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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사연2015.02.24 (화)

화 계시말씀

선포일
2015.0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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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224 화 계시말씀.hwp1 2015년 02월 계시말씀 ♥ 02월 24일 화요일 ♥ 1 1. 나 성자는 겉모습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마음을 취한다. 2. 나 성자와 교감하는 기도를 하여라! 3. ‘신앙생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라! 작성일 : 2015. 1. 10. (토) AM 0:00-1:30 작성자 : 주수신 (어느 집사님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집사님은 교회에서 성자를 생각하며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는 분이셨습니다. 성자께서 봄이면 천국으로 떠나시는데, 성자께서 이 땅에 머무르시는 동안 성자께서 좋아하시는 메뉴를 꼭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나 몰라서 고민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에 성자께 교회 헌화를 가리키며 저 헌화가 마음에 드시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성자께서는 저 헌화의 형태 때문이 아니라, 헌화를 만든 자가 성자를 생각하며 사랑과 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그 헌화가 몹시 마음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집사님께 그 사연을 말씀드리며 성자께서는 특정 메뉴가 아니라, 어떠한 음식이건 그 안에 성자를 향한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으면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고 말해 드렸습니다. 그 후, 집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다 그 집사님을 떠올리게 되었고 순간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 것인지 아느냐?’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 말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니, 성자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자의 말씀* 너희 각자의 ‘마음’을 본다는 말이 얼마나 합당한 말인지 아느냐. 육적으로 그자의 형태나 그자가 나에게 주는 물질을 보고 너희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마음, 그 중심을 보고 그 사랑을 취한다고 하였다. 너희가 하늘 앞에 무언가를 줄 때, 그것이 육적으로 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값이 나가는지를 보며 네가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님 그리고 나 성자를 향한 사랑의 깊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그 어떠한 것을 성삼위께 주었을지라도 그것에 담긴 네 정성, 네 사랑의 정도를 본다는 것이다. 육적으로 잴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영적 파장으로 느껴지는 그 사랑의 정도를 본다. 각 사람 또한 그들의 육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본다. 너희의 중심에 다른 자가 아니라 성삼위가 얼마나 뚜렷하게 있고, 그 사랑의 강도가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서 하늘 앞에 나아오는 너희의 사랑이 얼마나 성삼위를 기쁘게 하느냐가 달려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인간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흑심을 품었을지라도, 외관을 어찌하느냐에 따라 그 흑심을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밝은 표정과 밝은 목소리를 유지함으로써 말이다. 그러니 비록 마음속에 칼을 품었을지라도, 겉으로는 표현치 않으니 그 호의 아닌 호의를 모르는 자는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전능자는 그렇지 않다. 나는 너희의 신혼골수를 쪼개어 보는 성자다. 너희의 뇌를 훤히 들여다보는 나 성자다. 너희의 생각 하나하나를 살피는 나 성자다. 너희 마음의 미묘한 차이도 구별하는 나 성자이다. 그같이 신혼골수를 쪼개어 보기에, 육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속, 너희 각자가 품고 있는 마음이 더욱 가치 있고, 진실한 것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 성자니라. 나 성자는 육적으로 보이는 그 거죽이 아니라, 너희의 마음을 본다. 더 깊은 단계인 그 중심을 보고 취할 것을 취하고, 버릴 것을 버린다. 육의 행위와 마음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그것이 바로 형식과 외식인 것이다. 나 성자가 아닌 다른 자를 중심하는 것이지. 사랑아,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라, 그 속내를 보고 나 성자가 너희를 판단함은 너무도 이상적인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진정 알아야 한다. 