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5.02.19 (목)
목 계시말씀
- 선포일
- 2015.02.19 (목)
- 성경 본문
- 베드로전서 1장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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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월 19일 목요일 ♥ 1
휴거의 권세
작성일 : 2014. 12. 14. AM 3:33
작성자 : 장정희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데 성자께서
물으셨습니다. “휴거의 권세는 무엇이냐?”
이때, 제 뇌에 ‘십자가의 권세’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를 보시고 성자께서 맞다
하시며 기도할 때 해 주신 말씀입니다.)
*성자의 말씀*
베드로전서 1장 15절을 보라.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사랑하는 섭리인들아,
나 성자가 떠나기 직전 한마디 하니 뇌로
새겨들어라. 너희가 아직도 휴거되지 못한
자의 행실을 하니 사탄의 행실이 아니더냐.
섭리인 모두는 거룩한 삼위의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거룩함이 무엇이냐?
절대 사랑, 신의 사랑이다.
‘거룩’이란 말에는 절대성이 있다.
절대는 영원히, 변치 않음을 의미한다.
삼위와 삼위의 육 된 선생은
너희를 향한 사랑이 절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 거룩한 사랑, 곧 신의 사랑을
한다. 고로 ‘거룩’은 신성을 의미한다.
영성의 완전한 상태,
곧 최고의 영적 차원이 신성이니
너희가 거룩한 자가 되라는 것은
선생처럼 최고의 영적 차원의
신부가 되라는 것이니
‘거룩’은 하나님의 신성 중 최고의 신성이기
때문이다. 고로 너희도 삼위와 선생의 절대
사랑, 절대 인내, 절대 순결을 너희 것으로
삼아 거룩한 신부가 되어라.
사람은 극의 사랑에서 숭고함을 느끼는데
그 숭고함의 최고 차원이
하나님의 신성인 ‘거룩’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 가장 거룩한 자는 사람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사랑, 나 성자의 사랑을
하는 선생이니 그가 삼위의 향기를 풍기는
자가 아니더냐. 선생의 삼위의 향기는 곧
휴거의 권세이다. 그리고 휴거의 권세는
신부의 권세이니 근본은 베드로전서
1장 18절에서 19절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휴거의 권세는
신부의 권세로서 사랑의 권세이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인 영 휴거를 통하여
한 몸이 되었으니
신랑의 권세가 신부의 권세이지 않겠느냐.
휴거 역사의 주인공인 선생은
신랑의 권세 하나님과 나 성자의 권세를
받았으니 핵이 대속의 권세이다.
사랑의 권세 중 최고의 권세이다.
나 성자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구원하려
세상에 보낸 구원주 사랑의 신,
대속의 신이기 때문이다.
너희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 휴거시키기 위해
선생을 통해 너희 죄를 대속하였으니
그것이 나 성자의 사명인 구원이다.
이 나의 사명을 나의 몸이 되어 해 준 자가
선생이니 고로 그가 구원자다.
이 세상에 너희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자가 누가 있느냐.
오직 선생밖에 없으니
그는 이 세상 유일한 구원자
나 성자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대속은 구원과 영 휴거를 낳고
성약 천 년 역사를 굳건히 세웠다.
그의 대속으로 천국 황금성에 너희 집이
세워지고 너희가 황금성으로 휴거된 것이다.
계속해서 선생이 끊임없이 대속의 조건을
세움으로 너희의 영 휴거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고로 휴거된 자들과 휴거되지
못한 자들은 모두 들어라!
휴거 권세의 핵은 대속의 권세이니
휴거된 자들은 선생처럼 형제의 죄를 위해
형제의 십자가를 대신 지어 주고
아직 휴거되지 못한 자들은
어서 자기만을 위한 삶에서 수준을 높여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음으로
선생의 십자가를 덜어 주며
형제를 위해 너희도 십자가를 지어 주어라.
그것이 300선 휴거되는 가장 지름길이요
300선 휴거된 자는
더 차원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 세상에서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선생의 보배로운 희생, 사랑의 희생,
십자가 대속이 선생의 가장 큰 휴거의
권세이니라. 권세라 하여 누리고 즐기는
것만이 권세가 아니다.
