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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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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128 금 계시말씀.hwp1 2015년 01월 계시말씀 ♥ 01월 28일 수요일 ♥ 1 시대에 대한 선고 작성일 : 2014. 11. 7. AM 2:00 작성자 : 표구연 (새벽에 기도 중, 성자께서 ‘시대에 대한 선고’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깨달았던 내용이었지만 성자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려나 하면서 받아 적었는데, 성자께서 올해의 성찬식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더 깊게 깨닫게 해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의 말씀 * “세상에서 볼 때는 <죄인에 대한 선고>였고, 하나님이 보실 때는 <시대에 대한 선고>였습니다.” -2013년 성찬식 주일말씀 중. 이 말씀의 참뜻을 아느냐. 지식으로만 알면 너희와 세상 사람들의 인식관에는 별 차이 없는 것이다. 선생을 믿고 따르는 너희들의 인식관은 세상과 180도 달라야 한다. <죄인에 대한 선고>와 <시대에 대한 선고>의 차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확실히 깨달아야 선생을 오해치 않고 흔들리지 않게 된다. 과거 나 성자가 예수의 육을 쓰고 초림하였을 때, 유대 종교인들은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핍박했다. 나의 분체 예수는 시대의 죄가 너무도 크니 어쩔 수 없이 아프고도 아픈 십자가의 길을 갔다. 세상이 볼 때는 죄인에 대한 선고였고,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시대에 대한 선고였다. 내 너희에게 묻는다. 영적인 질문이다. 당시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누구냐. 당시 십자가의 선고를 받은 자가 누구냐. 당시 발꿈치가 들려 죽은 자가 누구냐. 나의 분체 예수냐? 아니다. 바로 당시 예수를 제외한 모든 자들이었다. 처형당한 자는 예수가 아니라 그 시대 종교인들과 전 인류라 함이다.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던 그들마저도 그들의 선생을 온전히 깨닫고 알지 못하므로 그 죄로 인한 시대 처형을 받았다. 죽은 자는 예수가 아니다. 십자가의 형으로 예수는 살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라. 제자들은 후에 엄청난 성령의 역사와 함께 사도의 역사를 펼쳤다. 당시 제자들은 나 성자의 신약 복음을 전하면 자신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움츠러들지 않고 담대히 말씀을 전했다. 도망 다니기는커녕 몸이 닳도록 다니며 목이 터져라 복음을 외쳤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행하게 했을까. 예수가 메시아라는 깨달음이었을까? 맞다. 하지만 그뿐이었을까? 아니다. 이들이 또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던 것이 있었으니, 예수의 길을 가는 것, 시대 주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곧 ‘사는 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십자가에 처형된 자가 예수가 아니라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러한 시대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들은 모두 나의 분체 예수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갔다. 육체는 죽으려고 작정한 듯 보였지만, 이는 진정 ‘생명길’이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을 때 그는 행복해했다. 그 십자가형이 아이러니하게도 베드로의 죽음이 아닌 ‘살아남’에 대한 선고였음을 베드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상은 그가 결국 패했다 하였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완전한 승리였다. 베드로는 ‘아는 자’였기에 신이 되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다른 제자들 역시 각자의 시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고, 진정 죽음에서 살아난 자들이 되었다. 정녕 ‘부활’한 자들이 되었다. 깨달아라.