어떠한 행위를 하여도, 그 행위를 할 때에 마음가짐에 따라서 그것의 경중이 결정된다. 특히 나 성자에게 나아오는 행위일 시에는 너희 마음의 정도에 따라 그 행위가 나 성자의 마음에 닿는 정도가 극적으로 달라진다는 말이다. 일정한 행동을 너희 모두가 한다고 가정해 보자. 너희 모두가 일제히 ‘성자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나에게 고백하였다. 어떤 자는 진정 나 성자를 생각하며 나를 그리워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그 같은 고백을 하였다고 치자. 그럴 때, 그자가 말하자마자 그 고백은 나 성자의 심정을 울린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품고 당장 그자에게로 내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어떠한 자는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같이 고백하니, 자신도 따라 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자의 머릿속에는 나 성자가 아닌 다른 것들이 가득하다. 졸리고, 배고프고, 왜 자신이 다른 자들과 함께 이 공간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불평이 가득했다. 그자의 고백을 나 성자가 취할 수 있겠느냐? 말로는 내게 감사와 사랑고백을 하나 그의 마음은 그와 같지 않았기에 나 성자에게는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졸리고 배고프다는 탄식의 소리로 들려온다. ‘성자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배고프고 졸리다! 나는 왜 다른 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로 들려온다는 말이다. 알겠냐! 나는 너희의 육의 소리보다 마음의 소리를 더욱 강하게 듣는 나 성자니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보다 더 깊은 곳, 보다 더 진실한 곳, 바로 너희의 마음 즉, 너희의 중심의 소리를 듣는 나 성자니라. 때에 따라서는 너희의 눈에는 너무도 옳지 못한 것 같은 자가 나 성자에게 크나큰 기쁨을 주기도 한다. 그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그의 육만을 보니, 그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너희가 진정 알지 못하는구나. 2015_0224 화 계시말씀.hwp2 육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육과 마음의 상태가 똑같으면 좋겠지만, 그러한 자보다도 그렇지 못한 자가 훨씬 많다. 그러니, 너희가 육의 눈으로 보며 그들의 마음까지도 제대로 판단하는 경우보다도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말이다. 그러니 나에게 기도하여라! 너희 스스로의 차원에서는 알지 못하나, 너희의 육이 아닌 뇌를 감찰하는 나 성자와 함께하면 그들의 마음 또한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주님, 오늘 한 집사님을 만났어요. 주님도 아시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 드리고 싶으신데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주님은 진짜 행복하실 것 같아요~) 그자의 마음은 너무도 순수하다. 나 성자는 순수한 자들이 너무 좋아. 육적으로 보이는 그의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그 마음을 보아라.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 순수한 소녀의 모습이다. 아까 너를 쓰고 내가 말한 것처럼 나는 너희의 중심을 본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해 결과물에 너희의 정성이 담겨 있을 때, 나는 그 어떠한 것보다도 그것을 가장 기쁘게 취한다. 나 또한 너희에게 무엇을 줄 때, 너희를 진정 사랑하는 내 마음을 잔뜩 담아서 준다. 그 마음 받고 너희가 좋아했으면 하는 기대를 하며 준다. 사랑하는 내 신부들아, 너희는 진정 아느냐? 너희 한 명, 한 명이 나 성자 앞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느냐! 너희의 사랑의 고백이 나 성자를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아느냐! 너희가 삶 가운데 행하는 그 모든 것이 나 성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있으면 그 모든 것이 나 성자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 되는 것이다. 그 고백 속에 너희의 진심이 얼마나 담겨 있냐에 따라서 나 성자가 느끼게 되는 너희의 사랑의 정도가 달라진다. 어느 때는 나 성자의 심장을 멎게 할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다른 자들이 육적으로 볼 때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네!’ 할 정도이지만, 나 성자는 마치 그자와 이별한 것처럼 냉랭하고 가슴 아프게 느끼기도 한다. 나와 사랑의 대화인 기도 또한 그러하다. 얼마나 기도를 오래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물론 길게 기도해도 잡생각 안 들고 오직 나 성자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나와 오래 대화하면 좋지. 그러나 사랑아, 사람들 사이에도 그러하지 않냐. 