또 하나의 큰 휴거의 권세는 바로 이것이니
야고보서 5장 19절에서 20절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이는 휴거의 문이 거의 닫힌 지금
오직 황금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한 황금성으로 이미 휴거된 자가
더욱 차원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고로 선생은 희생의 권세로 너희를 구원하고
영 휴거시켜 지상과 영계의 최고의 권세자가
되었다. 곧 삼위의 육이 되었으니
희생이 휴거의 완성자인
선생의 가장 큰 권세이지 않겠느냐.
고로 섭리사야,
자기가 휴거 안 되었다고 발만 동동 구르지
말고 어서 행하여라.
죄 때문에 쓰러져 가는 섭리 형제들을 위해
선생처럼 대신 희생해 주고
또한 희생은 조건이니 대신 조건 쌓아 주어
세상에서 선생을 몰라 사망권에 있는 택한
영혼들을 어서 섭리로 돌아서게 하여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을 휴거시킬 것이니
이는 전도함으로 너희의 죄가 사라져
완전한 영혼이 됨이라.
그리하여 휴거의 권세 중
최고의 권세는 희생의 권세이자
생명을 섭리사로 돌아오게 하는 전도의
권세이다. 사랑하여 나 성자가 떠나기 직전
하고픈 한마디 말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권면하니 네 가지 성경 구절이다.
이 말씀들은 300선 휴거인 형제 사랑을
방해하는 사탄에게서 너희가 이기는
방법이다.
야고보서 3장 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서 4장 11절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아고보서 5장 9절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야고보서 5장 10절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샬롬.
♥ 02월 19일 목요일 ♥ 2
‘진리’가 너희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리라
작성일 : 2015. 1. 7. (수) PM 1:00-2:00
작성자 : 주수신
(가정에서 이사 갈 집을 두고 합심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 안에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타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 지역의 매물을 한 달
전부터 알아보았으나 마땅한 집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을 두고 어머니가 엄청난
걱정, 근심을 하고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 문제를 어머니께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합심기도 시간에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이사 갈 집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오늘로부터 한 달 안에 이사 갈 집이
필요한 상황인데 아직 합당한 집을 찾지 못해
어머니가 아주 걱정하시는 것 같다고
2015_0219 목 계시말씀.hwp2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성자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는 나 성자다. 사랑이다.
‘절대 믿음’으로
진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된다.
너희가 진리를 절대 믿음으로써,
세상의 고통들 즉,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 후, 이어서 주신 말씀입니다.)
*성자의 말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가 너희를 온갖 고통들로부터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절대 믿고 행함으로써
너를 속박하는 것들로부터
풀려나 자유로워진다.
곤고함, 허망함, 괴로움, 답답함.
그 모든 것이 세상에 속해 있는
너의 고통들이다.
이 세상에서 나 성자를 모르고 산다는 것,
그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인 것이다.
나 성자 없는 삶,
그 자체가 바로 고통이다.
단 한시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 시시때때로 너에게 오는 문제들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의 방향이다.
변함없는 상황은 존재치 않으며,
너를 향해 그 모든 것들은 한시의 기쁨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커다란
근심거리로 다가오게 되어 있다.
나 성자는 너희에게 ‘자유’를 주었다.
나 성자에게 속하였을 때,
그 모든 ‘근심, 걱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준 것이다.
세상에 속해 살아가는 인생으로서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는
고뇌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는 말이다.
네가 나 성자 안에 있으며
너의 문제를 나와 내 육에게 구할 때,
네 문제가 땅에서도 풀어지고
하늘에서도 풀어진다.
고로 너의 마음, 생각, 육, 혼
그리고 영까지도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마음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였다!
진리를 알아라!
진리가 무엇이냐?
‘영원을 두고 변치 않는 이치’이다.
진리는 오직 전능자 하나님이다.
오직 전능자 성령님이다.
오직 전능자 나 성자다.
나의 육 된 선생 통해 선포하는 말씀이다.