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성경의 예언대로 이 땅에 사명자의 육신을 쓰고 재림한 나 성자를 시대가 무시하고 핍박하니 사명자는 시대 십자가의 길을 갔다. 시대가 변하니 여건이 달라 그는 옥에 갇히는 시대 십자가의 형을 받았다. 한 번 더 내 너희에게 묻는다. 이 시대 십자가의 형을 받은 자는 누구냐. 이 시대 십자가의 선고를 받은 자는 누구냐. 시대의 십자가로 발이 묶인 자가 누구냐. 나의 분체 선생이냐? 아니다. 바로 분체를 영광의 주로 맞지 못한 이 시대의 종교인들과 전 인류이다. 선생과 너희 사이를 가로막는 쇠창살의 안과 밖이 어디냐. 선생은 쇠창살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영적으로 보아라. 쇠창살에 갇힌 자는 선생이 아니라 선생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선생은 죄가 없고, 따르는 너희들과 세상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시대에 대한 선고라 함은 이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라. 확실히 깨달아라. 선생은 쇠창살 밖에 있다. 너희 모두는 옥에 갇힌 바 되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옥에 갇히지 않은 자,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刑)을 받지 않은 자, 선생이다. 단지 그 면적이 좁고 지구 세상은 넓다 하여 그가 갇혀 있는 것으로 생각되느냐. 너희가 이를 알고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생명들도 오해하지 않는다. 이를 깨달아야 너희도 2000년 전 예수의 제자들처럼 담대히 사도의 역사를 펼칠 수 있다. 면회를 너희가 가느냐? 아니다. 선생이 면회를 온다. 선생이 그런 곳에서 말씀 받아서 보내 주느냐? 아니다. 시대 죄로 인해 갇혀 있는 너희가 그곳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너희의 완전한 회개와 휴거뿐이니 계속 말씀을 넣어 주는 것이다. 주일마다 수요일, 금요일마다 새벽마다 선생이 너희에게 면회 와서 말씀해 준다 함이다. 선생이 그 안에서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조건을 세우느냐? 아니다. 자유로운 바깥에서 선생은 갇혀 있는 시대를 놓고 기도하고 조건을 세운다. ‘대신 회개한다.’ 함은 이를 두고 말함이라. 대신 회개하는 것은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자를 위해 해 주는 것이다. 선생 나오게 해 달라 기도하느냐? 근본을 알고 너희가 나가길 간구하라. 내 말씀하노니, 선생은 죄가 없다! 죄인은 너희들이다! 때가 되어 옥에 갇힌 죄인의 죄가 없어지는 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자의 석방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이 말씀을 깨달아라. 섭리야. 회개하여라. 이제는 나와야 하지 않겠니. 자유가 있고, 삶이 있고, 사랑하는 선생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속히 나올 수 있도록, 시대의 죄를 청산하도록 회개하여라. 또한 주의 길 따라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 진정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지, ‘부활’의 길이 무엇인지 깊게 기도하며 깨달아 보아라. 나 성자가 떠나고 불같은 역사 펴야지. 속히 나와 선생과 함께 뛰고 먹고 마셔야지. 전도도, 회개도, 사랑도 확실히 알고 해야 2015_0128 금 계시말씀.hwp2 한다. 이 시대 성찬을 통해 주의 몸이 된 너희는 이제 부활되었다. 그곳에서 나와 선생과 함께 뛸 날이 곧 오리니, 각자를 깨끗한 인구름으로, 또한 생명의 인구름으로 그 길을 예비하여라. 생명들에게 확실히 가르쳐 주어라. 그곳에 있는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바로 ‘너’라고 말이다. 사랑한다. 심판과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진 삼위의 성자 주다. ♥ 01월 28일 수요일 ♥ 2 사랑의 파장을 맞추고 기도하라 작성일 : 2014. 11. 7. AM 12:30~ 작성자 : 신정미 (기도를 하는데, 성자께서 바로 옆에 너무나 가까이 계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자 주님, 성자께서 떠나시면 다시는 이곳 가운데 오지 않는다 하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드는 걸까요? 궁금합니다.”) *성자의 말씀* 사랑아,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 영의 세계에 대해 깨달아야 된다. 영계의 세계는 육의 세계와 달리 생각이 실상화되는 세계이다. 