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02.22 (일)
150222 주일말씀
- 선포일
- 2015.02.22 (일)
- 성경 본문
- 디모데후서 3장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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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2일 주일말씀>
삼위일체는 <감동>으로 역사하신다
본 문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뜨거운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삼위일체는 감동으로 역사하신다.’입니다.
◎ 성경을 보고, 특히 사도행전을 보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감동>으로 역사하신 내용이 수백 군데 나옵니다.
오늘은 그 중의 한 가지만 성경 본문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 먼저 <감동>에 대해서 잠깐 전초하고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전초>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우리들에게 역사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향해 뜻을 펴시는 방법은 많습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감동>으로 행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끝>
각자 처한 처지와 상황에 따라서
그때마다 <감동>으로 말씀하시고 행하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감동>을 주시면,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이 마음에 감동이 되며 느껴집니다.
그러나 <감동>을 줘도 ‘자기를 중심’해서 생각하면
육적으로 생각되고 육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또 <감동>을 받았어도 ‘자기 환경과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그 감동대로 행하지 않기도 합니다.
특히 사고 전에, 급할 때에 <감동>으로 역사하실 때가 많습니다.
<감동>을 잊으면 죽습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삼위의 생각’을 <감동>으로 전해 주셨든지
‘하고자 하는 말’을 <감동>으로 전해 주셨으면,
삼위의 몸이 친히 자기에게 온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주시는 <감동>을 받았으면
즉시 ‘성자와 주’를 부르고 같이 대화하면서 행해야 됩니다.
감동됐을 때 행해야 됩니다.
행하면 감동됩니다.
고로 <감동>만 기다리지 말고 행해야 됩니다.
행하면 감동됩니다.
<자기 책임분담>은 ‘자기’가 해야 감동되고,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 해당되는 것>은 ‘삼위’가 감동시키십니다.
<감동>을 받으면 ‘성자의 뜻’이 생각나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성자의 뜻’이 생각나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신이 역사하시니 몸이 뜨겁거나, 따뜻하거나, 훈훈하거나,
짜릿하거나, 눈물이 나는 등
자기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순간의 반응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하기 싫게 하여 그 일을 안 하게 해 주기도 하시고,
하고 싶게 하여 그 일을 행하게 해 주기도 하십니다.
삼위일체는 <감동>으로 말씀하시니,
<감동 자체>가 ‘삼위의 말씀’입니다.
고로 감동을 받으면, 정말 <삼위가 주시는 감동>이 맞는지 분별하고
<삼위가 주시는 감동>이면 즉시 행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어떤 공적인 일>을 하려는데
하고 싶은 마음 40%, 하기 싫은 마음 60%였습니다.
기도하니, <감동>이 왔습니다.
하고 싶은 마음 80%, 하기 싫은 마음 20%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내 주관인가?’ 생각하고, 결재를 못 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성자를 부르며 대화했습니다.
이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밭에 묻힌 보화>도 분별하지 못하면 발견하고도 못 얻는다.
하는 것이 맞는지 분별하도록 계산해 보아라.” 하셨습니다.
성자의 말씀을 듣고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을 두고 계산했습니다.
계산해 보니, ‘100% 해야 되는 일’임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한 자가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밭>을 산다 해도
그것은 ‘밭 값’만 계산한 것이지 ‘보화 값’은 아니다.
‘밭 값’만 내고 밭을 사면,
<밭에 묻힌 보화>는 거저 얻는 것이다.
<밭에 묻힌 보화>를 보고
공정한 값을 주고 밭을 사는 것이다.’ 하고 깨달았습니다.
이와 같이 따지고 계산하니,
‘100% 해야 될 일’임을 확실히 알고 결재를 하려 했습니다.
그때 성자는 ‘또 한 가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나 성자가 그것을 <섭리사 축복의 선물>로 주려고
지금껏 남에게 안 주고 잡아 놓은 것이다.
그것을 사면, 쓰기에 따라서 ‘더욱 귀한 보화’가 된다.
쓰는 만큼 ‘보화’다.” 하셨습니다.