전능자의 전지전능함을 알 때,
너를 덮치려 달려오는 커다란 파도와도 같은
속세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파도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네 생명을 보장받고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보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사랑아,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세상에 속해 살기에
걱정할 일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그 일을 심각히 여기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찾고 부르라는 말이다.
너의 절박함을 보고
내 더욱 역사하리라!
너의 애타는 기도에
내가 즉시 응답해 주리라!
너의 모든 부름에 따라서
내가 너에게로
나의 발걸음을 옮기리라!
내 너의 말을 듣고
환경과 여건을 틀어 주리라!
나 성자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다.
‘전지전능함’이란 말에 대해
다시 배워라.
깨달아라.
깨닫고 네가 진정 걱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라.
네가 더욱 신경 쓰고,
전심을 쏟아야 할 일은
세상의 고뇌가 아니라
‘나 성자와의 사랑’이다.
네게 사랑, 뜻 두고 모든 것 행하는
나 성자가 아니더냐.
네가 나와 사랑으로 묶여 있지 않느냐.
너의 기도에
나 성자가
전지전능함으로 응답하는 이유는
모두 사랑 때문이니라.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을 진실로 알아라.
알고 제발이나
네가 걱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우선순위를 제대로 알아라.
세상이 아닌,
나 성자와의 사랑을 잡는 것이다!
그리하면 세상뿐만 아니라
영계까지도 잡게 된다.
너와 나의 사랑.
즉, 이 세상의 가장 근본 된 진리가
너를 영원토록 자유롭게 하리라!
육의 일생동안 세상의 고통 속에서 너를
자유로이 하며, 영원을 두고
너를 지옥 고통에서 자유로이 하리라.
단지 ‘고통이 없음’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주리라!
진리 속에서 너를 한없이 기쁘게 하리라!
너와 나 사이의 사랑의 진리로
나와 교통할 수 있는 축복을 네게 주리라!
진리로 전능자와 기뻐하며
함께 먹고 마시는 축복을 주리라!
내, 너를 이같이 자유로이 하리라!
그러니 나 성자를 잡아라!
네 고통을 나 성자에게 고해라!
세상의 괴로움에 사로잡혀서
온 마음과 생각 속에
고통을 담고 사는 자는
나 성자를 모르는 자이다.
너희는 나를 제대로 알아야 할지어다.
그리해야만 진정한 자유를
네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이 무엇이냐?
고통에 빠진 자를
그 고통 속에서 구해 내는 것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크나큰 어려움.
즉, 고통 속에 처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해 주는 자가
바로 ‘구원자’ 아니냐.
나 성자와 선생을 제대로 알자.
너희의 영생 문제를 해결하는
나 성자와 내 육 된 선생인데,
너희 육의 문제를 해결치 못하겠느냐?
근심, 걱정하지 말아라.
구원받은 자들아,
네 스스로를 다시 속세의 고통 속으로
이끌어가지 말아라.
영혼뿐만이 아니라,
너희의 인생 또한 구원하는 나 성자다.
고하는 것은 너희의 책임분담이다.
하늘 앞에 사랑으로 나아와
간절함으로 고하는 자,
너희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그러나 근본을 알고 행해야 한다.
너희를 사랑하여 행하는
나 성자와 선생이니,
사랑으로 나아와야 함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느냐.
그것이 근본이다.
이 근본을 알고 행해 자유함을 받아라!
세상에 속한 자들이
나를 모르는 연고로
자신을 걱정, 근심 속으로 밀어 넣듯
네 자신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지 말아라.
그것은 나 성자가 아닌
저 세상에 속한 자들에게
합당한 방법이니라.
또한 너희는
세상 고통에 빠져서
마음 고통, 육 고통, 영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들에게
나 성자와 나의 말씀을 전해야 할지니라.
그들에게 이 세상의 진리 법칙을 전하여라.
그리해 그들도
전능자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고통 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게 해 주어라.
괴로움 속에서 살다 벗어난 너희이니
그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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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생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을 살며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일들을 직면하게 되고,
실질적으로 제 생각대로 되는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더욱 많으니
그러한 고통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나 성자와 함께하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되고,
네가 나 성자의 생각을 받고 구상한 일들이
현실이 되어
너의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나 성자와 함께할 때,
하늘의 권세를 입은 자가 되는 것이니
그가 다른 자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 얼마나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이더냐!