어느 때에는 길게 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즐겁지 않고 되레 심정이 상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때에는 짧게 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너무도 친밀해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 마음이 통하지 못한 것과 마음이 통한 것의 차이이다. 단순히 너희들이 측정할 수 있는 기도 시간으로 나와 대화의 질을 평가할 수는 없다. 얼마나 기도를 길게 하였는가로 얼마나 나 성자와 심정의 교감이 있었는가를 측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핵은 너희의 마음이다. 핵은 간절함이다. 핵은 오직 나 성자에게 집중하기이다. 핵은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핵은 늘 다른 것에 쌓여져 있기에 유심히 보지 않고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짧은 시간을 기도하였어도 나 성자를 만나 마음을 주고받았다면 그 기도는 나에게 상달된 것이다. 오랜 시간을 기도해도 나 성자와 마음의 교감이 없었다면 전자의 기도가 더욱 질 높은 기도이다. 나 성자와 마음의 교감이 일어났다는 말은, 너희와 내가 어떠한 감정을 주고받았다는 말이다. 감정을 공유하게 되니 기도 전과는 다른 어떠한 감정이 들 수도 있고 나 성자의 심정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어떠한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자는 기도 후 기쁨을 얻기도 하고, 나 성자의 애타는 심정을 받기도 하고,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죄송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너희가 기도할 때에 나 성자와의 교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니라. 기도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러하다. 감사 생활, 사랑 고백, 찬양, 기도, 말씀 듣기, 예배 드리기, 전도, 생명 관리, 교회 내 봉사 등 그 어떠한 것을 행하더라도 네 중심이 나 성자를 향한 사랑일 시에는 나 성자가 너의 행위를 기뻐 받으니 나와 너 사이에 교감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참기쁨이다. 나 성자와 사랑하는 생활이다. 하늘과의 사랑을 통해 얻는 기쁨인 것이다. ‘신앙생활’이 기도, 찬양, 말씀과만 관련된 모든 활동이라는 네 고정관념을 깨라. 신앙은 하늘과 사랑하는 생활이다. 네가 너의 육의 일을 하면서도 너의 중심에 따라서 그 일 또한 나 성자와 사랑하는 신앙생활이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너희의 육적 모습이 아니라, 너희의 깊은 마음과 생각을 보고 너희를 취한다고 하였다. 그 중심에 따라 나 성자가 사랑의 기쁨을 느끼고 너희와 교감을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러하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자, 직장에서 일을 하는 자, 너희 모두 너희의 터전 안에서 신앙생활이다. 단지 교회에서만 나 성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삶 가운데 나와 같이 살며 말 그대로 신앙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신앙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 성자와 같이 살아라. 네 삶 가운데 엔도르핀이 쉼 없이 샘솟을 것이다. 나 성자 앞에 늘 진심으로 나아와라. 나 성자가 너희를 시시때때로 취할 것이다. 너희의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받고 내 마음을 너희에게 주어 매시마다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의 교감이 일어나게 할 것이다. 그리해 너도 나도 사랑의 기쁨 속에서 살자! 최고 차원 높은 기쁨은 사랑하는 자로부터 오는 기쁨이다. 사랑하는 자로부터 오는 기쁨 중에서도 최고의 기쁨은 창조목적에 맞는 신과 인간, 그 둘 사이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기쁨인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 창조의 이치이다. 신과 인간이 만날 때, 무한한 차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일방적으로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두 쪽 모두가 극적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랑아, 네가 그 무엇을 행하든 나 성자를 네 생각 가운데에서 잊지 말아라. 또한 언제나 나 성자를 전심 다해 대하여라. 그리할 때, 네가 끝없는 기쁨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가장 차원 높은 신과의 사랑으로부터 오는 기쁨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2015_0224 화 계시말씀.hwp3 성삼위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 모습 속에 담겨진 너희의 마음을 보고 취하기에 ‘하늘은 온전한 것만을 취한다!’고 한 것이다. 사랑한다! 육으로 너희의 눈에 보이는 그 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고 사랑을 분별하며 너희의 사랑을 취하는 나 성자니라. ♥ 02월 24일 화요일 ♥ 2 선생이라는 용서가 너희 모두를 살렸다 작성일 : 2015. 1. 2. (금) AM 1:00 작성자 : 심명은 (송구영신 말씀 때 주신 용서의 편지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거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온 인류 모든 자들의 죄를 다 용서하실 수 있으실까.” 