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5.02.02 (월)
월 새벽말씀 7f122cce
- 선포일
- 2015.02.02 (월)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6장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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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일 새벽말씀(편집본) /2004.11.18.
오늘도 새벽을 깨워서, (여러분들,)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며 섭리의 사
람들로서 부지런히 삶의 길을 달려 온 여러분들에게 새벽 인사를 하며,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니까 기분 좋지요? 말씀 들으면 기분이 더 좋을 것입니
다.
금주의 말씀은 마태복음 6장 14절로 15절입니다. 거기에 의해서 말씀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한 것을 우리가 또 새기고 새기자구요.
“너희가 형제들의 과실을, 잘못을 용서해 주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해 주
리라.”
용서해주는 것이 회개 아닙니까? 회개!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이 회개이다.”
아무리 회개해도 용서해 주는 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막 용서해 준다
고 한 것은 뉘우친 것입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해 줘
버리면 회개한 것입니다. 끝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내가 너 잘못한 것도 용서해 주마.” 그렇게 일이 끝
나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이 용서를 안 해 주었을 때에 일어나는 것들이 너무 큽니다.
정신적인 손해, 그로 인해서 걱정 근심 염려가 큽니다. 사람이 어떤 사
람에게 피해를 받았을 때도 정신적인 고통 염려가 크지요?
대개 용서해 주라고 하는 말 중에는 상대로부터 피해를 받아서 그렇게
화가 나고, 이런 것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 들어있습니다. 상대로부터 피해
를 받아서, 정신적으로나 어떤 실존적으로 피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워
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대개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꼭 손해보상을 다 받아야 그것이 용
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그냥 용서해 주어라. 왜 그런지 모르니 그냥 용서해 주어라.” 그렇게
했습니다.
‘아,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해 주라고 하시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려고
용서해 주라고 하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지 않습니
까.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용서해 주어라.”
왜 그런지는 용서해 준 사람에게만 답이 가는 것입니다. 왜 용서해 주
라 하는가는 용서해 준 사람은 압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밝힌 이유 중의 하나는 “나도 너희의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마.”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받을 복을 못 받
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면 하늘의 받을 복을 받게 되고, 형제를
용서해 주면 형제에게서 손해 간 것을 땅으로부터 용서해 주었기 때문에 받
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법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요즘에는 아는 것은 지
식이요, 그것을 깨닫는 것은 지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나, 하늘의 보낸 사람들, 구세주는 그냥 구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 주어서 그렇게 함으로 구원받게 해 주는 것입니다.
구세주가 그렇게 가르쳐 줘서 그렇게 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너 거기에 빠졌냐? 너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어떻게 나오느냐고? 이
렇게 이렇게 해서 나오라. 내가 도움을 줄 테니까. 이렇게 하면 된다. 거기로
나오면 못 나온다. 그 벽을 타고 계속 내려가라. 벽 잡고 계속 내려가면 물
이 낮은 곳이 있다. 낮은 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평지가 나온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는 올라 올 수가 없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못 구원한다.” 그렇게 가르쳐 주어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너 울기만 하지 말라. 울고 몸부림을 치면 되는 것이 아니니 울지 마
라. 내 말 듣고 이렇게 하면 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사람은 다 나온 것입니다. 저리로 돌아서 나온 것
입니다.
이와 같이 구세주는 가르쳐 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
니다. 그렇게 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용서해 주라면 “내가 손해가 갔는데요? 물질적, 시간적 여러
가지로 손해가 갔는데요?”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된다. 그러면 나도 너
희를 용서해 주리라.”
그러면 하나님께 받을 축복을 받을 것이 아닙니까? 용서 안 해 주면 죄
인에게는 축복을 안 주니까. 그러니까 용서해 주면 땅에서도 다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너무 하기 싫어도 용서를 해 줘야 됩니다. 하기 싫어도
꼭 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 이해를 시켰으니
알았지요? 이해가 가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를 해 주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용서해 주면 얼마나 좋
은 것인지 사람들이 모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용서를 안 해 주고 살아보니까 괴롭고, 자꾸 손해가
갑니다. 시간적, 물질적으로 자꾸 손해가 갑니다.
그 사람과 싸워봤자 하루 종일 싸울 일만 계속 생기는 것입니다. 싸움
을 안 하는 사람은 가서 하루 종일 실컷 놀고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애인 몇 쌍이 같이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어떤 쌍은
서로 애인끼리 싸움했습니다. 싸움하니까 하루 종일 계속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쌍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전화를 해 보니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야, 지금 어떻게 된 거야? 다시 안 올 꺼야?”