나 성자를 취하면,
네 삶의 주관권부터가 달라진다.
삶의 질이 달라진다.
그러니 나 성자를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더냐!
전능자 나 성자와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이
얼마나 큰 축복이더냐!
나 성자를 너희의 신랑으로 삼고
살아가는 인생이
그 얼마나 큰 축복이더냐!
진정 나 성자의 권세에 대해 알아라!
성삼위의 상대체가 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라!
알고 분별하고 행하여라!
네가 진정 고통스러워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행하여라!
성삼위와의 사랑을 두고 애타하고,
성삼위와의 사랑을 두고 간절하여라!
어떻게 하면
더욱 하늘 뜻을 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뇌하고, 성삼위와 이 진리를 몰라
세상에서 피를 말리는 마음 고생하며
사는 둥 죽는 둥하며 살아가는 저 생명들을
어떻게 나 성자와 연결시켜 줄지를 두고
고민하여라!
나 성자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는 한
너희 인생은 절대 예정이다.
육의 일생뿐만 아니라
영의 영생까지 두고도
만사형통으로 절대 예정이다!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하니,
네가 바로 하늘의 천운을 탄 자이고,
내가 너희를 사랑하니,
네가 바로 온 천상천하를 통틀어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의 사랑을 받는 자인 것이다!
너희가 나를 향한 사랑을 지키는 한,
나의 가호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하리라!
사랑아,
걱정 염려하지 말아라.
걱정, 염려로
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들지 말아라.
혼자 걱정하지 말고,
더욱 나를 찾고 나에게 고하여라.
내 즉시 너에게 어떻게
나 성자가 네 문제를 해결하는지 보여
주리라! 네 방법이 아니라,
신인 나 성자의 방법으로
어떻게 네게 처한 어려움 해결하는지
그 과정을 네 눈앞에 보여 줄 테니,
잘 봐.
그리고 나에게 감사 감격하여라!
네 기도의 응답으로
내가 그같이 행하였음을 절대 알고,
그 사연을 생각하며
늘 나에게 사랑으로 나아오길
너무도 원하노라.
사랑해. 안녕!
네 고통의 소리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말씀해 준
나 성자니라.
♥ 02월 19일 목요일 ♥ 3
보화 말씀과 이 시대 보화
단상을 더 빛내는 자가 되자
작성일 : 2014. 12. 19. AM 2:54
작성자 : 오은미
(선생님께서 예전 단상 앞에서 기도하셨다는
말씀이 떠올라 저도 단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그리고
선생님 대화해요’ 여쭙고 기도를 하던 중
‘이 땅의 것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하셨는데 천국에 있는 말씀을 전하는 단상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천국에 있는 단상의 모습이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천국에 있는 단상은 천국에서 최고로 값이
나가는 보석 덩어리로 만들어졌음이
마음속 깨달음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한 장면이 펼쳐지기를
보석 덩어리로 만들어진 단상 위 가장자리가
마치 백보좌 양쪽에 날개처럼 쭉 성들이
뻗어져 있듯 보석이 저리 섬세한 형태로
만들어졌을까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모양으로
처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성자와
마음으로 대화하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천국의 모든 것은
금, 다이아몬드, 각종 보석, 보화로 되어
있지만 특히 성삼위께서 보시기에
최고의 가치와 중요한 것은
천국에서 최고 보화로 만들어진다.
같은 성이라도 선생의 성을 이루는 보석,
보화들과 다른 자들이 사는 성의 보석,
보화는 그 빛도 값도 가치도 각각 다르다.
이와 같이 천국의 각종 것들 중에서도
최고 귀하고 값이 나가는
보화,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있으니
천국 단상이다.
이 땅의 단상
특히 섭리사 단상은
매주 주일, 수요, 새벽
삼위께서 좌정하셔서 시대 사명자를 통해
시대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기에
최고 가치 있는 장소이지 않겠느냐?
이 땅의 것 중 그 가치가 너무 높아
수치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
시대 말씀, 생명의 말씀인 고로 그러하다.