<성자와 성령의 감동>은
- 차원 높게 생각하고 깨닫게 하고,
- 잘 계산하여 분별하게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와 성령께서 <감동>을 주실 때는
‘성자와 성령의 마음’이 자기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때는 마치 햇빛이 자기를 비추어
햇빛이 자기 몸에 닿는 순간과 같습니다.
고로 <성자와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즉시 성자와 주와 대화하면서 확인하고
그 감동에 집중하여 감동을 주시는 대로 움직여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가 발생할 때도 성자와 성령은
‘어른’이 있는데도 ‘어린아이’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강한 현상으로 ‘징조’를 주며 감동을 주십니다.
지난날 이러한 것들을 보고, 듣고, 겪지 않았습니까?
◎ 한 가지 사연을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한국에 아주 유명한 <삼풍백화점>이 있었습니다.
이 백화점은 고급 백화점으로 유명했습니다.
1995년 6월,
이 <삼품백화점>이 붕괴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그 유명한 고급 백화점이 ‘부실 공사’로 인해 붕괴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1천여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감동을 받고 행하여 기적적으로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끝>
현재 섭리사에 온 사람 중에서도
그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죽을 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는 ‘세 살배기 아기’였는데,
현재는 ‘20대’가 되어 섭리사를 뛰고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삼품백화점이 무너지기 직전’에 엄마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백화점 안’에서 물건을 사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과 성자는 ‘엄마’에게 감동을 안 주시고
‘세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역사하여 감동을 주셨습니다.
갑자기 어린아이의 머리를 아프게 하여
어린아이는 막 울면서 엄마한테 나가자고 했습니다.
아이가 막 우니,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 밖’으로 나와서
바로 집으로 갔습니다.
백화점과 집이 가까워서
백화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몇 분 안 되는 거리였습니다.
집에 와서 TV를 켰는데,
그 백화점이 과자부스러기처럼 무너져 있는 모습이
속보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졌으니,
백화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죽거나 크게 다쳤습니다.
<감동>을 무시하지 않고 행하여 살았습니다.
이래도 <감동>을 무시하고 살겠습니까? <끝>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엄마, 여자들의 심리 생각하고 그 분위기에 맞춰 전한다.)
백화점에서 한창 물건을 사러 고르러 다니는데
아이가 나가자고 한다고 나가겠습니까?
백화점 문 닫기 전에 물건을 급히 사려고 하지, 안 나갑니다.
남편이나 다 큰 아들딸이 나가자고 해도 안 나갑니다.
아마 “혼자 먼저 나가.” 했을 것입니다.
누가 “곧 이 건물이 무너지니, 나가자!” 하면,
“이 튼튼한 건물이 왜 무너져? 누가 그 말을 들을까 무섭네.” 하며
안 나갈 것입니다.
고로 성자도 성령님도 급절한 순간에 <강렬한 감동>을 주되,
그때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합당하게 주십니다.
- 아프게 하여 그 자리를 피하게 하기도 하고,
- 순간 넘어지게 하기도 하고,
- 누가 때리게 하기도 하고,
- 하던 일이 틀어져서 안 되게 하기도 하고,
- 누가 혼을 내게 하는 등
각종 방법을 총동원하여 <감동>을 주며 역사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어른인 엄마’에게 감동을 안 주고
‘세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감동을 주셨을까요?
성자가 택하여 키우시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크면서, 성자와 성령이 자기와 함께하여
순간 감동을 주시어 목숨을 살려 준 사연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와 같이 모두 지난날 도와주셨고,
앞으로도 도와주어 잘되게 해 주시고,
육뿐만 아니라 영도 구원하여 잘되게 해 주신다.” 하며,
성자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증거하며 사명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직전’에 살아난 그 어린아이가 커서
10대에 <충주 지역>에서 섭리사로 전도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20대가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복음을 들었으나, 교회에는 안 나옵니다.
지금 그 사람은 성자께서 계시를 주시어
지난날을 깨닫게 해 주시며 외치게 하고 있습니다.
<성자가 택하신 자>는 어렸을 때부터 엄격히 지키심을 깨닫고,
여러분들도 과거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그렇게도 지켜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전에
1994년 10월에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있었습니다.
