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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5.02.16 (월)

월 새벽말씀 b

선포일
2015.02.16 (월)
성경 본문
그러니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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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6일 새벽말씀 아침기도회를 안 나온 사람은 시험에 이미 들었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어서 그 사람 들은 흑암이 잡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드리는 예배를 폐하는 자는 사탄이 주관케 되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말씀을 하겠습니다. 금주의 말씀은 시험에 대한 얘기인데 어제도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체적 으로 죽 이야기하다 말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시험에 대한 얘기를 늘 들어도, 매일 그 말씀 같아도 다릅니다. 사람이 시험에 들어도 무지로 인해서 시험에 들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기 무지 가 있으면 시험에 들어도 모른다! 시험에 들지 말라고 기도하라고 했는데, 기도도 시원찮게 하면 기도하다가 또 시험에 듭니다. 잠을 자면서 시험에 들고.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전심으로 나가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정상에서 벗어 난 것은 다 ‘시험’으로 봅니다. 본론적인 말씀을 죽 내리면서 들어가겠습니다. “정상에서 벗어난 것은 시험 든 것이다.” 항상 정상에서 벗어난 것은 시험 든 것! 정도에서 벗어난 것은 시험 든 것입니다. 시험 들었다는 얘기는 다른 말로 하면 흑암과 어둠이 자기를 주관하여서 그만큼 그늘 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곡식에 그늘 들면 크기는 열심히 큽니다. 그런데 영글지를 않습니다. 열심히 크는데 영글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응달에서는 곡식이 많이 크기는 큽니다. 그러나 씨앗이 없습니다. 알곡이 없다는 것입 니다. 아무리 거름을 해도 크기는 크는데, 열매는 열지 않습니다. 만물의 이치를 통해서 하나님이 깨우치는 것은 자기를 통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하 나님께서는 만물의 이치를 통해서 깨우쳐 줍니다. 이것도 농사짓는 법을 알아야 얘기가 되는데, 농사짓는 법을 모르면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는 것을 통해서 계시를 해주는데, 알지 못하면 계시를 해줘도 모릅니다. 자기 부족을 깨닫고, 자기 약함을 깨닫고 기도도 하고 그래야 됩니다. 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 저 위에서(팔각정에서) 말씀하다가 왔지만, “1인당 자기가 기도할 수 있는 양을 못 채우면, 겨울철에 굴속에는 이제 못 들어가니까 바깥에서라도 기도해서 채우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연약하여 병듦으로 옆의 사람까지 병들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큰 책임입 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월명동에서 작업하는 사람도 그렇고, 자기가 시험 들지 않도록 기도 하도록 하라 그랬습니다. 전부 기도하면서 해야 됩니다. 우리들의 시험은 어떤 시험인고 하니, 죽기까지의 시험이 아니고 살기까지의 시험입니 다. 다시 말하면 다 할 수 있고, 당하면 다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이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시험이 혹시 있어도 시험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신다 했습니다. 그것을 모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 리가 기도하고, 항상 지혜롭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습니다. 내가 늘 “지혜, 지혜!” 합니다. 이 지혜에 대해서 내가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지혜롭 지 못하면 사람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다 필요합니다. 낫질하는데도 지혜, 톱질하는 데도 지혜, 흙을 들고 나가는 데 도 지혜, 흙을 옮기는 데도 지혜, 흙을 파는 데도 지혜, 삽질하는 데도 지혜, 괭이질하는 데 도 지혜! 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지혜롭지 못해서 너무너무 힘들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쉬운 일을 너무 어렵게 합니다. 힘들게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지혜를 받게 되면 10개 할 것을 1개쯤 하면 됩니다. 지혜가 있으면 그렇게 차이가 많 습니다. 일례를 들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바람을 막을 때, 널판이 있으면 바 람 부는 방향에 좁은 측면을 대기에 바람이 막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넓 은 면으로 가로막으니 막아집니다. 