이 땅 최고 귀한 곳이
시대 말씀이 선포되는 단상이니
이를 지키고 뺏기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단상에는 아무나 오르지 못하며
오르는 설교자와 사회자들도
성삼위가 보시기에 한 점의 죄도 꺼림도
없어야 한다.
육신을 가진 자들이 유일하게
성삼위를 마주 대하는 곳이 단상이니
얼마나 두렵고도 떨리는 장소이냐?
이를 알기에 선생은
매일 단상에 오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누구보다 죄와 상관이 없는 삶을 살도록
스스로를 지키며 절제하며,
보는 것, 듣는 것, 생각 하나까지도
분별하며 행해야 한다.
육신이 묶인 선생의 육이 되어
그의 입술이 되어 시대 말씀을 대언하기에
100% 온전함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정결함과 순결함의 삶을 살아야 한다.
모든 자들이 주의 육이 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단상에 서는 자들은 더더욱 주의 육이 된
자이기에 늘 스스로 점검이다.
완전해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 부족한 것은 발견할 줄 알아야
하며 삼위께서 깨닫게 하시고
감동으로 알게 하시는 것은
즐거이 기뻐 고치기에 힘을 쓰며
다른 자의 소리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도 필요하다.
단상의 설교는
말을 기교와 기술을 보이는 자리가 아니며
자신이 드러나는 자리가 아니며
말씀 속에 스며 있는 주의 심정의 핵을 찾아
삼위의 의중을 살피며
불이 되어 외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크고 작음,
설교를 듣는 성도의 수가 많고 적음이 중요치
않으며 설교자는 말씀을 대언하는 동시에
주가 그의 몸을 쓰고 대언하며
성삼위께서 함께 설교자가 대언하는 말씀을
듣고 보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단상에 서는 자들은
설교를 할 때 앞에 있는
성도들만을 의식할 것이 아니요,
그곳 가운데 좌정하신 성삼위께 파장을
맞추고 사랑으로 집중하며 해야 한다.
성삼위와 시대 주만을 의식하고 설교하는 자
신본주의적 사고를 가진 자이며,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을 의식하고
그들의 반응에 중심이 기울어 있는 자
인본적인 마음이 있는 것임을 알고
오직 모든 중심과 균형을 온전히 하는 자가
2015_0219 목 계시말씀.hwp4
되자.
선생의 이 시대 사랑의 조건으로
시대 말씀과 단상을
구시대에서 독립시켰음을 알고
옛 시대와 구분된 새 시대 말씀을
귀히 전하기에 힘을 써야 한다.
교회의 최고 보화가 단상인 만큼
단상에 서는 자들도
그 영, 혼, 육이 보화가 되어야 한다.
보화 말씀을 담는 가죽 부대 아닌
보화 말씀을 담는 보화 그릇이 되어
보화 말씀과 이 시대 보화 단상을
더 빛내는 자가 되자.
충분한 기도로 선생과 호흡하며
충분한 준비로 삼위께서
말씀을 전하는 자, 듣는 자를 두고
구상하시고 계획하신 은혜와 깨달음의 역사,
사랑과 회개의 역사, 회복과 일체의 역사가
일어나는 예배가 될 수 있게 힘쓰기다.
단상을 관리하는 자도 동일하니
주의 몸을 관리하듯
사랑과 감사와 은혜로 단상을 관리하며
스스로를 살피며 관리해야 한다.
설교 단상을 아무나 오르지 않듯
단상을 관리하는 자도 아무나 세우지 말며
시대 말씀 가치와 시대 주의 가치를
확실히 아는 자로 세우며
그리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성자시여, 귀한 교육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부터 죄도 흠도 없이 영, 혼, 육이
정결하고 순결한 보화 인생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 살게요.)
섭리사 모든 자들은
주의 정결한 사랑의 신부들이니
성자 주 가치, 말씀 가치, 단상 가치
100% 알고 살자.
사랑의 가치를 아는 자
그 사랑의 위력을 부리며 살고
말씀의 가치를 아는 자
그 위력으로 자기를 만들고
생명을 살림에 힘쓰는 삶을 산다.