네가 나 성자와 교통하며 통하였다면 그것은 너의 영이 나 성자와 사랑으로 통하게 된 것으로, 너의 그 사랑의 생각과 마음이 실상화되어 너의 영은 나에게 와 마치 사랑하는 남녀가 마음만 먹으면 서로의 사랑이 통하면 서로 만나 뜨겁게 사랑하듯, 너의 사랑의 마음과 생각이 실체가 되어 너의 사랑과 나의 사랑의 파장이 맞게 되는 그 순간 너와 나는 뼈와 살이 붙어 있듯, 영으로 하나 되고, 영으로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순간 네가 기도함으로, 나에게 사랑의 파장을 보내니 내가 너에게 그 사랑의 파장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성자의 본체가 오신 것이 아니고, 생각의 파장만을 보내신 건가요?”) 사랑아! 나의 사랑의 파장은 곧, 나이니라. 그러나 본체는 아니다. 허나, 나의 사랑의 파장은 곧 태양의 빛이 지구까지 순식간에 도달하듯 그 파장이 곧 나의 형상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 나를 간절히 부르는 자에게 그처럼 사랑의 파장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파장이라 하여 형체도 없고 광선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의 형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겠느냐? (“네, 어느 정도 이해는 되는데, 좀 어렵습니다.”) 그래, 육인 네가, 영의 그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 더 깨달으려 노력하며 나의 설명에 집중하라. 나는 전능자니라. 나의 능력과 권능을 어찌 인간들에게 일일이 다 이해시킬 수 있겠느냐. 전능자기에 나의 사랑의 파장은 또 다른 나이며, 너희 인생들에게 다가가는 나의 실체니라. 영계는 생각 실상의 세계라 하였다. 나의 사랑의 파장은 나의 형상과 모습으로 실상화되어 너희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본체는 아니나 또한 나이기도 한 것이다. (“네, 이해가 됩니다. 성자 주님! 너무 사랑합니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듯하나, 사랑함으로 성자께선 또 항상 제 곁에 계십니다.”) 사랑아, 영계의 깊은 세계에 대해 알기 위해 더 깊이 기도하도록 하라. 영계에 대해선, 육계와 다르기에 또 이치적으로, 영의 깨달음으로 배우고 알아야 되는 것이다. 네가 시집 올 세계에 대해, 저 황금성에 대해서도 알아야 더 현실감 있게 느끼지 않겠느냐. 나 성자는 오늘도 나에게 간구하는 자, 더 깨닫고자 하는 자에게 간다. 그런데 다들 몇 번 기도하다 말고, 파장을 맞추지 않고 기도를 하는구나. (“성자 주님, 파장을 맞추어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파장에 맞는 기도는 더 성자께 전달이 잘 되는 것입니까?”) 스마트폰 비유를 생각하라. 육의 세상에서도 전파가 맞지 않으면, 전파가 있으나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도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방송이 나오지 않는다. 그처럼 기도에 있어서도 나의 심정을 건드리고 나의 사랑을 움직이게 하는 그 파장 맞추는 것이, 주파수를 맞추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자들은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그처럼 사랑의 세계에서는 서로의 파장, 서로를 감동시키며 심정을 움직이는 그 파장의 세계가 중요한 것이다. 힘들게 목 놓아 불러도 그 생각의 파장이 맞지 않으면 그 간절함이 나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니 심정의 세계를 맞추는 것이 힘들다 하지 않느냐. 이것은 말로 설명할 수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그러하다. 허나, 깊이 사랑하게 되면,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 자연히 그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전달되어지고,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파장을 못 맞추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여 느껴지는 상대의 마음, 심정보다는 자신의 주관으로, 자신의 생각으로 일방적, 자기 방식의 것들을 주장할 때, 나와 파장이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기적 사랑은 나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서로의 파장이 맞아야 되는 것이니라. 알겠느냐. 사랑에 있어, 이기적 방식은 그것은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하였다. 계산적으로 상대를 대한다면 어찌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할 수 있겠느냐. 