그러니 10:1만 되겠습니까? 100:1, 1000:1이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당세에 하는데,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시대가 다 가도록 못합니다. 학자들도 지혜, 공부를 가르쳐 주는 데도 지혜, 살림살이하는 데도 지혜, 돈 쓰는 데도 지혜, 돈 버는 데도 지혜! 모든 일을 하는 데에 지혜가 다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다 쫓아 다닙니다. 오늘 아침에 산에서도 얘기했지만,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항상 지혜가 필요하 다! 밥을 먹을 때도 지혜, 칫솔질하는 데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칫솔질할 때 잘못 닦으면 이는 이대로 썩고, 치약은 치약대로 달아나고, 잇몸은 잇몸대로 상합니다. 그것도 지혜롭게 해야 됩니다. 다 지혜입니다. 글씨 쓰는 것도 지혜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하는 대로 다 씁니 다. 100마디 하면 100마디를 다 씁니다. 집에 가서 보면 무슨 글씨인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핵심만 70%를 탁탁 써서 정리합니다. 이와 같이 지혜가 필요합니다. 항상 지혜롭게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지가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 읽는 것도 지혜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아 읽으면 읽는 것이지, 거기에 지혜가 필요합니까?” 하는데 “그래서 니가 미련한 거 여.”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는 항상 하나님께서 자기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하면서 읽 어보십시오. 한번만 읽어도 가슴이 뜨끔뜨끔 합니다. 지혜를 받아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중반에 가서 말씀하시기를 “지혜를 받아야 병들고 아파서 시험에 드는 일 이 없다” 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었다는 것은 “어느 단계까지 못 채웠을 때 그것을 시험 들었다.”고 내가 그 렇게 분석했습니다. 100개를 못 채웠을 때를 시험 들었다고 하고, 정상을 벗어났을 때 시험 들었다고 하 는 것입니다. “시험의 가지 수가 많은데, 그것을 다 이기는 데는 지혜를 얻어야 된다. 지혜를 받아 라.” 돈으로도, 부귀로도, 영화로도 시험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서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열심히 해도 지혜롭지 못하면 혼납니다. 열심히 해도 지혜롭게 해야 됩니다. 저쪽 산으로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욕을 한마 디라도 얻어먹습니다. “저 젊은이들 저기 가서 기도하는 것 봐라.” 이런 사람이 없습니다. “저 미친놈들 또 명석이 옛날에 하듯이 하는구먼. 똑같이 똘아이들이구먼.” 이런다는 것입니다. 괜히 욕 얻어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혜롭게 해야 됩니다. 아까도 누가 가면서 소리를 지르며 가더라구요. 혼자만 은혜 받는 것이 아니니까. 많 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야 하니까 조용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지혜가 필요하고, 노래하는 것도 지혜가 필요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 는 것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지(智)’자를 많이 넣어서 이름을 많이 지어줍니다. 좀 지혜로우라고. 이름 을 지어주면 그렇게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지(智)’자를 많이 넣어줍니다. ‘순’자나, ‘숙’자는 잘 안 넣어줍니다. ‘순’자 하고, ‘숙’자 하고, ‘자’자. 미자, 영자.. 이 런 ‘자’자는 잘 안 씁니다. 아주 명석하고, 아주 총기 있는 이름. 아주 강하고 담대한 이름을 넣어줍니다. 그런 글 자를 꼭 넣어줍니다. 나는 이름 자체가 명석합니다. 총기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총명하고, 명석하다는 것입 니다. 아주 두뇌가 명석할 때 쓰는 말이 아닙니까. 이름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름값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름이 웃기는 사람은 사 람들이 웃기게 봅니다. 어떤 사람은 ‘빵순’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매일 애들이 “빵순이”라 고 하니까 기분 나빠서 안 크더라는 것입니다. 작명사가 보더니 이름이 틀렸다고 하며 이름 을 바꾸라고 했답니다. 이름도 좋고, 또 사람들이 칭하는 것도 좋아야 됩니다. 아마 내가 그 동안 이름을 3-4000명 지어 주었을 것입니다. 이미 이름 있던 사람도 지어주고, 아기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를 낳으면 “너희들이 지어와라. 지어 봐서 안 되면 나에게 가져 와라. 이름을 여러 가지 가지고 와 봐라.” 합니다. 