교육의 가치를 느낀 만큼
인식이 바뀌어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며
성자 주 함께 교육했다.
시대 보화 만나 축복받은 인생들아,
사랑한다.
성자
♥ 02월 19일 목요일 ♥ 4
매일 나와 함께
삶을 살아라
작성일 : 2014. 12. 17. AM 1:00
2014. 12. 23. AM 1:00
작성자 : 주랑솔
(“성자여. 이때를 꽉 잡아서 하루하루 성자와
의미 있는 날을 보내고 싶습니다.
성자와 매일 이렇게 의미 있게 살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도 됩니다.
또한 성자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눴던
수많은 사연들과 기억들을 절대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싶은데 잊어버릴까
걱정입니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성자께서 “매일매일 내가 너를
사랑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매일
새벽 내가 너를 이렇게 찾아와 보고 갔음을
잊지 말아야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니 말씀을 이어 주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사랑하는 나의 신부야,
오늘은 매일 삶에서 나와 함께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말해 볼까 한다.
네가 고백했지?
이렇게 매일매일 의미 있는 날들을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하지 못하여 아쉽다고.
그러나 사람이 어찌 매일 이벤트하면서
특별한 날을 보내면서 살 수 있겠느냐.
너도 지금 몇 주 정도만 하니까 매일 할 수
있는 거지, 이렇게 1년 못 산다.
얼마나 피곤하겠냐.
매일 다른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서
너는 얼마나 머리를 써야겠냐.
너 분명 하다 멈췄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도 그러하다.
한 부부가 있는데 여자가 이벤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남자가 매일 이벤트해 주면
남자는 피곤해 쓰러진다. 그리고 받는 여자도
피곤하다. 물론 나는 영이니 너의 이벤트가
피로하겠냐. 행복하지. 그러나 너는 육이니
그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매일 삶이 그리 중한 것이다.
매일 삶에서 나와 함께 살고,
나와 생활 속에서 함께 했음이 그리 중하다.
또한 이것들이 나와의 기억으로
너의 삶에 그리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볼까. 아까 교회로 달려오는 차
안에서를 생각해 보자. 네가 나에게
고백했지?
(네. “이 새벽 성자와 데이트하러 저는 지금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만나요.”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
(완전 로맨틱한 말씀이었습니다.
“나 바쁘다. 새벽에 나 만나러 오는 너를
지키며 함께 가고 있으니까.”라고 하셨습니다.
저 차안에서 성자의 말씀에 혼자
쓰러졌습니다. 기절했습니다.)
이런 기억들이 있으면
네가 이렇게 새벽에 올 때마다
내가 했던 말들이 생각날 것 아니냐.
그럼 그때마다 얼마나 행복하겠어.
그렇지?
(네. 정말 그렇습니다.
이 기억들을 절대 잊고 싶지 않습니다.)
이와 같다.
삶 속에서 나와 함께 사는 것이 중하다.
삶에서 나와 함께 살며 먹고 마시고 지냈다면
그 추억과 기억들이 너를 꽉 잡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만 남는 것이 아니다.
계속 그리 연속되어지는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떠나 지상에 없어도 이렇게 살았던
자들은 계속 나와 그리 살 것이다. 이미 나와
그리 사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나와 그리 사는 것이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삶이 된다는 것이 무엇이냐.
밥 먹고 양치질하는 것이 삶이 되듯,
그리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벤트는 내가 굳이 하려
계획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만,
삶이란 그냥 그리 되는 것이 아니냐.
이와 같이 나와 같이 사는 삶이 당연한 것이
되고, 자연스러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자는 내가 영계에 있어도
나를 생각하면서 계속 그리 살게 된다.
만약 네가 계속 이리 산다면
내가 가끔씩 너에게 오지 않겠냐?
함께 사는 것은 아니나, 너를 보러 말이다.
나와 함께 사는 나의 신부가 예뻐서 말이지.
그리고 영계에서도 너를 얼마나 자주
쳐다보겠냐. 사랑스러워서 말이다.
