 표현을 했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부으니 잔이 넘치나이다.
마음의 충만함이 솟나이다.”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영적으로 말하면 성령의
기름을 붓고! 성령, 영적! 신(神)의
기름을 붓는다! 신의 충만함의
기름으로 우리 머리에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어주기만을 원하지 말고,
기본적인 것은 본인이 일으켜야
됩니다. 본인의 책임분담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불이 위에서 내려온다면
나무는 우리가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불을 일으키게
준비를 하고 작업을 해야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다윗을 중심했을 때 그러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안위한다.” 막대기! 양을 칠 때는
막대기와 지팡이로 양을 몰지요.
“지팡이는 능력, 막대기는 말씀”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사랑이다.”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으로 인도한다.”
“신(神)의 능력으로 인도한다.”
“신과 말씀으로 인도한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 것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잔도 넘치고 여호와의
성전에 영원히 거할 수 있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치 않고 보낸 자를
중심치 않은 사람들은 섭리를
따라오다가 섭리의 전(殿)에 영원히
거하지 못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주의
전에 영원히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에덴에서 쫓아내어 근본된 토지를
갈게 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선연히
시대를 따라서 느껴봤지요?
여러분들이 중심을 중심하지 않고,
나의 사고(思考)와 사상(思想)이
없으면 나와 상대해서 싸울 때가
있습니다. 심정의 싸움과 심정의
트러블(trouble)이 있게 됩니다.
‘왜 저렇게 하나?’ 할 때는 벌써
중심이 여러분들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정신이 아닌
본인의 정신이 들어간 것입니다.
나는 오다(order)받고 하는데도
여러분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와 한 중심이 못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한 중심이
되었으면 그렇게 안 합니다.
그래서 중심이 되었나, 안 되었나는
보면 압니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
꼴찌를 안 합니다. 중간이라도 갑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아멘, 아멘” 하고서
따라다니면 됩니다.
여러분들을 하나님이 불렀습니다.
어떻게 불렀나? “여봐라. 때가
되었다.”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들은 사람이 있어요? 안
들었지요?
마음을 감동시키면서 감화하면서,
홀연히 마음이 누굴누굴해지면서
오다보니까 섭리 길을 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자극하고 은은한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와서는 제단을 쌓아야 됩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섭리에 불러 주시고, 하나님께
불러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고맙고 감사하다고 해야 됩니다.
감격하다 해야 됩니다.
보통 마음 갖고는 하늘을 못 섬깁니다.
하나님은 너무 크고도 위대하고
장엄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보통
마음을 갖고는 안 됩니다.
적어도 하루에 열 번 이상은 하나님을
부르고 기쁘게 해드려야 됩니다.
자기의 애인이라 하면서, 자기의
구원주인데, 자기의 근본자인데,
영원한 존재자인데, 영원한 나의
태양이 되는데 어떻게 그럭저럭
합니까?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때가
되어야 생각나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보면 다 표가 납니다.
나는 쳐다보면 저 머리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쳐다보면 대강
압니다. ‘아, 지금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구나.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바라보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고 담대히
살아가십시오.
이곳을 중심해서 전국에 있는 각
교회에서 비디오(video)를 보고
말씀을 듣는 여러분, 그렇게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어떤 누구도 그런 한
해를 살라고 이 시간 하늘은 나의
입을 통해서 성령으로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은 어림도 없습니다. 꼭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인
목자로 삼고 살아야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목자를 잘 만나야 됩니다.
목자는 잘 못 만나면 안 됩니다.
목자를 잘못 만나면 자기가 편안하기
위해서 양들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습니다. 자기만 편하면 그만입니다.
안 살핍니다. 그러니 양들이 다 병들고
약해지고, 제대로 못 먹이니까
파리해집니다.
그래서 삯군 목자가 따로 있고, 참
목자가 따로 있습니다. 자기 양입니다.
50마리를 기르고 있으면 자기가
주인입니다. 그 사람이 기르는 것
하고, 품삯을 받고 양을 기르는
것하고는 천지 차이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주님은 자기가 하나하나 몸으로
수고하고 애쓰며 노동으로 샀습니다.