“나 지금 싸움 벌어져서 죽겠어. 경찰도 부르고 그랬어.”
“무슨 싸움이기에 그렇게 까지 했어?”
“아이, 전화 끊어.”
다른 사람은 재미있게 노는데.
또 어떤 쌍은 같이 오기는 왔는데, 계속 둘이 하루 종일 다투고 싸우는
것입니다. 사진 찍을 때 사진도 안 찍고,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싸우는 것
입니다. 옆에서 재미있게 사는 쌍이 쳐다볼 때 너무 너무 손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낀 것입니다.
“야, 우리도 아까 싸울 것이 있는데 안 싸워서 이렇게 재미있게 지내니
앞으로는 정말 싸우지 말자.”
그 후에 보니까 싸움을 안 한 쌍은 놀다가 참 좋은 사장도 만나서 서로
알게 되고, 취직도 다른 데로 하게 되었습니다. 큰 회사로 옮기게 되었습니
다.
“젊은이들, 내가 요즘 진실한 몇 사람을 찾고 있는데, 둘이 결혼한 부
부냐. 우리 회사에 근무하려면 근무하라. 적당한 자리가 있다.” 그래서 좋은
취직자리도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해서 좋은 취직자리를 찾아
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내를 위해서 좀 좋은 자리로 가고 싶었던 것입
니다. 둘이 결혼해서 좋은 장소를 일으키려고 했는데, 그런 운을 타고 싶었
는데 그날 안 싸워서 그 회장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쌍은 다투느라고 못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간 쌍은
집에서 싸움하느라고 손해가 가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와 같이 싸움을 하면
하루 종일 싸우는 것입니다. 해가 넘어갈 때까지도, 잘 때까지도 싸우는 것
입니다.
그러나 싸움하지 않는 사람은 싸움할 것이 있는데 참아 버렸습니다. 서
로 용서해 주고. 용서를 안 해 주니까 그렇게 싸움이 일어나서 손해가 간 것
입니다. 그러니까 용서해 준 것과 안 해 준 것은 너무 너무 차이가 있는 것
입니다.
이 중에서 그렇게 산 사람은 A급입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관광지 다니
면서 싸운 사람은 B급 인생이고, 아예 집에서 본격적으로 싸운 사람은 C급
인생이랍니다.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했습니다. 알아들었습니까?
우리 섭리사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모든 사람들
도 그렇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것을 보세요. 서로 용서치 않고, 서로 민족 감정에 토닥
거리며 싸우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개인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민족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해 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양쪽 다 손해가 갔습니다.
그래서 전쟁 안 하고, 지금은 세계가 전쟁을 안 하고 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거의 전쟁을 안 하다시피 합니다.
전쟁하는 나라는 지금도 손해가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쟁비
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전쟁하는 데로 돈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저 놈 때문에 손해가 갔으니 전쟁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지만 무조건
끊어야 이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른 농사짓고 부지런히 생산해야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을 안 하면 그 날부터, 그 시간부터 이익입니다.
무기를 안 사들여 오니까. 거기에 군량미가 안 들어가니까. 국방비가 안 들
어가니까 손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그와 똑같습니다. 전쟁을 안 하게 되니
까 각 나라들이 바로 일어났습니다. 관광하게 되고, 서로 돈 벌어 주는 것입
니다. 이 나라와 저 나라, 저 나라와 이 나라가 서로 돈벌어 주는 것입니다.
“에이, 그 동안 괜히 전쟁했네.”
이제는 서로 서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끼리도, 섭리인끼리도 작은 일로 서로 다투고 전쟁하지 말라.
마음의 전쟁, 행실의 전쟁하지 마라. 서로 용서해 주어라. 그러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셔서 하나님께 축복 받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서로 유익이 일어난
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해가 가지요? 그래서 용서하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과 예수님이 좁은 성경에 이렇게 다 토를 붙여서 하려면 성
경이 지금보다 열 권, 스무 권 더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다 못 읽어봅
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작은 성경도 한 번 읽으려면, 일 년에 한번 읽을 둥
말 둥 합니다. 물론 읽는 사람은 열흘에 한 번도 읽습니다. 지금 이것도 두
껍다고 하는데 토를 붙여서 한다면 너무 읽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토를 안 붙이고, “용서하라. 네가 형제를 용서해 주면 나
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겠다.” 하셨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말씀을 예수
님께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도를 깨달았습니다. 왜? 해 보니까 알은 것입니다. 구원의
일을 해보니까 정말 이들을 용서해 주어야 구원받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
서 “꼭 하도록 하라.” 한 것입니다.