내가 전능자기에 나의 능력 때문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나를 믿고 사랑하는 것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에 그러하다. 선생의 사랑은 어떠한 순간에도 내가, 하나님이 우선인 사랑인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도 나의 뜻을 위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에 기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 그것은 진실한 사랑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그런 사랑을 원한다. 나를 사랑함으로 그 모든 축복이 너희의 것이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좋아서 순수하게 사랑하기에 사랑의 마음으로 행하는 그 기도와 행위는 사탄이 틈탈 수 없이 바로 나에게 전달된다. 만약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 때문에 사랑해 주는 여인과, 순수하게 그저 자신을 사랑하여 다가오는 여인이 있다면 너희는 누구를 선택할 것 같으냐. 너희들 육의 눈으론 같은 열심과 행함으로 보일 것이나, 나 전능자에게는 그 사랑의 파장이 다 느껴진다. 그런 욕심과 순수하지 못한 행함과, 사랑의 간구는 나와는 파장이 맞지 않아, 주파수가 맞지 않아 방송이 나오지 않듯, 나와 너의 사랑의 파장이 맞아 폭발적 힘과 능력이 발휘되는 그런 사랑과는 달리 힘과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너의 순수한 사랑 고백은 그 파장이 맞아 나에게 그 즉시 전달되며, 나의 사랑의 파장이 맞아, 나는 즉시 너에게 올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남자가 설레는 마음으로 너무 사랑하는 그 여인의 부름에 두근거림과 기대의 마음으로 찾아가듯, 나 또한 너의 그 사랑의 기도에 너에게 기대와 설렘으로 즉시 사랑의 파장이 실체가 되어 다가온 것이다. 사랑아, 그 순수한 사랑, 그 사랑이 나를 움직인다. 욕심의 사랑이 아닌, 그저 사랑해서 사랑하는...... 그저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시골 초가집에 2015_0128 금 계시말씀.hwp3 아무것도 아니게 처박혀 살아도 그 사랑 하나로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고백, 그 속삭임에 나는 흥분되고 너무나 설렌다. 오늘 너의 사랑을 통해 나의 마음이 감동되어 나의 심정을 고백하였다. 순수한 너희들의 사랑의 고백에 수줍어하며 설레어하는 너희를 너무도 순수하게 사랑하는 나 성자가 말하였다. 안녕. ♥ 01월 28일 수요일 ♥ 3 휴거된 영,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작성일 : 2014. 11. 11. AM 1:20 작성자 : 박인제 (주일예배 후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성자께서 “휴거된 자에게는 ‘희생’밖에 없다. 영을 완성함이 다가 아니다. 이제는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희생만이 왕도가 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개인 완성의 도가 아닌, 온 인류를 놓고 난절하게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후 기도하며 받은 말씀입니다.) * 성자의 말씀 * 영이 완성된 자, 이제 300선에 오른 자들 많다. 너희가 완성의 단계에 이름은 너희의 삶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네 삶의 일부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닌, 주 삶의 일부가 네가 되고, 완전히 시대 주에게 속한 바 인생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이제 나 성자가 바라는 개인 완성의 도, 300선에 이름을 말한다. 허나, 아무리 완벽한 작품이 있다 해도, 이를 어떠한 방도로 사용하는지가 결국 창조의 목적을 실체화시키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최신 기능의 스마트폰이라 해도, 그저 평소와 같이 통화하는 데 쓰고, 연락하는 수단으로만 쓰면 만들어도 만들지 않은 바와 같다. 이제는 휴거된 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야 하는데, 삶 가운데 다른 행실과 눈에 띄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휴거된 너희의 영은 그저 보다 빠르고, 보다 온전한 단계가 아닌 절대 불변의 단계, 불가침의 단계로서 하늘에서 볼 때는 상대체이지만, 땅에서는 주와 같은 인생 주체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존재이다. 