그 위대한 사랑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다 용서하시기까지 그 죄 값을 어떻게 감당하셨을까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습니다. 죄 많은 저를 그리고 모든 이들을 진정 사랑하기에 ‘용서’라는 선물을 주신 선생님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의 말씀 * 선생의 용서와 희생은 오직 사랑이다. 사랑하니 너희의 허물도 다 감싸며 또한 너희의 씻을 수 없는 죄까지도 다 씻겨 주었다. 내가 말하였지? 인생들의 죄가 너무도 많아 바닷물로 씻으려야 씻을 수 없다고 인류의 죄가 많고도 많다고 내가 온 세상을 한눈으로 살피면 그 죄악으로 온통 뒤덮여 있어 시커멓다. 유일하게 가장 희고 깨끗한 곳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생이 있는 곳이다. 난 선생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왜냐. 가장 깨끗한 곳을 찾으면 되니까. 그곳이 바로 선생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난 그곳을 가장 빨리 찾을 수가 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곳이니까. 사랑들아, 내가 말하였듯이 선생 있는 곳만 희다고 그곳만이 가장 환한 빛을 낸다고 그래서 선생은 구원자인 것이다. 그렇게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한 자만이 인생들의 죄악을 다 씻겨 줄 수 있으며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최고로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이 죄 있는 자를 용서해 줄 수는 없다. 그에겐 그와 같은 권세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두는 오직 한 사람을 통해서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 그가 유일한 용서의 문인 것이다. 그가 아니면 절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이것을 진정 깨달아야 한다. 선생의 권세와 능력을 진정 알아야 한다. 그가 문이다. 그가 통로인 것이다. 나에게 바로 나아오는 자는 불법을 행하는 자이며 절대 나에게 올 수 없다. 문을 통과하지 않는 이상 나를 절대 만날 수가 없다. 이것은 이치이며 법칙인 것이다. 사랑들아, 선생을 제대로 보아라. 그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끊임없이 너희의 죄를 놓고 나에게 간구하고 있다. 네가 진정 어떻게 살아 있는지 아느냐. 선생이 너를 대신해서 모든 죄 값을 다 받고 청산해서 그러한 것이다. 너는 매일 편히 산다 해도 선생은 단 한 번도 그리 산 적 없다. 왜냐. 오직 너 하나 살리려고 편안한 것도 자신을 위한 삶도 다 버렸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죄 짐을 떠안고 가고 있는 것이다. 네가 매일 작게나 크게 짓는 그 죄로 인해 선생은 영으로도 혼으로도 육으로도 탕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를 묶고 있는 족쇄는 언제쯤 풀릴까 할 정도로 그가 감당해야 할 죄악이 그를 붙들고 놔주질 않는구나. 선생 지금까지 그 죄의 무게가 무겁고 가혹해서 내팽개친 적 한 번도 없다. 끝까지 해냈다. 끝까지 너 하나 생각하며 해내 오지 않았냐. 선생은 늘 극적인 조건을 쌓아 왔다. 그래야지만 겨우겨우 위기 모면을 하는 것이 아닌 능히 사탄을 이기고 그 사탄들이 네 주변에 얼씬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막고 또 막아 주며 지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휴거의 막바지를 놓고 최고 극의 조건에 도전하였다. 나조차도 가슴 아리게 한 그 조건 말이다. 너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말씀 통해 들었겠지만 너희의 죄를 다 사해 준 것이다. 각자 휴거 때가 다 되어 가니 지은 모든 죄들을 다 고해 가며 용서를 비는 자들도 참으로 많았고 그래서 용서를 받은 자들도 있었고 반대로 말하지 않고 끝까지 숨기고 간 자들도 있었다. 그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 말씀에 수도 없이 고백하라 말하였지. 그래도 끝끝내 말하지 않고 숨기고 산 자들이 있었다.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그 죄가 자신을 고통 가운데로 끌고 가는지도 모르고 사탄이 조건 잡아 자신의 영혼을 질질 끌고 다니는지도 모르고 절대 말하지 않는 자들..... 그리고 세상을 보니 진정 가망 없는 인생들이 되어 버린 영혼들, 자신의 앞날을 모른 채 죽음으로 가는 영혼들... 각가지의 모습들을 보니 정말 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사랑들아,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쉬운 것 같으나 진정 어려운 것이다 그저 잘못을 용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자에게 있어서 말이다. 죄를 용서했다는 의미는 너의 죄를 깨끗이 청산해 줬다는 의미로 선생이라는 구원자가 너를 대신해 모든 죄 다 갚아 주었다는 것이다. 결국 사탄의 사슬, 죄의 사슬을 다 끊어 놓았다는 것이다. 선생이 감당한 용서는 참으로 말할 수 없이 크고도 컸다. 그저 말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무도 쉬웠겠지. 구원자라서 모든 권세를 다 가진 자라서 쉽게 마술 부리듯 없어지게 했겠느냐. 절대 아니다. 하나하나 다 지고 또 지었단 말이다. 생각해 보아라. 