뇌 스마트폰으로도 통하고, 영계 와서도
통하고, 이렇게 삶 속에서 함께 삶으로
통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나와 생활 속에서 사는 것이
핵이다. 이런 삶이 매일매일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사는 삶을 살 때 먼저는
지금 나와 사랑하며 사는 느낌이 살아나니
행복하고, 내가 네 곁에 있음이 느껴지니
기쁘고, 내가 떠났어도 그러한 삶을 산 자는
나와 계속 함께하는 것같이 느끼며 살 수
있다.
늘 언제나 그리 사는 것이다.
고로 매일매일 나와 함께 사는 것,
생활 속에서 그러한 삶을 사는 것
이것이 그리도 중한 것이다.
나와 함께 먹고, 할 일을 하고,
기도하고, 대화하고, 생활했던 것들이
나와 통하는 강도가 되는 것이다.
나를 느끼는 정도가 되어진다.
이는 생활하면서 나를 찾고 부르지 않다가
기도할 때만 느끼는 자는 기도할 때
한 시간 두 시간만 나를 만나는 자가 된다.
그러나 생활하면서 나와 늘 동행하며,
나를 늘 생각해서 나와 함께한 자는 그
시간만큼, 어떤 자는 24시간, 나와 함께한
자이다.
벌써 각 사람이 나와 통한 정도와 시간이
다르지 않냐. 그와 같이 매일 매 순간 나와
통했던 자는 그 강도가 시간과 비례하니
그만큼 강하다. 이런 자는 내가 지상에
없어도 강도가 강한 만큼 나와 함께 살듯
통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선생 통해서 보여 줬던 삶이 이런 삶이
아니냐. 나와 계속 통하며 사는 삶,
매 순간 나를 찾고 나와 함께 사는 삶.
또한 계시를 통해서 매 순간 나를 찾으라고,
나와 함께 생활하자고,
생활 속에 나를 부르라고 말하지 않았냐.
이렇게 살았던 자들은 나와 추억이 많고,
2015_0219 목 계시말씀.hwp5
나와 생활의 기억이 많아 내가 지상에 없어도
계속 그와 같은 삶을 연속할 수 있게 된다.
이 말씀을 볼 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것이다. 만약 그리 살지 않았던 자들은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리 살았던 자들은 그 감이 있어서
아주 수월하게 할 수 있으며
아니 벌써 그리 계속 살고 있었을 것이다.
왜 생활 속의 휴거인 줄 아냐.
생활 속에서 휴거된 자 같은 삶을 연속
살아야 황금성에서도 이러한 삶이 익숙하고,
당연하게 계속 지속되어지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매일 나와 함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그리 살지 않은 자가
어찌 황금성에서 나와 그리 살 수 있겠냐.
고로 생활 속에서 나와 어떻게 살았는지가
그리 중한 것이고, 생활 속에서
나와 온전히 하나 되어 사는 삶이 지속되어야
휴거되어 사는 자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삶 속에서 나와 사는 자는
육계에서뿐 아니라 영계에서도 그런 삶을
살게 된다. 육이 그리 사는데 영은 나와 따로
살겠냐? 그렇지 않지.
육이 나와 함께 살듯,
영도 나에게 계속 찾아와 나와 함께 있다.
육이 나와 떨어지지 않듯,
영도 나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게 아주 깊고 중한 내용이다.
육만 나와 그리 산다면 아무리 좋아도 끝인
것이잖아.
그러나 이 말의 핵은 바로 이것이다.
육이 함께하는 자, 나와 함께 사는 자,
그런 자의 영도 나와 함께 사는 자이다.
영도 나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육이 나를 생각하는 만큼, 육이 나와
함께하는 만큼, 육이 나와 사는 만큼, 육이
나와 일체 되어 사는 만큼 영이 그와
같음이다.
이것을 잊지 마라.
이것이 ‘매일 나와 함께 살아라’라는 말의
핵심이다.
알겠지?
이것을 잊지 말고
나와 함께 생활하는 자들이 되어라.
그래서 육계에서뿐 아니라
영계에서도 행복하게 나와 살자.
얼마나 기쁜 삶이냐.
육도 나와 함께 사니 행복하고 기쁘고,
영도 영원까지 기쁘고 행복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