이름 짓는 것, 골치 아픕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 이름도 있고, 할머니 이름도 있고, 사촌들 이름도 있는데 그들과 겹쳐서 이름을 지어 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식 이름을 지으려면 그 친척들 이름을 다 적어가지고 와야 됩니다. 그러니 자기가 옥편 갖고서 좋은 이름을 열심히 찾아봐 야 됩니다. 그렇게 안 하고 나에게만 다 미뤄놓고, 이름 지어 달라고 하는데 내가 이름 지 어 줄 시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 이름 지어 달라던 사람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아무도 없었잖아요. 아기 이름은 자기 부모들이 지어야지요. 옥편 갖고서 본인들이 지으면 좋다는 것입니 다. 좋은 것을 지으면 될 것이 아닙니까. 본인들이 옥편 갖고서 지어야지요. 좋은 단어 갖고서 지으면 됩니다. 또 이름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라고 지었어도, 그만큼 못하면 반딧불만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름도 좋고, 하기도 잘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지혜로운 이 름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여러분들이 지혜롭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지 혜를 받으면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으니까.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고, 지혜롭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지혜 달라고 기도해서 지혜를 받아서 남은 인생을 커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지혜가 안 들어간 데가 있습니까. “혼자 화장실 갔을 때는 지혜가 필요 없잖아요?” 하는데, 지혜 없이 화장실 가보십시 오. 화장실 가서 잘못해서 혼자 혈압 올라서 쓰러지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래서 화장실에 가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화장실 갈 때도 지혜, 볼 찰 때도 지혜, 공부 가르칠 때도 지혜, 아침 기도회 할 때도 지혜! 다 지혜로워야 됩니다. 지혜가 필요치 않다고 할 때는 언제입니까?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나 지혜를 못 써먹 으니까 끝나지만, 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머리 감는 데도 지혜가 있어야 하고, 목욕하는 데도 지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욕탕에 가서 지혜롭지 못하게 들어가자마자 탕 속에 들어갔습니다. 주 인이 “당신 목욕탕입니까?” “돈 냈으니 나가기까지는 내 목욕탕이지요.” “그 더러운 때를 목욕탕에 들이밀면 어떻게 합니까? 샤워 좀 하고 들어오지.”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혼자 가서 들어가자마자 머리를 문대 고 감고, 올 때는 머리가 팅팅 불어서 나옵니다. 충분히 불린 다음에 슬슬 문대서 때만 빼 면 되잖아요. 들어가서 곧바로 박박 문대면 두 겹 세 겹 비듬 공장만 만듭니다. 그러니까 머리 감는 것도 지혜이고 다 지혜입니다. 먹는 것도 지혜, 잠자는 것도 지혜, 각종으로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를 달라고 하십시오. 여러분들, 지혜를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받았어요? 말씀을 주면, 말씀대로 하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를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받아서 써먹으라고 했습니다. 지혜를 받았어도 써먹지 못한다고 했 습니다. 지혜롭게 하면 지혜입니다. 그리고 늘 생각해야 됩니다. 생각하지 않고 하면 안 됩니 다. 설교할 때도 지혜가 있어야 하고, 듣는 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다 지혜가 필요합 니다. 지혜가 없으면 손발이 고생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금은보화보다 낫다. 지혜가 너희를 부르지 않느냐.” 했습니다. 하나 님은 지혜로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시중들고 모시려면 지혜로워야 됩니다. 정녕 지혜로워야 됩니다. 이름을 잘못 지으면 안 됩니다. 이름을 잘 지어야 되겠더라는 것입니다. ‘아브람’도 나중에 ‘아브라함’이라고 지었습니다. 자기 조상이 못 세운 뜻을 세웠다고 ‘함’을 넣어 주었습니다. 야곱에게는 “너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라.” 했습니다. 아벨과 가인 중 누구의 이름이 더 좋습니까? 아벨입니다. 아벨이 훨씬 낫습니다. 가인 이라고 하면 벌써 가짜 같잖아요. 물론 절세가인의 ‘가’자를 썼으면 괜찮습니다. 가인이 가식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가짜입니다. 한국말로 들어도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름들이 좋아야 됩니다. 에서와 야곱도 이름을 듣기만 해도 다르지 않습니 까. 그러니까 이름이 좋아야 됩니다. 이런 지역도 그렇습니다. 이런 지역도 하나님께서 미리 이름을 바꾸라고 해서 바꿨습 니다. 교회 갔다 오다가 내가 직접 바꿨습니다. ‘달밝골’이라고 하니까 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 갔다 오다가, “달밝골? 달밝 골이 뭔고 하니, 달이 밝다.. 