온 인류 73억 명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죄를 지었다 해도 전체를 보면 그 가짓수가 73억 개인 것이다. 이것이 상상이 되냐. 73억 개의 죄 짐 말이다. 근데 하나씩만 지은 것이 아니지 않느냐. 다 말할 수 없는 죄들이다. 선생을 죽이고 해하려 하는 자들, 생명들을 끄집어가는 자들, 온갖 추악한 짓을 하는 자들. 이것뿐이겠느냐. 아니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아라. 아주 썩을 대로 썩지 않았냐. 쉽게 사람을 죽이고 온갖 고통을 다 주는 세상이 되었다. 최고로 악이 꽉 찬 세상이 되지 않았냐. 참으로 내가 창조한 인생들이 맞나 할 정도이다. 마치 사탄의 몸이 되어 사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 어찌 내가 일일이 말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충분히 보고 듣고 접하고 살고 있지 않느냐. 보이는 그것뿐만 아니라 온 인류 구석구석 극악무도한 죄들이 많다. 사랑하는 내 신부들이여, 내가 이리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부디 선생 통해 네가 지은 죄 다 용서받았으면 다시는 죄짓고 살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는 선생 가슴 아프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는 너의 죄로 네 앞길 막지 말라는 것이다. 선생 지금도 지구덩이만 한 죄 짐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말씀 통해 그 말이 어찌 나왔겠느냐. 그 말이 나오기까지 선생이 어떠한 몸부림을 쳤는지 깨닫고 알아야 한다. 너희는 선생이 가장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더냐. 2015_0224 화 계시말씀.hwp4 그러니 이젠 그의 용서 받아 자유의 몸이 된 너희들이 더 선생 위로하며 살아 줘야 하지 않겠냐. 선생에겐 너희뿐이다. 그리고 사랑해서 오늘도 그는 그 길을 간다. 고통의 길일지라도 너희 사랑하기에 한순간도 망설임 없이 그 길을 가는 선생이다. 그러니 선생 사랑 좀 알아라. 그리고 그의 심정 좀 더 깊이 알아라. 이젠 선생 자유롭게 해 주자. 이번엔 너희가 선생 묶인 것 좀 풀어 주자. 그것은 오직 너희들만이 풀 수 있는 것이다. 너희 손으로 직접 말이다. 알겠지? 마지막으로 내가 부탁할 것이 있다. 선생이 너희 위해 그리고 온 인류 모든 이들의 죄를 용서해 줌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진정 아는 너희들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잘하여라. 앞으론 이와 같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너희는 깨끗하게 되었다. 희고 깨끗한 신부들이 되었다. 그러니 다시는 네 흰옷에 검은 얼룩이 묻지 않게 하자. 부디 선생처럼 깨끗한 신부 되어 오직 완전한 휴거를 이루어 영원한 천국, 영원한 희망인 황금성에 당당히 입성하여 너희 앞에 허락된 가장 큰 축복들을 다 받고 누리고 살아라. 이 모든 것은 다 너희 것이다. 그리고 꼭! 받아라. 내가 다 줄 테니까. 선생이 너희 위해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 다 주고 싶기에 너희 행복하게 해 주고자 쌓은 조건 바탕 가운데 신부로서 더 거듭나길 바라며 나 성자가 말하였노라. 사랑한다. 내 사랑들. 안녕. 영원한 축복의 신부들에게 나 성자가. ♥ 02월 24일 화요일 ♥ 3 말씀, 그것이 나 성자다 작성일 : 2015. 1. 4. PM 6:00 작성자 : 전우림 (피곤해서 교육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반응하지 못해서 혼자 낙심하고 있을 때 성자께서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으로 감동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사랑아, 있잖아. 나 성자는 네가 원할 때만 말할 수 없다. 나에게는 때가 있고 지금 이때는 내가 떠나는 때라 더 그래. 네가 마음이 준비되고 총명할 때 내 말이 들리지. 그러나 나는 네가 잘 때도, 피곤해할 때도, 힘들어할 때도 늘 말씀하고 있다. 지금 이때가 그러하다. 말씀 잔치하는 때다. 이전 역사를 볼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후에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듣고, 안 들린 것도 있지만 하나님이 아예 말씀하지 않으셨기에 그 역사는 참으로 참혹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른 이후의 역사는 말씀이 없어 허덕이는 가뭄의 역사였다. 그러다 사명자들, 조건을 세운 자들을 통해 조금씩 이야기하셨다. 예수 때 봇물 터지듯 말씀했다. 메시아가 왔기 때문이다. 하늘 심정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자가 등장해서 하나님의 심정을 전했다. 지금 이때는 예수 때보다 즉, 나 성자의 초림역사 때보다 말씀이 넘쳐난다. 말씀을 많이 한다. 왜? 내 심정을 나의 사랑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애인에게 자기 속 이야기 다 하지. 못 할 이야기 없지. 그와 같이 그러해. 선생이 내 애인 되어, 신부 되어 내 심정 다 받아 다 전한다. 선생이 계속 차원을 높여 행하므로 그가 더 깊은 하늘의 비밀을 받아 전하였고 그 역사가 휴거까지 이르렀다. 하나님의 속을 시원하게 한 자가 있으니 하나님이 신이 나셔서 말씀하시고 더욱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진정 깨달아라. 나의 말씀의 가치를. 계시자들, 사명자들을 통해서도 다 못 전하는 나의 심정을 아느냐? 종한테 무슨 이야기 하냐? 명령이나 한다. 사랑을 종 차원에서 느끼니 얼마나 하나님이 두렵고 무섭냐. 