그냥 용서만 해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잘못이 너무 많지 않느
냐? 하나님이 그러면 너희들 용서해 주겠다. 하나님이 그러면 너희들 용서해
주겠다.” 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서로 용서해 주어라. 그러면 잘되게 해 주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
입니다.
만일 용서 안 했을 때는 이렇게 어려운 것을 당하는데, 당한 다음에 그
때서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꼭 죽을 것인데 아예 죽지
않게 해 주었을 때는 그 은혜를 모릅니다. 꼭 죽을 자리였는데 아예 죽지 않
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꼭 죽을 것인데 살려 주었는데도 그것을 모릅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아예 그런 선에 가지 않게 하셨기 때문에 모릅니다.
오늘 동쪽으로 가면 꼭 죽는데 아예 못 가게 하시고 서쪽으로 가게 만
들었습니다. 그것은 본인이 가게 된 것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모릅
니다.
그러나 동쪽으로 가서 죽을 고비를 당하고 막 몸부림치고, 막 물에 떠
내려가고, 절벽에서 떨어져서 다 죽어갈 때에 누가 가서 이끌어 내주고 병원
에 실어다가 고쳐 주고 이랬을 때는 압니다.
의사가 “당신, 오늘 그 사람 못 만났으면 죽었을 것이다. 한 시간만 늦
었어도 꼭 죽었다. 그런데 이 분을 만나서 살았어. 오늘 30분만 늦었으면 죽
었다. 심장이 일단 차가워져서 마비될 뻔 했다. 지금 시간차로 간신히 살렸
다.” 할 때에 자기를 구원해 준 사람, 자기를 병원에 데려다 준 사람에게 그
때서야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예 동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고 서쪽으로 가자고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 오늘 서쪽으로 가는데 같이 놀러 가자.”고 해서 서쪽으로 인도해
갔습니다. 그 사람은 동쪽으로 가면 사고 날 것을 알고서 그런 것입니다. 그
러나 그 이야기를 하면 미쳤다 소리할까봐 그 말 안 하고 서쪽으로 계속 끌
고 간 것입니다.
그 후에 서쪽에 갔을 때에 사고 안 난 것을 감격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어떤 것은 반드시 고통을 당하게 한 다음에 구원해 줍
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죽을 것인데 살린 것을 알기 때문이고,
이런 고통 받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네가 말을 안 들으면 이런 고통을 받으리라.” 해 주고, 그런 다음에
구원해 줍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계란을 사올 때 어린아이가 깨트려 봐야 그때서야 조심합니다. 깨트려
본 사람은 그때서야 조심합니다. 그러나 깨트려보지 않은 사람은 조심을 안
합니다. 한번 깨트려 본 사람은 조심을 합니다.
한번 병의 아픔을 당하고 고통을 받고 사람은 병에 대해서 조심을 합니
다. 차 사고가 나본 사람은 차를 타기도 너무 무서워합니다. 자기가 운전하
기는커녕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도 너무 무섭습니다.
이와 같이 사고를 내 본 사람은 두려움을 압니다. 여러분들도 서로 용
서치 않아서 고통을 받아본 사람은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용서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라. 너희들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먼저 용서해 주면
서, 먼 데 사람까지 서로 용서해 주어라. 그래서 평화롭게 살아라.” 하십니
다.
사람은 너무 무지합니다. 너무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너무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하늘에 대해서 모르고, 땅에 대해서 모르고, 서로 서로 모르고 살기 때
문에 사람끼리 서로 서로 실수가 많고, 서로 서로 폐 끼치는 일이 많고 그렇
습니다. 모르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서로 용서해 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서로 거
의 모르고 삽니다.
봉사들끼리 서로 부딪힙니다.
봉사가 성한 사람과 부딪혔습니다. 무엇을 사 가지고 가는데 봉사가 부
딪혀서 그 물건을 깨트렸습니다. 그것은 용서해 주어야지, 서로 싸워봤자 끝
이 없습니다. 그냥 자기 갈 길은 가는 것입니다.
또 봉사끼리 서로 부딪혔습니다. 이때 서로 “실례했습니다.” 하고 가야
지, 거기서 “왜 부딪혔느냐?” 하니까 “안 보여서 부딪혔다.” “눈깔 멀쩡한데
왜 안 보이느냐? 나는 봉사라 그렇지만.” “나도 봉사다.” 그런 것입니다. 그
러니 둘이 서로 탄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떴으면 안 부딪혔을 것이다. 어떻게 되었냐?”
“나 무엇 사 가지고 가는 길인데 이것이 홀랑 다 깨져버렸다.”