아, 그럼” 내가 한문을 배웠는데, 한문을 900자를 배워서 써먹은 것은 그것을 제일 먼저 써먹었 습니다. ‘월명동’으로! 달 월(月) 자, 명(明), 동洞), 밝을 명(明), 이름이 ‘월명동’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바꿔놨더니 지금에 와서 써먹잖아요. <월명동>으로 이름이 뒤바뀌었습 니다. ‘달밝골’ 하면 촌스럽잖아요. 옛날 사람들은 달밝골이라 합니다. 월명동이 이제 베들레헴같이 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처럼 월명동이 유명한 지역이 되 는 것입니다. 이제 ‘월명동’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금산에 가서 물어 보면 ‘월명동’ 하면 거의 압니다. 세계 26개국까지 ‘월명동’이 번져 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이름이 좋아야 됩니다. 금산, 진산도 다 이름이 좋습니다. 대전도 이름이 있 습니다. 큰 대(大)자를 씁니다. 큰 밭이란 뜻입니다. 옛날에는 이름을 보고서 온천도 찾고 그랬습니다. 온천리에서 온천을 찾았습니다. 온 천리에서 큰 온천이 나왔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물이 따뜻하니까 온천이라고 했던 것입니 다. 유성 온천도 그랬습니다. 옛날에 누가 자기 논에서 자꾸 나락이 죽어서 팔려고 해도 안 팔렸습니다. 그래서 거기다 집을 지었습니다. 집 짓느라 땅을 파다보니 뜨거운 물이 나 와서 온천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찮은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성경의 온천을 발견하고, 성경의 진리의 온천을 발견한 것입니다. 샘솟듯 하는 진리! 똑같이 30개론을 듣고 배웠어도, 똑같이 30개론에 순종했어도 구원과 무관합니다. 왜? 근본자를 믿어야 구원이 일어납니다.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그 회사에 대해서 이론 박사였습니다. 그래도 사장이 안 써먹으니까 돈을 못 받는 것입니다. 그 회사에 대해서 이론을 배워서 박사입니다. 회사 직원보다 더 잘 알았 습니다. 그런데 뭐하고 하니까 아무 것도 안 한다고 했습니다. “이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한 달에 몇 백만 원은 받아야 되지 않냐?” “회사 사장이 안 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과 똑같습니다. 구원이 그냥 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해서 난다고 했습니다. 구원이 그 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시험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지혜로워야 시험을 이긴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 다. 지혜로워야 된다! 지혜가 아니면 사탄도, 명예도, 돈도, 부귀도, 영화도 다 시험을 이길 수 없노라! 많이 배워서 지식으로도 이겼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알고 하니까, 아니까 시험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는 자에게는 시험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르는 자에게 시험이 오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에 말씀하시기를 지혜로워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시험도 이기고, 시험도 분별할 수가 있고, 시험이 아닌 것도 알 수 있다 했습니다. 무조건 시험도 아니고, 무조건 시험이 아닌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각을 뛰어나게 하사 모든 시험을 이기게 해 주시고, 시험 을 다스리게 해 주시고, 시험을 주관케 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시험에 대해서 말씀을 계속 듣고 있으니, 이제 우리가 시험에 대한 정의를 여 러 가지로 내렸는데, 정상에서 벗어난 것을 시험에 걸렸다고 하고, 그늘 들었다고 했습니다. 곡식이 그늘진 데서 크게 되면 아무리 비료를 하고, 아무리 주인의 손길이 많이 가도 열매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열매 때에 열매가 열리지 않으면 찍어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불행의 길로 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가르칠 때에 전국, 그리고 온 인류의 말씀을 들은 모든 자에게 소 생케 해 주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존중히 여김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 내가 이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잘되고 형통하며 의로 채워 주시옵소서. 모든 경영과, 모든 사업과, 모든 믿고 사는 문제들과, 교역자와 따르는 모든 무리들, 기도하는 사람들 다 지혜를 받아서 지혜로 처리함이 충만하게 해 주시옵소서. 내가 이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잘되고 형통되되, 지혜에 충만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노 라. 평강과 공의와 진리가 함께 할지어다.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 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