그들은 심판을 면하기 위해 말씀을 지켜 행했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 표현의 전부였다. 지금 너희는 어떠하냐? 예수 때를 볼까? 아들에게 무슨 이야기 하냐? 돌봐 주고 챙겨 준다. 간구하면 알려 줬다. 두드리면 열어 주고. 그런데 아들에게 부모가 심정 다 이야기하냐? 세상 부모 자녀 사이에도 다 말 못 한다. 하물며 하늘 부모의 심정을 아들급인 인간이 다 알 수 있었겠느냐. 지금 너희는 어떠하냐? 혹시 너희도 심판 면하려고 구원이나 구해서 받으려고 내 말씀 행하느냐? 너희 잘되고 싶어서 부모 졸라서 용돈 타다 쓰는 아들 같은 차원이더냐? 진정 그러하냐? 나는 너희를 애인으로 봤다. 그래서 조건이 없어도 구하지 않아도 다 주었다. 두드리지 않아도 열어 주었고 너희 마음 문 앞에서 서성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리한다. 나는 너희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애인, 신부로 보는데 너희는 나를 무엇으로 보느냐? 내가 그냥 신이냐? 보이지 않는 존재일 뿐이더냐? 아니면 내가 너희 앞에 무섭고 두려운 왕과 같은 명령하는 자이더냐? 심판하여 혼내는 자이더냐? 아님 제 좋을 것 다 하고 제 사랑할 이성 다 사랑하고 나서 그저 공경하는 부모더냐? 나를 사랑하느냐? (네,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너를 사랑하는 증표로 보낸 나의 말씀을 들어 봐라. 나의 말씀을 가지고 온 자를 생각하라. 사랑하라. 애인은 매일 붙어 살지. 붙어 살다 떨어지면 죽는다. 마음 곤고하고 몸 붙어 있다 떨어지니 휑하니 외롭고. 매일 붙어 있다 멀리 어디 가면 전화통 끊임없이 붙들고 살지. 그와 같다. 나의 입장은 그와 같아. 나는 계속 너희와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비밀 알려 주고 축복 주고 싶다. 왜? 너희는 종도 아들도 아닌 나의 사랑하는 하나뿐인 신부이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황금성까지 준다 했다. 하나님의 백보좌 옆자리를 허락한다 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나의 육이 된 신부 선생까지 그곳으로 넘겨주었다. 심정이 타들어갈 듯하며 그를 넘겼다. 너희 위해서, 역사 위해서 너희 휴거시키면 선생과 같이 영원히 보니 그렇게 했다. 너희는 나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너희가 조건이 없어도 다 덮어 준다 했다. 다 용서한다 했다. 왜, 왜 이와 같은 역사를 일으켰겠느냐. 사탄이 미쳐 날뛰며 선생 괴롭혔다. 그 죄 다 책임지라고 힐문했다. 선생 육신 속해 있으니 아팠다. 그거 내가 옆에서 다 지켜봤다. 내 마음 다 찢어지고 쓰라려 피 났다. 2015_0224 화 계시말씀.hwp5 그런데, 그런데... 그런 내 마음 위로하는 자, 지옥 고통당한 선생뿐이더라. 아직도 내 마음을 근본으로 위로하는 자가 없다. 언제까지 나를 짝사랑하게 놔둘 것이냐? 짝사랑 100퍼센트 해도 다른 쪽 상대 사랑 100퍼센트 안 되면, 50퍼센트 반쪽짜리 사랑이다. 이것으로는 휴거는 없다. 황금성 내가 허락할 수 없다. 허락해도 못 간다. 너희 체질 안 되어 사랑이 부담스럽고 이상하다. 그 모습 내가 마음 아파 볼 수 없으니 못 보낸다. 사랑아, 나 너의 신랑이다. 애인이다. 네가 하자는 대로 한다. 여기 앉으라 하면 여기 앉고 옆에 있자 하면 옆에 있다. 너 잘 때도 옆에 있고 부르면 온다. 그런데 너 내가 부르면 오느냐? 말씀 준다 하면 기뻐 죽냐? 말씀이 나인데, 내가 부르는데 너 육만 좋냐? 아님 싫은 자도 있느냐? 말씀 길면 힘드냐? 말씀 반복하면 지루하냐? 정말 너희가 그러하냐?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 맞느냐? 언제까지 준비할 것이냐? 등불 기름 없어도 주님께 안기는 것이다. 주 품에서 그 불로 다시 불 지피면 되지. 몰라도, 없어도, 부족해도 나에게 나아오는 것이다. 나는 완전한 자요, 하늘에 속한 자라. 너희는 땅에 속했으니 신이 되지 못한다. 나와 하나 되어 같이 해야 너희가 신 차원에 오른다. 사랑아, 내 마음 받아라. 아직 체질이 안 되어 말씀 길게 못 듣고 반복하면 힘들어하는 것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러나 노력이다. 그러나 도전이다. 할 수 있지 않으냐. 나 알면, 내가 말씀으로 오는 것 알면 할 수 있다. 조금 더 하자. 조금 차이가 큰 차이다. 자기 부족한 것 알았으면 더 행함으로 채우면 되지. 왜 낙심하고 좌절해. 이제 그럴 시간 없다 함이다. 자, 사랑아. 나를 안아 보아라. 우리 사랑하고 대화할 시간도 부족하지 않냐. 나 가면 나 안 보고 싶을 것이냐. 나 가면 우리 함께했을 때 사연 전화로 이야기해야지 않겠느냐. 사연 만들고 함께하자. 말씀, 그것이 전부라 생각하라. 말씀으로 메시아 나타났고 말씀으로 나도 재림했다. 말씀으로 나 지금 떠남을 밝혔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밝힌다. 말씀으로 너희의 육을 구원하고, 혼을 살리고, 영을 영생시킨다. 말씀이 너희를 살린다. 명심하라. 오직 말씀이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나를 사모하는 것 되어 나를 얻게 되리라. 2015년 선교의 해가 밝았다. 선교의 해를 선포함은 말씀을 중심하여 휴거된 너희가 빛을 발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너희의 조건이 부족하고 말씀을 완전히 중심하지 못하는 고로 선교가 더딜 수 있기에 내가 코치한다. 너희 휴거시키려 죄 다 사했다. 이제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말씀 중심하기다. 너희 깨끗하기에 말씀 딱 중심하면 바로 크고 휴거된다. 그러면 바로 빛을 발해 선교한다. 선교하고 전도하라 해서 노방만 다니고 생명 만나러만 다니라는 것 아니다. 그 전에 기도다. 그 전에 말씀이다. 말씀을 중심한 기도다. 말씀 중심으로 시대와 주를 깨닫기다. 그리고 선교와 전도다. 내 말을 명심하고 같이 행하자. 말씀 중심하면 결국 나를 중심한 것이니 따로 할 수 없다. 