베드로부터 시작해서, 안드레, 빌립
같은 양들을 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죽
따라오는 사람을 데려다가 설교해
주고 그날 품삯을 받아가고, 또 제물
드려 주고 자기의 한 달 봉급
받아가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사장들이
하는 짓들입니다. 다르지요?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3
삯군 목자와 참 목자는 천지
차이입니다. 오늘날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입니다. 삯군들이 목회를 하는
교회들은 교회가 안 됩니다.
자기 양같이 한 마리도 잃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는 그런
자들은 기성교회가 되었든 섭리교회가
되었든 잘됩니다.
그러나 삯군 식으로, 의무적으로
“나는 6개월 하고 오겠다.” “나는 한
달 하고 오겠다.” “나는 두 달 하고
오겠다.” “나는 2년 하고 오겠다.”
이런 삯군 식으로 했다가는 양들이
불어날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불어납니다. 한 달을 하든, 두 달을
하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잠깐 나에게 맡겼으니
한번 두려운 마음으로 열심히 해보자.”
하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섭리의 교회들은 삯군들이
없지요? 본인이 삯군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볼 때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삯을 위해서 하게 해 놓지를
않았습니다. 왜? 목회자들에게 용돈을
조금 줍니다.
용돈만 조금씩 받고, 참 목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삯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들을 기르는 것, 그들을 위해 사는
것, 이것이 삯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
것, 착한 일을 하는 것, 그 후에
엄청나게 하늘로부터 받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생명으로 받고 영광으로
받고, 건강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십니다.
이와 같이 자기 양떼같이, 자기의
것인양 그렇게 관리를 해 주고, 그렇게
도와줘야 합니다.
캠퍼스, 직장, 중고등부, 장년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자기의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남의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삯군 지도자입니다.
‘이것은 내 것이다.’ 하고서 하는
사람은 참 목자입니다. 참 목자는
따라가야 합니다. 정신, 의식,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따라가야 합니다.
삯군 목자는 너무 매놓고 자유를 주지
않습니다. 양의 목을 매달아놓고 가서
낮잠을 잡니다. 참된 목자들이 되고,
그리고 시대의 일꾼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하늘은 말씀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늘과 일체
되었을 때 뜻이 이루어지고, 땅에서
이상(理想)이 이루어지고, 하늘의
역사가 불붙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멀어졌을 때는 역사가 갔어도 제대로
표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벌써
신(神)이 됩니다. “말씀을 받은 자는
신(神)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시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신(神)이
못되고 육(肉)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세상 앞에는 신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지 않은 자 앞에는 신이
되었고, 하늘 앞에는 육이 되었지만.
그러나 기성시대는 신도 못되고, 육도
제대로 못되고 어정쩡하게
육체덩어리만 돌아다니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쉴만한 곳으로 인도해 주셨다.”
우리가 쉴만한 곳에, 우리가 앉을만한
곳에, 우리가 말씀을 들을만한 곳으로
몰아다 붙여놨다는 것입니다.
참 목자이기 때문에 위치와 환경을
바로 알지요. ‘오늘은 양떼들을 어디로
몰아야 하겠다. 몰아 붙여서 말씀해야
되겠다.’ 하고서 성지 땅 잔디밭에다
몰아 붙였습니다.
참 목자라서 이 시대의 쉴만한 섭리의
푸른 잔디밭으로 몰아 붙여놨습니다.
다른 목자들은 삯군목자라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에 딱 하나 세워놓은
중심인물만 쉴만한 곳으로 양들을
인도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섭리의 세계에다 몰아
붙여놓았는데 이곳은 쉴만한 곳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머리 둘 곳이
없지요? 주님께서 인자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는데, 여러분들도
세상에 살면서 머리 둘 곳이 없어서
고생이 많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섭리의 세계에 왔을 때는 우선 머리
둘 곳이 있었습니다. 심정의 숨을 쉴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갖고서 오늘 말씀이 오게 된
것입니다. 쉴만한 곳에서 말씀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겨울철에 잔디밭에서
예배드리는데도 안 춥지요? 잔디를
방석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안 깎은
것입니다. 저 옆의 잔디는 스키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깎았습니다.
전국에 있는 우리 섭리의 엠에스
여러분, 금년도는 선생님께서 모든
분야에 뛰어들어서 성가대 파트장,
그리고 직장부 지부장들을 밑에다
세워놓고 내가 직접 지휘를 하게
되었고, 또 예술부 총 지휘를 하게
되었습니다. 썰매를 타는 것도
예술이요 설교입니다. 어떻게 하라고
하나씩 가르쳐주지 않습니까?