직장인들은 출근을 하고 학생들은 등교를 하던 그 시간에
성수대교의 상판 48m가 무너져 내려서
버스와 자동차 6대 이상이 다리 밑으로 추락하여
무고한 생명 3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끝>
이때 이 아이의 아빠가 출근을 하기 위해 <성수대교>를 지나려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서
<성수대교 진입로> 바로 앞에서 유턴을 했답니다.
몇 분간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성수대교로 향하던 중에
차들이 앞으로 못 가고 멈춰서 있기에 보니,
분명 있어야 될 <성수대교의 일부 상판>이 무너져 있었답니다.
만약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그 감동을 무시하고
‘다리를 건너간 후에 화장실에 가야지.’ 하고
그냥 다리를 건넜다면
이 아이의 아빠는 <성수대교 중간 즈음>에 가서
다리가 무너짐과 동시에 아래로 추락하여 죽었을 것입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기 직전에 화장실에 가서 살았습니다.
‘택한 자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 아빠도 살고 엄마도 살았습니다.
‘택한 자, 구원받는 자’가 하기에 따라서
그 가정이 구원을 받게 되고,
<육계의 육>뿐 아니라 <영계의 영>까지 지켜 주십니다.
성자께서 ‘사랑하는 자’로 인해
그 가정까지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그날,
섭리인 7~8명이 감동을 받고 순간 그 건물에서 나와 살았습니다.
‘처’를 보고서 ‘처갓집’을 돕듯이
‘택한 자’를 보고서 ‘그 가정, 부모, 형제’를 도우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와 성령께서 <감동>을 주실 때는
마음으로 깨닫게 하며 감동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수십 가지로 행하십니다.
‘갈 길’이 있는데 감동을 줘도 안 가고 ‘자기 할 일’만 계속하면
‘하고 있던 그 일’이 틀어지게 하여 더 이상 못 하게 하시고,
‘성자가 원하신 갈 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런데도 계속 ‘자기 할 일’을 하면,
그때는 책망하면서 ‘매’로 때리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선생에게 <감동>을 주시며 행한 사연 하나를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월명동 성지 땅>을 개발할 때
처음에는 앞산을 ‘돌 조경’으로 할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고,
‘시멘트 계단’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시멘트 계단’을 만들기 위해 먼저는 나무로 틀을 짜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실업 축구팀 전국 리그전>이 있는 날이었는데,
섭리사에도 ‘실업 축구팀’이 있어서
선생도 같이 경기를 하기 위해 서울로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 ‘월명동 전망대의 능선’을 타고서
‘앞산이 제일 잘 보이는 위치’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너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그 자리에서 바로 주저앉았습니다.
‘오늘 서울로 축구하러 가려는데 못 가게 막으시는 건가?’
하고 즉시 기도했습니다.
이때 삼위는 <감동>으로 말씀하시며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게 아니다.
너 지금 그 자리에서 ‘앞산’이 보이지?
지금 그곳에 ‘시멘트 계단’을 만들려고
나무로 틀을 짜고 있는 거 보이지?
시멘트로 계단을 만들어서 청중이 앉는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보기 싫으냐. 앞날 보고 행해라.
이것을 봐라. 나의 구상이다.” 하셨습니다.
그때 <돌로 쌓은 조경>이 내 눈앞에 훤히 보였습니다.
크고 웅장한 바위들을 쌓은 돌 조경에
빨갛게 핀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치 ‘천국의 한 장면’같이 환상적이고 신비로웠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이같이 해야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지 않냐.
이렇게 만들자. 나의 구상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날 나의 머리를 아프게 하여 기도하게 하셨고,
그때 ‘하나님의 구상’을 보여 주시며 <감동>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날 즉시 ‘시멘트 계단’을 만들기 위해
나무로 틀을 짜는 일을 중지하게 하고,
예정대로 서울에 가서 축구 경기를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갔다 와서 즉시 ‘크고 웅장한 돌들’을 구하여
월명동에 실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하나님의 구상’을 받은 대로
<월명동 앞산 돌 조경>을 완성했습니다. <끝>
‘자기가 가는 길’이 잘못되어 못 가게 막으실 때도 있지만
‘삼위일체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막으실 때도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어느 때는 마치 열차가 달리는 건널목을 못 건너가게 막듯이
순간 <감동>을 주어 막으실 때도 있습니다.