기도와 말씀 무장 명심하자. 사랑한다. 말씀의 중요성을 말한 성자니라. (말씀을 성자와 같이 정리하다 생각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한 말씀 더 하겠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아느냐? 너희가 기다림의 아픔과 외로움, 쓸쓸함을 아느냐? 6천 년 기다렸다. 정말 사랑하는 자와 6천 년 만에 만났다고 생각해 보아라. 이야기할 것이 얼마나 많겠느냐. 너희 선생과 지금 만난다고 생각해 봐라. 할 말이 얼마나 많으냐. 이처럼 몇 년 떨어져 있어도 할 이야기가 수억 가지인데 나는 어떻겠느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떠하시겠느냐. 그 뜻, 그 사랑 진정 헤아릴 수 없노라. 나 말하는 것 무색하게 하지 마. 내가 말하는 것에 사랑으로 반응해 주면 안 되겠니? 나는 늘 사랑이다. 너희를 칭찬할 때도 책망할 때도 축복할 때도 심지어 심판할 때도 사랑이다. 나는 사랑의 근본체요, 사랑으로 너희를 창조한 절대신 성자니라. 너희는 늘 사랑이냐? 너희는 나를 사랑으로 보느냐? 늘 그러하느냐? 나를 늘 사랑해 다오. 이 순간을 너무나 기다렸다. 너희와 영원히 살기만을 기다렸다. 나와 같이 살자. 나랑 사랑하자. 더 이상 나 기다리게 하지 마. 때 지나면 씁쓸하고 마음 아파도 나 하늘로 간다. 그리고 때 지나면 휴거도 끝난다. 나 기다림 이제 하기 싫어서 이제 그 먹먹한 가슴 부여잡고 싶지 않아서 너희와 같이 가려고 이리도 말씀한다. 너희 행하기만을 기다려 바로바로 응답하고 깨달음 준다. 내 말씀 네가 이리 받을 수 있는 것도 기적이고 표적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사랑 구름에 떠 있듯 한다. 선생 정신, 사상 무장하면 선생이 깨달은 것 그만큼 깨달을 수 있다. 그를 보고 배워. 그리고 정말 사랑해. 사랑 빠지면 절대 안 돼. 죽는다. 사랑한다. 진정 사랑한다. 사랑해서 이야기한 성자 주니라. ♥ 02월 24일 화요일 ♥ 4 사랑의 소통 문을 열어라 작성일 : 2014. 12. 22. AM 7:00 작성자 : 김영호 (선교의 불을 일으켜 보고 싶다고 기도할 때 성자께서는 소통의 문이 열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섭리사 무슨 일을 하든지 소통이 되어야 한다. 휴거도 선교도 모두 보낸 자와 소통이다. 또 지도자와 소통이고 형제와도 소통이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하나 되지 못한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사랑이 없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결국 소통은 관심이고 사랑이기 때문에 섭리사는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깊이 깨달아라. 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첫째, 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나의 생명의 말씀을 100% 소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심정을 100% 받아라. 또 휴거를 이루기 위해서도 나의 말귀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 2015_0224 화 계시말씀.hwp6 나는 A를 목적하고 말씀을 전하였는데 너희는 B로 알아듣고 B로 간다면 역시 나와 너희가 소통이 되지 않은 것이다. 말씀으로 나와 100% 소통이다. 둘째, 새벽에 낮에 밤에 기도함으로 하루 세 번 나와 소통이다. 섭리사에 아직도 117 기도를 하지 않는 자가 있다. 계속 감동을 주어도 감동을 무시하고 자기 할 일 바쁘더구나. 또 새벽에 아예 일어나지 않고 잠을 자는 자들이 많고 새벽에 잠시 일어나 대충 기도하는 자들도 있고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졸거나 횡설수설하는 자들도 많다. 정확하게 기도하는 총명한 자가 많이 없더구나. 기도와 말씀은 나와 네가 통하는 최고의 소통의 길이다. 이때 나의 심정과 나의 마음을 받고 지혜와 구상을 받아 앞으로 해야 할 것을 알게 되는데 너희가 나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어찌하느냐. 소통하자. 셋째, 편지 소통이다. 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 시대 내가 보낸 자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이전에는 눈과 눈을 마주보며 만났지만 지금은 복음으로 매이게 되었으니 편지로 내가 보낸 자와 만나는 것이다. 편지 한 통은 선생과 1:1 면담을 한 것과 같다. 너희들은 선생을 만나고 싶어 하면서 왜 편지를 쓰지 않는 것이냐. 답이 없어서 안 쓰는 것이냐. 편지 안 쓰는 자들 미련하구나. 또 편지를 쓰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도 지혜가 없다. 왕에게 쓰듯이 써라. 그러나 신랑에게 쓰듯 사랑스럽게 쓰는 것이다. 자기 기분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신랑을 생각하고 그 심정을 맞추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말씀 소통, 기도 소통을 하면서 선생과 편지 소통도 하여라. 이제 말로써 소통하였으니 넷째, 행실 소통이다. 행함으로 소통의 문을 활짝 열고 뛰어라. 역시 움직여야 역사가 남는다. 행한 것만이 기록이 되어 공적으로 남는다. 또 행해야 행함을 기반으로 선생도 만나고 나 성자도 만나서 성삼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매일 앉아서 대화만 한다고 하여 깊은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같이 행해야 보람도 있고 같이 행하면서 소통해야 깊은 대화가 이루어진다. 알겠느냐? 내가 왜 교육하는지 알아라. 나는 이제 너희가 희미하게 보인다. 