스키(ski)를 잘 타는 법이 무엇인지
압니까? 중심입니다, 중심! 중심이
흔들리면 바로 나가떨어지는 사람을
못 봤습니까?
기본은 다 배우고 가는데 중심이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서면 안
넘어집니다. 뒤로 타도 안 넘어집니다.
아까 선생님은 뒤로
점프(jump)하면서 가지 않았습니까?
중심을 지켜야 됩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면
전문가가 됩니다. 내가 스키를 1년 탄
것도 아니고 사실상은 몇 번 탔습니다.
맨날 여기에서 탔지 나가서 제대로 탄
것은 몇 번 안 됩니다. 여기서 불만치
않고 좋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배운
것입니다. 방안에서 축구도 배웠는데
충분하지 않습니까?
엊그제도 열심히 하고 들어갔습니다.
애들이 계속 와서 나를 쳐다보는데
뭐라고 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쳐다보라고 이것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내가 자꾸 나타나서
움직여야 여러분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아, 억척같은 사람, 선생님!’ 하고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재미라기보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추우니까 뭘 보여 주고 또 같이 하는
것입니다.
스키를 타고 방에 들어갔는데 애들이
“선생님, 참 잘하십니다.” 하길래
“나는 뭘 하더라도 전문가가 된다.”
“왜 그런 줄 아느냐?” 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 입을 통해서
말씀했습니다.
“왜 그래요?”
“나는 노력을 많이 했다.”
나는 노력을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노력을 많이
하잖아요.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에!
또 하나는 중심자이기 때문에!
또 하나는 소질과 재질이 있기 때문에
그렇고, 또 하나는 담대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지도자이기 때문에.
또 하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4
함께합니다. 그중에서 어떤 것 때문에
그렇겠습니까? 한 가지만 대보십시오.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알았는데
이것을 내가 4년 동안 못 풀었습니다.
내가 노력파이기 때문에 노력을 많이
합니다. 내가 원래 노력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무진장 노력을 많이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한 번 탈 때
나는 열 번도 더 탑니다.
내가 밤 3시에 글 쓰면서 “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빨리 전문가가
됩니까?” 했더니 “내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셨습니다.
작년 봄, 눈이 녹을 때쯤 무주
리조트에 가서 스키를 조금 탔습니다.
그런데 돌지를 못하겠더라구요. 계속
스키를 끌고 앉아서 내려왔더니만
누가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웃나?’ 하고 보니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스키를
어떻게 타야 되는지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작년에 타듯이 타면 된다.
작년에 했는데 왜 못하냐? 앞정강이를
확 밀어붙이고 활강하다가 우측 발에
힘주고 좌측 발에 힘줘.”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중간에서부터
내려왔습니다.
이와 같이 늘 무슨 일을 할지라도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님께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께
“어떻게 합니까?”하고 물어보고, 내가
없을 때는 기도함으로 물어보고
그러면 파장에 딱 걸려버립니다.
영적인 세계의 파장을 왜 써먹을 줄
모릅니까?
“선생님 어떻게 하지요?
나 진짜 어떻게 해야 되지요?” 할
때는 딱 파장에 걸려서 타타닥
나갑니다. 하나님이 파장을 때려서 해
주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대기
때문에. 전파를 써먹을 줄 몰랐다면
무전기를 못 만들었고, 방송국을 못
만들었을 것입니다. 써먹을 줄
몰랐으면 그랬을 것이 아닙니까.
써먹을 줄 알아야 됩니다.
왜 영파를 써먹을 줄 모릅니까? 왜
말씀을 써먹을 줄 모릅니까? 왜
진리를 써먹을 줄 모릅니까? 왜
성경을 써먹을 줄 몰랐습니까? 왜
젊음을 써먹을 줄 몰랐습니까?
써먹을 때 그렇게 써먹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써먹는 법을 몰랐지
않습니까?
이제 써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왜 이렇게 많은 말씀을
적어놓고 써먹을 줄 모릅니까?
갖다놓고 뭘 하려고 합니까? 써먹어야
됩니다! 가서 전해 보십시오. 전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옛날에 우리는 겨울에 눈을 써먹을 줄
몰랐지 않습니까? 옛날에 겨울에 내가
할 일 없어 심심할 때가 많았습니다.