“나도 부딪혀서 다 깨졌다. 이 손해 간 것을 어떻게 하느냐?”
“서로 과실을 용서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입장으로 자꾸 생각해야 됩니다. 용서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세계의 싸움, 가정 싸움, 부부싸움, 형제들 싸움, 섭리사 사람들끼리
의 싸움, 이것은 따지면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들 싸울 것이 있으면 가다가 서로 화해해 버려
라. 그러면 끝나지 않느냐? 서로 화해를 해 버려라.”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
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랬습니다.
“이것이 구원받는 길이고. 이상적인 길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고,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해 주십시오. 그래야 됩니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오늘 아침
은 그런 기도입니다. “사람이 인력으로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시
오. 하나님이 함께해 주십시오.”
우리가 서로 용서치 않고 서로 미워하면 귀신이 옵니다. 마귀가 옵니
다. 악한 영들이 와서 더 우리를 괴롭힙니다.
사람이 싸움을 하면 구경꾼이 막 모여듭니다. 그렇듯이 영들도 막 모여
들어서 싸움을 더욱 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육적인 세계로 보면, 사람들이 너무 쳐다보기 때문에 의식하기
때문에 안 지려고 더 싸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을 딱 끝내버리면
다 없어져버립니다. 이런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싸움이 너무 커져서 우리들이 못하니 하나님께서 용서해 줄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서로 끝내버리게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 천군들을 보
내사 다 그렇게 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내가 월남에 있을 때도 적과 싸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적이 전우를
죽였기 때문에. 그러나 싸워봤자 서로 죽는 것입니다.
한번 내가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숨어 있었기에 다 쏴 죽일 수
있었는데 안 죽였습니다. 왜? “내가 안 죽일 테니까 그 대신 저 적군들이 우
리 아군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싸움을 할 때 그 전쟁에서 꼭 안 죽게 해 주
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죽일 수 있는데 안 죽이지 않습니까? 내가 안 죽일 테니 대신 그
렇게 해 주십시오.”
그런 조건을 붙여서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내가 월남에 3년
동안 있었는데, 우리 부대는 딱 2명만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나 없을
때 죽었습니다.
내가 월남에 1차 갔다가 두 번째 가보니 우리 중대에서 한 20-30명이
죽었습니다. 나 있을 때는 안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런 조건을 붙이고 기도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온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조건
붙여서 기도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모르고 하는 일입니다.” 그런 기도
를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이 오늘 새벽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라. 내가 너희를 용서해 주리라.” 하셨고, 예수님께
서도 “용서해 줘라.”하셨습니다.
마치 한 가정의 부모님이 “서로 용서해 줘라. 그러면 네 잘못도 용서해
줄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와 같고 어머니와 같습니다. 형제들이니까.
“종들이라도 서로 용서해 주어라. 아들과 종과 싸웠으면 서로 용서해
주어라. 아들과 애인이 싸웠으면 서로 용서해 주어라. 그리고 또 무슨 사이
인가 하면, 하나님이 볼 때에는 너희들이 모두 내 아들 딸 자녀들이고, 그리
고 내가 밑에 쓰는 종들이다. 서로 용서해 주어라. 내 일하는데 지장이 있
다.”
알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이 시대로 볼 때 “너희들은 다 내 애인들이
다. 그러니 너희들 서로 서로 용서해 주어라. 내 애인을 용서해 주어라. 내
애인이니까 용서해 주어라.”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애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시대 주님의 애인들이니까 용서해 주어
라. 하나님의 애인이니까 용서해 주어라. 용서 안 해 주면 네가 나와 멀어진
다.”
알겠습니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를 해주어야 되겠
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을 때는 다 용서해 주어야 되겠는데, 가보면 또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들에게 능력과 은혜를 주셔서 마음이 녹아져서 용
서할 수밖에 없도록 틀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용서할 수밖에 없도록 서로 피차에 모든 것을 틀어 주시옵소서. 은혜
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맨날 전쟁하고, 싸우고, 미워하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렇지 못하도록 능력으로 함께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잘 들었습니까?
우리 서로 그렇게 하자구요. 지금은 세계의 전쟁도 다 끝났습니다. 서
로 화평케 지내며, 서로 교류하고, 서로 무역합니다. 그러니까 서로 잘살게
됩니다.
못 사는 것은 전쟁 때문에 못사는 것입니다. 계속 전쟁을 하는 나라들
은 개인이나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지만 계속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렇게 해서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모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 오늘도 무사하고, 열
심히 하고, 서로 용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며 받을 것을 받기를 축원합
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