이는 ‘위험한 것을 피한 후에 가라.’ 함이고,
‘하늘의 뜻대로 해라.’ 함입니다. <끝>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항상 생각해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를 생각하는 것이
곧 눈으로 쳐다보는 것과 똑같다.
늘 생각해야 <감동>을 주면 바로 안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부터 <감동>에 대해 쭉 말씀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할 때는...
첫째, 시대에 보낸 자를 통해 <말씀>을 주어
방향을 알려 주며 행하게 하십니다.
둘째, <생각>나게 하십니다.
셋째, <만물>을 통해 보여 주며 말씀하여 행하게 하십니다.
넷째, <보여 줄 만물>이 없을 때는
<감동>으로 도우시며 행하게 하십니다.
어느 때는 <보여 줄 만물>이 있어도
감동을 잘 받는 자들에게는 <감동>만 주시며 행하게 하십니다.
다섯째, <여건>을 틀어 역사하십니다.
어느 때는 <감동의 역사>만 하십니다.
감동을 크고 강하게 받아야 행해집니다.
감동을 약하게 받으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감동>을 크고 강하게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기도함으로 신령해져야 <감동>을 크고 강하게 받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듣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감동>을 강하게 받고,
그 힘으로 즉시 행하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잘 안 되어 고통스러울 때는
“하나님이 왜 안 도와주셨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동>을 받았는데도 감동을 무시하고 행했기에
일이 잘 안 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감동>을 강하게 받아야 됩니다.
<감동>을 강하게 받아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감동대로 행하여 얻기 때문입니다.
고로 기도하여 마치 물을 끓이듯
생각을 뜨겁게 하고 정신을 강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물을 안 끓이면, 음식도 못 합니다.
이와 같이 정신과 생각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감동을 못 받아서 못 행합니다.
전도할 때도 ‘뜻 있는 생명’이 있으면
<전도자>도 감동시키시고 <전도될 대상>도 감동시키십니다.
그러나 그 감동은 ‘순간’입니다.
고로 감동받으면,
즉시 행하여 ‘정말 뜻 있는 생명’인지 확인해야 됩니다.
<감동>은 ‘행할 때’ 더욱 강하게 옵니다.
고로 전도하려면, 나가서 전도해야 감동이 더욱 강하게 옵니다.
휴거되려면 자꾸 행해야 감동이 강하게 와서
더욱 행함으로 더 높은 차원으로 휴거를 완성하게 됩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감동>에 둔합니다.
또한 육적인 자는 <감동>에 둔하고 <감동>을 약하게 받습니다.
육적인 자란, ‘성자와 주를 열을 내서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영적인 자’를 먼저 감동시키시고,
그 감동을 ‘육적인 자’에게 전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영적인 자’에게 <감동>을 주어 <계시>를 주시고,
그 계시를 전하는 사명을 주어 ‘육적인 자들’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나 누가 ‘영적인 자’인지 잘 모릅니다.
그 환경에 처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합당한 자’를 쓰십니다.
<감동>을 받았어도 감동이 약하면, 기도하기 바랍니다.
‘뜻 있는 것’이라면, 기도할 때 <강한 감동>이 오게 됩니다.
<감동>을 귀히 여기고, 공부하고, 깨달아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감동>을 많이 주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계속해서 <감동>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잘 듣기 바랍니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는
<충만한 감동>과 <성령의 불>로 뜨겁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성령님’만 <감동의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성자’도 ‘성령’과 함께 <감동>으로 역사하십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강하게 감동이 될 때는
‘삼위의 신이 자기 마음에 와 닿은 것’이며
‘삼위의 신이 자기에게 직접 오신 것’입니다. <끝>
◎ 감동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감동을 받으려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불러야 됩니다.
기도할 때나 평소에나 ‘성자’만 불러도
하나님도, 성령님도 같이
<말씀>을 주시고 <감동>을 주시며 역사하십니다.
삼위일체는 하나 되어 역사하십니다. <끝>
<만물>을 통해서도, <사람>을 통해서도 감동을 주십니다.
◎ <감동>을 받으면, 꼭 분별해야 됩니다.