“심심해 죽겠다. 눈은 왜 자꾸 퍼붓고
오는지 모르겠다. 아이고, 눈이
저주스럽다. 왜 이렇게 눈이 많이
오지? 얼어 죽겠네. 나무하러 가야
하는데” 하며 눈을 써먹을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요즘에서야 눈 써먹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스키를 갖고
다니는 사람은 옛날 20년 전부터,
30년 전부터, 50년 전부터 눈을
써먹을 줄 알았습니다.
스키를 타러 다니는 사람을 보면
“저 새끼들, 뭐 하러 저러고 다니냐?
아이고 돈 버리고 다니네.” 그랬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요즘은 눈을 써먹을 줄 알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저 멀리 가서 눈을
가져 왔습니다. “아이고, 이게 돈이다”
하며. 오늘 헌금은 눈으로 하겠습니다.
눈으로! (웃음) 눈을 써먹을 줄
몰랐습니다. “저 북쪽지방에서는
추운데 어떻게 사냐?” 하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눈을 써먹을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 수족을
써먹을 줄 알아야 됩니다. 주먹도
써먹을 줄 알고. 다 써먹을 줄 알아야
됩니다. 왜 써먹을 줄을 모릅니까?
자기의 얼굴도 써먹을 줄을 알고,
자기의 기술도 써먹을 줄 알고 다
써먹을 줄 알아야 됩니다. 써먹다 보면
소질과 재질이 자꾸 나옵니다.
이 골짝도 써먹을 줄을 몰랐습니다.
옛날 조상들이 이렇게 써먹을 줄
알았습니까? 맨날 화전(火田) 밭으로
써먹고, 보리나 심어 먹고 했습니다.
여기 양지 밭이 다 보리밭이었습니다.
그렇게 써먹을 줄 알지 이렇게 귀하게
써먹을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나타나니까 제대로
써먹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잖아요.
이 골짝의 주인. 이 골짝을 써먹기
때문에 내가 지구촌을 써먹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리를 배워 가지고
지구촌을 골짝마다 써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디를 가든지
애들과 같이 재미있게 써먹지
않습니까? 누가 우리같이 재미있게
사는 데가 어디 있습니까?
이 골짝을 써먹듯이 여러분의 마음을
써먹고, 여러분의 육신을 써먹고,
여러분의 정신을 써먹고, 모든 젊음을
써먹으라는 것입니다. 써먹을 줄
알아야 됩니다.
옛날 케케묵은 사람들이 써먹듯이
메밀 화전(火田)이나 하고, 녹두다
심어 먹고. 가장 곡식이 안 되는 곳에
녹두를 심어 먹습니다. 그렇게 써먹던
곳을 여기 얼마나 귀하게 써먹습니까.
한 평에 천만 원씩 써먹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하게 써먹고 있습니까?
사람이 많으면 비싸지는 것입니다.
명동거리에 사람이 없어져 보십시오.
한 평에 200원, 300원 밖에
안합니다. 껌 값입니다. 사람이 하나도
없어 보십시오. 누가 무서워서 거기에
가겠습니까? 상점도 없어지고 다
없어집니다. 여기로 다 오면 여기가
대신 평당 1억짜리가 되는 것이지.
이와 같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귀하게
써먹으라는 것입니다. 남의 마음대로
따라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친놈이나 남의 마음대로
따라다닙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써먹으라는 것입니다. 개성을 써먹고.
쳐다만 보지 말고 직접 뛰어 들기도
하고 적극적인 사고(思考)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외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수고함으로 쉴만한 골짝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쉴만한
골짝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쉴만한
골짝으로 부드럽게, 힘 안 들게 우리를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금년도에도 이번에 산 땅을 작업해서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곳같이
잔디를 동그랗게 입혀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한 3만여 명이 꽉 차게 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나는 저
밑에서 설교를 하게 되면 한 눈에
쳐다볼 수 있습니다. 저기서 줄 가지고
이리로 왔다가 가면서 계속 설교해서
한 바퀴 돌고 내려오고 찬송 부르면
끝나는 것입니다.
2015_0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5
내가 돌아다니면서 설교할 테니까
줄만 길게 마련해 주십시오. 옛날부터
그런 구상을 가졌었습니다.
겨울철에는 눈을 가져다가 스키장으로
써먹고 여름철에는 여러분들이 앉을
수 있는 푸른 초장으로 써먹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 공사하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입니다.