고로, 이제는 너희의 행실과 삶이 너무나 귀하고, 휴거된 자로서 육계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귀하다. 휴거된 너희가 이제 어떻게 시간을 쓰느냐, 어떠한 방도로서 삶을 사느냐에 따라 이 역사의 운명이 좌우된다. 오늘은 이에 대해 말하니, 깊이 새겨 승리하는 삶 살자. 똑같은 시간에 기도를 해도 휴거된 자의 기도와 휴거되지 못한 자의 기도는 그 강도도 다르며 그에 대한 삼위 역사의 판도도 다르다. 고로, 휴거된 자가 기도를 해야 함이 분명한데, 이제는 무엇을 놓고 기도하느냐다. 시간만 채워 기도할 것이 아니다. 1시간을 기도할 때, 나 성자의 이름만 부르고 끝나느냐, 낱낱이 쪼개어 각종 것을 두고 기도하느냐는 그 단계가 천층만층으로 쪼개진다. 필히 너희 선생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저 선생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300선 이상의 단계는 네 선생 옆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저 그리움에 사무친 기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기도는 모순이다. 이제 선생이 네 옆에 있으니, 너의 사랑은 확인된 바 된 것이고, 이는 삼위와 모든 만물이 인정한다. 진정 사랑한다면, 이제는 그의 옆에서 그의 일을 덜어주어야 해. 너희의 모든 삶이 선생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보필의 삶이 되어야 한다. 고로, 그의 짐을 덜고, 그가 홀로 가는 고행에 동참하여 함께 동행하는 것이 300선 이상의 삶이다. 100선, 200선 길을 거쳐서 진정 사랑하는 자를 만났으니, 이제는 그와 함께 일하고, 사랑해야지 않겠냐. 이제는 너희 선생이 필요한 바를 해 주고, 그가 행하는 일에 동참하여라. 기도를 할 때도 그저 선생만을 놓고 기도하지 말고, 그가 무엇을 두고 기도하며 무엇을 놓고 간구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선생과 같은 호흡 가진 자다. 온 인류와 각 민족의 운명을 놓고 기도하며 간구하는 자, 섭리사에 몇 명이나 되느냐? 너희가 구호로서 외치는 ‘세계 섭리’를 두고 기도하는 자 몇 명이 있느냐?선생 안위만 놓고 기도하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이야. 그가 무엇을 놓고 희생하는지, 무엇을 놓고 이리 십자가 지는지 그것을 알고 간구하는 것이 진정 선생을 만난 자이며 그와 같이 사는 자다. 너무나 막연히 선생 맞을 준비하는 자 많다. 섭리는 유능한 자가 필요해. 그러한 자를 전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는 너희가 유능해야 한다. 신앙과 삶을 양단으로 이끌어 가, 육도 성공하고 영도 성공한 자가 되어야 해. 너희가 어리고 약하니까 선생이 다 바람막이해 주고, 대신 환난을 이고 가는 것이다. 아직도 철없이 선생을 사랑할 것이냐. 선생과 함께 온 인류를 놓고 기도하자. 각 민족, 각 세력들을 두고 낱낱이 쪼개서 기도하자. 전 세계에는 8개 족속이 있다. 이는 시대 하늘의 족속이요, 온 인류를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끌 성약 섭리역사의 족속과 이 시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가나안 일곱 족속이 있다. 너희 섭리사 신부들이 주의 몸 되어 이러한 가나안 일곱 족속을 구원해야, 시대 성약의 뜻이 완성되고, 삼위의 영광이 이 땅에 빛나게 된다. 각 민족마다 인간의 욕망을 자신들의 민족성으로 삼고, 이것이 세상의 진리인 듯 내보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불신하고, 막기까지 한다. 너희가 이 시대 진리로 가나안 일곱 족속과 같은 각 민족을 잡아 세계 섭리의 촛대를 세워야 네 선생 고행길이 헛되지 않고, 분체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다. 온 인류를 놓고 난절하게 기도하자. 너희가 기도하는 그 순간이 바로 선생의 짐을 덜어낼 기회이며, 그때 무엇을 놓고 기도했느냐가 네 선생의 짐을 얼마만큼 덜어낼 수 있음이 좌우됨을 진정 깨달아라. 신약과는 다르게 성약에서 휴거 뜻을 완성한 자는 메시아의 구원 책임이 연계된다. 이는 곧, 너희가 네 선생과 절대적으로 일체 됨으로써 그가 행한 구원 사역의 일부를 너희가 받음이라. 이는 곧, 선생의 삶 가운데 너희라는 각 일부의 삶이 하나로 연결됨을 말한다. 즉, 휴거된 너희가 선생 삶의 일부를 대신할 자격자라는 것이다. 이제는 완전히 함께 사는 것을 넘어 일체 된 존재로 ‘하나의 삶’을 함께 사는 것이니, 그의 구원 사역에 너희의 인생을 완전히 투자할 때이다. 이를 알고 삶 가운데 면모를 달리하자. 너희의 삶이 곧 선생의 삶이 되게 하며, 너희가 받는 고통이 선생의 고통을 대신하게 하여라. 희생하라. 사랑의 근본, 성자다. 샬롬. 2015_0128 금 계시말씀.hwp4 ♥ 01월 28일 수요일 ♥ 4 증거하라. 증거는 너희 선생을 숨 쉬게 할 것이다. 작성일 : 2014. 12. 