이제는 황금성 백보좌가 내 눈앞에 있듯이 뚜렷하게 보이는구나. 그만큼 내가 지상을 떠나서 멀리 왔다는 의미이다. 천국 황금성 백보좌에서도 충분히 너희가 훤히 보이고 너희와 소통할 수도 있지만 지금도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 내가 지상을 완전히 떠났을 때 소통이 더 안 될까 염려된다. 신부의 핵은 사랑이야! 곧 나 성자에게 선생에게 관심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소통하는 것이다. 너희가 매일매일 나와 소통한 것처럼 나도 천국에서 너희의 행함대로 너희를 대할 것이다. 횡설수설하는 자, 조는 자, 자는 자, 심정 모르고 지혜 없이 말하는 자, 행하지 않는 자 모두 행함대로 돌아올 것이다. 고로, 차원을 높여라. 모두 승리하자. 매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제 온 자들은 어떻게 단번에 휴거가 되겠냐. 매일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뛰어넘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는데 후진은 안 하지 않더냐. 계속 나에게 전진이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너무 멀더라도 나에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전진한다면 어느새 내가 있는 황금성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라. 아무리 멀어도 차를 타고 계속 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냐. 네가 차를 타듯이 신앙을 해 보아라. 내비게이션과 도로 표지판은 나의 말씀이고 너는 운전자라고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기름과 엔진은 너의 사랑이라 생각해 보아라. 네가 나의 뜻대로 잘 운전한다면 결국 나에게 도착하지 않겠느냐. 나는 그 사람의 행실과 마음을 본다. 아무리 멋있는 사람이라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결국은 사망의 길로 가니 나와 상관이 없는 자다. 아무리 차가 비싼 차라고 해서 그 차가 대단하냐? 내 뜻대로 가지 않는다면 내게는 볼품없다는 것이다. 너의 육신이 초라해도 내 뜻 길만 간다면 내게는 네가 가장 귀한 자로다. 나의 이 말은 영원히 빛나리라. 소통하라. 개통하라. 선생도 소통하며 섭리사를 이끌어 가는데 너희가 소통을 안 하면 되겠느냐. 계속 의논과 소통이다. 육계 시간 1분이면 영계에서는 하루같이 느껴진다. 고로 나와 매 순간 붙어 있어라. 나를 외롭게 두지 말아라. 늘 사랑의 소통을 하자. 알겠지? 소통은 너무나도 귀하고 중하다. 휴거를 위해서도 선교를 위해서도 소통해야 한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도 이룰 수 없다. 쉽게 비유를 들자. 새로운 지역을 가서 한 집을 찾아가야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가려는 집을 찾기 위해서는 그 집의 주인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길을 찾고 또 내비게이션으로 입력하여 길을 찾고 표지판을 보고 길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또 사람들에게 물어볼 것은 물어보며 가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 아무 집이나 들어간다면 도둑으로 오해를 받지 않겠느냐. 너의 인생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직 나 성자만이 너의 길을 안다. 형제들을 통해 알 수 있기도 하지만 이것은 마치 네가 새로운 지역에서 집을 찾아가는데 옆에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서 집 주변을 설명하며 이 근처에 이러한 곳이 있냐고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는 정도이지 답이 되지는 않는다. 오직 근본적인 답은 내게 있다는 것이다. 100% 나와 개통 그리고 소통이다. 깊이 기도하고 실천하며 나의 말을 깊이 받자. 선생과도 소통이다. 마지막으로 선생과 소통에 대해 말하고 마친다. 선생은 내가 이 시대에 보낸 사명자이다. 곧 나의 육신이며 내가 쓰는 자이다. 너희는 내가 보이지 않으니 보이는 육신을 세워 선생을 보내 준 것이다. 곧 선생과 소통하는 자는 나와 소통하는 자라는 것을 알아라. 선생과 100% 소통이 되는 자들은 나와도 100% 소통이 되는 자들이다. 나 성자의 심정을 모르는 자가 선생의 심정을 어찌 알겠으며 선생의 심정을 모르는 자가 나 성자의 심정을 어찌 알겠더냐. 선생과 100% 통하는 자들을 자세히 보아라. 나와 계속 소통하며 실천하는 자이다. 자신에게만 소통을 안 해 준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나 성자와 통한다면 선생과도 통한다. 나 성자에게 바로 나올 수 없으니 보이는 선생을 나의 육신으로 여기고 대하여라. 제발 소통하자. 선생이 보이는 나의 심정이로다. 나를 어렵게 보지 말고 선생을 보며 나를 깨달아 다오. 그리고 나와 대화하자꾸나. 2015_0224 화 계시말씀.hwp7 내가 너희에게 만물을 통해 말하는 것도 깨닫게 하는 것도 선생을 통해 나타난 것도 계시를 주는 것도 나 성자는 너희와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한 것이다. 너희는 노력을 해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삼위와 선생과 대화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내가 너희의 말에 답을 해 주어도 너희가 답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하니 오히려 내가 너희와 소통하기가 더 어렵구나. 나는 정말 너희와 대화하고 싶다. 나와 만나자. 사랑의 소통 문을 열어야 네 인생 문이 열린다. 샬롬.