이런 나무들은 어떻게 써 먹냐?
이것은 좌측 꺾꽃이, 저것은 우측
꺾꽃이입니다. 나는 이렇게
스케일(scale)이 큽니다. 크게 놀아야
될 것 아닙니까.
저런 나무도, 웬만하면 안 베려고
합니다. 바위도 안 깨부수려고 합니다.
그대로 흙만 놓고, 바위는 바위대로
그냥 조경을 놔두려고 합니다. 불룩한
데만 반반하게 만들어 놓고.
전에 밤나무를 심어 놨는데,
되겠습니까. 사람들을 심을 장소에.
생명나무를 갖다가, 선실나무를 갖다가
잔뜩 심어 놓을 것입니다. 보기 좋게
꽉 심어놓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서 너무너무 보기
좋았고, 그 기찬 세계에서 우리
조상들이 쫓겨났다” 하는데 무슨
과일이 그렇게 보기 좋은 과일이
있습니까.
사람처럼 보기 좋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했잖아요.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더라(창
1:31).”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안
나요? 창조해 놓고 하나님이 보기에
너무 좋았더라 했습니다.
사람처럼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그렇게
아름답고 보기 좋잖아요.
수박으로도 보이고, 돼지로도 보이고,
양으로도 보이고, 사슴으로도 보이고,
각종각색으로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까? 내가 군청에다 여기에
생명나무를 심으려 한다고 신청해
놨습니다. (웃음)
그 사람들이 나무를 심으면 좋을
거라고 하길래 내가 생명나무를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게 꽉 심어놓을
테니 와서 실컷 구경이나 하라고,
따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 우리가 도둑놈이
아닙니다. 안 따먹습니다.” 하길래
“좋았어! 따먹지 마십시오”
그랬습니다.
내가 간단히 말씀한다고 했는데
이야기 하다 보니 벌써 약속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1시간 25분 지났습니다.
오늘 말씀대로 어느 가정이고
개인이고 오직 하나님을 중심해야
됩니다. 금년도 달력에 맨 앞이
뭡니까? 오직 하나님! 오직 하나님을
중심해야 됩니다.
이제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나>를 중심하라는 것입니다. 스키
타다가 안 되면 자꾸 나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하나님께 즉시
물어 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애인이 있는데 나한테
안 물어 보고 남한테 물어보면 밤에
데려다가 혼 내킵니다. 나한테
물어봐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뭐든지 중심자에게
물어보고, 하나님께 물어보면
좋아하십니다. 사신우상들에게
물어보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바위 밑에 가서 사신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를 목자로 삼은 것입니다.
목자를 잘못 만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오직
하나님! 오직 주님! 알겠습니까.
나의 입장이 다윗과 같은 입장이고,
여러분은 다윗 같은 입장의 사람을
따르는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다윗이
통일왕국을 이뤘듯이, 기독 왕국시대
같이 우리는 이 시대를 말씀으로
통일시켜서 시대를 잡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후에도 말씀이 무한히 많이 있지만,
뼈다귀 있는 말씀을 많이 줬으니 그
말씀의 주인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섭리를 달리는 엠에스
섭리를 달리는 엠에스 엠에스
오늘은 성지땅 내일은 서울로
외치고 또 외치는 사명자 심정
고향을 떠나온지도 몇몇해더냐
기성을 등지고 등지고 달려라 달려라
젊음의 인생은 아깝지 않다
노래 그만, 말씀 그만.
기도하겠습니다.
< 축 도 >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만군의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1993년도 오늘이 고향 땅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지 땅에서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서
우리를 쉴만한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말씀으로 인도해 주셔서
우리의 심령의 잔이 차고 넘쳤습니다.
오늘 말씀을 더욱 중심하고, 보낸 자를
더욱 중심하고 그의 정신과 사상과
그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이 되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사탄이 왕 노릇하던 너희의 마음에
주(主)가 왕 노릇해야 되지 않겠냐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듣고 모두 심령을 다시
일으키고, 이제 그렇게 하겠다고 둘러
일어선 이들 위에 성부와 성자와
성지의 큰 은총과 은혜가 이 섭리의
땅 끝까지 이르러 큰 은혜가
충만하기를 이 시간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빌고 간구하오니 아버지께서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성부, 성자, 성신의 큰 은혜와
내가 빈 이 평안이 영원토록
충만할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