16. AM 8:15 작성자 : 김영호 (월명동 전망대에서 “선생을 제대로 지켜 드리지 못해 회개를 드립니다. 성자께서 선생을 구해 낼 수 있는 한마디만 해 주신다면 저희들이 행하겠습니다.”라고 눈물로 기도드릴 때 성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너의 진실한 마음을 보았다. 내가 말씀해 주겠다. (“진정 감사합니다.”) 선생을 속히 그곳에서 나오게 하고 싶으냐. 증거하여라. 시대를 증거하고 사명자를 증거하여라. 너희에게 허락하여 지금까지 역사한 성령이 무엇을 의미하냐. 성령을 받았다면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진리를 외쳐라. 이것이 나의 한마디다. 나의 말을 생명으로 여기고 선생 증거해라. 증거하는 방법만 구하지 말고 너희가 깨달은 대로 선생을 증거하기에 힘써라. 깨달아야 불이 온다. 선생을 진정 자신의 보화로 여긴다면 선생을 담대히 증거하리라. 신부는 신랑을 구해 내고 만다. 또 신랑은 신부를 구해 내고 만다. 무슨 말이겠느냐. 진정 사랑한다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구해 내고야 만다는 것이다. 선생의 목숨을 건 절식기도가 생각나느냐. 또 시대의 십자가 선고를 받고 지금까지 너희를 대신하여 쌓은 조건이 보이냐. 10개월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을 때 모두가 안절부절 선생을 기다린 적이 있지 않느냐. 선생은 이것 외에도 목숨을 걸고 너희를 사랑한 일이 많고도 많다. 사랑한다면 자신의 목숨이 무엇이 아까우리. 선생은 그렇게 너희를 뜨겁게 사랑하였다. 부흥강사를 보아라. 그녀의 목숨을 건 사랑을 보아라. 선생을 지키었도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선생을 지켜냈다. 자신의 것을 다 버린 자로다. 육신을 가진 자이기에 순간 자신의 것이 올라올 수도 있겠지만 순간 선생의 것으로 바꾸고 자신의 것을 잘라낸다. 정말 사랑하기에 자신보다 선생을 더 우선시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냐. 너희도 표상을 따라 선생을 사랑해라. 그렇다면 당연히 선생을 증거하리라. 부흥강사는 선생의 육신을 보고 따른 것이 아니다. 선생의 정신과 그 사랑이 누구의 정신인지 누구의 사랑인지 깨달았다. 너희도 이같이 깊이 깨닫고 사랑하여라. 나는 미련을 두지 않고 지상을 떠나나 하나 걱정되는 것이 있으니 선생이다. 선생은 참 외로울 텐데 이제 누가 가서 사랑해 주려나 내가 심히 걱정이 된다. 물론 선생과 하나 되어 나 성자가 늘 곁에 있지만 지상에 내가 없으니 걱정이 된다. 내가 혼체의 인봉을 떼어 선생에게 알려 주니 모든 곳에 선포하여 많은 자들이 혼체로 선생에게 온다. 그러나 모두 각자의 차원대로 오니 선생을 더욱 정확히 깨닫고 사랑하여라. 사랑의 상대체 즉 사랑의 동등권이 무엇이냐. 주체의 사랑의 수준까지 올라오는 것이 아니냐. 너와 나, 인간과 신이다. 너와 나는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 없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을 깨달아야 한다. 깨달아야 선생 사랑도 깨닫고 성자 사랑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깨달아야 증거의 힘이 있고 깨달아야 선교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난다. 모두 선생과 동등한 사랑의 위치로 와라. 그래야 무엇을 해도 잘된다. 선교도 되고 강의도 되고 설교도 된다. 300선 휴거는 기준점일 뿐이다. 동등한 사랑에 오려면 300선 휴거로 되겠느냐. 선생을 따라가야지 동등한 사랑이 아니겠냐. 부흥강사같이 정확히 깨닫고 사랑하여라. 격한 눈보라가 와도 이겨 낼 사랑을 가져라. (월명동 전망대에서 펜을 들고 계시를 적는 도중에 몇 번이고 펜을 놓쳤고 불어오는 눈보라에 손은 빨갛게 퉁퉁 부어서 감각이 사라져 갔습니다. “성자시여, 월명동 전망대는 너무 춥습니다. 손의 감각이 사라져 갑니다. 시대 사명자는 오죽하실까요? 꼭 선생을 지켜 주시옵소서.”) 선생은 아무리 힘들어도 펜을 놓칠 수 없다. 너는 짧은 나의 말을 받는데도 펜을 몇 번이나 놓쳤느냐. 선생은 이보다 수많은 글들을 써야 함에도 너보다 펜을 놓치는 횟수는 적다. 왜 그렇게 하는지 아느냐? 너희 만나고 싶은 그 마음에 너희 휴거시키려고 사명자를 깨우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너는 손을 주무르면 그래도 글을 쓰지 않냐. 선생은 손을 주무르고 주물러도 제대로 글이 써지지 않는다. 꼭 선생을 위해 기도하여라. 그리고 선생을 진정 사랑한다면 이제 모두 함께 전도다. 너희가 속히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야 선생과 빨리 만난다. 모두 불 받아라! 선생을 깨닫고 선생을 사랑하여 선생을 증거하는 불이 충만하게 일어나길 빈다. 오늘 네가 나에게 구하니 내가 말씀했다. 꼭 증거하여라. 증거하는 만큼 선생을 숨 쉬게 할 것이다. 모두 진정 사랑한다. 나의 평강을 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