<자기 마음이 스스로 자극되어 받는 감동>과
<삼위일체가 역사하여 주시는 감동>은 엄연히 다릅니다.
고로 감동을 받으면
<자의적 의지에서 오는 생각>인지,
<삼위일체가 주시는 감동>인지, 기도하여 꼭 분별해야 됩니다.
<삼위일체가 주시는 감동>은 ‘신적인 느낌’이 들면서 오고,
<자기 육적인 감동과 생각>은 ‘육적인 느낌’이 들면서 옵니다.
또한 <사탄이 주는 생각>인지,
<삼위일체가 주시는 감동>인지, 꼭 분별해야 됩니다.
<사탄>은 자체가 ‘두려운 영’이며 ‘불안한 영’입니다.
고로 사탄이 오면, 그 영향을 받아서 두렵고 불안합니다.
고로 <사탄의 감동>이 오면, 즉시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편안한 영’입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감동이 임하면
그 마음이 임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때의 처지에 따라서 ‘삼위의 뜻’이 깨달아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감동>에 대해서도 배워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그때그때 <감동>을 주며 역사하시기 쉽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감동>을 주시는 이유는
- ‘꼭 해야 할 것’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고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9>
그러나 <뇌>가 ‘돌’같이 굳어 있으면, <감동>을 줘도 못 느낍니다.
그때는 <육체>에 따끔하게 자극을 주거나 고통을 주어 느끼게 하고,
<천사>를 통해서 채찍질하여 이끌어 내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느끼게 하십니다. <끝>
하루 중에도 <감동>을 많이 주십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고 귀히 생각하지 않으니
<감동>으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감동>을 많이 주며 역사해 주셔도
신경 쓰지 않고 귀히 여기지 않으니 모르는 것입니다.
급절할 때, 위험할 때는 특히 <감동>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또한 ‘악평자의 글’을 보거나 ‘악평’을 들으면
“읽지 말아라! 듣지 말아라!” 하며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강하게 감동을 주십니다.
<법>으로 악평을 보지 말라고 했는데도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악평을 보고 분별하지 못하여
의심하고 오해하고 자기도 같이 악평하니, 그 죄가 큽니다.
어떤 사람은 ‘악평’을 듣고 분별해야 한다고 하며 봅니다.
<악평>을 본다고 <옳은 것>이 분별되겠습니까?
<거짓>을 가지고 <진실>을 알려고 하니, 진실을 알게 되겠습니까?
더 <거짓>에 빠져서 <진실>을 못 보게 됩니다.
<악>을 가지고 <선>을 알려고 하니, 선을 구분하겠습니까?
더 <악>에 빠져서 <선>을 못 보게 됩니다.
그 시간에 <말씀>을 보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0>
<악>을 가지고 <선>을 분별하려 하지 말고,
<선>을 가지고 <악>을 분별해야 됩니다.
<거짓>을 가지고 <진실>을 분별하려 하지 말고,
<진실>을 가지고 <거짓>을 분별해야 됩니다. <끝>
<악평>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는 자는
<진리>에 확실히 서지 못하여 의심하기 때문이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여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악평>도 자꾸 보니 그 말에 자기 마음이 기울어지게 되고,
자꾸 그 말이 생각나서 의심하게 되고, 괴롭고,
자꾸 들으니 그 말이 맞는 것같이 생각되고,
그 말에 자기 마음이 동조되어 결국 자기도 악평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휴거>가 아주 늦어지고,
어떤 자들은 아예 <휴거>를 뺏기게 됩니다.
정말 회개하여 100% 근본으로 돌이켜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악평을 들었을 때, 흔들릴 때, 의심할 때,
특히 더욱 <강한 감동>으로 역사하시며 강하게 붙잡아 주십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1>
과거에 <감동>을 줬을 때 감동대로 안 해서
해를 당하고 손해를 본 것들이 많습니다.
<감동>을 잊으면, ‘꼭 해야 할 일’을 못 해서
‘그 일’이 죽습니다.
고로 ‘얻는 것’도 ‘축복’도 죽게 됩니다. <끝>
<감동의 말씀>을 듣고 <감동>에 대해 알았으니,
<감동>을 생명시하고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